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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반에 일어나 7시에 조식 먹으러 로비로 내려갑니다.

슈퍼 호텔 조식은 저가 비지니스 중에서는 그래도 먹을만한 녀석이고

고기반찬 생선반찬, 달걀, 낫토, 된장국 등등 건강에 별로 나쁘지 않은 반찬이 나와서 나이 드신 분들도 잘 드시는 장점이 있죠.

 

잠은 잘 잤지만 엄니는 역시 좀 피곤하신 듯 합니다.

밥 먹고 소화 좀 시킨 후 나가려고 했는데 잠깐 TV보며 누워있으니 금새 잠이와서 9시 반까지 자 버렸네요.

여행사를 따라다니는 일정이 아니라 피곤하면 늦게 나가서 좀 덜 돌아보면 되고 이런 건 편합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도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엄니께서는 외국이니 도시도 괜찮다고 하셨고, 어차피 내일부터는 거의 대부분 고즈넉한 곳만 돌아다닐 예정이라

크게 관심은 없어도 오사카 옆의 코베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곳도 관광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들어서.

 

 

 

자전거 여행중 코베에 도착했을 때는 길거리에 사람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아서

대체 뭔 일인가 싶어 알아보니 타이밍 참 절묘하게도 1년에 한번씩 열리는 루미나리에 당일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한신 대지진을 잊지 말기 위해 매년 12월날 열리는 루미나리에는 코베 시내 전체 교통을 통제하고 보행자 천국으로 만드는

도시 최대의 행사였기 때문에, 자전거 역시 내려서 간신히 인파를 헤쳐나가야 했고, 당연히 노숙할 만한 장소따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호텔을 잡으려고 해도 이미 코베 시내 모든 호텔이 만실인 상황. 루미나리에를 보고 싶긴 해도, 자전거 세워두고 텐트 칠 장소도 없는 터라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고 도망치듯 코베 시내를 빠져나왔던 기억이 있네요.

 

그 탓에 코베는 자전거 여행 중 별로 추억이 없는 도시라서, 이번에 한번 가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는 일 자체도 소중한 추억이긴 하네요.

 

코베의 중심역인 산노미야(三宮)역에서부터 여기저기 걸어다니시며 엄니는 진짜 지진으로 쑥대밭이 난 곳이 맞나 놀라워 하셨습니다.

이미 지진의 참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고, 젊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점차 그 때의 악몽도 사라져 가고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콘크리트 건물처럼 쉽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코베는 뭐, 자전거 여행 당시에도 별로 흥미가 없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코베 소고기가 유명하고, 차이나 타운이 유명하고 그렇고 그렇지만

도시 경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오사카와 크게 다른 점을 느끼기가 힘들었으니까요.

 

물론 파고들면 오사카와 다른 점도 많지만 이곳은 하루 이상 느긋하게 둘러볼 만한 구경거리는 별로 없는 곳입니다.

롯코산(六甲山)이라는 곳에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 보는 야경은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만

오사카를 거점으로 저녁에 돌아가야 하는 여행길에서는 꽤나 힘든 여정이라 그건 산뜻하게 포기합니다.

 

산노미야 역에서 바다쪽으로 주욱 이어지는 넓은 대로는 플라워 로드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정성들여 가꿔 놓은 꽃들이 안간힘을 다 하고 있어서 엄니가 매우 좋아하시더군요.

 

 

 

일본의 겨울 여행은 대부분 완전 남부 아니면 완전 북부로 갈라지는 경향이 있어서

중부지방인 코베는 생각만큼 여행객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길거리 걸어가다 보면 한국인 젊은 커플들의 목소리가 군데군데 들려오긴 합니다만.

 

빌딩 숲이라고 해도 확실히 한국과는 분위기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도 유심히 살펴보면 좋은 여행거리이긴 하죠.

엄니께서는 적당히 주변 둘러보며 구경하시다가 이 주변에 큰 서점 같은거 있으면 나중에 들어가보자고 하십니다.

 

엄니 학교 선생님이 유아용 그림책을 부탁한 게 있어서, 그거 사 줄겸 손자 책도 하나 구경해 보려고 말입니다.

형수님이 일본어를 살짝 읽을 순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일본에서 그림책을 사 줄 필요가 있는가 의아하지만

엄니는 그냥 외국까지 왔으니 손자 선물 사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설명을 하시더군요.

 

 

 

엄니께서는 제가 풍경을 찍던 엄니를 찍던 꽃을 찍던 그냥 갈 길을 가셔서

저는 엄니를 쫓아다니며 사진 담을만하다 싶은 녀석을 번개같은 순간에 캐치해서

촛점이 맞았는지 안맞았는지 확인도 못하고 그냥 후다닥 셔터 누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강행군을 해야 합니다.

 

아예 카메라를 가져 오지 않았거나, 스냅머신인 똑딱이를 가지고 왔거나, 최신 미러리스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지만 저는 가난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카메라가 벽돌만한 DSLR 과 방망이만한 렌즈밖에 없거든요.

 

이런 여행은 그리 자주 하지 않으니 참으면 될 일이지만, 역시 필요할 때 필요한 크기의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코베에 오긴 했는데 조식을 든든히 먹어서 뭘 먹고싶은 생각도 별로 없고

도시 조성은 참 잘 되어있는데 그렇다고 딱히 유별나게 볼 만한 곳도 없어서

산책을 즐긴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이곳저곳 걸어갑니다. 그래도 하늘이 눈부시게 맑아서 그거 하나로도 만족.

 

 

 

공원같은 곳에 도착하자 수많은 방송 장비들이 바쁘게 뭔가 설치를 하고 있더군요.

뭘 하는가 궁금해서 주위를 슬금슬금 둘러보다가 늦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엄니와 함께 여행하는 점에 신경을 쓰다 보니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바로 다음 날인 1월 17일이 한신 대지진 19주년이었던 것이었죠.

 

추운 날씨에 그래도 외국 여행이라고 텐션을 좀 높여서 걸어가고 있던 엄니와 저는 잠깐 조용해졌습니다.

그래도 만약 내일 코베에 갈 예정을 잡아 놓았었더라면 이거보다 훨씬 더 어색한 기분이 되었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은 했네요.

내일은 아마 여행객들이 이것저것 돌아보면서 웃고 즐기고 맛있는거 먹고 할 만한 기분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일본 어느 도시를 가나 꼭 찍어보는 맨홀 혹은 소화전의 모습입니다. 관광에 조금이라도 신경 쓰면 꼭 재미있게 만들어 놓더군요.

코베는 좀 큰 도시라 그런지 지역별로 맨홀에 그려진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코베는 오사카, 쿄토, 히메지 등 굴지의 관광 명소에 포위되어 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관광보다는 상업 중심의 도시이긴 합니다만, 항구로서의 기능이 뛰어나 서양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곳이라 그쪽 방면 볼거리는 좀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여행 가기 전의 코베는 역시 NBA의 코비 브라이언트 선수의 에피소드로밖에 남아있지 않았죠.

코비 아버지가 코베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그게 너무 맛있어서 아들 이름을 코비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대체 무슨 의도로 채워 놓은 것인지 궁금했던 자물쇠.

자세히 보니 체인을 고리에 둘러서 고정시켜 놓은 것이더군요. 왜 이런 방법을 썼는지 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혼자 여행가면 이런 '외국 관광'과는 전혀 관계없는 모습에 더 진지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편이지만

이런 사진 한 장 찍는 순간에도 엄니는 축지법을 구사하시며 계속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서

역시 남과 같이 가는 여행은 바쁘구나 싶더군요.

 

엄니는 제가 어디 가는줄도 모르는데 저보다 먼저 앞서서 걷고 있으니 참 신묘합니다.

 

 

 

해안가 쪽 거리는 서양식 석조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백화점이나 은행 등으로 쓰이고 있더군요.

한신 대지진 당시에도 콘크리트 건물이나 석조 건물은 별로 무너지지 않아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듯.

 

점심시간이 다가와서인지 갑자기 건물들에서 양복입은 사람들이 우루루 쏟아집니다.

코베에서는 단연 코베 소고기가 유명하다고 하지만, 엄니는 먹는데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분도 아니고

조식을 든든히 먹어서 고기 먹고싶지는 않다고 하셔서 그냥 적당히 즐길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일본쪽은 워낙 편해서 여행 기분이 들지 않는 탓도 있지만

딱히 어느 지역에 왔다고 해서 꼭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지방 특유의 요리 등을 먹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같은게 없습니다.

그래서 지역색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먹고싶다는 느낌이 드는 것만 먹는데, 엄니는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거리 이름이 해안거리입니다만

아무래도 건축 양식등을 보면 서양 문물에 크게 영향을 받은 거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겠더군요.

