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떠나자/中部'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10.29  과거로의 여행 - 마츠모토 봉봉 2편 6
  2. 2013.10.28  과거로의 여행 - 마츠모토 봉봉 1편 10
  3. 2013.10.20  과거로의 여행 - 마츠모토 방황 11
  4. 2013.10.08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9편 13
  5. 2013.10.03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8편 8
  6. 2013.10.02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7편 8

 

약 30분간의 도돌이 노래가 끝나면 비로소 사람들이 부채를 든 손을 내리고 휴식에 들어간다.

축제라는 게 노동이 아닌 이상 휴식이라고 정의하기엔 조금 낯설은 분위기.

그리 힘들지 않은 동작을 멈췄다 뿐이지, 노래가 멈추자 다들 참았던 말을 쏟아내듯이 동료, 가족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진다.

 

뒤에서 따라오는 서포터들에게서 음료수 받아 마시고, 쓰레기 역시 뒤에 달린 비닐 봉투에 잘 담는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오히려 이 휴식시간이 마츠모토 시내가 더욱 활기넘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는데

춤이 진행되는 동안엔 도로를 건너갈 수가 없어서 인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반쯤 고립되어 버리기 때문.

 

춤이 끝나면 신호 대기하던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듯 물밀듯이 도로로 쏟아져 나온다.

나 역시 4시간 동안 이 쪽에서만 서 있기는 지루하니 어디로든 가 보려고 길을 건넌다.

 

 

 

그냥 서있기만 해도 더운 8월 첫 번째 토요일이라 동작이 과격하지 않은 춤임에도 불구하고 힘든 건 힘든 거다.

아이들은 과연 축제가 끝나는 4시간 후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쉴 때는 최대한 쉬어줘야 다음 춤을 준비할 수 있다.

 

유치원생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인데, 이런 아이들이 벌써 마을의 축제에 참가하며 땀을 흘리고

어른들은 휴식 시간이 되면 음료수을 갖다 주며 부채로 땀을 식혀 준다.

 

학교 다니는 도중에도 백년지대계라는 교육과정계획이 몇 차례나 바뀌는 줏대없는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마을의 축제에 참가한다는 이미지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저 친구하고 놀 시간 있으면 학원이나 가야겠지.

 

 

 

사범이 한국 사람인 듯 하다. Lee's 태권도라고 적혀있는걸 보니.

한국인들에게만 가르치는 것은 아닐텐데 태권도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있는 모습도 참 특이하다. 기본 뼈대는 카라테에서 나왔으니.

 

도복 입고 춤추는 것도 신선할 듯 하다. 혹시 마지막 점프 동작에서 날아차기 같은거 시연하고 그러지 않나?

휴식 시간에는 당연히 일반인도 도로 쪽을 걸어다녀도 되는데, 왠지 춤추는 사람들의 공간 같은 느낌이라서

괜히 중앙으로 나가기가 겁이 나기도 한다. 좀 더 붙임성이 좋다면 쉬는 팀들 아무한테나 가서 수고했다고 해 주고 사진 찍고 하면 될 텐데.

 

 

 

두 번째 타임이 시작된다. 어지간히 장소를 이동했으니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한번 담아볼까 했는데

막상 중요한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이 춤의 행렬이 일본의 자동차 진행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건너편이든 이쪽이든 무조건 인도에서는 동일한 각도만 사진에 나온다는 점.

 

이걸 타파하려면 프레스 기자들처럼 과감히 도로 안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건너편에서 반대쪽 행렬을 담는 신기에 가까운 촬영기술을 습득하는 수 밖에.

 

 

 

어디서 어떻게 모인 팀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나 기업체 팀이 아닌 동호회 분위기의 팀도 분명 존재한다.

하반신은 자유에 맡겨도 일단 어느 팀이든 통일된 복장 하나쯤은 갖추고 있는데

본인들은 뭔가 어필을 위해 만들었겠지만 도통 알 수가 없다. 기어 같이 생긴걸 봐서는 무슨 공대에서 나온 건가.

 

대체로 나이 좀 드신 팀은 조금 더 통일감이 느껴지고 일부러 힘을 넣으려 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데

젊은 팀은 좀 더 과격하고 열정을 방출하고픈 의지가 느껴진다.

축제를 계승해야할 문화적 전통으로 여기느냐, 소속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방출 장소로 여기느냐의 차이일런지.

 

 

 

춤추는 사람들 만큼이나 많이 인상깊었던 것이 뒤에서 따라오는 서포터들의 모습이다.

어떤 팀이든 반드시 서포터들은 동행하는 것이 규칙인 듯 한데

이온 음료에서부터 맥주까지 없는게 없다. 더운날 축제의 든든한 버팀목.

 

사진에 담긴 서포터는 독특한 컨셉으로 눈길을 끈다. 아무래도 욕조 비스무리한 걸 통째로 떼어온 듯 한데

공돌이 기질이 있는 건지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다. 리어카 하단부에 모터라도 달린 걸까.

 

 

 

초등학교 학생 학부모 팀인 듯 한데, 아이들이 정말 신나게 노래부르며 춤추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묘하게 촌티나는 듯한 마츠모토 봉봉 노래도, 1시간 넘게 계속 반복되니 의외로 흥이 나고 리듬감이 느껴진다.

실제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은 더욱 신명이 날 듯.

 

처음에 어색해 하던 사람도 익숙해 질 수록 더 크게 소리도 질러보고 동작도 크게 휘둘러 보고 하면서

그렇게 축제에 점점 물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는 개념도 상당히 중요한 점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가득한 곳에 젊은이들이 가서 춤추기도 어색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도 기본적으로 야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긴 한데, 요즘엔 축구가 무섭게 차고 올라오는 중이라고.

한국은 월드컵 열풍 후 국내 리그는 그만큼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일본은 매년 팬층이 두터워지고 있다고 한다.

 

저 유니폼 입은 그룹 역시 어느어느 축구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인 듯 한데, 응원에 익숙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우렁차다.

춤 추는데 목소리가 왜 필요한가 싶을수도 있지만, 마츠모토 봉봉이라는 노래의 후렴구에 '봉봉~' 이라는 후렴구가 들어가기 때문에

그 때는 도시 전체가 따라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참고로 '봉봉'이란 마츠모토에서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어린 여자아이의 행사.

실제로는 죽은 사람들의 영령을 달래는 애상깊은 행사였는데, 40여년 전부터 나가노현이 마을 부흥을 목적으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런 식의 축제를 기획할 당시 마츠모토에서 잘 알려진 '봉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더욱 참고로 '봉봉'이라는 여자아이의 행사에 대응하는 남자아이의 행사는 아오야마사마(青山様) 라고 하는데

현재 마츠모토 봉봉 축제의 주제곡은 여성 가수 한소절 남성 가수 한소절로 돌아가며 부른다. 이 역시 유래된 행사에서 파생된 것.

 

 

 

축제 참가자들이야 각자의 유니폼이 있으니 딱히 튈 일은 없지만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은 또 그네들 나름대로 화려한 의상쇼를 즐길 수 있다.

 

아이들이야 뭐, 부모들이 정성들여 입혀놓은 유카타로 공주님이 되는 날이기도 하고

5살 정도 되어보이는 금발 외국인 여자아이가 유카타 입은 모습은 이쪽에서 대단한 화제라서

많은 사람들이 보물 쳐다보듯이 '귀여워~'를 연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청법이라는 개똥때문에 겁날만한 일이겠지만.

 

젊은 처차들도 이런 날 아니면 언제 한번 뽐내보겠느냐고 청초한 유카타에서부터 미니스커트 퓨전 유카타까지 한껏 멋부리고 왔다.

사람들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영 익숙하질 않은데다가, 이 정도 활발한 축제에서라면 사진 좀 찍자고 말 걸어도 크게 문제 없을듯 한데도

본인은 성격도 그렇고 실제로 흥미도 별로 생기지 않고 해서 그다지 담아온 게 없다.

 

 

 

춤을 추는 사람들과 때로는 순방향으로, 때로는 역방향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고는 있는데

앞서 언급했다시피 길을 건널 수 있는 시간은 춤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시간 뿐이기 때문에

실제로 춤이 진행되는 30여분간의 시간동안은 자신이 속한 블럭 밖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하지만 축제라는 게 어디 그렇게 스스럼없이 진행되는 것일까. 축제가 가지는 본질적 야성은 일본이 한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다.

쉬는 시간이 될때마다 본부석의 마이크에서는 쉴새없이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을 읊어대고 있다.

춤 추고 있는 사람들 중간을 가로질러서 길을 건너는 일은 부디 삼가해 달라고. 자칫하면 사고의 위험성이 있단다.

 

하지만 본인도 이제껏 한 시간 반 가까이 정말 수도 없이 보아온 광경이라 좀처럼 통제가 되지 않는 모양.

것도 당연한 게, 축제를 즐기러 왔지 가만히 서서 춤만 바라보라고 온 게 아니니

30분 가까이나 자리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게 좀처럼 참기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도 양심은 있어서, 노래와 노래 사이의 간주 부분 잠깐을 이용해 후다닥 달려가곤 한다.

한두 사람이라면 이 정도 배려로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마츠모토 시내에 마츠모토 인구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이 축제에서는

어떤 작은 행동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크기로 진화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무단횡단을 막아보려고 노력하는 중.

 

 

 

인파에 휩쓸리다가 우연찮게 메인 루트와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다리를 건너서 좀 더 가면 마츠모토 성이 있는 거리인데, 오늘 축제의 메인 이벤트장이 역 앞과 성 앞이라

잘못 갔다가는 피눈물이 흐를 수 있어서 조심하고 있다.

 

마츠모토는 많은 미술관과 예술 공연 등 문화의 도시로 유명한 곳인데

그 중에서도 내가 인상깊었던 곳은 저기 노란색 건물이다. 시계 박물관이었는데 이곳 부유한 지주가 자비로 모은 콜렉션을 전시한 곳.

입장료도 싸고,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상업적인 용도가 아니라면 괜찮다고 말씀까지 해 주시는 친절함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다.

 

개인이 모았다고 하기엔 신빙성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콜렉션이 소장되어 있는데

예전의 잘나가는 일본의 부자는 취미활동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편이었나 보다.

 

시끌벅적한 축제와는 별개로, 시냇가에 앉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 혹은 끈적끈적한 연인들이 보인다.

시끄럽고 복잡한 축제일수록 이런 순간의 한적함이 더욱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아직 한참 남았으니 좀 더 힘을 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저 멀리 다리에 보이는 노점상가 쪽으로 이동해 본다.

