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분간의 도돌이 노래가 끝나면 비로소 사람들이 부채를 든 손을 내리고 휴식에 들어간다.

축제라는 게 노동이 아닌 이상 휴식이라고 정의하기엔 조금 낯설은 분위기.

그리 힘들지 않은 동작을 멈췄다 뿐이지, 노래가 멈추자 다들 참았던 말을 쏟아내듯이 동료, 가족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진다.

 

뒤에서 따라오는 서포터들에게서 음료수 받아 마시고, 쓰레기 역시 뒤에 달린 비닐 봉투에 잘 담는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오히려 이 휴식시간이 마츠모토 시내가 더욱 활기넘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는데

춤이 진행되는 동안엔 도로를 건너갈 수가 없어서 인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반쯤 고립되어 버리기 때문.

 

춤이 끝나면 신호 대기하던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듯 물밀듯이 도로로 쏟아져 나온다.

나 역시 4시간 동안 이 쪽에서만 서 있기는 지루하니 어디로든 가 보려고 길을 건넌다.

 

 

 

그냥 서있기만 해도 더운 8월 첫 번째 토요일이라 동작이 과격하지 않은 춤임에도 불구하고 힘든 건 힘든 거다.

아이들은 과연 축제가 끝나는 4시간 후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쉴 때는 최대한 쉬어줘야 다음 춤을 준비할 수 있다.

 

유치원생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인데, 이런 아이들이 벌써 마을의 축제에 참가하며 땀을 흘리고

어른들은 휴식 시간이 되면 음료수을 갖다 주며 부채로 땀을 식혀 준다.

 

학교 다니는 도중에도 백년지대계라는 교육과정계획이 몇 차례나 바뀌는 줏대없는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마을의 축제에 참가한다는 이미지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저 친구하고 놀 시간 있으면 학원이나 가야겠지.

 

 

 

사범이 한국 사람인 듯 하다. Lee's 태권도라고 적혀있는걸 보니.

한국인들에게만 가르치는 것은 아닐텐데 태권도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있는 모습도 참 특이하다. 기본 뼈대는 카라테에서 나왔으니.

 

도복 입고 춤추는 것도 신선할 듯 하다. 혹시 마지막 점프 동작에서 날아차기 같은거 시연하고 그러지 않나?

휴식 시간에는 당연히 일반인도 도로 쪽을 걸어다녀도 되는데, 왠지 춤추는 사람들의 공간 같은 느낌이라서

괜히 중앙으로 나가기가 겁이 나기도 한다. 좀 더 붙임성이 좋다면 쉬는 팀들 아무한테나 가서 수고했다고 해 주고 사진 찍고 하면 될 텐데.

 

 

 

두 번째 타임이 시작된다. 어지간히 장소를 이동했으니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한번 담아볼까 했는데

막상 중요한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이 춤의 행렬이 일본의 자동차 진행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건너편이든 이쪽이든 무조건 인도에서는 동일한 각도만 사진에 나온다는 점.

 

이걸 타파하려면 프레스 기자들처럼 과감히 도로 안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건너편에서 반대쪽 행렬을 담는 신기에 가까운 촬영기술을 습득하는 수 밖에.

 

 

 

어디서 어떻게 모인 팀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나 기업체 팀이 아닌 동호회 분위기의 팀도 분명 존재한다.

하반신은 자유에 맡겨도 일단 어느 팀이든 통일된 복장 하나쯤은 갖추고 있는데

본인들은 뭔가 어필을 위해 만들었겠지만 도통 알 수가 없다. 기어 같이 생긴걸 봐서는 무슨 공대에서 나온 건가.

 

대체로 나이 좀 드신 팀은 조금 더 통일감이 느껴지고 일부러 힘을 넣으려 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데

젊은 팀은 좀 더 과격하고 열정을 방출하고픈 의지가 느껴진다.

축제를 계승해야할 문화적 전통으로 여기느냐, 소속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방출 장소로 여기느냐의 차이일런지.

 

 

 

춤추는 사람들 만큼이나 많이 인상깊었던 것이 뒤에서 따라오는 서포터들의 모습이다.

어떤 팀이든 반드시 서포터들은 동행하는 것이 규칙인 듯 한데

이온 음료에서부터 맥주까지 없는게 없다. 더운날 축제의 든든한 버팀목.

