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소니'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3.11  엄니와 함께 - 코야산 오쿠노인 (2/2) 8
  2. 2014.02.25  잘 돌아다니고 왔습니다 10
  3. 2014.02.05  엄니와 함께 - 코야산 오쿠노인 (1/2) 6
  4. 2014.02.04  엄니와 함께 - 코베 (2/2) 10
  5. 2014.01.31  설날 조카 6
  6. 2014.01.30  설날 잘 보내시길 4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지만 날씨는 매우 매섭습니다.

오사카가 원래 부산만큼 따뜻한 곳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역시 해발이 높은 산 속은 추위를 무시하지 못하겠더군요.

 

엄니 역시 후드에 목도리까지 둘러쓰고 피부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이동중입니다.

 

  

 

이 탑을 보려면 이동 루트에서 조금 빠져나와야 했지만

그래도 이 녀석을 보지 않고 오쿠노인을 통과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일부러 엄니를 안내했습니다.

 

엄니도 한자를 읽을 수 있기 대문에 이 곳이 연고가 없는 사람들의 안식처라는 걸 금방 아시더군요.

 

 

 

하지만 이런 동자승 불상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뜬 아이들을 기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모르셨습니다.

굶어 죽는게 너무나도 당연했던 시대에서 배 부르게 무언가를 먹는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많았음은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곳 입구의 번쩍번쩍한 기업 묘비와 달리

이 연고 없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조각상은 내세에서라도 복을 받기를 원하는 진심이 강하게 묻어나는 듯 하더군요.

 

 

 

목도리처럼 보이는 것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음식이나 음료수 같은 녀석들은 말이죠, 공양하려는 마음은 이해가 가도 관리자 측에서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딱히 주변에 음료수나 먹을 거 놓지 마라는 표지판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요함 속의 오쿠노인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이곳 관리하는데는 굉장한 인원과 시간이 필요하죠.

고용인이나 청소 알바가 아닌 사찰 관계자가 직접 관리하다 보니, 이 것도 일종의 공덕을 쌓는 행위라고 인식하는 듯.

모기가 덤벼들던 피부가 얼어붙는 추위 속이던 1년 내내 꾸준히 부지 관리에 열심입니다.

 

 

 

무연불은 관리가 잘 되고 있는 지금 와서야 더 늘어날 일 없겠지만

단지 피라미드처럼 생겼다는 볼거리 하나만으로 이렇게 세워놓은 게 아니라는 점은 꼭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식으로 묘터를 구입할 돈이 없는 사람들이 돌맹이 하나씩 들고 조용히 내려놓고 간 역사의 흔적이 응집된 모습이니까 말이죠.

정말로 내세라는 게 있다면 휘황찬란한 묘석을 세운 사람보다

이런 연고없는 조그만 불상의 주인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길 바랍니다.

 

 

 

유명한 관광지이긴 하지만 주위에 젊은 사람이 즐길만한 컨텐츠가 없고

이동 수단도 빡빡해서, 하루 꼬박 잡아야 겨우 관람이 가능한 곳이 코야산이라

여름에도 크게 관광객이 많이 붐비진 않았지만 이번엔 정말로 음산할 정도로 사람이 없더군요.

 

엄니께서는 제 예상과 달리 이런 훌륭한 자연 경관 속에서도

무덤이라 싫다는 철직과 함께 매서운 겨울 산바람 때문에

구경을 하시는건지 마는건지 모르는 속도로 성큼성큼 걸어가십니다.

 

 

 

홍법대사의 묘가 안치되어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는 걸어가실 생각도 없고

빨리 나가자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조금 아쉽긴 하지만 서둘러 이 곳을 벗어나기로 합니다.

다만 완전히 똑같은 길로 돌아가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쪽 출구로 이동했죠.

 

날씨 탓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조금만 더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면

엄니께서도 거부감을 줄이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 혼자서 이곳을 찾아왔을 당시의 포스팅에도 적혀있습니다만

기온차가 극심하고 습도가 매우 높은 이 곳의 특성상

나무로 만든 것들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역시 이런 모습이 여기저기서 자주 보이더군요.

 

여름때 본 녀석인지까지는 확인할 시간이 없었습니다만

이곳에 왜 그리 돌로 석불과 묘석이 많은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석불 역시 오래 가긴 가겠지만 이것 역시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닌 것 같네요.

원래부터 별로 정교하게 조각된 녀석은 아닌 듯 하지만

슬그머니 비탈길에 누워있으니, 몇 년 지나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땅 속으로 사라져 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겨울이라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가끔씩 부는 풍절음만이 사람 으스스하게 만드는군요.

 

저는 지난 번 왔을 때 통풍때문에 거의 죽을 뻔한 기억이 었어서

이번엔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며 코야산의 풍경을 만끽하려고 했었습니다만

엄니께서 춥고 무섭다고 후다닥 지나가시는 바람에 어째 몸이 아플 때보다 더 구경시간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사진 좀 많이 찍혀본 사람이 아닌 이상, 찍는다고 정보를 줘 버리면

그냥 정면을 바라보며 딱딱하게 몸이 굳어버린 사진밖에 얻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몸을 30도 정도 옆으로 틀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어쩌고 하는 방법을 말해줘도

그건 그냥 보기좋은 모델처럼 담겨버릴 뿐 여행 사진으로서는 뭔가 좀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냥 뒷모습만 찍어도 여행 사진으로서는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추운 날씨라 코가 얼어서 냄새를 평소보다 잘 맡진 못하지만

여름의 풀냄새와 조금은 다른 향기가, 햇빛이 조금 강해지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이 느껴지는군요.

 

기온이 낮아서 직사광선이 통과하기 어려운 오쿠노인의 땅바닥은 여전히 눈으로 덮혀있지만

그늘 아래서도 습기때문에 푹푹 찌던 여름과 달리

겨울엔 햇빛 한번 쏴 하고 비치면 걸음을 멈출 정도로 따뜻함을 느끼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이 나무는 예전 여름 여행때도 찍은 적이 있죠.

그때는 한여름이라 빛도 틀리고 습기도 틀리고 해서 이것과는 전혀 다른 진득진득한 사진이 나왔었는데

촬영 요건이 다르다고는 해도 확실히 나무는 계절에 따라 보여주는 모습이 매우 다르다는 걸 세삼 알 수 있었습니다.

 

 

 

엄니가 너무 빨리 치고 나가시는 바람에 사진 찍는게 쉽지 않네요.

묘지를 그렇게까지 싫어하신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단지 날씨가 추워서 그러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뭐 엄니 따라가느라 셔터를 누르는 시간도 절약하며 달립니다.

핀이 맞았는지 구도가 어땠는지 확인할 시간도 없네요.

 

혼자 떠나는 여행이 아닌 이상 상대방의 사정을 고려해 줘야 하는 것이고

역시 느긋함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좀 빡빡한 면이 있더군요.

 

 

 

생각을 할 시간이 부족한 체로 찍은 사진이라

돌아와서 정리할 때는 역시 본인이 당시 느꼈던 감각을 재현하기가 조금 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사진은 금방 생각이 나던데 말이죠. 여름에 결코 볼 수 없는 겨울만의 멋진 모습입니다.

 

 

 

성실하신(?) 분이라면 여름 포스팅과 비교해가며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름과는 빛이 전혀 달라서 똑같은 소재를 찍어도 분위기가 꽤나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카메라도 바뀌긴 했지만 동 회사의 거의 비슷비슷한 녀석이라, 기계적으로 차이점은 별로 없습니다.

 

추위에 마음이 조급해지면 조금씩이나마 부족하거나 모자란 점이 좀 더 드러나게 되죠.

사진과 사냥은 한 글자 차이이듯, 사진 찍을때는 셔터에 손가락 얹어놓고 집중을 잘 해야 좋은 녀석을 건집니다.

 

 

 

오쿠노인의 나무는 참 허벌나게 큽니다.

미국 대륙의 나무야 이런 녀석들도 어린아이처럼 보이게 하는 거목들이 많지만

일본의 참나무는 확실히 동아시아에서는 유난히 큰 편이긴 하죠.

 

 

 

석불에 이렇게까지 따뜻하게 옷을 입혀 놓은 모습을 보면

문득 정말로 저 석불이 제 체온보다 더 따뜻하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산날씨는 변하기 쉽다는게 일본에서도 틀린 말이 아니더군요.

버스 내렸을 때 눈발이 날리던 날씨는 이제 푸른 하늘과 맑은 햇살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온이 확 올라가는 건 아니라, 사진 찍기에 좀 더 좋아졌을 뿐 여전히 온 몸을 웅크리고 있어야 하지만 말이죠.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저하고는 좀 다른 엄니라서

진귀한 볼거리이긴 하지만 오래 있고 싶진 않다는 일념으로 확확 진행중이신데

저는 이런 곳에서 사진 찍으며 좀 더 느긋하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더군요.

 

 

 

 

동양의 어머니상은 일단 옷깃 잡는 아이와 안고 있는 아이가 기본인가 봅니다.

특정 인물에 대한 석불인지 그냥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양인지 모르겠더군요.