가게들이 꽤나 길게 줄지어 서 있으니 뭐라도 맛있는 군것질거리 하나 입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런데 너무 멀리서 보는 바람에 실수했다. 마츠모토 성과 너무 가까운 곳까지 와 버렸던 것.

이곳은 야외공연장도 설치되어 있고, 여하튼 인도와 도로의 구분까지 불가능할 정도로 인파가 몰려 있다.

 

휴식시간이긴 한데 이미 이동 자체가 힘들 정도로 사람이 가득가득하다.

이런 인파 속에서도 길 가다가 이웃 주민 만나서 친근하게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창설된 축제가 이제는 마을 사람들끼리의 친목 도모로도 훌륭히 작용하고 있는 듯.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도로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증거사진이라도 남기자고 생각하며

손을 최대한 높이 들어서 한 장 찍어본다. 운이 좋아서 광각렌즈가 마운트 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찍을 수 있었다.

 

 

 

어차피 4시간 동안 질리도록 춤추는 축제인데, 저 멀리 이벤트장에서는 또 댄스대회가 열리고 있다.

물론 창작무용이라고 할까, 남녀 둘이서 시시각각 변하는 기묘한 비트에 맞추어 예술적인 춤을 피로하고 있는 모습은

봉봉 댄스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니 공통 분모로 묶을 필요는 없겠지만.

 

프로급의 댄스 실력을 가지고 있는 팀들이라,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면 재밌게 구경해 보겠는데

이미 마야 문명의 벽돌만큼이나 단단한 결속력을 가지는 인파의 벽 때문에 그런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한다.

 

 

 

이렇게까지 혼잡한 곳이라도 다시 댄스 타임이 돌아오면

어찌됐든 구경꾼들이 인도로 밀려나가고, 스무스하게 춤으로 돌아가는 묘한 풍경이 연출된다.

 

휴식시간 도중엔 중앙 안내소가 정말 눈코 뜰 새 없을것 같은 것이, 쉴새없이 미아가 된 아이들 부모를 찾고

쓰레기 버리지 말아달라고, 춤 추는 도중에 길 건너가지 말아달라고 호소를 쏟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쓰레기는 확실히 거의 버리지 않고, 버리더라도 회수율이 높아서 도로가 더러워지지 않는데

춤 추는 도중에 길 건너가는 행위는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는 듯 하다.

 

자동차 사이를 지나가는 일이 아니다 보니 사람들이 별로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는지, 스스럼없이 지나간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30~40분동안 기다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라고 하면 지킬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긴 하다.

 

이제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르는 시기가 다가오는데

별다른 사고 없이 무난히 끝나길 바라며 행렬을 따라 슬금슬금 이동해 간다.

 

마츠모토는 나가노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여행객들에게는 참 아담한 도시로 기억되기 쉬운데

숙박, 식사, 관광 등 모든 즐길거리를 역 주변에서 도보로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

 

국보 마츠모토 성도, 빈지티 시계를 모아놓은 박물관도 모두 도보로 15분 이상 걸리지 않는다.

경기가 그렇게 좋진 않아도 여전히 넉넉한 숙박시설과 온갖 패스트푸드에서 고급 음식점까지 충분히 갖춰져 있고.

나가노현은 고원 목장에서 말을 많이 기르는 곳이기도 해서, 바사시(馬刺し)라고 하는 말의 육회도 유명하다.

 

거의 모든 호텔이 역 근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걸어서 10분인 토요코 인은 오히려 다른 호텔보다 먼 편.

그렇지만 4시를 넘어가니 벌써부터 주위가 왁자지껄해 지는게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마츠모토 시내 도로 전체를 보행자 천국으로 만든다고 했는데,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 모일런지 궁금했다.

 

축제 시작 30분 전에 장비 챙기고 밖으로 나와 보니, 이 축제는 본인이 상상했던 것과 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봉오도리라 불리는 일본의 축제는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는 오봉(お盆)에 추는 춤이 축제로 발전된 것인데

회장 중앙에서 마을 남녀노소가 강강수월래처럼 빙글빙글 돌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게 일반적인 방식이다.

축제에 먹을게 빠질 순 없으니 주위에 여러 장터가 생성되고

보통은 춤추는 사람이 30% 정도, 나머지는 구경하고 군것질하고 연애하고, 가끔씩 행렬에 들어가서 춤추고 나오는 식.

 

봉오도리는 축제의 분위기에 따라 댄서(?)들의 의상도 바뀌는데

팔의 스냅을 이용한 소박한 춤은 가랑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 유카타를 입고 사박사박 움직이는게 일반적이지만

남자들이 많이 참가하는 박력있는 춤의 경우엔, 적당히 전통과 현실을 타협해서 반바지 비슷한 녀석을 입고 펄쩍펄쩍 뛴다.

위의 의상이 좀 과격한 봉오도리 축제에 사용되는 녀석.

 

 

 

결코 작은 도시는 아닌 이곳 마츠모토 시내 도로를 전부 통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본인 머릿속에는 '구역별로 팀이 몇개씩 있어서, 각각의 덩어리를 이루어 돌아다니는 형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축제 시작 전 처음으로 보게 된 대기자들의 모습은 상상과 크게 다르다.

팀이 나누어 진건 사실이다. 적게는 10명 정도, 많게는 100명이 넘는 팀들 대부분이 회사 직원이나 상점연합의 직원들.

물론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생들도 와 있고, 대학교 동아리 팀들도 특색있는 복장을 하고 대기중이다.

 

내가 저지른 제일 큰 착각은 이 대열의 길이였는데, 덩어리 덩어리져서 끊어진다기 보다는

이 모든 팀들이 마츠모토 시내 도로 전체를 꽉 매우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쉽게 말해 축제 코스 전체가 사람으로 꽉 차 있고, 시작점과 끝이 없이 원형으로 계속 이동하며 돈다는 것.

 

1년에 한번 있는 축제라고 해서 규모가 클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전거 여행중 즐겼던 아오모리의 네부타(ねぶた) 축제가 규모면에선 단연 큰 축제지만

거기는 사람보다 거대한 네부타 모형이 주가 되는 축제고, 오직 사람 몸만으로 즐기는 축제 중에서 이렇게 규모가 큰 녀석은 처음.

 

의외로 젊은 층의 참가도 굉장히 두드러지는데, 그 일본의 젊은 층들이 당당하게 춤판에 나온다는게 참 신기하다.

특히 뒷머리에 하츠네 미쿠 달고 다니는 저 사람은 더더욱.

 

 

 

이 사람들에게 축제는 공동체 유지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조금만 삐끗해도 광란의 아포칼립스가 펼쳐질 이런 축제에도 굉장한 결속력을 보인다.

참가 팀이 수십 개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의상이 단 하나도 없다.

이건 분명히 참가신청 할때 의상 디자인까지 전부 공개에서 겹칠 염려는 없앴기 때문일 것이다.

 

축제 전부터 사람들은 이미 축제 분위기. 도로가 통로가 되고 원래 인도였던 곳은 군것질거리 가게가 차지하고 있다.

나처럼 축제 자체만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어서, 거진 1:10 정도의 비율로 구경과 참가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앞에서 즐겁게 기념사진 찍고 있는 사람들은 '맥스 밸류'라는 체인점 직원들.

 

맥스 밸류는 한국의 그마트와 비슷한 대형 슈퍼로, 여행하면서 이런 대형 몰에 접근성이 보장된다면 그건 땡잡은거다.

비싸고 맛난 가게만 찾아다니는 여행이라면 별 의미 없지만 나처럼 하루에 한두 끼는 꼭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는

헝그리 여행자들에게는 신의 은총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음료수, 간식, 도시락 등등 모든 먹거리가 편의점보다 압도적으로 싸다.

 

맥스 밸류 정도만 되어도, 콜라 1.5L 한 병에 98엔, 한국 돈으로 1천원이면 살 수 있고

한국에서 5천원은 족히 받을만한 빵빵학 도시락도 180엔이면 충분하다. 저녁 떨이시간이라면 100엔에도.

 

 

 

축제란 게 전통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특성상 전통에 대해 많이 관대하기도 하다.

잘 차려입은 전통 의상도 있는 반면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아이들과 함께 준비중인 팀 역시 보인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지만 일단 검은 셔츠에 핫팬츠 비스무리한 옷으로 통일한 여자사람들은

나보다 늙어보이진 않아도 대부분 애 딸린 유부녀인듯 하다. 그냥 동네 미시 동호회 같은 것인가.

 

 

 

힘이 넘치는 젊은 사람들이야 판만 벌여주면 알아서 뛰어 노는 법이겠지만

울 엄니보다도 확연히 연세를 더 드신 분들이 같은 의상 입고 가지런히 정렬해서 출발을 기다리는 모습에서는

축제의 순기능 중 가장 멋진 것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39년 전 마츠모토 봉봉 축제가 처음 시작되던 때 부터 춤을 추던 아가씨가 여전히 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

자발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정신적, 물질적인 여건이 마련되어야 가능한 이런 대규모 축제는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이웃간 네트워크가 완전히 무너지고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에만 붙잡혀 있어야 하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강변에서 술판 벌이고 흥겹게 춤추는 아줌씨들의 모습이 이거보다 더 가치 낮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문제는 대규모 축제에서 필연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이웃, 동민, 구민, 시민들간의 연계감을 전혀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

이런 축제를 한국쪽에서 보며 툭하면 나오는 소리가 '단체의식 쩐다'느니 '쌓인게 많으니 저렇게 놀지'라느니 하는 말인데

한국처럼 철저하게 고립화 된 사회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거 참 신기하긴 하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나왔다기보다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춤 연습에 몰두하는 사람들 보니

이 축제가 정말 재미있긴 재미있나보다. 확실히 옆에서 구경하는것보다는 직접 뛰어드는게 축제의 참맛이긴 하다.

 

도로엔 축제 참가자들, 인도엔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방향 감각도 잃어버리고 촬영 스팟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프레스 자격증을 가진 기자들은 개인용 사다리까지 들고다니며 사진 찍을 준비에 한창이다.

 

확실히 건물에 올라갈 수가 없으니 이 정도 인파를 제대로 담으려면 사다리가 필요할 듯.

물론 본인은 프레스가 아니니 그런 거 써가며 통행을 방해할 수는 없다.

DSLR 모양을 하고 있지만 LCD 라이브뷰 촬영이 가능한 모델이니 그냥 손을 위로 쭉 쳐들고 찍어보는 수 밖에.

