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경계가 가까워질수록 업다운이 심해진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어지럽히는 건 바로 옆의 7번 국도다.

구 국도와 신 국도가 한동안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나 있는데
신 국도가 완만한 경사로 주욱 올라갔다가 주욱 내려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구 국도는 확 내려갔다가 확 올라가는 방식으로 나 있어서
느긋하게 달리는 7번 국도 자동차들의 머리 위로 힘겹게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는 코스가 계속된다.

어차피 신 7번국도는 자동차 전용도로라 자전거가 달리지는 못하지만 뭔가 차별받는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해안과는 좀 멀어져서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이 많았지만
한참을 나란히 달리던 7번국도에서 떨어져서 잠시 땀을 식힌다.

강원도와 경상도는 이제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려 있는데
자전거로 오를 수 있는 길이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지금까지처럼 오래 걸리지만 못넘을 경사는 아닌 진득한 오르막길.
또 하나는 한동안 해안가에 바싹 붙어 평지를 달리다가 순식간에 산을 오르는 가파른 길.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경사가 완만한 곳을 선택하겠지만
그곳은 지금까지처럼 7번국도와 바싹 붙은 곳이라서 바다도 안보이고 매연냄새가 지독할 것 같아서
사실상 자동차도로가 아닌 가파른 마을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살짝 오기가 동했는지도 모르겠다.


약 20분간 편안하게 해안 도로를 달릴 때까지는 모든것이 평화로웠다.
신기한 눈으로 한번씩 쳐다봐 주시는 마을 분들의 눈빛도 두렵지 않을 만큼.
해수욕장이 아니라 깔끔한 모래는 아니지만 한동안 업다운으로 지친 나를 위로하기엔 충분한 풍경이다.


역시 관광지에서 벗어난데다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라서 화장실이 없다.
가끔 이런 곳에서 실례하는 것이 그리 죽을 죄는 아니라고 장거리 여행자들은 다들 생각하지만
그래도 일반인들 눈에 들어와서 괜히 위축될 필요는 없으니 한참을 이리저리 경계한 후 수풀더미에 슬쩍 실례를.


마을 어귀에서 시작되는 오르막은 예상대로 상상을 초월한다.
약 10km에 달하는 오르막을 1.5km 만에 오르는 길이니 거의 정상 부근의 등산로를 생각나게하는 경사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것조차 힘에 부칠 정도였으니
터질듯한 허벅지 근육과 더불어 오랜만에 팔에 힘좀 들일 수 있는 경사였다.
머금다 머금다 한계를 넘어버린 버프에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주륵 주륵 빗물처럼 땀이 흐른다.

물은 모자라지 않게 갖고 있었으니 중간중간 쉬어가며 수분을 보충해 준다.
가끔 굉음을 내며 슬금슬금 올라가는 자동차를 보니 역시 편하게 해안가를 달려온 댓가는 치뤄야 하나 보다.


여행 중 유일한 셀카도 한장 남겨두고 다시 자전거를 밀어 올라간다.
40분 가까이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랐는데, 정상에 도착하니 정말 산을 오른게 맞더라.
완만히 오르는 도로와 맞닿는 곳까지 오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선택을 잘못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게, 다른쪽 길도 2차선의 좁은 도로라 자동차 신경쓰며 오르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
이제부터 이어질 내리막과 평지에 가슴 설레며 그리웠던 자전거 안장에 올라탄다.

산을 내려와 기사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뭔가 메뉴에 이것저것 적혀있어서 적당히 주문했는데
아주머니께서 웃으면서 지금은 정식밖에 안되요 라고 하신다. 그럼 메뉴의 의미는?
흔쾌히 백반을 부탁하니 마침 볶음밥도 만들고 있는 중이라서 쌀밥 대신에 볶음밥도 가능하다고 하신다.
여러가지로 재미있는 곳이라 생각하며 볶음밥과 소박한 정식을 음미했다. 가정식에 가까운 소박하고 정갈한 요리라 부담없이 해치웠다.


조그마한 해수욕장에 무서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계속 모래가 깎이다 보니 언덕 위에 만들어둔 주차장 한 쪽이 무너져 내린 것.
얼핏 봐서는 왜 이렇게 바다와 가깝게 주차장을 만들었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모래가 쓸려나가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니 이곳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이렇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완벽한 폐장상태의 해수욕장. 이곳저곳 심각하게 깎여나간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이제 몇몇 해수욕장은 개장시 모래를 다른 곳에서 대량으로 가져와 퍼붓는다고 할 정도니.
가뜩이나 냄비근성의 화신이라 불리는 한국사람들이 자연 훼손 따위에 신경이나 쓰며 만들었을까.

시즈오카쪽 해변가는 반대로 모래가 해안가로 자꾸 밀고 들어와서 도로까지 침식될 정도던데
일단 사람 손을 타면 망가지는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인가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바다에 들어간 게 15년은 넘은 듯 하다.
여름에 이 정도로 한적한 곳이 있다면 들어가고픈 생각이 없는 것 아니지만
몰려드는 인파를 생각하면 도저히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찌나 그렇게도 쓰레기를 여기저기 잘 버려두고 즐기는지... 그냥 쓰레기장에서 뒹구는 느낌이었다.


울진에 들어가서 덜컹거리는 자전거 앞바퀴를 고친 후 여행 후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현대문명의 산물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맛있어서라기보단 단순히 도시라는 감각을 느끼고 싶었을 뿐.
장거리 여행시엔 이런 도시향기 맡기가 그리 쉽지 않아서 가끔 그리워 지기도 한다.

