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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는 6시쯤 해가 뜨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원주민들이 걷어간다.
빨리 걷어가서 다음 비박지에다가 설치를 해야 되기 때문. 그러니 늦잠같은거 없다.
어차피 숙면따윈 취하지도 못하니 그냥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서 밥부터 먹어야지.

군복무 한 사람이라면 한번씩은 먹어봤을 즉석건조쌀과 고추장이 한국팀의 식사.
원래는 뜨거운 물 붓고 기다려야 하지만 그럴 시간이 어디있나. 그냥 맹물에 붓고 좀 있으니 대강 먹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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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팀만 정식 번호표가 나오지 않아서 오늘은 임시로 적은 번호표를 달고 뛴다. ㅡㅡ;
신발에는 모래가 들어가는걸 방지하는 스패치를 부착하고, 나처럼 뛸 자신 없는 사람은 등산용 스틱으로 몸의 부담을 줄인다.
아시아쪽 에이전트인 제임스 장씨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해서 베낭에 태극기를 꽂으라는등등의 주문이 있는터라 이 사진은 태극기가 보이게 찍은 듯.

일어를 한국어의 70% 정도 능숙하게 하는 나에게는 일본 사람에게 일부러 일어를 쓰지 마라는 주문도 부탁하셨다.
이젠 세계속의 한국이니 굳이 우리가 저들에게 맞춰줄 필요 있느냐는 것 같은데...
나하고는 애국심에 대한 정의가 많이 다른 것 같아서 그냥 웃고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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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저러나 일단 기념할만한 첫날이니 모두들 잔뜩 들뜨고 잔뜩 겁먹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이날 아침에 이미 체력이 거의 고갈되어 있는 느낌이라 웃음이 잘 안나왔다.
8시만 되도 뭔놈의 햇빛이 끔찍하게도 쏟아지는데, 텐트를 걷어가버리니 그늘이라곤 사방천지 50km 주위에 아무것도 없음.
등에 맨 베낭은 12kg에다가 지급된 물까지 넣으니 한국서 걸어도 헥헥거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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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물은 이런 카멜백에다 넣은 후 배낭안에 넣고, 호스를 빼내어 어깨에 걸어놓은 후, 필요할때 쪽쪽 빨아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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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첫날 28km 라도 완주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중인데, 다른 참가자들은 완전 축제분위기다.
사방에서 신나는 음악이 터져나오고 선수들 입가엔 웃음이 가시지 않는데.
난 어떻게 기권하면 꼴사납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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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엔 여러가지로 신경써서 촬영해주니 모두들 앞쪽에서 먼저 튀어나가려고 준비중이다.
MDS 홈피에 자기 얼굴이 실리면 정말좋겠네 라서일까?
나도 일단 첫 스타트땐 열심히 뛰기로 했다. 명색이 마라톤 대회인데 시작부터 끝까지 걸어버리면 슬퍼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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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발!

이거 꼭 수십년전 어딘가의 Operation Overlord 작전시
MG42가 반갑게 맞이해주는 앞에서 셔터문 내리고 달려갈 준비하는 모 이병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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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자기 어필하느라 정신이 없다.
저 영국기 든 사람은 결국 저걸 들고 완주하고 말았다. 경사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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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조금 달리자 무너진 폐허같은곳이 보였다.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달리는건 여기까지. 좀 더 달렸다간 그야말로 아프리카 사하라사막까지 와서 20분만에 기권하는 추태를 보일것 같아서.
스틱 꺼내들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처럼 헥헥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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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그렇고 지면 상태도 그렇고 정말 돌아가실것 같은 환경이었다.
사막이 전부 모래언덕 투성이일거라는 생각은 어느 개같은 쥐가 자주 하는 말처럼 '오해'다.
사막의 돌맹이는 바람에 의해 깎여나간 터라 굉장히 거칠고 각이 심하게 져 있다.
아예 안 밟고 지나갈 수는 없는데, 발바닥이 굉장히 뜨겁고 충격이 많이 전해진다. 특히 나같은 특이한 발바닥을 가진 사람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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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선수들은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달려나가서 우리같은 일반 서민들은 얼굴조차 볼 기회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뭐 먹고 달리나 싶을 정도로 작은 베낭을 매고 보스턴 마라톤 하듯이 뛰쳐나간다.
참고로 이 대회 단골 1,2 등은 이곳 모로코 출신의 형제가 나눠먹고 있다. 이곳에선 멍연아급 인기 스포츠 스타.

CP에 도착하고나서 고민은 더욱 깊어갔다.
나 이제껏 사하라 다녀온 많은 사람들에게 공동적으로 들은 말이 있었거든.

'물은 충분히 주니까 걱정마요! 나중엔 남아돌아서 샤워도 하고 중간에 버리고 해요!'

이런 !@#*&% 같은! 충분하긴 개뿔이!
스타트 지점에서 받은 물은 CP 보이기도 전에 다 마셔버려서 나 이제 사막 한가운데서 말라비틀어지나 싶었다.
겨우 CP가 보여서 기듯이 통과한 후 물을 받았는데, 1.5L 생수통 절반을 받은 그자리에서 마셔버렸다.

물론 나역시도 방심했던 것이, 평소에도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긴 하지만 10km 가는데 1.5L 이상을 마셔버릴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긴 했다.

이제 750m 남은 물로 다음 CP 까지 가야한다 이 말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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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이 잘못됐나? 그러고보니 아침에 컨택트 렌즈 넣을때 모래때문에 많이 따가웠는데.
아, 그렇구나~ 이게 바로 사막에서 자주 보인다는 신기루였던 것이다.
난 사하라사막 마라톤 왔지 등산하러 온게 아니었거든.

