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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에 해당하는 글들

  1. 2011.12.14  김치 한조각, 홍시 한개 32
  2. 2011.11.27  오퍼레이션 김치로드 2편 23
  3. 2011.11.26  오퍼레이션 김치로드 1편 19
  4. 2009.12.13  겨울이라면 김장 16

일찍 하교하신 엄니께서 바이러스성 포진때문에 가려워하셔서
가기 싫다고 버티시는걸 피부과로 쫓아낸 후 대대적으로 집안 청소를 좀 했습니다.
아마 헤르페스 계열인 듯 한데, 20여년간 고생하셔도 이게 완치가 거의 불가능한 병이라서 말이죠.
환절기나 겨울처럼 습도가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사람 괴롭게 합니다.

청소 끝나고 차나 한잔 하려는데 엄니께서 김치의 맛을 잊지 못하시는지 밥과 김치를 들고 들어오십니다.


겉보기로는 우아한 다과세트와 보이차가 포진한 곳이지만
사실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누워서 고스톱도 치고 하는 다용도실이죠.

약 먹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긴 한데, 원래는 보이차 향기로 가득차야 할 곳이 김치냄새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이번에 김장한 김치도 슬슬 맛이 제대로 들어가고 있으니 그냥 밥이 꿀떡꿀떡 넘어가시죠.
엄니께서는 요즘 애들이 이 맛을 알겠냐며 자화자찬(?)하시며 옆에서 보기에도 참 맛있게 드십니다.


얼마나 맛있으시면 이런 표정까지 지어가시며...
이 사진 보고 엄니하고 저하고 한참 웃었네요.

교장 퇴임식때 이걸 한 1m 정도 크기로 인화해서 보내드리면 참 좋아하실것 같네요.
아마 전 쫓겨날 듯.


뭐, 어쨌든 맛있는 김치 맛있게 드시는 건 엄니도 좋아하시니.
뭐든 남이 봐도 참 맛있게 잘 먹는다는 인상을 받도록 먹는게 좋죠.
입맛없어서 음식 깨작거리는 모습은 그닥 보기 좋지 않으니까요.


근데 난 카메라 들고 도대체 뭘 찍고 있는거냐...

저런걸 좍좍 찢어서 밥 위에 얹어먹으면 중화일미가 부럽지 않습니다.


식후에는 달콤한 홍시 쪽쪽 빨아먹는것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올해는 홍시 농사가 꽤나 흉년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생각보다 많이 먹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맛있다고 많이 먹으면 변비 걸릴수도 있으니 뭐든 적당히 먹어야죠.


항상 다이어트 걱정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뭐든 입맛 없어서 못 먹는 일 없이 맛있게 먹는 가족이라서
그거 하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 들어서 밥맛 없어지는건 사실 조금 살찌는 것보다 훨씬 더 안좋은 것이니까요.


계속 엄니곁을 맴돌면서 찍어대니 홍시도 좀 찍어주라고 하시길래 한 장.
폭풍 흡입이 어울리는 홍시입니다.


요로케 마싯는걸~
하는 듯한 표정의 엄니...


껍질만 남을때까지 쪽쪽 빨아줍니다.
저는 점심때 아버지께서 집에 잠시 오셔서
집 근처 반점에서 복어짬뽕이라는 특이한 녀석을 먹은 터라 차만 마셨습니다.

처음 먹어본 시원한 짬뽕이라 (백짬뽕입니다) 카메라 들고 갈걸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은 대신 엄니께서 맛있는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주셨으니 만족.


유통기한이 걱정스러운 케이크도 좀 잘라서 차와 함께 음미합니다.
밀가루에 방부제가 많이 들어있는지, 설탕 때문인지
가져온지 10일이 넘은 케이크도 멀쩡하군요.

꽤 호화스러운 대구 노보텔 예식장에서 받은 녀석이라 맛도 좋습니다.
엄니께서는 실컷 드셨으니 고스톱 치러 누우시고, 전 카메라 메모리 빼 들고 이 짓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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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분주합니다. 저는 어제도 잠을 좀 늦게자서 몽롱한 기분으로 일어났네요.
아버지가 일단 준비는 다 해 놓으셨습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김장을 담궈보기로 할까요.


