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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에 해당하는 글들

  1. 2012.09.26  산인 여행 - 이즈모 타이샤의 처절한 소원들 18
  2. 2012.07.26  좁은 문 16
  3. 2012.06.25  스쳐지나감 23
  4. 2011.07.13  자전거 여행중 읽은 책들 18
  5. 2011.06.19  오만 6
  6. 2011.06.01  Enter at your own risk!! 12

 

 

주변 풍경이 훌륭하긴 하지만, 본전을 볼 수 없는 이즈모 타이샤는 이미 절반 이상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요 근래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텐만구나 킨키지방의 코야산 등을 다녀온 터라

반쪽짜리 이즈모 타이샤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애초에 인연을 맺어주는 신사라는, 나를 제외한 다른 커플들에게는 심히 중요한 소재가 주를 이루는 곳이라서

정겹게 두 손 잡고 참배를 하거나, '둘이 오래오래 러브러브~' 따위의 문구를 에마에 적어넣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그냥 녹음이 우거진 풍경을 감상하면서 잘 정돈된 산책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정도외에는 할 일이 없다.

 

본인은 일단 카메라를 들고 왔으니, 이제 에마에 적혀있는 염장질의 흔적이나 기념으로 담아와야지.

그 염장질을 찾아보기 전에 일단 꽤나 정성들여 제작한 이곳의 에마를 한장 담아본다.

저 정도로 색을 많이 넣고 디자인이 깔끔한 에마는, 외국 관광객들의 입장에서는 걸어놓기가 아까운 느낌도 든다.

실제로 외국 관광객들 중에는 그냥 기념으로 에마를 사들고 오는 경우도 많다.

 

 

 

진중한 분위기를 풍기는 신사에 걸린 에마는 좀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유명해도 일단 인연 맺기 신사이다 보니 조금은 어깨 힘이 빠진 느낌이 든다.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선택되는 신사가 사실 제일 재미있고, 유명 애니메이션에 나온 신사에 가면 다들 그림그리느라 정신이 없기도 한데

과연 이곳은 어떤 문구가 나를 즐겁게 해 줄것인가 살짝 기대된다.

 

중앙의 저 에마는, 다른 문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녀석인데, 좌측 상단의 'とりあえず彼氏がほしい' 라는 문구가 인상적.

뜻은 '일단은 남자친구가 필요해' 이다. 아무래도 여성 관광객인 두 명이 여행온 듯 한데...

세상에 솔로는 나만 있는게 아니구나 싶어서 왠지 응원을 보내주고 싶어지게 만든다. 니시카와 와카코씨한테 얼른 남친한마리 떨어지길.

 

 

 

이 녀석은 또 넘기기 힘든 문구를 적어놓았다.

자전거 여행 온 사람인듯 한데, '무사히 야마가타에 자전거로 돌아갈 수 있기를' 이라고 적혀 있다.

야마가타현은 토호쿠지방 후쿠시마현과 인접한 곳으로, 여기서의 거리는 서울서 부산의 2.5배가 넘는다.

올 때도 자전거로 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혹여 예전의 나처럼 자전거로 일본 전국을 일주하는 사람일 가능성도 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왠지 동지애를 느끼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물론 돈내고 에마를 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내가 일본 자전거 일주할 때, 신에게 기도를 올린 적은 딱 두번.

출발 전 도쿄 아사쿠사에서 5엔짜리 (한국돈 70원)동전 하나 던지고, 무사히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첫 번째.

일본서 가장 신성한 곳인 이세 신궁에서 50엔짜리 (한국돈 700원) 동전 하나 던지고, 로또 당첨될 수 있기를 바란 것이 두 번째.

 

로또가 많이 고팠는데, 50엔 정도의 뇌물로는 어림없었던 것 같다. 500엔짜리 로또에 당첨이 되어서 한장 더 사본 경험은 있지만.

 

 

 

장사가 잘 안되는 신사는 좀 황량한 느낌도 드는데

이즈모타이샤는 그럴 걱정이 없는 곳이니, 아주 빡빡하게 에마가 걸려있다.