 

 

 

이런 곳에서는 워낙 사진찍는 사람이 많으니 부담을 좀 덜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축제 속에서도 한두 사람만 클로즈 업으로 잡아내는 건 좀 부담스럽다.

사진에 사전허가가 필요하다면 매체가 가지는 속성의 태반이 무의미해 지긴 하겠지만.

 

이런 대규모 축제를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담아야 할지 조금 난감하다.

지금이야 해가 지지 않았으니 망원으로도 어지간히 버티고 있지만

밤이 되고나면 어두운 조리개값을 가진 망원으로 활발히 춤추는 사람을 잡아내는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필연적으로 광각이나 50mm 렌즈를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이라도 망원으로 좀 잡아보려 한다.

 

 

 

마츠모토 역 앞에는 본부가 마련되어 있나보다.

도로 옆 스피커에서 들뜬 듯한 여성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인파때문에 이동이 힘들어, 거의 숙박하는 호텔 앞 도로에 박혀있는데

마츠모토 역 앞이나 마츠모토 성터 앞에는 따로 이벤트장을 마련해 두고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축제는 어마어마한 인파의 홍수를 구경하는 맛이니, 딱히 이벤트장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높으신 분의 이야기가 대충 끝나고 슬슬 축제의 시작이 다가오는데, 첫 환호성을 생각만큼 열정이 묻어나오지 않는다.

축제라는 건 시간에 흐르면서 점점 달아오르는 불판 같은 녀석이니

아직 달아오르기 전의 시작 환호성은 역시 약간의 어색함과 우물거림이 뭍어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 같은 경우엔, 세상물정 모르는 참가자들이 첫 스타트때 아주 미친듯한 아드레날린 분비를 경험하지만

몇 시간만 뛰다 보면 에라이 F 같은 세상 하면서 고통에 찬 레이스를 이어갈 수 밖에 없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인 장면.

 

 

 

바글바글한 마츠모토 시내 전체에 울려퍼지는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뭔가 동작을 취한다.

익숙한 건지 연습을 한 건지 전혀 스스럼없이 동작을 이어가는데

여느 봉오도리 음악과 달리 뭔가 마징가Z 오프닝을 듣는 듯한, 묘하게 촌티나는 음악이 반복 재생된다.

 

시작한지 39년 째라고 하니 역사적 의미가 있는 축제는 아니겠고

그 당시 만든 음악을 아직까지 쓰고 있는거 아닌가 싶다.

음악 나오면 실실 쪼개는 현지 사람들이 있는걸 보면 쫌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닌 듯.

 

마츠모토 봉봉의 음악은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으니 흥미가 동하는 사람은 한번 들어보는 것도.

 

 

 

아이들은 반응이 명확해서 좋다. 어른들은 대부분이 회사나 상가연합 소속의 참가자들이라

한국보다 훨씬 고착화된 사회적 입장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발휘되다 보니

어른들의 얼굴은 미우나 고우나 웃고 즐겨야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 한데

아이들은 반쯤 그냥 따라나와서 시간이나 때우는 무료한 얼굴, 나머지 반은 상당히 재미있어 하면 손동작을 크게 휘두르고 있다.

 

참가 인원만 약 3만명, 관광객까지 모두 합하면 20만명이 넘는 대규모 축제라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꿈틀꿈틀 움찔움찔하며 슬금슬금 이동하는 모습은 뭔가 살아있는 생물체같은 느낌을 준다.

폄하의 의도는 없고, 왠지 문득 유명 SF 소설 '듄'의 샌드웜이 생각났다. 왜 그랬을까.

 

 

 

나가노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규모가 큰 축제라고 하니

외국인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사실 나 역시 외국인이고.

 

원래 예정대로라면 이 날 키소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이런 축제는 있는줄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

규모를 보니 '놓치면 아까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키소 여정을 연기한 소심쟁이가 용납되는 건 아니라 본다.

 

 

 

춤도 대낮 광장에서 혼자 발광하는 것 보다

어두운 나이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비부비 하는 것이 훨씬 마음 가볍고 흥겨운 것 처럼(본인은 경험이 없어서 그냥 그렇다고 말만 들었지만)

아직 주위가 많이 밝아서 사람들의 리미터가 해제되지 않았다는 기분이 든다. 살짝 어색한 느낌이 동작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곳 단체들 상당수는 지금도 '참가자 모집중'이라고 푯말을 들고 다니는데

이런 축제는 참가자 제한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구경하다가 재미있겠다 싶으면 그냥 뛰어들어가 인사 하고 같이 춤추면 된다.

그리고 각 팀마다 반드시 후미에 커다란 박스를 끌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반은 팀원들이 중간중간 마시는 음료수들이고, 절반은 쓰레기 담기 위한 통이다.

 

 

 

준비성이라고 할까, 시민의식이라고 할까.

동작이 그렇게 화려한 춤은 아니지만 어쨌든 4시간 동안 계속되는 축제인데다

자정이 넘어도 좀처럼 30도 이하로 내려갈 생각을 않는 8월의 살인적인 더위에

조금이라도 팀원들에게 활력을 주기 위해 아이스박스나 얼음 가득 채운 박스 등을 준비한 모습은 감격스럽다.

 

사실 축제 시작하기 전에 사회자가 가장 먼저 언급한 것도 쓰레기 나오지 않는 멋진 축제를 만들어 보자는 문구였으니.

관광객들 중에는 근처 마을에서 놀러온 사람이나 외국인 관광객도 있지만

아웃사이더 티를 내고싶어서 견딜수가 없는 중2병 양아치들이나, 여자나 좀 꼬셔보려고 두리번거리는 녀석들도 많이 있어서

인도에 가끔 보이는 쓰레기는 아마도 그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것들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점 하나는, 축제에 참가해 춤을 추는 팀원들은 절대로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지 않는다는 점.

 

 

 

팀들이 대열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형식이라서

이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어쨌든 참가 팀은 다 둘러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춤을 추는 건 꿈도 꾸지않는 소심한 본인이라도, 그렇게까지 지루한 축제를 보낼 수는 없다.

 

막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좀 어리둥절하지만, 봉봉 댄스에는 전혀 관심없이 맛있게 군것질중인 사람도 있는 걸 보면

뭘 하든 자기가 즐기기만 하면 만사 OK 라는게 축제의 본질이라는 느낌이 세삼스럽게 든다.

이미 이 사람들에게는 봉봉 댄스가 그렇게 희귀한 볼거리도 아닐테고 하니

축제를 핑계로 꼬치구이와 맥주를 즐기는 한량틱한 모습 역시 축제의 일부분이라 할 만 하다.

 

원래 봉오도리에서는 여성의 춤이 주를 이루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대열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춤을 이어나가려면 자연스럽게 이동폭이 좁게 설정되는 편.

 

특히 마츠모토를 가득 채운 이 행렬은 마치 군대 행군과 같아서

실수로 대열간 간격이 조금 흐트러지면 다음 노래에서 100m 스퍼트 하듯이 튀어나가야 하는 부분이 반드시 생기게 된다.

 

이건 노래와 춤의 특징이기도 한데, 마츠모토 봉봉에 쓰이는 안무는

2분 남짓한 노래의 특정 부분 몇 초 구간에서만 앞으로 서너 걸음 전진하도록 되어 있고

나머지는 거의 흔들흔들하면서 한두 걸음 갈까말까 하는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앞 팀과 거리가 벌어지게 되면 그 몇 초 구간에서 아주 튀어나가야 하는 재미있는 모습이 펼쳐진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은 점프로 마무리가 되는데, 2분 남짓한 짧은 노래가 약 30분간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그리 체력을 요하는 동작이 아니라고 해도 전혀 힘들지 않은 수준은 아니다.

 

특히, 30분 춤춘 후 5분에서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춤을 추는데, 이걸 4시간동안 반복하다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런지.

축제란 몸이 힘들고 목이 마르고 끝이 다가올수록 점점 그 야성적인 본능이 살아나는 것이다.

분명 뒤로 갈수록 카메라를 잡은 나의 손은 떨리겠지만, 부채를 흔드는 팀원들의 얼굴에는 주체할 수 없는 활기가 보이겠지.

 

공기좋은 곳에서 하루종일 걸어다니고 푹 자고 조식 맛있게 먹고 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여행중 호텔 조식이 맛있으면 보상 심리 덕에 좀 많이 먹게 되는데, 이게 돈은 아낄 수 있지만 여행에는 좀 불리하다.

아침부터 점심 너머까지 배가 든든하다보니 여행지에서 뭘 한번 먹어보려고 해도 배가 불러 포기하는 일이 많으니.

 

자전거 여행때는 그야말로 먹을 게 보이면 일단 입에 집어넣어야 살아남는 시절이었으니

가끔 비지니스 호텔 들어가서 조식 먹을때가 되면, 다른 사람들 시선을 피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무식하게 먹어대곤 했다.

되려 그 시절이 정말로 먹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실감할 수 있던 시절이라는게 삶의 아이러니가 아닌지.

 

오늘 루트는 좀 복잡하다. 현재 히다 타카야마와 목표지인 키소(木曽)라는 마을은 직선거리상으론 그렇게 멀지 않은데

이 두 마을을 잇는 어떤 전철이나 버스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안내소에도 물어봤지만 이곳에서 키소로 가는 방법은 사실상 약 2배의 시간을 들여 마츠모토(松本)까지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타카야마와 키소, 마츠모토는 지도상의 위치를 이어보면 삼각형의 꼭지점 같은 형태가 되는데

타카야마에서 마츠모토까지 버스를 3시간 가까이 타고 간 다음 다시 마츠모토에서 전철을 타고 2시간 가까이 가야 한다.

 

일반적인 여행이라면 이런 극도로 비효율적인 이동수단을 통해야 갈 수 있는 지역은 선택의 범위에 넣지 않았겠지만

본인의 이번 목적은 사실 이제까지의 모든 볼거리가 아닌, 키소에 가는 것 단 한가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버스 출발시간 30분 전에 호텔을 나와서 역으로 걸어간다. 여전히 하늘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예술이다.

 

 

 

버스 기다리면서도 시간이 남아 황홀한 하늘을 좀 더 담아본다. 오른쪽에 새 한마리는 우연히 들어왔는데 멋지게 날고 있다.

