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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놀타'에 해당하는 글들

  1. 2010.02.07  오사카 여행기 6편 - 비내리는 시텐노지 12
  2. 2010.02.02  오사카 여행기 5편 - 라멘과 전망대 18
  3. 2010.01.31  오사카 여행기 4편 - 명물 카레와는 연인도 아닌데 텐포잔 관람차 20
  4. 2010.01.30  오사카 여행기 3편 - 카이유칸의 고래상어 24
  5. 2010.01.29  오사카 여행기 2편 - 산타~ 마리아~ 17
  6. 2010.01.29  오사카 여행기 1편 - 신세카이와 츠텐가쿠, 오덕로드 8

날씨가 심하게 흐립니다.
어제 텐포잔 관람차의 색깔을 분명 흐림을 뜻하는 녹색이긴 했는데, 이렇게 흐린 건 불안하군요.
저는 어제도 친구의 코 고는 소리덕분에 자다깨다를 반복했습니다.
서울서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도 잠을 좀 설쳤는데, 일본 와서 이틀 연속으로 코 고는 소리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했습니다. 동생분도 몸 상태가 안좋은데 저도 자칫하면 뻗어버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침에 스테이터스 이상이... ㅡㅡ;

일단 나가 돌아다니다 보면 제정신으로 돌아오겠지 싶어서 숙소를 뛰쳐나왔습니다.
신세카이 주변엔 요즘 한국에서 보기 힘든 이런 옛 극장도 유지되고 있더군요. 그리운 풍경입니다.
상영중인 영화는 서브웨이123, 트랜스포터3, REC 등이 있네요. 성인용 영화도 상영중이니 참 정겨운 풍경이로세.


오늘 아침에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시텐노지(四天王寺)로 향했습니다만...
난리났습니다. 결국은 비가 오더군요.
 
역시 어느 나라나 기상 예보는 믿을게 못된다는게 정설인가봅니다. 관람차녀석...
일단 우산도 하나 없는 일행이라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이상 여행의 뽕을 뽑기 위해 무조건 전진밖에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냥 슬금슬금 내리는 편이지만 마음은 불안하군요. 여행때 가장 만나기 싫은 녀석입니다.


문을 통과하니 파마+염색한 아줌마 같은 녀석이 눈에 들어오네요. 문화유산은 아닙니다.
사실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세운 애틋한 녀석입니다.


동생분이 사찰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주유패스로 무료 관람가능한 곳이라 찾아오긴 했는데
이곳 시텐노지는 그 역사에 비해서는 남아있는 건물이 거의 없어서 (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다고 해도 됩니다)
진짜 사찰 매니아에게는 조금 아쉬운 곳이기도 합니다.

시텐노지는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59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며
일본 최초의 불교 사찰이기도 합니다. 백제인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쇼토쿠 태자라 감회가 새롭더군요.
하지만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이곳의 사찰은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되었고, 현존하는 건물은 모두 1970년대에 지어진 것들입니다.

사실상 일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사찰은 나라(奈良)의 호류지(法隆寺)에 세워진 서원가람(西院伽藍)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기도 하죠.


죽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영령당(英靈堂)입니다.
앞에 세워진 두 개의 거대한 돌기둥에는 밀어로 보이는 글씨가 새겨져 있군요.
영령당 근처엔 돌로 된 위령비가 많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시텐노지 대부분의 사찰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진으로 남기는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제가 존중하는 불교의 정신은 이런 건물이나 문화제, 부처 이름 외우는데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한테 사찰문화재라는 것은 그냥 그 시대의 문화와 풍미를 느끼게 해주는 단순한 물건에 불과한 터라
사진을 찍지 않으면 그닥 감흥이 없네요.

그런 고로, 맨날 산위에 올라가서 양초나 켜놓고 자식 수능 대박나기를 손이 닳도록 비는 어미아비들의 모습도
'불교를 욕보이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아요.
차라리 세계 평화나 빌겠습니다.


