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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10.20  과거로의 여행 - 마츠모토 방황 11
  2. 2013.10.15  대구 공예문화박람회 + 좀 더 12
  3. 2013.10.11  대구 공예문화박람회 8
  4. 2013.10.08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9편 13
  5. 2013.10.03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8편 8
  6. 2013.10.02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7편 8

 

공기좋은 곳에서 하루종일 걸어다니고 푹 자고 조식 맛있게 먹고 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여행중 호텔 조식이 맛있으면 보상 심리 덕에 좀 많이 먹게 되는데, 이게 돈은 아낄 수 있지만 여행에는 좀 불리하다.

아침부터 점심 너머까지 배가 든든하다보니 여행지에서 뭘 한번 먹어보려고 해도 배가 불러 포기하는 일이 많으니.

 

자전거 여행때는 그야말로 먹을 게 보이면 일단 입에 집어넣어야 살아남는 시절이었으니

가끔 비지니스 호텔 들어가서 조식 먹을때가 되면, 다른 사람들 시선을 피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무식하게 먹어대곤 했다.

되려 그 시절이 정말로 먹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실감할 수 있던 시절이라는게 삶의 아이러니가 아닌지.

 

오늘 루트는 좀 복잡하다. 현재 히다 타카야마와 목표지인 키소(木曽)라는 마을은 직선거리상으론 그렇게 멀지 않은데

이 두 마을을 잇는 어떤 전철이나 버스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안내소에도 물어봤지만 이곳에서 키소로 가는 방법은 사실상 약 2배의 시간을 들여 마츠모토(松本)까지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타카야마와 키소, 마츠모토는 지도상의 위치를 이어보면 삼각형의 꼭지점 같은 형태가 되는데

타카야마에서 마츠모토까지 버스를 3시간 가까이 타고 간 다음 다시 마츠모토에서 전철을 타고 2시간 가까이 가야 한다.

 

일반적인 여행이라면 이런 극도로 비효율적인 이동수단을 통해야 갈 수 있는 지역은 선택의 범위에 넣지 않았겠지만

본인의 이번 목적은 사실 이제까지의 모든 볼거리가 아닌, 키소에 가는 것 단 한가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버스 출발시간 30분 전에 호텔을 나와서 역으로 걸어간다. 여전히 하늘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예술이다.

 

 

 

버스 기다리면서도 시간이 남아 황홀한 하늘을 좀 더 담아본다. 오른쪽에 새 한마리는 우연히 들어왔는데 멋지게 날고 있다.

 

이번 목적지인 키소 마을은 예전 일본의 수도였던 쿄토와 지금의 도쿄인 에도를 잇는 내륙도로인 나카센도(中仙道)의 중앙에 위치한 곳으로

1년간의 일본 자전거 여행 중 만난 학생 한 명과 여차저차해서 인연이 만들어져, 그쪽 집에서 세 달간 머물며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는 곳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2년동안 꾸준히 한국 과자나 김 등을 연하장과 함께 보내드리곤 있었는데

이제 슬슬 직접 찾아가서 얼굴 보여주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연락도 하지 않고 그냥 일본으로 건너온 것.

서프라이즈라고 할까, 괜히 간다고 미리 연락해 놓으면 본인들 예정까지 변경해가며 나를 맞이할 것 같아서

아무 연락도 없이 그냥 이동중인데 이건 이거대로 또 미안한 기분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푸른 하늘을 만끽하며 마츠모토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지금, 왠지 생각만큼 기분이 들뜨지 않는건 어째서인지.

 

 

 

히다 타카야마가 참 험한 곳이라, 나고야같은 해안쪽 대도시와의 연계는 그럭저럭 되어 있어도

일본에서 가장 산세가 험한 나가노현 쪽으로 통하는 산속 도로는 만든지도 오래 되어서 아주 스릴이 넘친다.

 

끝도없이 올라가다가 터널 빠져나오니 강원도 깊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꼬불꼬불한 도로가 이어진다.

만들어 놓은 건 좋은데 2차선 도로 폭이 너무 좁아서, 버스 정도 크기의 차량이 커브를 틀 때는

사실상 반대선 차량들이 멈춰서야 할 정도로 순간순간이 스릴의 연속이다.

 

당연하겠지만 어느 쪽 차선이나 속도는 20~30km 를 넘지 않는다.

버스나 트럭의 이동도 무시하지 못할 이곳에서, 한국처럼 객기부리며 쌩쌩 달렸다간 대자연의 품으로 뛰어들 수 있으니까.

 

그 와중에 해발 1000m 가 넘는 이런 도로에 보행자용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 건 참 놀랍다.

저 길이 있으면 아무리 도로가 좁아도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으니, 나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모습. 애초에 이 높이까지 올 일이 없긴 하지만.

 

험한 곳인 만큼 풍경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지만 도통 셔터를 누를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중간에 유명한 온천 지역이 있어서 버스가 멈춘다. 이곳에서 내려 여관 등으로 이동하는 관광객도 많다.

험하디 험한 길임에도 아침부터 사람들오 왁자지껄한 것이 놀랍다. 주변에 경치와 온천, 멋진 여관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한데.

10분 정도의 정차시간에도 이 풍경을 남기지 않고 떠나기는 아쉬워 서둘러 달려나가 적당한 포인트에서 셔터를 눌러본다.

 

겨울엔 원래 스키장으로 나가노 전체가 들썩이곤 했는데, 동계올림픽 끝나고 점점 스키인구가 줄어들어 요즘엔 힘든 상황이라고.

 

버스로 이동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여행은, 일단 그것만으로도 점수 충분히 따는 여행이다.

유럽 기차여행이 그래서 나름 재미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버스타고 이렇게 시간 잘 가는 여행은 참 오랜만.

 

 

 

히다 타카야마에서 마츠모토로 가는 길은 오래된 구 도로가 많아 현대의 버스가 다닐만한 길이 아니다.

도로 전체 최고시속이 30km 정도에, 버스 정도의 크기라면 중앙선과 바퀴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폭이 좁은 2차선이라

터널을 통과할 때는 맞은편 차하고 스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그것도 터널이 어찌나 긴지, 10km 가까이 되는 길이에 저속으로 주행하는 버스 안에서는 왠지 위기감까지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동류의 버스나 비슷한 크기의 트럭, 레미콘 차량이 서로 마주쳐 갈 때로,

반드시 한 쪽이 완전히 정차를 하고 나머지 차량이 기어서 빠져나간다.

같은 버스기사던 트럭 운전자던 운전석끼리 스칠 때는 인사 한 번씩 하고.

 

산골이라 그런지 이런 운행방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곳인가 보다.

 

말로 하기 어려운 꼬부랑길을 통과하니 꽤나 해발이 높은 곳인데 호수가 만들어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풍경을 본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십중팔구 댐 때문에 만들어 진 인공호의 결과물.

수표면이 너무 올라와 있어서 이 부자연스러움은 단연 인공적인 어색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적응력이라고 할까, 흉하게만은 보이지 않는 묘한 특징이 있는 모습이다.

 

사실 이렇게 원래 물길이 있던 골짜기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마을이 들어서 있기에

댐을 건설하면 물 속에 잠기는 인간의 흔적이 꼭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은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마츠모토 근처에 다가오면 그 험하디 험한 산과 터널이 싹 사라지고 상당히 넓은 평야가 드러난다.

나가노 현은 거의 대부분이 산악지형이라 큰 도시가 들어서기 힘든 지역.

산맥 사이사이에 생성된 평야에 들어선 도시가 나가노 시와 마츠모토 시다.

 

인구는 현청소재지인 나가노 시가 조금 더 많지만 그래봤자 두 도시 합해도 5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마츠모토 쪽이 교통, 도시계획적인 면에 있어서 유리한 점이 많아 나가노보다 상업지구가 더 발달한 편이다.

 

두 도시 모두 각각 국보를 한 가지씩 갖고 있어서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마츠모토는 현존하는 몇 안되는 오리지날 천수각을 가진 마츠모토성, 나가노에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인 젠코지.

 

자전거 여행때 홋카이도에서 만난 소야노라는 이름의 소년은 당시 17세로, 고등학생이었다.

외국에 혼자 떨어져 나왔으니 1년 채울때까지 바락바락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본인과 달리

나가노현의 키소(木曽)마을이 고향인 소야노는 슬슬 학교 과제물과 개인적 활동 몇 가지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홋카이도를 거의 다 돌아가던 당시의 나는, 자기 두 발과 자전거로 일본 전국을 제패한다는 목적 같은것에 관심이 없었고

그냥 여행하지 않을 때의 자신보다 더 넓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 이 소년 집에 따라가서 잠깐 머물러 보는 경험도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애를 따라 버스를 10시간이나 타고 도쿄로 내려간 적이 있다.

 

자전거 여행에다 승차 직전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정말 토가 올라올 정도로 악취 풍기는 사내 두 명이

버스에 처박혀 10시간이나 이동했으니, 자전거 여행 당시 만들어진 죄책감의 8할은 거기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쿄에서 소야노 군의 할일을 마친 후에 키소의 집안에 초대되어 마음껏 휴식을 취한 후

모자란 자금 충당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으며 자주 들렀던 곳이 이곳 마츠모토.

 

키소 마을은 정말 작은 시골이라 마땅한 바이트 자리가 없기도 했고, 마츠모토와 나가노는 의외로 재일한국인이 굉장히 많이 사는 곳이라

한글간판을 내건 고기집도 있고 여러가지 눈에 보이지만 생각만큼 쉽게 바이트가 구해지진 않았다.

 

당시에 심심하면 전철 1시간 타고 도착하던 이곳 마츠모토역 앞의 풍경을 2년만에 다시 보게 되니 형언하기 어려운 기분.

 

 

 

그러고보니 자전거 여행 당시 머물렀던 때도 이만큼 더운 날이었다.

마츠모토역 전광판에 '38도' 라고 찍힌 모습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34도 정도. 그래도 덥다.

 

타카야마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고, 여기서 키소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빨리 역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왠지 멍하니 건널목 앞에 서서 예전에 자주 신세기던 맥도날드 앞에 서 있다.

이 맥도날드는 소야 군이 학교 가러 마츠모토에 갈 때 바이트 자리 찾는다고 함께 따라와서 시간 좀 보내던 곳.

 

2년 전과 크게 변한것 없는 역 앞 풍경이지만 축제를 알리는 등이 곳곳에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여기도 축제인가 싶다.

