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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7  도쿄 산책 - 아사쿠사의 밤 12
  2. 2012.12.15  도쿄 산책 - 타이토구 토박이 18
  3. 2012.12.14  돌아왔습니다 16
  4. 2012.12.05  애프터 눈 14
  5. 2012.12.03  다들 그렇고 그런 것 10
  6. 2012.12.01  엄니와 함께 인천공항 10

 

 

아마 이 카미나리몬 밑에서 사진찍는 관광객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도쿄라는 도시가 끝장난 증거가 아닐까 할 정도로

다들 사진으로 찍기 바쁜 유명한 스팟.

 

덩치가 큰 녀석이다보니 비교가 될 수 있도록 사람과 함께 담는게 정석인 듯 한데

셀카를 좋아하지 않는 본인은 그냥 매번 하던대로 사람들 보이지 않게 프레임을 담는다.

이제 별다른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카미나리몬.

 

 

 

확실히 밤이 되니 아사쿠사의 상점가는 활기가 더해지는 듯 하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긴 한데, 상당수가 나이 지긋한 본토 관광객들.

 

간식거리를 제외하면 별달리 관심이 가지 않는 평범한 기념품이 대부분인데

이 정도 규모의 긴 상점가가 이렇게까지 유지가 된다는게 매번 신기하다.

다들 뭔가 사긴 사는건가?

 

 

 

카미나리몬에서 센소지(浅草寺)까지 직선으로 쭉 뻗은 상점가는

모두 동일한 간판과 가게 디자인으로 통일성을 추구하는데

횡렬로 뻗은 상점가는 그럭저럭 불규칙하고 옛날 느낌 나는 분위기.

 

여기나 거기나 그닥 눈에 들어올만한 상품은 없고

대부분의 가게에 '사진촬영 금지'라는 푯말이 붙어있어서

올때마다 이들의 좁은 마음씀씀이에 씁쓸해지는 기분.

 

아기자기하게 진열된 상품들 사진을 찍어서 여행기에 올리는게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네 장사에 피해가 갈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말이다.

그 덕분에 매번 찾아올 때마다 점점 흥미가 떨어지는 곳이기도 하고.

 

단지 숙소에서 가깝고, 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가볍게 갈 만한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는 이유와

아사쿠사의 밤거리 풍경을 제대로 감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이유가 아니었다면

아마 여행도중 여기를 찾을 일은 없었을 듯 하다.

 

 

 

우에노 아메요코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민냄새 풍기는 호객행위가 빈번한 곳이지만

우에노 시장에서 활기차게 떠들어대는 상인들에 비하면 별로 인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외침소리가 공허하게 들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워낙 접근성이 좋아서, 도쿄에 가면 한번쯤은 들리는 곳인데

간식거리 몇번 사먹어 본 기억 외에는 도무지 눈에 띌만한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는다.

시골마을 시마네현의 작은 공방에서 볼 수 있었던 수제 나무조각 몇개가

이 수많은 가게 기념품보다 월등히 좋았다는 느낌.

 

이런 기운없는 생각으로 관광중이라니, 생각하는 본인 스스로도 너무 부정적이 아닌가 싶은데.

사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새 카메라의 밤거리 촬영 능력을 시험에 보고 싶었을 뿐이니 어쩔 수 없다.

 

 

 

카미나리몬에서 센소지까지 쭉 뻗은 상점가라는 독특한 배치 자체가 볼거리일 뿐.

쿄도, 다자이후, 이세신궁 등의 상점가와 비교하면 가장 수준이 낮은 상점가라고 생각.

하층민들의 장터였던 곳이니, 반대로 생각하면 여전히 그 느낌을 고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득 젊은 도쿄 토박이들은 이곳을 얼마나 자주 찾을까 의문이 생긴다.

아마 내가 이곳에 살고 있었다면 많아봤자 1년에 한번 가볼까 말까 하겠지.

 

 

 

화창한 대낮의 센소지도 나쁘지 않지만

해가 지기 시작하니 곳곳에 건물을 비추는 조명이 작동해서 이것도 꽤 볼만하다.

 

조명은 멋지지만, 예전 카메라라면 워낙 고감도 노이즈가 많아서 담기 힘들었을텐데

역시 디지털 기기는 신제품이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노이즈가 있던 없던 담는 사진의 가치는 전혀 변함이 없는데

단순히 기계에 대한 호기심일 뿐. 물론 그렇게 소비활동을 해야 경제가 굴러가는 것이겠지.

 

 

 

센소지 정문에 걸려있는 거대 홍등 역시 카미나리몬의 그것에 뒤쳐지지 않지만

첫인상이 중요하달까, 아사쿠사 관광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것이 카미나리몬이다 보니

중간에 위치한 이 녀석은 인기가 조금 덜하다. 사진찍는 사람 수가 적은게 그 증거.

 

아사쿠사는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긴 한데, 어째 예전보다 사람이 많은 느낌이다.

낮에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나 외국인임이 분명한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이 시간쯤 되니 상당수가 나이 지긋한 본토 관광객들. 이것도 나름 신선한 요소라고 생각해도 될려나.

 

 

 

2010년 자전거 여행때 찾아왔던 센소지는 본당이 공사중이라 거대한 차단막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관광객을 위해 차단막 위에 공사중인 본당을 볼 수 있는 모니터를 설치해 놓은 모습에

나름 접객서비스를 하고 있구나 납득하곤 했다.

 

다행히도 공사는 완료되었는지, 예전에 보던 그 본당의 모습을 다시 구경할 수 있었다.

조명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야간에 보는 모습도 나쁘지 않구나.

 

 

 

본당 앞에서는 스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확성기로 열심히 뭔가를 외쳐대고 있다.

후쿠시마 대지진을 지원하기 위한 성금을 모금중인듯 하다.

 

여러분이 보태주신 성금은 책임을 지고 센소지에서 전달하겠다고 몇 번이고 간절히 호소중.

요즘 일본은 그 때의 비극에 대해, 알게 모르게 지진의 피해와 그 복구에만 중점을 두고

인간의 손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원전사고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말을 줄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국민들이야 그렇게라도 주제를 돌리고 싶은 마음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외국인들의 시선은 그렇게 곱지 않을텐데.

 

 

 

센소지는 도쿄에서 가장 큰 절이지만 몇번이고 불에 타 없어져서

지금은 본당도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고,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없는 곳이다.

 

별로 그런것을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잘 배치된 조명에 빛아는 오층탑이 아름답긴 하다.

밝은 대낮에 이곳을 찾으면 오히려 음영차가 심해서 대부 장식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저녁에는 밑에서 조명을 쏘아주니 단정한 건축양식을 구경하기 편하다.

