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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9.18  2월 12일 아사히카와 - 이쪽도 스트레스 8
  2. 2014.09.15  2월 12일 아사히카와 - 동물원의 마스코트 12
  3. 2011.11.04  과연 그럴까 20

 

밖으로 나오니 북극곰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고 있다.

사람들 구역과는 꽤나 넓고 깊은 해자가 있어서 이럴 때를 대비해 가져간 망원렌즈를 유용히 써보기로 했는데

몇 장 찍고나니 곰의 행동이 영 이상하다.

 

눈은 거의 뜨지 않은 상태로 몇 번이고 똑같은 장소만 왔다갔다 하고 있다.

건너편 건물 안에서는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한 녀석은 아예 유리창을 받침대 삼아 늘어져 자는 중이고, 서 있는 녀석은 끊임없이 왕복운동만 계속할 뿐.

구역 안에는 저렇게 콕핏처럼 생긴 유리창 안으로 카메라가 돌아간다. 사람이 올라서서 구경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사람들 입장에서야 북극곰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행동이 신기한 체험으로 남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저 북극곰의 행동은 동물원에 갇힌 녀석들이 자주 보인다는 스트레스성 정신장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행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남기고자 찾아온 아사히야마 동물원이지만 역시 우려하던대로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

수백 km의 생활반경을 가지는 북극곰이 이런 곳에서 멀쩡하게 살아있을 리가 없었는데도.

꽤나 오랫동안 이런 현실에 마음이 불편해 동물원을 찾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온 동물원도 여전히 바뀌는 건 없다.

 

 

 

예전 자전거여행 때 찾아갔던 어느 지역에서는 유명한 성과 함께 조그마한 동물원이 붙어있어서 얼떨결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당시엔 우리에 갖힌 곰이 굵고 애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 앞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척 봐도 절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는데, 알고보니 전날 뉴스에 나왔던 '출산 직후 숨이 끊어진 새끼곰'의 어미였던 것.

충혈된 눈으로 끊임없이 울어대던 그 곰의 모습이 오랜만에 다시 생각나서 기분이 무거워진다.

 

북극여우의 일종이라고 기억이 나던 이 녀석은 사람들 시선에 들어가지 않는 방향을 인지라도 하고 있는 듯 절묘한 자세로 돌아누워있다.

 

 

 

사다리라도 가지고 올라가지 않는 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선에서 이 녀석의 얼굴을 잡을 수가 없다.

미동도 하지 않고 잘 자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눈더미와 동화된 듯한 녀석의 모습이나 담고 발걸음을 옮긴다.

 

 

 

레서판다 쪽으로 자리를 옮기니 그나마 어두워졌던 기분이 조금은 밝아진다.

신나게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에서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레서판다는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친근함과 달리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위태위태한 녀석이다.

 

인간에게 호의적이고 호기심이 많으며 온순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아기 키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야생에서 번식률이 떨어진다.

벌목으로 터전을 많이 잃기도 해서 현재 전세계 동물원의 레서 판다가 종 전체의 1/5 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

그래서 이 녀석들 만큼은 동물원이 개체 보호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울만한 가치가 있다. 죄의식이 아주 약간이지만 희석되는 수준의 안도감.

 

 

 

물론 이 녀석에게도 동물원이란 조금 놀다보면 금방 심심해 지는 따분한 곳임에 틀림없겠지만

사람을 좋아하니 사육사들과는 나름 친분을 쌓을 수 있어서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리 내 서열도 그렇게 강직되어 있지 않고 사이가 좋아서 안락한 생활을 보내는 녀석들이지만

특이하게도 교배를 할 수 있는 근연종이 없어서 유전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편이라는 점.

 

이름도 비슷한 팬더와 더불어 사람이 관리하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도태될 가능성이 높은 동물이다.

이 정도라면 동물원에서 보게 되었다고 씁쓸한 기분까지 느낄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빈 우리 한켠에는 동절기에 밖으로 나오지 않는 녀석의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다.

고양이과이긴 한데 표범과 치타와는 좀 다르고, 스노우 레오파드라면 겨울에 안나올리가 없어서 조금 의아했다.

 

대체 어떤 녀석인가 싶어 조사해보니 보르네오섬에서 서식하는 구름표범이라는 매우 독특한 동물이라고.

