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니콘'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10.08  히로시마 여행기 11편 - 미야지마, 미센의 주인들 4
  2. 2009.10.08  PSP GO, 소니의 멀티미디어 강화형? 4
  3. 2009.10.07  히로시마 여행기 10편 - 미야지마, 줄서기는 쥐약 8
  4. 2009.10.07  계란이 뜨거웠나봅니다 7
  5. 2009.10.06  히로시마 여행기 9편 - 미야지마, 플라나와 함께 미센으로 4
  6. 2009.10.06  히로시마 여행기 8편 - 미야지마, 사망금지 4


요즘엔 친절하게 망원경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가 보다. 00엔이라고 되어 있네.
안개가 조금 낀 편이라 망원경으로는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없었지만.


기둥이 방해가 되어서 참 아쉬운 사진이 나와버렸다. 등을 베고 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원숭이들의 흉폭함을 잘 알고 있어서 카메라 들이대기가 좀 무서웠는데, 얼마 있어보니 정말 사람에게 무신경한 녀석들이었다.
일단 먹을것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등 흥미가 없는 듯 하다.
사슴은 일단 다가와서 뭔가 요구라도 하는데 원숭이들은 처음부터 사람이 보이지 않는듯이 행동한다.


세상물정 모르고 잠자는 녀석들. 관광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하고 다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주니 사진 찍을때도 편하긴 하다. 저런 자세로 어떻게 잠을 자는지는 모르겠지만.


털 골라주는 원숭이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녀석들의 심리는 참 알 수가 없는 것이,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털 고르던 원숭이를 공격하기도 하더라.
나만큼이나 어리둥절했는데 털 고르던 원숭이도 도망가면서 고성을 지른다. 억울하겠지.


전망대 옆에는 이렇게 원숭이들의 서식처가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아서 사람이 다니는 길에도 널부러져 있고, 정말 당당하게 사람 앞을 가로질러 걸어가기도 한다.

구전상으로는 천 년 가까이 성지로 추앙받던 곳이라서,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보아온 동물들이 경계심을 잃은 것일까.
가장 비자연적인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다.
이게 동물과 인간의 공존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건가?
이렇게 어색한게 공존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매일매일 죽기 위해 길러지는 수억마리의 소, 돼지, 닭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공존은
동물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은 동물의 영역권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야생동물은 뭔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



자연 생태계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고 해도
이곳 미야지마의 원숭이들은 이미 인간이 만든 장소를 제공받고, 비록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이들을 굶겨 죽일 일은 없다.

먹이경쟁도 천적도 없는 낙원같은 곳에서 늘어져 있는 원숭이에게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찾는다는것은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비정함을 지워버린, 화려한 유화같은 낭만으로 가득 찬 도원향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미센 전체를 돌아볼 시간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산책해 볼까 싶어서 산길을 걸어본다.
원래 미센의 볼거리들을 다 구경하려면 최소 5km 이상은 걸어야 하는데, 이미 해가 조금씩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츠쿠시마 신사의 썰물을 놓칠 순 없었다.
10분 정도 적당히 걸어보다가 경치 구경만 하고 다시 전망대쪽으로 발을 옮긴다.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빠짐없이 둘러봤을텐데.
그런 생각으로 사진을 찍으니 왠지 모르는 여성의 뒷통수에서도 아쉬움이 느껴지는 듯 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등따숩고 배부르면 인상에서 여유가 느껴지나보다.
젖을 문 체 잠든 새끼나,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듯한 눈빛의 어미나.


나무 위에서 어미를 따라다니며 돌아다니는 새끼도 있다. 몇 안되는 깨어있는 새끼라 카메라를 든 손이 바빠졌지만
렌즈가 ZF 50.4 수동이라 훌쩍훌쩍 움직이는 새끼의 움직임을 잡기가 쉽진 않았다.


그래도 70%의 성공률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질 수 있어서 만족.
용케 그렇게 움직이는 녀석에게 포커스가 맞았다 싶다. 사실 찍는 순간에도 보통 감을 잡을 수가 없을 정도라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동물원에 갖혀 있는것 보다는 낫겠지.
원숭이들의 얼굴에 지루함이 아닌 느긋함이 엿보이는 것 만으로도 이곳 미센의 정상은 충분히 그 가치를 다하고 있다고 본다.


어딘가 일그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계속 이 모습이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다.


원숭이들을 실컷 찍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내 앞을 가로질러가는 카리스마 사슴.
실제로 덩치도 꽤 크고 산 아래서 봤던 사슴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순간적이나마 이 녀석이 가장 신과 가까운 사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슴은 아주 잠깐 멈춰서서 나와 눈을 마주치고 그대로 숲속으로 걸어간다.


원령공주의 사슴신을 생각나게 하는 녀석은 힘있는 뒷모습을 남기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살짝 경건한 마음이 든 것은, 옛날 이곳에 신사를 세우고 사슴을 신성시하던 사람들의 기억 때문일까.