 

이번 목적지인 키소 마을은 예전 일본의 수도였던 쿄토와 지금의 도쿄인 에도를 잇는 내륙도로인 나카센도(中仙道)의 중앙에 위치한 곳으로

1년간의 일본 자전거 여행 중 만난 학생 한 명과 여차저차해서 인연이 만들어져, 그쪽 집에서 세 달간 머물며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는 곳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2년동안 꾸준히 한국 과자나 김 등을 연하장과 함께 보내드리곤 있었는데

이제 슬슬 직접 찾아가서 얼굴 보여주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연락도 하지 않고 그냥 일본으로 건너온 것.

서프라이즈라고 할까, 괜히 간다고 미리 연락해 놓으면 본인들 예정까지 변경해가며 나를 맞이할 것 같아서

아무 연락도 없이 그냥 이동중인데 이건 이거대로 또 미안한 기분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푸른 하늘을 만끽하며 마츠모토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지금, 왠지 생각만큼 기분이 들뜨지 않는건 어째서인지.

 

 

 

히다 타카야마가 참 험한 곳이라, 나고야같은 해안쪽 대도시와의 연계는 그럭저럭 되어 있어도

일본에서 가장 산세가 험한 나가노현 쪽으로 통하는 산속 도로는 만든지도 오래 되어서 아주 스릴이 넘친다.

 

끝도없이 올라가다가 터널 빠져나오니 강원도 깊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꼬불꼬불한 도로가 이어진다.

만들어 놓은 건 좋은데 2차선 도로 폭이 너무 좁아서, 버스 정도 크기의 차량이 커브를 틀 때는

사실상 반대선 차량들이 멈춰서야 할 정도로 순간순간이 스릴의 연속이다.

 

당연하겠지만 어느 쪽 차선이나 속도는 20~30km 를 넘지 않는다.

버스나 트럭의 이동도 무시하지 못할 이곳에서, 한국처럼 객기부리며 쌩쌩 달렸다간 대자연의 품으로 뛰어들 수 있으니까.

 

그 와중에 해발 1000m 가 넘는 이런 도로에 보행자용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 건 참 놀랍다.

저 길이 있으면 아무리 도로가 좁아도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으니, 나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모습. 애초에 이 높이까지 올 일이 없긴 하지만.

 

험한 곳인 만큼 풍경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지만 도통 셔터를 누를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중간에 유명한 온천 지역이 있어서 버스가 멈춘다. 이곳에서 내려 여관 등으로 이동하는 관광객도 많다.

험하디 험한 길임에도 아침부터 사람들오 왁자지껄한 것이 놀랍다. 주변에 경치와 온천, 멋진 여관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한데.

10분 정도의 정차시간에도 이 풍경을 남기지 않고 떠나기는 아쉬워 서둘러 달려나가 적당한 포인트에서 셔터를 눌러본다.

 

겨울엔 원래 스키장으로 나가노 전체가 들썩이곤 했는데, 동계올림픽 끝나고 점점 스키인구가 줄어들어 요즘엔 힘든 상황이라고.

 

버스로 이동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여행은, 일단 그것만으로도 점수 충분히 따는 여행이다.

유럽 기차여행이 그래서 나름 재미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버스타고 이렇게 시간 잘 가는 여행은 참 오랜만.

 

 

 

히다 타카야마에서 마츠모토로 가는 길은 오래된 구 도로가 많아 현대의 버스가 다닐만한 길이 아니다.

도로 전체 최고시속이 30km 정도에, 버스 정도의 크기라면 중앙선과 바퀴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폭이 좁은 2차선이라

터널을 통과할 때는 맞은편 차하고 스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그것도 터널이 어찌나 긴지, 10km 가까이 되는 길이에 저속으로 주행하는 버스 안에서는 왠지 위기감까지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동류의 버스나 비슷한 크기의 트럭, 레미콘 차량이 서로 마주쳐 갈 때로,

반드시 한 쪽이 완전히 정차를 하고 나머지 차량이 기어서 빠져나간다.

같은 버스기사던 트럭 운전자던 운전석끼리 스칠 때는 인사 한 번씩 하고.

 

산골이라 그런지 이런 운행방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곳인가 보다.

 

말로 하기 어려운 꼬부랑길을 통과하니 꽤나 해발이 높은 곳인데 호수가 만들어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풍경을 본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십중팔구 댐 때문에 만들어 진 인공호의 결과물.

수표면이 너무 올라와 있어서 이 부자연스러움은 단연 인공적인 어색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적응력이라고 할까, 흉하게만은 보이지 않는 묘한 특징이 있는 모습이다.

 

사실 이렇게 원래 물길이 있던 골짜기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마을이 들어서 있기에

댐을 건설하면 물 속에 잠기는 인간의 흔적이 꼭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은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마츠모토 근처에 다가오면 그 험하디 험한 산과 터널이 싹 사라지고 상당히 넓은 평야가 드러난다.

나가노 현은 거의 대부분이 산악지형이라 큰 도시가 들어서기 힘든 지역.

산맥 사이사이에 생성된 평야에 들어선 도시가 나가노 시와 마츠모토 시다.

 

인구는 현청소재지인 나가노 시가 조금 더 많지만 그래봤자 두 도시 합해도 5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마츠모토 쪽이 교통, 도시계획적인 면에 있어서 유리한 점이 많아 나가노보다 상업지구가 더 발달한 편이다.

 

두 도시 모두 각각 국보를 한 가지씩 갖고 있어서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마츠모토는 현존하는 몇 안되는 오리지날 천수각을 가진 마츠모토성, 나가노에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인 젠코지.

 

자전거 여행때 홋카이도에서 만난 소야노라는 이름의 소년은 당시 17세로, 고등학생이었다.

외국에 혼자 떨어져 나왔으니 1년 채울때까지 바락바락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본인과 달리

나가노현의 키소(木曽)마을이 고향인 소야노는 슬슬 학교 과제물과 개인적 활동 몇 가지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홋카이도를 거의 다 돌아가던 당시의 나는, 자기 두 발과 자전거로 일본 전국을 제패한다는 목적 같은것에 관심이 없었고

그냥 여행하지 않을 때의 자신보다 더 넓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 이 소년 집에 따라가서 잠깐 머물러 보는 경험도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애를 따라 버스를 10시간이나 타고 도쿄로 내려간 적이 있다.

 

자전거 여행에다 승차 직전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정말 토가 올라올 정도로 악취 풍기는 사내 두 명이

버스에 처박혀 10시간이나 이동했으니, 자전거 여행 당시 만들어진 죄책감의 8할은 거기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쿄에서 소야노 군의 할일을 마친 후에 키소의 집안에 초대되어 마음껏 휴식을 취한 후

모자란 자금 충당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으며 자주 들렀던 곳이 이곳 마츠모토.

 

키소 마을은 정말 작은 시골이라 마땅한 바이트 자리가 없기도 했고, 마츠모토와 나가노는 의외로 재일한국인이 굉장히 많이 사는 곳이라

한글간판을 내건 고기집도 있고 여러가지 눈에 보이지만 생각만큼 쉽게 바이트가 구해지진 않았다.

 

당시에 심심하면 전철 1시간 타고 도착하던 이곳 마츠모토역 앞의 풍경을 2년만에 다시 보게 되니 형언하기 어려운 기분.

 

 

 

그러고보니 자전거 여행 당시 머물렀던 때도 이만큼 더운 날이었다.

마츠모토역 전광판에 '38도' 라고 찍힌 모습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34도 정도. 그래도 덥다.

 

타카야마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고, 여기서 키소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빨리 역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왠지 멍하니 건널목 앞에 서서 예전에 자주 신세기던 맥도날드 앞에 서 있다.

이 맥도날드는 소야 군이 학교 가러 마츠모토에 갈 때 바이트 자리 찾는다고 함께 따라와서 시간 좀 보내던 곳.

 

2년 전과 크게 변한것 없는 역 앞 풍경이지만 축제를 알리는 등이 곳곳에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여기도 축제인가 싶다.

 

마츠모토 역 3층의 티켓 판매소까지 올라가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는다.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키소 마을에,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인사하러 한국서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 한 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만나러 가고 싶으면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기분.

 

이렇게 찾아가면 반가워 할 것임에 틀림없는 사람들인데도, 내 마음 속에서는 항상 '추억은 추억으로'라는 본능이 내제되어 있다.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과 동시에 추억으로 미화된 과거와 현재와의 어색한 괴리를 체험하고 싶지 않으려는 도피 본능이 심한 편.

 

 

 

소소한 이유야 얼마든지 있다.

 

괜히 미리 준비하는 부담 끼치기 싫어서 연락도 없이 이렇게 찾아오는게 되려 실례는 아닌가.

오늘 가게되면 스케쥴상 이틀간 머무르게 되는데, 갑자기 찾아가서 이틀씩이나 머무르게 되는 것도 부담으로 느껴진다.

실은 부담이 아니라는 것을 예전 3달간의 홈스테이 경험으로 잘 알고 있지만, 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내가 그만큼 폐쇄적이라는 의미일지도.

 

소야 군 집안 사정상 아예 부담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거라 생각을 해도

그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나 자신이 괜스레 자기 내면의 문제를 밖으로 전가시켜서 변명하는 이 기분도 싫다.

 

가끔 생각하길, 정말 난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사교적으로 예전 인연들을 만나러 다니는 행동조차, 블랙홀처럼 안으로부터 쪼그라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발버둥처럼 느껴진다.

어떤 곳 어떤 시간에 있어도 결국 혼자이고 싶어하는 미친 놈인가 보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생각하며 전철 시각표를 멍하니 쳐다본다. 키소 마을까지 가는 열차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온다.

 

한숨 푹 쉬면서 마츠모토 역 안을 한바퀴 둘러보다가, 뒤쪽 관광안내소에 떡하니 붙어있는 '마츠모토 봉봉'이라는 축제 문구가 들어온다.

좀 전 거리에 장식된 호롱등 행렬은 저 축제를 위한 것이었나 싶다. 광고를 의외로 크게 하는 바람에 흥미가 동해 안내소로 들어간다.

 

안내원에게 저 축제가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것도 모르나' 라는 얼굴로 설명을 해 준다. 중간에 외국서 왔다고 하니 이해를 하긴 했지만.

마츠모토 봉봉(松本ぼんぼん)이라는 축제는 올해 39주년을 맞이하는 나가노현 최대규모의 축제로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마츠모토 시내 모든 도로를 전부 보행자 천국으로 바꾸고 200여개가 넘는 기업, 단체와 그룹별 참가자들이

특유의 오리지날 음악에 맞추어 대열을 유지하며 춤 추고 행진하는 축제라고.

