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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8  2월 11일 오타루 - 거리 여기저기 10
  2. 2014.08.14  2월 11일 오타루 - 널뛰는 날씨 6
  3. 2014.08.05  2월 10일 삿포로 - 스키 점프 8
  4. 2014.07.31  2월 10일 삿포로 - 잠깐동안 다시 홀로 10
  5. 2014.07.17  2월 10일 삿포로 - 눈축제와 비틀즈 12
  6. 2014.07.15  2월 10일 삿포로 - 눈축제 이모저모 8

 

테미야선은 삿포로의 오오도리 공원처럼 오타루의 눈축제 라인인 듯한 느낌이 든다.

규모에서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약간 엉성해 보이는 스노우 캔들의 모습이 오히려 정겨워 보인다.

오타루가 관광으로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삿포로와 비교할만한 곳은 아니니

충분하지 않은 예산으로 관광객들에게 추억을 제공해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느낌.

 

저녁에 꽤 볼만할 듯 한데 Y양과 코마츠군은 느긋하게 즐길 시간이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어떤게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재미있는 모양을 한 스노우 캔들도 있다.

날씨가 꽤 쌀쌀하다보니 속에 양초를 넣어서 불을 붙여도 녹지는 않는가 보다.

지금은 사방이 무채색의 향연이지만 밤엔 분위기가 확 바뀔 듯.

 

 

 

예산과 능력이 부족하다면 역시 남는 건 개성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 뿐이다.

이글루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원형으로 쌓아서 비어있는 공간이 많다. 촛불을 켜면 좋은 느낌이 날 듯하다.

이곳엔 딱히 얼음 조형물 같은 건 없고, 스노우 캔들도 뭔가 아마추어의 미학이 남아있는 듯한 분위기라

이곳 눈축제는 아마도 마을 사람들이 봉사활동으로 열심히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을 해 본다.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언제 또 눈이 흩날릴지 모르니 햇빛을 맞이하는 영국인의 심정으로 날씨 좋을때 사진 팍팍 남긴다.

사진 찍히는 것에 부담이 없는 일행과 여행하는 건 매우 희귀한 경험이니 이것도 이번 여행의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얼핏 보면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어서 불안하지만 날씨가 날씨다 보니 이미 접촉부분이 단단하게 붙어있어 부서지지는 않을 듯.

 

촛불 축제는 역시 저녁부터가 본방이라 아직은 사람이 별로 없다.

이곳은 오타루의 주요 관광지와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원래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아마도 조금 더 이동하기 시작하면 사람으로 바글바글 할테니, 깨끗한 눈을 뽀득뽀득 밟는 즐거움을 누리며 발걸음을 천천히 늦춘다.

 

 

 

나 혼자 거대 카메라를 들고는 있지만 모두 각자의 카메라는 갖고 있기 때문에만 전속 찍사가 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평소 취향대로 일행 사진보다 다른 풍경들 사진을 더 많이 찍으며 돌아다녔기 때문에

Y양과 코마츠군도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는다. 어찌보면 직무 유기를 하는 생각도 들어 좀 미안해 지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서로 사진을 찍다 보면 이런 설정샷도 찍을 수 있어서 나름 재미있기도 하다.

 

 

 

인물사진을 원래 안찍기도 하거니와, 가능하면 카메라를 쳐다보는 사진보다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샷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행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가끔 셔터를 누르고 있다.

 

하지만 실력 탓인지 이렇게 찍은 샷은 당사자들이 본인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나오곤 하는 터라 그다지 좋게 평가받지는 않는다.

본인도 사진 찍히는 거 안좋아하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이런 비설정샷을 찍는 것은 본인의 사악한 성향 때문일까.

 

 

 

다시 중앙 거리로 나온다. 여기서 주욱 내려가면 오타루에서 가장 유명한 운하와 만나게 된다.

실제로 운하가 유명하긴 하지만 구경하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진 않고, 그 근처의 다양한 상점가가 오타루 관광의 주요 코스.

 

오타루는 도시가 만들어진지 100년쯤 되었고, 당시 한창 서양식 건축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라서

중앙 거리에 있는 건물들은 역사학적으로도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녀석들이다.

지금은 호텔이나 부띠끄 등으로 개조되기도 했지만 완공 당시엔 거의 대부분이 은행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 봐도 굉장히 위엄있고 호화스럽게 지어진 건물들은 당시 금융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코마츠군은 오타루라는 마을을 매우 좋아하니, 당연 이런 역사적 건축물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이곳은 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들의 상태도 매우 좋은 편이라, 건축물 매니아들에게는 참 행복한 곳이다.

지금도 사용되고는 있지만 시의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어서 왠지 위엄이 넘친다.

 

 

 

현재는 호텔로 이용되고 있는 건물도 있는데, 내부수리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이런 석조 건물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여건만 된다면 한번 경험해보고픈 일이다. 하긴 프랑스에서 숙박한 경험은 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으니.

 

오타루는 싸고 저렴한 호텔에서부터 운하의 풍경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호텔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하룻밤 머무르기 참 좋은 곳이지만 어째서인지 한 번도 숙박해 본 적은 없다.

 

단순히 상황이 안맞았던 것 뿐이긴 하다. 자전거 여행때는 여름이라 날씨가 좋아서 그냥 노숙하는 바람에.

사실 오늘처럼 저녁에 촛불 구경도 하고 운하의 야경도 구경하고 할 것 같으면 바쁘게 삿포로 돌아갈 필요 없이

이곳에서 머무는 게 더 이득이기도 하지만, 내일 아침부터 이동거리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이곳에 머물면 그 이동시간이 더 길어져 버린다.

 

아직까지는 오타루에서 숙박하지 못하는 점과 이동시간을 줄이려는 판단 중 어느 것이 더 아쉬운지 판단할 수 없는 상황.

 

 

 

멋들어진 외관을 자랑하는 이 비브란트 호텔은 1923년 완공된 오타루의 살아있는 역사 중 하나다.

당연히 예전엔 은행이었지만 지금은 오타루를 대표하는 호텔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사실 몸값 때문인지 가격은 비싸고 조식은 가벼운 빵 뿐이고 객실은 낡았지만, 오타루라는 도시는 그런 것을 즐기는 곳이다 보니 다들 만족하는 분위기.

 

코마츠군이 제안한 오타루 골목 투어의 집합 장소가 이 비브란트 호텔의 로비다.

운하와 오르골 거리를 구경하고 돌아와도 시간은 널널해서, 일단 위치만 기억해둔 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오타루 역에서 이곳 운하까지는 걸어서 15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이곳저곳 느긋하게 둘러보며 오다 보니 꽤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보통은 운하를 보고 나서 옆의 오르골 거리에서부터가 진짜 시간과 지갑을 잡아먹는 곳이니,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느낌.

 

날씨가 매우 화창하진 않지만 눈이 안내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원래부터 작은 운하지만 지금은 관광 용도 이외에는 쓸 만한 거리가 없는 곳이라

이 앞은 항상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매우 많이 보이는데, 이건 요즘 전세계적인 현상일 듯.

 

운하가 시작되는 다리 위에도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한동안 기다리다가 난간 앞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셀카 찍는데 주력하고 있었지만, 본인은 그냥 Y양 사진을 찍어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원래는 관광 용도와 전혀 관계없는 대형 선박의 물자 하적용 운하였는데, 용도 폐기후 그냥 매립해 버리려는 계획이었다고.

시민들이 단체 운동까지 벌여서 1980년대에서야 간신히 관광용으로 전향하기로 하고, 버려진 하적장 등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했다.

지금은 오타루 하면 일단 운하 떠올리고 보게 되었으니, 관광이란 산업이 가져야 하는 미래 예측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할 필요도 없다.

 

 

 

운하 자체는 사진 몇 장 찍으면 별로 볼거리 없지만, 아기자기한 것 좋아하는 일본이들의 노력으로

주변에 다양한 레스토랑, 기념품점, 분위기 있는 까페 등등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느긋한 여행을 즐긴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한 곳이다.

 

물론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몰리는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여유를 만끽하기 힘들지만.

운하 주변엔 호텔도 굉장히 많은데, 여유 있으면 호텔 창가에 앉아서 운하의 밤모습을 구경하는 사치를 누려보고 싶다.

 

자전거 여행때는 밤 11시 쯤에 혼자 터벅터벅 걸어다니며 물결마저 조용했던 운하를 마음껏 감상했는데

조명이나 조경이 그리 대단하진 않지만 역시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 운하의 한적한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운하 시작점 바로 옆에 위치해서 유명한 오타루 운하식당의 위용.

원래 물류창고로 쓰이던 곳을 식당으로 개조했는데, 용도상 내부는 매우 넓지만 여행자들이 가지 마라고 한입을 모아 비추천하는 곳이다.

양 적고 맛은 그럭저럭인 전형적인 관광지 음식점이라서. 그래도 역시 외국에 왔으니 한번쯤은 경험해보자는 생각에 여전히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되긴 했는데, 나와는 달리 일행들은 배가 그리 크지 않은 듯 하다.

제대로 된 식사 한 끼보다는 그냥 다양한 먹거리를 조금씩 먹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이곳은 그냥 밖에서 사진만 찍고 패스.

 

 

 

운하식당 뒤편에 걸린 고드름은 예쁜 레벨을 넘어서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저 밑이 원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인데 자칫 하나 떨어졌다간 호러 영화 한편 찍을 수 있는 상황이 될 법 하다.

그 옆에 치워놓은 눈더미 높이도 여전히 나에게는 놀라움으로 다가오고.

 

 

 

다시 운하식당 정문을 통과해 오르골 거리쪽으로 이동하는데, 전리품처럼 세워놓은 고드름이 놀라워서 코마츠군을 제물삼아 한 장 담아본다.

애초에 내가 서식하던 지역에서는 고르듬이란 것 자체를 별로 볼 기회가 없어서, 손가락만한 녀석이라도 보면 재미있었는데

여기 고드름은 자기 주장이 매우 뚜렷하다. 저런 것이 후두둑 떨어지는 초봄 무렵엔 머리 조심하고 다녀야 할 듯.

 

 

 

일단 제대로 된 식사는 아니더라도 뭔가 먹기는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운하 건너편에 위치한 재미있는 모습의 상가로 이동한다.

 

아주 작고 좁은 골목길 사이에 조그만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위 풍경과 동떨어진 개별적인 구역으로 만들어 진 이 곳은

처음에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한자를 오른쪽에서부터 읽어야 했었다. 데누키 코지(出拔小路)라는 이름.

 

 

 

건물 밖이라는 점이 좀 다르지만, 삿포로의 라면 공화국처럼 옛 오타루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곳.

