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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9.12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1편 20
  2. 2013.09.09  과거로의 여행 - 청춘이 필요해 18
  3. 2013.09.07  과거로의 여행 - 되돌아가기의 신선함 16
  4. 2013.09.05  과거로의 여행 - 타카야마의 밤축제 10
  5. 2013.09.02  과거로의 여행 - 예정에 없지만 예상되는 8
  6. 2013.08.31  과거로의 여행 - 타카야마 코쿠분지 6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먹으러 가며 '오늘 원래 체크아웃인데 1박 더 가능한가' 물어본다.

예정했던 시라카와고 근처의 온천여관이 연락을 받지 않아서, 그냥 당일치기로 이곳에 돌아오는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

실제로 그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려면 어차피 이곳 타카야마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지나치게 교통비를 많이 쓰는 루트이긴 했다.

 

오늘부터 일본은 진짜 휴가철 시작이라 직원에게 물어볼 때도 좀 걱정은 되었다.

타카야마에 숙소가 워낙 많아서, 이곳에 빈방이 없어도 그냥 아침 일찍 역앞에 가면 빈방 있는 호텔 찾는게 어렵지는 않지만

또 짐 챙겨서 나가고 하는거 굉장히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곳 슈퍼호텔은 여러가지로 마음에 든다.

 

일본서 가장 애용하는 비지니스 호텔은 토요코인이지만, 그건 서비스가 좋아서가 아니라 지점이 워낙 많아서이다.

슈퍼호텔이 위치한 도시에서는 가급적 슈퍼호텔을 이용하려 한다. 서비스의 질은 확실히 이쪽이 낫기 때문.

 

슈퍼호텔은 모든 지점의 객실에 열쇠가 필요없는 암호식 도어락을 설치했으며

카드키조차 필요없이, 숙박료를 지불하고 받는 영수증에 비밀번호가 적혀있어서 그 후로 카운터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체크아웃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암호가 초기화되기 때문에 퇴실시에도 그냥 짐싸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조식의 수준은 토요코 인의 두 배 정도 뛰어나다. 구색맞추기인 토요코 인의 조식에 비해

제대로 된 반찬이 최소 서너가지는 나오는데다, 낫토 등의 건강반찬도 항시 구비되어 있고, 음료수 자판기도 조식시간에는 무료 이용이다.

 

거기다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시스템이 또 마음에 든다. 치약과 칫솔을 한국서 가지고 왔으니 이곳의 비치품을 사용할 일이 없는데

지나칠 뻔하고 넘어가려던 일회용 치솔세트 표지에 '사용하지 않은 칫솔을 프론트에 가져다 주시면, 소소하지만 과자를 선물해 드립니다'라고 적혀있다.

 

 

 

혹시나싶어 가져다주니 정말로 과자를 하나 준다. 과자 자체는 일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녀석이지만

크기는 매우 매우 작아서, 사실 한국 돈으로 300원쯤 할 만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칫솔 반납하고 받는 이 기분은 뿌듯하다.

환경보호도 되고 호텔측에서도 예산 절감에 도움이 되니 나쁠 거 없다.

 

슈퍼 호텔은 이런 식으로, 고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을 아슬아슬한 선까지 최대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그 여유자금으로 조식의 질이나 다양한 높이의 배게 등등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는 방식을 사용중이다.

토요코 인에 비해 인간미는 조금 떨어지지만, 그 인간미도 접객능력이 좀 부족한데서 오는 어설픔의 미학에 들어가는 범주니까

숙소로서의 편의성만을 이야기하자면 슈퍼호텔이 더 앞선다고 볼 수 있다. 단 2013년 현재의 시점에서.

 

2008년 즈음의 슈퍼호텔은 아직 이런 시스템적인 우월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은 초보 수준이었고

불결해 보이는 실내 구조나, 과하게 절약하려고 하는 인건비 때문에 불편함도 느껴지곤 했었기 때문에

당시엔 토요코 인보다 더 추천한다거나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랬던 것이 5년 지난 지금에는 확실히 성과를 보고 있는듯 해서, 경영이라는게 참 피말리는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토요코 인은 한때 서비스를 너무 강화하다가 수지가 안맞았는지, 신용카드사처럼 슬슬 혜택을 줄여가고 있는 실정이라

현재로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급에서는 유일무이한 라이벌 체인이라 어떻게 승부가 진행되는지 구경하는것도 재미있다.

 

매번 말하지만, 요금 조금만 올리면 이 두 체인보다 훨씬 뛰어난 루트인 호텔이 있다.

비지니스 호텔은 필요하지만 너무 싸구려는 싫다 싶은 사람, 무조건 루트인이다. 불만스러운 점이 거의 없는 최고의 1인용 비지니스 호텔.

 

알아보던 직원이 조금 머뭇거리며 '방은 있습니다만'이라고 말끝을 흐리는게 묘하게 걱정된다.

원래 어제는 5600엔 정도에 투숙했지만 오늘부터는 성수기 시즌이라 요금이 7500엔으로 확 오른다고.

비지니스호텔이 8만원 가까이 하는건 확실히 뼈아픈 가격이긴 하지만 달리 방법도 없고, 이곳 시설수준이 꽤 마음에 들어서

흔쾌히 1박 추가를 요청했다. 사실 오늘 예정되었던 온천여관 요금은 그거보다 훨씬 비쌌으니 별 손해도 아니긴 하다.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슈퍼호텔의 1층 온천도 진짜 천연온천이라고 크게 광고를 하고 있으니, 거기도 한번 이용해 볼까 싶다.

 

 

 

조식 든든히 먹고 타카야마역 버스 터미널로 나왔는데, 출발 20분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라카와고 방면의 버스 정류장 앞은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줄을 다 서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인파라서

버스 한 대로는 다 타지도 못할 것 같은 걱정이 들 정도. 하지만 익숙한 일인 듯 버스가 꽉 차면 바로 후속버스가 사람을 실어간다고 한다.

 

시라카와고의 명성이 과연 허언만은 아니구나 싶다. 워낙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이곳에서 버스 타는게 그나마 제일 편하고

타카야마 하나만 해도 외국인이 잔뜩 찾아오는 곳인데, 이곳보다 더 외진 곳인 시라카와고로 가는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미어 터진다.

 

아슬아슬하게 첫 번째 버스를 탔지만, 빈 자리 한 군데도 없이 빡빡하게 앉아있으니

차라리 뒤에 오는 버스를 좀 기다렸다 타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탑승객의 절반쯤은 외국인 관광객.

 

날씨가 생각만큼 화창하진 않았지만, 자주 언급했듯 일본의 전통 가옥들은 흐린 날씨에서도 충분히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

좁고 험한 터널을 몇 개씩이나 지나가며 점점 현실 세계와 멀어지는 듯한 산속을 통과한 끝에, 마침내 탁 트인 공간이 보이며 안도감을 느낀다.

아침이라 주차장은 여유가 있는 편인데,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대기중인 외국인들이 꽤 많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하루 숙박을 한 듯.

타카야마 역시 자연 풍부한 곳이니까 괴리감이 덜한 편이지, 도시에서 바로 이곳 시라카와고로 이동하면 주위를 둘러싼 풍경에 현실감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내리자마자 바로 다리가 보이는데, 저 다리를 건너면 마을이 나타난다. 하지만 예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라

바로 저곳으로 달려가 버리는건 왠지 좀 아까운 기분이 들어서, 반대쪽으로 돌아 걸어가 본다.

 

 

 

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정류장쪽에도 옛 가옥들이 몇채 서 있다. 물론 대부분 장사하는 가게이긴 하지만.

구름은 잔뜩 끼었지만 비가 올 만한 구름은 아니고, 사이사이로 푸른 하늘이 비치는 걸로 봐서는, 조만간 구름이 걷혀질지도 모르겠다.

가게 간판이 약간 미스매치인 기분도 들지만, 여기서도 이곳 시라카와고 건물의 특징은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이곳에서 건축물 구경좀 하고 돌아가버려도 문제는 없을듯 한데

생각보다 훨씬 관광지화 된 느낌이 들어서 첫 인상은 기대보다 살짝 낮아지는 기분이 든다.

이곳 시라카와고를 포함한 주변의 몇몇 마을들은 특이한 건물 구조로 예전부터 이름이 높았지만

자전거로 이곳을 온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좁고 험한 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 자전거 여행때는 보고 싶었음에도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몇 안되는 장소중 하다였다.

 

문득 여름에 어디 가볼까 싶다가, 본가 차실의 벽에 걸려있는 달력 사진에 이 시라카와고의 전경이 나와있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곳에 대한 흥미가 발동해 이렇게 찾아오게 된 것.

사실은 눈이 한창 내릴 무렵의 시라카와고가 진정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건 언젠가 또 가볼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상업 활동을 위해 오리지날에 비하면 여러가지로 개,증축이 이루어진 건물이긴 해도,

원래 어디서나 보기 쉬웠지만 이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건축양식을 유감없이 발산중인 건물은 갓쇼즈쿠리(合掌造り)라고 불리는 녀석.

뜻 그대로 합장하는 듯한 지붕 모양을 가졌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는 지역 여기저기에 많이 지어져 있었지만, 대부분 깊은 산골에 위치한 마을이었기에 점차 사라지고

이곳 시라카와고 근처와 고카야마(五箇山)에 어느 정도 원래의 모습을 보존중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명칭도 '시라카와고와 고카야마의 갓쇼즈쿠리 마을' 이라고 되어 있어

버스에서 발을 내리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이 전부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구 1800명 정도의 아담한 산골마을인데,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개발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생활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버스 정류장 앞의 기념품점 혹은 매점이라는, 제일 상업성에 물들고 품질이 떨어질 듯한 위치에 놓인 가게들마저

놀라울 정도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은 전통적인 갓쇼즈쿠리를 그대로 본받았고 군데군데 스며들어 있는 현대식 구조들도

스스로 모습을 감추는 듯 주위 분위기와 이질없이 통일감을 형성한다.

 

실제로 시라카와고 전체가, 건축물과 주변 환경의 조화에 있어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아예 없다고 할 정도로

이곳이 가지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전통 건축물의 조합은, 일본 안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부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 이번엔 아주 찬찬히 씹어먹어줄 요령으로, 다들 향하는 마을쪽으로 가지 않고 반대쪽으로 걸어가 본다.

뭔가 있을까 싶었는데, 입장료는 받고 들어갈 수 있는 '야외박물관 갓쇼즈쿠리 민가원' 이라는 곳의 입구아 눈에 들어온다.