예전엔 배추도 직접 소금에 절였다가 물기를 빼서 쓰기도 했는데
아파트에선 너무나도 힘든 작업이라 그냥 배추 판매하는 집에 부탁해서 가져옵니다.
올해 배추는 적당히 싱싱하고 적당히 숨이 살아있더군요. 약간 싱거운 느낌이 들긴 합니다.


일단 본격적으로 담그기 전에 시식부터 해야겠죠?
어젯밤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놓은 양념을 듬뿍 묻혀서 한조각 먹어봅니다.


양념 맛은 훌륭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좀 짠데, 의외로 다 담궈놓고 본격적으로 먹을 때는 항상 조금 싱겁게 느껴지더군요.
싱거운건 저희 집 김치의 특징이기도 하고, 좀 숙성되고나면 양념이 잘 배여들어 충분히 맛있으니 괜찮습니다.

사실 담그다보면 중간중간 계속 집어먹게 되는 녀석이죠.
전 가뜩이나 매운게 몸에 잘 안맞는데, 지난 1년간 고춧가루는 구경도 못하는 생활을 한 터라
맛있게 집어먹은 김치덕에 몇번이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붉은색 X를 배출하고 있네요.

그래도 안먹을 수는 없으니 그냥 '먹고 죽자'라고 생각하며 계속 집어먹습니다.
이런 군것질 없는 김장은 메모리카드 없는 DSLR 같은 느낌이죠.


몇년 정도 담궈보셨다고 완전히 숙련된 달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수십년 경력의 마이스터 엄니를 앞에 두고 자기가 안담그면 맛이 없을텐데라고 걱정하십니다.
제가 담그는 김치와 구별해서 넣어야 맛없다는 평가를 안 받을거라고까지 걱정을 하시는군요.
물론 엄니는 그냥 웃고 말지만.

다들 집안에 이런 남편 하나쯤은 데리고 사시겠죠?


양념을 묻힐 때는 먹을 시기도 잘 조절해야 합니다.
오래 숙성시킬 녀석들은 양념을 조금 적게 묻히는게 좋다고 하네요.
일찍 먹을 녀석들일수록 조금씩 양념을 많이 넣고, 며칠내로 먹을 녀석들한테는 굴도 마구마구 넣어줍니다.


엄니는 김치 소를 만듭니다. 어제 제가 씻어놓은 갓, 파, 무채, 배 등등을 양념에 비비는 것이죠.
이 소라는 것 역시 오래 묵힐 녀석한테는 그닥 넣지 않아도 관계없습니다.
포기 사이사이에 적당히 넣어주면 훌륭한 양념이 됩니다.


조각내 놓은 무는 김치 사이사이에 적당히 찔러넣어주면 훌륭한 무김치가 됩니다.
220L 짜리 김치냉장고는 항상 작은 느낌이 들어서 엄니께서 불만이시네요.
근 10년은 쓴 녀석이니 내년엔 새걸로 하나 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치가 숙성될 때 숨은 맛 공로자인 소 입니다. 속이라고도 하죠.
너무 많이 넣는것도 좋지 않으니 적당적당히 포기 사이에 찔러 넣어줍니다.


어제 왠만큼 준비도 다 해 놓은 상태라 아침 일찍부터 작업 시작했고
원래 아버지 혼자 하시던 일도 제가 옆에서 함께 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일찍 끝났군요.
물론 김장은 담글때는 재미있지만 그 후 뒷처리와 청소, 설거지가 최고의 난관이긴 합니다.


바로 먹을 김치 몇포기에만 아껴놨던 굴을 듬뿍듬뿍 넣어줍니다.
이녀석을 넣으면 상당히 싱거워지니 양념을 아끼지 말고 팍팍 발라주는게 좋습니다.
오래 지나면 아예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숙성시킬 녀석에게는 넣을 필요가 없다고 하더군요.
근데 사실 이 굴의 반쯤은 아버지하고 제가 담그는 도중에 집어먹어 버렸죠.


사이사이 엄니는 점심 준비도 하시고 해서 일이 끝난 후에 무난히 식사가 가능할 시간에 끝났습니다.
그래도 제가 제일 싫어하는 뒷정리가 남아있으니 방심할 순 없네요.
아버지께서 설거지 담당을 하시는 덕에 그나마 일이 쉽게 진행되었습니다.


