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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3.08.12  과거로의 여행 - 나고야 도착 10

 

 

보통 본인에게 있어서 자동차 하면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데

이 녀석만큼은 내 감성을 자극하는 감성적 소재로서 자리잡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컷이 나오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듯.

 

 

 

이 모델의 아이덴티티나 마찬가지인 비현실적인 테일핀. 전투기의 뒷부분을 참고로 해서 만들었다고.

자동차라는 기계의 실용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찌보면 솟아있는 테일핀 만큼 허무한 꿈과 같은 장식이지만

19세기 중반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정체성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을까.

 

 

 

엘비스 프레슬리가 즐겨 탔다는 이 녀석은, 그야말로 당시 미국 문화의 상징이었고

시대가 바뀌고 난 후엔, 그땐 그랬지라는 조금은 자조섞인 향수에도 더없이 어울리는 녀석.

 

사실 이녀석과 기종은 조금 다르지만,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도 끔찍할 정도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소재로 나오기도 했다.

자동차 한대가 이렇게 문화적 아이덴티티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녀석은 아마 전세계를 통틀어서도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이름을 말할 것까지 있을까 싶은데, 일단 이녀석은 캐딜락의 엘도라도.

그중에서 테일핀이 가장 높았던 1959년형 비아리츠 모델이다. 엘도라도는 다양한 버전과 다양한 색깔이 나왔었지만

아마 엘도라도 하면 이 핑크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거라 생각해 본다.

 

 

 

영화에서 한두 번쯤은 접할 기회가 있을 모델인데

워낙 길쭉한 자체를 하고 있어서, 조금이지만 'Blur' Song 2 앨범 자켓을 흉내내서 사진을 담아본다.

좀 더 비슷하게 흉내내려면 16mm 정도의 광각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찍어야 하는데, 여기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고.

 

 

 

앨범 자켓은 워낙 유명하지만, 혹시 궁금한 사람들은 한번 검색해 보시길.

타카키 마사오의 즐거운 한때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포스터가 이 앨범의 자켓과 매우 닮아있기도 하다.

 

 

 

50년이 넘은 아직도 미국에서는 이 핑크색 엘도라도가 변치않는 로망의 일종으로 인식되어있다.

 

아마 이 박물관에 없진 않겠지 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깨끗한 보존상태의, 그것도 엘도라도 비아리츠 모델이, 그것도 핑크로 내 눈앞에 나타나자

토요타가 뭘 좀 알긴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거진 15분 동안 엘도라도 주위를 빙글빙글 거리다가 어쨌든 다시 전진한다.

여전히 시리즈가 이어져 내려오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300SL 쿠페 모델.

원래 레이싱용으로 개발된 녀석을 상용화해서, 지금도 스포츠카의 대표주자로 활약중이다.

 

독일인의 특성일런지, 1955년 발매된 이 녀석에게서도 여전히 2013년형 모델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오리지날의 느낌을 해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발전을 거듭해 나가는, 각 대륙을 대표하는 공돌이 집단 독일과 일본의 닮은꼴이랄까.

 

 

 

이곳에서 시대 흐름에 따라 자동차를 구경하고 있으면

조금씩이나마 그 당시의 유행하는 디자인이라던가, 추구하고자 하던 방향을 살짝 느낄 수 있는데

가끔 그 흐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묘한 녀석들이 중간중간 전시되어 있어 분위기 전환에 일조하고 있다.

 

 

 

 

터커라는 미국 회사가 만들어 낸 '48 모델. 물론 1948년 제작된 녀석이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운전자 안전 대책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고

미려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모델인데

 

개발비가 너무 많이 들었고, 법적인 트러블에 휘말리다가 결국 단 51대만 생산된 체로 회사가 도산하고 말았다.

이루어지지 못한 아메리카 드림의 단면을 보여주는 비운의 모델. 그런데 그 중 한대가 여기 놓여있다니.

 

 

 

특이한 외모로 치자면 이녀석도 빠지지 않는다.

얼핏 봐도 어디에 쓰이는 자동차인지 살짝 감이 오지 않는가.

 

이제껏 본 빈티지 자동차 중 가장 육중한 몸매를 자랑한다.

 

 

 

깃발 꽂혀있는 것도 그렇고,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알아서 중후함을 표현해 준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전용차 팩커드 트웰브 라는 모델. 의전용이다 보니 가격따위 생각않고 때려부었다는 느낌이 곳곳에 묻어난다.

 

 

 

성능이야 말할것도 없이 당대 최고였고, 장갑차를 방불캐하는 자체 강성과 방탄유리는 왠만한 자동소총의 총격에도 꿈쩍하지 않을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은 이런 자동차에 타고 있어도 꽤나 빈번히 일어났었다.

 

 

 

롤스 로이스의 펜텀 3 모델.

 

1937년에 제작된 녀석으로 항공기 개발의 노하우를 살린 직렬 12기통 엔진의 성능이 대단했다고 한다.

롤스 로이스는 정숙성을 자랑하기 위해 자사의 플래그쉽에 고스트나 팬텀 등의 유령 이름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이녀석도 부티가 줄줄 흐르긴 하지만, 예전 포스팅에 나왔던 실버 고스트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그냥 그렇다.

 

 

 

이것 또한 참 어느 별에서 출장온 녀석인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별난 디자인이다.

2013형 자동차라고 한들 어느 누가 촌스럽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인지.

 

물론 1934년 발매 당시에도 '미래의 자동차'라는 별명으로 격찬을 받았다고 한다.

 

 

 

쓰여진대로 코드라는 회사에서 출시한 프론트 드라이브 812 모델.

코드라는 회사는 원래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던 초기 미국 자동차 메이커인 어번사가

당시 세일즈의 귀재라고 불리던 E.L 코드를 영입하면서 새롭게 출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색다른 차는 팔린다'는 모토아래 제작된 코드의 자동차들은 그 혁신성과 미래적인 디자인 덕분에 단숨에 맹위를 떨쳤고

수년 후 독일의 천재 엔지니어 듀센버그 형제가 창립한 회사를 인수하며 최고급 자동차 계열에도 손을 뻗었다. 그 듀센버그 자동차도 좀 있다 나온다.

 

프론트 엔진, 강렬한 라디에이터 그릴, 수납형 헤드램프 등등 정말 미래에서 온 차가 아닐까 싶은 녀석이었는데

불행히도 불경기에 진입하기 시작한 미국 서비층의 경제적 여력에 비해 너무나도 비쌌기 때문에

810, 812 단 두개의 모델만을 출시한 채 코드 자동차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시대의 조류란 너무 앞서나가도 곤란한 듯. 그런 사례는 아마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500K 모델. 블랙과 레드를 강렬하게 조합했다는 의미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었다는 뜻으로 들린다.

1935년 제작되었지만, 당시 레이싱 자동차들마저 부러워할 최고시속 160km 의 고성능과

최고급 내외장재로 떡칠을 해서 상류층을 대표하는 장난감으로 시대를 풍미한 모델.

 

 

 

이곳 박물관에서는 위에 덮개를 씌워놔서 좀 더 고풍스럽게 보이지만

사실 덮개를 내린 상태의 모습은 굉장히 날렵하고 젊은 느낌이다. 당시에도 여성층이 많이 선호했다는 듯.

 

빈티지이긴 하지만 워낙 유명한 모델이라서 아직도 세계 자동차 전시회에서 종종 등장한다.

 

 

 

비록 배색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녀석은 한 눈에 봐도 귀족적인 향기가 물씬 풍긴다.

좀 전에 언급했던 코드 사가 인수했던 메이커, 듀센버그의 모델 J.

 

독일에서 이민온 듀센버그 형제는 뛰어난 제작기술로 여러 레이싱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는데

20대의 젊은 공돌이 형제는 기술개발엔 천재적이었지만 경영쪽에는 문외한이라서,

자금난에 시달리다 당시 승승장구하던 코드 자동차의 산하에 들어가게 된다.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은 코드 덕분에 듀센버그 형제는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쳐, 자동차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1929년 출시된 모델 J 는, 6800CC 265마력, 186km 최고속력을 자랑하는 꿈의 럭셔리 자동차였다.

 

당시엔 현재까지 이름을 날리고 있는 최고급 브랜드들보다 더욱 인기가 있었던 모델로

헐리우스 스타들의 두 가지 꿈이 오스카 상과 듀센버그 J 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렸던 시대였다.

 

당시 2만달러라는, 폭력적일정도의 고가 자동차였지만 발매 후 몇년간은 없어서 못팔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경제 대공황 속에서 이 정도 자동차를 위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듀센버그 모델은 총합 1000대를 넘기지 못하고 그 운명을 다하고 말았다.

 

듀센버그 형제는 여러번 재기를 노렸으나 빈번히 실패하고, 제국이라 불리던 코드 자동차도 몰락해버려서

결국 듀센버그는 1930년대 세계 최고의 자동차라는 타이틀을 추억으로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현재 360대 정도가 남아있는데, 미국 미시간 주에 위치한 어번 코드 듀센버그 박물관이 여전히 매니아들을 맞이하고 있다고.

 

 

 

사진으로는 잘 전해지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곳 박물관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몇가지 자동차 중 하나다.