겨울엔 볼 수 없지만 여름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다지 아쉬워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줄무늬 사이사이에 구름처럼 흰 털이 보이는 이 녀석은 이름만 표범이지 현존 표범과는 DNA 구조가 다른 완전한 별종이다.

한때 지상에 살았던 검치호와 비슷할 정도로 굉장히 크고 긴 송곳니가 특징이라 하지만 그걸 볼 기회는 인간의 인생 통틀어 몇 초 되지 않을 듯.

 

 

 

오타루를 휩쓸었던 스노우 캔들의 흔적이 이곳에도 남아있다.

문제는 이곳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겨울 폐장시간이 오후 3시 30분이라는 점인데.

 

 

 

북반구 극지방에 서식하는 흰올빼미는 겨울엔 눈과 완전히 동화되어 버린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직접 보니 사실이다.

머리가 170도 가까이 돌아가는 특성상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알 길이 없다.

맹금류가 동물원에 살고 있으면 좀 지루하지 않을까 싶은데.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었기 때문에 곰과 더불어 최상위 포식자로 이름높았던 늑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망원렌즈가 신경쓰인건지 꽤나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보통 날카로운게 아니다.

늑대 역시 겨울이 되면 털이 풍성해지기 때문에 그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다.

 

여러 장 찍을때까지 꼼짝도 않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혹시 내가 굉장히 폐를 끼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서식환경이 사람과 많이 겹치는 특성상, 일본에서는 근대화 이후 가장 빨리 멸종해버린 녀석.

한참 동안이나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가 결국 앉아서 다른 곳을 쳐다보는데, 역시 대형 육식종은 동물원과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곰은 몰라도 늑대만큼은 현대 사회에서 공존하기가 너무 어려운 관계라

이렇게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지만

개보다 지능이 높은 탓에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닐거라 생각.

 

원래 이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입장객 감소로 폐장까지 고려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최대한 동물의 생태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고, 관람객과 동물들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결과

'기적의 동물원'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재기에 성공해 지금은 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 되었다.

 

블로그에서 게시한 수기로 쓴 펭귄 정보, 북극곰 먹이주기, 유리돔을 이용한 지근거리에서 동물 감상 등

많은 노력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보다 동물을 좋아하는 본인 성격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완벽한 대처라고 보기엔 어렵다.

당장 북극곰만 해도 대표적인 정신장애 증상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옆을 거닐고 있는 또 한 마리의 늑대의 앞발도 정상은 아니다.

상당히 심한 상처가 아물고 있는 모습인데, 바닥에는 아직도 피가 조금씩 보인다.

도시 하나 정도의 범위를 사파리 형식으로 만들지 않는 한, 대형 육식종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수는 없을 듯 하다.

 

 

 

일본에서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홋카이도 사슴 에조시카는 그냥 좀 지루할 뿐 느긋한 표정.

애초에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고, 야생에서는 늑대 등의 천적이 없어지는 바람에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겨울에 마구 사냥당하는 신세라서.

 

모든 게 사람 탓이긴 하지만, 천적이 없어진 사슴은 홋카이도의 생태계를 박살내 버릴 정도로 번식하고 있어서

거대 농경이 이루어지는 토카치 평야나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시레토코 부근에서는 겨울만 되면 사냥이 허가되어 많이 죽어나간다.

 

 

 

거대한 뿔을 자랑하는 수컷은 한 눈에도 늑대나 곰 이외엔 사냥할 만한 동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발정기때는 사람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라이플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속수무책이다.

자기가 쏟아부은 똥밭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어린이 동화에서 보이는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

 

동물은 인간의 방향성있는 시선과 관계 없이 그 자체로 위대하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깨달아 준다면

동물원이라는 감옥의 정당성이 조금이나마 납득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번 동물원에 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그렇게 밝아지지 않는 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걱정을 안고 호랑이 쪽으로 이동하는데, 역시 불안은 적중했다.

창살에 딱 붙어서 끊임없이 왕복이동만 반복하고 있는 모습은 분명 정신병의 일종이다.