 

아무래도 실제 거주민들보다 저처럼 여행 관광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거리의 구석구석을 유심히 살펴보는 경향이 있으니

어디에서나 보이는 흰색 테두리에 푸른 색 철판으로 만들어 진 거리명 간판보다 이런 황동 간판이 훨씬 눈에 들어옵니다.

 

거리 자체가 옛 서양식 건물들로 이루어 져 있어서, 미관과의 조화를 생각해 만든 것이겠죠.

간판 하나가 인상을 깊게 만들 수도 있는게 여행이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좀 더 머리를 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건축 양식 자체가 한국에서는 별로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약간 기분이 어색하더군요.

며칠 전 서울 올라갔을 때도 여전히 구 서울역사의 모습은 묘하게 이질적이었습니다.

 

건축학적으로 의미는 큰 녀석들이겠지만 역시 일제시대의 잔재다 보니 좋게만 봐 줄수는 없는게 민족성이란 녀석일지도 모르겠네요.

조금 더 느긋하게 즐길 요량이었다면 저런 건물들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윈도우 쇼핑 같은 건 조금 더 몸이 지치고 나서 즐기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일단은 계속해서 해안쪽으로 이동합니다.

 

 

 

해안쪽으로 다가오자 사정을 알고 있는 저에게는 참 씁쓸한 모습이 눈 앞에 드러나더군요.

한신 대지진 당시 전 세계에 지진의 참상을 단 한장의 사진으로 표현했던 그 녀석입니다.

 

지금은 국도 2호선으로, 여기서 좀 더 움직여야 한신 고속도로와 연결됩니다만, 그 모습만큼은 19년 전의 악몽을 으스름하게 간직한 듯 하네요.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코베 하면 어쩔 수 없이 맨 먼저 떠오르는 사진입니다.

코베는 수백 년 동안 고진도 지진이 일어나지 않은 안전한 지대에 속해 있었고

이 고속도로가 완성될 1960년대 중반까지는 진도 7.0 이상의 강진에 견딜 수 있는 기술이 없었죠.

 

다시 재건된 고속도로는 진도 7 이상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재건 당시 이제 지진에서 안전하다고 자신감을 표하곤 했습니다만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진도 9.0 이라는 인류 역사상 5번째로 강력한 지진이 토호쿠 지방을 강타해 버렸으니...

진도 7.2 였던 한신 대지진의 1000 배가 넘는 위력을 가진 녀석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동일 국가에서 일어난 점을 보면

코베의 지진 후유증과 불안감이 사라지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코베는 지진 이후 거의 디폴트 상태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습니다만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성금이 쏟아졌고, 그때까지는 부유했던 일본 정부의 국가 주요 정책으로 복구를 지원했기 때문에

지금은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 한 그런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고도화 도시로 변신했습니다.

 

깊은 새벽에 일어난 지진이라 사상자가 6천여명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는 점도 어찌보면 다행이고...

제가 고가도로를 보며 엄니에게 설명을 드리니 한동안 주위를 둘러보면서 정말 여기에 그런 지진이 있었던 거냐고 물어보시네요.

 

 

 

아주 작은 구역입니다만 한신 대지진 당시의 피해 상황을 그대로 남겨놓은 메모리얼 파크입니다.

제 설명을 들어도 실감이 나지 않던 엄니께서도 이 모습을 보시자 깜짝 놀라시더군요.

 

참상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더욱 비참한 구역을 남겨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이상의 보존은 아마도 살아남은 코베 시민들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본 소고기중 최고라는 코베 소고기를 스테이크로 즐기고

차이나타운의 흥겨운 호객행위와 맛있는 군것질거리를 즐기고

거대 백화점과 상점가들 사이에서 쇼핑을 즐기며 코베 타워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그런 여행이라 하더라도

이 메모리얼 파크에서만큼은 그냥 웃고 즐길수 만은 없는 것이 코베라는 도시의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라고 하겠죠.

 

굉장히 복잡한 도시이긴 합니다만, 이쪽 해안가로의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

주민들이 운동복 입고 조깅을 즐기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이 보존 지역만 없다면 아미 미국의 해안가 공원을 연상시키는 아늑한 모습에 가슴이 시원해졌을 것 같네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나름 성공적인 복구가 이루어진 도시였기 때문에

매년 1월 17일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촛불을 켜며 염원을 빌곤 했는데 말이죠.

이 비극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공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동일본의 대지진 때문에

이곳의 19주년 추모식은 더욱 숙연해 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좀 더 깊게 따지고 들어가면,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정서적 차이가

수천년 가까이 계속되어 온 이런 자연 재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생관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은 그렇게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정말 큰 차이가 있죠.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전에는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차이 때문에 섣부른 판단과 추측이 어렵기도 합니다.

 

 

 

메모리얼 파크는 정말 산책하기 딱 좋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제 눈 앞에 나타나는군요.

코베가 대지진이라는 이름 하에서 어느 정도라도 벗어나려면 아직 수십 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풍경을 봐도 마음 속에는 항상 그 때의 고가도로의 모습이 떠오르니 말입니다.

 

 

 

해안가라서 빌딩들에게 방해도 받지 않고 하늘은 눈을 못 뜰 정도로 화려합니다.

코베에서 건진 가장 큰 볼거리가 이 시간대의 하늘이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과하지 않겠더군요.

 

엄니는 벤치에서 잠깐 쉬도록 하고 자판기에서 따듯한 콘스프 하나 뽑아왔습니다.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 엄니는 처음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게 음료수가 아니라 따뜻한 옥수수 스프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씨앗 하나 빠트리지 않고 쪽쪽 다 드시더군요. 저도 한모금 얻어마시려고 했는데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추운 초겨울까지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자판기의 콘스프는 저한테도 큰 도움이 된 녀석이었죠.

 

 

 

아마 혼자 온 여행이었다면 이곳에서 최소 한두 시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즐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콘 스프에 힘을 얻은 엄니는 제가 사진 좀 찍고 있는 와중에 다시 저 멀리 출발해 버리시는군요.

 

하긴 엄니 가이드 역할로 온 것이라 사진을 너무 찍어댈 필요는 없으니, 사진보다는 엄니 꽁무니를 쫓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도 이 날 코베의 하늘은 정말 담아내는 실력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 해야 할 정도로 대단해서

천천히 셔터 찬스를 기다려도 안타까울 판에 엄니가 계속 이동하셔서 그냥 대충 담아버릴 수 밖에 없다는게 조금 아쉽긴 했죠.

 

 

 

해안가 공원에는 코베 포트와 해양 박물관, 쇼핑몰 등 그럭저럭 볼 만한 것들이 꽤나 있습니다.

 

엄니는 해외여행 경험이 워낙 풍부해서... 안 가본 대륙이 아프리카와 남미, 호주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죠.

그래서 여행사 따라가면 꼭 들어가게 되는 각종 박물관이라던가 수족관이라던가 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그래서 이곳 박물관들도 그냥 산뜻하게 패스하기로 하고, 신기한 건물 외관이나 사진으로 담아보고 있습니다.

 

 

 

지면에 떨어져 짜부가 된 롤케이크 처럼 생긴 저 건물은 해안가 호텔입니다.

제가 돈이 많았으면 저런 곳에서 하룻 밤 묵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자괴감에 빠지니 엄니가 피식 웃으시더군요.

 

뭐, 사실 일박 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지만... 엄니나 제 성격상 저런 데서 자 봤자 어차피 저녁에 잠만 자는데 돈 아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터이니.

 

 

 

원래 이쪽은 밤에 포트 타워를 올라가 야경을 즐기는 게 여행의 기본 코스로 알려져 있는데

시간이 남아서 그냥 낮에 한번 둘러보려 왔던 곳이, 찬란한 하늘 덕분에 그래도 가슴 시원하게 만들어 줘서 좋았습니다.

 

엄니는 추위에 약해서 빨리 이동하자고 계속 신호를 날리고 계셨지만, 전 찬바람을 좋아하는 터라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끌고 있었죠.

산노미야 역에서 이곳까지는 그렇게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서

아침부터 지금까지 전철 약 4코스 정도의 거리를 도보로 이동하고 있었죠.

 

저는 중간중간 엄니한테 어디 들어가서 쉬거나 버스타고 이동하지 않겠냐고 물어봤지만

겨우 한두 코스 이동하는데 뭔 버스냐고 계속 걸어가시는 바람에 조금 걱정도 되었습니다.

