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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노인'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3.11  엄니와 함께 - 코야산 오쿠노인 (2/2) 8
  2. 2014.02.05  엄니와 함께 - 코야산 오쿠노인 (1/2) 6
  3. 2012.05.30  킨키 방황 - 우라시마 타로 체험 14
  4. 2012.05.29  킨키 방황 - 몽롱한 참배길 13
  5. 2012.05.28  킨키 방황 - 촬영금지 18
  6. 2012.05.27  킨키 방황 - 성불의 의미 18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지만 날씨는 매우 매섭습니다.

오사카가 원래 부산만큼 따뜻한 곳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역시 해발이 높은 산 속은 추위를 무시하지 못하겠더군요.

 

엄니 역시 후드에 목도리까지 둘러쓰고 피부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이동중입니다.

 

  

 

이 탑을 보려면 이동 루트에서 조금 빠져나와야 했지만

그래도 이 녀석을 보지 않고 오쿠노인을 통과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일부러 엄니를 안내했습니다.

 

엄니도 한자를 읽을 수 있기 대문에 이 곳이 연고가 없는 사람들의 안식처라는 걸 금방 아시더군요.

 

 

 

하지만 이런 동자승 불상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뜬 아이들을 기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모르셨습니다.

굶어 죽는게 너무나도 당연했던 시대에서 배 부르게 무언가를 먹는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많았음은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곳 입구의 번쩍번쩍한 기업 묘비와 달리

이 연고 없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조각상은 내세에서라도 복을 받기를 원하는 진심이 강하게 묻어나는 듯 하더군요.

 

 

 

목도리처럼 보이는 것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음식이나 음료수 같은 녀석들은 말이죠, 공양하려는 마음은 이해가 가도 관리자 측에서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딱히 주변에 음료수나 먹을 거 놓지 마라는 표지판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요함 속의 오쿠노인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이곳 관리하는데는 굉장한 인원과 시간이 필요하죠.

고용인이나 청소 알바가 아닌 사찰 관계자가 직접 관리하다 보니, 이 것도 일종의 공덕을 쌓는 행위라고 인식하는 듯.

모기가 덤벼들던 피부가 얼어붙는 추위 속이던 1년 내내 꾸준히 부지 관리에 열심입니다.

 

 

 

무연불은 관리가 잘 되고 있는 지금 와서야 더 늘어날 일 없겠지만

단지 피라미드처럼 생겼다는 볼거리 하나만으로 이렇게 세워놓은 게 아니라는 점은 꼭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식으로 묘터를 구입할 돈이 없는 사람들이 돌맹이 하나씩 들고 조용히 내려놓고 간 역사의 흔적이 응집된 모습이니까 말이죠.

정말로 내세라는 게 있다면 휘황찬란한 묘석을 세운 사람보다

이런 연고없는 조그만 불상의 주인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길 바랍니다.

 

 

 

유명한 관광지이긴 하지만 주위에 젊은 사람이 즐길만한 컨텐츠가 없고

이동 수단도 빡빡해서, 하루 꼬박 잡아야 겨우 관람이 가능한 곳이 코야산이라

여름에도 크게 관광객이 많이 붐비진 않았지만 이번엔 정말로 음산할 정도로 사람이 없더군요.

 

엄니께서는 제 예상과 달리 이런 훌륭한 자연 경관 속에서도

무덤이라 싫다는 철직과 함께 매서운 겨울 산바람 때문에

구경을 하시는건지 마는건지 모르는 속도로 성큼성큼 걸어가십니다.

 

 

 

홍법대사의 묘가 안치되어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는 걸어가실 생각도 없고

빨리 나가자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조금 아쉽긴 하지만 서둘러 이 곳을 벗어나기로 합니다.

다만 완전히 똑같은 길로 돌아가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쪽 출구로 이동했죠.

 

날씨 탓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조금만 더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면

엄니께서도 거부감을 줄이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 혼자서 이곳을 찾아왔을 당시의 포스팅에도 적혀있습니다만

기온차가 극심하고 습도가 매우 높은 이 곳의 특성상

나무로 만든 것들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역시 이런 모습이 여기저기서 자주 보이더군요.

 

여름때 본 녀석인지까지는 확인할 시간이 없었습니다만

이곳에 왜 그리 돌로 석불과 묘석이 많은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석불 역시 오래 가긴 가겠지만 이것 역시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닌 것 같네요.

원래부터 별로 정교하게 조각된 녀석은 아닌 듯 하지만

슬그머니 비탈길에 누워있으니, 몇 년 지나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땅 속으로 사라져 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겨울이라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가끔씩 부는 풍절음만이 사람 으스스하게 만드는군요.

 

저는 지난 번 왔을 때 통풍때문에 거의 죽을 뻔한 기억이 었어서

이번엔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며 코야산의 풍경을 만끽하려고 했었습니다만

엄니께서 춥고 무섭다고 후다닥 지나가시는 바람에 어째 몸이 아플 때보다 더 구경시간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사진 좀 많이 찍혀본 사람이 아닌 이상, 찍는다고 정보를 줘 버리면

그냥 정면을 바라보며 딱딱하게 몸이 굳어버린 사진밖에 얻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몸을 30도 정도 옆으로 틀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어쩌고 하는 방법을 말해줘도

그건 그냥 보기좋은 모델처럼 담겨버릴 뿐 여행 사진으로서는 뭔가 좀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냥 뒷모습만 찍어도 여행 사진으로서는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추운 날씨라 코가 얼어서 냄새를 평소보다 잘 맡진 못하지만

여름의 풀냄새와 조금은 다른 향기가, 햇빛이 조금 강해지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이 느껴지는군요.

 

기온이 낮아서 직사광선이 통과하기 어려운 오쿠노인의 땅바닥은 여전히 눈으로 덮혀있지만

그늘 아래서도 습기때문에 푹푹 찌던 여름과 달리

겨울엔 햇빛 한번 쏴 하고 비치면 걸음을 멈출 정도로 따뜻함을 느끼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이 나무는 예전 여름 여행때도 찍은 적이 있죠.

그때는 한여름이라 빛도 틀리고 습기도 틀리고 해서 이것과는 전혀 다른 진득진득한 사진이 나왔었는데

촬영 요건이 다르다고는 해도 확실히 나무는 계절에 따라 보여주는 모습이 매우 다르다는 걸 세삼 알 수 있었습니다.

 

 

 

엄니가 너무 빨리 치고 나가시는 바람에 사진 찍는게 쉽지 않네요.

묘지를 그렇게까지 싫어하신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단지 날씨가 추워서 그러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뭐 엄니 따라가느라 셔터를 누르는 시간도 절약하며 달립니다.

핀이 맞았는지 구도가 어땠는지 확인할 시간도 없네요.

 

혼자 떠나는 여행이 아닌 이상 상대방의 사정을 고려해 줘야 하는 것이고

역시 느긋함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좀 빡빡한 면이 있더군요.

 

 

 

생각을 할 시간이 부족한 체로 찍은 사진이라

돌아와서 정리할 때는 역시 본인이 당시 느꼈던 감각을 재현하기가 조금 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사진은 금방 생각이 나던데 말이죠. 여름에 결코 볼 수 없는 겨울만의 멋진 모습입니다.

 

 

 

성실하신(?) 분이라면 여름 포스팅과 비교해가며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름과는 빛이 전혀 달라서 똑같은 소재를 찍어도 분위기가 꽤나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카메라도 바뀌긴 했지만 동 회사의 거의 비슷비슷한 녀석이라, 기계적으로 차이점은 별로 없습니다.

 

추위에 마음이 조급해지면 조금씩이나마 부족하거나 모자란 점이 좀 더 드러나게 되죠.

사진과 사냥은 한 글자 차이이듯, 사진 찍을때는 셔터에 손가락 얹어놓고 집중을 잘 해야 좋은 녀석을 건집니다.

 

 

 

오쿠노인의 나무는 참 허벌나게 큽니다.

미국 대륙의 나무야 이런 녀석들도 어린아이처럼 보이게 하는 거목들이 많지만

일본의 참나무는 확실히 동아시아에서는 유난히 큰 편이긴 하죠.

 

 

 

석불에 이렇게까지 따뜻하게 옷을 입혀 놓은 모습을 보면

문득 정말로 저 석불이 제 체온보다 더 따뜻하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산날씨는 변하기 쉽다는게 일본에서도 틀린 말이 아니더군요.

버스 내렸을 때 눈발이 날리던 날씨는 이제 푸른 하늘과 맑은 햇살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온이 확 올라가는 건 아니라, 사진 찍기에 좀 더 좋아졌을 뿐 여전히 온 몸을 웅크리고 있어야 하지만 말이죠.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저하고는 좀 다른 엄니라서

진귀한 볼거리이긴 하지만 오래 있고 싶진 않다는 일념으로 확확 진행중이신데

저는 이런 곳에서 사진 찍으며 좀 더 느긋하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더군요.

 

 

 

 

동양의 어머니상은 일단 옷깃 잡는 아이와 안고 있는 아이가 기본인가 봅니다.

특정 인물에 대한 석불인지 그냥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양인지 모르겠더군요.

 

 

 

엄니가 너무 앞서나가시는게 걱정되어 카메라도 어깨에 들쳐매고 앞으로 따라갑니다.

이렇게 바싹 붙어서 광각으로 찍는 사진도 나름 재미있죠.

 

 

 

이런 번쩍번쩍하고 덩치 큰 녀석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좋던 싫던 한번쯤은 눈길이 가게 마련이더군요.