 

설명을 보니 시라카와고에서 사용하지 않게 된 주택이나, 인근 마을에서 사람들이 떠날 때 두고 간 건물들을 모아서

옛 생활상을 표현해 놓은 민속박물관 같은 곳이라는 듯. 아직 마을쪽에 비해서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볍게 생각하면, 시라카와고에서 최대의 볼거리이자 유일한 볼거리인 이 갓쇼즈쿠리 주택은 마을로 들어가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굳이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다른 곳이었으면 아마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표중 하나가 이곳 시라카와고였으니

오늘 이곳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건 전부 다 휩쓸어 가겠다는 생각으로 망설임없이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간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본 갓쇼즈쿠리 건물이었지만, 한동안은 아무리 많이 봐도 심심하지 않을 듯 하다.

이곳 박물관에 진짜 사람이 사는 건 아니지만, 건물들은 실제 사람이 거주하던 것들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

그 현실성과 함께,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묘한 모양새의 건물들이 내뿜는 비현실적인 감각은

앞으로 반나절 넘게 주욱 바라볼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떼기가 힘들다.

 

 

 

꾸민다는 단어의 의미는 매무 미묘해서, 아주 사소한 표현방식의 차이만으로도 부정과 긍정의 경계를 넘어간다.

이곳 시라카와고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주욱 느끼고 있는 점인데, 이곳은 분명 관광객을 위해 '꾸민' 곳이지만

결코 치장이나 가식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순수한 꾸밈이라는 기분이 든다.

 

마을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장사를 위해 모여든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 험한 산속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생활은 나아졌지만 그래도 이들의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따뜻할 때는 농사 짓고, 겨울이 오기전에 지붕을 수리하고, 끝없는 눈이 오면 그저 묵묵히 눈을 치울 뿐.

 

집은 예쁘고 튼튼하게 꾸며져 있지만, 사람이 꾸밈없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순수함이 느껴진다.

 

 

 

당시 일기를 쓰면서도, 블로그에서 갓쇼즈쿠리에 대해서 설명을 늘어놔야 할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일단은 단지 그 때의 시선만을 따라가기로 하며, 언젠가는 포스팅에서 설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알고 가면 더 재미가 있는 곳이긴 하지만

모르고 간다고 해서 이 건축물이 가지는, 자연에 대해 순응적이면서도 저항적인 사람의 힘을 느끼기가 어렵지는 않다.

박물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이 건물은, 갓쇼즈쿠리 마을의 전체적인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소 역할을 한다.

 

 

 

그 앞에 놓인 갓쇼즈쿠리 지붕의 골격 샘플이다. 이제껏 나온 사진 몇장에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갓쇼즈쿠리 지붕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우며, 경사 또한 따가울 정도로 매섭게 설계되어 있다. 지지대가 하중을 얼마나 견디느냐가 큰 관건.

혹독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거기에 맞는 생활 패턴을 찾아가는 인간의 적응력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이런 숲속이 뭐 그리 혹독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혹독하지 않은 곳이었다면 이런 가옥을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

해발 3000m 의 산맥에 둘러싸인 해발 500m 부근의 이 마을은 세계적으로도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곳이다.

모스크바보다도 더 많이 내리며, 한국 최고의 강설량을 자랑하는 울릉도가 1.5m 정도인 반면 이곳의 평균 강설량은 10.5m 정도.

 

아주 오래전부터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긴 했으나, 워낙 산세가 험하고 눈이 많이 내려서 주위 마을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었으니

전후 일본이 이렇게까지 부흥하지 못했다면 아마 갓쇼즈쿠리 마을 전체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살기 힘든 곳이었다.

 

 

 

안내소 안에는 비디오 상영이나 예전 신문기사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에 직힌 60년대 도로 사정을 보면, 그나마 저게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시절의 모습이라는 게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자동차도 전기도 없는 시절에 이곳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했을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가능하다.

 

당시 시카라와고 근처의 카즈라(加須良)라는 지역은,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서 마을 전체가 집단 이촌을 실행했는데

그때 남겨진 갓쇼즈쿠리 건물들을 옮겨와 보존한 것이 이곳 야외박물관이라고 한다.

 

 

 

2층에는 갓쇼즈쿠리 건물의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는데, 크기만 작을 뿐이지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고 보면 된다.

지붕이 워낙 두껍고 가파르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집의 다락방과는 달리 4~5층에 달하는 공간을 조성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집이 커지고, 이곳 사람들은 친족 전체가 모이는 공동체 생활형식을 따르게 되었다.

겨울 약 4개월 가까이 밖에 나가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폭설이 내리는 곳이라, 집단생활은 생존에 중요한 요소였다.

현재는 주위에 댐도 많이 건설되고 전기도 들어오기 때문에 살만 하지만, 예전엔 겨울을 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이었다.

 

이런 식의 건축물은, 눈의 무게를 분산시키는데 특화되어 있지만 난방 등에는 매우 취약하다.

그저 눈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나머지를 포기하고 인내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 이 갓쇼즈쿠리 가옥.

실제로는 더욱 공고히 연결되어 있는 현대사회임에도, 너무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인해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진부한 말의 의미는, 이곳 시라카와고에서는 단어의 의미가 살갗을 파고들 만큼 절실하리라 생각한다.

이곳은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었으니. 협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밖으로 나오니 길이 군데군데 갈린다. 꼭 순번대로 돌아다닐 필요도 없는듯 하다.

이런 작은 건물은 보통 거주용이 아니라 창고 역할을 한다.

 

마을의 95%가 산지라서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지만, 갓쇼즈쿠리 건물의 지붕을 유지 보수하기 위해서

적지 않은 양의 억새와 땔깜용 나무를 저장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소보다는 말이 유용했고, 곡식 역시 동물의 힘보다는 넉넉한 물의 힘으로 물레방아를 돌리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고.

 

 

 

그런 물레방앗간의 모습도 참 고즈넉하게 전시해 놓았다.

야외 박물관이고, 실제 사용하던 건물들을 이전해 놓은 것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풍요롭고 보존 상태가 훌륭한 모습은 아마 실제 주민들의 생활상과는 좀 다를수 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사람들이 생활중인 시라카와고 내부의 갓쇼즈쿠리 60채조차 유지 보수하는데 큰 노력이 따르는데

그 험한 산골에 방치된 폐가들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이곳까지 가져와 다시 재건하는 일은 어땠을지.

 

본인의 성격이 좀 뒤틀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사람 살지않는 이런 박물관에서는

좀 더 당시의 생활상을 과격하게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곳에서야 물론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을 최대한 소개하고 싶겠지만, 시라카와고는 고요함 속에서 자연에 대한 거친 투쟁으로 완성된 마을이니까.

 

 

 

물레방아는 한중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거의 비슷하게 분포되어 있으니 그리 신기할 건 없다.

단순한 움직임이지만 왠지 어릴적엔 요녀석이 언제 방아를 쿵하고 찧을까 기대하며 한참을 바라봐도 질리지 않았다.

 

일본의 중앙알프스쪽은 의외로 물이 풍부해서, 아직도 물레방아를 쓰는 곳이 조금 남아있는데

아직 기계로 찧은 밀가루와 물레방아로 찧은 밀가루를 이용한 빵이나 과자, 국수의 맛 차이를 체험해보지 못해서

과연 맛이 다르긴 할까 하고 가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빙글 돌며 올라가는 언덕 위에는 본격적으로 여러 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듯 하다.

이곳 박물관은 입구부터 처음 물레방앗간 까지는 그냥 자연 풍부한 산책로 느낌이라

돈 내고 들어와서 조금 실망할 수도 있을법 하지만, 좀 더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건축물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마을쪽의 갓쇼즈쿠리 건물은 상당수가 민박집이나 가게를 열고 있고, 평범한 가정집이라고 해도 사람이 살고있으니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없는데

이곳은 박물관이라 그런 염려가 없이, 계획적으로 디자인된 길을 따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점이라고 했지만 사실 단점으로 생각될 수도 있긴 하다. 사람 사는 냄새는 외국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니까.

 

 


설마 여기까지 와서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있을것 같진 않지만

입구 만들어놓고 박물관이라고 해 놓았어도, 사실상 박물관 주변에 담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이곳에 태어나서 처음 온 본인으로서도, 그냥 뒤쪽에 수풀 좀 헤치며 들어가면 얼마든지 숨어들어갈 수 있을듯 하다.

역시 이곳까지의 교통비만 수만원이 넘는 곳이다보니, 겨우 500엔의 입장료를 아끼려고 이 고요한 마을을 더렵히진 않겠지.

도쿄의 시부야 같은 곳이라면 왠지 사악해 질 수도 있을것 같지만, 이곳의 가득한 녹색은 사람 마음을 씻어주는 기분이다.

 

 

 

약 7시간동안 돌아다니기에 그리 다급하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지만

카메라 들고 다니며 사진 담는데는 생각만큼 널널한 시간도 아니다.

 

보통은 렌즈를 바꾸지 않고 한바퀴 돌며, 그 다음 렌즈를 바꿔서 또 한바퀴 도는게 보통인데

이번엔 그럴 만한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없을 듯 하다. 여전히 온도는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번거롭긴 하지만 그때그때 상황 봐 가며 렌즈를 갈아끼우며 전진한다.

혼자 서서 렌즈 꾸물꾸물 교환하는게 좀 민망하긴 해도, 이곳만큼 사진 찍는데 부담가질 필요 없는 곳도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분위기를 보아 하니, 오늘 진짜 마음먹고 배터지게 사진 찍을 수 있을법한 기분이 든다. 마음에 들지 않는 풍경이 없다.

 

 

확실히, 갔던 곳을 또 가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듯 하다.

좀 전에는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양쪽을 두리번거리며 어지럽게 돌아다닌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얼핏 기억으로는, 좀 전보다는 많이 적혀있는 느낌이 든다. 축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니 처음보다는 많이 적혀있는 듯.

신사에 봉납하는 에마 모양의 낙서장인데 아이디어는 좋다고 본다.

아무데서나 낙서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배출구를 마련해 주는게 누이좋고 매부좋은 것이니.

 

 

 

에마에 소원적는건 역시 젊은층의 비율이 높은 듯 하다.

아직 살 날도 창창하고 하고싶은것도 많을테니 적고싶은것도 많을테지.

늙은 사람은 이룰거 대충 다 이뤘거나, 이런 데 적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자각할만큼 인생 경험해 왔으니 그럴수도 있고.

 

덕분에 뭐, 이런 에마를 훔쳐보는건 나름 재미가 있다. 절실한 사람보다는 가벼운 사람이 많으니까.

평범한 소원에는 관심이 없어서 약 좀 빤듯한 소원을 찾아보는데, 왠지 타카야마엔 솔로가 많은듯한 기분이 든다.

'남자친구가 청춘을 즐기고 싶어♡ 우햐~' 라고 수정선까지 넣어가며 적은 저차 3명에게 남친이 강림하시길.

