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나이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이 축제의 기억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본인의 경우 어릴 적의 기억이란 건 대부분 사회생활 시작부터 구체적으로 그림이 잡혀가는 듯 한데

유치원 가기 전의 기억은 매우 단편적이고 흐릿한 기억밖에 없지만

유치원 때부터의 기억은 입학식때부터 꽤나 상세히 기억이 난다. 유치원 구조까지도.

 

이런 큰 축제에서 어마어마한 인파와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직접 뛰어들어가 경험해 봤으니

이 애들이 내 나이즈음이 되어도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문득 축제 생각하니, 내가 어릴 당시의 한국이란 지금과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기억이 난다.

유치원 때부터 국민학교 저학년까지 내가 겪을 수 있었던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축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추수감사절 부근에 펼쳐지는 미군부대 내의 축제와 불꽃놀이였다.

 

설날에 용돈이나 받고 추석에 친척들하고 놀이터나 나가보는 그런 시시껄렁한 놀이밖에 없었던 당시엔

1년에 단 한번 미지의 철창 문이 열리는 미군부대 축제는 마치 외국 여행을 온 듯한 신비의 세계였다.

 

그림 그려진 나무판의 구멍 안에 공을 넣으면 인형을 주는 놀이에서, 나이가 어린 애들 전용 구멍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

무리없이 확확 집어넣고 인형을 서너 개씩 막 건져오던 기억이 난다. 그 인형들 정말정말 좋아해서 4년 이상 가지고 놀았었는데.

 

어릴적 가장 기억에 남는 축제가 미군부대의 추수감사절 축제였다는 사실을 마츠모토 봉봉을 보며 떠올리니

요즘이나 수십년 전이나 한국의 어린이가 겪어야 할 정체성 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기분이 든다.

사실 요즘 애들이야 이런 축제 연습한다고 학원못가고 LOL 못하고 그러면 얼마나 서글프겠는가. 벌써부터 인생은 바쁜 것이다.

 

 

 

여기는 무슨 가장 행렬 팀인지, 중간중간에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유카타 차림의 여자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일본의 전통 의상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어떤 축제라도 자국의 전통의상 입고 참가하는게 가장 보기좋은 것이 당연하니까.

 

한국에서는 유카타와 키모노의 구분을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복과 유카타를 비교하기도 하는데

실상 한복은 예절을 갖춘 행사에 입는 키모노의 일종인 후리소데(振袖)와 비교할 대상이지 유카타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유카타는 목욕 후에 파자마 대용으로 입는 간단하고 편리한 옷이라서.

 

개량한복이 적절한 가격과 뛰어난 편의성으로 발전된다면 한국 축제에서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겨울이라면 괜찮겠지만 8월 첫째 주 토요일 저녁의 기온은 30도 가까이에, 습도가 50%를 넘는 지옥의 언저리였다.

개구리 아저씨,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사진처럼 축 늘어져 버리는게 아닌가 심히 걱정되었지만

휴식시간에 수분 섭취를 잘 하고 있는지 아직까지는 생생하다.

 

그 옆에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분도 열심히 부채 휘두르고 있다. 여기가 남반구인가?

 

본인 역시 소박한 소망으로, 사하라 사막 마라톤 대회에 다스 베이더 복장으로 완주해 보는 꿈을 꾸곤 하는데

막상 실제로 비슷한 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나마 현실 감각이 돌아오곤 한다.

 

 

 

'나가노 고전'이라는 학교에서 출전한 팀이다. 매우 활발하고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

내가 카메라 가져다 대니 긴장하는게 아니라 앞으로 쑥 다가와서 웃으며 부채춤을 춰 준다.

 

고전이라는 학교는 고등학교와 직업전문대를 합친 일종의 특수학원으로

취업쪽에 굉장히 강한 학교라 요즘 일본에서는 나름대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편이다.

물론 이러나저러나 인문계보다 날라리들이 많고 출석률이 떨어진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지만

학교 잘 안다닌다고 잘 다니는 학생보다 인간이 덜 됐다던지 하는 캐캐묵은 상식따위가 통하지 않는 시대니까 별 문제 없다.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환하게 웃어주는 모습을 일본이나 한국에서 보는 건

집앞을 걸어가는데 UFO와 충돌할 뻔 해서 외계인이 뚜껑 열고 나와 '죄송합니다 다치셨으면 보험으로 하죠'  하고 떠나는 경험만큼 진귀한 편이다.

