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유후인'에 해당하는 글들

  1. 2012.03.29  후쿠오카 여행 - 유후인의 먹을거리 18
  2. 2012.03.28  후쿠오카 여행 - 관광지가 아닌 진짜 유후인 16
  3. 2012.03.27  후쿠오카 여행 - 유후인 킨린코 6
  4. 2012.03.26  후쿠오카 여행 - 유후인의 첫 인상 17

 

 

코기는 저 멀리 앞으로 걸어가 버리고
어느 길로 가던 유후인 역 쪽으로만 가면 되니까 나도 따라가 본다.
민가인지 상가인지 모르겠지만 멋들어지는 담에 둘러쌓여 있다.
하수구 쪽도 깔끔하고, 어딜가나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 관광 명소라는게 부럽기 그지없다.

 

직접 만든 것일까. 시골이니까 가능한 멋진 출입구다.
살짝 삐뚤어져 있는 모습이 더욱 인간미 느껴진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난간도 센스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모여서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높이는 것이겠지.

 

다리를 건너자 친숙한 코기와 함께 한 마리가 더 가세했다.
역시 주위에 주인은 보이지 않아서, 마음대로 산책나온 녀석인 듯.
둘 다 외지인들에게 별로 친근하진 않지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다.

 

흰둥이 녀석은 별로 관심이 없어보이는데
코기쪽은 흰둥이가 굉장히 신경쓰이는 듯. 슬그머니 저 녀석 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있었다.
단순히 좋아서라기보단, 서로 경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카메라가 신경쓰이는지 한번 쳐다도 봐 주고.

 

결국 저렇게 냄새를 맡다가 분위기가 험악해 져서 으르렁거리며 싸움 모드에 들어가고 말았다.
왕실 귀족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코기는 역시 양치기견이라 주변에 대한 호기심과 경계심이 강하다.
이번엔 자기가 먼저 다가가다가 된통 당한 형국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이렇게 마음대로 쏘다니는 녀석들의 제일 큰 일과가 영역표시다 보니
이런 녀석 둘이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게 기선제압 혹은 싸움이긴 하다.

 

개들이야 신나게 싸우게 놔 두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아름다운 풍경은 예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일까, 이곳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꽤 많다.
이곳은 트릭아트 박물관. 최근 한국에도 여러 군데 생겨서 친숙한 곳이다.
물론 입장료가 있어서 들어가 보진 않았다. 동행이 있으면 재미있는 포즈도 좀 시켜보겠는데 혼자서 들어가는건...

속을 사람이 있을까 싶은 트롱프 뢰유(속임수 그림)인데, 그냥 한번 웃고 지나치는 정도로 충분.

 

마음가는대로 걷다보니 상가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유후인 역에서 직선으로 뻗어있는 거리는 아니고 한 골목 안으로 들어온 곳인데
어째 사람 붐비는 건 이 골목이 더한 듯 하다. 아님 그새 관광객이 많아졌던가.

온천과 자연 경관을 즐기는 휴양지라고 하면 그래도 나이 지긋한 사람의 비율이 높을거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10명중 7명 이상은 아마 나하고 비슷하거나 더 젊어보이는 사람들이니
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원동력이 이런 거리에 숨어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 많은 곳은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활기찬 유후인의 모습 역시 궁금하니까.

한국 돈으로 14000원쯤 하는 우산이다.
퀄리티도 그리 나쁘지 않고, 일단 유후인 특산품이라고 전시해 놨으니 꽤 저렴한 편이다.
일본 왕족이 사용하는 우산은 우산 장인이 손으로 제작하는데, 보통 한개 80~120만원 선.
예전에 국내 최대의 우산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살짝 눈이 갔다. 물론 살 필욘 없지만.

유후인은 생각보다 고양이가 많은 곳이었구나.
어지간한 녀석들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
도망가거나 경계하는게 아니라 무관심하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증거.
털고르기를 방해하고 싶진 않아서 그냥 적당히 떨어져 사진만 남겼다.

 

천연효모를 사용해서 만든다는 빵집 마키노야(まきのや)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전시된 장난감들도 인공적으로 꾸민 느낌이 적어서 잘 어울린다.
나름 유명한 빵집이라서 빨리 찾아가지 않으면 금새 품절된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빵 기분이 아니라서 패스.

 

솔직히 말하자면 빵 한번 먹어볼까 아주 조금 망설였는데
골목에서 튀어나온 냥이녀석이 부비부비해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깔끔 쌈빡하게 빵에 대해선 잊어버리고 한참동안 이 녀석 만지작거리며 놀고 말았다.
조금 어린 녀석인데, 주위에서 귀여움 받고 자랐는지 사람 손을 참 좋아하더군.


오토 포커스가 되지 않는 수동 렌즈를 끼우고 있었던 터라 적당히 촛점 맞춰서 뷰파인더도 보지 않고 샷을 날렸는데
다행히도 단 한장의 사진이 그나마 그럭저럭 잘 나온 편이라서 더욱 기분이 좋다.
이 녀석은 3분쯤 나하고 놀다가 다시 골목길로 스윽 걸어간다.

