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필할만한 특징과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공원이 된 것인가.
부지나 접근성 등에서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공원이 된 것인가.

일단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으면 위의 두 공원은 모두 경제적으로 성공한다.
하지만 아무리 해가 지나도 두 공원의 본질적 차이점은 좁혀지지 않는다. 태생이 다르기 때문에.

해맞이공원 중에서는 꽤 유명한 이곳은, 객관적인 사실여부를 배제한 개인적 견해로 후자에 속하는 듯 하다.
울진, 영덕, 포항을 어우르는 편리한 접근성과 함께 해산물 시장으로 유명한 강구항과 인접,
숙소가 풍부한 삼사해상공원과 자동차로 쉽게 이어지는 연계성, 주변에 어촌이 형성되지 않은 공간적 이점 등등.

반대로 경상도 해안가도로중 이곳의 해돋이가 더 장관이고 유명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시야, 이런 언덕은 이곳에서 너무나 흔하거든.


그 무난함과 차별화되는 특징을 위해 세워진 창포말 등대는 좋은 아이디어임에 틀림없다.
밤엔 루미나리에와 함께 등대에서 발산되는 몽롱한 레이저도 사람을 끌어들이고
창포말 등대에서 바라보는 동해 일출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있으니까.

좋은 공원이면 그걸로 됐지 뭘 그리 따지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지만
어느 한쪽의 우월을 위해, 그리고 그걸 이용해 내 불만을 표출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이곳은 굉장히 잘 만들어지고 훌륭한 공원이다.

단지, 자전거여행을 정리하며 기억을 더듬어 보던 중
무의식적으로 끌렸던 여러 관광지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곳들은
위에서 말한 전자의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의 관광지 선택 기준은 그런 쪽으로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것 뿐이다.

즐길거리와 볼거리는 동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에게는 그 두가지가 꽤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밤에 이런 루미나리에 사이로 난 계단을 '연인과 함께' 걸어 내려가며 낭만을 즐기는 것. 훌륭하다. 하라쇼.
내가 여행을 즐기는 방향도 아마 '혼자'라서 즐길거리보다 볼거리쪽으로 기우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냉철하게 생각해봐도 그렇다.

물론 그 볼거리라는건 가능하면 설정 갖다붙여서 만든 게 아닌,
지역의 역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던가 위대한 자연의 손재주가 만들어낸 것이라던가가 더 좋다.
아쉽게도 내 옆에는 옆구리를 근질거릴 짝도 없고, 이 공원에는 시간이라는 재료를 들여 빚어낸 특징이란 것도 없다.
그래서 그냥 좋은 사진 건지겠네 라고 생각하며 바람 쇠는 정도의 감흥밖에 들지 않는 듯 하다.


이런 감정과 함께 공원을 둘러보면 사물을 대하는 인상도 바뀌는 법.
이 사진을 찍을때도 생각하던 건 '흰색 건물을 하늘과 찍으면 하늘이 시퍼렇게 잘 나오지. 좋다' 정도였으니까.
영덕의 상징인 대게의 다리를 본떠 만든 어쩌구 하는 감상은, 여기서 기억해 낼 만한 특징조차 아니어서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일본의 전래동화 모모타로 이야기의 고향인 오카야마와 그 옆의 쿠라시키에서는
원형이랄게 남아있지 않은 그 소재를 적극 활용해, 도시 전체에서 모모타로라는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했었다.
조그만 공원에도, 개천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다리 위에도 모모타로와 친구들의 동상이 소박하게 자리 잡고
가게에서는 모모타로가 먹었다는 경단을 캐릭터 스티커와 함께 팔고, 다른 지역에는 없는 모모타로 버전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을 판다.

울진과 영덕에서 대게 관련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경쟁하듯이 세워진 대게 동상과 도로변에 끝도없이 늘어서 있는 대게모양 장식물. 그리고 이 등대 정도다.
여행에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크고 특징적인 것들이지만
굵고 짧은 것보다 길고 가는 것이 여행에서는 여운을 남긴다고 본다.

관광버스를 타고 주르륵 둘러보거나, 자동차로 일일관광을 즐길 때는 분명 이런 게 어울리겠지.
그런데 자전거로 사골까지 고아먹으려는 나 같은 여행 스타일에겐 이건 수명이 짧다.
하다못해 한국 최고의 해돋이를 자랑한다는 이 곳에서 대게모양 휴대폰 스트랩하나 파는 가게가 없다.


이러저러하게 이 곳의 관광전략에 대해서는, 참 애써서 만들었는데 활용할 생각은 별로 없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지만
일단 풍경 하나는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곳이라 그것만으로도 7번국도를 포기하고 이쪽으로 달려올 이유는 충분하다.

이번 여행중 처음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만난 곳이기도 하고.
좀 더 편리한 이동수단을 갖고 이곳에 온다면 아마 밤풍경도 즐기고 야영장에서 밤 세운 후 멋들어진 일출을 보며 셔터를 누를 것이다.
단지, 그런 유희에 적합한 시기가 되면 지옥같은 인파에 시달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상상만으로도 느껴지는 듯 하다.