돈과 권력이 많아서 이렇게 지었다기보단, 코야산에서 입적한 스님들을 기리는 무덤인 듯 합니다.

 

 

 

머나먼 홋카이도에서 여기까지 온 비석도 있네요.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공간을 형성하는 오쿠노인이지만

그 안을 보면 워낙 다양한 모습의 묘석이 공존하고 있어서, 살아있는 사회의 압축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추운날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그런지, 제 입장에서는 세삼스럽게 그리 짧은 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에 통풍 걸린 발로 어기적거리며 두 시간 가까이 걸어가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지

막상 멀쩡한 몸으로 걸어봐도 생각보다 긴 산책로더군요.

 

엄니께서는 이 정도 거리가 피곤하실 분은 아니라 크게 걱정은 없습니다만, 날씨가 추운 게 조금 마음에 걸렸습니다.

엄니는 아프리카와 호주 대륙 정도는 빼면 거의 전세계를 여행하신 분이지만

겨울에는 한 번도 해외에 여행가본 적이 없다고 하시니 말이죠.

 

 

 

정오를 넘기고 날씨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니 엄니의 걸음걸이도 조금씩 진정되는 느낌입니다.

오쿠노인에 처음 왔을 때 저도 그랬지만, 뭐라고 딱 잘라서 표현하기 힘든 심상을 주는 곳이니

엄니께서도 입 속에서 맴돌기는 하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난감한 그런 느낌인 듯 보였죠.

 

한국의 묘지 문화에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덕지덕지 공간 활용하는 모습은 참 좋다고 하십니다. 그건 저도 동감.

 

 

 

찍어드리려고 해도 거절하시는 엄니라서, 이렇게 같이 걸어가면서 다른 피사체만 찍어대더라도

전혀 부담될 것이 없다는 점은 참 좋습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한국에도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전 맨날 여행가서 사람 그림자라고는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사진만 줄창 담다보니

막상 사람이 프레임 안에 들어와 배경과 함께 담아내야 하는 사진을 찍어야 할 때가 오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게 되니까 말입니다.

 

 

 

묘석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이런 석불들에게는 눈이 머물게 되는 게 평범한 반응일 듯 합니다.

엄니께서는 석불 자체보다는 알록달록하게 입혀놓은 옷을 더 신기하게 생각하시더군요.

지난 번 언급했듯, 어린 아이들의 명복을 비는 석불이기 때문에 이런 색상이 선호되는 것이라 설명해 드렸습니다.

 

 

 

서둘러 걷다보니 그리 오랜 시간 지나지 않아 출구쪽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오쿠노인은 제 예상과 전혀 다른 전개를 불러일으켜서 당황스럽더군요.

 

여름의 오쿠노인은 그 찌는 날씨에 통풍의 지옥같은 고통으로 날뛰는 발가락과 싸우며 걸어갔는데

'발만 나으면 정말 느긋하게 걸어봐야지'라고 생각하며 다시 돌아온 겨울의 오쿠노인은

동행자인 엄니께서 추우니까 빨리 걷자고 하시는 바람에 느긋함과는 전혀 다른 스릴이 넘치는 산책이 되어버렸네요.

 

 

 

오쿠노인을 나와서 다이몬 쪽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한 시간에 한두 대 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15분쯤 기다려야 하지만

버스만큼은 혼자 기다리는 것 보다 함께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편이 시간이 잘 가죠.

 

 

 

조그마한 코야산 안에는 백여 개가 넘는 사찰이 위치하고

그 중 상당수는 템플 스테이 같은 숙박도 가능하기 때문에

사찰 문화에 관심이 많거나 시간과 돈이 널널한 관광객은 이곳에서 하루 묵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돈을 더 열심히 벌어서 이런 곳에서도 하루 자 보는 그런 여행도 즐겨봐야 되는데 말이죠.

 

 

 

버스 시간이 남아서 이곳저곳 둘러보십니다.

일본의 불교는 한국과 조금 달라서, 결혼도 하고 절도 자기 소유로 자식에게 물려주는 스님이 많습니다.

 

엄니께서는 그 설명을 듣고는 '그럼 종교로서는 별로~'라고 단칼에 언급하시는군요.

물론 종교인이 사유재산을 가졌을 때 생기는 폐단에 대해 익히 경험을 해 오셨기 때문에 그러리라 봅니다.

의외로 일본의 신사나 절 같은 경우는 그냥 근근히 먹고 살 만한 가업 정도로 이어지는 소박한 녀석들이 꽤 있긴 하지만.

 

 

 

이번 코야산은 큰 이벤트 하나 터트리기 전의 고요한 분위기라고 할까요.

일본 진언종의 총본산인 이곳 코야산은 2015년에 창건 120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해를 맞이하기 때문에

전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2015년엔 이곳에 올 엄두가 나지 않을 듯 합니다.

아마도 순례자들 틈에 끼여 무빙워크를 탄 듯한 기분을 맛보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전 홀로 여행때는 가방에 간식거리를 일체 넣어다니지 않는 타입인데

엄니께서는 익숙하게 준비해 온 물과 과자를 꺼내 드십니다.

 

저는 보통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가기 전 먹을거리를 사들고 가

목욕 시원하게 한판 당기고 나와서 느긋하게 즐기는 성격이라서.

 

그래도 추운날 버스를 기다리며 짭쪼름한 센베이 씹어먹는 맛 역시 일품이었습니다.

 

 

 

버스 타기전에 엄니가 만든 눈사람입니다.

눈코입도 만들까 했는데 버스가 오는 바람에 서둘러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마우리가 되어 버렸네요.

 

 

 

다이몬으로 향하기 전에 일단 점심을 해결하기로 합니다.

이곳 코야산이 물 맑고 공기 좋아서 밥맛도 좋다고는 하지만

유명한 관광지의 물가 + 해발 1000m 넘는 산골짜기 라는 요건이 겹치는 바람에

이 곳의 먹거리는 양이나 질에 비해 좀 비싸다는 인식이 넓게 퍼진 편이죠.

 

하지만 홀로 여행때처럼 비싸다고 안 먹고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적당히 속에 부담가지 않을 만한 가게를 찾아보다가 평범해 보이는 곳을 하나 찾았습니다.

 

정식요리도 여러가지 있지만 살짝 배만 채울 요량으로 들렀기에 주문은 간단하게 합니다.

물이 좋아서 그런지 이 지역은 두부가 유명하다고 하길래 반찬 요량으로 작은 거 하나 시켜봅니다.

일본의 두부는 한국과 맛과 향이 전혀 다른데, 고소한 콩 향기가 진한 한국의 두부와 달리

맛은 간장과 와사비 없이는 밍밍하게 느껴질 정도로 맛이 약하고, 속에 기포가 거의 없이 젤라틴처럼 탄력있게 말랑말랑한게 특징이죠.

 

지역 명물이라 그런지 요 조그만 녀석이 3천원 가까이 하는 무서운 가격이지만

전 두부를 매우매우 좋아해서 막 퍼먹는 수준이기 때문에, 깔끔하고 색다른 일본 두부 탐방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식사는 그냥 간단하게 달맞이 우동으로 때웠습니다.

일본에서는 국물 요리 중앙에 날계란을 떨어트려서 살짝 익히는 녀석을 달맞이(月見)라고 부르죠.

 

우동은 그냥 매우매우 흔한 일반적인 수준이었는데, 계란은 꽤나 깔끔한 맛이 괜찮았습니다.

달맞이 우동은 먹는 방법이 사람에 따라 달라서, 확 풀어헤쳐 고소한 국물을 즐길 수도 있고

저처럼 면발 다 먹고 국물 조금 남긴 상태에서 풀지않은 반숙 계란을 후르륵 한꺼번에 삼킬 수도 있습니다.

 

두부는 반찬이고 우동이 정식이었지만, 느낌상으로는 두부에 더 집중하고 우동은 그냥 배 채우기 위해 먹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네요.

 

날씨가 추워서 체력소모도 심하니 조금 더 쉬고 싶기도 했지만

엄니는 열심히 구경하고 저녁에 일찍 돌아가 푹 쉬는게 좋겠다고 하셔서 금방 일어나 밖으로 나갑니다.

 

작년 여름에 코야산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많이 받아 겨울의 코야산은 어떤가 엄니와 함께 가 보기로 했습니다.

왕복 3시간 반을 넘어가는 장거리 이동입니다만, 어제 코베와는 달리 전철과 버스에 앉아갈 수 있어서 체력적인 부담은 덜 하죠.

 

엄니는 여행 좋아한다고 하셔도 역시 연세도 있고, 여행사 패키지에 익숙하셔서 그런지 좀 피곤해 하셔서

오늘은 코야산만 살짝 둘러보고 저녁 늦기전에 돌아와 쉬기로 했습니다.

 

겨울 코야산이 그런 건지, 그냥 시즌이 아닌건지 모르겠지만 전철 안에 저하고 엄니하고 옆에서 조는 사람 세 명밖에 없습니다.

엄니께서는 이쯤 되니 코야산이란 데 오늘 문 닫는거 아니냐고 걱정까지 하십니다.

저도 이렇게 한산할줄은 정말 몰랐는데, 다행히도 환승역인 하시모토(橋本)역에서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많이 서 있더군요.