 

광장 중심에 모여서 원을 이루며 춤을 추는 대표적인 일본의 축제인 봉오도리(盆踊り)와 비슷한 형식의 축제지만

매년 8월 첫째 주 토요일, 1년에 단 하루만 개최하는 엄청난 규모의 춤추기 축제인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안내소 직원 아가씨는 설명을 다 듣고 내가 내쉰 한숨의 의미를 알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갈팡질팡하던 마음에 형식적으로나마 못을 박아줄 이유가 생긴다는 것은

부단함을 떨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반면

어느 방향으로든 책임전가의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진취성은 없는 변명거리일 뿐이다.

 

사실 외국인 여행자의 입장에서, 1년에 한번 이루어지는 큰 축제에 정말 우연찮게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것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결정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얼마나 큰 여행의 추억이 될 것인가.

 

하지만 지금 본인은 축제따위에 별 관심도 없이, 만나러 온 사람과 만나기 꺼려하는 괴상망칙한 심리상태에서

조금이나마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려고 발버둥 치는 방편의 하나로밖에 그 일반론을 이용해먹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마츠모토는 나에게 있어서 항상 도피처였다.

 

소야노 집안은 진실성과 순수성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가족임에도

나같은 대인기피증 인간이 때로는 견디기 힘든 삶의 흔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가끔 답답해지면 별 시덥잖은 이유를 대며 전철로 한 시간이 넘는 이곳 마츠모토까지 와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정말 2년 전과 변하지 않은 건 이곳 마츠모토의 풍경이 아니라 나의 내면이라는 사실에 괜히 씁쓸해 진다.

 

일본에서 가장 물이 깨끗한 곳이라고 소문한 마츠모토라 마을 곳곳에 예전 우물터가 아직도 사용중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키소도 마찬가지라서, 그쪽에서는 생수를 사 먹는다는 개념이 아직 없다.

싱크대의 물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먹기만 해도 뭐 이렇게 맛있는 물이 있나 싶을 정도였으니.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여기 와도 방사능 걱정때문에 이런 우물물 떠 먹는데 주저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런데 신경쓰지 않는 본인은 오랜만에 마츠모토의 물을 한모금 떠 마셔본다.

이곳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가 2년 전의 그 여행과 연결되어 있어, 잠들어 있던 세포가 깨어나 나를 즐겁게도 괴롭게도 만들고 있다.

 

 

 

역 옆의 슈퍼 호텔에 들어가니 지배인 아주머니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방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표정 지어주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인데, 아주머니는 지도를 한장 주며 이 근처의 각종 비지니스 호텔들을 표시해 주신다.

 

사실 마츠모토엔 여러 번 와 봤기 때문에 시내 어디에 어떤 호텔이 있는지는 거의 다 알고 있지만

성의가 고마워서 감사 인사를 한 후 소중하게 지도를 들고 나온다.

 

그러고보니 오늘 축제라 쉽게 숙소를 구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역에서 도보로 10분쯤 걸리는 토요코인 호텔엔 빈자리가 있었다.

나쁜 위치는 아닌데, 카운터 아가씨가 참으로 무표정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에 걸리는 것일까.

좀 전의 슈퍼호텔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른 차가운 태도라 별로 즐겁지 않은 기분으로 방에 들어가 짐을 푼다.

 

2시간 정도 쉴 시간이 있는데, 머리가 여러가지 생각으로 어지러워서 쉬기가 어렵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도시락을 사 와서 먹어둔다. 늦은 점심이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일부러 먹어두는 것은 축제가 열리는 시간 동안엔 정말 뭐 사먹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도피든 뭐든 어쨌든 내일 키소로 가는 것을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니

빨리 마음속의 죄책감을 지워버리고 축제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4시 30분쯤 밖으로 나와보니 사람들은 이미 도로를 점거중이다.

도시 전체가 보행자천국이 된다는 설명은 크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는데

막상 어마어마한 인파를 직접 보고나니 이 축제의 규모가 비로소 실감나 머리에 피가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을 외곽에 위치한 사찰 역시 형태는 조금 달라도 갓쇼즈쿠리 양식을 갖추고 있다.

왠지 바삭하고 폭신하게 느껴지는 지붕 모양인데, 느낌과는 별개로 역시 크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건물의 형태가 여느 일본식 마을과는 달라서 묘하게 크기에 대한 감각이 다르게 느껴진다.

 

참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인지 여기서도 세전함에 동전 넣는 사람들이 많은데

형이상학적 존재한테 돈으로 뭘 좀 빌어보겠다는 행동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5엔짜리 하나 던지면서 여행 안전하게 끝나도록 해 달라고 빌어본 적은 있어도

사실 그건 저 위의 어떤 분한테 빌었다기 보다는, 관광 체험과 비슷한 감정으로 해 본 놀이의 일종이었을 뿐이고.

 

 

 

겨울 풍경이 훨씬 유명한 시라카와고임에도, 시원하게 쭉쭉 자라나는 벼들을 배경으로 하는 모습 역시 마음에 들지 않을리가 없다.

혹시 겨울에 먼저 이곳을 찾아와서 '겨울이 진국이라니 여름엔 안가도 되겠지' 라고 생각해 버렸다면

오히려 훨씬 더 손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케이크 위의 딸기는 마지막에 먹는 성격인데, 이런 경우엔 그게 이득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

 

나고야의 더위는 좀 더 매마르고 강렬한 느낌이었는데 이곳의 더위는 뭐라고 할까, 같은 온도임에도 '이 정도는 있을수 있을 법한' 그런 날씨라는 기분이 든다.

사람이 느끼는 날씨라는게 단순히 온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지상의 여러 대상들이 무엇인가에 따라서도 바뀐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

 

 

 

그림같은 풍경임에 틀림없는데, 그림같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순수함이란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는 사람마다 틀리니, 어느 쪽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말 그대로 너무 그림같은 풍경이라서 농촌 생활의 흔적이 퇴색된다고 할까.

시라카와고는 갓쇼즈쿠리 촌락 중 가장 유명하고 교통 시설이 그나마 잘 갖춰져 있어서

관광객도 많이 오고, 그들을 맞이할 여유수준도 가장 높다.

너무나 정비가 잘 되어있다 보니 마치 공원 산책하듯 느껴지기도 하고

그 점에 있어서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강인하게 역사를 이어온 마을의 거친 손길이 많이 바랜 느낌인 것도 사실이다.

 

좀 더 깊숙한 곳에 위치한 스가누마(菅沼)등의 마을은 이곳보다 규모도 작고 관광객을 위한 시설도 부족하지만

고립된 만큼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경치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촌락의 진짜 숨결을 더 느끼고 싶어하는 매니아들에게는

시라카와고보다 더 인기있는 곳이기도 하다. 본인도 흥미가 동하긴 하지만 이곳과 비교해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서.

 

 

 

좀 사는 주택은 담 속의 마당에 고운 잔디를 깔고 산다는 소문을 듣기는 하는데

이곳은 잔디가 필요없는 듯 하다. 집 앞에 깔린 논밭이 훌륭한 잔디 역할을 해 주고 있으니.

 

겨울엔 이런 곳에 물 좀 채워놓으면 자동으로 스케이트장이 만들어 지니까 놀기 편할것 같은데

이곳은 눈이 워낙 많이와서 스케이트장이 깨끗하게 유지되기가 힘들거라는 예상을 해 본다.

한국도 그러리라 생각하는데, 척박한 산골 소년소녀들은 일년내내 밖에서 뛰어노는게 일이라

이런 산간지방 출신 사람들은 체력이 평범하게 괴물같은 경우가 많았다.

 

잠깐 산책나가는게 500m쯤 되는, 길도 안나있는 야산에 훌쩍 올라가는 것이고

겨울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나무숲 사이를 급조 썰매에 타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려가기도 하더라.

나무에 정면으로 박으면 정말 영화의 엑스트라들처럼 되어버릴 것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만 노는데

도시 아이들의 건강함과 산골 아이들의 건강함은 그 기준부터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받는다.

 

 

 

일본은 마당 역시 정원처럼 하나의 작품으로 두고 축소화된 자연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예술로서의 마당은 역시나 돈과 권력이 충분한 계층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였고

특히나 이런 외진 산골마을은 실용과 효율로 똘똘 뭉친 생활만이 생존의 열쇠였기 때문에

그런 정원은 거리가 먼 곳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도 자투리 공간을 이용한 삶의 질 향상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풍부하기 그지없는 물을 이용해, 옆집에 놀러갈 정도의 작은 공간에 나름 멋들어진 정원이라 할 만한 모습을 갖춰 놓았다.

더울 때 뒷문 열어놓고 이곳을 감상하는 것도 산골 생활의 여유라고 할까.

 

중앙의 두꺼비 녀석은 마치 자기가 신선인 것 처럼 구름 위에 앉아있다.

 

 

 

가난하다보니 여행중엔 적당히 돈 좀 아끼는 성격이라서

숙소에서 교통비만 4만원이 넘게 들어가며 관광하러 가는 경우는 참 드물다.

 

자칫하면 괜히 큰돈 들여 이런 거 보러왔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기 때문인데

다행이랄까, 이곳 시라카와고만은 출발 전에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은 곳이다.

실제로 와 보지만 않았을 뿐 워낙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기회가 많았고

사진속에 담긴 마을의 모습은, 작가의 능력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아름다울 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

 

웅장한 스케일이 아니라서 부담없이 즐겨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 곳인데

막상 마을 입구로 다시 돌아오니, 뭔가 놓친 풍경은 없나 한번쯤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담은 마을 사진은,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와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그 모습이 된다.

갓쇼즈쿠리 가옥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지만,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 갖춰야 할 요소가 이 풍경 속에는 모자라지 않게 담겨있기 때문일까.

 

 

 

다리 위는 어쨌든 시야가 확 트이기 때문에 사진 찍기 좋다.

장소가 같아도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진이 찍힐리는 없다.

하지만 두명이 스쳐가기에도 좁은 다리 위에서 언제까지나 사진을 담는건 좀 부담스럽다.

그나마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다들 사진찍는데 정신이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정도는 이해해 주는 듯 하다.

 

마을 내부의 풍족해보이는 수량에 비하면 뭔가 좀 부족한 기분이 들긴 해도

이건 홍수방지를 위해 일부러 도랑 폭을 넓게 잡은것에서 비롯되는 착시현상이라 이해하기로 한다.

 

 

 

강가에서 낚시하는 분이 있길래 이럴 때를 위한 망원렌즈다 싶어서 도촬을 시도한다.

