이런 더운날 올라가기에는 심히 편안하다고 할 수가 없는 길이다.

멀리서 본 전망대 높이를 생각하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은근히 이 오솔길 경사가 급한 편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가빠온다.

몸무게 탓도 있고 카메라 탓도 있고. 건장한 사람이라 해도 5kg 짜리 숄더백 매고 오르는게 쉽지는 않을 듯.

 

 

 

그래도 친절하게 계단을 만들어 줘서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지만

왠지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기분에, 후세에 내가 여기 올랐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고 한다.

이렇게 찍어놓지 않으면 또 엄살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출몰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사실 날씨 탓이 가장 컸고, 여기는 그냥 동네 마실 나가는 수준밖에 안 되는 높이긴 하다.

 

 

 

근데 진짜로 좀 힘들긴 하다. 경사가 그리 만만한 편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치는 형태라서

이렇게 사진 한장 담아내는게 오히려 휴식시간이라 느껴진다.

 

훅훅거리는 숨소리와 후두둑 떨어지는 땀방울이 산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다.

다행히도 앞뒤로 나 말고 이곳을 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좁은 길목에서 사진 찍으며 좀 쉬어도 문제될 게 없었다.

노련하게 올라가는 사람들이 뒤에서 땀덩어리 본인을 지나쳐 갈 때, 가끔 계곡 너머로 몸을 던지고픈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저 곳을 돌면 확 트인 정상이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몇 번이고 배신당해가며 어쨌든 한걸음씩 발을 뗀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서도 느꼈지만, 어쨌든 발을 떼면 언젠가는 끝나는 일.

 

 

 

막상 정말로 평지가 나오고 나니 좀 맥이 풀린다. 사실 땀 좀 흘렸다 뿐이지 조그만 언덕 같은 곳일 뿐.

원래 성터였다고 하는데, 이런 외진 마을 어귀에도 성이 있었나 싶다. 이곳 성터에 대해서는 그리 알아본 적이 없었다.

 

산 위의 공터치고는 확실히 인위적으로 닦아놓은 흔적이 남아있는걸 보면 성이 있긴 있었나보다.

손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시원하게 땀 한바가지 흘리고, 그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앞에 펼쳐진 전망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시라카와고의 마을 전경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는 2~3군데쯤 유명한 스팟이 있는데

이곳은 오솔길을 따라 왔을 때 만날 수 있는, 제대로 된 펜스조차 없는 등산길 도중의 조그만 창문같은 느낌의 스팟이다.

 

가장 유명한 곳도 아니고, 여름의 생명력 덕분에 나무들이 워낙 울창하게 자라서 시야각이 제한되는 불편한 곳이지만

일부러 험한 길 올라왔다는 달성감도 있고 해서 한동안 머무르며 마을의 모습을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다.

 

가치가 있는 곳이니 그렇겠지만, 왠만한 농촌 역시 한국의 농촌보다 훨씬 정비가 잘 되어있는 이곳에서도

정말 예술적으로 가꾸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절경이다. 사실상 평범한 농촌이 아니긴 하지만.

 

 

 

좀 전에 화사한 커플 둘이서 열심히 사진찍던 그 건물을 이렇게 바라보니 느낌이 좀 새롭다.

논마지기 공간을 살짝 비집고 들어간 녀석인데 어쩌면 저렇게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거기다 같은 높이에서 걸어다닐때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돌길로 만들어놓은 농로의 깔끔함 역시 인상적이다.

겉으로는 농촌 마을같아 보이지만, 속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돈 많은 귀족들이 산책 즐기는 곳처럼 어느 한군데 세심히 손을 쓰지 않은곳이 없다.

 

 

 

한 국가와 그곳의 자연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 틀림없다.

일본 가옥의 평기와와 저 곧게 뻗은 삼나무가 어울린다면

한옥의 굽이친 기와 형태는 허리를 늘어뜨린 소나무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도시에서는 이미 어디가 한국이고 어디가 일본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해져 버렸지만

이런 시골모습만큼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나라별 특색이 사라지지 않는 듯 하다.

 

좋긴 좋은데, 이곳 아이들도 어릴때 나무위에 올라가 놀고 그러는 것일까.

내가 어릴적엔 올라가기 쉬운 소나무를 참 수백번도 더 오르내리고 했는데

여기 삼나무 잘못 올라갔다가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조그맣지만 꽤나 오래된 듯한 사당이 위치한 이곳 전망대에는

사람도 별로 오지 않고, 그늘 아래에 벤치가 하나 있어서 땀 식히기엔 좋다.