 

 

 

극락다리라는 이름의 역을 통과하자 눈이 바람에 휘날리는게, 개인적으로는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저야 여름의 코야산을 다녀왔으니 눈이 내린 코야산의 모습 역시 크게 기대되지만

엄니는 그러지 않아도 피곤해 하시는데 눈까지 내리고 쌀쌀하면 몸에 부담이 되실 것 같아서 말이죠.

 

오랜만에 보는 코야산 행 케이블 전철의 모습입니다.

눈이 많이 오진 않지만 이미 군데군데 쌓여있는걸 보니 이전에도 내렸던 것 같더군요.

 

 

 

눈이 오던말던 이 열차는 강력한 케이블로 끌어당기듯 올라가는 방식이라 별 문제 없을 듯.

굉장한 경사의 오르막을 천천히 오릅니다. 지난번 여름과 달라진 점 한가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해발 600m 즈음에 '여기가 도쿄 스카이 트리와 같은 높이'라는 팻말이 새로 생겼습니다.

코야산은 해발 1000m 에 가까운 곳이니, 스카이 트리보다 높은 곳을 이렇게 전철로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저 앞에 도넛 모양의 교차로가 보입니다. 저 곳이 상행 열차와 하행 열차가 마주치는 곳이죠.

자연 보호를 위해 선로를 두 개 만들지 않고 저런 교차로만 만들어서 선로의 부피를 줄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던 적던 이 열차는 반드시 두 대만이 동시에 운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2015년 4월은 코야산 개창 120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시기라서, 그 때는 이 열차도 타기가 무서울 정도로 빡빡해 지겠죠.

 

 

 

사람이 많던 적던 정해진 시간에 항상 운행하는 두 대의 열차가 이곳에서 교차합니다.

경사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조그만 사고라도 굉장히 위험할 수 있어

두 번째 탑승임에도 꽤나 조마조마했지만, 코야산은 일본에서도 관리 철저하기로 유명한 곳이니 괜찮겠죠.

 

 

 

오사카는 대구보다 더 따뜻한 날씨라서 입고 온 옷이 더울 정도였는데

코야산은 역시 산 속이라 그런지 도착하자마자 추위가 온 몸으로 느껴집니다.

내린다기보다는 옆으로 흩날리는 눈발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여름의 코야산과 전혀 다른 광경을 선사해 주더군요.

 

여름의 코야산 포스팅도 이 블로그에 남아있으니 비교해 가며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오사카에서 이곳까지는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강행군입니다만

외국인을 위한 아이템인 칸사이 스루 패스 덕분에 오늘은 아무리 버스와 전철을 많이 타도 추가 요금이 없습니다.

 

 

 

이 곳은 제가 받았던 감동에 비하면 여름이나 겨울이나 사람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더군요.

보고 즐길거리가 많다기 보다는, 이런 곳에서 차분히 경치를 감상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곳이니까 말이죠.

 

엄니는 일단 쭉쭉 뻗은 삼나무들의 모습에 흥미를 보이셨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여름때 혼자 온 것처럼 천천히 느긋하게 둘러볼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눈은 때때로 흩뿌리는 정도라 우산은 필요없었습니다만

이전에도 몇 번 내린 듯 하고, 이 곳의 기온 탓에 거의 녹지 않고 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삼나무를 비롯해 이곳 오쿠노인의 많은 나무들이 침엽수라서 녹색을 간진하고 있었는데

녹색 이끼 사이로 다소곳히 쌓인 눈이 여름과 너무나 다른 이미지를 풍겨서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여름에 다녀왔으니 비교하는 재미가 있어서 신났지만 엄니께서는 추운데 걸어다니시느라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좀 뜨끔하더군요.

 

 

 

코야산 오쿠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 여행 포스팅에서 나름 상세하게 적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포스팅에서는 생략합니다. 좀 더 느긋한 여행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실제로 이번 여행에서는 엄니와 리듬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제 마음도 별로 느긋하지는 않았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더욱 적막해 진 오쿠노인의 진중한 매력도 차분하게 느끼며 즐기기는 힘들더군요.

 

 

 

엄니도 입구에 안치된 기기묘묘한 묘석들을 보고 굉장히 신기해 하시더군요.

한국의 묘와는 달라서 처음엔 여기 서 있는 것들이 뭔가 하셨는데 자세히 보니 전부 묘석입니다.

 

이곳에 20만개가 넘는 비석이 500여년 전부 들어서 있었다고 설명해 드리니

놀라시는게 아니라 오히려 얼굴을 잔뜩 찡그리시더군요. 무덤 보면 무섭다고.

 

 

 

일본 흰개미 구제협회에서 세운 흰개미 추모비도 여전합니다.

엄니는 한자로 적힌 묘비는 곧잘 읽으시지만 이 녀석은 무슨 뜻인지 모르셔서 제가 해석해 드렸죠.

엄니의 반응 역시 별 걸 다 세우는구나 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모습을 보고 윤회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의 원념이 자연의 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라는 사실에 꽤나 놀랐습니다만

엄니는 그냥 이렇게 묘비가 우르르 몰려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무섭고 쓸쓸하고 그렇다고 하시는군요.

역시 살아오시면서 죽음을 많이 겪었고, 본인도 퇴직 후 남은 삶에 대한 걱정이 더해가고 있는 시기라

그렇게 생각하실 줄 알았으면 굳이 제 욕심으로 코야산에 오지 않았어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와 버린 이상 구경이라도 재밌게 하고 가시면 좋을텐데, 저도 마음이 무거워지더군요.

 

 

 

 

그래도 일본어보다 한자가 많이 적혀있는 곳이라 엄니가 중간중간 걸어가며 한자를 읽어보십니다.

특정 기업체에서 새운 묘석은 대강 어떤 곳에서 세운 것인지 이해하실 수 있어서 흥미를 가지시는 듯.

 

일본도 불교를 믿냐고 물어보시길래, 믿긴 하는데 여기서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한다고 대답하니

그럼 종교인으로서는 별로라고 하시네요. 종교에 개인적 욕심이 묻어날 여지가 남아있을 때 펼쳐지는 지옥도는 한국에서 곧잘 볼 수 있으니 말이죠.

 

 

 

흰개미 묘비와 함께 꼭 눈길을 빼앗기게 되는 강아지 묘석입니다.

엄니 역시 피식 웃으시더군요. 그래도 이 강아지 가족들은 얼마나 이 녀석들을 사랑했으면 비석까지 만들겠냐고 이해를 해 봅니다.

 

 

 

불상들의 머리와 어깨를 따뜻하게 해 주는 모습을 굉장히 신기해 하셨습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돌맹이에게 연민을 느끼는 하등 쓸데없는 행위이겠습니다만

역시 자신과 닮은 조각상에 마음을 열어주는 이런 행동이야말로 인간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오쿠노인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기도 하고

따뜻한 봄남이었다면, 오디오 가이드 하나 대여해서 하나하나 들어가며 이곳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엄니는 추워서 그런지 묘석이 너무 많아 그런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후다닥 걸어가십니다.

 

전 구경은 커녕 사진 한 장 찍을 여유도 없이 따라가느라 바빴죠.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잘 생각해보니 이 상황도 꽤나 유쾌하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1년 반 전 여름의 코야산 여행은, 기구하게도 불의의 염좌에 의한 급성 통풍 증세 탓에

이 넓은 코야산을 바늘로 찔리는 듯한 격통에 시달리며 절뚝절뚝 간신히 돌아본 매우 특이한 체험이었습니다.

이동 자체를 빨리 할 수 없으니 역으로 풍경과 사진을 담는 시간을 좀 더 차분히 가질 수 있었죠.

 

지금은 몸이 멀쩡한데도 불구하고 그 때보다 더 여유없이 엄니 뒤만 따라가고 있으니

이것 또한 같은 장소를 다른 상황에서 여행할 때 생기는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나오더군요.

 

 

 

참 다양한 묘석들이 많습니다. 이 녀석은 동물들이 혼을 달래는 묘석이라 부처님 주위에 동물들의 석상이 둘러서 있네요.

 

 

 

물론 침엽수라 하더라도 여름과 겨울의 색은 너무나도 달라서 같은 사진이 나올 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엔 절대로 볼 수 없는 눈이 곳곳에 쌓여있었던 탓에

지난 번에 와 봤다는 생각보다, 마치 처음 찾는 듯한 신선함을 여전히 느낄 수 있어서 이득 본 느낌입니다.

 

 

 

UCC 커피 맛있습니다.

 

 

 

이곳 역시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이 가끔 보입니다만

총 관광객 수가 워낙 적고, 사람의 발소리를 제외하면 참으로 적막한 겨울 풍경이라서 그런지

아무리 중국인 관광객이라도 다른 곳 처럼 왁자지껄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여름보다 더욱 고요해 진 오쿠노인의 분위기에 매우 흡족했습니다만, 엄니는 가끔 서서 한자를 읽는 걸 빼고는 그냥 슥슥 전진만 하실 뿐.

 

 

역시 제가 아직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죽음이 자신의 것이라는 자각이 부족한 탓이라 그런 것일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같은 나이대 사람들에 비하면 죽음에 대해 좀 더 자주 생각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단순히 젊어서 엄니처럼 이런 곳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엄니와는 조금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쪽이라고 한다면 저는 이 비석 세운 사람 쪽으로 아주 약간 기울어 있다고 할까요.

자기 무덤의 비석 앞에 마음껏 낙서를 하라는 낙천가의 묘비입니다.