 

 

 

일반적으로는 남자 비율이 높아서 여자가 남자 고르기 더 쉬운게 아닌가 싶은데

이곳 에마에는 이상할 정도로 여자쪽에서 남친 구하는 소원이 많다. 뭔 일일까.

 

BOB and RiN 이라는 여성도 남자친구가 갖고 싶다고 떼를 쓴다.

 

평범한 내용으로는, 축구가 인기 있는지 축구 잘하게 해 달라거나 대회 우승하게 해달라던지 하는게 좀 보인다.

 

 

 

1984년 8월 31일생 28세 남성은 욕심이 너무 많다.

 

지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가 잘나나기를 바라는 등, 타인을 배려하는 따스한 소원도 있긴 하지만

'엄마가 휴대폰 돌려주기를'이라거나 '빨리 일본에 카지노가 생기기를'이라거나 '언젠가 카나자와 경마장에 갈수 있기를' 따위의

묘하게 실현가능성이 있을랑 말랑 한 소원들을, 그 이전에 소원을 빌 필요가 있나 싶을 것들을 장황하게 적어놓았다.

 

카나자와까지 가는 버스비는 3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으니, 그냥 가면 안되나?

 

 

 

세계일주 하고싶다는 소원에서는 눈길이 멈출 수밖에 없다.

이것도 베르테르 효과처럼 전염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똑같은 세계일주 희망이 나란히 적혀 있다.

 

하지만 진짜 세계일주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 희망과 염원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알려나.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짜 이상하다 이곳 에마.

아무리 찾아봐도 '여자친구가 필요해' 보다 '남자친구가 필요해'가 압도적으로 많다. 영어로 쓰인 문장까지.

 

물론 남자 여자 숫자만 맞는다고 덜렁 커플이 생기는건 아니겠지만, 여친이 필요하다면 일어 배워서 타카야마로 날아가는게 좋지 않으려나.

 

 

 

'가족 사이좋게 주욱 함께' 라고 적은 귀여운 아이는, 확실히 좋을 때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어느 순간부터 그 가족들이 '빨리 좀 시집가'라고 밀어낼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번 에마에서 가장 스트레이트 소원은 저 '金'이다. 반짝반짝 빛난다.

 

 

 

에마를 구경하고 다시 길을 걷는데, 정말로 가게들이 거의 파장 분위기다.

이러다가 더 이상 먹을게 없어지는게 아닌가 싶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눈에 익은 녀석이 들어온다.

모양은 타코야키지만 예전의 점보야키처럼 큰 녀석이고, 문어가 아니라 히다 소고기가 들어간 히다규 야키라고 한다.

 

고급 소고기의 맛을 살리는데 전혀 적합하지 않은 묘한 조합이지만, 어쨌든 혼자서 그 비싼 히다규를 먹을 생각은 없으니

이렇게라도 한번 맛을 볼까 싶어서 하나 주문한다. 타코야키와는 달리 접시에 간장과 파를 소스로 넣어준다.

 

속에는 히다규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타코야키와 달리 간이 거의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밑에 깔린 간장을 살짝살짝 찍어먹으면 나름 맛이 난다. 숙주나물도 들어가 있어서 식감도 나름 즐길 수 있고.

중요한 히다규는 예상대로, 이렇게 먹어봤자 맛을 음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타코야키 만큼은 아니라도 나름 이 지역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녀석으로 체험해 보기에 나쁜 편은 아니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것보다 맛있는 간식거리가 많으니 반드시 먹어봐야 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다.

 

 

 

축제 거리의 끝부분까지 돌아왔다. 역시나 여기도 좀 전까지는 볼수 없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어느 공연이나 아마추어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아도, 그게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데 충분한 상승요건이 되는 곳.

 

라틴 전통무용 같은 춤을 보여주는 공연인 듯 한데, 네이티브도 있고 이곳 주민들도 섞여있는것 처럼 보인다.

아마도 어느 무용학원에서 나온 사람들 아닐런지.

 

 

 

밤이지만 날씨가 더워서인지 열정적이고 깔끔한 음악과 부채춤이 분위기에 녹아들어가는 듯 느껴진다.

뒤쪽에 서 있는 여성분이 직접 노래를 불러주는데, 굉장히 파워풀한 음량이 혼자서 댄서들 전부와 동등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무대 앞에는 신발 벗고 올라갈 수 있는 돗자리가 있었지만 의외로 앉아있는 사람은 적고 옆에서 서서 보는 사람이 더 많다.

나 혼자만 그런건 아니구나 싶어 약간 안도하는 기분. 왠지 무대 바로 앞의 자리는 부담스럽다. 돈 주고 보는 공연은 제외하고.

 

 

 

사실 앉아서 구경하면 카메라 화각이 너무 한정된다는 이유도 있다.

틸트 액정이 있어서 이럴 때 구도잡기는 편한 카메라라, 예전처럼 눈대중으로 촛점 맞추고 셔터 누를 필요가 없다.

사람이 여전히 꽤나 서 있어서 자리를 마구 옮겨다니기는 힘들어도, 나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장점.

 

마지막에는 돌아가며 공연하던 팀이 한꺼번에 나와서 즐겁게 춤추기 시작한다.

함께 추실분은 올라와도 된다고 안내를 해 줬지만, 역시나 이 틈에 끼어들어서 춤을 출 만한 용사는 그리 많지 않은듯 하다.

좀 더 격식없고 막가는 춤이라면, 의외로 축제하면서 신이나 발광하는 일본인들이 꽤나 많은데

이런 식으로 동작이나 의상이 정해진 무대에 난입해 기분에 따라 몸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적은 듯.

 

 

 

마지막 라틴댄스 공연이 끝나자 축제의 열기도 함께 진정되어간다.

길지 않은 시간과 길지 않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축제라, 사람들은 그다지 피곤한 기색 없이 즐겁게 원래의 길로 돌아간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2차를 위해 술집을 향해 걸어가기도 하고, 교복입은 학생들은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마을 사람도 아니고 같이 여행온 사람도 없는 본인은, 그냥 아직 불이 켜진 공예점의 전시품이나 한장 찍고 숙소로 돌아간다.

예전 이즈모 여행때 들렀던 ANTWORKS GALLERY 정도로 흥미깊은 작품은 별로 찾을 수 없어서 살짝 아쉽다.

 

 

 

축제가 이뤄진 구간은 마을의 아주 짧은 한 구역만이었기 때문에

그 곳을 벗어나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하니, 이미 마을 전체는 어둠에 파묻힌 시골마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도심지가 아니라면 일본의 상점들은 늦어봤자 9시 전에 문을 닫아버리니, 축제 구역 이외에서는 이미 하루가 끝나 있었던 셈.

 

쓸쓸하지 않은 적막함이 바람처럼 흐르는 관광마을의 밤거리를 걸으며

축제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오늘 오후 좀 더 많은 시간을 소유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술집 말고는 전부 문을 닫은 상가 거리지만 여전히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가로등이 밝게 켜져 있다.

축제의 인파가 진통제 역할을 한 것인지, 무뎌져 있던 피곤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 같아

밝은 가로수 아래서 음료수 하나 뽑아마시며 벤치에 앉아 카메라의 재생버튼을 눌러 본다.

 

호텔에 돌아가서도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지만, 왠지 호텔에 돌아가는 순간 남아있는 이 기분은 전소되어버릴것 같아서.

가정집 대문앞에 자연미 물씬 풍기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돌아가는 끝까지 흡족한 기분이 드는 것도 멋진 일이다.

과연 자연좋은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미술 작품 재료를 고르는 것도 대담하다.

 

더운 날 호텔로 돌아오면 또 하나 즐길거리가 있다.

에어콘을 켜고 나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즐긴 후 수증기 가득한 욕조를 빠져나와 문을 열고 객실로 돌아가면

충분히 시원해진 방의 공기가 덥혀진 몸을 짜릿하게 만든다.

 

여기서 맥주 한캔 까서 마시면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광경이 되겠지만

본인은 술을 그리 즐기지 않으니 그냥 낮에 사놓은 콜라나 한잔 따라마시며 하루를 마감한다.

밤이 좀 늦었지만 일본까지 온 이상 TV 프로도 좀 챙겨보고 싶어서 잠깐잠깐 몸을 뒤척이며 남은 시간을 즐긴다.

 

 

자전거 부스가 축제의 마지막 구역이다.

이제 슬슬 왔던길을 되돌아 가면 되는데, 렌즈를 바꿔끼우는게 귀찮다 보니 그냥 되는 화각만 맞춰서 찍어온 터라

돌아갈 때는 다른 렌즈 끼워서 다시 찍으며 돌아가면 된다. 귀찮기도 했지만 어차피 다시 돌아갈 길이라 일부러 렌즈를 교환하지 않은 것도 있다.

 

어제 토요타 박물관은, 피사체들의 집합소 그 자체였기 때문에 부담없이 마구 찍어재낄 수 있었는데

히다 타카야마에 와서부터는 묘한 의무감 때문에 좀 지쳐있는 상태였다.

유명 관광지다 보니 뭐라도 좀 남겨야 하지 않겠냐는 쓸데없는 의무감.

 

원래 여행와서 집보다 더 뒹굴거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임에도, 오랜만의 여행인지 뭔가를 보고 즐겨야만 한다는 긴장감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운 좋게도 타카야마의 소박한 축제 거리를 거닐면서 그런 긴장감이 많이 풀어진 기분이라 다행.

조금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 이렇게 조그만 공연장이 하나 생겨있다.

살짝 연습중인데, 동네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뛰어난 실력이고 프로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밴드로 느껴진다.

실력은 둘째치고 호흡 맞추는게 매우 익숙하고 노련하게 느껴지는것이, 상당히 오랜시간 함께 연습해 온 듯 하다.

 

 

 

원래는 드럼과 턴테이블까지 함께 하는 밴드인데, 아직 리허설 중이라 다들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샹송 비슷한 곡을 보컬깨서 피로해 주시는데, 갑자기 아기 하나가 울면서 튀어와 안긴다.

일행인지 마을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앞에서 구경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아기 안고 관객석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아이는 자지러지면서 엄마한테 돌아가려고 하고, 엄마는 할 수 없이 안아들고 노래를 계속한다.

 

그 덕분에 아이를 동반한 샹송이 연출되는 묘한 구경을 즐길 수 있었다.

아직 자기 엄마가 혼자 노래부르는 모습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닌가보다.

이 친구가 좀 크고나면, 타카아먀 가서 이 사진이라도 기념으로 하나 줘 볼까 싶기도 하다.

 

뭐라하든, 이런 헤프닝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축제라는게 정말 마음에 든다. 마을 축제란 이래야지.

 

 

 

좀 전의 미니카 레이싱장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멈춰서 있다.

조금 귀엽긴 하지만 어쨌든 우렁찬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미니카들을 재미있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은

반은 아이들이고 반은 어른들이다. 직접 보면 어른들이라고 해서 재미있지 않을 리가 없다.