 

마츠모토 역 3층의 티켓 판매소까지 올라가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는다.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키소 마을에,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인사하러 한국서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 한 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만나러 가고 싶으면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기분.

 

이렇게 찾아가면 반가워 할 것임에 틀림없는 사람들인데도, 내 마음 속에서는 항상 '추억은 추억으로'라는 본능이 내제되어 있다.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과 동시에 추억으로 미화된 과거와 현재와의 어색한 괴리를 체험하고 싶지 않으려는 도피 본능이 심한 편.

 

 

 

소소한 이유야 얼마든지 있다.

 

괜히 미리 준비하는 부담 끼치기 싫어서 연락도 없이 이렇게 찾아오는게 되려 실례는 아닌가.

오늘 가게되면 스케쥴상 이틀간 머무르게 되는데, 갑자기 찾아가서 이틀씩이나 머무르게 되는 것도 부담으로 느껴진다.

실은 부담이 아니라는 것을 예전 3달간의 홈스테이 경험으로 잘 알고 있지만, 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내가 그만큼 폐쇄적이라는 의미일지도.

 

소야 군 집안 사정상 아예 부담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거라 생각을 해도

그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나 자신이 괜스레 자기 내면의 문제를 밖으로 전가시켜서 변명하는 이 기분도 싫다.

 

가끔 생각하길, 정말 난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사교적으로 예전 인연들을 만나러 다니는 행동조차, 블랙홀처럼 안으로부터 쪼그라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발버둥처럼 느껴진다.

어떤 곳 어떤 시간에 있어도 결국 혼자이고 싶어하는 미친 놈인가 보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생각하며 전철 시각표를 멍하니 쳐다본다. 키소 마을까지 가는 열차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온다.

 

한숨 푹 쉬면서 마츠모토 역 안을 한바퀴 둘러보다가, 뒤쪽 관광안내소에 떡하니 붙어있는 '마츠모토 봉봉'이라는 축제 문구가 들어온다.

좀 전 거리에 장식된 호롱등 행렬은 저 축제를 위한 것이었나 싶다. 광고를 의외로 크게 하는 바람에 흥미가 동해 안내소로 들어간다.

 

안내원에게 저 축제가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것도 모르나' 라는 얼굴로 설명을 해 준다. 중간에 외국서 왔다고 하니 이해를 하긴 했지만.

마츠모토 봉봉(松本ぼんぼん)이라는 축제는 올해 39주년을 맞이하는 나가노현 최대규모의 축제로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마츠모토 시내 모든 도로를 전부 보행자 천국으로 바꾸고 200여개가 넘는 기업, 단체와 그룹별 참가자들이

특유의 오리지날 음악에 맞추어 대열을 유지하며 춤 추고 행진하는 축제라고.

 

광장 중심에 모여서 원을 이루며 춤을 추는 대표적인 일본의 축제인 봉오도리(盆踊り)와 비슷한 형식의 축제지만

매년 8월 첫째 주 토요일, 1년에 단 하루만 개최하는 엄청난 규모의 춤추기 축제인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안내소 직원 아가씨는 설명을 다 듣고 내가 내쉰 한숨의 의미를 알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갈팡질팡하던 마음에 형식적으로나마 못을 박아줄 이유가 생긴다는 것은

부단함을 떨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반면

어느 방향으로든 책임전가의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진취성은 없는 변명거리일 뿐이다.

 

사실 외국인 여행자의 입장에서, 1년에 한번 이루어지는 큰 축제에 정말 우연찮게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것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결정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얼마나 큰 여행의 추억이 될 것인가.

 

하지만 지금 본인은 축제따위에 별 관심도 없이, 만나러 온 사람과 만나기 꺼려하는 괴상망칙한 심리상태에서

조금이나마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려고 발버둥 치는 방편의 하나로밖에 그 일반론을 이용해먹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마츠모토는 나에게 있어서 항상 도피처였다.

 

소야노 집안은 진실성과 순수성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가족임에도

나같은 대인기피증 인간이 때로는 견디기 힘든 삶의 흔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가끔 답답해지면 별 시덥잖은 이유를 대며 전철로 한 시간이 넘는 이곳 마츠모토까지 와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정말 2년 전과 변하지 않은 건 이곳 마츠모토의 풍경이 아니라 나의 내면이라는 사실에 괜히 씁쓸해 진다.

 

일본에서 가장 물이 깨끗한 곳이라고 소문한 마츠모토라 마을 곳곳에 예전 우물터가 아직도 사용중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키소도 마찬가지라서, 그쪽에서는 생수를 사 먹는다는 개념이 아직 없다.

싱크대의 물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먹기만 해도 뭐 이렇게 맛있는 물이 있나 싶을 정도였으니.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여기 와도 방사능 걱정때문에 이런 우물물 떠 먹는데 주저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런데 신경쓰지 않는 본인은 오랜만에 마츠모토의 물을 한모금 떠 마셔본다.

이곳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가 2년 전의 그 여행과 연결되어 있어, 잠들어 있던 세포가 깨어나 나를 즐겁게도 괴롭게도 만들고 있다.

 

 

 

역 옆의 슈퍼 호텔에 들어가니 지배인 아주머니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방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표정 지어주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인데, 아주머니는 지도를 한장 주며 이 근처의 각종 비지니스 호텔들을 표시해 주신다.

 

사실 마츠모토엔 여러 번 와 봤기 때문에 시내 어디에 어떤 호텔이 있는지는 거의 다 알고 있지만

성의가 고마워서 감사 인사를 한 후 소중하게 지도를 들고 나온다.

 

그러고보니 오늘 축제라 쉽게 숙소를 구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역에서 도보로 10분쯤 걸리는 토요코인 호텔엔 빈자리가 있었다.

나쁜 위치는 아닌데, 카운터 아가씨가 참으로 무표정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에 걸리는 것일까.

좀 전의 슈퍼호텔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른 차가운 태도라 별로 즐겁지 않은 기분으로 방에 들어가 짐을 푼다.

 

2시간 정도 쉴 시간이 있는데, 머리가 여러가지 생각으로 어지러워서 쉬기가 어렵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도시락을 사 와서 먹어둔다. 늦은 점심이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일부러 먹어두는 것은 축제가 열리는 시간 동안엔 정말 뭐 사먹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도피든 뭐든 어쨌든 내일 키소로 가는 것을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니

빨리 마음속의 죄책감을 지워버리고 축제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4시 30분쯤 밖으로 나와보니 사람들은 이미 도로를 점거중이다.

도시 전체가 보행자천국이 된다는 설명은 크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는데

막상 어마어마한 인파를 직접 보고나니 이 축제의 규모가 비로소 실감나 머리에 피가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여기도 닥종이 공예 부스인데, 이곳은 사진찍어도 된다고 하셔서 열심히 찍었습니다.

닥종이 하면 추억의 장면들이 자동으로 생각나는 건 어째서일까요. 종이의 질감이 과거를 연상시키는 것일지.

 

 

 

디테일이 무시무시합니다. 홍시 주변에 감서리가 묻어있는 모습까지 표현해 냈군요.

하지만 홍시 치고는 좀 덜 마른것 같아서 약간 아쉽긴 했습니다. 닥종이 공예품에 너무 많은걸 바라는 것인지.

 

공예박람회다 보니 혹시 이런 사진 찍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마크로 렌즈 가져왔는데 다행입니다.

 

 

 

요즘엔 홍시나 곶감 만드는게 기계도 많이 쓴다고는 합니다만

여전히 값어치 높게 평가받는건 사람 손으로 일일히 손질하고 자연건조시킨 녀석들이겠죠.

 

사실 출하시기를 맞추려면 촉진제 없이는 아예 만들수가 없는게 요즘 홍시이긴 합니다만.

닥종이 공예품에서는 그런 씁쓸한 현실 느낄 필요없이 그때 그 시절의 소박함을 엿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도 이제 나름 나이좀 먹은 축에 들어갈 듯 하지만

그래도 저런 옷 입고 학교 다닌적은 없으니, 이쪽이 저보다 좀 더 연식이 오래된 것 같네요.

 

국민학교때는 정말 저런 판때기 바닥에, 난로에 장작 때가면서 겨울방학을 기다리는 생활이었는데 말입니다.

지금 모교에 다시 찾아가면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어, 추억이 상처받을까 두려워 안 가게 되더군요.

 

 

 

그러고보니 저 주전자도 생각이 나네요.

요즘에 그런 식으로 교실에 방치해 뒀다간 세균이 어쩌고 하면서 난리가 날 것 같은데

그때는 그냥 운동장에서 달리고 들어와 벌컥벌컥 마시곤 했습니다.

 

겨울엔 난로 위에 올려놓고 보리차를 즐기는 상류계급의 티타임 같은 분위기도 연출했었죠.

 

 

 

공예박람회라고 해도 사진 찍을곳이 몇 없고, 절반 이상은 그냥 순수한(?) 상업 부스라 찍을것도 없었습니다.

물건을 사는데 중점을 둔 구경이 아니라서 카메라는 쉬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래도 이런 닥종이 공예부스에서 열심히 찍어댄 덕에 무거운 카메라 들고 간 보람은 있었네요.

 

 

 

동생분이 디테일 좋다고 감탄한 감자 모형입니다.

 

카레를 좋아해서 자주 만들어 먹는데, 그러다보니 감자 껍질 깎아내는데도 익숙하죠.

그때 항상 절 귀찮게 만드는 저 배꼽처럼 살짝 들어간 부위도 절묘하게 묘사해 놓았군요.

닥종이의 특성이긴 하지만, 감자에 저렇게 옥수수 수염처럼 보송보송하게 나 있는건 좀 특이하긴 합니다만.

 

이거 제 손톱 크기 정도밖에 하지 않는 녀석들인데도 정교하기 그지없네요.

 

 

 

공예박람회는 어느 정도 둘러봤습니다만, 그냥 돌아가기는 시간도 좀 남고 해서

옆에서 개최중인 어린이 박람회라는 것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전시장이 칸막이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당연히 무료.

 

뭐, 아이들한테 쏟아붓는 돈을 생각하면 당연하게도 공예박람회보다 월등히 붐비고 있었습니다.

공예박람회는 사실 박람회라는 이름 붙이지 말 것을 진지하게 건의해보고 싶을 정도니까요.

 

어린이 박람회쪽으로 슬쩍 넘어와서 휴식도 취할 겸 음료수 한잔씩 마십니다. 즉석에서 짜 주는 레몬과 자몽에이드입니다.