관광객들의 루트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지, 올라왔을 때 거의 텅텅 비었던 내려가는 줄이 지금은 또 가득 차있다.
결국 또 30분 정도는 줄서서 기다려야 할 판. 마지막으로 세토 내해의 사진을 기분 정화용으로 날리고 줄을 섰다.


신사가 없는 이곳에도 에마(絵馬)가 있다.
상술이라고 생각하기도 지친 것이, 이제는 경건함이 사라진 애교수준의 장난으로 전락했으니 이것도 여행의 즐거움이겠지.
단지 그 즐거움을 만끽하기엔 에마가 너무 비싸서. ㅡㅡ; 일본을 여러 번 왔다갔다 했지만 에마를 사서 소원 빌어본 건 딱 한번 뿐이다.

한국어, 영어, 일어, 아랍어, 중국어... 왠만한 언어는 전부 다 쓰여있다. 이곳의 신은 다국어에 능통해야 자격이 생길 듯 하다.

몇년간 잘 써오던 PSP 2000번 액정이 박살나는 바람에 고민 좀 하다가 결국 PSP GO 를 구입했습니다.
제가 소니스타일 멤버쉽 소지자라서, 소니 A900을 구입했을 때 포인트가 꽤나 쌓여있었기 때문에 그걸 이용했죠.
고가의 DSLR이었으니 포인트 쌓이는것도 남다르더군요. ㅡㅡ;

일단 수고하신 2000번 PSP와의 크기비교. 정말 작긴 작아졌습니다.
PSP GO 는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로서의 장점을 살리려고 제작된 일종의 옆그레이드죠.
화면 크기가 줄어들고 (해상도는 동일하니 좀 더 조밀해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UMD를 제거해서 사이즈 줄이고, 슬라이드형식을 채용해서 필요할때만 조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외 게임이나 동영상, 음악 등의 재생능력에는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블루투스 지원으로 좀 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긴 합니다.
게임쪽에서는... 원래 별로 좋지도 않았던 조작감이 크기 때문에 더 엉성해진 바
불편할 사용자를 위해 PS3 패드를 사용할 수 있게 했네요. 하지만 웃기게도 PS3 본체가 있어야 패드가 등록됩니다.


요렇게 슬라이드형식으로 변했습니다. 슬라이드를 끝까지 열었을때 딱 하고 고정되지 않고 약간 덜렁거린다는게 마음에 안드네요.
버튼 조작감은 예전 버전에 비해 변하긴 했지만, 저는 게임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특이한점은 못느끼겠네요.
리듬게임이나 몬스터 헌터같은 다양하고 세밀한 조작이 요구되는 게임에서는 불편하다는 말이 많은 듯 합니다.

저야 PSP 가지고 있었던 3년 남짓한 시간동안 게임 해본건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니 관계없지만
이번 PSP GO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오직 소니의 PSN 을 통해서만 게임을 다운받을 수 있다는 점.
일본에서는 UMD 소프트보다 1천엔 정도 싼 가격으로 어느정도 납득은 가지만
한국에서는 겨우 1천원 정도 싸거나, 아예 정품 UMD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스토어에 올려놓는 바람에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있는 중.

패키지 제작비용, 물류비용, 소매점 마진등이 전부 사라진, 말하자면 완전 독점공급채제로 이루어진 소프트 다운로드가
UMD와 비교해서 천원밖에 차이나지 않는다는건 악덕 이윤추구기업이라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듯 합니다.
그나마 올라와 있는 게임의 수도 일본, 미국과 비교하기가 서러울 정도로 콩알딱지만한 수준이라
게임을 위해 지금 PSP GO를 구입하는건 바보짓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예전 버전들과는 달리 다 즐긴 중고 게임을 다시 팔 수도 없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부르주아적 기기라는 느낌.


전 버전과 바뀐 점이라면... 슬라이드를 닫았을 때 저렇게 시계가 나옵니다.
정해놓은 절전모드 시간에 따라 슬립이 되기도 하고, 처음부터 슬라이드를 닫으면 슬립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또 PSP GO의 불편한 점이 나오는데
예전 버전처럼 베터리를 따로 구입해서 교환할 수 있는게 아니라
아이팟 터치처럼 완전한 내장형 베터리라 교환은 오직 AS 센터에서만 가능하다는 점.
장시간 외출을 대비해 예비 베터리를 갖고 다닐수도 없다는 이야기죠.
베터리 용량도 크기관계로 줄어드는 바람에 풀사용시간은 4~5시간이 될까말까.


예전 버전에서 지적되어오던 상단부 LR 버튼의 모양과 누르는 감촉이 바뀐 것은 환영할 만합니다.
좀 더 부드럽게 눌리고 딱딱했던 예전 LR 버튼보다 둥글둥글해져서 만족합니다.

