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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11  2월 12일 아사히카와 - 무더운 열차여행 14
  2. 2014.09.03  2월 11일 오타루 - 운하 야경 4
  3. 2014.09.01  2월 11일 오타루 - 스노우 캔들 4
  4. 2014.08.30  2월 11일 오타루 - 골목투어 4
  5. 2014.08.28  2월 11일 오타루 - 오르골당 8
  6. 2014.08.26  2월 11일 오타루 - 오르골당으로 8

 

 

잠깐동안의 삿포로 오타루 여행은 쾌적한 휴식이었다는 느낌이었고

적지 않은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호텔을 나오는 지금부터는 조금이나마 진짜 여행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겨울인데다가 10일간의 여행이라 평소보다는 옷가지가 많아서 카메라가 든 사이드백과 함께 드니 조금 묵직하다.

홋카이도가 워낙 넓다보니 한 곳에서 이리저리 다니기 힘들어 자주 이동을 해야 하는데

예약해 놓은 기차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살짝 부담이 간다.

 

지도상으로는 별로 멀지 않은 삿포로와 아사히카와 간이지만 열차로 가도 가볍게 1시간 30분은 걸린다.

사실 앞으로 이동해야 할 경로에 비하면 가장 짧은 거리지만, 짐을 전부 들고 움직이는 건 역시 귀찮다.

 

 

 

열차 안은 겨울 홋카이도인 만큼 그 반작용으로 히터를 두둑하게 틀어놓는 바람에

상단에 짐이 다 들어가지 않는 본인으로서는 좁은 의자 사이에 사이드백을 끼워놓고 짐짝처럼 꽉 조인 상태로 부자연스럽게 앉아있어야 한다.

 

몸이 굵은 탓에 옆좌석 승객에게도 부담 끼치지 않으려고 웅크리다 보니 극기훈련 받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전날까지 조금 무리해서인지 꽤나 피곤한데, 그나마 오늘은 여행 일정이 매우 짧아서 부담은 적다.

 

아사히카와는 그간 여러 번의 홋카이도 여행 중 한 번도 들러본 적이 없는 곳이고

그만큼 본인에게는 그닥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요소가 없는, 삿포로 제2의 대도시.

자전거 여행때는 굳이 아사히카와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루트를 잡을 수 있어서

큰 도시에 들어가면 오히려 불편한 자전거 여행의 특성상 갈 일이 없는 곳이었다.

 

이번 여행에 아사히카와를 넣은 것은 한 번도 안가봤으니 경험삼아 가보자는 생각과 함께

펭귄으로 유명한 동물원이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

 

 

 

주 목적지인 시레토코까지는 하루만에 가기에 너무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동 경로상에 위치한 아사히카와에서 동물원을 살짝 즐긴 후 다음 날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물원은 확실히 동물 보는 재미가 있는 반면, 아무래도 동물원이라는 곳이 결코 동물들을 위한 곳은 아니기 때문에

항상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자주 가는 곳은 아니다.

 

아무리 배려를 잘 해준다고 해도 역시 최종적으로는 사람의 욕심을 위한 곳이다 보니 동물들에게는 미안할 뿐.

입장료가 동물들을 위해서 가감없이 쓰여지길 바라는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싶다.

 

삿포로도 그랬지만 열차가 외곽으로 벗어나자 온통 사람이 건드린 적 없는 설원밖에 펼쳐지지 않는다.

눈에 대한 동경심이 있는 본인으로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 그저 놀라울 뿐이지만

포근하게 쌓인 눈이 강렬한 햇빛에 다이아몬드처럼 반사되어, 창문이 한 번 걸러줌에도 불구하고 눈에 상당한 자극이 간다.

스키 타는 사람들이 왜 고글에 신경쓰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

 

 

 

반사되는 햇빛에 눈이 피곤해서 언제부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옆에서 조심스럽게 깨우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옆에 있던 승객이 죄송하지만 좌석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해서 허둥대며 짐을 싸들고 일어선다.

 

실은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까지 가는 도중 어느 마을에 정차해서 열차를 분리한 후, 다시 다른 방향으로 운행하는 바람에

특정 구간부터 좌석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앉아야 한다는 사실을 조느라 듣지 못했던 것.

 

일본 열차는 종착지에서 간단한 청소만 끝낸 후에 바로 역방향으로 재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등받이 부분을 수동으로 넘길 수 있는 차량이 많다.

홋카이도 철도는 그 방대한 토지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어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덕분에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라는, 홋카이도 전체 인구수의 70%를 차지하는 두 도시를 달리는 기차마저도 중간에 노선 변경이 필요한 듯.

 

아무튼 잠이 확 깬 탓에 실눈을 뜨고 중간중간 카메라 셔터나 눌러댄다. 본토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 매번 즐거움을 준다.

 

 

 

아사히카와에는 주력 서식지인 토요코인의 지점이 존재하지 않아서 두 번째 주력인 슈퍼 호텔을 예약해 놓았다.

역에서 그리 멀진 않지만 시내 중심가쪽과는 반대방향이라 이동이 약간 번거롭긴 하다.

 

아사히카와는 분지 형태긴 해도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평야지역이고, 땅이 남아돌다보니 건물이 전부 넓직넓직하다.

크기는 삿포로역에 밀리지만 그닥 많지 않은 사람들 때문인지 고즈넉한 매력이 남아있어서 첫 인상이 좋다.

 

실내에 파라솔 올려놓은 모습도 신선하지만, 거대한 창문 밖으로 펼쳐진 설원과 함께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라

멀리서 조용히 한 장 담아본다. 얼굴도 안나왔으니 이 정도면 초상권 걱정은 없으리라 생각하며.

본인도 느긋한 한 때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동물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부족하다.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기 때문에 짐만 맡겨놓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이 도시엔 처음 온 터라 정확히 어디가 동물원행 버스 정류장인지 찾기가 힘들었는데

고개를 조금 이리저리 흔들고 있으니 옆에서 휴식중이던 젊은 공사장 인부가 걸어나와 무엇을 찾느냐고 물어 준다.

 

관광객에게 익숙한 사람들이라곤 해도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건 일본에서 참 기분좋은 경험.

버스가 자주 오는 편이 아니라 자칫 해매다가 꽤나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는데, 기분이 뿌듯하다.

 

 

 

삿포로, 오타루때와는 달리 오늘은 매우 쾌청한 하늘이 지속되고 있다.

동물원은 눈이 와 봤자 이득 될 것이 없기 때문에 세삼 이번 여행에는 운이 따른다는 생각이 든다.

 

건너편에 보이는 멋들어진 녀석은 맥주 관련 건물인 듯 한데, 2002년에 인터네셔널 비어 컨버티션에서 수상했다는 광고가 보인다.

하나하나 파고 든다면 아사히카와 역시 며칠동안 머물며 볼거리가 많은 곳일 텐데

계획된 일정만으로도 빠듯한 여행 중에는 그런 여유를 부리기가 힘들다.

어차피 여행 마지막 날에는 삿포로 맥주 정원에 가서 한껏 퍼마실 예정이라서 아쉽지만 사진만 남기고 전진하기로 한다.

 

 

 

이제 막 정오가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이렇게 서두를 수 밖에 없는 것은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겨울 폐장시간이 매우 이르다는 이유에서 기인한다.

 

워낙 해가 빨리 지고, 버스가 몇 대 다니지 않는 곳에 위치한 동물원이라 겨울엔 일찍 문을 닫아버린다.

버스타고 이동하는 시간도 30분은 걸리기 때문에 지금 출발해야 간신히 두 시간 정도 구경할 수 있을 뿐이다.

 

삿포로에서 새벽에 출발했다면 조금 여유가 있겠지만 연이은 강행군으로 인한 피로도 무시할 순 없었고.

애초에 그렇게 큰 동물원은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으니 기분전환으로 잠깐 즐기고 온다고 생각했었다.

 

 

 

아사히카와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어서 여름엔 36도까지 올라가는 곳이지만

그래도 홋카이도라는 위치상 겨울엔 신나게 눈이 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눈벽 사이에 그나마 연결부까지는 보이는 저 소화전은 분명 누군가가 일부러 눈을 치워 놓은 곳일 터.

안전에 대한 소소한 준비성은 이렇게 셔터를 누를만한 가치가 있다.

 

 

 

매우 단순하지만 그만큼 시원시원한 느낌을 주는 아사히카와 역은 아쉽게도 메인 출입부가 공사중이다.

광각의 묘미를 살려 밑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을 담아보면 참 재미있을 듯 한데, 아쉽지만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삿포로가 원가 대도시라 홋카이도의 다른 지역들이 촌동네로 보이는 면이 있지만

이곳에서 재미있게 즐기고 간 사람들의 후기도 매우 많은 것으로 보아 진득하게 둘러볼 만한 도시일거라 생각.

 

본인은 홋카이도에서 가장 볼만한 곳이 시레토코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 시레토코가 홋카이도 가장 끝자락에 붙어있다 보니 항상 이동 시간에 따른 일정 계산이 중요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 아사히카와는 단순한 경유지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기엔 효율이 나쁜 곳이어서 매번 본인에게는 찬밥 신세.

 

좀 더 여유를 부려도 되는 여행이라면 언젠가 느긋하게 마을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기는 하다.

홋카이도는 이번처럼 10일간의 여행도 시간 부족해서 난리라, 과연 느긋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싶기는 한데.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처음엔 무난하게 좌석에 앉을 수 있었음에도

정류장을 거칠수록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오는 바람에 매우 혼잡해진다.

 

절반 정도는 중국인 관광객이고, 나이 70은 넘어보이는 관광객들도 많은데

버스가 혼잡스러워서 내가 앉아있는 곳까지 그 노인분들이 오질 못해서 안절부절하며 바라만 보고 있다.

여기까지 오면 일어나 드리겠는데, 그렇다고 여기 앉으라고 멀리서 소리치기도 부담스럽고.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으로 시골길을 달려 동물원 앞에 도착한다.

버스가 한 시간에 두 대 정도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해 놓은 것이다.

 

도착하니 1시가 되어가는데, 동물원 폐장시간이 3시 30분이라 뭔가 허탈한 기분이 든다.

피곤해서 잠 좀 더 자자고 조금 늦게 출발했는데

동물을 좋아하는 본인으로서는 역시 무리 좀 해서라도 새벽에 출발했어야 하는가 하는 후회도 든다.

 

 

 

깔끔하게 치워놓은 눈길이 걷는 사람의 기분도 상쾌하게 만든다.

그러고보니 이 정도로 눈이 쌓인 겨울 동물원도 인생 첫 경험이라 생각보다 기분이 들뜬다.

 

아이들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 큰 어른들끼리 온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외국인들이야 명성을 듣고 관광 겸 오는 것이겠지만, 백발 성성한 노인들이 아이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것은 고무적인 풍경.