복합매체의 힘이란 이런 것인지, 이런 광경만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난다.

 

유속이 상당히 빨라서 어떤 고기가 잡힐려나 궁금한데

내가 저기까지 성큼성큼 내려가서 친근하게 말 걸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저기 멀리 시로야마 천수각 전망대의 모습이 보인다.

천수각 쪽에서 본다면, 마을 쪽까지는 시야에 잘 담겨도 이곳 다리 위까지는 시선이 잘 머물지 않는다.

 

망원렌즈로 찍어보고 확대해 보니 좀 전보다 사람이 훨씬 많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시라카와고에 왔다 하면 최우선 목표가 저기서 전망 감상하는 일인 듯 하다.

 

 

 

마을을 벗어나니 버스 도착시간까지 40분쯤 남아있다.

한번 놓치면 1시간 30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하고, 그나마도 오후 5시 전에 모든 버스가 다 끊겨버리는 곳이라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좀 일찍 나왔는데 그래도 볼것 많고 산책할 곳 많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오늘 식사를 호텔 조식외엔 아무것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좀 전 민가원에서 메밀 아이스 하나 빼고.

시라카와고의 풍경이 찍사로서의 본인에게 포만감을 준 것인지 여지껏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가기 전에 시간도 좀 남았고, 수분 보충하는 겸 음료수 사면서 뭐라도 하나 먹어봐야겠다고 생각.

 

가게 안에 앉아서 제대로 식사하기는 시간이 좀 애매해서 간단한 요기거기를 찾아본다.

이곳 시라카와고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듣한 히다규(牛)를 이용한 먹거리가 많다.

이곳도 물론 히다 지역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원래 소를 많이 기르는 곳은 아닌데.

 

원래 수량 풍부한 산골 마을에서 먹는 간식으로 유명한 건 '이와나'라고 하는 곤들매기 구이다.

내장 제거하고 꼬치에 끼워서 숯불에 구운 후 굵은소금 쳐서 뜯어먹는게 진짜 맛인데

일단 이와나 꼬치구이는 시간과 손길이 굉장히 많이 가는 간식이라 아무래도 손님 많은 이곳에서는 팔기 힘들것도 같다.

 

히다규가 들어간 고로케라도 먹어볼까 싶어 사진에 보이는 가게로 다가갔는데, 왠걸 품절이라고 한다.

관광온 사람들이 간식도 많이 사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세삼스럽게 하게 된다.

본인은 관광지에서 실컷 돌아다니고 난 뒤에, 돈 한푼이라도 보태주자는 의미로 겨우 한가지 정도 먹을까 말까인데.

그러고보니 본인같은 관광객은 돈이 안되니 별로 좋아하지 않을듯 해서 좀 소심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옆집 가게에는 아직 코로케가 남아있는지 사람들이 들고가는게 보인다.

그게 수량을 넉넉하게 준비해서 남아있는건지, 옆집보다 인기가 없어서 남아있는건지 알 수가 없으니.

 

지금은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보다, 왕복 버스비만 소비하고 가 버리기엔 이 마을에 좀 미안한 듯 해서 먹는 것.

그렇다고 배고 안고픈데 제대로 된 정식을 먹어치우는 것도 아깝다.

 

 

 

의외로 하나 남은 고로케집은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들에게 대인기라서

하나 먹으려면 3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냉동된 완성품을 가져와서 튀겨내는건줄 알았는데

재료를 전부 직접 반죽해서 만들어내는 수제품이라고 한다. 이런 북적이는 관광지에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심히 놀랍다.

 

물론 그런 경우엔 재료가 떨어지면 눈에 보이는 손님을 포기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등의 손해가 있지만

그 손해가 아까워서 저급의 냉동재료를 잔뜩 들여와 팔아재낀다면

관광객들의 실망이 키워내는 실망감은 우물에 풀어버린 독처럼 천천히 뿌리까지 파고들어 갈 것이다.

 

물론 시라카와고가 남아있는 한에는 욕하면서도 먹을건 먹는게 관광객이란 부류겠지만

만약 그런 식으로 영업을 한다면 지금 나처럼 이곳에 대한 좋은 감정을 글로 쓸 수 있을까?

한국의 상당수 관광지를 다녀와서 입도 뻥긋하기 싫은 이유가 그런 것이니까.

 

관광지는 손님들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프라이드를 가져야 한다.

인생은 허무한 것이니, 자기 살아있을 동안 돈이나 좀 빨아먹고 끝내자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이런 마을이 관광지로 남아있지도 않을 것이다.

 

 

 

햇살에 피부가 따끔거리긴 해도 느긋하게 앉아 일기 좀 쓴 다음 막 튀겨낸 불같은 고로케를 손에 쥔다.

크림 고로케도 좋고 해산물 고로케도 좋고 고기 고로케도 좋아하는 박애주의자라서

딱히 그 유명한 히다규를 사용했다고 해도 그닥 특출나게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러번 말하지만 그 드높은 위상을 가진 히다규는 제대로 된 고기집에서 비싼 녀석을 먹어야 체험할 수 있지

한개 2천원짜리 고로케에서 일본 최상급 소고기의 맛을 판단하는건 좀 무서운 일이다.

 

그래도 히다규 고로케를 선택하는 것은, 사실 고로케가 이거밖에 없어서.

그리고 아무리 가난한 여행자라 핸들 그 지방에서만 '제목이나마' 한정으로 붙어있는 녀석에 손을 대고싶지 않겠는가.

미각이 둔감하다고 생각하진 않아도 대강 아무거나 맛있게 먹는 성격이라서

히다규 같은 고급육이 아니라도 고기는 맛있게 먹는다. 질이 떨어지는건 뱉어버려도 적당히만 맛있으면.

 

그러니 히다규를 썼던 안썼던, 재료를 직접 섞어서 바로 튀겨낸 이 고로케가 맛이 없을리는 없다.

 

 

 

좀 전에 뭔가 우두두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이커들이 떼마실을 나온 듯 하다.

다행히도 구경간 듯 주인들이 보이지 않아서 슬쩍 한장 담아본다.

 

바이크에 대해 아는게 없어도 이 녀석들 한대값이 왠만한 중형차 정도 한다는 것 쯤은 알 법 하다.

나름 험한 길이라고 해도 원래 바이크가 커브를 즐기는게 재미있다고 하니, 이 사람들에게 이곳 투어는 스릴 만끽하는데도 좋은 곳일 듯.

본인은 이 정도로 큰 바이크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넓직한 사이드백을 떡하니 달아도 전혀 미관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자태는, 자전거 여행경험을 가진 자로서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두시간쯤 버스를 타고 산길을 꼬불꼬불 통과해서 히다 타카야마로 돌아오니 시간은 늦은 6시를 넘어간다.

어제 그 마을 제가 오늘도 이어진다고 하는데,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오늘 여행은 이걸로 끝이라는 기분이 마음속에 드는 이상

무리하게 어딜 더 둘러본다던가 하는 일은 꺼진 불씨에 허무하게 바람을 불어넣는 일인 뿐이다.

 

어째 그 맑고 깨끗했던 타카야마가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네오 LA처럼 느껴지고

나고야에서 버스 한번 타고 온것만으로도 녹초가 되어 쓰러지듯 잠들었던 어제에 비해

아침부터 하루종일 걸어다니기만 했음에도 아직 정신은 말짱하다. 취향에 맞는 곳을 다녀온 덕일지 피톤치드의 효능일런지.

 

야행성인 한국민족에게는 아직 초저녁과 같은 시간이지만, 오늘은 시라카와고만으로 충분한 느낌이다.

가볍게 먹거리 좀 사고, 내일 버스 시간표 안내서를 뒤적이며 TV를 본다.

문득 사진 좀 잘 찍혔나 싶어서 카메라의 재생버튼을 눌러보기도 한다. 낮에는 시안성이 낮아서 그냥 윤곽과 컬러채널만 확인해서

어떻게 찍혔는지 유심히 보지 못했는데, 어두운 숙소 안에서 보니 아주 광채가 번쩍번쩍 하는게, PC로 옮겨서 보면 실망할 듯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나고야에서 구입한 책도 좀 읽고 TV도 보고 일기도 쓰고 하면서 하루의 마무리까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보낸다.

강렬하고 역동적인 흥분을 가져다 주는 곳은 아니지만, 시라카와고에서의 하루는 내가 열받을 요소가 하나도 없어서

여행중에도 온갖 사념이 머리속을 휘젓는 본인치고는 꽤나 안락한 밤을 보낼 수 있을듯 하다.

 

 

딱히 관광지역과 민간지역이 구분되는 곳은 아니지만 외곽으로 걸어갈수록 평범한 일본 민가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얼마 후엔 이런 곳에서 묵게 되겠지만 아직 실감나지는 않는다. 이 사진을 담으며 괜스레 조금 마음이 답답해진다.

 

특이하다는 점만 빼면 이곳 시라카와고에 서 있는 건물들은 다들 정겹고 아담하다. 주위 환경의 덕을 톡톡히 보는 듯.

 

 

 

정비를 하긴 했겠지만, 이곳에서 상수도 하수도의 개념이 있는건가 약간 궁금하긴 하다.

가끔 이곳에 손을 찰싹찰싹 담궈보는 관광객도 보인다.

 

물의 외견만으로 충분히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긴 해도

이런 개울 근처에 피어있는 식물들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물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냄새나는 물에는 뭔가 진득진득한 식물들이, 사흘째 야근하며 담배 피워댄 샐러리맨의 눈가에 드리워진 다크서클처럼 우중충한 색깔로 포진하고 있다.

어쩌면 그 식물들은 몸소 환경정화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사람의 좁은 아량으로는 그걸 보기좋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다른 갓쇼즈쿠리 가옥과는 뭔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싶었더나, 까페로 사용중인 녀석인 듯 하다.

담벼락을 대신하듯 여유있게 늘어서 있는 화분도 나름 자기주장을 하고 있지만

레이스의 끝자락같은 덩쿨 목걸이가 과하지 않게 까페 뒤쪽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역시 분위기로 먹고 사는 까페라 그런지 남다른 센스를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는게 느껴진다.

 

 

 

글쎄, 확실히 매력적인 디자인에 사람 발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유감없이 어필하고 있는데

돌아가는 버스가 2시간도 남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저기 들어가는건 괜히 아쉬움만 더할 듯한 기분이 든다.