가게는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골목은 매우 좁다. 사실 관광지역을 벗어나면 여전히 비슷한 곳이 실재하는 홋카이도 지방이라서 큰 임팩트는 없는 편.

 

간판에서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는 해산물 덮밥은 정말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지만

가격이 몇만원인데다가 저거 다 먹었다간 다른 거 먹을 배가 남질 않을거라는 생각에 일행 모두 망설이고 있다.

 

 

 

들어가면 그냥 끝이 보일 정도로 작은 규모인데, 오히려 그 덕분에 옛날 거리라는 느낌을 적절히 살려준다.

코마츠군도 어릴 적부터 자주 왔던 곳이라고.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었던 본토와는 달리 이곳은 원래부터 석조 건물이 많았던 듯.

 

 

 

코마츠군이 애착을 가지고 있는 석상. 저 안경은 원래부터 있던 것인지 누가 걸어놓은 것인지 모르겠는데 잘 어울린다.

왠지 면학에 힘쓰는 학생을 재현한 듯한 느낌. 얼굴이 참 복스럽게 생겼다.

 

 

 

코마츠군이 예전부터 이 석상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본인도 싫지 않은지 사진 찍어달라고 요청.

확실히 탱글탱글한 볼이 닮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단순히 관광 기분으로 온 본인과 달리 코마츠군의 오타루에 대한 감정은 깊고 따뜻할 듯 하다.

 

 

 

본인과 먹거리를 동등하게 섭렵할 정도의 큰 위장을 가진 사람이 별로 많이 않은것도 사실이지만

Y양은 원래 그리 많이 먹지 않는 듯 하고, 일본인인 코마츠군은 당연히 평균적으로 적게 먹을테니 조금 아쉽다.

 

배가 고픈건 아니지만 구경이든 먹거리든 여러가지에 마구 도전해보고 싶은 본인으로서는

자기 욕심만 내세워서 이것저것 먹어볼 수 없는 노릇. 특히 해산물 덮밥 말고는 간단한 점심에 어울리지 않는 기름진 것들이 많아서.

 

홋카이도 전체가 해산물로 유명하기 때문에 저런 덮밥이나 초밥이 유명세를 타는데

본토에서는 의외로 이런 현상에 대해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홋카이도 위도가 높아서 바다가 차다 보니 당연히 회나 초밥에 어울리는 해산물이 많이 올라오긴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운송수단이 발달한 요즘 들어서까지 굳이 홋카이도의 해산물이 신선하고 맛있을 객관적인 이유는 없다는 것.

이쪽에서야 당연히 장사가 되니 그런 홍보를 이어가는 것이겠지만.

 

물론 일행과 함께하는 단란한 여행중이라 이런 쓸데없이 무거운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만 돌리고 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한정판 게살만두라는 것을 파는 조그마한 가게가 보여서

만두 하나 정도라면 부담이 없을거라 생각해 슬쩍 들어가본다. 기온차가 많이 나서 금새 카메라에 서리가 생긴다.

친근하고 씩씩한 아주머니가 부담없이 맞이해 줘서 마음이 놓인다.

 

오타루 축제 기간에만 한정 판매한다는 게살만두는 당연하게도 진짜 게살이 가득 들어있어서

만두피에 슬쩍 스며든 육즙과 함께 베어물면 고소한 게향기가 가득 퍼지는 것이, 추운 겨울날 먹기에 그만인 별미.

 

따뜻한 허브차도 한잔씩 내주시는 아주머니는 코마츠군이 키타미에서 왔다고 하니 '그럼 여기는 전혀 춥지 않겠네' 라고 말씀하신다.

확실히 지도를 펼쳐보면 키타미가 훨씬 더 추운 지역이니 이해가 된다.

 

 

 

따듯한 차 한잔과 게맛살이 아닌 게살만두를 먹어치우고 원기를 회복한 일행은 오르골 거리로 이동.

군것질거리가 많은 오타루지만 뱃속에 하루 들어가는 양은 한계가 있어서

느긋하게 즐기려면 역시 하루 정도는 숙박하면서 둘러보는게 좋은 곳이다.

 

처음엔 얼음덩이를 왜 이렇게 만들어 놨지 싶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간다.

생활의 지혜라고 할까. 양동이 하나로 마요네즈를 만드는 센스는 그냥 지나칠수가 없어서 Y양과 함께 담아본다.

 

 

 

삿포로 눈축제 마지막날이지만 사실 눈축제 구경은 어제로 끝이 났다.

오늘은 Y양 일행과 오타루를 꼬박 하루 즐기기로 한 날. 작은 마을이지만 관광지로는 삿포로만큼이나 유명한 곳이다.

 

Y양 일행은 오늘까지가 휴가였기 때문에 오타루 구경 후 바로 키타미까지 돌아가야 한다.

버스로 5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서 여기까지 짧은 휴가를 즐기러 온 그들에게 경배를.

 

새벽에 일어나 적당히 조식 챙겨먹고 9시 반쯤 삿포로 역으로 향하는데, 오늘 날씨도 상당히 심상찮다.

어제 스키 점프때 쏟아지던 눈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는 중이다.

역 주변을 비롯한 삿포로 주요 도로와 인도에는 열선이 깔려 있어 눈을 잘 치워놨지만 이렇게 꾸준히 내리는 눈에는 속수무책.

 

 

 

겨울 삿포로는 새벽만 되면 탱크같은 제설차들이 밤새도록 제설작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열선이 깔려 있는 곳은 눈이 쌓여도 딱딱하게 얼어붙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가 미끄러지지 않고 달리는 편인데

아무래도 이런 계단에까지 열선을 깔 수는 없었는지, 행복해 보이는 관광객들 앞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다.

 

사람의 끈기와 부지런함이 이루어내는 의지의 승리를 보는 기분이랄까.

사실 이 계단 왼쪽의 뒤덮힌 눈더미도 원래는 계단이다.

 

 

 

Y양을 기다리는 도중 눈이 점점 거세게 내리더니 마침내 하늘을 뒤덮어버릴 만큼 무서운 모습을 보인다.

바람은 또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 고운 눈발이 하늘하늘 내리는 모습임에도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섬뜩해진다.

 

물론 눈을 거의 보지 못하는 지역에 사는 본인이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도 입가에는 피식피식 미소가 흐르고 있다.

이 상태로 계속 내린다면 오타루 관광에 큰 차질이 생기지만 그래도 이런 모습 보는것이 참 흥미롭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는 것은 여행의 본질 중 하나니까.

 

 

 

오타루행 열차 시간표에 맞춰서 넉넉하게 만날 시간을 정해놨기 때문에 바쁘진 않다.

이렇게까지 쏟아붓는 눈 속에서도 열선이 깔린 인도는 멀쩡한 모습이 매우 인상깊다.

 

서울에서도 매년 헛돈 쏟아부어가면서 블럭을 갈아치우는 습관 대신 이 열선을 깔아놓았다면 참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하지만 애초에 한국의 도로는 기초공사가 매우 부실하고 질 낮은 아스팔트를 사용하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울퉁불퉁해지는 터라

열선따위 깔아봤자 얼마 가지 못할거라고 나름의 가설을 세워 본다.

 

 

 

오타루행 기차를 기다리던 도중 옛날 증기기관차 모습을 한 클래식한 열차가 보여서 의아했는데

코마츠군이 눈을 반짝이며 설명해 준다. 오사카에서 삿포로까지 1500km 를 달리는 일본 최장거리 열차 '트와일라잇 익스프레스' 라는 유명한 녀석.

가격이 상당히 비싸고 시간도 하루 꼬박 걸리지만 철도 매니아들의 로망과도 같은 녀석이라고 한다.

 

올해 25년째 달리고 있는 그 열차는 아쉽게도 2015년 봄에 운행을 종료하게 되는데, 평소 열차 여행엔 별로 관심이 없던 본인도

종료 전에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오타루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도 창 밖에는 여전히 눈발이 시야를 방해할만큼 흩날리고 있다.

하지만 겨울 홋카이도라면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라 생각보다 걱정스럽지도 않다. 걱정스러운 건 본인보다 Y양의 체력이 괜찮을까 하는 점.

Y양 일행은 휴가 마지막날이라 밤새 버스를 타고 키타미로 돌아가야 하는데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

본인 입장에서는 아직 파릇파릇한 사람들이라 나보다는 건강하리라 생각하지만.

 

 

 

코마츠군은 이쪽 토박이기도 하고, 홋카이도 중에서 오타루를 가장 좋아하며 여건이 되면 오타루에서 살고 싶다고 할 정도라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향하는 열차에 대해서도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니 지금이 바다가 보이는 장소라며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덕분에 본인도 한 장 건질 수 있었다.

 

새하얀 지면과 두꺼운 구름 사이에서 얼핏 보이는 짙푸른 바다의 조합은 여행의 즐거움을 북돋워 주는 조미료 같은 풍경.

 

 

 

오타루에 도착할 무렵부터 갑자기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아직 살짝 눈발은 날리고 있지만 하늘은 이미 푸르다.

삿포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을지 몰라도 도착할 때가 되어서 맑아지는 오타루의 하늘은, 오늘 여행에 행운이 따르고 있는건가 하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삿포로 눈축제 기간엔 주변 도시들도 대부분 축제를 열기 때문에 어디나 관광객이 넘친다.

인파 속에서 맑아진 하늘을 담으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코마츠군이 오타루 역내 명물이라 설명해 준호롱병들의 사진을 남겨본다.

오타루는 여러가지 공예품으로도 유명한 곳이라 이렇게 유리를 이용한 호롱병을 역에 전시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듯 하다.

 

Y양 일행은 기차로 삿포로에 돌아가서 키타미행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조금 일찍 돌아가야 한다.

본인은 오타루의 밤거리도 산책하고 싶었기 때문에 아마 이곳에서 작별을 나누어야 할 듯 한데

저녁에 보는 호롱병들의 모습은 조금 더 아름다울거라 예상해 본다.

 

 

 

역 밖으로 나오자 그 맑았던 하늘이 또다시 눈으로 뒤덮힌다. 참 변화도 무쌍한 홋카이도의 겨울 하늘.

애초에 자전거 여행 당시 눈이나 비는 신물나도록 맞아봤기도 하고, 머리를 감싸주는 든든한 비니 덕분에 별 관계는 없었지만.

 

오타루 역은 사진 찍으면서도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 곳 역시 서너 번은 와 봤기 때문에 그런가 싶었지만

알고보니 이 역은 도쿄의 우에노 역과 완전히 동일한 모습이라고 한다. 우에노 역은 수십 번 정도 가 봤기 때문에 그렇게 친숙했나 보다.