 

엄니는 이곳을 돌아보면서 '묘가 이렇게 많으니 여기 귀신들은 지루하진 않겠다' 라고 하시던데

이 낙서총의 주인은 그 중에서도 꽤나 인기인으로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묘비 안에 증명사진이 주르륵 늘어서 있길래 뭔가 싶었는데

읽어보니 일본 사진협회 회원들의 공동 묘석인 듯 합니다.

아마도 근대화 이후 카메라맨 1세대들 부터 이 곳에 등록되어 있을 듯.

 

 

 

오쿠노인은 진언종의 창시자인 홍법 대사의 사당 쪽으로 들어갈수록 더더욱 문화재급의 예전 묘석들이 줄지더 나타나기 때문에

이제부터 진짜 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엄니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만 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곳과는 상성이 맞지 않은 것 같네요.

 

 

 

전 아픈 다리를 질질 끌던 여름과 달리 잘 움직이는 몸과 머리를 최대한 이용해서

엄니를 따라가면서도 후다닥 고개를 돌려 사진으로 담을 만한 것이 있으면

촛점이 맞았는지도 보지 않고 셔터만 눌러재낀 후 남은 건 한국에 돌아가서 손 좀 봐야겠다는 생각만 합니다.

 

코야산은 원래 이렇게 둘러보는 게 아니긴 합니다만, 이번 여행은 엄니에게 맞춰드려야 하는 것이니 별로 불만은 없었습니다.

 

 

 

이런 불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시길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위한 석상이라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역시 동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지, 다른 불상에 비해 이런 옷가지가 걸려 있는 비율이 훨씬 높더군요.

 

 

코야산에 이러한 사찰과 묘터가 만들어졌던 500여년 전의 일본이라는 나라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사람의 목숨이 파리만도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자연 재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영주들의 땅따먹기로 인해 자기가 무엇을 위해 죽창을 드는지도 모르는 농민들은

그냥 하루하루가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죠.

 

그런 덧없는 현세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내세에 찾아올 평온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기였습니다.

이곳 오쿠노인은 그 바램이 물질화 되어 이루어진 유적과 같은 곳이죠.

 

 

 

여기서도 빈부의 차는 드러난다는 게 참 쓴웃음 나오게 합니다만.

그냥 산 사람이 들어가 살아도 될 만큼 담까지 둘러가며 지은 묘석은

신기함을 넘어서 괴이하기까지 합니다. 내세를 원한다면 이 곳의 화려한 돌덩이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지.

 

 

 

묘석의 행렬에 눈이 지치면 고개를 조금 들어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더군요.

엄니께서도 묘석은 둘째치고 코야산의 맑은 공기와 삼나무 숲은 마음에 들어 하시는 눈치입니다.

 

날씨가 예상보다 추워서 그걸 즐길 만한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지만 말이죠.

 

 

 

여름에 벗겨주고 겨울에 씌워주는 것은 아니라서 사시사철 같은 복장을 하고 있지만

역시 원래는 추운 겨울에 서 있는 모습이 안스러워 입혀준 것이라는 예상을 해 봅니다.

눈 덮힌 모습이 아무래도 가장 어울리니 말이죠.

 

 

 

휴게소가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만, 엄니는 화장실만 한번 가시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시네요.

이곳에서 휴식하는 것 보다는 빨리 구경을 마치고 도로쪽으로 돌아가는 게 덜 피곤하리라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저는 추위를 별로 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후드나 목도리 등이 없었기 때문에

코야산의 추위는 제 예상보다도 훨씬 매섭게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엄니가 서두르시는 것도 이해가 되더군요.

 

 

 

그래도 계속 뒷모습만 찍을 순 없으니 거대한 삼나무 앞에서 한 장 찍어드리겠다고 합니다.

찍는 건 좋은데, 역시 삼나무의 덩치를 담아내려니 사람이 주역인지 나무가 주역인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이렇게 담은 건 엄니의 목도리가 이곳과 워낙에 강렬하게 대조되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 두죠.

 

 

 

다른 불상과는 달리 칠복신의 모습을 한 불상이 서 있습니다.

한국의 금복주 마스코트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묘석 앞에는 따지도 않은 술병이 꽤나 많이 놓여있네요.

 

귤도 아직 생생한 것으로 봐서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인 듯 합니다.

술 좋아한다면 하나 따 마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 역시 신성한 곳이니 공양물을 훔쳐가는 건 안좋은 일이겠죠.

 

 

 

확실히 춥긴 추운가 봅니다.

 

한낮온도가 10도를 상회하는 오사카와는 달리 이곳은 가장 따뜻한 시기에도 2~3도에 그치는 듯.

그래도 관리하는 분들이 힘을 써서 그런지 순례길 자체는 얼음도 눈도 거의 없이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눈이 딱 요렇게 쌓였을 때가 왠지 포근해 보이더군요.

아마 여름이라면 이런 묘석은 동글동글하지만 별 감흥을 받지 못하고 지나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람은 별로 불지 않았던지, 왠지 저 위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자연의 섭리를 망가트리는 듯한 흉폭함이 표출될 것 같네요.

 

확연히 시선을 잡아끄는 몇몇 묘석들을 제외하면 확실히 여름과 겨울의 사진 결과물이 꽤나 다르게 분포하고 있는 듯 합니다.

눈발 때문에 살짝 흐린 하늘이 오히려 여름과의 대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듯 해서, 타이밍은 잘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 앞에 홍법 대사의 사당이 있습니다만 엄니는 이만큼 봤으면 됐으니 돌아가자고 하십니다.

아쉬워도 억지로 보여드릴 필요는 없으니 발걸음을 돌립니다. 단지 왔던 길이 아니고 다른 한 쪽 길로 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구경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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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기나 통증이 이기나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악을 쓰며 걷고 있는데

굉장히 아기자기한 모습의 미니 사당이 보수공사터 주변에서 눈에 들어온다.

이끼로 지붕을 만든 듯한 고픙있는 모습이 멋지구나 싶었지만

만든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 않은 듯 함에도, 부식 상태를 보니 역시 목조 사당은 이곳에서 버티기 힘든 듯 하다.

 

얼핏 보면 비슷비슷한 한국과 일본의 자연 환경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점이 보이는데

일본은 기본적으로 여름에 훨씬 고온 다습한 곳이고, 그 때문에 산발성 호우가 자주 내리며

특히 계곡이나 산에서는 그 탓에 안개가 끼는 곳이 많다 보니

이렇게 산이나 계곡 전체가 이끼로 뒤덮힌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목조 건축은 순식간에 이끼로 뒤덮혀 부식되어 버리곤 한다.

 

코야산 정도라면 아마 이 목조 사당은 길어봐야 20년을 버티기 힘들 듯.

다음에 찾아갈 때 까지 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 줬으면 한다.

 

 

 

한국에서는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길고 흐물흐물한 치마를 입은 관광객이 눈길을 끈다.

깍지 끼고 걸어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구만. 사실 이 사진을 도촬할 당시엔 그것보다는

내 다리가 저 정도만 건강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더 절실하긴 했다.

 

걸어가는 도중, 아까 고뵤 앞에서 봤던 단체 관광객들이 혹여 내 발걸음을 따라잡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아마도 나와는 반대 루트로 이동한 듯. 그 사람들을 만날 일은 없었다.

 

내가 들어온 입구 쪽에 대형차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마 출구를 그쪽으로 잡았을지도.

 

 

 

이렇게 가문 대대로 이곳에 묘석을 세우는 사람도 있는 듯 한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 이 정도 규모의 묘터를 마련했다는 건 상당한 재력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불교의 중심지인 코야산이지만 이곳에도 토리이(鳥居)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의 종류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하다.

대문 역할을 하는 토리이 뒷면에 불교를 상징하는 오륜탑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도 나름 퓨전적이다.

 

 

 

언덕 위쪽에 묘하게 한국식 느낌이 나는 건물이 보여서 조금 망설이다가 다가가 보기로 결정.

언덕으로 향하는 길은 아무런 정비도 되지 않은 흙길에다가, 흐르는 물 때문에 진흙으로 된 부분도 있어서

그 때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이제껏 봐온 건물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멀리서 볼 때는 색상 탓인지 조선 건축물인가 싶었는데 조금 다가가고 보니 그건 아닌듯 하다.

지붕이나 처마의 형태는 전혀 다른데, 색상이 왠지 조선시대 건축물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혹시 그 당시 유명한 조선시대 인물의 사당인가 싶었는데, 다가가서 보니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의 사당이라서 약간 맥이 빠졌다.

 

사실 맥이 빠질일도 없는게, 착각은 했지만 이 우에스기 켄신이란 인물은 일본 전국시대 최고의 영웅호걸로 유명한 인물이니

우연이 겹쳐졌다고는 해도 한번 구경할 수 있었다는 건 큰 수확이라고 생각.

 

전란의 시기였던 1500년대, 전국시대라고 불리는 당시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등의 무장들이 전국 통일을 목표로 전쟁을 벌이던 시기.

결국 일본을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도 두려워했던 호걸 중의 호걸이 이 우에스기 켄신이라는 무장이다.

당시 최고의 무공과 뛰어난 용병술을 자랑하는 무장이라고 하면

누구나 우에스기 켄신과 그의 라이벌이었던 타게다 신겐(武田信玄) 두 명을 꼽을 정도로 뛰어난 무장.