 

 

 

동물원 입구에 설치된 아사히카와 시민헌장은 눈으로 뒤덮혀 밑부분이 보이지도 않는다.

위에 붙어있는 앙증맞은 펭귄보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눈더미가 더욱 인상적이라는 사실을 현장 주민들은 알고 있으려나.

 

 

 

지금은 한창 화사함을 뽐내고 있는 이곳이지만 저 멀리 고드름 모양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 싶다.

바람이 어떻게 불면 고드름 모양이 저렇게 될런지 경험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신기할 뿐.

 

최소한 동물원이 폐장하는 3시 30분까지만이라도 이 멋진 하늘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기념사진 찍으라고 남아도는 눈과 약간의 노동력을 더해 멋진 스팟을 만들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열심히 촬영중인데, 틈을 노리긴 했지만 하트를 전부 잡아내기엔 사람들이 비켜주질 않았다.

 

하트모양은 둘째치고 사슴과 눈 결정모양을 재치있게 결합한 동물원 심볼이 인상적.

 

 

 

눈이 아닌 원래 아사히야마 동물원 스팟. 북극곰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색깔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좋다.

그러고보니 이곳은 여름에 상당히 더운 곳인데 북극곰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북극곰은 활동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사실 동물원에서 전시하는 건 그 자체로 미안한 일이다.

펭귄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그닥 문제가 없지만.

 

 

 

빨리 이동해서 동물 구경을 하고 싶지만 계속 괜찮은 풍경이 나타나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실제 동물원은 저기 언덕부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옆에는 식당이나 기념품점이 위치한다.

산책로로도 충분히 보기 좋은 광경이니 나쁠 것 없지만, 시간에 쪼달리는 겨울엔 이것도 왠지 사람 서두르게 만드는 듯.

 

 

 

겨울에 이곳을 찾는 주된 이유는 역시 펭귄들의 산책 이벤트라고 한다.

하루에 두 번 펭귄들을 우리에서 내보내 동물원을 가로질러 산책시키는 이벤트가 있다.

펜스 같은것도 없이 그냥 주위에 둘러서서 구경할 수 있기에, 펭귄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경험.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일 것 같으니 시간 전에 서둘러야 하겠지만 일본 사람들의 미리 줄서기 능력을 앞서기는 힘드리라 예상해 본다.

 

 

 

산책 이벤트는 제외하고라도 이 곳의 주력 동물이 펭귄이라, 역시 펭귄 사는 곳을 들어가보지 않을 수 없다.

입구로 들어가면 요즘 수족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원형 터널이 모습을 드러낸다.

햇빛이 직접 비치는 곳이라 어두운 수족관보다는 훨씬 보기 편안하지만 길이가 매우 짧다. 잠깐동안의 체험으로 만족해야 할 정도.

 

 

 

위에는 펭귄이 보이긴 하는데 이 녀석 물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다.

관광객들이 웃으며 올려다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녀석 역시 물 밑을 지나가는 우리들을 지켜볼 뿐.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기들이 헤엄치는 물 속을 유유히 걸어가는 사람들 모습이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한번 뛰어들어 시원하게 헤엄을 쳐 주면 좋겠는데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서 그냥 아쉬운대로 수면에 흔들리는 모습만 담고 통과.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처음부터 섬뜩한 모습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당연히 일부러 죽였을 리는 없지만 이런 생생한 모습은 역시 두려움과 함께 일말의 동정심을 갖게 만든다.

 

아이들 학습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표본이라도, 동물원 들어와 처음 보는 모습이 이것이라면 약간 트라우마가 될지도.

 

 

 

단순히 펭귄 구경뿐 아니라 이곳에는 상당한 양의 펭귄에 대한 정보가 이곳저곳 전시되어 있다.

일본어만 읽을 줄 안다면 펭귄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통달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구성해 놓았다.

 

지금은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동물에 관심이 많은 본인의 성격상 거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가볍게 보면서 지나간다.

'이쪽'이라고 적힌 펭귄상이 본인에게는 더 재미있게 다가온다.

 

 

데미야 철로를 빠져나와 운하를 향해 걸어간다. 길 중간중간에도 스노우 캔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력 축제장소인 데미야 쪽 보다는 관리가 힘든 건지, 눈 속에 거의 덮혀버릴 듯한 촛불이 힘을 쓰고 있다.

소시민들의 웃음처럼, 힘겨운 상황일수록 정감가는 것이 촛불이 아닐까.

 

 

 

과거 금융권의 상징으로 쓰였던 서양식 건축물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이것 역시 오타루의 상징과도 같은 녀석들이라 문화재 취급을 받고 있나 보다.

보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해 놓은 터라 100년 전쯤 지어진 건물 치고는 많이 깨끗하다.

 

굳이 이 녀석을 보러 밤에 나올 필요는 없겠지만 어차피 운하 보러 가는 김에 한번 구경하는 것이라.

 

 

 

중요건축물이지만 대부분 실제 사용하고 있어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건물 내부와 야경이 조화를 이룬다.

삿포로처럼 밤에 불타오르는 환락의 도시는 아니라 그저 이런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감상하는 정도에 그치는 오타루지만

지나가는 자동차는 별로 없고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는 한적한 밤거리는 산책하기에 참 좋다.

 

 

 

중앙 거리에서 운하쪽으로 내려가면 항상 마주치게 되니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비브란트 호텔.

 

오래전 건물이라서 실제 호텔로서 사용하기에 그리 좋은 시설은 아니지만

오타루에 와서 이런 곳에 한번 묵어본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체험일 듯 하다. 자금만 널널하다면.

 

관광지이긴 해도 밤에는 자동차가 뜸해서 건너편 인도에서도 사진 찍기가 쉽다.

 

 

 

낮에 게살만두로 입을 즐겁게 했던 데누키 코지도 다시 만난다.

밤에 더 성업중인듯 조그만 가게 창문들 사이로 사람들의 모습이 빽빽하다.

 

낮에 찍었던 사진과 거의 동일한 위치에서 다시 한 장 찍었는데, 이런 곳은 역시 밤풍경이 더 어울리는 듯.

돌아가는 버스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지만 역시 외식은 점심보다 저녁인지 사람들이 많다.

근처에 음식점이 워낙 많으니 대충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도, 줄 서서 음식 기다리는게 문화인 일본이라면

정말로 저녁 제 시간에 먹기가 어려울 수 있으니 조금 걱정도 된다.

 

 

 

생각보다 덜 미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 눈길에 아이를 안고 걸어다니는 젊은 부부들을 보면 가슴이 조금 쫄깃하다.

아이들이야 걸어다니다 미끄러져 봤자 중력의 법칙에 의해 그냥 한번 빽 울고 말 정도의 상처로 끝나겠지만

저렇게 안아들고 있다가 넘어진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일단 데누키 코지에서는 약식이긴 해도 먹거리 하나 먹었으니 저녁은 다른 곳에서 먹을까 싶다.

당연히 가장 생각나는 건 초밥. 오타루에 올 때마다 뭔가 이유가 생겨서 초밥을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오타루 초밥은 홋카이도에서는 맛 좋기로 유명하다. 매번 실패하는 바람에 오늘은 낮에 미리 먹어놓을까 싶기도 했지만

Y양 일행이 어제 저녁으로 초밥을 대접받았다는 이야기에 깨끗히 포기했다.

 

 

 

운하 바로 앞의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본인 입장에서는 진풍경이라 한 장 담아본다.

지금 걸어다니고 있는 인도는 이 정도 높이의 눈이 쌓여서 지표면이 올라와 버린 상태인데

하수구와의 높이차를 이렇게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체감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나에게는 문화컬처에 가깝다.

 

 

 

운하 주변엔 관광객 상대로 하는 초밥집이 많다.

 

지금 상황이 골목의 진짜 맛집 찾아다닐 여유가 없어서 이런 곳이라도 들어가 볼까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불안한 예상이 맞아 떨어져, 가게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수가 장난이 아니다.

이래가지고는 느긋하게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버스 타러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아쉽지만 오타루에서 초밥을 못 먹은 징크스는 올해도 이어지게 되었다.

 

 

 

운하가 주인공이긴 해도 옆의 산책로 역시 스노우 캔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밤엔 데미야 철로와 운하밖에 볼거리가 없으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본인도 내일부터 시작되는 철도 여정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저 호텔들 중 한곳에 몸을 맡겼을 텐데.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오타루 당일치기 여행이었으니 더 이상 미련갖지 않기로 하고 운하의 모습을 담아본다.

다리 위는 역시 기념사진 찍는 사람이 매우 많아서 조금 기다리다가 빈 틈을 비집고 들어가 셔터를 누른다.

 

 

 

운하 위에는 수면 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르는 초롱이 주렁주렁 달려있어서 운치를 더해준다.

찍고 나니 수면에 비치는 창고 모습이 약간 방해가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반전시키면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뒤집어 봤다.

 

눈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겨울밤 운하의 모습은 항상 미려한 풍경을 자랑하고 있는데

홋카이도는 삿포로 눈축제가 열리는 2월 초순부터 거의 전 지역에서 축제가 마구 벌어지기 때문에

볼거리 많이 즐기고 붐비는 관광객들과 동화되는 재미를 느끼려면 이런 시기에 찾아올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아침부터 불안정한 날씨는 밤에도 이어지고 있어서, 10분 전만 해도 깨끗했던 밤하늘이 다시 눈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스노우 캔들로 빛나는 운하의 밤풍경을 내리는 눈과 함께 만끽한다는 것은 결코 불평할 만한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눈이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날은 홋카이도 여행 중 단 하루, 시레토코(知床)를 방문하는 그 때 뿐이다.

 

 

 

눈이 내리면서 피부가 점점 따끔거리고 있지만 벽난로에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스노우 캔들의 분위기에 마음은 훈훈하다.

분위기가 그러니 다들 소원이라도 빌고 싶은 걸까. 종이컵 촛불에는 뭔가를 바라는 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바라는 게 많은 본인이지만 이렇게 만족스러운 여행을 즐기고 있을 때면 별달리 생각나는 소원이 없다.

있다면 역시 로또라도 당첨되게 해 달라는 것이겠지만, 여기서 그런 거 적으면 산통 깬다는 반응이 나올 듯 하다.

 

 

 

주위 몇 군데 초밥집을 둘러봐도 다들 들어가지 못해 발을 굴리고 있는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아쉽지만 초밥은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운하 옆의 이 건물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다.

 

많은 여행자들이 겉모습만 보고 기대하면 안된다고 입을 모으던 그 곳이라 망설임이 없지 않았지만

그런 것이든 이런 것이든 여행중에는 실망하더라도 한 번은 경험해 봐야 다음부터 호기심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매번 겉모습에 감탄하는 나로서는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들어가 볼까 싶어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한다.

 

 

 

물류 창고로 쓰이던 곳이다 보니 겉모습만큼이나 내부도 상당히 넓다.