사람들이야 자기들 바로 앞에서 어슬렁거려주니 신기해하며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지만

그건 절대로 사람들에게 친근해서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다. 한 장 찍고나니 더 이상 카메라를 들어올릴 마음이 사라진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대체로 야생보다 수명이 길다고는 하는데, 무표정하게 왔다갔다하는 백수의 왕을 보면 그게 과연 행복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물원에서 사람냄새 난다는 표현은 좀 어색하지만, 들쭉날쭉한 눈사람은 왠지 정감이 간다.

오타루의 밤을 아련하게 빛내 준 일등공신인 양동이가 모자 대신 올라가 있는 것을 보니

이곳에서도 저 녀석의 힘을 많이 빌렸는가 보다.

 

 

 

기린이라던가 조류라던가 몇 가지가 더 있었지만, 더 이상 지채하다간 사람을 어깨머너로 펭귄을 볼 것 같은 두려움에 장소를 옮긴다.

30분 전부터 기다리던 사람들 때문에 펭귄의 출발점 부근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안내원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펭귄을 앞에서 보실 분들은 옆으로 이동해 주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펭귄은 출발점에서 동물원 끝까지 걸어간 뒤에 계단을 내려가 다시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는데

덕분에 방향 전환하는 곳이 가장 먼데, 그곳에는 아직 사람들이 서 있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만 방해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는다.

일단은 빙글 돌아가는 곳이니 조금이라도 더 펭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고.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유턴해서 돌아가는 쪽도 가장 앞줄을 차지하기 힘들었을 듯.

일단 동물원을 가로지르는 행렬이기 때문에 산책 시작 전까지는 안내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도하고 있다.

계단이 매우 미끄러워서 조심하라는 멘트를 계속 날리고 있지만, 역시 가끔씩 떡방아를 찧는 사람들이 생긴다.

 

펭귄들은 저 계단이 아니라 옆의 완만한 경사를 이용해 움직일 예정. 산책이 시작되면 계단쪽은 폐쇠된다.

펭귄보다 안내원들이 더 바쁜 것이, 원활한 관람을 위해 서 있는 간격을 줄여달라고 이리저리 부탁하고 다닌다.

따로 제한선을 쳐 놓은 것도 아니라 펭귄 이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펭귄 산책이 시작되어도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거진 20분이 넘는 기다림 끝에 드디어 위쪽에서 뭔가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첫 타선을 끊은 건 무리와 동떨어진 새끼 한 마리.

 

다른 녀석들은 천천히 느릿느릿 팔을 흐느적거리며 이동중이지만 이 녀석만은 사람들이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혼자 무리에서 떨어져 이곳저곳 마구 이동중이다. 심지어 펭귄들을 위해 쳐 놓은 길안내용 줄도 넘어가 버리는 기행을 펼친다.

물론 사람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인기 폭발이다. 펭귄들에게나 사람들에게나 서로 재미있는 볼거리가 되는 듯 하다.

 

 

 

온도 차이가 많이 나는지 유리창 너머는 매우 뿌옇다. 카메라 촛점 잡기가 힘들 정도.

어쨌든 오랜만에 보는 펭귄이라 귀여울 뿐이다. 종류별로 차이가 있지만 저 펭귄은 왠지 성이 난 듯 보인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온 탓인지 이 녀석들은 동물원에 놔둬도 적응을 잘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육장에서 스트레스가 없진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대표적인 동물이라 다들 느긋한 모습.

 

저렇게 땅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있는 건 헤엄칠 때나 하는 행동인 줄 알았는데

편안하게 쉴때는 저렇게 엎드리기도 한다고. 토실토실한 지방살을 배게삼아 엎드려있는 모습을 보니 조물거리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다.

 

 

 

펭귄은 거의 단일화된 색상과 체형에도 불구하고 종류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다.

단순하기 때문에 소소한 차이점만으로 눈에 띄기 때문일까.

 

작고 귀여운 소형종에서부터 강남 신사(?) 같은 패셔너블한 눈썹을 가진 녀석이라던가, 매체를 통해 익숙하긴 해도 사실은 크고 거대한 황제펭귄이라던가.

좀처럼 만지기가 어려운 동물이라서 매번 귀여운 몸매만 바라보며 애를 태워야 하지만, 조류중에서 이만큼 귀여운 녀석도 드물긴 하다.