 

좋은 까페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커피 여러잔과 함께 책 반권 정도는 읽을 정도의 시간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본인의 철학으로는

지금처럼 멋진 간판을 뽐내고 있는 시라카와고의 까페를 즐기기에 가장 부족한 것이 시간이라는 녀석이다.

여행중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시간에 쫓기는 일은 없도록 하고 있어서, 들어가면 쫓길 것이 분명한 까페는 살짝 기피 대상.

 

하지만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아쉬운 기분이 드는것도 아니다. 여행은 갈망하는 것이며 미련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겨울엔 좀 더 일찍 와서 따뜻한 커피로 손을 녹여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건 또 뭐하는 녀석들인지 모르겠다. 시라카와고가 이렇게 깨끗하다는 데몬스트레이션의 일종인가.

잘들 크고 있으니 확실히 깨끗하긴 하겠는데, 관광객들에게 어필하는 의미 이외의 뭔가가 더 있는 것일까.

 

혹시 이렇게 잘 키우고 있다가 식당에서 관광객 상차림에 올라오거나 하는 것인지.

이 수로 양쪽 끝에는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서 녀석들이 도망갈 수는 없다. 장식용이 아니라면 뭔가 이유는 있을듯 하다.

다음에 까페 들어가면 이런 거나 한번 물어볼까 싶다.

 

  

 

같은 곳을 여러번 찍지는 않는 성격인데, 저 까페에 역시 조금이나마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일까.

괜스레 자리를 떠나기 전 한번 더 둘러보게 된다. 커피가 그리운게 아니라 정말 참 잘 꾸며놨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언뜻 대문 바로앞에 논자락이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 가옥처럼 보여도, 확실히 까페라는 공간의 자기주장력이 스믈스믈 세어나오는 느낌.

 

2층 창가쪽이 꽤나 인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갓쇼즈쿠리 가옥은 이곳만의 전매특허니 침해하고픈 생각까지는 들지 않지만

밖에서 봤을때 기분좋은 까페 분위기는 다른 형태로라도 구성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멋진 까페 탐방같은 잡지에 한번쯤은 실려도 좋은 곳 아닐까.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걷다보니 가끔 관광객들이 가는 길과는 전혀 관계없는 곳으로 빠지기도 한다.

설렁설렁 걷다 보니 어느새 좁던 길은 그냥 끊겨버리고, 그 앞에는 어떤 민가의 앞마당과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다.

아직까지는 길 위에 있다고 하지만, 왠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빠져나온다.

 

빠져나오기 전에 건너편 가옥의 뒷마당 모습을 한장 담아본다.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지는 않은 이곳 사람들의 좁은 공간.

뒷마당이든 앞마당이든 이렇게 집 주위에 일정 공간이 있으면 그것만으로 사람은 여유를 느낄 수 있는듯 하다.

 

뒷마당에 나오자 마자 잘 여물어가는 벼이삭 풍경이 펼쳐지는 농촌생활이라면 꽤나 즐거울 것 같은데.

 

 

 

개인적인 영역이라면 앞마당 가꾸기, 주변 길가 청소하기 정도.

마을 공동체라는 영역에서는 가로수 정비, 도로 청소, 하천가 청소 등등

자본의 핏줄이 땅 속까지 흐르는 도시가 아닌 이상, 시골 마을은 알아서 부지런해져야 하는 일이 많다.

아직도 회람판 돌려가며 팀과 구역을 정해 종종 청소, 수리, 유지 등의 업무를 협동하는 시골 마을은 많이 있다.

 

아마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법한 일들도 없잖아 있다.

자연 속에서 산다는 건 디지털 TV 화면에서 물흐르듯 굴러가는 귀족적인 게으름과 전혀 다르다.

풍성하고 맑은 공기를 주는 대신 그만큼의 땀을 흘려야 굴러가는게 진짜 자연이라는 녀석.

 

이곳의 청결도나 정비 수준을 보면, 자연이 그들에게 배풀어주는 것 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이 정도로 유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남에게 맡기면서까지 바빠야만 굴러가는 도시라는 생태계에 비하면 좀 더 인간적이라 이렇게 정감이 가는 것이겠지.

 

 

 

좀 전에 얼핏 보였던 '시라카와고에서 가장 큰' 갓쇼즈쿠리 가옥인 와다 씨의 저택이 보인다.

앞서 말했든 입장료가 300엔이나 해서 굳이 들어가고픈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저기서 바라보는 풍경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공짜로 볼 수 있는 전망대 풍경도 원없이 안구신경속에 집어넣어놨으니까.

 

저기서 경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들어와 볼 만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다면

나 역시 저 사람들이 창가에 선 모습을 이렇게 담으며 '밖에서 보는 걸로도 괜찮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갓쇼즈쿠리 가옥이 얼마나 큰지 알아서 대비되어 주니 고마운 느낌도 든다. 창문이란게 그냥 창문이 아니다.

보통 거주용으로는 1층만 사용하고, 위층들은 창고로 사용하거나 방직 등 가내수공업에 사용되었고 하는데

그걸 감안해도 정말 보통 큰 건물이 아니다. 300여년 전에 한 가문의 가족 전체가 모여살던, 작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큰 건물이라는 느낌.

 

 

 

서두르지도 않았고 아쉬움에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지도 않은 산책은

점점 얼핏 시야에 들어왔던 듯한 풍경들이 다시 한번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하며 그 끝을 느끼게 한다.

 

충분히 이곳저곳 둘러보았고, 정감이 가는 풍경에는 5분이고 10분이고 멈춰서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등

관광을 즐긴다는 의미에서 부족함이 없는 시간을 보내왔지만, 아쉽다거나 부족하다거나 하는 생각이 아닌 이 감정은

아마도 '2013년 8월의 시라카와고' 라는 시간의 단면만을 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공백이 아닌가 한다.

 

수백 년간 이곳에 순응해 오고 저항해 온 마을 사람들이 남긴 실체적 흔적들은 관광객의 시선을 멈추게 하지만

그 이어짐과 별개로, 태양과 달의 움직임에 따른, 1년이라는 주기의 흔적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서 되풀이 중이다.

이번 방문에서는 그 이어짐을 경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돌아가는 발걸음을 살짝 무겁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 단면의 인식이 나의 여행에 대한 머릿속 정의에, 어느 의미에서 부합되지 않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 끌고 1년동안 일본을 돌아다니거나 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 틈나는대로 이 단편만이라도 즐기려 애를 쓰는 일반인이 되어 있다.

 

시라카와고는 자연의 권능이 남아있는 곳임에 틀림없고, 그 곳의 흐름을 끊김없이 느끼려면

지금의 나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다못해 다른 시간대의 단편이라도 더 느껴보려고 겨울 방문을 또 한번 생각해 본다.

 

물론 서두를 건 없어서 그게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몇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마음속에 메모를 해 두면 어쨌든 겨울의 시라카와고를 잊고 흘려보내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시라카와고의 풍경은 바닷바람의 강인함을 품고 있는 자연이 사람의 마을을 살짝 아플 정도로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라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건조 시기에 비해 거대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갓쇼즈쿠리 가옥과 함께

마을을 둘러싼 거대한 삼나무와 깎아지르는 산맥, 끊임없이 자라나는 생명력에 번갈아 눈을 빼앗기곤 한다.

 

사진을 담을때도 무의식적으로 조리개를 최대한 조이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 중 한 장면을 프레임 크기로 잘라내어

그 장면안에 들어간 모든 모습, 의식, 의지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기분으로 충만해 있었다고 생각한다.

풍경만큼이나 욕심을 내었다고 할까, 이곳은 이곳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나의 감성이 초라해 질 정도의 큰 그릇을 가진 곳이니까.

 

하지만 논 가장자리에 살짝 피어있는 수국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단렌즈의 조리개를 최대로 개방하여 한 장을 담는다.

담아내고 싶은 것과 담아내야 할 것, 그리고 그 만큼의 공간을 똑같이 비워내는 것이 사진이라는 사실을

이곳 시라카와고에 압도되어 한참 황홀해 하던 마지막 찰나에 다시 한번 되새겨 낸다.

  

 

이런 더운날 올라가기에는 심히 편안하다고 할 수가 없는 길이다.

멀리서 본 전망대 높이를 생각하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은근히 이 오솔길 경사가 급한 편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가빠온다.

몸무게 탓도 있고 카메라 탓도 있고. 건장한 사람이라 해도 5kg 짜리 숄더백 매고 오르는게 쉽지는 않을 듯.

 

 

 

그래도 친절하게 계단을 만들어 줘서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지만

왠지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기분에, 후세에 내가 여기 올랐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고 한다.

이렇게 찍어놓지 않으면 또 엄살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출몰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사실 날씨 탓이 가장 컸고, 여기는 그냥 동네 마실 나가는 수준밖에 안 되는 높이긴 하다.

 

 

 

근데 진짜로 좀 힘들긴 하다. 경사가 그리 만만한 편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치는 형태라서

이렇게 사진 한장 담아내는게 오히려 휴식시간이라 느껴진다.

 

훅훅거리는 숨소리와 후두둑 떨어지는 땀방울이 산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다.

다행히도 앞뒤로 나 말고 이곳을 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좁은 길목에서 사진 찍으며 좀 쉬어도 문제될 게 없었다.

노련하게 올라가는 사람들이 뒤에서 땀덩어리 본인을 지나쳐 갈 때, 가끔 계곡 너머로 몸을 던지고픈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저 곳을 돌면 확 트인 정상이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몇 번이고 배신당해가며 어쨌든 한걸음씩 발을 뗀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서도 느꼈지만, 어쨌든 발을 떼면 언젠가는 끝나는 일.

 

 

 

막상 정말로 평지가 나오고 나니 좀 맥이 풀린다. 사실 땀 좀 흘렸다 뿐이지 조그만 언덕 같은 곳일 뿐.

원래 성터였다고 하는데, 이런 외진 마을 어귀에도 성이 있었나 싶다. 이곳 성터에 대해서는 그리 알아본 적이 없었다.

 

산 위의 공터치고는 확실히 인위적으로 닦아놓은 흔적이 남아있는걸 보면 성이 있긴 있었나보다.

손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시원하게 땀 한바가지 흘리고, 그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앞에 펼쳐진 전망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시라카와고의 마을 전경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는 2~3군데쯤 유명한 스팟이 있는데

이곳은 오솔길을 따라 왔을 때 만날 수 있는, 제대로 된 펜스조차 없는 등산길 도중의 조그만 창문같은 느낌의 스팟이다.