사진 한 장마다 PSP GO의 단점을 계속 적을만큼 문제점이 있는 기기인데
처음부터 16G 메모리를 내장하고 있어서 실제 가격적으로는 예전 버전과 크게 차이나지 않지만
추가메모리가 소니 독자 표준인 Memory Stick을 쓰는게 아니라 Mini MS로 또 바뀐 겁니다.
독자 표준 때문에 안그래도 욕먹고 있던 소니인데 또 포맷을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기존 MS 갖고 있는 사람을 화려하게 물먹였죠.
미니버전은 어댑터를 통해 기존 MS와 호환된다지만 그럼 원래 MS 갖고 있던사람은 뭐가 되는지... ㅡㅡ;

심지어 기존 버전의 어떤 악세사리와도 호환이 안됩니다. DMB, 카메라는 물론이요 심지어 충전용 USB 포트까지 호환 불가.


슬라이드형식을 채용했음에도 UMD가 사라진 덕분에 두께는 2000번보다 오히려 더 얇아졌습니다.

전체적인 감상으로는
확실히 휴대하기 편한 멀티미디어 기기로서의 PSP GO는 미려한 디자인과 고해상도 화면으로 크게 진화했지만
게임용으로서는 오히려 더 불편해진 느낌이 듭니다.

기기의 완성도로는 구경만 해도 구입욕구가 일어날 만큼 앙증맞고 귀여운 디자인으로 호평받아 마땅한데
온갖 독자표준이란 독자표준은 다 집어넣고 그로 인한 사용자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는 소니의 오만함 때문에
기기완성도를 다 깎아먹고 욕 먹을만한 여지를 남겨버린 작품이네요.

설마 종이조각만한 MS조차 호환을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존 PSP를 잘 사용중이고, 게임 위주로 하시는 분들이 PSP GO를 구입할 이유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처럼 PSP가 고장나서 하나 더 구입해야 하거나
게임 편의성보다 휴대성을 중시하는 유저나
얼리어댑터적인 성격을 가진 유저라면 구입을 고려해봐도 되겠군요.
자금이 널널해서 비싼 돈 주고 다운로드받아 중고로 판매할 필요도 없는 유저라면 PSP GO가 최선의 선택이 될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기기는 정말 마음에 드는데, 그 외 소니의 모든 짓거리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특히 소니코리아.

'Photo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타의 즐거움  (2) 2009.10.16
컬러풀 대구, 신천 축제  (8) 2009.10.11
계란이 뜨거웠나봅니다  (7) 2009.10.07
팬더는 미워할 수 없습니다  (4) 2009.10.06
성묘  (2) 2009.10.05

음식점 앞의 조그만 정원에서 사람만 보면 밥달라고 달려드는 잉어(붕어?)들을 감상하다가 로프웨이를 타려고 올라간다.
미야지마에서 가장 높은 산 미센(彌山)은 해발 535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로프웨이 타지 않아도 올라갈 수 있지만
나는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어깨 부러질 것 같은 카메라를 짊어지고 등산 한번 하면
주위 사람들이 어디 아픈거 아니냐 할 정도로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되기 때문에 얌전히 로프웨이를 탄다.

어차피 2일 프리패스 끊는게 여러모로 이득인 터라 일부러 로프웨이를 안탈 이유도 없다.


꽤나 오랜 시간동안 세워져 있었던 듯한 돌맹이들.
산에서 돌맹이를 쌓아 소원을 빈다는 풍습은 세계 각지에 많이 퍼져있나 보다. 중국이나 몽골도 그랬던 것 같은데.


로프웨이는 얼마 기다리지 않고 쉽게 탔다.
사실은 4인이 앉아야 적당할 크기의 쥐꼬리만한 케이블카에 6명을 우겨넣었다. 에어콘도 없다. 찔것 같았다.
아이가 끼어 있었다거나, 6명 모두가 일행이었다면 올라가는 동안 즐겁게 대화라도 하겠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앉혀놓으니 원래 이럴때 더 소심해지는 일본인들이라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다.
숨소리마저 조용히 내려고 노력하는 듯한 정적이 10분간 계속되었다. 535m 밖에 안되는 높인데도 꽤나 오래 걸린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아뿔싸. 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인파가 줄을 서 있다.
미센 정상까지는 로프웨이를 한 번 갈아타야 했던 것. ㅡㅡ;
이게 또 방금 전처럼 6인승 케이블카가 수십 대씩 다니는 게 아니라 조금 더 큰 20인승 단 두대가 교차하는 형식으로 손님을 실어나르고 있어서
10분에 한번씩 20명의 사람을 태울 수 있는 것. 그래서 이 두번째 탑승장은 엄청난 병목현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난 여행가서 맛있는 음식 먹는걸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로 여길만큼 먹는걸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당연한듯이 서 있는 음식점 앞의 긴 행렬에는 끼고 싶지 않다.
30분, 1시간동안 줄서서 겨우 먹을수 있는 음식이 정말 기똥차게 맛있다고 해도
무언가에 쫓겨서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

음식은 어디에서나 마음 느긋하게 먹는게 내 신조라서, 설사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10분 이상 기다려 먹진 않는다.
한마디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줄서서 기다리지 않는게 내 성격인데...
이번엔 어쩔 수 없는 경우다.
이미 여기까지 올라와 버렸고, 프리패스에 왕복요금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데 이걸 타지 않고 걸어간다는게 너무 아까워서.

