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좋은 곳에서 하루종일 걸어다니고 푹 자고 조식 맛있게 먹고 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여행중 호텔 조식이 맛있으면 보상 심리 덕에 좀 많이 먹게 되는데, 이게 돈은 아낄 수 있지만 여행에는 좀 불리하다.

아침부터 점심 너머까지 배가 든든하다보니 여행지에서 뭘 한번 먹어보려고 해도 배가 불러 포기하는 일이 많으니.

 

자전거 여행때는 그야말로 먹을 게 보이면 일단 입에 집어넣어야 살아남는 시절이었으니

가끔 비지니스 호텔 들어가서 조식 먹을때가 되면, 다른 사람들 시선을 피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무식하게 먹어대곤 했다.

되려 그 시절이 정말로 먹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실감할 수 있던 시절이라는게 삶의 아이러니가 아닌지.

 

오늘 루트는 좀 복잡하다. 현재 히다 타카야마와 목표지인 키소(木曽)라는 마을은 직선거리상으론 그렇게 멀지 않은데

이 두 마을을 잇는 어떤 전철이나 버스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안내소에도 물어봤지만 이곳에서 키소로 가는 방법은 사실상 약 2배의 시간을 들여 마츠모토(松本)까지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타카야마와 키소, 마츠모토는 지도상의 위치를 이어보면 삼각형의 꼭지점 같은 형태가 되는데

타카야마에서 마츠모토까지 버스를 3시간 가까이 타고 간 다음 다시 마츠모토에서 전철을 타고 2시간 가까이 가야 한다.

 

일반적인 여행이라면 이런 극도로 비효율적인 이동수단을 통해야 갈 수 있는 지역은 선택의 범위에 넣지 않았겠지만

본인의 이번 목적은 사실 이제까지의 모든 볼거리가 아닌, 키소에 가는 것 단 한가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버스 출발시간 30분 전에 호텔을 나와서 역으로 걸어간다. 여전히 하늘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예술이다.

 

 

 

버스 기다리면서도 시간이 남아 황홀한 하늘을 좀 더 담아본다. 오른쪽에 새 한마리는 우연히 들어왔는데 멋지게 날고 있다.

 

이번 목적지인 키소 마을은 예전 일본의 수도였던 쿄토와 지금의 도쿄인 에도를 잇는 내륙도로인 나카센도(中仙道)의 중앙에 위치한 곳으로

1년간의 일본 자전거 여행 중 만난 학생 한 명과 여차저차해서 인연이 만들어져, 그쪽 집에서 세 달간 머물며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는 곳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2년동안 꾸준히 한국 과자나 김 등을 연하장과 함께 보내드리곤 있었는데

이제 슬슬 직접 찾아가서 얼굴 보여주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연락도 하지 않고 그냥 일본으로 건너온 것.

서프라이즈라고 할까, 괜히 간다고 미리 연락해 놓으면 본인들 예정까지 변경해가며 나를 맞이할 것 같아서

아무 연락도 없이 그냥 이동중인데 이건 이거대로 또 미안한 기분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푸른 하늘을 만끽하며 마츠모토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지금, 왠지 생각만큼 기분이 들뜨지 않는건 어째서인지.

 

 

 

히다 타카야마가 참 험한 곳이라, 나고야같은 해안쪽 대도시와의 연계는 그럭저럭 되어 있어도

일본에서 가장 산세가 험한 나가노현 쪽으로 통하는 산속 도로는 만든지도 오래 되어서 아주 스릴이 넘친다.

 

끝도없이 올라가다가 터널 빠져나오니 강원도 깊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꼬불꼬불한 도로가 이어진다.

만들어 놓은 건 좋은데 2차선 도로 폭이 너무 좁아서, 버스 정도 크기의 차량이 커브를 틀 때는

사실상 반대선 차량들이 멈춰서야 할 정도로 순간순간이 스릴의 연속이다.

 

당연하겠지만 어느 쪽 차선이나 속도는 20~30km 를 넘지 않는다.

버스나 트럭의 이동도 무시하지 못할 이곳에서, 한국처럼 객기부리며 쌩쌩 달렸다간 대자연의 품으로 뛰어들 수 있으니까.

 

그 와중에 해발 1000m 가 넘는 이런 도로에 보행자용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 건 참 놀랍다.