평지에서 그의 군대와 부닥치면 전투도 하기 전에 후퇴하는 장수들이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런 인물임에도 불교에 심취해서 사생활이 깨끗하기로 유명했으며, 당시 불교의 뜻에 따라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고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인의와 예의를 지키는 무장으로 이름나, 적이었던 수많은 장수들의 문헌에도 켄신의 덕을 칭송하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그 검소함의 함정이랄까, 대주가였던 그가 고기는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술안주로 짜고 신맛의 매실절임(梅干)을 즐겨 먹었던 탓에

49세때 뇌일혈로 사망하고 만 사실은 아이러니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전통 시 와카(和歌)의 대가이기도 한 것을 보면,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틀린것도 아닌 듯. 비유가 좀 이상한듯 하다만.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목조건축물임에도 보존 상태는 꽤나 양호하다.

1700년대 건축물로 추청되는 이 사당은, 1960년대 대대적인 보수를 거치기 전에는 상부 지붕도 거의 날아간 상태였지만,

현재는 원래의 모습을 복원, 오쿠노인의 묘지 중에서도 꽤나 눈에 띄는 모습을 하고 있다.

 

 

 

조심조심 언덕을 내려와서 걸어가는 도중, 위에서 언급한 또 한명의 무장 타게다 신겐의 묘석이 눈에 들어온다.

묘석보다는 이 묘비가 훨씬 대단해 보인다.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서 있었는지, 외모에서 역사가 느껴질 정도.

사실 지금껏 걸어오면서 이 외에도 유명한 인물들의 묘를 많이 지나쳤음에 틀림없지만

이 정도로 눈길을 끄는 녀석이 아니면 하나하나 살펴볼 여력이 없을 때라서.

 

유명하다고 해도 일본인한테나 그런 것이고, 그것보다는 오쿠노인 참배길 전체가 갖고있는 풍경을 즐기는게 훨씬 낫긴 하다.

 

 

 

이런 건 이끼라고 부르기는 좀 이상한데, 수백 년이 지나면 이 녀석도 어엿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는 것일까.

 

이제까지의 사진에 나온 거대 삼나무들은 보통 수명이 500년쯤 된 녀석들인데

야쿠시마에 있는 5천년 된 삼나무도 시작은 이런 조그마한 녀석이었다고 생각하면

자연이 만들어내는 매력이란 사람의 인지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듯 하다.

 

 

 

단체 석불상도 나름 신기한 모습.

거대한 삼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석불 앞에는 이끼와 새싹들이 돋아나 있는 풍경이 훌륭하다.

석불이라는 것도 동일한 모습이 없이 각자 개성이 있으니, 허투로 볼 곳이 거의 없다는 것도 이곳의 장점.

 

 

 

묘석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듯 피어있는 이 꽃은,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꽤나 묘하게 생긴 모습이다.

중앙의 노란색 반점 위엔 수술로 보이는 미세한 돌기가 나 있는데 잎사귀의 모양이 비대칭인 것이 신기할세.

구글 같은 데서, 그림만으로 꽃 이름을 찾아주는 서비스 같은 건 없는지 모르겠다.

 

음악같은건 마이크에 대고 재생하면 곡명을 알려주는 스마트한 서비스도 있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컷 하나만으로 무슨 동영상인지도 알려주는 서비스까지 개발중이고. 이 녀석은 의도가 심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내가 못 찾고 있는건지 한번 알아봐야겠다.

 

 

 

원래는 무엇에 쓰이던 녀석일까.

살짝 옆으로 기울어진 모습이 오히려 주변 모습과 어울린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꽃들도 저 녀석 따라서 살짝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지 않나?

딱딱한 사각형 모양의 조각도 이러고 있으니 왠지 푸근한 인상을 준다.

 

 

 

이제 길다면 길었던 오쿠노인 참배길의 끝이 보인다.

3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볍게 산책할 만한 코스인데도

나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 끝낸 것 같은 성취감과 비장함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릴듯한 느낌.

 

사실 오사카에서 출발해서 하루 코스로 돌아본다면 아무리 뼈빠지게 돌아봐도 코야산의 전부를 감상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왕복 4시간이나 걸리고, 코야산 내부 숙박시설은 상당히 비싼 편이라서, 와카야마시에서 출발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새벽 6시쯤 출발하려 한 오늘 일정은 뜻하지 않은 염좌때문에 8시에나 출발하게 되었으니, 애시당초 포기하긴 했지만.

 

그래서 처음부터 볼거리는 한정된 몇몇 부분으로 계획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쿠노인을 완주(?)했다는 점에서

나름 고생해서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 물론 아쉬운 점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오쿠노인을 빠져나가기 전 늠름하게 홀로 서 있는 오륜탑 한장 남긴다.

 

 

 

다행히도 출구 바로 앞에 벤치가 있어서 주저앉았는데

그동안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발목이, 모 막장 방송국처럼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광을 시작한다.

꽉꽉 눌려있던 통증 인자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오는 느낌이랄까. 자신의 심장 고동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 만큼

두근 두근하는 신호에 맞춰 발목이 욱신거리는 것이, 아 이것이 인체의 신비로구나 하는 생각이 패닉 상태의 뇌속을 스친다.

 

오쿠노인에서 길가로 빠져나오자, 조금 전까지 시야를 가득 채우던 삼나무 숲과 몽환적인 묘석들이 일순에 사라지고

잘 정돈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스팔트 도로와 전기 가로등이 줄을 잇는 현대적인 거리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내가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있었는지조차 혼란스러워지는 순간.

 

며칠동안 용궁에서 놀다가 육지로 돌아오니 이미 300년이 지나있었다는 우라시마 타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

 

앉아 있어도 별로 편해지지 않는 느낌이라서 한숨 한번 내쉬고 길 건너의 관광안내소로 향한다.

다이몬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와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서.

 

코야산은 내부 순환 버스도 한 시간에 두대 정도밖에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기도 한다.

물론 일반인이라면, 오늘 하루 7~8km 쯤 걷는다고 생각하면 버스없이도 거의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는데

지금의 나로서는 다이몬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하더라도 그 후의 구경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상태가 안좋다.

 

약 20분 후에 저기 언덕 위의 정류장에 버스가 한대 온다고 하니 다시 절룩거리며 이동을 시작한다.

 

 

 

정류장엔 다행히도 벤치가 있어서 그곳에 장비를 내려놓고 앉아서 최대한 체력을 회복한다.

어젯밤에 구입해 놓은 이온음료를 조금씩 마시면서, 비록 움직이진 못하지만 코야산의 일상적인 모습을 좀 담아보려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뛰어들기 주의라고 적힌 표지판. 세계 어느 곳이나 애들이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건 무서운 일이니까.

 

아이들이 직접 그린 듯한 마스코트가 그려진 표지판은 나름 인상적인데, 문제는 흰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는 시안성이 좋지 않다는 점.

카메라로 찍고도 한참 확인한 후에야 무슨 글씨가 쓰여져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

 

훌륭한 시안성의 표본이 바로 위에 설치되어 있으니 아이들은 저걸 보고 배울 수 있으려나.

 

 

 

맞은편의 버스정류장에는 벤치를 설치할 만한 공간이 없다.

만약 저곳에서 기다려야 했다면 20분동안 고생 꽤나 했을 듯.

2차선 도로이긴 하지만, 양쪽에서 버스 정도의 덩치가 달려온다면 한 쪽이 정차를 해야 지나갈 수 있을만큼 좁은 길이어서

인도 역시 이쪽에서 이어지다가 갑자기 끊어지고 반대편에 나타나는 등, 거의 한쪽으로만 만들어져 있다.

 

문화재로 뒤덮히다시피 한 코야산도 사실 일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어엿한 마을로

일단 중학교까지 교육시설도 갖춰져 있긴 한데, 아이들이 즐길만한 패스트푸드, 게임센터 등은 아예 없으니

번화가로 놀러가려면 버스와 전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최소 1시간은 가야 하는걸 생각하면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예전처럼 산골에서 친구들끼리 노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거나

놀고싶은건 많은데 놀게 없어서 불만이 쌓이는 시골 아이들이거나

어려서부터 불법에 눈을 떠서 가부좌로 수행하는 아이들이거나 할 듯. 마지막 경우는 아닐거라고 보지만.

 

 

 

근대적인 모습이라고는 자동차밖에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이곳 마을은

관광객들이 번성하는 기간이 아닌 이상 인기척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한적하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한 번도 본적이 없으니.

 

도시에서는 집이 나이를 먹으면 가끔씩 탈피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확 신축되어버리기도 하는데

이런 곳의 주택은 사람과 함께 느긋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옛날 주택은 물빠짐도 좋지 않고 여러가지로 생활에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런 단점들은 전부 커버하고도 남는, 더 이상 신선할 수 없는 산내음과 맑은 물에 한없이 둘러쌓여 있으니까.

 

아이들에겐 좀 단조로울수도 있지만, 휴일에 드라이브겸 도심지로 데려가서 놀게 할수만 있다면

이 곳에서 애들 교육시키는것도 멋질거라는 생각이 든다.

널려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재를 일상적으로 보고 느끼는 유아기를 보내는 아이들의 감성은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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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왔던 쪽보다 좁고 오래된 길이라서 운치는 느껴지는데, 그만큼 길이 험하다는 뜻도 되니

어느 정도 걸어야 끝이 보일런지 걱정부터 앞선다. 누가 보면 여기가 험한 산골짜기인줄 알겠군.

다행히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통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니, 무리하지말고 천천히 한걸음씩 걸어가면

어쨌든 출구에 도착은 할 테니까 거기서 좀 쉬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을 일이 없어, 아픈건 둘째치고 연신 셔터를 누르게 되는 건 행복하다.