처음엔 거대한 뷔페식 식당을 상상했는데 사실은 중앙부에 여러가지 기념품을 파는 홀이 있고

사이드에 조그만 식당들이 구역별로 나눠져 있는 평범한 모습이라 조금 맥이 풀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 식당도 있고, 대부분의 식당이 한산하다.

문 앞에서 아주머니들이 드시고 가세요 하면서 호객행위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역시 다른 사람들의 여행 정보도 가끔은 유익할 때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념품점은 다들 그렇듯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자랑하지만 딱히 구입할 만한 것은 없다.

예전에 나침반님에게 사드렸던 곰그림 라멘 등은 여기도 판매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남 선물 준 적은 있는데 내가 먹어본 적은 없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카이센동 집으로 들어간다. 낮에 봤던 포세이동의 위용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였을까.

 

옛날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목조 식당에 손님은 서너 명도 되지 않는다.

지금 이 시기 이 시간대에 자리가 이렇게 널널하다는 것은 오히려 불안한 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밖에서 돌아다닌다고 몸이 얼어있어서 카이센동과 함께 게다리를 넣은 미소된장국도 따로 주문한다.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그 별로 없던 기대정도에 걸맞는 평범한 카이센동이 나온다.

 

그릇은 커보이는데 사실 들어있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이 카이센동의 특징.

겉보기가 워낙 화려해서 먹음직스럽지만 사실 평범한 모듬 덮밥 수준인데다가

원래는 밥 위에 해산물을 얹으면 온도때문에 맛이 떨어지는게 당연하다. 그냥 이벤트용 음식.

 

간장 살짝 뿌려서 밥 한젓갈 해산물 한 젓갈 해서 먹어치운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게 거진 만원에 가까운 가격이니 가슴이 조금 아플 뿐.

 

 

 

듬직해보이는 게다리를 넣은 미소된장국도 보기엔 기대감을 키우지만

한국에서 느끼는 시원한 이미지와는 달리 미소국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는 부드럽고 구수한 맛이 기본이다.

 

해물탕면같은 맛을 기대하고 들어왔다면 실망할 만한, 기본이 된장국인 녀석.

하지만 꽁꽁 얼어있던 몸을 녹이는 데는 이만한 녀석도 없긴 하다. 게살은 별로 많이 들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크게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널널한 곳에서 가볍게 한 끼 경험했다고 치고 밖으로 나온다.

아무래도 먹는 양을 생각하면 삿포로 돌아가서 간식거리라도 좀 사들고 가야 할 것 같다.

 

운하식당 옆에는 장작모양을 잘 표현한 아이스 캔들이 놓여있었는데

모양은 매우 좋지만 역시 식당의 강렬한 조명 밑에 위치하다 보니 본연의 매력이 살아나지 않는다.

아예 이쪽 조명은 꺼버렸으면 어떨까 싶지만, 개별 스위치가 있을 리 없으니 장사하는 입장에서 그러기도 힘드리라 생각.

 

 

 

역시 촛불은 이런 분위기가 어울린다. 주위의 도움 없이 자신의 불빛만이 남았을 때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느낌.

실제로 눈이나 얼음에 붙이진 않았겠지만, 한지를 이용한 촛불은 참 매력적이다. 분위기상 겨울 축제와도 잘 어울리고.

 

 

 

매번 중앙도로만 왔다갔다 하는 것도 좀 지겨워서 돌아갈 때는 조금 둘러가기로 한다.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이렇게 걸어가도 아마 십여 분 이상은 기다려야 할 테니까.

 

운하 쪽엔 여전히 사람이 많지만, 일반적인 식사 시간을 넘겼기 때문에 조금 떨어진 곳의 식당들은 한산하다.

역시 분위기 좋은 바에서 술이나 한 잔 하는게 제일 어울리겠는데, 혼자 밥은 먹어도 술은 마시기가 어렵다.

주위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술에 관심이 없어서이긴 하지만.

 

 

 

뭘 어떻게 하면 저런 얼음덩어리가 형성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빗물통인것 같은데.

가스관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생각해 본다면, 건물 안쪽에서 흘러나온 따뜻한 물이 바깥의 냉기와 만나서

수증기로 기화되는 순간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 진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순전히 추측일 뿐이다.

 

 

 

돌아가는 길은 한적하다. 운하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홀로 즐기는 밤 산책의 매력이 되살아나는 기분.

 

 

겨울밤에 미끄러지지 않는 눈길을 산책하는 기분은 참 상쾌하다.

여행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름 강행군을 한 터라 눈꺼풀이 슬슬 무거워지고 있지만

낮의 그 부산했던 모습이 사라진 오타루의 야경은 조금이라도 더 천천히 걸으며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대구는 눈이 온다고 해도 너무 적게 와서 그런지 금새 얇은 얼음판이 되어버려서

밤에 걸어다니는 건 거의 고행 수준이었기 떄문에 더욱 기분이 좋다고 할까.

 

 

 

버스를 타니 졸음이 확 가실 정도의 폭설이 쏟아진다. 끝의 끝까지 오늘 하루는 정말 징하게도 예민하다.

 

버스는 그 어둠속에서도 그 폭설속에서도 무슨 일이 있냐는 듯 차분하게 달리는데

언덕 몇 개 넘어갈 때 절벽 너머로 비치는 마을 불빛들에 소름이 돋는다.

여기서 살짝만 삐끗했다 하면 그대로 굴러떨어져 내일 아침 뉴스에 등장할 것이 틀림없는데도 버스는 겨울엔 원래 이렇다는 듯 거침없이 달려나가고 있다.

 

중간에 정차하는 시골 정류소는 아예 눈으로 가로막혀 사람이 버스에 타지도 못할 수준이지만

태연히 정차해서 탈 사람 있는지 내릴사람 있는지 대기한 후 자연스럽게 출발한다.

 

미끄러져 죽을 일은 없겠다고 마음을 놓은 순간 졸음이 쏟아져서 잠깐 꾸벅꾸벅 하다 보니 삿포로의 낯익은 풍경이 나타난다.

이곳은 또 눈이 그쳐있어서, 오타루와 삿포로는 뭔가 다른 차원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인 듯한 기분도 든다.

 

 

 

간식거리 몇가지 사 왔는데 그 중 특이한 녀석이 이 MEN'S CIDER 였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빨간 사이다라서 한번 구입해 보기로. 구연산이 2000mg 이나 들었고

생강과 비슷한 진저가 들어가서 피로회복에 좋은 녀석이라 눈이 솔깃했다.

 

비록 험한 꼴을 당한다고 해도 역시 다른 곳에서 먹기 힘든 녀석은 한 번쯤 맛을 봐 줘야 나중에 궁금하지 않다.

맛은 조금 쌉쌀하고 신맛이 느껴지지만 사이다는 사이다.

 

 

홋카이도에서는 일본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제품들을 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음료수로는 기린의 '가라나' 가 있다. 500mg 의 대형 캔도 100엔밖에 하지 않아서 자전거 여행시 유용했던 음료수.

 

일본에서는 가라나로 불리지만 한국에서는 구아라나, 과라나 등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

홋카이도에서만 판매하는 한정상품으로, 커피나 콜라를 가볍게 능가하는 상당한 카페인이 들어있어서

자전거 여행으로 목이 타고 지쳤을 때 한 캔 마셔주면 뭔가 정신이 말짱해지는 탄산음료였다.

 

실제 익은 열매 사진을 검색했다가 살짝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지금은 밤이 깊어서 이런 거 마셨다간 잠을 못 잘수도 있고, 자전거 여행하면서 가라나는 정말 질릴 정도로 마셔댔기 때문에

한여름에 가지 않는 한 다시 이 녀석을 마실 일은 없을 듯 하다.

 

밤 11시가 넘어서 무사히 키타미에 도착했다는 Y양의 메세지가 도착했다.

홋카이도에 도착한 3일간은 익숙했던 홀로 여행과는 전혀 다른 긴장감과 편안함에 어리둥절하며 보낸 느낌.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마음 편안히 함께할 수 있었던 깜짝 일행이어서 좋은 추억으로 남을 듯 하다.

 

하지만 내일부터 1주일간은 다시 아무도 아는 사람 없이 혼자 1000km 에 가까운 이동을 한다.

이제까지보다는 조금 더 울적해지고 조금 더 진지해지고 조금 더 투명해지는 본인 특유의 여행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아마 삿포로에 돌아오면 눈축제는 흔적만 남아 있을 듯.

사이다 탓인지 살짝 흥분되는 기분이지만 몸이 피곤해서인지

차가운 공기 속에서 두터운 이불을 뒤집어 쓴 안락함 때문인지 잠은 어렵지 않게 들었다.

 

별로 많이 떠들진 않았지만 왁자지껄한 느낌이 사라지고 잠깐의 혼동 후에

다시 평소대로의 홀로 여행으로 돌아왔다는 기분이 든다. 입을 열 일이 별로 없는 묵묵한 여행.

 

데미야 철로쪽으로 걸어가다가 보이는 KFC 에 들어가 작은 치킨샌드위치 하나를 시키고 자리를 잡는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니고, 어차피 저녁은 먹고 삿포로로 돌아갈 예정이지만 왠지 쓸 건 써야 할 것 같아서.

글 쓰기에는 시간에 관계없이 눈치 볼 필요 없는 패스트푸드점이 최고다.

 

얼어붙은 피부를 녹이며 글을 쓰고 있는데 건너편 좌석의 할머니 두 분이 직원을 거칠게 비판하고 있어서 자연스레 귀가 쏠린다.

 

얼핏 들어보니 주문한 커피가 많이 식어버린 채로 나온 것에 대한 지적인 듯 하다.

주문이 많이 밀려서 순서대로 만들다 보니 사고가 생겼다고 직원이 해명을 하는데 오히려 그게 화를 더 돋군 모양.

변명이 아니라 사과를 정식으로 했어야 한다며,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깐깐한 기숙사 사감같은 목소리로 직원을 쏘아붙이는 할머니.

 

결국엔 점장이 나와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는 일까지 벌어졌다.

할머니는 여기 직원이나 나나 모두 이 마을 사람이라 얼굴도 보고 사는 사이인데 이런 식의 태도는 아니지 않느냐고 강렬하게 항의한다.

점장은 그야말로 죄인의 모습으로 바닥에 무릎 꿇고 그저 죄송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결국 할머니도 웃으면서 앞으로 주의해 달라고 해결되긴 했지만 직원과 점장에게는 식은땀 흐를만한 한 때였으리라 생각한다.

말투는 거칠지만 논리적으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할머니라 딱히 반박할 내용도 없긴 하다.

 

 

 

예상치 않았던 싸움 구경 한번 하고 일기를 쓴 후 다시 차가운 밖으로 나선다.

원래는 저녁이 될수록 사람이 한적해지는 곳인데, 기간이 기간이다보니 여전히 많은 관광객이 북적이고 있다.