애초에 워낙 환상으로 남은 모델이라, 이 녀석만 대접이 좀 다르다. 옆에 계단이 설치되어 위에서도 구경할 수 있다.

 

 

 

드디어 길고 긴 외국 빈티지 자동차 전시관이 끝을 맞이한다.

하지만 아직 3층에 토요타 빈티지 자동차 전시관이 같은 규모로 위치해 있고

신관쪽엔 가보지도 않았으니, 오늘 하루 아주 원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있겠구나 싶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지겨워 질 만큼 체력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매번 눈을 놀라게 만드는 자동차들이 즐비해 있어서

무거운 숄더백이 그렇게까지 발목을 잡고 있지 않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발걸음을 좀 더 가볍게 할 필요는 있을 듯 하다.

 

외국 빈티지 중에서 마지막으로 파인더에 담은 이 녀석은 벨기에의 미네르바라는 메이커에서 1925년 제작한 30CV 타입 AC.

앞서 소개한 듀센버그 모델이 출시되기 전까지 전세계 왕족들과 대부호들이 즐겨 사용한 당대 최고의 럭셔리 모델이다.

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사회적 지위와 연결되는 것을 의미했다고. 요즘의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인상적인 것은 역시 섬세한 조각의 여신상 마스코트와 미려한 곡선으로 빛나는 라디에이터부.

저 당시에 저런 디자인을 만들려면 대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오른쪽 눈의 촛점이 잘 맞지 않을 정도로 셔터를 눌러대고

2층 빈티지들을 점령했다는 묘한 만족감에 한숨을 쉬며 굳었던 어깨를 풀어본다.

3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이들을 위한 조그만 체험 전시관이 있어서 숨도 돌릴 겸 들어가 보기로 한다.

 

 

박물관 내부는 U 자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 곡선구간에는 자동차 전시 대신 각종 연표와 악세사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토요타 박물관이니 토요타 자동차의 연표가 간단히 나와있는데

출발은 서양보다 늦었지만 무서운 추격으로 현재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회사로 성장한 걸 보면

저 연표가 아직은 조금 더 길어질 여지가 남아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자동차에는 어지간히도 관심이 없어서, 자기가 사고 싶은 자동차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도 없다.

차 살때가 되어서 들뜨고 고민스러운 마음으로 열심히 스펙과 가격을 비교하는 젊은이들에게

토요타는 어느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것일지.

 

 

 

별의 별걸 다 전시해 놓는다. 옛날 자동차들의 스피드 메터기를 떼어다가 전시중이다.

요즘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해 저런 모습으로 튜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걸 보면

자동차가 첨단 기술의 집약체이긴 해도 여전히 인간미를 갈구하게 되는 존재인 걸까.

 

 

 

유명 메이커들의 엠블렘을 전시중이다. 이건 주머니에 넣고 가져가기도 쉬운 녀석들이라

한 장의 유리가 관람객 사이에 놓여있다. 덕분에 본인 카메라도 오랜만에 자태를 뽐낼 수 있었다. 사실 한장 위의 사진에도 나와있다.

 

빈티지 엠블렘이다보니 다들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이런 녀석들만은 도난 방지를 위해 칸막이를 설치할 수 밖에 없었던 듯.

자동차 매니아를 제외한다면, 이 녀석들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초기 엠블렘들이라

동양인들에게는 좀 멀리 떨어진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2층 전시관의 나머지 한 쪽이다. 날 찍어달라는 듯한 녀석들이 끝도없이 포진해 있다.

차는 많고 구도 잡을 공간은 협소해서 24mm 광각렌즈를 주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왜곡을 즐기다가 조금 싫증날 때도 있고 하니, 가끔씩 50mm 렌즈로 촬영도 한다.

 

50mm 렌즈는 40년 전쯤 생산된 늙은 녀석이라 보이는 대로 결과물을 담아주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카메라를 통해서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니 나쁘지 않다.

 

 

 

아직 3층에 이만큼의 자동차가 더 전시되어 있고, 이곳 말고 신관건물이 또 하나 더 있는데

이러다가 사진 찍다 내가 먼저 지쳐버리는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정말로 자주 오기 힘든 곳이니 덧없는 사명감에 불타서 오늘 베터리 한번 확 죽여보자 하며 이리저리 서성인다.

 

 

 

'프랑스의 포드가 되고싶다'는 모토로 제작된 시트로엥의 1924년작 5CV 타입 C3 모델이다.

여러 부분에서 간소화에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디자인성을 깎아먹지 않은 듯한 느낌.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차를 참 마음에 들어한다. 특히 저 노란색.

요즘 자동차들은 노란색 칠하면 뭔가 촌티나는데, 이런 녀석들은 노란색이 정말 잘 어울린다.

 

 

 

꽤나 기품넘치는 이 녀석은 쉐보레 컨페더레이터 시리즈 BA 모델이다.

이름때문에 착각하는 사람이 매우 많겠지만 쉐보레는 미국 회사. 1910년부터 GM 소유였다.

공동 창립자인 루이 쉐보레는 장사 다 망하고 인생 말아먹었다는데, 아직 그 이름을 딴 회사는 남아있으니 아이러니.

 

 

 

여러가지로 원가 절감을 한 나름 대중을 위한 자동차였는데

디자인 여기저기서 캐딜락의 이미지를 가져왔기 때문에 '베이비 캐딜락'이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이 모델이 발매된 1932년엔 캐딜락 역시 GM에 인수되어 있었기에, 이런 자회사 카피품도 가능했던 것.

 

 

 

베이비 캐딜락의 바로 옆에 전시된 포드의 1934년작 모델 40.

포드와 GM 은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100년이 넘은 앙숙이자 라이벌이니

박물관에서 일부러 이렇게 두 모델을 붙여놓은 듯 하다. 쉐보레 모델에 대항해 8기통 엔진을 장착한 녀석.

 

재미있는건, 캐딜락은 원래 1902년 포드에서 갈라져 나온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브랜드였다는 사실.

이걸 1909년 GM이 인수해 버려서, 포드로서는 참 기구한 인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자동차계에서도 막장드라마는 일어난다.

 

 

 

1934년 발매된 쉐보레 마스터 시리즈 DA 모델.

쉐보레 모델중 고급기종으로, 현대형 자동차의 원형이 되는 요소들을 몇군데 가지고 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여기서 살짝 눈치챘을 수도 있겠는데, 사실 이 녀석이 지난 번 포스팅에서 나왔던 토요타 최초의 승용차 AA형의 아버지격인 존재다.

 

다시 지난 포스팅으로 돌아가서 보게 된다면 꽤나 닮아있다는걸 느낄 수도 있을 듯.

물론 토요타로서는 최초로 제작한 자동차이다 보니, 한창 물오른 쉐보레의 기술력과 비교하기는 어려웠고

실상 성능은 이쪽이 훨씬 좋았다고.

 

 

 

달콤한 색깔에 엽기적인 앞모습의 이 녀석은, 미적 기준은 둘째치고 임팩트가 강하다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듯.

1934년 미국의 '데 소토'라는 메이커에서 출시한 에어플로우 시리즈 SE 모델이다. 물론 지금엔 들어볼 수 없는 브랜드.

 

거의 모든 면에서 당시 대중들의 허용인식수준을 뛰어넘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비운의 모델이라고 한다.

결국 그닥 인기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이 모델이 가진 특징들은 다른 거대 메이커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고.

역사라는 곳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듯 하다.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몇 사람의 천재가 흘리고 간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형국이니까.

 

 

 

1938년 독일에서 생산된 폭스바겐 38 프로토 타입.

재질이나 디자인에서 서민용 자동차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아마 개발자의 의도가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히틀러가 고안했던 국민차였으니까. 이 모델은 오리지날이 아니라 레플리카다.

 

 

 

스페인의 이스파노-스이자 브랜드가 개발한 알퐁소 13세라는 모델.

1912년 제작되었고, 세계 최초의 스포츠카로 알려져 있다. 모델명은 국왕 알퐁소 13세에게 왕비가 선물로 줬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듯.

 

 

 

자동차가 전부 1:1 크기라는걸 생각해 보면, 이 박물관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처럼 거대한 DSLR 들고 다니는 사람 외엔 다들 휴대폰 카메라로 잘만 찍으며 나를 앞서간다.

 

덜 쪽팔리게도 나보다 더한 모델과 어마어마한 대구경 렌즈를 사이좋게 나눠 들고다니는 노부부 일행도 있어서

그닥 시선 신경쓰지 않고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그 노부부는 캐논의 1D 시리즈와 백통을 들고 있었는데

70은 넘어보이는 분들이 무슨 직종에 종사하는건지, 단순한 취미로 그러는 것인지... 자동차의 역사만큼이나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다.

 

 

 

친구 강군이 좋아하는 정열의 붉은색으로 떡칠되어 있는 멋진 모델, 대인기 브랜드 알파 로메오의 6C 1750 그란 스포르토.

여기까지 오니 문외한인 본인도 조금씩 경험치가 쌓이는 듯, 이 녀석 역시 레이싱용으로 개발된 스포츠카라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다.