저 길이 있으면 아무리 도로가 좁아도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으니, 나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모습. 애초에 이 높이까지 올 일이 없긴 하지만.

 

험한 곳인 만큼 풍경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지만 도통 셔터를 누를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중간에 유명한 온천 지역이 있어서 버스가 멈춘다. 이곳에서 내려 여관 등으로 이동하는 관광객도 많다.

험하디 험한 길임에도 아침부터 사람들오 왁자지껄한 것이 놀랍다. 주변에 경치와 온천, 멋진 여관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한데.

10분 정도의 정차시간에도 이 풍경을 남기지 않고 떠나기는 아쉬워 서둘러 달려나가 적당한 포인트에서 셔터를 눌러본다.

 

겨울엔 원래 스키장으로 나가노 전체가 들썩이곤 했는데, 동계올림픽 끝나고 점점 스키인구가 줄어들어 요즘엔 힘든 상황이라고.

 

버스로 이동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여행은, 일단 그것만으로도 점수 충분히 따는 여행이다.

유럽 기차여행이 그래서 나름 재미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버스타고 이렇게 시간 잘 가는 여행은 참 오랜만.

 

 

 

히다 타카야마에서 마츠모토로 가는 길은 오래된 구 도로가 많아 현대의 버스가 다닐만한 길이 아니다.

도로 전체 최고시속이 30km 정도에, 버스 정도의 크기라면 중앙선과 바퀴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폭이 좁은 2차선이라

터널을 통과할 때는 맞은편 차하고 스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그것도 터널이 어찌나 긴지, 10km 가까이 되는 길이에 저속으로 주행하는 버스 안에서는 왠지 위기감까지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동류의 버스나 비슷한 크기의 트럭, 레미콘 차량이 서로 마주쳐 갈 때로,

반드시 한 쪽이 완전히 정차를 하고 나머지 차량이 기어서 빠져나간다.

같은 버스기사던 트럭 운전자던 운전석끼리 스칠 때는 인사 한 번씩 하고.

 

산골이라 그런지 이런 운행방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곳인가 보다.

 

말로 하기 어려운 꼬부랑길을 통과하니 꽤나 해발이 높은 곳인데 호수가 만들어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풍경을 본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십중팔구 댐 때문에 만들어 진 인공호의 결과물.

수표면이 너무 올라와 있어서 이 부자연스러움은 단연 인공적인 어색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적응력이라고 할까, 흉하게만은 보이지 않는 묘한 특징이 있는 모습이다.

 

사실 이렇게 원래 물길이 있던 골짜기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마을이 들어서 있기에

댐을 건설하면 물 속에 잠기는 인간의 흔적이 꼭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은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마츠모토 근처에 다가오면 그 험하디 험한 산과 터널이 싹 사라지고 상당히 넓은 평야가 드러난다.

나가노 현은 거의 대부분이 산악지형이라 큰 도시가 들어서기 힘든 지역.

산맥 사이사이에 생성된 평야에 들어선 도시가 나가노 시와 마츠모토 시다.

 

인구는 현청소재지인 나가노 시가 조금 더 많지만 그래봤자 두 도시 합해도 5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마츠모토 쪽이 교통, 도시계획적인 면에 있어서 유리한 점이 많아 나가노보다 상업지구가 더 발달한 편이다.

 

두 도시 모두 각각 국보를 한 가지씩 갖고 있어서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마츠모토는 현존하는 몇 안되는 오리지날 천수각을 가진 마츠모토성, 나가노에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인 젠코지.

 

자전거 여행때 홋카이도에서 만난 소야노라는 이름의 소년은 당시 17세로, 고등학생이었다.

외국에 혼자 떨어져 나왔으니 1년 채울때까지 바락바락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본인과 달리

나가노현의 키소(木曽)마을이 고향인 소야노는 슬슬 학교 과제물과 개인적 활동 몇 가지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홋카이도를 거의 다 돌아가던 당시의 나는, 자기 두 발과 자전거로 일본 전국을 제패한다는 목적 같은것에 관심이 없었고

그냥 여행하지 않을 때의 자신보다 더 넓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 이 소년 집에 따라가서 잠깐 머물러 보는 경험도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애를 따라 버스를 10시간이나 타고 도쿄로 내려간 적이 있다.