 

 

 

삿포로 이상으로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오타루지만 사실 관광객이 둘러볼 지역은 꽤나 좁은 곳이다.

걸어서 모든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산책에 안성마춤인 곳이고, 보통 여행의 본거지가 되는 역 앞 호텔들보다

조금만 내려가면 위치한 운하 바로 앞의 호텔들이 훨씬 더 붐비고 비싼 편.

 

역 앞은 그다지 볼거리가 없는 평범한 마을 풍경이지만 쏟아지는 눈 속에서는 일행의 색깔이 더욱 또렷해지기 때문에 사진 찍는 재미도 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일행 덕분에 이곳저곳 사진 찍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아서 좋다.

물론 이 눈속에서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하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좀 미안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걸어가다가 키만큼 쌓여있는 눈더미를 보고 신기해서 한 장 남겨본다. 홋카이도 토박이들에게는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을지도.

 

 


아무래도 눈을 계속 맞아가며 걷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지붕이 설치된 상가거리로 빠져나온다.

 

오타루를 좋아하는 코마츠군은 오늘 오후에 무료 골목투어가 있다는 것도 조사해 와서, 거기에 참가하기로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전까지는 자유시간이나 마찬가지니 경로를 어디로 정해도 문제없다는 뜻.

코마츠군이나 나나 오타루의 관광 코스는 빠삭한 편이니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본격적인 관광지는 아니지만 상가 거리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찻집 모습을 보고 카메라를 올려 든다.

당일치기 관광객이 가지기 힘든 시간과 마음의 여유라는 약점 때문에 벌써부터 들어가서 차 마실 마음은 아니었다.

 

 

 

거리 곳곳에는 이런 모습의 눈덩이들이 많이 솟아나 있어서 뭔가 싶었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저 색색의 얼음덩이 속에는 타오를 준비를 하는 양초들이 놓여있다.

저녁무렵부터 오타루 전체가 아련한 촛불로 잔잔히 물들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개척 전까지는 일본 문화와 별 관계가 없었던 홋카이도지만

어쨌든 본토 사람들이 이주해서 만든 도시다 보니 축제 기간을 맞아 마을 곳곳에 이런 키리에 카루타(切り絵カルタ) 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키리에는 말 그대로 종이를 찢어서 붙여만든 그림이고, 카루타는 그림과 시가 적혀있는 전통 카드를 의미한다.

 

전통 카루타에 홋카이도의 특징을 녹여 만든 그림을 접목시킨 센스는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자국 관광객을 우선시 하는 것을 좋게 보는 편이라 위화감이 없지만, 워낙 외국 관광객이 많이 오는 이곳에 이런 완전 일본식 간판이 놓여있는 건 어떨런지.

 

 

 

세계 최악의 주택이라고 소문난 일본의 빡빡한 거주지지만 본인은 이런 골목 모습이 왠지 마음에 든다.

어릴 적엔 아직 집 주변에 이런 골목이 많이 남아있어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상상력을 자극해 주곤 했다.

사진 찍는 모습을 본 코마츠군이 본인도 이런 모습 좋아한다고 말을 건다. 오후에 신청할 골목길 투어도 이렇게 드러나지 않은 오타루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획이라고.

 

 

 

홋카이도 자체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강력한 자연의 힘 때문인지 낡아보이는 건물이 참 많다.

창문이 눈더미로 덮여버린 모습을 보니 집 안에서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수십 년을 이런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신기하고.

오타루는 도시 전체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느낌이 드는 곳인데, 내 경우엔 이런 자연환경 자체가 사는 재미를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축제는 역시 마을 구성원들이 직접 준비해야 사람의 흔적이 느껴져서 정겨운 법.

관광객이 구입해 갈런지는 조금 의심스러운 신발집 앞에 떡하니 전시해 놓은 거대 장화가 인상적이다.

눈이 많은 지역에서라면 굉장히 든든해 보이는 장화인데, 한국에서 내가 저걸 사용할 일은 없으니.

 

신발집의 아이콘과도 같은 녀석이겠지만 제작하는데 어느 정도의 재료와 자금이 소요되었을지 궁금할 정도다.

 

 

 

길지 않은 상점가를 빠져나오니 왠걸 하늘은 그 쏟아붓던 눈이 다 떨어진건지 새파란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소문으로 익히 알고는 있어도 역시 홋카이도의 겨울 하늘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하늘이 맑아질수록 바닥에 쌓인 눈이 일으키는 반사가 강렬해서 눈을 크게 뜨기가 힘들다.

눈이 많은 곳에서는 고글이나 선글라스가 필수인 것을 알고는 있는데, 사진 찍는데 많이 불편하기 때문에 좀처럼 착용하지 않는 편이다.

이 정도면 아직까지 견딜 순 있을 수준이지만, 아직 일주일이나 남은 여정상 눈을 혹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가방속엔 나침반님에게 받은 고글이 항상 준비중이라 여차할 땐 폼 좀 잡아볼까 싶다.

 

 

 

어지간히 눈구경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라도 겨울 홋카이도의 적설량은 나름 볼만한 거리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데

일년에 하루 이틀 정도밖에 눈구경 하지 못하는 지방 출신인 본인으로서는, 드디어 맑게 갠 하늘아래 빛나는 눈더미들의 모습이 마냥 신기할 뿐이다.

 

곧게 뻗은 길엔 좀 전 상가에서 봤던 모습과 비슷한 눈기둥들 위에 얼음으로 만들어 진 스노우 캔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 모습만 봐도 저녁 이후 이곳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이 간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눈더미 위를 걷는 것도 신기하고, 내 키만큼 쌓아올려진 눈더미도 보물처럼 보인다.

상가 건물을 빠져나온 시점에서 다시 중앙 거리쪽으로 눈길을 걸어가는데, 지금 이 길은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였던 테미야선의 일부 구간이다.

Y양은 여름에 이 곳을 와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들이 걷고 있는 길이 철로 위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애초에 철로가 전혀 보이지 않을만큼 눈이 쌓인 상황 자체를 본 적이 없으니 Y양은 아마 상상력을 펼쳐서 철로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여름에 몇 번이고 와 봤던 본인은 알고 있는만큼 신선함도 줄어든다고 할까, 분명 새로운 모습이긴 한데 머리에 입력된 지식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상태로 와서 놓치는 것들 역시 있는 만큼 여행은 이러나 저러나 많이 가면 갈수록 좋은 것이라는 찬양론에 손을 들어준다.

 

 

 

축제 준비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만들어 놓은 스노우 캔들 위에 또다시 눈이 내리다 보니

이건 뭐 어디까지가 사람이 만든 모형이고 어디까지가 눈이 쌓인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창고처럼 보이는 저 건물은 겨울 지날 때까지 그대로 봉인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고.

눈이 많이 왔다는 점 하나만으로 주변이 모두 신기하게 보이는 홋카이도의 겨울은 참 신기할 따름이다.

반대로 강원도 대설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겨울 홋카이도에 찾아오지는 않을 듯.

 

 

 

여름에 찾아왔을 땐 이런 터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역시 축제 기간을 맞아 과거의 향수를 되살려 놓았다.

터널 안이라 그런지 철로도 살짝은 보인다. Y양은 드디어 여기가 철로라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체감하신 듯 하다.

 

눈으로 만든 터널이라 혹시 이 쨍쨍한 날씨에 무너지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막상 만져보니 망치로 두들겨도 꼼짝도 않을 얼음덩어리.

폐선된지 30년이 되는 철로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 어떻게든 인연을 맺고 있다는 점이 대도시 서식자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다들 박수는 쳐 주는데, DJ 가 혀 굴리며 흥을 돋구는 것에 비해서는 좀 조용하다.

일본인들이 공연이나 행사에서 해당 외국인들에게 그닥 감흥을 주지 못하는게 이 어중간한 호응도 때문이 아닐까.

본인 역시 양손에 카메라 들고 있느라 흥겹게 박수를 치지는 못하지만.

 

추운 겨울밤 이런 경기를 보고 있어도 점프 특성상 가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있어서 오히려 추워지는 듯 하다.

 

 

 

선수들 소개하는 점프가 끝난 후엔 본격적으로 공연이 펼쳐진다.

한 사람 점프하는 것도 조마조마한데 이젠 두셋이서 한꺼번에 점프를 시도한다.

공간 확보는 충분하겠지만 동작이 큰 스키 점프다 보니 사람들의 걱정섞인 환호성이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내일이 눈축제 마지막 날인데, 오타루를 둘러보러 갈 예정이라 실질적인 눈축제 구경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은 이벤트도 여러가지 있지만 사람이 워낙 많아서 별로 구경하고픈 생각도 들지 않는다.

 

조금 조용하게 넘어갈려나 싶었던 삿포로 눈축제는 그나마 마지막 밤에 이런 생기넘치는 이벤트를 볼 수 있어서 다행.

Y양 일행도 같이 보면 좋았겠지만, 한 시간 넘게 열리는 이벤트라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감도를 3200에서 6400까지 올려야 겨우 셔터스피드를 맞출 수 있을 만큼 속도가 빠른 점프라서

결과물은 거의 포기하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셔터를 누르는 연습을 해 본다.

 

점프대 주변에 촛점을 고정시켜 놓고 타이밍 맞춰 찍어본다던가

꼭지점에 도달할 때 즈음에 동체추적으로 선수들을 담아본다던가

점프 후 이쪽으로 이동해 오는 선수들을 패닝샷으로 담아본다던가.

 

선수들의 환한 미소를 보니 감각이 없어져가는 손가락도 그나마 위안을 얻는 느낌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카메라로 잡아내기가 힘든 연출이 이어진다.

시간차를 두고 서너 명이 연속적으로 점프를 하거나, 거의 줄줄이 비엔나처럼 여러명이 단체 점프를 하거나.

 

연사 사진을 합성하거나 동영상을 찍지 않는 이상 이 분위기를 담아내는건 불가능한데

사진 합성도 귀찮고 동영상은 취미 밖이라 그냥 적당적당히 셔터만 누른다.

보통은 열 장 찍어서 아홉 장 정도는 그대로 포스팅하는 편인데

이런 스포츠 계열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백 장 찍어서 서른 장 정도 건지는 편을 선택한다.

 

RAW 촬영만큼은 항상 고집하다 보니 훗날 귀국에서 편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여행 사진을 편집하는 건, 남은 장수가 줄어드는게 아쉬울 정도로 좋아하는 편이라 문제될 것 없다.

 

 

 

전반부가 끝나고 다시 하염없이 눈발을 맞으며 대기하는 시간이 돌아온다.