 

잘 꾸며놓은 상가가 많아서, 사지도 않을 거 점원에겐 미안하지만 천천히 꼼꼼히 둘러보며 걷고 있었는데
좀 전에 킨린코에서 봤던 묘한 모양의 꽃이 이곳에서도 발견되었다.
개화한 꽃잎 색깔은 다르지만 분명 같은 녀석.


다행히도 가게에서 심어놓은 녀석이라 옆에 이름이 적혀있었다.
삼지닥나무(みつまた)라고 하는 중국이 원산지인 녀석. 원래는 나무껍질을 제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자생하지 않으며, 남쪽 지방이나 제주도에선 임의로 심어놓은 곳이 있다고.
이곳은 제주도와 위도가 같으니 이렇게 볼 수 있는 듯 하다.

 

이제 슬슬 뭐라도 먹어볼까 싶어서 걸어다녀 본다.
금상 코로케라는, 이름만 들어도 대강 이해가 가는 코로케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던데
줄 서서 먹긴 귀찮고 해서 좀 더 돌아다니다가 폭탄야키라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모양은 타코야키와 같지만 크기가 내 주먹만한 녀석.

예전에 도쿄의 우에노 아메요코 시장에서도 비슷한 녀석을 먹어본 기억이 있는데
그건 정말 맛이 없어서 땅을치고 후회했던 적이 있다.
이곳은 뭔가 좀 다른것 같기도 하고, 그 때의 후회를 만회하기 위해서 다시 도전하는 정신을 가진 터라 레귤러 하나 주문해서 먹어보기로 한다.

덩치가 너무 커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젓가락 없이는 먹지 못한다.
부드러운 속을 파먹어 보니, 우에노와는 달리 뭔가 여러가지가 튼실하게 많이 들어있다.
문어만 들어있는 타코야키와는 모양만 비슷하지 완전히 다른 요리다.
타코야키 매니아인 나로서는 이런 이단야키에게 조금 거부감이 있었지만
타코야키는 오사카 가서 실컷 먹기로 하고 새로운 경험을 즐겨본다.

맛 없진 않다. 적어도 우에노의 거대야키보다는 훨씬 낫다.

 

이 폭탄야키의 종이 측면에는 '이안에 들어있는 10가지 재료를 맞춰보세요'라고 적혀있다.
뒷면에는 성분표기와는 반대쪽으로 그 답이 적혀있더군. 재미있는 발상이다.
단지 일본어라는게 좀...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보니 메뉴판은 전부 한글로 적혀있었는데도 말이다.

메추라기 알, 비엔나, 오징어, 바지락, 시메지버섯, 떡, 옥수수, 튀김조각, 양배추, 홍생강절임

먹다보니 정말 다 들어있었던 듯. 배가 작은 여성이라면 한개만 먹어도 절반쯤은 든든할 듯 하다.
드는듯 마는듯 보물찾기하듯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먹다보면 소세지든 버섯이든 팍팍 씹힌다.
살짝 신경쓰이는 점이 있는데, 대다수 한국 관광객이 이걸 '폭탄 타코야키'라고 부른다는 것.
이 녀석은 타코야키가 아니다. 문어는 안 들어있다.

 

흡족하게 흡입후 가게를 둘러보면서 걸어다니다가 유후인 버거라는 이름을 보고 다시 군침이 돈다.
유후인 버거는 일본에서도 맛있기로 유명한 명물 버거.
사실 이 녀석은 일본 최고의 햄버거인 사세보 버거에서 파생된 녀석이긴 한데
네임밸류를 제외하면 사세보 버거에 크게 뒤지지는 않는, 꽤 먹을만한 버거다. 미국인들에게도 나름 괜찮다는 평.
폭탄야키를 먹었으니 내 얼굴통만한 디럭스 버거를 먹을 필요는 없고 그냥 레귤러로 하나 주문.


바람이 좀 불어도 일기 좀 쓰기 위해서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장의 애마인 듯한 멋진 바이크와 어쩐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곰탱이가 시선을 끈다.

 

주문후 바로 만들기 때문에 따끈할 때 먹는게 최고다.
패티도 빵도 모두 수제품이고, 신선한 양상추와 두툼한 치즈, 베이컨 등등
꼼수 쓸것 없이 질로 승부한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녀석. 레귤러인데도 일본 버거 체인점에서 파는 어떤 버거보다 크다.

어지간히 꾹꾹 눌러서 압축하지 않으면 안 입에 넣기가 매우 힘든데
일단 무리해서 모든 재료를 한번에 입 안에 넣고 씹어보니 그야말로 버거 먹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간단히 말하면 이태원 버거와 크게 다르진 않지만, 맛이 좀 얌전하다고 해야 하나... 불량식품이라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바로바로 구워낸 계란과 후추 맛이 가득 느껴지는 패티의 맛을 생각하면 훌륭한 한끼 식사로 모자람이 없다.
한국의 햄버거점은 한끼 식사는 커녕... 입이 심심할 때 오징어다리 대신 씹는다는 느낌일 뿐이니.

재료 자체의 품질로는 상위권에 들어가는 일본의 모스버거도 나쁘진 않지만
일단 덩치가 기본적으로 모스버거 2배는 되는데다가 듬직하고 굵은 재료가 훨씬 느낌이 좋다.

