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과 거기 속한 흥해읍은 내 어린 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 서린 곳이다.
제 2의 집이자 제 2의 고향이라 할 만한 곳이었고, 대구와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다른 곳이라 세상을 넓히는 데 큰 일조를 한 곳.

삼사 해상공원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장사 해수욕장부터는 그런 이유로 인해 새로운 여행이라는 느낌이 들질 않는다.
내 인생중 찾아간 해수욕장의 90% 는 이곳 포항쪽이었으니.

여기서부터 다시 7번 국도와 합쳐지는데, 사실 바닷가 도로도 있긴 했지만 이곳은 그냥 전속력으로 내륙쪽 7번국도를 달렸다.
이번 여행중 속도를 낸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두시간에 30km 를 내달렸다. 평지에서 내 자전거로 낼 수 있는 최대속력.
7번국도는 역시 해안도로보다 편안하다. 그냥 편안한 리클라이너 소파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자동차를 배려한 것이겠지만 경사도 급하지 않고 거의 직선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이런 곳에 비하면 해안도로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겠지.

흥해읍의 이 사진은 관광지가 아니라 오직 본인한테만 의미가 있는 곳이다.
두 번 다시 저기 보이는 곳으로 돌아갈 일은 없고, 내 인간불신에 크나큰 공헌을 해 준 장소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 어디까지 비굴해질 수 있으며, 어디까지 뻔뻔해질 수 있으며, 어디까지 망각할 수 있는가를 체험한 곳이기도 하고.
가해자는 용서받을 마음은 커녕 잘못했다는 마음조차 없음에도 항상 용서 용서라는 단어를 달고 살아야 하는 피해자 타령에 진저리나는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난 아마 남한테 사기는 안당하고 살거다. 아마 당한다면 그 금액 이상의 가치를 반드시 뺏어올 테니까.
본인이 별로 중요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류한테 사기치다간 일생 좋은 꼴 못 볼거다.

포항 구경은 이 사진 한장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이 부근에서는 여행이라는 걸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래서 바로 포항으로 들어가 구룡포로 후다닥 달려나가는 도중, 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내일이 제삿날인데 왠만하면 돌아오라는 전화였다.
자식이 하는 일에는 굉장히 관대한 아버지지만 집안 제사에 빠지는 것은 천하에 있어서는 안될 일로 여기는 분이라서.
제사라는 의식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그래도 여행이라는 핑계로 빠지기에는 너무 야비하다.

포항 언저리서부터 사진은 접고, 울산쯤 가서 다시 마음 다잡고 여행을 즐기려던 찰나였기 때문에
전화 받은 후 방향을 돌려 포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사진을 찍은 게 하나도 없다.
가던 길을 돌아가면 그 만큼 감흥도 떨어지는 편이고.

포항에 도착하니 시간은 4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부터 밤까지 열나게 페달 밟아서 경주 근처까지 간 후, 다음날 새벽부터 미친듯이 달리면 제사 전까지 대구에는 도착한다.
며칠동안 제대로 눈을 붙여보지 못한 지금 그런 짓 해서 거지몰골로 본가에 돌아가서 바로 제사 지내는 건 하나의 개그다.
어차피 마지막인데 말끔하게 돌아가자고 생각하고 이리저리 둘러본 끝에 비즈니스 호텔을 찾아 투숙했다.
일본서 매번 이용하던 비즈니스 호텔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지만, 목욕탕이 없이 샤워시설만 갖춰진 점만 빼면 편안한 곳이다.
조식도 나온다 하니 근처 슈퍼에서 적당히 먹을거 사들고, 마지막 기념으로 맥주도 한캔 사들고 돌아왔다.

포항제철 바로 근처라서 환상적인 야경을 자랑했지만 아침에 지나온 코스가 진득하게도 마음속을 조여와서
사진 찍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여행을 치장하고싶은 생각은 없다. 그 기분에서 멋들어진 사진을 찍는건 내 여행이 아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문득 생각나던 장면이 있었다. 이때 정말 기분 좋았지.
역시 난 일출보다 일몰이 더 마음에 든다.