하지만 선수들 안전을 위해 쉴새없이 바닥을 고르는 요원들의 모습을 보니 불평할 것도 아니다 싶다.

바닥 형태 탓인지 마치 씨 뿌리기 전 밭을 가는 듯한 느낌.

 

 

 

공식 촬영팀은 점프대 꼭대기에서부터 점프대 바로 옆에까지 여러 장비로 무장하고 열심히 촬영중인데

역시 이 밑에도 책임을 맡은 사람이 한 명 있다. 니콘 장비를 사용중인데, 눈발 대책으로 카메라를 꼭꼭 싸매놓은 모습이 인상적.

 

본인 카메라는 니콘보다 더 방진방적이 떨어지는 녀석인데도 신경쓰지 않고 내리는 눈에 노출되어 있다.

망원렌즈는 후드가 길어서 눈이 렌즈 표면에 묻을 일도 별로 없어서 그냥 되는대로 내버려 두는데

자신의 기계에 애정을 갖고 있다면 좀 더 소중히 다루어 줘야 함에도, 카메라는 그냥 도구일 뿐이지 하면서 팽개치는 성격이라.

 

 

 

다리도 뻐근하고 볼과 손가락은 얼어붙었고, 이만큼 봤으니 이제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고생해서 날아온 눈축제 현장에서 즐기는 유일한 이벤트이다 보니 왠지 아쉽다는 생각에 끝까지 서 있기로 한다.

 

한밤중같지만 아직 한국사람에게는 초저녁 시간이라, 돌아가봤자 별로 할 일도 없으니.

 

스키 점프는 그냥 점프 모습 그대로 날아서 죽지 않고 착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할 따름인데

몸을 비틀어가면서 휙휙 날아가는 모습이 조마조마한 기분마저 들게 만든다.

점프대를 벗어나는 순간은 마치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거인이 사람들을 집어던지는 듯한 움직임이 연상된다.

 

 

 

일년에 눈이 일주일도 올까말까 한 지역에서 살아왔기 때문인지

이렇게 휙휙 날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눈과 당연스럽게 뒹굴며 자라온 사람들일 터.

눈이라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는 나에게는 왠지 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종이라는 사실이 어색하기도 하다.

 

 

 

몇 초간의 스릴을 즐기는 운동이니 본인이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자전거 타고 몇일 몇달이고 앞에 펼쳐진 길을 달리던 그 때의 감정과 기본적으로 비슷한 녀석이 아닌가 싶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사람은 어떤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지루해서 죽어버리는 생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성공이든 자식 잘 키우기든 스키 점프든 여행중독이든, 뭐라도 자신을 쏟아부을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니까.

 

점프해서 착지하는 2~3초 남짓한 이 순간이 저 선수들에게는 인생의 가장 큰 부분으로 남지 않을런지.

 

 

 

점프가 막바지에 이르자 내용도 점점 과격해진다. 거의 모든 선수가 1~2초 간격으로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은 장관.

처음엔 염통이 쫄깃해지는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이 정도 되니 저 선수들이 느끼는 흥분과 쾌감이 어떤 것인지 살짝 공감이 가기도 한다.

 

 

 

익스트림 스포츠에는 한계가 없어서, 점점 몰입하다보면 거의 정신줄을 놓아야 할 정도의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딱히 별종이라고 비난할 필요도 없는 듯 느껴지는 이유는 점프를 끝낸 직후 보여주는 저 시원한 미소 덕분이 아닌가 싶다.

 

뭔가를 해내는 순간 뇌속 신호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안면 근육이 본능적으로 만들어내는 달성감의 미소는

저 사람들이 이 짓(?)을 그만둘 수 없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익스트림 스포츠의 순간적인 쾌감이 얼마나 강렬한지는 체험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본인은 조금 더 느긋하고 지속적인 면을 추구하긴 해도 그 방향성이 동일하다 보니 은근히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숙소 잡아놓고 편안히 왔다갔다 하는 여행은 사실 조금 미지근하긴 하지만

이 사람들의 2~3초를 나는 하루 단위로 끊어가며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한참 그런 여행을 해 보지 못해서 그 반동으로 평범한 여행이라도 자주 나가게 되었는데

역시 너무 많이 참는 건 몸에 좋지 않을 듯 하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나가재껴도 아직 부족하냐는 말이 나오겠지만.

 

 

 

어리긴 해도 숙련된 선수들이니 다행히 사고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DJ의 소개를 들어보니 가장 어린 선수가 13살 정도, 최고령 선수가 마흔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어린 선수의 경우엔 어쩌면 올림픽을 누빌 수 있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서 롤러코스터만 타도 심장이 오그라드는데, 이렇게 새처럼 날아오를 때의 쾌감은 과연 어떤 것일런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저 순간만큼은 세상에 오직 자기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정말 새라도 된 것처럼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일단 다리가 저렇게까지 찢어지는 데에서부터 감탄해야 하는 본인이 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초보인 본인 눈으로 보자면 스키 점프 자체는 거의 다른 세계의 기술처럼 보여서 멍하니 구경만 하는 느낌이라면

스틱도 사용하지 않고 관객들 앞을 스르르 미끄러지며 환호에 보답하는 모습이 실질적으로 놀라움을 준다.

넘어지지 않고 전진하기도 힘든 스키를 저렇게 몸의 일부분처럼 타고 있는게 참 신기하다.

 

 

 

 

후반부 점프는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선수 전원이 연속으로 펄떡펄떡 뛰는 고난이도 장면을 보여준다.

그냥 와르르 쏟아지는 것 같지만 앞 선수와의 거리 조절이 잘못되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점프라 굉장히 신중하게 간격을 둔다.

 

앞선 선수가 착지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텐데, 이런 이벤트에 참가할 정도의 실력자들이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활강 점프에 비한다면야 별 것 아닌 속도지만, 그래도 수십 km 는 가뿐히 넘어가는 점프를 성공시킨 사람들의 쾌감은 말로 전달하기 힘들 듯.

멋지게 착지 성공하고 나서 바로 눈 앞에 서 있는 관객들이 셔터 세례와 함께 박수를 쳐 주는 모습을 보는 것도 뿌듯하지 않을 리가 없다.

 

 

 

가장 왼쪽 선수가 아마도 이번 이벤트 최연소 출장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된 점프에서도 한 번의 사고 없이 웃는 얼굴을 보여주니 추운 겨울밤도 조금은 훈훈해 지는 느낌.

사실 초반 점프에서 착지가 살짝 불안했던 선수가 있었지만 넘어진 정도는 아니고 약간 주저앉은 수준이라 몸에는 이상이 없었다.

 

대회가 끝나갈수록 눈발을 더욱 거세지고 있다. 

평소같으면 불평이라도 터져나올듯한 매서운 눈보라지만 축제에 몸을 맡기고 있는 지금은 아무리 퍼부어도 모자라지 않다.

이것도 부르주아틱하게 말하자면 돌아갈 호텔이 있음에서 비롯되는 자만감이지만. 자전거 여행때는 이런 날이 정말 지옥과도 같다.

 

 

 

대망의 마지막 점프는 사실 이제까지의 점프 중 가장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다.

모든 참가자들이 몇 초 정도의 간격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응원이 미지근한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마지막 점프가 되니 관객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마지막 선수의 점프까지 계속 박수를 이어가 준다.

 

폭설에 가까운 눈으로 결코 쉽지는 않을 점프였겠지만 훌륭히 멋진 모습을 보여 준 선수들에게 던지는 박수소리를 끝으로 이벤트가 끝이 난다.

 

 

 

사실상 눈축제의 마지막 밤을 후련한 퍼포먼스로 만족시키고 난 후, 폭설 속을 뚫고 삿포로 역으로 걸어간다.

코가 얼어서 맛이 느껴질런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축제를 즐겼으니 맛있는 저녁이라도 먹어볼까 싶다.

어제는 피곤해서 저녁에 편의점 도시락 하나 까먹고 잤기 때문에 뭔가 아쉬운 기분이 남아있다.

 

스스키노쪽에 먹거리가 많긴 하지만 이동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아서 숙소 근처의 삿포로역으로 향한다.

역 내부는 가격이 좀 세긴 해도 한국과 달리 꽤나 먹을만한 것들이 많다.

 

 

 

홋카이도의 소울 푸드라는 징기스칸은 어차피 마지막날 먹을 계획을 세워놨기 때문에

식당가로 올라가서 뭘 먹어볼까 두리번거린 끝에 그다지 비싸지 않은 양식집으로 들어간다.

삿포로 클래식 생맥주 한 잔과 함께 미디엄 레어로 일본식 스테이크 하나 주문.

 

축제 기간이긴 하지만 역내 음식점이다 보니 슈트 차림의 샐러리맨들이 모여서 뭐라뭐라 떠들기도 한다.

대충 나하고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젊은 샐러리맨 둘이 맥주 마시면서 한국 시장이 어쩌고 하는 말을 진지하게 나누고 있는 중.

 

양은 좀 작지만 스테이크 품질은 매우 훌륭하다. 미국식 정통 스테이크와는 달리 씹히는 맛이 강한 한국 숯불구이 같은 느낌이랄까.

술을 즐기지 않는 본인이지만 삿포로에 와서 맥주 안 마시기는 좀 그랬는데, 스테이크가 맛있으니 술도 그럭저럭 들어간다.

 

물론 맥주 반 잔만 마셔도 온 몸이 신호등처럼 새빨개지기 때문에 마시고 나면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냥 앉아있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당연히 취하지는 않아서 느긋하게 스테이크의 육질을 음미하며 수첩을 꺼내 밀린 일기를 쓴다.

 

 

 

맥주 탓에 얼어붙었던 몸도 금새 녹았고, 한 시간 가량 식사와 일기를 즐기고 숙소로 돌아간다.

8시만 되어도 술집과 파칭코 가게 외에는 거의 조용해지는 분위기라서, 조금 전 그 뜨거웠던 스키 점프가 한 줌의 꿈처럼 느껴지는 고요함.

 

삿포로가 워낙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다 보니 보통 외곽에 많이 위치한 대형 파칭코 가게가 역 주변에도 참 많이 포진해 있다.

파칭코를 좋아하는 타입이었다면 취기도 올라왔겠다 시원하게 한 판 땡기고 가겠는데, 돈이 아까워서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오늘 밤까지 실컷 내리고 오타루에서는 맑은 하늘이 맞이해주길 바라며 숙소 골목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옮긴다.

 

LP의 부드러운 음색에 취해 한동안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슬슬 밖으로 나간다.

Y양과 코마츠군은 저녁에 식사 약속이 있다고 해서 너무 늦기전에 전철을 타야 한다.

