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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8  2월 13일 시레토코 - 분에 넘치는 숙박 14
  2. 2014.10.06  2월 13일 시레토코 - 홋카이도의 겨울 6
  3. 2014.09.24  2월 12일 아사히카와 - 한겨울의 반라사내와 고양이 6
  4. 2014.09.20  2월 12일 아사히카와 - 펭귄 산책 12
  5. 2014.09.18  2월 12일 아사히카와 - 이쪽도 스트레스 8
  6. 2014.09.15  2월 12일 아사히카와 - 동물원의 마스코트 12

 

 

딱 호텔 찾아 가려는데 미치노에키 바로 옆에 시레토코 자연관이 위치해 있어서 또 들어가 본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딴 길로 새는 것이 인간의 습성인지, 그냥 나만 삐뚤어진건지 모르겠지만.

 

자연관 안에는 입구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안내원 한 명 빼고는 아무도 없다.

배경음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우 조용해서 약간 긴장될 정도.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무리없이 승락해 준다.

 

실제로 가서 보는게 단연 뛰어나겠지만 겨울에는 통제되는 곳이 워낙 많고

여름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퀄리티의 작품을 눈으로 보는 것은 상당한 운과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힘들다.

 

 

 

시레토코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고

그 덕택에 사람과 접촉하길 꺼려하는 불곰 등이 자연스럽게 시레토코 곶 주변에서 서식하고 있다.

여름에는 배를 타고 곶 주변을 돌며 불곰을 관찰하는 프로그램도 성행중이지만 겨울엔 유빙때문에 배가 움직이지 못하고

어차피 불곰들이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상품은 전부 휴무가 되어버린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 이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시사철 한 번씩은 찾아오는게 일과라고.

 

 

 

무료 입장이다 보니 많은 걸 바라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멋진 사진들과 바닥에 깔린 불곰과 여우의 발자국 등이 재미있게 꾸며져 있다.

지붕 위쪽에 흰꼬리수리 사진을 배치하는 등 입체적인 전시를 위해 노력한 흔적도 좋다.

 

버드 워칭 등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끈기와 횟수가 중요해서, 나처럼 겨우겨우 몇 년만에 찾아오는 사람으로서는 접하기 힘든 체험도 많이 할 듯.

 

 

 

특수한 목적 이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시레토코 반도 선단부.

좌측 지도의 푸른 해안선이 시작되는 곳이 현재 본인이 서 있는 우토로 마을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불곰의 서식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한데, 워낙 자연 친화적인 주민들이기도 하고

관광객들에게 불곰에 대한 대처법을 철저하게 숙지시키기도 해서 아직까지 인명 피해가 난 적은 없다.

농작물 피해는 빈번히 일어난다고 하지만 적절한 보상도 주어지고, 주민들이 애초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여름엔 며칠만 머물러도 불곰 보기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예전에는 딱 하루 숙박했을 뿐이고

그 날 불곰 출현이 목격되었기 때문에 오호 중 첫 번째 호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출입금지가 되어버려 볼 수가 없었다.

물론 운이 좋으면 첫 번째 호수를 거니는 불곰도 볼 수 있었겠지만.

 

출입금지지역이 아닌 라우스산을 비롯한 몇몇 봉우리들은 여전히 불곰과 조우할 가능성이 크기도 하고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굉장히 험한 산이기 때문에 전문 가이드 없이 그냥 설렁설렁 올라가는 것은 위험한 편에 속한다.

라우스산은 겨울에도 등반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해안선에서 바로 시작하는 1600m 짜리 설산 등반은 나에게는 무리.

 

 

 

비싸고 화려한 전시보다는 속이 알찬 느낌이 드는 곳이다.

겨울엔 유빙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해상보안청의 유빙정보나 직접 찍은 유빙 사진들을 정보로 전시하고 있다.

매년 유빙이 처음 보이기 시작하는 날도 기록해 놓는 등, 여러가지로 꼼곰한 정보를 보여준다.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레토코에서 1주일 정도 머무르며 곳곳의 비경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솔솔하겠지만

나처럼 짧은 시간안에 홋카이도를 최대한 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쉽지만 맛보기로 훑어볼 수밖에 없다.

 

 

 

시레토코는 '이런 멋진 곳이니까 많이들 오세요'라는 관광지의 마음가짐보다는

'이런 멋진 곳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관광지 수입과 동시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걱정하기도 하는 머리아픈 고민을 하고 있다.

 

오호 주변 트래킹도 팀당 인원을 제한하고, 반도 선단부를 둘러보는 유람선도 크기와 출항 횟수를 제한하는 등

돈만을 생각한다면 필요없을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

 

관광이라는 것이 소모적인 발상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는 기본 상식임에도, 그걸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

 

시레토코 양 쪽 해안선에 자리잡은 두 개의 마을, 우토로와 라우스 각 지역에서 관찰되는 독수리의 숫자를 매주 기록해 나가는 챠트도 전시되어 있다.

흰꼬리수리와 참수리로 종류를 나눠서 기록하는 꼼꼼함도 보인다. 안일한 관광지라면 얻을 수 없는 정보.

 

 

 

누군가가 그려놓은 흰꼬리수리의 그림은 겨울 철새의 고독감과 강인함을 미려하게 표현해 놓았다.

자연은 딱히 치장하지 않아도 너무나 아름답다는 진리를 몸으로 체감하는 지역의 사람들이라

맛있는 먹거리와 편리한 기반시설로 무장한 도시 관광지와는 다른 매력을 사방에서 체감할 수 있다.

 

이 그림을 삿포로의 어느 미술관에서 보게 되었다면,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는 힘들었을 듯.

 

 

 

숙박지도 잡지 않은채로 짐을 짊어지고 너무 시간을 많이 보낸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늦기 전에 호텔로 들어가 내일 트래킹 예약도 해야 하지만, 왠지 들어가서 짐 풀고 나면 다시 나올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을까.

 

삿포로와는 달리 눈 치우는데도 한계가 있는 곳이라 중간중간 얼어있는 땅이 많다. 걸을 때 한층 조심해야 한다.

 

 

 

자전거 여행 때 묵었던 호텔은 당연하게도 자전거로 가기 가장 편한 길가에 위치해 있다.

시레토코의 고급 호텔은 상당수가 경치가 좋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경사가 무시무시해서

관광용 버스를 타고 올라가지 않는다면 꽤나 힘든 언덕이었으니, 자전거로 잘 엄두도 내지 않았다.

 

반가운 기분으로 호텔로 들어가는데, 전혀 예상밖으로 빈 방이 하나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여름에도 예약 없이 바로 들어갈 수가 있었는데 비수기인 겨울에 만실이 되어버렸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말을 미안한 표정으로 건네는 프론트 직원의 말에 다시 한번 세상 참 빨리 변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일본의 관광지에서는 예약 없이 숙소를 찾으로 오는 사람이 별로 없긴 하지만, 이 일본 최북단의 조그마한 마을에까지 사람이 들어차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껏 버스에 내려서 밖을 돌아다니는 관광객은 한 명도 없었는데, 다들 관광버스를 타고 먼저 와 있던 것일까.

 

투숙을 하지 못한다는 점 자체는 별 것 아니지만, 예전의 추억을 되살려 보려 했던 시도가 무산되어서 아쉬움이 크다.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문 밖에 동사한 새 한마리가 쓰러져 있다. 타이밍도 좋게 이 녀석을 보니 더욱 서글퍼지는 기분.

 

옆의 정원에 녀석을 옮겨주고 일어나니 살짝 걱정도 된다.

혹시 시레토코의 모든 호텔이 전부 만실이라면 나는 오늘 여기서 얼어죽는 것일까. 물론 그럴 가능성은 한없이 낮지만.

 

하는 수 없이 터벅터벅 걸어서 다른 호텔을 찾아본다.

언덕 위의 호텔은 어쨌든 올라가기 귀찮으니 최후의 수단이고, 해안가에 인접한 거대한 호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서 걱정하며 들어가 본다.

자전거 여행당시 묵었던 호텔의 세 배는 되는 육중한 덩치의 호텔인데, 로비에 사람들이 가득해서 걱정부터 먼저 든다.

조심스럽게 혼자 묵을 방이 있냐고 물어보니 잠깐 조사를 해 보더니 괜찮다고 한다. 안도의 한숨.

 

가격은 10만원 정도로 본인 입장에서는 싼 편이 아니지만, 비지니스 호텔이 아니라 굉장한 관광호텔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계산을 마치고 키를 받을 때 프론트 직원이 오늘 저녁 오로라 레이저 쇼가 열린다며 팜플렛을 한 장 건네준다. 일단 내용은 들어가서 보기로 한다.

 

 

 

여러 번 증축을 거듭했는지 호텔은 본관, 신관, 별관으로 나눠져 있고 각각의 구역으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도 따로 배치되어 있다.

가장 저렴한 별관 방으로 들어갔는데도 문을 열고 들어간 첫 인상은 내게 너무도 과분한 느낌이라는 감탄 뿐이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현관 앞 이중문 사이에 위치해 있고, 자동 조절되는 매립식 난방기 덕분에 방 안은 이미 따뜻한 상태.

비지니스 호텔과 비교하면 안에서 자전거 타고 될 정도로 넓직넓직한 크기에, 고풍스러운 디자인까지 본인을 압도한다.

 

여기에 조식, 석식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가격이니 이 정도면 오히려 저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당연하겠지만 관광호텔이나 싱글은 없으니 트윈을 마련해 준 듯 하다. 공간을 생각하면 더블룸을 주는 게 더 나았을 법 하지만.