음료수 마시고 싶었던게 아니라, 저게 원래 1잔에 5천원인데 1+1 서비스 중이라서 견물지심에 그만.

 

전 마시면서 참 특이한 색깔의 레몬도 있구나 싶었는데 동생분이 그거 색소넣은거라고 지적해 주더군요.

친절하게 사진 찍으라고 음료수를 들어주기도 했는데, 찍고나니 참 들고있는 포즈가 특이하구나 싶었습니다.

 

 

공예박람회는 아무렇게나 대고 찍어도 한산한 반면

이곳은 최대한 사람이 안담기게 찍어야 겨우 이렇게 나올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니, 부모들이 뭐라도 좀 더 보여주고 해 주고 사 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굉장하다는 것을 세삼 느꼈습니다.

사실 공예박람회 보면서도, 이곳 어린이 박람회 쪽에서도 많이 들었던 말인데

자꾸 동생분하고 저를 부부로 생각하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이제 이 나이대에서는 다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뭐 기분이 나쁜 착각은 아니었습니다만, 만약 자식이 생겨서 부모가 된다면 이런데 애들 끌고오는거 참 힘겹게 느껴질 법 하네요.

 

 

 

이쪽 회장 중앙부에는 상당히 넓은 공간을 차지한 곳이 있었는데 시커먼 경찰버스가 임팩트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냥 폼으로 만들어 놓은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정말로 경찰인 듯 하더군요. 인상이나 몸집이나...

 

좀 전에 공예박람회 때도 경찰 조끼 입은 분들이 돌아다니길래

오늘 여기 테러 경고라도 있었나 했는데 아무래도 이곳에서 잠깐 외도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꿀같은 휴일에 나와 고생하는 경찰분들 대견합니다.

 

 

 

이쪽 부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씩 좀 헷갈리더군요.

이게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인지, 자기 아이가 이걸 가지고 놀면 머리가 좋아지고 훌륭한 아이가 되겠지 하고 자위하는 부모들을 위한 장난감인지.

 

별의 별 지능개발 장난감과 교육 프로그램들, 심지어 몇만원씩이나 하는 뇌파측정 기계까지 작동중입니다.

그 와중에 유아보험 들면 세탁기하고 냉장고를 준다는 부스는 오히려 순수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네요.

 

참 아이들 키우기 힘든 세상입니다. 어른들이 다 크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이죠.

 

 

 

이 날이 토요일이었나 그런데, 다음날 엄니하고도 한번 와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예박람회 쪽에서는 다기 같은거 마음에 드실려나 싶어서 한번 구경이나 해 보시라는 생각이지만

이쪽 어린이박람회 같은 경우엔, 요즘 한창 신경을 빼앗기고 있는 한 살짜리 손자에게 쥐어주고 싶은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르니까요.

대부분은 말도 어물어물 할 수 있을만한 나이대를 위한 부스라서 크게 관심 갈만한 건 없지만 말입니다.

 

아직 지문체취 같은 걸 이해하고 놀 만한 나이도 아니긴 하죠. 엄니는 손자를 계속 천재로 굳게 믿고 있는듯 합니다만.

 

 

 

경찰이 활약중인데 소방서라도 가만 있을수는 없나봅니다.

대구지역 소방서 중에서는 좀 규모가 큰 편인 중부소방서에서 지원 나오셨습니다.

 

아무래도 실제로 불을 피울 순 없으니, CSI 로 익숙한 과학수사대보다 어린이들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듯 하네요.

참 목숨걸고 고생하는 분들인데 박봉에 대접도 야박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근데 저 자동차 디자인이 왠지 위기창출 넘버원을 생각나게 해서 괜스레 겁이 나는군요.

 

 

 

자식은 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남녀 둘이서 왜 유아박람회를 서성이고 있는 걸까 싶었는데 의외로 사진 담을만한 녀석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유아박람회 옆쪽에는 또 대구경북 초중고등학생들이 참가하는 과학대전도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각자 부스에다가 다양한 체험이벤트와 신기한 과학 현상들을 시연중이었습니다.

 

이건 기하학을 설명하려고 한 모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크고 아름다워서 사진 담기는 좋더군요.

전 이런 모형을 보면 꼭 영화 '큐브'가 생각나서 참 재미있습니다.

 

 

 

구석탱이 공중에서 뭔가 흐물흐물 헤엄치고 있길래 가 보니 상어 한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그냥 풍선인 줄 알았는데 사실을 매우 정교한 첨단 장비의 집합체입니다. 무려 지느러미를 움직여서 앞으로 헤엄을 칩니다.

 

자세히 보니 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밑에서 누가 조종하는 듯 하더군요.

아무리 하늘이 자유로워도 마음가는대로 움직였다간 얼마 안가 무서운 아이들 손에 걸레짝이 될 테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지면에서는 수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지옥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렇게 혼자 느긋하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떠다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헤엄치는 모습이 너무 여유롭게 보여서, 굳이 상어로 디자인을 잡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다음엔 참치 정도로 만들어 놓으면 주위 식당들 매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 상어는 잠깐 내려온 상태고, 부스 주변 풍경이 대강 이랬다는 것을 한번 남겨봤습니다.

역시 과학교과서 펼쳐놓고 교실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보다는 이런 체험학습이 압도적으로 유용하겠죠.

 

결국 학교에서 이렇게 교육시키면 되는데, 돈이 없어서 안되는 것 뿐일까요.

아님 뭐, 녹조라떼 생성 과정 같은거 체험학습 해 보는것도 괜찮겠습니다. 돈을 그만큼 처발랐으니까.

 

 

 

아이들이 정신없이 몰두하는 만큼 재밌다 싶은 부스는 대기열도 깁니다.

몇몇 부스는 벌써부터 재료가 다 떨어져서 문을 닫은 곳도 있더군요.

 

기술이 발달하다보니 과학관에서만 구경할 수 있었던 여러 실험 장치들을 이제 혼자서 만들어볼 수 있을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과학체험 할 만한 곳이 대구시내 전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말이죠.

온갖 병폐와 타협하면서도 오직 자식의 출세 하나만을 바라던 60년대 부모들의 열의가 최소한 이 정도 긍정적인 발전은 이루어 낸 걸까 싶습니다.

 

그게 애들한테 과연 좋은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어떨지는, 애들이 커 봐야 아는 것이겠지만.

 

 

 

요새 중국이 떠오르는 경제 대국이니, 한국에서도 역시 중국과 교류하는 법을 어릴때부터 익혀 놔야 하는가 봅니다.

중국하고 협력하면 역시 트레이드 마크인 가짜 계란 정도는 만들 줄 알아야겠죠.

 

선행학습에 그리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만, 이렇게 현실적으로 유용한 기술을 익혀 놓는 건

한국어도 모르면서 영어 쏼라쏼라하는 국경없는 멍청이들 양산하는 것 보다 훨씬 생산적이라 생각합니다.

 

음, 뭔가 쓰다보니 묘하게 의미가 왜곡되는 듯 하지만 뭐 괜찮겠죠.

 

 

 

이런 센스가 참 좋습니다. 얼마나 머리에 쏙쏙 들어올까요.

 

 

 

좀 넓은 부스에서는 단순한 체험학습을 넘어 로봇 축구 등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EBS 에서도 이런거 많이 해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직접 조작하는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겠죠.

 

미국에서는 좀 더 자극성을 가미해서 상대편 로봇을 아예 박살내버리는 방송도 내보냈던걸로 기억합니다.

한국은 뭐, 동방예의지국이기도 하고 소득이 좀 딸려서 그렇게 박살나는 로봇은 좀 문제가 있을 듯.

 

 

 

아이들이 뭔가 왁자지껄한 곳이었는데, 전 아동이 아니기 때문에 들어가기가 좀 그렇습니다.

어릴 때야 밖에 나가면 그럭저럭 뭐든 재밌어 하긴 합니다만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런 전시회장에서 하루 꼬박 여러가지 체험을 즐길 수 있는걸 보면

확실히 예전보다는 질적인 면에서도 양적인 면에서도 풍요로워졌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단지, 그것을 위해 희생된 다른 쪽 풍요로움이 꽤나 아쉽다는 게 문제긴 하겠네요.

애들은 그저 열심히 놀고 배우면서 세상이 얼마나 신기하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궁금해하는 마음을 가지면 될 것 같습니다.

 

중딩들도 뉴스에서 뭐 좀 봤다고 '힉스 입자 그 사람이 노벨상 받았더라'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니

한국에서도 걸출한 과학자가 좀 배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

 

 

 

어지간히 구경 후 전시화장을 나오니, 우산이 거의 소용없을 정도의 비가 쏟아지던 하늘은 말짱해져 있습니다.

대구는 참 비가 어지간히 안오기도 하지만 왔다고 해도 어느샌가 싹 사라져 버린단 말이죠.

 

그래도 가뭄이랄 정도로 바싹 마르진 않았고, 기록적으로 무더운 날이 지속되었으니 농사는 잘 될거라 봅니다.

동생분과 저는 점심이나 한끼 먹으려고 하는데 비가 그쳐서 다행은 다행이었네요.

 

 

 

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어릴적에 이런 추억이 있을수가 없는 게

그 당시엔 코엑스나 엑스코 같은 컨퍼런스 회장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이제는 쉴새없이 전시화나 박람회가 열리고, 그 중에서 잘만 찾아들어가면 일년에 몇 번씩 새로운 것들을 즐길 수 있습니다.

분명 물질적인 양육, 교육 요건은 예전에 비해 참 좋아진 세상인데

어째 가면 갈수록 애 키우기 너무 힘들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그거야 뭐, 어른들이 애 키우기 힘들게 만드니까 그렇죠.

 

 

 

동생분하고는 시내에서 새로 생겼다는 무한 회전초밥집에 갔습니다만

비싸지 않은 가격에 무한으로 초밥을 먹을 수 있다는, 식도락이 아니라 진귀한 체험현장 같은 즐거움일 뿐이지

먹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곳의 초밥을 초밥이라 부르는 건 제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초밥을 먹기 위해서 가는게 아니라 그냥 시장에서 떡볶이 사먹는다는 기분으로 가면 딱 맞을듯 하네요.

 

이상하게 2시간 가까이 먹으면서 딱 한접시 나온 보리새우 초밥의 정체는 무엇이었을지 지금도 궁금하긴 합니다.

 

동생분하고 제가 구입한 브로치 비스무리한 정체불명의 장식품입니다.

질감도 특이하고 좀처럼 본 적이 없는 신기한 녀석이라, 부모님 옷에 끼워드릴까 싶어서 구매해 왔죠.