날씨도 춥고 하니 배가 많이 고프진 않지만 근처에서 휴식과 식사를 겸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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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가 퇴직하시고 좀 심심해 하셔서 저하고 가볍게 근처 오사카 정도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일본쪽으로 가면 가이드 필요없이 저하고 다닐 수 있어서 말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엄니는 2월 초에 부부모임 동창회에서 대만여행 간다는 사실을

제가 오사카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서야 알게 되었네요. 그래서 좀 있다 또 나가십니다.

 

더더욱 아이러니하게도 저 역시 작년 10월부터 2월에 홋카이도 가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

눈축제 구경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거기서 취직하신 대학원 졸업생분과 이야기 좀 할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엄니나 저나 전혀 갈 필요가 없었던 여행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뭐, 자식하고 둘이서 해외여행 나가는 건 평생 처음이니까 괜찮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불행히도 오래 직장을 비울 만한 여력이 없어서, 그냥 2월에 대만 함께 가시는 걸로 결정했네요.

 

대구에서 부산 김해공항으로 당일 버스타고 갈 예정이라 까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니가 커피를 너무 조금 드셔서, 이럴 줄 알았으면 음료수는 하나만 시켜도 될 뻔 했네요.

 

 

 

직장생활 당시 시간에 쫓기는 출퇴근을 워낙 많이 경험하신 엄니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가서 기다리는게 낫지 늦게 가서 허둥대기는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별로 볼 것 없는 조그만 김해공항에도 탑승 2시간 반이나 전에 도착해서 미리미리 체크인을 해 버렸네요.

 

김해공항은 정말 아담해서 눈이 번쩍번쩍하는 인천공항의 면세점 물건들 구경할 수는 없지만

청사 내부에 재미있는 쓰레기통이 있어서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줬습니다.

엄니는 한참동안 '왜 여행가방이 이렇게 여기저기 세워져 있지'라고 생각하셨다고 하는군요.

 

 

 

오사카를 기점으로 하는 저가항공인 피치항공을 사용하는 여행입니다.

첫날은 저녁 7시가 넘어야 겨우 오사카 시내에 도착할 것 같지만, 저가항공이니 감내해야 할 듯.

그래도 난바역에서 도보로 이동가능한 숙소인데다 도톤보리라는 밤의 거리까지도 걸어서 갈 수 있으니

피곤한 여행 첫날 저녁은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엄니나 저나 여행 전날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세우는 성격이라

고속버스 -> 비행기 -> 전철 등 하루 5시간 정도를 이동하는데만 소모하는 첫 날 여정은

항상 머리가 지끈거리는 힘든 날입니다만, 그것도 이제는 익숙해 질 만큼 많이도 나가다녔군요.

 

 

 

피치항공은 물조차도 사 먹어야 하는 곳이라 남은 시간동안 점심식사를 합니다.

오사카에서 뭐 먹으러 나가려면 적어도 저녁 8시는 넘어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죠.

 

한국의 공항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은 없어서 심히 불안했지만

배 속에 뭐라도 넣어놔야 하니 일단 푸드코드에서 적당히 주문했습니다.

엄니는 타이식 볶음국수였나 어쩌구였나 주문하고, 저는 뚝배기 된장국 비슷한거 주문했습니다만...

역시 돈값은 거의 하지 못하는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일 뿐이었네요. 기대하지도 않긴 했지만.

 

식사 후에 도착층 쪽으로 내려가 귀국시 바로 타고 갈 버스표를 예약하고 있는데

그 쪽에는 번햄즈 버거였나 크라제 버거였나 아무튼 좀 비싼 버거집이 있는걸 봤습니다.

차라리 그걸 먹는게 좀 더 만족감이 있었으리라 생각했죠.

 

 

 

이륙이 연착되는건 특히 저가항공사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사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예정시각보다 20분쯤 지연되었지만, 부산에서 오사카까지 워낙에 가까운 거리라

비행기 처음 타는 사람이라면 그 첫경험의 황홀함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금새 착륙해 버릴 테죠.

 

오랜만에 딱 해가 질 무렵쯤 하늘 위를 달리는 비행기를 탄 덕에

푸른 하늘과는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은 만족할만 하군요.

 

 

 

기내 쇼핑 팜플렛을 보니, 칸사이 공항에서 오사카 난바까지 가는 특급열차인 '래피드 a'를

원래 1500엔에서 1000엔으로 판매한다는 좋은 광고가 있어서 그거 사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1시간 15분의 짧은 비행시간동안 기류가 불안정한 곳이 많아서

기장 명령으로 승무원들도 대부분의 시간을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있게 되었더군요.

이런 경우엔 기내 쇼핑도 자연적으로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경험했습니다.

 

두 장만 사도 만원이나 절약할 수 있어서 언제 쇼핑이 시작되려나 매우 조마조마했는데

결국 기류 문제로 인해 쇼핑은 시작도 하기 전에 오사카에 도착해 버렸네요.

 

 

 

일단 비행기 내리면서 구입할 수 있는지 한번 더 물어보기로 하고, 해지기 전의 창밖이나 담아봅니다.

노파심에서 적지만, 창쪽 좌석은 엄니에게 드렸고 저는 카메라를 쭈욱 뻗어서 한손으로 담은 겁니다.

 

엄니는 오사카도 외국이라고 추우면 어쩌냐고 걱정을 하시는데

오사카나 쿄토 등의 지역은 한국에서도 따듯한 편인 대구와 비교해도 겨울 평균기온이 더 높은 곳이라

그냥 입던대로 입고 가도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별로 효과가 없네요.

 

어느 가족이나 다들 그렇겠습니다만

제가 한국의 새집증후군에 대해 설명하면서 추운 겨울이라도 환기 꾸준히 해야 독성물질이 빠져나간다고 한참 설명하면

그냥 듣고 계시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응응거리시다가, 며칠 뒤 TV에서 똑같은 내용의 방송이 흘러나오면

깜짝 놀란 얼굴로 저한테 달려와서 새집증후군이란 게 그런 거라서 우리 환기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씀을 하시곤 하죠.

 

아무튼 금새 착륙하고 내리려는데 옆좌석 밑에 면세점에서 구입한 듯한 담배 두 보루가 떨어져 있습니다.

불쌍하게도 누군가가 잊어버린 모양이네요.

 

저는 팔면 밥값 정도는 나오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니는 남의 것 가져가면 밤에 잠이 오겠냐고 하시며 승무원에게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저야 뭐 담배 두 보루 정도라면 밤에도 잠 잘만 하겠지만 어쨌든 얌전히 승무원에게 인계하고 내렸죠.

 

래피드 a 할인권 좀 구할 수 없냐고 물어보니 공항 터미널에서도 할인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거긴 1000엔이 아니라 1100엔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었습니다.

 

 

 

평일에 출발해 평일에 돌아오는 여행이라 좀 한산할 줄 알았더니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이 많은지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아주 칸사이 공항을 점령중이더군요.

 

일단 앞으로 이용할 칸사이 스루 패스를 구입한 후 래피드 a 에 탑승하러 이동하는데

광장 한편에 세계의 명화가 묘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한번 가 봤습니다. 재현도는 상당한데 대체 뭘로 만든건가 싶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건 다 쓰고 회수한 전철 티켓을 모아 만든 그림이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회수권의 검정 마그네틱 부분과 앞쪽의 노란 부분을 꾸준히 이어붙여서 만든 것이 보이더군요.

 

이 작품에는 131,516장의 티켓이 사용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 전시회 너무 좋더군요. 화려함보다 친근함이 앞서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 혼자라면야 이런 특급열차 탈 필요 없지만 엄니와 함께니까 최대한 편한 이동을 선택합니다.

사실 이 시간에 혼자 온다면 첫 날은 숙소도 잡지 않고 넷까페 같은데서 새우잠이나 자고 있겠죠.

 

무사히 열차를 탔는데 앞 옆 뒤 거의 대부분이 한국 아니면 중국인 관광객입니다.

대학생쯤 되어보이는 젊은 아기들 서너 명이 즐겁게 한국어로 이야기 중이든데

남정네 여럿이 오사카 와서 뭘 즐겁게 여행하고 갈런지 궁금하더군요.

 

그러고보니 전 남하고 여행간 적이 혼자 여행간 적 보다 훨씬 적어서

단체 여행의 매력이란 거 아직 이해하기 힘들긴 합니다.

 

 

 

편안하게 난바역에 도착해서 잠깐 걸어 숙소에 짐 풀어놓고

그냥 하루 보내기는 아쉬워 도톤보리(道頓堀)로 이동합니다. 대낮보단 야경이 더 괜찮은 전형적인 도심지죠.

 

인공 하천을 중심으로 조성된 상가임에도 서울의 청계천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 환락의 거리입니다.