카메라를 내던지듯이 아무렇게나 퍼질려 놓고 벤치에 앉아서 땀을 닦는다. 손수건을 짤면 땀이 떨어질 정도로 허용량이 오버되고 있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앉아만 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서양인 관광객 부부가 이곳에 와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그사람들 눈에도 이런 풍경은 꽤나 신선하게 느껴질까. 한국과 일본에 비교하면 미국이나 유럽이나 산이 많은편은 아니라서

이 정도 산지에 둘러싸인 마을이 그리 흔하진 않을 법 하다.

 

그 부부는 실컷 사진찍고 난 후, 왠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나에게 와서 사진 좀 찍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한다.

찍어주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본인이 사용하지 않는 캐논 DSLR 이라서 조작이 항상 어색하다.

본인들이 오토모드로 해 두고 나한테 건네줬으니 그걸 바꿀필요는 없을 듯. 그냥 구도만 맞춰서 두어 장 찍어줬다.

받아들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고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이걸 또 붙잡고 '난 위대한 한국인이여~'라고 설명해주기도 귀찮다.

 

내가 그들을 미국사람인지 영국사람인지 프랑스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과 같이

그들도 내가 일본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니, 그걸 그들에게 수정해 줘야 할 의무감 같은거 느끼지 않는다.

 

 

 

이곳부터는 제대로 닦여있는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되는데, 가장 유명한 천수각 전망대에는 거대 식당과 가게가 포진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마을 아래서도 보이는 곳이고, 전망 해치지 않으려고 작업을 다 해놓은 곳이기 때문에 시야가 매우 시원하다.

 

마을 안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가게를 만들수도 없기 때문에, 이곳 전망대 가게는 압도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단체 관광이라면 이 곳을 놓칠수 없으니, 식당쪽에는 벌써 '2층은 예약, 단체손님 전용입니다'라고 써 놓을 정도.

 

전망대에는 쉴 수 있는 의자도 몇 겹이나 층층히 배치되어 있고, 펜스 바로 앞에서는 아무것도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그림같은 시라카와고의 사진을 마음껏 담을 수 있다. 앞에서 대신 사진 찍어주는 사람도 항시 대기중이며

물론 관광객 자신들이 가져온 똑딱이가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DSLR로 사람들 찍어주고 출력하며 돈 받는 일도 한다.

 

사진 찍어주면서 '치즈~' 대신에 '시라카와 고~' 하면서 주먹을 하늘로 올리라는 주문만큼은 좀 촌스럽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수가 없었긴 했지만.

 

 

 

임팩트라고 할까. 어쨌든 마을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곳 천수각 전망대에서 사진을 담지 않는 관광객이란게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 역시 귀찮아 죽을것 같은 렌즈를 화각별로 담아온 이유의 절반이 이곳 전망대를 위해서였으니까.

광각으로도 담고 망원으로도 담고, 관광객이 많이 오긴 해도 전망대 공간이 상당히 넓고

단체 관광객은 잠깐 구경하고 단체사진 찍고 훌쩍 가버리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도는 홀로여행자는, 무제한 회전초밥집에 앉아있는 기분으로 원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참 뭐랄까, 이런 폭발적인 자연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인공미의 깔끔함을 유지하는 이쪽 사람들의 특성은 신기하다.

깨끗하고 깔끔한 건 좋은데, 한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람 사는 냄새'라는게 좀 적다고 해야 하나.

사실 그거 조금만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고 지저분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어서 쉽게 적용하기는 어려워도

확실히 한국에 이런 자연의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면, 지금 이 모습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를거라 생각한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수십장도 넘게 담았지만, 블로그에 올릴 생각은 들지 않는다.

2D 화면에서 사진 구경하는 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더 많이 올린다고 이곳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마을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면 역시 직접 가서 느끼는게 제일 좋은 방법.

본인은 이 모습을 보면서 겨울의 시라카와고를 상상하고 있다. 눈으로 덮인 전망대까지 걸어서 갈 수 있을까 싶고.

사실 적지 않은 관광객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마을에서 여기까지 태워주는 버스 있대!'

물론 본인 역시 알고 있었지만, 이 마을을 돌아보는데 내연기관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아서 걸어 올라왔다.