 

 

 

센소지 광장에서 사람들이 시선을 돌릴만한 볼거리가 하나 더 생겨있다.

밤이 되어 은은한 조명을 내뿜은 스카이트리가 나름 잘 보이는 장소.

 

타이토구와 스미다구의 경계가 되는 스미다가와 강의 몇몇 장소를 제외하면

건물로 뒤덮힌 도쿄 안에서 스카이트리의 모습을 이렇게나마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70은 넘어보이는 할아버지가 DSLR에 삼각대를 장착해서 열심히 촬영중인데

대부분의 관광객은 그냥 컴팩트 똑딱이 혹은 휴대폰을 이용해서 저 스카이트리를 담고 있다.

 

휴대폰 카메라는 써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그런 걸로 야경사진을 잘 담을 수 있는걸까?

스카이트리는 여기서 좀 떨어져 있어서, 망원줌렌즈로 바꾸고 조금 당겨서 담아보는데

ISO3200 까지 감도를 올려도 대여섯장 찍어야 겨우 한장 건질 수 있을 정도.

 

조리개값이 어두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들 저 조그만 휴대폰 카메라로 열심히 찍어대는 모습을 보니

저걸로 찍은 결과물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다.

 

 

 

야경을 찍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확실히 지금은 사진찍는 맛으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 도쿄라는 도시가 나에게 매우 신선하고 비밀스러운 여행지였다면

늦은 오후에 도착했다고 해도,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여기저기 발품 팔며 뛰어다니고

접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눈을 반짝거리며 카메라 셔터 누르기 빠빴을 텐데.

 

그런 입장에서 보면 겨우 5시쯤 됐다고 피곤해하며, 어디 전철타고 좀 멀리 나가볼 생각도 하지 않고

걸어거 갈 수 있는 곳만 훌렁훌렁 돌아다니며 별 감흥도 없이 셔터나 누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많이 아까울 듯 하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가도 정해진 시간 안에 조금이라도 더 체험하고 구경하려고 서두르던 기분이 없어지고 있다.

 

열정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좀 더 여유를 갖고 여행을 즐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도대체 흥이라곤 쥐박이 뇌세포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이런 여행기를 써내려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기도 하고.

이렇게 머릿속에서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는, 형태를 갖추지 않은 애매한 기분을

좀 있다가 어디 진득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에라도 들어가서 수첩을 펴고 슬금슬금 구체화시켜 가는 것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다. 장거리, 장기간 여행을 경험한 탓일까. 그냥 여행 초기의 발정난듯한 하이텐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 뿐.

 

 

 

35mm 단렌즈와 70-300 줌렌즈.

중간 화각이 텅 비는 느낌도 들고, 24mm 이상의 광각에서 화면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느낌도 적다.

35mm 화각이야 전천후 스냅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망원줌렌즈로 못 찍을 것도 없다.

 

기계가 가진 화각의 한계에 몸을 맡기고, 부자연스럽지만 자신의 시야를 거기에 맞춰 적응시키는 것도 좋은 경험.

마음먹은대로 담지 못한다는 제약이 가끔은 기분좋은 속박이 될 수도 있다.

 

 

 

센소지의 관광객 자체는 전혀 줄어들지 않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매번 찍어대던 이런 사찰건물들 대신

거의 담을일이 없었던 공터 너머의 풍경에 들어선 스카이트리를 담은 사람이 여기저기서 늘어나니

 

센소지에 소위 말하는 자아가 깃들어 있다면, 자기 손님들이 자기한테 가져주던 관심이 줄어서 좀 삐쳐있을 듯 하다.

스카이트리가 보이는 곳이라면 도쿄 어디라도, 그쪽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움직이기 때문에.

 

하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멀찍히 떨어져있는 스카이트리보다, 조명빨에 빛나는 센소지의 모습에 더 흥미를 갖고 있다.

대낮의 방문은 이제 지겨울 정도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풍경의 변화는 인공 구조물에서도 그 매력을 발산하고 있으니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꽤나 마음에 드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어서 다행.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번엔 아사쿠사의 밤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

센소지 본당 앞까지도 걸어가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순수하게 풍경을 즐기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위한 목적만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사찰이 가지는 매력에 대해서는 전혀 감흥이 오지 않는다.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여느때와 다름없이 카메라 들고 카미나리몬을 통과해

센소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전혀 다를것없는 행동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본인 입장에서는, 이제껏 돌아보던 아사쿠사 구경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산책이었다.

 

 

 

아즈마 키요히코의 만화 '요츠바랑!'을 보고나서 문득 들던 생각인데

아이들은 정말 이 인왕상을 그렇게 무서워할까.

 

내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이런 인왕상보다는 한국 사찰의 천왕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이 더 기괴했다는 느낌이다.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무뚝뚝한 표정에서, 이것들의 모티브는 사람이 아닌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가.

얼굴 표정보다는 그 배색이 영 기분 찜찜했던 듯 하다.

 

이쪽 아사쿠사의 인왕상은, 얼굴은 둘째치고 그 젖꼭지 한번 박력있다.

 

 

여행 전날 잠 못자는건 이제 전통이다.

 

이번엔 짐을 잔뜩 짊어지고 서울서 부산까지 내려가 약 3시간 가까이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체력을 소비해서

11시쯤 이제 좀 피곤하구나 싶은 묘한 피로와 기분좋은 탈력감이 엄습해 오도록 컨디션을 세심하게 조절했다.

 

여행 한번 가는데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항상 전날 잠을 못자서 여행 첫째날은 헤롱거리다가 날을 보내버리곤 했으니.

 

 

 

11시쯤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곳까지는 완벽한 작전이었으나

사실 바이오리듬이 새벽 3시 취침 오전 10시 기상으로 정착되어 있던 신체를 간과한 것이 패배의 원인.

 

너무 일찍 잔 탓인지 새벽 3시쯤 되니까 잠이 깨서, 일부러 자려고 해도 의식이 또렷해지고 만다.

오전 11시 출발편이니 공항엔 9시쯤 도착해야 하고, 여기서 김해공항까지는 리무진으로 40분쯤 걸린다고 하니

계획대로라면 7시 반쯤 일어나서 가볍게 짐을 챙기고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해야 했는데

새벽 3시에 잠이 깨어버리니 그대로 밤을 샐 수도 없고 다시 잠도 오지 않고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펼쳐진다.

 

잠이 안오는데 계속 누워있으니 머리가 지끈거려서 별 수 없이 노트북의 전원이나 올린다.