밖이 워낙 추워서 그닥 활용도는 없지만 베란다 비슷한 공간에서 느긋하게 앉을 수도 있으니 세삼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여름에 왔다면 여기 앉아서 느긋하게 창가를 바라보는 재미도 음미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고보니 바깥 풍경도 매우 훌륭하다.

 

 

 

TV가 놓인 책상 쪽에도 투숙객을 흡족하게 하는 것들이 비치되어 있다.

시레토코풍 시간이라는 이름의 과자와 함께 특허상품이라는 고급 효자손까지 놓여있어서, 노년층 관광객들의 편의를 봐 준다.

 

일본은 노년층의 관광 수요가 매우 높은데다가 기본적으로 자금 여유도 넉넉한 편이라 그 계층을 잡기 위한 지역의 노력이 대단하다.

맛있는 식사와 훌륭한 편의시설, 뜨끈한 온천 등이 고급 숙박지의 기본 소양.

 

나 같은 사람이 혼자 이런 곳에 투숙한다는 게 왠지 굉장한 낭비인 것 처럼 느껴지는 건 무리가 아닐 듯 하다.

 

 

 

공간이 널널해서인지 비지니스호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용적률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가루차도 녹차 호지차 커피 등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원래 2인용 객실이라 그런지 모든 용품들이 두 개씩 진열되어 있는데, 적정한 금액을 지불했으니 마음껏 써도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왠지 혼자 오게되면 이것들 중 하나씩은 소중하게 남겨놓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들 때가 있다.

 

 

 

오래된 호텔이라 전자식 키카드 같은 건 없다. 나무를 깎아 만든 썩 괜찮은 모양의 열쇠고리가 인상적.

키카드는 소지가 간편하지만 그 대신 잠깐잠깐 밖으로 나갈 때 객실의 모든 전원이 전부 꺼져버리기 때문에 난감할 때도 있다.

이런 옛날식은 전원을 켠 채로 나갈 수 있어서,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할 때 유용하기도 하다.

 

본인 입장에서는 이런 고급 호텔에 묵었다는 자체가 매우 신기한 경험이라 방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사진 찍기 바쁘다.

한동안 감동에 젖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네이처 가이드 투어 쪽으로 전화를 건다.

급작스러운 예약 요청에 잠깐 알아보고 다시 전화를 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와 살짝 긴장한 상태로 대기중인데

3분쯤 지나니 전화가 와서 투어가 가능하다는 희소식을 알려 준다. 가이드비는 1만엔. 하루종일 가이드 역할을 해 주니 비싼 편은 아니다.

 

오호는 현재 폐쇄상태기 때문에 식사도 물도 전기도 화장실도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미리 주지해 준다.

점심거리는 편의점에서 준비해 가기로 하고 방한복이나 베낭 등은 모두 가이드 쪽에서 제공해 준다고.

현재 옷 상태로도 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오호 쪽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니 방한복을 입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사히 예약을 마치고 한 숨 돌린 후, 호텔 로비에서 받은 오로라 판타지 팜플렛을 살펴보기로 한다.

아무래도 믿기가 어렵지만 1958년 시레토코에는 오로라가 출현한 적이 있다고. 그것을 재현하기 위해 시작한 레이저 쇼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위도를 생각해 봤을 때 시레토코에서 오로라가 보인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지만, 극히 낮은 빈도로 위도 60도 이하의 지역에서 나타나기도 한다니 믿을 수 밖에.

 

겨울이라 관광 수입이 확연히 줄어드는 계절에 어떻게든 자구책을 생각해 보려는 마을 사람들의 열의가 느껴져서

레이저 쇼 자체에는 그다지 기대감을 갖지 않았음에도 관람료 500엔 정도는 흔쾌히 지불해도 괜찮으리라 생각하고 프론트에 내려가서 티켓을 구입한다.

시작은 8시 부터라서 그 전에 석식을 먹으면 될 듯 하다. 옥상에는 훌륭한 온천도 있다고 하니 레이저 쇼 끝나고 몸을 녹이면 딱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호텔 안에서는 꽤나 저렴한 방이라 그런지 창밖 풍경이 바다가 확 트여 보이는 방향은 아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훨씬 정감이 가는 모습인데, 저 멀리 보이는 오르막길이 자전거로 오르며 개고생했던 그 길이라서.

 

저기를 넘어갈 때만 해도 꽤나 가파르구나 싶었지만, 그 후에 이어지는 시레토코 고개는 중간에 비도 쏟아지고 해서 참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저 위에서 이쪽을 바라보면 우토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아마 내일 즐길 오호 투어도 저 곳을 통과해 갈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그 경치를 감상할 수 있으리라 예상해 본다.

 

바다가 얼어있는 모습은 생전 처음 보지만 지금은 해가 많이 저물고 있어서 크게 감흥이 오지 않는다.

가난한 본인에게는 너무 사치스러운 호텔의 모습에 놀라고 해서 기분이 많이 들떠있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진정하고 경치를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지니스 호텔에서는 석식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대충 편의점에서 때우거나 했는데

이곳의 석식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하며 6시쯤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은 본관과 신관쪽에 위치해 있어서 이쪽에서 가려면 꽤나 많이 걸어야 한다.

 

슈퍼 호텔의 조식은 저렴한 비지니스 호텔 중에서는 단연 훌륭하다.

토요코인의 별 것 아닌 주먹밥 정도라면 수면욕을 충족시키는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 조식을 먹지 않는다면 한나절 정도는 아쉬워 할 것이 틀림없다.

 

이곳의 커튼은 딱딱한 플라스틱이라 일반적인 커튼과 달리 아침이 오는 모습을 판단할 수 없다.

알람을 끄며 커튼을 걷어올리니 세상은 이미 새햐얗게 빛나고 있다.

광도높은 햇살이 아니라 소리없이 쏟아져 내리는 눈줄기로.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기 때문에 동물원에라도 다녀 올 시간이 있었지만

아사히카와에서 시레토코까지는 열차 한번 버스 한번 갈아타며 6시간이 넘는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딱히 할 일이 없다.

 

장거리 이동이 많은 이번 여행의 특성상 평소 별로 사용하지 않는 스마트폰에 애니메이션도 몇개 넣어올 정도로 준비는 철저하다.

원체 멀미가 심한 편이라 열차에서라도 장시간 시청은 불가능하지만, 하루종일 음악만 듣는 것도 좀 지겨울테니까.

 

 

 

쏟아지는 눈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별다른 감흥 없이 역으로 향한다.

시레토코는 눈이 많이 오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부디 내일부터는 날씨가 맑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아사히카와에서 아바시리(網走)까지 기차를 탄 다음 조그마한 원맨열차로 갈아탄 후 다시 한시간쯤 달리고

철도가 부설되어 있는 마지막 마을인 시레토코 샤리에 도착해 다시 우토로(ウトロ)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자전거 여행 당시엔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기차 시간표 따위 신경쓰지 않고 그저 곰이나 사슴이나 두려워하며 대자연에 휘감긴 시골도로를 달릴 뿐이었는데

겨울의 홋카이도는 그런 짓 하기에 본인의 생존 능력이 심히 떨어지니 얌전히 일반적인 여행을 즐겨야 한다.

 

한번 타면 꽤나 오래 달리는 것이 홋카이도 철도다 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미리 싸들고 승차했다.

조식을 든든하게 먹고 왔기 때문에 딱히 더 이상 먹을것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대설원의 풍경을 바라보며 먹는 도시락도 나름 분위기 있어 보인다.

이런 곳에 열차가 달린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가득 쌓인 눈더미 속을 질주하는 모습은 한국에서 경험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다.

 

 

 

일단 손에 카메라를 쥐고 전원을 켠 상태로 바깥 풍경을 감상한다.

진짜 괜찮은데 싶은 풍경이 단 몇 초만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걸까.

사진 촬영에는 과감함과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이런 상황에서는 절실히 동감된다.

 

아직까지는 사람 사는 마을이 많이 보이긴 하는데, 대체 겨울엔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할 정도로 온통 눈에 파묻힌 모습들.

사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홋카이도에서는 겨울이 추수철 만큼이나 바쁜 계절이라고 한다.

겨울에 무슨 농사냐 싶겠지만, 일본 최대의 낙농지역인 이곳은 겨울에 강한 젖소종들이 바쁘게 젖 짜고 새끼 치느라 정신이 없다.

감자 등의 작물은 겨울에 눈 속에 파묻어 두어 천연 저장고 역할을 하기도 하고, 거대한 농경지는 지금부터 트랙터로 손질해 줘야 봄부터 씨를 뿌릴 수 있다.

 

 

 

창문이라는 필터를 통해 들어오는 빛임에도 불구하고 고속으로 이동하는 와중이라 그런지

때마침 맑아진 하늘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눈밭이 굉장히 자극적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좋아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방에서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답긴 하지만

눈에는 심히 과한 자극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뷰파인더를 들여다보지 않는 동안에는 실눈을 뜨고 쳐다봐야 할 정도.

두시간 정도 바라보고 있어도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이러다가 눈에 무리가 갈 것 같아서

중간중간 음악도 듣고 애니메이션도 보고 하면서 느긋한 시간을 즐긴다.

 

자전거 여행 당시엔 시간적인 제한이 없었지만 체력적인 문제와 함께, 해질 무렵에 최소한 마을 모습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어디서 곰이 튀어나오는거 아닌가 심히 걱정이 되어서 생각만큼 여유롭게 달리지 못했었다.

 

따뜻한 열차 안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므라즈과 함께 하는 여행도 나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을 참 오랜만에 해 본다.

 

 

 

 

 

아바시리에 도착해 밖으로 나온니 기차 안 여행이란 게 어느 정도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세삼 깨닫는다.