1시간이라는 끔찍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내가 탈 차례가 다가왔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정말 케이블카가 2대밖에 없다.
정확하게 왕복 교차이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순간 정상 쪽에서도 케이블카가 도착한다는 뜻.

정말 일본인들 줄서서 기다리는 것 하나는 놀랍다. ㅡㅡ;


총 2시간에 가까운 기다림끝에 드디어 미센 정상에 도착했다. 사실 걸어 올라가는거나 거의 비슷한 시간이다. ㅡㅡ;
로프웨이 출구와 이어진 휴게소에는 '작은 물건이나 먹을 것등은 무료 락커에 넣어놓고 나가세요' 라고 주의문이 적혀있다.
원숭이들이 가져갈 수도 있기 때문에.

미야지마를 기대했던 이유 그 두 번째. 철장에 갖혀있지 않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원숭이를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정말로 바위 위에 무심하게 원숭이가 앉아 있다.
사람에겐 아예 관심도 없는 듯. 오랜 경험으로 이제 사람이 먹을걸 들고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섬 밑의 사슴들은 사람이 다가가서 만지거나 하면 조금씩 몸을 빼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이곳 원숭이는 전혀 미동도 없다.
사슴과 달리 원숭이는 정말로 만지면 안되기 때문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철저하게 주의를 따르는 모양이다.

사실 나는 동물이라면 사람 빼고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중에서는 원숭이가 제일 마음에 안든다.
사람하고 너무 닮아서일까. 성격 괴팍하고 욕심많고 생존 경쟁만큼이나 동족 안에서의 혈투가 치열한 점 등등.

이곳의 원숭이는 워낙 편안한 생활을 즐겨서 그런지 그래도 얼굴에 여유가 넘치는 거 같다.


미센 정상에서 보는 절경은 한 눈에 들어오는 세토 내해(瀬戸内海).
아쉽게도 쨍쨍하다고 할 만큼 하늘이 맑은 편은 아니라 약간 흐릿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볼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세토 내해는 지도상으론 얼핏 보기에 호수처럼 보이는 좁은 바다로, 그 안에 약 3000여개의 작은 섬들이 몰려있서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저 바다 어디엔가는 양아치 행세를 하며 신기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박살낸다는 인어아가씨도 있는 모양.


바다와 산이 맞닿아 있는 곳의 경치는 나쁜 곳이 별로 없을 거다.
로프웨이 기다리느라 고생 좀 했지만 올라오고 나서는 기분이 상쾌해졌다.

열심히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 노부부가 다가와서 카메라 셔터 좀 눌러 달라고 하신다.
'난 일본어 모태요' 라고 둘러댈수도 있었지만,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착각당하는 경우가 원채 많다 보니 이젠 그냥 익숙해졌다.
아마 내가 산더미같은 DSLR을 들고 있어서 부탁하기 쉬웠나보다.

카메라는 소니 A200 모델에 18-70 구번들 렌즈. 렌즈 성능이 좀 안습이라 내가 만약 A900 쓰고 있었다면 내 렌즈를 마운트해서 찍어드렸을 텐데.
오토모드에 맞춰진 상태라서 그냥 셔터만 누르면 된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사실은 A 모드로 좀 조절해서 찍어드릴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나도 장비만 화려하지 생초보에 불과하니 아는 척 으스대는 느낌이 날까 해서 그냥 시키는대로 구도만 맞추고 찍어드렸다.

'2장씩 찍어주세요' 라고 웃으며 말씀하셔서 약간 화각을 달리해서 한 장 더 찍어드렸다. 뭔가 아는 할아버지로군.
병맛 포커스를 자랑하는 캐논의 예전 보급기들은 어떤 사진을 찍던지 2~3장 셔터 누르는건 기본이었다.


이 미센이라는 산은 정상부분이 완만한 길로 연결되어 있어 여기저기에 많은 볼거리들이 놓여있다.
대부분이 불교 관련 사찰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806년에 코우보우(弘法) 스님이 켜놓은 이래 1200년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는 '꺼지지 않는 불'이었다.
그런데 시간상으로도 거기를 왕복해서 갔다오면 이츠쿠시마 신사의 썰물 광경을 놓쳐버릴 가능성도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

이 '꺼지지 않는 불'은 히로시마 원폭 공원 앞의 '평화의 등불'에도 쓰이고 있다. 미센에 있는 이 불에 끓인 물이 만병통치라는 소문도.
미야지마는 히로시마시 전체보다 더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세밀한 곳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려면 여기서 1박 하는게 나을 듯 하다. 괜찮은 숙소 가격이 꽤나 후덜덜하지만.

그래서 거기까지 가진 못하고 전망대 바로 옆에 있는 사자바위(獅子岩)나 찍고 놀았다. 이게 왜 사자바위라 불리는지까지는 찾지 못했다.