얼마나 끼고 나가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보석이나 귀금속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닥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을것 같네요.

 

하나는 동생분거고 하나는 제가 엄니 드리려고 산 거고, 하나는 그냥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제가 산 건데

잠깐 서울 갔다오니까 엄니가 제 걸 형수한테 줘버렸습니다. 뭐 이쪽 집이란 원래 그러게 돌아가는 것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9월에 열린 이 공예박람회라는 건, 만족할 만한 볼거리는 거의 없었습니다만

파장시간에 떨이 상품이라도 한번 사 보려는 사람들은 마지막날 오후쯤 한번 가보면 괜찮을 것 같더군요.

저희 엄니와 저도 마지막 날 오후에 가서 적혀있는 가격보다 5만원 정도 싸게 다기세트를 하나 업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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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4일날 대구 엑스포 전시장에서 공예문화박람회가 개최되었다는 동생분의 정보에

오랜만에 카메라 녹이라도 좀 털어내려고 가 보았습니다만, 그날 대구에 비가 어마하게 쏟아지고 있었죠.

저도 꽤 고생했습니다만, 동생분은 40분 넘게 지각할 정도로 대구 도로상태가 많이 안좋았습니다.

 

시원하게 내리니 기분은 좋았습니다만.

 

박람회는 무료라서 부담될 것 없지만 반대로 무료 전시회라는 것은 전시회장 내부가 상품 판매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차라리 입장료가 있는 전시회를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만, 그래도 구경하고 안 사면 되니까 그냥 한번 와 봤네요.

 

 

 

안에서 기다리는것도 귀찮아서 밖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동생분이 도착했습니다.

그 날 코엑스에서는 공예 박람회 외에도 어린이교육 용품전이나, 대구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과학축전까지 열리는 탓에

단체관람객이 많은 어린이 부스나 과학축전 쪽에는 사람들이 꽤나 바글바글한데

공예박람회 쪽은 상대적으로 한산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더군요. 저한테는 매우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한국이 대체적으로 야행성 문화라 그런지, 오전에 도착한 박람회 내부는 꽤나 널널했습니다.

스마트폰이란게 존재하지 않을 때부터 박람회를 다녀오고 있는데

요즘엔 확실히 부스 직원들이 별로 지루하지는 않겠더군요. 전부 맛폰만 보고 있으니.

 

하지만 역시 부작용도 있는 것이, 관객들이 앞에 다가가서 구경하고 있어도 눈길 한번 안주고 계속 맛폰만 터치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무료 입장이라는 거 티라도 내는듯이, 접객마인드라는 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서 그냥 마음 비우고 둘러보면 좋겠더군요.

 

 

 

그래도 직접 만든 금속공예품을 판매하시는 분의 부스에는 꽤나 볼게 많았습니다.

정교함에서 뛰어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감성있는 작품을 잘 만드시더군요.

 

저 머리에 꽃 소녀는 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막상 생각해봐도, 제가 저걸 어디 달고 다닐만한 공간이 없어서 이성이 감성을 압도하고 말았습니다.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 정말 저런 거 어디다 걸고 다니는 건지.

 

 

 

사진촬영도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열심히 찍었습니다.

감성적인 작품도 많지만, 캐리커쳐나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으신 분인지 눈에 익은 캐릭터들 모형이 자주 들어옵니다.

금속으로 저렇게 굳게 다문 입술표정까지 표현해 내려면 어떻게 주물러야 할지 저로서는 상상이 안가는군요.

 

확실히 보고있으면 참 대단하다 하나 갖고싶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닙니다만

악세사리라는 건 막상 사용할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게 구매의 가장 큰 걸림돌인것 같네요.

 

 

 

캐릭터 상품뿐 아니라 제대로 된 브로치 등 장신구도 제작 판매중이십니다.

이런거라면 여자사람들 가방이나 옷주름 같은 곳에 끼워다니고 할 수 있겠죠.

전 물론 끼워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수공예품이다 보니 얼핏 생각보다는 비싸게 느껴질 수 밖에 없기도 할것 같습니다.

이런 장르에 대해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보통 여자사람들은 이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공예품을 좋아하는지

세상에 꽤 많이 돌아다녀도 사치품 마크가 딱 박혀있는 그런 대량생산품을 좋아하는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까요.

 

 

 

애니메이션에도 조예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건담 모형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제가 초딩 3학년쯤 되면 아주 열망에 사로잡혀서 저걸 사달라고 떼를 쓴 다음

월요일날 학교 가서 아이들한테 실컷 자랑을 했을텐데 말이죠.

 

지금은 뭐, 전체적으로 특정한 몇몇 관심거리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흥미가 동하지 않는

세상에 찌들어가는 인간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본인 스스로도 잘 느끼고 있는 편이라서.

 

 

 

이건 아마 촛대겠죠? 방짜를 생각나게 하는 무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용적으로 생각하자면, 촛농 흘러넘치는 걸 방지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는 단점이 생각나더군요.

 

 

 

추억의 캐릭터가 상당히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애증밖에 남지 않은 어두운 역사일 뿐이지만, 이 녀석 컨셉은 참 잘 설정했다고 생각합니다.

 

금속제다 보니 이런거 목에 걸고다니면 목디스크 걸리는거 아닌가 좀 걱정이 되긴 하더군요.

 

 

 

무료 입장인 만큼 모든 부스가 제품 판매를 목적으로 들어온 곳입니다.

그래서 무심코 사진 한장 찍으려 하니까 바로 옆에서 '찍으면 안되요' 라는 목소리가 날아오더군요.

물론 부스별로 흔쾌히 촬영 승락하시는 분도 있고 한데, 한번 그런 말을 들으면 부담되어서 더 이상 찍지 않게 됩니다.

 

뭐, 미천한 사진속에 담기기에는 너무나 굉장한 공예품들이라 그런 것이겠죠.

덕분에 구매의욕같은건 싹 사라져 버렸으니 잘된 것 같기도 합니다.

 

사진의 황토염색 제품들은 그리 만들기 어려운 건 아닙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슬쩍슬쩍 만들어서 엄니한테 선물해 주시더군요.

 

 

 

사진 찍는게 시들해져서 대부분 눈으로만 관람합니다.

저같은 실력으로 사진 찍어봤자 마케팅에 도움될 건 하나도 없으니까 별 문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뭘 봤는지도 잘 기억이 안나고 하니, 사진 안찍은 부스에 대한 말은 할 게 없네요.

 

다육이는 확실히 귀엽고, 볼때마다 한두 개씩 집어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닌데

이렇게 너무 작은 녀석들은 집에서 잘 기르면 금새 새 화분이 필요해질 정도로 잘 자라버리는 통에

좁은 곳에 가둬놓고 키우는게 좀 미안해 지기도 하더군요.

 

 

 

한지공예도 참 잘 해놨다 싶었는데, 이게 인형전시회와는 달리 입장료를 안 받아서 그런지

한장 찍자마자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말씀하시길래 그냥 카메라 접었습니다.

 

김장담는 순서대로 잘 만들어 놔서, 마지막에 완성된 붉은 김치는 종이공예가 가지는 부드러움을 압도할 정도로 생동감이 있었네요.

 

 

 

그 다음부터 찍은 사진은 전부 일일이 허가를 받은 것들입니다. 귀찮아서 구경한 것의 1/10도 찍지 않았지만.

방짜유기는 어릴적부터 볼때마다 참 느낌이 좋아서 엄니보고 하나 구입하자고 말을 하곤 했는데

이게 관리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라서 절대로 구입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어쩌면 제가 태어나기 전 시집살이에서 엄니는 이런 방짜유기에 어떤 한이 서려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사용과는 별개로 보기엔 참 아름다우니 이렇게 사진이나 찍어야죠.

 

 

 

가격도 물어보기 좀 부담스러워 보이는 멋들어진 녀석이었는데

잔 내부의 빛반사가 마치 가을의 강아지풀처럼 아련하게 흔들려 올라오는 느낌이 굉장했습니다.

 

이번 공예박람회는 참가사 전부가 대구 경북 주위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여기 전시품(상품)들이 국내 전체에서 상위권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10군데 중 1군데 정도는 실력 있다 생각이 딱 드는 곳이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그냥... 별것 아닌 것들이나 좌악 늘어놓고 뚱하게 앉아서 맛폰이나 만지작거리는 장사치들 뿐이죠.

 

 

 

색이 참 곱게 세팅된 다기세트였습니다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왠지 흑백이 더 어울릴 것 같아서

고운 색을 버리고 담아봤습니다. 사진은 맛있는 밥을 먹을 때처럼, 적당히 아쉬울 정도가 제일 좋은 법이겠죠.

 

 

 

이건 색을 버리면 존재의미가 없어서 울긋불긋하게 담아봤습니다.

특정 모양을 한 틀에 이녀석을 한알 한알 끼워넣어서 장식품을 만드는 건데

동생분과 저는 한참을 앞에 서서 고민했습니다. 도대체 그렇게 만든 모양을 어떻게 유지시키는 것인지.

 

접착제로 붙이는 것도 아닌듯 한데 어떻게 저 콩알 비스무리한 것들이 딱 붙어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죠.

 

 

 

결국 앞에서 체험교실 열고 있는 분한테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물어보니

다리미로 녹여서 붙이는 방식이라는 명쾌한 대답을 얻었습니다. 답을 알고나니 굉장히 간단한 발상이었네요.

 

왜 이런 것들은 알고 나면 '왜 몰랐을까'하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 몇몇이 꽤나 집중해서 한알 한알 뭔가를 만들고 있더군요.

자수보다는 수고가 덜하겠지만 아이들한테는 재미있는 놀이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의 다림질은 조심해야겠지만.

 

 

 

공예문화라는 제목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예술작품이라 불릴만한 그림들이 벽면 가득히 붙어있는 부스입니다.

 

사진 찍어도 된다고 하시길래, 허락해 주신게 후회될 정도로 동생분과 둘이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그러면서도 구입은 하나도 하질 않았으니, 장사하러 온 사람들이 사진촬영 귀찮아 하는것도 이해는 가더군요.

 

증거를 남기려고 일부러 비스듬하게 찍었습니다. 그림이 아니라 종이로 만든 입체 작품입니다.

 

 

 

밥아저씨의 참 쉬운 그림처럼 밑바탕 색을 은은히 깔아놓은 캔버스에

종이를 입체적으로 배열한 작품입니다. 이런 방식의 재미있는 점은, 정면에서 봐도 은근히 입체감이 느껴진다는 것이죠.