김장날에 빠질 수 없는 돼기고기 수육과 갓 담은 김치!
이거 안먹고 어떻게 김장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남은 굴과 양념을 버무려서 김치 한조각과 수육 한점을 입에 넣으면 이건 뭐...

생각대로 김치는 약간 싱거운 느낌이 들긴 합니다만, 짠 것보다는 낫다는게 집안 전통이라
며칠 잘 익히다 보면 괜찮은 녀석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틀 연속으로 힘을 쓰다보니 역시 좀 피곤하긴 하네요.

뱃속은 이미 하나 남은것 없이 다 뱉어버려서 배가 좀 고픕니다. 숙성된 녀석이면 몰라도 갓 담근 김치는 힘들군요.
그래도 뭐 어차피 각오하고 먹은 거라 아쉬움은 없습니다.
이제 제 손때가 담긴(?) 김치와 1년간의 동거생활을 시직하게 됐네요.
부디 맛없다는 소리가 안 들려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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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겨울 최대의 프로젝트 김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엔 제가 본가에 내려와 있기 때문에 밑준비는 거의 다 제가 하는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일당 10만원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일단은 씨도 안먹히는 것 같군요.
아침부터 부지런히 명태, 다시마, 멸치 등 각종 해산물을 듬뿍 넣은 거대 솥에 물을 끓입니다.
이거 다 끓고 나면 똑같은 양으로 한 솥 더 끓여내야 하죠.
올해는 좀 많이 만들어서 물건값 대 주는 이모집에 몇포기 보내드려야 하기 때문에.

자화자찬이 되는 것 같지만, 엄니가 만드시는 김치가 주위에서 워낙 인기만발이라
산악회 회원들도 일단 산에만 올라가면 엄니 김치만 찾아대는 바람에 한포기씩 김치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도 합니다.
전 훗날을 대비해 김치 만드는 법을 전수받으려고 이렇게 자원하게 되었죠. 그런데 일당은?


육수 우려낸 다음은 적당히 재활용도 해가면서 한 솥 더 끓입니다.
이번엔 재활용을 했으니 좀 더 오래 푸욱 고아냅니다. 여기까지 거진 3시간은 잡아먹었군요.


미용실에 파마하러가신 엄니를 대신해 찹쌀도 준비합니다.
나중에 풀 먹일때 쉽게 하려면 씻은 찹쌀을 물에 불려놓은 것이 편하죠.
햅찹쌀 잔뜩 사왔으니 이제 이걸로 1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군요.

찹쌀을 보니 문득 삼계탕을 해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새록새록 피어오릅니다.


스무 개 가까운 무도 제가 씻어야지 팔 아픈 엄니가 씻겠습니까.
마침 온수도 잘 나오질 않아서 손이 퉁퉁 불어터질 때까지 막막 씻고 또 씻었습니다.
지인분이 가져다 주신 유기농 무라서 어떤 녀석은 산짐승이 파먹은 흔적도 있더군요.


엄니 파마하시는 동안 일단 이 정도까지는 준비를 해 놨네요.
물론 돌아오자마자 쉴 틈없이 시장에서 주문해놓은 절인 배추 40포기를 끙끙거리며 옮기기 시작합니다.
바로 밑 층에 사시는 처자께서 한 봉지 들어주시며 뭐가 들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라고 하시길래
무심결에 '토막시체요' 라고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불투명 비닐에 꼭꼭 쌓인 무거운 것이 뭔가 그걸 생각나게 해서...


팔이 부러지도록 배추를 옮겨도 아직 할 일은 태산이군요.
엄니께서는 분노의 칼질로 무를 아작내시고, 저는 뭔가 불친절한 도구 하나 갖다놓고 무를 채썰기 시작합니다.
자칫 힘조절 잘못하면 제 살점도 길쭉하게 갈려나갈 것 같아서 조심조심하며.



이렇게 채썬 녀석들은 김장 담글때 배추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속'이 되는데
올해는 좀 많이 담그다 보니 부족하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


일단 대강 준비가 갖춰져 가는군요.
얼핏 봐도 힘쓰는 일이 꽤 많은 과정인데, 엄니께서는 수십년간 이걸 혼자 다 하셨다고 하니
제가 용써봤자 먹힐 틈이 없습니다. 그냥 잠자코 도와드리는 수 밖에.