 

서양은 1930년에 이런 녀석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 1936년에 첫 발을 내딛은 토요타 역시 처음엔 좌절의 연속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거보다 더욱 열악했던 한국도 지금 세계 시장을 상대로 자동차들을 뽑아내고 있으니, 후발 주자의 노력은 아름다운 것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내가 횬다이 따위를 좋아할 일은 없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이것 또한 참 마초적인 디자인으로 내 눈길을 끈다.  레이싱용으로 개발되었음에 틀림없지만 이런 디자인 마음에 든다.

생긴건 좀 투박해 보여도 이 녀석이 세계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양대산맥 벤틀리의 4 1/2 모델이다.

 

 

 

현재 롤스 로이스와 함께 최고급 브랜드를 양분하고 있는 벤틀리는, 롤스 로이스의 귀족주의 경영철학과 달리

최고의 성능을 내는 자동차를 우선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스포츠성이 중시되는 브랜드라고 한다.

 

롤스 로이스가 최소 300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만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과 달리

벤틀리의 최고 모델은 현존 차량중 가장 마력이 높은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지만 지향점은 좀 다르다.

 

 

 

고급차니 뭐니의 문제가 아니고, 이 모델의 디자인에서는 정말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수가 없다.

앞모습을 지긋히 바라보고 있으니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어느 꼬마자동차가 생각난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메이커 오스틴 힐리의 스프라이트라는 모델.

 

 

 

미려한 디자인과 달리 미니멀한 구성에 '오토바이 창고에도 처박아 놓을 수 있는 자동차'라는 모토를 달고 태어난

저가형 스포츠카였지만, 사실 성능면에서는 타 모델에 뒤쳐지지 않는 준수한 모습도 보여주었다고 한다.

 

배기량 950cc 에 43마력 정도의 아담한 녀석이지만, 지금도 이 녀석이 저가형으로 나온다면

사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몇 안되는 자동차로서 기억에 남을 수 있을텐데.

 

여담으로, 영국에서는 이 녀석을 '개구리 눈' 이라고 불렀고, 일본에서는 '게 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 박물관을 구경온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빼앗을 수 밖에 없는 최고의 볼거리 몇 가지중 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 법한 디자인에 한참을 넋놓고 바라보게 된다.

 

 

 

영화 소품으로 쓰인 녀석을 가지고 온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 녀석은 엄연한 시판 승용차.

1939년 프랑스의 '들라주'라는 메이커에서 출시된 타입 D8-120 이라는 녀석이다.

 

들라주는 1905년 루이 들라주가 시작한 회사로, 처음엔 자체 프레임을 만들어 파는 곳이었지만

자체 엔진도 제작하게 되고, 레이스에서 잇달아 우승하게 되자 점차 고급형 자동차 제작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전시된 모델은 D8-120 중에서도 당시 프랑스 최고의 자체 제작사인 피고니&팔라쉬 사에서 제작한 모델로

이 정도쯤 되면 이미 이건 자동차라기 보단, 엔진을 단 예술품이라 부르는게 더 어울릴 듯 하다.

 

 

 

영롱한 코발트블루가 자체를 감싸고, 유선형의 극치를 달리는 디자인은 시동걸기조차 아까워지게 만드는데

사실 자동차 본연의 용도 역시 외형에 걸맞는 수준이었다. 4750cc 배기량에 115마력의 엔진은 당대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이 녀석은 왠지 한참을 빙글빙글 돌아보며 감상하며 셔터를 눌러도 지겨워지지 않았는데

그게 바로 메이커의 명성이나 쌓아올린 지식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디자인의 매력만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에도 이런 자동차가 실존하길 바라는 것은, 이미 현대 디자인에 익숙해 진 반동으로 인한 산물인 걸까.

 

100년 전의 사람들에게 현대의 럭셔리 자동차와 이 녀석을 나란히 세워놓고 어느 쪽이 더 멋지냐고 물어본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돌아올 것인가. 확인할 수 없는 영원한 궁금증 중 하나다.

 

 

어제밤에 한국인 등산객 조난사고 이야기를 들었다. 나하고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운명의 기구함이지만

완전히 타인의 사고만으로 들어넘길수도 없는 것이, 그 사람들이 사망한 산은 나하고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설마 그 산을 그런 차림으로 가이드도 없이 올라갈 생각을 하다니, 등산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한국인다운 방심이었을까.

여행기를 쓸 때마다 한번씩은 언급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가까운만큼 비슷하게 보이는 곳이 많은 반면

생태계의 이루어짐에 있어서만큼은 확연히 차이나는 부분이 반드시 존재한다.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섬의 산이라는 게, 단지 제주도밖에 경험하지 못한 한국인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았던 것인가.

동네 앞산에 마실나가면서도 히말라야 원정정도는 가능한 고기능성 등산장비를 갖춘 사람들과

해발 3천미터의 무인지역에 산책복 차림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겪은 운명의 교차점은, 매장에서 쉽게 구입가능한 고가품의 가치보다 더 무거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 소식 때문은 아니지만 전날 잠을 좀 설쳤다. 새벽 4시쯤 잠들었는데, 어차피 토요타 박물관 개장시간이 10시라서 별 문제는 없다.

호텔의 반듯하게 끼워진 이불때문인지, 항상 마지막엔 이불을 풀어헤쳐서 죽부인처럼 돌돌 말아야 잠이 오는듯.

 

9시에 조식먹으러 가서 비치된 PC로 토요타 박물관을 검색해보니 왠걸, 예전에 알아본 것과 달리 지하철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곳에 있다고 한다.

입장료나 시설안내도 내가 알고있던 것과는 달라서 의아해 하며 다시 한번 여러가지로 검색해보니

나고야 시내에 위치한 녀석은 토요타 기술 박물관이라고, 토요타의 전신인 방직기계부터 시작해서 자동차 산업까지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내가 예정했던 곳은 그게 아니라 전세계 빈티지 자동차들을 모아놓은 외곽지역의 토요타 자동차 박물관.

 

입장료도 두 배나 비싸지만 그만큼 사진찍을만한 소재가 많은 곳이라, 시간과 교통비를 들여서 그곳으로 출발.

물론 호텔에서 나고야 역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나고야에서 이 셔틀버스로 인해 얻은 이익만 2만원 가량은 된다.

 

 

 

나고야역에서 후지가오카(藤ヶ丘)역까지 이동해서 그곳에서 리니모(リニモ)라는 전철을 타고 간다.

후지가오카까지 꽤나 먼 거리지만 280엔 정도의 요금이 나왔고, 리니모를 타고는 4정거장만 가면 되기 때문에 안심했는데

묘하게 최신식이라는 느낌을 풍기는 이 리니모가, 4정거장 가는데 무려 280엔이라는 요금이 나와버려서 놀라고 만다.

 

이상하다 싶어서 조사해 보니 이녀석은 일본에서 유일한 자기부상열차였던 것.

2005년 나고야가 속한 아이치(愛知)현 엑스포 당시 공개된 녀석으로, 그 후 실제로 운용중이다.

레일 위를 떠서 흘러가는 방식이다보니, 처음엔 뭐 이렇게 부드럽게 움직이나 싶었다.

 

완전 무인 전철이라 앞이나 뒤에서 사진 찍기도 쉽다.

이쪽 지역을 통과하는 전철이 이것 하나밖에 없어서,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이용객은 꽤 되는 편이다.

주거지역과 중, 고, 대학교가 꽤나 많아서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듯. 학생 할인받지 않는 나같은 일반인에게는 아쉬울 정도로 비싼 전철이다.

 

돌아가는 금액까지 합하면 오늘의 교통비는 약 1만원 정도. 좀처럼 체험하기 힘든 자기부상열차니 아깝지 않게 음미해야겠다는 의무감에 젖는다.

 

 

 

토요타 박물관이 위치한 예대거리역. 이 근처에 예술대학이 있으니까 지어진 이름인데

사실 토요타라는 세계 정상의 자동차회사가 위치한 곳이라, 기술이나 예술쪽에 특화된 대학이 굉장히 많다.

8km 정도의 짧은 이동구간을 가지는 리니모 선 근처의 대학교만 해도 10개가 넘으니까.

 

특이하게도 각각의 역마다 저렇게 특이한 심볼이 만들어져 있다. 아마 예술대 학생들의 도움으로 만들어 진 것일 듯.

가격은 참 비싸지만 리니모의 특이한 승차감과 놀랄 정도로 깔끔한 역사의 분위기, 정성이 들어간 심볼 등

간단한 관광 코스로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멋진 녀석이라서 별로 아깝지 않다.

 

자전거 여행에 익숙해지면 대중교통에 돈 쓰는데 굉장히 인색해지는데

짧은 리니모 여행은, 단순히 장소 이동으로서의 역할 이상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이라서 만족한다.

사실 리니모 선이 지나가는 역마다 역마다 볼거리나 공원이 꽤나 있으니 하루정도 일정을 잡아서 돌아보는것도 좋다.

 

워낙 더워서 지금은 토요타 박물관까지 걸어가는 것조차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만.

 

 

 

자동차회사는 당연하게도 세간의 상식보다 훨씬 더 녹음 풍부한 장소를 가꾸려고 노력한다.

자기네들이 만드는 제품이 얼마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게 장사에 얼마나 도움이 안되는지 잘 아니까.