 

프로급의 작품이니 초목의 형태도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색 조합도 단순한 색종이로 보이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직접 하나하나 색칠한 종이가 아니라면 아마도 그라데이션으로 만들어진 색종이를 사용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아이가 없는 집에 걸어놓으면 부서질 염려도 없고 좋은 장식품이 될것 같습니다.

 

 

 

지금 한창 블로그에 연재중인 여행기 중 토요타 박물관의 전시 부스에 있었던

종이 겹쳐서 만드는 예술 작품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만, 소재가 종이일 뿐 표현 방식은 완전히 상이하다고 하는게 맞겠더군요.

 

이곳은 종이로 글자 그대로의 입체감과 현실성을 표현하는데 힘을 둔 반면

토요타 박물관의 작품은 색이 다른 평면적인 종이를 겹쳐서 명암대비로 입체감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두 작품을 나란히 비교해 보면 참 재미있겠다 싶었습니다.

 

 

 

이쪽에 전시된 작품들은, 종이를 이용한 입체 그림이라는 표현방식뿐 아니라

대부분의 작품들이 꽃, 나무, 호수 등을 소재로 한 밝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는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일 듯.

 

엄밀히 말씀드려서 그냥 보기 좋은 작품이지 예술적 감각이 느껴지는 쪽은 아닙니다.

은은하고 밝은 색상으로 아이들이 만든 듯한 단순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묘하게 사실적이고 입체감 있는 '두가지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이쪽의 장점이 아닐까 싶네요.

 

 

 

제작 방식이 방식이다보니, 정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만드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마치 풀 한포기 한포기 정성들여 심어가는 것이, 모내기 때의 고난이 생각나는 듯 하네요.

저도 한번 만져보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데 아이들한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장르 같습니다.

 

 

 

다기를 판매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동생분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을 고려하는 찻잔이 있었기 때문에

미리미리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게 되었네요. 다른 곳에 비하면 확실히 부스가 잘 꾸며져 있어서 사진 담이 좋았습니다.

 

저희집 차방은 이미 꽉 차버려서 더 이상 장식품 관련은 구입하기가 힘드네요.

차방은 정갈함이 중요하기 때문에 보기 좋다고 자꾸 사들이다간 창고처럼 되어버립니다.

 

 

 

저는 녹차도 좋아하긴 하지만 보이차, 오룡차, 철관음, 대홍포 계열을 많이 마시는데

이곳 부스의 다기들은 도자기처럼 흙을 유약없이 고온으로 구워내서 만드는 방식이고

흙에 철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완성품은 은은히 반짝반짝한 모양이 됩니다.

 

보기는 좋은데 사실 흑차나 청차에 어울리는 다기는 아닙니다. 철 성분과 흑차는 궁합이 별로 좋지 않죠.

암차인 대홍포 정도라면 이런 다기와도 잘 어울립니다만, 국내서 고급 대홍포 구하는건 꿈같은 이야기라...

 

 

 

구입할 마음은 들지 않아도 사진 찍기엔 좋은 잣찬.

살짝 바랜듯한 꽃도 좋은 포인트가 되고, 철 성분때문에 불규칙하게 그을린 잔 속의 무늬가 매력입니다.

 

 

 

동생분이 구입한 다기, 좀 전의 입체파 꽃처럼 너무 튀지도 않으면서

디자인의 매력을 살리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가격이 싼 편은 아니지만 조금 흥정을 해서 구입했습니다.

저희 엄니도 이런거 좋아하니, 다시한번 같이 와서 구경시켜드리면 몇개 득템하는게 있을지도 모르겠더군요.

동생분이나 저나 이런데 돌아다니면 충동은 많이 들지만 좀처럼 돈이 무서워서 구매까지는 꺼리는 성격인데

덕분에 재밌게 구경하면서도 가끔 발걸음이 아쉬워지는 식으로 회장을 둘러봅니다.

 

사진이 많아서 다음 포스팅으로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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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외곽에 위치한 사찰 역시 형태는 조금 달라도 갓쇼즈쿠리 양식을 갖추고 있다.

왠지 바삭하고 폭신하게 느껴지는 지붕 모양인데, 느낌과는 별개로 역시 크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건물의 형태가 여느 일본식 마을과는 달라서 묘하게 크기에 대한 감각이 다르게 느껴진다.

 

참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인지 여기서도 세전함에 동전 넣는 사람들이 많은데

형이상학적 존재한테 돈으로 뭘 좀 빌어보겠다는 행동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5엔짜리 하나 던지면서 여행 안전하게 끝나도록 해 달라고 빌어본 적은 있어도

사실 그건 저 위의 어떤 분한테 빌었다기 보다는, 관광 체험과 비슷한 감정으로 해 본 놀이의 일종이었을 뿐이고.

 

 

 

겨울 풍경이 훨씬 유명한 시라카와고임에도, 시원하게 쭉쭉 자라나는 벼들을 배경으로 하는 모습 역시 마음에 들지 않을리가 없다.

혹시 겨울에 먼저 이곳을 찾아와서 '겨울이 진국이라니 여름엔 안가도 되겠지' 라고 생각해 버렸다면

오히려 훨씬 더 손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케이크 위의 딸기는 마지막에 먹는 성격인데, 이런 경우엔 그게 이득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

 

나고야의 더위는 좀 더 매마르고 강렬한 느낌이었는데 이곳의 더위는 뭐라고 할까, 같은 온도임에도 '이 정도는 있을수 있을 법한' 그런 날씨라는 기분이 든다.

사람이 느끼는 날씨라는게 단순히 온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지상의 여러 대상들이 무엇인가에 따라서도 바뀐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

 

 

 

그림같은 풍경임에 틀림없는데, 그림같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순수함이란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는 사람마다 틀리니, 어느 쪽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말 그대로 너무 그림같은 풍경이라서 농촌 생활의 흔적이 퇴색된다고 할까.

시라카와고는 갓쇼즈쿠리 촌락 중 가장 유명하고 교통 시설이 그나마 잘 갖춰져 있어서

관광객도 많이 오고, 그들을 맞이할 여유수준도 가장 높다.

너무나 정비가 잘 되어있다 보니 마치 공원 산책하듯 느껴지기도 하고

그 점에 있어서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강인하게 역사를 이어온 마을의 거친 손길이 많이 바랜 느낌인 것도 사실이다.

 

좀 더 깊숙한 곳에 위치한 스가누마(菅沼)등의 마을은 이곳보다 규모도 작고 관광객을 위한 시설도 부족하지만

고립된 만큼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경치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촌락의 진짜 숨결을 더 느끼고 싶어하는 매니아들에게는

시라카와고보다 더 인기있는 곳이기도 하다. 본인도 흥미가 동하긴 하지만 이곳과 비교해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서.

 

 

 

좀 사는 주택은 담 속의 마당에 고운 잔디를 깔고 산다는 소문을 듣기는 하는데

이곳은 잔디가 필요없는 듯 하다. 집 앞에 깔린 논밭이 훌륭한 잔디 역할을 해 주고 있으니.

 

겨울엔 이런 곳에 물 좀 채워놓으면 자동으로 스케이트장이 만들어 지니까 놀기 편할것 같은데

이곳은 눈이 워낙 많이와서 스케이트장이 깨끗하게 유지되기가 힘들거라는 예상을 해 본다.

한국도 그러리라 생각하는데, 척박한 산골 소년소녀들은 일년내내 밖에서 뛰어노는게 일이라

이런 산간지방 출신 사람들은 체력이 평범하게 괴물같은 경우가 많았다.

 

잠깐 산책나가는게 500m쯤 되는, 길도 안나있는 야산에 훌쩍 올라가는 것이고

겨울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나무숲 사이를 급조 썰매에 타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려가기도 하더라.

나무에 정면으로 박으면 정말 영화의 엑스트라들처럼 되어버릴 것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만 노는데

도시 아이들의 건강함과 산골 아이들의 건강함은 그 기준부터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받는다.

 

 

 

일본은 마당 역시 정원처럼 하나의 작품으로 두고 축소화된 자연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예술로서의 마당은 역시나 돈과 권력이 충분한 계층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였고

특히나 이런 외진 산골마을은 실용과 효율로 똘똘 뭉친 생활만이 생존의 열쇠였기 때문에

그런 정원은 거리가 먼 곳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도 자투리 공간을 이용한 삶의 질 향상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풍부하기 그지없는 물을 이용해, 옆집에 놀러갈 정도의 작은 공간에 나름 멋들어진 정원이라 할 만한 모습을 갖춰 놓았다.

더울 때 뒷문 열어놓고 이곳을 감상하는 것도 산골 생활의 여유라고 할까.

 

중앙의 두꺼비 녀석은 마치 자기가 신선인 것 처럼 구름 위에 앉아있다.

 

 

 

가난하다보니 여행중엔 적당히 돈 좀 아끼는 성격이라서

숙소에서 교통비만 4만원이 넘게 들어가며 관광하러 가는 경우는 참 드물다.

 

자칫하면 괜히 큰돈 들여 이런 거 보러왔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기 때문인데

다행이랄까, 이곳 시라카와고만은 출발 전에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은 곳이다.

실제로 와 보지만 않았을 뿐 워낙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기회가 많았고

사진속에 담긴 마을의 모습은, 작가의 능력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아름다울 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

 

웅장한 스케일이 아니라서 부담없이 즐겨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 곳인데

막상 마을 입구로 다시 돌아오니, 뭔가 놓친 풍경은 없나 한번쯤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담은 마을 사진은,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와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그 모습이 된다.

갓쇼즈쿠리 가옥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지만,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 갖춰야 할 요소가 이 풍경 속에는 모자라지 않게 담겨있기 때문일까.

 

 

 

다리 위는 어쨌든 시야가 확 트이기 때문에 사진 찍기 좋다.

장소가 같아도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진이 찍힐리는 없다.

하지만 두명이 스쳐가기에도 좁은 다리 위에서 언제까지나 사진을 담는건 좀 부담스럽다.

그나마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다들 사진찍는데 정신이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정도는 이해해 주는 듯 하다.

 

마을 내부의 풍족해보이는 수량에 비하면 뭔가 좀 부족한 기분이 들긴 해도

이건 홍수방지를 위해 일부러 도랑 폭을 넓게 잡은것에서 비롯되는 착시현상이라 이해하기로 한다.

 

 

 

강가에서 낚시하는 분이 있길래 이럴 때를 위한 망원렌즈다 싶어서 도촬을 시도한다.