이번 여행땐 이런 장면을 보지 못한게 조금 아쉬웠고, 그 외엔 그냥 무덤덤했다.
기분이 날아갈 듯 했다던가, 성취감을 느꼈던가 하는 감정은 없었다.
1년간의 자전거여행에 비하면 정말 가볍게 산책하고 온 듯한 느낌이라서.
그래서 내일 버스로 돌아간다는 사실에도 별로 아쉬움이 없다. 애초에 목적 자체가 자전거를 서울에서 대구까지 옮기는 것이었으니.

거의 매일 매시간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꿈을 꾸지만
이번엔 여행을 한다는 느낌 자체를 처음부터 많이 배제한 상태에서 시작한 터라
자동차로 치면 가볍게 드라이브하며 기분전환한 정도의 감정밖에 느끼지 못했다.
물론 그게 아쉽다는 말은 아니고. 밋밋하든 짜릿하든 내 여행의 목적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나의 것이다.



다음날 버스를 타고 대구 터미널에 도착해 집까지 달리는 30분간 좀 민망하긴 했다.
대구정도의 대도시에서 완전무장한 여행용 자전거로 달리는 건 역시 좀 시선이 쏠린다.

막상 돌아와보니 안돌아왔으면 큰일날뻔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저런 사정때문에 불참한 친척이 꽤나 많았기 때문에.
나마저 없었으면 아버지 많이 쓸쓸해 하셨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부터 울집의 제사 형태가 바뀌었다.
요즘 한창 성당의 교리에 빠져있는 아버지께서 제사도 성당식으로 해 보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
기독교는 아예 제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성당에서는 거의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
사실 기존 제사와 별로 바뀐 건 없다.

조금 일찍 지내고, 제삿상이 간소해지며, 간단한 기도와 함께 여성들도 함께 절을 올리고 참가한다는 것 뿐.


매번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 장만해야 했던 엄니께서는 당연히 좋아하신다.
내가 어릴 적엔 새벽 6시에 출근하시는 엄니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항상 밤 12시에 제사를 지냈지.
음복후 고주망태가 된 집안 남자들 처리한후 설거지하고 4시간도 안되는 수면 후 다시 출근하셨다.

물론 음식 만들때도, 음식 치울때도 이 집안의 남자들이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한마디로 개같은 짓이었다.

물론 엄니의 절규에 가까운 항소로 제사 시간이 9시로 바뀌었고, 이제는 더더욱 편안한 방법으로 바뀌었다.
지난 번 내가 타 블로그를 참고하며 만들었던 오븐구이 닭도 만들어 보시고, 신세대틱하게 치즈케이크까지 올려놓으셨다.
물론 이런 변화는 나로서도 흐뭇하다.

모태신앙이긴 하지만 지금은 종교와 연을 끊은 나로서는 기도시간이 조금 어색했지만
사진 찍는다는 명목으로 거의 넘어갔으니 뭐. 다음부터는 함께 기도문이라도 읽어야지.


그 후, 집 크기에 비해 상당히 넓은 현관 안에 놓여진 자전거를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얼마 안되서 서울로 출장가신 엄니 대리운전 명목으로 잠시 올라가기도 했다.
나침반님 만나서 이번 여행에 대해 담소를 나누고, 무사히 엄니대신 거대한 G모 자동차를 몰아 본가로 돌아왔다.
왠지 그 때서야 여행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설픈 마무리를 매듭짓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자전거로 한국을 다시 돌아볼 일은 그다지 없을 것 같다.
비수기의 동해안 도로만큼 자동차 신경안쓰고 달릴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을테니.
그리고 자전거로 즐기기엔 한국은 좀 좁다. 자동차나 바이크가 적당할 듯.
속도면에서 비교가 안되는 탈것들이긴 하지만, 자전거 여행은 시간을 진득히 들이는 것 자체가 여행에 들어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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