 

 

 

엄니가 너무 앞서나가시는게 걱정되어 카메라도 어깨에 들쳐매고 앞으로 따라갑니다.

이렇게 바싹 붙어서 광각으로 찍는 사진도 나름 재미있죠.

 

 

 

이런 번쩍번쩍하고 덩치 큰 녀석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좋던 싫던 한번쯤은 눈길이 가게 마련이더군요.

돈과 권력이 많아서 이렇게 지었다기보단, 코야산에서 입적한 스님들을 기리는 무덤인 듯 합니다.

 

 

 

머나먼 홋카이도에서 여기까지 온 비석도 있네요.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공간을 형성하는 오쿠노인이지만

그 안을 보면 워낙 다양한 모습의 묘석이 공존하고 있어서, 살아있는 사회의 압축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추운날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그런지, 제 입장에서는 세삼스럽게 그리 짧은 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에 통풍 걸린 발로 어기적거리며 두 시간 가까이 걸어가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지

막상 멀쩡한 몸으로 걸어봐도 생각보다 긴 산책로더군요.

 

엄니께서는 이 정도 거리가 피곤하실 분은 아니라 크게 걱정은 없습니다만, 날씨가 추운 게 조금 마음에 걸렸습니다.

엄니는 아프리카와 호주 대륙 정도는 빼면 거의 전세계를 여행하신 분이지만

겨울에는 한 번도 해외에 여행가본 적이 없다고 하시니 말이죠.

 

 

 

정오를 넘기고 날씨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니 엄니의 걸음걸이도 조금씩 진정되는 느낌입니다.

오쿠노인에 처음 왔을 때 저도 그랬지만, 뭐라고 딱 잘라서 표현하기 힘든 심상을 주는 곳이니

엄니께서도 입 속에서 맴돌기는 하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난감한 그런 느낌인 듯 보였죠.

 

한국의 묘지 문화에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덕지덕지 공간 활용하는 모습은 참 좋다고 하십니다. 그건 저도 동감.

 

 

 

찍어드리려고 해도 거절하시는 엄니라서, 이렇게 같이 걸어가면서 다른 피사체만 찍어대더라도

전혀 부담될 것이 없다는 점은 참 좋습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한국에도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전 맨날 여행가서 사람 그림자라고는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사진만 줄창 담다보니

막상 사람이 프레임 안에 들어와 배경과 함께 담아내야 하는 사진을 찍어야 할 때가 오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게 되니까 말입니다.

 

 

 

묘석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이런 석불들에게는 눈이 머물게 되는 게 평범한 반응일 듯 합니다.

엄니께서는 석불 자체보다는 알록달록하게 입혀놓은 옷을 더 신기하게 생각하시더군요.

지난 번 언급했듯, 어린 아이들의 명복을 비는 석불이기 때문에 이런 색상이 선호되는 것이라 설명해 드렸습니다.

 

 

 

서둘러 걷다보니 그리 오랜 시간 지나지 않아 출구쪽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오쿠노인은 제 예상과 전혀 다른 전개를 불러일으켜서 당황스럽더군요.

 

여름의 오쿠노인은 그 찌는 날씨에 통풍의 지옥같은 고통으로 날뛰는 발가락과 싸우며 걸어갔는데

'발만 나으면 정말 느긋하게 걸어봐야지'라고 생각하며 다시 돌아온 겨울의 오쿠노인은

동행자인 엄니께서 추우니까 빨리 걷자고 하시는 바람에 느긋함과는 전혀 다른 스릴이 넘치는 산책이 되어버렸네요.

 

 

 

오쿠노인을 나와서 다이몬 쪽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한 시간에 한두 대 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15분쯤 기다려야 하지만

버스만큼은 혼자 기다리는 것 보다 함께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편이 시간이 잘 가죠.

 

 

 

조그마한 코야산 안에는 백여 개가 넘는 사찰이 위치하고

그 중 상당수는 템플 스테이 같은 숙박도 가능하기 때문에

사찰 문화에 관심이 많거나 시간과 돈이 널널한 관광객은 이곳에서 하루 묵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돈을 더 열심히 벌어서 이런 곳에서도 하루 자 보는 그런 여행도 즐겨봐야 되는데 말이죠.

 

 

 

버스 시간이 남아서 이곳저곳 둘러보십니다.

일본의 불교는 한국과 조금 달라서, 결혼도 하고 절도 자기 소유로 자식에게 물려주는 스님이 많습니다.

 

엄니께서는 그 설명을 듣고는 '그럼 종교로서는 별로~'라고 단칼에 언급하시는군요.

물론 종교인이 사유재산을 가졌을 때 생기는 폐단에 대해 익히 경험을 해 오셨기 때문에 그러리라 봅니다.

의외로 일본의 신사나 절 같은 경우는 그냥 근근히 먹고 살 만한 가업 정도로 이어지는 소박한 녀석들이 꽤 있긴 하지만.

 

 

 

이번 코야산은 큰 이벤트 하나 터트리기 전의 고요한 분위기라고 할까요.

일본 진언종의 총본산인 이곳 코야산은 2015년에 창건 120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해를 맞이하기 때문에

전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2015년엔 이곳에 올 엄두가 나지 않을 듯 합니다.

아마도 순례자들 틈에 끼여 무빙워크를 탄 듯한 기분을 맛보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전 홀로 여행때는 가방에 간식거리를 일체 넣어다니지 않는 타입인데

엄니께서는 익숙하게 준비해 온 물과 과자를 꺼내 드십니다.

 

저는 보통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가기 전 먹을거리를 사들고 가

목욕 시원하게 한판 당기고 나와서 느긋하게 즐기는 성격이라서.

 

그래도 추운날 버스를 기다리며 짭쪼름한 센베이 씹어먹는 맛 역시 일품이었습니다.

 

 

 

버스 타기전에 엄니가 만든 눈사람입니다.

눈코입도 만들까 했는데 버스가 오는 바람에 서둘러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마우리가 되어 버렸네요.

 

 

 

다이몬으로 향하기 전에 일단 점심을 해결하기로 합니다.

이곳 코야산이 물 맑고 공기 좋아서 밥맛도 좋다고는 하지만

유명한 관광지의 물가 + 해발 1000m 넘는 산골짜기 라는 요건이 겹치는 바람에

이 곳의 먹거리는 양이나 질에 비해 좀 비싸다는 인식이 넓게 퍼진 편이죠.

 

하지만 홀로 여행때처럼 비싸다고 안 먹고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적당히 속에 부담가지 않을 만한 가게를 찾아보다가 평범해 보이는 곳을 하나 찾았습니다.

 

정식요리도 여러가지 있지만 살짝 배만 채울 요량으로 들렀기에 주문은 간단하게 합니다.

물이 좋아서 그런지 이 지역은 두부가 유명하다고 하길래 반찬 요량으로 작은 거 하나 시켜봅니다.

일본의 두부는 한국과 맛과 향이 전혀 다른데, 고소한 콩 향기가 진한 한국의 두부와 달리

맛은 간장과 와사비 없이는 밍밍하게 느껴질 정도로 맛이 약하고, 속에 기포가 거의 없이 젤라틴처럼 탄력있게 말랑말랑한게 특징이죠.

 

지역 명물이라 그런지 요 조그만 녀석이 3천원 가까이 하는 무서운 가격이지만

전 두부를 매우매우 좋아해서 막 퍼먹는 수준이기 때문에, 깔끔하고 색다른 일본 두부 탐방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식사는 그냥 간단하게 달맞이 우동으로 때웠습니다.

일본에서는 국물 요리 중앙에 날계란을 떨어트려서 살짝 익히는 녀석을 달맞이(月見)라고 부르죠.

 

우동은 그냥 매우매우 흔한 일반적인 수준이었는데, 계란은 꽤나 깔끔한 맛이 괜찮았습니다.

달맞이 우동은 먹는 방법이 사람에 따라 달라서, 확 풀어헤쳐 고소한 국물을 즐길 수도 있고

저처럼 면발 다 먹고 국물 조금 남긴 상태에서 풀지않은 반숙 계란을 후르륵 한꺼번에 삼킬 수도 있습니다.

 

두부는 반찬이고 우동이 정식이었지만, 느낌상으로는 두부에 더 집중하고 우동은 그냥 배 채우기 위해 먹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네요.

 

날씨가 추워서 체력소모도 심하니 조금 더 쉬고 싶기도 했지만

엄니는 열심히 구경하고 저녁에 일찍 돌아가 푹 쉬는게 좋겠다고 하셔서 금방 일어나 밖으로 나갑니다.

 

 

뭐, 이 블로그가 갱신되지 않는다는 건 주인장이 놀러나갔다는 뜻이겠지요.

 

아직 지난번 엄니와의 여행기도 덜 올렸지만 잔뜩 사진 짊어지고 돌아왔습니다.

일단 순서대로 여행기 올리겠지만, 이 사진을 여행기에서 보는 건 아마 7월이 넘어야 할 듯. ㅡㅡ;

이렇게 여행가면 뭐 일년어치 여행기만으로 블로그 채울 수 있겠네요.

자전거 1년 여행은 올릴 엄두도 못내겠고...

 

다음주부터 또 바빠지니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로 천천히 갱신해 나가겠습니다.