우적우적 씹어먹으면서 일기를 쓰고 있으니 그저 행복하다.
출발 시간까지 1시간쯤 남았지만 후다닥 써내려갈 수 있는 타이핑과는 달리
거친 수첩에 손으로 쓰는 일기는 머릿속 생각보다 필기가 느려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1시간쯤 쓰는건 일도 아니니 오늘 돌아본 유휴인의 풍경을, 중간중간 카메라의 도움을 받아서 정리해 나간다.
바로 몇 시간 전의 인상도 카메라로 확인하지 않으면 그때 그 감상을 되새기기가 힘들 정도니
이걸 그냥 사진만 담아와 한국에서 풀어내려고 하면 데이터 손실이 너무 크다.

저녁에 텐진에 도착해서 부탁받은 물건들을 구입하고 나면 후쿠오카 여행은 종료.
내일은 아침 일찍 배를 타기 때문에 사실상 하루 반 정도의 짧은 여정이다.
교통비와 숙박비를 극단적으로 줄인 여행이라서 이 정도만 즐기자 했지만
역시 짧은 여행은 아쉬움이 많다. 만약 배편 변경이 가능했으면 3일정도는 더 돌아다니고 싶었다.
한국 여행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왔으니 이번엔 이걸로 만족하자고 자신을 달래며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킨린코를 빠져나오는 길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기는, 소박한 가게와 여관 등이 들어선 거리.
또 하나는 관광로에서 거의 벗어나다시피 하는 민가가 이어진 거리.
당연하게도 호기심이 동한 길은 민가가 이어진 거리다.
잘 꾸며진 상가 거리도 좋긴 한데, 유후인의 참맛은 이런 풍요로운 자연에 둘러쌓여 수십년을 살아가는 토박이들의 향기니까.

동네 할머니가 어느 집 앞에서 인사하는 동안 지긋히 앉아있던 귀공자. (귀공녀?)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데, 할머니와 함께 산책하기엔 딱 어울리는 모습이다.
일본의 왠만한 지역에서 목줄 없이 다니는 개는 보기 힘든데, 이곳 유후인에서는 목줄 없는게 훨씬 자연스럽다.

할머니가 길을 나서자 바로 쫄랑쫄랑 따라가서 옆에 착 붙는 녀석.
원래는 개를 안 무서워 하는데, 자전거여행중 개한테 쫓긴 적이 워낙 많아서 요즘 성격이 좀 바뀐듯 하다.
그래도 나한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할머니를 따라가는 이 녀석은 그닥 무섭지 않았다. 덩치가 산만하긴 했어도.

작지만 잘 정돈된 텃밭을 보니 엄니의 시골집이 생각난다.
아궁이가 있는 흙집과 텃밭을 참으로 좋아하시는 엄니.
지금은 비록 몸이 너무 고되다고 이런 텃밭 운영은 꿈도 못꾸시긴 하지만
아파트 안에서 몇가지 꽃과 식물들을 기르는 것만 해도 매일 그 녀석들에게 눈을 떼질 못한다.

하물며 이런 텃밭에서 자라는 녀석들을 바라보는 주인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농촌 생활이 지루한 건, 라이프 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행동에서 생기는 적응 기간의 일이겠지.
정성을 쏟을 때, 텃밭의 녀석들처럼 정직하게 답해주는 것이 달리 있을까 싶다.

담도 없고 대문도 없는 시골집 앞에서 고양이 한마리가 스윽 다가오더니
익숙하게 내 손에 얼굴과 몸을 비비고 귀여운 소리 한마디 내 주고
언제 그랬냐는듯 시크하게 나를 지나쳐 집 안으로 사박사박 걸어들어간다.

따로 주인이라는 게 없을 듯 보이는 녀석이지만, 이 부근 집이 전부 자기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양이가 들어간 집의 앞마당 역시 여유가 넘친다.
잡초도 적당히 섞여있는 따뜻한 텃밭의 모습이 이곳 유후인의 솔직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후인의 상점가는 과장됨이 없는 아담하고 깔끔한 모습이 훌륭하지만
내 시선은 항상 그런 상가를 지나쳐 이런 느낌의 민가에 머물게 된다.

담과 정문이 없는 시골 민가는, 자전거 여행하다가 잠깐 들러서 물이나 얻어먹고 이야기나 나눠도 괜찮을 법한
그런 여유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장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뭐, 담이 있다고 해도 거의 미적 기능으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어째서 걷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주는지, 특별한 해답은 없는데 그렇게 느껴진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한두 그룹 이 길을 걷고 있었는데, 슬쩍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비슷하게 느끼는 듯 즐거운 모습이다.

당연히 실제 생활은 도시보다 불편하겠지.
오래된 나무집은 삐걱거리고, 수도는 낡고 자주 막히며, 텃밭은 손이 많이 간다.
그래도 스스로 판자를 들고 수리할 부분을 찾아다니거나, 지금쯤 폭발적으로 솟아나는 식물들을 하루하루 손질하는
그런 행동들이 사실은 먹고 마시고 싸며 살아가는 생명체로서의 사람이 해야 할 당연한 것들이 아닐까.

