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몸이 극도로 피곤하면 숙면을 취하기도 힘들다.
새벽에 아픈 몸을 일으켜서 텐트 뒤로 소변을 보러 나가기도 하는데
등이며 허리며 허벅지며 안 아픈 곳이 없다. 발이 퉁퉁 부어서 슬리퍼 신는것도 참을성을 필요로 한다.
하루에 물을 10L 넘게 마시는데도 오줌 색깔은 100% 천연과즙 오렌지 주스처럼 샛노랗다.
한국에선 하기 힘든 체험 참 가지가지도 하는구나.

새벽엔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야영지 전체가 공동묘지처럼 음산하다. 다른 사람들은 잠 잘자나봐.
마음먹은대로 대변 조절만 가능하면 이런 새벽에 몰래 싸고 오는것도 괜찮다.
일단 해 뜨면 어쨌든 엄청 멀리 걸어가지 않는 한 사람 눈에 보일 수 밖에 없으니.


아침마다 콘텍트 렌즈 끼는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아주 미세한 바람이라도 모래가 섞여있기 때문에 눈에 이물감이 느껴져서 뺐다 꼈다를 반복한다.
지금은 라식을 해서 안경이 필요없지만. 다음에 갈 땐 좀 더 편안한 여행이 될 것 같네.

기상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꼭 군대같다.
난 잠은 저절로 깰 때까지 자는 편이라 의도치 않은 일로 일어나는게 좀 짜증이다. 어차피 오래 자진 않지만.

사막에서 맨살 다 태우고 싶지 않으면 선크림은 아파트 시멘트 공사하듯이 '처'발라야 한다.
가장 강한 녀석으로 온 몸이 하얗게 될 때까지 듬뿍듬뿍.
하루라도 빼먹었다간 피부가 끓어오르듯 물집이 생기고 따가워 견딜 수가 없다.
우린 역시 여기선 이방인일 뿐이라는 감정을 갖게 해 주는 시간이 바로 이 선크림 바르는 순간.


피터가 나침반님에게 와서 신발 수선을 부탁했다. 스패치가 떨어진 모양이다.
보스턴 마라톤에도 참가할 만큼 실력있는 피터지만 이런 사막에서의 레이스 경험은 전무해서 준비가 영 시원찮았다.
음식도 너무 적게 가져왔고, 휴식시간에 쓸 여분의 슬리퍼도 없어서 종이조각같은 슬리퍼 임시로 사용했다.

누구나 생각했겠지만 한국 팀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분명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도 엄청 고마워하더라.


힘든 건 누구나 마찬가진데, 알맨님은 쇼맨쉽이 좋아서 힘들다고 투정부릴때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홍양이 탈락한 시점에 이제 힘들다고 엄살부릴 여유도 없다. 자기 발로 걸을 수 있는게 탈락하는것 보다는 나으니까.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을 비웠다. 그냥 적당히 걷다가 한계에 도달했다 싶으면 앉아서 호송차를 기다리기로.
물집이 너무 자주 잡혔다 터졌다 해서 양말이 진득하게 늘어붙었다. 겁이 나서 양말 벗고 보지도 못하겠다. ㅡㅡ;


햇빛이 뜨거워서 출발 전까지 저렇게 버프 푹 뒤집어쓰고 휴식을 청한다.
다리가 무겁고 뜨거워서 베낭 위에 올려놓았다. 저렇게라도 다리의 피로를 풀어주고 싶을 만큼 필사적이었다.


그래도 출발 시간이 다가오면 이렇게 폼잡고 사진은 찍어야.
지금이니까 이런 이야기나 쓰면서 썰을 푸는 것이지, 저기선 푸념할 상대도 없다. 모두 지치고 피곤하다는걸 아니까.

홍양의 빈자리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 본인이다 보니 버프를 벗지 않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부러라도 웃어줄 여유조차 없었거든. 얼굴 속은 잔뜩 뚱한 표정이다.


대회 3일만에 역대 대회중 가장 많은 탈락자를 배출했다. 이미 100명에 가까운 사람이 탈락.
코스를 너무 어렵게 잡은 탓에 물 소비량도 예전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늘어났고
고저차가 높은 코스도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코스 자체가 사하라에서도 기온 높기로 유명한 곳이다.