오히려 볼거리가 데미야선과 운하 정도로 한정되기 때문에 오히려 낮보다 사람이 더 많은 기분마저 들게 한다.

 

데미야 철로에 도착하니 잔잔한 촛불만이 깜깜한 하늘 속에서 아련하게 비치고 있다.

주위 환경 탓인지, 너무 크게 떠들다간 촛불이 꺼지기라도 할 듯 사람들이 상당히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다.

촛불이 엄청 밝은 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도 들뜬 기분을 잊고 차분하게 관람하게 되는 듯.

 

 

 

굉장히 어두워서 카메라 감도를 꽤나 높이고 찍어야 그나마 흔들리지 않게 나온다.

낮에도 예쁘긴 했지만 본연의 목적을 드디어 내비치기 시작한 스노우 캔들은 파라핀 사이에 놓인 단풍잎을 영롱하게 통과하며 빛을 발한다.

 

소근소근하는 이야기소리와 눈을 밟는 소리, 가끔 들리는 셔터소리만이 조용하게 화음을 이룬다.

아마 맛폰으로 촬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셔터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 듯.

 

 

 

철로는 똑바른 일직선이지만 애초에 눈길은 이리저리 구부러진 모습이고

내렸다 그쳤다는 반복하는 동안에 만든 아마추어들의 스노우 캔들은 아이들의 학예회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보는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

 

스스키노 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에서 빛을 발하던, 녹는 것이 아까울 정도의 얼음 조각상들이 가지런하게 정비된 모습과는 사뭇 달라도

오타루라는 마을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이곳에서도 충분히 전해지는 듯 하다.

 

 

 

나처럼 혼자서 묵묵하게 촬영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많은 사람들이 캔들의 불빛에 동화된 자신의 일행을 예쁘게 담아주고 있다.

Y양 일행도 여기까지 같이 할 수 있었다면 이런 사진 몇 장은 남겨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기분에 은근슬쩍 딴 곳을 찍는 척하면서 다른 사람의 모습도 살짝 담아본다. 소심한 찍사의 발버둥.

 

 

 

축제 기간동안 몇 번이고 보수를 거친 듯한 울퉁불퉁한 캔들과

적당히 눈뭉치 몇개 결합시켜서 만들어 낸 듯한 눈사람, 혹은 그냥 순수한 눈덩이라도

저녁 촛불 옆에 놓여있으니 무엇이든 나름 작품으로 변신하는 기분이다.

 

눈만 있다면 주민들과 세계 각국의 자원 봉사자들의 힘으로 이렇게 축제를 열 수 있다는 점이 일종의 저력으로 느껴진다.

 

 

 

녹고 얼고를 반복하다보니 뽀송뽀송한 듯 미끌미끌한 듯한 토끼가 둘이 사이좋게 얼굴을 맞대고 있는 모습.

이글루와 비슷한 원리인지, 촛불 위쪽은 꽤나 뜨겁기 때문에 적당히 눈이 녹다가 날씨때문에 다시 얼어버리곤 해서 저런 모양이 되는가 보다.

 

 

 

자원이 부족하면 역시 아이디어가 커버해 준다.

낮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불을 켜 놓으니 마지 장작이 타면서 사이사이로 불길이 새어나오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낮에 스노우 캔들 만드는 방법을 구경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주위에 있는 사물들 이용해서 간단히 만드는데도

무엇을 표현할까를 잘 고려하면 이런 재미있는 작품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가 보다.

 

 

 

단순한 스노우 캔들이지만 발상에 따라 훌륭한 바리에이션이 탄생한다.

열매를 넣은 얼음조각을 촛불을 넣었던 입구쪽에 배치한 것. 눈과는 다른 얼음의 투과성이 불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참치 한마리 집어넣는 것 보다 이런 녀석들이 훨씬 보기 좋다.

 

 

 

거대한 눈벽 중간을 파내고 그 안에 촛불을 늘어놓은 후 별모양 얼음으로 겉을 채운 은하수같은 작품.

눈이라는 소재가 무궁무진한 이유도 있겠지만, 참 한 걸음 뗄 때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오타루에서는 겨울 밤에 하늘을 쳐다보지 않아도 이렇게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다.

 

 

 

규모가 큰 단체 작품이다 싶은 건 아마도 해외 봉사단 청년들이 힘써서 만들어 놓은 것 아닐까 싶다.

젊을 때 해볼 수 있는 멋진 여행의 일종이라 부러울 때도 있긴 했지만

사실 그 정도 단체생활에는 발작을 일으킬 정도라, 아마 돈을 줘도 가지는 않을 듯.

 

 

 

낮에도 보긴 좋지만 역시 촛불은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통과하면서 빛을 내뿜는가가 중요하다.

한국 팀이 만든 것이라면 첨성대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듯한 눈덩어리라도 그 속에서 촛불이 빛을 발하면 은은한 기운이 참 훈훈하다.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진득하게 자리를 만들기가 힘들다. 그냥 슬슬 걸어가면서 되는대로 적당히 찍는 중.

감도를 3200 까지 올리고 찍으면서 이렇게 올려도 되나 싶었는데, 아직도 필름 쓰던 기억이 남아있어서 감도 올리는데 소극적이 된다.

 

요즘 최신 디지털 바디들은 6400 까지는 기본이고 심하면 십만 단위까지 감도가 올라가는데

아날로그의 향수에 젖어있지만 말고 디지털의 이점을 잘 살리는 것도 찍사로서의 진화에 포함되어야 할 것인지 고민도 해 본다.

 

 

 

저녁에 되어 촛불에 불 켰다고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할 일이 끝난 게 아니다.

오늘은 바람이 심하지 않고 날씨는 적당히 추워서 촛불이 아무 문제없이 유지되고 있지만

조금만 날씨가 험해지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무너진 부분을 보강하고 꺼진 촛불을 켜고 한다고.

 

직접적으로 물건을 팔아 수익이 들어오는 축제가 아님에도, 이것이 주민과 관광객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듯 하다.

 

 

 

아주머니들이 숯불에 뭔가를 구워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군밤인가 싶었는데 사실은 감자였다.

감자가 원래 추위에 강한 작물이다 보니 홋카이도의 감자는 그 크림처럼 사르르 녹는 부드러움이 일품으로 유명하다.

추운 겨울날 야외에서 숯불에 구워 주는 감자의 맛은 이 축제를 더욱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 준다.

 

 

 

밤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리다 보니 사진 찍기도 힘들거니와 걸어다니기도 쉽지 않다.

그냥 움직이는 인파를 따라서 조용히 이동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일행들끼리 기념사진 찍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홀로 정물사진이나 찍고 있는 본인이 양보해야 마땅하다.

사진으로 촛불 축제의 은은한 매력을 담아내기에는 내공이 많이 부족해서, 굳이 집착하며 사진을 남겨야 할 필요도 없고.

 

 

 

낮에 제작과정을 잠깐 봤다고 벌써 친근한 느낌이 드는 파라핀 캔들의 모습.

실제로 길을 비춰주는 용도로 쓰이기엔 많이 어두운 편인데, 오히려 또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줘서 더욱 매력적이다.

 

주민들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과 힘을 합해 이렇게 이뤄낸 야경모습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 느낌이 들런지.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삿포로의 눈축제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본인 취향상 이쪽에 더 마음이 끌린다.

아무것도 모르고 삿포로에 숙박지를 잡은 것이 살짝 아쉬워 질 정도.

 

 

 

홋카이도는 이주 개혁 초기에 관청의 심볼로 별모양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삿포로 맥주캔만 봐도 금새 알 수 있고.

 

눈이 부족한 해에는 이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 타지역에서 많은 돈을 들여 눈을 퍼오기도 했다는데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눈이 온 올해는 왠지 축제에서도 여유가 느껴지는 기분이다.

 

사진찍느라 사람들이 많아서 잠깐 기다리다가 간신히 온전한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나한테도 매력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자기 키를 훨씬 넘는 눈벽으로 이루어진 길을 보는 아이들은 기뻐 날뛴다는 표현이 적당할 듯.

부모들이 당황하며 부르고 있어도 신나하며 눈벽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해가 지고나서 떠오르는 이 새로운 세계는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멋진 추억거리가 되겠지.

 

 

 

낮에도 불만했지만 밤엔 더욱 미려한 자태를 뽐내는, 민가처럼 생긴 조그만 건물.

진짜로 사람이 살고 있다면 축제 기간에 프라이버시는 버려야 할 것 같지만 아마도 별로 개의치 않으리라 본다.

 

실제 철도가 운행되고 있었을 당시에도 서 있었음에 틀림없는 건물인데, 거의 철로와 딱 붙어있어서 생활이 참 고됬을 법 하다.

그 때에 비한다면 당연히 지금의 웅성거림은 애교에 불과할 듯. 물론 그 때 사람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확률은 좀 낮지만.

 

 

 

진짜 눈사람이 아니라도 실제 눈과 함께 전시되면 왠지 훨씬 더 멋져보인다.

전방 부대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좀 사치스러운 생각이지만, 눈이란 소재는 참 다양한 방법으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눈과 파라핀, 얼음은 확실히 유리와 특성이 비슷해서 촛불과 함께하면 굉장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곳 못지 않게 눈이 많이 오는 강원도에서는 이런 축제를 기획해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든 머리를 스친다.

삿포로라는 홋카이도 최대의 도시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시너지가 강원도에는 없으니 조금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스노우 오브제 제작 체험에 1000엔이 든다고 한다. 비매품 선물도 증정한다고 하니 아이들과 함께라면 나쁘지 않은 체험인 듯.

이런 체험은 사실 낮에 하는게 보기도 좋고, 축제의 일원이 되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눈이 내리지 않더라도 오타루의 밤은 생각보다 추워서 천천히 걷고 있음에도 조금씩 몸이 굳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다행히 추위를 워낙 타지 않는 체질인데다, 그래도 홋카이도라서 가져온 따뜻한 비니때문에 체력적인 문제는 없다.

 

 

 

삼각형 집 사이로 아련히 빠져나오는 불빛을 보고 있으면

왠지 눈내리는 차가운 겨울 저녁 단란한 가정을 추위에 떨며 엿보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라던가

파트라슈의 온기로 쓸쓸함을 걷어내려는 네로의 심정이 살짝 엿보인다고 할까.

 

원래는 좀 더 화목한 가정이 느껴져야 하겠지만 본인은 아직 그 당사자가 아니가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밖에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 듯 하다.

 

 

 

그리 길지 않은 길이지만 잠깐의 산책만으로 오타루의 눈 축제가 가지는 소박한 따뜻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삿포로의 거대 조형물들은 태생 자체가 그렇다보니 그냥 그렇구나 하는 생각으로 셔터를 눌러왔지만

이곳의 스노우 캔들은 하나 하나가 평범한 개인의 정성으로 빛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돌아가는 버스 시간은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아있기 때문에, 이 길로 운하의 야경을 감상한 후 기념 식사라도 한끼 하려고 발걸음을 옮긴다.