 

토요타가 자연보호를 내세우며 홍보중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역시, 석유를 적게 쓰고 매연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실상은 전기모터 베터리를 제작하는데 사용되는 희토류 금속이 전량 중국의 해구에서나 추출되는 녀석이고

매장량과 관계없이, 그 희토류를 채취해 베터리로 제작하는데 어마어마한 오염물질이 발생한다는 것은 별로 내세우지 않는다.

 

석유자동차와 그런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환경오염도에 대해서는 아직 어느쪽이 더 친환경적인지 알려진바가 없다.

물론 그건 자동차 회사들이 정확한 정보를 만드는 것 자체를 꺼리기 때문에, 어느쪽이든 서로에게 이득될 게 없는 진실이니까.

 

 

 

그건 그렇다치고, 주위를 한바퀴 빙 돌아서 입구에 도착한다.

이런 한여름만 아니라면 산책로로서도 멋진 곳인데, 지금은 빨리 시원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11시 조금 전에 도착했는데, 평일이라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승리의 미소가 떠오른다.

자동차 박물관이 그렇듯이 사람 많은곳에서는 사진찍으며 느긋하게 감상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입장료가 1천엔이나 하지만 아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넘길거라 생각하며 안으로 입장한다.

 

  

 

 

실제 전시장은 2층부터 시작인데, 입구로 다가가니 제복을 입은 안내원이 '설명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하고 정중하게 물어온다.

다행히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흔쾌히 승락한다. 이 박물관엔 세계 각국 언어로 해설 라디오가 제공되기 때문에

돈만 지불하면 언어에 문제없이 즐길 수 있지만, 이 자동차 앞에서만은 안내원이 직접 설명해 준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녀석이라서 그런 듯.

 

이 녀석은 AA형 승용차라는 이름을 가진, 토요타 최초의 승용차. 아쉽게도 오리지날이 아닌 레플리카다.

초대 토요타 회장도 애용했다는 이 승용차를 기점으로 토요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앞부분에 달린 엠블렘엔 한자로 토요타(豊田)가 각인되어 있다.

 

 

 

레플리카지만 구현도는 오리지날의 완벽한 카피품이라고 부를만 하다.

손때하나 묻지 않은 미려한 곡선 자체는, 박물관에서 맨 처음 보게되는 이 녀석의 위압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외국에서는 둘째치고, 일본인이라면 올드카의 로망으로 누구나 꿈꿔보는 녀석이지만 오리지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에도 사회 최상위 계급만이 접할 수 있었던 모델이라, 최신 자동차와 비교해서 딸리는건 기계적인 성능 뿐일 듯.

아주 부티가 줄줄 흐르는게, 자동차가 인류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어필하는 느낌이 든다.

 

 

 

자동차에는 관심이 없는 본인이지만 이 디자인의 승용차가 80년전에 나와서 거리를 활보했다는 사실을 상상해보면

내가 이렇게 사진을 담으며 느끼는 감각의 수백배 정도의 경외감이 당시 사람들에게 떠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현재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회사인 만큼 일본 내에서의 지위도 압도적인데

덕분에 원래 코로모(拳母) 라는 이름의, 토요타가 시작되었던 마을은 이미 토요타 시로 이름을 바꾸었다.

글쎄, 토요타라는 회사 역시 자부심을 가지는 일본인이 있는가 하면, 사원 쥐어짜는 악덕 경영으로 치를 떠는 사람도 있으니

도시의 이름까지 바꾸어버린 역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도시 이름을 현대시, 삼성시 엘지시(?) 등으로 바꿔버린다면 얼굴 찡그릴 사람이 많을 듯 하다.

 

2010년 자전거 여행때도 큰 사건이 벌어졌었는데

토요타 비정규직 사원 한사람이 처우에 불만을 갖고 자동차로 토요타 공장 내부를 질주하며

그대로 사람들을 몇명이나 치여 죽인 엽기적인 복수극이 일어나 세간이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

 

 

 

2층에 올라가 본격적인 순회를 시작하기 전에 눈에 들어오는 모델.

일단 바퀴와 동력으로 굴러가니 자동차라고 할 수 있긴 하지만, 자전거인지 자동차인지 아리송한 옛날 모델.

인류의 역사를 바꾼 자동차라는 녀석은 이런 것에서부터 서서히 태동했다.

 

 

 

토요타 박물관이지만 2층은 전부 외국 자동차들의 역사를 간직한 모델들로 전시되어있다.

초대 회장 자신이 굉장한 자동차 오덕이기도 했고, 아무리 토요타의 역사가 일본 자동차의 역사라고는 해도

세계적 흐름으로 따지자면 이 녀석들에 대한 설명이 없이는 박물관으로서의 면모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니까.

 

 

 

1901년에 제작된 프랑스의 파나르 르바소르 B2 모델.

프론트 엔진 방식이 장착된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한다. 사실상 자동차 시대를 연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게도 자동차 초기 역사란, 사람들의 이동수단보다 레이싱 경기용으로 그 명성을 떨쳤는데

이 프론트 엔진 방식의 성능이 월등히 뛰어나 다른 회사들도 전부 FE 로 구조를 바꾸게 되었고

그로인해 우리가 알고있는 자동차의 모습이 점점 정립되어 갔다고 한다.

 

 

 

1902년 제작된 미국의 올드모빌 커브드 대쉬.

세계 최초의 대량생산차라고 한다. 앞부분이 휘어서 커브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물론 대량생산이래봤자 귀족계급이나 타고 다니는 녀석이었지만.

 

토요타라는 회사가 세삼스럽게 일본인스러운 회사라는게, 이런 빈티지 자동차들의 관리상태에서 느껴진다.

100년이 넘은 모델이지만 이 정도의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이미 집념의 경지에 가깝다.

횬다이가 아무리 자동차 잘 팔아재껴도 눈길하나 가지 않는것은 이런 박물관 하나 한국에 짓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 아닐까.

 

 

 

미국의 스탠리 스티머 모델 E2. 1909년 제작된 녀석이다.

설명을 보니 이 회사는 1890년대부터 증기자동차로 명성이 높았던 곳인데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솔린 엔진의 시대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도태되었다고 한다.

 

이런 설명이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로 모두 적혀있기 때문에 간단한 투어는 그냥 맨귀로도 충분하다.

라디오 설명을 들으면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본인은 자동차 자체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이런 피사체들을 마음껏 감상하며 셔터 누르는 재미로 충만해 있기 때문에 설명은 이 정도로도 차고 넘친다.

 

 

 

자동차 덕후라고 하더라도 이런 올드모델에는 관심이 없는 부류도 있을테니까.

어쨌든 한국에서는 구경하기가 불가능한 빈티지 모델들이 거대한 빌딩에 꽉꽉 차 있으니까

보고 즐기는 관광이라는 쪽에서 본다면, 충분히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곳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사실 카메라가 없었으면 다 돌아보는데 1시간쯤 걸렸을려나 싶기도 하다.

아주 신나게 찍어대다보니 시간이 참 많이 걸렸는데, 개인적으로는 셔터도 일 좀 시켜줄 수 있어서 대만족.

 

 

 

기품이 철철 넘쳐흐르는 이 녀석은 캐딜락 모델 A 라고 하는데

현대에도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이런 메이커들은, 절대로 하루아침에 이름을 얻은게 아니라는걸 세삼 느끼게 해 준다.

우리 할아버지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시대에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

 

 

 

박물관의 매니아성을 잘 알수 있는 모니터.

캐딜락 모델 A 를 실제 주행하고 있는 영상을 틀어놓고 있다.

유지보수를 위해 주기적으로 박물관 내부 서킷에서 이렇게 실제로 주행을 하고 있다고.

 

사실 여기 전시된 녀석들, 가격으로 환산할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밑에 조그맣게 둘러쳐놓은 펜스 외에는 아무런 칸막이가 없다.

그러면서도 지문 하나 묻어있지 않은 깔끔함을 자랑하니, 관람 문화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 부러울 수가 없다.

 

 

 

자동차 매니아라면 알 수도 있을법한 동상이다.

자동차의 역사에서 결코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전설적인 메이커의 마스코트다.

롤스 로이스의 엠블렘인 환희의 여신상.

 

 

 

1900년대 초기 이탈리아의 전설로 회자되는 최고급 자동차 이소타 프라스카니 티포 1 모델.

엔진의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서 프레임이 분해되어 있다.

 

100년 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이런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노력이 집중되었을까 놀랍기만 하다..

 

 

 

세계적으로 본다면, 서양의 기술문물에 비해 절대적으로 뒤떨어지기 시작했던 동양권이라서

못살던 동네 양아치가 장사에 대박나서 떵떵거리는 지주로 부상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주민들의 마음처럼

수억명의 인구와 수백년의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흐름도 대충 닮은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오일탱크와 가솔린탱크를 뒤에 달고 체인의 구동력으로 바퀴를 움직이는,

비유하자면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기 조금 전의 구세대 인류와 같은 묘한 느낌이 눈길을 끈다.

 

이런 걸 보면,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자동차란 과연 어떻게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것인가도 즐겁게 기다려진다.

 

 

 

스터츠 베어캣 시리즈 F 라는 모델. 1914년 미국에서 제작된 녀석.