 

 

 

그냥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긴 하지만 역시 동물원에 와서는 뭔가 배워가는 게 있어야 할 듯.

이곳은 규모가 작아도 꽤나 알찬 정보를 공부에 진저리나는 학생들도 부담가지지 않게 잘 정리해 놓았다.

동물원에서 교과서에서 실릴 만한 도감같은 실사 사진과 함께 차가운 금속 플레이트에 적힌 딱딱한 문구를 적어놓는 것은 정체성 상실이라고 생각.

 

 

 

펭귄 하면 남극을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남극에 살지 않는 펭귄 수가 2배나 더 많다.

일반 관람객 수준으로는 매우 상세하게 섬 이름과 서식하는 펭귄 사진까지 구별해서 거대한 원판 위에 그려놓았다.

펭귄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바다표범과 범고래가 대양을 점거하고 있는 모습도 잘 표현해 놓았고.

 

 

 

제작 주문보다 수고가 들지만 동물원을 찾는 대상을 고려하면 이쪽이 더욱 인상적이리라 생각한다.

수기로 작성한 것도 친근한데, 아이들을 위해 한자 위엔 흰색으로 독음을 적어놓은 것 역시 칭찬받을 만하다.

 

사실 동물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기는 힘든데

그런 면에서 어른들 역시 재미있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편이다.

펭귄 머릿속에는 염분을 저장했다가 코로 배출하는 부위가 있어서 먹이를 먹을 때 함께 섭취하는 염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콩알지식도 재미있다.

 

 

 

동물원이 나즈막한 언덕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펭귄관 역시 입구와 출구의 높이가 다르다.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며 건물을 빠져나와도 바로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밖에는 뿌연 유리창때문에 아쉬웠던 기분을 일소해 주듯 탁 트인 곳에 펭귄들이 일광욕중이다.

 

노란 눈썹이 임팩트를 주는 이 녀석은 아마도 마카로니펭귄이라는 유쾌한 이름을 가진 녀석인데

이름과 달리 꽤나 훈남형으로 보인다. 사람에게는 익숙한지 카메라를 들이대도 쿨하게 고개만 돌려준다.

 

 

 

남극에 서식하는 펭귄이라면 꽤나 쌀쌀한 홋카이도의 겨울도 느긋하게 느껴질 듯.

홋카이도에서도 유독 추운 토카치 평야 쪽은 한겨울 밤에 영하 30도까지 내려가긴 하는데

남극의 겨울처럼 시계가 제로에 가까운 눈보라가 한 달 가까이 끊이지 않는 극한의 환경은 아니니까.

 

햇빛만 따사로우면 이 녀석들에게는 아늑한 휴양지처럼 느껴질 듯 하다. 반쯤은 털고르고 반쯤은 그 자세로 졸고 있다.

 

 

 

사실 이 녀석들 크기가 그렇게까지 아담하지 않기 때문에 여럿 몰려있으면 꽤 무섭다.

닭한테 쪼여도 피가 나는 것이 사람의 피부인데, 이 녀석들은 체중이 닭의 10배가 넘기 때문.

 

따뜻한 곳에 사는 펭귄은 사람을 보면 도망가지만 남극 펭귄들은 사람에 대한 면역이 없어서

굉장한 호기심을 보이며 달려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가 한번 쪼이기라도 하면 살점 떨어지거나 눈알 찢기는 건 일도 아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펭귄들은 2~3대에 걸쳐 동물원에서 태어나 자란 녀석들이라

사람을 공격할 일도 없고 그렇게 호기심이 빠방하지도 않다. 그냥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다른 건물로 들어가니 바다표범이 기다리고 있다. 이동 반경이 워낙 넓은 동물이라 수족관도 마리수에 비하면 꽤 넓다.

그 탓에 한 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좀처럼 모습 보기가 힘든데, 빠르기도 엄청 빨라서 헤엄 치는 도중엔 카메라에 담는 것이 거의 불가능.

 

펭귄을 잡아먹고 범고래한테는 잡아먹히는 녀석이지만, 실은 표범이 아니라 지상의 곰과 비슷한 계통을 가진 녀석이라

어릴때 잘 키워놓으면 사람에게 상당히 친근해서 동물원의 귀염둥이로 유명하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아자라시(あざらし)라고 불리고, 동물원 이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한국과 달리

홋카이도 주변 해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보이는데다 가끔 도쿄 해안에서 장난치는 모습까지 보여서

대중적으로도 꽤나 인기있는 녀석이다.

