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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中部'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8.28  과거로의 여행 - 리틀 쿄토 7
  2. 2013.08.26  과거로의 여행 - 히다 타카야마로 8
  3. 2013.08.24  과거로의 여행 - 토요타 박물관 7편 8
  4. 2013.08.22  과거로의 여행 - 토요타 박물관 6편 4
  5. 2013.08.20  과거로의 여행 - 토요타 박물관 5편 8
  6. 2013.08.19  과거로의 여행 - 토요타 박물관 4편 8

 

얼마 걷지 않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부분이 보인다. 아마 이곳을 찾으려면 지도 없어도 행렬만 따라가면 될 듯.

오랜만에 보는 일본의 '옛 마을거리' 모습이다. 교토에 가봤다면 비슷한 건물이나 짧은 마을거리는 볼 수 있었겠지만

규모와 완성도면에선 이 정도 거리를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곳은 국가 중요 보호지구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니까.

 

옛날 일본의 마을이 전부 이런 모습은 아니고, 원래 이런 형태는 쇼군의 성이나 도시의 주요 시설 등에서 직선으로 뻗어나온

숙박 시설과 상가가 밀집한 지역의 모습이다. 바닥이 콘크리트로 바뀌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약 300여년 전의 모습을 잘 간직한 편.

 

물론 부유한 도시야 이 정도로 잘 가꾸어졌지만 사실 이 거리의 건물들은 보수를 너부 잘해놔서 깔끔하기 그지없다.

나무에 옻칠을 열심히 해서 벌레를 방지하긴 했지만, 예전의 건물이 이 정도로 깔끔하진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아주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 정말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해놨다간

어디 제대로 들어가 식사 한끼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발생될 수도 있고, 이곳 주민들의 거주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군데군데 슬쩍 현대식 증축이 이루어지고는 있다. 처음 보는 외국인들에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심히 하긴 했다.

 

아침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그래도 타카야마에서는 좀 도움이 될지도'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이 사진들의 결과물에 트러난다.

이런 옛 마을거리는, 원래부터 오래된 목재를 사용하는데다가 거기다 옻칠을 몇 번이고 더해서 상당히 시커먼 모습이다.

상점가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만큼 처마나 지붕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그림자도 매우 잘 생기고.

그러다보니 날씨 쨍한날에 가서 사진 찍으면, 카메라의 관용도를 훨씬 능가해 버리는 강한 명암대비가 생겨나 버린다.

 

푸른 하늘을 살리자면 건물이 전부 시커멓게 변하고, 건물의 색을 살리자면 하늘은 순백색이 되어버린다.

특히, 해의 방향이 일정한 쪽을 가리키고 있으면 한쪽 거리는 화사하게 잘 보이고 나머지 한쪽은 어둠속에 잠겨버리기도 하고.

이번 카메라의 관용도는 필름을 능가할 정도로 넓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JPG 파일만으로 암부와 명부를 살리기엔 벅차서

RAW 촬영후 좀 어색할 정도로 보정을 가해서 양쪽을 모두 살려봤다. 위의 두 장이 보정을 강하게 한 녀석과 적당히 한 녀석.

 

이런 식으로 보정하면 HDR 같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본인은 HDR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그렇게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다.

 

 

 

비교를 위해서 '진짜 옛 마을거리'의 비오던 날 사진을 올려본다. 화창한 날씨보다 안개낀 날씨가 더 어울리는 마을.

철도도 없이 자동차로만 갈 수 있는 나가노현 깊숙한 오지의 옛 마을거리 츠마고쥬쿠(妻籠宿)라는 곳이다.

 

옛날 수도였던 쿄토와 도쿄를 잇는 길은, 해안선을 따르는 토카이도(東海道)와 중앙 산맥의 골짜기를 따라서 나 있는 나카센도(中仙道)가 있었는데

나카센도는 현재 자동차로 지나가기에도 굉장히 험한 산세를 자랑하는 협곡 사이에 난 길이었기에

그 긴 거리를 가는 동안 중간중간 산골 마을에 역참과 같은 장소를 지어서, 숙박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형성이 되었다.

나가노현의 이런 마을거리는 바로 그런 중간경유지의 역할을 했던 장소.

 

이런 곳을 방문해 보면, 옛날엔 대체 어떻게 이런 산길을 지나서 쿄토와 도쿄를 왕복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단순한 여행 목적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상인들이나 영주의 명을 받들어 출발하는 고관직들이 십수 명의 하인들과 함께 지나다녔는데

내가 신세졌던 작은 마을에는 1년에 한 번씩 그 관료들의 출정식을 재현하는 축제를 열기도 한다.

무사계급이 걸어서 갔을리는 없고, 말을 타고 나카센도를 넘나들었는데, 짐을 매고 따라가는 하인들의 수고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카센도의 길은 그 절경만큼이나 험하기로 유명했다.

 

이곳과 그 앞의 역참마을 마고메쥬쿠(馬籠宿)간의 거리는 8km 정도인데, 아직까지 그 두곳을 걸어서 이동해 볼수 있다.

등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한 때를 보낼수 있을만한 절경중의 절경이고, 실제로 나카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통한다.

마고메쥬쿠라는 단어는, 말조차 통과할 수 없어서 그곳 역참에다가 놔두고 간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지만.

 

햇살 쨍쨍한 타카야마의 거리가 내 마음을 소문만큼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를, 이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으려나.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타카야마의 거리로 시선을 넘긴다.

이곳은 역참마을이 아니라 성 주변으로 세워진 상가거리였고, 특히 양조장이 유명한 곳이었다.

 

타카야마가 비록 산 속의 오지이긴 해도, 사실상 면적만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게 깜짝 포인트인데

해발 3000 미터가 넘는 산이 포함되는 이곳 타카야마시의 면적은 서울의 3배가 넘는다.

하지만 대부분이 산이고 인구는 10만명도 안된다는 점 역시 재미있다.

 

천해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서, 자연환경 역시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는 요즘엔 더욱 빛을 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객을 위한 세심한 손길이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거리의 풍경인데, 이게 이 사람들에게는 수백년간 이어온 생활의 일부분이라

손님맞이와 접대에 있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게 장점이라고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이 물이 풍부하고 깨끗한 곳이라 거리 사이엔 항상 물이 흐른다.

거리쪽이 젖어있는게 보이는데, 이건 더운 날씨탓에 가게 주인들이 틈 날 때마다 바가지로 이곳 물을 퍼서 거리를 식히기 때문.

 

그러고보니 일본을 왔다갔다 하는게 워낙 익숙해져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내게 큰 인상을 주었던 것이, 이렇게 마을 안을 흐르는 깨끗한 수로의 풍경이었다는게 생각난다.

지금은 충분히 더러워져 버린 경북 보현산 자락의 작은 마을은 아버지의 고향인데

80년대 중후반 까지만 해도 그곳 산기슭에서 내려오는 개울가에서는, 바위만 들쳐도 가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한 시간 정도만 힘좀 써도 그날 저녁엔 짭쪼름한 민물가재찜을 한솥 가득 뜯어먹을 수 있었다.

 

같은 시간이 흘렀지만 왜 보현산 자락의 개울가는 악취나는 똥물로 바뀌었고, 이곳 타카야마는 여전히 맑고 깨끗한 것인가.

이곳 타카야마가 도시 규모도 월등히 크고, 인구도 많다. 보현산 자락은 예전부터 손꼽히는 청정지역이었다.

 

철들기 전부터 시커먼 도시 먼지에 뒤덮혀 살았던 나는,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을 한국에서는 죄다 잃어버리고

일본의 산골 마을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자연 경관이나 사람들의 친절함이나 모두 다 말이다.

그래서 일본을 그리워하며 찾아가곤 하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정신의 뿌리에 괴리감을 느끼고 씁쓸한 감정을 떠올리곤 한다.

 

 

 

도쿄같은 대도시에도 남아있으니, 이런 곳에 인력거꾼이 있다고 이상할 거 하나도 없지만

이번에는 타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두 가지 의문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다.

 

첫째로, 이곳 옛 마을 거리는 그렇게 길이가 길지 않다. 느긋하게 걸어서도 5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간다.

거기를 인력거에 타고 움직이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물론 인력거꾼은 이곳 토박이라서 아주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니까 좋긴 하지만.

둘째로, 아무리 돈을 지불한다지만 36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사람이 끄는 인력거에 탄다는 것은

미안해서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할 것임에 틀림없는데... 두 명이서 타는 관광객들은 과연 편안하게 앉아는 있을까 싶다.

 

쉬고있는 인력거꾼을 보면 정말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는데, 60즈음 되어보이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50대 초반의 아주머니 인력거꾼도 있다.

얼핏얼핏 지나가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건물 사이사이에 붙여있는 문양에 대한 설명까지 아주 세세하게 잘 설명을 하고 계신다.

이런 더위에 긴 거리를 달리기도 좀 그렇고, 이곳의 인력거란 재미있는 탈것이 아니라 실력좋은 가이드 역할이 주가 되는 듯 하다.

 

흥미가 동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확실히 비싼 편이고, 본인의 덩치를 생각하면 미안해서 도저히 앉아있을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아파트에서도 여건만 된다면 이렇게 식물 블라인드를 만들고 싶다.

전통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2008년 경부터 일본에서는 도시의 주택이나 빌라같은 곳에서도 이런 식물 블라인드가 유행했다.

자연과 가까워진다는 심리적인 요인도 있었고, 실제로 실내온도가 꽤나 내려가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고풍스러운 거리의 덩쿨은, 한낮의 더위 아래에서도 뿌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도시에서 자란 본인이 이런 모습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되려 도시에서 태어나서 좋은 점도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길지 않은 거리지만 여관, 식당 외에도 향토박물관 고미술관 등의 볼거리 역시 곳곳에 숨어있다.

물론 입장료도 나가고 대부분이 철저하게 사진촬영 금지라서 나에게는 조금 멀게 느껴진다.

 

시간도 남고 날씨도 덥고 돈도 널널한 현 상황이라면 찻집에라도 들어가 여유를 만끽하는게 지극히 정상적인 방법이겠지만

벌써부터 관광객이 상당히 많이 몰리고, 몇몇 가게 앞에서는 대기열까지 만들어진 상황이라서

고질적인 대인기피증이 또 발을 잡아끈다. 옛 정취 풍기는 찻집에서 사람에 치여가며 차를 즐기는 본인의 모습은 상상이 안된다.

 

 

 

30년동안 봐 왔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한자로 보이지가 않는 녀석이다.

한국어 발음도 한동안 기억을 하지 못해 애를 먹었고, 일본 가서도 이거 발음 어떻게 하는가 싶어서 고심하던 글자.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반을 차지하는 이곳 타카야마인데, 아무래도 저 한자가 가운데 손가락으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이름이 재미있어서 한번 들어가볼까 싶었는데, 사진촬영 금지라고 딱 붙여와서 흥미가 식는다.

설사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해도, 기념품점에 저런게 붙어있으면 그냥 애정이 사라지는 기분.

어차피 기념품 살 생각도 전혀 없기 때문에, 재미있는 간판만 한 장 찍고 길을 나선다. 설마 간판은 찍어도 되겠지.

 

혹시나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데코보코'라고 읽는다.

 

 

 

나고야에서 유명한 먹거리라면 지역 토종닭인 코친이 있다고 예전에 적은적이 있는데

이곳 히다 고원 지역에서는 소가 유명하다. 히다 고원의 기후와 맑은 물이 방목에 적합하다고.

일본 3대 소고기라고 하면 보통 코베(神戸), 마츠자카(松坂), 히다(飛騨) 소고기를 꼽는다.

 

이곳의 특산품인 히다규(牛)는 한국의 한우와 비슷하게 마블링이 예술이며, 특히 지방층이 사슴의 모습처럼 새겨져 있는 녀석을 최고로 친다.

스테이크와는 안 맞다는 마블링 소의 편견을 깨고, 절묘하게 숙성된 두꺼운 고기를 세심한 타이밍으로 구워 만드는 히다규 스테이크가 유명하다.

 

소고기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곳 히다 고원은 물이 깨끗하기로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곳이라

당연히 양조장도 발달해 있다. 좋은 술은 좋은 물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산속 마을이다보니 여전히 전통주쪽에 강세를 보이는데, 위의 거대한 덩어리가 양조장임을 표시하는 간판이 된다.