'Photo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묘한 지름 OM-D  (8) 2014.06.22
연휴 부산  (16) 2014.05.11
설날 조카  (6) 2014.01.31
설날 잘 보내시길  (4) 2014.01.30
법 규  (14) 2014.01.24

 

작년 여름에 코야산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많이 받아 겨울의 코야산은 어떤가 엄니와 함께 가 보기로 했습니다.

왕복 3시간 반을 넘어가는 장거리 이동입니다만, 어제 코베와는 달리 전철과 버스에 앉아갈 수 있어서 체력적인 부담은 덜 하죠.

 

엄니는 여행 좋아한다고 하셔도 역시 연세도 있고, 여행사 패키지에 익숙하셔서 그런지 좀 피곤해 하셔서

오늘은 코야산만 살짝 둘러보고 저녁 늦기전에 돌아와 쉬기로 했습니다.

 

겨울 코야산이 그런 건지, 그냥 시즌이 아닌건지 모르겠지만 전철 안에 저하고 엄니하고 옆에서 조는 사람 세 명밖에 없습니다.

엄니께서는 이쯤 되니 코야산이란 데 오늘 문 닫는거 아니냐고 걱정까지 하십니다.

저도 이렇게 한산할줄은 정말 몰랐는데, 다행히도 환승역인 하시모토(橋本)역에서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많이 서 있더군요.

 

 

 

극락다리라는 이름의 역을 통과하자 눈이 바람에 휘날리는게, 개인적으로는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저야 여름의 코야산을 다녀왔으니 눈이 내린 코야산의 모습 역시 크게 기대되지만

엄니는 그러지 않아도 피곤해 하시는데 눈까지 내리고 쌀쌀하면 몸에 부담이 되실 것 같아서 말이죠.

 

오랜만에 보는 코야산 행 케이블 전철의 모습입니다.

눈이 많이 오진 않지만 이미 군데군데 쌓여있는걸 보니 이전에도 내렸던 것 같더군요.

 

 

 

눈이 오던말던 이 열차는 강력한 케이블로 끌어당기듯 올라가는 방식이라 별 문제 없을 듯.

굉장한 경사의 오르막을 천천히 오릅니다. 지난번 여름과 달라진 점 한가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해발 600m 즈음에 '여기가 도쿄 스카이 트리와 같은 높이'라는 팻말이 새로 생겼습니다.

코야산은 해발 1000m 에 가까운 곳이니, 스카이 트리보다 높은 곳을 이렇게 전철로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저 앞에 도넛 모양의 교차로가 보입니다. 저 곳이 상행 열차와 하행 열차가 마주치는 곳이죠.

자연 보호를 위해 선로를 두 개 만들지 않고 저런 교차로만 만들어서 선로의 부피를 줄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던 적던 이 열차는 반드시 두 대만이 동시에 운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2015년 4월은 코야산 개창 120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시기라서, 그 때는 이 열차도 타기가 무서울 정도로 빡빡해 지겠죠.

 

 

 

사람이 많던 적던 정해진 시간에 항상 운행하는 두 대의 열차가 이곳에서 교차합니다.

경사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조그만 사고라도 굉장히 위험할 수 있어

두 번째 탑승임에도 꽤나 조마조마했지만, 코야산은 일본에서도 관리 철저하기로 유명한 곳이니 괜찮겠죠.

 

 

 

오사카는 대구보다 더 따뜻한 날씨라서 입고 온 옷이 더울 정도였는데

코야산은 역시 산 속이라 그런지 도착하자마자 추위가 온 몸으로 느껴집니다.

내린다기보다는 옆으로 흩날리는 눈발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여름의 코야산과 전혀 다른 광경을 선사해 주더군요.

 

여름의 코야산 포스팅도 이 블로그에 남아있으니 비교해 가며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오사카에서 이곳까지는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강행군입니다만

외국인을 위한 아이템인 칸사이 스루 패스 덕분에 오늘은 아무리 버스와 전철을 많이 타도 추가 요금이 없습니다.

 

 

 

이 곳은 제가 받았던 감동에 비하면 여름이나 겨울이나 사람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더군요.

보고 즐길거리가 많다기 보다는, 이런 곳에서 차분히 경치를 감상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곳이니까 말이죠.

 

엄니는 일단 쭉쭉 뻗은 삼나무들의 모습에 흥미를 보이셨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여름때 혼자 온 것처럼 천천히 느긋하게 둘러볼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눈은 때때로 흩뿌리는 정도라 우산은 필요없었습니다만

이전에도 몇 번 내린 듯 하고, 이 곳의 기온 탓에 거의 녹지 않고 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삼나무를 비롯해 이곳 오쿠노인의 많은 나무들이 침엽수라서 녹색을 간진하고 있었는데

녹색 이끼 사이로 다소곳히 쌓인 눈이 여름과 너무나 다른 이미지를 풍겨서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여름에 다녀왔으니 비교하는 재미가 있어서 신났지만 엄니께서는 추운데 걸어다니시느라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좀 뜨끔하더군요.

 

 

 

코야산 오쿠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 여행 포스팅에서 나름 상세하게 적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포스팅에서는 생략합니다. 좀 더 느긋한 여행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실제로 이번 여행에서는 엄니와 리듬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제 마음도 별로 느긋하지는 않았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더욱 적막해 진 오쿠노인의 진중한 매력도 차분하게 느끼며 즐기기는 힘들더군요.

 

 

 

엄니도 입구에 안치된 기기묘묘한 묘석들을 보고 굉장히 신기해 하시더군요.

한국의 묘와는 달라서 처음엔 여기 서 있는 것들이 뭔가 하셨는데 자세히 보니 전부 묘석입니다.

 

이곳에 20만개가 넘는 비석이 500여년 전부 들어서 있었다고 설명해 드리니

놀라시는게 아니라 오히려 얼굴을 잔뜩 찡그리시더군요. 무덤 보면 무섭다고.

 

 

 

일본 흰개미 구제협회에서 세운 흰개미 추모비도 여전합니다.

엄니는 한자로 적힌 묘비는 곧잘 읽으시지만 이 녀석은 무슨 뜻인지 모르셔서 제가 해석해 드렸죠.

엄니의 반응 역시 별 걸 다 세우는구나 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모습을 보고 윤회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의 원념이 자연의 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라는 사실에 꽤나 놀랐습니다만

엄니는 그냥 이렇게 묘비가 우르르 몰려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무섭고 쓸쓸하고 그렇다고 하시는군요.

역시 살아오시면서 죽음을 많이 겪었고, 본인도 퇴직 후 남은 삶에 대한 걱정이 더해가고 있는 시기라

그렇게 생각하실 줄 알았으면 굳이 제 욕심으로 코야산에 오지 않았어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와 버린 이상 구경이라도 재밌게 하고 가시면 좋을텐데, 저도 마음이 무거워지더군요.

 

 

 

 

그래도 일본어보다 한자가 많이 적혀있는 곳이라 엄니가 중간중간 걸어가며 한자를 읽어보십니다.

특정 기업체에서 새운 묘석은 대강 어떤 곳에서 세운 것인지 이해하실 수 있어서 흥미를 가지시는 듯.

 

일본도 불교를 믿냐고 물어보시길래, 믿긴 하는데 여기서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한다고 대답하니

그럼 종교인으로서는 별로라고 하시네요. 종교에 개인적 욕심이 묻어날 여지가 남아있을 때 펼쳐지는 지옥도는 한국에서 곧잘 볼 수 있으니 말이죠.

 

 

 

흰개미 묘비와 함께 꼭 눈길을 빼앗기게 되는 강아지 묘석입니다.

엄니 역시 피식 웃으시더군요. 그래도 이 강아지 가족들은 얼마나 이 녀석들을 사랑했으면 비석까지 만들겠냐고 이해를 해 봅니다.

 

 

 

불상들의 머리와 어깨를 따뜻하게 해 주는 모습을 굉장히 신기해 하셨습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돌맹이에게 연민을 느끼는 하등 쓸데없는 행위이겠습니다만

역시 자신과 닮은 조각상에 마음을 열어주는 이런 행동이야말로 인간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오쿠노인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기도 하고

따뜻한 봄남이었다면, 오디오 가이드 하나 대여해서 하나하나 들어가며 이곳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엄니는 추워서 그런지 묘석이 너무 많아 그런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후다닥 걸어가십니다.

 

전 구경은 커녕 사진 한 장 찍을 여유도 없이 따라가느라 바빴죠.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잘 생각해보니 이 상황도 꽤나 유쾌하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1년 반 전 여름의 코야산 여행은, 기구하게도 불의의 염좌에 의한 급성 통풍 증세 탓에

이 넓은 코야산을 바늘로 찔리는 듯한 격통에 시달리며 절뚝절뚝 간신히 돌아본 매우 특이한 체험이었습니다.

이동 자체를 빨리 할 수 없으니 역으로 풍경과 사진을 담는 시간을 좀 더 차분히 가질 수 있었죠.

 

지금은 몸이 멀쩡한데도 불구하고 그 때보다 더 여유없이 엄니 뒤만 따라가고 있으니

이것 또한 같은 장소를 다른 상황에서 여행할 때 생기는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나오더군요.