별다른 계획은 없는 느긋한 여행이지만, 오랜만에 도쿄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일제히 물건 구매요청이 들어왔다.

평생동안 가장 많은 요청을 받았다고 봐도 될 정도. 대강 하루정도는 쇼핑에 시간을 할애해야 할 듯.

 

물건 사러 돌아다니는건 서점이나 아키바같은 매니아 지향소 외엔 극히 드문 경우라서

일단 물건들이 대충 어디어디쯤 산재되어 있는지 정도는 알고 가야 현장에서 허둥거리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슬금슬금 날이 밝아지기 시작하는 5시 30분을 넘어서야 겨우 한시간쯤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두시간쯤 자고 일어나니 여전히 졸리고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컨디션은 최악.

옛날 대학시절이었다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그대로 엎어져 대낮까지 잠잤음에 틀림없는 그런 상태.

 

하지만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럴수도 없고, 짜증으로 가득한 얼굴을 씻어낸후 리무진 버스를 타러 간다.

김해공항까지는 40분쯤 걸린다고 해서 느긋했는데, 부산의 악명높은 교통 탓인지 1시간 10분이나 걸려서야 공항에 도착.

 

저가항공 에어아시아의 악명은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 조마조마할 수 밖에 없었다.

'지구가 멸망해도 에어아시아는 환불해주지 않습니다'를 캐치프라이즈로 내세웠던가?

아마 그런적 없겠지만 세간의 이미지는 그런 편이다.

 

혹시 늦게 와서 탑승수속을 해 주지 않는게 아닐까 걱정하며 공항으로 들어간다.

안내데스크에 에어아시아가 몇번인지 물어보니 14번이라고 하길래 가 봤더니

40명은 넘어보이는 중국인 행렬이 이어져 있어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에어아시아의 마크가 아니라서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려보니, 16번 데스크에 텅텅 빈 에어아시아 마크가 보인다.

김해공항 안내데스크의 신용도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듯.

 

조금 늦었지만 무난히 수속을 밟고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

지금부터 나리타로 이동해서 다시 도쿄로 들어가면 빨라봤자 오후 3시가 넘고

저가항공에서는 기내식은 커녕 물도 돈주고 사먹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이라도 먹고 가려고 2층의 한식집에 들어가 갈비탕을 주문.

 

만원이 넘는 가격까지는 공항음식점이니 그럴만 하다고 스스로 납득을 시킬 수 있었지만

그 육수에 담궈져서도 꾸준히 비린내를 발산하고 있는 저급 중의 저급 갈비 몇 점이 들어있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몸을 사리는 편인 이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는 소재가 생겨서 나름 뿌듯한 기분이라고 긍정적인 발상을 해 본다.

 

그 갈비탕 진짜 개판중의 개판이다. 개밥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하면 되려나.

 

공항 검색대는 보안강화기간이라서 평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소지품 모두 철저하게 검사를 하고

노트북과 카메라, 줄줄이 전선과 베터리 등등 수많은 도구가 담긴 내 백팩과 사이드백은 두 번씩이나 검색대를 통과한다.

결국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직원이 나를 데리고 와서 뭔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규정이 그렇겠지만, 위험에 대비해서 짐은 승객 스스로가 풀어서 보여줘야 하는데 이게 마치 범죄자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게 해 준다.

비닐에 한 웅큼 들어있는 깔끔한 냄새의 새하얀 가루덩이를 보고 직원의 눈초리가 본격적으로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는데

그 가루의 정체가 절약정신에 빛나는 여행푸어인 본인이 집에서 퍼담아온 분말세제라는 사실에 허탈한 미소가 퍼지는 모습을 보니

왠지 멍청한 공무원들을 느긋하게 따돌리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모 비밀요원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살짝 머리가 가벼워진다.

 

 

 

나리타에 도착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 도쿄는 더 이상 관광목적으로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출발 전날 서울에 엄청난 폭설을 시작으로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갔기 때문에

혹시나 싶어서 조금 두꺼운 옷도 가지고 왔는데, 도착해보니 쓸데없이 짐만 늘린 꼴이 되어버렸다.

최고온도 11도에 최저온도 3도. 강수확률은 0%에 한없이 화창한 날씨가 이어진다.

 

여러가지 사정상 항상 사용하던 교통카드 SUICA도 본가에 놔 두고 왔기 때문에 또 구입해야 했다.

나리타에 도착하면 도쿄까지의 교통비 + 도쿄에서 숙소까지의 교통비 해서 3천엔 가까이 나가기 때문에

매번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가까운 하네다 공항 도착편은 저가항공이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이고.

 

잠을 엉망으로 잔 탓인지 머리도 지끈거리고 컨디션은 엉망이다. 타국에 도착한 들뜬 기분 역시 눈꼽만큼도 들지 않는다.

도쿄에서는 거의 항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곳 타이토구(台東区)의 숙소를 찾아오는데

이곳이 도쿄 안에서는 반쯤 슬럼구라고 해도 될 정도로 좀 못사는 동네라, 백팩커나 노숙자, 일용직들을 위한 저가숙소가 많이 있기 때문.

한인노동자가 많은 신오오쿠보(新大久保) 쪽도 적당히 저렴한 숙소가 있긴 한데, 난 여행중 한국인들 보고싶지 않다.

그런 이유로 타이토구는 도쿄에서의 고향이라 할 만한 곳.

반대로 말하면 전혀 여행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타이토구라고 해도 슬럼지역만 있는게 아니고, 그 유명한 관광지인 아사쿠사(浅草)도 있긴 한데

사실 아사쿠사 역시 예전엔 슬럼가였다. 일렬로 늘어선 명물 상점가인 시타마치(下町)역시 한자의 뜻을 생각해 보면 금새 알 수 있고.

일단 아사쿠사까지는 걸어서 15분쯤 되는 가까운 거리에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짐을 풀고나서 아사쿠사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딱히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슴이 설레지도 않지만.

 

타이토구도 진짜 슬럼가라 할 만한 곳은 골목 여기저기 쓰레기 천지인데, 이곳은 그래도 아사쿠사 근처라서

상당히 깔끔하게 정비해 놓았다.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도 없고, 화단도 꽤나 정성들여 가꾸어 놓은 모습.

 

 

 

내게 있어 신선한 볼거리라고 하면 현재로서는 이 녀석밖에 없다.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던 2010년 5월에도 이 장소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 똥덩어리 옆에서 뭔가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저게 뭐지 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도쿄에서는 스카이트리에 대한 기대가 꽤 컸었는데

타워에 관심이 없는 나는 몇개월이나 지난 여행 한창중에서야 저 녀석 이름이 스카이트리라는 사실을 알았을 정도니.

