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 히데아키 트리오의 공연이 끝나고 다음 공연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생판 듣도보도 못한 '요디제 뽕 디스빠레' 라는 의미불명의 문자가 공연안내서에 적혀있군요.

악기는 전부 사라지고, 조명기기와 노트북, 일렉트로닉 믹서가 준비되는 것을 보고 아주 약간은 감을 잡았습니다.

 

사실 이번 공연은 재즈라는 장르와는 거의 관계가 없지만, 이곳이 'Art Factory 청춘' 이라는 공연장이다 보니

오늘 밤 신나게 한번 청춘을 흔들어보자는 의미에서 기획하셨다는 듯. 오늘밤은 재즈축제의 전야제 같은 성격이니까요.

 

 

저는 청춘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좀 늙었고, 겉모습은 중년을 넘어서는 위엄을 보이며, 태어나서 한 번도 클럽에 가본적이 없는고로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만, 일단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으니 순수하게 프레스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자고 다짐합니다.

 

 

 

본명은 모르고, DJ 이름이 '요디제 뽕 디스빠레'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범한 조명아래선 지극히 평범해 보이시는 분이 조금 쑥스러운 듯 인사를 합니다.

조금 전까지 놓여있던 의자와 테이블은 전부 치워버렸고, 넓직한 홀이 만들어졌네요.

관객들은 모두 스탠딩 상태로 대기중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광란의 시간에 동참하기 위한 준비자세인듯 합니다.

 

영화 등에서 간접 경험한 클럽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아마도 엄청 어두운 곳에서 현란한 광선이 홀을 매우는 그런 모습일 것 같아서

어두운 망원렌즈로 담을 수 있는 사진은 없다고 판단하고, 혹시나 싶어 가져온 35mm 단렌즈를 장착합니다.

어차피 AF 따윈 맞지도 않을테니 수동렌즈라고 해서 어려운 건 없겠군요.

 

 

 

춤추는데는 관심이 없지만 이것저것 잡지식을 머리에 집어넣는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예전에 DJ에 대해서 조금 들어본 기억이 있군요. 이게 쉬워보여도 사실 예술의 경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숙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일단 분위기를 띄우는건 DJ 분의 역할이니, 조명이 돌변하고 나서 힘차게 스타트합니다.

 

 

 

그런데 관객들이 몸을 좀 움찔거리기도 전에 장비 에러로 잠시 중단되어 버렸네요.

DJ 분이 굉장히 뻘쭘하시겠지만, 아날로그가 아닌 풀 디지털 믹싱이다 보니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겠죠.

 

 

 

세팅이 다시 완료되고 본격적으로 디제잉이 시작됩니다. 까페를 가득 채우는 비트와

카메라 센서를 작살낼듯한 강렬한 조명이 분위기를 돌변시키는군요.

 

과묵한 신사의 나라 대구라서 그런지 선뜻 홀 중앙으로 돌격하는 분들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익숙한 듯 금새 리듬 타시는 분들이 몇몇 보입니다. 저하고는 사는 세상이 다르네요.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스트로보 없이 이곳에서 사진을 촬영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마 프레스용 최고 플레그쉽에 F1.4 정도 되는 단렌즈라면 간신히 촛점 맞출 수 있을지도.

 

어차피 육안으로 봐도 뭔가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정도밖에 보이지 않으니

사진도 그런 식으로 나와주는게 정상이겠죠.

 

 

 

수동렌즈라서 촛점도 대강 맞추고 그냥 셔터를 눌러재끼면 됩니다.

왠지 이렇게 찍는게 초상권 신경쓸필요도 없고 좋군요.

디제잉이 그렇겠지만, 다양한 음악과 비트가 묘하게 계속 연결되어 끝이 없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렇게 음악에 맞춰 끝없이 흔들어 대는게 청춘의 에너지일까요.

 

 

 

저는 이쪽 방면에 경험이 부족해서 디제잉 실력이 어떤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셔터를 누르고는 있습니다만 마음은 붕 떠서 나는 어디? 여긴 누구? 상태입니다.

 

 

 

가끔씩 제대로 된 듯한 사진도 좀 남겨주고.

DJ 분께서 저런 포즈를 잘 취하시길래 타이밍 맞춰서 한번 담아봤습니다.

왠지 플래툰 생각이 나긴 하네요.

 

 

 

춤추기 싫은데 억지로 추실 일은 없을테고

다들 재미있게 방방 뛰면서 비트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좋아서 추는 거라면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칼로리 소비도 되고 나쁠거 없군요.

 

 

그래도 여전히 쑥스러운건 쑥스러운지, 홀 중앙에는 어지간해서는 사람들이 잘 안서는군요.

가끔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용감하게 뛰어드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효과는 미미합니다.

 

방금 전까지 재즈 듣던 곳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알콜의 힘을 좀 더 빌려야 할런지.

 

 

 

그래도 분위기 좋을대는 기차놀이도 하면서 재밌게들 노시더군요.

전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데 흡수될 수 없는 성격이고, 애초에 흡수되려고 노력하는 성격도 아니라서...

 

그래도 뭔가 웃으면서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는건 좋아합니다. 남들 웃는 모습 보는게 기분나쁠 리가 없죠.

 

 

 

대구 국제재즈축제는 여러 젊은 자원봉사단원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활동명은 '쟈스지기'입니다.

이 쟈스지기 분들도 신나게 흔들어 대시고, 촬영 맡으신 분은 이동하면서 마구 난사를 하시더군요. 재미있는 사진이 나올 듯.

 

사실 이런 공연에서는 스트로보 마음껏 터트려도 뭐라 할 사람 없겠지만, 애초에 갖고 오질 않았으니 뭐.

 

 

 

강렬한 조명은 디지털 카메라 센서에 별로 좋지 않죠.

강한 인공광원은 센서 표현의 범위를 넘어서 이미지가 깨지는 현상이 발행합니다만

이 상황에서는 왠지 이런 이미지가 더 어울리는군요.

 

 

 

그래도 DJ 분은 정상적으로 찍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한 번도 제 인생과는 관계가 없었던 공간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재즈와는 관계없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네요.

 

 

 

마지막으로 장노출 한번 남겨봤습니다. 당연하지만 사람 몸에서 빛나는게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유령처럼 나왔습니다만, 이것도 당시의 불타는 청춘이라는 느낌을 표현하는데는 괜찮은 것 같네요.

 

 

 

12시가 넘어서 공연장을 나왔습니다만, 들어갈때는 멀쩡했던 하늘이 나갈 때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군요.

우산을 갖고 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냥 장대비를 맞으면서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집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니 별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카메라 가방도 방수기능은 갖추고 있으니 뭐.

눈뜨기 힘들 정도로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김광석씨의 모습이 이 빗줄기와 너무 어울리는 바람에

후다닥 카메라를 꺼내서 한 장 담아낼 수밖에 없었네요. 음악이 넘치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