 

 

 

참 다양한 묘석들이 많습니다. 이 녀석은 동물들이 혼을 달래는 묘석이라 부처님 주위에 동물들의 석상이 둘러서 있네요.

 

 

 

물론 침엽수라 하더라도 여름과 겨울의 색은 너무나도 달라서 같은 사진이 나올 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엔 절대로 볼 수 없는 눈이 곳곳에 쌓여있었던 탓에

지난 번에 와 봤다는 생각보다, 마치 처음 찾는 듯한 신선함을 여전히 느낄 수 있어서 이득 본 느낌입니다.

 

 

 

UCC 커피 맛있습니다.

 

 

 

이곳 역시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이 가끔 보입니다만

총 관광객 수가 워낙 적고, 사람의 발소리를 제외하면 참으로 적막한 겨울 풍경이라서 그런지

아무리 중국인 관광객이라도 다른 곳 처럼 왁자지껄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여름보다 더욱 고요해 진 오쿠노인의 분위기에 매우 흡족했습니다만, 엄니는 가끔 서서 한자를 읽는 걸 빼고는 그냥 슥슥 전진만 하실 뿐.

 

 

역시 제가 아직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죽음이 자신의 것이라는 자각이 부족한 탓이라 그런 것일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같은 나이대 사람들에 비하면 죽음에 대해 좀 더 자주 생각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단순히 젊어서 엄니처럼 이런 곳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엄니와는 조금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쪽이라고 한다면 저는 이 비석 세운 사람 쪽으로 아주 약간 기울어 있다고 할까요.

자기 무덤의 비석 앞에 마음껏 낙서를 하라는 낙천가의 묘비입니다.

 

엄니는 이곳을 돌아보면서 '묘가 이렇게 많으니 여기 귀신들은 지루하진 않겠다' 라고 하시던데

이 낙서총의 주인은 그 중에서도 꽤나 인기인으로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묘비 안에 증명사진이 주르륵 늘어서 있길래 뭔가 싶었는데

읽어보니 일본 사진협회 회원들의 공동 묘석인 듯 합니다.

아마도 근대화 이후 카메라맨 1세대들 부터 이 곳에 등록되어 있을 듯.

 

 

 

오쿠노인은 진언종의 창시자인 홍법 대사의 사당 쪽으로 들어갈수록 더더욱 문화재급의 예전 묘석들이 줄지더 나타나기 때문에

이제부터 진짜 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엄니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만 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곳과는 상성이 맞지 않은 것 같네요.

 

 

 

전 아픈 다리를 질질 끌던 여름과 달리 잘 움직이는 몸과 머리를 최대한 이용해서

엄니를 따라가면서도 후다닥 고개를 돌려 사진으로 담을 만한 것이 있으면

촛점이 맞았는지도 보지 않고 셔터만 눌러재낀 후 남은 건 한국에 돌아가서 손 좀 봐야겠다는 생각만 합니다.

 

코야산은 원래 이렇게 둘러보는 게 아니긴 합니다만, 이번 여행은 엄니에게 맞춰드려야 하는 것이니 별로 불만은 없었습니다.

 

 

 

이런 불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시길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위한 석상이라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역시 동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지, 다른 불상에 비해 이런 옷가지가 걸려 있는 비율이 훨씬 높더군요.

 

 

코야산에 이러한 사찰과 묘터가 만들어졌던 500여년 전의 일본이라는 나라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사람의 목숨이 파리만도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자연 재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영주들의 땅따먹기로 인해 자기가 무엇을 위해 죽창을 드는지도 모르는 농민들은

그냥 하루하루가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죠.

 

그런 덧없는 현세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내세에 찾아올 평온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기였습니다.

이곳 오쿠노인은 그 바램이 물질화 되어 이루어진 유적과 같은 곳이죠.

 

 

 

여기서도 빈부의 차는 드러난다는 게 참 쓴웃음 나오게 합니다만.

그냥 산 사람이 들어가 살아도 될 만큼 담까지 둘러가며 지은 묘석은

신기함을 넘어서 괴이하기까지 합니다. 내세를 원한다면 이 곳의 화려한 돌덩이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지.

 

 

 

묘석의 행렬에 눈이 지치면 고개를 조금 들어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더군요.

엄니께서도 묘석은 둘째치고 코야산의 맑은 공기와 삼나무 숲은 마음에 들어 하시는 눈치입니다.

 

날씨가 예상보다 추워서 그걸 즐길 만한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지만 말이죠.

 

 

 

여름에 벗겨주고 겨울에 씌워주는 것은 아니라서 사시사철 같은 복장을 하고 있지만

역시 원래는 추운 겨울에 서 있는 모습이 안스러워 입혀준 것이라는 예상을 해 봅니다.

눈 덮힌 모습이 아무래도 가장 어울리니 말이죠.

 

 

 

휴게소가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만, 엄니는 화장실만 한번 가시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시네요.

이곳에서 휴식하는 것 보다는 빨리 구경을 마치고 도로쪽으로 돌아가는 게 덜 피곤하리라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저는 추위를 별로 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후드나 목도리 등이 없었기 때문에

코야산의 추위는 제 예상보다도 훨씬 매섭게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엄니가 서두르시는 것도 이해가 되더군요.

 

 

 

그래도 계속 뒷모습만 찍을 순 없으니 거대한 삼나무 앞에서 한 장 찍어드리겠다고 합니다.

찍는 건 좋은데, 역시 삼나무의 덩치를 담아내려니 사람이 주역인지 나무가 주역인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이렇게 담은 건 엄니의 목도리가 이곳과 워낙에 강렬하게 대조되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 두죠.

 

 

 

다른 불상과는 달리 칠복신의 모습을 한 불상이 서 있습니다.

한국의 금복주 마스코트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묘석 앞에는 따지도 않은 술병이 꽤나 많이 놓여있네요.

 

귤도 아직 생생한 것으로 봐서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인 듯 합니다.

술 좋아한다면 하나 따 마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 역시 신성한 곳이니 공양물을 훔쳐가는 건 안좋은 일이겠죠.

 

 

 

확실히 춥긴 추운가 봅니다.

 

한낮온도가 10도를 상회하는 오사카와는 달리 이곳은 가장 따뜻한 시기에도 2~3도에 그치는 듯.

그래도 관리하는 분들이 힘을 써서 그런지 순례길 자체는 얼음도 눈도 거의 없이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눈이 딱 요렇게 쌓였을 때가 왠지 포근해 보이더군요.

아마 여름이라면 이런 묘석은 동글동글하지만 별 감흥을 받지 못하고 지나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람은 별로 불지 않았던지, 왠지 저 위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자연의 섭리를 망가트리는 듯한 흉폭함이 표출될 것 같네요.

 

확연히 시선을 잡아끄는 몇몇 묘석들을 제외하면 확실히 여름과 겨울의 사진 결과물이 꽤나 다르게 분포하고 있는 듯 합니다.

눈발 때문에 살짝 흐린 하늘이 오히려 여름과의 대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듯 해서, 타이밍은 잘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 앞에 홍법 대사의 사당이 있습니다만 엄니는 이만큼 봤으면 됐으니 돌아가자고 하십니다.

아쉬워도 억지로 보여드릴 필요는 없으니 발걸음을 돌립니다. 단지 왔던 길이 아니고 다른 한 쪽 길로 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구경해 보려고 합니다.

'떠나자 > 近畿'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니와 함께 - 코야산 단상가람  (6) 2014.03.29
엄니와 함께 - 코야산 오쿠노인 (2/2)  (8) 2014.03.11
엄니와 함께 - 코베 (2/2)  (10) 2014.02.04
엄니와 함께 - 코베 (1/2)  (2) 2014.01.29
엄니와 함께 - 오사카  (14) 2014.01.28

 

요즘 도쿄의 스카이 트리 같은 경우는 엄청난 관광객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하는데

코베의 포트타워는 야경이 좋긴 하지만 역시 높이도 그리 높지 않고 관광객도 그리 많이 찾지 않아서 좀 황량합니다.

 

낮에 찾아왔으니 더더욱 그런데, 딱히 주변엔 먹을만한 게 없더군요.

하지만 날씨는 쌀쌀해지고 배는 고프고 해서 근처 호텔의 뷔페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런치 뷔페가 1200엔으로 꽤나 싼 편이었는데, 사실 그걸 더 원했다고 할까요.

아침을 많이 먹어서 굳이 코베 스테이크 같은 고기요리를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뷔페 들어가면 많이 먹긴 하겠지만.

 

 

 

저렴한 뷔페다 보니 음식 종류는 꽤나 적었지만 하나하나가 먹을만해서 다행입니다.

밥하고 어울릴 반찬부터 간단한 닭고기와 돼지고기 요리 등등

작정하고 가게를 박살내러 갈 요량이 아니면 느긋하게 런치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네요.

 

코베까지 와서 이런 국적불명 뷔페나 먹나 싶기도 했지만

엄니께서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고, 바람이 매서워서 좀 쉬고 싶었으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뷔페가 적당하다 싶더군요.