 

저런 무게와 저런 스피드로 저런 오르막 급커브를 돌아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일탈을 꿈꾸는 미니카가 가끔 튀어오르긴 하지만, 손가락 하나로도 들 수 있는 미니카의 무게가 저 코너를 돌기 위해서는

상당히 철저한 계산으로 무게추를 이용해 접지력을 높혀야 한다. 장난감이라고 해도 과학적인 지식은 필요하다.

 

 

 

일단 구경은 한바퀴 마쳤으니 이제 남은건 즐거운 군것질 시간 뿐.

운이 좋은건지, 저 위의 신성한 존재께서 이런 이벤트를 예측하시고 나한테 '돈 널널히 가져가거라'라고 귀뜸을 한 건지.

먹을것 정도는 아끼지 않아도 될 만한 자금을 가져왔기 때문에 고민거리가 하나 줄었다.

 

자전거여행 당시엔 정말 입에 침이 고이도록 먹고싶어도 저 4000원쯤 하는 꼬치 5개도 함부로 먹지 못할 정도였으니

나름 추억과 동시에 트라우마로도 남아있는데, 이번엔 거리낄 게 없다.

맥주만큼은 혼자 서서 홀짝홀짝 마시고 싶지 않으니 그냥 꼬치 정도로 만족해 본다.

 

 

 

내가 손이 좀 큰건지, 혼자서 5개 짜리를 주문하고 나서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 군것질 하려면 여기서 5개씩이나 먹을 필요가 없었는데, 막상 쳐다보고 있으니 너무 맛있어보여서 그만.

 

식탐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맛있는 걸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진리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 한방 찍는다. 다들 주문이 밀려 엄청 바쁜데 미안한 기분도 들지만, 후다닥 찍고 빠져나온다.

이 앞의 냄새는 진짜 사람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데, 이것과 맥주 한잔이라는 조합은 악마의 유혹인 듯.

유명한 모 도박만화의 지하감옥에서 이 맥주와 닭꼬치를 이용한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그거 본 사람들은 다들 이 조합의 파괴력이 가지는 의미를 절절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짭쪼름한 소스에 지방 풍부한 꼬치의 부드러운 식감이 아름다울 뿐.

역시 이럴때는 함께 여행가는 사람이 있는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 하나 차지하고 맥주 한잔씩 마시며 하루 여행의 끝언저리를 즐기는 것도 매력적일 듯 하다.

 

하지만 다들 열심히 살고 있어서인지, 좀처럼 함께 갈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건 아쉬운 점.

홀로 여행도 너무나 좋아하니 아쉬울건 없고, 아직 살면서 여행 떠날 기회는 많이 남아있으니 서두를 것도 없다.

 

  

 

광각으로 교환하고 다시 한번 길을 돌아가면, 안보이던 모습이 들어와서 신선하다.

이거 참 신선한 발상인데, 골판지 시어터는 히타치 대리점 쇼윈도우에 전시된 TV를 이용해서 상용중이었던 사실.

마을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만들어가는 축제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모습.

 

아이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느긋한 자세로 감상중인 어른들도 꽤 있었다는게 인상깊기도 했다.

 

 

 

골판지 놀이터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람 역시 어릴때는 고양이와 비슷한 동물일런지, 이런 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다니면 굉장히 흥분되고 모험심이 활성화되는 기분이 든다.

 

혹시 이 골판지들, 토토로를 틀어주던 그 대리점에서 가져온 녀석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참 멋진 대리점일 듯. 아이디어와 축제 참가정신이 빛을 발하는 곳이니, 내가 이곳 주민이라면 그 가게에서 TV 한대 살지도 모르겠다.

 

 

 

소소하지만 아이디어를 잘 짜낸 곳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고양이처럼 얼굴 쏙 내미는 모습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부모 있는 앞에서 초상권을 침해한다는게 좀.

CG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본인이 원빈처럼 생겼다면 별 저항감 없이 사진 찍어도 다들 좋아하지 않았을려나.

 

 

 

이곳의 정식 명칭은 '골판지 미로'였다. 미로치고는 친절하게시리 입구까지 표기해 놓았다.

밑에 그려진 그림을 보니 완전 초짜의 작품은 아닌데, 이곳엔 왠지 예술감각이 좋은 사람이 많은 걸까.

 

혈기왕성한 애들이 아직 이 미로를 박살내지 않았다는게 가장 신기한 점이긴 하다.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한국에서도 작은 축제에서는 이거 한번 시도해 보는게 어떨까 싶다.

얼마나 빨리 박살나는지도 한번 비교해 보고 싶고.

 

 

 

한국이라면야 아직 초저녁이지만, 이런 작은 축제는 9시쯤 되면 슬슬 파장분위기로 변해간다.

오랜 경험과 계산으로, 4시간 정도밖에 열리지 않는 이런 축제에서 소비될만한 컨텐츠나 먹거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묘하게 품절이 될까말까 하면서 재고 역시 거의 남아있지 않는 절묘함이 돋보이기도 한다.

 

물론 상인들끼리 뒤풀이 할 만큼의 먹거리는 남겨놨지만, 마지막 떨이를 위해 노점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떨이라 좋긴 한데, 닭꼬치를 너무 많이 먹어버린 본인은 더 많이 먹는건 좀 사양이라서

기억에 남을만한 뭔가를 하나 먹는걸로 군것질은 끝내고 싶다. 물론 밤에 호텔서 깨작거릴 먹거리는 별개로 하고.

 

마을을 거닐면서 생각하지만, 거주하기는 참 좋은 곳이다. 자연환경 좋고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고 생필품 시장도 풍족하고.

한국의 홍대거리나 강남, 명동같은 번화가는 없지만, 그런 것 없이도 잘 사는 나같은 성격은 이곳에서 뿌리박아도 불만 없을것 같다.

 

 

 

물론 타카야마라는 곳이 그냥 풍경좋은 시골이 아니라 돈꽤나 있는 사람들이 사는 부촌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나가노의 중앙알프스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산골 마을 몇몇은 물좋고 공기좋고 경치좋은 곳이 많아서

부자들이 펜션이나 고급 호텔서 휴양을 취하는데 특화된 마을이 몇군데 있다.

 

타카야마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부촌임에는 틀림없고

카루이자와 같은 곳은, 경치좋은 호텔 1박에 50만원은 기본이고 결혼식 한번 올리는데 1억원은 껌값인 곳이기도 하다.

진짜 돈있는 사람은 호텔 따위가 아니라 전용 별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축제 거리에서 교차되는 이런 음식골목은, 아무래도 축제 당일엔 좀 한산해 질 수밖에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마을 전체의 부흥을 위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복입은 학생들이 라멘집이나 닭꼬치집 앞에 서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데

외부 자본이나 인력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만들어가는 축제라고 어필하는 듯이 보인다.

 

 

 

칠석날에 자주 쓰이는 조릿대잎이 걸려있는것도 오랜만에 본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음력으로 칠석을 지내니, 이 당시엔 아직 칠석이 아니었지만

일본은 양력 7월 7일이 칠석이라 이미 한참 지난 후다.

 

물론 지나칠 수 없는 큰 축제 기간인 칠석이라서, 한 달 뒤인 8월 7일에도 칠석 축제를 하는 곳이 많다.

 

 

 

축제 거리 사이에는 딱 한 군데 사거리가 있는데, 원래는 차량 통제구역이었지만

축제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거리를 가로지르는 도로쪽은 통행이 가능한 듯 하다.

좀 전까지 완전히 개방되어있던 사거리를,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신호에 맞춰 통제를 하고 있다.

 

물론 정상적으로 신호도 작동하고 있지만, 보행자 천국에 익숙해진 축제 관람객들이 혹시 신호를 보지 못할까 싶어서

일부러 신호에 맞춰서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세삼 느끼지만 참 대단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보니 정말로 신호를 보지 못한 채 건너가려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때마다 손짓 발짓으로 멈춰세우는 것을 보니, 정말로 필요한 곳에 제대로 배치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이런 사람들 볼때 제일 짜증나는게, 서 있는 사람 바로 앞에서 호루라기를 마구 불어재끼는 것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신호가 바뀔 때마다 '파란불입니다. 지나가세요' 라거나 '곧 빨간불로 바뀝니다' 라고 말해주는 모습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봉사하는 사람에게 많은걸 바랄수는 없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말로서 의미를 전하는 것과, 시끄러운 소음으로 경고하듯 쏘아붙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배려의 차이다.

 

 

 

인파 때문이었는지, 그냥 못 보고 지나친 건지

갈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산지이긴 하지만 물이 풍부한 곳이라 그런지, 복을 부르는 마네키네코의 품 안에 낚시대와 물고기가 안겨 있다.

마을 상가에는 항상 놓여있는 이 녀석은, 지역마다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있는데, 이런 산악지대에서 낚시대를 안은 녀석 좀 신선하다.

 

마네키네코란 한국어로 '손짓하는 고양이'라는 뜻인데,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옛날 한 지방 영주가 고양이의 손짓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 싶어 다가갔더니, 원래 서 있던 장소에 벼락이 떨어져 구사일생했다는 등의 일화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오른발을 들고 있으면 돈이, 왼발을 들고 있으면 손님이 모인다는 설이 있는데, 이 녀석은 돈이 좀 더 좋은가 보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유투브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고양이가 앞발을 들어서 조심스럽게 살살 손짓하는 모습은 '이리 오라'는게 아니라 공격 준비태세다.

사람이 자기 본위대로 해설하다 보니, 쫓아내려던 고양이는 고마운 영물이 되어버렸고, 그건 그거대로 행복한 이야기일 듯.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 보니, 엄숙한 준비동작과는 반대로 잘 웃고 유쾌한 성격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북 앞에 앉아있다.

태고라고 불리는 북을 연주하는 팀인데, 북의 재질이나 타법은 다르지만 동양권에서는 나름 익숙한 모습.

전통연주다 보니 각이 딱 잡히고는 있지만, 앞에 자리깔고 앉은 사람들은 도시락도 먹고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나라별로 북치는 방법이 다르긴 한데, 이게 또 지역별로 눈에 띄는 특색이 있다 보니

딱 어느 방법이 어느 나라의 방식이라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타악기의 특성인지 지역적 특생이 강하게 남아있는 악기.

 

입은 옷만 봐도 '각'이 느껴지는데, 북을 치는 방식 역시 꽤나 절도있는 모습이다. 태권도의 품새를 생각나게 한다고 할까.

원형적인 움직임이라던가, 손목과 어깨의 스냅을 이용한다던가 하는 방식이 아니라, 팔을 어깨 위로 쭉 올렸다가

간결한 직선으로 내려오면서 북을 치고 다시 각을 맞춰 위로 올리는 모습이다.