 

가장 유명한 곳도 아니고, 여름의 생명력 덕분에 나무들이 워낙 울창하게 자라서 시야각이 제한되는 불편한 곳이지만

일부러 험한 길 올라왔다는 달성감도 있고 해서 한동안 머무르며 마을의 모습을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다.

 

가치가 있는 곳이니 그렇겠지만, 왠만한 농촌 역시 한국의 농촌보다 훨씬 정비가 잘 되어있는 이곳에서도

정말 예술적으로 가꾸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절경이다. 사실상 평범한 농촌이 아니긴 하지만.

 

 

 

좀 전에 화사한 커플 둘이서 열심히 사진찍던 그 건물을 이렇게 바라보니 느낌이 좀 새롭다.

논마지기 공간을 살짝 비집고 들어간 녀석인데 어쩌면 저렇게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거기다 같은 높이에서 걸어다닐때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돌길로 만들어놓은 농로의 깔끔함 역시 인상적이다.

겉으로는 농촌 마을같아 보이지만, 속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돈 많은 귀족들이 산책 즐기는 곳처럼 어느 한군데 세심히 손을 쓰지 않은곳이 없다.

 

 

 

한 국가와 그곳의 자연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 틀림없다.

일본 가옥의 평기와와 저 곧게 뻗은 삼나무가 어울린다면

한옥의 굽이친 기와 형태는 허리를 늘어뜨린 소나무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도시에서는 이미 어디가 한국이고 어디가 일본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해져 버렸지만

이런 시골모습만큼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나라별 특색이 사라지지 않는 듯 하다.

 

좋긴 좋은데, 이곳 아이들도 어릴때 나무위에 올라가 놀고 그러는 것일까.

내가 어릴적엔 올라가기 쉬운 소나무를 참 수백번도 더 오르내리고 했는데

여기 삼나무 잘못 올라갔다가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조그맣지만 꽤나 오래된 듯한 사당이 위치한 이곳 전망대에는

사람도 별로 오지 않고, 그늘 아래에 벤치가 하나 있어서 땀 식히기엔 좋다.

카메라를 내던지듯이 아무렇게나 퍼질려 놓고 벤치에 앉아서 땀을 닦는다. 손수건을 짤면 땀이 떨어질 정도로 허용량이 오버되고 있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앉아만 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서양인 관광객 부부가 이곳에 와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그사람들 눈에도 이런 풍경은 꽤나 신선하게 느껴질까. 한국과 일본에 비교하면 미국이나 유럽이나 산이 많은편은 아니라서

이 정도 산지에 둘러싸인 마을이 그리 흔하진 않을 법 하다.

 

그 부부는 실컷 사진찍고 난 후, 왠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나에게 와서 사진 좀 찍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한다.

찍어주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본인이 사용하지 않는 캐논 DSLR 이라서 조작이 항상 어색하다.

본인들이 오토모드로 해 두고 나한테 건네줬으니 그걸 바꿀필요는 없을 듯. 그냥 구도만 맞춰서 두어 장 찍어줬다.

받아들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고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이걸 또 붙잡고 '난 위대한 한국인이여~'라고 설명해주기도 귀찮다.

 

내가 그들을 미국사람인지 영국사람인지 프랑스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과 같이

그들도 내가 일본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니, 그걸 그들에게 수정해 줘야 할 의무감 같은거 느끼지 않는다.

 

 

 

이곳부터는 제대로 닦여있는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되는데, 가장 유명한 천수각 전망대에는 거대 식당과 가게가 포진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마을 아래서도 보이는 곳이고, 전망 해치지 않으려고 작업을 다 해놓은 곳이기 때문에 시야가 매우 시원하다.

 

마을 안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가게를 만들수도 없기 때문에, 이곳 전망대 가게는 압도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단체 관광이라면 이 곳을 놓칠수 없으니, 식당쪽에는 벌써 '2층은 예약, 단체손님 전용입니다'라고 써 놓을 정도.

 

전망대에는 쉴 수 있는 의자도 몇 겹이나 층층히 배치되어 있고, 펜스 바로 앞에서는 아무것도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그림같은 시라카와고의 사진을 마음껏 담을 수 있다. 앞에서 대신 사진 찍어주는 사람도 항시 대기중이며

물론 관광객 자신들이 가져온 똑딱이가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DSLR로 사람들 찍어주고 출력하며 돈 받는 일도 한다.

 

사진 찍어주면서 '치즈~' 대신에 '시라카와 고~' 하면서 주먹을 하늘로 올리라는 주문만큼은 좀 촌스럽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수가 없었긴 했지만.

 

 

 

임팩트라고 할까. 어쨌든 마을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곳 천수각 전망대에서 사진을 담지 않는 관광객이란게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 역시 귀찮아 죽을것 같은 렌즈를 화각별로 담아온 이유의 절반이 이곳 전망대를 위해서였으니까.

광각으로도 담고 망원으로도 담고, 관광객이 많이 오긴 해도 전망대 공간이 상당히 넓고

단체 관광객은 잠깐 구경하고 단체사진 찍고 훌쩍 가버리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도는 홀로여행자는, 무제한 회전초밥집에 앉아있는 기분으로 원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참 뭐랄까, 이런 폭발적인 자연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인공미의 깔끔함을 유지하는 이쪽 사람들의 특성은 신기하다.

깨끗하고 깔끔한 건 좋은데, 한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람 사는 냄새'라는게 좀 적다고 해야 하나.

사실 그거 조금만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고 지저분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어서 쉽게 적용하기는 어려워도

확실히 한국에 이런 자연의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면, 지금 이 모습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를거라 생각한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수십장도 넘게 담았지만, 블로그에 올릴 생각은 들지 않는다.

2D 화면에서 사진 구경하는 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더 많이 올린다고 이곳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마을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면 역시 직접 가서 느끼는게 제일 좋은 방법.

본인은 이 모습을 보면서 겨울의 시라카와고를 상상하고 있다. 눈으로 덮인 전망대까지 걸어서 갈 수 있을까 싶고.

사실 적지 않은 관광객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마을에서 여기까지 태워주는 버스 있대!'

물론 본인 역시 알고 있었지만, 이 마을을 돌아보는데 내연기관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아서 걸어 올라왔다.

 

겨울엔 방금 그 길 오르다가 인생이 좀 꼬일수도 있을 것 같아서, 버스를 이용해야 하나 고민중이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긴 했는데,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지금도 배가 눈꼽만큼도 고프지 않다.

여행중에는 그리 많이 먹는편이 아니긴 해도, 이만큼 더운날 돌아다니고 있어도 허기지지 않는다는건 좀 신기하다.

그래서 전망좋은 전망대 앞의 식당에도 들어가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고, 시원한 음료수나 하나 뽑아 마신다.

 

타카야마로 돌아가는 버스가 오기까지 2시간 30분쯤 남았는데, 시간은 충분해도 뭔가 가게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결론은 대충 납득이 간다.

시라카와고에서는, 더운 여름날 에어콘 켜진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추운 겨울날 살짝 따뜻한 가게로 들어가는게 더 어울리기 때문에.

 

여름이 본인에게는 참 버티기 힘든 날이라는게, 건물 안의 인공적 에어콘 바람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울엔 난로나 보일러 강하게 돌리지 않아도 집이라는 건물 자체가 어느정도 단열효과를 내기 때문에

들어가 앉아도 살짝 추워서 손바닥을 한두 번 비벼주는 정도가 딱 좋다. 거기서 식사 한끼 하면 몸이 포근해 지니까.

그런 면에서, 겨울이라도 난로나 히터 팍팍 틀어버리는 가게는 들어가기 싫다.

 

느긋하게 풍경 바라보며 휴식 취하고 나서 반대쪽 길로 내려간다. 반대쪽은 자동차로 통과할 수 있을만큼 반듯하게 닦인 아스팔트 도로.

마을 어귀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난이도는 훨씬 낮다. 올라올 때 이쪽으로 왔으면 몸은 편했을 듯.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길은 아니라서, 내려올 때 느긋하게 내려오는 쪽으로 사용해도 불만은 없다.

 

진짜로 물이 풍부한 곳인지, 내려가는 도중에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 놓은게 보인다.

 

 

 

마을 어귀를 빙글 돌며 내려오는 길이라서, 마을 속에서 헤엄치며 담던 사진의 시각과는 또 다른 맛의 결과물이 나온다.

슬슬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는 시점이라 그런지, 이런 길에서 숨듯이 걸어가며 저 너머의 모습을 담는 것은, 일종의 휴식과도 같은 시간.

 

 

 

이제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다시 한번 마을의 모습을 눈으로 담아내면

그리 넓지 않은 시라카와고 여행은 끝이 난다. 그림같은 풍경과는 별개로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하고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관광객들의 씀씀이를 기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식욕이 안생기는데 어쩔 수 없다.

 

 

 

도시에서는 설사 농사터가 있다고 해도 땅이 아까워 이렇게 꽃밭을 만들기는 힘들 텐데.

판매용으로 키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뒤뜰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만 자연스럽게 자라는, 약간 무질서한 꽃들의 모습이 더욱 반갑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꽃밭을 키우는 갓쇼즈쿠리 가옥 역시 살짝 힘이 풀린듯한 모습이 더욱 잘 어울린다.

 

 

 

좋은 마을은 물이 맑은 마을이라는 말은 세계 어느곳에서도 통하는 진리.

좋은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과 나쁜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은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난다.

애초에 나쁜 물을 마셔도 자라는 녀석들은, 그만큼 터프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녀석들이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람 입장에서는 역시 진드기나 벌레 잔뜩 꼬이는 녀석들보다는 좀 순해보이는 녀석들이 더 마음에 드는것도 사실.

 

이곳은 자연 환경에 비하면 기분나빠질 만한 벌레가 별로 눈에 안 띄는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공원처럼 인위적으로 디자인해서 만들어낸 아름다움과는 전혀 별개로

자연의 생명력뿐 아니라 사람의 생명력까지 느껴지는 이곳 풍경은, 조화라는 면에서 굉장히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여행에서 가장 큰 볼거리라면 역시 자연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곳 시라카와고는 그 두가지가 배합되는데 있어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훌륭하다.

관광객들이 오고가며 감탄해 하는, 마을 사람들이 남겨놓은 인간의 모든 흔적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더 예쁘게 보이거나 하는 인위적인 색이 아닌, 순수하게 생활하기 위한 노력과 조화의 흔적이라는 점이 말이다.

 

사람들이 풍경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아름다움이란, 결국 원래 그렇게 있던 것들이 가지는 자연스러움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