 

스기타마(杉玉)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말 그대로 삼나무 잎을 뭉쳐서 만드는데

올해의 술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처음엔 삼나무의 푸른색을 띄지만 시간의 경과와 함께 저렇게 색이 바랜다.

당연히 술의 숙성시간도 예측할 수 있기에, 양조업자들에게는 희망과 기쁨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곳 거리에도 300년이 넘은 양조장들이 들어서 있는데, 무료 시음이 되는 곳도 있긴 하지만 술맛을 잘 모르니 패스.

이름만은 들어본 '귀신죽이기'(鬼殺し)라는 술도 있다. 귀신도 죽일만큼 독하고 매운 술이라고 한다.

맥주만으로도 충분한 내가 그런거 시음한다고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홀로 여행이란게 여러가지로 홀가분한 점이 있지만, 이런 점에서 살짝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조금 취향이 다른 사람과 함께 온다면, 저런 전통주에 관심을 가지고 마셔보는 사람 옆에서 대리체험도 느껴볼 수 있을테니까.

 

 

 

기념품점, 음식점, 찻집, 여관 등으로 가득한 거리라서

자꾸 어디 한 군데 정도는 들어가서 구경해봐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조바심 비슷한 감정도 들지만

미관을 해치지 않는 소박한 장식들이 워낙 잘 배열되어 있어, 그것만 구경해도 눈이 즐거울 정도다.

 

대도시 한가운데니 비교하기에는 급이 맞지 않지만, 인사동의 미관이 어떻게 되어가는가를 생각하면

아무리 유명해져도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이런 거리의 분위기가 그저 부러워질 따름이다.

 

 

 

옛날 거리를 빠져나오니 주인 잃은 인력거가 덩그러니 구석에 놓여있다.

힘든 가이드를 마치고 잠깐 쉬러 간 걸까. 뒤에 걸린 모자가 그 고단함과 함께 휴식의 감미로움을 동시에 상기시켜주는 듯 하다.

 

애초에 이 거리는 저런 인력거가 등장하기도 전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묘하게 어색하긴 하다.

인력거가 흥행했던 건 100여년 전 메이지 시대였는데, 이곳의 풍경은 넉넉잡아 300여년 전의 모습이기 때문에.

 

정말 느긋하게 걸어도 10분이면 통과할만한 거리라서 약간 허탈한 느낌도 든다.

상기했던 것처럼 맑고 쨍한 날씨에 어울리는 분위기도 아니긴 하고.

그래서 안개낀 날이나 눈이 쌓인 겨울에 더욱 인기가 많아지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런 풍경을 즐기면서도 배가 덜 부른 불평이나 하는 자신을 살짝 힐난하면서, 방금 지나왔던 옛 거리의 뒷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상하좌우 전부다, 그것도 내부까지 수백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사실 앞서 지나온 옛 거리도 뒷부분은 평범한 근대식 주택의 모양을 하고 있다.

 

되려 타카야마 정도의 도시에서는,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할까.

정말 산골짜기에 위치한 츠마고쥬쿠 같은 역참마을은 겉과 속 할것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이지만

타카야마에서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바로 옆의 현대식 마을과 불협화음을 이루는게 아닐까 싶기 때문에.

 

 

 

일부러 가꾸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잘 큰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풍경.

물이 깨끗하지 않은 곳 주변의 나무나 잡초들은, 자연의 일부이긴 하지만 결코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람과 맞닿아 있는 자연의 건강 척도는 자정 작용의 범위를 넘어서는가 마는가가 중요한 경계선이 된다.

관리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고 썩어버리는 물. 그걸 자연이라고 개천이라고 할 수 있나?

 

별로 동하지 않는 기분으로 여행을 왔어도, 이런 모습이 보이기만 하면 일단 보람은 충분히 느낀다.

이런 곳에서는 너무 많이 자란 수풀을 가을즈음에 확 잘라내 버리는데, 그것조차 기분좋게 머리 깎는 수준으로 느껴지니

당연히 누려왔고 앞으로도 누렸어야 할 이런 풍경은 이제 관광지와 같은 희소성을 지니게 된 것일까. 즐거운 일은 아니다.

 

 

 

타카야마에는 이런 옛 거리가 세 군데 존재한다. 전부 가까워서 둘러보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데

지금은 돌아가면서 코쿠분지(国分寺)라는 사찰만 구경하고, 저녁노을이 멋들어질 무렵에 다시 거기를 걸어볼까 한다.

 

여행중 기념품을 거의 사지 않는 성격이라서 그냥 밖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데

역시 쇼핑이나 구경에 관심있는 일행이 함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듯 하다.

본인은 엄니가 백화점서 옷 구경하는 것도 그리 지루해하지 않는 타입이라.

 

 

 

아담하고 조그만 가게도 많은 반면 100평은 가볍게 넘어보이는 큰 건물에, 기념품과 식당 등을 모두 차려놓은 가게도 있다.

 

관광객들이 보고 돌아가는 타카야마는 사실 마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쿄토같은 본토 사람들도 무지하게 많이 찾아서 좀 어지러운 곳보다, 외국인 응대가 뛰어난 이런 산골마을에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들다보니

2007년 일본 최초로 미슐랭 여행 가이드 별 3개를 획득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좀 많다 싶을 정도의 가게들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미슐랭 가이드란게, 가보면 황홀해서 두 다리로 서있기도 힘든 임팩트를 주는 그런 척도가 아닌 터라

동양인이 너무 기대하고 갔다가는 좀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유후인도 그렇고 이곳도 그렇고, 주위에 온천 풍부하고 공기좋고 건물 깔끔하고 음식 맛있고 사람들 인심 좋은 곳이라

하루이틀 볼거리만 찾아다니며 관광을 즐겨서는 완전히 느끼지 못할 느긋함이라는게 존재하는 곳이다.

여행경비 생각에 자꾸만 초초해지는 마음도 이해가 되는데, 이런 곳에서는 구경이라는 행위보다 감상이라는 행위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카메라 전원도 끄고, 왔던길 주변을 한참 서성이면서 멍하니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흑백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전통 가옥 너머로 보이는, 파괴적일 정도로 쑥쑥 자라나는 초목들의 조합은

그 밀도만큼은 도시의 빌딩숲과 사이사이 달리는 전철이 가지는 빡빡함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단지 향기가 다를 뿐.

 

7시 반쯤 빗소리에 잠을 깰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베낭여행중 지역을 이동하는데 비가 오면 꽤나 귀찮다. 짐이 많은데다가 우산이 없으니.

당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워낙 덥고 기후가 불안정해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시원하게 쏟아붓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홀딱 젖은 모습으로 버스를 타면 민폐가 아닐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8시 반에 조식먹으러 내려가니 왠걸 비는 그냥 맞아도 될 만큼 부슬거리고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는 이래서 좋은 점도 있는걸까. 덥기는 무지하게 덥고 습도가 높아서 이상적이지 않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게 없다. 특히 지금 향하는 타카야마는 날씨가 흐린편이 더 나을수도 있는 풍경이다.

 

10시 셔틀버스 타고 나고야역에 도착. 버스 출발이 10시 45분이라서 시간은 좀 남아있다.

다행히도 비는 완전히 그치고 불쾌한 습도만이 아스팔트를 매우고 있지만, 이것만 해도 어딘가.

 

 

 

나고야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역사 내부에 맥도날드가 있긴 하지만

아침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도저히 이 짐을 들고 앉아있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고야역은 새벽이나 한밤중 말고는 정말 조용할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데, 서울역 정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일본 대도시의 맥도날드, 특히 역 앞의 맥은 조금만 덩치 큰 사람이라면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좌석이 좁아서

40L 짜리 베낭과 커다란 카메라용 사이드백을 짊어진 내가 들어가는건 아무래도 큰 모험이다.

 

그냥 버스 터미널 앞에서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분수대가 있는 넓은 광장 앞에 비둘기들이 잔뜩 모여있다.

도시 비둘기들은 인간 홈리스들과 별로 다를바가 없는 생활을 하는 터라 좀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요즘 덥기도 무지 덥고.

사람들 찍는건 조심하게 되지만 이녀석들이야 찍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테니 움직이기 힘든 몸을 뒤척여서 카메라를 꺼낸다.

 

도시 비둘기들은 먹고자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고 포식자에게 습격당할 염려가 없어서 느긋하긴 하지만

그와 걸맞는 부담도 당연히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사람하고 별로 다를게 없다.

 

 

 

이런 길바닥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람들이 보기에도 지저분해 보이는 건 어쩔수가 없고

매일 37도를 넘나드는 폭연 속의 도시는 이들에게 결코 안락한 휴식처가 아니다.

습성이 무디어진 이 녀석들은 의외로 자동차나 사람에게 자주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걸어다니는 일이 많아서인지 발을 다치는 경우도 많다.

 

한동안 녀석들 관찰하다 보니 몇몇의 앉아있는 자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앉을때도 아픈 사람과 마찬가지로 조심조심하여 간신히 앉는데, 한쪽으로 기울어져 앉는다는건 다리를 다쳤다는 의미.

사람이 어지간히 가까이 가도 경계의 눈빛만 보내며 움직이지 않고, 아무 관심없는 사람이 정면으로 걸어와야 간신히 절뚝거리며 이동한다.

 

이 녀석들의 앉은 자세를 보고 일부러 비켜 걸어가줄 도시 사람이란 게 그리 많지는 않을 듯.

나처럼 지네들 사진이나 찍어대고 있는 여유넘치는 여행자들이나 신경써 주겠지.

 

 

 

이녀석들의 낮과 밤이 어떤 사이클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광장에서 노는 시간인가보다.

대부분의 비둘기들이 그냥 훌렁훌렁 걸어다니며 시간만 때우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사람 무서워하지 않는 건 도시 조류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이 녀석들 털 상태를 보면 사람이 알아서 피하게 되는걸 보면, 이것도 나름의 보호색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유난히 앉은 자세가 이상한 녀석이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한 녀석이 와서 털을 골라준다.

비둘기들끼리도 정이란게 있는지, 참 뿌듯한 광경이다 싶어서 찍어대고 있는데

옆에서 눈매 사나운 녀석이 달려들더니 쓰러지듯 앉아있는 녀석을 사정없이 쪼아댄다. 이건 털 골라주는 것과 틀리다.

비틀거리면서도 간신히 도망가는데, 일정 거리만큼 쫓아가며 쪼아대던 녀석은 화가 풀리지 않는듯 주위를 멤돈다.

 

대체 저 녀석들 사이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먹이 쟁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영역 싸움이라기엔 주위에 다른 비둘기도 많은데.

단순히 약자에게 더욱 사나운 동물적 본능이 발현된 것일까.

 

조류는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어떻게든 형제들과 경쟁하며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강하고

어미 역시 도태되었다고 생각되는 새끼에겐 먹이도 주지 않고 죽게 내버려두는게 대부분이긴 하다.

 

 

 

아직 날렵하게 생긴 그 깡패 비둘기가 유유히 고여있는 물을 마신다.

물론 괴롭히던 녀석이 그 주위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옆에 다른 비둘기가 물 마시러 오자 은근히 싸움걸려는 움직임을 취하는 걸 보니, 그냥 성격이 더러운 뿐인가 보다.

도시 비둘기들에겐 식수 공급이 먹이 공급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비가 한번 쏟아지고 나면 사람보다는 기분이 좋을듯 하다.

 

 

 

가장 오른쪽 녀석이 발을 절뚝거리는 놈이고, 그 옆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녀석이 깡패 비둘기.

일부러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고 있다. 대체 뭐 하자는 플레이인지.

그렇다고 내가 일부러 가서 방해할 수도 없다. 괴롭힘 당하는 고양이라면 몰라도 비둘기는.

 

예전 회사다닐때 사무실 앞에서 새끼 고냥이를 괴롭히는 동네 어른고양이가 있어서

신나게 괴롭히고 있을때 확 뛰쳐나가 둘을 떼어놨더니, 신기하게도 괴롭힘 당하던 새끼 고양이가 사무실 앞에서 터를 잡고

내가 나오면 반갑게 얼굴을 비벼대던 기억이 난다. 분명 길고양이인데 내가 자기를 도와줬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 행동을 해서

동물이라도 역시 머리는 돌아가는구나 감탄하곤 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아무래도 그 정도는 아닌듯 하고.