전망대에는 동전을 넣어 작동하는 제대로 된 망원경도 있었지만 이렇게 생긴 것들도 있다.
몇개씩 세워져 있는 이 물건을 들여다보면 특정 지역이나 섬이 보인다나보다. 시코쿠(四国)나 츄코쿠(中国) 관련해서는 지식도 별로 없고 아는곳도 없어서


저기를 통해 보이는게 뭔지 잘 모르겠다.
뭐, 그런거 알고 가면 좀 더 우쭐하거나 여행 후기 풀어낼 때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모르고 가는 여행은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니까.
맨날 '아는만큼 보인다'며 여행 전 무슨 수능이라도 공부하듯이 책을 붙잡고 씨름하는 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가이드역할을 맡아가며 하는 여행으로 충분하다.


미센 정상의 풍경은 일본인들이 자랑할만큼 풍요롭고 차분한 멋진 광경이다.
사실 보기싫은 현대식 건물들이 밑에 주르륵 보이지만 않는다면
바다와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미륵봉에서 내려다보는 한국의 한려수도도 이곳 못지 않은 절경을 연출할 텐데.

그런 미세한 조건들이 합쳐진 탓에 이 곳이 그렇게 인기있는 거겠지.

찜기에 넣고 삶았더니 탈출하려는 녀석이 있었군요.

제 뱃속으로 탈출시켜줬습니다.

'Photo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컬러풀 대구, 신천 축제  (8) 2009.10.11
PSP GO, 소니의 멀티미디어 강화형?  (4) 2009.10.08
팬더는 미워할 수 없습니다  (4) 2009.10.06
성묘  (2) 2009.10.05
추석의 즐길거리  (6) 2009.10.03

이츠쿠시마 신사 뒷쪽에 마련된 미니 신사(?)
내 머리통만한 크기인데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공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란. 삶겨져 있는 싱싱한 놈이라면 불쌍한 중생의 배를 보전하기 위해 몇개 까먹었을텐데.


손을 좀 씻을까 싶기도 했지만, 신종플루 예방 차원에서 휴대용 알콜 핸드워셔도 갖고 왔고, 카메라에 물 묻히기 싫어서 패스.
아까 단풍만쥬를 먹으면서 렌즈를 칼 짜이스 ZF 플라나 50.4으로 바꿔끼웠다.
여행중에 렌즈 갈아끼우는 것도 꽤나 귀찮은 일이라 보통은 같은 장소를 두 번 돌아볼 생각하고 왕복점에서 렌즈를 갈아끼우곤 하는데
지금은 그럴 시간적 여유도, 체력적 여유도 없으므로 그냥 마음 내키는 장소에서 바꿔봤다.


카메라 렌즈들이 워낙 상향평준화 되어서 이젠 고성능이라 말하기도 뭣한 칼 짜이스지만
세계 3대 광학 메이커에서 항상 이름을 올려놓는 응축된 기술력은 어디 가는거 아니다.
웃기게도 AF 가 안되는 녀석이라 수동으로 조리개와 초점거리를 설정해야 하지만
요즘같은 광속 AF 시대에서는 오히려 이런 녀석이 하나 있어야 초점 링 돌리는 손맛을 계속 느낄 수 있다.


ZF 플라나 50.4의 특징이라면 깊은 색감과 회오리 빛망울.
색감은 확실히 깊긴 한데 대부분 RAW 로 촬영해서 보정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렌즈보다 센서의 수광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라...

회오리 빛망울은 보이그랜더나 칼짜이스 예전 렌즈들의 특징 중 하나인데, 조리개를 개방할수록 빛망울이 회오리 모양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지금 히로시마 여행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았나? ㅡㅡ;


예전에 쿄토에서는 건물 밖에서 찍으려는 사진도 제지당해서 기분이 팍 상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왠지 우물쭈물하며 슬그머니 카메라를 들어 밖에서 살짝 촬영했다.
그냥 찍어도 되냐고 시원하게 물어보지 못하는 소심쟁이. ㅡㅡ;

사실 별로 관심갈만한 상품은 없었다. 동물을 좋아하니 사슴 관련 인형이나 그런것들은 조금 구미가 당기긴 했다.


사슴들은 어디 갔다놔도 그림이 되는구나.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자 슬금슬금 다가온다. 아마 먹을거 없나 보러 오는거겠지.
이 ZF 50.4 렌즈는 수동이면서 초점 링이 움직이는 범위가 아주 넓어서 굉장히 스무스하고 세밀한 포커스 조절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 말은 반대로 움직이는 피사체에 대한 신속한 포커싱이 어려워진다는 뜻도 된다.

어지간한 MF 렌즈는 거의 AF 쓰듯이 추적하면서 찍을 수 있지만 이 녀석은 그게 그리 쉽지 않다.


그래도 노력해서 안 될게 뭐가 있으랴. 슬금슬금 움직이는 사슴 따위는 나의 초점링돌리는 신묘한 손가락에 한방이다.
겨우 D3 정도 되는 뷰파인더가 있어야 그나마 찍지. 135 판형 필름바디 대비 크롭바디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MF 로 초점 잡는건 괴롭다.