 

사진에 담긴 서포터는 독특한 컨셉으로 눈길을 끈다. 아무래도 욕조 비스무리한 걸 통째로 떼어온 듯 한데

공돌이 기질이 있는 건지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다. 리어카 하단부에 모터라도 달린 걸까.

 

 

 

초등학교 학생 학부모 팀인 듯 한데, 아이들이 정말 신나게 노래부르며 춤추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묘하게 촌티나는 듯한 마츠모토 봉봉 노래도, 1시간 넘게 계속 반복되니 의외로 흥이 나고 리듬감이 느껴진다.

실제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은 더욱 신명이 날 듯.

 

처음에 어색해 하던 사람도 익숙해 질 수록 더 크게 소리도 질러보고 동작도 크게 휘둘러 보고 하면서

그렇게 축제에 점점 물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는 개념도 상당히 중요한 점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가득한 곳에 젊은이들이 가서 춤추기도 어색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도 기본적으로 야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긴 한데, 요즘엔 축구가 무섭게 차고 올라오는 중이라고.

한국은 월드컵 열풍 후 국내 리그는 그만큼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일본은 매년 팬층이 두터워지고 있다고 한다.

 

저 유니폼 입은 그룹 역시 어느어느 축구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인 듯 한데, 응원에 익숙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우렁차다.

춤 추는데 목소리가 왜 필요한가 싶을수도 있지만, 마츠모토 봉봉이라는 노래의 후렴구에 '봉봉~' 이라는 후렴구가 들어가기 때문에

그 때는 도시 전체가 따라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참고로 '봉봉'이란 마츠모토에서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어린 여자아이의 행사.

실제로는 죽은 사람들의 영령을 달래는 애상깊은 행사였는데, 40여년 전부터 나가노현이 마을 부흥을 목적으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런 식의 축제를 기획할 당시 마츠모토에서 잘 알려진 '봉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더욱 참고로 '봉봉'이라는 여자아이의 행사에 대응하는 남자아이의 행사는 아오야마사마(青山様) 라고 하는데

현재 마츠모토 봉봉 축제의 주제곡은 여성 가수 한소절 남성 가수 한소절로 돌아가며 부른다. 이 역시 유래된 행사에서 파생된 것.

 

 

 

축제 참가자들이야 각자의 유니폼이 있으니 딱히 튈 일은 없지만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은 또 그네들 나름대로 화려한 의상쇼를 즐길 수 있다.

 

아이들이야 뭐, 부모들이 정성들여 입혀놓은 유카타로 공주님이 되는 날이기도 하고

5살 정도 되어보이는 금발 외국인 여자아이가 유카타 입은 모습은 이쪽에서 대단한 화제라서

많은 사람들이 보물 쳐다보듯이 '귀여워~'를 연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청법이라는 개똥때문에 겁날만한 일이겠지만.

 

젊은 처차들도 이런 날 아니면 언제 한번 뽐내보겠느냐고 청초한 유카타에서부터 미니스커트 퓨전 유카타까지 한껏 멋부리고 왔다.

사람들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영 익숙하질 않은데다가, 이 정도 활발한 축제에서라면 사진 좀 찍자고 말 걸어도 크게 문제 없을듯 한데도

본인은 성격도 그렇고 실제로 흥미도 별로 생기지 않고 해서 그다지 담아온 게 없다.

 

 

 

춤을 추는 사람들과 때로는 순방향으로, 때로는 역방향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고는 있는데

앞서 언급했다시피 길을 건널 수 있는 시간은 춤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시간 뿐이기 때문에

실제로 춤이 진행되는 30여분간의 시간동안은 자신이 속한 블럭 밖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하지만 축제라는 게 어디 그렇게 스스럼없이 진행되는 것일까. 축제가 가지는 본질적 야성은 일본이 한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다.

쉬는 시간이 될때마다 본부석의 마이크에서는 쉴새없이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을 읊어대고 있다.

춤 추고 있는 사람들 중간을 가로질러서 길을 건너는 일은 부디 삼가해 달라고. 자칫하면 사고의 위험성이 있단다.

 

하지만 본인도 이제껏 한 시간 반 가까이 정말 수도 없이 보아온 광경이라 좀처럼 통제가 되지 않는 모양.