내일은 오타루를 둘러볼 예정이라고 하는데 괜찮으면 함께 가잔다. 나 역시 내일은 오타루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동의.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고 날씨도 더욱 쌀쌀해진다.

삿포로의 날씨가 서울과 비교해서 그리 추운편은 아니라지만 눈이 워낙 많이오기 때문에 밤이 되면 체감적으로 더 추운 느낌이다.

 

관광객이 워낙 많은 눈축제장이라 가능하면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장을 한 바퀴 돌수 있도록 요원들이 지도를 하고 있다.

인파가 역방향으로 엉켜버리면 워낙 난잡해질 가능성이 있어서. 그래서 일단 Y양과 코마츠군은 전철 타는 곳까지 걸어가며 못 본 전시물들을 구경하기로 한다.

일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울트라맨. 이것 외에도 고지라 등 50~60년 전의 캐릭터들이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부럽기 그지없다.

 

 

 

곰이 서 있어서 혹시 쿠마모토의 마스코트인 쿠마몬인가 싶었는데

옆에 TV타워로 보이는 건물과 함께 곰 가슴에 홋카이도 지도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쿠마모토와 홋카이도의 합작품인가 싶기도 하다.

홋카이도는 이주 역사가 짧은 만큼 그 반작용으로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저 지도는 여러가지로 많이 쓰이곤 하는데, 삿포로 맥주정원의 명물인 무한 징기스칸의 불판도 홋카이도의 지도모양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역시 알아보기 힘든 일본 지역 캐릭터보다 이런 세계적인 캐릭터들이 이해하기 쉽다.

일부러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쪽에 눈이 쌓여서 마치 머리카락 자란 푸우처럼 보이는게 재미있다.

 

 

 

호빵맨에 나오는 세균맨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뭔가 얼굴이 심각하게 무서워서 인상적.

호빵맨은 참 순수한 얼굴밖에 나오지 않지만 어른들의 장난으로 여러가지 무서운 바리에이션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터널을 통과하는 하행 신칸센.

현재 홋카이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로, 도쿄에서 삿포로까지 신칸센 철로를 만드는 공사가 2015년 완공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탓에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이 녀석이 완공되면 도쿄에서 삿포로까지 4시간에 이동이 가능해진다.

 

옆의 설명 간판에는 사용할 수 있는 IC 카드까지 설명해놓는 살짝 개그스러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것도 뭔가의 마스코트인 듯 한데 알 수가 없다. 코마츠군에게 계속 물어보기도 미안하고.

스키를 신고 있는걸로 봐서 동계올림픽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홋카이도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던 곳. 당연히 캐릭터의 인지도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스마트기기의 보급과 함께 터진 첫 번째 대박 앵그리버드의 주인공.

인기작이라 그런지 특징 묘사도 꽤나 잘 되어있어서 아는 사람은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제작팀 쪽에서 일부러 넣은건지 군데군데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도 재미있다.

 

 

 

축제에 대한 일본인의 꼼꼼한 준비성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자판기 스킨마저도 축제 캐릭터를 집어넣는 모습은 한국에서도 배워갈 만한 점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이런 걸로 매상의 변동에 큰 영향은 없겠지만, 본인처럼 소소한 부분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아닐런지.

 

 

 

회장 중간부분엔 세계 각국의 팀이 출품하는 국제 눈조각 콩쿠르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 팀도 분명 출전했을거라 생각해서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이 작품이 올해 콩쿠르 우승작이라고 한다.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설명문을 보니 금새 이해가 간다. 하나되는 세계를 형상화한 작품.

 

 

 

워낙 일본이라는 나라가 공동체의식을 중요시하기도 하고, 세계인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을 앞둔 시기이도 하고

특히 지금 일본은 협동과 협력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보니 한국팀이 시류를 잘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출품작들에 비해 모던 아트적인 느낌도 들고, 자세히 뜯어보니 우승 먹을만 하겠다는 생각.

 

 

 

조형의 퀄리티는 다른 국가 팀들의 작품도 결코 떨어지지 않지만, 주제 표현이라는 면에서는 확실히 한국팀이 뛰어나다.

물론 이 눈조각 콩쿠르라는 것이 피말리게 경쟁해서 우승을 거머쥐는 그런 대회가 아니라서.

 

 

 

저녁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Y양 일행은 이제 돌아가는 중이니 그렇다치고 본인은 좀 더 눈축제를 구경하려고 생각중인데.

바로 돌아가기에는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니지만 추운 날씨에 무리하는건 앞으로의 여행에 지장을 줄 지도 모르니 신중해야 할 듯.

 

어둑어둑해지니 좀 전까지 새하얀 자태를 자랑하던 퐁키 키즈의 거대한 조각상이 고운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낮에 새햐안 눈색을 만끽하고 저녁에 화려한 조명빨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눈축제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여기저기서 대인기인 후낫시. 확실히 일본에서 인기몰이중인듯, 관광객 중에 '후낫시다~' 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꽤 많다.

코마츠군도 후낫시를 매우 좋아하는지 싱글벙글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러고보니 코마츠군에게도 뭔가 선물을 줬었어야 하지 않았다 싶다.

Y양은 한국에서 타지까지 와서 고생한다고 과자라도 하나 사드렸는데, 코마츠군은 토박이라는 생각에 선물 생각을 깜빡 한 듯 하다.

 

 

 

일행 셋이 전부 사진찍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서, 이동 속도 맞추기가 쉬운 점이 참 마음 편하다.

사진에 관심없는 일행이라면 어쨌든 찍는 입장에서 시간을 잡아먹는 모습이 되기 때문에 조금 미안한 기분도 드는데.

 

낮과 밤의 이미지가 이렇게 달라지면 어쩐지 이득보는 기분이 된다.

 

 

 

무려 자위대 삿포로지부 마스코트인 모코가 회장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홋카이도 토박이인 코마츠군이 설명해 준다.

자위대는 당연히 모병제이다 보니 항상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홍보에도 열을 올리는 중이다.

군대라고 해서 마스코트를 딱딱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컨셉으로 나온 듯한 느낌.

 

 

 

밤이 되면 밤을 이용한 즐길거리가 등장한다. 단순히 불만 켜 놓는 것 보다 훨씬 좋은 아이디어.

저 멀리서 레이저로 바닥에 캐릭터 그림을 비춰주니 아이들이 재밌어하며 달려든다. 이럴 때는 물론 좋은 셔터찬스.

저작권(?) 문제로 가능하면 얼굴이 나오지 않게 소심하게 찍는다. 어디서 아이 부모가 달려와 카메라를 내던지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며.

 

 

 

거대한 전시물들은 오히려 밤이 되니 그 위용을 드러내는 듯 하다. 주위의 어둠과 대비되어 명암도 확실해지고 웅장함이 더해진다.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 낮보다 사람이 훨씬 많은 듯 하다. 역시 축제는 저녁부터가 본편인 것인가.

 

이러나저러나 날씨도 매우 춥고 조명이 9시 정도까지밖에 켜지지 않기 때문에,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초저녁 기분밖에 나지 않지만.

Y양이나 코마츠군이 저녁약속 없고 술이나 펍의 분위기를 즐기는 타입이었다면 늦은 밤까지 술안주를 즐겼을 테지만

두 사람 모두 나와는 다른 매우 착실한 생활을 하고 있는 분위기라서 살짝 아쉽긴 했다.

 

 

 

말레이시아 가게에서는 현란한 반죽돌리기를 시연하고 있다.

피자 도우 돌리는것과 비슷하긴 한데 좀 더 유연성이 있어서 움직임이 비규칙적이라 더욱 생동감이 느껴진다.

 

겨울 삿포로 축제장에서 말레이시아 사람이 그것도 무려 반팔로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더 놀라웠지만.

음식 만드는 부스 내부는 어디든 춥기보다는 덥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데, 실제로 보면 또 그게 금방 이해되기는 어렵다.

열정을 봐서 하나 사먹어 주고 싶기는 했지만 Y양 일행은 이제 저녁먹으로 가는 중이고

본인 역시 홀로 저녁이지만 괜찮은 녀석 먹고 싶어서 배를 비우는 중이라 군것질은 힘들다.

 

 

 

오오도리 중앙에 도착해 Y양과 코마츠군은 전철을 탄다. 눈축제 기간이라도 삿포로는 돌아가고 있으니 저녁시간대의 인파는 대단하다.

혼잡한 개찰구에서 내일 삿포로역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초면 일행들과의 관광이라서 좀 긴장한 탓인지, 큰일 하나 끝내고 홀가분한 기분도 없지 않다.

물론 눈축제 같은 행사는 혼자서 묵묵히 걸어다니며 사진찍어봤자 별로 재미있지 않으니 일행이 생긴 건 나에게 참 좋은 이벤트였긴 하다.

 

6시도 되지않은 시간이라 어둑어둑한 하늘과 달리 이대로 돌아가기엔 많이 아쉽다.

형형색색의 대만측 얼음궁전을 감상하며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잠시 생각해 본다.

 

 

 

인파가 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몰리고 있는데, 주변에서 확성기를 든 사람들이 스키 점프를 위해 이동을 서둘러 달라는 소리를 지른다.

아마도 어젯밤 텅 비었던 그 점프대에서 오늘도 이벤트가 일어나는 모양이라 마침 잘 됐다 싶어서 슬금슬금 걸어간다.

 

점프 구경은 아마도 자리를 한번 잡으면 꼼짝도 못하고 있어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이 추운 날씨에 Y양 일행과 보려고 했다면 괜히 극기훈련 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해 질 수도 있었을 듯.

 

점프 이벤트는 6시에 시작하는데, 다행이 조금 이른 시간이라 무난하게 펜스 바로 앞에 설 수 있었다.

10여분 전부터는 뒤로 빠져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진행요원들은 이동하는 사람들 방해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한다.

 

 

나름 괜찮은 장소다 싶었는데 사람이 가득 들어차고 나니 방송이 나온다.

오늘 점프는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한다고. 라인의 상태도 전혀 다른걸 봐서 아무래도 점프도 종목이 따로 있는가보다.

 

왼쪽에 자리를 잡은 탓에 생각한 것보다 시야가 확 트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찍 온 것은 다행.

늦었으면 사진 대부분의 하단부엔 시커먼 뒷통수가 난립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을테니까.

 

 

 

망원으로 갈아끼우고 눈 펑펑 쏟아지는 저녁에 서 있으니 팔은 뻐근하고 다리는 욱신거린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망원을 통해 보는 게 훨씬 잘 보이니 계속 주시중인데, 준비하는 선수들이 굉장히 어려보인다.