A900 의 눈동자 굴려야 할 만큼 광활하고 밝은 뷰파인더가 그립다. ㅡㅡ;


시간도 어지간히 되었겠다 로프웨이를 타고 미센(彌山)으로 가기 위해 산을 오른다.
중간중간에 일반 가정집도 많이 있는데, 신식 주택집에도 은근히 옛 정취가 풍기는 느낌의 건물들이 있어서 재미있다.


산 위의 사슴들은 밑의 녀석들보다 좀 더 순수한 눈을 하고 있나 싶은 경건한 마음이 들었는데
먹이를 주지 않자 묘한 목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신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면 의연함을 기르라고 해 주고 싶네.


날씨가 더웠지만 그늘이 시원해서 그럭저럭 산을 올라간다.
로프웨이를 타면 떡하니 정상에 도착할 것 같았는데, 로프웨이 자체가 이츠쿠시마 신사에서 산 위로 좀 올라가야 있다.
사슴도 있고 풍경도 좋으니 느긋하게 셔터 눌러가며 발걸음을 옮긴다. 어차피 썰물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미센 위에서 시간보내고 와도 충분하다.


앞서 말한 칼 짜이스 플라나 렌즈의 특이한 회오리 빛망울.
보통 이 렌즈를 구입하면 처음에 이 빛망울에 현혹되어 이런 심도낮은 사진을 마구 찍어다가, 어느순간 회오리가 실증나서 평범하게 찍는다는 소문이...


빛망울이 아니더라도 수동렌즈의 손맛을 느끼기에 최적화된 녀석이라 갖고 다니며 링을 돌리는 것만 해도 재미있다.
색감도 과연 칼 짜이스라고 깊고 진득하게 잘 나오는 편이고.


로프웨이까지 가는 길은 겨우 수백미터밖에 안되지만 11월쯤에 오면 여기서부터 화려한 단풍잎이 관광객들의 혼을 빼 놓는다.
이츠쿠시마 신사를 둘러싼 단풍도 절경이지만 미센 산 위에서 바라보는, 세토 내해와 어우러진 원시림의 단풍은 금강산의 그것에 비견될만한 매력이 있다.


일단 렌즈를 바꿔끼고 출발하면 어디서 쉴 만한 장소가 안 나오는 한 계속 그 렌즈로 촬영한다. 귀찮아서.
오히려 좁은 사물을 포커싱할때는 측거점 위치 신경쓸 필요없는 수동렌즈가 더 나을 경우도 많다. 뷰파인더가 넓고 밝다는 전제 하에서만.


오중탑 뒤쪽을 통과해서 계속 걸어오면 이곳에서 만나도록 되어 있나보다.
조그마한 토리이와 그 위에 올려진 돌맹이들이 앙증맞다. 아마 소원을 바라면서 올려놓은 거겠지.
크고 단단한 토리이(뭔가 어감이... ㅡㅡ;)도 좋긴 한데, 산속 산책길 안에서 만나는 이런 조그만 토리이도 엄청 마음에 든다.


신사하고는 꽤 떨어져 있지만 이곳에서도 누가 오미쿠지(おみくじ)를 나무에 묶어놨다.
원래는 나쁜 점이 나왔을 때 액땜한다는 의미에서 나무에 묶지만 요즘엔 그런거 없이 좋던 나쁘던 기념으로 마구 묶더라.
뜯어서 뭔 내용일까 보려고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럼 묶어놨던 사람에게 미안한 듯 해서 얌전히 사진만 찍었다.


아마 저 돌은 사람이 일부러 올려놓은 것이겠지.
시끌벅적한 이츠쿠시마 신사와는 달리 새소리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 소리만 들리는 산 속에서
이런 살짝 인위적인 듯한 풍경을 만나면 기분이 아늑해진다.
뭔가 거창하게 소원을 비는 것 보다 이렇게 별 것 아닌 듯 무심하게 뭔가를 바라며 행하는 소박한 느낌이 좋다.


로프웨이로 가는 도중 물이 별로 남지 않은 계곡 위를 다리로 건넜는데 이곳이 관광 명소중에 하나인 단풍계곡 모미지타니(紅葉谷)라고 적혀있다.
11월에는 아마 다리 위가 구경하고 사진찍는 관광객들로 꽉꽉 차 있겠지.


로프웨이 타는 곳까지 올라가니 지금부터 50분은 기다려야 한단다... ㅡㅡ;
일단 티켓 순서대로 올라가기 때문에 지금 티켓 받아놓고 밑에서 놀다 와도 된다니 일단 티켓부터 받았다.
로프웨이 바로 밑에는 음식점이 있어서 우동이나 맥주 등을 팔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산 속 음식점이 비싸기로 유명한것은 다를 바 없다보다.
혹여 굴 덮밥 같은거라도 있다면 한끼 먹어볼까 싶었지만 그런 것도 없어서 그냥 앉아서 물이나 마셨다.