복합매체의 힘이란 이런 것인지, 이런 광경만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난다.

 

유속이 상당히 빨라서 어떤 고기가 잡힐려나 궁금한데

내가 저기까지 성큼성큼 내려가서 친근하게 말 걸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저기 멀리 시로야마 천수각 전망대의 모습이 보인다.

천수각 쪽에서 본다면, 마을 쪽까지는 시야에 잘 담겨도 이곳 다리 위까지는 시선이 잘 머물지 않는다.

 

망원렌즈로 찍어보고 확대해 보니 좀 전보다 사람이 훨씬 많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시라카와고에 왔다 하면 최우선 목표가 저기서 전망 감상하는 일인 듯 하다.

 

 

 

마을을 벗어나니 버스 도착시간까지 40분쯤 남아있다.

한번 놓치면 1시간 30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하고, 그나마도 오후 5시 전에 모든 버스가 다 끊겨버리는 곳이라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좀 일찍 나왔는데 그래도 볼것 많고 산책할 곳 많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오늘 식사를 호텔 조식외엔 아무것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좀 전 민가원에서 메밀 아이스 하나 빼고.

시라카와고의 풍경이 찍사로서의 본인에게 포만감을 준 것인지 여지껏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가기 전에 시간도 좀 남았고, 수분 보충하는 겸 음료수 사면서 뭐라도 하나 먹어봐야겠다고 생각.

 

가게 안에 앉아서 제대로 식사하기는 시간이 좀 애매해서 간단한 요기거기를 찾아본다.

이곳 시라카와고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듣한 히다규(牛)를 이용한 먹거리가 많다.

이곳도 물론 히다 지역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원래 소를 많이 기르는 곳은 아닌데.

 

원래 수량 풍부한 산골 마을에서 먹는 간식으로 유명한 건 '이와나'라고 하는 곤들매기 구이다.

내장 제거하고 꼬치에 끼워서 숯불에 구운 후 굵은소금 쳐서 뜯어먹는게 진짜 맛인데

일단 이와나 꼬치구이는 시간과 손길이 굉장히 많이 가는 간식이라 아무래도 손님 많은 이곳에서는 팔기 힘들것도 같다.

 

히다규가 들어간 고로케라도 먹어볼까 싶어 사진에 보이는 가게로 다가갔는데, 왠걸 품절이라고 한다.

관광온 사람들이 간식도 많이 사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세삼스럽게 하게 된다.

본인은 관광지에서 실컷 돌아다니고 난 뒤에, 돈 한푼이라도 보태주자는 의미로 겨우 한가지 정도 먹을까 말까인데.

그러고보니 본인같은 관광객은 돈이 안되니 별로 좋아하지 않을듯 해서 좀 소심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옆집 가게에는 아직 코로케가 남아있는지 사람들이 들고가는게 보인다.

그게 수량을 넉넉하게 준비해서 남아있는건지, 옆집보다 인기가 없어서 남아있는건지 알 수가 없으니.

 

지금은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보다, 왕복 버스비만 소비하고 가 버리기엔 이 마을에 좀 미안한 듯 해서 먹는 것.

그렇다고 배고 안고픈데 제대로 된 정식을 먹어치우는 것도 아깝다.

 

 

 

의외로 하나 남은 고로케집은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들에게 대인기라서

하나 먹으려면 3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냉동된 완성품을 가져와서 튀겨내는건줄 알았는데

재료를 전부 직접 반죽해서 만들어내는 수제품이라고 한다. 이런 북적이는 관광지에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심히 놀랍다.

 

물론 그런 경우엔 재료가 떨어지면 눈에 보이는 손님을 포기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등의 손해가 있지만

그 손해가 아까워서 저급의 냉동재료를 잔뜩 들여와 팔아재낀다면

관광객들의 실망이 키워내는 실망감은 우물에 풀어버린 독처럼 천천히 뿌리까지 파고들어 갈 것이다.

 

물론 시라카와고가 남아있는 한에는 욕하면서도 먹을건 먹는게 관광객이란 부류겠지만

만약 그런 식으로 영업을 한다면 지금 나처럼 이곳에 대한 좋은 감정을 글로 쓸 수 있을까?

한국의 상당수 관광지를 다녀와서 입도 뻥긋하기 싫은 이유가 그런 것이니까.

 

관광지는 손님들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프라이드를 가져야 한다.

인생은 허무한 것이니, 자기 살아있을 동안 돈이나 좀 빨아먹고 끝내자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이런 마을이 관광지로 남아있지도 않을 것이다.

 

 

 

햇살에 피부가 따끔거리긴 해도 느긋하게 앉아 일기 좀 쓴 다음 막 튀겨낸 불같은 고로케를 손에 쥔다.

크림 고로케도 좋고 해산물 고로케도 좋고 고기 고로케도 좋아하는 박애주의자라서

딱히 그 유명한 히다규를 사용했다고 해도 그닥 특출나게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러번 말하지만 그 드높은 위상을 가진 히다규는 제대로 된 고기집에서 비싼 녀석을 먹어야 체험할 수 있지

한개 2천원짜리 고로케에서 일본 최상급 소고기의 맛을 판단하는건 좀 무서운 일이다.

 

그래도 히다규 고로케를 선택하는 것은, 사실 고로케가 이거밖에 없어서.

그리고 아무리 가난한 여행자라 핸들 그 지방에서만 '제목이나마' 한정으로 붙어있는 녀석에 손을 대고싶지 않겠는가.

미각이 둔감하다고 생각하진 않아도 대강 아무거나 맛있게 먹는 성격이라서

히다규 같은 고급육이 아니라도 고기는 맛있게 먹는다. 질이 떨어지는건 뱉어버려도 적당히만 맛있으면.

 

그러니 히다규를 썼던 안썼던, 재료를 직접 섞어서 바로 튀겨낸 이 고로케가 맛이 없을리는 없다.

 

 

 

좀 전에 뭔가 우두두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이커들이 떼마실을 나온 듯 하다.

다행히도 구경간 듯 주인들이 보이지 않아서 슬쩍 한장 담아본다.

 

바이크에 대해 아는게 없어도 이 녀석들 한대값이 왠만한 중형차 정도 한다는 것 쯤은 알 법 하다.

나름 험한 길이라고 해도 원래 바이크가 커브를 즐기는게 재미있다고 하니, 이 사람들에게 이곳 투어는 스릴 만끽하는데도 좋은 곳일 듯.

본인은 이 정도로 큰 바이크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넓직한 사이드백을 떡하니 달아도 전혀 미관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자태는, 자전거 여행경험을 가진 자로서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두시간쯤 버스를 타고 산길을 꼬불꼬불 통과해서 히다 타카야마로 돌아오니 시간은 늦은 6시를 넘어간다.

어제 그 마을 제가 오늘도 이어진다고 하는데,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오늘 여행은 이걸로 끝이라는 기분이 마음속에 드는 이상

무리하게 어딜 더 둘러본다던가 하는 일은 꺼진 불씨에 허무하게 바람을 불어넣는 일인 뿐이다.

 

어째 그 맑고 깨끗했던 타카야마가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네오 LA처럼 느껴지고

나고야에서 버스 한번 타고 온것만으로도 녹초가 되어 쓰러지듯 잠들었던 어제에 비해

아침부터 하루종일 걸어다니기만 했음에도 아직 정신은 말짱하다. 취향에 맞는 곳을 다녀온 덕일지 피톤치드의 효능일런지.

 

야행성인 한국민족에게는 아직 초저녁과 같은 시간이지만, 오늘은 시라카와고만으로 충분한 느낌이다.

가볍게 먹거리 좀 사고, 내일 버스 시간표 안내서를 뒤적이며 TV를 본다.

문득 사진 좀 잘 찍혔나 싶어서 카메라의 재생버튼을 눌러보기도 한다. 낮에는 시안성이 낮아서 그냥 윤곽과 컬러채널만 확인해서

어떻게 찍혔는지 유심히 보지 못했는데, 어두운 숙소 안에서 보니 아주 광채가 번쩍번쩍 하는게, PC로 옮겨서 보면 실망할 듯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나고야에서 구입한 책도 좀 읽고 TV도 보고 일기도 쓰고 하면서 하루의 마무리까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보낸다.

강렬하고 역동적인 흥분을 가져다 주는 곳은 아니지만, 시라카와고에서의 하루는 내가 열받을 요소가 하나도 없어서

여행중에도 온갖 사념이 머리속을 휘젓는 본인치고는 꽤나 안락한 밤을 보낼 수 있을듯 하다.

 

 

딱히 관광지역과 민간지역이 구분되는 곳은 아니지만 외곽으로 걸어갈수록 평범한 일본 민가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얼마 후엔 이런 곳에서 묵게 되겠지만 아직 실감나지는 않는다. 이 사진을 담으며 괜스레 조금 마음이 답답해진다.

 

특이하다는 점만 빼면 이곳 시라카와고에 서 있는 건물들은 다들 정겹고 아담하다. 주위 환경의 덕을 톡톡히 보는 듯.

 

 

 

정비를 하긴 했겠지만, 이곳에서 상수도 하수도의 개념이 있는건가 약간 궁금하긴 하다.

가끔 이곳에 손을 찰싹찰싹 담궈보는 관광객도 보인다.

 

물의 외견만으로 충분히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긴 해도

이런 개울 근처에 피어있는 식물들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물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냄새나는 물에는 뭔가 진득진득한 식물들이, 사흘째 야근하며 담배 피워댄 샐러리맨의 눈가에 드리워진 다크서클처럼 우중충한 색깔로 포진하고 있다.

어쩌면 그 식물들은 몸소 환경정화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사람의 좁은 아량으로는 그걸 보기좋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다른 갓쇼즈쿠리 가옥과는 뭔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싶었더나, 까페로 사용중인 녀석인 듯 하다.

담벼락을 대신하듯 여유있게 늘어서 있는 화분도 나름 자기주장을 하고 있지만

레이스의 끝자락같은 덩쿨 목걸이가 과하지 않게 까페 뒤쪽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역시 분위기로 먹고 사는 까페라 그런지 남다른 센스를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는게 느껴진다.

 

 

 

글쎄, 확실히 매력적인 디자인에 사람 발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유감없이 어필하고 있는데

돌아가는 버스가 2시간도 남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저기 들어가는건 괜히 아쉬움만 더할 듯한 기분이 든다.