저 위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다리에 힘이 쏙 빠질것 같은 높인데다가 거기서 수십 km의 속도로 점프를 하다니.

 

스피드를 즐기는 운동은 별로 하지 않는 본인으로서는 섬뜩하기만 하다. 부디 실패하는 일은 없기를.

 

 

 

타이밍 좋게도 점프가 시작할 즈음부터 내리는 눈이 더욱 거세진다.

이 정도로 눈내리는 상황에서 사진을 찍는 경험은 처음이라 좋은 연습이 되리라 생각.

 

사실 이번 여행중 눈이 이 정도로 내리기를 바라는 날이 딱 하루 있다.

토카치(十勝) 지방의 독특한 경마인 반에이 경마는 자이언트급의 거대 경주마들이 속도보다 파워를 겨루는 경기인데

원래 겨울경기에 특화된 녀석들이라, 내가 가는 날짜에 눈이 펑펑 내려주면 좋은 사진이 나올 것 같아서 기대중이다.

안내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운이 좋으면 이번 폭설이 그 날 촬영의 시험촬영 쯤 될 수 있을테니 나쁘지 않다.

 

 

 

풀프레임 망원렌즈는 베낭여행에 가져가기엔 참 크고 무거운 녀석이라 여간 귀찮은게 아닌데

그래도 다가갈 수 없는 지역의 모습을 찍을 일이 많은 경우엔 항상 믿음직하게 사진을 뽑아주기 때문에 내치고 갈 수가 없다.

 

살짝 억지스럽게 악을 쓰고 있지만, 촬영의 편의를 위해 손가락쪽은 드러난 손목 보온대만 차고 있어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망원렌즈를 물린 풀프레임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극기훈련하는 느낌이 든다.

겨울 홋카이도의 위력이란 걸 실감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이번 여행은 주욱 이 차림으로 갈 생각인데

고작 삿포로 정도에서 고생한다면 앞으로가 험난할거라 생각해 어찌어찌 참아보려고 노력중.

 

 

 

어쨌든 실수하면 생명마저도 위험한 점프이다 보니 안전관리에는 각별히 신경 쓰는 느낌이다.

몇 안되는 인원들이 정말 땀흘리며 열심히 필드를 고르고 있다.

 

왼쪽 점프대는 매끈하게 닦여져 있는데, 오늘 점프하는 오른쪽은 눈이 굉장히 울퉁불퉁하게 쌓여 있어서

아마도 점프의 종류에 따라 지면의 상태도 달라야 하는 것인가 싶다.

 

 

 

30여분간의 기다림 끝에 DJ 같은 사회자의 신명나는 목소리와 함께 이벤트가 시작된다.

한국과 달리 이런 쪽에서는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일본 사람들의 특성상, DJ 가 흥을 띄우려 노력해도 신사적인 박수 외에는 꽤나 조용한 편.

선술집에서는 누가누가 소리 잘 지르나 싶을 정도로 웃고 떠드는 일본 사람이지만 이런 곳에선 왠지 사회적인 분위기에 신경을 쓰나 보다.

 

가볍게 한 사람씩 점프가 시작되는데

조명이 있다고는 해도 이런 캄캄한 밤에 조리개값 어두운 망원렌즈로 질주하는 스키어들을 잡아낸다는 게 보통 힘든일이 아니다.

내 카메라가 동체추적에 특화된 모델도 아니라 일단 평소 습관대로 싱글 AF 에다가 연사만 걸어놓고 타이밍을 노려서 찍어본다.

 

아주 구닥다리 카메라는 아니라서 다행히도 3장 중 1장은 그럭저럭 건질 만한 녀석이 나온다. 감도를 3200 에서 6400 까지 올려야 겨우 셔터스피드가 확보되긴 하지만.

 

 

 

이번 이벤트는 누가누가 멀리 날아가는가가 아니라 익스트림처럼 멋진 동작을 보여주는 쪽으로 진행되는 듯 하다.

점프대 자체의 높이도 아찔한데 그걸 몸을 꼬면서 날아가는 스키어들의 모습을 보니 거의 서커스 보는 느낌.

 

홋카이도에서는 친숙한 겨울스포츠지만 관객들 사이에서도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선수들의 연령대는 대학생이나 사회인도 있지만 상당수가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라 놀라울 따름이다.

 

 

 

전부 개성있는 포즈라 점프 위치만 같을 뿐이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어떤 식으로 몸을 움직이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거의 패닝샷에 가깝게 카메라를 움직여가며 촬영할 수 밖에 없는데, 다행히도 촛점이 잡히기만 하면 대충 찍을 순 있다.

 

컴팩트 카메라 들고 온 사람들은 거의 동영상 촬영용으로 쓰고 있는 분위기.

맛폰 촬영탓인지 여기저기서 번쩍거리기는 하는데, 이 거리에서 플래시 터져봤자 별 의미가 없다.

휙휙 날아올라서 사뿐하게 착지하는 인간같지 않는 모습에 감탄하면서 눈을 뷰파인더에서 뗐다 붙였다 한다.

사진만 담으면 실제로 보는 재미가 줄어들기 때문에 둘 다 놓치지 않기가 참 피곤하지만, 집중해서 다음 선수들의 점프를 주시해 본다.

 

 

 

무엇에 대한 마스코트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일 종류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원래는 매끈하게 다듬어 완성한 녀석인 듯 한데, 축제 도중에도 계속 눈이 오고 그게 그대로 굳어버리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표면이 되어버렸다. 나름 아침마다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겨울 삿포로의 눈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여름엔 맥주 축제로 가득한 광장이지만 이번엔 뭣 때문인지 텅 비워 놓았다.

광장 안쪽엔 보통 거대 조형물들을 전시하는데, 전혀 그런 흔적이 없는 걸 봐서 그냥 놀리고 있거나 뭔가 이벤트가 있거나 했을 듯.

 

 

 

그다지 섬세한 디테일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건물을 표현한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어딘가의 랜드마크인 듯 한데, 어쩐지 다른 조형들보다 좀 더 험해진 분위기.

 

 

 

삿포로 시계탑 상층부를 재현한 것 같은데, 완성도는 둘째치고 시계 표현이 절묘해서 웃음이 나왔다.

의도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삼각형 귀 같은 것이 살짝 삐져나와 있는 걸로 봐서 고양이일려나.

 

첫 인상은 시계탑 같았지만 사실 구조가 너무 달라서 무엇을 나타낸 것인지는 영원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참 힘들었던 조각상. 가슴에 끼운 저것이 무엇인가 하고.

Y 양과 이야기를 해 본 결과 유방암 등으로 한쪽 가슴을 절개한 사람들에 대한 도움의 뜻을 담고 있는 조각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온다.

 

 

 

얼굴은 그닥 닮지 않았지만 레게머리와 기타, 이 두 가지만 만들어 놓으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문득 이 추운 삿포로의 겨울 속에서도 No Woman, No Cry 의 선율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영원한 우상 도라에몽도 이 자리에 빠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아동용 캐릭터들을 생산해내는 일본에서도 꾸준히 도라에몽에게만 열광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대중성을 갖춘 몇 안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일 듯.

 

가끔 어른이 되어서도 뭐든 튀어나오는 4차원 주머니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아니, 사실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갖고싶어 할 것이다.

 

 

 

다른 캐릭터는 몰라도 이것만은 보는 즉시 정체를 이해할 수 있다.

친절하게도 이마에다가 자기 주장까지 하고 있으니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다.

 

눈과 쌀 모두 흰색이니 소재 선정이 참 적절하게 느껴진다. 흰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저 푹 파인 부분까지.

집에서는 현미를 먹은지 30년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저렇게 씨눈이 깎여나간 모습을 보는 게 힘들긴 하지만.

한국은 건강열풍으로 현미 잡곡밥을 먹는 집에 매우 늘어난 것을 느끼지만

일본은 아직 그렇게까지 현미에 익숙하지 않은지, 일본서 현미를 먹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눈썰미 좋은 사람은 이게 삿포로 도착해서부터 보이는 그 하츠네 미쿠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테고

더욱 더 눈썰미 좋은 사람은 이제껏 보던 미쿠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뭔가 우락부락한 느낌이 드는 이 녀석의 이름은 '미쿠다요'(ミクダヨー) 인데, 사실 이름이랄 것도 없다.

미쿠 리듬게임이 나오던 당시 게임회사에서 홍보용으로 사용한 사람크기용 인형탈이 그 원조였는데

실제 사람이 들어가서 움직이는 탓에 그 거대하고 육중한 몸매, 왠지 불룩해진 볼살, 썩은 동태눈 같은 눈동자 처리가 묘한 시너지를 일으켜서

순식간에 공포의 대상으로 격상되고 만 기묘한 사연을 갖고 있다.

 

 

 

설명해도 실물을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드니 무서운 미쿠다요의 모습을 공개해 본다.

 

 

 

지나가던 행인을 무참히 벽쪽으로 몰아넣고 위협을 가하는 모습.

 

 

 

아침방송에 나와서 난동을 부리는 모습. 참고로 얻어맞고 날아가는 캐릭터는 지난 포스팅에 출현했던 후낫시.

 

 

 

그러니까 홍보용 인형탈을 만든 게임 회사는 과연 이게 귀엽고 깜찍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덕분에 오리지날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인기를 얻게 된 이 녀석은 피규어까지 발매되는 기염을 토하곤 했다.

물론 피규어가 저 정도 크기는 아니다.

 

 

 

눈축제라고 기합 잔뜩 넣을 필요는 없다 보니 가끔 기묘한 조각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서양쪽 관광객들이 보면 이게 뭐라고 생각할런지. 그런데 용캐도 저런 구조로 서 있다.

 

사실 눈은 눈이지만 만져보면 거의 얼음과 동일한 수준의 돌덩이다 보니 이런 포즈로도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가 보다.

 

 

 

올해 출품작들은 유난히 유루캐러가 많은 느낌이 든다. 일본은 매년마다 이상할 정도로 확 하고 유행하는 것들이 있다.

 

자전거 여행하던 2010년도에는 '먹는 라유'라고 하는 녀석이 대유행을 타고 있었는데, 라유(ラー油)란 중국집에서 흔히 보이는 고추기름을 말한다.

이걸 일본에서 각종 양념을 추가해 밥 위에 뿌려먹는 양념간장 같은 느낌으로 개발했는데 그게 대히트를 치면서 너도나도 밥 위에 뿌려먹었던 것.

 

한국에서 어린이들 간식으로 가끔 사용하는 뿌려먹는 가루가 일본에서는 후리카케라는 이름으로 매우 대중적인 반찬이라

이런 식의 먹는 라유라는 상품도 히트를 친 것이겠지만, 막상 한국인 입장에서는 먹어보니 굳이 이렇게 먹는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해질 뿐이었다.