런치 영업시간이 3시까지였지만 어차피 2시간이 넘게 남았으니 문제 없습니다.

 

 

 

크게 비싼 요리는 없었지만 다들 음식이 깔끔해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직원분이 소고리를 끌고다니면서 원하는 손님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있습니다.

소금에 절인 후 겉만 살짝 익혀 보관한 듯한 녀석이로군요.

 

돼지고기는 이탈리아 등에서 이렇게 햄처럼 숙성시킨 녀석들 많이 먹는다는데

아무래도 단가가 비싼 녀석인지 그냥 놔두지 않고 요렇게 한 사람당 두 조각씩만 나눠줍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뷔페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인을 장식한 녀석은 이 전골이더군요.

일본에서는 이런 1인용 전골 냄비를 많이 사용합니다.

여행사 따라 여행할 때, 손님들에게 바로바로 내 줄 수 있는 장점도 있고 말이죠.

 

이곳은 뷔페다 보니 안에 들어갈 재료와 국물 종류를 자기가 선택해서 담으면 됩니다.

종업원 분들이 돌아다니다가 이걸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밑의 고체연료에 불을 붙여 주죠.

 

 

 

저하고 엄니는 벌써 꽤나 많이 먹은 후라서

한 냄비로 두 명이 나눠먹기로 합니다. 따뜻한 국물과 각종 해산물, 닭고기 등을 넣어서 시원하네요.

 

대구의 이리로 보이는 저 녀석은 볼 때마다 제가 엄니한테 물어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옛날엔 그냥 내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내장이 아니더군요.

궁금한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길.

 

뷔페 음식은 미리 만들어 놓아서 질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있지만

이렇게 고체연료가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끓고 있는 냄비를 보면

왠지 그냥 뷔페보다 좀 더 괜찮아 보인다는 느낌이 듭니다. 머리 잘 썼네요.

 

 

 

아이스크림이 6종류가 있는데, 처음엔 그냥 맛만 보자 하고 가져왔지만

먹어보니 이게 빕스나 에슐리 같은 곳의 아이스크림과 레벨이 다른, 상당히 제대로 만든 녀석이라

안 먹고 가는건 아깝다고 모든 종류를 다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엄니께서도 처음엔 영 주저하셨지만 드셔보니 종류별로 맛과 향이 잘 드러나서 결국 조금씩 다 드시더군요.

똥색은 뭐 설명할 것도 없지만 푸른색은 라무네라는 일본식 레모네이드 사이다 맛이고 분홍색은 복숭아 맛입니다.

 

 

 

옅은 색은 요구르트 맛이고 노란 색은 망고, 녹색은 뭐 말할것도 없죠.

생각보다 괜찮은 퀄리티에 놀라는 동시에, 한국의 뷔페집 아이스크림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세삼 깨달았습니다.

 

에슐리라던가 빕스라던가, 음식은 이제 그럭저럭 적응하고 맛있게 먹는 편이지만

아이스크림만큼은 그냥 애들 먹으라고 대충 선정한 듯한 그 낮은 수준이 영 적응이 안되고 있죠.

가끔은 아이스크림 값이 비싸니 그냥 맛없는거 놔 둬서 많이 못 먹게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엄니와 저도 꽤 오래 앉아있었지만 재미있게도 원래 앉아있던 모든 손님들이 저희보다 더 늦게 일어나더군요.

아주머니 몇 분이 언제부턴가 식사는 접어두고 줄창 음료수만 뽑아와 계속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1200엔 정도의 런치 뷔페란 일본에서 그냥 간단한 식사 한 끼 하는 정도의 금액이라

아주머니들 역시 아이들 학교 보내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떨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75세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은 혼자 오셔서 천천히 음식 덜어먹고 커피 마시며 신문 읽고 계시네요.

걸음이 조금 불안하게 보일 정도로 몸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 분인데, 일본의 혼자 식사 문화에 어지간히 익숙해 진 저로서도

흔치 않은 광경이라 살짝 놀랐습니다. 10년쯤 뒤엔 한국에서도 이렇게 혼자 외식하러 나오는 70대 후반의 노인들이 많아질 듯 합니다.

 

그러고보니 저희 가족 중 혼자서 식당에 앉아 밥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기도 하네요.

부모님은 죽었다 깨어나도 혼자서 외식은 못한다고 고개를 흔드시는데,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긴 합니다.

 

 

 

조금만 먹고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는데 음식을 앞에 두면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결국 배가 터질 때까지 뷔페를 즐기다가 아까와는 달리 터질듯한 배를 움켜잡고 다니 돌아다녀 봅니다.

 

한국의 재래시장이 요즘 애를 써서 지붕도 만들고 하며 자구책을 고심하고 있는데

일본 역시 대형 마트의 난립으로 많이 힘들어졌다고 하지만 워낙 이런 상가가 발달되어 있어서 한국보단 여유가 있는 편이죠.

시대 흐름의 차이라고 할까, 이쪽은 같은 장소에서 몇 대를 이어 장사하던 사람들이 눌러앉은 곳이라서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 덕분인지 망하지 않고 계속 장사할 정도는 되는 듯 합니다.

 

물론 한국처럼 점점 이웃 얼굴도 모르게 되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그 유대감이 끊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죠.

 

어느 가게에서 폐업 세일을 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어 엄니가 호기심에 들어가 봤는데

시장판 싸구려가 아니고 원래 50~60만원 하던 것을 15만원에 파는데다가 200만원짜리 가죽 가방을 60만원에 파는 굉장한 세일중입니다.

엄니도 보시고 가방 수준이 장난 아니라고 굉장히 눈여겨 살펴보시는데, 점원이 슬슬 바람을 잡아주더군요.

물론 엄니는 일본어를 모르시니 제가 알아서 커버했습니다.

 

가방의 품질로 본다면 이걸 60만원쯤에 구입하면 굉장히 잘 산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문제는 이 가게 독자적인 브랜드라서 소위 '명품'이라 잘못 불리고 있는 사치품 가방에 비해 희소가치가 떨어지는게 문제인 듯 합니다.

아마 가게 안에서 고민중인 많은 여성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엄니는 그냥 실컷 구경하다가 가방은 집에 많이 있다면서 그냥 나오셨습니다. 하나 구입하셔도 된다고 옆구리를 찔러봤지만 별 효과가 있었죠.

 

 

 

코베 관광에 꼭 들어가는 차이나타운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란히 늘어서 있습니다.

일반적인 시장 거리와 바로 한 블럭을 두고 늘어서 있어서 상권 경쟁같은거 일어나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파는 물건이나 음식도 그렇고 차별화가 아주 명확해서 크게 다툼은 없을 것 같더군요.

 

능숙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화교도 있고, 그냥 일본인이 장사하는 가게도 있고 그렇습니다.

일본 정도로 철처하게 고립된 사회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마을을 이루는 화교의 수완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네요.

 

 

 

한국에서 꽤나 많이 찾아간다는 나가사키의 하우스 텐 보스도 그렇고

이곳에 와서도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딱 그겁니다. 왜 일본에서 중국풍 거리를 걷고 있는 걸까.

 

여기는 구경하러 왔다기 보다는 산책하는 길에 맛있는 거나 먹어볼까 싶어서 왔지만

하우스 텐 보스 같은 곳은, 어마어마한 돈을 써가며 일본에서 네덜란드를 구경할 필요가 있을까 항상 궁금할 따름이죠.

버블경제의 절정을 달리던 시기에 지어진 녀석이라 모든 건축자재를 전부 네덜란드에서 수입해 왔다는 점이 놀랍긴 합니다만.

 

각설하고, 저나 엄니나 배는 터질 것 같지만 차이나타운에 와서 먹을거리도 하나 즐기지 않고 돌아가기는 너무 아쉬워

터질 배를 움켜쥐고 조금이라도 신기해 보이는 거 먹어보려 애 씁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더군요.

 

검은색도 그냥 검은색이 아닌 암흑의 심연같은 만두가 눈에 띄여서 하나 사 봤습니다.

색깔은 맛에 크게 관련이 없는 듯 해서 아쉬웠지만, 육즙 가득 머금고 살짝 짭쪼름에 달달한 돼지고기 볶음 속이 맛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뷔페집에 간 걸 조금 후회하게 되었죠.

여기서 조금씩 조금씩 맛있는 거 다양하게 먹었어야 되는데 뷔페에서 그렇게 빵빵하게 하고 왔으니.

 

홀로 여행때는 자금을 아끼기 위해 고심고심해 맛있어 보이는 녀석 사먹고 했다면

지금은 배가 너무 부르기 때문에 고심고심해 맛있어 보이는 녀석을 골라야 하는 사치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엄니는 정말로 배가 부른지 아무리 나눠먹자고 말씀드려도 한 입도 드시지 않더군요.

 

일본식 교자도 맛있지만, 교자 하면 역시 원조는 중국이기 때문에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이것저것 먹을 배가 아니라 아쉽지만 좀 더 한국에서 먹기 힘든 녀석을 찾아다녀 보기로 합니다.

 

 

 

중국음식은 일단 기름을 사용하는 것들이 많고

특히 군것질거리는 뭐 말할것도 없이 칼로리 폭탄인 것들이 많아서...