하늘은 여지없이 맑지만 대낮에 영하 5도 밑으로 내려가는 차가운 공기는, 창 밖의 풍경이 온도를 가지지 않은 그림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시레토코에 들어가기 전 철도가 부설되어 있는 마지막 마을인 만큼 적당히 사람 사는 느낌이 드는 곳.

4년 전 자전거 여행때와 똑같이 '열차와 호텔을 세트'로 판매하는 광고가 그대로 붙어 있다.

워낙 이동과 숙박이 힘든 곳이니 내국인이라면 저런 걸 이용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예전엔 어차피 자전거 여행이라서 필요가 없었고, 이번엔 외국인 전용 할인카드인 JR 패스가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곳은 규모면에선 작은 마을이긴 해도 나름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다.

뛰어난 사냥꾼이었던 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누족의 동상이 역 앞의 마스코트 역할을 한다.

이 앞에서 기념사진찍는 중국인 관광객이 매우 많다.

 

아바시리는 100년전의 감옥이라던가, 겨울에 쇄빙선이라던가 하는 볼거리가 있긴 하지만

2010년 자전거 여행 때는 중국인 관광객을 본 적이 거의 없었던 지역이라 생소하긴 하다. 시대가 변하긴 했나 보다.

 

 

 

바로 북쪽 바다가 오호츠크해다 보니 겨울엔 유빙이 생성되어 쇄빙선 관광도 꽤나 유명하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유빙 구경은 거의 할 수 없다 보니 이런 곳에 오는 것도 이해는 된다.

자전거 여행 당시엔 당연히 유빙이란 건 생각도 하지 않았고, 나름 유명한 아바시리 감옥도 입장료가 아까워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은 자금적인 여유가 있어도 시간적으로 여기서 하루 더 보내기가 쉽지 않아서 또다시 패스.

홋카이도는 마음먹고 구석구석 돌아도려면 적당히 잡아도 한 달은 필요하니, 모든 것 하나하나에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찾아올 구실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가뿐한 기분이기도 하니까.

 

 

 

역 앞에는 아바시리 감옥을 본따 만든 붉은 벽돌모양 패널이 설치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해맑은 미소와 함께 쇠창살 안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참 초현실적인 풍경이다.

 

실제로 아바시리 감옥은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고 사회가 극도로 불안하던 100여년 전

땅끝 지옥이라 불리는 일본 최북단의 감옥으로서 그 악명을 떨쳤다.

수감된 죄수의 30% 이상이 무기징역형이었을 정도로 중범죄자 중심의 수용소이기도 했고

겨울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는 이 곳의 환경상 죄수도 직원도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상해사고도 잦았다고.

 

당시의 혼란했던 일본의 사회상을 생각해 본다면, 이 곳에 수용된 사람들이 단순한 범죄자만은 아니었으리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방금 전 그림같은 겨울 풍경을 뒤로 하고 달려온 아사히카와에서 이곳 아바시리까지 230km의 도로를 닦는데 이 감옥의 죄수들이 동원되었다.

사망자만 200명이 넘고, 몸이 결박당한채로 공사판 인근에 버려진 시체도 자주 발견되는 등, 이 감옥의 악명은 대단했다.

 

일본의 전설적인 탈주범인 '5치 못의 토라키치'(五寸釘 寅吉)가 마지막으로 수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발바닥에 5치, 약 15cm 가량의 못이 박힌 채로 12km 나 달려 도망쳤다는 전설적인 일화로 인해 그렇게 별명이 붙은 토라키치는

훔친 재물을 가난한 개척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홋카이도 감옥에서 탈주해 오사카에서 다시 잡히기도 하는 등

6번이 넘는 탈옥 경력을 가진 소설같은 삶을 산 인물. 이곳 아바시리 감옥으로 이송되었을 당시엔 나이도 많이 들고 해서 더 이상의 탈옥은 없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편의점에 들어가 따끈따끈한 호빵을 하나 사들고 씹어먹으며 여름 아바시리의 풍경을 되살려본다.

겨울과 여름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 변하는 홋카이도라, 이 길을 달렸던 당시의 추억이 지금의 풍경과 매치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그럴듯한 열차가 아니라 승무원이 한 명밖에 없는 원맨 열차로 갈아타고 샤리 마을까지 이동.

장거리 이동이 많은 홋카이도 철도는 나름대로 본인 같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있어서

열차 시간에 늦는다거나 하는 일 없이 대도시에서 출발한 열차의 도착시간과 10~15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바로바로 연결되도록 해 놓았다.

 

물론 홋카이도의 겨울이란 게 그렇게 예정대로 흘러가는 상냥한 녀석이 아니다보니 별의 별 연착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본인은 홋카이도에서 사슴이 달리던 열차에 뛰어들어와 박히는 바람에 그거 처리하느라 1시간동안 기차 안에서 머물렀던 경험도 있다.

 

 

 

어디서나 자연의 풍취를 느끼기 쉬운 홋카이도지만, 시레토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달렸던 자전거 여행 당시엔

압도적이라 할 만한 야생적 강인함에 적지 않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출입이 차단된 시레토코 자연공원은 한국인으로서 접하기 어려운 자연림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곳.

지금 한국에서 보는 99%의 산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경 계획을 세운 것이라 자연림과는 확연하게 모습이 다르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은 훨씬 더 생명력이 넘치는 거칠고 무섭고 아름다운 느낌이 든다.

 

물론 그 때의 추억에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지금이지만, 앞서 언급했듯 홋카이도의 겨울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서.

 

중간에 삿포로에서 함께 여행했던 Y양이 서식하고 있는 키타미라는 마을에도 정차를 했는데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은 적지 않았지만, 얼굴 보게 되면 어차피 키타미에서 하루 머물 수밖에 없는 시간대에다가

일 때문에 바쁜 분을 헐렁헐렁 찾아가는 것도 좀 미안한 느낌이라 그냥 통과하기로 한다.

 

 

홋카이도 북동부의 마지막 철도 역인 시레토코 샤리 역에 도착한다. 이제 여기서부터 자연공원이 있는 우토로까지는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여기서도 한 규모 하는 중국인 관광객 일행들과, 노년층이 사박사박 모인 일본쪽 관광 단체들이 우르르 몰려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관광 버스에 갈아타고 먼저 출발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본인은 점점 무거워지는 베낭과 사이드백을 짊어진 채로 감회에 젖어 예전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연신 셔터만 눌러댄다.

아침의 그 폭설은 아직도 아사히카와 쪽에서 어른거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날씨는 그냥 고개만 들면 자동적으로 입가에 미소가 돋아날 정도로 청명하고 순수하기 그지없다.

 

시레토코쪽 마지막 역이다 보니 깔끔하게 마무리 된 직사각형 모습이 매우 단아한 느낌이다.

날씨가 워낙 추운 곳이다 보니 내부에 편안하게 앉아 TV와 각종 지역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휴게실도 완비되어 있지만

본인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보게 된 그리운 시레토코의 정경이 아른거려서 주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

 

상호 연계가 미끄럽게 잘 이루어지는 철도와 달리 이곳의 우토로행 버스는 JR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40분 정도 기다려야 하지만

이런 화창한 날씨 아래서, 그것도 일본에서 자연환경이 가장 좋기로 유명한 시레토코 부근에서라면 결코 지루한 시간이 아니다.

 

 

 

자전거 여행때는 그냥 역 쪽으로 내려와 건물 사진과 함께 이 녀석만 담았던 기억이 난다.

불곰과 함께 시레토코를 상징하는 흰꼬리수리의 모습. 멸종위기 1급 동물로 일본에서는 시레토코에서만 가끔 관찰할 수 있는 희귀종이다.

한국에서는 드문 겨울철새로 러시아에서 강원도로 이동해 오기도 한다. 생긴 것과는 달리 꽤나 세심하고 여린 성격이라고.

 

 

 

아늑했던 하룻밤을 책임졌던 루트인 호텔의 모습도 여전하다.

몬베츠(紋別)라는 곳에서 출발한 후 삼일 꼬박 비를 맞아가며 노숙했던 탓에 심신이 매우 지쳐있었던 때

시골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루트인이 떡 하고 나타나서 그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관광이라고 해도 대부분 우토로 쪽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시설은 깔끔하고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직원들도 친절하고 가격마저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해서

코인 세탁기에 빨래 넣으러 가는 것조차 귀찮아 질 정도로 푹신한 침대가 천국처럼 몸을 감싸던 감각을 떠올린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시레토코에 대한 정보 따위는 거의 알지 못한채로 그냥 달리고 있었던 터라

여기서 신나게 쉬었으니 이제 또 시레토코를 확 통과해서 한동안 달려봐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한 시레토코의 풍경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대단한 것이라서 눈물을 머금고 또 하루 숙박했던 기억이 난다.

국립공원화 되어 있는 우토로 주변엔 텐트도 마음대로 치기가 어려웠으니.

 

거긴 또 고급 관광호텔 아니면 젊은 사람들 중심의 게스트 하우스로 레벨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곳인데다가

어찌된 일인지 게스트 하우스가 전부 문을 닫아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관광호텔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내 표정이 심히 안스러웠는지 지배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혼자 왔으니 좀 싸게 해 줄게요' 하면서 숙박비를 3만원 정도 깎아줬다.

 

기본적으로 트윈 침대에 본가 큰방보다 더 큰 실내 베란다까지 구비된 진짜 관광호텔이라 살떨려서 잠도 못잘 것 같았던 추억도 있다.

 

시레토코가 그런 곳인 줄 알았다면 당연히 이곳 샤리에서는 머물지 않았을텐데. 여기서 우토로까지는 자전거로 가도 3~4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그것도 좋은 추억이라고 씁쓸하게 웃을 수 있으니 어쨌든 후회할 일은 아니다. 여행이라는 건 후회하기가 더 힘들다.