 

 

 

이게 2010년 한창 건설중이던 스카이트리의 모습.

원근감 탓에 별로 커 보이지도 않았다. 도쿄타워보다는 좀 큰가 하는 정도였는데.

 

사실은 도쿄타워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고, 착공 당시 계획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634m 짜리 타워였다.

실제로 인류가 만든 가장 높은 타워로 기네스북에 등제되기도 했는데, 비정하게도 그 타이틀은 단지 며칠간만 이어졌을 뿐.

당시 세계 여기저기서 어리석은 마천루 경쟁이 이어지고 있었던 때라서

며칠만에 바로 아랍 에미리트의 '부르즈 할리파' 가 830m 의 높이로 그 타이틀을 가져가 버리긴 했다.

아직도 전파송출탑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녀석이라고 하니, 그걸로라도 위안을 삼아야 할 듯.

 

도쿄 시민들에게는 꽤나 자긍심 고취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일지도. 일단 세계 유수의 높이를 가진 타워니까.

 

 

 

 

2008년 계획 당시엔 610m 로 높이를 정했지만 634m 라는 높이가 된 이유는

'634' 라는 숫자를 '무사시'라고 읽을 수 있기 때문.

 

과거 도쿄를 무사시노쿠니(武蔵国)라고 불렀기에, 일본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유 정도로 충분할 듯 하다.

원래 내가 자전거여행을 끝내고 도쿄로 돌아올 2011년 5월쯤엔 개장을 준비하던 시기였어야 하는데

다들 알다시피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인해 개장이 1년쯤 늦춰져서 2012년 5월에야 처음으로 관광객들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은 2011년부로 지상파 디지털 전환이 완료되었고, 고층빌딩이 많은 도쿄 지형상 고층 전파송출탑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타워지만, 실상은 연간 550만명이 저 타워를 오르기 위해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는 굉장한 관광지가 되었다.

타워를 오르지 않는 사람들도 지상쪽의 거대 쇼핑몰 소라마치(空町)를 둘러보기 위해 오기 때문에

실제 스카이트리로 인한 관광객 창출은 연간 2500만명이라고 한다. 언제까지 이어질진 모르겠지만 꽤 괜찮은 장사인 듯.

 

일단 입장료를 내면 하단의 전망대에 올라갈 수 있고, 거기서 또 요금을 내면 100m 위의 위쪽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타워 높이는 634m 이지만 전망대는 300m, 400m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니 조금 맥빠지는 현실.

 

현재 도쿄에서는 단연 가장 화제가 되는 관광지이긴 한데, 애초에 타워를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몇만원이라는 입장료를 내면서 저기를 올라가야 할까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반면, 도쿄는 이제 가슴뛰는 새로운 관광지가 아닌 본인 입장상, 여행 맛이라도 좀 느껴보려면 저기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

 

대충 찾아본 바로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한번 올라가는데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일단 밑의 쇼핑몰 소라마치에라도 한번 들러봐야 할 테니, 아침에 일찍 가서 상황을 보고 결정해야겠다고 생각.

1시간 줄서야 한다면 공짜로 올라가라고 해도 안 가겠지만.

 

 

 

해질 무렵의 스카이트리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화창한 푸른 하늘에 반사되는 인공구조물의 기하학적 상쾌함도 없었고, 야경을 비추는 라이트역시 아직 점등되지 않았으니.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를 하는데...

스카이트리는 저 아사히 똥덩어리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저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굉장히 높고 압도적인 건축물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런데 첫인상은 역시 임팩트가 없다.

 

도시 복판의 타워에서 가장 볼만한 광경은 뭐니뭐니해도 야경임에 틀림없지만

그걸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는것도 아닌 고로, 스카이트리는 야경보러 사람이 미어터지기 때문에

밤에 찾아가 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인파에 밀려서 사진 담을 여력도 없을테고.

 

겨울이다 보니 해가 일찍 져서 뭔가 의욕적으로 둘러볼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무료 항공권을 받게 되어서 아무 예정도 없이 온 도쿄라, 이렇게까지 의욕없는 관광도 참 오랜만이다 싶다.

걷다보면 힘이 나겠지 싶어서 아사쿠사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사쿠사쪽은 서민들의 생활력이 느껴지는 활기찬 동네지만, 그 전까지는 그냥 단조로운 빌딩들의 연속.

왠지 현재 기분을 생각해보면 이런 평범하고 단조로운 풍경이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다.

기분에 맞춘 사진 결과물을 담는건 괜찮은 행동이지만, 다른 관광객처럼 들뜨고 재미있는 사진도 좀 담았으면 하는데.

 

 

 

기분이 들지 않는데 상쾌한 사진 따위 찍을수가 있나.

언제나 그랬듯이 기분 가는대로 담아본다.

 

도착 첫날 오후 늦게 시작한 여행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텐션이 떨어져 있으니 스스로도 좀 걱정이 되긴 한다.

어제부터 조금씩 조카 우는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해서 조금의 죄책감도 남아있었는데

여러가지 요인이 더해진 끝에 이런 로우텐션이 되어버린 듯.

 

솔직히, 지금 나의 기분을 풀어줄 녀석은 딱 두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맛있는 거 잔뜩 찾아먹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진질.

조카 돌보느라, 푸른 하늘아래서 새 카메라로 사진 찍어본 일이 거의 없었다 보니

뭔가 담고 싶어서 조금씩 근질근질하던 차에, 도쿄는 한없이 맑은 하늘이 계속된다고 하니.

 

여행의 감성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던 예전과는 조금 방향을 바꿔서

사진을 마구마구 찍어서 여행의 텐션을 올려야겠다는 이상한 결과가 나와버린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해 봐야지.

 

 

 

사진질과 더불어 텐션을 올려주는 요소는 단연 먹을거리.

일본 3대 라멘이라고 불리는 키타가타(喜多方)라멘을 파는 라멘집을 들어가 본다.

사실 맛있는 키타가타라멘을 먹을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일본 3대 라멘이라고 하면 홋카이도의 삿포로, 후쿠오카의 하카타, 후쿠시마의 키타가타를 꼽는데

애초에 도쿄에서 장사하는 이상 본고장의 오리지날에 비할 수가 없다는 건 다들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여기 들어와서 별 특색없어보이는 라멘 한그릇을 주문한 이유는, 이곳이 아사쿠사이기 때문.

하층계급의 주 생활무대였던 아사쿠사 주변은, 소위 말하는 저급 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잘나신 분들의 문화보다도 더 사람사는 맛이 난다고 해서 인정받긴 하지만

어쩄든 별것 아닌 잡화점, 싸구려 먹을거리와 장난감등이 주된 상품이었던 마을.