아마 제정신이었다면 좀 더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인상에 남는 걸 더 담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자전거 여행동안 가장 아쉬웠던 점이라면, 기대했던 히메지(姫路)성이 보수공사를 들어가서 볼 수 없었던 것과

모노노케 히메로 유명한 야쿠시마(屋久島)에 가지 못했다는 것 정도를 들 수 있는데

야쿠시마와는 생태 습성이 전혀 다른 곳이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모노노케 히메의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곳들이 눈에 들어온다.

 

참배객의 인파에 떠밀려서 움직이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던 점이 플러스 효과를 가져오는 것 같기도 하고.

드문드문 새소리 정도밖에 들리지 않는 외딴 길을 거의 혼자서 걸어가며 이런 모습을 감상하는 것은 행운이랄 수 있다.

 

 

 

이쪽 길은 좀 더 산속 깊은 곳이라서 조금 전의 빡빡하고 정갈한 묘석들의 모습보다는

불규칙적이고 산만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당연히 이쪽 길이 더 마음에 든다.

 

세월의 흔적 때문인지 곳곳에 보수공사 표지판이 놓여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런 모습이 과연 어디까지 유지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공식적으로는 약 천년간, 실제로는 수백년 정도의 나이를 먹은 곳임에도 이 정도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내가 죽고 몇백년 더 지나면 또 어떻게 변해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

 

 

 

입혀놓은 옷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본래는 새빨간 색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알 방법은 없다.

저 석불의 나이가 대강 백살 쯤 된다면, 내가 이 석불과 인연을 맺은 시간은 고작해야 수 초밖에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었을지.

 

그런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문화유산이 가진 가치가 아닐까 싶다.

 

 

 

모종의 사고로 잘린 건지, 참배길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잘린건지 알 수 없는 삼나무 옆에

일본에서 역사가 긴 회사인 쿠보다사의 묘석이 보인다.

이제까지 봐 왔던 삐까번쩍한 기업들, 산요, 닛산, 토요타, 샤프, 파나소닉 등의 묘석에 비해 꽤나 오래전에 만들어진 묘석인 듯 하다.

 

원래 농기계, 엔진 중장비 등을 제작하는 회사로 유명한데, 요즘엔 친환경 발전, 리사이클 제품, 수자원 건설 등에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아마 중장비나 농기계 만져 보신 분들은 쿠보타라는 이름이 그리 어색하진 않을 듯.

연륜이 있는 회사라서 좀 딱딱한 경향이 없지는 않지만, 일본 국내에서도 사원 복지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저 멀리서 아주머니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걸 보고 뭘까 싶어 슬금슬금 다가가 봤는데

내 몸굵기의 네 배는 되어보이는 거목 밑의 풍경이 묘한 형태로 되어 있어서, 나도 카메라를 손에 잡았다.

 

이런 모습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잠깐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참배길에 워낙 가까이 있는데다, 길을 만드느라 깎아낸 산 때문에 점점 앞으로 구부러 지는걸 방지하기 위해

밑에 돌맹이를 고아놓은 것이 원인이 되어 이런 모습의 둥치가 만들어진게 아닌가 한다.

 

자전거 여행때도 비슷한 것을 본 기억이 몇번 있는데, 나무라는건 올려다 볼때 만큼이나 둥치 부분도 신기한 볼거리가 많더군.

 

 

 

둥치가 조금은 불안정한 모습의 삼나무지만, 다른 것들 못지않게 훌륭하게 자라나 있다.

원래 이런건지 모르겠지만 스크류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성장한 모습이 보인다.

나무가 워낙 굵은 탓에 되려 윗부분의 줄기가 가늘어 보이는 착시현상이 나타날 정도.

 

조금 과장하면 살짝 바오밥나무 같은 모습이랄까.

 

 

 

아주머니들이 찍은 모습은 이것이었을까.

반대편으로 가 보니 저런 공간 사이에도 석불이 단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돌 위에 놓여진 동전들을 보니 역시 인기가 꽤나 많은 듯 하다.

 

수십억을 들여서 호화스럽게 세운 거대한 묘석보다

이렇게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 자리잡은 석불 쪽에 동전이 훨씬 많이 놓여있는 모습을 보니

다들 생각하는건 비슷한 건지.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자꾸 야쿠시마와 비교를 해서 왠지 미안한 느낌이 들지만

조금이나마 사진에서 본 야쿠시마와 닮았다는 느낌이 드는 이런 모습들이 워낙 반가워서라고 이해해 주길.

 

사실 일본에서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 야쿠시마였는데

지난 자전거 여행 당시 야쿠시마 근처에 도달했을 때는 한겨울이었고

자전거째로 배를 타고 가기에는 교통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포기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좋게 생각하면, 야쿠시마는 자전거 여행 도중이 아니라도 제대로 날 잡고 본격적으로 돌아보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훗날 더욱 완벽하게 즐기기 위한 일시적인 유보라고 해도 되긴 된다.

야쿠시마에서 추정 연령 5천년의 죠몬 스기라는 삼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왕복 약 15시간 가까운 산행을 해야 하는데

그곳만큼은 혼자가 아니라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일부러 속을 파낸 것이 아니라면, 정말 절묘한 장소에 놓여있는 석불이다.

제대로 된 묘석이 아닌, 이렇게 군데군데 놓여져 있는 석불 중에서는 가장 명당이라는 느낌.

그래서 그런지 뭔가 놓여있는 것도 많다. 제대로 모습을 갖춘 세전함까지.

 

마치 서민 흉내를 내면서 영업하는 강남의 포장마차 같은 느낌이랄까?

 

 

 

좁은 산길을 빠져나오자 점점 길이 넓어지고 깔끔하게 정비된 것이

조금씩 출구가 가까워져 가는 느낌이다.

 

좀 전에 나무 둥치에서 사진 찍던 아주머니들이 멀리 사진에 보인다.

망원으로 당겨 찍은 녀석이라서 사실 훨씬 멀리 있지만, 지금 걸음걸이로는 저분들 속도가 훨씬 빠르다.

땀을 주륵주륵 흘리면서 찢어지는 발목의 통증을 참고 걸어가고 있지만

왠지 조금 더 가면 끝이라는 생각에 배가 부르게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참배길은 인생 처음 경험하는 것이니, 아픈 몸이 원망스럽지만 그렇다고 감상을 소홀히 한 건 아니니 뭐.

 

 

 

여기서 본 석불 중 가장 단순하고 특징적인 녀석.

이쯤되면 정말로 죽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건지 의심이 갈 정도다.

 

혹시 인류가 멸망한 후 수천 수만년이 지나고 나서 다른 생명체가 이곳을 찾았을 때

조잡한 상태로 봐서 '이 녀석들이 이곳에서 제일 오래전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고 착각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너무 앞서나간 걱정인가?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묘석과, 분명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묘석이 혼재해 있는 모습을 보니

이곳의 묘터 지정은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그냥 낡거나 부서졌다고 그걸 치워버리고 새 묘석을 세우진 않을텐데.

 

가족들의 성묘는 좀 전에 봤던 입구쪽에서만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 근처에도 조금 젊어보이는 어머니와 딸이 간략한 음식을 들고 묘석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살아서 이어져 가는 문화 유산이라는 점도 이 곳의 장점이라고 생각.

이미 수백년전 현실과의 맥이 끊겨버려서, 지금은 단지 관광객의 볼거리로만 여겨지는 문화재가 수없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걸어가면서 눈에 들어온 오륜탑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어 보이는 녀석.

안개낀 날이나, 저녁무렵에 이런 산길을 걷고 있으면 지금과는 달리 꽤나 음산한 기분이 들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문화재라고 해도 공동묘지는 공동묘지라서, 이곳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꽤나 있다고 들었으니.

 

 

 

현실세계와는 정반대로, 이곳에서는 묘석과 삼나무보다 이런 꽃을 보기가 더 힘들다.

꽃 이름은 모르지만 잎사귀가 밑으로 늘어진 모습이 독특하다. 저런 모습이 꽃을 더욱 부각시키는 듯 하다.

 

이 정도 깊숙한 산골이라면 야생동물에 대한 경고문 같은거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아직까지는 이 곳에 와서 그런 표지판을 본 적도 없고, 개나 고양이는 물론 어떤 숲짐승도 본 적이 없다.

너무 오랫동안 참배객이 이어지다보니 이 곳은 사람들의 영역이라는 것을 인식한 것일까.

 

코야산 주변은 여전히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이 대부분이고, 일본의 산은 한국과는 달리

등산에 적합한 지형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발길도 굉장히 드물어서

아마도 굳이 이곳까지 오지 않아도 야생동물은 얼마든지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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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휴게소가 있는 곳까지는 도착. 화장실 한번 들어가고 나서 주위를 슬쩍 감상한다.

휴게소라는게 필요없어 보이는 길이의 참배길이지만, 나이 많이 든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까 있으면 좋을 듯.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 볼 수 없는 사찰이, 옆의 나무와 참 단아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카메라에 담아 본다.

 

 

 

사계절 내내 단풍나무인 듯 하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일까. 주위 풍경과 굉장히 대비되는 모습이 멋지긴 하다.

 

아무튼 주변 풍경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곳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곳이라서

떨어지는 사진 실력을 갖고 있어도 그럭저럭 찍으면 꽤나 보기좋게 나오는 듯.

지역이 지역이라 그런지 확실히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평일 낮에 여기 찾을 수 있는 젊은이란 나같은 관광객밖에 없긴 하겠지.