 

 

 

키카드로 작동하는 호텔이었는데 체크아웃 당시 키는 기념으로 가지고 가도 된다고 말해줘서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새끼 바다표범이 프린트된 귀여운 흰색 키카드였는데, 그 때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번에도 거기서 묵을 예정이다.

 

놀랍게도 이곳 근처 역시 공항이 있다. 버스가 공항에서 출발해 이곳을 경유한다고 한다.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아서 아직까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뿌듯해하며 고고히 앉아있는 흰꼬리수리의 모습을 이리저리 담아본다.

 

 

 

방향상 시레코토에 위치한 가장 높은 산인 라우스산은 아니지만 구름에 가린 모습이 살짝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전기 펜스로 둘러싸인 고가 다리을 걸어다니며 곰 서식지인 오호(五湖) 주변을 산책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시레토코 고개를 포함해 대부분의 자연공원이 출입금지가 되기 때문에 적적함을 느낄 수 있다.

 

본인은 그 오호의 풍경을 잊지 못해서, 자격을 가진 가이드와 함께 하는 겨울 오호 투어를 신청할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내가 아는 그 오호가 맞다면 어지간히 체력에 자신있는 사람이 아닌 한 겨울에 들어가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걷는 스키를 타고 산을 올라가야 하는데다가, 오호 주변 역시 기본적으로 눈이 50~60cm 는 쌓여있기 때문에

겨울 중에도 한달 정도만 허가를 얻어 입산할 수 있는 겨울 시레토코의 특별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날씨가 좋으면 돌연 취소되는 일도 비일비재해서, 내일 하루밖에 기회가 없는 나로서는 날씨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삿포로에서 이곳까지 직통버스가 있지만 10일간의 여행을 전부 그 두군데서 보낼수는 없으니 의미가 없다.

시레토코가 메인이긴 해도 다른 곳 역시 둘러볼 거리가 수북히 쌓인 곳이 홋카이도니까.

 

한동안 기다리자 버스가 슬금슬금 다가와서 버스에 탄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좌석의 절반 정도가 차 버린다.

겨울 시레토코라고 해도 역시 올 사람은 다 오는구나 하는 생각.

 

 

 

약 40분간 천천히 눈길을 달려 그 그립던 우토로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한동안 발걸음을 잊고 주위를 멍하니 둘러보며 서 있는다.

아직까지도 자전거 일본여행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을 물어보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 시레토코.

4년 즈음만에 다시 찾아온, 하지만 그 때와는 전혀 다른 고요한 풍경에 기차 여행으로 살짝 느슨해졌던 여행세포가 다시 끓어오르는 느낌이다.

 

 

 

안내소를 겸하는 미치노에키 우토로 시리에토크의 모습 역시 반갑기 그지없다.

온통 녹색 삼림과 푸른 바다로 뒤덮였던 여름과 달리, 생명력이라는 흔적은 온데간데 없이 모든것이 눈으로 쌓인 지금의 모습은

사계절이 뚜렷한 편인 한국사람이 봐도 그 갭을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본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곳이다 보니 어디서든 특산품을 팔고 있다.

일본에서는 유명 소설가가 검은 칼날의 끝이라 묘사하기도 한 시레토코는 아이누어로 '대지의 끝' 이라는 이미.

 

당연히 워낙 험한 자연환경 덕에 개발의 필요성도 없어서 방치되다시피 한 곳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목과 오염으로 지역이 더럽혀지자 이곳 마을 사람들은 자치단체를 형성해

이 지역을 보존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결과 2005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의 칭호를 획득하는데 이른다.

 

주민들이 이제껏 낸 기부금만 약 50억원에 달할 정도로 이곳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가서 보면 저절로 납득이 간다.

 

관광안내소에서 내일 신청할 오호 가이드 투어에 대해서 물어보니 원래는 1주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는 무서운 답변이 날아온다.

하지만 신청자에 여유가 있으면 바로 전화해봐도 될 거라며 팜플렛을 한 장 준다. 자기네들이 전화해 줄 정도의 섬세함은 없는 듯.

 

 

 

해가 빨리 지니 이제는 예전 신세를 졌던 그 호텔로 향해야 한다.

예약 없이 온 것이 좀 걸리긴 하지만 겨울 시레토코에 그렇게 관광객이 많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성수기라는 여름에도 그냥 들어가서 방을 구했으니 지금이야 문제가 있겠냐는, 일본인 관광객이라면 하기 어려운 발상을 해 버린다.

 

오늘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니 조금씩 저무는 태양이나 기념으로 한 장 담아주고 반갑기만 한 시레토코의 풍경을 한 걸음씩 음미하며 호텔로 향한다.

 

 

가까운 시각의 버스 한대를 일부러 그냥 보낸다. 어차피 동물원은 빨리 폐장하는 것이고

줄 서서 간신히 빠른 버스를 타 봤자 40분간 카메라 가방과 씨름하며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귀찮기도 해서.

 

30분만 기다리면 또 한대가 오는데, 매일 아침 3~4분의 전철 간격에도 늦을세라 허둥지둥대는 삶 속에서

여행중에 그 정도 여유를 부리는 것은 충분한 사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여유롭게 자신의 버스에 돌아가지만, 어제까지와는 달리 화창하기 그지없는 하늘 아래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고운 눈더미 속의 조용한 풍경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뒷모습이긴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찍는 것이라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머리 위에 떠 있는 펭귄 마크가 어떻게 해도 머릿속에 남아서 어쩔 수 없이 슬그머니 셔터를 누른다.

 

딱 사람이 앉을만한 자리를 고려해서 찍어놓은 마크는, 마치 동물원에 다녀온 사람들의 마음 속 생각을 떠올려 놓는 듯한 인상을 준다.

본인은 펭귄의 귀여움과 함께 이상행동을 보이던 대형 동물들에 대한 애처로움이 뒤섞여 있어서

저기 앉으면 어떤 마크가 떠오를까 씁쓸한 기분이 살짝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기다려서 탄 버스다 보니 어렵지 않게 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이동했다.

창문이 뿌옇게 물들어 정겨웠던 시골길 풍경을 카메라에 담진 못했지만,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눈으로만 만끽하는 즐거움이 있다.

 

아사히카와 시내에 도착해도 시간은 그리 늦지 않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진다는 점을 감안해도 지금 숙소로 돌아가기는 아쉽다.

오늘은 여행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느낌으로 일정을 잡아놨기 때문에 더 이상 할 일은 없다.

그냥 시내를 어슬렁거리다가 맛있는 거나 먹고 돌아가는 일 뿐.

 

은근히 본인 서식지인 대구 동성로와 닮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아사히카와 시내의 모습.

아사히카와 역에서 일직선으로 주욱 나 있는 길은 소박하긴 해도 겨울 축제의 흔적이 조금은 남아있다.

삿포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아직까지는 도시라는 느낌이 남아있지만

내일 목적지인 시레토코와는 너무나 분위기가 달라서 묘한 기분이 든다.

 

 

당연하게도 시레토코엔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이 없으니 일기도 좀 쓸겸 해서 눈에 보이는 맥으로 들어간다.

하교시간인지 교복 입은 학생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얼핏 들어보면 역시 일본의 국민게임 몬스터 헌터 이야기.

 

일본의 맥도날드는 기간제 메뉴가 많아서 항상 색다른 녀석을 주문하곤 하는데

동계올림픽 기간이라 올림픽에서 유명한 각국 나라들을 이미지해서 만든 버거가 있어 그걸로 선택.

 

버거가 아니라 감자튀김에 바리에이션을 준 메뉴였다. 치즈를 주욱 뿌려서 먹는데, 따듯한 감자튀김과 함께 하니 참 고소하고 맛있다.

치즈도 듬뿍듬뿍 주는 덕에 조금 느끼하긴 해도 한 끼 식사로 문제가 없을 정도.

 

 

 

버거는 예전에 먹었던 매우 특징적인 몇몇 메뉴들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다.

한국과 비교해 워낙 기간한정 메뉴가 많아서 자꾸 먹다보면 뭐가 다른지 헷갈리는 일도 생긴다.

 

추운 바깥에서 거닐다 들어와 먹는 음식치고는 조금 따스함이 부족하지 않나 싶지만

느긋하게 찍은 사진 정리하고 일기 쓰는데는 패스트푸드점 만한 곳이 없다.

 

 

 

조식 챙겨먹고 길을 나서서 처음 뱃속에 집어넣은 음식이라 조금 행복해진다.

 

하지만 아사히카와는 홋카이도에서 간장 라멘이 가장 유명한 곳이라 그걸 먹지 않고 보낼수는 없다.

점심을 먹지 않았으니 햄버거 하나 먹고 라멘 정도는 가벼울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한동안 뱃속에 뭘 집어넣지 않다가 갑자기 먹으니 생각보다 배가 불러온다.

 

산책 좀 하고 배를 진정시킨 다음 어떻게든 라멘만은 먹어야겠다고 다짐.

 

광장에는 색소폰을 부는 반라의 아저씨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고양이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추운 겨울에 반라라는 설정이 좀 안타까웠는지, 아저씨와 고양이 목에 목도리가 둘러져 있는 모습이 또 정겹기 그지없다.

 

한국에는 그다지 알려지 않지 않지만, 이 작품은 쿠로카와 아키히코(黒川晃彦)라는 작가의 작품으로

이곳뿐만 아니라 일본 각 지역에 상당히 많이 세워져 있다. 물론 포즈나 들고 있는 악기가 다르다던다 하는 차이점은 있지만.