시대를 풍미한 스포츠카로, 각종 레이싱에서 우승을 휩쓸었다고 한다.

 

 

 

생긴건 참 기품있어 보이지만 당시엔 야성적인 이미지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이런 녀석으로 레이스를 한다면, 사고가 났을 경우 레이서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싶다.

 

 

 

위미를 알 수 없는 운전대의 부품. 라디오 안내에서는 저런것도 설명을 해 주는건지 모르겠다.

 

안내원 붙잡고 물어볼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의문이란 건 그냥 여행중 지나가는 잡생각에 불과하다.

자동차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내가 저것의 용도를 알아낸다 해도 그건 그냥 술자리에서 잠깐 으시댈 수 있는 여흥거리일 뿐.

 

 

 

여러가지로 인상깊은 모델이지만 저 엠블렘이 자기주장을 아주 강하게 하고 있는게 놀랍다.

 

현대 메이커들의 엠블렘은, 여전히 그 정통성과 나름의 목적의식은 드러내고 있음에도

점차 은유화되어 현대인들의 호기심을 은연중에 유발시키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련됨이라는 개념이 미래로 진행하는 부산물이라면

이 과거의 엠블렘들이 가지는 고풍스럽고 살짝 치기넘치는 존재감은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심어줬을지 궁금해진다.

 

 

 

이 박물관은 살짝 아쉬울 정도로 맛만 보여주는 그런 곳이 아니다.

아직 전체 전시품의 1/10도 담아내지 못할 만큼, 하나하나가 놀라운 빈티지들로 가득하다.

한두 개의 주력 전시품으로 손님 끌어볼려는 부류가 아니라서 발걸음마다 눈이 호강한다.

 

조금씩 사람들이 늘어나긴 하지만 이 정도라면 문제없을 듯 하다.

카메라 베터리를 하나 더 가져온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마 이런 페이스로 가다간 베터리 하나로 촬영이 힘들것 같다.

메모리는 32G 인데, 설마 아무리 많이 찍어도 용량이 모자라진 않을거라 생각하고.

 

 

 

190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포드사의 모델 T.

대량생산과 코스트 절약으로 무장한 이 자동차는 1500만대 이상이 판매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엔 여전히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이 때부터 자동차란 열심히 노력해서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는 녀석으로 진화해 가기 시작한 것.

 

 

 

하지만 반대로,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아! 이녀석은 고급이다' 라고 한눈에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모델이 옆에 있다.

포드의 모델 T 가 한눈에 티코로 돌변해 보일 정도로 눈을 의심케 할 저도의 미려한 디자인.

아낄 돈이 어디있냐고 일갈하는 듯한 어마어마한 세공품들이 현실감을 잊게 만든다.

 

 

 

지금 봐도 꿈속에서나 그릴 듯한 로얄 마치.

이걸 100년전에 타고 다닌 사람이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드림카라는 개념은 사실 자동차가 태생되었을 때부터 존재했었다.

 

 

 

이곳 토요타 박물관에서 단연코 눈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확실한 몇 가지 모델중 하나.

1910년 제작된 롤스 로이스의 실버 고스트이다.

 

테스트기가 은색이었고, 저소음으로 유령처럼 주행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워낙 성능이 좋아서 1차대전때 장갑차로 개조되어 전장에 투입되기도 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00년이 넘는 롤스 로이스라는 메이커의 역사 안에서도 단연 최대의 걸작으로 인식되는 녀석.

만일 나에게, 2013년형 부가티 베이론이나 람보르기니 같은 모델과 이 녀석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신의 자비가 내려온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녀석을 선택할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런지 모르겠다.

 

물론 아직 박물관 순회는 시작했을 뿐이고, 내 눈과 카메라의 셔터를 즐겁게 해줄 모델들은 여전히 줄지어 서 있다.

 

 

나고야를 대표하는 먹거리라면, 넓적한 면발의 키시멘, 지역 토종닭 코친, 그리고 적된장을 이용한 요리를 들 수 있다.

 

키시멘은 깔끔한 우동맛에 우리네 칼국수와 비슷한 면이 특징이고

코친은 한국의 야생 장닭처럼 겉과 속이 쫄깃쫄깃하고 탄력넘치는 고급 닭이다.

적된장은 나고야를 포함한 일본 중부지방 사람들의 별미로, 보통 쌀을 발효시키는 일본의 흰된장과 달리

한국처럼 콩을 발효시켜 만드는 녀석이라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좀 더 가까운 편이다.

 

물론 콩을 쓴다고 해도 제조방법은 많이 다르고, 한국 된장보다 숙성도는 낮아서 달달하고 먹기 편한 느낌.

 

도쿄쪽의 흰된장은 여기 비하면 맛이 심심할 정도로, 일본음식중 특이할 정도로 맛과 향이 진한 편이라

이 녀석을 듬뿍 넣어서 우동재료와 함께 푹 끓여낸 된장전골우동(味噌煮込みうどん)이 내 입맛에 맞다.

 

조금 달게 만들면 새우튀김이나 돈까스 등에도 발라져 나오는데, 이것도 달달하고 짜릿한게 맛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오리지날틱한 맛을 느끼려면 관광객 많이 모이는 가게가 아니라

지역민 상대로 하는 조그만 가게에서 된장전골우동을 먹어보는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하지만 나고야 역시 허벌나게 덥다. 대구와 거의 비슷한 기온.

대구에서는 그냥 집안에 들어박혀만 있어도 괴로웠는데, 5kg 가까이 되는 숄더백 짊어지고 충분히 데워진 아스팔트거리를 걸으니

왜 그렇게도 북적이던 나고야 시내가 한산해 보이는지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그래도 음식점 찾아가는 도중에 퍼질러진 검은 냥이 한마리를 담아내니 흐르는 땀에도 기분이 좋아진다.

한장 찍고 갈길 가는데, 앞의 담장에 이 녀석의 새끼 한마리가 잘 놀고있다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내가 어미와 자기 사이에 있어서, 어미 쪽으로 가고는 싶은데 가지는 못하겠고 안절부절하다가

나와 자기 사이에 뭔가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라도 있는 듯, 벽에 바싹 붙어서 어기적어기적 나를 통과해 어미쪽으로 달아난다.

 

 

 

토요코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조그만 음식점 야마모토야(山本屋)에 도착.

 

좌석수가 20개도 되지 않는 조그만 가게인데, 그 중 절반은 주방과 마주한 카운터석이다.

젊은 주인장이 친절하게 맞아줬지만 아무래도 사진찍고 일기쓰고 하는데 카운터석은 좀 방해가 되어서 창문가 2인석에 편안히 자리를 잡는다.

주방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보리차 다 마시니 바로 리필도 해 주는 등, 손님 신경은 확실히 서 주고 있다.

 

나 말고 중년의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이 유일한 손님이었는데

가벼운 안주와 술 한잔 하면서 젊은 주인장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니 단골손님인 듯.

 

처음보는 사람과는 정말로 말트기 어려운 나한테도 가능한 한 신경을 써주려고 주인장이 노력하는게 보인다.

사실 그 사람들은 이런 가게 이끌어가는 이야기, 아베노믹스에 대한 이야기, 한국인 등산객 이야기 등을 하고 있어서

내가 뭔가 아는듯이 끼어들기도 좀 그렇고 그런 상황이긴 했다.

 

그런데 한국인 등산객이 어쩌구 하는 말은, 흘려들으면서도 뭔 일인가 싶었다.

이 당시까지는 전혀 그쪽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기에.

 

 

 

나고야에 오면 꼭 한번은 먹어보는 된장전골우동의 자태가 드러난다.

적된장에 파, 버섯, 코친을 넣은 수타우동.

 

슈퍼에서 완성품 적된장을 쓰는 가게도 없진 않지만, 가게 이름에 프라이드를 가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연구하고 개발한 적된장의 맛을 사용하는게 일반적이고, 그런 고로 가게마다 맛이 꽤나 다른 편이다.

 

지난 자전거 여행때 먹었던 녀석은, 나이 70은 넘은 노부부가 평생을 꾸려온 가게에서 주문했는데

위화감을 줄여주는 달콤짭짤한 적된장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가게에서나 나올법한 진하기 그지없는 새까만 녀석을 사용해서

그 어마어마한 자극과 농후한 식감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일반적인 관광객도 즐길만한 맛.

 

공장에서 생산된 탱글탱글 면발과 달리 살짝 무딘 감이 느껴지지만 씹는맛이 있는 수타면도 훌륭하다.

해산물로 낸 국물의 칼칼한 시원함과는 달리 진득하게 목을 타고 넘어오는 구수한 된장국물의 맛은

한국사람에게는 좀 임팩트가 덜하겠지만, 관서지방 사람들에게는 꽤나 인상적인 모양이다.

 

중간에 몇조각 들어있는 코친 역시 제대로 된 녀석을 사용했는지

껍데기는 물론 속살까지 쫄깃쫄깃하게 씹히는게 무난한 식감의 된장전골 안에서도 밸런스를 맞추는 역할을 한다.

이런 녀석을 접한적이 없는 일반적인 관광객의 경우엔 반드시 코친이 들어간 우동을 먹기를 권한다.