저희 집안 사람들의 특징이, 옆에서 혜성이 폭발해도 미간에 주름 하나 변하지 않고 흐음 하는 성격이라

하천 양쪽에 끝없이 늘어선 욕망의 네온사인을 떡하니 보여드려도

지금 엄니가 초상집에 온 건지 여행 즐기러 온 건지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는 보살의 은은한 표정으로 일관하시더군요.

 

제가 즐긴다기 보다는 엄니 가이드 역할로 따라온 터라 이렇게 되면 장소 선택이 잘못된 건가 고심하게 됩니다.

 

저녁이 늦었고 해서 술안주 비슷한 자극적인 먹거리가 많은 도톤보리의 음식점보다

적당히 한끼 때우고 슈퍼에서 간식거리나 사 가자고 하셔서 그냥 요시노야에 들어갔습니다.

일본 서민들의 휴식처인 요시노야인데, 어째 주위에 앉아있는 사람이 전부 한국인 관광객이더군요.

더 웃긴건 영어로 어물어물 뭔가 주문하는 한국인과, 그 주문을 어설픈 일본어로 받아드는 중국인 알바의 시트콤이었습니다.

 

매우 심란한 일본어를 어색하게 발음하고 있어서 오히려 영어와 일본어의 혼합 의사소통보다

제가 일본어로 말하고 종업원이 일본어로 대답하는 그 순간이 더 알아먹기가 어려운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네요.

 

 

 

도톤보리 요시노야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와서인지

역대 제가 먹어본 백여 군데의 요시노야 지점중 단연 최악의 품질을 보여줬습니다.

규동 소스도 제대로 뿌리지 않아서 밑에 흰 맨밥이 떡하니 늘어붙은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그릇을 점장 머리에 던져주고 싶을 정도더군요.

 

워낙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규동집의 품질마저 개판이 되어버렸습니다.

밝고 해피하고 사교성 좋은 사람들에게는 밤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곳인데

인류의 미래와 진리에의 탐구에 여념이 없는 진중한 저희 모자는 그냥 밝은건 전구고 어두운건 사람이구나 하며 걸을 뿐이었습니다.

 

 

 

도톤보리가 그렇게 일자무식 먹고 마시는 곳만은 아니어서

상당히 오래된 카부키 극장이라던가, 문화 예술적인 면에서도 활발한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긴 합니다만

외국인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곳이고, 엄니께 그걸 추천할 수도 없어서 조금 아쉬울 따름이네요.

 

 

 

그래도 일본의 상가 거리는 꽤나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어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좋은 볼거리입니다.

한국의 재래시장 상인들이 이곳에 와서 이렇게나 번창하고 있는 개인 상점들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사진 옆의 멍청한 용이 서 있는 가게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매우 유명한 킨류 라멘입니다.

대체 어떤 멍청이들이 오사카 가이드북에 꾸준히 저 가게를 소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사카의 라멘집 중에서도 레벨이 중하 정도로 떨어지는 곳이라 일부러 갈 일이 전혀 없는 곳이라고 생각.

 

얼마나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면 반찬으로 김치도 내준다고 합니다.

 

 

 

오사카 사람들이 부산사람과 닮았다는 말이 도는 이유가 이런 도톤보리의 풍경 때문이기도 하죠.

먹다 죽다(食い倒れ)라는 말이 오사카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이듯

이곳 도톤보리는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먹거리가 다 밀집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의 정갈한 회 요리, 코스 요리 등과는 달리

욕망에 솔직하다는 느낌이 드는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쓰러지기 위한 식당이 너무도 많습니다.

 

성격이 그렇지 않으니 동료들끼리 어깨동무하고 한 손에 맥주병 들고 웃고 떠들며 고기집 찾아다니는

그런 드라마같은 행동은 해 본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지만

이곳 도톤보리는 그나마 일본에서 그런 모습이 제일 어울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엄니는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사진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제가 카메라를 들던 말던 자기 갈 길을 가십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중 찍은 엄니 모습의 90%는 뒷통수만 나와 있네요.

 

엄니는 그걸로 아쉬워 할 성격이 아니니 저도 부담감은 없습니다.

혼자였다면 아마 저 별다방에 들어가 새벽 1시쯤까지 책이나 읽으며 시간 보내다가

적당히 넷까페 찾아들어가 잠 좀 자고 나오는 그런 여행을 즐겼겠죠.

 

 

 

오사카가 일본의 제 2 도시이긴 하지만, 도톤보리를 걷고 있으면 항상 신기한 기분입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거대한 상권을 소화할 인적 물량이 유입되고 있는지 말이죠.

 

아무래도 20여년의 불경기를 겪은 일본의 입장상, 이 정도의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할 듯 합니다.

오사카에 이 정도의 상권은 도톤보리뿐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중국의 부유층은 요즘 그야말로 자기들의 세상이라고 어마어마한 자금으로 일본 관광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죠.

 

도톤보리는 항상 그렇지만, 오늘은 아무리 둘러봐도 한국인+중국인 관광객 수가 일본인보다 더 많아 보입니다.

 

 

 

도톤보리에 오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 글리코 전광판도 변함없이 한 장 남겨봅니다.

이 다리가 이 다리에 대한 설명은 예전 오사카 여행기에서 언급을 했으니 넘어갑니다만

프릴이 잔뜩 달려 풍성한 미니스커트에 인형같은 차림을 한 여식들이 한 잔 하고 가라고 바람을 불어넣고 있더군요.

 

젊은 남정네들끼리 온 관광객들은 저런 것도 경험이다 하면서 한 잔 걸치러 갈 것인가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허세 만빵이라도 막상 현지인들이 저렇게 덤벼들면 매우 얌전하고 소심해 지는게 지금의 한국 대학생들이 아닐까 싶네요.

 

엄니는 놀랍게도 옷 귀엽게 입었다면서 저보고 사진 같이 찍어보자고 말 걸어보라 하십니다.

저도 만만치 않게 소심한 편이라, 바람잡이들에게 그런 말을 걸 자신은 없죠.

거기다 술 마시러 갈 것도 아니면서 업무에 지장을 주면 안 되니 그 제안은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뭔가 신기한 표정을 슬금슬금 걸어가고 있는 엄니입니다만

세상 여기저기를 다 둘러보셨기 때문에 이 정도는 그냥 슬쩍 보고 넘겨버리는 레벨에 도달하신건지

이미 구경은 다 하셨다는 듯 슈퍼에서 먹을거 좀 사가자고 하십니다.

 

물론 도톤보리에는 재미있는 슈퍼인 돈키호테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습니다. 사진 정면에 보이는 거대 관람차 건물이 돈키호테입니다.

 

 

 

도톤보리 들어가기 전에, 언제 봐도 놀라운 소비의 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담아봅니다.

오사카 사람들이 원래 좀 태평하고 거친 느낌이 있습니다만

묘하게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 들면서도, 여기서라면 한번쯤 타락해버려도 좋을 거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소비와 향락의 거리인 이곳의 모습은 조화와 부조화가 묘하게 공존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엄니도 한참동안 조그마한 하천 양쪽으로 뻗은 끝없는 건물들을 바라보시더군요.

이곳 도톤보리는 일본이 현대화 되고 나서부터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400년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습니다.

 

처음엔 물자 수송 하천으로 개발되었지만 에도시대부터 이미 환락하고 유명했죠.

강가에 배 띄워놓거나 하천 옆 유곽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며 경치를 구경하는 곳이었습니다.

뭐랄까, 이 정도 되면 환락가에서도 역사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단순한 슈퍼는 아니고 상당수 제품의 품질이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일본 관광 루트에도 이 곳에 들어가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을 만큼 독창성으로 넘치는 가게입니다.

 

엄니도 물건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하시더군요. 중간에 아기 장난감은 없냐고 물어보셔서 난감했지만.

손자 장난감은 이런 곳에서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있다고 설득한 후에 정상적인 구경이 이어졌습니다.

 

의외로 샤넬이라던가 루이 뷔통 같은 브랜드품 중고도 상태 좋게 전시되어 있고

보석류나 고가 시계도 많은 걸 보면, 역시 이곳은 외국인들이 워낙 많이 보다보니 상당히 특화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네요.

이곳 돈키호테 만큼은 외국인 관광객이 먹여살리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맨 위에 주욱 내려오면서 일본어보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눈썰미 좋은 엄니께서도 '저기 저 아해들 우리하고 같은 비행기 탄 애들이다'라고 지적하실 정도로

다들 그 시간에 칸사이 공항에 도착해서는 생각하는 것이 전부 똑같았습니다.