여행 3일째까지 교통비 말고는 사용한 게 거의 없어서 원하는 건 아무거나 먹을 수 있다.

역시 초밥이라도 신나게 먹을까 생각하며 중앙 거리로 이동.

 

 

오르골당 구경을 끝내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간다.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해서 Y양의 여행 선물 둘러볼 정도의 시간은 있다.

Y양은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고 해서 키타미에서의 생활 역시 그렇게 쾌적한 편은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추운 날씨의 여행중 불평불만 없이 함께해 줘서 고마울 따름.

 

 

 

오르골당이 위치한 교차로에서는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기분으로 다양한 악세사리점이 포진해 있지만

그거 다 구경하다가는 골목투어고 뭐고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산뜻하게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한다.

 

여행중 구입하는 기념품이나 선물은 대체로 그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비싸지 않으면서도 있어 보이거나, 혹은 진짜로 괜찮은 명품 등이 있을텐데

이곳은 뭔가를 구매한다는 기준에서 매우 유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유수의 제과점들이 포진해 있기도 하고, 부피 걱정없는 뛰어난 품질의 악세사리도 빵빵하며, 본토인들이 쉽게 사들고 갈 먹거리도 풍부하다.

본인 역시 오늘이 여행 말미였다면 여러가지 사들고 한국으로 돌아가 선물을 나눠줬을테지만

여행은 이제 막 시작한 참이고 한국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2배를 더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짐을 늘리는 것은 여행을 힘들게 할 뿐이다.

 

 

 

코마츠군은 한두 번, Y양은 서너 번 정도 미끌미끌하고 있는데 비단 우리쪽 일행만 그런 건 아니고

가끔씩 주변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던가, 저 앞의 노인들이 엉덩방아를 찧어서 깜짝 놀라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삿포로와는 달리 제설 장치가 완벽할 수 없는 작은 마을이라 관광객 스스로가 조심할 수 밖에 없다.

본인 입장에서는 며칠 전 서울에서의 하룻밤이 훨씬 더 미끄러웠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지 않아서 다행.

 

 

 

좀 전에 지나쳤던 베네치아 미술관 앞에는 뭔가 이탈리아틱한 눈사람이 도도하게 서 있다.

꼼꼼함이라고 할까, 가면을 쥐고 있는 손까지 표현해 놓아서 눈사람이지만 표정까지 읽을 수 있을 법한 기분이 든다.

 

 

중간에 르 타오에도 들러 Y양의 선물거리를 구매했지만 사람이 너무 바글바글해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민폐로 느껴지는 탓에

그냥 카메라는 어깨에 둘러매고 시식코너에서 농후한 치즈케이크와 초콜릿만 만끽하는 것으로 그쳤다.

 

더블 포마쥬 치즈 케이크는 르 타오의 간판 스타니 그 명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영롱한 초록색으로 빛나는 청포도 초콜릿이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Y양은 그걸 구매했다.

청포도 향기가 매우 부드러운 초콜릿과 함께 입안에 퍼지는 느낌은 참 신기했다.

 

오타루라는 지명을 거꾸로 읽어 약간 프랑스틱한 가공을 첨가한 이름인 르 타오는 오타루의 자존심이라 할 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기에

홋카이도의 풍부한 유제품을 이용해 만든 케이크와 초콜릿은, 이런 류의 간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면 무조건 추천할 만큼 훌륭하다.

 

본인 역시 사들고 가고픈 기분이야 말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선물용으로 구입할 시기도 아니어서 구입하면 혼자 호텔에 처박혀 다 먹어버리게 되니.

특히 르 타오 제품들은 신선도에 매우 민감해 냉동처리가 힘든 관광객들에게는 그냥 택배로 받는걸 권하고 있을 정도라, 나 같은 여행자와는 상성이 잘 맞지 않는다.

 

 

 

적당한 시간에 비브란트 호텔로 들어가니 이미 좁은 로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너무 많은 인원이 함께 움직이기는 힘드니 적당히 분배해서 나이 지긋한 가이드 두 분이 인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무료라서 그런지 신청 인원이 상당히 많은데, 오타루 진흥을 위해서 참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출발은 비브란트 호텔 바로 앞의 운하쪽으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골목투어라는 이름이 그냥 좁은 구석을 탐험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 관광으로는 알기 힘든 자잘한 콩알지식을 가이드분이 설명해준다는 취지이다 보니

사실 코스 자체는 낮에 일행들끼리 찾아갔던 곳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오타루 운하 하면 붉은 벽돌 건물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가이드 할아버지도 그 점을 지적하신다.

실제로 운하에 붉은 벽돌 건물은 저것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 나머지는 그냥 콘크리트 건물이거나 회색 벽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타루 구경하고 온 사람들은 대부분 운하 옆에 서 있는 건물들이 붉은 벽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카렌가(赤レンガ)라고 부르는 붉은 벽돌 건물은 메이지 시대 서양 문물의 상징과도 같은 녀석이었는데

당시 신항만이었던 오타루의 이미지상 자연스럽게 붉은 벽돌 건물이라는 컨셉이 머리속에 연상되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실제 항구에 붉은 벽돌 건물이 많은 곳은 여기가 아니라 홋카이도 최남단의 항구도시 하코다테(函館)인데, 그쪽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고.

 

 

 

오타루 역에서 일직선으로 내려오면 운하 한쪽 끝에 도착하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저 곳에서 사진을 찍는 편인데

가이드분 말로는 사실 이렇게 반대쪽에서 찍으면 운하 유일의 붉은 벽돌 건물도 잘 보이고 해서 더 보기 좋다고 한다.

 

찍고보니 확실히 분위기가 더 좋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본인은 오타루에 너댓번 정도 와 본 터라 운하의 모습은 밤낮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많이 담아본 편.

이쪽 풍경이 좋다는 것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은 눈축제 관계로 사람이 너무 많아 별로 발품을 팔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마 눈축제 기간에는 밤이 되어도 사람이 바글바글하겠지만

사실 일반적으로는 밤 9시만 되어도 운하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다.

자전거 여행 당시는 3천엔짜리 냉장고도 없는 숙소에 짐 처박아놓고 기절하듯 잠에 빠져든 후

저녁 7시 즈음 눈을 떠서 밤 11시까지 하염없이 운하 주변을 돌아다니곤 했다.

 

그런 여유가 오타루 운하의 진짜 볼 만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번엔 아무래도 그 정취를 느끼기 힘드리라 생각.

 

 

 

해지기 전에 끝나는 그리 길지 않은 투어라서 멀리 걷지는 않는다.

일단 단체가 움직이기 때문에 눈길 조심해야 하고, 건널목 건널때도 신호 아슬아슬하다 싶으면 그냥 기다린다.

 

걷는 거 힘든 사람은 미리 말해달라는 당부사항도 듣고, 추위 대용으로 붙이면 따뜻해지는 발열 시트도 한 장씩 받았다.

절대로 맨 피부에 붙이면 안된다는 설명도 해 준다. 아마 상당히 뜨거운 듯 하다.

추위를 타지 않는 본인은 결국 지금도 책상 위에 그 시트가 남아있지만.

 

정식 투어와는 달리 그냥 동네 아저씨가 자기가 태어나 살아온 마을을 소개해 주는 듯한 분위기인데

처음부터 그런 정감있는 투어를 목표로 했다고 하니, 기업형으로 계획한 투어보다는 느낌이 좋다.

물론 지금까지는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니 우리 일행처럼 특이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외국인이 즐기기 힘들기는 하다.

 

거리 이곳저곳만 돌아다녀도 재미있는 모습은 구경하기 쉽다. 겨울 여행의 특징이라고 할까. 안내판이 잠겨 버릴정도의 눈은 보는 것만으로 감동.

 

 

 

오타루 중앙거리의 고딕풍 석조 건축물들은 금융업이 발달했던 당시였던 만큼 일본 3대 은행이 전부 몰려있었다고.

이곳 주민으로서는 꽤나 추억할만한 역사지만 일단 그 부분은 한국인들에게 크게 어필할 내용이 아니라서 패스.

 

초반에 걸어왔던 오타루 최초의 데미야 철로에 다시 돌아온다.

겨울 이외의 계절에 오면 이곳에 바로 철로가 보이기 때문에 알기 쉽지만 지금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아주 아담한 폭이지만 사실상 오타루에서 삿포로 중앙공원 역할을 하는, 직선으로 쭉 뻗은 공간이라

여기서 오타루 눈축제 거리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큰 조형물이 아니라 시민들과 봉사단체가 팔을 걷어부치고 만든 소박한 것들.

 

 

 

관광 산업은 규모의 경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대표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삿포로의 휘황찬란한 조형물이 반드시 오타루의 아담한 스노우 캔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본인 취향으로는 이렇게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직접 만들어 낸 엉성한 축제 준비가 훨씬 마음에 들기도 하고.

코마츠군이 오타루에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스노우 캔들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지붕을 압박중인 거대한 삼겹살 덩어리가 더욱 인상적인건 좀 아이러니하지만.

 

 

 

사람 키만큼이나 높이 쌓아놓은 눈길 사이사이엔 수 많은 스노우 캔들이 준비를 갖추고 있다.

기후 변화로 오타루 역시 눈이 그리 많이 내리지 않는 경우가 있어, 눈을 타지역에서 실어날라서까지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올해는 눈이 충분히 많이 내렸기 때문에 수월했다고 가이드분이 설명해 주신다.

 

본인 입장에서는 눈으로 벽을 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놀라울 뿐이지만.

 

 

 

처음엔 전부 눈으로 만든 것인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이런 스노우 캔들은 촛농을 녹여서 만든 녀석들이다.

자연 친화적이라고 할까 소소하다고 할까,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모습이라서 오히려 정겹다.

Y양 일행은 저녁에 5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키타미로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촛불들이 켜진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참 안타깝다.

 

 

 

진짜로 사람이 사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의 낡은 목조 건물이지만 일본에는 이런 집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겨울엔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더 의아할 따름. 1층은 창문이고 뭐고 거의 보이질 않는다.

 

 

 

철로가 운행되는 당시 이용하던 역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제는 할 일을 다 하고 관광객의 셔터 세례나 받는 생활인데, 어쩐지 철로의 인생이란 것도 사람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평생을 오타루에서 보낸 가이드 할아버지의 설명에는 관광객이 느끼기 힘든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듯 해서 조금 마음이 복잡하다.

기억이 시작된 때부터 도시에 살던 나는, 변하지 않는 마을의 모습을 간직할만한 흔적이 별로 없다.

변할것 같지 않던 그 오래된 아파트마저 요즘 보니 증축을 해서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으니.

 

동네 골목은 거의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조그만 재래시장이었는데, 오타루처럼 꾸준히 옛 모습을 지키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70을 넘은 나이에서도 예전 추억을 되살리며 외지인들에게 설명을 늘어놓을 수 있는 인생은, 뿌리가 탄탄한 느낌이 들어 부럽기도 하다.