 

유루캐러는 일정 이상의 엽기성(?)과 친근함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지역사회의 마스코트 캐릭터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서

어떻게 해서든 지역 홍보에 힘을 쓰고 있는 지방으로서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자원이기도 하다.

 

 

 

오오도리 공원은 TV 타워에서 시작해서 이 삿포로 자료관에서 끝난다.

많이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쌀쌀한 날씨 속을 계속 걸어다니니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데

자료관까지 왔으니 여기 들어가서 몸이나 녹이자는 의견에 합의를 본다.

 

1926년 완공 당시에는 고등법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인데, 지금은 삿포로 시의 향토 자료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고 나니 안내판에는 매주 월요일 휴무라고 적혀있어서 잠깐 맥이 빠진다.

 

하지만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을 그냥 그런 안내판 하나로 다시 내몰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고맙게도 축제 기간도중에는 2층에서 턴테이블로 LP 를 감상할 수 있다고 적어 놓았다.

삿포로 시내에 위치한 한 LP 전문점에서 출장나와서 음악을 들어주는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

 

눈으로 뒤덮힌 1920년대 건물 안에서 LP 음악을 듣는 체험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체험이다.

더군다나 자발적으로 턴테이블과 LP 를 가지고 와 재생해 주는 배려심에도 마음이 따듯해 진다. 이런 것을 오모테나시라고 부를 수 있을려나.

 

 

 

눈축제에 와서 기억에 남는 이벤트란 거대한 건축물의 모습보다 이런 따뜻한 마음씀씀이임에 틀림없다.

오히려 월요일날 눈축제를 찾은 덕분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자료관 구경보다 훨씬 더 큰 추억이 생기게 된다.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아서 기분좋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우리 엄니보다 연세가 더 많아보이는 두 분이 고풍스러운 턴테이블 앞에 앉아서 인사를 건넨다.

 

듣고싶은 LP 를 선택하면 틀어준다고 한다. 한 쪽에는 일본과 외국의 다양한 LP 들이, 한 쪽에는 비틀즈 특집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코마츠군은 비틀즈를 굉장히 좋아한다. 서슴없이 선택한 신청곡은 옐로 서브마린.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선택한 곡이라서 살짝 놀랍다.

 

 

 

코마츠군의 아버지가 비틀즈의 광팬이라서 어릴적부터 이 노래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악을 다시 자식이 이어서 좋아하게 되는 이 모습은 참 훈훈하고 부러울 뿐이다.

 

본인은 과장 좀 해서 조선시대 선비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음악이나 영화 등 문화 전반에서 공유할 수 있는 요소가 없었다.

가요를 들으면 클래식의 위대함을 읊어대고, 만화를 보면 시간낭비라고 하고, 영화를 보면 맨날 터지고 싸우고 하는것 밖에 없다고 했으니.

거기에 대한 반감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름 문화 컨텐츠 전반에 대한 관심이 많은 쪽으로 자라긴 했지만.

 

 

 

비틀즈의 모든 앨범을 LP 로 만나는 건 처음 경험하는 황홀한 순간이다.

경쾌하게 울려퍼지는 옐로 서브마린과 함께 LP 커버를 감상하며, 창 밖의 눈 덮힌 오오도리 공원과 함께하는 순간은

오늘 눈축제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감동하는 부분이 조금 엇나간 것 같기는 하지만.

 

5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아저씨가 룸에 들어오다가 들리는 음악에 맞춰서 어깨를 들썩이며 'We all live in a yellow submarine' 을 열창한다.

음악이 시대를 이어주는 이 모습은 일본에서는 매우 흔하지만 나에게는 언제 봐도 부럽기만 하다.

 

고지식하다면 고지식할 수도 있지만, 일본은 70년대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오프닝도 아직까지 사용하는 등

현재 할아버지들의 문화 역시 젊은층이 거부감없이 수용하고, 60세가 다 되어가는 가수의 콘서트에 20대가 열광하는 등

대중문화의 연속성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 공감대 형성도 어렵지 않은 편이다.

요즘들어 한국도 예전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진 덕에 그나마 조금 형편이 나아지고 있는 듯 한데.

 

 

 

좀 전에 오오도리 공원에서 밥 말리의 흉상을 본 기억때문인지, 혹시 LP 가 있나 싶어서 문의를 했는데

아무래도 그쪽 LP 까지는 가지고 오지 못하신 듯 하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LP 문화에 익숙한 계층대에게 레게라는 장르는 조금 어색한 것일까.

 

그렇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비틀즈로 가자고 생각하고  Across the universe 를 부탁드렸는데

할머니께서 어느 앨범에 들었는지 알아야 틀어줄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고보니 비틀즈 노래는 그냥 듣고싶은거 마구 듣다보니 원래 앨범이 무엇인지 기억을 거의 못하고 있다.

 

본인 맛폰은 데이터 로밍을 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염치 불구하고 Y 양의 어른폰으로 검색을 해 본다. Y 양의 폰은 사진을 열심히 찍느라

베터리가 간당간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미안할 따름이었다. 데이터나 베터리 이관이라도 할 수 있다면 내 것을 마구마구 퍼줬을 텐데.

 

원래 이 곡은 비틀즈의 정식 앨범이 아니라 동물보호기금 마련을 위한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훗날 정식 수록된 앨범을 기억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막상 찾고보니 그 유명한 마지막 앨범인 'Let It Be'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

LP 로 이 음악을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조용히 눈을 감고 첫 경험의 즐거움을 만끽해 본다.

 

 

 

 

거대 조형물과 비교하면 작은 녀석들이지만 그래도 다들 사람 덩치의 몇 배는 되는 크기다.

이것도 무슨 캐릭터인가 싶어서 물어보면, 코마츠군이 거의 다 알고 있어서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본토 사람의 조력 덕분에 모르던 내용도 많이 알게 되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아마 이 캐릭터는 삿포로 지역방송국의 마스코트라고 한 것 같은데, 이곳 사람들에게는 친숙하다고 한다.

특정 분야에 최소한의 지식 정도는 있어야 구분이 가능한 캐릭터들이 군데군데 꽤나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외국인이 많이 오는 이곳에서 저 녀석들을 전부 이해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런거 다 이해하지 않아도 그냥 보고 즐기는게 눈축제란 녀석이니까.

 

 

 

홋카이도는 메이지 유신 즈음에서야 본토 일본인들의 거주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곳이라

일본의 주요 도시에 꼭 세워져 있던 이런 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적어도 홋카이도에 있는 성을 표현한 녀석은 아닌 듯 하다.

 

하코다테 주변에 다테 성이라는 방어용 성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건 흔적도 없이 박살나버려서.

 

 

 

Y 양과 코마츠군은 기본적으로 사진을 참 많이 찍는 편이라 굳이 내가 나설 일은 없지만

셀카로는 해결하기 힘든 부분도 있으니 가끔씩은 기꺼이 셔터를 눌러준다. 그런데 아직도 두 사람한테 이 사진들을 건네주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어디까지 알려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꽤나 친숙한 리락쿠마가 거대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아이들이라면 저 품을 향해서 달려가고 싶겠지만, 혹은 어른들이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 SD 캐릭터들을 이렇게 눈으로 만들어 놓으면 머리가 너무 무거워져서 위험하다.

 

실제로 예전 눈축제때 그 하츠네 미쿠의 눈사람이 무너져서 사람이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으니까.

그래서인진 모르겠지만 이번 눈축제에선 기본적으로 조형물에 너무 가까이 접근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리락쿠마의 캐릭터성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살신성인의 마음을 갖고 있는 듯한 곰.

홋카이도 하면 불곰, 사슴, 연어 등이 연상되니 지역색으로 따진다면 이 쪽이 더욱 홋카이도답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루팡 3세의 캐릭터들.

알고 있는 캐릭터가 전시되어 있으면 조금 더 흥미를 가지게 된다. 주인공인 루팡 3세가 없다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총잡이인 지겐이라는 캐릭터는 항상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는데, 저 눈사람의 모자 밑에는 눈이 재현되어 있을지가 매우 궁금했다.

대체적으로 개성넘치고 따라하기 힘든 얼굴 표정까지는 묘사하기 힘들었겠지만 미네 후지코의 가슴만큼은 원작을 매우 잘 존중하고 있는 느낌.

 

 

 

Y 양이나 나나 아예 일본 문화에 대해 문외한이라 할 정도는 아니니, 이 정도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복숭아 고기를 먹으면 힘이 솟는 모모타로 이야기를 형상화. 일본에서 가장 친숙한 전래동화다.

 

 

 

복숭아 속에서 태어난 모모타로는 힘이 장사라서 도깨비들도 쩔쩔 맨다.

 

오리지날은 모모타로와 동물 동료들이 도깨비들을 퇴치하고 보물을 갖고 돌아와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지만

재미있게도 유명한 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의 동명 작품인 '모모타로' 에서는

모모타로를 탐욕적이고 속물적인 깡패로 묘사해서 도깨비들을 박살내고 노예로 삼아버리는 캐릭터로 해석하기도 한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아쿠타가와의 시니컬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대학에서 일본 문학 공부하다 보면 한 번쯤은 접하게 되는 이야기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냥 모모타로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어쩐지 모모타로에게 질질 끌려가는 도깨비들의 모습을 보니 문득 아쿠타가와가 생각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으리라 본다.

 

 

 

결정적으로 모모타로가 너무 악당처럼 생겼다.

 

 

 

머리가 너무 크니까 웃는 모습이 오히려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이 흉상은 간판에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라고 적혀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아서 코마츠군에게 물어보니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손님을 접대하는 마음' 이라고 한다.

 

물론 그 뜻을 몰라서 물어본 건 아니고, 왜 이 캐릭터하고 오모테나시가 관련되어 있는 것인가가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이 흉상은 남자가 아니라 타키가와 크리스텔이라는 프랑스계 혼혈 여성 아나운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도 그냥 사진만 봐서는 아무리 봐도 남자처럼 보이는데, 실제 사진을 보니 굉장히 여성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무튼 이 사람이 도쿄 올림픽 유치경쟁 당시 프랑스어와 영어로 일본을 소개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는데

그 때 사용한 유일한 일본어가 오모테나시라는 단어 하나였다고. 상당한 명연설이었고 2013년 일본인이 뽑은 그 해의 단어로 뽑히기도 했다.

 

 

 

65년 동안이나 계속된 축제다 보니 관록이라고 해야 할까, 축제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요소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출장형 우체국이 축제장 안에 귀여운 데코레이션과 함께 절찬 영업중이다.