 

지금 내가 한국에 있는건지 일본에 있는건지 헷갈릴 정도로 사방 천지에 한국인들 투성인데

부디 내일부터는 좀 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니와 함께하는 고로, 대충 다들 생각할만한 안정적인 루트를 짜 놓았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긴 했죠.

 

돈키호테는 곳곳에 피식 웃을만한 장치를 많이 마련해 놓은 곳인데

매 층마다 멋지게 그려놓은 캐릭터가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저 화풍은 일본에서 꽤나 유명한 예술 장르(?)인데, 궁금하신 분은 '저연비 소녀 하이디'를 찾아보시길.

 

 

 

동키호테는 공산품 품질이 영 엉망이지만 그걸 감안하고 구매하는 그런 곳이고

어디서나 똑같은 물, 음료수, 술 같은 경우는 편의점에 비해 꽤나 싼 편입니다.

오사카의 호텔에서는 3박을 할 예정이라 물과 음료수 빵 등을 넉넉하게 사가지고 돌아갑니다.

 

도톤보리의 화려한 모습은 많이 봤으니 돌아갈 때는 좁고 어두운 골목길로 돌아가 봅니다.

엄니는 혼자서는 이런 길 못걷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어째 사진 찍고있는 저를 놔두고 혼자서 쑥쑥 전진하시더군요.

 

 

 

난바에서 도톤보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상권은 그야말로 절제되지 않은 소시민의 거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북쪽의 우메다(梅田)는 좀 더 고급스럽고 우아한 소비가 주를 이루고 있는 편이구요.

 

도톤보리 주변의 이런 골목길은 물론 적당한 고급 요리점이나 숨겨진 맛집 등이 존재하는 곳이긴 합니다만

난바역 주변까지는 워낙 풍속업소가 많아서 사실 엄니와 함께 오손도손 걸어가기 좋은 곳은 아니죠.

하지만 다행이라고 할까, 대부분 엄니가 봐도 풍속업소라는 걸 눈치채기 어렵게 되어 있어서 별 문제는 없습니다.

 

호텔은 어차피 잠만 자고 나오는 곳이라 비싼 곳 필요없다고 말씀하셔서

시장통 주변의 조그만 비지니스 호텔을 선택했지만, 예전부터 제가 칭찬하던 슈퍼호텔이라서 서비스는 좋습니다.

2명 고객을 위해 2층침대가 구비된 슈퍼 룸을 선택했는데 역시 좁긴 좁네요.

사실 엄니하고 함께 간 것이라 자금도 넉넉하게 준비해 왔는데, 좀 더 좋은 호텔로 할까 여쭤봐도 돈아깝다고 하셔서.

 

전날 잠을 못 주무신 터라 많이 피곤하신듯 했습니다. 씻고나서 금새 주무시더군요.

저는 TV라도 좀 보고싶었지만 엄니 수면에 방해가 되니 조용히 2층 침대로 올라갔습니다.

2층 침대는 1층 침대의 절반 크기밖에 안되는 작은 사이즈라서 저는 발을 쭉 펴기도 힘들었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침대를 바꿀수는 없고, 오히려 저는 예전 자전거 여행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 해서 기분좋게 잘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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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사진입니다.

여행기 올리기 전에 일단 밀린 사진부터 좀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작년 겨울 그마트에 갔다가 뼈없는 녀석을 팔고 있어서 한봉지 사 왔죠.

엄니는 인생 살면서 아직 닭발을 드셔본 적이 없다고 하셔서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먹다보니 처절한 반항을 하는 닭발이 한족 있어서 카메라를 찾아왔네요.

 

 

 

이렇게 자기 주장이 뚜렷한 녀석은 앞으로 크게 될 것 같습니다. 제 위장 속에서.

한동안 이 아름다운 자태를 파괴하지 못하고 방치해 두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닭발은 원래 맵게 먹는 녀석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오돌오돌한 식감은 좋아하지만

먹고나면 폭풍ㅅㅅ 때문에 고생하곤 합니다. 그래도 맛있어서 감수하고 먹긴 하지만 말이죠.

 

여담으로, 법규 생각하면 항상 이 영화가 먼저 떠오르더군요.

 

 

 

 

 

 

일부러 연출한 거 아닙니다만 참 잘만들었습니다.

앞으로 다시 이런 닭발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법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엄니와 저는 닭발을 먹어도 소주와 먹는게 아니라 차와 함께 먹습니다.

차값도 비싸긴 하지만, 아무데서나 캔 따서 벌컥벌컥 마시는 술하고는 달라서

가끔 차 마시며 '술값 안들어 좋다'는 이야기도 하긴 합니다.

 

여행갔을 때는 저녁에 한 캔씩 마시는데, 그냥 분위기 상 즐기는 거지 술을 좋아한다는 기분은 여전히 들지 않네요.

 

 

 

원래 집에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갑자기 차방에 모습을 드러낸 괴이한 녀석입니다.

엄니가 어디서 보기 좋다고 하나 업어오신 듯 하네요.

 

차를 마실때는 역시 여러가지 귀여운 찻잔이나 차 도구 같은 것들에 신경을 쓰게 되기 때문에

한때 엄니께서는 방에 전시하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악세사리와 찻잔 같은걸 쓸어오곤 하셨습니다.

 

형님부부 결혼 후 신혼집 방 한칸에 차방을 차려줄 정도로 확 떼어준 이후로 그나마 균형적인 밀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예전 전통공예박람회 폐관시간 직전에 좀 깎아서 구입한 찻잔.

비대칭으로 살짝 그을린 듯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전자와 찻잔 세트로 구매했죠.

이건 철분이 많이 함유된 흙을 도자기 굽듯 구워서 만든 녀석이라

사실 보이차 찻잔으로는 별로 적당하지 않습니다. 찻잔의 철분 성분이 맛을 교란시키는 기분이 들더군요.

 

 

 

어울리는 차라면 역시 반발효차에 들어가는 오룡차나 철관음 정도가 되겠습니다.

암차인 대홍포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긴 합니다만, 괜찮은 대홍포는 집안뿌리가 거덜날 정도의 금액이라서.

 

맛은 좀 안맞아도 보기가 좋아서 보이차든 철관음이든 다 차서 마시고 있습니다.

 

 

 

주전자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라 손가락으로 튕겨보면 팅팅거리는 금속음이 납니다.

이것 역시 바위에서 자라는 암차 계열에나 어울리는 녀석이지만 뭐, 보기에 좋아서 업어온 녀석이니 이것저것 많이 사용해 봐야죠.

 

국내 장인이 만들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역시 같은 고가품이면 중국쪽 차 도구에 더 무게를 주는 시류가 있어서인지

그렇게까지 비싸지는 않았지만 고민을 많이 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중국쪽 장인이 만든 자사호는 50만원 정도 되는 녀석도 한 눈에 반해 떡하니 업어오곤 했는데 말이죠.

그게 벌써 7년쯤 전이니 지금은 100만원 훌쩍 넘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엄니 지인분이 해외 나갔다가 선물로 사 온 홍차입니다.

홍차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익숙한 중국차보다 은근히 귀찮은 점이 있어서 자주 마시지 않는 편이죠.

이제껏 선물로 받은 수많은 홍차들이 대부분 유통기한을 훨씬 넘겨버려서 맛이 사라지고 버림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저 홍차는 열심히 마셔야 할 텐데... 작년에 이 사진 찍고나서 지금까지 봉투도 뜯지 않았네요.

 

 

 

엄니 학교 선생님 한 분이 이스라엘에 성지순례 갔다 와서 가져온 기념품이라고 합니다.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운 녀석은 아닌 듯 하지만, 수제품이라는 느낌은 확실히 들어서 괜찮겠다 싶네요.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역시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이 정말 인상깊에 남아있습니다.

 

석판 그림은 종교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알 수 있는 빵과 물고기 클론생성 이벤트에 대한 내용이죠.

 

 

 

쌀과자 같은 간식거리는 이런 그릇 안에 넣어놓고 차 마실 때 조금씩 씹어먹곤 합니다.

크기는 작고 과자 부피는 커서, 한번 뚜껑 열면 끝장을 보고 만다는 게 아쉬운 일이죠.

 

엄니가 차를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에 놓여있는 것들은 나름 디자인에 신경쓴 녀석들이 많은 듯 합니다.

워낙 익숙해서 별 생각없이 사용중이지만 느긋히 쳐다보고 있으니 꽤나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네요.

 

 

 

보이차 마신 후엔 녹차도 좀 마시자고 해서 세트를 바꿉니다.