슈퍼에서 포장된 음식을 먹고, 옆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며, 평생 흙에 뭔가를 심어볼 일이 없는
그런 도시에서의 삶에 익숙해지면, 어쩐지 사람도 도시를 돌리는 부품 한조각처럼 딱 끼워진 듯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런 답답함 보다는 불편한게 좋다. 애초에 뱃속에서 튀어나왔을 때 부터 인생은 불편함을 즐기며 사는 것이니까.

이 나무들이 푸른색으로 뒤덮히면
개와 함께 아침 점심 저녁에 마을을 한 바퀴 산책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마음이 풍족해질까 궁금하다.
인공미 팍팍 느껴지는 강가 산책로를 사람과 자전거와 동물에 치여가며, 운동과 건강 증진이라는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건
그걸 산책이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삭막한 도시에서의 자기 위안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적당히 벗져긴 콘크리트와 그 위를 박차고 올라오는 생명들은
공무원 입장에서는 연례행사로 솎아내고 다시 덮어야 하는 업무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진행 방향까지 표시된 회색 콘크리트 산책로와 이런 길 중에
전자를 선택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산책은 다리로 걷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으며 즐기는 종합적인 유희.
지금에 와서는 이런 유희조차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자신의 생활권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모험까지 감행해야 하는가.
아마 이곳에는 나보다 더 못견뎌해서 이곳으로 찾아와 그 즐거움을 찾으려 실천하는 젊은이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주위 풍경에 잘 녹아들어간 듯한 모습일까.
경남 사촌의 시골집 근처엔, 엄니처럼 시골을 동경했음에도 그 추구하는 방향은 다른 것이지
그 깡촌 시골에 으리으리한 벽돌과 최신 3중창, 반듯하게 깔린 잔디로 화려하게 치장한 전원주택이 몇 들어서 있다.
그런 시골까지 와서도 결국 생활은 도시와 다를바가 없는, 익숙함과 편안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껍질같은 느낌의 집.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생활의 기쁨을 포기한 집은 그 환하고 넓은 3중창 속에서도 답답할 듯 한다.

얼핏 보니 무슨 박물관인가 전시관의 주차장 역할을 하는 공터인 듯 한데
전시관까지 들어갈 필요도 없이, 이 모습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다.
가능하다면 이 곳이 계졀별로 변하는 모습을 감상하러 오고 싶네.

아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쯤은 저 녀석들에게서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사람이 아무리 치장을 하고 관리를 해도 역시 자연의 손놀림만큼 원숙하진 못한 듯.

은근슬쩍 부모님께 유후인에서 온천좀 즐기고 오시라고 몇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세계 곳곳 안가본 곳이 없는 분이라 이런 시골마을이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 경험 적은 내 입장에서는 이런 곳을 실컷 산책하고 저녁에 맛있는 음식과 함께 온천에 몸담그는 여행이 고프다.
다음엔 시간적, 자금적으로 좀 여유있게 와서 그런 것도 한번 즐겨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개천과 함께 유후인의 고즈넉한 풍경이 맞이해 준다.
자전거로 지나왔던 이름모를 시골길이 생각나는 풍경.
유후인역 앞에 자전거 대여소도 있으니, 경험하고픈 사람들에게는 자전거로 둘러보기도 추천한다.

출입금지가 된 길이 아쉽긴 했지만
아무렇게나 방치된 듯이 서 있는 저 시계가 정확히 가동하고 있다는게 재미있다.
구형 렌즈를 최대 개방으로 찍어보니 꿈 속에 있는 느낌이 드는군.

선명하고 또렷한 신형 렌즈도 좋긴 한데
이곳의 풍경에는 이렇게 성능 떨어지는 렌즈로 흐릿하게 담는 모습 역시 어울리는 듯 하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유후인의 거리를 걷고 있으면 이렇게 몽환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푸른 하늘은 아니지만 적당히 햇빛 따뜻한 오후가 되니 개도 졸린 듯 하다.
카메라를 치켜들어도 슬쩍 눈길만 한번 주고 나서 다시 꾸벅꾸벅 졸기 바쁘다.
누구를 위해 만든건진 모르겠지만, 벽돌을 받침대로 한 투박한 벤치가 이곳 풍경과 어찌나 어울리는지.
동물들이 여유로운 곳은 사람들에게도 여유로운 곳이다.

자기 밥그릇 앞에서 고양이도 목상처럼 느긋하게 앉아서 낮잠중.
이 녀석 역시 눈만 살짝 뜬 후에 다시 꿈나라로 직행이다.
그릇에는 고양이밥이 담겨 있었지만 이 녀석은 길고양이로, 중성화 후 방생된 녀석이다.
오른쪽 귀 끝이 삼각형으로 잘려있는 것이 중성화의 흔적.

이러한 길고양이 TNR (Trap-Neuter-Return) 정책은, 기본적으로 고양이보다는 사람의 편의를 위한 이기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미움받고 위협당하는 고양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것은 대부분 동의한다.
본래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아무리 쫓아내거나 잡아들여도 빈 영역을 다른 고양이가 침범해 들어오기 때문에
이렇게 중성화한 고양이가 영역을 만들면, 죽기 전까지 번식하는 일 없이 그 영역을 유지한다.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챙겨주면 고양이는 일부러 쓰레기봉투를 뜯거나 가축을 잡아먹지 않기 때문에
중성화한 고양이들에게는 적극적으로 먹이를 주고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장려하는 편이다.