거는 곳이 이곳뿐만이 아니라서, 걸려있는 에마들의 단순 구입가격은 약 10만엔쯤 할 듯.

이런 곳이 서너 군데는 있었으니, 회전율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6백만원 정도의 이익은 있을 듯 하다.

 

신사에는 에마 말고도 여러가지 부적, 기념품을 팔고, 본전에 참배할때도 돈을 던져넣기 때문에 꽤나 짭짤하다.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신사는 정부로부터 보조금도 받고, 결혼식장으로 사용되기도 하니까 나름 괜찮은 편.

의외로 개인 소유의 신사가 꽤 많은 편이라서, 큰 부자는 못되도 대를 이어 먹고사는데는 문제없는 가게라고 생각하면 될 듯.

 

연말연시에는 작은 신사라도 불티나게 바빠질 정도로 참배객들이 몰려들고, 신사의 지주는 대부분 지역 토박이인 탓에

한국에서 거의 전멸중인 지역경제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는 톡톡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는 곳.

종교적인 시설인 만큼 지주의 사생활도 꽤나 조심스러운 편이라, 그 엄격함에 후계자 위치를 관두고 나와버리는 자식들도 있다.

한국의 종교야 뭐... '토호쿠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주식회사 예수를 믿지 않아서'라는 똥을 입에 물어도 믿습니다! 를 외치는 곳이니까.

 

 

 

잠깐 안구에 습기 좀 닦고...

차마 상세하게 번역할 수는 없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처절한 에마가 떡하니 걸려있다.

'O형에 귀여운 독신여성과 결혼전제로 사귈 수 있기를, 부디 부탁드립니다' 라는 뜻으로... 크흑.

 

거기다 얼마나 현실적인지, 아니면 절박한건지 자기 주소까지 꼼꼼하게 적어놨다.

류타라는 이름의 남성이여. 여기서 이럴 시간 있으면 그냥 오사카 시내에 놀러나가는게 더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리고 혈액형이 대체 뭔 관계람. 독신여성이란 단어 안 적어놓으면 불륜이라도 할 생각인가?

결혼전제라는 말을 붙일 때부터 여성에게는 부담이 클 것 같은데... 눈이 높은건지 그냥 생각이 없는건지 스스로 벽을 쌓는 느낌이다.

100엔짜리 공물 하나 받아먹고 들어주기에는 오오쿠니누시에게도 좀 리스크가 큰 소원인 것 같은데.

 

 

에마만으로 부족한지 이곳 나무 곳곳에는 소원을 비는 종이가 가득 매여있다.

 

이거 나무한테 부담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손이 닿는 곳에는 전부 매여있어서

이곳 관리하는 사람들도 할 일이 없는건 아니구나 싶다. 저걸 전부 일일히 손으로 풀어서 모아놨다가 날 잡아서 태워야 하니까.

보지 않는 곳에서 마구잡이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저런 것 정중히 처분하는것도 신사의 일이라서, 만약 잘못하면 뉴스에 실릴 정도의 사건이니까 그런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듯.

 

 

 

이름난 신사이다 보니 찾아온 관광객들을 위한 서비스정신도 훌륭하다.

날씨가 더운 탓에, 휴게소 곳곳에 얼음을 넣은 선풍기를 작동시키고 있다.

 

시각적으로는 햐안 김이 바람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게 엄청 시원해 보이지만

아주 가까이 가지 않으면 그닥 효과는 없는 편. 그래도 저런 걸 설치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이런 사소한 배려 하나하나가 쌓여서 관광온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결코 쉽게 생각할 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조금 기분좋아진 채로 목 끝까지 짜릿하게 시원한 음료수 하나 뽑아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가면 라이더 그림을 박아넣은 센스작품 '가면 사이다'도 오랜만에 보지만, 그건 자전거 여행때 뽑아먹었으니 패스.

 

일본은 음료 자판기 옆에는 반드시 쓰레기통을 비치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서 뽑아먹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게 별것 아닌 듯 해도 사실 굉장히 유용하고 편리한데,

일본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말 이래도 장사가 되는가 싶을 정도로 자판기 숫자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길다가 생각나서 목을 축이고, 걱정없이 쓰레기를 금새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마음 든든한 일이다.