 

 

 

마츠모토에서 가장 큰 축제다 보니 어지간한 대기업들 역시 필수 참가나 마찬가지.

NTT 도코모 사원분들도 열심히 춤추고 계신다.

절도있게 잘 추긴 하는데 역시 이쯤 되면 좀 전의 학생들과는 달리, 축제 역시 사회활동의 일종이라고 몸에 베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하기 싫으면 안 하는게 축제일 터인데, 축제란 것도 사람이 만든 것이라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권력의 집중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되면 개인의 의사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지는 것일 듯.

 

NTT 정도 되니 팀원 수도 100명을 넘어가는 듯 하고, 대규모 인원이 펼치는 대규모 춤사위는 꽤나 박력이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생후 1년 이내로 보이는 아기들도 많다.

유모차는 움직이기가 워낙 불편해서 안고 나온 사람도 많고.

 

그런데 결코 조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축제라, 아기들 귀는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물론 F1 그랑프리처럼 귀를 파괴해 버리는 소음은 아니지만 아기의 청각에 대해 잘 모르니 괜히 신경쓰인다.

나 역시 한국사람이라 그런지, 아기에 있어서는 쓸데없이 애지중지, 과보호하는 민족성이 깊게 스며들어 있는 걸까.

머리로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는 거 알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만큼의 과보호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

 

아기 분유타는데 개량 숟가락 위로 분유가 솟아나왔다고 날 아기 살해자처럼 노려보던 그 날의 일은 죽을 때까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아기 크면 나중에 말해줘야지. '내가 니 분유를 5g 정도 더 타서 배불려 죽이려고 했는데 니 아비가 막아내는 덕에 아직 살아있는 거란다'

 

 

 

점점 해가 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어둠이 가져다주는 흥분의 마약에 점점 취해갈 준비를 하는 듯 하다.

본인 역시 인생 절반을 야행성으로 살아왔지만 요즘엔 사진 찍는다고 밤이 점점 힘들어지는 느낌.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북적이는 곳에서 삼각대 척 펼쳐놓는 야만스러운 짓은 할 수 없으니까.

 

통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듯, 막 해가 지려는 이 때가 참가자들의 피로도가 올라가는 시기일 듯.

 

 

 

체력적으로 힘든 축제이긴 하지만 자발적 참여라는 플러스 요소 덕인지 다들 싱글벙글하다.

축제 시작된지 2시간이 넘어가고 있지만 도로는 여전히 쓰레기 한점 없다.

마츠모토가 원래 물 좋고 공기 맑은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름값을 지키려 하는 것인지 원래 깨끗하긴 한데

이런 대규모 축제에서도 바닥이 이렇게 깨끗하다는 건 정말 본받아야 할 점이다.

 

세상에 전부 나 같은 사람만 있다면 쓰레기 무단투기는 없어질 텐데.

이건 자만이 아니고, 본인은 평생 살면서 쓰레기 무단투기를 해 본적이 없다.

대신 나 같은 사람만 있다면 이런 축제는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날이 어두워지니 미리 준비해놓은 대형 라이트가 도로 곳곳에서 불을 밝힌다.

도심이라 밤이 되어도 어지간히 불빛이 남아있긴 해도, 축제 특성상 최대한 밝은 게 안전할 테니까.

 

 

 

나처럼 평생 처음 축제를 체험하는 외국인들에게야 1년에 단 하루 4시간의 축제라

놓치기 힘든 순간의 연속임에 틀림없겠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에게는 그냥 일년에 한번 주기적으로 열리는 놀기좋은 날일 뿐.

 

축제 기간엔 노점상들이 장사 휘어잡는게 보통인데, 이 축제는 도시 인구만큼이나 관광객이 찾아오는 초대형이라서

도시 곳곳의 가게들 역시 미어터지는 사람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우렁찬 함성소리를 반찬 삼아서 스테이크를 썰어먹는 기분은 어떨런지. 사진 왼쪽의 가게는 '가스트'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미리 먹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게, 음식점은 물론이고 편의점란 편의점도 줄이 장난이 아니다.

