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대구시내에 그리 멀지않은 곳이라
심야영화를 보고나면 한적해진 길을 따라 걸어서 집에 옵니다.
걸어서 30분이면 되는 거리를 택시타고 할증까지 내면
짧은 거리를 가는 기사도 기분나쁘고 저도 지갑이 다이어트해서 기분이 나쁘니까요.

그 이유가 아니라도 집까지 오는 길엔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이 불을 밝히고 있어서
충분히 즐기며 걸어올 수 있습니다.


원래 밑에서 위로 쬐이는 자연광이 없는 관계로
밤에 이런 모습을 보면 굉장히 신기하게 보이죠.
꼭 현실세계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나무들도 밤에 잠은 자야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녹색 조명을 받아서 평소보다 훨씬 녹색같은 식물 사이로
아직 붉은색 잎이 보이더군요. 이렇게 대비가 강한 녀석은 사진으로 남기기 좋습니다.


필받아서 붉은 열매와도 함께.

제가 쓰는 구박이가 고감도 노이즈 쥐약인 녀석이라지만 어지간한 밤이라도 적당히 노하우만 있으면 이정도는 찍습니다.
곧 출시되는 어도브 라이트룸 3.0 에서는 엄청난 성능의 노이즈제거 기술이 탑재되니
이제 더이상 구박이에겐 모여라 측거점 이외엔 약점이 없어질듯.

카메라 관련 이야기는 못알아들으시는 분이 많으니 이정도로 패스. (할말은 다하고... ㅡㅡ;)


2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인데도 공원에서는 스케이트보드 연습하는 어린 여자사람분이 있네요.
제가 위협이 될까봐 스르륵 빠져나왔습니다.
이렇게 영화를 본 후 어두운 길을 걸으면 봤던 영화 되새김질하는데도 좋더군요.


전등의 빛을 나무가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입니다.
밤거리도 의외로 사진 찍을게 많아요.

다리 근처나 높은 건물위에서 삼각대 세워놓고 찍는 야경도 멋지지만
이런 스냅도 평소와는 다른 결과물을 보여주니 찍는 맛이 납니다.
손떨림방지 기능덕분에 덜 흔들리고 찍을수도 있고.


봄에 빨리 반응하는 녀석들은 벌써 지기 시작하는데
아직 기지개도 안 편 녀석들이 있으니
식물 세상도 사람사는 곳처럼 개성이 중요한가 봅니다.


신천 주변은 지금 희고 노란 꽃들로 가득 덮혀있죠.
오래가진 않겠지만 낮엔 그 화려함을 마음껏 담기엔 내공이 부족해서
이렇게 밤에 피어있는 꽃들을 소박하게 찍는게 더 마음에 듭니다.

벛꽃은 왠지 밤이 어울리는 듯한 느낌.
야시장과 축제 때문에 그런가... ^^;


아파트에 돌아오니 어디론가 밤놀이 하러 나가버린 소화기의 흔적만이 덩그러니...


부모님께서 시골 별장에 놀러가셔서
뭐 먹을거 없나 냉장고를 뒤적이다가 한참 안먹고 놔둔 돼지껍질 발견했습니다.

원래는 고추장 양념 듬뿍넣고 야채와 함께 볶아먹어야 맛있는데
전 귀찮아서 그냥 술안주처럼 그대로 구워먹습니다.
일단 소금 팍팍 쳐서 열심히 씻어냅니다.


후추와 소금을 섞어서 비린내를 없애면서 구워냅니다.
원래는 매실액과 대파를 넣은 물에 삶은 다음에 볶아야 비린내가 없어지는데
왠지 귀찮아져서 그냥 얼렁뚱땅 구워버립니다.

그 대신 잘 익도록 약한 불에 오래오래 구워내야 하죠.


별 맛은 없습니다.
원래 술안주였고... 바싹바싹 쫄깃하게 구워내야 되는데
중간과정을 다 생략해 버렸으니 그냥 좀 니글니글한 녀석이 되어버렸네요.

술집에 거의 가질 않으니 술집 음식에 미약한 동경을 품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 마음에 그냥 구워먹어본 돼지껍질입니다. 찐득찐득한게 씹는 맛은 있군요.

워낙 가리는게 없어서 이런거라도 주워먹지, 아마 이렇게는 비려서 못 드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도 피부엔 좋아요. 콜라겐이 어마무지하게 들어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