색깔만큼은 녹차가 참 곱고 깔끔해서 엄니도 좋아하지만, 아쉽게도 녹차 많이 마시면 속이 좀 쓰려서.

 

그래서 보이차 만큼은 아니고, 가볍게 몇 잔 마시는 정도로만 즐기고 있습니다.

녹차는 좀 익숙해서 그런지 온도를 대강대강 맞춰도 맛이 나쁘지 않는데

홍차는 경험부족인지 몰라도 온도와 시간을 잘못 맞춰서 맛이 엉망으로 나올 때가 많아서 손이 잘 안가더군요.

홍차의 기본 지식이 대부분 석회질 물인 유럽쪽에 맞춰져 있어서 한국의 물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설프게 인터넷 지식가지고 테스트 하는 것 보다는 몇 번 우려내 보면서 직접 파악하는게 제일 좋죠.

 

이번 홍차는 아깝게 버리는 일이 없도록 자주자주 마셔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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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하반기가 좀 바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설마 이렇게 되리라고는...

8월에 갔다 온 일본 중부지방 여행기가 근 반년만에 끝났습니다.

 

그 동안에 뭐 사진 찍을 여유도 없었고 해서 밀려있는 포스팅은 거의 없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여행 갑니다.

예약 걸어놓고 나가기 때문에, 아마 이 포스팅이 올라왔을 때는 전 한국에서 사라진 뒤일겁니다.

 

이번엔 제가 마음껏 즐기러 간다기 보다는, 이번에 퇴직하신 엄니가 바람 좀 쐬고 싶다고 하셔서

가이드 필요없는 일본에 제가 모시고 가는걸로 이야기가 순식간에 진행이 되어 버렸네요.

 

사실 전 이미 2월에 일이 있어서 일본에 또 가야 하는 터라

엄니는 다른데 가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또 저하고 둘이서 편하게 즐길만한 곳이 별로 없네요.

길지 않은 기간이라 이동거리와 편의성 다 생각하면 역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제가 가는 곳이 제일 편합니다.

 

방사능 그런건 엄니에게나 저에게나 인생에 문제없을 정도라 확신하니 별 걱정은 안됩니다.

엄니 학교 선생님은 이번에 일본여행 가면서 마실 물을 한박스씩 가지고 가서 일본 물은 하나도 안마셨다고 하던데

식사 만드는데 물 들어가는 건 논외로 하고, 그게 걱정될 정도면 비행기는 어떻게 왕복 타고간 건지 놀라울 따름이더군요.

 

 

 

작년에 친구 결혼식 때문에 잠깐 서울에 올라간 적이 있는데

시간이 워낙 없어서 그냥 나침반님하고 식사 한끼 하고 다시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때마침 미국에서 강군도 돌아오고 해서 정신없는 주말을 보냈네요.

 

나침반님이 빕스 할인권을 가지고 계셔서 그거 먹었습니다.

종로인가 명동인가 그 근처에 있던 빕스인데, CJ 사옥 지하에 위치한 듯 싶네요.

작고 아담한 가게였지만 뭔가 음식들에 기합은 좀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이 가게 자체가 큰 기대를 바랄 정도의 음식 수준은 아니니, 그냥 별미로 한번 먹어본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게 좋더군요.

 

 

 

할인쿠폰으로 주문한 스테이크입니다. 와인도 한병 받았는데 조금 마시고 남은 건 나침반님이 가지고 가셨습니다.

스테이크는 미디엄 레어로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잘 지켜서 나온 덕에 좀 놀랐습니다.

거진 7년쯤 전 빕스에서 스테이크 시켰을 때는, 이걸 스테이크라고 구웠는지 의아할 정도로 엉성하기 그지없었는데

그때 비해서 노하우가 쌓인건지, 지점이 달라서 그런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스테이크는 충분히 먹을만 했습니다.

 

스테이크 수준이 괜찮으니 샐러드바 음식들이 되려 빛을 잃어버리는 기현상도 벌어지더군요.

보통은 스테이크 먹고 실망한 후, 샐러드바만 먹어도 충분했을텐데 하며 2중 후회까지 한번 해 줘야 어울리는데 말이죠.

 

여행중 너무 포스팅이 뜸해질까봐 대충 사진 몇장 던져놓고 잡담이나 주절거리고 갑니다.

리플은 다녀와서 달겠습니다. 그럼 다음주에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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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달한 더위를 뒤로 하고 청사 안으로 들어오니 천국이 따로 없다.

원전사고 전의 끝도없이 틀어대던 에어콘과는 전혀 다르지만, 밖에 워낙 덥다보니 이 정도만 해도 시원하다.

시간은 충분히 남았고 해서, 배는 고프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뭐라도 뱃속에 집어넣고 가 보려 한다.

 

자리가 널널하면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하는것도 괜찮겠지만 이곳은 그리 넓은 가게가 없다.

지방의 민자공항이다보니 역시 한도없이 크게 확장하는 데는 무리가 있는 듯.

 

공항 내부 가게들은 아무리 봐도 한국과 차이가 커 보이는 것이

팔고 있는 물건들의 종류가 기본적으로 좀 다른 듯한 느낌이 든다.

인천공항의 수많은 가게들은 대부분 면세의 이익을 즐기기 위한, 다시 말하면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파는 느낌인 반면

이런 공항의 가게는 남한테 선물하면 딱 좋을 만한, 그다지 비싸지 않으면서 맛있어 보이는 과자 세트같은게 많다.

 

 

 

긴 줄이 서 있길래 뭔가 싶어 가 봤는데, 원래는 광장이었을 중앙 홀에서 뭔가 행사중이다.

어린이 놀이터 같은 구조물과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은것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선 진짜 이유는 저 앞에서 열리고 있는 컵라면 시식회 때문이다.

 

닛신의 고급 컵라면 제품군인 라오(ラ王)를 시식하도록 하고 있는데

내 입맛엔 컵누들(カップヌードル)이 더 맛있지만, 일본에서는 단연 최고의 컵라면으로 인기가 높은 녀석이다.

라오 라멘은 1990년대 출시된 후 나름 인기가 있다가 점차 하향세로 접어들면서

잠시동안 제품 단종을 한 후, 디자인과 내용물을 완전히 일신해서 2010년 다시 출시했는데

당시 일본에 있던 본인은 굉장히 저돌적인 광고로 승부하는 녀석이 참 인상깊었다.

 

처음엔 광고 보고 과연 라멘의 왕이라는 칭호를 마음대로 써도 되는가 싶었는데

돼지 사골로 국물을 낸 돈코츠 라멘의 경우, 합성식품이 아닌 진짜로 말린 돼지고기 챠슈와 건조 숙주나물 등

컵라면으로서는 최고의 격식을 차린 호화스러운 내용물을 보고 나름 납득은 했다.

 

가격도 한국돈으로 3600원 정도로, 일본 컵라면 시장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들어가지만

인스턴트 라멘의 한계에 달하는 갖가지 제조법을 배합한 녀석이라 다들 어느 정도는 납득 하는듯.

하지만 역시 개인적으로는 컵누들이 가장 맛있게 느껴진다.

 

이 더운날 저거 시식 한번 해 보려고 줄 서고 싶지는 않아서 패스.

하지만 아이들 놀이터와 함께 전시해 놓고, 간이 식탁에서 아이들과 함께 라멘 먹도록 한 발상은 꽤나 훌륭하다.

공항 라운지에서 이런 이벤트가 펼쳐지는 것도 상당히 인상깊다. 공항은 아이들에겐 별로 재미없는 곳일텐데, 발상이 좋다.

 

 

 

한국도 이제 인천공항이라는 걸출한 녀석이 생기는 덕에 감흥이 조금 덜하지만

센트레아는 확실히 넓지 않은 공간을 잘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깔끔함으로는 오히려 새로 개장한 하네다 공항보다도 더 느낌이 좋은데

출국장과 입국장을 층별로 분류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된 공간으로 띄워놓음으로서

출국장의 즐길거리에 집중할 수 있는 느낌이 든다. 입국장은 뭐, 거기서 즐길 사람 별로 없을테니 패스하고.

 

 

 

일본의 상당수 공항은 에도시대 일본의 상가 거리를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좁에 만들어 진 골목길이 주를 이룬다. 한국에서 보기엔 뭔 구멍가게 골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저 사람들의 전통이고, 국제적 허브인 공항에서까지 그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좋은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제일 아쉬운 점이기도 한데, 군데군데 한국의 문화를 알리려는 센터나 전통 공예점 등이 입점해 있지만

공항의 분위기 자체만큼은 넓직한 서양식 인테리어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외국 관광객이라면 사람들 행렬에 좀 귀찮아지긴 해도 이런 좁은 골목길 분위기에서 이국적인 감성을 느낄 것이다.