근데...
왜 사람들이 자꾸 저 산을 향해 가는걸까... T_T

그렇다. 사실은 지도에 저 산이 나와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도에 귀여운 그림으로 그려져 있던 산이 현실에선 왜 저렇게 웅장한 것이란 말인가. 이건 주최측의 농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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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물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극한 상황까지 몰리지 않는 한 계속 갈증을 느끼는 상태를 유지하며 수분보급에 신경을 쓰고 있다.
거의 헤롱헤롱한 상태로 어떻게든 산을 올라오니 위에선 헬리콥터가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다.
대회가 대회인만큼 안전에 있어서는 만전을 가할 수 밖에 없는터라, 선수들 주위에는 항상 응급키트를 소지한 의료 요원들이 따라다닌다.

엄청난 양의 지프차와, 험한 장소를 가기 위한 4륜구동 바이크같은 탈것과, 헬리콥터까지 움직이고 있다.
잘 가고 있는 선수들에게도 항상 차에 탄 요원이 '나트륨 알약 필요한가요?' 하고 물어본다.

수분만큼이나 땀의 배출도 엄청난 곳이라 이곳에서는 필히 3시간마다 나트륨 3알을 먹어줘야 한다.
이건 뷔페식이라 언제든지 말만하면 공급되는 약이지만, 소금맛이 나는것도 아니므로 과식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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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 이어져있는 능선을 타고 가는 도중 쉬고 있는 한 선수를 만났다.
상당히 대단한 몸집이라 신발도 놀라고 베낭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훗날 완주까지 해서 더욱 놀랐다)
뒷 배경이 그럴싸해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하니 흔쾌히 승락해줬다. 내 사진도 찍어주겠다고 했는데 난 내 얼굴은 잘 안찍는 편이라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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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면서 확실히 느낀 거지만 이번 대회는 뭔가 이상하다.
이전 대회까지는 참가자 100명중 10명 정도가 탈락, 전체 탈락자가 50명을 넘지 않는게 일반적이었는데
첫 번재 스테이지에서 저렇게 널부러진 선수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차량 옆에 있는 선수는 지나가면서 보니 마구 토하고 있었다. ㅡㅡ;

50도가 넘는 직사광선아래서 달구어진 지면과 돌맹이들이 내뿜는 반사열이 상상을 초월하는터라
가끔 머리보다 발쪽이 더 뜨거울 때도 있었다. 산에 올라오니 발이 8옥타브 비명을 질러서 주위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항의도 했다. (이걸 믿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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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해 줬다.
그 앞에 펼쳐진 사막의 모습과 개미처럼 기어가는 선수들의 뒷태를 보니 또 다시 한숨이 나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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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멀쩡하던 하늘에 돌연 공포의 모래바람이 불어와 나를 괴롭게도 했지만.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갖고 있는 막강체력 알맨님은 그야말로 터미네이터처럼 CP를 통과해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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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회 첫날에 기권했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죽기살기로 간신히 28km 를 걸어오긴 했는데 앞날이 깜깜했다. 240km 중에 28km 란 말이지.
그것도 28km 달리는데 8시간 정도 걸렸다. 한국서 그냥 걷는것보다 더 느린 속도.

홍일점 홍양은 나보다 더 늦게 도착했는데, 힘이 많이 부치는게 확실했지만 밝게 웃으면서 분위기를 띄워줬다.
내가 따라하기 힘든 좋은 장점을 가진 분이라서 그저 감탄과 존경 한 방.

물집이 안잡히면 그건 인간이 아니고, 일단 바늘로 터트린 후 진물이 빠지도록 실을 하나 박아놨다.
오늘같은 지옥을 앞으로 6일이나 더 참아내야 한단 말인가.
거짓한점 없이 나 2~3번째 스테이지에서 포기하면 덜 쪽팔리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완주는 거의 포기상태.

대회 전에도 가끔 얼굴을 비추던 미국선수 피터 무라카미가 자꾸 한국팀 숙소를 기웃거린다.
잉글랜드 팀과 함께 숙소를 배정받았는데, 그네들이 별로 재미없는 것 같아서 이쪽이 마음에 든단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혼혈인 피터는 좀 소심하고 숫기가 없는 표정이라 정통 서양인들과는 잘 못어울리는 듯.
한국인이라면 생판 남이라도 일단 끌어들이고 보는 끈끈한 정이 주특기 아닌가. (난 아니지만) 금새 친해졌다.

피터는 보스턴 마라톤을 3시간에 주파하는 준 프로급. 좀 말고 걸어보고 하고 싶긴 했는데 이 때의 난 자기 문제 해결하는데도 정신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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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섬주섬 밥을 입에 집어넣고 있으니 아시아 에이전트 제임스장씨가 오셔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대회 코스가 너무 어려웠던지, 오늘 하루에만 탈락자가 50명이 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식수부족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내일부터는 출발지에서나 CP에서나 1.5L 물을 2통씩 제공해 주기로 했단다. ㅡㅡ;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20회 대회 참가자인 나침반님도 초반부터 이렇게 어려울줄은 몰랐다고 하신다.
스테이지 2는 35km. 거기다 지도에는 상당한 크기의 모래언덕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 포기하려면 내일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억지로 침낭속에 들어갔는데, 여전히 덥고 피곤하지만 잠은 안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