 

 

 

아, 물론 비둘기는 사실 상당히 머리가 좋은 새다.

수백년 전부터 전서구로 이용했던 만큼, 장소 찾아가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래서 질리지도 않고 내 방앞 베란다에 찾아와서 똥을 갈기는 녀석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제대로 전서구로 키워진 비둘기는 그 애교가 강아지나 고양이 맞먹는다.

일본엔 아직 전서구 대회가 있어서, 얼마나 멀리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정확하게 돌아오는가를 겨루고 있고

그 대회에 나가는 비둘기를 키우는 사람들은 거의 가족 수준으로 그들과 교감을 한다고 한다.

 

위 녀석은 아주 가죽 자캣 걸치고 할리 데이비슨을 몰 법한 패션을 하고 있다.

더럽긴 똑같이 더러워도 왠지 야성적이라고 할까, 나름 멋을 좀 부릴 줄 아는 녀석인 듯 하다.

 

 

 

비둘기 신나게 찍고 있으니 버스가 도착해서 타카야마로 향한다.

거진 세 시간은 걸릴 만큼 꽤나 떨어진 곳이라, 심심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타카야마(高山)는 이름 그대로, 나가노현을 중심으로 일본의 척추형태로 뻗어나가는 중앙알프스 산맥의 언저리에 위치한 마을로

절경으로 유명한 히다(飛騨)고원지대와 함께 묶어서 히다 타카야마라고 불리는 유명한 관광지.

나고야는 바다에 인접한 낮은 평야지대인데, 거기서 타카야마로 가다 보니 느긋한 경사로 끝도없이 올라간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는 사진은, 어지간해서는 만족할만한 화질이 나오지 않고 순간의 풍경 담기에도 힘들어서

가방에서 카메라를 잘 꺼내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몇 번이나 몸이 움찔움찔한다.

 

가뜩이나 높은 곳으로 향하는데다가, 산맥을 따라서 꼬물꼬물 달리기는 힘들다 보니 아예 고가도로를 만들어 놓았으니

나무에 가려있던 시야가 넓어지는 단 몇초간의 찰나에 들어오는 풍경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정말로 몇 초만 살짝살짝 보였다가 다시 숲과 나무에 가려버리는 탓에

그 절경을 눈으로 감상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카메라를 꺼내서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사치는 좀처럼 행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버스 안에서 카메라 꺼내지 않는 나로서도 그냥은 참고 넘길수가 없어서

그 몇초간의 풍경 사이사이에서 조금씩이나마 사진을 남기고 만다.

 

하지만 진짜 입벌려지는 경치는 대부분 셔터 누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눈으로만 감상하다보니

찍혀있는 사진은 그 풍경의 1/10 정도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그냥 그렇고 그런 사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찍고나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터를 누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고야에서 히다 타카야마로 가는 버스 안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해가 될런지.

 

여행중 2시간 30분의 버스 이동은 그리 반갑지 않은 시간인게 대부분이지만

이번에는 버스가 좀 더 천천히 달려줬으면 하는 바램이 생길 정도로 창 밖의 풍경은 훌륭하다.

자연 사이사이로 보이는 잘 정비된 도로와 깔끔한 농가들의 조합은, 내가 생각해 왔던 이상적인 농촌 풍경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물론 풍경이 그대로 예술이 되는 유럽 산간지방의 가옥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현대화된 곳에서 이 정도의 풍경을 유지한다는 건 충분히 칭찬할 만 하다.

 

 

 

원래부터 히다 고원이라는 곳이 관광버스를 타고 느긋하게 산봉우리 사이를 달리는 코스가 있을 정도로

풍경 하나는 기가 막히는 곳이라서, 이제까지 '특정 목적지가 아닌 버스만 타고 풍경 돌아보는 관광 상품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생각했던

본인 지식의 얄팍함이 부끄러워지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정에 없던 히다 고원 버스 투어까지 즐길만한 시간이 없어서

그냥 일반 버스의 창가에서 가끔 보이는 풍경만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타카야마에 도착하니 살짝 유후인에서의 느낌이 묻어나는 듯한 주위 풍경에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사실 역 정면엔 이런 작은 산골마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식 호텔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런 걸 제외하면 사람 편안하게 하는 마을이라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느낌이다.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추억이 서려있는 그때 그 장소에 다가가고 있다는 상념 탓에, 순수하게 풍경만을 즐기기가 어렵다.

더위는 나고야와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습도가 낮은 건지 공기가 깨끗해서 그런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

 

 

 

타카야마가 유명한 관광지라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는것이, 왠만한 도시 수준으로 호텔이 아주 그득하다.

온통 해발 2천미터 가까운 산으로 둘러싸인 고지 마을 안에 이런 풍경이 늘어서 있다는 것은

이 곳이 본인의 가벼운 생각보다 훨씬 더 이름있는 곳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호텔이 너무 많아서 파리날리는거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당일 호텔예약을 잡기가 힘들 정도로 관광객이 넘쳐난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밀도만으로 따지자면 나고야보다 훨씬 더 심할 정도로, 역 앞엔 서양 베낭족들이 진을 치고 있다.

 

 

 

중앙알프스 주변이 다들 그렇듯, 원래는 기차편도 그리 많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허름한 역사와 달리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수는 굉장하다. 이동성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역 앞 안내소에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국어 등등 외국인을 위한 팜플렛이 매우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고

일본인들의 평균에 비하면 월등한 실력의 가이드들이 어렵지 않게 외국인들에게 뭔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 옆에는 '오늘 비어있는 호텔을 찾아드립니다' 라는 문구의 안내판도 걸려 있다.

 

허름한 역 주변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을 위한,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심이 물씬 풍기는 이곳 분위기는

충분히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오만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은, 시골 마을의 인심을 아직까지 간직한 곳이라고 느껴진다.

이 곳의 별명은 '리틀 쿄토'인데, 적어도 역 앞의 진철함에 있어서만은 쿄토 인심을 능가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실 쿄토 인심이란게, 같은 일본인 사이에서도 거만하고 평판 안좋기로 유명하긴 하다만.

 

 

 

이곳에서 묵을 숙소는 '슈퍼 호텔'이라는 비지니스 체인점. 토요코 인과 더불더 일본의 양대 비지니스 체인이다.

후발 주자라서 지점 수는 토요코 인에 많이 밀리지만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한창 입지를 키워가고 있는 곳.

 

공교롭게도 이곳에는 토요코 인이 없어서 나에겐 선택권이 별로 없었다.

관광지의 호텔이란게, 안심할 만한 곳이라면 꽤나 가격이 비싸고

지역 토산의 관광 저렴한 호텔을 잘못 선택하면 거의 여관이나 다름없는 허름한 곳에 당첨될 위험성도 있어서

확실히 안정된 가격에 일정 수준의 신뢰할만한 청결도를 갖춘 비지니스 체인을 이용하는게 마음이 편하다.

 

이곳 슈퍼호텔은 거의 3개월 전에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방이 없어서 고생하지도 않았고.

이 정도 규모에 관광지가 아닌 일반적인 마을이라면, 편의점 하나 찾는데도 발품 좀 팔아야 하는데, 여긴 그럴 염려는 없다.

거의 외국인 관광객이 절반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데

지금 이 시간대는 다들 역 앞에 도착해서 숙소 찾으러 뿔뿔히 돌아다니는 모습이다.

 

바로 앞에 걸어가는 한국인 관광객 3명도 뭐라뭐라 지도를 봐 가면서 숙소를 찾아가는 듯 한데

가는 방향은 나와 같았지만 슈퍼 호텔에 예약한 건 아닌듯 그냥 지나친다. 하긴 1인실이 대부분인 비지니스 호텔에 그런 일행이 들어갈 일은 별로 없긴 하다.

 

 

 

역에서 5분 거리인 슈퍼호텔에 도착하니 2시가 좀 넘는다. 체크인은 3시부터라서 일단 짐만 맡기고 밖으로 나간다.

리틀 쿄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관광지이지만, 사실 본인이 여기 온 것은 관광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가 워낙에 산골 중의 산골이라서, 이곳에서 버스를 타는게 그나마 편하기 때문.

 

그 전에 여기서 버스하고 50분쯤 달리면 갈 수 있는, 이번 여행의 제대로 된 관광 목적지인 시라카와고(白川郷)가 더 끌린다.

나고야에서 바로 시라카와고로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기 때문에, 그곳에 가기 위한 전초기지로 이곳을 선택했을 뿐.

 

그래서 별로 힘내서 관광하러 다닐 생각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낮부터 호텔에 처박히는건 미친 짓이기 때문에

기대감에서 오는 부담이란 것도 없이 훌렁훌렁 유명하다는 장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이곳은 '옛날 마을 거리'라고 이름붙여진, 말 그대로 예전 성곽마을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거리가 유명하다.

사실 이런 북적이는 관광지에서 조성된 예전 거리란, 진짜 예전 거리와는 좀 거리가 있는 편이라

이런 걸 처음 경험하거나, 서양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겐 신선하고 재미있는 볼거리이지만

본인은 예전 자전거 여행때, 여기보다 훨씬 오래되고 정말로 외관을 그대로 간직한 산골마을의 옛 거리를 몇번 다녀와 봤기 때문에

이곳의 옛 거리라는 건 애초에 크게 기대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보러가는데 먼저 실망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 모습을 봤을 때 내 머릿속에서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지는 대강 감이 잡힌다.

그런 풍경을 이곳에서 처음 봤다면 그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겠지만, 불행히도 나에겐 이 타카야마 역시 너무 새것같은 마을이다.

 

 

 

물론 여기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니 전부 다 옛날식으로 보존하긴 힘들다. 특히 관광지다보니.

아무리 옛 정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도, 다들 도미토리 형식의 삐걱거리는 화장실 욕식 공용의 민숙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을테고

여관에 거하게 묵어가는 것 역시 가격대가 비싸거니와, 그래가지고서는 관광객 수요를 맞출수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최신 관광호텔과 예전 마을거리가 혼합되어서 편의를 봐 주고 있는 형태로 발전하는게 일반적.

 

일본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가노 산골 깊숙한 곳의 옛 마을 거리는

정말로 그 옛거리 한줄에 사는 백여 명의 토박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서

본격적인 체험을 하고 싶다면 그런 곳에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지, 숙박시설도 정말 낡은 여관뿐인데다가

편의점은 커녕 6시 넘어서 물건 살수 있는곳도 없기 때문에 외국인은 한 시간에 한두 대씩 오는 전철로 이동할 수 밖에 없다는게 단점이긴 하다.

 

타카야마는 관광 스팟인 옛 마을 거리와 별개로, 60년대부터 조성된 상점가 거리도 잘 단장되어 있다.

역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길 옆으로 아담한 상점가들이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 이런 식으로 처마를 만들어 놓는게 특징.

 

관광지가 아닌 일반적인 마을에 가 보면, 요즘 이런 옛 상가들의 절반 정도는 셔터를 내리고 있어서

일본도 소도시 경제는 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타카야마에는 아직까지 문닫은 가게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왠지 생활 수준이 상당히 윤택할 것 같은 마을 분위기. 물론 이곳은 역을 중심으로 해서 유명 관광지가 몰려있는 방향이니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거주지이기도 하고, 좀 있어보이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타카야마 역 반대편엔 그다지 관광지가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거주 구역은 그곳이고, 거기엔 아담한 세모지붕의 주택가가 많다.

날씨가 참 좋아서 이곳저곳 다 둘러보기에 나쁘진 않지만 36도를 넘나드는 더위는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일단은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옛 거리를 한바퀴 둘러보고, 주변에 있는 사찰이나 찾아본 뒤 호텔로 돌아갈 예정.

 

오후에 잠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고 난 후, 조금이라도 서늘해 지고 난 뒤에 다시 나와볼 생각이다.

 

 

 

 

오사카 도톤보리가 이런 형태로 유명하긴 한데

물이 풍부한 마을의 대부분은 원래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은 시골 마을치고는 정비가 잘 되어있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강가쪽 가옥들의 모습은, 예를 들자면 손님한테는 보여주지 않는 식당의 주방과 같은 느낌이랄까.

지극히 프라이버시가 묻어나는 공간이라서, 이런 걸 담을때면 살짝 긴장하기도 한다. 물론 요즘에 와서야 그런거 없다.