 

좋은 까페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커피 여러잔과 함께 책 반권 정도는 읽을 정도의 시간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본인의 철학으로는

지금처럼 멋진 간판을 뽐내고 있는 시라카와고의 까페를 즐기기에 가장 부족한 것이 시간이라는 녀석이다.

여행중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시간에 쫓기는 일은 없도록 하고 있어서, 들어가면 쫓길 것이 분명한 까페는 살짝 기피 대상.

 

하지만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아쉬운 기분이 드는것도 아니다. 여행은 갈망하는 것이며 미련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겨울엔 좀 더 일찍 와서 따뜻한 커피로 손을 녹여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건 또 뭐하는 녀석들인지 모르겠다. 시라카와고가 이렇게 깨끗하다는 데몬스트레이션의 일종인가.

잘들 크고 있으니 확실히 깨끗하긴 하겠는데, 관광객들에게 어필하는 의미 이외의 뭔가가 더 있는 것일까.

 

혹시 이렇게 잘 키우고 있다가 식당에서 관광객 상차림에 올라오거나 하는 것인지.

이 수로 양쪽 끝에는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서 녀석들이 도망갈 수는 없다. 장식용이 아니라면 뭔가 이유는 있을듯 하다.

다음에 까페 들어가면 이런 거나 한번 물어볼까 싶다.

 

  

 

같은 곳을 여러번 찍지는 않는 성격인데, 저 까페에 역시 조금이나마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일까.

괜스레 자리를 떠나기 전 한번 더 둘러보게 된다. 커피가 그리운게 아니라 정말 참 잘 꾸며놨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언뜻 대문 바로앞에 논자락이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 가옥처럼 보여도, 확실히 까페라는 공간의 자기주장력이 스믈스믈 세어나오는 느낌.

 

2층 창가쪽이 꽤나 인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갓쇼즈쿠리 가옥은 이곳만의 전매특허니 침해하고픈 생각까지는 들지 않지만

밖에서 봤을때 기분좋은 까페 분위기는 다른 형태로라도 구성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멋진 까페 탐방같은 잡지에 한번쯤은 실려도 좋은 곳 아닐까.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걷다보니 가끔 관광객들이 가는 길과는 전혀 관계없는 곳으로 빠지기도 한다.

설렁설렁 걷다 보니 어느새 좁던 길은 그냥 끊겨버리고, 그 앞에는 어떤 민가의 앞마당과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다.

아직까지는 길 위에 있다고 하지만, 왠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빠져나온다.

 

빠져나오기 전에 건너편 가옥의 뒷마당 모습을 한장 담아본다.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지는 않은 이곳 사람들의 좁은 공간.

뒷마당이든 앞마당이든 이렇게 집 주위에 일정 공간이 있으면 그것만으로 사람은 여유를 느낄 수 있는듯 하다.

 

뒷마당에 나오자 마자 잘 여물어가는 벼이삭 풍경이 펼쳐지는 농촌생활이라면 꽤나 즐거울 것 같은데.

 

 

 

개인적인 영역이라면 앞마당 가꾸기, 주변 길가 청소하기 정도.

마을 공동체라는 영역에서는 가로수 정비, 도로 청소, 하천가 청소 등등

자본의 핏줄이 땅 속까지 흐르는 도시가 아닌 이상, 시골 마을은 알아서 부지런해져야 하는 일이 많다.

아직도 회람판 돌려가며 팀과 구역을 정해 종종 청소, 수리, 유지 등의 업무를 협동하는 시골 마을은 많이 있다.

 

아마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법한 일들도 없잖아 있다.

자연 속에서 산다는 건 디지털 TV 화면에서 물흐르듯 굴러가는 귀족적인 게으름과 전혀 다르다.

풍성하고 맑은 공기를 주는 대신 그만큼의 땀을 흘려야 굴러가는게 진짜 자연이라는 녀석.

 

이곳의 청결도나 정비 수준을 보면, 자연이 그들에게 배풀어주는 것 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이 정도로 유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남에게 맡기면서까지 바빠야만 굴러가는 도시라는 생태계에 비하면 좀 더 인간적이라 이렇게 정감이 가는 것이겠지.

 

 

 

좀 전에 얼핏 보였던 '시라카와고에서 가장 큰' 갓쇼즈쿠리 가옥인 와다 씨의 저택이 보인다.

앞서 말했든 입장료가 300엔이나 해서 굳이 들어가고픈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저기서 바라보는 풍경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공짜로 볼 수 있는 전망대 풍경도 원없이 안구신경속에 집어넣어놨으니까.

 

저기서 경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들어와 볼 만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다면

나 역시 저 사람들이 창가에 선 모습을 이렇게 담으며 '밖에서 보는 걸로도 괜찮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갓쇼즈쿠리 가옥이 얼마나 큰지 알아서 대비되어 주니 고마운 느낌도 든다. 창문이란게 그냥 창문이 아니다.

보통 거주용으로는 1층만 사용하고, 위층들은 창고로 사용하거나 방직 등 가내수공업에 사용되었고 하는데

그걸 감안해도 정말 보통 큰 건물이 아니다. 300여년 전에 한 가문의 가족 전체가 모여살던, 작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큰 건물이라는 느낌.

 

 

 

서두르지도 않았고 아쉬움에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지도 않은 산책은

점점 얼핏 시야에 들어왔던 듯한 풍경들이 다시 한번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하며 그 끝을 느끼게 한다.

 

충분히 이곳저곳 둘러보았고, 정감이 가는 풍경에는 5분이고 10분이고 멈춰서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등

관광을 즐긴다는 의미에서 부족함이 없는 시간을 보내왔지만, 아쉽다거나 부족하다거나 하는 생각이 아닌 이 감정은

아마도 '2013년 8월의 시라카와고' 라는 시간의 단면만을 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공백이 아닌가 한다.

 

수백 년간 이곳에 순응해 오고 저항해 온 마을 사람들이 남긴 실체적 흔적들은 관광객의 시선을 멈추게 하지만

그 이어짐과 별개로, 태양과 달의 움직임에 따른, 1년이라는 주기의 흔적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서 되풀이 중이다.

이번 방문에서는 그 이어짐을 경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돌아가는 발걸음을 살짝 무겁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 단면의 인식이 나의 여행에 대한 머릿속 정의에, 어느 의미에서 부합되지 않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 끌고 1년동안 일본을 돌아다니거나 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 틈나는대로 이 단편만이라도 즐기려 애를 쓰는 일반인이 되어 있다.

 

시라카와고는 자연의 권능이 남아있는 곳임에 틀림없고, 그 곳의 흐름을 끊김없이 느끼려면

지금의 나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다못해 다른 시간대의 단편이라도 더 느껴보려고 겨울 방문을 또 한번 생각해 본다.

 

물론 서두를 건 없어서 그게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몇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마음속에 메모를 해 두면 어쨌든 겨울의 시라카와고를 잊고 흘려보내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시라카와고의 풍경은 바닷바람의 강인함을 품고 있는 자연이 사람의 마을을 살짝 아플 정도로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라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건조 시기에 비해 거대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갓쇼즈쿠리 가옥과 함께

마을을 둘러싼 거대한 삼나무와 깎아지르는 산맥, 끊임없이 자라나는 생명력에 번갈아 눈을 빼앗기곤 한다.

 

사진을 담을때도 무의식적으로 조리개를 최대한 조이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 중 한 장면을 프레임 크기로 잘라내어

그 장면안에 들어간 모든 모습, 의식, 의지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기분으로 충만해 있었다고 생각한다.

풍경만큼이나 욕심을 내었다고 할까, 이곳은 이곳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나의 감성이 초라해 질 정도의 큰 그릇을 가진 곳이니까.

 

하지만 논 가장자리에 살짝 피어있는 수국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단렌즈의 조리개를 최대로 개방하여 한 장을 담는다.

담아내고 싶은 것과 담아내야 할 것, 그리고 그 만큼의 공간을 똑같이 비워내는 것이 사진이라는 사실을

이곳 시라카와고에 압도되어 한참 황홀해 하던 마지막 찰나에 다시 한번 되새겨 낸다.

  

 

이런 더운날 올라가기에는 심히 편안하다고 할 수가 없는 길이다.

멀리서 본 전망대 높이를 생각하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은근히 이 오솔길 경사가 급한 편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가빠온다.

몸무게 탓도 있고 카메라 탓도 있고. 건장한 사람이라 해도 5kg 짜리 숄더백 매고 오르는게 쉽지는 않을 듯.

 

 

 

그래도 친절하게 계단을 만들어 줘서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지만

왠지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기분에, 후세에 내가 여기 올랐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고 한다.

이렇게 찍어놓지 않으면 또 엄살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출몰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사실 날씨 탓이 가장 컸고, 여기는 그냥 동네 마실 나가는 수준밖에 안 되는 높이긴 하다.

 

 

 

근데 진짜로 좀 힘들긴 하다. 경사가 그리 만만한 편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치는 형태라서

이렇게 사진 한장 담아내는게 오히려 휴식시간이라 느껴진다.

 

훅훅거리는 숨소리와 후두둑 떨어지는 땀방울이 산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다.

다행히도 앞뒤로 나 말고 이곳을 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좁은 길목에서 사진 찍으며 좀 쉬어도 문제될 게 없었다.

노련하게 올라가는 사람들이 뒤에서 땀덩어리 본인을 지나쳐 갈 때, 가끔 계곡 너머로 몸을 던지고픈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저 곳을 돌면 확 트인 정상이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몇 번이고 배신당해가며 어쨌든 한걸음씩 발을 뗀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서도 느꼈지만, 어쨌든 발을 떼면 언젠가는 끝나는 일.

 

 

 

막상 정말로 평지가 나오고 나니 좀 맥이 풀린다. 사실 땀 좀 흘렸다 뿐이지 조그만 언덕 같은 곳일 뿐.

원래 성터였다고 하는데, 이런 외진 마을 어귀에도 성이 있었나 싶다. 이곳 성터에 대해서는 그리 알아본 적이 없었다.

 

산 위의 공터치고는 확실히 인위적으로 닦아놓은 흔적이 남아있는걸 보면 성이 있긴 있었나보다.

손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시원하게 땀 한바가지 흘리고, 그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앞에 펼쳐진 전망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시라카와고의 마을 전경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는 2~3군데쯤 유명한 스팟이 있는데

이곳은 오솔길을 따라 왔을 때 만날 수 있는, 제대로 된 펜스조차 없는 등산길 도중의 조그만 창문같은 느낌의 스팟이다.