 

 

 

바다표범관 중앙에는 커다란 수로가 있는데 이곳으로 녀석들이 통과할 때가 셔터 찬스.

 

처음엔 너무 빨리 올라가서 촛점 잡을 시간조차 없었는데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이 녀석이 아주 느긋한 포즈로 미동도 없이 하강하는 퍼포먼스를 피로해 주신다.

완전히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연계였다면 아마 시체가 아닌가 할 정도로 여유있게 스르륵 내려간다.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취득하고 있는 노련한 녀석이다.

 

자세히 보니 바다표범이 아니라 점박이물범처럼 보이는데, 일본어로는 둘 다 같은 표기를 하기 때문에 일어난 착각인 듯.

사실 거의 같은 종이라 구분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바다표범은 이거보다 훨씬 크다.

 

 

 

온 몸이 지방덩어리니 당연히 물 속이 더 편하겠지만

진짜 죽은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모습은 살짝 섬뜩하기까지 하다.

얼마나 폐활량이 좋으면 포유류가 저렇게 물 속에서 편안히 뻗어있을 수 있는지. 평균 20~30분간은 잠수가 가능하다고 한다.

 

 

 

바다표범관 끝에는 규모는 작지만 귀여운 해파리 수족관이 위치해 있다.

오사카의 카이유칸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족관이지만 그래도 유유히 헤엄치는 해파리 즐기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사람들 중에는 거대한 고래상어보다 이 해파리들을 더욱 좋아해서, 수족관에 가면 하루종일 해파리만 쳐다보는 부류도 있다고.

 

이 흐물흐물한 녀석들이 6억년 전부터 바다를 지배해 온 강자라고 생각하니 참 세상은 여전히 신비로운 곳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당연히 그냥 구경하는 사람에 비해 시간을 좀 잡아먹지만

그걸 감안해도 역시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폐장시간이 워낙 이르기 때문에 아마 펭귄 산책이 이 동물원의 마지막 이벤트일 터.

일본사람들처럼 미리미리 줄 설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등 뒤에서 발끝 세워 보는 일이 없으려면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자리를 차지해야 하기 때문에.

 

동물원이 그리 크진 않아도 구경 한번씩만 하려고 해도 2시간 30분은 너무 짧다.

 

 

 

밖으로 나오니 동물원 소속은 아닌 듯한 까마귀가 눈속을 활보하고 있다.

겨울엔 먹이구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나름 머리를 써서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듯.

 

위장색에 가까운 검은색이지만 눈 속에서는 이만큼 인상적인 대비도 없다.

 

 

 

바다표범관은 야외까지 연결이 되어있어서, 이쪽에서 보는 물범이 더욱 사진 담기가 쉽다.

굉장히 맑은 날이라 눈이 부신 듯 물 밖으로 나오면 거의 눈을 뜨지 않는다.

 

펭귄과 물범은 먹이 잡을때가 가장 활동량이 많고 고된 편이고, 남는 시간은 탱자탱자 하는 녀석들이라

동물원에 있어도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듯 하다.

 

 

 

원래는 물 밖으로 나올수도 있지만 역시 홋카이도. 눈이 너무 내려서 올라갈 방법이 없자 동물원측에서 경사로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물이 그렇게 좋은지 한 마리도 밖에서 일광욕하는 녀석이 없다.

 

물범이 아니라도 신기하게 얼어붙은 고드름이 충분히 눈을 즐겁게 하지만.

 

 

 

이 시기엔 홋카이도 전체가 눈축제 기간이라, 이곳 아사히야마 동물원도 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곳에는 없는 하마 조각상을 우람하게 전시중이다.

투박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하마의 강렬함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이빨도 무섭고.

 

 

 

다른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늘어선 인파와 함께 안내원이 지금 줄 서시면 다음 번에 볼 수 있다고 바람을 넣는다.

알아보니 15분쯤 기다리면 북극곰에게 먹이 주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어차피 북극곰을 보려고 했기 때문에 그 정도 기다리는 건 큰 손해가 아니리라 생각하고 맨 끝줄에 붙어 선다.