것도 당연한 게, 축제를 즐기러 왔지 가만히 서서 춤만 바라보라고 온 게 아니니

30분 가까이나 자리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게 좀처럼 참기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도 양심은 있어서, 노래와 노래 사이의 간주 부분 잠깐을 이용해 후다닥 달려가곤 한다.

한두 사람이라면 이 정도 배려로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마츠모토 시내에 마츠모토 인구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이 축제에서는

어떤 작은 행동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크기로 진화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무단횡단을 막아보려고 노력하는 중.

 

 

 

인파에 휩쓸리다가 우연찮게 메인 루트와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다리를 건너서 좀 더 가면 마츠모토 성이 있는 거리인데, 오늘 축제의 메인 이벤트장이 역 앞과 성 앞이라

잘못 갔다가는 피눈물이 흐를 수 있어서 조심하고 있다.

 

마츠모토는 많은 미술관과 예술 공연 등 문화의 도시로 유명한 곳인데

그 중에서도 내가 인상깊었던 곳은 저기 노란색 건물이다. 시계 박물관이었는데 이곳 부유한 지주가 자비로 모은 콜렉션을 전시한 곳.

입장료도 싸고,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상업적인 용도가 아니라면 괜찮다고 말씀까지 해 주시는 친절함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다.

 

개인이 모았다고 하기엔 신빙성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콜렉션이 소장되어 있는데

예전의 잘나가는 일본의 부자는 취미활동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편이었나 보다.

 

시끌벅적한 축제와는 별개로, 시냇가에 앉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 혹은 끈적끈적한 연인들이 보인다.

시끄럽고 복잡한 축제일수록 이런 순간의 한적함이 더욱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아직 한참 남았으니 좀 더 힘을 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저 멀리 다리에 보이는 노점상가 쪽으로 이동해 본다.

가게들이 꽤나 길게 줄지어 서 있으니 뭐라도 맛있는 군것질거리 하나 입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런데 너무 멀리서 보는 바람에 실수했다. 마츠모토 성과 너무 가까운 곳까지 와 버렸던 것.

이곳은 야외공연장도 설치되어 있고, 여하튼 인도와 도로의 구분까지 불가능할 정도로 인파가 몰려 있다.

 

휴식시간이긴 한데 이미 이동 자체가 힘들 정도로 사람이 가득가득하다.

이런 인파 속에서도 길 가다가 이웃 주민 만나서 친근하게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창설된 축제가 이제는 마을 사람들끼리의 친목 도모로도 훌륭히 작용하고 있는 듯.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도로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증거사진이라도 남기자고 생각하며

손을 최대한 높이 들어서 한 장 찍어본다. 운이 좋아서 광각렌즈가 마운트 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찍을 수 있었다.

 

 

 

어차피 4시간 동안 질리도록 춤추는 축제인데, 저 멀리 이벤트장에서는 또 댄스대회가 열리고 있다.

물론 창작무용이라고 할까, 남녀 둘이서 시시각각 변하는 기묘한 비트에 맞추어 예술적인 춤을 피로하고 있는 모습은

봉봉 댄스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니 공통 분모로 묶을 필요는 없겠지만.

 

프로급의 댄스 실력을 가지고 있는 팀들이라,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면 재밌게 구경해 보겠는데

이미 마야 문명의 벽돌만큼이나 단단한 결속력을 가지는 인파의 벽 때문에 그런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한다.

 

 

 

이렇게까지 혼잡한 곳이라도 다시 댄스 타임이 돌아오면

어찌됐든 구경꾼들이 인도로 밀려나가고, 스무스하게 춤으로 돌아가는 묘한 풍경이 연출된다.

 

휴식시간 도중엔 중앙 안내소가 정말 눈코 뜰 새 없을것 같은 것이, 쉴새없이 미아가 된 아이들 부모를 찾고

쓰레기 버리지 말아달라고, 춤 추는 도중에 길 건너가지 말아달라고 호소를 쏟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쓰레기는 확실히 거의 버리지 않고, 버리더라도 회수율이 높아서 도로가 더러워지지 않는데

춤 추는 도중에 길 건너가는 행위는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는 듯 하다.

 

자동차 사이를 지나가는 일이 아니다 보니 사람들이 별로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는지, 스스럼없이 지나간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30~40분동안 기다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라고 하면 지킬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긴 하다.

 

이제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르는 시기가 다가오는데

별다른 사고 없이 무난히 끝나길 바라며 행렬을 따라 슬금슬금 이동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