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은 건 얼마 남지 않은 여행시간 중에서도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지만

체감온도가 38도를 넘어가는 기록적인 더위 앞에서는 맑은 하늘도 원망스럽게 바뀔 수 밖에 없다.

 

스카이 덱 300m 전망대엔 어렵지 않게 신기루가 나타나고 있다.

사하라 사막에서 많이 봤던, 지면이 수면처럼 반짝이고 있다.

도시 한복판 도로에서는 그 반사되는 모양이 좀 지저분해 보여서 감흥이 없지만

이곳처럼 깔끔한 바닥면에서 보이는 신기루는 잔잔한 호숫가처럼 깔끔한 모습이다.

 

 

 

구름은 아예 자취를 감추어 버렸기 때문에 밖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전망대 가장 끝 쪽, 그러니까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장소에만

뭔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는 라인을 쭉 따라서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게 보통이지만.

 

이곳 센트레아는 인공섬 위에 만들어진 공항이기 때문에 직사광선을 방해할 만한 지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 날씨 덥고 햇볕 좋기로 유명한 나고야 부근이기 때문에 이런 뻥 뚫린 공항이라면 당연 태양열 발전기가 큰 역할을 한다.

이곳의 천장 지역은 거의 전부 태양열 집광판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화창한 날씨라면 시간당 1000kw 정도는 생산한다고.

 

 

 

센트레아는 비행기가 이착륙하기에는 상당히 좋은 여건을 가진 인공섬이지만

어중간하게도 도쿄과 오카사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생각만큼 많이 분주한 곳은 아니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국내선 이용률도 높아서 그럭저럭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현재는 적자 누적으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듯.

 

나고야 시민에게는 매우 중요한 항공 시설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공항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서 찍었던 닌자 모형이나 토쿠시마 아와마츠리 등의 콜라보 홍보도 포함해, 공항 2층에 작은 상설 전시실까지 마련해 놓고

각종 박람회나 미술전을 개최하며 공항을 좀 더 사람들과 가까운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

 

초대형 국제 공항처럼 필수적으로 외부 수요가 필요한 공항은 아니기도 하고, 토요타가 대주주라서 잘만 하면 유지가 가능할 듯.

내 입장에서도 나고야는 키소에 들르기 위한 가장 가까운 국제선 루트인데, 이 공항이 없어져 버리면 매우 곤란하다.

실제로 8월에 에어아시아의 초저가 항공을 타고 왕복 12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나고야를 다녀왔는데

바로 다음달인 2013년 9월부터 인천-나고야 선 항공편이 운항 중지되어 버려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에어아시아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 저가항공인데, 일본의 전일본공수(ANA)와 합작에 2012년 에어아시아 저팬을 설립하고

이곳 센트레아를 중심 공항으로 삼으며 국내선, 국제선 취항을 하고 있었다.

ANA 와의 합작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기업이 해체노선을 겪으며 인천에서 출항하던 도쿄, 나고야 행 저가항공도 모두 사라졌는데

에어아시아로 부산-도쿄를 세금포함 왕복 10만원에 다녀온 나로서는 매우 애석하기 그지없는 낭보였다.

 

하지만 ANA 는 에어아시아를 대체할 제휴 저가항공사를 다시 찾고 있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저가항공 노선이 생기리라 본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천천히 걷고 걸어 어쨌든 전망대 끝부분까지 도착한다.

돌아가려면 다시 이 땡볕 거리만큼 이동해야 하지만 어쨌든 더위때문에 센트레아의 가장 큰 볼거리를 놓칠 수는 없다.

 

사실 항공기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고, 이런 기계적인 전망대엔 관심도 없었다.

이번 여행엔 시라카와고와 키소 마을이라는 천혜의 풍경을 둘러봤기 때문에, 이 스카이 덱은 그냥 안주거리도 안 되는 심심풀이일 뿐.

 

사진 찍는 재미는 결과물이 아니라

조리개를 상당히 조여도 굉장한 셔터스피드를 보여주는 당시의 놀라운 쨍쨍함을 즐기는 곳에서 발생할 정도였다.

조리개 F7.1 ISO100 에서 노출보정을 0.3 스탑 올리고도 셔터스피드가 1/1000 초 가까이 나오는 환경이다.

정말 끝장나게 쨍한 하늘이 아니면 좀처럼 즐길 수 없는 셔터스피드.

이런 땡볕 아래서라면 아마추어라도 우사인 볼트를 찍어낼 수 있을 듯 하다.

 

 

 

아무리 더워도 관광을 목적으로 쏘다니면서 이렇게 사진이나 찍고 있는 편이니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안전 장비 다 갖추고 저 지옥같은 항공기 반사열을 얻어맞아가며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노고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비행기 한 대가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드리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일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직접 바라보게 되니 실감이 난다. 이런 모습을 눈에 새기고 진상 고객이 되지 않도록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인천공항이 워낙 크고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센트레아는 한적해 보이지만

사실은 4~5분에 한대씩 끊임없이 비행기가 이륙중이다.

 

공항이라는 곳의 특성상 워낙 면적이 넓다 보니 한적해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300mm 망원렌즈로도 끝까지 당겨낼 수는 없으니, 카메라 매니아들에게는 별로 쓸 곳이 없는 초망원 렌즈들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어서 좋을 듯.

 

 

 

비행기 이륙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서 있어서 접근이 힘들다.