 

 

 

에도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는 워낙 일본의 정체성이 흔들리던 시대라 그런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통 목조건물과 콘크티르 양옥 모양의 가게가 마주한 느낌이 재미있다.

실제로 격변하는 메이지 시대엔 저런 골목이 흔하게 보이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은 그 당시에도 나름 자신들의 스피릿(?)은 보존했다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 서양 주택과 혼혈의 산물인 흰색 가옥들은 풍요로웠던 메이지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이미지.

 

다들 일정 레벨 이상은 맛이 있어 보여서 어디 들어갈까 꽤나 한참동안 고민한다.

결론은 줄 서 있지 않은 곳에 들어가기로. 역시 줄서서 기다려 밥 먹는건 본인 취향이 아니다.

 

 

 

센트레아는 보기보다 큰 공항이 아니라서, 사실 상점가가 그리 큰 편도 아니다.

하지만 동선을 잘 활용해서 구역마다 느낌을 전혀 다르게 표현해 놓은 점에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시끌벅적한 시장길에서부터 새하얀 근대 서양식 건물 거리, 그리고 이렇게 저녁무렵의 술집 골목길 같은 느낌을 살리는 곳 까지.

 

이미지와 디자인의 힘을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잘 살린 상점가라는 느낌이다.

공항에서 이런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출국 전 마지막 한 방울의 외화까지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간편히 한끼 때우기엔 역시 라멘이 가장 취향에 맞지만, 왠지 이번엔 변화를 좀 주고 싶었다.

라멘을 제외하고 적당히 만족감 느끼게 다양한 녀석을 맛보고 싶어서, 뭔가 굉장한 바리에이션 식품 샘플이 놓여있는 가게로 들어간다.

전망대 쪽에 위치해서 바깥구경 하며 밥 먹기 좋은 '카멜리아'라는 가게. 간이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전망대 쪽은 사람이 꽉 찼고, 나처럼 혼자 먹는 사람에게는 그런 자리 좀처럼 내 주지 않는 듯 하다.

아무래도 이 가게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장사에 꽤나 영향을 미치는 듯 하다. 즉 터가 좋다.

 

메뉴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천하재패 삼매경(天下取り三昧) 이라는 종합선물세트.

1620엔이나 하는 고가 식사다. 일본에서 단품 식사를 이만한 가격에 먹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서는 이 정도 먹어줘야 할 것 같아 큰맘먹고 시켜 본다.

막상 나온걸 보니 나 정도 되는 사람에게는 많이 배부를 것 같지도 않은 일반적인 양으로 보인다.

 

반찬 개념이 없는 일본이라, 한국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냥 다양한 요리 조금씩 먹어볼 수 있는 간이 뷔페라고 할까.

 

 

 

만듦새가 김밥천국같은 수준이었다면 분노했겠지만, 가격대가 생각보다 높을 뿐 음식은 꽤 잘 만들어 나온다.

나고야의 대표 먹거리였지만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키시멘도 여기서 접해볼 수 있었다.

우동과는 달리 넓적한 면이 특징이 키시멘은 한국의 칼국수면을 좀 더 확대한 듯한 느낌을 준다.

넘기는 맛과 씹는 맛 두 가지를 잡기 위해 만들어졌다느 설이 있는데, 그냥 나고야 지역의 향토요리로 우동과 크게 다른점은 없다.

 

그 외에 은은한 녹차를 뿌려 먹는 장어덮밥이나 숙주나물과 돼지고기를 얹은 덮밥, 새우와 돈까스 등등

다양한 종류를 맛보기 위해서는 충분히 괜찮은 선택이다. 각각의 양은 매우 적어도 다 먹고 나면 나름 든든한 느낌은 든다.

라멘 대신에 선택한 녀석 치고는 가격이 2배에 가까워서 약간 아쉬웠지만

먹고 불만이 생길 정도는 아니라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먹으라면 아마 먹지 않겠지만.

 

 

 

출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여전히 입이 허전해서 스타벅스에서 녹차 뭐시기를 주문한다.

바로 앞에서 주문한 세 남자 일행은 한국 여행객들이었는데, 주문은 어떻게 손짓발짓으로 넘어갔지만

스타벅스 직원이 주문하신 음료 나왔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걸 알아듣질 못해서 그냥 앉아서 수다떨고 있었다.

 

내가 도와줘야겠다고 일어서려는 순간, 일본인 할아버지가 젊은이들에게 손짓으로 음료 나왔다고 알려주신다.

세 명은 고맙다고 인사하고, 스타벅스 직원한테도 실실 웃으면서 농담 따먹기 비슷하게 잔돈가지고 장난을 친다.

저렇게 아무 곳에서나 스스럼없이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굉장한 능력으로 보인다.

난 밖에서는 뭘 해도 얼굴이 딱딱해져서 그런 농담 주고받기는 어려운데.

 

아무튼 가벼운 소동은 금새 진정되고, 난 시원하고 고소한 녹차 셰이크로 여유를 즐기기 시작한다.

중간에 그 세 명이 나한테 와서 영어로 '의자 좀 가져가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길래 고개 끄덕여 줬다.

영어로 물어봤으니 나를 한국인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고, 그럼 굳이 한국어로 대답해 줄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고보니 공항을 떠나기 직전에야 기억이 났는데, 지금 이곳에서 뭔가 내가 흥미가 동할 만한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도착 당시 그 포스터를 보면서 '돌아갈 때 시간나면 한번 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탑승시간 지연으로 인해 충분히 시간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스카이 덱과 상점가, 식당 등을 둘러본다고 까맣게 잊어버린 것.

 

원래 예정에 없던 녀석을 얼핏 기억에 놓은 것이니, 역시 그런 건 메모라도 해 놓지 않는 이상 쉽게 잊혀지는 법이다.

여행에 그 정도 아쉬움은 있어도 추억으로 남길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느 곳이든 굉장히 깔끔해 보였던 센트레아 공항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한 장 담고 여권과 티켓을 꺼내든다.

비행기 창문 밖의 하늘 풍경도 여행 시작시 카메라에 담아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집에 돌아갈 때 까지 셔터를 누르는 일은 없다.

 

그렇게도 많이 가 봤지만, 한 번도 마음에 와 닿는 적이 없었던 나고야가 이번엔 조금 더 친숙해 진 느낌이다.

다른 여러 지역과 인연의 도움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한테 찍혔던 인상이 사라져서 나고야도 더 행복해 할 듯.

 

 

날씨가 좋은 건 얼마 남지 않은 여행시간 중에서도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지만

체감온도가 38도를 넘어가는 기록적인 더위 앞에서는 맑은 하늘도 원망스럽게 바뀔 수 밖에 없다.

 

스카이 덱 300m 전망대엔 어렵지 않게 신기루가 나타나고 있다.

사하라 사막에서 많이 봤던, 지면이 수면처럼 반짝이고 있다.

도시 한복판 도로에서는 그 반사되는 모양이 좀 지저분해 보여서 감흥이 없지만

이곳처럼 깔끔한 바닥면에서 보이는 신기루는 잔잔한 호숫가처럼 깔끔한 모습이다.

 

 

 

구름은 아예 자취를 감추어 버렸기 때문에 밖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전망대 가장 끝 쪽, 그러니까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장소에만

뭔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는 라인을 쭉 따라서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게 보통이지만.

 

이곳 센트레아는 인공섬 위에 만들어진 공항이기 때문에 직사광선을 방해할 만한 지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 날씨 덥고 햇볕 좋기로 유명한 나고야 부근이기 때문에 이런 뻥 뚫린 공항이라면 당연 태양열 발전기가 큰 역할을 한다.

이곳의 천장 지역은 거의 전부 태양열 집광판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화창한 날씨라면 시간당 1000kw 정도는 생산한다고.

 

 

 

센트레아는 비행기가 이착륙하기에는 상당히 좋은 여건을 가진 인공섬이지만

어중간하게도 도쿄과 오카사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생각만큼 많이 분주한 곳은 아니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국내선 이용률도 높아서 그럭저럭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현재는 적자 누적으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듯.

 

나고야 시민에게는 매우 중요한 항공 시설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공항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서 찍었던 닌자 모형이나 토쿠시마 아와마츠리 등의 콜라보 홍보도 포함해, 공항 2층에 작은 상설 전시실까지 마련해 놓고

각종 박람회나 미술전을 개최하며 공항을 좀 더 사람들과 가까운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

 

초대형 국제 공항처럼 필수적으로 외부 수요가 필요한 공항은 아니기도 하고, 토요타가 대주주라서 잘만 하면 유지가 가능할 듯.