 

 

 

목도 축이고 휴식도 취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좀 전의 배전을 한바퀴 더 돈다.

처음부터 한바퀴 더 돌아보기 위해서 사진도 찍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관광객이 줄어든 틈을 타서 한 장 남긴다.

여행 사진에 어지간하면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냥 사진만 봐서는 황량한 곳을 혼자 돌아다닌듯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은 가능한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타이밍을 노려서 찍고 있으니 오해가 없었으면.

 

저작권(?)이니 초상권이니 하는거 신경쓰기도 귀찮고, 실제 여행중에서도 관광객은 내 시선에서 한참 떨어져 있기 때문에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의 물리적인 숫자와는 별개로, 여행 때 보고 느낀 나의 시선은 대충 이런 사진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는 더더욱 그렇기도 한데, 목조건축물이 많은 일본의 문화재는

보존하는게 보통 힘든일이 아니기 때문에, 관광객 감소를 감수하고서라도 주기적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이게 되어 있다.

그것도 빨리빨리가 아니라 약 5년 정도의 기간을 들여 꼼꼼하게 복원하니,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에게는 여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을 듯.

 

이즈모타이샤의 본전이 거대한 편이긴 하지만, 저 정도 크기의 건물을 5년동안 보수한다는 건 진짜 그동안 뭐하나 싶을 정도.

 

 

 

이즈모타이샤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라면 단연 이 녀석이다.

이건 시메나와(注連縄)라고 부르며, 한국 토속신앙의 금줄과 같은 의미를 가진 녀석.

단지, 이곳 이즈모타이샤의 시메나와가 다른 곳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다보니 명물로 유명해졌다.

 

사실 일본여행가서 조금만 눈여겨보면 조그마한 시메나와는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동네 조그만 신사나, 음식점 입구 위, 혹은 그냥 일반 가정집 문앞에서도.

보통은 새해 첫날 악귀는 물러가고 복이 들어오기를 기원하며 걸어두는 경우가 많다.

 

이곳 배전의 시메나와는, 다른 곳과 비교하면 크긴 하지만 이게 이즈모에서 가장 큰 녀석은 아니다.

인연맺기의 소중함이라고 할까, 유독 이곳 이즈모탸이샤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XX 라는 타이틀을 가진 것이 많다.

본전 구경은 할 수 없지만, 이 거대한 시메나와 역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이니 실컷 감상한다.

 

 

 

일단 배전의 시메나와도 보통 큰 녀석은 아니지만, 이즈모타이샤 하면 생각나는 그 시메나와에 비해서는 작은 편.

원래는 여기서 배전 구경 한번 하고, 본전으로 들어가서 국보급 건축물의 위용을 감상한 후

돌아오는 길에 카구라덴(神楽殿)을 보는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본전 구경이 불가능하니...

그래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참배를 하는데, 일반적으로 손뼉을 두 번 치는 신사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자신과, 미래의 인연을 위해서 네 번을 친다고 한다. 역시 인연맺기의 신사.

 

이곳은 제국주의의 잔재가 묻어나는 신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곳이고

애초에 오오쿠니누시라는 신이 진한과 신라 이주민들과 관계된 녀석이라, 인연 맺어지기를 기원해도 별 문제는 없을 듯.

하지만 그것도 저것도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실들...

 

이곳 본전은 한때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다가 1744년 재건된 녀석인데

재건당시 크기가 24m로 꽤 큰편인데도 불구하고, 기록상 전해지는 본전은 48m나 되는 거대한 녀석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건축물.

덕분에 본전 자체에 들어가는 것은, 공사기간이 아니더라도 불가능하다. 그냥 옆에서 살짝 구경만 할 수 있는데

지금 공사 덕분에 그 살짝 구경조차도 못하는 실정이 되어버린 것. 관광객으로서는 아쉽기 그지없지만

지은지 300년된 국보 목조건축물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긴 하다. 허무하게 사라진 숭례문의 케이스만 봐도.

 

내년 5월인가부터 다시 일반인에게 공개된다고 하는데, 사실 흥미깊은 건축물이긴 하지만

이것때문에 다시 시마네현을 찾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훗날 포스팅에 설명하겠지만 다시 갈만한 일이 좀 생겨서.