 

 

 

휴게소가 이렇게 멋들어지니, 이곳 오쿠노인 참배길은 어색함 없이, 어디 하나 조화롭지 않은 구석이 없다.

2015년이 고야산 개창(開創) 1200년이 되는 해라서, 그해 5월달은 아마도 상상할 수 없는 참배객과 관광객이 몰려들 것 같다.

 

1년간 일본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홋카이도의 시레토코(知床), 오카야마의 쿠라시키(倉敷) 였는데,

이곳 오쿠노인도 그 중에 당당히 들어갈 정도로 굉장히 마음에 든다.

 

1200년 기념으로 이곳을 처음으로 찾을 수 많은 관광객들은, 아마도 인파에 휩쓸려 고생 좀 하겠지만

그럼에도 분명 깊은 인상을 받고 오랫동안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추억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워낙 성지로 추앙받는 곳이다 보니 그 흔한 자판기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이 더욱 놀랍다.

일본에서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관광지라는 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히 희귀한 편.

휴게소도 얼핏 보니 먹을 걸 파는 곳은 없는 듯 하고, 노인들이 앉아서 TV의 고야산 소개를 보고 있다.

 

 

 

휴게소 역시 근간에 지은 듯한 느낌은 나지 않는다.

정교하게 지어서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인지, 정말로 오래된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양 건축물에서는 항상 처마 밑과 지붕의 흐름, 단청의 모양 등을 가장 유심히 살펴보는데

이곳 오쿠노인의 건축물들은 오사카 안의 왠만한 전통 건축물보다 훨씬 미려한 모습을 자랑한다.

이곳이 속한 와카야마(和歌山)현은 발전도 더디고 인구도 킨키 지역에서 가장 적은 산골인데

정말 코야산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다. 수백년 전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해 이곳을 찾은 참배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도 예전 참배객과 같은 의상을 하고 순례하는 사람들은 꽤 많다.

그런 사람들과 일반 관광객을 위해 예전부터 이곳의 백여 개 사찰들에서는 템플 스테이가 가능하다.

여유가 있다면 경험해 보고 싶기도 하지만, 금액이 왠만한 일급 호텔 수준이라서 나한테는 무리.

 

불교 문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기도 하고, 모든 숙박실에 열쇠가 없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나 같은 사람은 카메라 장비를 그런 데 내려놓고 돌아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역시 속세인의 번뇌.

 

 

 

자판기 같은 전자기기가 이곳에 어울릴 리가 없으니, 없는편이 훨씬 낫긴 한데

그래도 기념품이나, 불교식으로 소원 비는 각종 도구들은 팔고 있다.

 

종교란 개인적인 소망 들어주는데 이용하는 녀석이 아니라는 지론을 같고 있기에 관심은 없지만

참배객인지 홍법대사인지 모를 마스코트 캐릭터 스트랩이라던가 하는건 그럭저럭 볼만해서 잠깐 구경해 본다.

본인이 쓸 생각은 없고, 이런 거라면 여행 선물로 남한테 주기에는 적당할 것 같은데

뭐랄까, 내 지인들에게는 그런 선물 주는것보다 그냥 여기 한번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어서 구매는 하지 않기로 결정.

 

지면에 내딛는 힘의 80%를 오른발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이젠 왼발만큼이나 오른발도 피곤하다.

휴게소에서 앉아버리면 다시 일어나는데 상당히 고생할 것 같아서 잠시 숨만 고르고 다시 출발.

사하라 사막 마라톤 당시 체크포인트에서 주저앉아 잠시 쉬고나면, 일어나서 출발할 때 훨씬 아프고 힘들었다는 경험상.

 

 

 

기념품점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고, 고뵤 참배할때 봉납하는 도구들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할까.

오쿠노인에서 가장 세속적인 건물이긴 한데, 건축 양식은 후기 카마쿠라(鎌倉)의 흔적이 보여서

어지간하면 다른 역사적 건축물들에 비해 좀 현대적이고 이질적인 경향이 있는 이런 건물도 거의 위화감이 없다.

 

이런 곳에서는 왠지 마음도 경건해 지는 듯 한데, 화장실 근처에서는 공사 인부들이 담배를 피고 있는걸 봐서 꼭 그런것만은 아닌 듯.

오쿠노인 참배길은 전부 금연인 걸로 알고 있는데, 노동자들의 휴식 시간에는 역시 빠트리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담배가 천박한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겨난지 40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뭐.

 

 

 

난 지금 무슨 고행중인가 싶을 정도로 왼발 통증이 심하다.

몸을 생각해서 오늘 푹 쉬었다면 붓기가 어느정도 가라앉았을 테지만

여기서 이런 풍경을 감상하는걸 포기하는 것도 통증만큼이나 아쉽고 괴로운 일이다.

 

걷다가 가끔씩 발을 잘못 디디면, 매운 걸 먹었을 때처럼 본능적으로 쓰읍~ 하고 숨을 들이키게 된다.

산길치고는 굉장히 평탄한 길이지만 어쨌든 산길은 산길이라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곤 한다.

고뵤가 코앞이니 이제 절반 정도 걸어온 셈인데, 문제는 코야산의 볼거리가 오쿠노인만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

 

원래대로라면 오쿠노인을 빠져나와 반대쪽 끝인 다이몬(大門)까지 느긋하게 경치 구경하며 걸어간 후

단상가람과 영보관(霊宝館)을 감상할 생각이었는데, 2km 정도 되는 그 거리를 걸어서 가는건 지금으로서는 무리다.

오쿠노인이 약 3km 정도, 이곳만은 도보 이외에 어떤 이동수단도 없으니까 죽기살기로 걸어가고 있지만

다이몬까지는 결국 짧은 거리라도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다행히도 스루패스덕에 버스비는 공짜.

 

 

 

이 다리 앞에서부터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일본 문화재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뭘 이런 것까지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사진 금지 구역이 많다.

중요 문화재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라면야 얼떨결에 플래시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테니 이해가 되지만

사방천지 뻥 뚫려있고, 다리 하나 지나는 것 외엔 바뀔 것도 없는 이런 곳에서도 촬영 금지라는건 조금 의아하다.

 

뭔가 엄숙함과 경건함을 위한 조치라고 개인적으로 예상해 보지만, 멋들어지게 수식했을때나 그런 거고

간단히 말하자면 사진 따위로 귀중한 볼거리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는 쓸데없는 자부심이란 것이겠지.

사진이란게 마이너리티 리포트 세대처럼 현실감 100%인 입체영상도 아니고,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것과 실제 눈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촬영 금지라는 푯말이 일본 전역에 너무 많다.

 

그러라고 하니 일부러 규칙 어겨가면서 찍지는 않지만, 다리 넘어서 사진 찍는다고 오쿠노인의 경건함이 사라지진 않는다고 본다.

루브르 박물관도 플래시와 삼각대 사용하지 않으면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데 말이지.

 

아무튼 망원렌즈도 가지고 왔으니 저 멀리 보이는 고뵤도 한장 남기고 다리를 건넌다.

앞의 관광객 단체를 이끄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세심하게 설명을 하고 있던데

조금조금씩 듣는건 몰라도 아픈 발목을 핑계로 느리게 걸으면서 설명 내용을 전부 다 들어버리는건

약간 도둑질 같은 느낌도 들어서 그냥 들리는 말만 듣고 지나가 버린다.

 

다리 건너서 고뵤까지는 이십 미터정도 될 법 한데, 이 안의 묘석들은 대체로 일본인이라면 알고있을만한 유명 인물들의 것.

예전 총리대신 했던 사람 이름도 얼핏 들리는 걸로 봐서

홍법대사와 가장 가까이 있지만 그의 뜻과는 가장 동떨어진 묘석들이 모여있는 곳인 것 같다.

홍법대사의 사당에 가까이 가서 누울수록 더 큰 복을 얻을 거라는 허망하고 탐욕스러운 중생들의 작태.

 

 

 

고뵤 내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굉장히 엄숙한 분위기.

일본 전국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니 분위기가 사뭇 남다르다.

 

그룹을 이끄는 가이드 아저씨가 들어가기 전의 예절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난 그냥 신발 안 벗는 곳까지 가서 내부 모습만 감상하고 가볍게 목례한 후 다시 빠져나왔다.

다리를 건너서 카메라의 전원을 다시 켜고 이제부터 돌아갈 길을 한장 담아본다.

이 길로 주욱 돌아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좀 전과 다른 방향을 선택하면 된다.

 

나만 그런건 아닌지, 몇몇 사람들이 나처럼 다리 바로 앞에 서서 고뵤의 모습을 담고 있더군.

 

 

 

 

잘려나간 나무 둥치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서 보기 좋은데

제대로 터를 잡지 못하고 이런 곳 사이사이에 놓여진 석불도, 과거나 현재나 고단한 서민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떡하니 묘터 잡아서 늠름하게 서 있는 묘석보다 이런 녀석들에게 합장 한번이라도 더 하겠다.

 

 

 

죽은 사람도 언젠가는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지론으로 보자면

아무리 반듯한 묘석이라도 결국 시간에 침식되어 이렇게 점점 형태를 잃어가는 게 본모습이라고 생각.

한국의 묘소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다 보면 슬금슬금 깎여나가서 결국은 주위와 동화되어 버리는게, 그게 좋다.

 

아버지가 묘석을 별로 안좋아하는 이유도, 천년만년 지나도 계속 그대로라서 뭔가 이상하기 때문이었으니.

그런데 이곳에서는 묘석도 점점 사그라져 가는게, 훗날엔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 있겠지.