아니 왜 생애 첫 대회에 21년동안의 대회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녀석이 얼굴을 들이미는건지 모르겠다.
첫날의 들뜬 열기와 흥분감은 식어가고 반대급부로 사람들의 얼굴은 점차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래도 출발이 가장 힘들다는 진리를 모두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에
정말 30분에서 1시간만 지나가면 이 더위도, 찢어질 것 같은 다리의 통증도 모두 슬그머니 익숙해 진다.
의식은 살짝 몽롱한 상태가 되고, 마치 자기 몸이 아닌것 처럼 고통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 몸은 잘 만들어진 로봇이고, 머리 위의 조종석에서 내가 기계를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


룩셈부르크에서 온 가족일당.
참 건전한 여가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1년 가까이 주위 사람들한테 사하라 가자고 말하고 다녔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1위가 '돈없다', 2위가 '시간없다', 3위가 '뭐하러' 였다. ㅡㅡ;



어제도 출발하자마자 산을 넘어서 아주 열이 끝까지 받쳤는데
내 눈앞에 자리잡고 있는 저것은 도대체 뭘까. ㅡㅡ;
지금 나하고 한판 하자는 거냐 추최측?

어제의 산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거대한 녀석이 그림처럼 버티고 있다.
정말 저길 올라가야 하는 건가? 이쯤 되면 사실은 옆에 돌아가는 길이 있겠지 하고 강하게 믿어버릴 정도로 현실구분이 어렵다.


이~ 십후랄 쌍쌍바! 정말로 사람들이 저쪽으로 달려간다.
옆에서는 원주민들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앉아서 지켜보고 있다.
나도 이런 원숭이 재주를 왜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놈의 산은 정말 징글징글하다.
경사가 심하지 않아서 은근히 올라가게 만드는데
발목정도는 쉽게 빠져버리는 곱디고운 사막의 모래를 철퍽거리며 완만한 경사를 올라가니 정말 죽을 맛이다.
차라리 경사가 급하기나 하면 확 올라가 버리기나 하지, 거의 2시간동안 계속 은근한 모래 오르막을 올라가는건 지옥이다.

햇빛은 또 얼마나 강한지. 살아생전 화 한번 안내본 성인군자도 폭도로 변모하게 만들 만큼의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모래가 워낙 고운 터라 그 많은 사람이 올라가는데도 발자욱은 서너 사람분 밖에 찍혀있지 않다.
앞 사람이 밟았던 곳을 밟는게 훨씬 편하거든.


정말 본능만으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는게 어떤 것인지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던 코스다.
이놈의 대회를 주최한 인간들에 대한 상상할 수 없는 저주와 폭언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에 대해 분노를 쏟아내다보니 어찌어찌 정상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역시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게 이런 것인가 보다?


CP가 산 정상에 있다. ㅡㅡ;

간이 텐트에는 휴식하는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버려서 들어갈 엄두도 못 냈다.
물을 공급받고 육포를 씹어먹으며 내 인성을 더럽게 만들어 주었던 산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일본인 연예인 아이나씨와 스텝 일행이 다가왔다.


오는 동안에 알맨님과 함께 했다고 하는데, 영어로 대화했나? 뭔가 좀 석연찮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나마 외국인중 일본어가 되는 사람이라 스텝이 나한테 아이나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행자분만큼 이 아녀자에 대해 관심은 없었지만 여기까지 온게 기특해서 좀 놀란듯한 어투로 말해줬다.

'솔직히 저런 체격으론 1~2일만에 그만두고 말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기 그지없다. 나보다 훨씬 순조롭게 진행하는 것 같다.'
요런 식으로.

아이나씨는 영화에도 출연할 예정이라는데 불행히도 제목까지는 가르쳐 줄 수가 없단다.
혹 한국 영화는 좋아하는거 있냐고 물었더니 올드보이를 좋아한댄다. 그거 당신 나이에 볼 수 있는 영화였던가? ㅡㅡ;


한편 우리와 동떨어진 곳에서는 스텝들의 사투도 계속되고 있었다.
상당한 수의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진 스텝들도 사막의 극한 상황에 적응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
4륜 바이크, 오프로드용 지프, 헬기까지 총 동원되어 선수들의 상태를 체크하는 주최측이지만
저렇게 모래구덩이에 박혀 버리면 땀 뻘뻘 흘리며 씨름하는 수 밖에 없다.
슈가님이 탄 차가 저런 상황을 맞이하는 바람에 오늘 애좀 쓰셨단다.


산을 내려오면서 생각한 건데, 올라올 때 워낙 악이 받쳐서 그만두자라는 생각을 못한 것 같다.
이제 좀 그만두려는 생각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상황이 또 막막하다.
이런 모래바람 속에서 앉아서 쉬면 뭐가 편하나.

바람이 잠잠할 때 저 쪽 계곡 끝에 다음 CP가 보이길래 조금만 가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왠걸. 눈으로도 확인이 가능했던 CP는 이동식이었는지 가도 가도 당최 가까워지질 않는다.