 

 

 

이 배전 앞이 조금 전 비둘기를 바라보며 휴식하던 곳인데

그 쪽으로 가보니 왜 비둘기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먹이주는 상자가 놓여있었기 때문.

내가 휴식을 취하던 곳은 뒤쪽 벤치라서 여기에 먹이상자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한 봉지 20엔짜리 먹이는, 20년전 일본을 찾았을 때 본 후로 정말 오랜만이다.

20년 전에는 도쿄의 신사에도 이런 먹이상자가 설치되어 있어서, 흰 비둘기들이 사람에게 막 덤벼들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둘기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후 그런 먹이상자는 대부분 철거되어 버렸다.

이곳은 워낙 외진 산골짜기라서 먹이를 줘도 큰 문제가 없는 듯 하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절대로 도망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녀석들.

 

 

 

저 녀석들이 덤벼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경험해 본 나로서는

단벌 옷에 카메라까지 들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먹이를 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가만 기다려 보니 젊은 커플이나 나이 지긋한 단체 관광객이 가끔 먹이를 꺼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엇는데

일단 저 상자에 손이 다가가는 순간 털 고르고, 암컷 쫓아다니던 녀석들의 시선이 일순 집중되는 묘한 풍경이 연출된다.

먹이봉투를 손에 들면 그야말로 미친듯이 달려들며 한껏 소리높여 애교를 떠는데, 비둘기라는 녀석 참 적응력도 좋다.

 

마구 쓰다듬어도 먹이가 손에 들려있는 한 도망가지 않기 때문에 녀석들의 귀여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에서 사는 비둘기야 도시 녀석들처럼 더러운 편도 아니라서, 열심히 놀아주고 손 한번 씻으면 그만일 터.

물론 옷에 알록달록한 액체 X가 달라붙을 수 있으니 그점은 항상 조심해야 하겠지만.

 

머리도 좋아서, 먹이를 손에 든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다가오지 않는 영악한 녀석들.

 

 

 

이 비둘기 아지트 오른편에는 보물전이 있어서 이곳의 중요 문화재들을 감상할 수 있지만

몇 번이고 들어가본 보물전이란 곳은, 의외로 입장료만큼의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패스.

 

사진도 당연히 찍을 수 없고 한국어 설명은 조잡하고, 일본어 설명은 어려운 한자가 꽤 많이 들어가 있는데다가

어지간히 지역 역사와 문화를 알고 있지 않으면 그 문화재에서 느낌을 받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한가로운 비둘기들의 모습을 빼면, 조금 소름끼칠정도로 깔끔하게 정비된 신사 내부를 한번 더 둘러보고

슬슬 돌아보지 못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신사 하나만 볼거리가 아니라 마을 전체가 산책로나 마찬가지니까.

 


우주의 탄생만큼이나 신기한 우연이 운명처럼 겹치고 겹친 결과

여행중 만난 고등학생 소년의 집에 홈스테이 명분으로 들어가서 쉬게 된 여름날.

 

여행경비 충당을 위해 이것저것 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그쪽 마을은 인구가 몇백 명밖에 되지 않는, 나가노현의 아주 외진 시골마을이라서

바이트 찾는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원맨열차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 마츠모토에 자주 일자리 찾으러 가곤 했다.

도착시 낭낭한 목소리로 '마츠모토~ 마츠모토~' 라는 소리가 나오는게 특징인 도시.

 

한국사람이 운영한다는 커다란 고기구이집이 있어서 찾아가 봤는데, 빈자리가 없단다.

국보 마츠모토성이 위치해 있어서 꽤나 큰 도시임에도 불경기는 불경기라 바이트 자리는 별로 없고.

편의점 정도의 바이트로는 마츠모토까지 왕복 교통비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 난감했을 때.

 

38도까지 올라가던 날은 정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체감온도는 43도 정도.

홈스테이 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면, 이런 날씨 즈음에서 픽 쓰러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36도쯤 되는 날씨에 10시간 정도 달려봤더니 거진 사하라 사막 마라톤과 비슷할 정도의 체력소모를 느꼈다.