 

자전거 여행에다 승차 직전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정말 토가 올라올 정도로 악취 풍기는 사내 두 명이

버스에 처박혀 10시간이나 이동했으니, 자전거 여행 당시 만들어진 죄책감의 8할은 거기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쿄에서 소야노 군의 할일을 마친 후에 키소의 집안에 초대되어 마음껏 휴식을 취한 후

모자란 자금 충당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으며 자주 들렀던 곳이 이곳 마츠모토.

 

키소 마을은 정말 작은 시골이라 마땅한 바이트 자리가 없기도 했고, 마츠모토와 나가노는 의외로 재일한국인이 굉장히 많이 사는 곳이라

한글간판을 내건 고기집도 있고 여러가지 눈에 보이지만 생각만큼 쉽게 바이트가 구해지진 않았다.

 

당시에 심심하면 전철 1시간 타고 도착하던 이곳 마츠모토역 앞의 풍경을 2년만에 다시 보게 되니 형언하기 어려운 기분.

 

 

 

그러고보니 자전거 여행 당시 머물렀던 때도 이만큼 더운 날이었다.

마츠모토역 전광판에 '38도' 라고 찍힌 모습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34도 정도. 그래도 덥다.

 

타카야마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고, 여기서 키소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빨리 역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왠지 멍하니 건널목 앞에 서서 예전에 자주 신세기던 맥도날드 앞에 서 있다.

이 맥도날드는 소야 군이 학교 가러 마츠모토에 갈 때 바이트 자리 찾는다고 함께 따라와서 시간 좀 보내던 곳.

 

2년 전과 크게 변한것 없는 역 앞 풍경이지만 축제를 알리는 등이 곳곳에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여기도 축제인가 싶다.

 

마츠모토 역 3층의 티켓 판매소까지 올라가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는다.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키소 마을에,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인사하러 한국서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 한 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만나러 가고 싶으면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기분.

 

이렇게 찾아가면 반가워 할 것임에 틀림없는 사람들인데도, 내 마음 속에서는 항상 '추억은 추억으로'라는 본능이 내제되어 있다.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과 동시에 추억으로 미화된 과거와 현재와의 어색한 괴리를 체험하고 싶지 않으려는 도피 본능이 심한 편.

 

 

 

소소한 이유야 얼마든지 있다.

 

괜히 미리 준비하는 부담 끼치기 싫어서 연락도 없이 이렇게 찾아오는게 되려 실례는 아닌가.

오늘 가게되면 스케쥴상 이틀간 머무르게 되는데, 갑자기 찾아가서 이틀씩이나 머무르게 되는 것도 부담으로 느껴진다.

실은 부담이 아니라는 것을 예전 3달간의 홈스테이 경험으로 잘 알고 있지만, 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내가 그만큼 폐쇄적이라는 의미일지도.

 

소야 군 집안 사정상 아예 부담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거라 생각을 해도

그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나 자신이 괜스레 자기 내면의 문제를 밖으로 전가시켜서 변명하는 이 기분도 싫다.

 

가끔 생각하길, 정말 난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사교적으로 예전 인연들을 만나러 다니는 행동조차, 블랙홀처럼 안으로부터 쪼그라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발버둥처럼 느껴진다.

어떤 곳 어떤 시간에 있어도 결국 혼자이고 싶어하는 미친 놈인가 보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생각하며 전철 시각표를 멍하니 쳐다본다. 키소 마을까지 가는 열차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온다.

 

한숨 푹 쉬면서 마츠모토 역 안을 한바퀴 둘러보다가, 뒤쪽 관광안내소에 떡하니 붙어있는 '마츠모토 봉봉'이라는 축제 문구가 들어온다.

좀 전 거리에 장식된 호롱등 행렬은 저 축제를 위한 것이었나 싶다. 광고를 의외로 크게 하는 바람에 흥미가 동해 안내소로 들어간다.

 

안내원에게 저 축제가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것도 모르나' 라는 얼굴로 설명을 해 준다. 중간에 외국서 왔다고 하니 이해를 하긴 했지만.