산 속에서라면야 50분 정도 시간 때우는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카메라가 있다면 더욱 그렇고.
가방 속에는 E-Book 도 있으니 읽다 남긴 소설을 펼쳐들어도 금방인데
기왕 왔으니 그냥 사진만 좀 찍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의자에 걸터앉아 즐기기로 했다.

여행중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평범한 휴식이 귀중한 명상의 시간이 되고, 훗날 추억을 되돌리는 연료 역할을 하는 것이 여행.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금새 40분이 지나갔다.
이제 슬슬 로프웨이로 올라가서 줄을 서 봐야겠다. 거기는 다시 사람들이 만든 줄로 가득가득하겠지.


사슴은 애어른을 가리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에게서는 멀어지지만, 적당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진 아이는 삥뜯기 좋은 표적.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 역시 먹을거 주지는 않더라.


이츠쿠시마 신사가 가까워지자 길게 늘어선 행렬이 보인다.
그들의 시선이 앞서있는 곳엔 이 조각배가 놓여있는걸로 봐서 아마 관광객을 태우는 유람선인가 보다.
공짜로 태워줄리가 절대로 없으니 무리.
사실 미야지마는 로프웨이 말고는 돈 내고 움직일 이유가 별로 없는 곳이다. 섬 전체가 볼거리 많은 곳이니까.
내 자금에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이런 유람선보다 굴 구이나 몇조각 더 먹겠다.


좀 더 큰 배도 있다. 아마 미야지마에서 가장 유명한 오오토리이(大鳥居)는 썰물 때가 아니면 다가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배로 주변을 둘러보는 듯?
물위에 둥둥 떠서 오오토리이를 구경하는것도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나는 썰물의 힘을 믿는다.


아마 이츠쿠신사의 진짜 입구는 이곳에서부터 시작인가보다.
여기 오기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츠쿠신사 경내는 입장료도 300엔으로 꽤 비싸고, 엄청난 인파때문에 쓸려다니는게 고작이고, 중요부분은 보존을 위해 공개하지 않으므로
거기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신사 구경하러 온게 아니라서. 진짜 구경하고 싶은 것은 로프웨이를 타고 산꼭대기로 가야 있다.


어느 신사나 마찬가지지만 일단 정문의 이 토리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첫 번째 관문인 만큼, 지역별로 나름 특색이 있다.
돌덩이로 만들어진 토리이 치고는 꽤 큰편으로, 명물인 수중 오오토리이때문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게 또 돌맹이의 거친 감촉과 어울려서 나름 듬직하고 우직한 느낌을 주는게 마음에 든다.


여기라고 사슴이 없을리가.
훔친건지 받은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종이는 몸에 별로 좋지 않을텐데...
굶고 살진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하는 행동은 굶어죽기 일보 직전처럼 먹을걸 갈구한다.
늘어진 모습이 어울리긴 하네.


이곳에 왜 그리 사슴이 많은가 하면, 원래 일본에서 사슴은 가장 신에 가까운 동물이자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로 신성시 되어왔기 때문.
일본에서도 신성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미야지마라서 사슴이 많은가 보다.

이곳 미야지마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신비한 이츠쿠시마 신사의 박력과 고립된 섬이 가지는 독립성으로 인해
수백 년 전부터 나무의 벌목이 금지되어 있고, 섬 안에서의 출산, 장례도 금지되어왔다.
그래서 이 곳엔 묘지가 없다.

덤으로 강아지 등의 동물도 살 수 없었다지만 그건 주민들의 경우일 뿐, 아주 많은 관광객이 이제는 개들을 끌거나 안고 들어온다.


신성함과 출산, 사망을 반대급부로 묶은 사상이 어떻게 보면 참 어리석다.
사실은 출산, 사망만큼 신성한 일이 있을까.
신성이라는 개념이 사람만의 전유물이라면 아마도 이곳은 생물학적 행위를 비신성함으로 여겨왔을 터.

신성함을 드러내는 방법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인간다움, 혹은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자연의 순환고리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방법과
철저한 군림자로서의 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한 비인간적인 엄숙함을 고취시키는 방법.

미야지마가 선택한 방법은 아마 두번째겠지. 지금은 그걸로 돈 벌어먹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발견한 쓰레기.
저녁에 이곳으로 다시 오게되는데 쓰레기보다 더 재미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좀 많고 흐린 편이라 아쉬웠는데, 쨍한 날씨의 미야지마는 정말 멋진 풍경을 자랑할 것이라 상상했다.
특히 산 위에 올라가면 세토 내해(瀬戸内海)의 절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더더욱.


이츠쿠시마 신사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있었다.
공짜로도 저런 곳에서 줄 따라가며 구경하고 싶지 않은데, 입장료까지 받으니 나하고는 인연이 없는 곳이다.
쿄토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저런데 돈 내고 들어가서 얻는건 아쉬움밖에 없었으니 깔끔하게 포기.

굳이 안보여줄곳은 어차피 안보여주는 신사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 주변의 풍경은 감탄할 만 하니 문제될 것 없다.
지금은 밀물때라 신사 전체가 바다위에 떠 있는 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것이 바로 신성함의 근원 중 하나겠지.