 

이런 가옥들의 반대쪽은 깔끔하게 정돈된 가게라서, 이런 강가 뒷모습과는 차이가 좀 난다. 여긴 빨래도 널어놓았으니까.

도톤보리 같은 경우는 인공 운하이다 보니 처음부터 강가쪽 역시 유람선을 보고 즐기는 환락가였지만

이런 곳은 뒤에서 물도 떠 오고 세탁도 하고 목욕도 하고 하던 그런 장소였다.

 

일본의 중앙알프스 산맥은, 상당히 높고 험한 산세에도 불구하고 물이 풍부해서 이런 형태의 마을이 쉽게 발달했다.

해발 650m 정도에 위치한 마을이 이렇게도 물이 풍부하다는 것은 축복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삼림지대다 보니 목재도 풍부하고, 이 타카야마라는 마을이 현대 들어서 유명한 관광지로 부상한 것은

쿄토의 건축 기술과 사찰을 쉽게 유지 보수할 수 있는 자연적 요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의 시골 마을이라면, 관광지 비 관광지 포함해서 한국인치고는 꽤나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할 수준인데

이곳 타카야마는 아름다운 풍경을 고즈넉히 간직한 좋은 마을이지만, 마을 전체가 모종의 별장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게 살짝 어색하다.

 

평균적으로 너무 풍요롭달까. 산골 마을에서 느껴지는, 야성적 자연을 대하는 미묘한 긴장감이라는게 사라져 버린 듯 하다.

이러나저러나 외국인, 특히 서양 관광객들한테는 한걸음 한걸음이 신기한 체험이 될 만한 곳이라서 나쁠 건 없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날씨탓인지 옛 거리에 도착하기 전부터 조금씩 지치는 기분. 카메라를 고쳐매고 다리를 건넌다.

 

 

길고 긴 토요타 박물관의 순회도 드디어 끝이 난다.

사실 시간이 별로 많이 걸린건 아니다. 넉넉잡아 세 시간 정도.

느긋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느긋하게 구경하고 휴식까지 취한 뒤 나고야로 돌아가도

볼거리 한두 군데는 더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듯 하다. 본인은 예정된 일도 없어서 그냥 쉬러 돌아가지만.

 

시간에 비해서 많이 지치는 느낌은 든다. 꽤나 열심히 설명까지 읽어가며 보는 것만으로도 체력소모가 꽤 되는데

찍은 사진만 200장이 넘으니 이게 또 쉽게 볼게 아니다. 미러리스였다면 좀 덜 피곤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신관을 나오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제임스 릿지라는 사람의 '트래픽'이라는 작품.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일부러 살짝 각도를 틀어서 담아본다.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제목에 더 어울리는 듯한 복잡함이 매력적.

예술가에겐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밑에 가격이라도 적어놓으면 좀 더 맛을 음미해 보려고 노력할 계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식사까지는 할 생각이 없고, 일기를 좀 적으며 목이나 축이고 싶어서

아담한 까페에 들어간다. 까페 중앙엔 기념품 가게가 듬직하게 위치해 있어서

휴식을 위해 들어갔다가 아이들에게 이끌려 지갑을 열게 되는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의외로 아이가 없는 어른들까지 진지하게 둘러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음료수나 한잔 마실까 했는데, 핫도그 세트가 100엔 정도 저렴하다고 선전중이라 그걸로 간다.

음료수값이 한국보다 비싸니 오히려 이런 세트메뉴를 먹으면 좀 손해를 덜 본다는 느낌일까.

 

창가 자리에 앉아서 느긋하게 밖을 바라보는데, 1920년대 자동차쯤 되어 보이는 녀석이 앞의 서킷에서 꾸준히 주행중이다.

정비를 마치고 시운전이라도 하는 것일까. 자동차란 녀석도 참치와 마찬가지로 달리지 않으면 죽어버릴 듯.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 일도 즐겁게 해낼 수 있을듯 하다.

팜플렛을 얼핏 보니, 좀 레어한 자동차가 시운전 할때는 미리 선전도 하고 해서 관람객이 많이 모이는 모양.

 

 

 

핫도그는 미국식이 아니라 아주 아담한 녀석이었는데,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는 탱글탱글한게 씹어먹는 맛이 있었다.

사실 여기서는 사진 찍을 생각이 없었지만 지친 몸을 추스리면서 일기 쓰고 찍었던 사진을 점검하다보니

문득 한장 찍고 싶어지는 바람에 핫도그의 자태를 담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정말 풍족한 여행이 아닌 이상, 남들처럼 맛집 찾아가서 증거사진 착착 남기는 멋들어진 행동은 못하고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동네 분식집에서 수백만원짜리 카메라 펼쳐놓고 심각하게 셔터 누르는 짓만 하고 있다.

여행의 먹거리라는게 꽤나 추억거리가 되기 때문에 납득은 하지만, 찍고 있으면 묘하게 초라해 보인다.

 

예정대로라면 예산이 꽤나 널널하기 때문에, 일부러 남겨오려 하지 않는 이상

한 번쯤은 돈 좀 들여서 제대로 식사를 즐길 기회가 있다. 그 때는 정말 인정사정없이 찍어줘야겠다고 생각중이다.

 

 

 

밖에 나오니 그래도 박물관 안은 시원한 편이었다고 향수에 젖을만큼 무덥다.

습도는 아직 조금 낮은 편이지만 36도에 달하는 낮시간 온도는, 어디서 솟아나는지 모를 정도로 땀을 송글송글 맺게 만든다.

2시쯤 되니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들어오는 편인데, 이곳 주차장이 워낙 넓어서 전체적으로 한산한 분위기다.

 

대도시에서 자동차로 30~40분 거리에 이런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는 건

나같은 여행자들에게만이 아니라 나고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소소한 축복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그리 싫어할만한 곳도 아니고, 그렇게 성장하다보면 첫 자동차를 토요타 제품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높아질테니.

'돈만 있으면 어디 횬다이 따위를'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을 한국인 입장에서 본다면

자국 자동차 메이커의 근시안적인 발상은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잘 가꾸어진 조경을 한번 둘러보고 돌아가려다 오랜만에 깔끔한 녀석을 한 마리 만난다.

손가락으로 시야 앞에서 깔짝깔짝 거리면 양손으로 공격도 걸어온다. 물론 꽉 잡히면 조금 따끔하지만.

황색 사마귀보다는 이런 녹색 사마귀가 귀여워 보이는건 역시 색채의 이미지가 가지는 힘일까.

 

자전거 여행 도중 워낙 많이 짜부를 만들어버린 녀석이라서 미안한 마음도 없잖아 있다.

산길 언덕을 내려갈 때면 나나 저녀석이나 도저히 피할수가 없으니 그냥 밀어버리는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사마귀는 체형 자체가 뒤로 물러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빠른 물체를 피하는 능력이 전무하다.

그 덕분에 가진 공격성으로 포식자 위치를 점하고는 있지만, 사람에게도 덤벼드는 무모함은 사실 겁이 없어서라기 보다 도망갈수가 없어서이다.

 

 

 

주차장에는 전기 자동차를 위한 무료 충전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과연 자동차 박물관이다 보니 자동차에 대한 배려 역시 사람에 대한 그것 못지 않다.

외부 디자인은 그냥 조금 수수한 정도이지만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이 녹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푸른 하늘 아래서는 단정한 인상을 주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더워서 그런지 거의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자동차를 끌고 온 듯 하다.

들어올 때나 나갈때나 이렇게 걸어서 역 사이를 이동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따가울 정도의 햇살이 힘들긴 하지만, 덕분에 사진 담는것도 수월하니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나고야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 주위도 한적하고.

관광객 상대가 아닌 본토 사람들 상대하는 가게가 드문드문 보이는 것도 나에게는 즐거운 요깃거리다.

시 외곽에는 커다란 창고형 북오프나 잡화점, 파칭코 가게 같은게 들어서 있어서

의외로 정해진 코스만 이동하게 되는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다.

자전거 여행하면서 실컷 즐겼으니 그건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리니모에는 벌써부터 학생들이 많이 타고있어 소심한 나는 사진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

시간에 여유가 있는 관광객이라면 이 리니모를 타고 주변을 구경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하다.

가이드 역할을 할 일은 없겠지만, 이 블로그에 들어와서 이 정도 정보는 얻어가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고야역에 돌아오니 4시쯤 되는데, 호텔까지의 무료 셔틀버스는 오후 5시부터 운행한다.

1시간 일찍 들어가서 쉬어봤자 시간만 아까울 뿐이니 역 주변을 술렁술렁 돌아다녀본다.

여행중 가장 먹기 힘든것이 야채나 과일이다보니, 편의점 들어가서 야채주스 하나 마시기도 한다.

 

다행히도 역 근처에 부탁받은 물건을 살 만한 가게가 있어서 잠깐 들어가 구입해 온다.

사람이 너무 바글바글해서 오래 있고싶진 않았지만, 한국에 좀처럼 나오지 않는 코믹스가 있어서 그것도 서둘러 몇권 사고 나온다.

학생이 많이 몰려드는 시간대라서 그런 듯. 한번쯤은 더 갈 기회가 있으니 다음엔 오전에 일찍 나와서 조용하고 느긋하게 쇼핑을 즐기고 싶다.

 

일단 나고야에서의 초반 일정은 이걸로 끝이고, 내일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오늘밤엔 식초에 절인 문어라도 좀 뜯으면서 한 잔 마셔보려고 생각중인데

그래도 이거 한그릇 더 먹는다고 내 배가 포만감을 느낄 일은 없으니, 휴식을 겸해서 요시노야에 들어간다.

딱히 엄청 맛있다고 생각이 드는 녀석은 아니지만, 어째선지 일본에 오면 반드시 규동집에 들어가게 된다.

 

내 입장에서는 한 끼 식사라기보다, 휴식을 취하며 허기를 달래는 간식이라는 느낌이라서 그럴까.

한국서 규동 한번 먹어보고는 그 생각이 좀 더 강해졌다. 한국에서 규동 먹는건 돈이 아까운 행위다.

이미 40년 가까이 맛이 거의 변하지 않는 우직한 요시노야 규동은, 어딜 가도 꽝을 뽑을 일이 없어서 안심이니까.

 

 

 

나고야 역 안내센터에 가서 내일 목표인 히다 타카야마(飛騨高山)에 가는 방법을 물어본다.

처음엔 JR 전철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던데, 내가 좀 더 싼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자 버스 시간표를 알려준다.

 

20분쯤 더 소요되지만 무려 1500엔 정도나 저렴하다.

나고야로 돌아오는 하루 루트가 아니라 거기서 숙박할 예정이라, 20 분의 시간차 정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히다 타카야마가 굉장히 유명한 관광지이긴 하지만 나한테는 그곳 역시 그냥 전초기지 역할이라서.

 

호텔에 도착하니 6시가 넘어있다. 나고야 여행중에 하루 꼬박을 토요타 박물관 하나 돌아보는데 소비했다고 하면

아마 아까워 할 사람이 적지 않을거라 생각하는데, 홀로 여행의 즐거움이란 이런 느긋함에서 오는 것이다.

 

셔틀버스를 타기 전에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안주, 술을 좀 사왔다.

오늘은 세탁기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아주 편하게 쉬기는 힘들지만,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이라서 어쩔수가 없다.

보통 호텔에 들어가면 옷이고 뭐고 다 벗어버리고 속옷 한장으로 뒹굴거리기 때문에.

 

1층에 위치한 코인 세탁기를 사용하려면 옷 입고 세탁 돌리고, 1시간 뒤에 내려와 건조기에 집어넣고, 또 한시간 뒤에 걷으러 가야 한다.

한마디로, 약 2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방 안에서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 이거 나한테는 꽤나 불편한 일이다.

 

 

 

쥐꼬리만한 세제도 30엔씩 받아챙기기 때문에, 반드시 한국에서 세재를 비닐봉지에 담아온다.

 

매번 담으면서도 참 이 돈 아껴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의외로 여행이란, 수천 엔씩 들여서 맛있는거 먹고 수천 엔씩 버스비 내고 이동하는 것보다 빨래하는데 30엔 쓰는게 더욱 아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조리도구와 쌀과 반찬을 들여와 여기서 만들어 먹을수는 없지만 세탁세제는 충분히 갖고 올 수 있으니까.