자손 번식이라는 생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박탈당한 고양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덕분에 얼마든지 사람에게 먹이 얻어먹고 쫓겨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미약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
이 녀석은 나름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다.

다리를 건너 유후인 역 쪽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는 도중 훌륭한 모습의 웰시코기를 발견.
목걸이도 걸려 있고, 이런 귀하신 몸이 유기견일리는 없는데, 어디서도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나를 보려고 하지도 않고 느긋하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냄새 맡고 오줌 한방 싸고 다닌다.
유동인구가 꽤 많은 지역이라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인지, 완전 자기집 앞마당처럼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녀석.
일본을 1년동안 돌아다녔지만 목줄에 걸려있지 않은 개를 가장 많이 본 곳이 이곳 유후인인듯 하다.

 

킨린코 앞엔 마르크 샤갈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피카소와 쌍벽을 이루는 근대화가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문제는 내가 아는 샤갈의 작품은 '마을과 나' 하나밖에 없고, 그 작품이 이곳에 있을리가 없다는 것.
가벼운 습작을 많이 남긴 샤갈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곳 미술관의 작품들 역시 그런 부류일 듯 하다.
외관도 마음에 들고 테라스에 까페도 있어서 들어가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입장료가 있고 날씨탓인지 까페가 바깥과 차단되어 있다는 아쉬움에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역 앞의 거리 이후로 관광객들이 많이 모인 곳이었지만
킨린코의 첫 모습은 딱히 인상적이라기 보다는,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을 한 약간은 담백한 호수였다.
영양상태가 좋은지 물속엔 상당히 많은 수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예전 홋카이도의 시코츠 호수는 입이 딱 벌어질만한 장관이 여기저기 펼쳐졌지만, 반영양호였던 탓에 수중 생물이 거의 살지 않았었는데
이곳은 천혜의 환경과 온천수의 풍부한 미네랄로 인해 물고기들이 신나게 번성중인듯 하다.

호수 너머에 보이는 까페인지 여관인지 모를 건물이, 사방 자연으로 덮힌 이곳에서 사람냄새를 조금 풍기고 있다.
만약 여관이라면 여유있을때 하룻밤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호수를 바라보며 즐기는 저녁과 아침풍경이 참 매력적일 듯.

 

크기는 좀 작다고 할 만한 호수인데, 분위기에 맞게 아담한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호수 바깥으로 빠지는 개천에도 물 속의 바쁜 움직임이 보인다.
물고기에게 먹이 주는 시스템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으로 이만큼 풍부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아직 이른 봄이지만 역시 이곳 유후인이라는 곳의 풍요로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지금의 풍경도 훌륭하지만 초여름쯤의 킨린코의 모습이 심히 기대된다.
샤갈 미술관이 초라해질 정도의 미려한 풍경화 한 장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 하다.
아무리봐도 민가로 보이는 집들이 몇 채 있는데, 센텀시티나 광안리의 주상복합 아파트보다는 조금 더 부럽다.

 

호수를 돌아볼 때면 항상 담아오는 사진이 있는데, 이렇게 수면에 입을 맞추고 있는 나무의 모습.
반영사진 등을 찍어도 재미있겠지만 어쩐지 이 모습이 예전부터 마음에 든다.
특히 잎이 만개한 소나무가 지긋한 곡선을 그리며 수면에 살짝 걸터앉은 듯한 모습이 최고.

 

일단 킨린코를 한바퀴 정주행했다. 좀 전에 보이던 가게 쪽까지는 가지 않고. 거기선 호수가 안 보이는것 같아서.
얼핏 화장실로 보일 정도로 조그마한 무인 신사가 킨린코의 마지막 코스를 장식하고 있다.
무인이든 유인이든 신사 앞의 소원 종이는 항상 나뭇가지에 걸려 있군. 한 녀석만 빨간게 눈에 띈다.
지인과 함께 저녁즈음 이곳을 찾았다면,  저기 걸터앉아 맥주 한 캔과 담배 한개피로 킨린코를 안주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봄에 피지 않는 녀석인 걸까. 개화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
은행잎과 닮긴 했지만 크기를 봐선 아닌 듯 싶고.
자연계에서도 이렇게 아웃사이더적인 녀석이 있어야 좀 더 재미가 있지.

 

킨린코는 산책하기엔 그만인 코스지만, 이곳 유후인이 그렇듯 특출난 포인트를 가진 곳은 아니라서
호수를 즐기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민가 근처의 수로를 감상하거나 하는 여유를 가진다면 더욱 좋을 듯.

 

신사는 정말 아무것도 없지만, 신사보다 이 나무가 훨씬 더 영험해 보인다.
나만 그렇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신목이라고 불러도 무리없을 정도의 거대하고 쭉쭉 뻗은 모습이 인상깊다.
신성하고 영험한 것은 아무래도 좋은데, 뻗어있는 모습이 참 건강해 보여서 기분이 좋아진다.

 

이 녀석도 몇 백년은 되었겠지. 사람의 주름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은 피부를 보면
얘네들도 속으로는 어느 정도 사람에게 익숙해져서 담담한 느낌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해 본다.