빌고 싶으면 요 정도로 소박하게 하라니까요. ㅡㅡ;
니네 자식들 종이 위의 문제 푸는 등신으로 전락시키고 싶어서 사기꾼들한테 돈 쳐바르지 말고.

아~ 교육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군요. 릴렉스하고 다시 정신을 시텐노지로 워프시키겠습니다.


비가 주섬주섬 내리긴 하지만 그것도 꾸준히 맞으니 심히 불쾌해지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동생분은 모자도 있고, 저도 버프를 쓰고 있으니 직접적으로 머리에 타격을 받진 않는데
(친구는 뭐 쓰고 있었나? 기억이 없습니다. 쏘리. ㅡㅡ;)

이곳은 약사여래, 사천왕상이 보존되어있는 육시당(六時堂)입니다.
시텐노지의 중앙에 위치한 큰 사당이며, 매일 6번씩 영령에게 예를 갖추는 의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육시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당연하게도 사진 촬영은 금지. 이곳에서는 많은 현지인들이 경건하게 합장을 하더군요.


이곳은 카메이 부동당(亀井不動堂) 이라는 조그만 건물로, 건물 안에는 이끼에 덮힌 부동명왕상이 있습니다.
이곳과 바로 옆의 카메이당(亀井堂)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은 시텐노지의 본당인 금당(金堂)의 지하에서 나오는 물이라고 하는데요.
쇼토쿠 태자가 이곳의 샘물에서 부동명왕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사당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저 부동명왕상에 샘물을 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뭐 그런 것이겠지요.


시텐노지의 대표 스팟중 하나인 이시부타이(石舞臺)입니다.
이곳 돌무대 위에서 매년 4월 22일 성덕태자의 덕을 기리는 부가쿠(舞樂)가 열립니다.
부가쿠는 당나라의 행사 예식인 당악에서 유래되어 일본 특유의 문화로 발전한 의식으로, 이곳에서 부가쿠가 열려온 지 천 년이 넘었다고 하는군요.
물론 믿거나 말거나.

비가 점점 굵어지는터라 서둘러 이번 시텐노지 공략의 1차 목표중 하나인 보물관(宝物舘)으로 향했습니다.
보물관은 쇼토쿠 태자와 관련된 중요 문화재들을 전시하는 곳으로, 국보급 보물들도 전시되어 있는 터라
문화재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둘러보셔야 할 곳입니다. 입장료를 받는데 주유패스로 무료!
물론 사진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보여드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보물전 내부는 상당히 좁고, 문화재 수도 그리 많은건 아니지만 진득하게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
40분 남짓 열심히 구경한 후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는군요.
오늘중으로 돌아봐야 할 곳이 많은데 계속 비가 내린다면
최악의 경우 우산을 사거나 숙소로 돌아가서 우산을 빌려 나오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곳은 태자전(太子殿)이라고 하는, 쇼토쿠 태자의 덕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한국 역사책에도 잘 나오는 이야기지만 (요즘엔 국사도 필수과목이 아니라면서요? 나라의 망조가 보이네요)
쇼토쿠 태자가 일본 불교, 나아가서 일본 역사와 문화 전체에 미친 영향이 워낙 중요한 지라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건축물이지만 정말 정성들여서 가꾸어 온 모습이 금새 눈에 들어옵니다.
빗소리에 파묻힌 성덕원의 모습이 오히려 더 경건하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원래 이곳의 이름은 성덕원(聖霊院)인데, 요즘엔 그냥 태자전이라고 많이 불린다고 합니다.
태자전 내부 지하에는 2만 2천개의 금동불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아요.


비가 와서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이젠 막 쏟아 붓는군요.
동생분이 뭔가 불만어린 표정입니다. 근데 포즈는 왜 귀여운지? 이거 설정샷이었나? ㅡㅡ;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머리를 싸매고 고심합니다
일단 이곳의 볼거리인 보물전은 관람 마쳤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혼보 정원(本坊庭園)과 중심가람(中心伽藍)이 남았는데
혼보 정원은 이 빗속에 돌러보기란 불가능해서 일단 태자전의 바로 옆에 위치한 중심가람으로 서둘러 향하기로 했습니다.