 

그리 길지 않은 토요타 박물관 관람이었지만, 찍어온 사진을 보니 오늘은 만족감으로 충만하다. 이 정도면 하루 잘 보냈다는 기분이 든다.

 

 

 

도시락을 먹고 한 시간쯤 지나서 빨래 돌려놓고 냉장고에서 식혀놓은 캔을 꺼낸다.

나고야를 떠나는 날이라 기분이나 좀 낼까 싶어서 한잔 마셔볼 생각이었는데

아침에 TV에서 선전하던 녀석이 기억에 남아있어 일부러 이 녀석을 찾아 구해왔다.

 

한국에서는 분류되기 어려운 츄-하이(チューハイ)라는 주류인데, 증류주에 소다와 함께 각종 과일향을 첨가한 술이다.

발포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소주와 같은 증류주 계열이라도 거의 맥주 마시는 느낌으로 알싸하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

일본에서는 물론 여성들이 좋아하는 술인데, 이게 마셔보니 한국의 왠만한 맥주보다는 낫다.

 

정통 맥주도 나쁘진 않지만, 이번에 기린에서 자사의 '빙결'주에 가장 원하는 과일 앙케이트를 했을 때

1위를 먹은 녀석이 이 복숭아맛이라고 아침 TV 에 광고가 나와서 구매해 봤다.

당연하게도 기간한정 제품이라 지금 한번 먹어보자 했지만

사실 기간한정이라고 이름붙이고 이제까지 셀 수도 없을만큼 다양한 과일종류가 나왔었기 때문에 반쯤은 그냥 상술.

 

증류주의 깔끔함과 탄산의 시원함, 달달한 복숭아맛이 아주 훌륭하다.

 

빙결이라는 이름의 이 술은 일본에서 매우 대중적으로

캔을 뜯으면 기압차로 인해 표면의 프리즘처럼 생긴 무늬부분이 자동적으로 구겨지기 때문에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게 만드는데, 이 아이디어가 대박을 터트렸다. 지금도 기린 빙결의 심볼과도 같은 녀석.

 

원래는 레몬이나 오렌지 빙결을 마시곤 했지만, 신경 좀 써서 만들었는지 확실히 맛과 향이 잘 조합되어 있다.

술이 그리 강하진 않아도 즐겁게 시큼한 문어다리를 뜯으며 술과 함께 TV 버라이어티를 시청한다.

여행와서 이렇게 초저녁부터 느긋하게 방에 틀어박혀 술과 TV를 즐긴다는건, 조금 사치러운 행동일런지.

 

내일도 버스가 10시 30분에나 출발하기 때문에 서둘러 잠자리에 들 필요도 없다.

세탁 때문에 계속 1층으로 왔다갔다 해야 한다는 귀찮음만 제외하면 후회없는 느긋한 하루였다고 자찬하며 한 모금 들이킨다.

 

 

신관의 테마는 일본의 자동사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사람으로서는 별로 구미가 당기진 않지만

전후 폐허에서 발전하는 시대상이란 게 상당히 닮은 모습이기도 해서 크게 위화감은 없을거라 본다.

 

 

 

자동차 개념과는 다르지만 어쨌듯, 이런 녀석들이 훗날 자동차의 원형이 되지 않았나 싶긴 하다.

역사 전시관이라고 해도 설마 이런 녀석을 전시해 놓았을줄은 몰랐지만.

 

 

 

이 미니어처는 1924년 도쿄 시내를 달렸던 버스. 중국 영화에도 자주 나와서 그리 신기하진 않은 모습이다.

아무래도 실물이 존재하기는 힘들어 작은 녀석으로 대체되어 있는데, 이곳 토요타 박물관 바깥에는 이거보다 좀 새거긴 하지만

꽤나 낡은 버스 한대가 정차되어 있다. 관객들 사진 찍고 들어가서 놀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너무 더워서 쉬러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이곳 부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당시 생활상과 자동차의 발전상을 나열해 놓았는데

전쟁중에는 암흑기였으니, 자전거조차 귀중품이었다는 몇 가지의 설명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젓가락까지 녹여서 무기를 만들던 시대였으니 당연하겠지만, 역시 대부분의 일본 역사관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그러고나서 바로 전쟁복구가 스타트되었다는 말이 시작되는데

이게 한국전쟁 덕이라는 설명은 별로 쓰여있지 않은 듯.

 

 

 

미쯔비시 실버 비전이라는 모델. 스쿠터인가 싶은데, 전동자전거라 해도 될듯.

형태나 색깔이나 전쟁직후 생산되었다는 느낌을 물씬 풍긴다. 실제 사용하던 사람들은 어떤 계층이었을까.

 

 

 

전후 가장 활발했던 이동수단이라면 단연 자전거였다.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훨씬 이전에 기술적 이론이 충분히 검증된 녀석이라서

낙후된 시설과 사회상 아래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자전거가 지탱해 온 근거리 사회 기반망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전쟁기간동안 완전히 침묵하고 있었던 자동차 개발과 생산도 다시금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게 1950년 초반.

사실 좀 전의 빈티지 전시관과 달리, 한국사람인 나로서는 이 시기의 일본 문물들이 그리 반갑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이 시대를 살아온 일본인들이야 그땐 그랬지 하면서 추억을 되살릴 순 있지만

그 당시의 한국은 아직 일본의 지배와 한국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깊은 상처를 간직한 시기였으니까.

 

 

 

전후 사용되던 소방차와 소방대원들의 옷, 불조심 포스터 등등.

일본은 근대화되기 이전부터 화재에 신경질적으로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지니고 있었고

전쟁중 히로시마 원폭 피해보다 훨씬 더 참혹했던 도쿄 대공습의 악몽 역시 사라지지 않은 시기라서

소방관이라는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마을에서 힘 좀 쓰는 청장년이라면 기꺼이 뛰어들어야 할 자경단 조직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목재가 풍부해서 대부분의 가옥이 목조였는데다가, 쇼군의 성 중심으로

골목길은 고사하고, 나무벽 두 개가 아니라 하나를 끼고 가옥끼리 바싹 붙어있는 형태였던 옛 마을은

일단 한번 불이나면 도저히 진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대참사를 불러왔기 때문에, 메이지 이전 시대까지 민가에서 불을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되곤 했다.

 

아직도 작은 산골마을에서는 정부의 소방서 외에도 마을소방대라고, 제복 입고 정기적으로 점검을 도는 그룹이 있다.

본인이 바이트를 했던 소바집의 사장님도 소방대 소속이라, 예전 회식때 나를 불러서 대원들한테 소개시켜 주시도 했다.

 

 

 

아마 전시된 물품들이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되살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법한 노부부의 모습을

도저히 따로 떨어져 담을수가 없어서 죄송하지만 허락없이 슬쩍 프레임에 끼워넣었다.

 

시기적으로는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사실 한국의 노인들에게도 익숙한 물건들일 듯.

슬픈 역사임에 틀림없지만, 당시 일본과 한국은 십여 년의 시간차를 제외하면 사용하는 제품이 거의 동일했으니.

 

유치원즈음 찾아가곤 했던 아버지의 시골 고향에는 저런 것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양 쪽으로 나무 여닫이문이 장치되어 있던 흑백 TV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버리지 말고 가져와 보관했으면 좋았을 텐데.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카메라 코너가 이런 전시장에 빠질리가 없다.

카메라 매니아라면 하나쯤 가져오고 싶은 모델들이 좌르륵 전시되어 있다.

물론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코너이니만큼, 라이카나 짜이스 등의 제품보다는

떨어지는 광학기술이지만 당시 인기를 끌었던 녀석들이 주를 이룬다.

 

가난한 자의 라이카라는 별명이 붙은 야시카의 카메라. 물론 라이카의 1/10 정도 되는 가격이었지만

당시엔 카메라라는 물건 자체가 꽤나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아무나 만질만한 녀석은 아니었다.

지금도 야시카 렌즈는 골동품 중에서 꽤나 성능이 좋아서 시장에 나돌곤 혼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반가운 모델. 미놀타 A-2 라고, 한국에서도 아는 사람은 아는 모델이다.

현재 사용중이고, 이번 여행중 찍은 사진을 모두 소화해 준 소니의 DSLR 카메라는 일반 카메라 시장의 선구자였던 미놀타의 후계기이고

이 녀석은 1956년 미놀타에서 발매된 녀석이기 때문. 지금은 사라졌지만 미놀타는 세계 최초의 기능을 가장 많이 집어넣은 공돌이 집단이었다.

 

당시 미놀타의 고급렌즈군인 ROKKOR 렌즈가 부착되어 있는데 이 녀석 성능이 워낙 뛰어나서

지금도 교환형 록코르 렌즈가 나오면 옥션에서 굉장한 가격에 거래되고는 한다.

 

 

 

당시의 일본 카메라는 바디나 렌즈나 라이카의 카피품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완전히 바르낙 라이카처럼 보이는 이 바디 역시 닛카 IIII (Nicca III) 라는 카피품. 사실상 완전히 같은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렌즈는 일본공학이라고 적혀있는데, 현제 카메라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니콘의 전신이다.

 

 

 

카메라 매니아들이라면야 여기서 시간때우기 좋지만 이걸 자동차처럼 한장한장 담아서 설명하다가는

오늘중으로 가져간 메모리 용량이 쫑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한 수 접고 눈으로만 즐기기로 한다.

 

자동차야 토요타 박물관의 아이덴티티나 마찬가지니 많이 담았지만

여기서 구형 카메라들에 대해 썰을 풀어봤자, 조금만 사이트 검색하면 카메라의 역사는 후덜덜하게 나온다.

 

 

 

되려 요즘사람들이 너무나 익숙할 올림푸스 PEN F 모델.

원래 오리지날 펜은 이 녀석이 아니지만, 요즘 발매되는 디지털 펜과 동일한 모습이라 담아본다.

 

올림푸스 최고의 공돌이 집단이 'PEN' 처럼 누구나 들고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를 목표로 만들어 낸 이녀석은

6천엔이라는, 당시의 카메라 가격에 비해 획기적으로 저렴하면서도 기능상으로 전혀 꿇릴게 없는 획기적인 모델로

요즘 디지털 펜도 잘 팔린다고 하긴 하지만, 당시엔 정말 없어서 못팔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프 사이즈 필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카메라보다 2배 더 찍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

 

올림푸스는 여전히 그 때의 철학을 살려서 35mm 판형의 절반 사이즈 센서를 가진 포서드 규격을 만들어

60년이 지난 지금도 펜은 다른 의미의 하프사이즈 카메라로서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60년전 모델을 거의 그대로 복각해 내도 그 디자인에 홀리는 사람이 많다는 건 참 굉장한 일이다.

 

 

 

SLR 구조가 정립되기 전의 카메라들은 사실 현재의 거물인 캐논이나 니콘이 그리 힘을 쓰던 시대가 아니다.

아사히 펜탁스와 미놀타, 올림푸스 등이 각축전을 벌이던 시절이었는데

올림푸스는 언제나 주류와는 살짝 떨어진듯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지만, 재미있게도 펜탁스만이 여러번 타사에 인수 합병되면서도

브랜드 네임만은 버리지 않고 꾸준히 유지하며 여전히 매니아들이 좋아할만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당시 펜탁스 카메라는, 손에 쥐어보면 설명이 필요없다고 할 정도로 굉장한 완성도와 내구성을 자랑했다.

 

 

 

카메라쪽에 너무 시선을 뺏기는것도 좀 그래서 서둘러 시야를 돌려본다.

바이크쪽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도 이름쯤은 들어봤을 듯한 혼다 벤리.

지금은 스쿠터로도 나오고 오리지날의 향수를 자극하지 않는 일관된 디자인으로 발매가 되는데

바이크만은 아무리 세련되어도 역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이런 디자인에 끌리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

 

 

 

63년 모델인데, 아마 검색해보면 최신형 벤리 역시 이 모양에서 거의 벗어나 있지 않다.

굉장히 조그마한 모델로, 가벼운 산책나가기엔 딱 알맞은 녀석.

수리도 쉬워서 지금도 일본에서는 당시 모델 타고다니는 사람이 꽤 많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건 또 음악 매니아들이 군침흘릴만한 장소가 나온다.