 

이런 아사쿠사이기 때문에, 딱히 뛰어나다고 할것도 없는 무난한 라멘 한그릇이라도 불평없이 먹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무난 무난 말은 하지만, 아침에 먹었던 김해공항의 갈비탕보다는 백배 낫다.

엔화 그대로 계산해도 이 라멘이 갈비탕보다 더 싼데, 그 개똥같은 비린내 갈비 생각하니 이건 아주 맛있는 편.

아사쿠사라서 이런 라멘도 맛있게 먹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아침의 그 악몽을 지워내려고 입좀 헹구는 의미도 있었다.

 

 

 

가볍게 한그릇 비우고 다시 아사쿠사쪽으로 향한다.

원래는 숙소에서 컵라멘 사들고 먹기도 하는데, 저녁으로 라멘을 먹어버렸으니 오늘은 자중해야 할 듯.

일본 라멘은 나트륨 함유량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서, 저녁 연속 두그릇을 먹거나 하면 다음날 거울에서 호빵맨을 볼 수 있다.

 

자전거 여행처럼 땀을 비오듯 흘리는 나날이었다면 삼시세끼 라멘도 어렵지 않았는데.

가뜩이나 기분 난잡한데 자전거 여행 생각까지 하면 돌이킬 수 없이 다운되어 버리니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한다.

 

속속들이 다 구경한 아사쿠사지만 그래도 한가닥 기대되는 점이 있다면

고감도에 강한 신형 카메라를 들고 해질무렵의 아사쿠사 거리를 구경해 본 적은 없다는 것.

매번 대낮에만 오다 보니 밤거리의 풍경을 놓쳤는데, 사실 사람 붐비는 도시의 본모습은 밤거리에서 드러난다.

반대로 첫날은 대낮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다는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 친숙한 아사쿠사라도, 여지껏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오후 4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해는 거의 다 저물어가는 상황이다.

겨울 여행은 이게 참 괴로운데, 해가 지는것과 관계없이 시간만 보고 평소처럼 즐기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사람의 바이오리듬이란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걸 여행중 체감할 수 있었다.

 

여름엔 7~8시까지 열심히 돌아다녀도 몸이 깨어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겨울에 5시를 넘어버리면, 마음속으로 아직 5시밖에 되지 않았다고 아무리 읖조려도 피로가 몰려오는게 느껴진다.

 

그나마 아사쿠사는 해가 져도 수많은 인파가 여전히 북적이는 곳이라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어 다행.

아사쿠사 관광의 시작을 알리는 카미나리몬(雷門) 앞의 사거리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내가 익숙해하던 도쿄의 모습과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드디어 조금씩이나마 여행의 시동이 걸리는 느낌이 든다.

기껏해야 똥덩어리 보이던 북동쪽 스미다가와(隅田川) 건너편에, 복잡한 빌딩숲을 가볍게 무시하는 듯한 스카이트리의 위용이 보인다.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여행에서 빠트릴 수 없는 즐거움인데

저 멀리서 단순한 배경이 되어줄 뿐이지만, 이곳 아사쿠사에서도 사람들이 길가다 서서

연신 휴대폰의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스카이트리라는 건물 하나가 아니라, 저 녀석으로 인해 변화된 사람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전체적인 변화를 구성하고 있다고.

스카이트리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나에게 이런 변화를 감지시켜 주는 계기가 되어 주었으니 가볍게 감사.

 

 

여행 자체는 크게 무리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좀 피곤한 날이 이어지다보니

돌아와서 아직 짐도 제대로 풀지 않고 그냥 방치하는 중입니다.

 

원래 작업하던 컴과 모니터가 아니라서 사진 작업하는것도 좀 흥이 나질 않네요.

조카는 1주일만에 상당히 성장한것 같은데, 어쨌든 여전히 사람 피곤하게 하고 있네요.

 

 

 

지금 사진들은 일본 여행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들입니다. ㅡㅡ;

 

이제 선거가 1주일도 남지않았으니, 이제 저도 본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죠.

그 전까지는 그냥 쉬엄쉬엄 조금씩 여행기 올리겠습니다. 어차피 제 여행기는 한없이 개인적인 감정만 잔뜩 들어가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없으니까 그냥 느긋하게 인터넷 서핑하다가 문득 클릭 잘못하면 들어와보는 느낌으로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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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로 정신없는 가운데, 일본에 가게 됐습니다.

이건 육아하고 관계없을 한참전에 예약해 놓은거라서 안 갈수도 없네요.

저가항공 에어아시아 취항기념으로 세금만 부담하는 공짜표에 당첨이 되었는데 부산서 도쿄 왕복 6만원 정도로 저렴합니다.

도쿄는 이제 놀러갈 이유가 없는 곳이지만 일 관계로 갈일도 있고 하니.

 

저는 조카 백일날 까지만 돌봐주면 된다고 해서 서울 올라왔는데

왠걸, 백일이 다 되도 상황은 전혀 진전되는게 없이 계속 육아중이었죠.

근 1주일간 도쿄로 떠나게 됩니다만, 형수님 혼자서 예민하기 그지없는 조카 돌보며 살림살이를 전부 맡아야 하는게 걱정되네요.

형님은 새벽 2~3시는 되어야 돌아오는 날의 연속이니... 하지만 뭐 저도 백일까지만이라고 속아넘어가서

예정을 다 잡아버린 상황이라 어쩔수도 없습니다. 그냥 조카가 얌전히 있어주기를 바랄 뿐.

 

 

 

여행관련 짐을 전부 대구에 놔두고 온 터라, 모자라는 장비 조금 보충하기 위해서 오늘 밖에 나섰습니다.

타이밍도 좋게 서울은 어마어마한 폭설이 하루종일 쏟아지더군요.

 

사진이라도 좀 찍자고 카메라 들고 나왔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우산따윈 없습니다.

물에젖은 생쥐꼴이 되었지만 전 신경 안쓰니 뭐...

그런 마인드 덕분에 대학생때는 경찰의 검문에 자주 걸리곤 했지만, 지금와서 잡으려면 대판 싸워줘야죠.

 

 

 

대구는 원래 눈이 별로 내리지 않아서, 눈이 좀 반가운 편이긴 합니다만

이번 눈은 정말 대단하군요. 12월 초에 이렇게까지 쏟아지던가 싶을 정도로.

 

구두가 미끄럽고, 고가의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자연히 발걸음이 신중해집니다.

 

 

 

1차 목표지인 코엑스에 도착. 역앞 광장은 이미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줄을 쳐 놨더군요.