 

이 날은 멍하니 저 38도를 바라보다가 역 옆의 조그만 공원으로 걸어가서 전자책을 꺼내들고 책이나 읽었다.

집에 있는것도 아니고, 여행중인것도 아니고, 꿈 속에 있는 듯한 폭염 속에서 꺼내든 책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201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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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2012. 7. 26. 20:02 현실도피

 

 

귀국까지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은 날.

1년간의 자전거여행 도중 3번씩이나 같은 길을 다닌 것은 이 코스 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지산이 보일 정도로 날씨가 좋았던 날은 적은 딱 한번 뿐.

 

덤덤하게 자전거를 세우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고, 망원렌즈의 구도를 잡기 위해 10미터 정도 뒤로 걸어간다.

여행의 마지막 즈음에 간신히 보게 된 풍경이지만 사실 마음속엔 감격이나 황홀함이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냥 단지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는 묘한 아쉬움이 카메라를 무겁게 만드는 느낌.

 

주섬주섬 카메라를 집어넣고 나서 달리는데, 맞은편에서 비슷한 행색의 자전거 여행자가 달려온다.

같은 자전거는 아니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전륜 후륜에 가방을 4개 달아놓은, 땀에 절은 모습의 여성 여행자.

여행중 남녀 함께 다니는 자전거 여행자는 몇번 봤지만, 혼자서 달리는 여성은 처음이다.

해외로 나갈게 아니라면, 일본인이 일본 국내에서 자전거여행 하는데 가방을 4개 달고 달리는 경우는

거의 100%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장거리 여행 초보.

아님 나처럼 카메라에 큰 비중을 둬서, 거대 DSLR과 렌즈 서너개를 넣고 달리는 묘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거나.

 

슬쩍 보니 옷은 동네 슈퍼 나갈때나 입을 법한, 한적한 반팔 투톤 티셔츠. 면 소재라서 땀으로 진득할 터.

본인 나이도 기억 못하는 성격이라서 남들 나이대 추정에 매우 어려움을 겪는 터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많아봤자 20대 초반인 듯 하다. 치장없는 단발머리에 가벼운 옷차림으로는 고등학생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주달리고 있으니 체감 속도는 약 20km/h 정도?

서로의 얼굴을 인식할 정도의 거리에 들어서자 거의 동시에 서로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나나 그쪽이나 얼굴에 미소 하나 없는 표정으로

동족 여행자에 대한 반가움이나, 여지껏 달려왔던 무용담에 대해 털어놓고 싶어하는 근질거림 따위는 한 치도 보이지 않는

그런 무표정한 얼굴로 가볍게 목례 한 번.

 

10억초를 넘는 인생중 단 1초동안 나눈 그 인사는, 아마 평생 두번다시 겪을 일이 없겠지.

혹여 만날 일이 있다고 해도, 이미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그 사람이 어디 쯤에서 하룻밤을 묵게 될지 대충 예상이 가고

또한 돌아올 때, 반대 방향에서는 보이지 않던 저 후지산을 보고 다시 한번 신선한 느낌을 받을 거라는 예상이 간다.

 

여행의 인연이란 이렇게 일방적이면서도, 그 1초의 만남조차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화석과도 같은 것.

어지간하면 생일같은거 기억 못하는 성격임에도 꽤나 쉽게 기억되는 본인 생일날

이런 추억이 문득 떠오른다는 것, 스스로에게 주는 멋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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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지나감 :: 2012. 6. 25. 12:14 현실도피


1년간의 자전거 여행이라 지루함을 덜어보고자  E-Book을 최대한 담아갔습니다.

만약 서점에 E-Book이 좀 더 대중화 되었다면 몇 배는 더 가져갈 수 있었는데... ㅡㅡ;

1년동안 책을 추가할 수도 없고 해서 충분히 검증된 녀석들만 가져갔습니다. 예외도 있긴 하지만. ㅡㅡ;


천년의 금서 - 김진명

휴우~ ㅡㅡ+

리더기를 사니 공짜로 들어있었던 녀석이라 그냥 읽어봤습니다.
할 말이 없네요.