사실 반 정도는 화장실 사용하려고 대기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날씨가 좀처럼 시원해지지 않는 것은 이 사람들이 발산하는 열정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1년에 단 하루의 여름밤 축제가 슬슬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이미 3시간 넘게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춤추며 행진한 사람들의 얼굴엔 땀이 흥건하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고 휴식시간을 알리는 안내가 흐르면 점점 더 활기찬 얼굴로 아이스박스에서 맥주와 음료수를 꺼내 든다.

 

춤 출때 보다 휴식을 즐기며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이 더욱 동질감 느껴지는 듯 하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내 주위엔 이런 데 뛰어들어 화기애애할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시원하게 한건 했다고 만족스러워 하는 저 모습은 순수하게 부럽고 동경하는 장면이다.

 

대구 치맥축제라는 괴이한 이벤트가 잠깐 생각났는데

먹이 받아먹는 동물처럼, 불볕더위에 한참 줄서가며 공짜 맥주와 치킨 몇조각 얻었다고

그렇게나 환한 미소를 띄우며 의기양양해 하던 젊은이들 모습은 별로 동경스럽지 않았다는 기억이 난다.

 

 

 

안내방송에서 시상식 이야기도 나오는 걸 보니 이 축제에도 팀별 시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대부분의 팀들이야 상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만.

 

대규모 축제 때야 사람들 많이 모이는 건 익숙한 모습이지만

딱히 다른 이벤트가 없이, 마을 사람들이 춤 추는 것 하나만 이루어지는 이 축제가

이렇게까지 바글바글한 것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통과의 단절을 쿨하고 시크한 것으로 여기는 한국에서는 뿌리내리기 힘든 형태의 축제인데

사실 한국도 일본만큼이나 자기가 사는 마을에 대한 소속감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쿨하고 시크해봤자 그딴 허세는 조금만 흔들리면 날아가버리는 연기같은 녀석이니까.

 

 

 

처음 축제가 시작될 때는, 춤이 그렇게까지 과격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약간 김이 빠졌는데

언뜻 짧아보이는 4시간의 축제동안 이렇게 계속 춤을 추는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닌 듯 하다.

 

물론 축제 자체의 난이도는 여느 다른 축제에 비해 낮은게 사실. 대부분의 축제는 특정 행사를 중심으로 하며

그 행사는 무거운 물건을 들고 으쌰으쌰하는 경우가 많아서 마을 장정들이 특훈을 거친 후에야 겨우 완료할 수 있을 정도니까.

그에 비해서 이 축제는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겠지만, 그 덕에 남녀노소 모두 참가할 수 있고

몇몇 젊은 팀들은 안무 동작 자체를 거창하고 과격하게 바꿔서 상당한 체력을 필요로 하는 식으로 바꿔 놓기도 한다.

 

축제를 즐기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피로해 진다고 해도, 아마 기분이 다운되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한다.

학생 때 하드락이나 핌프 등의 막나가는 언더 공연에서 신나게 흔들어 본 적이 몇번 있는데

셔츠를 짜면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어깨동무하며 뛰어다녀도 피곤해서 괴롭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그렇게 운동을 하라고 하면 입에서 육두문자부터 튀어나올텐데.

 

 

 

일본의 거대 체인 '이온'에서도 당연히 참가했다. 다른 팀들보다 복장이 전통스럽다.

주부 되는 분이 아기를 안고 춤추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

 

이렇게 행진하며 추는 춤은 옆에서 바라볼 때와 직접 참가할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예전 아오모리의 축제 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대열 맞춰 동료들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다 보면

의외로 뭔가 뿌듯하고 내가 지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생기는 듯 하다.

 

 

 

축제의 끝이 다가올수록, 날이 어두워 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힘이 날거라 예상한 것이 틀리지 않았다.

원래는 이 팀도 최소한 줄은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떨어지는 체력을 마치 외부 인자의 공격이라 느끼는 듯이

그것을 떨쳐내 버리려고 더욱 더 큰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기 시작한다. 것도 줄 같은거 맞출 필요도 없이 서로서로 뭉쳐서.

 

이게 바로 축제지 하는 느낌. 사실상 미쳤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한국의 광폭한 축제에 비하면

이제까지 좀 차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었는데, 슬슬 이사람들도 감정에 몸을 맡기기 시작하는가 보다.

물론 다음 음악이 흐르면 빨리 앞 팀을 후다닥 따라가야 뒤쪽 팀에게 폐가 되지 않으니 서두르긴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나처럼 구경하는 사람들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니, 축제는 역시 좋은 스트레스 해소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