워낙 미끄러우니 사람들이 돌아다니다간 참사가 벌어질 것 같습니다.

 

직원분들이 열심히 광장의 눈을 삽으로 퍼내고 있지만, 이렇게 쏟아붓는 눈 앞에서는 허무할 따름입니다.

사실 이번이 첫 눈은 아니지만, 살짝 내린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엔 구멍이 뚫릴 정도로 쏟아붓기 때문에

다들 휴대폰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느라 바쁩니다.

 

저도 서울시내에서 카메라 꺼내보는거 참 오랜만인데, 막상 찍고나니 일반인들의 휴대폰 카메라에 비해서 그리 잘 찍지도 못하네요.

실력도 없는게 장비병에나 걸려서 이런거 들고다니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살짝 드니 눈으로 씻어내려야 하겠습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지 1시간쯤 지나서 아직 높이 쌓이진 않았지만

내리는 양으로 봐서는, 제가 볼일 마치고 돌아갈 때쯤이면 발목 높이까지는 충분히 쌓이겠더군요.

 

운전하는 사람들은 똥내린다고 싫어하겠지만, 전 역시 눈이 좋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왠지 가슴도 시원하고 추위에 무감각해지는 손끝에서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다들 여기저기 좋다고 움직이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담고 있네요.

휴대폰 카메라도 워낙 좋아져서, 일반적인 사진 생활은 그걸로도 충분할 듯 합니다.

 

전 당연히 대구에서 여행준비를 하고 내려갈 예정이었던 터라

지금 이 시기에 입을만한 따뜻한 다운 계열의 옷은 하나도 가지고 오지 않았죠.

추위에 꽤나 강한 편이긴 합니다만, 어쩄든 여행중에 몸살이라도 나면 안되니 최대한 따뜻한 녀석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엄니한테 속았어... 백일지나면 애가 변신한다더니.

 

 

 

사실 눈내리는거 좋아하지만 눈사진 찍는건 정말 어렵네요.

눈이 가득한 풍경에서는 계조나 DR이 거의 한계까지 가 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찍어봐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녀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촬영도 아쉬움의 연속.

 

그래도 눈 자체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셔터를 누르니 나름 마음에 드는 녀석이 나왔습니다.

아마 오늘 건진 유일한 사진이 아닌가 싶네요.

 

 

 

여긴 분명 지붕이 있는 곳인데, 어째서 이렇게 소복히 눈이 쌓인건가 싶었습니다.

좀 관찰하다보니 뒤편의 정원 쪽에서 바람을 타고 계속 눈이 쌓여가더군요.

직접 내리는 눈이 아닌데도 워낙 펑펑 쏟아지고, 바람도 거세서 이런 곳에까지 눈이 덮혔습니다.

 

카메라 들고 왔다갔다하니, 어디 잘못 부딪히다가는 손가락이 똑 부러질 듯이 얼어버렸네요.

도쿄가 이정도로 눈이 온다면 장갑이라도 하나 있어야 여행사진을 담을 수 있을 듯 한데...

짐을 많이 꾸리는걸 매우 싫어해서 장갑도 넣어가고 싶진 않습니다.

 

 

 

평상시에 찍어도 소화전은 침침한 한국 길거리에서 색이 돋보이는 녀석인데

눈속에 파묻힌 녀석은 더더욱 사람의 눈을 잡아끄는군요.

 

그냥은 담을 수 없는 위치라서, a99 로 바꾼 득좀 보려고 손을 높게 들고 LCD로 촬영했습니다.

 

 

 

도쿄쪽 날씨가 좀 신경쓰이긴 하네요. 눈이 오면 아무래도 활동 반경이 줄어들어서.

지난 주 까지만 해도 반팔에 잠바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버틸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번주부터는 날씨가 아주 매섭게 변하네요.

 

 

 

눈의 장점은, 원래 존재하지 않던 풍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일까요.

분명 수백 수천번 음료수 캔이 놓여있었을 장소인데

눈이 내리니 그 흔적이 드러나 보입니다. 과거를 시각적으로 구현화 해 주는 이 느낌이 좋군요.

 

 

 

몇 시간째 내리고 있는데 눈발은 그치긴 커녕 하늘 전체를 덮어버리는군요.

저 묘한 지붕에, 인위적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무늬가 생겨났습니다.

 

아마 물리적인 이유로 저 부분의 눈만 내려앉은 것일텐데, 이래서 자연이란 예술가가 굉장한 것이죠.

 

 

 

눈이 와서 감수성이 폭발하는건지, 제 옆구리와 손가락이 너무 시려서 정신이 나간건지

찰싹 붙어있는 두 자판기가 왠지 사이좋게 서로의 체온으로 한기를 녹이고 있는 듯이 보이는군요.

 

 

 

눈이 조금만 더 오면 이 소화전은 보물상자처럼 눈 속에 파묻혀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이런 날씨에도 불은 나는건가 싶네요.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라면 이런 폭설 속에서도 잘 타오르겠죠.

 

 

 

코엑스 소니센터에서 손을 녹이면서 신제품 구경합니다.

똑딱이 사이즈에 최초로 필름 판형과 동일한 센서를 박아넣고

칼 짜이스 35mm F2.0 렌즈를 박아넣은 컴팩트 카메라 RX1 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다작다하는 미러리스 카메라도 센서가 필름크기의 1.5배 정도 작은데

이 녀석은 미러리스보다도 훨씬 작은 크기에 필름크기 센서를 박아넣었군요. 참 뭘 어떻게 만들면 이런게 나오는지.

 

하지만 렌즈붙박이라서 그런지, 작게 만드느라 힘들어서 그런지 가격은 제 카메라 본체와 같습니다.

한마디로 요즘 나오는 일반적인 미러리스 카메라의 3배가 넘는 가격. 꽤나 넉넉한 취미생활 여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손대기 힘들겠네요.

 

 

 

이것저것 볼일 보고, 형수님 먹을것도 좀 사고 해서 다시 역으로 돌아가려는데

어째 가면 갈수록 눈이 더 신나게 날립니다. 이쯤 되면 지금 몇시인지도 모를 정도더군요.

 

그래도 평소 담을 수 없는 풍경이니 이때다 싶어서 마구 셔터를 누릅니다.

서울 시내에선 참 카메라 안꺼내는 성격인데, 오늘은 왠지 마구 꺼내들고 다녀도 신경쓸 사람이 없을 듯한 느낌입니다.

저처럼 육중한 녀석은 아니지만, 가는곳마다 다들 휴대폰 꺼내들고 사진 찍느라 바빴으니까요.