 

가장 유명한 곳도 아니고, 여름의 생명력 덕분에 나무들이 워낙 울창하게 자라서 시야각이 제한되는 불편한 곳이지만

일부러 험한 길 올라왔다는 달성감도 있고 해서 한동안 머무르며 마을의 모습을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다.

 

가치가 있는 곳이니 그렇겠지만, 왠만한 농촌 역시 한국의 농촌보다 훨씬 정비가 잘 되어있는 이곳에서도

정말 예술적으로 가꾸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절경이다. 사실상 평범한 농촌이 아니긴 하지만.

 

 

 

좀 전에 화사한 커플 둘이서 열심히 사진찍던 그 건물을 이렇게 바라보니 느낌이 좀 새롭다.

논마지기 공간을 살짝 비집고 들어간 녀석인데 어쩌면 저렇게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거기다 같은 높이에서 걸어다닐때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돌길로 만들어놓은 농로의 깔끔함 역시 인상적이다.

겉으로는 농촌 마을같아 보이지만, 속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돈 많은 귀족들이 산책 즐기는 곳처럼 어느 한군데 세심히 손을 쓰지 않은곳이 없다.

 

 

 

한 국가와 그곳의 자연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 틀림없다.

일본 가옥의 평기와와 저 곧게 뻗은 삼나무가 어울린다면

한옥의 굽이친 기와 형태는 허리를 늘어뜨린 소나무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도시에서는 이미 어디가 한국이고 어디가 일본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해져 버렸지만

이런 시골모습만큼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나라별 특색이 사라지지 않는 듯 하다.

 

좋긴 좋은데, 이곳 아이들도 어릴때 나무위에 올라가 놀고 그러는 것일까.

내가 어릴적엔 올라가기 쉬운 소나무를 참 수백번도 더 오르내리고 했는데

여기 삼나무 잘못 올라갔다가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조그맣지만 꽤나 오래된 듯한 사당이 위치한 이곳 전망대에는

사람도 별로 오지 않고, 그늘 아래에 벤치가 하나 있어서 땀 식히기엔 좋다.

카메라를 내던지듯이 아무렇게나 퍼질려 놓고 벤치에 앉아서 땀을 닦는다. 손수건을 짤면 땀이 떨어질 정도로 허용량이 오버되고 있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앉아만 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서양인 관광객 부부가 이곳에 와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그사람들 눈에도 이런 풍경은 꽤나 신선하게 느껴질까. 한국과 일본에 비교하면 미국이나 유럽이나 산이 많은편은 아니라서

이 정도 산지에 둘러싸인 마을이 그리 흔하진 않을 법 하다.

 

그 부부는 실컷 사진찍고 난 후, 왠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나에게 와서 사진 좀 찍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한다.

찍어주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본인이 사용하지 않는 캐논 DSLR 이라서 조작이 항상 어색하다.

본인들이 오토모드로 해 두고 나한테 건네줬으니 그걸 바꿀필요는 없을 듯. 그냥 구도만 맞춰서 두어 장 찍어줬다.

받아들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고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이걸 또 붙잡고 '난 위대한 한국인이여~'라고 설명해주기도 귀찮다.

 

내가 그들을 미국사람인지 영국사람인지 프랑스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과 같이

그들도 내가 일본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니, 그걸 그들에게 수정해 줘야 할 의무감 같은거 느끼지 않는다.

 

 

 

이곳부터는 제대로 닦여있는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되는데, 가장 유명한 천수각 전망대에는 거대 식당과 가게가 포진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마을 아래서도 보이는 곳이고, 전망 해치지 않으려고 작업을 다 해놓은 곳이기 때문에 시야가 매우 시원하다.

 

마을 안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가게를 만들수도 없기 때문에, 이곳 전망대 가게는 압도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단체 관광이라면 이 곳을 놓칠수 없으니, 식당쪽에는 벌써 '2층은 예약, 단체손님 전용입니다'라고 써 놓을 정도.

 

전망대에는 쉴 수 있는 의자도 몇 겹이나 층층히 배치되어 있고, 펜스 바로 앞에서는 아무것도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그림같은 시라카와고의 사진을 마음껏 담을 수 있다. 앞에서 대신 사진 찍어주는 사람도 항시 대기중이며

물론 관광객 자신들이 가져온 똑딱이가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DSLR로 사람들 찍어주고 출력하며 돈 받는 일도 한다.

 

사진 찍어주면서 '치즈~' 대신에 '시라카와 고~' 하면서 주먹을 하늘로 올리라는 주문만큼은 좀 촌스럽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수가 없었긴 했지만.

 

 

 

임팩트라고 할까. 어쨌든 마을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곳 천수각 전망대에서 사진을 담지 않는 관광객이란게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 역시 귀찮아 죽을것 같은 렌즈를 화각별로 담아온 이유의 절반이 이곳 전망대를 위해서였으니까.

광각으로도 담고 망원으로도 담고, 관광객이 많이 오긴 해도 전망대 공간이 상당히 넓고

단체 관광객은 잠깐 구경하고 단체사진 찍고 훌쩍 가버리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도는 홀로여행자는, 무제한 회전초밥집에 앉아있는 기분으로 원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참 뭐랄까, 이런 폭발적인 자연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인공미의 깔끔함을 유지하는 이쪽 사람들의 특성은 신기하다.

깨끗하고 깔끔한 건 좋은데, 한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람 사는 냄새'라는게 좀 적다고 해야 하나.

사실 그거 조금만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고 지저분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어서 쉽게 적용하기는 어려워도

확실히 한국에 이런 자연의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면, 지금 이 모습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를거라 생각한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수십장도 넘게 담았지만, 블로그에 올릴 생각은 들지 않는다.

2D 화면에서 사진 구경하는 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더 많이 올린다고 이곳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마을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면 역시 직접 가서 느끼는게 제일 좋은 방법.

본인은 이 모습을 보면서 겨울의 시라카와고를 상상하고 있다. 눈으로 덮인 전망대까지 걸어서 갈 수 있을까 싶고.

사실 적지 않은 관광객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마을에서 여기까지 태워주는 버스 있대!'

물론 본인 역시 알고 있었지만, 이 마을을 돌아보는데 내연기관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아서 걸어 올라왔다.

 

겨울엔 방금 그 길 오르다가 인생이 좀 꼬일수도 있을 것 같아서, 버스를 이용해야 하나 고민중이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긴 했는데,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지금도 배가 눈꼽만큼도 고프지 않다.

여행중에는 그리 많이 먹는편이 아니긴 해도, 이만큼 더운날 돌아다니고 있어도 허기지지 않는다는건 좀 신기하다.

그래서 전망좋은 전망대 앞의 식당에도 들어가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고, 시원한 음료수나 하나 뽑아 마신다.

 

타카야마로 돌아가는 버스가 오기까지 2시간 30분쯤 남았는데, 시간은 충분해도 뭔가 가게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결론은 대충 납득이 간다.

시라카와고에서는, 더운 여름날 에어콘 켜진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추운 겨울날 살짝 따뜻한 가게로 들어가는게 더 어울리기 때문에.

 

여름이 본인에게는 참 버티기 힘든 날이라는게, 건물 안의 인공적 에어콘 바람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울엔 난로나 보일러 강하게 돌리지 않아도 집이라는 건물 자체가 어느정도 단열효과를 내기 때문에

들어가 앉아도 살짝 추워서 손바닥을 한두 번 비벼주는 정도가 딱 좋다. 거기서 식사 한끼 하면 몸이 포근해 지니까.

그런 면에서, 겨울이라도 난로나 히터 팍팍 틀어버리는 가게는 들어가기 싫다.

 

느긋하게 풍경 바라보며 휴식 취하고 나서 반대쪽 길로 내려간다. 반대쪽은 자동차로 통과할 수 있을만큼 반듯하게 닦인 아스팔트 도로.

마을 어귀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난이도는 훨씬 낮다. 올라올 때 이쪽으로 왔으면 몸은 편했을 듯.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길은 아니라서, 내려올 때 느긋하게 내려오는 쪽으로 사용해도 불만은 없다.

 

진짜로 물이 풍부한 곳인지, 내려가는 도중에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 놓은게 보인다.

 

 

 

마을 어귀를 빙글 돌며 내려오는 길이라서, 마을 속에서 헤엄치며 담던 사진의 시각과는 또 다른 맛의 결과물이 나온다.

슬슬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는 시점이라 그런지, 이런 길에서 숨듯이 걸어가며 저 너머의 모습을 담는 것은, 일종의 휴식과도 같은 시간.

 

 

 

이제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다시 한번 마을의 모습을 눈으로 담아내면

그리 넓지 않은 시라카와고 여행은 끝이 난다. 그림같은 풍경과는 별개로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하고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관광객들의 씀씀이를 기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식욕이 안생기는데 어쩔 수 없다.

 

 

 

도시에서는 설사 농사터가 있다고 해도 땅이 아까워 이렇게 꽃밭을 만들기는 힘들 텐데.

판매용으로 키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뒤뜰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만 자연스럽게 자라는, 약간 무질서한 꽃들의 모습이 더욱 반갑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꽃밭을 키우는 갓쇼즈쿠리 가옥 역시 살짝 힘이 풀린듯한 모습이 더욱 잘 어울린다.

 

 

 

좋은 마을은 물이 맑은 마을이라는 말은 세계 어느곳에서도 통하는 진리.

좋은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과 나쁜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은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난다.

애초에 나쁜 물을 마셔도 자라는 녀석들은, 그만큼 터프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녀석들이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람 입장에서는 역시 진드기나 벌레 잔뜩 꼬이는 녀석들보다는 좀 순해보이는 녀석들이 더 마음에 드는것도 사실.

 

이곳은 자연 환경에 비하면 기분나빠질 만한 벌레가 별로 눈에 안 띄는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공원처럼 인위적으로 디자인해서 만들어낸 아름다움과는 전혀 별개로

자연의 생명력뿐 아니라 사람의 생명력까지 느껴지는 이곳 풍경은, 조화라는 면에서 굉장히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여행에서 가장 큰 볼거리라면 역시 자연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곳 시라카와고는 그 두가지가 배합되는데 있어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훌륭하다.

관광객들이 오고가며 감탄해 하는, 마을 사람들이 남겨놓은 인간의 모든 흔적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더 예쁘게 보이거나 하는 인위적인 색이 아닌, 순수하게 생활하기 위한 노력과 조화의 흔적이라는 점이 말이다.

 

사람들이 풍경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아름다움이란, 결국 원래 그렇게 있던 것들이 가지는 자연스러움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