 

느린 박자였을때는 굉장히 엄격한 느낌이 드는데, 점점 속도가 빨라지도 살짝 엇박자가 겹치며 리듬이 다양해지는 순간부터

소리도 풍부해지고 경쾌함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움직임은 절도가 넘치는데 사람들은 서로 웃어가면서 즐겁게 치고 있다.

 

앞자리에서 북소리를 들으니 귓가가 파르르 떨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시원하다.

공연이 끝나고 잠깐 소개를 하는데, 이곳 마을 사람은 아니고 이렇게 북을 가지고 다니며 축제 있는곳에 가서 연주를 하는 팀이라고.

자주 와 주기 때문인지 소개하는 도중에도 장난끼있는 친구들이 소리도 지르고 한다.

공연중의 강렬한 이미지와는 달리 웃는 얼굴이 굉장히 편안한 아저씨 아줌마 팀이라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태고 공연은 계속되지만 언제나처럼 끝까지 듣지는 않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 정도 걷다보니 이 축제 거리의 구조를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길게 이어진 거리의 양쪽 사이드 부분은 각종 공연이 열리고 중앙부분에는 노점과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이 포진해 있다.

 

일단 공연 구간을 빠져나온건지 조금 한산해진다. 슬쩍 둘러보니 현지인들은 그냥 평범한 옷 입고 마실나온듯한 편안함을 보여주는데

외국인들도 굉장히 흡족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커플끼리' 둘러보고 있다.

 

뷰파인더에 담긴 타인들의 모습을 토대로 내려본 결론은, 뭔 다큐멘터리 작가처럼 거대 사이드백에 카메라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은

아무래도 나밖에 없다는 사실 정도. 찍을땐 몰랐는데, 우측의 체육복 처자가 날 웃으며 바라보는 모습에서 세삼 그 생각이 든다.

난 관광하러 와서 항상 관광당하는거 아닌가 싶은 자의식 과잉적인 생각이.

 

 

생필품 판매하는 지극히 평범한 동네 슈퍼였는데, 창문쪽에 애니메이션 '빙과'의 관련 포스터들이 잔뜩 걸려있다.

 

작품의 무대가 이곳 타카야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제 제작은 쿄토에 있는 제작사에서 만들었을 뿐이지만

자신들이 만든 작품인 것 처럼 열심히 홍보중이다. 한국에서도 무슨 유명 드라마 촬영지라면 관광객이 모이는 그런 느낌인가.

애니메이션까지 그런 범위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면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위치를 짐작할 수는 있다.

 

덕후들이라면 여기까지 와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장면이나 건물들의 모습을, 구도까지 똑같이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게

소위 성지순례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유야 어쨌든 덕분에 타카야마에서 돈 좀 쓰고 돌아가 줄테니 마을 사람들에게도 나쁘지는 않을 듯.

 

 

 

빙과 관련 포스터 중간에 이상한 연하장 같은게 걸려있어서 뭔가 싶었다.

리얼한 냥이 얼굴이 중앙에 붙어있어서, 처음엔 저 구멍 너머로 진짜 냥이가 보고 있는건가 착각도 했다.

 

왜 연하장이 애니메이션 광고와 함께 걸려있나 의아했는데

조사 좀 해보니 이 연하장을 보낸 사람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중 한 명을 연기한 사카구치 다이스케(坂口大助)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50년이 넘은 일본은, 성우라는 직업도 하나의 연예인 같은 취급을 받아서 나름 유명한 사람도 있다고.

 

 

 

상술, 이라고까지 단언할 정도는 아니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객에게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에 대해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만한 내공이 아니라는 점을 세삼스럽게 이곳 저곳에서 느낄 수 있다.

 

그냥 대자보에 '낙서 공간'이라고 적어놓은 것만으로도 덕후들의 능력이 발산된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도 감탄하면서 이렇게 사진 한장 더 찍게 되는 것이고.

 

그림 실력은 거의 프로급인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 빙과라는 애니메이션이 꽤나 인기가 있었던 듯?

한국의 둘리와 마찬가지로 인기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주민증도 발급하는 일본이라서

몇몇 마을은 주민증은 물론 학교 교복까지 캐릭터들 의상과 맞추려고 시도하는 곳도 있는데

타카야마는 어쨌든 전통의 힘이 강하고 충분히 유명한 관광도시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듯 하다.

 

 

 

다음으로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아이들의 놀이터.

그냥 폐기할 박스를 아무렇게나 가겨온 건가 싶지만, 묘하게 히타치 박스가 많이 보여서

설마 이것도 히타치에서 정식으로 제공한 것인가 하는 의문점이 들기도 한다. 일본이 워낙 그런데 꼼꼼한 나라라서.

 

그냥 보면 별것 아닌게, 박스에 구멍 좀 뚫어놓고 박스끼리 연결해서 통로 만들어 놓았을 뿐인데

아이들 시선으로 돌아가 생각해 본다면, 의외로 저 사이사이를 통과하는게 재미있을 법도 하다.

 

아침에 엄마한테서 당근 안먹는다고 야단맞은 아이라거나

아베 총리의 연일 정신나간 발언에 자신이 성장터가 될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어 스트레스가 쌓인 아이라거나

주입식 교육에 진절머리가 난 아나키스트 초등생 등등이 

 

혹시 한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한번 우당탕 난동만 피워도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어 버릴 정도의 내구성을 가진 놀이기구라서

그런 일이 벌어지진 않으려나 조마조마하기도 했지만, 애들이 순한지 다들 안에서 얼굴 쏙쏙 내밀고 얌전하게 논다.

 

 

 

원래 풍선 건지기는 아이들 손바닥에 딱 잡힐 정도의 크기였는데

요즘엔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나오는지, 애 머리통보다 더 큰 녀석을 낚느라 정신이 없다.

사탕처럼 알록달록한 무늬의 풍선들이 아이들을 유혹하는 듯, 작대기도 없이 손을 가져다 대는 아기를 막느라 부모들이 애쓴다.

 

대충 축제 파할때쯤 되면 반쯤 공짜로 애들한테 나눠주기도 한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안주겠지?

 

 

 

상가 거리를 직선으로 주욱 걷기만 하면 되는 축제길이라서 어려움없이 전진한다.

다음 볼거리는 좀 더 본격적인 놀이인데, 미니카의 수명이 얼마나 긴지, 25년전 내가 초딩이었을 때부터

지금도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에겐 변함없는 권력과 욕망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그 당시야 뭐, 모터 돌려서 굴러가는 것만으로도 재밌어서 난리치던 시기였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이런 서킷에서 제대로 승부도 낼 수 있는 훌륭한 브루주아 놀이로 격상되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놀이이긴 한데, 자동차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연령대가 나눠지는 것인가.

어른들도 상당히 흥미진진한 얼굴로 미니카 조절중인 팀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 이것에 대한 지식이 없는 어른들은, 저 조그만 장난감이 이렇게 큰 서킷을 어떻게 달리는 건지 궁금하실 듯.

 

기본적으로 판매되는 미니카의 모터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어른의 기술과 자본력을 살짝만 투입한 녀석들의 스피드는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아마 미니카가 서킷을 처음으로 달리는 그 순간, 놀라는 어른들이 꽤 많을거라 상상해 본다.

 

 

 

레이스가 치뤄지기 전 사회자가 간단한 소개와 함께 테스트 드라이브를 시연해 보인다.

모터 기술이 워낙 발달하다 보니 속도는 충분한데, 가벼운 자체 탓에 조금만 실수하거나 밸런스가 안 맞으면

주행 중에 서킷에서 튕겨저 날아가 버리는 일이 빈번하다. 그래서 테스트를 철저하게 거쳐 봐야 하는 것.

 

사실 미니카 레이스는 속도 경쟁보다 더 중요한게 서킷 완주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시험삼아 두 대가 달리는데 정말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든 속도로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언덕코스와 점프코스에서 서킷을 이탈해 버렸는데, 뭔가 조금 만지적거리고 나서 다시 테스트 하니 문제없이 완주한다.

 

구경하면 참으로 재미있을 것 같지만, 이건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라서 그냥 눈으로만 조금 관람후 이동한다.

공연도 그렇고 이벤트장도 그렇고, 관객이라는 입장이 아니라 참가자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분위기는 매우 훈훈하다.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를 가지는 축제도 물론 볼거리로서 부족함이 없지만

어깨에 카메라 끼고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이런 소소한 축제의 즐거움이란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아이디어와 아이들을 위한 배려심이 만들어 내는 부스.

'골판지 시어터'라고 적혀있는 이곳은, 안전상 전부 골판지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된 TV와 스피커까지 갖추고 '이웃집 토토로'를 방영해주는 미니 극장이다.

 

밑에는 장판이 깔려있어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앉아서 보거나, 아예 드러누워 보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금 여기서 토토로를 보고 있는 아이들이 아직 정자와 난자 상태로 생성되기도 한참 전에 만들어 진 작품인데

아마 100년이 지나도 이 나이대 아이들에게는 토토로를 보여줄 듯 하다.

 

한국에서도 그런 미디어가 한개쯤은 나와줘야 할 텐데...

'라바'라는 애니메이션이 참 재밌긴 한데, 그걸 100년지대계로 유아들에게 보여주다간 한국은 더럽혀 질것 같다.

 

 

 

아이들을 위한 코너가 끝나면 이젠 어른들의 휴식처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맥주만 파는게 아니고 각종 음료수나 생과일 주스 등도 노점상에서 판매중이니

대화와 휴식에는 딱 알맞은 장소. 꽤나 자리를 많이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앉을 자리는 없다.

 

여기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 보면, 옆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굴복하지 않을 수가 없을 듯 해서

훈훈한 축제라고 해도 어쨌든 사람의 지갑문을 열게 만드는 이 사람들의 능력은 여기서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축제 마지막 구간에 도달했는데, 아직 연습중인 듯 하다.

자전거를 탄 사람 두 명이 다양한 장애물 위에서 몸을 풀고 있다.

 

이런 작은 이벤트 하나 준비하는데, 그래도 자전거라고 빨간 꼬깔기둥 세워놓고

거기 맞춰서 벤치도 준비해 놓는 이런 모습이 더 훈훈하게 다가온다.

 

그것과 별개로, 일행으로 보이는 한 여성의 머리에 뭔가 익숙한 모자가 쓰여져 있는게 신경쓰인다.

한국에서는 트라우마 때문이라도 좀처럼 보기 힘든 모자인데.

 

 

 

준비하는 동안 옆의 가게들을 슬쩍 둘러봤는데, 평화로운 히다 카타야마에 어울리지 않는 인형집이 매우 눈에 띤다.

저 인형은 한국에서는 몰라도 일본에서는 꽤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녀석인데

아무래도 애들 주라고 만든 듯한 녀석은 아닌 듯 하다. 아주 찰지게 문신이 그려져 있다.