이렇게 만들어 먹다보니 밖의 김치는 맛이 없어서 못먹는단 말이죠.


산뜻한 맛을 더해주는 갓도 빠질 수 없습니다.
너무 박박 씻으면 향이 날아가기 때문에 흐르는 물에 살짝살짝 흙만 턴다는 기분으로 씻어줍니다.


파도 비슷한 요령으로 살짝 씻습니다.
전 파 종류는 참으로 안좋아합니다만, 김치와 함께 잘 숙성된 녀석은 그럭저럭 맛있게 먹을 수 있더군요.


김치가 숙성될 때 맛을 보조해주는 중요한 요소인 청각도 잘 씻어서 물기를 뺍니다.
요녀석 식감이 오돌오돌한게 괜찮은데, 김치와 함께 삭아버리면 식감은 사라지고 시원한 맛을 내어 주더군요.
이제까지 들어가는 재료비만 해도 대체 얼마인지...


차 한잔 마시며 육수가 식기를 기다린 후 밤이 되서야 다시 작업에 들어갑니다.
김치에서 가장 중요한 양념을 만들 시간인데요.
적당한 분량이라고는 도통 알 수 없는 '손맛'이라는 개념으로 만들어지는 녀석이라
눈대중으로라도 엄니의 배합 요령을 잘 쳐다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해산물 육수에 찹쌀을 넣고 끓여서 만든 풀입니다.
구수한 해산물 냄새를 맡아보니, 그냥 저대로 간 맞춰서 죽으로 먹어도 건강식이 되겠다 싶더군요.


풀과 육수를 적당히 혼합해가면서 바탕화면을 깔아줍니다.
풀의 양이 미묘하게 바뀌면 점도가 금새 달라지니, 비슷하게 만들려면 조절 잘 해야 하겠더군요.


이제부터는 매운 고춧가루와 덜매운 고춧가루를 적당히 섞어가면서 본격적인 만들기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냥 감으로 쑴풍쑴풍 넣어버리시는 엄니를 따라가기엔 쉽지 않네요.
중요한건 맛이니, 일단 만들어놓고 맛을 봐야겠습니다.


적당히 점도가 있는 양념은 골고루 휘젓는데 상당한 힘을 필요로 합니다.
대충 섞어서 알맹이가 남아버리는 건 제 성격상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이제부터는 화려한 양념쇼가 시작되는군요.
새우젓, 생강, 마늘, 까나리액 등등을 넣어가며 무자비하게 휘젓습니다.
없어지지 않을 것 같던 찹쌀도 어느 샌가 양념과 동화되어 사라져 버리는군요.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면서 하여간 열심히 섞어줍니다. 팔이 꽤 뻐근합니다.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해산물 찹쌀죽의 마수에 빠져서
제가 땀 뻘뻘흘리며 양념을 휘젓고 있는 동안 엄니께서는 바닥에 조금 남겨둔 찹쌀죽을 맛있게 드시고 계십니다?

물론 긁어모아서 저한테도 떠먹여 주셨습니다. 살짝 소금만 넣었는데 그야말로 최고급 죽이더군요.
문득 형편없는 죽 체인점보다, 이렇게 죽 만들어 팔면 장사 잘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정도 재료로 수지 맞추려면 죽 한그릇에 얼마가 되어야 할지 감이 안잡히는 바람에 포기.

근데 그렇게 휘저으면서도 찍을 건 다 찍어내는 저도 참 대견하군요.
얼굴이 찍힌 것도 있습니다만 엄니께서 절 죽이시려는 것 같아서 일단 초상권에 침해되지 않는것만 올립니다.


일단 그럭저럭 맛있어 보이는 양념이 되었군요.
하지만 일단 여기서부터 맛을 슬쩍슬쩍 보면서 간을 맞추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살짝 숨이 살아있는 배추에 찍어먹어 보며, 현 상황에서 살짝 짜게 느껴지는 정도가 훗날 제일 알맞더군요.
고춧가루도 중간중간 계속 넣어주면서 장인정신에 빛나는 간 맞추기가 시작됩니다.


설탕은 조금만 넣고, 몇 년째 잘 숙성중인 매실 액기스 원액을 듬뿍듬뿍 넣어줍니다.
숙성 년도에 따라서 색깔이 전혀 다르군요. 오래 삭히면 반쯤 식초화 or 알콜화 된다고 하는데
그 때가 가장 감칠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언젠간 먹을 날이 오겠죠.