가람은 불교 용어로, 산스크리트어인 '상가 아라마(sangha- arama)'가 어원인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줄임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승려들이 거주하며 수행하는 장소를 말하는데, 보통 7가지 구조물(불전,강당,승당,주고,욕실,동사,산문)이 갖춰진 구역을 뜻하죠.

이곳 시텐노지의 중심가람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인데,
중문, 오중탑, 금당, 강당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일직선 형식 배치를 이루며, 주위에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일본의 '음미하는' 정원 느낌을 이곳에서도 받을 수 있었네요. 활용 공간으로서가 아닌 미의식의 표출 수단으로 사용되죠.


회랑 내부에서 쏟아지는 비를 피하면서 가만히 가람 내부를 바라만 봅니다.
사실은 이게 제대로 된 감상 방법일지도 모르죠. 빗소리가 일행을 점점 개인으로 흐트려 놓는 듯한 느낌.


중앙의 건물이 금당(金堂), 뒤의 탑이 오중탑(五重塔)입니다.
오중탑에서는 석가모니의 전신사리가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금당은 시텐노지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사방에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으며 중앙에는 구세관음상이 놓여있습니다.


회랑 옆에는 우물도 있었습니다.
상당히 깊더군요. 이런 곳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좀 무서워지죠.


회랑 내부는 차분합니다.
비가 많이 오기도 하고, 좀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그냥 일행들끼리 조용히 서 있었네요.
비는 싫어하지만 이런 차분한 느낌은 좋습니다.

건물 전체가 너무 새것같은 느낌이라는게 참 아쉽긴 했군요.
호류지의 1500년 된 나무 기둥들은 정말 세월의 흐름이 이런거구나 싶었는데.


그냥 부슬비라면 어떻게 맞아가면서 움직이겠지만 장대비는 정말 무립니다.
그래서 그냥 막간을 이용해 사진이나 찍고 놀았죠.
역광도 이런 분위기에선 나름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비가 그칠 기미가 안보여서 결국 근처의 휴게소로 뛰어가기로 결정.
휴게소에서 좀 쉬면서 비가 잦아들길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숙소로 돌아가 우산을 빌린다던가 할 수도 있지만 왠지 여기서 시간 보내는것보다 돌아가는 시간이 더 아까운 것 같아서.


가기전에 가람의 정문인 인왕문 앞에서 강제로 기념사진을 찍게 만들었습니다.
양쪽의 인왕상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녀석들이죠. 5.3m의 높이에 무게는 1톤입니다.
그냥 찍으면 재미 없으니 인왕 모습을 주문했죠. 동생분은 잘 따라줬습니다. 손바닥에서 여래신장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찍기 싫다고 잡아빼는 친구를 협박해서 억지로 포즈를 세워넣고 찍었습니다.
여행때는 이런 사진 남기는게 즐거움인데 말이죠. 지난 번 도톤보리의 글리코 앞에서는 실패했지만 이번엔 성공.


휴게실에서 음료수와 과자를 먹으며 1시간 반 정도를 뒤척였습니다.
어제 잠을 하도 못자서 눈만 감으니 졸음이 오더군요.

내일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쿄토 당일치기인 터라, 이 체력으로 오늘 밤도 코 고는 소리에 잠을 못자면
여행에 중대한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오늘 밤은 따로 숙소를 잡아 도망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밤에 친구가 코를 골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ㅡㅡ;

하늘이 도운건지 결국 기다리다 보니 빗줄기가 잦아지더군요.
완전히 그친 건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돌아다닐 수 있을만큼 약해졌습니다.
이제 시텐노지의 마지막 볼거리인 혼보 정원으로 향합니다.

시간관계상 다음 포스팅으로...