사실 60년대 중후반부터는 일본 역사에 남을만한 황금기가 지속되는 탓에

당시 사람들의 유희는 2013년의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윤택했으리라 확신한다. 그야말로 매니아들의 전성시대.

 

 

 

풍요롭던 시대라서 그런지,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재즈 색소포니스트라면 단연 존 콜트레인이었다.

마일스가 지독한 폭군이었다면, 재즈의 성인으로까지 불린 콜트레인이 풍요의 시대와 어울리는 건 당연한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마일스를 좋아하지만, 일단 재즈에 흥미를 가지려면 콜트레인 없이는 이야기가 안된다는데 동의한다.

만약 여기 끼워져 있는 앨범들이 전부 진짜 초판이라면, 은행 터는것보다 여기 터는게 더 나을거다.

 

 

 

여성 재즈보컬이라면 일단 생각나는 사람이 엘라밖에 없다. 정말로 그 시대는 엘라를 위한 무대였다.

재즈의 난해함에 힘들어하는 입문자라면 다른 말 필요없이 엘라의 앨범을 듣는게 만고 장땡.

사실 당시 일본에서 제일 인기있는 재즈보컬은 사라 본이었지만, 본인은 빌리 홀리데이와 엘라를 손꼽아도 사라 본은 조금...

 

 

 

소품 구성도 참 허투로 하지 않는다. 당시 재즈가 흐르던 어두운 BAR 안에 한개쯤은 비치되어 있던 냉장고.

원래는 술이 가득 차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저것도 나름 어울리긴 한다.

이 녀석을 보니 왠지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당시 신문이나 잡지 광고를 배경으로 한 미니 TV 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

전시관 안에 이런 독립적인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서, 그것도 주제의식에 딱 맞는 디자인으로 배치해 놓는 것은 감탄할 만 하다.

한국에서도 쓰이긴 했지만 일본만큼 적극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몇 안되는 당시 물건이다.

 

 

 

아무래도 이 정도의 미니멀리즘은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걸까.

TV 들은 당시 광고들을 틀어대고 있다. 화질이 생각보다 훨씬 좋은건

내부를 따로 개조했기 때문일까, 화면이 너무 작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채널을 틀어보고싶은 욕망이 들지만 만지면 안되기 때문에 한동안 그때 그 광고를 구경해 본다.

사실 일본은 이런 쪽에서 변화를 싫어해서인지, 2013년 현재도 굉장히 촌티나는듯한 광고가 꽤 나온다.

처음엔 보는 쪽에서 소름돋을정도로 촌티나지만, 자꾸 보고 있으니 그것도 나름 괜찮은 CM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1년간 일본 CM만 줄기차게 보다가 한국 돌아오니, CM들이 너무 구름속을 훨훨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사람냄새가 너무 옅은 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슨 게임인지는 모르겠지만, 팀 버튼의 배트맨부터 시작한 나로서는

도저히 맨정신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즐거운 표정과 포즈의 배트맨과 로빈을 오래 지켜볼 수가 없다.

 

물론 팀 버튼과 놀란 감독 사이에 가히 쓰레기라고 불려도 될 만한 괴작 배트맨이 나오기도 했지만

저건 대체 언제적 배트맨일런지...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런 화사한 배트맨 시리즈가 나왔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것도 같고 없는것도 같고.

 

 

 

이 만화잡지를 읽으며 자란 아이들은 지금쯤 환갑을 훌쩍 넘기고 있을 듯 하다.

희소성때문에 이렇게 전시만 되어 있다는게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속을 한번 보고싶다는 욕망이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

 

쿄토의 만화박물관에 가면 이런 잡지의 극히 일부분을 직접 손으로 넘겨서 감상할 수 있긴 하다.

1980년대 발간된 한국의 만화잡지 보물섬조차 초판부터 마지막 판까지 보존상태 좋은 녀석이 극히 드물 정도인데

1960년대 발간된 잡지를 이렇게 모아놓은 일본사람들의 콜렉터 기질은 정말 혀를 내두른다.

 

물론 이거보다 더 오래전, 테즈카 오사무와 후지코 F. 후지오 등이 만화를 그리던 초기 시절 작품들은

일본에서도 극히 구하기 힘들어, 한 권에 1천만원 가까운 녀석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한번 읽고 버리는 만화잡지를 이렇게 모아놓은건 참 징하다고밖에.

 

 

 

이런 녀석들 역시 오리지날이라면 가격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오리지날 철인 28호나 아톰 장난감도 초 레어아이템이긴 한데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로봇 '로비'는,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인 '금단의 행성'에 등장하는 캐릭터인데

상태좋은 초판 장난감의 경우 수백만원은 넘어간다. 저 사진에 찍힌 녀석들이 전부 초판 오리지날이라면 중형차 한대값은 나올 듯.

 

 

 

테즈카 오사무는 그 연식에도 불구하고 워낙 일본 만화계의 신으로 알려진 사람이라

그의 작품은 오히려 그 후의 만화작가들 작품보다 보존상태가 더 좋은 편이다.

 

테즈카 오사무의 뒤를 이은 '도라에몽'의 후지코 F. 후지오 콤비의 데뷔작들은

이름을 알리기 전에 출판된 것들이라, 대스승인 테즈카의 작품보다 수십 배는 희귀하기도 하고.

아톰 옆에는 요코하마 미츠테루의 철인 28호가 진열되어 있다.

일본은 이 두 작품의 원본을 이렇게 전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국 문화의 자긍심을 가지기에 충분할 것이다.

 

 

 

일본에서도 대인기였던 모노폴리. 한국에서는 이것보다 부루마불로 더 알려져 있다.

이제는 기술의 발달로 부루마불조차 스마트폰 네트워크 게임으로 즐기는 시대지만

저 지폐의 감촉과 함께, 신성함조차 느껴지던 가장 비싼 빌딩의 플라스틱 모형의 풍채를 느끼기는 힘들지 않을까.

 

의외로 결판이 잘 나지 않아서 서너 시간 하다가 때려치우는 경우가 많았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나이가 좀 더 들고나서는, 무인도에 짱박히는게 의외로 중요한 전법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고.

모노폴리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느낌이 가장 강하게 들었던 게 그 부분이었다. 무인도도 돈이 있어야 갈 수 있구나, 이놈의 세상.

 

 

여행도중에 이런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 성격인데 셔터를 누르면서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이렇게 찍어대고나서 언제 블로그에 사진 다 올리나 하는 걱정이.

 

사실 라이트룸으로 살짝 보정하는건 아무리 많아도 별로 귀찮지 않다.

라룸을 만지는 시간은 꽤나 즐기는 부분이기도 하고. 살짝 그 때의 의도와 다르게 느껴질때 조금씩만 조물러주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글 쓰면서 블로그에 포스팅하는건, 사실 돈 한푼 받지 않는 순수한 자기만족임에도 불구하고

비공개 글이 아닌 이상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주구장창 자동차 사진만 올리고 있으면

지쳐 나가떨어지는 방문객들이 꽤나 생기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면야 힘을 내서 포스팅을 전진시키겠지만, 이거 실질적인 여행 첫 날째의 기록이다.

9일간의 여행동안 나고야에 있을 때를 제외하면 매일매일 이만큼의 사진을 마구 찍어댔기 때문에

이번 여행기는 대체 언제쯤 끝날지 본인도 감 잡기가 힘들다.

 

특히 이 날의 토요타 박물관은 아무런 상념없이 그냥 즐기기만 했지만

앞으로 다가온 여정은, 가볍지만은 않았던 과거 속으로 힘겹게 거슬러 올라가는 발걸음이라

일본 여행 포스팅이라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별로 유쾌한 기억만 남겨주지는 못할 듯 하기도 하고.

 

 

 

일본 메이저 자동차 메이커에 비해 뛰어든 시기나 기술적으로도 뒤쳐진 감이 있었던 미츠비시는

이 콜트 갈랑 모델을 시작으로 타 메이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현대자동차가 존재할 수 있었던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로, 현대자동차 최초의 자체생산모델인 포니를 필두로

초기 에쿠스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후반의 거의 모든 모델에 미츠비시와의 기술제휴가 녹아들어있다.

포니, 엑셀, 소나타 등은 사실상 미츠비시의 제품을 그대로 갖다 쓴 것이나 다름없었고.

 

재미있게도 지금은 세계 시장의 영향력에 있어서 두 회사의 위치가 완전히 반전되어 버렸다. 참 역사는 이래서 알 수가 없다.

 

 

 

이 녀석의 색깔과 모양이 어쩐지 울 가족의 생애 첫 번째 자동차였던 마크 V 와 꽤나 닮아있어서

다른 기종임에도 불구하고 신경써서 둘러보게 되었다. 토요타의 소아라 모델.

 

중고로 받아왔던 포드사의 코티나 마크 V 는, 1988년 즈음의 꼬꼬마 시절엔 어디서 나온건지도 모르고 그냥 탔던 기억이 나는데

그 모델 이후에 아버지가 구입한 엑셀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마크 V보다 훨씬 조악한 성능을 자랑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보급형 모델이긴 했지만 포드사의 기술력이 그래도 어디가진 않았던 것일까.

 

 

 

우연이겠지만, 이 소아라 모델은 마크 V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제품.

당시 울 가족의 마크 V도 이런 똥색에 가까운 금색이었고, 디자인 역시 각이 확실히 잡힌 디자인이어서 지금 봐도 참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성능은 이녀석이 훨씬 좋았는데, 애초에 이 소아라는 젊은 의사, 변호사와 같은 떠오르는 야심가들을 타겟으로 한 고급형이었기 떄문이다.

마크 V의 엔진이 1600cc, 이 녀석의 엔진은 2750cc 니까 비교할 건덕지도 없긴 하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1900년부터 시작되어, 1930년 중반에 뛰어든 일본이 그로부터 40년 후 세계 정상에 서게 되었는데

이 녀석이 개발되던 1980년까지 자체기술로 자동차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던 현대자동차가

40년쯤 후 자신들과 어깨를 동등하게 세울 만큼 발전했다는 사실을, 이쪽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런지.

 

가족의 생애 첫 자동차가 이녀석과 닮은 마크 V라서, 이 앞에서는 뭔가 여러가지 상념이 떠오른다.

 

 

 

그 외에도 전시된 자동차는 상당히 많이 남아있지만, 아무래도 일본 자동차의 역사는 이 정도로 만족감을 느꼈기에

이곳에 전시된 멀쩡한 자동차 중 가장 미래지향적인 느낌의 자동차를 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토요타에서 이런 차도 발매했었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잘 빠진 디자인.

 

 

 

알고봤더니 이 녀석은 토요타 LFA 라고, 자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슈퍼카 개념의 모델이었다.

이 녀석은 2009년 모델이지만, 정식 개발이 아니라 프로토타입 모델로, 온전히 구경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여기밖에 없을 듯.

 

자동차의 프로토타입은 양산형과는 달리 돈 따위 생각지 않고 마구 때려부은 녀석이라

2009년 프로토타입이라도 현재 생산되는 어떤 스포츠카보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팍팍 풍긴다.

 

 

 

2013년 LFA 는 전 세계 500대만 제작되었다고 한다.

2009년 모델이라도 이 정도만 되면 아마 돈뭉치 들고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법 한데.

 

정중앙에 개틀링처럼 위치한 배기구가 영화에서나 쓰일 법한 느낌이라서 신선하다.

 

1901년에 제작된 자동차를 한두 시간 전에 구경하고 왔는데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자동차는, 조금 과장해서 인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가슴을 펴고 자신만만하게 냉소덩어리 성격이라 외칠 수 있는 본인으로서도

사람의 머리에서 태어나는 무형의 산물을 이렇게 실현화 할 수 있는 능력이란, 일종의 축복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지식의 발달과 지성의 발달은 전혀 별개의 문제고, 내가 냉소하는 것은 보통 지성의 공허함 때문이긴 하지만.

 

 

 

LFA 가 온전하게 보존된 가장 최근의 모델이라고 한 이유는

온전하지 않게 해부되어 있는 현 토요타의 주력 모델 프리우스가 박물관 통로 끝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토요타는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생산자 답게, 사운을 걸고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장점에 대해 역설한다.

 

토요타가 협력을 한 어떤 자동차 박물관에서라도 반드시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설명은 들어가 있다.