 

쿠로카와씨는 '조각은 사람이 참가함으로서 완성된다' 라는 철학을 가지고 대부분의 동상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다녀가는 벤치에 설치해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항상 윗통을 벗은 아저씨와 그 옆에 앉아있는 고양이, 혹은 비둘기가 세트로 전시되어 있어 푸근한 인상을 풍긴다. 어쩐지 미야자와 켄지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일본의 왠만한 도시에는 어딘가 비슷한 포즈를 한 동상이 세워져 있어서 일본 여행을 많이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동상 찾는것도 재미 중 하나.

 

 

 

여름이라면 아직 대낮이지만 홋카이도의 겨울밤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다.

막무가내로 여행을 즐기는 본인같은 입장에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몸에 무리가 가기 전에 자연스레 휴식처로 인도하는 효과가 있다.

 

배가 그리 꺼지지 않았지만 어찌됐든 아사히카와의 간장 라멘만큼은 먹어보고 가야한다는 결심에

적당히 음식점이 많아보이는 거리를 이리저리 걸어본다. 원래 간장 라멘을 좋아하기도 해서 뭘 먹어도 그닥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5시 쯤이라 저녁먹기엔 이른 시간인지, 아늑해 보이는 가게 안은 한 사람도 없다.

너무 일찍 와서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라멘 매니아인 본인이 아직 섭렵하지 못한 아사히카와 간장 라멘에 대한 갈망 탓에 어쩔 수가 없다.

 

라멘만 먹기엔 또 뭔가 아쉬우니 라멘집의 정식이나 마찬가지인 볶음밥과 세트로 주문해 본다.

좀 전에 햄버거 세트를 먹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10시간 가까이 공복으로 돌아다녔으니 이 정도 사치는 즐겨도 되리라 생각.

 

볶음밥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일반적인 레벨이다.

찰기가 부족한 쌀과 강한 화력이 만나야만 만들어 낼 수 있는 고슬고슬한 식감은 라멘을 먹기 전 준비운동으로 딱 맞는 느낌.

볶음밥에 양념이 충분히 스며들어가 있어서 밥과 라멘을 번갈아 먹기에 약간 번잡한 느낌이 들어 항상 볶음밥을 다 먹은 후에 라멘을 잡는다.

 

추운 겨울날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비로소 접하는 진하고 뜨거운 국물의 맛은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다.

간장 라멘은 겉보기에 돈코츠 라멘 등등보다 소박해 보이긴 해도 이 목 깊숙한 곳까지 자극하는 얼큰하고 칼칼한 느낌은 중독성이 있다.

배가 부른것도 잊고 연신 국물을 퍼넘기는데, 겨울의 라멘 국물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흡입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황홀하다.

 

 

 

과연 삿포로와 쌍벽을 이루는 라멘 명소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맛이다.

연달아 햄버거와 볶음밥, 라멘을 흡입해서 배는 그야말로 터질 듯 비명을 지르지만 이 맛을 즐겼다는 점만으로도 대만족할 뿐.

 

여행중에는 편의점에서 소소한 야식을 구입해 즐기는 것이 일상이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더 이상 먹을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다.

산책하는 겸 슬슬 걸어다니다 숙소로 돌아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기만 하면 오늘의 일정은 끝이다.

 

뭔가 무지막지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삿포로의 눈축제 기간과 달리 적당히 생색만 내는 듯한 분위기의 아사히카와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터질듯한 배를 붙잡고 가볍게 산책하기에 적당할 정도의 고요함이 매력이다.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녹색 물결은 산과 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완전히 대도시화된 삿포로와 달리 아사히카와는 아직 도시이면서도 대자연의 품 안에 안겨있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라

슬슬 적응하기 어려워져 가는 대도시 사람들의 스타일과 달리 적당히 느긋함을 유지하고 있는 기분이 도시 곳곳에서 풍겨온다.

 

 

 

한 바퀴 돌아 다시 시내쪽으로 나오니 이제서야 겨울밤 분위기가 살아나는 중.

아사히카와 역도 굉장히 반듯한 느낌이었는데, 이쪽은 전체적으로 뭔가 단정한 분위기를 풍긴다.

양쪽 보도에는 눈이 싹 치워져 있어도 중앙 부분은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그냥 내버려 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정돈한 눈길로 보인다.

 

동물원에만 신경이 팔려서 막상 아사히카와라는 도시는 정말 겉만 한번 핥아보고 떠나는 식이 되어버렸지만

배만 꺼져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한 그릇 더 해치우고 싶은 쇼유 라멘의 맛은 꽤나 오랫동안 침샘을 자극할 듯 싶다.

 

 

 

숙소에 들어가보니 친절하게스리 휴대폰 충전 잭을 상시 비치해 놓았다.

매번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카메라와 휴대폰 충전 케이블을 꺼내는 것이라, 이런 소소한 편의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미니 USB 뿐만 아니라 아이폰과 구형 휴대폰의 단자까지 전부 구비해 놓아서 그 꼼꼼함에 만족.

자전거 여행 때 베낭을 도둑맞아서 그 안에 있던 충전 케이블까지 없어지는 비극이 일어난 적이 있다.

나가사키 한국 대사관에까지 가서 알아봤지만 워낙 구형 휴대폰이라 충전 단자를 구할 길이 없었다.

결국 두 달 가까이 극도로 전력을 아껴가며 달린 끝에, 오키나와에서 상봉 겸 관광하러 오신 엄니에게서 여분의 충전기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단자 통일도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시대라 참 애를 많이 먹었다. 기술의 발전과 규격의 통일은 체감적인 편의성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목욕을 하고 나서 창밖을 보니 조금 전까지 청명했던 하늘이 거짓말인 듯 폭설이 쏟아지고 있다.

눈은 내리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지만 바깥 쪽 도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를 가리는 모습은 박력이 있다.

이제 슬슬 다이내믹한 홋카이도의 겨울 날씨에도 익숙해 지고 있어서 별 걱정없이 침대로 들어간다.

어차피 내일은 시레토코에 도착하는 것만이 유일한 일정이다. 따로 뭔가 즐길 시간이 없으니 그냥 열차 밖의 풍경만이 나를 기다릴 뿐.

 

 

혼자서 촐랑촐랑 걸어다니는 조그만 녀석은 아직 세상이 모두 신기한가 보다.

들어가지 마라고 쳐 놓은 펜스는 어른 펭귄 기준이라 이 녀석에게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한다.

안내원들도 펭귄을 절대 건드리진 않으니 그냥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며 바라보기만 할 뿐.

적어도 펭귄들만은 이 동물원에서 하고싶은대로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 준다.

 

 

 

아직 본진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비슷한 덩치의 펭귄 한 마리가 추가로 앞서나온다.

또래가 놀고 있으면 함께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여기서 태어나서 자란 녀석이라 사람에게는 별 관심이 없지만 하루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보니 주변 풍경은 신선한 듯.

 

 

 

펭귄 일행은 왼쪽으로 가서 잠깐 쉰 다음에 다시 오른쪽의 보금자리로 이동하는 것이 정석인데

이 녀석은 아예 쉴 생각도 없이 바로 자기네들 집으로 가려고 해서 이번만큼은 안내원이 앞을 가로막고 선다.

 

혼자서 아주 코메디를 연출해 주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앞을 막으니 이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서둘러 반대방향으로 향한다.

물론 아직 본진은 도착도 하지 않은 상황.

 

 

 

조금 있으니 원래 행렬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로서도 급할 게 없는 것이, 원채 뒤뚱뒤뚱 걷다 보니 사진 찍거나 감상할 시간도 충분하다.

먼저 왔던 장난꾸러기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때때로 펜스를 무시하고 바로 밑으로 내려오는 녀석도 보인다.

 

위치 선정은 참 잘했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좀 더 왼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 녀석들의 재롱을 볼 기회가 없으니까.

 

 

 

반대편 끝까지 가서 잠시 휴식 후 다시 사육사의 지시에 따라 원래 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딱히 밀어낼 필요도 없이 그냥 뒤에 서 있기만 하면 알아서 앞으로 이동한다.

 

특히 좀 전의 호기심 많은 새끼녀석은 산책이 시작되자마자 혼자서 달려나간다. 어지간히 재미있나보다.

위에 따라오는 어른들은 오랜 경험 탓인지 그냥 무덤덤하게 걸어가고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탈선하려는 녀석들을 요원들이 가로막자 가끔 부리로 위협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생긴 것보다 터프하고 머리가 좋은 녀석들이니 아마 자기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 하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가슴 깊숙히 안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귀엽기 그지없다.

신나게 돌아다더니 본인이 앉아 있는 위치에서 갑자기 멈춰 서서 멍하니 서 있는다.

어른들이 천천히 자기를 앞길러 가도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냥 햇빛만 쬐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안내원들이 이 녀석들을 가드하고 있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막아서는 사람이 없으면 저절로 잡아버리고 싶을 오라를 전신에서 뿜어내고 있다.

 

 

 

첫 번째 새끼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어른 펭귄들이 오히려 위엄넘치게 느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실 이 녀석들도 충분히 귀여운 걸음걸이로 능숙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는데, 좀 전에 난리치던 녀석 때문에 중후한 멋마저 느껴진다.

바로 코앞에서 사람들 앞을 통과하지만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대인배적인 품격이 느껴진다.

 

극지방의 펭귄은 사람이 보이면 신기해서 몰려들기 바쁜데, 이 녀석들은 애초에 몇 대째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에 사람에 관심이 없다.

 

 

 

위쪽 라인에서 먼저 구경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지고 있다. 일찍 줄을 선 이득을 보는 셈.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동물원 구경의 마지막 코스이다 보니 굳이 서두를 건 없다.