 

 

 

조금 더 이동하자 가이드분이 임시 천막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안에는 먼저 온 투어 참가자들이 아직 남아있다.

지금껏 봐 왔던 스노우 캔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곳. 보여준다기 보다는 여기서 계속 캔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원리를 알고 보니 매우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다. 물을 담은 풍선을 적당한 온도의 파라핀 용액에 슬쩍 담궜다가 꺼내기를 반복하는 것.

그릇이 만들어지면 풍선의 물을 빼내고 윗부분을 다듬기만 하면 훌륭한 파라핀 캔들이 만들어진다.

겨울이다 보니 굳기도 매우 빨리 굳고, 담그면 담글수록 경계면이 굵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파라핀이 좀 위험하긴 해도 아이들이 재밌어 할 듯.

 

실제로 그걸 수백개씩 만들어야 하니 힘든 작업임에는 틀림없지만 적은 예산으로 마을의 축제를 알뜰히 준비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천엔을 내면 체험제작해서 갖고 가던지 전시장에 두던지 할 수 있다고 한다.

 

 

 

밖으로 나와서 스노우 캔들 만드는 방법도 피로해 주신다. 사용 도구는 모종삽과 양동이 그리고 남아도는 눈 뿐.

아침부터 봐 왔던 그 스노우 캔들이 이렇게 해서 만들어 진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런 식의 적절한 준비작업이니 마을 사람들로서도 재미있게 협력할 수 있고, 관광객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양동이에 눈을 꽉꽉 압축해 단단하게 집어넣고 난 뒤엔 모종삽으로 중앙부분을 살짝 파낸다.

 

 

 

그리고 설치하고픈 위치에 양동이를 뒤집어 엎은 후 앞부분을 다시 모종삽으로 퍼내면 스노우 캔들 완성.

양초에 불을 붙여서 살그머니 밀어넣으면 상점가에서 봤던 그녀석이 완성된다.

 

눈이라는 천연 재료를 사용한 탓에 만들기도 쉽고 뒤처리도 간편한 아이디어.

운이 좋았는지 양초 넣는 건 Y양이 맡았다. 얼굴까지 담아드리지 못해서 죄송했지만.

사실은 나한테도 넣어보라고 양초를 건네줬는데, 손이 너무 굵어서 양초가 안으로 들어가질 않았다는 비극적인 뒷이야기도 있다.

 

 

 

조금 더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할 따끈따끈한 스노우 캔들의 모습.

이곳 데미야 철로는 눈축제를 위해 일부러 조명을 켜지 않기 때문에 밤에는 거의 촛불만이 시야를 밝혀줄 듯 하다.

 

사실 이쪽 축제준비는 완성이라는 개념이 없는데, 하루 지나면 깨진 캔들도 많거니와 눈에 파묻혀 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녀석들도 생기기 때문에

매일매일 해가 지기 전까지 꾸준히 만들고 세우고 하는 것이 일과라고.

 

오타루 눈축제에는 매년 해외 각국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서 서로의 작품을 전시한다고 한다. 아마 한국 팀도 와 있을 듯.

 

 

 

단순한 스노우 캔들이라도 데코레이션에 따라 충분히 멋들어진 모습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조금은 단순미가 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고드름을 지면에 꽂아놓은 장식도 볼 수 있지만

축제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도 충분히 용납되는 기분이 든다.

 

 

 

좀 정도가 과한 것이 아닌가 싶은 눈더미. 사람이 사는 집같은데 내부를 구경해보고 싶은 욕구가 들 정도다.

 

목조 건물이라면 저 무게를 버티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도 전혀 눈을 치우지 않은 건 좀 특이하다.

홋카이도는 겨울만 되면 지붕의 눈 치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나처럼 신기해 할 관광객들을 위한 서비스일지도 모르겠다.

 

 

 

해가 조금씩 저물어 가고 있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마무리 작업으로 바쁜 모습이다.

눈축제라는게 상시 위험성을 내포하다 보니 특히 눈이 많은 데미야 철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오히려 눈이 적을 때나 기온이 높을 때 위험하니 지금은 딱히 걱정할 정도는 아니긴 하다.

 

 

 

그냥 눈벽이 만들어질 정도로 많이 쌓였다는 점 하나만으로 Y양을 세워서 사진을 찍는다.

Y양 대구쪽 대학원 출신이니 눈에 익숙하지는 않으리라 예상하는데, 키타미에서 생활하다 보면 눈은 그냥 공기같은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런지.

 

아마 언젠가 한국에 돌아오면 이런 눈이 그리워질 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키타미가 군대는 아니니까.

 

 

 

구석구석 잘 찾아보면 앙증맞은 녀석들이 많다.

참치를 한 마리 통째로 얼음에 집어넣는 씀씀이 널널한 삿포로의 기업 전시 부스와는 달리

재료비 하나 들지 않고 몸으로 때운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이곳의 모습은 이 나름대로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J 와 C 에서 추론해보면 아마 중국쪽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곳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걸어오다 보니 한국어를 주고받으며 열심히 작업중인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골목투어를 따라가는 중이라 말 걸만한 타이밍도 잡기 어렵고, 외국 여행시 한국 사람에게 말 걸지 않는다는 암묵의 룰이 몸에 스며든 본인이라서.

 

자원봉사자는 일단 숙식은 지원받지만 항공료 등은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하다.

축제 마무리까지 잘 해야 하니 놀러간다는 기분만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여러 외국 친구들도 사귀고 하면 참 재미있겠지만.

 

 

 

Y양과 코마츠군은 이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사진도 좀 더 적극적으로 찍어주려 한다.

같은 홋카이도에 살고 있다고 해도, 남한의 80% 면적을 자랑하는 곳이니 이렇게 축제날 짧은 휴가로 움직이기가 쉽지도 않다.

한국에서 온 본인이 오히려 10일이나 되는 긴 여정을 준비해 왔으니.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오자 혼자 남아서 오타루의 야경을 보고 간다는 것이 좀 미안해 지기도 한다.

여행의 인연이라면 삿포로까지 가서 둘을 배웅해 주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자주 보기 힘든 오타루의 겨울 야경을 포기하기도 그렇고.

 

 

 

원래 철로긴 하지만 원채 눈으로 덮혀있어서 실감이 나질 않으니

용캐로 눈을 치워내고 눈으로 기차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대단한 정성이 들어갔을 듯.

Y양은 이 모습을 보고서야 이곳이 진짜 철길이었구나 감탄을 한다.

 

계절의 변화가 뚜렷할수록 재미있는 곳이라는 느낌인데, 한국보다도 훨씬 다이내믹한 홋카이도의 계절변화라서

여름의 그 잡초 파릇파릇 돋아나던 철로라고는 생각할수도 없는 풍경이 세삼 재미있게 느껴진다.

 

 

 

다시 비브란트 호텔에 돌아온 팀은 가벼운 인사와 함께 여정을 마친다.

설문조사에 응해달라고 해서 잠깐 앉아 체크를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축제를 준비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적어 놓는다.

단지 '이 투어를 유료화한다면 참가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어보는 란에서는 망설이다가 아니오로 대답한다.

 

원하는 사람은 동그란 유리병에 알아서들 모금을 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10일간 교통비를 수십만원씩 써야 하는 본인으로서는

유용한 투어였음에도 많이 모금하기는 힘들어 지갑속에 있던 동전 몇 개를 집어넣는 것으로 소소하게 감사 표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Y양 일행은 삿포로로 돌아간 후 바로 버스를 타고 키타미로 이동해야 한다.

천천히 오타루역을 향해 걸어가며,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하는 야간 축제의 모습을 아쉽게나마 담아본다.

 

 

 

신경쓰는 모습으로 보였을 리는 없지만, 어쨌든 개인플레이 성향이 강한 본인이라 나름 신경쓰이는 여행이었지만

역시 하루 이틀간의 인연이라도 헤어질 때는 아쉽고 쓸쓸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관광지이다 보니 역내 편의점에서도 다양한 선물을 팔고 있다.

Y양이 이것저것 유심히 살펴보길래 선물이 더 필요한가 싶었는데, 몇 가지 사더니 그 중 초콜릿 하나를 나한테 건네준다.

남한테 뭐 받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살짝 부담되지만 이럴 때는 감사히 받는 게 좋은 방법일 듯.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타루역의 명물인 호롱전등 앞에서 마지막 기념 사진을 찍고 둘을 보낸다.

내년에도 기회가 있으면 만나자고 말해 준다. 나야 자금여유만 되면야 언제든지 날아가고 싶긴 하다.

 

홋카이도 여행 시작 3일째 저녁. 앞으로 1주일간은 다시 익숙한 홀로 여행으로 돌아온다는 기분이 꽤나 묘하다.

아직 오타루에서 볼거리도 좀 남았으니 천천히 몸을 돌려 역 밖으로 나간다.

 

오르골당에 오는 건 5년만이다. 자전거 여행때는 이런 곳에 들어갈만한 몰골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운하 주변 밤거리를 배회하는 것만이 휴식의 낙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왔지만 여전히 변한 건 없어보인다. 변할 필요가 없는 곳이기도 하고.

 

처음 들어가면 따스한 조명색과 반짝반짝 빛나는 오르골들이 펼쳐진 모습에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5년 전과 달리 중국인 관광객이 매우 많다는 점만이 낯설게 다가온다. 확실히 요즘 중국 관광객의 기세는 확 체감될 정도로 강렬하다.

 

 

 

이곳의 오르골은 정말 다양한 디자인과 수천가지의 음색을 자랑해서

여행와서 기념품을 사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그냥 넘어가기가 힘든 매력을 사방에서 뿜어내고 있다.

 

본인은 여행한 횟수에 비하면 기념품을 정말로 구입하지 않는 축에 들어가기 때문에 매번 이겨내고 있지만.

벽에 걸어놓고 줄을 잡아당기면 음악이 연주되는 단순한 형태의 오르골. 흐르는 음악은 파헬벨의 캐논이다.

주변이 시끄러워서 일행들 모두 줄을 당기고 귀를 갖다대어 음악을 감상한다. 드럼이 워낙 작아서 연주되는 소절이 짧은 게 아쉬운 점.

 

 

 

디자인에 신경쓰지 않고 단순히 음악만을 감상하기 위한 실속형 오르골도 굉장한 종류로 전시중이다.

 

오르골은 드럼이라는 금속통 표면에 작은 돌기를 만들어 놓고 그걸 금속핀에 순차적으로 접촉시켜 음악을 만드는 기계인데

곡을 길게 만들려면 드럼도 자연스럽게 커져야 하고, 장시간 흐트러짐없이 돌기를 정확하게 배열하는 것이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라

고급 오르골은 수백만원은 가볍게 넘는다. 구조가 단순한만큼 맑은 음색과 정확한 리듬을 맞추기 위해서는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이런 기념품용 오르골은 가격도 만원 초반대부터 시작하는 작은 녀석이라 음악적 만족감을 이루기는 어렵다.

