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일간의 여행중 도쿄에 있었던 기간은 10일 정도.
다다미 3장짜리 싸구려 호텔은 10개월만에 돌아오니
아날로그 TV가 디지털로 바뀐 게 신기했다.


서울하고 별다를 것 없는 도시라 그다지 머물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곳.
술취한 노숙자들이 널부러져 있고, 기다란 경찰봉을 든 경찰이 시도때도 없이 날 노려보던 곳.

그래도 비 오는 날 벤치의 강이지 조각상 위에 비막이를 올려 놓은 누군가의 행동 덕에
쪼잔한 편견이 조금은 따듯한 쪽으로 풀리기도 했다.


꾸역꾸역 관광 버스가 손님들을 실어나르고
하찮은 기념품 가게로 몰려드는 아사쿠사 거리도 이젠 좀 지겹다.
그래도 갈 때마다 종종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곤 하니 뭐.


초상권에 목숨건 곳이 많아서 이런 사진 한 장 찍을때도
갑자기 들려오는 'No Picture' 에는 기분이 상하기 일쑤지.
얘네들은 보여주면 닳는다고 생각하는게 분명하다.
유명 신사, 박물관, 심지어는 이런 싸구려 기념품 가게에서도.

결국 돈때문이지만 그래도 이유는 참 신성하게 붙이더라.


랜드마크엔 관심이 없어서 저게 뭔가 했었는데
막상 일본은 저 스카이 트리로 떠들썩 했었다.
이것도 사실 저 거대한 똥덩어리 찍으려다가 우연히 파인더에 들어와 버렸을 뿐.

내 평생 돈내고 저 위에 올라갈 일은 없다.


도시에 애착심이 없는건 천성이라 치고.
역시 이런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나로서는 이쪽에 융화될 리가 없지.

우울한 건 다 내 탓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알고 있는 단어들이 나와서 재미있긴 헀다.

욘사마는 2000년에 있더라.


도쿄에 인연이라곤 오다이바에서 만난 이 녀석 밖에 없다.
고맙게도 올 때마다 항상 얼굴을 마주쳐 주니.

근데 이번엔 심기가 좀 불편하신 듯 그냥 가버리더군.
내 인상이 불편해서일지도. 출발 앞두고 심란한 마음이 얼굴에 다 나오더라.


초반에 워낙 이것저것 불안해서 동경 유학생 모임 채팅에까지 들어가 봤는데
그야말로 잡담 뿐이고, 뭔가 물어봐도 쿨하고 시크하게 튕겨버린다.

선배라면 무슨 일에든 의연하게 대처하는게 요즘 말로 간지 있어 보이기 때문일까?
그런 애들이 인터넷에선 아양 떨어가며 동경 유학 블로그를 샤방하게 꾸미고 있겠지.

그 때의 채팅 이후로 단 한번도 한국인에게 뭘 물어본 적이 없다.
아니 인사 한 번 한 적도 없다.


도쿄에서는 기분이 밝아지는 경험을 한 적은 서울만큼 없네.
난 도쿄 별로 안 좋아해.

더구나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건데, 도쿄 출발 이틀만에 일본서 제일 힘든 하코네 고개를 넘었거든.
아마 조건반사인 듯. 아... 이 사진 보니 또 치가 떨리네.



여행기 아닙니다. 그냥 되는대로 갈겨본 것 뿐이에요. ㅡㅡ;
연재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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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YO :: 2011. 5. 20. 23:58 현실도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