마츠모토 봉봉(松本ぼんぼん)이라는 축제는 올해 39주년을 맞이하는 나가노현 최대규모의 축제로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마츠모토 시내 모든 도로를 전부 보행자 천국으로 바꾸고 200여개가 넘는 기업, 단체와 그룹별 참가자들이

특유의 오리지날 음악에 맞추어 대열을 유지하며 춤 추고 행진하는 축제라고.

 

광장 중심에 모여서 원을 이루며 춤을 추는 대표적인 일본의 축제인 봉오도리(盆踊り)와 비슷한 형식의 축제지만

매년 8월 첫째 주 토요일, 1년에 단 하루만 개최하는 엄청난 규모의 춤추기 축제인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안내소 직원 아가씨는 설명을 다 듣고 내가 내쉰 한숨의 의미를 알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갈팡질팡하던 마음에 형식적으로나마 못을 박아줄 이유가 생긴다는 것은

부단함을 떨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반면

어느 방향으로든 책임전가의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진취성은 없는 변명거리일 뿐이다.

 

사실 외국인 여행자의 입장에서, 1년에 한번 이루어지는 큰 축제에 정말 우연찮게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것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결정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얼마나 큰 여행의 추억이 될 것인가.

 

하지만 지금 본인은 축제따위에 별 관심도 없이, 만나러 온 사람과 만나기 꺼려하는 괴상망칙한 심리상태에서

조금이나마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려고 발버둥 치는 방편의 하나로밖에 그 일반론을 이용해먹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마츠모토는 나에게 있어서 항상 도피처였다.

 

소야노 집안은 진실성과 순수성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가족임에도

나같은 대인기피증 인간이 때로는 견디기 힘든 삶의 흔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가끔 답답해지면 별 시덥잖은 이유를 대며 전철로 한 시간이 넘는 이곳 마츠모토까지 와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정말 2년 전과 변하지 않은 건 이곳 마츠모토의 풍경이 아니라 나의 내면이라는 사실에 괜히 씁쓸해 진다.

 

일본에서 가장 물이 깨끗한 곳이라고 소문한 마츠모토라 마을 곳곳에 예전 우물터가 아직도 사용중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키소도 마찬가지라서, 그쪽에서는 생수를 사 먹는다는 개념이 아직 없다.

싱크대의 물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먹기만 해도 뭐 이렇게 맛있는 물이 있나 싶을 정도였으니.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여기 와도 방사능 걱정때문에 이런 우물물 떠 먹는데 주저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런데 신경쓰지 않는 본인은 오랜만에 마츠모토의 물을 한모금 떠 마셔본다.

이곳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가 2년 전의 그 여행과 연결되어 있어, 잠들어 있던 세포가 깨어나 나를 즐겁게도 괴롭게도 만들고 있다.

 

 

 

역 옆의 슈퍼 호텔에 들어가니 지배인 아주머니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방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표정 지어주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인데, 아주머니는 지도를 한장 주며 이 근처의 각종 비지니스 호텔들을 표시해 주신다.

 

사실 마츠모토엔 여러 번 와 봤기 때문에 시내 어디에 어떤 호텔이 있는지는 거의 다 알고 있지만

성의가 고마워서 감사 인사를 한 후 소중하게 지도를 들고 나온다.

 

그러고보니 오늘 축제라 쉽게 숙소를 구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역에서 도보로 10분쯤 걸리는 토요코인 호텔엔 빈자리가 있었다.

나쁜 위치는 아닌데, 카운터 아가씨가 참으로 무표정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에 걸리는 것일까.

좀 전의 슈퍼호텔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른 차가운 태도라 별로 즐겁지 않은 기분으로 방에 들어가 짐을 푼다.

 

2시간 정도 쉴 시간이 있는데, 머리가 여러가지 생각으로 어지러워서 쉬기가 어렵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도시락을 사 와서 먹어둔다. 늦은 점심이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일부러 먹어두는 것은 축제가 열리는 시간 동안엔 정말 뭐 사먹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도피든 뭐든 어쨌든 내일 키소로 가는 것을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니

빨리 마음속의 죄책감을 지워버리고 축제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4시 30분쯤 밖으로 나와보니 사람들은 이미 도로를 점거중이다.

도시 전체가 보행자천국이 된다는 설명은 크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는데

막상 어마어마한 인파를 직접 보고나니 이 축제의 규모가 비로소 실감나 머리에 피가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