버스를 조금 늦게 탈 수도 있지만 아직 대낮인데다 오늘은 이것 이외의 예정이 없어서 마음은 느긋하다.

 

그새를 못참고 또 다시 라인을 이탈해 이곳저곳을 찔러보는 새끼 펭귄이 멀리서 보인다.

 

 

 

산책시간이긴 해도 이렇게 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걸어다니는 기분이 어떨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안나는지 가끔씩 진행요원들이 재촉하듯 뒤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을 봐서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듯 하다.

어쨌든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어서 앞쪽과 거리가 벌어지면 두 팔을 휘적이며 조금 열심히 걸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동물원 밖에서는 평생 볼 일이 없는 종이라 몇 번을 봐도 여전히 신기하고 새롭기만 하다.

인간의 활동범위가 마지막으로 넓어진 극지방에 서식하는 동물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고기 맛이 없기로 유명한 녀석이라 16세기 이후 인간의 남획으로 멸종한 수 많은 동물들과 달리 오늘날까지 생존해 있다.

 

아마 맛있는 고기로 소문났다면 이 녀석들도 남극에 수천 마리 정도밖에 남아서 멸종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반대편 극지방에 살고 있었던 스텔라 바다소라는 종은 매우 온순하고 인간에게 무해한 생물이었지만

고기가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순식간에 멸종되어 버린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물원이란 건 가끔 그런 사람의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보기좋게 포장한 선물상자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 녀석들 역시 1990년대 초반 동물원의 심각한 경영난 당시엔 다른 곳에서 받아줄 여건조차 되지 않아 끔찍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던 과거를 갖고 있고.

 

 

 

눈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건 인간 새끼나 동물 새끼나 공통인 것인지.

이제는 일행을 따라가려는 생각도 없이 언덕에 곱게 쌓인 눈에 몸을 파묻고 장난을 친다.

이렇게 되면 요원들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무작정 기다리는 수 밖에.

 

 

 

펭귄을 만지지 말고 플래쉬 쓰지 말고 놀래키지 말라는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저러고 있는 초현실적인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진행요원들도 펭귄을 건드릴 수는 없으니 그냥 허탈하게 바라보는 것 말고는 손을 쓰지 못한다.

 

아주 혼자서 신이 났는데, 이곳 토박이이긴 해도 역시 눈에 대한 본능은 여전히 남아 있는가 보다.

 

 

 

역시 저 펭귄은 대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뭔가를 눌러대니 펭귄도 호기심이 생기는 건지 하지마라는 행동은 골라 한다.

옆에서 잠시 맞장구를 치던 또 한마리의 새끼 펭귄은 얌전히 무리를 따라가는데 저 녀석은 겁도 없다.

 

보통 펭귄은 무리를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어서 통제하기도 쉬워서, 이런 특이한 녀석이 생기면 사육사들도 난감할 듯 하다.

 

 

 

저 녀석을 어떻게 하면 될까 하는 심정일 법한 진행 요원과 대치중.

일행들이 저 멀리 떠나간 후에도 어느 정도 망중한을 즐기던 녀석은 온 몸에 눈을 잔뜩 묻힌 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내려온다.

 

사소한 일탈은 관광객들에게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안겨주며 막을 내린다.

이미 펭귄 행렬은 전부 사라졌지만 여전히 관광객 중에는 넘어오면 안된다는 무형의 펜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새끼 펭귄이 저 멀리 걸어가고 나서야 안내원이 이제 지나다니셔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자 슬슬 대형이 흩어진다.

이 정도 질서쯤은 칼같이 지켜야 이 동물원의 하이라이트인 펭귄 산책도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펭귄 산책이 끝나면 사실상 동물원을 더 구경할 시간이 없다.

휴식을 가정하고 잡은 일정이지만 역시 대낮 쨍쩅할 때 돌아가는 건 왠지 아쉽다.

물론 바로 숙소로 돌아가진 않고 아사히카와 시내 구경이라도 잠깐 할 예정이지만

동물들은 오랫동안 봐도 질리지 않아서 뭔가 배를 덜 채운 듯한 기분은 살짝 찜찜하다.

 

버스는 30분에 한 대 정도 오는데, 아무래도 이 속도로 밖에 나가면 딱 버스가 떠날듯 한 시간이고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40~50분 동안 서 있는 것도 괴로운 일이라 그냥 느긋하게 다음 번 버스를 탈 생각을 한다.

 

아담하지만 꾸준한 노력과 다양한 시도로 폐장 위기를 벗어난 동물원의 저력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 만족하며 출구로 이동한다.

 

밖으로 나오니 북극곰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고 있다.

사람들 구역과는 꽤나 넓고 깊은 해자가 있어서 이럴 때를 대비해 가져간 망원렌즈를 유용히 써보기로 했는데

몇 장 찍고나니 곰의 행동이 영 이상하다.

 

눈은 거의 뜨지 않은 상태로 몇 번이고 똑같은 장소만 왔다갔다 하고 있다.

건너편 건물 안에서는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한 녀석은 아예 유리창을 받침대 삼아 늘어져 자는 중이고, 서 있는 녀석은 끊임없이 왕복운동만 계속할 뿐.

구역 안에는 저렇게 콕핏처럼 생긴 유리창 안으로 카메라가 돌아간다. 사람이 올라서서 구경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사람들 입장에서야 북극곰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행동이 신기한 체험으로 남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저 북극곰의 행동은 동물원에 갇힌 녀석들이 자주 보인다는 스트레스성 정신장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행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남기고자 찾아온 아사히야마 동물원이지만 역시 우려하던대로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

수백 km의 생활반경을 가지는 북극곰이 이런 곳에서 멀쩡하게 살아있을 리가 없었는데도.

꽤나 오랫동안 이런 현실에 마음이 불편해 동물원을 찾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온 동물원도 여전히 바뀌는 건 없다.

 

 

 

예전 자전거여행 때 찾아갔던 어느 지역에서는 유명한 성과 함께 조그마한 동물원이 붙어있어서 얼떨결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당시엔 우리에 갖힌 곰이 굵고 애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 앞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척 봐도 절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는데, 알고보니 전날 뉴스에 나왔던 '출산 직후 숨이 끊어진 새끼곰'의 어미였던 것.

충혈된 눈으로 끊임없이 울어대던 그 곰의 모습이 오랜만에 다시 생각나서 기분이 무거워진다.

 

북극여우의 일종이라고 기억이 나던 이 녀석은 사람들 시선에 들어가지 않는 방향을 인지라도 하고 있는 듯 절묘한 자세로 돌아누워있다.

 

 

 

사다리라도 가지고 올라가지 않는 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선에서 이 녀석의 얼굴을 잡을 수가 없다.

미동도 하지 않고 잘 자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눈더미와 동화된 듯한 녀석의 모습이나 담고 발걸음을 옮긴다.

 

 

 

레서판다 쪽으로 자리를 옮기니 그나마 어두워졌던 기분이 조금은 밝아진다.

신나게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에서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레서판다는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친근함과 달리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위태위태한 녀석이다.

 

인간에게 호의적이고 호기심이 많으며 온순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아기 키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야생에서 번식률이 떨어진다.

벌목으로 터전을 많이 잃기도 해서 현재 전세계 동물원의 레서 판다가 종 전체의 1/5 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

그래서 이 녀석들 만큼은 동물원이 개체 보호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울만한 가치가 있다. 죄의식이 아주 약간이지만 희석되는 수준의 안도감.

 

 

 

물론 이 녀석에게도 동물원이란 조금 놀다보면 금방 심심해 지는 따분한 곳임에 틀림없겠지만

사람을 좋아하니 사육사들과는 나름 친분을 쌓을 수 있어서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리 내 서열도 그렇게 강직되어 있지 않고 사이가 좋아서 안락한 생활을 보내는 녀석들이지만

특이하게도 교배를 할 수 있는 근연종이 없어서 유전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편이라는 점.

 

이름도 비슷한 팬더와 더불어 사람이 관리하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도태될 가능성이 높은 동물이다.

이 정도라면 동물원에서 보게 되었다고 씁쓸한 기분까지 느낄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빈 우리 한켠에는 동절기에 밖으로 나오지 않는 녀석의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다.

고양이과이긴 한데 표범과 치타와는 좀 다르고, 스노우 레오파드라면 겨울에 안나올리가 없어서 조금 의아했다.

 

대체 어떤 녀석인가 싶어 조사해보니 보르네오섬에서 서식하는 구름표범이라는 매우 독특한 동물이라고.

겨울엔 볼 수 없지만 여름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다지 아쉬워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줄무늬 사이사이에 구름처럼 흰 털이 보이는 이 녀석은 이름만 표범이지 현존 표범과는 DNA 구조가 다른 완전한 별종이다.

한때 지상에 살았던 검치호와 비슷할 정도로 굉장히 크고 긴 송곳니가 특징이라 하지만 그걸 볼 기회는 인간의 인생 통틀어 몇 초 되지 않을 듯.

 

 

 

오타루를 휩쓸었던 스노우 캔들의 흔적이 이곳에도 남아있다.

문제는 이곳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겨울 폐장시간이 오후 3시 30분이라는 점인데.

 

 

 

북반구 극지방에 서식하는 흰올빼미는 겨울엔 눈과 완전히 동화되어 버린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직접 보니 사실이다.

머리가 170도 가까이 돌아가는 특성상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알 길이 없다.

맹금류가 동물원에 살고 있으면 좀 지루하지 않을까 싶은데.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었기 때문에 곰과 더불어 최상위 포식자로 이름높았던 늑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망원렌즈가 신경쓰인건지 꽤나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보통 날카로운게 아니다.

늑대 역시 겨울이 되면 털이 풍성해지기 때문에 그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다.