 

눈썰미가 좋은 분들은 킨린코의 첫 사진에서 저 조그마한 토리이를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
신사도 아담하기 그지없는데, 물 위에 세워진 저 토리이도 아담함의 극치를 달린다.
일본 3대 절경중 하나라는 이츠쿠시마(厳島) 신사 앞의 거대한 물속 토리이와 극단적으로 비교되기는 하는데
킨린코의 배경에는 요 정도 녀석이 정말 딱 어울린다.

이 토리이를 지은 사람이 돈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르지만, 이것보다 더 크고 웅장하게 지었으면 재미없을 뻔 했다.

 

이곳까지 왔으면 일단 킨린코 산책은 마무리. 돌아가기전에 거목 한장 더 남긴다.

 

킨린코 옆의 산책로로 빠질 수 있었지만 일단 왔던 길을 조금 더 되돌아간다.
그 조그만 물 속 토리이를 제대로 담은 사진이 없었기 때문. 신사 앞에서 망원렌즈로 무장을 변경하고 진군.
훗날 돌아와서 저 간판의 킨린코 소개글을 읽어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로,

원래는 유후다케(由布岳)산의 기슭에 위치한다고 해서 '산 밑의 연못'(岳下の池)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는데
모리 쿠소(毛利空桑)라고 하는 유학자가 저녁무렵 이곳 물고기들의 비늘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고 킨린코(金鱗湖)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방금 전 지나쳐 온 곳과 동일한 곳에서 찍은 사진. 저 위쪽은 광각으로, 이건 망원으로 담았다.
나무들은 본능적으로 물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일까.

 

적당히 담을만한 장소까지 와서 망원을 최대한으로 당겨 신사와 토리이를 담는다.
킨린코의 아담함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역시 여기는 저 정도 토리이가 제일 어울리는군.

 

가끔 완전히 물 속으로 도망쳐버린 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저렇게 들어가 버리면 썩어버리는데, 그럼애도 나뭇가지 위로 새로운 생명들이 자라나고 있다.

 

킨린코 산책코스를 막 빠져나오려는 순간 묘한 모습의 꽃이 눈에 들어온다.
그다지 본 기억이 없는 꽃이고, 모양이 신기해서 한참동안 바라본다. 해바라기같은 두상화인듯이 보이는데
중앙부가 아직 덜 핀건지, 저게 만개한 모습인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힘들다.

꽃 이름이라도 적혀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냥 반 야생화처럼 피어있던 녀석이라서 그런 거 없다.
아마 이곳 주변에서 피는 꽃일테니 산책하다보면 좀 더 마주일 일이 있을거라 낙천적으로 생각하며 킨린코를 뒤로 한다.


잠도 충분히 잤겠다 편안한 기분으로 일어난다. 무료 조식을 먹으러 가는건 언제나 기분좋은 일.
관광 시즌이라 그런지 한국, 일본, 중국 관광객들 덕에 1층 로비는 가득가득하다. 어쩔 수 없이 합석할 수 밖에.
사실 토요코인 호텔은 처음엔 조식 시스템이 없었는데, 경쟁력 강화를 위해 뒤늦게 조식 시스템을 도입하는 바람에
예전에 만들어진 호텔들은 대부분 1층 로비에 테이블을 차리고 있어서 좌석 여유가 별로 없다. 합석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울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대의 부부와 밥을 먹다가 아내분이 슬그머니 말을 걸어오신다. 부산보다 5배 정도는 먼 오키나와에서 오셨다고.
작년 자전거 여행때 오키나와도 갔다고 말씀드리니 남편분이 '그럴때는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연락해서 이러이러한 여행중이니 취재해보라'
고 연락을 주고 그걸로 유용한 맛집이나 숙소, 관광지 정보를 얻고, 운 좋으면 출연료도 받아먹고 하는게 좋다고 조언을 해 주신다.

본인 성격상 매우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 때의 빈곤함을 생각하면 역시 얼굴이 두터워야 여러가지로 편한 것은 사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날씨만큼이나 낙천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눈 딱 감고 그렇게 해 보는것도 좋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나가노현에서는 뭐 신문 기사에도 실리고 하긴 했지만.

8시 50분 유후인발 버스를 타고 2시간 20분동안 달리고 달린다.
한국인 관광객 몇 명을 포함해서 10명을 넘지않는 승객들을 보고, 유후인은 지금 쫌 널널한가 하고 기대를 품는다.
그냥 승용차였다면 1시간 40분만에 도착할 듯. 중간에 정차하는 곳도 많고 하타카 시내에서는 몇군데 빙글빙글 돌도 출발하기 때문.
큐슈엔 그런 곳이 많긴 하지만, 인기척이 전혀 보이지 않는 한적하고 빡빡한 숲과 산의 광경도 훌륭하다.

유후인에 도착해서 다시 버스 터미널 안 매표소로 들어간다. 어제 표를 발행할 때 돌아오는 티켓은 시간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버스가 오후 5시인데, 그때 갔다간 부탁받은 물건 쇼핑할 시간이 너무 촉박할 것 같아서 4시 버스를 부탁했다.
그러고나서 밖으로 나오니 유후인 역과 버스터미널은 바로 붙어있는걸 알 수 있었다.