카운터를 맡은 직원 두명이 모두 신입연수 중인듯, 차라리 내가 들어가서 세트 만들어 나오고 싶을 정도였다.
주문한 메뉴 오더 넣는 방법도 모르고 카드 결제하는 방법도 모르고
햄버거는 한참 전에 만들어서 차갑게 식어가는데 한참동안 감자 튀긴후 그걸 세트라고 건네주는 행태를 보니
떠돌이 여행만 아니었다면 당장 점장불러서 이게 햄버거냐고 소리를 지르고도 남을 만큼 인상깊은 곳이었다.

햄버거 패티가 내 손가락보다 차가웠다. 울진에 롯데리아가 몇개 있는진 모르겠지만 가히 내 인생 최악의 지점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힘들면 들어가서 푹 쉬었던 일본의 패스트푸드점에서 느꼈던 안식을 무의식으로 바라던 차에 들어간 곳이었는데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먹어도 이딴 수준의 햄버거보다는 낫겠다고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준 곳.



세련되게 번화한 것이 아니라 옛날냄새를 많이 풍기며 번화한 울진은
느긋하게 둘러보기에 훌륭한 옛 냄새가 여기저기 남아있지만
반대로 자전거를 위한 도로 사정은 최악이라 이곳저곳 고생했다.
갓길주차는 도를 넘어서 2차선까지 깜빡이 켜고 서 있는 자동차들이 즐비하며
가로수와 전봇대가 가로막고 있는것도 모자라서 이곳저곳 파이고 울퉁불퉁한 자전거 도로는 흉악한 지뢰나 다름없었다.

머물면서 관광하려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나에게는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픈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후다닥 울진시내를 빠져나와 달리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데
사하라 멤버 나침반님이 추천해주셨던 공원과 비슷한 녀석이 등장해서 순간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주고받았던 문자로는 지금 나타날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도를 보면서 좀 더 조사해보니 해맞이 공원이란 곳은 영덕쪽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마 이곳은 그냥 이름만 같은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해맞이 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저녁엔 사람도 없고
어차피 비수기에 찾아올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 적당한 공터에 짐 풀고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아니나다를까 안개가 심해서 해는 보이지도 않는다. 미련 버리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출발.


해맞이공원을 통과하고 나서부터는 또 여유로운 해안도로가 이어져서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여기저기 멈춰서서 이것저것 찍어대고 있는데 이 사진을 찍다가 메모리 상태가 불량한 것이 판명되었다.
여행때문에 새로 준비한 CF 메모리였는데, 꽤나 유명한 회사의 메모리가 초기 불량이었다니 기분이 팍 상했다.

서둘러 예비 메모리로 바꿔 끼웠다. 서너 장 정도가 데이터 에러로 사라져 버렸다.
만약 이제까지 찍은 사진이 전부 날아가 버렸다면, 아마 여행 때려치우고 메모리 회사로 쳐들어가지 않았을까.


1년간의 일본 자전거 여행중 수고해 준 구닥다리 CF 카드는 여전히 잘 작동한다.
만지면 보슬보슬해서 기분 좋을듯한 바위를 상대로 테스트를 여러번 해 봤지만 이 메모리는 문제 없다.


평년보다는 좀 메말랐던 가을이라서 그런지 잠자리도 좀 의기소침해 보인다.
뻑난 메모리 때문에 기분이 좀처럼 밝아지질 않아서 한참동안 근처를 돌아다니며 사진만 찍어대던 기억이 난다.


어제 롯데리아의 괴랄한 햄버거 이외엔 아직 뱃속에 집어넣은 음식이 없어서 약간 허기가 진다.
일본의 편의점에서는 지갑의 다이어트가 무섭지, 자금만 있다면 배 채울만한 도시락과 호빵, 치킨조각등은 널리고 널렸는데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이곳의 편의점은 아사 직전이 아닌 한 절대로 입에 넣고싶지 않은 저급하기 그지없는 도시락밖에 없다.
아무리 찾아보고 찾아봐도 음료수와 초콜릿 말고는 당기는 음식이 전혀 없어서 몇번이나 그냥 돌아나왔다.

한국이라서 먹을 걱정은 하지 않고 달리겠구나 싶었는데, 매번 제대로 된 식당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귀찮아진다.
굉장히 한쪽으로 기운 판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편의점의 도시락 수준만큼은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평가를 바꿀수가 없다.
한국 편의점의 도시락은 쓰레기다. 컵라면이 고급 정식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다행이랄까, 거대한 몸집과는 달리 굶는데는 이골이 난 몸이라
상황에 따라서는 하루 한끼 먹는것은 기본이고, 무리해서라면 이틀 정도는 물과 칼로리메이트만으로 버틸수 있어서
한국의 편의점에게는 기대를 완전히 접어버리기로 했다. 상비된 물이 떨어졌을 때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동해안 도로는 의외로 비 관광지 부근에도 구멍가게는 여기저기 있어서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사진이나 찍으며 약 한시간을 바닷가에서 보냈다.
바다 반대편의 조그마한 밭두렁에는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냥이님께서 진득하게 누워 계시던데
카메라의 육중한 움직임을 보자마자 스윽 일어나서 허둥대지 않게 사박사박 사라져 버리셔서 카메라에 담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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