 

겨울엔 방금 그 길 오르다가 인생이 좀 꼬일수도 있을 것 같아서, 버스를 이용해야 하나 고민중이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긴 했는데,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지금도 배가 눈꼽만큼도 고프지 않다.

여행중에는 그리 많이 먹는편이 아니긴 해도, 이만큼 더운날 돌아다니고 있어도 허기지지 않는다는건 좀 신기하다.

그래서 전망좋은 전망대 앞의 식당에도 들어가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고, 시원한 음료수나 하나 뽑아 마신다.

 

타카야마로 돌아가는 버스가 오기까지 2시간 30분쯤 남았는데, 시간은 충분해도 뭔가 가게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결론은 대충 납득이 간다.

시라카와고에서는, 더운 여름날 에어콘 켜진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추운 겨울날 살짝 따뜻한 가게로 들어가는게 더 어울리기 때문에.

 

여름이 본인에게는 참 버티기 힘든 날이라는게, 건물 안의 인공적 에어콘 바람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울엔 난로나 보일러 강하게 돌리지 않아도 집이라는 건물 자체가 어느정도 단열효과를 내기 때문에

들어가 앉아도 살짝 추워서 손바닥을 한두 번 비벼주는 정도가 딱 좋다. 거기서 식사 한끼 하면 몸이 포근해 지니까.

그런 면에서, 겨울이라도 난로나 히터 팍팍 틀어버리는 가게는 들어가기 싫다.

 

느긋하게 풍경 바라보며 휴식 취하고 나서 반대쪽 길로 내려간다. 반대쪽은 자동차로 통과할 수 있을만큼 반듯하게 닦인 아스팔트 도로.

마을 어귀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난이도는 훨씬 낮다. 올라올 때 이쪽으로 왔으면 몸은 편했을 듯.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길은 아니라서, 내려올 때 느긋하게 내려오는 쪽으로 사용해도 불만은 없다.

 

진짜로 물이 풍부한 곳인지, 내려가는 도중에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 놓은게 보인다.

 

 

 

마을 어귀를 빙글 돌며 내려오는 길이라서, 마을 속에서 헤엄치며 담던 사진의 시각과는 또 다른 맛의 결과물이 나온다.

슬슬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는 시점이라 그런지, 이런 길에서 숨듯이 걸어가며 저 너머의 모습을 담는 것은, 일종의 휴식과도 같은 시간.

 

 

 

이제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다시 한번 마을의 모습을 눈으로 담아내면

그리 넓지 않은 시라카와고 여행은 끝이 난다. 그림같은 풍경과는 별개로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하고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관광객들의 씀씀이를 기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식욕이 안생기는데 어쩔 수 없다.

 

 

 

도시에서는 설사 농사터가 있다고 해도 땅이 아까워 이렇게 꽃밭을 만들기는 힘들 텐데.

판매용으로 키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뒤뜰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만 자연스럽게 자라는, 약간 무질서한 꽃들의 모습이 더욱 반갑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꽃밭을 키우는 갓쇼즈쿠리 가옥 역시 살짝 힘이 풀린듯한 모습이 더욱 잘 어울린다.

 

 

 

좋은 마을은 물이 맑은 마을이라는 말은 세계 어느곳에서도 통하는 진리.

좋은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과 나쁜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은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난다.

애초에 나쁜 물을 마셔도 자라는 녀석들은, 그만큼 터프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녀석들이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람 입장에서는 역시 진드기나 벌레 잔뜩 꼬이는 녀석들보다는 좀 순해보이는 녀석들이 더 마음에 드는것도 사실.

 

이곳은 자연 환경에 비하면 기분나빠질 만한 벌레가 별로 눈에 안 띄는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공원처럼 인위적으로 디자인해서 만들어낸 아름다움과는 전혀 별개로

자연의 생명력뿐 아니라 사람의 생명력까지 느껴지는 이곳 풍경은, 조화라는 면에서 굉장히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여행에서 가장 큰 볼거리라면 역시 자연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곳 시라카와고는 그 두가지가 배합되는데 있어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훌륭하다.

관광객들이 오고가며 감탄해 하는, 마을 사람들이 남겨놓은 인간의 모든 흔적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더 예쁘게 보이거나 하는 인위적인 색이 아닌, 순수하게 생활하기 위한 노력과 조화의 흔적이라는 점이 말이다.

 

사람들이 풍경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아름다움이란, 결국 원래 그렇게 있던 것들이 가지는 자연스러움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