약 2시간 가까이 저어가며 맛을 본 후 OK 사인이 떨어졌습니다.
청각이나 생굴은 내일 김장 시작하기 직전에 넣으면 될 것 같군요.
생굴은 금방 먹을 김치엔 넣으면 맛있지만 오래 숙성시킬 녀석에는 넣으면 맛이 없습니다.

뻐근한 양 어깨 덕에 맛있게 양념이 만들어 진 것 같네요.
제가 직접 고소하게 볶은 들깨도 듬뿍듬뿍 넣어주고, 내일 아침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이런걸 수십년간 혼자 하셨다니... 숭고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군요.
내일 담그는 일은 아버지하고 같이 하겠지만, 일단 90% 가까이 제가 도맡아서 해 봤으니
앞으로의 생활에 유용한 지식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자취하게 되면 제가 만들어서 몇포기 보내드려야 할 듯.

겨울 연례행사인 김장.
저는 줄곧 서울서 자취를 하다 보니 김장을 도와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
올해는 본가에 내려와 있는 고로
온 동네에 맛있기로 유명한 울집 김치의 비법을 전수받고자 한 몸 바치기로 햇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중, 고등학교때도 울집 김치가 맛있다고 소시지와 바꿔가는 친구들이 있었는가 하면
부모님 산악회 동기들도 산에 갈때마다 울집 김치좀 많이 가져와 달라고 할 정도로
울집 김치가 맛있긴 한가 봅니다. 전 쭉 울집 김치만 먹었고, 남의 집 김치는 거의 안먹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김장 전날 엄니께서 교장단 1박 2일 회의때문에 집에 안계셨던 관계로
아버지께서 배추를 씻어놓으셨습니다. 원래 저하고 같이 하려고 했는데 재즈 페스티발 갔다 오니 그새 다 해놓으셨더군요.


고춧가루와 찹쌀풀, 마늘, 액젓, 새우젓, 매실 원액 등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양념.
사실 만드는 전반적으로 도대체 다른 집 김치와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함 그 자체인데
맛이 있다고 호평을 받는 건 역시 손맛이란 걸까요.


차례로 줄을 서서 김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김치냉장고 바구니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 먹고 본격적으로 김장 담그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엔 이 모든 일을 엄니 혼자서 하셨다고 하니 왠지 끔찍해 지는군요. ㅡㅡ;
작년엔 아버지하고 두분이서 했고, 올해는 저까지 가세했으니 그나마 좀 수월하게 끝날 듯.



양념이 뻑뻑하다 싶을 땐 다시마와 멸치를 우린 국물로 시원함을 더해주기도 합니다.


김치 사이사이에 집어넣는 각종 야채들. 이게 나중에 잘 익으면 김치와 동화되어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어진다죠.


마찬가지로 포기 사이사이에 집어넣는 무.
이것도 가만 놔두면 양념이 저절로 스며들어 맛있는 무김치가 됩니다.


양념에 빠지지 않는 청각. 시원하고 산뜻한 맛이 나게 합니다.
가끔 김치 먹다보면 지렁이 똥같이 생긴 것들이 나오는데 그게 이 청각의 숙성된 모습.


본격적으로 재미를 들이신건지, 힘든 일을 도맡아 하려는 의도였는지
아버지께서는 옆에서 도와드리려고 해도 혼자 한다며 소를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내년 먹을 김치는 엄니 손맛이 아닌 아버지 손맛이 담긴 녀석이 되겠네요.


사실 김장에 소 넣는것 말고도 할일이 태산같다는건 다들 아실테니.
저 역시 사진만 찍고 논게 아니죠.
여러 잡다한 장비들 이리저리 옮기고 어쩌고 저쩌고 잡일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성격이 원래 그런 분이라 아버지께서는 4시간 반동안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50포기 200쪽의 배추 속을 다 넣으셨네요.


배추 포기 속에 보이는 저건 뭘까요... ㅡㅡ;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묻혀버린 비운의 국자.


이제 맛있게 숙성되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물론 이 후에 새로 담근 김치와 돼지고기 수육으로 거하게 한판 벌였다는건 당연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