워낙 우직한 맛이라, 중간에 살짝 집어먹는 코친의 식감이 전체적인 평가를 올려줄거라 생각한다.

 

식사를 마치고 일기를 좀 쓰니 여성 단골이 한명 더 들어왔다. 반갑게 잡담 나누는 모습을 보니

슬그머니 끼어들고 싶은 생각도 없잖아 들기는 하는데, 그것보다 더 강하게 나를 붙잡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다.

이렇게 과거를 되짚어가는 여행에서조차 그 두려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38살의 젊은 주인장 혼자서 영업하는 야마모토야에서 나와 훌렁훌렁 사카에(栄)를 향해 걷는다.

사카에는 나고야 제일의 번화가. 나고야 역에서 직선으로 주욱 뻗은 대로 양쪽에 온갖 쇼핑몰과 즐길거리가 넘친다.

일본에서는 드물 정도로 도로가 넓고 쭉쭉 뻗어있는게 나고야인데, 이유는 당연히 토요타 때문이다.

 

사카에는 도로 중앙에 상당한 규모의 공원도 조성되어 있어서 홈리스들의 고마운 서식처이기도 하다.

자전거 여행중 새벽 4시 40분쯤 도착했을 때, 나도 홈리스들 옆에서 신문지 덮고 잠이나 좀 잘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하루 자고나서 다시 도쿄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노숙은 무리였지만.

 

그 사카에에서 나름 유명한 스팟이 이곳 TV 타워. 도쿄 타워와 마찬가지로 원형은 어느 나라의 어떤 타워인 듯.

낮에는 그냥 그런 타워지만 밤에는 조명덕에 한번쯤 스윽 둘러볼만한 모습으로 변신하긴 한다.

나고야도 역시 콘트리트의 숲이라, 도시의 생명은 해가 지고나서부터 숨을 쉬기 시작한다.

 

 

 

여정을 적지 않아서 거리가 별로 멀지 않을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꽤나 걸었다.

야마모토야의 된장전골우동이, 버스, 비행기, 전철등으로 소비한 기력과 무더위로 소모한 체력에 비해 너무 강렬했는지

오장육부가 아주 수퍼 오케스트라 규모의 떼창을 열연하며 신나게 가스를 배출해내고 있었다.

 

다행히도 무덥고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한 나고야 시내.

사카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몇몇 비지니스맨들 외엔 사람도 없는 무더운 저녁이라

들킬 염려도 없이 신속하게 가스를 배출해 낸 덕분에 별 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이 대로의 끝에 보이는게 나고야역. 거리상으로는 저기서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나 마찬가지.

돌아갈때도 이만큼 걸어야 한다는게 좀 아찔해지긴 한다. 전철 타면 바로 갈수 있지만 왠지 타기가 싫다.

 

40분쯤 걸으니 손수건은 한 바퀴 짜내서 땀이 후두둑 떨어질 정도고

뜨거운 공기가 콧속에 들어가니 머리가 기분좋게 어질어질한게, 마치 미지근한 물속을 헤엄치는 기분이다.

마시지도 않은 술에 살짝 취한 듯, 눈을 옅게 감고 몸을 흔들거리며 걸어다니니 정말 여기가 육지인가 싶다.

 

 

 

TV 타워 주변엔 비어가든이 열여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넘기고 있다.

 

하지만 비어가든 하면 삿포로를 잊을 수 없는 나로서는, 같은 여름날의 비어가든이라도

삿포로의 그 청량한 더위와 끝내주게 짜릿한 맥주의 맛을 머릿속에 떠올리니

물 속에서 마시는 느낌이 들 듯한 이곳의 진득한 공기속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 속에서 맥주를 마실 기분이 들려면, 선인들의 지혜가 살아숨쉬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나 그랑 블루가 시범을 보여줬듯이

같이 술잔을 기울일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로 지금은 패스.

 

 

 

이녀석이 술만 같이 마셔줬다면 아마 비어가든도 흔쾌히 즐겼을텐데.

일반인 출입금지의 송전기 근처로 냥이 한마리가 슬금슬금 걸어오더니

누군가 가져다놓은 먹이그릇에 입을 살짝 갖다대고 느긋하게 들어눕는다.

 

사람이 못들어가게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지만, 이곳의 홈리스들에겐 그 권력의 지엄함조차 무릎쓰며

저 냥이한테 먹이그릇을 가져다 놓아야 할 사명감이 있었나 보다.

 

덕분에 저 냥이님께서는 이토록 사람이 붐비는 사카에 한복판에서

이렇게도 느긋한 자태를 보이며 혼자만의 공간을 만끽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감흥이 적었던 과거의 여행은, 지금와서도 별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나고야는 어째서 그렇게 자주 스쳐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마음이 열리지 않았을까.

 

나고야 시내 안은 정말 도쿄와 다를바 하나없는 분위기라서 그랬던 점도 있고

반대로 나고야에서 버스나 전철을 타고 한두 시간 밖으로 나가면 굉장한 볼거리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쇼핑이 목적이라면 나고야는 도쿄까지의 항공료를 줄일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지만

나고야 주변의 볼거리들을 만끽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나고야는 단지 짐을 풀고 잠을 자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한다.

 

 

 

일단 TV 타워를 보는게 목적이었으니까 더 이상 미련없이 숙소쪽으로 돌아간다.

물론 왔던 길을 다시가는건 지겨우니까 좀 더 번화가를 통과해 돌아가기로 한다.

 

사카에에서 TV 타워만큼 유명한 관람차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어쨌든 이 네거리가 나고야 전체에서 가장 번화가니까.

 

썬샤인 사카에라는, 도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듯한 제목의 빌딩 앞에 떡하니 세워져있는 관람차는

돈키호테 등에 붙어있는 장난감같은 관람차와는 달리 제대로 된 녀석이다.

대체 나고야 시내 한가운데서 저걸 타고 뭘 보겠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공짜로 타보라면 한번쯤 시도는 해보겠지만, 아직까지는 저기 타는것보다 저것의 존재의의를 고심해 보는게 더 재미있다.

썬샤인 사카에 빌딩 창가에 있는 사람들과 즐겁게 인사는 주욱 나눌 수 있을지도. 박애주의자에겐 편안한 무빙워크가 될 듯.

 

관람차 우측 하단엔 뭔가 거대한 처차들의 떼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한국에서 3명 아이돌 하면 SES, 4명 아이돌 하면 핑클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일본에서 떼 아이돌 하면 생각나는게 AKB48 밖에 없다. 쟤네들이 AKB 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베스킨라빈스처럼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아이돌인지. 일본에서 생활하는 이상 노래를 안들어볼수는 없을 정도로

온갖 CM이라는 CM에는 다 나오는 애들이라 들어는 봤지만, 불행히도 내 취향은 아니다.

 

 

 

관람차에서 시선을 조금 내리니 왠걸 또 한마리의 냥이가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 자세를 잡고 있다.

오늘 하루 이렇게 많은 냥이를 만난 것만 해도 나고야 시내를 둘러볼 가치는 충분히 충족되고도 남았다.

 

나고야에서 가장 번화가인 썬샤인 사카에 빌딩 앞의 인도에서 고양이를 만나다니

좀전부터 계속 열탕 속을 휘적이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정말 모르는 사이에 술이라도 한잔 마신거 아닌가 싶다.

 

그만큼 이쪽 사람들이 냥이한테는 친근하다는 반증일수도 있고.

하지만 냥이는 냥이라, 사람들이 헤치지 않아도 당연히 내가 시커먼 카메라를 들이대니 긴장 좀 탄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갔다가는 뒷다리에 힘을 넣어 튀어도망갈 준비를 할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즐기고 뒤로 물러난다.

 

 

 

사카에에서 마루노우치까지 대로를 통해 돌아온다면 볼 일이 없지만

번화가의 기분을 만끽하려고 좁은 골목길쪽으로 흘러들어갔다면, 노골적인 풍속업소들이 줄줄이 늘어선 광경이

때묻지 않은 순수한 외국 여행자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 것임에 틀림없다.

 

도쿄도 그렇고 그런 곳은 많지만, 이곳 나고야는 시내 최고의 번화가에 아주 대놓고 영업중인 곳이 호화스럽기 그지없다.

돈 좀 만져야 놀아볼 수 있는 고급 캬바레나, 단골 손님만 접대하는 간판작은 VIP 클럽이 빌딩 3층에서 7층까지 좌르륵 들어가 있고

번쩍번쩍한 언니들의 얼굴을 벽면에 크게 붙여놓고 알송달송한 표현으로 애간장을 태우는 풍경이 골목 여기저기에 펼쳐진다.

 

'사쿠라'라고 불리는 호객행위는 이런 노골적인 풍속영업에서도 단호히 금지되어있는 편에 속하는데

그래도 내가 그쪽 골목을 걸어가니 호리호리한 청년이 '어떻습니까?' 하고 슬쩍 말을 걸어오는걸 보면

물장사 자체를 막아버리지 않는 이상 법률적인 금지는 사실상 애처운 눈가람일 뿐인 듯 하다.

 

클럽이나 캬바레같은 점잔빼는 곳 말고, 아예 '본론만 간단히'를 모토로 하는 풍속점도 너무 당당히 영업중이다.