내 입장에서도 나고야는 키소에 들르기 위한 가장 가까운 국제선 루트인데, 이 공항이 없어져 버리면 매우 곤란하다.

실제로 8월에 에어아시아의 초저가 항공을 타고 왕복 12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나고야를 다녀왔는데

바로 다음달인 2013년 9월부터 인천-나고야 선 항공편이 운항 중지되어 버려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에어아시아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 저가항공인데, 일본의 전일본공수(ANA)와 합작에 2012년 에어아시아 저팬을 설립하고

이곳 센트레아를 중심 공항으로 삼으며 국내선, 국제선 취항을 하고 있었다.

ANA 와의 합작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기업이 해체노선을 겪으며 인천에서 출항하던 도쿄, 나고야 행 저가항공도 모두 사라졌는데

에어아시아로 부산-도쿄를 세금포함 왕복 10만원에 다녀온 나로서는 매우 애석하기 그지없는 낭보였다.

 

하지만 ANA 는 에어아시아를 대체할 제휴 저가항공사를 다시 찾고 있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저가항공 노선이 생기리라 본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천천히 걷고 걸어 어쨌든 전망대 끝부분까지 도착한다.

돌아가려면 다시 이 땡볕 거리만큼 이동해야 하지만 어쨌든 더위때문에 센트레아의 가장 큰 볼거리를 놓칠 수는 없다.

 

사실 항공기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고, 이런 기계적인 전망대엔 관심도 없었다.

이번 여행엔 시라카와고와 키소 마을이라는 천혜의 풍경을 둘러봤기 때문에, 이 스카이 덱은 그냥 안주거리도 안 되는 심심풀이일 뿐.

 

사진 찍는 재미는 결과물이 아니라

조리개를 상당히 조여도 굉장한 셔터스피드를 보여주는 당시의 놀라운 쨍쨍함을 즐기는 곳에서 발생할 정도였다.

조리개 F7.1 ISO100 에서 노출보정을 0.3 스탑 올리고도 셔터스피드가 1/1000 초 가까이 나오는 환경이다.

정말 끝장나게 쨍한 하늘이 아니면 좀처럼 즐길 수 없는 셔터스피드.

이런 땡볕 아래서라면 아마추어라도 우사인 볼트를 찍어낼 수 있을 듯 하다.

 

 

 

아무리 더워도 관광을 목적으로 쏘다니면서 이렇게 사진이나 찍고 있는 편이니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안전 장비 다 갖추고 저 지옥같은 항공기 반사열을 얻어맞아가며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노고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비행기 한 대가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드리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일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직접 바라보게 되니 실감이 난다. 이런 모습을 눈에 새기고 진상 고객이 되지 않도록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인천공항이 워낙 크고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센트레아는 한적해 보이지만

사실은 4~5분에 한대씩 끊임없이 비행기가 이륙중이다.

 

공항이라는 곳의 특성상 워낙 면적이 넓다 보니 한적해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300mm 망원렌즈로도 끝까지 당겨낼 수는 없으니, 카메라 매니아들에게는 별로 쓸 곳이 없는 초망원 렌즈들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어서 좋을 듯.

 

 

 

비행기 이륙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서 있어서 접근이 힘들다.

대충 한적한 곳으로 가도 실제 거리상 별 차이는 없기 때문에, 항공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충분하다.

자세히 보니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는 것이 아니라, 이착륙 시에 되도록 정면이나 정후면을 찍을 수 있는 위치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듯 하다.

 

나처럼 대강대강 자리 잡으면 이렇게 옆쪽 모습만 많이 찍히기 때문인 듯.

항공 사진은 가능한 한 정면에서 망원으로 크게 잡아내는게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다행히도 나는 비행기 사진 잘 뽑지 못했다고 낙담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그냥 술렁술렁 찍을 뿐.

친환경 비행기라고 적혀있는 저 녀석은 재미있게도 프로펠러가 달린 녀석이다.

상당히 소형이라서 국내선 전용인 듯 한데, 시끄럽지만 않으면 재미있게 탈 수 있을 듯 하다.

 

 

 

비행기들은 상당히 빈번하게 이륙하고 있어서 사진을 담을 기회는 충분하지만

명당 자리는 전부 굉장한 카메라와 굉장한 렌즈를 끼워놓고 대기중인 사람들은 바글바글하다.

양심은 있는지 삼각대까지는 아니고, 모노포드를 장착한 카메라가 많다.

 

이렇게 더운 날에 옷깃 스치며 전망대 앞까지 비집고 들어갈 용기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혼자 멀뚱멀뚱 서서 먼 거리에서 대강 몇장 담아본다. 생전 처음 담아보는 이륙 모습인데, 그냥 담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굉장한 항공 매니아인 듯 한데, 오늘 사람이 적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사람 붐빌 때 저런 삼각대 사용하면 욕 먹기 십상이다.

붐비는 곳에서 삼각대 사용하는 진상들이 늘어나다 보니 찍사가 덩달아 욕을 먹는다.

 

뭘 그리 열심히 찍는지는 모르겠지만 렌즈와 카메라만 합해도 거진 천만원 근처까지 가는 장비.

사진이라는 취미는 글자수도 적고 단순하지만 그 안의 카테고리는 사람 성격별로 천차만별이다.

 

 

 

일본에서 DSLR 에 거대한 망원렌즈 낀 사람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곳.

시간은 충분했기 때문에 한참 사진을 찍다 보면,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아름다움도 느끼게 될 수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매니아가 되기에는 부족했는지, 이 떙볕 아래에서는 도무지 버틸 제간이 없어서 신속하게 후퇴한다.

 

70은 넘은 듯한 할아버지가 필름카메라에 거대 망원렌즈 끼워서 촬영하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비행기 사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스카이 덱은 원래 이렇게 한가로운 곳이 아니다.

날씨가 이렇지만 않으면 빈 의자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가을 정도만 되어도, 굳이 건물 안에서 돌아다닐 필요 없이 사방이 탁 트인 이곳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쪽이 더 나으니까.

 

오늘은 당연하겠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아이들은 상당수가 모자 쓰고 돌아다니고 있으며, 부모들은 물 마시라고 채근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고야에 도착한 두 번째 날, 토요타 박물관을 다녀온 날이었는데

당시 기온이 34도, 일본에서 가장 더운 지역은 39도 까지 올라갔다고 뉴스에서 대서특필했다.

하루 열사병으로 사망한 노인만 십여 명에 이르던 더위였고, 지금 이 스카이 덱을 걸어다니고 있으니

정말로 사람이 더위때문에 픽 쓰러질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인공물을 돌아볼 때 그 미적 완성도에서 느껴지는 감동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기분을 흐뭇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역시 이런 배려의 마음씨를 직접 나타낸 모습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금껏 사진들을 유심히 보면 중간중간 빨간색으로 된 기둥이 나오는데, 그것의 정체는 바로 이 뷰 포인트였던 것.

일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설명되어 있는 이 뷰 포인트는, 휠체어에 탄 사람이나 키가 작은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시야를 가리는 안전 보호대를 삭제해 놓은 곳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자리를 비켜줄 것은 부탁하고 있다.

 

예전 오사카의 수족관 카이유칸(海遊館)에도 이런 뷰 포인트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다.

스카이 덱의 진정한 볼거리중 하나가 아닐런지.

 

 

 

한국은 아직 나고야행 수요가 많이 않아서, 상대적으로 한국 항공사의 모습은 적은 편이다.

물론 대기중인 비행기도 있었지만 굳이 찍어야 할 만큼 애국심으로 충만한 사람도 아니고 해서.

 

멀리서 바라보니 비행기도 그냥 장난감처럼 귀엽게 배열되어 있는데

요즘엔 비행기도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이 되다 보니 원색 배열에 재미있는 느낌을 주는 쪽이 많은듯 하다.

포켓몬 그림으로 도배를 해 놔서, 뜰 때마다 셔터소리가 우렁차게 변하는 비행기도 있고.

 

항공오덕들은 항공사의 심볼 마크 가지고도 어느 항공사 것이 더 세련되고 멋있는지 토론을 벌일 정도라는데

본인은 철저하게 저가항공만 이용하다 보니 항공사 마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두어 시간만 지나면 이 무서운 더위를 지나 지원한 비행기 속으로 들어가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숨을 곳 없는 폭염 속을 지나 다시 공항 청사로 돌아간다.

스카이 덱을 한번 둘러봤다는 의의 정도는 가질 수 있겠지만

재미있게 즐겼다고 하기엔 구멍난 풍선에서 솟아나는 듯한 이마자락의 땀방울이 너무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