이게 책이냐?

어디가서 자랑할만한 필력은 아니지만, 이런 것도 소설이라고 나오는 현실을 보면
저 역시 그리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될런가 싶은 희망을 가지게 해 주는 장점은 있습니다.
딱 그냥 초딩수준.

주제에 대한 접근이 노골적이라는 단어를 뛰어넘어 그냥 폭발해 버렸다고밖에 할 수가 없네요.
쉽게 말하면. 그냥 앞페이지 소개글만 읽으면 소설(이걸 소설이라 해야 하나...) 전체를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한 문장도 필요없어요.
유치찬란한 문체에 어색하기 짝이없는 진행. 안 된다 싶으면 툭툭 튀어나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냥 넷에서 할 말만 내뱉는 쪽이 더 낫습니다. 이걸 문학작품이라고... ㅡㅡ;

띠지에 나온 것처럼 진짜 위험하긴 위험한 책입니다.





88만원 세대 - 우석훈, 박권일

젊은이들을 열받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굉장히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가끔 그 친절함이 되려 설득력을 떨어트리기도 하는 단점도 있지만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의 되먹은 꼴을 보면 이 정도 단점은 필요악이라고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로 미미하네요.

현실감각이라고는 쥐똥만큼도 없이 그저 이상론만 주구장창 읊어대는 허세 경제인들의 잡담보다는 훨씬 실용적입니다.





올란도 - 버지니아 울프

쉬운 책이 아니죠. 번역본에서 만족을 느낀 적이 없는 책인데, 추천해 주실만한 번역본이 있을지?

신인류로(?) 각성해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올란도의 심리 변화는
결국 여성의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한계가 느껴지긴 합니다. 작가가 여성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요.
그래도 이렇게 몽환적이면서도 시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묘사력은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변신 - 프란츠 카프카

달리 설명할 말이 없습니다.
'심판'도 함께 들어있어서 간만에 눈에 핏발좀 세우고 읽어봤네요.
하지만 심판은 변호 해주고 싶어도 이미 무너져가는 카프카의 인생이 영향을 크게 미친 책이라
미완의 즐거움을 논하기엔 빠져버린 챕터와 함께 의미마저 사라져가는 난잡함이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변신'이야 카프카의 작품 중 가장 간결하고 멋지게 완결된 단편이니 그저 행복할 뿐.






타워 - 배명훈

이런 작품을 읽으면 왠지
푹푹 찐다고 할 정도로 덥진 않지만, 에어콘을 틀기엔 아깝고, 그냥 가만 있으면 찝찝할 정도의 더위에
선풍기를 틀고 시원한 음료수 한 잔 들이킬 때 느끼는 만족감과 같은 것을 느끼더군요.

노골적이고 식상하지만 거기에 딱 맞게 힘을 뺀 가벼운 서술과
'타워민국(?)'이라는 모순과 부정덩어리의 세상에서도 꼬물꼬물 자기 삶을 찾아가는 인물들의 귀여운 모습은
비관 일색인 저한테는 살짝 눈부신 느낌도 들지만, 이 정도면 꽤나 적당히 행복한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전 역시 첫 챕터가 제일 마음에 드는 걸 보면... 성격이 어디 가진 않나보네요.




달과 6펜스 - 윌리엄 서머셋 모옴

중학교때 읽고나서 지금까지 계속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책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사회는 대중들에게 '예술은 예술가가 하고, 인간은 자기의 삶을 살아갈 뿐'이라고 외칩니다.
그래야 돈이 굴러가니까요.

그래서인지 삶 자체가 예술이었던 스트릭랜드가 저한테는 멋져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히든 바흐 - 로버트 슈나이더

리더기에 들어있던 책 NO.2

그래도 천년의 금서따위보다는 100배 낫습니다.
아니, 사실은 꽤나 재미있습니다. 굉장히 유쾌합니다.

호밀밭을 지키는 누군가가 꽤나 싫어할 만한 못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
혼자서 벌이는 뇌내 망상들이 즐겁게 다가오는 작품이죠.
가끔 도박만화의 걸작 '카이지'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주인공의 극단적인 심리묘사가 재미있습니다.