 

확실히 저렇게 먹는게 맛있긴 합니다. 은근히 빡빡해 보이는 일본 군것질거리와 비교해서

한국적인 느낌도 나고 말이죠. 배만 고팠으면 아주 정복을 하고 다녔을 텐데.

 

 

 

진짜 중국 거리와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세계 어디든 차이나타운의 분위기는 아이덴티티가 드러나죠.

강렬한 붉은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거리의 모습은 일본의 거리와는 다른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겨울이고 평일이고 해서 코베 시내 전체는 꽤나 한산한 편이었지만

차이나타운엔 역시 관광객들 많이 오더군요. 차이나타운에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았다는 건 좀 신기하지만.

실제로 오사카에 있는 코리아 타운도 그렇고, 제일 많이 활용하는 건 재일한국인이었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이곳 코베의 차이나 타운에도 중국사람들이 실생활에 사용할만한 자국 식재료들 같은 거 많이 팔더군요.

 

중간중간 신라면이나 냉동만두 같은 한국어가 적혀진 녀석들도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코베의 소고기가 유명한 대신 차이나타운에서는 돼지고기 요리가 인기를 끕니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길게 줄서서 뭔가 사먹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엄니도 함께 있고 해서, 배만 안 불렀다면 줄 좀 서서 뭔가 먹어보기라도 했겠습니다만

시장이 반찬인 것처럼 배부름은 어떤 진수성찬도 길바닥의 개X처럼 보이게 만들죠.

 

 

 

먹는건 포기하고 그냥 재밌는 마스코트 앞에서 사진이나 찍습니다.

차이나타운은 왠지 아무렇게나 마구 사진 찍어도 별 문제없을 듯한 기분이 든단 말이죠.

쿄토 같은 곳에서는 기념품 파는 가게에서도 매의 눈으로 살펴보다가

'사진 찍으면 안됩니다!' 같은 소리로 사람 김 빠지게 만드는데, 이곳은 별로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

 

 

 

먹는데 대한 미련은 별로 없어서, 못 먹어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저기서밖에 먹을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먹거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엄니는 중국에도 몇 번이나 여행을 다녀오셨고

이런 거리음식과는 다른 진짜 진수성찬도 먹어보고 하셨기 때문에 이곳에 별 미련이 없으신 듯 하네요.

간식거리 조금 맛이라도 보라고 말씀드려도 배부르다는 말만 하시고 전혀 손을 대지 않으십니다.

 

 

 

차이나타운을 빠져나와 산노미야 쪽으로 걸어가면 큰 백화점이 있는데

엄니가 학교 선생님한테 부탁받은 유아용 그림책과 함께

손자가 가지고 놀 만한 그림책이나 장난감 찾아보려고 서점에 들어가 보자고 하십니다.

 

키노쿠니야(紀伊国屋)라는 일본 최대의 서점체인이 마침 백화점에 입점해 있어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놀랍게도 할머니 한 분이 이 강아지 두 마리를 자전거에 남겨놓고 그대로 백화점에 들어가 버리시는군요.

이곳은 아직 강아지 납치 같은거 걱정 안해도 되는 곳인가봅니다?

 

강아지들은 많은 사람들이 귀엽다면서 다가와 웃어줘도

할머니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딱딱하게 굳어서 오직 백화점 문 앞만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몇 번 겪어본 일인지 뛰쳐나가지도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게 대견하다고 할까 안스럽다고 할까.

 

10미터쯤 떨어진 백화점 앞 네거리에서는 젊은이들이 피켓을 들고 큰 소리로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싶어 들어봤더니 후쿠시마 지진으로 갈 곳을 잃은 강아지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돕자는 호소를 하고 있더군요.

단순히 애완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후쿠시마의 남겨진 동물들에 대한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한국의 다큐에서도 많이 나왔듯, 수만 마리의 소와 말, 개, 닭, 고양이 등이 방사능에 피폭당하는 동시에 굶어죽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이죠.

 

젊은 청소년들의 힘은 한계가 있으니 일단 애완견, 애완묘라도 돕자고 홍보를 하고 있는데

엄니께서는 역시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그냥 피식 웃으시더군요.

사람도 못 돕는데 동물은 뭔 동물이냐고. 하지만 손자가 커서도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을지가 걱정이네요.

사람이 동물도 못 도우면 사람답게 살 수나 있을까 싶습니다.

 

 

 

여기서밖에 못 먹어볼 듯한 녀석이라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하나 사 왔습니다.

창업 40년이 넘은 전통있는 가게에서 팔고 있던데, 조금 딱딱한 크로와상 같은 빵 속에 코베 소고기를 넣은 고기호빵 같은 느낌입니다.

만두처럼 부드러운 건 아니고 프랑스식 빵에 고기를 넣은 듯한 묘한 퓨전느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만족했던걸 보면, 춥고 배고픈 겨울날 하나 사먹으면 굉장히 맛있었을 듯 하네요.

무게감이 있고 크기도 작은 편이 아니긴 하지만 380엔이나 하는 비싼 군것질거리라 혼자 여행다닐 때 과연 먹을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점에서 부탁받은 그림책과 손자용 장난감을 좀 구입한 후 다시 밖으로 나옵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쉴새없이 걸었으니 엄니께서는 굉장히 피곤하실텐데

버스타고 가자고 해도 한 코스밖에 안되는 거 뭐하러 타냐고 하시며 계속 걷는군요.

 

저도 다리가 후들후들할 정도인데, 걱정을 하면서도 일단 코베에 왔으니 건질 건 건지려고 다시 포트타워 쪽으로 이동합니다.

 

 

 

엄니가 오늘 이곳만 세 번이나 왔다면서 웃으시더군요.

사실 제 사진 욕심때문에 괜히 엄니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닌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좀 마음에 걸리는 중이긴 했습니다.

 

포트 타워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서 엄청 놀라운 야경을 보여줄 정도는 아니죠.

밖에서 보는 모습이 더 재미있긴 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올라는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전진 또 전진.

 

 

 

포트 타워 안엔 별하늘 아래를 걷는 듯한 조명이 사방에 깔려있어서

야경사진 담기엔 오히려 좀 귀찮은 구석이 있더군요. 밖에서 보는 것 만큼 조그마한 타워라서 별 감흥은 없었습니다.

하긴 이 타워의 4배가 넘는 높이의 스카이 트리에서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여기라고 별 수 있나요.

세삼스럽긴 하지만 타워 올라가서 구경하는 건 제 성격과 별로 맞지 않는 듯 합니다.

 

그래도 볼만한 것들은 많았는데요. 쿄토 산자락의 '大' 자를 본따 만든듯한 항구 표시가 저기 산 위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좀 멀어서 박력이 좀 줄었지만, 어쨌든 한 번쯤 신기하게 쳐다볼 가치는 있겠죠.

 

 

 

해양박물관은 밤이 되니 좀 더 볼만하네요.

포트 타워는 이름답게 바다를 끼고 있어서 다른 곳보다는 야경이 좋습니다.

밤이 되니 한번 더 20년 전의 모습이 상상속에서 일어난 듯한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제가 괜히 엄니를 싸구려 비지니스 호텔에 끌고 갔나 싶은 생각이 항상 남아있어서 그런지

여행중 멋진 호텔만 보이면 '돈만 많았으면 저기 묵을 수 있었는데' 하는 한숨을 쉬곤 했네요.

 

물론 엄니께서도 어차피 저녁에 잠만 잘거 뭐하러 그런 데 돈 쓰냐고 하시긴 합니다만.

저는 아직 호화스러운 여행을 가 본적이 없어서, 한번쯤 경험해 보면 그것도 재미있지 않겠나 상상만 하고 있습니다.

호화스럽다고 해도, 여행사 패키지에 들어있는 4성, 5성급 호텔 정도를 말하는 것이니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겠죠.

 

여담으로 부모님이 예전 여행갔을 때 여행사에서 착오가 있어 호텔 스위트룸에서 자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돈이 있어도 투숙할 수 없고, 국빈들에게나 제공하는 스위트룸이었는데 저희 집보다 두세 배쯤 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일박 수천만원짜리 그 스위트룸 역시 그냥 하룻밤 자고 일어나 떠나면 끝이었다고 허무해 하셨습니다.

 

 

 

포트 타워 근처는 해양박물관 쇼핑몰, 유원지, 유람선 등 즐길거리가 많지만

엄니나 저나 그런건 별로 안좋아하는 성격에다가, 오늘 이상하게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굉장히 음산한 느낌밖에 안들더군요.

 

포트 타워 야경 구경이라는 항목은 어느 여행 가이드에나 반드시 나와있는 정석 코스인데

막상 와보니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 무리들 말고는 동네 마실 나온 듯이 조용했습니다.

대학생 커플쯤 되는 아해들이 많이 와서 야경의 낭만을 즐기고 있던데

아무래도 저처럼 엄니와 둘이서 여행 온 일행은 없는 것 같아서 더더욱 군중속의 고독을 느낀다고 할까요. 물론 전 그런 거 매우 좋아합니다.