나고야에서 놀랐던 몇 안되는 점이라면 아마 이런 사카에의 밤거리 정도랄까.

노파심도 뭐도 아니지만, 일본에서 '에스테'나 '헬스클럽' 이라고 이름붙여진 곳에 들어갈 생각은 않는게 좋다.

한국의 헬스클럽은 거기서 '피트니스'나 '짐'이라고 불린다.

저 두곳은 목욕탕이다. 예전에 어떤 형제국가의 이름으로 불렸던 그 탕 말이다.

 

워낙 더위에 맛이 가 있었던 상태라, 새로운 경험 하는셈 치고 한번 즐겨볼까 하고 생각도 해 볼 정도였다.

물론 아무리 자금이 널널해도 이런데서 아가씨 끼고 놀만큼 부자는 아니었고

아마 그런 곳에서 놀고 난 후엔 성격대로 심한 자괴감에 휩싸일 것 같은 확신이 들어서 패스.

 

원전사고 때문인지 호텔에서도 불필요한 전등을 꺼 주시고

에어콘은 28도로 맞춰주시길 바랍니다 라고 정중하게 안내되어 있지만

한국의 지랄같은 전력대책에 아주 뿔이 날대로 난 본인으로서는 콧방귀도 끼지 않고 25도로 온도를 맞췄다.

내가 호텔 와서까지 땀흘려야겠나. 물론 잠 잘때는 체온이 올라가기 때문에 27도 정도로 맞춰도 충분히 시원했지만.

 

첫날부터 너무 무리한거 아닌가 싶지만 이번엔 별로 걱정이 없다.

내일도 나고야에서 머무는데, 여러번 언급했듯이 나고야에서는 무리해서 돌아다니며 볼 만한 곳이 내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지난번 자전거 여행때 가보지 못한 주변 볼거리를 찾아보다가, 토요타 박물관이라는 곳을 찜해놓았다.

취향에 맞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일단 사진은 듬뿍 담을 수 있을 듯 하고

나고야 시내의 빌딩숲과 쇼핑몰을 서성이는 것보다는 알찬 시간을 보낼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보는 일본 버라이어티를 즐기며 느긋하게 침대속으로 들어간다.

 

 

알고있기로, 코리안 타임이란 자고로 약속시간보다 더 늦게 훌렁훌렁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데

교통이 원활했는지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가 예정시간보다 5분이나 빨리 출발해 버리는 바람에

3분쯤 남겨놓고 도착한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30분 후의 버스를 타게 되고 말았다.

 

오래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고, 더워 죽겠는데 20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짜증이 나지 않는것도 아니고, 반대로 생각하면 이제부터 시작되는 여행은 기분좋을 정도로 시간에 철저한 곳이니

기대감을 증폭시켜주는 역할도 하게 되어서 그냥 여행의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기로 한다. 느긋하게 시간 계산하고 왔으니 다음 차를 타도 늦지는 않다.

 

공항에 도착해서 에어아시아 창구로 걸어가니, 한 청년이 울분을 토하고는 싶은데 차마 다는 토하지 못하는 듯한 말투로

연신 어떻하냐고 짜증아닌 짜증을 내고 있다. 뒤에 서서 들어보니 이 청년이 타야 하는 비행기는 이미 출발 1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패셔너블한 반바지의 청년은 아마 이번이 첫 해외여행인지

비행기 탑승수속은 아무리 늦어도 1시간 전에 완료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이렇게 태평스럽게 온 것일까.

 

청년은 속이 타고, 에어아시아 직원들도 난감해 어쩔줄 모르는 상황인데, 다행이랄까 몇만원만 더 추가하면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해 주는듯 하다. 물론 미리 예약하면 원래부터가 8만원밖에 하지 않는 노선이니까 사실상 한장 더 사는거나 마찬가지지만,

예약없이는 14만원 가까이 드니 항공사로서도 이 미숙한 청년에게 최대한의 선의를 배풀어 준 것이리라.

 

 

 

근 9개월만의 출국이다. 보통 그 정도면 자주 가는거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작년엔 작정하고 최저가 항공권을 마구 끊다보니, 거의 3개월마다 한번씩 나가다니곤 하는 바람에

굉장히 오랜만에 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공항에서 탑승수속을 마치고 검색대를 통과해서도 인천공한 면세점의 거대한 모습에 조금 긴장타는 본인의 모습을 보니

이제 슬슬 여행이 다시금 새롭게 느껴질 만한 시기인가 보다. 그 덕분에 여행 전날 항상 겪는 불면증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습하고 찌부둥한 하늘을 벗어나니 역시나 기대대로 청명한 하늘이 펼쳐진다.

시끄럽고 불편한 비행기안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단 한가지가 이 창밖 풍경이지.

정말 어지간한 상황 아니고서는, 고도만 올라가면 그 다음부터는 마음껏 푸른 하늘을 만끽할 수 있다.

 

 

 

날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날 에어아시아의 나고야행 비행기에는 좌석이 꽤나 널널하게 남아있다.

덕분에 옆자리에 짐 올려놔도 전혀 부담이 없었고, 옆사람 팔꿈치를 신경쓸 일도 없이 느긋하게 경치 감상한다.

물론 사진 몇장 찍고나서 30분쯤 지나면 이것도 좀 지루해지고 그냥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게 되지만.

 

미국이나 유럽행같은 지옥같은 소요시간만 아니라면, 1시간 40분 정도의 나고야행 좌석은 충분히 감내할 만 하다.

눈을 감고 살짝살짝 끊어지는 의식 속에서 부디 나고야가 서울처럼 회색빛 하늘만은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래본다.

 

어차피 나고야 더위는 대구에 버금갈만큼 유명하니 그것까지 바라진 않지만, 아무리 더워도 하늘은 푸른게 좋다.

 

 

 

감옥같이 좁은 저가항공에서 내려 중부공항에 첫 발을 내딛는다.

이곳은 일본의 여러 공항중 유일하게 '센트레아'라는 별명을 따로 가지고 있는 특이한 곳.

윗쪽에 스카이 덱이라고 하는 아주 넓은 전망대가 펼쳐져 있어서 항공사진 찍으려는 덕후들의 성지로 유명하다.

 

특이하게 공항 내부에 온천까지 비치되어 있어, 국제선뿐 아니라 국내선 이용자들도 실컷 즐기고 갈 수 있는 곳.

나고야에서 전철로 40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깝기 때문에 가볍게 놀러가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다.

 

나고야는 원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자전거 여행중 가장 자주 들러 지나간 곳이라 시내 곳곳을 빠싹하게 꿰뚫고 있지만

중부공항에 도착하는건 처음이다. 규모면에서 그리 인상적이진 않지만 굉장히 깔끔한 내부를 자랑한다.

 

 

 

어느 공항이든 그렇지만 도착편으로 나와서는 별로 볼게 없긴 하다. 생각보다 많이 한산해서 놀란다.

일본의 여름휴가는 보통 8월부터 시작이라서, 7월 30일이었던 이 당시에는 아직 그렇게 혼잡하지 않았던 듯.

 

센트레아 공항의 라운지와 볼거리는 꽤나 유명해서, 관심있는 사람은 여기서 바로 출국장쪽에 위치한 쇼핑 거리와 스카이덱을 보러 가기도 하지만

끌고 다니는 여행용 캐리어를 워낙 불편해하는 나는 짐이 어지간이 많아도 베낭을 매고 다니기 때문에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아야만 여행이란걸 시작할 기분이 든다.

 

그런 고로 베낭을 내려놓기 전에는 사진도 거의 찍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엔 참 오랜만의 여행이다 보니

평소보다 좀 더 많이 사진을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대충 한장 남겨본다.

 

센트레아에서 나고야 시내로 들어가는데는 버스, 전철과 함께 특이하게도 페리를 이용할 수도 있다.

좀 비싸긴 하지만, 나고야 항구에서 나고야 역까지 바로 연계도 가능하기 때문에

바다 내음을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관광객들에게는 좋은 선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9개월만에 왔다고 해도 여전히 본인 스스로는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즐긴다'는게 아니라 '경험한다'라는 느낌으로 항상 떠나는 여행이라서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항상 나한테는 사치스럽고 과분하게 느껴진다.

 

전철 티켓을 끊어놓고 베낭을 맨 채로 땀을 흘리며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 꺼내먹는 것이 딱 적당하다.

 

 

 

유감스럽게도 나고야의 하늘은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청명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앞으로 맑아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 실망한 건 없다.

어차피 오늘은 숙소에 도착하면 4시 가까이 되기 때문에 딱히 어디 보러 나갈 예정도 없으니까.

 

짐이 많아서 전 객실 지정석인 특급열차 뮤 스카이의 티켓을 구입한다.

일반 전철보다 350엔 더 비싸지만, 정차역도 거의 없어서 빠르고 짐을 놓기가 편하다.

이번엔 엔저 효과로 꽤나 널널하게 자금을 가져왔기 때문에 350엔의 사치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다.

 

사실 베낭을 매고 서서 가도 체력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지만

일반 전철에 이런 베낭을 매고 타면 꽤나 민폐를 끼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뮤 스카이를 이용하는 것.