낙서해도 될 만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글씨가 써 지고 보여질만한 장소에는 여지없이 낙서가 즐비하다.
등대 벽에다 낙서하는 인간이 남한테 정신 챙기라는 조언을 할 위치가 되는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아이를 동반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를 안고 이 등대를 오르락내리락 하더라.
충분히 이해가 될 만큼 조금 아찔하고 어질하다. 수없이 뱅뱅 돌기 때문에 좀 어지럽다.


전편과 이어지기 때문에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이날 아직 아이스크림 한개 외엔 뱃속에 넣은게 없었다.

해맞이공원에 위치한 간이 가게에서 과자와 컵라면을 팔고 있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그 정도의 폭리에 내 배고픔이 무릎을 꿇을 정도로 부조리에 대한 저항심이 약하진 않았기 때문에
해맞이공원을 지나 또 다시 나타난 조그만 어촌마을 횟집을 찾았다.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가게에 들어가서 여느때처럼 혼자 먹을 게 있느냐 물었는데
다행히도 이 집에서는 회덮밥과 물회라는 개인용 메뉴가 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회 역시 회덮밥처럼 밥을 말아 비벼먹을 수 있지만 아주머니께서 회의 신선함을 즐기는데 밥의 온기가 방해되니
그냥 따로 먹는게 정석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손님도 없고 작은 횟집이지만 워낙 바다와 맞닿은 어촌이라, 회는 상당히 신선했다.
사실 회를 채소와 고추장에 비벼먹는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어쨌든 꿀맛이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말에 안스러워하시던 아주머니는 밥도 덜 먹었는데
한그릇 더 드시라며 공기밥을 추가해 주셨다. 사실 한그릇으로도 충분했지만 호의를 거절할 순 없어서 거뜬히 먹어치우는 '척'을 했다.

식사 끝나자 커피도 한잔 드시라며 타 주시고, 아마 웰던이 된 직후 진흙탕에 넣고 몇일 숙성시킨 몰골을 하고 있어서인지
많이 애처로워 보였나보다. 거듭 감사인사를 드리고 든든하다못해 '이것은 마치 입에 넣자마자 밑으로 빠져나오는' 듯한 포만감을 느끼며 다시 출발.


해맞이공원과 강구항은 매우 가까워서 어렵지 않게 도착했다.
강구에서 개불 사다가 신나게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곳은 자전거 세워놓고 어디 들어가서 개불 먹기엔 조금 위험할 정도로 붐비는 곳이라
호객꾼들의 살가운 목소리를 뒤로 하고 천천히 자전거를 전진시켜 빠져나갔다.
나한테도 싸게 해드릴게요라고 붙잡는데, 내 행색이 해산물 싣고 달릴 수 있는 행색인가?

여기저기 대게대게 소리를 지르지만 강구항에서 대게를 살 확률은 한없이 제로에 수렴하니 애초에 희망도 가지지 말길.
어떤 곳은 대게 5마리 10만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간판도 걸어놨다. 요즘도 대게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일단 어떤 허풍과 거짓말도 쉽게 용서되는 배려심 철철 흘러넘치는 대한민국이니, 그 정도의 광고는 그냥 넘어가 주는것 같기도 하다.

최상급 대게를 먹었던 7년 전쯤의 가격이 한 마리 10만원이었다. 그것도 소매가가 아닌 도매가로. 그냥 웃고 말지.
그 정도 대게는 긴다리의 마디 하나가 내 오른손 쫙 찢어 벌린 정도의 길이다. 
거의 킹크랩급의 크기지만 맛은 천하일품이지. 킹크랩 5마리하고도 안바꾼다.


강구항은 그저 멋들어진 풍경하진 한 장을 남기고 지나갔다. 강구항 바로 옆에는 삼사해상공원이라는 거대한 공원이 자리잡고 있어서
비수기인 지금엔 어디든 노숙할만한 장소는 차고 넘쳤다. 지붕까지 달린 공연장도 텅텅 비었고 근처엔 편의점과 호프집도 완비. 술을 마실 건 아니지만.

동해안은 뭐, 사실상 어딜 달리든 해맞이 구경하는덴 최적이니 명소라는 수식어가 조금 퇴색하긴 하지만
확실히 편의시설, 숙박시설, 오락시설이 충분한 삼사와 해산물 풍부한 강구항, 산책하기 최적인 해맞이공원까지
모두 자동차로 10분거리에 위치하다 보니, 이곳은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는 효율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찍고나니 이 시기에 왠 벚꽃인가 싶었지만 전부 조화였다. 뭘 기대했던걸까.
넓은 녹지에 한산한 인파덕에 여기서 만난 고양이만 네 마리는 된다. 물론 경계심은 심해서 사진 찍을 순간도 없었지만.
어젯밤 모기때문에 잠을 설친 덕에 믾이 피곤했다. 편의점에서 오징어다리까지 사서 컵라면과 함께 뜯어먹고
시체가 되어도 한동안은 못 찾을만한 구석진 곳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가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넓은 주차장쪽은 아무래도 너무 눈에 띠고, 의외로 관광버스라던가 바이크 라이더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놀고 하더라.

높은 언덕 위라서 파도소리도 그렇게 거슬리지 않고, 밤이 되니 정말 얌전할 정도로 조용해 진 덕에 꽤 편안했다.
자전거 끌고 언덕 올라가느라 고생좀 하긴 했다. 그리고 귀마개가 문방구에서 산 싸구려라 좀 딱딱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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