 

 

 

 

산노미야 주변에도 괜찮은 호텔이 좀 있긴 합니다만

이곳 코베 항 주변은 역시 경치 때문인지 척 봐도 고급스럽게 보이는 호텔이 많습니다.

코베는 지진 탓고 있고, 버블 붕괴 이후로 킨키 지방중 가장 경기가 안 좋은 편에 속하는 도시라서

이렇게 한적한 동네 풍경속에 유난히 빛나는 고급 호텔의 모습을 보면 왠지 안스러운 느낌마저 들곤 합니다.

 

실제로 차이나 타운 정도 말고는 거의 대구의 본가 근처 동네 산책할 때보다 사람이 더 없었던 하루였네요.

엄니도 우리 뭔가 관광 잘못온거 아니냐고 걱정하실 정도였고.

 

겨울이라 일본 중부지방은 관광 수요가 좀 줄어든 탓도 있습니다만

겨울에 돌아본 도시 중에서도 이 곳은 제 예상보다 좀 황량한 느낌이 드는군요.

 

 

 

타워 야경을 꼭 보라고 꼬드기는 세간의 흐름에 넘어가 억지로라도 올라간 포트 타워입니다만

엄니나 저나 피로가 상당히 많이 누적되어, 이젠 뭐가 어찌되든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들더군요.

 

그래도 1층에 내려오니 한국의 빼빼로와 비슷한 포키로 만든 타워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옆에는 일본 각지의 타워들을 소개해 놓았는데, 자전거 일주여행을 하다 보니 거진 한번씩은 지나가면서 쳐다본 것들이네요.

엄니는 우메다 공중정원 사진을 보고 신기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곳 코베보다 오사카 우메다가 더 가까웠기 때문에 살짝 뜨끔했습니다.

 

예전에도 가 봤지만 높은 곳은 그렇게까지 볼 만한게 별로 없어서.

 

 

 

코베에서 한 번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은 채 걸어다닌 저와 엄니입니다만

이제 지칠대로 지쳤고, 어차피 오사카행 지하철 타려면 산노미야 역에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코베 지하철을 한번 타 봤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역내에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네요.

 

엄니와 저는 둘이서 미나토 모토마치(みなと元町)역의 고요한 승강장에 서서 공포를 만끽했습니다.

인구 150만의 중소도시 치고는 너무나도 한적해, 왠지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물론 피와 살과 뼈가 날아다니는 상큼한 영화라서 진짜 긴장하고 있는 엄니한테 말씀드리긴 어렵죠.

코베에 관광와서 이런 한적함도 구경해 보는구나 싶어 사진은 재미있게 담았습니다.

 

일본은 전혀 관광 시즌이 아닌건지, 코베가 그냥 그런건지, 우리가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닌 건지.

이러나 저러나 제가 코베를 관광 목적으로 다시 찾을 일은 거의 없을 듯 해서

느껴진 텅 진 승강장도 나름 재미있게 느껴지더군요. 어차피 산노미야 역은 붐비겠지만.

 

 

 

산노미야 역에서 난바까지는 40분만에 간단히 도착합니다.

기차 안에서 신나게 졸아댈 정도로 피곤했나 보더군요.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엄니가 가볍게 저녁 먹자고 하십니다. 숙소 안에서는 별로 먹을 게 없으니까요.

 

숙소 바로 옆이 상점가라서 먹을 건 많습니다만, 짜고 기름진 거 싫다고 하셔서 조금 더 발품을 팔아봤습니다.

그래서 10평도 안되는 허름한 가게 문을 무작정 열고 들어갔네요. 여기도 창업 40년은 넘었다고 적혀있습니다.

동네의 조그만 가게들은 대부분 술집도 겸하고 있는 형식이라, 들어가니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맥주 한 잔씩 들이키며 식사 중이로군요.

 

일본에서는 아직 실내 흡연도 인정되고 있어서, 술과 저녁식사와 담배까지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담배냄새가 좀 거북했습니다만, 이것도 동네 구멍가게의 저녁 풍경이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누그러진 마음으로 구경했습니다.

 

엄니는 계란과 버섯, 각종 야채를 얹은 덮밥을 주문하셨습니다. 이것도 좀 짜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담백해서 먹을 만 하다고 하시더군요.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할아버지와 서빙하는 할머니는 아무래도 부부인 듯 합니다.

엄니가 처음엔 자매가 아닌가 생각하셨다고 할 정도로 닮았는데, 역시 오랫동안 함께 하면 얼굴도 닮아가는 걸까요.

 

저는 중화소바를 시켰는데, 강렬한 라멘보다는 훨씬 옅은 국물맛에 숙주나물이 듬뿍 들어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늦은 밤이라서 너무 짜고 진하면 얼굴이 참 귀엽게 부풀어 오를거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운 맛이라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옆에 후추통으로 보이는 깡통이 있어서 후추 좀 뿌릴까 싶어 집어들었는데

너무 가벼워서 빈 통인갑다 하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놨습니다.

라멘 먹으면서 주위를 돌아보니 노인들이 담뱃재를 그 깡통에 털고 있더군요. 재떨이였습니다.

안에 무게감이 느껴졌다면 아마 그걸 라멘에다가 들이 부었을 텐데

그랬다면 라멘이 아까운 게 문제가 아니고, '라멘 잘먹다가 담뱃재 들어부은 괴인 출연'이라고 뉴스에 나갈 것 같아서 섬뜩하더군요.

 

미친놈 취급 받지 않고 안전하게 끝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숙소에서 목욕 후 2층 침대로 기어 올라가는데, 내일은 아무래도 여정을 좀 가볍게 해서 일찍 돌아와 쉬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목이 뭔가 욕같아 보입니다만 그냥 착각입니다. 기분상으로는 설날 조카라고 하고 싶긴 하지만 그건 넘어가고...

8월에 태어났으니 이제 한 살 반쯤 되었나요.

 

엄니는 사진으로 보니 더 나이들어 보인다고 합니다.

8개월째부터 걸어다니는 걸 보면 좀 성장이 빠른 것 같아 보이긴 합니다.

 

 

 

100일 될때까지 제가 붙어있었는데, 몸도 못가누던 그때와는 정말 비교가 안되는군요.

말은 아직 엄마 아빠 정도밖에 못하지만, 알아듣는건 거의 다 알아듣습니다.

 

추석때 보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삼촌 누구야 하니까 바로 저를 가리키네요.

하지만 연극배우처럼 큰 리액션을 보이는 가족들과 달리 저는 별로 움직이질 않아서 좀 쪼는 듯.

 

 

 

그동안 놀이도 많이 익혔고, 자기만 노는게 아니라 상대방들이 웃고 반응해줘야 더욱 신이 나는 것 같습니다.

매일 이러고 논다고 생각하니 역시 애 키우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 같군요.

 

그래도 짧은 시간에 이렇게 반응이 다양해 지다니 놀랍습니다.

 

 

 

지금 이건 아비 뽀뽀가 기분나쁜게 아니라 딴 생각 하는 중입니다.

스킨쉽을 매우 좋아해서 안아주고 뽀뽀해주면 빵긋빵긋 웃네요.

 

자동차 중에서도 버스를 좋아한다길래 일본서 선물로 포드 GT 와 시내버스를 사 와봤는데

진짜로 GT 따위엔 신경도 안쓰고 버스를 갖고 놀더군요. 트럭같은것도 좋아하는 걸 봐서 앞으로 중장비 기사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니는 GT 를 택시로 알고 사왔다고 하는데, 그런 택시가 돌아다닌다면 그것도 좋겠군요.

 

 

 

떼를 쓰는건 그리 심하지 않습니다만 의사표현은 확실하게 하는 편입니다.

형님부부가 원하는 걸 잘 들어주는 편이라 그렇게까지 불만은 없겠죠.

몇살 더 먹으면 이제 부모가 커버할 수 없을 정도의 떼를 쓰겠지만.

 

 

 

색깔이 가장 화려한 오미자 강정만 집어먹는데, 씹을 수 있나 싶어도 잘 녹여 먹네요.

단맛이 강하니 많이 먹으면 안되겠지만 말이죠.

 

어른들 차 마시는데도 얌전히 앉아서 놀건 다 놉니다.

숨바꼭질을 좋아해서 타조처럼 벽에 머리만 박고 '에엥~' 하면 부모들이 못 보는 것처럼 행동을 하죠.

그러면 자기가 슬슬 걸어와서 바지단을 잡아당기는데, 이런 놀이로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아기 시절의 특권이 아닐까 싶네요.

 

 

 

다른 아기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제일 특이한 점이라면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것을 아주 잘 구별한다는 것일까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걷지도 못하던 4~5개월 즈음부터도 장난감을 입에 가져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장난감 가져다 줘도 안심이 된다고 하네요. 꼭 먹을 수 있는 것만 입에 가져가니까.

 

 

 

의자에 방석 하나 끼워주니 아주 편안하게 머리를 젖히는데, 이런 건 벌써 다 경험해 봤다는 걸까요.

움직이는걸 워낙 좋아해서 먹기도 많이 먹는데 살이 별로 찌지 않는 듯 합니다.

틈만나면 아파트 계단이나 오르막 같은 길을 수도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군요.