 

 

 

긴 흐름으로 봤을때 분명히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전기자동차 혹은 수소자동차로 향하는 과도기같은 모델이지만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좀 더 자동차의 개발 흐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있어서, 그 수명을 연장시킬 가능성은 남아있다.

 

개발 흐름이 엿가락같다는 뜻은, 석유 자동차의 연료효율이 워낙 발달해서 상당한 수명연장효과를 보고 있는 동시에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는 간단히 해결되기 어려운 난제들이 생각만큼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이브리드는 이제 연비경쟁만으로 이점을 주장하기 어려워지고 있지만

전기모터의 믿어지지 않는 정숙성, 토요타의 기술력을 총집합시킨 높은 완성도 등으로 아직 세계적인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프리우스가 처음 나왔을 때, 베터리 수명 다되면 교채비가 어마어마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전 세계에서 판매된 프리우스중 베터리 수명문제가 발생한 모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면

토요타라는 회사가 모든것을 걸고 개발한 녀석이라, 비와 감성에 젖으며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횬다이의 대강대강 모델보다 신뢰도는 높을 듯.

 

 

 

이제 슬슬 자동차 담는것도 배가 불러오기 시작할 무렵이라서

담아내지 못한 녀석들에 조금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전시장의 모습을 한번 더 담아본다.

 

출구쪽으로 걸어가니 안내원이 '3층 갤러리에 작품 전시중이니 괜찮으시면 보고 가세요' 라고 권유한다.

이나가키 토시하루(稲垣利治)씨 의 키리에(切り絵) 작품전이 무료로 열리고 있었다.

사진촬영은 금지니, 뷰파인더로 지쳐있는 오른쪽 눈을 좀 쉬게 하면서 느긋하게 한바퀴 돌았다.

 

'키리에'라는 기법은 일본의 전통공예중 하나로, 한자 그대로 종이를 잘라서 만드는 예술활동.

이나가키씨는 자동차의 성지인 나고야에서 태어난 탓도 있는지, 전통공예를 세계의 명차와 접목시켜서

훌륭한 팝 아트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듣는 예술가라고 한다.

 

 

 

그림을 누르면 아마도 이나가키씨의 홈페이지인 PAPER'S GARAGE 로 이동할 듯?

실물로 전시된 저 작품들은, 그리거나 색칠한 게 아니라 각각의 색종이를 토대로 겹쳐붙여 만들어져 있다.

 

쉽게 말해서 유치원때 한번씩 해보는 스크래치 기법과 비슷하다.

검은색 종이 위에 빨간색 파란색 등의 종이를 오려덮어 만들어진 작품들.

 

실제 작품을 잘 살펴보면 종이끼리 살짝 떠 있기 때문에 묘한 입체감이 느껴진다.

특히 키리에의 특징인 강렬한 원색강조와 검정을 베이스로 한 명암의 표현이

금속 자동차가 광원에 반사되어 표현되는 강렬한 이미지를 나타내는데, 이게 굉장히 절묘한 밸런스를 지니고 있다.

 

신 시티 등의 미국 카툰을 연상캐 하는 느낌에, 색상마다 높낮이가 다른 오묘한 느낌은 실물 자동차 구경만큼이나 흥미롭다.

 

 

 

다행히도 갤러리까지 무료라 더더욱 1천엔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게 된다.

갤러리 맞은편에는 어른과 아이들 모두를 위한 조그만 도서관까지 운영되고 있어

전문 자동차 잡지와 함께 유아용 그림책 등을 읽으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진짜 제대로 된 박물관이다.

 

본관을 모두 감상하고 다시 시작점의 토요타 AA형이 놓여진 1층으로 내려와 마지막으로 한장 담는다.

사전지식도 없었고, 오늘의 일정은 그냥 진짜 여행이 시작되기 전 여흥으로 즐기려던 것 뿐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알찬 구성에, 하루를 낭비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다.

 

토요타의 고향인 나고야 시는, 조금만 둘러봐도 알겠지만 도시를 둘러다니는 자동차의 90%가 토요타 제품이다.

단지 토요타가 시작된 곳이라는 이유만이라면 조금 폐쇄적인 지역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역에 이런 박물관을,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니라 여기저기에 건설하는 회사라면 나름대로 납득은 간다.

 

 

 

본관을 다 둘러봤으니 이젠 신관을 둘러볼 차례.

신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레스토랑도 있어서, 요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어느센가 아이들을 데리고 온 일행이 늘어나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식당 밖에서도 들려온다. 아무래도 저기서 한끼 먹는건 소화가 잘 되지 않을것 같으니 패스.

 

신관 통로 앞에는 아이들의 그림이 주르륵 늘어서 있다. 아마도 박물관 견학후에 뭔가 만들어서 제출한 듯.

 

 

 

아이들의 비상한 창의력을 느낄만한 작품이 없나 좀 둘러본다.

이건 나름 시원한 컨셉. '렛츠 고 윈드'라는 제목의 이 자동차는 무려 바람의 힘으로 달린다!

그것도 자기 자동차 위에 달린 조그만 프로펠러를 파닥거려서 풍력발전으로 달린다.

친절하게스리 컬러 베리에이션까지 그려놨다. 남자라면 핑크고 여자라면 블랙이지.

 

핑크 모델에 프로펠러를 달아놓으니 뭔가 악마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아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렸으리라 생각한다.

 

 

 

슈퍼 드림카라는 멋들어진 이름이 붙여진 이 자동차는

몸이 불편한 사람도 쉽에 운전할 수 있게, 핼멧에서 뇌파를 받아 자동으로 운전하는 무시무시한 녀석.

초음파로 간격을 계산해서 사고도 나지 않는다. 윈도우에 필름이 붙여져 있어 사고가 났을 때도 파편이 튀지 않는다고.

 

뇌파조절이라는 신기술만 빼면 이미 탑재되어 있는 자동차가 많긴 한데, 그 한가지가 좀 오버테크놀로지스럽긴 하다.

 

 

 

KNK354REX 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자동차. 어디에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선 적혀있지 않아서

사실 그림 내용보다 저 이름이 어디서 나온것인지가 더 궁금하긴 했다.

 

이 자동차는 '철'로 되어있어서 리사이클이 된다!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어린이로세.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녀석 역시 프로펠러로 달리는 풍력자동차니까.

일본에서는 주정차시 엔진을 끄는 아이들링 오프가 중요한 환경보호행동으로 인식되는데 여기도 적혀있다.

 

특히 버스들은 한국사람들이 보기에 질릴 정도로, 3초 이상 정차하면 거의 무조건 엔진을 꺼버린다.

그렇게 켰다 껐다 하면 오히려 가스가 더 나오는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버스엔진에는 당연하게도 그런거 커버되는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고.

 

 

 

노파심에서 설명하지만 이 작품은 아이들이 만든게 아니다.

마츠야마 타카시(まつやま たかし)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 어디를 그린 것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사람 홈페이지에 가보니 카툰식 표현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대체로 밝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작품을 주로 그리는 듯 하다.

 

존경하는사람이 토리야마 아키라라고 되어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나니 왠지모르게 그림의 방향성이 조금은 느껴진다고 할까.

 

 

 

신관으로 향하는 통로 역시 관객을 그냥 보내주진 않는다.

빈티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비싸보이는 자동차 미니어쳐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뒤에는 휴식공간과 함께 이런 장난감들을 구매할 수 있는 샾이 마련되어 있다. 유혹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리얼리티를 중시한 모델도 있는 반면, 미니어쳐의 장점을 살린 파스텔풍의 모델도 인상깊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관심 없다가 여기 오고나서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된 어린이들에게

이런 진열장은 부모에게 살짝 쓰라린 고통의 시간을 마련해줄지도 모른다.

 

 

 

자동차 매니아들이란 그 범위를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는데

개중에는 이렇게 특수목적 차량에 환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좀 더 파고들어가면 소방차만 중점적으로, 엠뷸런스만 중점적으로 등등.

어디서 본 건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런 매니아들은 미니어쳐 감상에만 그치지 않고 엠뷸런스 소리만 들어도 그게 어떤 차종인지 알아차릴 정도였다.

 

 

 

신관 연결통로는 정갈함 그 자체인데, 일부러 블라인드를 몇개 걷어놓고 그 앞에 의자를 배치해 놓았다.

휴식하기도 좋을 뿐더러, 앞에 보이는 풍경의 설명사진까지 배치를 해 놓으니, 앉지 않아도 배려심에 기분이 좋아진다.

본관에서 자동차 구경하느라 지친 사람들은 여기서 좀 쉬고가면 좋을 듯.

 

밖을 보니 날씨가 상당히 좋긴 한데, 문제는 날씨가 너무 좋았는지 바깥의 수목들이 너무 많이 자라는 바람에

사진에 나와있는 풍경은 거의 나무가 가려버리고 있었다.

 

 

 

신관 입구쪽에는 조금 전 조그마한 미니어쳐와 달리 본격적인 콜렉터 지향인 듯한 모델들이 가지런지 놓여있다.

잘 자란 요크셔테리어 정도 크기의 꽤나 정교한 모형들이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곳에서 쉽게 판매할 정도의 가벼운 금액은 아닌듯 하다.

 

 

 

세계의 명차라기보다는 토요타의 예전 기종들을 모아놓은 듯한 모습인데

조금 전 조그만 장난감들은 공간이 부족해서 실력발휘를 못했다고 자기주장을 하는 듯이

내부 시트에서부터 휠 세공까지 거의 실물을 완벽하게 재현해 놓았다.

 

조그만 장난감이 아이들을 위한 마녀의 과자집이었다면

이 녀석들은 왠지 지갑 두둑한 어른들의 정신줄을 잡아당기는 유혹의 손길이 아닌가 싶다.

 

본인도 남자이긴 한데, 남자는 시계와 자동차에 열광한다는 통념과 달리 그 둘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어서

이런 녀석들을 보고 하악하악거리는 심리를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어쨌는 눈돌아가는 사람이 많을거라는데는 충분히 공감.

 

 

2층 관람을 마치고 한 켠에 마련되어 있는 체험학습관으로 이동한다.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은 내가 굳이 둘러볼 필요는 없지만

나로서는 체감하기 힘든 '아이들의 눈높이를 어른들이 맞추는 방법'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조카 크면 조금이라도 어른 행세를 해야 되지 않겠나 싶은데,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마을 여기저기서 큰일이 벌어졌을 때 자동차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거대한 벽보.

노트 형식으로 되어 있는 곳을 넘기면 상황에 맞는 자동차와 함께 간단한 설명이 나온다.

 

그림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넘기도록 놔두고, 나에게 재미있었던 부분은 중앙의 색색글자로 쓰여진 곳이다.

'이럴 때 어떤 자동차가 활약하는걸까?' 라는 뜻인데, 활약이라는 한자를 '活やく' 라고 한자와 히라가나를 섞어서 사용한 부분이 센스있다.

한국에서도 아마 저 한자를 다 쓸수 있는 젊은이가 거의 없을 듯. '活躍' 중에 뒷글자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읽기에 쉬운 녀석이 아니니까.

 

사실 뉴스에서도 상용한자에 들어가지 않는 어려운 한자가 포함된 단어는 히라가나와 병기하기도 한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活약'이라고 사용하는거나 마찬가지라 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한테는 좋은 배려가 되겠지만.

 

 

 

빈티지 자동차라고 해 봤자 아이들에게는 거기서 거기일테니, 이곳에서는 각종 현장에서 활약중인 자동차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쿠보타 트랙터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것으로 안다. 이거 한대만 있으면 수확철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국서나 일본서나 이런 것들은 꽤나 비싼 편이고

한국의 농협 역할을 하는 JA 역시 한국에서와 비슷하게 일본 농민들에게 별로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

작은 면 단위나 이웃 농가 몇몇이 돈을 모아서 계절별로 기계를 JA 에게 대여받아 공동사용하곤 하는데, 대여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

 

 

 

각종 특수차량들에 맞는 제복을 아이들이 시착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물론 진짜 제복은 아니고 그냥 옷 위에 수술복처럼 걸칠 수 있는 녀석.

 

자동차 박물관이란게 상당히 어른을 위한 장소이긴 한데, 이런 식으로 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코너를 착실히 마련해 놓는다.

나갈때쯤 수많은 자동차 장난감들이 포진해 있는것 역시 아이들을 위해 지갑을 열게 만드는 착실함을 나타낸다.