그래도 불후의 명곡인 Stand by me 가 적힌 이 오르골만은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사실 자전거 세계일주 준비중인 나침반님한테 선물로 드리려고 생각했지만, 막상 들어보니 길이가 너무 짧아서 포기.

 

 

 

오르골은 작동 구조가 사실상 LP 등의 턴테이블과 완전히 동일하다. 홈을 긁지 않고 금속 돌기를 튕겨서 내는 점만이 다를 뿐.

지금와서는 제작 단가가 비싼 탓에 기념품으로나마 팔리는 녀석들이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이곳 오르골당은 공방에서 직접 만든 오르골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오르골들을 다양하게 전시중이기 때문에

여기를 잘 둘러봤다면 전 세계 오르골의 절반 정도는 다 본것이나 다름없다.

 

 

 

기념품의 범주로 넘어가면 역시 오르골의 음색보다는 받는 쪽에서 좀 더 인상깊을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질 듯.

본인이 써도 괜찮을 법한 모델에서부터 남에게 선물해주면 좋을 법한 것들까지 다양하다.

 

정작 이런 디자인은 드럼 크기가 필연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본인 기준으로는 조금 아쉽지만.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내부가 좀 더 크게 느껴지는 편이다.

목재 뼈대를 사용했지만 석조 건축기술이 융합된 방식이라 내부 공간 활용도가 높다.

2층은 이렇게 넓은 시야대신 공간이 좁은 편이지만, 덕분에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게 해 주니 이쪽으로서는 만족스럽다.

 

 

 

거울이 있어서 재미삼아 세 명의 모습을 동시에 담아본다. 코마츠군이 든 오르골은 살짝 가려버리는 바람에 유감이었지만.

오르골은 드럼의 완성도가 가격과 직결되기 때문에 기념품용 오르골은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다.

이쪽 일행은 다들 알뜰한 성격인지 한참을 구경하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도 결국 아무것도 구입하지는 않았다.

 

오르골당이야 가게라기보다는 관광지의 하나로 굳게 자리를 잡아버린 곳이니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문제없다.

 

 

 

오타루가 유리 공예로 유명한 곳이니 이렇게 유리로 만든 벽걸이형 오르골도 판매중이다.

 

세삼스럽지만 일본사람들의 상업적 센스는 참 꼼꼼하며 기본을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

오타루의 유리 + 오르골에 떡하니 붙여놓은 마데인 저팬 표시까지 있으면 기념품으로는 안성마춤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계획성이 엿보인다.

 

 

 

오르골과 관계 없는 유리 전등도 귀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유리라서 아이들이 만지기엔 좀 위험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고 할까.

 

상품 곳곳에 중국어로 설명된 간판을 보니 정말 중국 사람들의 관광소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실감이 난다.

중국 사람들의 쇼핑은 이런 것보다 대형 백화점을 싹쓸이 해 가는 방식이라, 이런 곳에서는 그 구매력이 잘 살아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설명문은 한 군데도 없이 중국어가 빡빡하게 적혀있는 모습을 보니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돈이 왕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오르골과는 관계 없는 동판 공예품인데, 이게 느낌이 매우 마음에 들어서 하나 구매해볼까 했지만

부피에 비해 상상을 뛰어넘는 가격이라 아무래도 그 정도 지불을 할 만한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가격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참 구매욕구 불러일으키는 제품을 잘도 전시해 놓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악세사리라는 건 결국 예술적 카테고리 속에서 동의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리 공예와 오르골로 유명한 오타루는 사실 동판을 이용한 모형이나 공업용 나사를 주물러서 만든 희화 캐릭터 등

전반적으로 공예품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루로는 절대 모자랄 정도로 종류도 다양하다.

 

그냥 스윽 바라보고나서 무덤덤하게 지나가는 타입이라면 오타루 관광은 하루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세심함과 꼼꼼함이 듬뿍 느껴지는 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 언저리가 근질근질해지는 사람이라면 후회없는 여행이 될 듯.

 

 

 

이런 녀석들은 조명이 중요해서, 집에 사서 가져다 놓아도 위치 선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왠지 빛이 바랜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은 아늑하고 충분한 조명이 설치되어 있으니 반짝반짝하는 게 참 아름다워 보이지만

하나만 달랑 사들고 가서 조명 위치 생각하지 않고 전시해 놓으면 내가 헛것을 봤나 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구경하다보니 마침내 오르골도 유리도 동판도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조형도 눈에 들어온다.

센스만 있다면 누구든 모을 수 있고 만들 수 있을법한 녀석이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만들어 놓은 센스가 비범하게 느껴진다.

 

 

 

한창 정신이 팔려서 내부를 돌아다니다가 전경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순간.

유리 소재가 많아서 자칫 관광객이 부딪치거나 하면 대사고가 일어날 법도 한데

테이블 배치의 다양함과 꼼꼼한 세팅, 중앙의 통일성있는 스탠드의 디자인 등 기념품 가게의 표본으로 삼고 싶어지는 멋진 모습이 시선을 끈다.

 

오르골 소리도 좋지만 그냥 이렇게 가만히 서서 전경을 바라보는 것도 기분좋은 관광이 된다.

 

 

 

사실 오르골당에 들어오면서부터 Y양과 코마츠군과는 거의 반쯤 개별행동으로 들어가 있었다.

사진 찍을 때 가끔 모이긴 하는데, 각자 찍고싶은 사진도 있고 구도나 관심있는 제품에 대한 흥미도 등을 생각하면

굳이 몰려다니며 볼 필요 없이 이것저것 보면서 다니다 보면 어차피 만나게 되어 있었으니까.

 

 

 

모양이 동일한 오르골이라도 안에 들어있는 노래는 다양하다. 친절하게 곡 리스트도 테이블 중앙에 적어놓았다.

음색까지 판단하기엔 좀 시끄러운 곳이고, 드럼 크기상 단순한 음절밖에 반복하지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쉬울 따름.

 

 

 

유리공예는 일본 사람들의 취향이 가득 담겨서 매우 앙증맞고 귀여운 녀석들로 가득하다.

아무래도 베네치아쪽의 예술품에 가까운 공예와는 방향이 다르지만, 기념품으로 가져가기에 부담없는 상품이 많아서 한참 시선을 뺏긴다.

 

이런 걸 보고 문득 지갑에 손에 가게 될 때는 마음을 다잡고 욕구를 진정시키며 집에 놔둬도 잘 보지 않는다고 되뇌여야 한다.

실제로 쿄토에서 구입한 꼬리 흔드는 고양이 한 마리면 집안 장식으로는 충분하기 때문에 순간의 귀여움으로 엔화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백만원 단위였던 오르골은 이 정도로 섬세하게 제작되어 있으며 미려한 화음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것도 사실 고급 오르골 축에 들어가지는 못하는데, 구입 가능한 녀석들 중에는 보통 5백만원에서 천만원을 호가하는 녀석들이 있는데다가

사진도 찍지 못하고 음악 감상도 직원에게 직접 문의해야 하는 특별한 녀석은 2억원 정도 하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르골을 구입하려는 마음이 든다면 돈을 좀 모아서라도 조그만 녀석보다는 최소 이 정도를 구입하고 싶긴 하다.

 

 

 

오르골의 개념이 처음 성립된 르네상스 후기의 풍경을 미니어쳐로 만들어 놓은 곳도 사진찍기에 좋다.

단순히 제품 구입만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를 벗어나 오타루의 자랑할만한 문화 공간으로서의 프라이드를 지키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

 

 

 

오르골이란 기계 자체가 미니멀리즘의 추구로 인해 발명된 터라 이런 미니어처의 느낌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역시 세심한 것 좋아하는 일본 답게 미니어처의 수준도 상당하다.

 

17세기 후반부터 사랑을 받은 오르골은 천상의 하모니를 손 안에서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좀 사는 가정에서는 집안 곳곳에서부터 휴대용 소지품에까지 오르골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30~40분 정도밖에 둘러보지 못했지만 마음먹고 천천히 뜯어본다면 오르골에 대해서 전문가가 될 만큼 자료가 풍부한 오르골당.

가벼운 관광이니 너무 깊게 들어갈 일은 없고, 대화도 별로 없이 눈과 귀로만 만끽하며 조용히 건물을 빠져나온다.

 

게살만두를 해치운 후 밖을 나서니 높낮이 감각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살펴보니 거리가 전부 10cm 이상의 눈으로 올라와 있어서 가게들이 전부 반지하처럼 내려가는 형식으로 자연스레 변해있었다.

역시 겨울의 홋카이도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해 준다고 생각.

 

 

 

오르골 거리로 들어가기 전 시내버스터미널에 들어가 잠깐 몸을 녹인다.

Y양 일행은 돌아가기 전 선물을 사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잠깐 둘러본다. 딱히 지금 사봤자 거치장거릴 뿐이지만.

 

오타루 오르골당으로 향하는 도중엔 기념품가게가 지천에 널려있고

본인이 추천하는 르 타오(Le Tao)의 치즈케이크를 맛보기 전에 기념품을 사는 건 매우 후회스러울거라 압박을 가해서

일단 여기서는 그냥 구경만 하는 것으로 행동 종료. 화장실도 다녀오고 준비를 갖춘 후 다시 밖으로 나선다.

 

 

 

오타루 관광지를 움직이는 버스도 많이 보이는데, 예전의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사실 도보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모든 지역을 걸어서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곳이라 버스를 타 본적은 한 번도 없다.

홋카이도는 자전거 여행 당시 한 달 조금 넘게 달리고도 천천히 즐기기엔 너무나 시간이 부족한 곳이라 절감했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느긋하게 둘러볼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곳도 보고싶어서 근질근질하니까.

 

좀 더 여유를 즐길만한 나이를 먹는다면 오타루에서 4~5박 정도 해 가며 마을 곳곳을 누벼볼 때 이 버스를 이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눈이 지천에 쌓여있다 보니 상점 앞에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녀석들이 즐비하다.

위험하니 건드리면 안되지만 기념 사진 정도는 당연히 괜찮을 듯.

 

 

 

바다와 이어져 있는 조그만 개천에는 추위도 안타는지 오리들이 유유자적 헤엄치는 중이다.

뭐 먹을만한 거라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 녀석들 바다로 가서 먹이를 잡기도 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이곳 거리는 먹을 것과 개인 공방, 전국적으로 유명한 체인점과 미술관까지 다양한 즐길거리로 풍부하다.

작정하고 둘러본다면 하루 꼬박으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아기자기한 곳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곳에 오면 항상 다 둘러보지 못해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여행중에는 내려놓아야 할 욕심인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오타루는 유리와 오르골 등 공예품으로 유명해서

그 여파인지 개인 아티스트들이 좀처럼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개성적인 악세사리를 파는 곳도 굉장히 많다.