그래도 주인공을 위해 바흐가 인증까지 해 주는 마지막 챕터는 좀 사족이었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방인 - 알베르 까뮈

이 작품 내의 법정 공방에서 드러나는 치부는 현재 한국의 여론과 너무나도 흡사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죠.
개성이라고 정의되던 수많은 것들을 '정신병'이라는 단어로 규정하고
조금 더 떠서 거기에 광기라는 폭력성을 점잖은 도덕적 규범이란 소스로 치장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 파시즘에 물든 파라다이스가 만들어집니다.
구성원 모두가 자신을 모범적 앨리트라고 자신하는 세상이죠.

그런 면에서 정말 뫼르소는 20세기의 메시아인지도 모르겠네요.




호밀밭의 파수꾼 - J.D 샐린저

번역본을 좀 더 리얼하게 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왠지 홀든이 생각했던 것 보다 신사로 보이거든요.

여전히 제 마음 한구석에서도 '이런~ 병X'이라고 가끔 생각나게 하는
이 돌아이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저보다 순수한 존재 뿐일런지.

그래도 역시 극중 등장하는 어떤 인물보다도 홀든 녀석이 진짜 마음에 듭니다.





여자의 결투 - 다자이 오사무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자이는 정말 수줍은 카프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판은 이 단편만으로 책을 낼 수가 없으니 다른 단편들도 함께 넣었는데
'광대의 절규'라는, 다자이의 가장 자전적인 단편이 들어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러고보니 이 책의 마지막 중편 '쓰가루'를 읽고
꼭 한번 쓰가루 쪽을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루트가 꼬이고 꼬여버려서 결국 가보지 못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래도 뭐, 아쉬워 할 필요 없겠죠. 가고 싶은 곳이 남아있다는 건 다시 갈 기회가 있다는 뜻이니.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는 역시 이런 글이 진국인듯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간 하루키의 무서움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긴장하게 되더군요.

음악 없이는 하루키의 작품이 없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매니악하게 음악에 매달리는 하루키를 '소설'이 아닌 형식으로 접하게 되면
그 리얼함에 위축되거나 한단 말이죠.

그래도 소개된 아티스트들 중 너댓 명 정도는 그럭저럭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즐겁게 읽었습니다.
근데 비치보이스는 아무리 들어도 저하고는 그닥 코드가 맞지 않는게 좀...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핏제랄드

이 작품을 출판사에 들고 가서 20세기 최고의 작품이 될거라 호언장담한 핏제랄드의 모습을 상상하면
왠만해서는 그런 호언에 동의하지 않는 저로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군더더기 없는 미려한 서술이 가능한지. 아름답다는 말 외에 어떤 칭찬히 필요할까요.
그 허무했던 풍요의 시대를 매력적인 인물과 과하지 않은 묘사, 인간의 본질을 가볍게 꿰뚫으면서도
시선의 중립성을 손상받지 않을 정도의 개입. 웰메이드 소설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원래 딱딱하지도 않지만 가끔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드는 장면도 빠지지 않는걸 보면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속이 꽉 찬 소설이란 딱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네요.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소설만큼이나 기구한 작가의 생애로도 주목을 받는 작품이긴 한데
가끔 어설픈 차도남(한국에 돌아와서 배운 단어입니다. 처음엔 저처럼 차 마시는걸 좋아하는 남잔줄 알았네요. ㅡㅡ;) 컨셉으로 인해
괜히 이 작품까지 얽히는 경우가 있어서 씁쓸함을 느끼곤 합니다.

인물들의 심리가 웨더링 하이츠의 매서운 바람보다 더 거칠고 혼란스럽다는 점이 매력포인트였습니다.
히스클리프의 악마적 매력은... 10~20대 감수성 깊은 여성들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오겠구나 싶더군요.
근 200년 가까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도 본성이라는 걸까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이 책에서는 커피 향기가 납니다. 그리고 커피 맛도 납니다.
커피향 종이를 썼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ㅡㅡ;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할 수 있는 1980년대의 향기와
인물들이 개개인으로 존재할 때 스며나오는 인생의 쓴 맛과
인물들이 서로 얽히기 시작할 때의 시큼하면서도 약간은 달콤한 맛이 말이죠.