 

 

 

외국인에게는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만큼 신기한 일본의 택시.

앞문은 수동이고 뒷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것도 신기하고

옆으로 누워서 데굴데굴 굴러가도 도착할만한 거리에도 놀랄만큼 쑥쑥 메터기의 금액이 올라가는 것도 신기하다.

 

일본의 택시는 사이드 미러가 차체 앞에 부착되어 있는데, 보기엔 볼품없지만 시야가 굉장히 넓어져 사고의 위험이 줄어든다.

숨은그림찾기는 아니지만 저기 택시의 사이드미러를 한번 찾아보길. 외관보다 안전을 중요시하는건, 손님을 태우는 택시의 미덕이다.

 

 

 

1898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동력자전거.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자동차의 정중앙에 위치한 녀석이다.

작은 엔진과 체인으로 움직였으며, 페달 역시 달려있어서 인력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

 

 

 

연료통 위에 살짝 놓여진 조그만 가방이 인상적이다.

카울과 프레임이 얹혀지기 전의 가장 순수한 동력 이동수단에

세월 흐른 가죽 가방의 향수가 더해지니, 기술이란게 이렇게 발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법적인 문제만 없다면 지금도 타고 다닐만한 녀석인데, 한국선 몰라도 일본에서는 이런 거 불법이다.

 

예전에 일본서도 가솔린을 이용한 동력자전거가 사용되었는데, 개조 조금만 하면 60km 까지 속도를 낼 수 있어서

위험함 때문에 금지되었고, 지금은 전동자전거 역시 사람의 힘이 몇% 정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법률이 제정되어 있다.

 

 

 

3층에 올라가기 전에 조그만 암실이 눈에 들어온다.

르네 라리끄의 카 마스코트 전시실이라고 한다. 누군가 싶었는데 1920년부터 유명 자동차들의 마스코트를 제작한 유명한 디자이너라고.

 

 

 

자동차 마스코트로도 유명하지만 원래 시대를 대표하는 크리스탈 조각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미술이나 공예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들어봤을 법 하다.

 

지금도 기싸움을 벌리고는 있지만 자동차의 마스코트는 결코 싸구려 장식이 아니다.

롤스 로이스의 마스코트 '환희의 여신상'은 그거 한개만 6천만원이 넘는다. 백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때문인지 웃기게도 마스코트를 차체에 집어넣는 기능마저 있다고.

 

 

 

크리스탈의 영롱함을 드러내기 위해 실내는 매우 어두운 가운데 정확히 조각상에만 빛이 집중되어 있다.

카메라로 담기 쉬운편은 아니지만, 가공 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감각에 있어서도 르네 라리끄라는 사람은 범인이 아닌듯.

 

 

 

그가 디자인한 자동차 마스코트는 지금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서양 사람들에게 자동차란 자신들의 역사와도 같은 것이라, 메이커들은 마스코트를 한번 정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때문에 결코 쉽게쉽게 제작하지 않는데, 그런 마스코트를 29 종류나 의뢰받아 제작한 르네 라리끄는 장인의 대열에 들어가기게 부족함이 없다.

 

여담으로, 날개모양을 한 벤틀리의 마스코트는 무단도용 방지를 위해 양 쪽의 날개 갯수가 한개 차이나게 만들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제네시스 엠블렘이 벤틀리를 완전히 베낀거나 마찬가지인데, 당연하게도 양 쪽의 날개 갯수는 같다.

 

 

 

여기 전시된 르네의 작품들은 자동차 마스코트는 아니지만 그가 즐겨 제작했던 동물 조각들이고

사실 마스코트의 많은 부분은 동물들에게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한다. 동물은 기원전부터 상징성을 나타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으니.

 

 

 

2층 관람을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간다.

똑같은 U 자 구조고, 자동차는 2층보다 더 빡빡하게 들어서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몸으로 느끼는 밀도는 2층보다 낮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2층은 전 세계를 주름잡은 빈티지 자동차들의 집합소였지만

3층은 어찌됐든 일본의 자동차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곳이기 때문. 일본인이라면 감회가 새롭겠지만 나로서는 좀 김이 빠진다.

 

일단 어지간한 녀석은 다 카메라에 담아오긴 했지만, 왠지 2층과 달리 그녀석들은 전부 소개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확실히 귀엽고 인상적이었던 이 녀석은 토요탸 최초의 소형차 토요펫 SA 모델.

소형차 브랜드를 위한 이름을 공모해서 선택된 것이 TOYOPET 이라고 한다. 좋은 센스다.

 

 

 

앞선 SA 모델보다 훨씬 중후하게 만들어진 이 녀석 역시 토요펫 라인이다.

애완동물이 갑자기 늙어버렸나 싶었는데, 당시 소형차의 기준이 1000cc 에서 1500cc 로 바뀜에 따라 제작된 녀석이라고.

물론 성능이 그만큼 좋아져서 주로 택시기사들이 애용했다고 한다.

 

 

 

뭔가 덕지덕지 붙은 이 녀석도 토요펫 크라운 RSD.

1957년 일본 자동차로서는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 랠리에 참가해 47위를 기록한 모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랠리는 19일간 14000km 를 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랠리 경주.

 

랠리 경주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한번 찾아보길. 본인이 예전에 경험했던 사하라 사막 마라톤의 자동차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당시 이 랠리는, 완주만 달성해도 그 자동차의 기술력을 인정받을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다.

 

 

원래는 이런 녀석. 붉은색도 꽤나 잘 어울린다.

 

 

 

토요펫 코로나 RT40 모델. 적혀있듯이 1964년 제작된 녀석이다.

이 모델을 기점으로 토요타 자동차의 기술력이 세계의 메이커와 대등해졌다고 평가를 한다.

일본은 당시 고속도로 건설 붐이었기 때문에, 막 건설된 고속도로에서 10만km 를 연속으로 달려 성공적인 이미지 전략을 달성했다고.

 

 

 

3층엔 토요타뿐만 아니라 일본의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의 제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토요타와는 달리 3륜차에 중점을 두고 실용성을 강조한 메이커들이 많았다.

 

지금도 다이하츠 중공의 자동차들은 작고 튼튼한 직사각형 모양의 자동차를 중점적으로 생각중이고.

 

 

 

그중에서도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 녀석은 후지 자동차에서 제작된 후지캐빈 5A 형 모델.

원래 오토바이 엔진을 만들던 회사였던 후지자동차에서, 극도의 저가격과 실용성을 무기로 내세워 출시했던 녀석이다.

 

디자인만큼은 귀엽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절륜함을 자랑하지만 무게를 위해 프레임을 FRP로 만들어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유리 섬유 플라스틱인 FRP는, 지금에서야 기술력이 좋아져서 항공기의 부품에도 쓰이지만, 당시의 FRP는 자동차 차제로 쓰기엔 역부족.

 

거기다 원래 오토바이용 125cc 엔진을 장착했고, 와이퍼를 운전자가 손을 내밀어 수동으로 작동시켜야 하는, 끝내주는 아날로그 삼륜차였다.

결국 모양외에는 별다른 장점도 없이 딱 85대만 생산되고 바로 단종되어버린 모델. 그래도 시도면에선 칭찬을 줘도 되지 않을까.

 

 

 

프린스 자동차공업이 1964년 발표한 고급형 세단 글로리아 수퍼6 모델.

현재 일본 내에서 토요타와 거의 대등하게 맞상대를 할 수 있는 닛산자동차의 전신이다.

이 당시부터 일본의 자동차회사들의 기술력이 점차 상향평준화 되어간다.

 

 

 

당시 일본은 놀랄 정도의 고도성장기였고, 자동차의 수요 역시 폭발적이었다.

넘치는 연구자금과, 끊임없는 해외 자동차의 연구 등을 통하면서 점점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시기가 1960~70년대.

 

사실 당시까지 토요타는 세계 시장에서 별달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았고, 저렴한 가격에 쓸만하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70년을 넘어가며 오일쇼크가 터지자, 작고 연비좋은데다가 잔고장 일으키지 않는 미니멀리즘 공돌이의 자동차가 대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에 토요타의 이름을 각인시키게 된다. 사실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70년대 자동차들이 멀쩡히 굴러가고 있다.

 

 

 

1964년 혼다가 개발한 최초의 자동차 S500.

혼다는 이전부터 오토바이 제작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자동차 시장에 뛰어드는건 힘들지 않겠냐는 전망이 많았는데

처음으로 출시한 이 모델의 엔진은, 연륜넘치는 메이커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굉장히 정교하고 고성능이었다고.

 

아주 작은 자체에 배기량도 그리 높지 않은 소소한 모델이지만, 엔진 기술을 자동차에 접합시키는데는 성공적인 한 걸음이었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세계적으로 자동차의 대량생산체제가 갖춰지고 나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초기 서양의 자동차 시장처럼 재기넘치는 도전정신보다는, 어디까지나 실용성을 우선으로 한 '튀지 않는' 모델이 많았다.

 

색깔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동양권에서는 어찌됐든 무난한 디자인이 유행했던 듯.

 

 

 

하지만 물론 스포츠카나 레이싱용 모델은 여전히 콜로세움에서 열광하던 군중들의 심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해서, 스포츠카로서는 놀라울 정도의 저연비를 실현한 토요타 스포츠 800 UP15형.

 

일본에서는 아직도 가끔 도로에서 볼 수 있는 모델이다. 이 정도로 상태가 좋지는 않고 그냥 빈티지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지만.

 

본인도 솔직히 상태만 좋다면 몰고싶은 자동차 1순위기이도 하다. 일본서 이녀석이 달리는 모습을 봤는데

혼자나 둘이서 타기엔 이만큼 적당한 녀석도 없다는 느낌. 요즘 한국의 한 덩치하는 자동차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불만점을 전부 해결한 녀석이다.

힘은 요즘 것들에 비해 약해도, 스포츠카 디자인의 극히 몰기 편한 소형차가 연비는 또 죽여주게 좋으니까.

 

 

 

코로나 마크2 모델. 나이 조금 지긋한 일본인들에게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자동차다.

한국에서는 소나 탄다는 그 모델보다 조금 더 윗급이라고 할까.

 

원래 토요타 브랜드 중에서 코로나가 중급, 크라운이 상급기종이었는데

크라운을 탈 여력은 안되지만 코로나보다는 괜찮은 녀석을 타고 싶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샌드위치 모델.

이게 소비자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바람에 한달에 2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확실히 비싼 녀석은 겉으로 느껴지는게 다르긴 하다. 이게 인격이나 인생의 성공척도로까지 이어지는 요즘 세태엔 좀 한숨이 나오지만.

토요타에서 작정하고 야심차게 제작한 최초의 프레스티지형 승용차 센츄리 모델이다.

 

프레스티지형이란 제작사의 기함급 모델을 말하지만, 브랜드 중에는 기함급이라도 프레스티지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내노라하는 명차의 대열에 대항할 수 있는 급수를 나타내는 모델이기도 하다.

 

 

 

센츄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평범하게 생각하면 나오는 그 이유가 맞았다.

자동차 회사는 아니었지만, 방직공장 창립자인 토요다 사키치(豊田佐吉)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녀석.

 

이 토요타라는 회사 이름은 사실 미묘한 부분에서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은데

원래 '豊田'라는 한자는 토요다 라고 읽는다. 창립자의 가문인 토요다 가문 역시 그렇게 읽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를 창립할 때는 '토요타'라고 읽었다.

서양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토요타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 발음이 서양인들에게 더 익숙하리라 생각해서 그렇게 지었다고.

 

이 때문에 토요타라는 회사가 원래는 토요다였는데 이름을 바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회사는 처음부터 토요타였다. 한자의 음독과는 다른 독자적인 단어. 실제로 토요타의 사명도 한자가 아니라 'トヨタ'라고 쓴다.

 

더욱 헷갈리는 것은, 원래 회사가 위치했던 코로모(拳母)시가 토요타시로 개명되었는데

이 토요타시는 한자를 "豊田'로 쓰지만 발음은 회사와 같이 토요타로 읽는다. 사람의 성씨가 아니라 회사 이름으로 개명된 경우기 때문에.

일본인들중에도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마 이대로 가다간 '豊田'라는 한자의 음독 자체가 토요타로 바뀌어 버리는게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