 

워낙 전자기기의 보급속도가 빠른 한국이라서 선뜻 와 닿지 않을수도 있지만

여행 중 즉석해서 보내는 종이 엽서에서는 맛폰이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실체감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여행 다녀와서는 꼭 지인들에게 선물을 줘야 하는 관습이 존재하는 일본이라서

바쁜 여행일정 중 바로바로 짐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체국도 단순한 업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축제 전시물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일본 우체국의 마스코트인 포스쿠마와 함께 자신을 우체통에 넣어버릴 수 있는 체험행사도 진행중이다.

소소한 부분에서도 상업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도록 신경쓰는 일본의 경제관념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한국에서 우체국 마스코트 관련상품을 구입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니, 애초에 한국 우체국의 마스코트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나 있나?

 

일본 우체국에서는 이 포스쿠마 열쇠고리, 스티커, 스카치 테이프, 수첩 등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중이다.

 

 

 

 

본인은 아무래도 찍는 걸 좋아하지 이렇게 찍히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서 머리를 들이밀진 않았다.

사실 만약 한번 찍어보고 싶었다고 하더라도 내 얼굴이 저기 들어가지 않아서 매우 좌절했을 가능성이 크기도 하고.

 

 

 

여행의 일행이 이렇게 사진찍기 좋아했던 적인 태어나서 한 번도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긴장감이 느껴지는 만남이었지만 왠지 이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사진 찍히지 않고 묵묵하게 셔터만 눌러대고 있으니, Y 양 일행은 좀 부담스러웠을려나.

 

각자의 카메라로도 정말 많이 찍었기 때문에 어쩌면 본인 모습이 찍힌 사진이 그들 손아귀에 놓여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코마츠군이 이 녀석 보자마자 '후낫시~' 라고 소리치길래 뭔가 굉장한 캐릭터인가 싶었다.

정체를 알고보니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유루캐러(ゆるキャラ)중 급속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녀석이라고.

 

유루캐러란 '느슨하다' 라는 단어와 'Character' 가 합쳐져서 만들어 진 명사로

기존 마스코트보다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 하면서 모자란 느낌이지만 그만큼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녀석들을 말한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유루캐러는 쿠마모토의 마스코트인 쿠마몬. 한국에서도 문구점에 가면 의외로 많이 보이는 검은 곰이다.

이름이 쿠마몬인 이유는 당연하게도 지역 이름에 곰(쿠마)가 들어가기 때문.

 

하지만 이 후낫시라는 캐릭터는 한술 더 뜨는 느슨함을 자랑하는데, 치바현 후나바시시의 마스코트라고 우기며

개인이 맘대로 창작한 비공식 마스코트였던 것. 엉성하고 느슨함이 온 몸에 스며들어 있는데다 저 기묘하게 치켜뜬 눈이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포인트를 준다.

요즘엔 엽기캐릭로 매우 인기가 높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확실히 현지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 하다.

 

 

 

폭포를 나타낸 녀석같은데, 눈으로 만들어 놓으니 어쩐지 얼어버린 폭포처럼 보인다.

물줄기가 세 개로 갈라지는 건 쿄토의 키요미즈데라와 비슷하지만 아무래도 표현이 좀 다른 느낌이다.

 

 

 

아주 약간의 특징적인 면을 제외하면 한순간 한국 모자인가 생각이 들었던 조각상.

나만 그랬던 건 아닌지 Y 양도 처음엔 한복 아닌가 생각했다고 하신다.

디테일을 제외하고 나면 역시 모자간의 모습은 공통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일까.

 

 

 

공짜로 내리는 눈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눈을 써야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덩치 큰 조형물이 많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 캐릭터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조형물은 후지테레비에서 방영하는 '폰키 키즈'의 캐릭터들.

 

이름을 한번 바꾸긴 했지만 벌써 40주년이라니, 코마츠군의 말로는 이걸 보지 않고 자란 일본인은 없다고 할 정도란다.

일본에서 살다보면 저 졸린눈의 공룡 캐릭터를 한 번쯤은 보게 되기도 하고.

 

한국의 뽀뽀뽀나 미국의 세사미 스트리트 정도 되는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적당할 듯 하다.

 

 

 

전체적으로 세밀하게 표현할 필요가 없는 녀석들이라 오히려 재현도는 굉장히 높다.

특히 눈까지 내려서 적당히 설탕가루 뿌린 듯이 묘한 질감도 표현되는 바람에 입체감이 살아난다.

 

내가 어릴때 한국에서는 이렇게 기억에 남는 캐릭터 뭐가 있었을까 잠깐 생각해 봤는데

뇌리에 박혀있는 캐릭터는 뭐니뭐니해도 명탐정 바베크와 검은별이다. 매일 그거 챙겨보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입에 착착 감기는 오프닝 송은 아직도 대부분 기억날 정도니.

 

하지만 사실은 중학생 될 때까지 명탐정 바베크를 '명탐정 바베큐'라고 알고 있었던 슬픈 과거가 있다.

더더욱 놀란것은 이게 원작 소설이 있었다는 점. 더더구나 놀란 점은 그 원작 소설 작가가 쾌걸 조로의 작가였다는 사실.

 

 

 

이제 검은별 검은별~ 하는 노래는 본인 나이대 사람들 외에는 점점 잊혀져가는 노래가 되었지만

40년이 된 폰키 키즈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코마츠군 말로는 자기도 어릴 때 무지 좋아했으며 지금도 대인기라고.

 

자본과 기술이 흉내낼 수 없는 강력한 문화적 무기는 단연 천천히 쌓인 시간의 흔적이다.

해외 여행이란 그 지역 사람들, 혹은 그 지역의 자연이 오랜 시간을 들여 이루어 낸 흔적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닌가.

한국은 그 흔적이 한번 싸그리 지워지는 지독한 경험을 겪은 탓에 다시 첫 발부터 내딛어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지만

최소한 그런 마음이라도 굳게 가지고 있는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으니 조금 서글퍼진다.

 

 

 

물소 경주인 듯 한데, 설명문을 보려고 해도 인파가 많고 혼자 다니는 여행이 아니다 보니 읽을 여유가 부족하다.

홀로 여행일 때는 대충 설명문을 전부 스냅으로 찍어온 다음 숙소에서 확대해 읽어보곤 했지만

일행과 함께 하는 여행에 긴장한 탓인지 그런 생각도 머릿속에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뭐든 익숙해지고 봐야 하는데, 함께 여행은 익숙해질만한 여건이 별로 없다.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데포르메적인 느낌을 주는 조형물.

몇몇 메인 조형물들은 대형 회사와 자위대가 합심해서 30일 정도의 제작시간을 갖고 만들어지지만

대부분 중소 업체나 지역별 단체 등이 모여서 만들다 보니 퀄리티의 차이가 좀 눈에 들어오는 편이다.

 

물론 완성도와 관계없이 세계인의 축제 속에서 자신들의 완성품을 자랑할 수 있다는 기쁨은 동일할 것이다.

 

 

 

축제라고 해서 그저 즐겁고 귀여운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아마 설명문에 정확히 나와 있을 테지만, 굳이 설명문 보지 않아도 어떤 것을 주장하고 있는지는 쉽게 파악이 가능하다.

순백의 재료인 눈으로 빚어놓은 철조망은 현실의 비극과 함께 언젠가는 인간이 더 높은 이상으로 발돋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해 준다.

 

 

 

 

어른들도 즐길 수 있을만한 체험장도 있다.

걷는 스키를 타고 가볍게 20~30m 정도 돌아보는 곳이었는데, 평소대로라면 시도해보지 않았을 테지만

일행히 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참가해보기로 한다. 만약 일반적인 스키를 타고 그냥 슬라이딩해서 내려오는 녀석이었다면 타지 않았을 테지만.

 

어릴 적에 스키장에서 한번 타 보고 확실히 느꼈다. 심한 평편족인 탓에 양 무릎이 바깥으로 완전히 휘어있어서 스키를 탈 수가 없다고.

걷는 스키는 미끄러져 내려오는 기능도 수행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설원 트래킹이나 크로스컨트리에 사용하는 용도라

그냥 걷는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주섬주섬 신발을 벗고 가방을 맡기고 카메라를 어깨에 맨다.

 

특별할 건 없고 뒷꿈치 쪽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미끄러지듯 무게이동이 가능한 스키.

진짜로 걸어다닐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은 테니스 라켓 같은 펑퍼짐한 그물로 된 스노우 슈즈라는 것이 있다.

 

스키는 스키라서 상당히 미끄러운데, 넘어지는 사람도 몇 있어서 반드시 1:1로 안전요원 할아버지들이 동행한다.

전환점에서 유일하게 앞사람과 마주칠 수 있었기에 Y 양 사진을 한 장 남겨본다. 제일 먼저 출발한 코마츠군은 홋카이도 출신이라 무난하게 질주중.

 

적당히 미끄러지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전에 타 본적 있냐고 물어보셨는데, 발만 걸쳐본지 20년 가까이 된 터라 적당히 얼버무렸다.

 

 

 

살짝 돌아만 봐도 적당히 땀이 날 정도다. 역시 스키는 꽤나 운동량이 많은 스포츠인가 보다.

다시 신발을 갈아신고 오오도리 공원을 걷는데 유키미쿠의 포스터가 보인다. 눈축제의 마스코트가 된 것은 이번이 5번째인가 보다.

이제는 국민적으로도 꽤나 알려진 캐릭터라 코마츠군도 당연히 알고 있다. 코마츠군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이런 방면에 꽤나 관심이 많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당연하게도 미쿠 역시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꽤나 잘 만들었는데 역시 대두라서 위험하긴 한가 보다.

예전에 저 머리통이 무너지며 관객을 덥친 적이 있어서인지 이번엔 그냥 세련된 끈으로 바리케이트를 쳐 놨다.

 

 

 

정식 출품작인지는 모르겠는데 상태가 별로 안 좋은 세균맨의 모습이 보인다.

호빵맨보다 더 정감가는 캐릭터인데, 눈축제가 깨끗해서 그런지 뭔가 애처로워 보이는 모습.

 

 

 

그에 비해 호빵맨은 저 정도 덩치가 되니 미소가 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고보니 이런 축제장에서 따뜻한 호빵이라도 팔면 이 앞에서 먹으며 사진 한 장 남기면 재미있을 듯 하다.

음식 코너는 벌써 저 뒤에서 지나쳐 버렸기에 눈에 들어오지는 않아서 살짝 아쉬웠다.

 

간단한 캐릭터인데 어째서 머리통만 놓여 있을까 의아했는데, 이 캐릭터 역시 과도하게 대두라서 그런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