 

여러 장 찍을때까지 꼼짝도 않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혹시 내가 굉장히 폐를 끼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서식환경이 사람과 많이 겹치는 특성상, 일본에서는 근대화 이후 가장 빨리 멸종해버린 녀석.

한참 동안이나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가 결국 앉아서 다른 곳을 쳐다보는데, 역시 대형 육식종은 동물원과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곰은 몰라도 늑대만큼은 현대 사회에서 공존하기가 너무 어려운 관계라

이렇게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지만

개보다 지능이 높은 탓에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닐거라 생각.

 

원래 이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입장객 감소로 폐장까지 고려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최대한 동물의 생태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고, 관람객과 동물들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결과

'기적의 동물원'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재기에 성공해 지금은 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 되었다.

 

블로그에서 게시한 수기로 쓴 펭귄 정보, 북극곰 먹이주기, 유리돔을 이용한 지근거리에서 동물 감상 등

많은 노력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보다 동물을 좋아하는 본인 성격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완벽한 대처라고 보기엔 어렵다.

당장 북극곰만 해도 대표적인 정신장애 증상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옆을 거닐고 있는 또 한 마리의 늑대의 앞발도 정상은 아니다.

상당히 심한 상처가 아물고 있는 모습인데, 바닥에는 아직도 피가 조금씩 보인다.

도시 하나 정도의 범위를 사파리 형식으로 만들지 않는 한, 대형 육식종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수는 없을 듯 하다.

 

 

 

일본에서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홋카이도 사슴 에조시카는 그냥 좀 지루할 뿐 느긋한 표정.

애초에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고, 야생에서는 늑대 등의 천적이 없어지는 바람에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겨울에 마구 사냥당하는 신세라서.

 

모든 게 사람 탓이긴 하지만, 천적이 없어진 사슴은 홋카이도의 생태계를 박살내 버릴 정도로 번식하고 있어서

거대 농경이 이루어지는 토카치 평야나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시레토코 부근에서는 겨울만 되면 사냥이 허가되어 많이 죽어나간다.

 

 

 

거대한 뿔을 자랑하는 수컷은 한 눈에도 늑대나 곰 이외엔 사냥할 만한 동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발정기때는 사람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라이플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속수무책이다.

자기가 쏟아부은 똥밭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어린이 동화에서 보이는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

 

동물은 인간의 방향성있는 시선과 관계 없이 그 자체로 위대하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깨달아 준다면

동물원이라는 감옥의 정당성이 조금이나마 납득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번 동물원에 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그렇게 밝아지지 않는 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걱정을 안고 호랑이 쪽으로 이동하는데, 역시 불안은 적중했다.

창살에 딱 붙어서 끊임없이 왕복이동만 반복하고 있는 모습은 분명 정신병의 일종이다.

사람들이야 자기들 바로 앞에서 어슬렁거려주니 신기해하며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지만

그건 절대로 사람들에게 친근해서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다. 한 장 찍고나니 더 이상 카메라를 들어올릴 마음이 사라진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대체로 야생보다 수명이 길다고는 하는데, 무표정하게 왔다갔다하는 백수의 왕을 보면 그게 과연 행복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물원에서 사람냄새 난다는 표현은 좀 어색하지만, 들쭉날쭉한 눈사람은 왠지 정감이 간다.

오타루의 밤을 아련하게 빛내 준 일등공신인 양동이가 모자 대신 올라가 있는 것을 보니

이곳에서도 저 녀석의 힘을 많이 빌렸는가 보다.

 

 

 

기린이라던가 조류라던가 몇 가지가 더 있었지만, 더 이상 지채하다간 사람을 어깨머너로 펭귄을 볼 것 같은 두려움에 장소를 옮긴다.

30분 전부터 기다리던 사람들 때문에 펭귄의 출발점 부근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안내원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펭귄을 앞에서 보실 분들은 옆으로 이동해 주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펭귄은 출발점에서 동물원 끝까지 걸어간 뒤에 계단을 내려가 다시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는데

덕분에 방향 전환하는 곳이 가장 먼데, 그곳에는 아직 사람들이 서 있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만 방해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는다.

일단은 빙글 돌아가는 곳이니 조금이라도 더 펭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고.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유턴해서 돌아가는 쪽도 가장 앞줄을 차지하기 힘들었을 듯.

일단 동물원을 가로지르는 행렬이기 때문에 산책 시작 전까지는 안내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도하고 있다.

계단이 매우 미끄러워서 조심하라는 멘트를 계속 날리고 있지만, 역시 가끔씩 떡방아를 찧는 사람들이 생긴다.

 

펭귄들은 저 계단이 아니라 옆의 완만한 경사를 이용해 움직일 예정. 산책이 시작되면 계단쪽은 폐쇠된다.

펭귄보다 안내원들이 더 바쁜 것이, 원활한 관람을 위해 서 있는 간격을 줄여달라고 이리저리 부탁하고 다닌다.

따로 제한선을 쳐 놓은 것도 아니라 펭귄 이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펭귄 산책이 시작되어도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거진 20분이 넘는 기다림 끝에 드디어 위쪽에서 뭔가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첫 타선을 끊은 건 무리와 동떨어진 새끼 한 마리.

 

다른 녀석들은 천천히 느릿느릿 팔을 흐느적거리며 이동중이지만 이 녀석만은 사람들이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혼자 무리에서 떨어져 이곳저곳 마구 이동중이다. 심지어 펭귄들을 위해 쳐 놓은 길안내용 줄도 넘어가 버리는 기행을 펼친다.

물론 사람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인기 폭발이다. 펭귄들에게나 사람들에게나 서로 재미있는 볼거리가 되는 듯 하다.

 

 

 

온도 차이가 많이 나는지 유리창 너머는 매우 뿌옇다. 카메라 촛점 잡기가 힘들 정도.

어쨌든 오랜만에 보는 펭귄이라 귀여울 뿐이다. 종류별로 차이가 있지만 저 펭귄은 왠지 성이 난 듯 보인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온 탓인지 이 녀석들은 동물원에 놔둬도 적응을 잘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육장에서 스트레스가 없진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대표적인 동물이라 다들 느긋한 모습.

 

저렇게 땅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있는 건 헤엄칠 때나 하는 행동인 줄 알았는데

편안하게 쉴때는 저렇게 엎드리기도 한다고. 토실토실한 지방살을 배게삼아 엎드려있는 모습을 보니 조물거리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다.

 

 

 

펭귄은 거의 단일화된 색상과 체형에도 불구하고 종류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다.

단순하기 때문에 소소한 차이점만으로 눈에 띄기 때문일까.

 

작고 귀여운 소형종에서부터 강남 신사(?) 같은 패셔너블한 눈썹을 가진 녀석이라던가, 매체를 통해 익숙하긴 해도 사실은 크고 거대한 황제펭귄이라던가.

좀처럼 만지기가 어려운 동물이라서 매번 귀여운 몸매만 바라보며 애를 태워야 하지만, 조류중에서 이만큼 귀여운 녀석도 드물긴 하다.

 

 

 

그냥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긴 하지만 역시 동물원에 와서는 뭔가 배워가는 게 있어야 할 듯.

이곳은 규모가 작아도 꽤나 알찬 정보를 공부에 진저리나는 학생들도 부담가지지 않게 잘 정리해 놓았다.

동물원에서 교과서에서 실릴 만한 도감같은 실사 사진과 함께 차가운 금속 플레이트에 적힌 딱딱한 문구를 적어놓는 것은 정체성 상실이라고 생각.

 

 

 

펭귄 하면 남극을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남극에 살지 않는 펭귄 수가 2배나 더 많다.

일반 관람객 수준으로는 매우 상세하게 섬 이름과 서식하는 펭귄 사진까지 구별해서 거대한 원판 위에 그려놓았다.

펭귄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바다표범과 범고래가 대양을 점거하고 있는 모습도 잘 표현해 놓았고.

 

 

 

제작 주문보다 수고가 들지만 동물원을 찾는 대상을 고려하면 이쪽이 더욱 인상적이리라 생각한다.

수기로 작성한 것도 친근한데, 아이들을 위해 한자 위엔 흰색으로 독음을 적어놓은 것 역시 칭찬받을 만하다.

 

사실 동물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기는 힘든데

그런 면에서 어른들 역시 재미있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편이다.

펭귄 머릿속에는 염분을 저장했다가 코로 배출하는 부위가 있어서 먹이를 먹을 때 함께 섭취하는 염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콩알지식도 재미있다.

 

 

 

동물원이 나즈막한 언덕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펭귄관 역시 입구와 출구의 높이가 다르다.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며 건물을 빠져나와도 바로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밖에는 뿌연 유리창때문에 아쉬웠던 기분을 일소해 주듯 탁 트인 곳에 펭귄들이 일광욕중이다.

 

노란 눈썹이 임팩트를 주는 이 녀석은 아마도 마카로니펭귄이라는 유쾌한 이름을 가진 녀석인데

이름과 달리 꽤나 훈남형으로 보인다. 사람에게는 익숙한지 카메라를 들이대도 쿨하게 고개만 돌려준다.

 

 

 

남극에 서식하는 펭귄이라면 꽤나 쌀쌀한 홋카이도의 겨울도 느긋하게 느껴질 듯.

홋카이도에서도 유독 추운 토카치 평야 쪽은 한겨울 밤에 영하 30도까지 내려가긴 하는데

남극의 겨울처럼 시계가 제로에 가까운 눈보라가 한 달 가까이 끊이지 않는 극한의 환경은 아니니까.

 

햇빛만 따사로우면 이 녀석들에게는 아늑한 휴양지처럼 느껴질 듯 하다. 반쯤은 털고르고 반쯤은 그 자세로 졸고 있다.