 

아직까지는 먹기도 잘 먹고 싸기도 잘 싸고...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졸면서도 논다는 게 좀 걱정이긴 하지만.

 

 

 

놀때는 잘 웃는데 아직까지 머릿속 처리속도는 조금 느린지

이쪽에서 뭔가 행동을 하면 멍하니 생각을 좀 한 다음에 반응을 보이는 듯 합니다.

그리고 한참 한가지 놀이에 빠져있을때는 다른 놀이를 시키려고 해도 짜증을 내네요.

 

 

 

먹는거든 장난감이든 달라고 하면 잘 줍니다. 물건 욕심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엄니가 삼촌한테 주라고 하니까 좀 망설이다가 자기 아비 손을 끌어당겨서 저한테 주는군요.

아직까지는 자기가 직접 주기가 좀 무서운가봅니다.

 

 

 

형님부부는 맛폰으로 사진을 찍습니다만, 찍히는데는 익숙한지

제가 DSLR로 사진을 찍어도 저한테 다가와서 LCD 창을 확인하더군요.

 

자기와 옆의 자기 아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뭐라뭐하 하는데

태어나서부터 디지털 사진에 익숙한 세대는 과연 사진이란 개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맛폰이나 TV는 부모가 보고 있어야 관심을 가지고 아직 가지고 놀 생각은 없는 듯 한데

부디 나이 좀 더 먹어서 맛폰 중독같은데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물론 부모가 몸으로 열심히 놀아주는게 최선의 방법이니 별 문제는 없으리라 봅니다.

 

 

 

아이들이다 보니 물건을 다루는 데 조심성이란 게 없습니다.

손에 쥔 거나 물잔이나 파팍 하고 던져버리는 걸 재미있어 하더군요.

그래서 고가품은 미리미리 빼 놓는게 좋죠.

 

엄니는 제가 서울에 잠깐 올라간 사이 거실에 놓여있던 피규어들을 싸그리 자루에 담아 찬장에 처박으셨다고 하는데

아직 뜯어보진 않았지만 부디 박살난 부분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똥오줌 잘 가려서 좋긴 합니다. 소변 보고 싶으면 꼬추를 살살 만지면서 끙끙거리더군요.

화장실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대구 본가에서는 그냥 바닥에 싸라고 하고 닦습니다.

 

차례 지내는데 보니 이 녀석도 남자인지 고 2 올라가는 사촌 여동생을 매우 빤히 쳐다보고 얼굴을 만져보네요.

나이 든 사람보다는 역시 젊은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듯 합니다.

 

 

 

엄니가 주워온 도토리가 매우 신기한지 양 손에 들고 딱딱 부딪쳐 보기도 하고

한 개씩 잔에서 잔으로 옮기며 놀기도 하고, 물 채워놓은 잔에 넣었다가 탁탁 털어서 옮기기도 하고

혼자 재미있게 봅니다. 집중력이 있는 듯 해서 교육열에 불타는 부모님은 좋아하시더군요.

 

한참 놀다가 도토리를 휙휙 집어던지기 시작하면 슬슬 싫증이 난다는 뜻입니다.

 

 

 

엄니가 여느때의 경상도 억양으로 '에헤이~'라고 하니 그걸 금방 따라해서 대폭소가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웃어재끼니 자기도 매우 흡족한 듯 좋아하더군요.

 

그냥 어색하게 따라하는게 아니라 엄니의 억양에 맞춰 가지 억양도 바꾸는 비범함을 선사합니다.

 

 

 

엄니가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자지러지니 그것도 금방 따라하더군요. 학습력이란 무섭습니다.

손벽을 치면서 웃으니 그것도 따라하네요. 지금은 엄니가 없는 곳에 데려가도 손뼉치고 웃는다고 합니다.

 

확실히 이런 나이에 할머니하고 같이 자라면 말투도 노인처럼 변할 수 있겠더군요.

 

 

 

엄니가 입에 손대며 웃으니 그것도 따라합니다. 이 정도까지 가니 놀랍더군요.

하라고 시키는 것도 아닌데 주위에서 웃어주니까 굉장히 의욕적으로 따라합니다.

 

교육의 근본적인 동기는 이런 미소에서 출발하는 것이겠죠.

나이 들어도 중요한 요소인데, 한국에서는 점차 아이에게 긴장과 고통을 유발하는 교육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니 걱정입니다.

 

 

 

 

이 나이대 아이들은 다 그런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밥 싫어하지도 않고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긴 하는데

앉아서 밥을 먹는다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질 않는것 같더군요.

 

무슨 놀이를 하던간에 노는 중간에 숟가락을 입 가까이 가져가면 먹어가면서 놉니다.

밥상머리 교육 시작할 때는 꽤나 지겨워하지 않으려나 싶네요.

 

 

 

엄마한테서 요구하는 놀이와 아빠한테서 요구하는 놀이가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무리 뼈빠지게 놀아줘도 만족하지 않고 다시 아빠한테 엉긴다고 하는군요.

 

테이블의 떡처럼 생긴 사각형 물체는 누르면 음악 나오는 기계인데

이게 6곡 정도 있어도 반드시 자가기 원하는 노래 나올때까지 계속 버튼을 눌러서 돌리더군요.

무슨 자동차 노래였는데, 중간중간 춤도 추고

띠띠빵빵 하는 파트에서는 디오에 맞먹는 강렬한 샤우팅을 펼치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저렇게 올라갈 수 있으려나요.

조금 더 크면 다리 좀 밟아달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저학년 까지는 아버지 안마 좀 해달라고 하면 벽 짚고 다리 올라가서 밟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아무래도 가슴에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을테니 지금 열심히 올라가야 할 것 같네요.

 

 

 

아직까지는 파워가 부족해서 그런지 큰 소란없이 잘 놀고 잘 크고 있는 조카입니다.

3~4살 되고나서부터는 지옥의 헬이 펼쳐진다고 하는데, 지금도 확실히 순둥이라고 할 만한 성격은 아니라서 긴장이 되네요.

 

아기들은 삼촌 좋아한다고 하는데 저는 무뚝뚝하고 아비가 워낙 잘 놀아줘서 저하고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을지...

저하고 그렇게 되려면 역시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제 방 방문턱을 넘어오기를 무서워하고 있어서.

 

다음에 사진 찍을때 쯤이면 또 어마어마하게 달라져 있겠죠. 기대됩니다.

'Photo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휴 부산  (16) 2014.05.11
잘 돌아다니고 왔습니다  (10) 2014.02.25
설날 잘 보내시길  (4) 2014.01.30
법 규  (14) 2014.01.24
일주일 여행기 쓰는데 반년  (14) 2014.01.17
설날 조카 :: 2014. 1. 31. 16:02 Photo Diary

 

 

갈수록 빡빡한 나날이지만 설날엔 그래도 먹을게 많이 들어와 좋습니다.

전 좋아할게 아니라, 설날만 지나면 몇kg  씩 늘어나는 체중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말이죠.

 

 

 

엄니 학교 선생님을 통해서 매년 몇 박스씩 주문하는 강정입니다.

늦으면 주문도 불가능할 정도로 인기 메뉴인데, 제가 먹어본 강정 중에서 최상급에 속합니다.

 

이거 먹고 나면 다른 곳에서 들어오는 어떤 강정 세트를 먹어도 맛이 없어서 말이죠.

 

 

 

파래와 유자, 오미자를 섞어 만든 세 가지 종류로 되어 있는데

이게 그냥 보기에만 그럴 듯한 색깔이 아니라 향기와 맛도 굉장히 잘 느낄 수 있습니다.

튀긴 찹쌀은 어떤 방식을 사용했는지 몰라도 퍼석한 느낌 없이 바삭바삭한 과자처럼 씹히죠.

이 녀석 먹은지 5년은 되어가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이것보다 더 잘 만든 녀석은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거 말고 조금 장르가 다른 유과의 경우, 이 녀석과 등급으로 살살 녹아드는 멋진 녀석이 있긴 합니다만.

 

 

 

만드는 법을 모르는 건 아닌데, 시중의 강정과 이렇게도 차이가 크다는 것은

역시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팍팍 사용한 탓이 클 것이라 예측해 봅니다.

 

그 외에도 분명 튀기는 방식 같은데서 이쪽만의 노하우가 있는 듯 하긴 해요.

맛과 향은 둘째치고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보통 저희 집은 이거 너댓 박스쯤 주문해서 두 박스는 집에 놔두고

세 박스는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두 박스 중 한 박스는 차 마시면서 뜯어먹고

나머지 한 박스는 혹시 예상못한 손님이 올 때 드리거나, 무사히 잘 넘어가면 가족끼리 알아서 처리합니다.

 

설날 1~2주일쯤 전에 주문하지만 항상 받자마자 뜯어서 차를 한 잔 마실 수 밖에 없는 마력이 있는 녀석이네요.

 

블로그 찾아주시는 분들 맛있는 거 많이 드시는 설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Photo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 돌아다니고 왔습니다  (10) 2014.02.25
설날 조카  (6) 2014.01.31
법 규  (14) 2014.01.24
일주일 여행기 쓰는데 반년  (14) 2014.01.17
내년에 또  (12) 2013.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