 

타카야마에서 갑자기 이런 엽기 상품을 만나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교토에 비해 좀 덜 딱딱한 느낌도 들고 한다. 이거 구입하면 세관에서 통과가 될런지.

 

 

 

야쿠자 인형에 정신을 뺏기고 있는 사이, 축제의 가장 마지막 줄에서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저 자전거는 이런 묘기에 쓰이는 녀석으로,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보다 이리저리 휙휙 잘 돌아가는 녀석이다.

가볍게 몸풀기를 시전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묘기보다 이 몸풀기가 더 신기하게 느껴지는건 나 뿐일까.

 

 

 

긴장한 탓인지 아직 실력이 부족한지, 첫 번째 선수는 미스를 많이 저지른다.

사실 일반인 입장에서는 미스를 저지르지 않는다는게 더 이상할 정도긴 하지만.

 

지면에서 점프에서 저 나무판 위에 착지하는 퍼포먼스인데, 나무판 넓이가 양 바퀴 넓이와 거의 같다.

보호대는 헬맷밖에 없어서 미스할 때마다 크게 다치는거 아닌가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미스하는데는 익숙해져 있는 듯.

비꼬는게 아니라 이런 자전거를 탈 때는 가장 우선시 하는게, 실수할 때 다치지 않는 연습이다.

 

 

 

몇번 실패를 해도 돈을 주고 보러온 관객이 아니니 다들 편하게 박수를 쳐 준다.

어차피 이런 건 자신과의 싸움이라서, 관중이 할 수 있는 일은 성공할 때까지 응원하는 것 뿐이다.

 

두 번째 퍼포먼스는 나무판 위로 점프해 올라가 타이어 폭보다 좁아보이는 작대기를 타고 이동해서

목적지인 미니 트럭 위로 올라가는 것. 진짜 실수하면 어떻하나 싶을 정도로 위태위태하지만

다행이라고 할까. 저 자전거는 급 브레이크 시에도 중심을 흐트리지 않고 딱 정지할 수 있도록 고안된 녀석이다.

 

진짜 프로처럼 막힘없이 주르르 흘러가지는 못해도, 조금씩 조금씩 멈춰가며 세심하게 전진하는 모습 역시

노력하는 자의 열정이 느껴지기 때문에 보기좋을 따름이다.

 

 

 

두 번째 주자는, 보기에는 친구처럼 보이는데 실력은 스승과 제자라고 생각될 만큼 차이가 난다.

간보기도 없고 실패도 없고, 바퀴 하나로 공중에 정지된 듯 서 있는 모습이 매우 능숙하다.

 

어쩌면 친구의 거듭된 실수로 마음 단단히 먹고 출전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원수는 갚았으니(?) 안심해도 될 듯.

마이크로 응원과 해설을 겸하고 있는 매니저 비슷한 여성분은,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관객층이 지긋한 아저씨 아줌마층이라

한국사람 입장에서 보면 살짝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지만, 광란의 밤과는 거리가 먼 소소한 축제 분위기에 오히려 들어맞는듯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 같은 덩치가 엎드려서 고개 한쪽으로 돌리고 잠자다 보면

가끔 숨이 목에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며 껄떡! 거리며 화들짝 깨곤 한다. 거의 정신을 잃은 듯 했는데 아직 시간은 많이 흐르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예술작품이라서 이곳 타카야마에 온 보람이 느껴지는데

뉴스에서는 오늘 새벽에 나고야에서 있었던 폭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오늘 새벽 자면서 들었던 빗소리는 예사로운게 아니었던 듯, 새벽에 내린 비로 JR선 운행이 30분 이상 중지되었다고.

본인이 슬금슬금 움직였던 8시 너머부터는 이미 비가 소강상태였기 때문에 문제없이 타카야마로 이동했던 것이다.

 

타이밍이 조금만 안맞았으면 오늘 여기서 이런 하늘을 바라볼 수도 없었으리라 생각하니, 이번 여행은 운이 따르는 듯 하다.

이제 슬슬 노을이 질 무렵이라, 낮에 잠깐 맛만 보았던 거리 산책을 좀 더 즐겨볼까 하고 몸을 일으키니

아직 완전히 피로가 풀리진 않은 듯 찌부둥함이 남아있다. 하긴 이렇게 잠을 자면 그다지 몸에 좋지도 않고.

 

감동적인 하늘 풍경과는 달리 마음속은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내일 목적지이자 이번 여행의 사실상 유일한 관광 목적지인 시라카와고(白川御) 쪽의 문제때문에.

시라카와고는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현대식 숙박시설을 지을 수 없다.

가격도 비싸고 편의성은 극악인 곳이라, 버스로 10분쯤 거리에 있는 훌륭한 온천여관에 큰맘먹고 1박 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일본 도착후부터 그 여관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 옛날 여관이라 인터넷 예약이 힘들어 일본 와서 전화할 예정이었지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대기신호만 계속 울리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시라카와고는 정말 깊숙한 깡촌이고, 문화유산인 관계로 노숙도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숙소를 정하지 않으면 섣불리 가서 죽치고 앉아있을수도 없는 곳이라 고민중이다.

몇번 더 전화해보고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예정을 바꿔서 이곳 타카야마에 다시 돌아와 숙박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불안을 안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무렵 다시 호텔을 나선다.

 

 

해가 저물어도 덥긴 덥지만, 직사광선에 살갗이 비명을 지르는 일이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옛 마을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데, 6~7살쯤 되어보이는 금발의 외국인 자매가 엄마 사이를 원자처럼 빙글빙글 돌며 걷고 있다.

비록 일본 전통의 가벼운 외출복인 유카타를 입고 있었지만, 그거야 뭐 관광와서 하나 사입었을테고

히다 타카야마 어디에서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서양사람이라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갑자기 애들이 엄마한테 일본어로 뭐라뭐라 하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본토사람이 아니면 흉내낼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본어라, 뭐하는 애들인가 싶었는데

옆에서 지나가던 자동차 창문이 열리며 아이 엄마한테 반갑게 인사하는 일본 아주머니를 보고서야 국제결혼한 가족이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고보니 좀 전까지 그냥 같은 길 가던 사람인  줄 알았던 일본인 남성이 아버지인듯 자동차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아이들은 서양쪽 유전자가 강한지 거의 100%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구분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일본어를 모국어로 여기는 듯 하지만, 엄마쪽은 확연히 외국인 일본어라는게 느껴진다.

도쿄도 아니고 이 타카야마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가족을 보니 뭔가 신선하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길을 걷다가, 문득 주위가 굉장히 소란스러워져서 의아하다.

아직 옛 거리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한쪽으로 굉장히 몰려 걸어가는 모습이 보여서 슬쩍 따라가 보니

유명 관광지인 옛 마을거리에 비해 한산했던, 평범한 요즘 상점가에서 뭔가 축제가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

 

 

 

타카야마라는 유명한 관광지에게 조금 실례될지도 모르지만

본인에게는 그냥 여행 경유지의 목적밖에 없었던 곳이라, 관광 루트라던가 계획이라던가 짜 놓은게 없었다.

그래서 오늘이 마을 축제날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술렁술렁 걷다 보니 이런 이벤트와 만나게 되었다.

 

만약 낮에 좀 더 힘내서 많이 구경하고 돌아다녔다면, 또는 저녁에 눈을 떠도 몸이 피곤해서 그냥 자버렸다면 이 축제를 접할 기회도 사라져 버렸을 텐데.

여행중 이런 우연과 조우하는건 이제 신기한 일도 아니지만, 항상 여행의 가장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 녀석이다.

 

시끌벅적했던 소리는 대규모 브라스밴드의 화음이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열심히 연주중.

구성원을 보니 특정한 곳에 소속된 밴드가 아닌듯 하다.

중학생 정도의 학생과 70은 되어보이는 할아버지가 만들어내는 경쾌한 화음은, 본인의 이상적인 시골마을 모습중 한 가지였는데

이곳에서 보게 되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만약 자식이 있다면 손자와 함께 색소폰 부는 것처럼 매력적인 일도 없을테니까.

 

 

 

지휘자가 곡이 끝나고 난 뒤에 가볍게 단원 소개를 한다.

역시 예상대로 근처 초중고에서 모인 학생들, 마을 음악클럽 회원과 함께 이웃마을 밴드까지 합세한 그룹이다.

그런 고로 연습시간이 좀 부족했다고 고개를 숙이긴 하는데, 여기가 예술의 전당도 아니고 이 정도면 어깨를 들썩이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들었던 곡은 본인도 익히 알고있는 곡이라 어렵지 않게 감상 가능했다.

현재 NHK 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침드라마 '아마짱'의 오프닝 테마.

욕하면서 본다는 드라마들이 가지는 막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그야말로 맑은 이야기만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하며

이런 소재로도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웰메이드 드라마... 라고 하긴 하는데

본인은 드라마를 보지 않으니 내용은 모르겠고, 오프닝 테마만큼은 정말 마음에 들어서 따로 구입해 듣고있다.

 

발매된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앨범이고, 드라마 오프닝 정도는 그냥 공개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NHK가 강력하게 유료 음원으로 밀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소개를 할 수는 없다. 

 

 

 

이 정도라면 살짝 들려도 문제 없을듯 하니 소개하는 겸, 고양이를 감상하는 겸 업로드해 본다.

 

아무튼, 드라마는 몰라도 오프닝 테마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을에 울려퍼지는 신나는 음악에 활기가 넘친다.

 

 

 

마을 사람들끼리, 혹은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일년에 한두 번씩 이렇게 모여서

시원스럽게 연주를 피로하면 그것을 손자와 함께 보러 온 할머니가 즐기는 이 풍경은

한국에서라면 어디쯤 가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구의 본가가 하천변에 있기 때문에 여름에 여러 이벤트가 벌어지기는 하는데

항상 초청받아 오는 프로 아티스트가 아니라, 이렇게 동네 지나다니며 인사 한번씩 나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결코 아마추어의 장난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합주를 완성해 내는 모습은 여러가지로 인상깊다.

 

내가 시골마을에 갖고 있는 이상적인 이미지란 이런 것이었는데. 말은 쉽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괜히 낙심한다.

 

 

 

카메라의 동영상 녹화기능이 딸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음악이 주가 되는 공연이다보니, 재미삼아서 한곡 정도 녹화를 해 봤다. 엄청 대단하진 않지만 나름 잘 나온다.

사진작업은 재미있지만 동영상 후처리는 괜히 귀찮아서, 녹화는 했지만 블로그에 포스팅 할 일은 없을 듯.