이츠쿠시마 신사는 59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현재 신사는 1200년 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바로 옆의 히로시마가 원폭으로 개발살이 났음에도 무사했던 미야지마라서 일본인들에게는 더더욱 소중한 장소일 거다.
그 신사와 함께 저기 보이는 오중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귀찮아서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저 오중탑은 사실 미완공된 채로 남아있다고 한다.
당나라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자세히 보면 꽤나 묘한 느낌을 주는데, 1407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이츠쿠시마 신사는 절경은 절경이다.
사람이 없이 조용했다면 정말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을 텐데 이제는 그런 낭만을 즐기기엔 너무 유명해져 버린 것 같다.

유명 관광지에 서 있을 때 항상 아쉬운 점.
관광객으로 바글거리는 문화 유산은 뭔가가 빠져나간 듯 힘이 꺾인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아마 내가 사람 북적이는걸 싫어해서 그렇겠지.


신사 주변에도 노닐거리는 많다. 수많은 가게들과 사슴들.
오모테산도를 비롯한 상가들은 관광객들 때문에 생겨났다기 보다는, 수백 년 전부터 이어오는 전통있는 가게들.
일본인과 상업정신을 따로 떼어낸다는 것은 일본 역사의 중요한 고리를 빼먹는거나 마찬가지.

그나마 관광 천국 일본에서 그 장사꾼 정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줄 수 있는 이유다. 그네들은 이미 천 년전부터 장사꾼이었으니.


정오가 지나고 태양이 달아오르자 살짝 지쳤다. 아침도 안 먹었으니.
드디어 즉석해서 미야지마의 명물 과자인 단풍잎 만쥬를 만들고 있는 곳을 발견했다.
주머니에 돈은 간당간당하지만, 그리고 별로 감흥을 불러일으킬만한 맛이 아니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관광객 흉내나 한 번 내볼까 싶어서 예전부터 계획해 왔으니 이번엔 큰맘먹고 먹어보기로 했다.
속에 넣는 앙금은 한국에서도 익히 먹을 수 있는 갈아만든 앙금과, 통짜 팥이 든 앙금이 있었는데
주문이 밀리다 보니 바로 먹을 수 있는건 갈아만든 앙금 밖에 없었다.


갓 만들어서 따끈따끈한건 참 마음에 들었다.
단품으로 3개 사서 가게 옆 마루에 걸터앉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선물용으로 15개, 20개씩 포장된 만쥬를 여러 개 사고 있었다.
이게 아마 한개 70엔 정도 했을거다. 3개 210엔. 비행기타고 일본까지 간 녀석이 쪼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애초에 난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걸 많이 먹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차라리 돈 좀 모아서 굴 요리를 먹지. 굴 요리는 이거보다는 훨씬 비싸다.
그리고 원서 사려고 생각했던 게 좀 있어서 어쨌든 책값을 위해 돈을 아껴야 했다.

관광지 기분 한 번 내보려고 샀는데, 방금 만든 녀석이라 그런지 달콤한게 휴식을 취하며 먹기엔 딱 좋은 느낌.
왜 이런 단풍잎 만쥬가 유명하냐. 이곳 미야지마의 단풍은 정말 눈돌아갈 정도로 멋지기 그지없기 때문에.
불행히도 이곳은 단풍이 좀 늦게 들어서 11월이나 되야 붉게 물든 이츠쿠시마 신사와 미센 산(彌山)의 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

그런데 단풍이 들 때의 미야지마는 정말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꽉꽉 차버리기 때문에, 보고는 싶어도 용기가 안난다.


신사 뒷쪽까지 빙 둘러서 걸어갔다. 출구쪽에는 들어오지 마시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는데
얼굴에 철판 깔면 들어갈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의 따가운 시선을 물리칠 정도의 얼굴 두께가 아니라서 포기했다.

신사 뒷쪽의 무료지역에도 볼거리는 많이 있는데, 바다위 오오토리이를 만들 때 사용했다는 원목이 전시되어 있었다.
1875년에 세워진 오오토리이는 워낙 거대해서 바다 속에 파묻은게 아니라 그냥 세워놓기만 했다. 토리이 자체의 무게로 서 있는 것.


상당히 거대한 원목이었는데, 오오토리이의 기둥 둘레가 10m 라고 하니 납득갈만한 크기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가 참 마음에 든다. 수백, 수천년 있다보면 이건 돌처럼 변하겠지.


사진으로 이 나무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서 무단으로 관광객을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꽤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현지인들이 많이 와 있어서 (골든위크라 다들 여행가느라 정신없다) 내가 눈에 뜨이지 않는다는게 다행일까.

머리에 버프를 둘러쓰고 고글을 끼고 있어도, 이런 유명 여행지에서는 눈길을 끌지 않아서 좋다.
가끔 눈길을 끌게 되면 대부분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말을 걸어온다는게 항상 의아스럽긴 하지만.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