검은색 목조 건물인 유후인역은 관광지답게 신경을 많이 쓴 느낌. 버스 안에서의 예상과는 달리 자가용이나 기차로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조금은 아쉽다.
저 위층엔 뭐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여행하는동안 깔끔하게 까먹어 버리고 역안으로 들어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낙담하기도 했다.
대기중인 택시가 유후인 역만큼이나 인상적인 녀석이라 슬그머니 프레임에 넣어본다.


이곳에 대한 기대치는 다자이후 못지않게 높았지만, 그 기대치의 종류가 조금 다르다.
다자이후는 텐만구와 스타벅스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일반적인 관광처럼 평소 보기 힘든 것들을 감상하기 위한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다.
유후인(湯布院)은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 대표적인 온천 휴양마을. 용출량이 일본에서 3번째로 많은 곳이다.
이곳에 대해선 사전에 조사한 것도 없고 가보려고 마음먹고 찾아본 곳도 없다.
단지 깊은 산골마을의 정취를 마음껏 만끽하며 순수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아왔기 때문에 시간에 쫓길 일도 없다.
그냥 발걸음 가는대로 하염없이 걸어다니면서 이 아담한 마을의 분위기에 잔뜩 취하는 것이 오늘의 유일한 목표.

물론 천연온천이 솟아나는 분위기좋은 여관 같은곳에서 주인장이 차려주는 호화 요리를 먹으며 별빛을 바라보는
그런 호사스러운 휴양만큼은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오늘 둘러볼 유후인은 온천 명소가 아니라 그냥 평온한 시골 마을인 셈이다.

사실 자전거 여행이 그렇듯, 유명 관광지를 바쁘게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눈과 머리에 집어넣는것 보다 이런 여행을 더 좋아한다.
자랑할만한 스팟도 없고 사진이 뿌듯하게 나올만한 포인트도 없지만, 기본적으로 여행이란 내가 살던 세상과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것.
관광과는 관계없는 시골 사람들이 일상적인 나날을 보내는 곳이라도 나에게는 주변 가로수, 주택가의 지붕, 낯선 표지판 하나가 전부 볼거리니까.
한국과 닮은점이 많은 일본의 풍경이지만 사실 조금만 꼼곰히 뜯어보면 같은 부분을 찾기가 힘들다.
사람과 사람의 이어짐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마을이란 결코 같을수가 없다. 비슷할 수는 있지만 근본은 분명히 별개의 것이다.


유후인 역에서 유후다케 산쪽으로 쭉 이어진 관광로를 벗어나서 살짝 평범한 주택가를 돌아봤다.
처음부터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일단 시골마을 유후인의 모습을 먼저 눈안에 새겨놓고 싶었으니까.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하고, 마을은 깔끔하다. 전봇대 옆의 불법 투기물도, 하수구 근처의 담배꽁초도 없다.

대여섯 걸음쯤 떨어진 곳에 저런 녀석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광경만 봐도 이 유후인이라는 곳의 특징은 대강 설명이 가능할 듯.
동물들이 사람의 거주지 앞에 거리낌없이 서 있는 마을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타입이지. 겉치레가 없는 솔직한 마을이니까.
물론 곰이나 맷돼지까지 마을 복판에 내려와서 내 염통을 쫄깃하게 만든 적도 있긴 한데, 그래도 일단 좋다.


약 20분간 일반 거주지를 슬쩍 둘러본 후 본격적인 관광 궤도에 올랐다.
유후인 역을 나서면 정면에 보이는 유후다케 산은 이곳 마을에서 신성시 되는 산으로 유명하다.
역사가 깊고 외진 마을에는 이렇게 마을에서 영산으로 추앙받는 산이 있다.
굽이치는 산맥의 아름다움이 유명한 한국의 명산과는 달리 이렇게 영산으로 추앙받는 산들은 대부분 고고하게 솟아있는 편이다.
그리고 대부분 한밤중 2~3시에 산을 올라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면 좋다는 이야기도 영산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얼핏 들은바 이 유후다케 산은 이 부근 토박이들에겐 위엄있는 산이라기 보다는 이 마을을 있게 해주는 어머니와 같은 푸근함을 느끼는 산이라고 하더군.
유후다케 산에서 뻗어나온 완만한 능선이 마을을 감싸안는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

날씨는 흐리지만 그 휴우타케산을 담기 위해 건널목 한가운데서 카메라를 쳐들었는데
사진에 보이는 자동차가 반대편 차선을 넘어서 나를 피해가는 모습이 들어와서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에 뒤에 차가 있는줄도 몰랐는데, 경적도 울리지 않고 그냥 스윽 돌아서 가 버린 것.


조금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인파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다.
온천으로 유명해진 농촌마을이란 어떤 이미지일까 마음 속에서 상상해 본다.
척박한 땅도 아니고, 대대로 농사 짓고 살아오는 곳이지만, 솟아나오는 온천 덕에 관광객은 항상 몰려든다.
자연스럽게 마을은 타지역보다 적당히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얻게 되겠지.

하지만 이곳은 교통의 요지도, 정치의 요지도 아닌 외지인 탓에 외부에서 오는 사람도, 외부로 나가는 토박이도 별로 없다.
몇 대째 농업에 종사하며 조금 여유로운 생활에 만족할 뿐. 야망이 없는 넉넉함에서 오는 느긋함이 이곳의 특징이라고 할까.
유후다케 산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넉넉하고 소박한 마을 풍경에서 느껴지는 듯 하다.