 

연속된 시간을 보여주는 동영상과 달리, 나는 아직 단절된 시간속에서 동영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할 수 있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더 익숙하고 편하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의 광란에 가까운 축제를 보면서 '저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구나'하는 생각도 하지만

일본엔 그런 축제 말고도 이런 소박한 마을축제 역시 자주 열린다.

 

한국처럼 아파트 덩어리라 인구밀도나 이웃과 일면식도 없는 구조에서라면 이런 축제 열어봤자

다들 서먹서먹한 방관자 역할만 할 뿐이겠지만, 이곳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이 지휘자한테 손 흔들면

지휘하는 도중에도 웃으면서 같이 손 흔들어 주는 그런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사실상 사회 부적응자에 가까운 성격인 본인도, 같이 끼어들기는 힘들지만 이런 모습 자체를 즐기는 것은 굉장히 좋아한다.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면 나 같은 사람도 더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기겠지만, 전체적으로 배울점이 많은 마을 꾸리기가 아닌가 싶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가볍게 예정되어있던 저녁거리 산책은 아무래도 힘 좀 쓰고 땀 좀 빼야할 듯 하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지만 다행히도 카메라 베터리가 2개인 탓에 아직 여유는 있다.

 

규모면에선 그렇게까지 크지 않은 축제지만, 사람들의 수는 상당하다.

이렇게까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보이는 축제는 처음이라는 점이 신선하기도 하고.

 

브라스밴드의 공연은 마지막 곡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본인은 슬그머니 빠져나온다.

마지막 곡을 다 듣고나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함께 자리를 뜨는 인파때문에 앞으로의 구경이 힘들어진다는 걸 예전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원래 이 거리는 옛 마을 거리의 근처에 위치한

반쯤은 관광객을 위한 가게와 반쯤은 주민들은 위한 생필품 가게 등으로 이루어진 상가거리다.

 

뭔가 거창하게 준비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보여주는 축제와는 달리

이곳은 거리 분위기와 비슷하게도, 아이들을 위한 소소한 장난거리, 어른들을 위한 맥주 좌석 정도가 자리를 차지한다.

한국에서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에서 풍선 건지기 같은 게임도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어른들이 하면 가차없지만 아이들이 실수 몇번 하면 그냥 풍선 하나 건네주는 인심을 가진 곳으로 유명하다.

 

 

 

축제가 이루어지면 상대적으로 원래 장사하던 가게들의 타격이 없지는 않을 테지만

하루 이틀의 매상 저하가 결국엔 마을 전체의 매출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다들 잘 알고 있는듯 하다.

열어놓은 가게도 있지만 일찌감치 문 닫고 축제를 즐기러 나선 주인들 역시 눈에 들어온다.

 

살아남기 위해 이루어진, 협동과 분업의 상징인 마을 공동체는 이미 한국에서는 멸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축제를 위해 임시로 세워진 가게 주인장들이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과 즐겁게 인사하며 잡담 나누는 이 모습은

보기 좋기도 하고 괜히 부럽기도 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단지 남들이 하는 공연을 바라보기만 해서는 재미가 없는지

이곳에는 공연하는 부스 공간만큼이나 테이블과 의자를 잔뜩 비치해 놓았다.

먹는게 남는거라고, 사람의 코곳을 잔혹하게 후벼파는 달달하고 고소한 각종 군것질거리의 냄새와

이슬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비주얼의 맥주를 흔들어대는 호객꾼들의 모습은, 공연만큼이나 자극적이다.

 

분위기는 살지 않지만 혼자서라도 맛있게 마시고 즐기고 뜯지 못할것도 없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앉을자리 찾는게 힘들다는게 문제가 된다. 합석할 수도 있지만 본인이 좀 소심해야...

 

이 정도 인파와 이 정도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축제임에도, 곳곳에 대형 쓰레기봉투용 비닐이 설치되어 있고

바닥엔 나무젓가락 하나 떨어져있지 않은 모습은 여전히 사람 감탄하게 만든다.

이게 단순한 시민의식이 아니고, 젊은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곳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쓰레기 수거에 협조해 달라고.

사람과 사람이 움직여 만들어내는 축제는, 사람의 목소리와 행동 하나하나도 흐름의 큰 원동력이 된다.

넘치려는 쓰레기통 덩그러니 설치만 해 놓고, 자원봉사자들은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리는 모습 안에서 이런 청결함을 바라기는 힘든 것도 그런 이유.

 

 

 

타코야키, 감자칩, 감자버터구이, 야키소바, 닭꼬치 등등...

저절로 맥주를 부르는 녀석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냄새를 풍기니 이건 축제를 즐기러 온 건지 고문을 받으러 온 건지.

물론 돈이 없는건 아니지만 조금만 참기로 한다. 일단은 축제를 한바퀴 죽 둘러보며 사진 좀 찍고 한 다음에

느긋하게 좀 먹어볼까 싶다. 이걸로 저녁을 때울 정도는 아니니까 너무 많이 먹으면 안되겠지만.

 

축제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자리잡고 앉아서 맥주 마시느라 바쁜 사람들이 많다.

의자가 없으면 벽에 등대고 서서 마시는 커플도 있고, 그냥 바닥에 앉아서 마시는 사람도 있다.

뭔가 난장판 일촉즉발의 상황 같으면서도 항상 무난하게 잘 끝나는 이런 축제가 신기하기도 하다.

 

 

 

어른들이야 뭐 우리의 친구 맥주와 닭꼬치만 있으면 어디서든 즐거울 따름이지만

축제는 역시 아이들의 것이라 그쪽 취향에 맞춘 노점상들이 꽤 많다.

솜사탕 만드는 기계도 보이고, 한국의 뽑기같은 그림 떼어내기나 물풍선 건지기 금붕어 건지기 등등.

 

이쪽은 축제라는게, 관광객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의 일종이라기 보단 마을 사람들끼리 한번 재밌게 놀아보는 느낌이 강해서

이런 문화에 대해서 면식이 없는 서양쪽 관광객들은, 이런 노점상들의 놀이 하나하나가 매우 재미있게 다가올 듯 하다.

축제는 역시 쓸데없이 친절하기보다는 이렇게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게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한 번쯤은 다들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광경.

주인은 어디 놀러갔는지, 적어도 이 주변엔 없는 듯 하다.

 

사람들이 마구마구 만지진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꽤나 침착하게 가만히 바구니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주인 기다리다가 튀어나온 눈은 아닐지라도 좀 걱정이 되긴 한다.

고맙게도 카메라를 들이대니 시선도 마주쳐 준다. 기분대로라면 마구 끌어안고 뒹굴뒹굴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동네 5일장 같은 가벼운 축제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거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규모는 된다.

카메라만 너무 들이대면 축제 자체를 즐기지 못할 듯한 느낌이 들어서 가능한 한 눈으로 감상을 즐긴다.

휴대폰으로 찍는 사람은 많지만 나처럼 카메라 들고 움직이는 사람은 묘하게 시선을 느끼게 된다.

 

브라스밴드의 공연은 끝난 듯 한데, 발걸음이 향하는 쪽에서 또 뭔가 우렁찬 소리가 들려서 귀를 기울이고 이동해 본다.

 

절 안에 들어가기 전에 사루보보를 좀 더 돌아보다가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해서 담아본다.

사루보보 자체가 새끼원숭이라는 뜻인데, 그 품에 한마리 더 안겨있는 모습이 귀엽다.

 

 

 

일본에서도 고추를 저렇게 묶어두는 곳이 있었다는게 신기하다.

여기 걸려있는걸 보니 일단 복을 바라는 행동임에는 틀림없어 보이지만

한국의 고추와 달리 발음상 수컷을 출산하길 바란다는 의미는 없지 않을까 싶다. 발음이 전혀 다르니.

 

어디 물어볼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이 절은 입장이 무료라서 지키고 있는 안내원도 없다.

 

 

 

코쿠분지로 들어가면 보이는 석불.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데, 정확한 유래를 알 수는 없는듯 하다.

이 코쿠분지(国分寺)라는 이름의 절은 일본 여러 곳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사찰로

1300년전 일본이 야마토라는 이름의 나라였을 당시, 처음으로 율령 국가로 변해가고 있었는데

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하나씩 건설된 것이 이 코쿠분지이다.

 

코쿠분지의 총본산은 나라(奈良)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이 위치한 토다이지(東大寺).

이곳 타카야마는 산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쿄토와 나가노 내부까지 연결되는 도로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전국시대부터 전란이 꽤나 많았던 곳이라, 이 곳의 코쿠분지는 그 터만 간신히 남아있고 과거의 위상은 잃어버린 듯 하다.

 

 

 

나라나 쿄토의 유명 사찰들이 간직한 엄격한 건설 기준도 온데간데 없는것이, 원래의 공간도 거진 다 잃어버리고

간신히 대웅전과 삼중탑만 남아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예 없어져 버린 코쿠분지가 있는걸 감안하면 이렇게라도 남아있는게 다행이라고 할까.

명성은 바랬지만 여전히 타카야마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상당히 크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삼중탑. 코쿠분지 사찰이 너무 좁아서 광각렌즈 없이는 전부 담기가 힘들 정도.

 

 

 

일단 관광 가이드에도 실려는 있지만, 이름에 비해 크게 시간을 들여 둘러볼만한 곳은 아니라서

관광객도 한두 명 정도로 소박한 편이다. 날씨가 심히 덥긴 하지만 사찰의 흙내음을 맡으며 숨을 돌리기에 나쁘지 않다.

 

원래 경내 대웅전 바로 앞에 이런 건물이 서 있을리는 없는데, 원래 대문같은 녀석이 절 안에 위치해 있다.

상당히 오래되었고, 실제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고 할까. 많은 상인들이 영안을 바라는 부적을 기둥 곳곳에 붙여놓았다.

왜 대문을 통과해 절 안에 들어왔는데 또 대문이 덩그러니 놓여있는건가 의아해하며 설명을 찾아보니

원래 사찰의 대문이 아니라, 타카야마성에 있던 녀석을 이곳으로 가져왔다고 전해지고 있는 녀석이라고.

 

타카야마성은 처음 세워진 600여년 전부터도 많은 전쟁으로 원형보존이 어려운 상태였는데

300여년전 막부 직할령이 세워지면서 완전히 파괴되고 성터만 남아있다. 그 당시 몇몇 건축물들을 시내 곳곳에 분배했는데

그 중 남아있는게 이 코쿠분지의 종루문이라고 한다. 의외로 사찰만큼이나 역사성이 깊은 건물.

하지만 진짜 타카야마 성에서 가져온 녀석이라는 증거가 없어서 그냥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그렇다는 것.

 

 

 

좁디 좁은 코쿠분지에서 볼 만한 녀석은 거의 정해져 있다.

사실 정해지고 뭣이고, 코쿠분지 안에 서 있는 녀석이 딱 4개밖에 없다. 대웅전, 종루문, 삼나무, 삼중탑.