대충 한적한 곳으로 가도 실제 거리상 별 차이는 없기 때문에, 항공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충분하다.

자세히 보니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는 것이 아니라, 이착륙 시에 되도록 정면이나 정후면을 찍을 수 있는 위치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듯 하다.

 

나처럼 대강대강 자리 잡으면 이렇게 옆쪽 모습만 많이 찍히기 때문인 듯.

항공 사진은 가능한 한 정면에서 망원으로 크게 잡아내는게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다행히도 나는 비행기 사진 잘 뽑지 못했다고 낙담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그냥 술렁술렁 찍을 뿐.

친환경 비행기라고 적혀있는 저 녀석은 재미있게도 프로펠러가 달린 녀석이다.

상당히 소형이라서 국내선 전용인 듯 한데, 시끄럽지만 않으면 재미있게 탈 수 있을 듯 하다.

 

 

 

비행기들은 상당히 빈번하게 이륙하고 있어서 사진을 담을 기회는 충분하지만

명당 자리는 전부 굉장한 카메라와 굉장한 렌즈를 끼워놓고 대기중인 사람들은 바글바글하다.

양심은 있는지 삼각대까지는 아니고, 모노포드를 장착한 카메라가 많다.

 

이렇게 더운 날에 옷깃 스치며 전망대 앞까지 비집고 들어갈 용기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혼자 멀뚱멀뚱 서서 먼 거리에서 대강 몇장 담아본다. 생전 처음 담아보는 이륙 모습인데, 그냥 담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굉장한 항공 매니아인 듯 한데, 오늘 사람이 적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사람 붐빌 때 저런 삼각대 사용하면 욕 먹기 십상이다.

붐비는 곳에서 삼각대 사용하는 진상들이 늘어나다 보니 찍사가 덩달아 욕을 먹는다.

 

뭘 그리 열심히 찍는지는 모르겠지만 렌즈와 카메라만 합해도 거진 천만원 근처까지 가는 장비.

사진이라는 취미는 글자수도 적고 단순하지만 그 안의 카테고리는 사람 성격별로 천차만별이다.

 

 

 

일본에서 DSLR 에 거대한 망원렌즈 낀 사람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곳.

시간은 충분했기 때문에 한참 사진을 찍다 보면,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아름다움도 느끼게 될 수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매니아가 되기에는 부족했는지, 이 떙볕 아래에서는 도무지 버틸 제간이 없어서 신속하게 후퇴한다.

 

70은 넘은 듯한 할아버지가 필름카메라에 거대 망원렌즈 끼워서 촬영하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비행기 사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스카이 덱은 원래 이렇게 한가로운 곳이 아니다.

날씨가 이렇지만 않으면 빈 의자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가을 정도만 되어도, 굳이 건물 안에서 돌아다닐 필요 없이 사방이 탁 트인 이곳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쪽이 더 나으니까.

 

오늘은 당연하겠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아이들은 상당수가 모자 쓰고 돌아다니고 있으며, 부모들은 물 마시라고 채근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고야에 도착한 두 번째 날, 토요타 박물관을 다녀온 날이었는데

당시 기온이 34도, 일본에서 가장 더운 지역은 39도 까지 올라갔다고 뉴스에서 대서특필했다.

하루 열사병으로 사망한 노인만 십여 명에 이르던 더위였고, 지금 이 스카이 덱을 걸어다니고 있으니

정말로 사람이 더위때문에 픽 쓰러질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인공물을 돌아볼 때 그 미적 완성도에서 느껴지는 감동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기분을 흐뭇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역시 이런 배려의 마음씨를 직접 나타낸 모습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금껏 사진들을 유심히 보면 중간중간 빨간색으로 된 기둥이 나오는데, 그것의 정체는 바로 이 뷰 포인트였던 것.

일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설명되어 있는 이 뷰 포인트는, 휠체어에 탄 사람이나 키가 작은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시야를 가리는 안전 보호대를 삭제해 놓은 곳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자리를 비켜줄 것은 부탁하고 있다.

 

예전 오사카의 수족관 카이유칸(海遊館)에도 이런 뷰 포인트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다.

스카이 덱의 진정한 볼거리중 하나가 아닐런지.

 

 

 

한국은 아직 나고야행 수요가 많이 않아서, 상대적으로 한국 항공사의 모습은 적은 편이다.

물론 대기중인 비행기도 있었지만 굳이 찍어야 할 만큼 애국심으로 충만한 사람도 아니고 해서.

 

멀리서 바라보니 비행기도 그냥 장난감처럼 귀엽게 배열되어 있는데

요즘엔 비행기도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이 되다 보니 원색 배열에 재미있는 느낌을 주는 쪽이 많은듯 하다.

포켓몬 그림으로 도배를 해 놔서, 뜰 때마다 셔터소리가 우렁차게 변하는 비행기도 있고.

 

항공오덕들은 항공사의 심볼 마크 가지고도 어느 항공사 것이 더 세련되고 멋있는지 토론을 벌일 정도라는데

본인은 철저하게 저가항공만 이용하다 보니 항공사 마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두어 시간만 지나면 이 무서운 더위를 지나 지원한 비행기 속으로 들어가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숨을 곳 없는 폭염 속을 지나 다시 공항 청사로 돌아간다.

스카이 덱을 한번 둘러봤다는 의의 정도는 가질 수 있겠지만

재미있게 즐겼다고 하기엔 구멍난 풍선에서 솟아나는 듯한 이마자락의 땀방울이 너무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