가게 옆에서 솟아나는 작은 온천물에 삶은 계란이 놓여져 있다.
계산은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는데, 사실 이곳은 가게 안에서 눈에 확 뜨이는 곳도 아니고
관광 거리 바로 옆이라서 유동인구도 굉장히 많다. 그냥 가져가 버려도 눈치 못 챌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옆에는 계란을 떠담을 국자와 바구니까지 체인에 연결도 되지 않은체 덩그러니 놓여있다.
역시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든다.


유후다케산을 지표로 해서 쭈욱 걸어나가다 보니 점점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점의 수가 줄어든다.
사실 중앙 거리에서 고개만 돌리면 이렇게 여느 평범한 시골 마을과 다를바 없는 풍경이 바로 펼쳐진다.

이곳이 관광지로 유명하긴 하지만, 적어도 관광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은 아니다.
자전거 여행때는 각인될 정도로 숱하게 봐 왔던, 친근하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던 평범한 마을의 모습.
촉박한 일정에 맞춰서 여기저기 버스와 기차로 옮겨다니며 워프라도 한 듯 관광지를 찾아다닐 때는 좀처럼 지긋하게 바라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 덕에 일반 주민들을 위한 상가도 당연히 들어서 있는 탓에
무인도 외에는 일본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파칭코점 역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년간의 자전거 여행동안 '세상에 이런 촌구석에도 파칭코냐'라고 할 만한 상황을 워낙 많이 만나서,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설마 유후인에 와서 파칭코 가게에 들어갈 외국 관광객은 없을거라 생각한다.
오히려 여기서 들어가보면 어느 누구도 경험못할 체험을 한 셈이 되니, 튀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


관광지의 모습이 거의 사라져가는 무렵, 조금씩 카메라의 뷰파인더에서 살짝 이질감이 느껴진다.
손가락 끝의 정전기보다도 미세한 느낌이지만, 사진을 재생해가며 결과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 가슴에 걸린다.
사진을 담을 때는 이렇게 본인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미세한 느낌을 놓치지 않는게 좋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담으려고 했던 것과 어딘가 달라보이는 느낌. 사진은 이런 사소한 것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높아진다.


정확하게 이거다 싶을 정도로 그 원인을 파악할만큼 본인의 내공이 출중한 편은 아니라서
잠시 고민해 보다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 어색함의 원인은 렌즈의 화각 때문이라고 판단해 두기로 했다.
유후인에서 이제까지 찍은 것들은 넓은 풍경을 한눈에 담아주는 광각 단렌즈를 사용했는데
내가 걸어다니면서 눈으로 느낀 유후인이라는 마을은 이 광각렌즈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특징없는 평범한 민가, 깔끔한 골목길, 아기자기한 마을의 풍경을 보던 나의 시선은 이것보다 좀 더 좁고 집중되어 있었던 듯 하다.
한 장에 많은 것을 담아내고, 사물을 좀 더 웅장하고 넓게 표현해 주는 광각렌즈는 이 마을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마을의 조각들 하나하나를 담아내는 것이 이 유후인이라는 마을을 표현하기엔 어울린다는 느낌.
그래서 일단 표준화각 단렌즈로 갈아끼워 본다. 40년전에 만들어진 완전 수동 렌즈는 아무래도 유후인과 나 사이의 시선에 더 어울릴 것 같다.


친숙한 편의점이 있는 곳까지 걸어오자, 그 앞에는 인도라고 할 만한 길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한다.
더 앞으로 나가면 아마 유후다케 산과 그 주변의 온천, 여관등이 나타날 법 한데
그 옆 표지판에는 킨린코(金鱗湖)라고 하는 호수로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
아마 유후인의 유명한 호수인듯 한데, 이 정도에서 킨린코로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걸음을 옮긴다.

킨린코 호수는 몇백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그래도 그 짧은 거리 사이는 느긋한 민가와 유유히 흐르는 수로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조금 늦잠자고있는 봄이란 녀석이 야속하긴 했지만, 화려하게 만개한 것 보다 이렇게 움트는 듯한 모습도 좋다.
집 앞마당에 이런 녀석이 서 있어서, 집주인 본인에게나 나처럼 슬쩍 들른 관광객에게나 좋은 눈요기거리가 되는 건 참 기분이 좋다.
그럴듯한 담도 없는 집이라서 훨씬 더 푸근한 느낌이라고 할까.


민가는 아니지만, 가게를 차린다면 이런 디자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멋진 녀석이다.
창틀의 매마른 가지마저도 멋진 장식이 되는데, 저 녀석들이 푸른 색으로 솟아나는 시기엔 얼마나 멋진 조합이 될 것인가.
대도시에선 별로 어울릴것 같지 않은 건물이지만 유후인의 분위기를 표현하기엔 딱 적당히 푸근한 녀석이다.

킨린코 호수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사라졌던 관광객들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뭐랄까, 분비된 호르몬을 따라 정확하게 구역이동을 하는 개미가 연상되는 듯 하다.
일단 관광지에서 인적이 없어지면 루트를 벗어났다는 말이 되니, 사람이나 개미나 별로 다를 것도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