 

그 중에서 가장 임팩트가 클 거라 생각하는 이 삼나무는, 비교적 큰 나무들을 보기 쉬운 일본에서도 상당히 거대한 편이다.

공간이 좁아서 어쩔수 없었겠지만, 현재의 코쿠분지가 디자인적인 면에서 꽝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삼나무가 너무 거대한 나머지 다른 건축물을 완전히 압도해 버리기 때문이다.

 

 

 

삼나무의 전경을 찍으려면 렌즈를 바꿔 끼우고 꽤나 뒤로 물러나야 하기 때문에

심신이 지쳐가는 본인은 일단 디테일한 부분을 감상하고 나서 나중에 렌즈를 교환하기로 한다.

나무 사이에 놓여있는 석불. 사람이 일부러 놓은 것인지, 푸른 잎 한 장이 석불의 어깨에 살포시 놓여있다.

 

 

 

코쿠분지는, 그냥 대문으로 들어와서 한 눈에 절의 내부가 전부 보일 정도로 자그마한 곳이라

특별히 뭔가 놀라운 것을 기대한다기 보다는, 관광객 별로 없는 조용한 마당을 천천히 걸어다니며 즐기는 곳이다.

 

과거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지금은 그냥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다 들르는 공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지만

다른 마을과 달리 이곳 타카야마에서는 이런 절도 꽤나 분위기가 잘 맞는다. 아이들 손 잡고 저녁에 바람쇠러 나오기에 그만인 느낌.

이게 뭐, 언덕을 오른다던지 마을 외곽으로 나간다던지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대문 열고 3분만 걸으면 바로 나타나는 사찰이라서.

 

슈퍼 가는것보다 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사찰이라는 것도 마을의 자랑거리라 할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저 삼나무는 추정 연령이 1200년이나 되는 녀석이라, 왠만큼 질리지 않고 감상할 수 있기도 하고.

 

 

 

오랜 시대를 걸쳐서 많이 좁아지고 이것저것 건물이 들어오게 된 코쿠분지라서

유명 사찰의 기품있는 가람의 배치에서 느껴지는 엄숙한 아름다움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런 부족함을 자연스러움으로 커버하려는 듯한 녀석들이 열심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어서

타카야마에서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는 본인 입장에서는 이 정도가 예상에 딱 들어맞아서 오히려 기분이 좋은 편이다.

 

 

 

대웅전도 크기만큼은 참 소박한 녀석인데, 목재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의외로 고풍스러움이 넘친다.

목재의 상태를 보니 옛 마을거리의 건물보다도 훨씬 오래된 듯한 느낌을 주는데

설명문을 읽어보니 약 500년 정도 된 대웅전이며, 타카야마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500년 전의 사찰이 현대의 최신 주택가와 10m 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 풍경이 괜히 낯설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주민들에게 가까운 이미지로 다가오는 듯 해서, 크기에 비해 역할은 재대로 수행하는 사찰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진 뒤에 이미 주택이 찍혀버린걸 보면, 코쿠분지의 담 역시 꽤나 낮아서 고립감도 없이 속세에 마음껏 몸을 맡긴 듯 하다.

 

 

 

이곳의 다른 모든 건축물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삼나무의 위용은 대단하다.

어째서 1200년이나 된 녀석이 여기 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양사람들은, 동양적인 사찰 건축물에 크게 호기심을 가지겠지만 이런 나무에 대해서는 별 감흥이 없을 듯 한데

한국에서는 반대로, 사찰 보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이 정도 크기의 삼나무 보는건 꽤나 신기한 경험에 속한다.

 

1200년의 나이를 감안하면 정말 건강하게 잘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인상깊다.

나무에게도 당연히 나이란 게 있어서, 500년을 넘어가면 슬슬 기력이 다해가는 나무도 있는데 말이다.

물론 삼나무라는게 특히 오래 사는 종이긴 하지만, 1200년 정도에 이렇게 반듯하게 서 있는 녀석은 드문 편이다.

 

 

 

사찰 전체가 너무나도 실생활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지금 동네 공원에 산책하러 온 건지 사찰 보러 온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는 정말 해질녘까지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화 되었을 법도 한데.

 

나름 유명한 곳이고 중요 문화재도 있어서 그러면 안되겠지만

분위기 상으로는 딱 자전거 여행때 슬그머니 들어가서 텐트치고 잠 좀 자전 동네의 이름없는 신사의 기분이 든다.

 

타카야마에 올 때부터, 중간 경유지 역할로 인식을 하는 바람에 여행으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고

조금 강박적으로 볼거리를 찾아다니려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는데, 이곳에서 한숨 고르니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 지는듯 하다.

 

 

 

삼나무를 마음에 들게 담기가 쉽지 않다.

햇빛 강하고 뒤로 물러날 공간이 없어서, 어떻게 찍으면 크기를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지만

그닥 뾰족한 방법은 없어보인다. 관광객 하나 불러서 옆에 세워놓으면 좀 현실감이 생기겠지만

내가 그렇게 붙임성이 좋다면 그게 이미 이 삼나무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아무튼 물좋고 공기좋은 곳이라 그런지 1200살 삼나무가 허리도 아프지 않고 잘 뻗어있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본인이 한 100살쯤 먹어서 죽기전에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이 녀석은 거의 변한게 없을 듯.

 

 

 

통일감 없는 사찰의 배치가,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묘한 곳.

방금 전의 옛 거리가 놀랄 정도로 깔끔한 완성도를 자랑했다면 이곳은 상가 거리보다 더 사람냄새가 나는 듯 하다.

 

제대로 된 사찰건물은 마을 어귀쪽에 많기 때문에, 기대의 방향을 잘 판단해서 목적지를 정하는게 좋을거라 생각한다.

본인은 그냥 발걸음 가는대로 걸어가다보니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사찰이나 신사를 감상하고 싶다면 이곳에 올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 힘 좀 쓰면 여러 사찰이 모여있는 산책로를 걸어볼 수도 있지만, 마을버스를 타지 않으면 좀 거리가 멀고

피로가 조금 쌓인건지 몸이 좀 늘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일단 호텔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저녁에 다시 나와보기로 한다.

 

 

 

역 앞에 편의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물과 간식거리라도 사가려고 약간 돌아서 갔는데

마을버스로 보이는 아담한 녀석이 낮익은 애니메이션을 선전하면서 달려간다.

 

소설이 원작인 '빙과'라는 애니메이션인데, 갑자기 왜 이런 시골마을에 저 애니메이션 광고가 나오는 건지 의아했다.

나중에서야 알아본 사실이지만 저 애니메이션의 무대가 되는 곳이 이곳 타카야마였다고.

버스 밑에 보이는 풍경 그림들이 전부 타카야마의 풍경이라고 한다.

 

원작이 소소한 일상소재를 사용한, 피가 난무하지 않는 추리소설이라

애니메이션 역시 요즘 난립하는 말초신경 자극 작품들과는 달리 소설을 잘 각색한 담백한 녀석이다.

볼 때는 몰랐는데, 은근히 타카야마의 풍경과 어울리는 조용한 작품이었다고 세삼스럽게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마을 전체를 대표하는 버스에 저렇게 애니메이션 콜라보를 넣는 용기는 역시 일본이다 싶다.

외국인 관광객이 반을 넘는 마을인데, 그 사람들에게는 나름 마을 광고와 동시에 애니메이션 광고도 되지 않을까.

 

여담이지만, '빙과'라는 제목은 원작 소설의 1편 제목인데, 이 1편이 전 시리즈 중 가장 암울한 내용으로 유명하다.

사실 내용 자체가 고등학생들의 소소한 추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추리 소설로서의 긴장감이 거의 없다시피한 작품인데

1편만은 잔혹했던 시대상에 휩쓸려 무력한 개인이 쓰러져가는 비극을 담담하게 표현했으며, 추리 트릭 역시 충분히 만족할만한 장치로서 가동한다.

추리 소설에서 내용을 말하는건 아주 악질적인 행동이니 직접 적진 않겠지만...

 

제목이 트릭이다

 

 

 

편의점에서 먹을거리 좀 사서 나오니, 하늘이 이렇게도 푸를수가 없다.

굳이 생각해 내지 않으려 했지만, 자전거 여행때 느꼈던 그 하늘을 오랜만에 재현해 줘서 감회가 새롭다.

자전거로 도시를 벗어나면 이런 하늘은 배가 부를때까지 즐길 수 있었는데, 반갑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체험하러 가는게 여행이라고 하는데

일본 정도되는 가까운 곳에서는, 그냥 이런 하늘만 볼 수 있어도 그리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려나.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에 신호등 옆의 석상이 재미있어서 한장 남긴다.

설명을 제대로 읽진 않았지만, 아마 어린 아이가 풀잎으로 피리를 부는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쯤 할머니가 되었을 법한 사람들의 어릴 적 모습인가 싶기도 하다.

 

일본까지 갈 것도 없이 한국에서도 아버지 나이대의 사람들은, 등교 한번 하는데 해발 600m 정도 되는 산 하나는 넘어가야 했고

산 넘으면서 이렇게 풀 한조각 뜯어서 피리도 불고, 산수유 열매 같은것도 걸어가다 따먹고 했다고 하셨으니까.

 

추억은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율되기 때문에 어느 삶이 더 행복하고 값진 것이라고 비교할 수는 없어도

그때는 그렇게 사는게 제일 즐거웠던 게 아닐까 싶다. 지금 학교가는데 산 하나 넘어가라면 그건 아동학대가 되겠지만.

 

호텔에 돌아오니 4시가 조금 넘어있다. 3시간 정도밖에 돌아보지 않았는데도 상당히 피곤하다.

37도의 날씨 탓도 있지만, 새벽에 잠 늦게 자고 버스를 2시간 반 가까이 타는 바람에 피로가 풀리지 않은 듯 하다.

시원한 호텔서 에어콘 좀 틀면 개운해 지리라 생각했지만, TV 잠깐 보면서 어제 구입한 책을 좀 읽고 있는데

눈꺼풀에서 자력이 흐르는 듯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 이렇게까지 피곤한 줄은 몰랐다.

 

다행히도 해가 늦게 지는 여름날이라, 아직 노을이 지려면 거의 두 시간은 남아있으니 굳이 애써서 깨어있을 필요도 없다.

호텔에 들어왔으니 일기도 좀 정리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눈꺼풀이 용접되는 순간에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행동이 그냥 그대로 자는 것이다.

엎드려 책을 보다가 쪽잠 잘 때는 아무리 오래 자려고 해도 30분에서 1시간이면 저절로 눈이 뜨이니

귀찮게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던가, 옆에서 슬그머니 귀를 간지럽히는 TV 소리를 지울 생각도 없이 그대로 얼굴을 침대에 파묻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