담담한 배경에 묻어가듯 차분했던 인물들이 에너지를 얻게 되면서 추억은 낭만으로 탈바꿈하더군요.
단지, 시대상을 생각할 때 1980년대 중반이라는 설정은 글의 분위기에 비해 좀 뒤늦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예전에 엄니께서 지금의 저보다 젊었을 시절에 누군가에게서 받은 러브레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와서 스윽 훑어보면야 달콤씁쓸한 닭살이 돋는 문체일지도 모르지만
글 전체에 느껴지는 열정과 순수함은, 2011년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겐 퇴화해 버린 감정이라고 생각.

이 책에서 느꼈던 감정은 바로 그런 감정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인물들의 대사, 행동, 심리 등은 적어도 20년은 시간을 뒤로 당겨야 어울릴것 같았단 말이죠.

뒷부분은 굳이 이런 복고적인 작품에 첨가할 필요가 있었는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영화로 만들려면야 적당한 장치가 되겠지만 소설의 특성을 생각하면 좀 생뚱맞긴 합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줄임표가 너무 많네요. ㅡㅡ; 줄이지 않은 문단에 말줄임표의 폭풍이...

그럼으로서 작중 시대보다 20년은 더 낡아보이는 배경장치에
작중 시대보다 20년은 더 신선해보이는 문단 구성의 괴리감이
오히려 묘한 매력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좁은 문 - 앙드레 지드

지금은 아니지만 카톨릭이 모태신앙이기도 했던 저였기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서구 문화에서 종교가 가지는 저반적 기능이 얼마나 광범위한지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철없는 아이들의 닭살행각이 주를 이루는 이 작품에서
그것을 승화시켜주는 장치의 현실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이건 20대 넘어서 읽는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작품이네요.

아무리 본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이런 미려한 문체로 화자를 넘나들며 그림 그리듯 흘러가는
앙드레 지드의 필력은 감탄할만 합니다.

순수한 영혼을 얽매는 것은 그보다 덜 순수하고 금욕적인 종교였을까요.
어느 정도 늙었다면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대답을 찾기엔 너무 순수했던 아이들의 비극이 가슴 절절히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코맥 맥카시

21세기 최고의 스릴러 영화중 하나였고
그 명성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 멋진 원작이었습니다.

원작은 특히나 에드의 독백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보였던 그의 허무한 노력과 고민에 비해 좀 더 납득할만한 여지를 남겨주더군요.
사막의 먼지바람만큼이나 매마르고 담담한 서술과
절제도 과장도 아닌 순수함으로 단단히 무장된 맥카시의 묘사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세삼 코엔 형제가 이 단단한 작품을 유연하게 영화로 옮겨낸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한편으로 이 작품을 설명할 수 있고
이 작품 한편으로 시간과 시대의 흐름이 가지는 무자비한 폭력성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름 꽤 넣어갔으니 여행도중에 심심하진 않겠구나 싶었는데
왠걸 위에 나온 책들 '천년의 금서'를 제외하면
전부 5번 이상 읽을 정도로 책이 모자랐어요. ㅡㅡ;
아껴 아껴 읽는다고 해도 사실 필받으면 멈출수가 없어서리.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 되어 있었다면 50권 정도는 넣어갔을텐데.
그래도 여러번 읽는 것 역시 우려내는 재미와 맛이 있어서 후회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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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습진으로 덮혀 말라붙은 피투성이.
가늘고 가쁜 숨을 내쉬며 비틀거리는 발걸음.

다가가려니 힘겹게 경계의 울음과 함께 간신히 몇 발 뒤로.
렌즈를 망원으로 갈아끼고 멀리서 안식을 기원하는 것이 최선의 배려.

이 녀석의 당당함을 무신경한 친절과 이기적인 애처로움으로 치장하는 것은 실례겠지.

오키나와 나고시 주변 편의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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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 2011. 6. 19. 02:14 Photo Diary


이 곳은 쨍쨍한데

12시 쪽은 그야말로 한밤중

이 정도면 한숨 대신 웃음이 나올 지경


그래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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