 

 

 

남들은 다들 눈사진도 멋지게 담아내는데 저는 왜 이렇게 불만만 쌓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짐을 많이 들고 다시 건대입구역에 내려 그마트에 기저귀하고 분유사러 가는데

이건 또 이때가 아니면 담을 수 없는 희귀종이 줄줄이 늘어서 있어서 주렁주렁 달린 짐과 지친 팔을 뒤로하고 카메라를 꺼냅니다.

 

 

 

약 4시간 조금 넘게 내린 눈인데, 이 정도면 정말 기록적인 강설량이 아닐까 싶네요.

꼬마들은 신나게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부모들도 그 모습을 사진 찍고 합니다.

아이가 넘어져서 다치지만 않으면 참 훌륭한 놀이터로군요.

 

이 자전거들은, 어차피 여기 방치되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렇게 애정을 받은 건 아니겠지만

이 정도 눈에 노출되고나면 성한 곳이 몇 군데나 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자전거 몇장 찍고 만족하면서 카메라를 집어넣었는데

건물 외벽 모습이 왠지 설탕파우더 뿌린 빵 같은 모습이라서 또 다시 따가운 손으로 카메라를 꺼냅니다.

 

아예 그마트 들어갈때까지는 카메라를 넣지 말자고 결정했네요.

짐이 많아서 매우 거치적거리지만, 어차피 찍고싶은 녀석 발견하면 또 꺼내들어야 하니.

 

 

 

왠지 머핀에 박힌 초콜릿 같은 느낌의 꽁초들이네요.

눈 따위로는 애연가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던 걸까요.

 

 

 

마크로 렌즈가 있었다면 의도했던대로 담을 수 있었을 듯한 모습입니다.

자연이란 녀석은, 자칫 심심해질 수도 있는 순백색 세상에서 이렇게 탁점을 남기는 능력이 있네요.

 

 

 

일본에서도 많이 보던 장면입니다.

한국에서 안지키는거야 뭐,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말이죠.

 

자세히 보니 자전거가 두 대로군요. 사이좋게 퍼질러 진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의 예술정신이란 건 참 대단하네요.

아마 우산 끝 같은걸로 새기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마트 앞에 저렇게 호갱님이라고 적어놓으면 영업방해일려나요.

 

 

 

마치 폭포 끝에서 산화되는 물줄기같은 느낌이 들었던 유리창 표면입니다.

눈은 그저 내릴 뿐이고 바람은 그저 불 뿐인데, 그것들이 남기는 모습은 아름답군요.

 

탄산수 거품같기도 하고, 여름바다의 파도같기도 해서 왠지 조금 시원해졌습니다.

하긴 영하의 날씨에 눈보라 맞아가며 촬영했으니 시원하지 않을리가 없네요.

 

 

 

건대앞 롯데백화점 입구엔 난리가 났습니다. 직원들이 출동해서 열심히 삽질중인데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보니 이미 대부분의 인도가 얼어붙어버렸죠.

 

삽으로 얼음을 깨어가며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는 모습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집니다.

눈 오면 제일 고생하는게 저 삽이 아닌가 싶네요. 사람이야 뭐 조심해서 움직이기만 하면 되고

그 댓가로 평소와는 다른 들뜬 기분을 받았으니 짜증날 일도 없지 않나 합니다.

 

다음 포스팅은 귀국후에 이어가기로 하죠. 추운데 다들 몸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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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눈 :: 2012. 12. 5. 20:36 Photo Diary

 

 

따끈따끈한 사진은 아니지만, 서울 온 김에 사하라 멤버 나침반님을 자주 뵙고 있습니다.

형님이 쉬는 토,일중 하루를 잡아서 겸사겸사 만나고 있네요.

선거 끝날때까지는 공휴일도 언제 나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만나기 하루 전에야 겨우 약속을 잡고, 그나마도 갑자기 형님이 나가야 하면 취소할 수밖에 없어서 폐를 끼치는군요.

 

몇년을 들여 착실히 여행준비를 하고 계시니, 저처럼 그냥 마음가는대로 움직이는 사람으로서는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지난번 갤럭시 대란때 스맛폰을 구입하셔서 일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쓰고 계시네요.

 

 

 

밖에서 고기먹는 일은 꽤나 드문데, 이런것도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고기도 먹습니다.

일하시느라 힘들텐데 자꾸 불러내서 죄송하기도 하지만, 이쪽이나 나침반님이나 기분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혼자 생각해 보고.

 

홀로 세계일주 준비중인 분이라 심적 부담도 크실텐데, 형님 친구 이야기를 듣고 조금 기분이 가벼워졌다고 해야하나.

형님친구 부부는 한국서 꽤 잘나가다가 일 다 때려치우고 부부가 세계여행에 훌쩍 나섰다고 하더군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여행중에 애까지 쑥떡 낳아버렸다는 말을 듣고

어깨에 힘 빼도 나갈 사람은 다 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침반님도 몇년뒤에 출발하실텐데, 출발지인 미국대륙 한바퀴 정도는 저도 같이 따라가서 배웅해드리면  좋겠네요.

 

좀 오래되긴 했지만 문득 생각나는 노래 한곡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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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 이야기입니다만, 장애학생 박람회가 끝난 다음날 엄니께서 필리핀으로 가셨습니다.

걸스카웃 포럼 참석차인것 같은데, 의무감에 가긴 하지만 경비는 모두 자기 부담이더군요.

 

반쯤은 서울와서 손자 보기위해서이기도 한듯한 기분이 듭니다.

애 기르느라 체력이 남아나질 않는 형수님을 위해서 해물탕도 끓여주셨죠.

고춧가루는 자극적이라 그냥 이렇게 끓였습니다. 대구에서는 '지리'라고 하던데 서울은 어떨런지?

 

필리핀행 비행기가 아침 8시에 출발하고, 공항 집합이 6시 까지라서 5시 전에 리무진 버스를 타야 합니다.

그래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챙기고 해물탕 한그릇 먹었죠. 맛은 있는데 뼈가 너무 많아서 약간 실패.

 

 

 

다행히 집에서 리무진 타는 곳까지는 택시로 3분밖에 안걸리긴 합니다.

콜택시 전화해 봤더니 그렇게 가까운 곳은 못간다더군요.

그래서 그냥 나가서 택시잡고, 내릴때 기사분께 짧은거리라 죄송하다고 팁을 따로 드렸습니다.

 

전 물론 필리핀까지 따라가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배웅하고보니 에라 모르겠다 공항까지 같이 가자고 결정했습니다.

왕복 차비가 좀 깨지지만 일단 일행분들과 합류하기 전까지는 제가 에스코트 하는게 좋겠다는 판단에.