순환의 필연성과 그 아름다움은 사람이나 비생물이나 마찬가지다.

 

 

 

왔던 길과 다른 쪽으로 나 있는 참배길로 들어선다.

30분이면 쉽게 돌아볼 거리를 한 시간 반씩 잡아먹고 있으니, 통증만 아니라면 느긋한 구경에 적합한 속도인데.

어제 겨우 그거 무리한 것 가지고 발목이 이 모양이라는게 이쯤되니 뭔가 억울하게까지 느껴진다.

한두 번 해본 일도 아닌데 왜 이번엔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왼쪽 발을 들어올리는 것도 부담되서 이제는 아예 왼다리를 쭉 편 상태에서 지면에 원을 그리듯이 휘적휘적 돌려가며 걷는다.

영 꼴불견이지만 그나마 이게 제일 덜 아프니까. 그런데 가끔 어디 툭 걸리고 할 때면 지옥이 엄습해 온다.

 

 

 

이 정도 한자는 다들 읽을 수 있으리라 본다.

계단을 올라가면 뭔가 볼만한 묘석 혹은 사당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리가 멀쩡했다고 해도 저기 올라가는 수고따위는 하고싶지 않네.

 

일본에서는 당연하게도 전국시대의 영웅으로 명성이 높지만, 한국인이라면 유전자에 거부감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을 듯.

전국시대를 막 끝낸 당시의 일본은 거의 들개같은 야만과 혼란의 집합체였고, 장수들에게 하사할 토지가 턱없이 부족하던 때

하필이면 얼토당토 않는 방향으로 머리 굴린다는게 조선 침략이었으니... 지네들 밥그릇 싸움에 옆집 끌어들인다는 발상이 참 기가 찬다.

 

한국인 입장에서라면 그냥 올라가서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저 녀석을 위해 계단 올라가는 수고도 아깝다.

 

일본 역사를 공부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자기가 아는 일본 인물 90% 이상은 이곳 오쿠노인에서 그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유랑 시인인 마츠오 바쇼(松雄芭蕉)의 묘석이라면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지금 이 다리로는 그저 참배길을 온전히 빠져나가는데만 전력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포기.

 

 

 

오륜탑에 생명을 틔운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풍륜과 화륜 사이에 식물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라, 문학적인 감상이 떠오르는 듯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각자 알아서 감상하는 편이 좋을 듯.

 

자신의 사진은, 본인이 브레송 정도의 대가가 아니라면 가능한 한 찍사 자신의 의도와 느낌을 설명해 주는게 좋긴 하지만

가능하면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느끼고 각자의 생각을 간직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한 장이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사진은 아니니까.

 

 

다리의 통증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나로서는 오디오 가이드를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이곳까지 오는 사람이라면 7천원쯤 지불하고서라도 꼭 오디오 가이드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설명이 극히 제한적이고, 그나마 일본어와 어색한 영어 안내문밖에 없는 곳이 많아서

역사적 향기를 간직한 수많은 묘석들에 대한 설명은 전적으로 오디오 가이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으니까.

 

한국어 버전도 있다고 하니, 몸만 정상이었다면 훨씬 알차게 즐겼을 터였는데

그 당시엔 오디오 가이드에 대한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발목 통증이 심했다.

 

저런 조그만 표지판을 보고 그 존재를 알아차렸지만, 지금와서 다시 안내소까지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가이드가 없어도 알아차릴 수 있는 점이 있긴 있다.

고지대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한 오쿠노인은, 목재나 금속재로 만든 것들이 오래 버틸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꽤나 대단한 모습을 한 묘석조차도 전부 석재로 되어 있다는 점.

 

중요문화재로 선정되어 있을 만큼, 꽤나 오랜 시간 지난 묘석인데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주위 환경과 절묘하게 조합되어가는 모습이 실로 인상적이다.

 

 

 

군데군데 보강을 거친 모습이 조금 어색한 것도 사실이지만 훌륭한 볼거리임에는 틀림없다.

이 정도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한다면, 세워질 당시에도 상당한 권력가였을 듯.

코야산에 묘석이 들어서기 시작한 건 약 1000년 전인데, 실제로는 500~600년 전의 묘석이 주를 이룬다.

 

물론 셀 수도 없이 부서지고, 그 위에 다시 세우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연도는 거의 알 수 없지만

현대 일본 전통건축 양식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점을 보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저런 기와와 처마의 모습은, 당시 중국과 한국의 양식의 틀이 여전이 남아있었다고 해도 되겠지.

 

 

 

불교 건축물로는 유명한 오륜탑.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빠릿빠릿한 녀석보다 이렇게 세월의 흔적을 가진 녀석이 훨씬 보기 좋다.

이런 식으로 보존되기에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기도 하고.

 

이곳은 예전에 세워진 몇몇 특정 묘석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아니고

참배길 자체가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 자체가 이 곳의 신비성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흔적을 느끼게 해 주는 모습.

날려나간 거목 위에 다시 새로운 삼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나면 이 녀석도 주변의 거목들처럼 높디 높게 솟아있겠지.

아마 마야나 잉카 문명처럼, 일본이라는 나라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이 오쿠노인의 참배길은 여전히 남아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당길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소원 종이. 설마 이런 곳에까지 매달려 있을줄은 몰랐다.

사실 근본적으로는 낙서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이긴 한데, 주변을 훼손하진 않으니까 괜찮으려나.

 

저건 보통 소원을 적어서 나뭇가지에 매다는 것인데, 이런 묘지 가운데서 무슨 소원을 비는지는 모르겠다.

 

 

 

오쿠노인 참배길은 V 자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앙에 홍법대사의 영령을 기리는 고뵤가 위치한다.

그래서 고뵤 부근을 제외하면 입구와 출구의 위치가 다르다. 거리상으로는 약 2km 정도.

 

고뵤에 다가가면 확 트인 공간과 함께 기념품을 파는 곳이나 휴게소, 영령전, 사찰 등의 건물들이 나타난다.

평상시라면 산책 축에도 들지 않는 가벼운 길이지만 나로서는 거의 극기훈련 하는 기분.

잠깐 생각해보니, 이곳은 눈이 쌓인 겨울에 와도 그 경관이 놀라울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비가 와서 안개가 자욱히 낀 모습도 이 곳의 경건한 분위기에 어울릴 것 같고.

 

푸르름을 마음껏 발산하는 5월 중순의 맑은 하늘 아래에서 감상하는 오쿠노인도 좋긴 한데

뭐랄까 이렇게 맑고 화창하면 분위기가 조금 안 사는것도 사실인 듯. 그래도 사진 담기엔 좋다.

 

 

 

조금만 더 가면 고뵤에 도달하는데, 그 전에 눈에 들어온 이 탑은, 고뵤 자체보다 더 인상깊게 다가왔다.

'무연불' 이라는 제목의 탑으로, 이름 그대로 연고가 없이 방치된 석불들을 한 곳에 모아서 세워 놓은 것.

오쿠노인에 산재해 있던 수만개의 석불들을 이곳으로 모은 이유까지는 모르겠다. 묘석을 세우는데 방해가 되어서 그런가?

 

 

 

일반적으로 이런 조그만 석불들은 어린 아이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별할 것 없이 이렇게라도 명복을 빌곤 했다.

이제는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수십, 수백년 전의 석불들이 한데 모여있는 모습은 뭔가 형이상학적인 느낌.

 

 

 

상당히 오래된 것들인데다가, 원래부터 그렇게 정교하게 조각되지 않은 석불이기 때문에

지금와서는 얼굴의 형체조차 사라져 버리고, 그저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흔적만이 남아있다.

 

오쿠노인은 아직도 사람의 손이 잘 닿지 않는 깊숙한 곳에 방치된 석불들이 꽤나 많은데

가난한 자들의 노력이라고는 하지만 석불은 당시 꽤나 비싼 축에 들어갔고, 오쿠노인 안에서도 도난 사건이 셀 수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이렇게 한 곳에 모여 도난당하는 일 없이 사이좋게 늘어서 있으니, 좋은 시절인 듯 하다.

 

 

 

중요 문화제로 지정되어 있는 수많은 묘석들과, 홍법대사의 고뵤 등이 아무리 중요하고 위대하더라도

결국 코야산과 오쿠노인이라는 이미지를 현세에까지 이어가는 원동력은

 

힘 없는 서민들이 한개 한개씩 공양했던 이런 조그만 석불들이 아닐까 싶다.

역사는 권력자들에 의해 쓰여지지만 문화는 항상 가장 낮고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샘과 같으니까.

단순한 돌맹이에 불과한 물체에 정성스럽게 헝겊을 둘러주고, 타인을 위해 합장하는 그 마음가짐이야말로

홍법대사가 의도했던 불교의 정신이며, 세계 각국에서 이 곳을 찾아오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

 

 

 

이것도 아마 공양물이겠지.

성불이란 표면적으로는 죽은 사람을 기리는 행위이지만

결국 죽은 사람에게 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겨진 사람은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죽은 사람에 대한 연민을 선택한다.

그렇게 본다면, 성불이란 결국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거라고 생각.

이 인형을 놓고 간 사람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평온해 졌을 것이다.

 

 

 

무연불 주변에는 확실히 아이들을 위한 공양물이 많이 보이는 듯 하다.

실을 뭉쳐서 만든 저것도 옛날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오쿠노인에 가서 동전 한닢이라도 봉납하고픈 기분이 든다면, 무연불 앞에서 하는게 제일 적절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