이런 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높은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

 

 

 

오타루의 관광 코스 중에서 가장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이 많은 눈을 다 치울수는 없기 때문에 여전히 길을 걸을때는 조심해야 한다.

 

빙판길은 아니지만 단단히 굳은 눈길이 울퉁불퉁하게 언덕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많아서

Y양이 슬금슬금 미끄러지곤 한다. 건강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쓰러지진 않았지만 미끌 할때마다 오싹한 기분이 들 듯.

 

 

 

아침부터 그랬지만 아직 겨울 홋카이도 새내기라 그런지 이 변화무쌍한 날씨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몇 번을 눈왔다가 푸르렀다가 반복하는건지 세어보기도 지친다.

물론 그렇다고 눈이 싫다는 건 아니고. 힘들여 온 겨울 홋카이도니 눈이 신나게 내려줘야 오히려 힘이 난다.

 

간간히 이렇게 내려주기 때문에 바닥이 빙판길이 아닌 눈길로 계속 유지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단지 걸어다니는 관광객들과 달리 이곳 주민들은 집 안에서 따뜻하게 살고 있는건지 궁금하다.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일본의 주택집이란게 아무래도 단열능력이 떨어져 보이는 편이니.

 

본토 사람 말을 빌리자면, 홋카이도 사람들은 겨울에 워낙 빵빵하게 난방해놓고 살아서 오히려 추위를 많이 탄다고는 하지만.

 

 

 

전통적이진 않은 짧은 역사지만 이것도 오타루라는 도시의 역사이다 보니, 서양식 석조 건축물도 나름 어색하지 않게 보인다.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테지만 녹슨 창문의 모습까지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니 이곳 사람들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 하다.

 

흥미가 동하는 가게에 들어가서 여러가지 아기자기한 상품들을 구경했지만 전부 사진촬영 불가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오르골쪽은 역시 오르골당이라는 범접하기 어려운 산이 버티고 있어서 가게가 그리 많지 않지만

유리 공예를 비롯한 다양한 기념품들은 과연 저절로 지갑에 손이 가게 만드는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워낙 기념품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만, 보고 있으면 하나 가져갈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게 만드는 것은 참 대단한 능력인 듯.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주인이 젊은 사람인지 메뉴판에 곁들인 그림도 서양틱한 데포르메가 인상적이고

눈을 사용해 상당히 민망해 보이는 눈의 착시를 일으키는 캐릭터를 당당히 입구에 세워 놓았다.

 

예전 삿포로 눈축제에서 인기 코너였던 유루캐러 후낫시의 오타루 버전인 오탓시 인듯 하다.

물론 주인장이 마음대로 이름 붙였음에 틀림없지만 의외로 후낫시의 특징을 잘 살려서 만들었다.

코마츠군을 포함에 많은 관광객들이 이 녀석을 보자마자 바로 후낫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정도였으니까.

 

손에 하트를 들고 있는 후낫시처럼 생겼는데, 뭔가 좀 말하기 민망한 신체 기관과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의도한 것인지 불확정성 원리에 따른 확률의 산물인지 알 수 없지만, 나만 거시기가 연상되는 것인지 뇌 검사를 받아봐야 하는 것일까.

 

 

 

어쨌든 건전한 일행한테는 그런 이야기 꺼낼 생각도 못하고 그냥 넘어간다.

눈이 오려던 하늘은 다시 푸르러지는 기행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눈은 내릴때도 좋지만 하늘이 맑을 때 보는 것도 참 아름답다.

 

눈 터는 것을 포기한 건물들의 지붕에는 겹겹히 쌓여서 삼겹살처럼 되어 버린 거대한 눈더미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배가 고프면 삼겹살처럼 보이겠고, 지적으로 생각하자면 지각 단층의 모습이라 할 수도 있을 듯.

 

여름엔 30도를 훌쩍 넘어버리는 날씨니 이곳 건물들은 피로도가 상당할 듯도 하다. 그만큼 관리를 잘 해야 할 듯.

'허니와 클로버'라는 코믹스에서 홋카이도의 시골 마을의 혹독한 겨울을 참 잘 묘사했는데

이사갈 때는 그냥 짐만 챙겨서 떠나면 겨울에 눈과 바람으로 저절로 무너져 내려서 집터밖에 남지 않는다고.

 

 

 

관광객도 많고, 흥미있어 보이는 가게에 전부 들어갔다가는 오후에 계획한 골목투어에 늦어버릴 것 같아서

슬금슬금 지나가며 눈에 들어오는 건물 전경만 담으며 걸어간다.

 

오타루는 관광으로 유명하지만 꽤나 작은 마을이라 상가 사람들도 뭔가 인간적인 미가 남아있다고 해야 할까.

코마츠군은 상당히 자주 왔었는데, 마을의 따뜻한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든다고 한다.

확실히 가게에 들어가도 긴장하지 않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런 곳이긴 하다.

 

 

도로의 눈과 인도의 눈이 만나서 쌓이다 보니 원래는 평평했을 곳이 굉장히 불규칙하게 올라와 있다.

사실 오타루 걸어다니면서 엉덩방아를 한 번도 안찧은 사람은 일행 중 본인밖에 없었다.

 

이렇게 마주오는 일행과 겹치게 될 때가 큰 문제였는데, 눈 때문에 길이 좁아진 터라 서로 지나갈 때 자칫 평평하지 않은 곳을 밟고 미끄러질 우려가 있기 때문.

다행히도 크게 다치진 않았서 무난히 여행은 계속할 수 있었다.

 

본인은 원래 그렇게 균형감각이 좋지 않지만, 손에 수백만원짜리 카메라 세트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죽을 각오로 넘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여행에서는 느긋함을 즐기는 것도 중요한데, 사실 이곳 오르골 거리는 그런 느긋함을 즐기기에 참 좋은 곳이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도 많고 제대로 된 식사에서부터 가벼운 차와 간식까지 다양한 가게가 즐비하며

거기다 음식 수준도 크게 실망할 부분이 없이 높은 편이라, 구경하다가 춥고 지치면 따뜻한 커피 한 잔 즐기기에 편리하다.

 

홀로 여행이라면 역시 까페에 들어가서 느긋하게 일기 쓰는 시간도 가지겠는데, 일행과 함께 다니면서 그런 사치를 부리기는 미안하다.

일행 덕분에 골목투어라는 모르고 있었던 경험도 즐겨볼 수 있게 되었으니 아쉬울 건 없지만.

 

 

 

전통적이고 단정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이곳 거리의 모습은 여러가지 면에서 참 매력적이다.

서양식 건축양식이 주를 이루고 있음에도 묘하게 일본의 거리라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은 성공적인 교집합이라고 할까.

 

인구 15만명의 작은 마을에 찾아오는 관광객이 연간 800만명에 이르지만, 가장 번화한 이 거리 역시 소형 자동차 두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골목길이다.

아무리 관광이 중요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마을의 정체성이란 녀석을 잘 지켜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Y양 사진을 찍고 있으니 코마츠군이 의아한 표정이다. 사실 일본인들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그냥 가게 간판이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이런 총천연색 간판이 재미있기도 하고, 음식들이 워낙 먹음직스럽게 보여서 이것도 여행의 추억으로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저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정말 뭐라고 팍팍 먹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지만

많이 걸어다녀야 하는 이런 여행에서 점심때 너무 배를 불려버리면 움직이기가 좀 괴롭다.

Y양은 라멘도 그렇고 초밥도 그렇고 일본식 해산물 요리와 별로 식성이 맞지 않는 듯 하니 더더욱 권유하기가 조심스럽기도 하고.

 

 

 

이 간판만큼은 Y양이나 코마츠군이나 감탄하며 사진찍기 바쁘다. 절묘한 네이밍 센스가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

해산물을 얹은 덮밥을 카이센동(海鮮丼)이라고 하는데 이 가게의 이름은 무려 포세이동(ポセイ丼)이다. 잊어버릴수가 없는 멋진 이름.

 

이름만 잘 지은 건 아니고, 실제로도 맛있기로 유명한 가게라고 선전도 대단한데

음식 솜씨와 네이밍 센스가 결합하니 인기가 없을수 없나보다.

 

 

단지 이 가게의 이름이자 주력 카이센동인 '포세이동'이 2100엔이나 해서 나처럼 가난한 여행자에게 쉬운 음식은 아니다.

사진만으로는 정말 입에 침이 고일정도로 맛있어 보이는데, 안타깝지만 이 메뉴는 다음 기회에 정복하기로 하고 사진만 담아놓는다.

 

 

 

상점가의 화려한 모습만큼이나 겨울 홋카이도의 위엄을 제대로 느끼게 해 주는 모습도 압권이다.

건물 사이에 가려졌을때는 제대로 보이질 않아서 뭔가 싶었는데

잘 보이는 곳까지 이동하니 눈사태 방지용 목책 위로 어마어마한 양의 눈더미가 쌓여 있다.

 

저 눈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면 정말 밑의 주택들도 무사하진 못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아슬아슬한 모양이라 안정감이 들지 않는다.

Y양은 처음에 저것들을 사람이 걸어다니는 계단이나 길 쯤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멋진 상상력.

 

 

 

역시나 고풍스럽게 지어진 키타이치 베네치아 미술관.

 

그러고보니 오타루는 여러가지로 베네치아를 벤치마킹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유리공예품이 유명하다든지, 초콜릿 등의 먹거리가 유명하다든지, 바다와 가까워 초기엔 상업항구도시로 시작했다던가.

 

예전에 저곳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화려한 유리 공예품과 실물 크기의 곤돌라 등 베네치아 살짝 맛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좀 흥이 깨지는 경향이 있다.

 

훌륭한 기술이긴 해도 예술적 가치를 평가받은 작품이 아닌 일반적인 공예품 전시장임에도 사진 찍으면 안되는 곳이라

그 정도 배려도 힘든가 싶은 생각이 들어 그다지 흥이 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손글씨를 펜으로 쓰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들어가 보라고 권하고 싶기는 하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끝부분을 만들듯이 미세하게 끊어 낸 통유리 펜을 팔고 있기 때문에.

통짜 유리펜이지만 잉크를 찍으면 굴곡진 부분에 잉크가 고여있어서 일반 펜처럼 사용이 가능한 재미있는 녀석이다.

당연히 그렇게 고급 촉감은 아니지만 기념품으로는 꽤 의미있는 녀석이라고 생각.

 

 

 

동음이의어 등을 이용한 말장난을 일본어로는 다쟈레(ダジャレ)라고 하는데 어째 오타루에는 이런 다쟈레를 이용한 가게가 꽤나 많이 보인다.

외국인에게 설명하기는 좀 귀찮은 항목이라 세계적 관광지 치고는 좀 국소적인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외국인이긴 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무로 만든 공예품점인데 일본어의 관용어구인 '신경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