CP가 보이길래 안심하고 물까지 다 마셔버렸는데 거의 신기루에 가까운 착시현상이었는지
1시간 가까이 걸어도 한참 남은 것 같다. 덕분에 옆에서 함께 걷던 알맨님 물까지 얻어마시고 말았다.
중간중간 불어오는 모래폭풍은 시야를 5미터 가까이까지 제한시켜 버려서 앞 사람이 없으면 방향도 잊어먹어버릴 정도.



나침반님은 그 와중에도 카메라의 동영상 기능을 십분 발휘하셔서 귀중한 자료를 남겨주셨다.
정말 미치겠다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산을 내려왔다고 너무 방심했다.
파김치가 되어 CP에 도착하고 신발을 벗은 후 육포와 파워젤을 입에 짜 넣는다.
어지간히 하드 트레이닝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이라면 체력고갈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를텐데 (나도 몰랐다)
몸에 영양소가 딱 떨어져 버리면 자기 자신도 믿기 힘들 정도의 탈력감과 무기력함이 일시에 몰려온다.

힘들어서 헥헥거린다기 보다는 그냥 의식이 몽롱해지고 손과 발에 힘이 없어지며, 계속 나가려는 의지와는 관계없이 몸이 축 쳐지는 느낌.
이럴 때 흡수가 빠른 파워 젤은 섭취 후 5분도 되지 않아서 다시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더불어 고통과 짜증도 함께.


이제 마지막 코스다.
이번 코스는 중간에 조그만 마을을 통과할 뿐, 무난한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한낮에 미친듯이 산을 등반해 버려서 이제 해도 저물어가는 시간의 이런 평지는 왠지 평온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도 많이 컸구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이런 수도시설도 있어서 선수들이 물을 담아간다. 원래는 규정위반이지만 누가 그거 따지나.
마을 사람들이 코카 콜라를 팔기도 하는데 이걸 사 마시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원래 Long Day 마지막날 주최측에서 콜라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그 때의 즐거움을 위해.


꽤나 이렇게 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시도는 못해봤다.
정말 천국같았겠지. 특히 미칠것 같은 정오 시간에 이런 물웅덩이가 있었으면 아마 거기서 살림 차릴 사람이 많았을거다.


한국 팀 중에선 내가 가장 늦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은 아마 야영지 텐트에서 쉬고 있겠지.
오늘 코스는 38km 로 이제까지 중 가장 긴 거리이자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코스였기 때문에
드디어 해가 지는 모습까지 보면서 걷게 됐다.

나는 이 점이 굉장히 우울했던 게
38km 걷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했으니, 내일부터 시작되는 지옥의 Long Day에 혹여 시간 제한에 걸려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됐던 것.
내가 스스로 지쳐 쓰러지는건 몰라도 시간제한이라는 녀석때문에 탈락당하는건 정말 참을 수 없다.


무난한 평지를 절뚝이며 걷는 동안
오늘의 무사 통과를 기뻐하기보다 내일의 탈락가능성에 더 몸서리를 친다.
조금이라도 다리를 쉬게 하면 통증이 살아나서 지독하게 아프기 때문에 그냥 스틱에 의지해 장애인처럼 비틀거리며 걷는다.
새끼발가락에 질퍽질퍽한 느낌이 나는데 그거 확인하려고 앉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간다.

조금은 왁자지껄한 마지막 도착지가 가까워지니 마음이 좀 풀린다.
먼저 와 있던 팀원들이 짐도 들어주고 물도 들어주고 밥도 만들어줬다.
제일 능력이 떨어지니 이런 황송한 대접도 받아보는데, 고맙긴 하지만 역시 마음이 편하진 않네.

만약 다음 대회때 이 멤버로 다시 간다면 그 때는 좀 더 어리광 부리며 대접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친근하기 때문에.
대회 시작전까지 제대로 말 한번 안 섞어본 멤버들이지만 이제는 20년지기 친구처럼 가까운 느낌이다.
거지꼴로 함께 먹고 자니 당연하겠지.

밤이 되자 피터가 여기저기서 괴소문을 들고 왔다.
탈락자가 너무 많고, 남아있는 선수들의 체력도 위험한 수준이라 내일 Long Day 72km 구간을 단축한다는 소문이다.
아시아 에이전트 제임스 장씨는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웃고 넘겼는데, 멤버들은 제발 좀 단축되길 원하며 수다떨기 바빴다.
사실이든 아니든 내일 아침까지는 굉장히 기대에 부풀 수 있는 멋진 소재였으니까.

다만 나는 좀 절실했던게, 단축되지않은 72km 구간은 정말 내가 쓰러지든 시간제한에 걸리든 탈락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침낭 속에서 혼자 결심했다.
단축되지 않으면 그냥 중간에 포기해 버려도 괜찮고
만약 거리가 단축된다면 그때는 그 단축된 구간이 아까워서라도 죽기살기로 완주하고 말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