 

1번 승강장에 떡하니 '뮤 스카이 타는곳'이라고 적혀있어서 그 앞의 휴게실 안에 들어가서 짐을 내러놓고 기다린다.

중부공항은 처음이지만, 적어도 나고야 시내에 들어가면 이런 한적함도 사치로 느껴질만큼 굉장히 혼잡해지기 때문에

이렇게 휴게실에서 혼자 사진찍고 있는 것도 나름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카메라가 많이 낮설다.

 

올해는 카메라를 손에 쥔 날을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사용빈도가 낮다.

그냥 일상 생활에서도 좀 깨작거릴 순 있지만, 요즘 놀랄 정도로 카메라를 사용하고픈 생각이 들질 않는다.

일이 피곤한 것도 아닌데 기분이 그렇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한해를 보내고 있는 중.

 

올해들어 여행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카메라에서도 점점 멀어진 걸까.

아직 감을 잡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다. 나고야는 사실 찍고싶은 풍경도 별로 없다.

이번 여행에 있어서 나고야는, 체류시간은 가장 긴 곳이지만 여행 목적이 아니라 그냥 경유지, 휴식지, 쇼핑지로서의 역할 뿐이다.

아마도 나고야에서 3일동안 담는 사진이 다른 곳에서 하루 담는 사진보다 그 수가 적으리라 확신한다.

 

 

 

이번에 가져온 렌즈는 24mm , 50mm, 70-300mm 의 세 가지.

그러다보니 갈아끼우는데 심히 귀찮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만, 그건 여행중 남기는 사진을 위한 감내라고 생각한다.

요즘 미러리스가 심히 땅기는 것도 사실 작은 바디때문에 아니라 작은 렌즈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 올림푸스 정도의 미러리스라면 렌즈 세 개 정도는 그냥 주머니에 쳐넣고도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큰 망원렌즈로 바꾸고 테스트삼아 휴게실에서 담아 본 사진.

뮤 스카이의 장점을 선전하는 귀여운 그림인데, 참 이런 면에서 일본은 세계에서도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손으로 그린 그림과 글씨 덕분에 더욱 친근감도 들고. 왠지 이런 걸 발견하면 뮤 스카이를 타는 값이 조금 덜 아까워 지는 기분이랄까.

 

내용은 대강, 티켓을 꽂아놓을 수 있는 홀더와 UV컷 창문, 리크라이닝 소파, 180도 회전가능한 의자, 자회사 메이테츠 철도의 관광 스팟을 소개하는 잡지 등.

별것 아니지만 이렇게 친근한 설명을 그림으로 담아놓으니 관광객들이 한번쯤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는 효과가 있다.

 

여기서도 또 한번 사고가 발생한다. 뮤 스카이 승강장이라고 적혀있는 1번 홈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가 오지 않길래

안내센터에 가서 물어봤더니, 내가 티켓팅한 기차는 3번 승강장에서 벌써 출발해 버렸다는 대답이 돌아와 버린다.

뮤 스카이가 1번 이외의 승강장에서도 출발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정도로, 1번 홈의 '뮤 스카이 타는곳' 이라는 글씨가 너무 컸다.

 

다행히도 안내원 아가씨가 추가금 없이 바로 다음 뮤 스카이의 티켓으로 변경해 줘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의 한산한 중부공항 덕분에 좌석이 남아돌았나 보다. 감사의 표시를 하고 다시 1번 홈에서 뮤 스카이를 탄다.

시작부터 이런 멍청한 실수를 하는 걸 보니, 진짜로 여행 참 오랜만에 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예정보다 늦어서 4시 40분이 되어서야 나고야역에 도착한다.

예약한 토요코 인에 전화를 걸어서 홈페이지에 나와있던 무료 셔틀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물어본다.

원어민과의 대화 역시 9개월 만이라서 좀 긴장했는데, 다행히도 그쪽도 내 말 잘 알아듣고 나도 그쪽말 이해에 문제는 없었다.

 

나고야는 일본 제 3의 도시로, 토요타 등 굴지의 기업이 연고지를 두고 있는 곳이라서 숙박시설은 도쿄에 버금갈 정도로 그 수가 많다.

비지니스 호텔중 애용하는 토요코 인만 해도 나고야역 주위에 4개가 넘는 지점을 보유중인데

역에서 가까울수록 요금이 은근히 비싸서 괜히 손해보는 느낌이다.

 

이번에 예약한 마루노우치(丸の内) 지점은 전철로 2정거장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사카에(栄) 등의 번화가와 좀 떨어져 있어서 수요가 적은건지, 나고야 역에서 호텔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당연히 숙박요금도 역 앞의 토요코 인에 비해 1500엔 정도 저렴하기 때문에 서슴없이 그쪽으로 결정.

 

셔틀버스 타는 곳으로 걸어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JR 나고야역의 거대한 모습을 담아본다.

나고야에 도착하니 흐리던 날씨가 맑아져서 사진 담는데도 별 무리가 없다. 시작부터 예감이 좋다.

 

뮤 스카이는 나고야 시영전철인 메이테츠역에 정차하는데, 아무래도 JR 나고야역에 비하면 장난감이나 다름없긴 하다.

24mm 렌즈로도 전체를 담기 힘든 이 거대한 역사는, 50층이 넘는 두 개의 타워가 가장 높은 역사 건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한쪽은 기업센터, 한쪽은 메리어트 호텔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이곳에 올때마다 항상 메리어트 호텔에 묵으며 시내 야경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여기 1박요금이 내가 여행중 사용하는 전체 숙박요금과 맞먹는다는게 함정이긴 하지만.

 

 

 

역 앞에는 워낙 삐까번쩍한 건물이 많아서, 호텔 데스크에서 안내판으로 삼아준 도로 중앙의 저 구조물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그닥 인상적이지는 않은 녀석이지만 어쨌든 역 앞에서라면 어디에서든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목표로 삼기엔 좋다.

 

가르쳐준 곳에서 10분쯤 기다리니 셔틀버스가 온다. 그냥 봉고같은 승합차지만 공짜인데 감지덕지.

사실 마루노우치 점은 예전 자전거 여행할떄도 몇번 묵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알고 있는데

전철타고 2코스 200엔의 교통비도 자주 왔다갔다하면 무시못할 가격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호텔에서 가까운 마루노우치 역 8번출구라는게, 전철을 내려서 상당히 오래 걸어가야 하는게 문제다.

특히 지금같은 폭염기간에도 그 역 통로에는 냉방장치가 없기 때문에 찌는듯한 지하통로를 한참 걸어가야 한다.

 

만약 셔틀버스가 없었다면 굳이 그곳을 숙박지로 정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건 꽤나 중요한 요소다.

 

 

 

이런 한여름만 아니라면 사실 전철 2코스라는 거리는 걸어서도 무리없이 갈 수 있기는 하다.

특히 자전거만 있다면 식은 죽 먹기. 세삼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지만, 지금은 애써 기억을 회피하려 한다.

어차피 이번 여행의 주 목적 중 하나는 과거를 되짚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지금 생각해 내고 싶지 않다.

 

신호 잘 지키고 정속으로 느긋하게 이동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10분만에 호텔에 도착한다.

방으로 들어오니 토요코 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옆으로 완전히 열리는 창문이라서 기분이 좋다.

방충망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열어재끼고 사진 담는데도 최적이다.

보통 토요코 인의 창분은 위쪽으로 조금만 열리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사진은 거의 포기해야 하는데, 나로서는 충분한 득점 요인이 된다.

 

나고야의 기온은 36도. 방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콘을 켰지만 한동안 땀이 줄줄 흐를 정도다.

하지만 최소한 보기 싫을 정도의 스모그나 구름 잔뜩 낀 날씨는 아니어서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사실 나고야 시내를 담는데 별로 즐겁다거나 하는 기분은 아니다.

중부지방에서 손꼽히는 평야지대라, 시원하게 트인 건 좋지만 전부 건물숲으로 도배가 되어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중 날씨가 맑다는 건, 어떤 상황에서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이다.

 

비지니스 호텔 창가에서 셔터를 연신 누르고 있으니 조금은 손가락 맛이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

5시가 조금 넘었지만 한여름의 장점이란, 7시 넘길때까지 충분히 밝아서 돌아다닐 여력이 남아있다는 점.

겨울이라면 아마 지금쯤 석양을 구경하고 있을 테니까.

 

 

 

오늘은 더 이상 예정이 없다. 특히 나고야 시내에서는 딱히 보고싶은것도 없고.

친구한테 부탁받은 물건이 있긴 하지만 지금부터 서둘러 나가서 쇼핑하는것도 지루하고 힘든 일이다.

 

사진은 몸풀기로 몇장 찍었지만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고, 그렇다면 남은 건 저녁식사나 근사하게 한끼 하는 것 뿐.

앞서 말햇듯이 상당히 넉넉한 자금을 갖고 왔기 때문에, 정말 흥청망청 쓰지 않는 이상 먹거리를 아껴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편의점의 도시락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어차피 싫던좋던 앞으로 몇번은 먹게 될 것이다.

 

로비에서 가져온 주변 지역 맛집지도를 몇장 펼쳐보며 뭘 먹으러 가볼까 고민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