북극곰 역시 야외에서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어째서 먹이 주는 모습을 보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지도 궁금했고.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사람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자리를 떠난 후 입장한다고 한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인지 입구 앞에 너덜너덜해진 물통이 하나 보인다. 북극곰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고.

뜯긴 흔적을 보니 역시 곰은 곰이구나 싶다. 사람하고 놀고 싶어 가볍게 쓰다듬기만 해도 걸레가 될 듯 하다.

 

 

 

먹이주는 거 구경하는데 적정 인원이 필요한가 싶었는데 들어가 보니 이해가 된다.

육지가 아니라 물 속으로 먹이를 던져서 그 모습을 보는 것이라, 커다란 유리창 앞으로 계단식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어차피 다들 서서 유리창 앞으로 돌진하면 뒤쪽에서는 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니까 선택한 방법이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던 타이밍 상 맨 앞줄에 앉게 되었는데

앞이란 게 거의 유리창과 딱 붙어버릴 정도라서 오히려 시야각이 좁아져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뒤쪽은 서서 보기 때문에 어떨지 모르겠지만 반쯤 무릎꿇은 상태로 카메라 들고 미어터질 정도로 밀집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꽤나 힘들다.

 

수면 위에는 벌써 북극곰이 먹이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위를 쳐다보고 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그 크기에 압도된다.

 

 

 

먹이를 물 속으로 던지니 순식간에 잠수해서 낚아채는 모습이 매우 날렵하다.

2m를 가볍게 넘는 녀석임에도 물 속에서의 움직임은 놀라운 수준.

실제로 육상동물중 가장 수영이 뛰어나서 북극의 바다를 100km 가까이 헤엄치기도 한다.

 

워낙 빠르게 움직이고 관객이 밀집되어 있어 동체를 따라 카메라를 움직이기도 힘들다.

시끄러워서 연사를 갈기는 것도 미안하니 그냥 되는대로 싱글샷을 날리는데 열 장 넘게 찍어서 남은 건 한두 장 밖에 없다.

 

그래도 눈앞 30cm 앞에서 솟아오르는 북극곰의 모습은 압도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니 곰이 어떤 동물인지 더욱 실감이 간다. 사람 머리통만한 앞발과 전신을 뒤덮은 근육덩이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압도적.

먹이만 주면 재미없으니 해설자가 북극곰의 생태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설명해 준다.

 

북극곰의 특징 중에서 가장 신기한 건 역시 저 털. 흰색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색이 없는 투명한 털이다.

가시처럼 뻣뻣한 바깥 쪽 털과 보드라운 안쪽 털이 빛을 반사시켜 흰색으로 보이는 것.

북극에서도 홀로 살아가며 곰 중 유일한 프레데터 계열에 들어갈 정도로 사냥능력이 뛰어난데, 이 털의 보온능력은 그야말로 경이적인 수준이라 한다.

 

이런 대륙의 제왕도 범고래한테는 쪽도 쓰지 못한다 하니, 수족관에서 재롱부리는 녀석들을 우습게 봐서는 안될 듯.

 

 

 

하루종일 사람들 구경 시켜준다고 먹이를 던져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줄을 서도 이벤트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생각하면 나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 듯.

 

실 이 동물원은 북극곰을 초근접 상태로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유명해서 가까이서 보려고 굳이 애쓸 필요는 없었지만.

 

밖으로 나오니 2시 쯤인데, 허탈하게도 2시 45분부터 실시 예정인 펭귄 산책구경에 벌써부터 사람이 늘어서 있다. 진짜 기다리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

산책로가 동물원을 완전히 가로지르는, 펭귄들에게는 꽤나 긴 거리라서 아직 뒤쪽은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양쪽으로 나눠서 구경하기 때문에 아예 못 볼 정도는 아니니 일단은 안심.

 

펭귄 산책을 관람하면 그대로 동물원 폐장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줄을 설 수는 없고, 조금이라도 나머지 동물들을 구경하려 발걸음을 옮긴다.



사실 곰은 단것을 어마어마하게 좋아하기 때문에

펩C던 CO크건 다 좋아합니다.

다들 비상시엔 콜라를 곰에게 던지고 살아나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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