 

 

 

사실 이 녀석들 크기가 그렇게까지 아담하지 않기 때문에 여럿 몰려있으면 꽤 무섭다.

닭한테 쪼여도 피가 나는 것이 사람의 피부인데, 이 녀석들은 체중이 닭의 10배가 넘기 때문.

 

따뜻한 곳에 사는 펭귄은 사람을 보면 도망가지만 남극 펭귄들은 사람에 대한 면역이 없어서

굉장한 호기심을 보이며 달려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가 한번 쪼이기라도 하면 살점 떨어지거나 눈알 찢기는 건 일도 아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펭귄들은 2~3대에 걸쳐 동물원에서 태어나 자란 녀석들이라

사람을 공격할 일도 없고 그렇게 호기심이 빠방하지도 않다. 그냥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다른 건물로 들어가니 바다표범이 기다리고 있다. 이동 반경이 워낙 넓은 동물이라 수족관도 마리수에 비하면 꽤 넓다.

그 탓에 한 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좀처럼 모습 보기가 힘든데, 빠르기도 엄청 빨라서 헤엄 치는 도중엔 카메라에 담는 것이 거의 불가능.

 

펭귄을 잡아먹고 범고래한테는 잡아먹히는 녀석이지만, 실은 표범이 아니라 지상의 곰과 비슷한 계통을 가진 녀석이라

어릴때 잘 키워놓으면 사람에게 상당히 친근해서 동물원의 귀염둥이로 유명하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아자라시(あざらし)라고 불리고, 동물원 이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한국과 달리

홋카이도 주변 해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보이는데다 가끔 도쿄 해안에서 장난치는 모습까지 보여서

대중적으로도 꽤나 인기있는 녀석이다.

 

 

 

바다표범관 중앙에는 커다란 수로가 있는데 이곳으로 녀석들이 통과할 때가 셔터 찬스.

 

처음엔 너무 빨리 올라가서 촛점 잡을 시간조차 없었는데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이 녀석이 아주 느긋한 포즈로 미동도 없이 하강하는 퍼포먼스를 피로해 주신다.

완전히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연계였다면 아마 시체가 아닌가 할 정도로 여유있게 스르륵 내려간다.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취득하고 있는 노련한 녀석이다.

 

자세히 보니 바다표범이 아니라 점박이물범처럼 보이는데, 일본어로는 둘 다 같은 표기를 하기 때문에 일어난 착각인 듯.

사실 거의 같은 종이라 구분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바다표범은 이거보다 훨씬 크다.

 

 

 

온 몸이 지방덩어리니 당연히 물 속이 더 편하겠지만

진짜 죽은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모습은 살짝 섬뜩하기까지 하다.

얼마나 폐활량이 좋으면 포유류가 저렇게 물 속에서 편안히 뻗어있을 수 있는지. 평균 20~30분간은 잠수가 가능하다고 한다.

 

 

 

바다표범관 끝에는 규모는 작지만 귀여운 해파리 수족관이 위치해 있다.

오사카의 카이유칸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족관이지만 그래도 유유히 헤엄치는 해파리 즐기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사람들 중에는 거대한 고래상어보다 이 해파리들을 더욱 좋아해서, 수족관에 가면 하루종일 해파리만 쳐다보는 부류도 있다고.

 

이 흐물흐물한 녀석들이 6억년 전부터 바다를 지배해 온 강자라고 생각하니 참 세상은 여전히 신비로운 곳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당연히 그냥 구경하는 사람에 비해 시간을 좀 잡아먹지만

그걸 감안해도 역시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폐장시간이 워낙 이르기 때문에 아마 펭귄 산책이 이 동물원의 마지막 이벤트일 터.

일본사람들처럼 미리미리 줄 설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등 뒤에서 발끝 세워 보는 일이 없으려면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자리를 차지해야 하기 때문에.

 

동물원이 그리 크진 않아도 구경 한번씩만 하려고 해도 2시간 30분은 너무 짧다.

 

 

 

밖으로 나오니 동물원 소속은 아닌 듯한 까마귀가 눈속을 활보하고 있다.

겨울엔 먹이구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나름 머리를 써서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듯.

 

위장색에 가까운 검은색이지만 눈 속에서는 이만큼 인상적인 대비도 없다.

 

 

 

바다표범관은 야외까지 연결이 되어있어서, 이쪽에서 보는 물범이 더욱 사진 담기가 쉽다.

굉장히 맑은 날이라 눈이 부신 듯 물 밖으로 나오면 거의 눈을 뜨지 않는다.

 

펭귄과 물범은 먹이 잡을때가 가장 활동량이 많고 고된 편이고, 남는 시간은 탱자탱자 하는 녀석들이라

동물원에 있어도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듯 하다.

 

 

 

원래는 물 밖으로 나올수도 있지만 역시 홋카이도. 눈이 너무 내려서 올라갈 방법이 없자 동물원측에서 경사로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물이 그렇게 좋은지 한 마리도 밖에서 일광욕하는 녀석이 없다.

 

물범이 아니라도 신기하게 얼어붙은 고드름이 충분히 눈을 즐겁게 하지만.

 

 

 

이 시기엔 홋카이도 전체가 눈축제 기간이라, 이곳 아사히야마 동물원도 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곳에는 없는 하마 조각상을 우람하게 전시중이다.

투박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하마의 강렬함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이빨도 무섭고.

 

 

 

다른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늘어선 인파와 함께 안내원이 지금 줄 서시면 다음 번에 볼 수 있다고 바람을 넣는다.

알아보니 15분쯤 기다리면 북극곰에게 먹이 주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어차피 북극곰을 보려고 했기 때문에 그 정도 기다리는 건 큰 손해가 아니리라 생각하고 맨 끝줄에 붙어 선다.

북극곰 역시 야외에서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어째서 먹이 주는 모습을 보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지도 궁금했고.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사람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자리를 떠난 후 입장한다고 한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인지 입구 앞에 너덜너덜해진 물통이 하나 보인다. 북극곰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고.

뜯긴 흔적을 보니 역시 곰은 곰이구나 싶다. 사람하고 놀고 싶어 가볍게 쓰다듬기만 해도 걸레가 될 듯 하다.

 

 

 

먹이주는 거 구경하는데 적정 인원이 필요한가 싶었는데 들어가 보니 이해가 된다.

육지가 아니라 물 속으로 먹이를 던져서 그 모습을 보는 것이라, 커다란 유리창 앞으로 계단식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어차피 다들 서서 유리창 앞으로 돌진하면 뒤쪽에서는 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니까 선택한 방법이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던 타이밍 상 맨 앞줄에 앉게 되었는데

앞이란 게 거의 유리창과 딱 붙어버릴 정도라서 오히려 시야각이 좁아져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뒤쪽은 서서 보기 때문에 어떨지 모르겠지만 반쯤 무릎꿇은 상태로 카메라 들고 미어터질 정도로 밀집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꽤나 힘들다.

 

수면 위에는 벌써 북극곰이 먹이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위를 쳐다보고 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그 크기에 압도된다.

 

 

 

먹이를 물 속으로 던지니 순식간에 잠수해서 낚아채는 모습이 매우 날렵하다.

2m를 가볍게 넘는 녀석임에도 물 속에서의 움직임은 놀라운 수준.

실제로 육상동물중 가장 수영이 뛰어나서 북극의 바다를 100km 가까이 헤엄치기도 한다.

 

워낙 빠르게 움직이고 관객이 밀집되어 있어 동체를 따라 카메라를 움직이기도 힘들다.

시끄러워서 연사를 갈기는 것도 미안하니 그냥 되는대로 싱글샷을 날리는데 열 장 넘게 찍어서 남은 건 한두 장 밖에 없다.

 

그래도 눈앞 30cm 앞에서 솟아오르는 북극곰의 모습은 압도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니 곰이 어떤 동물인지 더욱 실감이 간다. 사람 머리통만한 앞발과 전신을 뒤덮은 근육덩이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압도적.

먹이만 주면 재미없으니 해설자가 북극곰의 생태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설명해 준다.

 

북극곰의 특징 중에서 가장 신기한 건 역시 저 털. 흰색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색이 없는 투명한 털이다.

가시처럼 뻣뻣한 바깥 쪽 털과 보드라운 안쪽 털이 빛을 반사시켜 흰색으로 보이는 것.

북극에서도 홀로 살아가며 곰 중 유일한 프레데터 계열에 들어갈 정도로 사냥능력이 뛰어난데, 이 털의 보온능력은 그야말로 경이적인 수준이라 한다.

 

이런 대륙의 제왕도 범고래한테는 쪽도 쓰지 못한다 하니, 수족관에서 재롱부리는 녀석들을 우습게 봐서는 안될 듯.

 

 

 

하루종일 사람들 구경 시켜준다고 먹이를 던져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줄을 서도 이벤트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생각하면 나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 듯.

 

실 이 동물원은 북극곰을 초근접 상태로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유명해서 가까이서 보려고 굳이 애쓸 필요는 없었지만.

 

밖으로 나오니 2시 쯤인데, 허탈하게도 2시 45분부터 실시 예정인 펭귄 산책구경에 벌써부터 사람이 늘어서 있다. 진짜 기다리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

산책로가 동물원을 완전히 가로지르는, 펭귄들에게는 꽤나 긴 거리라서 아직 뒤쪽은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양쪽으로 나눠서 구경하기 때문에 아예 못 볼 정도는 아니니 일단은 안심.

 

펭귄 산책을 관람하면 그대로 동물원 폐장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줄을 설 수는 없고, 조금이라도 나머지 동물들을 구경하려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