 

 

 

여행 전날 잠이 안오는건 저나 엄니나 마찬가지라서, 사실상 한두 시간쯤 눈 붙인게 전부였습니다.

손주 보느라 정신없기도 했고. 다행히 필리핀에서는 도착하자마자 일단 호텔로 직행한다니 강행군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번화가인 건대입구의 새벽은 여전히 너저분합니다. 대부분의 찌라시들이 싱그러운 살색 처자들 사진이죠.

이 날은 좀 놀랐는데, 새벽 5시 리무진을 타려는 사람이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일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해외에 아침부터 많이 나가는건지 신기하네요.

 

여기서 수십번 리무진을 탔지만 한 번도 자리 걱정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엔 거의 남은자리가 없이 빡빡했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엄니와 따로따로 앉아가는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네요.

 

 

 

새로 장만한 a99 의 고감도 성능덕에 이런 새벽에도 마음놓고 촬영이 가능합니다.

애초에 F1.4 의 밝은 단렌즈라서 예전 a900 으로도 찍을수는 있었지만.

 

서울은 추워도 필리핀은 최저기온이 18도쯤 되는 더운 날씨라서 옷관리가 좀 난감하더군요.

귀찮지만 일단 서울에서 버티기 위해 얇은 잠바와 스카프를 둘둘 두르셨습니다.

짐가방을 모양 보고 찾기가 힘들어서, 강렬한 색의 손수건을 손잡이에 묶어두셨네요. 생활의 지혜입니다.

 

 

 

피곤하지만 잠은 안오는 드라이브가 끝나고 공항에 도착합니다.

차가 밀리면 1시간 20분쯤 걸리는데, 새벽이라 그런지 55분만에 도착했습니다.

 

엄니야 조카보러 미리 서울에 올라와 있었지만, 다른 일행분들은 대구에서 어떻게 오는가 싶었는데

한밤중에 버스타고 새벽 4시에 이미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는군요. 엄니보다 젊긴 하지만 굉장히 피곤할텐데.

 

일단 일행들과 합류하고 짐을 맡기러 가니 저는 인사하고 헤어집니다. 일단 할 일은 다 했다는 느낌이네요.

돌아가서 좀 쉬다가 조카 돌보는 일상을 시작하면 되겠죠.

 

새벽임에도 공항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합니다. 대체 다들 어디가는건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여행갈때는 이상할 정도로 공항 사진 찍을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에

기회다 싶어서 느긋하게 공항 여기저기 촬영하면서 좀 놀아봅니다.

 

 

 

인천공항은 특색이란게 좀 부족하긴 해도 완성도면에서는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녀석이죠.

이런 알짜배기를 민영화하려는 개색(아 쥐색인가) 때문에 생각만 하면 부글부글합니다만

일단 그건 제쳐놓고, 24시간 정신없이 돌아가는 공항임에도 참 깔끔합니다.

 

 

 

사람들을 마음대로 찍을 순 없으니, 그냥 둘러보면서 좀 볼만하다 싶은 느낌으로 담아봅니다.

딱히 목적이 없이 시선 가는대로 찍어보는 것도 기분전환으로는 괜찮군요.

국제선탑승이라는 문구는 저의 로망이기도 합니다.

 

로또라도 되거나, 어마어마하게 성공해서 돈이 전혀 쪼달리지 않는 몸이 된다면

한국에서 제일 많이 보게 될 간판이 아마 저거 아닐까 싶네요.

 

 

 

승객들은 바글바글한데, 항공사 카운터는 조용합니다. 상당수가 아직 문도 열지 않았네요.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본격적으로 비행기가 이륙하기 시작하고

화려한 면세점이 문을 여는 시간이 되면, 인천공항은 얼마나 활기가 넘칠지 눈에 그려집니다.

 

 

 

슬슬 가볼까 싶은데, 아직 버스시간은 좀 남았더군요.

그래서 요즘 잘 담지 못했던 새벽녘 풍경을 담아보러 나왔습니다.

 

좀 더 기다리면서 본격적인 일출 부근까지 담아볼까 싶기도 했지만

날씨도 춥고, 그렇게까지 맑은 날씨도 아니고 해서 그냥 이 정도 분위기로 만족하기로 합니다.

 

자전거 여행때는 어차피 새벽부터 달리기 때문에 수도없이 새벽 하늘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니 이 풍경이 벌써 생소해 보이는군요. 조그만 한숨이 나옵니다.

 

 

 

마음에 쏙 드는건 아니지만 어쨌든 인천공항은 한국의 거대 구조물 중에서는 단연 인상적인 녀석입니다.

음식이나 좀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도저히 좋게 못봐주겠더군요.

 

하긴 공항에서 맛있는 음식 먹어본 기억이 있나 싶긴 합니다. 새로 개장한 하네다 공항에서

굉장히 맛있는 수제버거집을 찾은게 유일한 듯 하네요. 거기 참 맛있으니 하네다 통하시는 분들은 한번 드셔보시길.

 

 

 

많이 담을 생각은 없었지만, 돈 주고 여기까지 배웅왔는데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 한장 더 찍습니다.

 

쉴새없이 사람을 실어나르는 버스와, 한국을 떠나고 들어오는 비행기들의 모습이 굉장히 분주하더군요.

현대 사회의 단편을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장소가 공항이 아닌가 싶습니다.

 

 

 

머리는 헤롱헤롱한데, 원래 새벽에 깨어나서 돌아다니면 텐션이 좀 올라가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막 문열기 시작하는 까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가방에 넣어온 책좀 읽었습니다.

새벽공기가 매우 찬데, 일부러 정신 좀 깨려고 밖에서 마셨네요. 덕분에 사진도 찍고.

 

 

 

찍고나서 제 머리가 좀 이상한가 하는 생각을 했던 사진입니다.

분명 수평 맞춰서 찍었는데 왜 이렇게 일그러졌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니, 애초에 저렇게 생겨벅은 벽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이렇게 의아해 했다는 사실 자체가, 새벽부터 꽤나 피곤했다는 증거겠죠.

 

 

 

하늘이 좋은건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시린 하늘에 커피 한잔 하면서 책도 읽고 사진도 찍고 하니

세상 부러울게 없다는 환상에 잠시 젖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낭만이 가끔 현실 생활의 활력소가 되죠.

 

하지만 어차피 집에 가서 아침잠 잔 후에 조카 돌보기 시작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이 당시는 육아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셨기 때문에 이런 여유를 부릴수도 있었죠.

엄니 안전하게 공항까지 에스코트 했으니 할 일은 다했다는 개운함이 드는 아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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