WTC 코스모타워 전망대로 향하는 내내 일행은 '여기가 아닌거 아녀?'라고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주유패스 무료쿠폰에도 등록될 만큼 관광지로서는 알려진 곳임에도
정말 사람 흔적이라고는 풀떼기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산했거든요.

마치 3년전 도쿄 오다이바의 황량한 벌판을 세명이서 걸어다닐 때의 기분을 맛보는 듯 했습니다.
뭔가 잘못 찾아온것 같은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일단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행히도 제대로 찾아오긴 했네요. 티켓을 끊고 승강기를 타고 쑤욱 전망대까지 올라갑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계속 긴장긴장했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니 사람 모습이 좀 보여서 안도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바깥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어 덜덜 떨고있는 고소공포증 친구를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떨어지지 않도록 갑자기 어깨를 잡아밀어주니 고양이처럼 튀어오르더군요)

이곳 에스컬레이터도 경사가 꽤 심하고 아주 길게 늘어져 있어 친구는 결코 붙잡은 손을 놓지 않더군요.
원래 전망대엔 크게 관심이 없지만 친구가 이렇게 즐거워해주니 찾아가는 보람이 생기네요.


전망대 내부는 아주 어둡습니다. 조용하고 어슴푸레한 조명 덕분에 야경을 감상하기엔 좋은 환경이네요.
연인들을 위한 칸막이 의자도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어서 커플끼리 실컷 염장질 벌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오사카시의 모습은 정말 거대했는데,
이게 대구시 면적의 1/4밖에 되지 않는다는게 뭔가 어색하군요.

ISO400짜리 필름을 장전한 카메라로 삼각대없이 야경을 찍으려고 하니
평평한 장소 잘 물색한 후 지갑 등을 렌즈 앞쪽에 고아넣어 높이를 맞추고
M 모드로 적절한 노출값과 셔터스피드를 준비한 후 5초 타이머 촬영으로 셔터 눌러놓고
약 20초간 필름에 기록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게 됩니다.

귀차니즘때문에 삼각대는 여행에 가져가지 않는 편이라 (고릴라포드는 나중에 하나 사볼까 생각중)
가끔 난감하긴 한데 역시 전망대에는 수평 잡아줄 공간이 있는 편이라 이런 사진도 그나마 건질 수 있네요.


필름카메라는 현상 때까지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보험용으로 DSLR도 같은 방법을 이용해 찍었습니다.

오사카의 명물인 2개의 달을 잘 담아냈군요. (믿습니까?)

오른쪽에 일행이 하루종일 쏘다녔던 베이에이리어 텐포잔이 보입니다. 관람차도 녹색으로 빛을 발하네요.
로또 당첨되었다면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한 번 가봤겠지만...


내려갈 때도 결코 손을 떼지 않는 착실한 친구.
여기서 밀어버리는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그냥 놔뒀습니다.


전 랜드마크 빌딩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별 감흥이 없어서
그냥 야경사진 몇 장 건진것에 위안을 삼고 빌딩을 빠져나왔습니다.

이곳 코스모타워엔 예식장도 있어서 자금 넉넉하게 가진 사람들은 아찔한 높이에서 화려한 경관을 즐기며
결혼식을 올릴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이용하는지는 알 수 없네요.


베이에이리어를 빠져나온 일행은 지친 몸을 이끌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도톤보리(道頓堀)로 향합니다.
도톤보리는 야스이 도톤(安井道頓)이라는 사람이 1612년에 만든 물자 수송용 인공 하천이었는데
에도시대 들어 하천의 양쪽 거리가 화류계로 점령되어버린 후 그때부터 쭈~욱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로 자리잡아왔습니다.

에도시대땐 상점들의 입구가 강 반대편으로 나 있었고, 건물 뒷쪽이 하천과 바로 맞닿아 있어서
창문을 열면 바로 펼쳐지는 하천의 모습을 구경하거나, 하천에 배를 띄우고 술과 벚꽃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죠.
지금은 타유우(太夫 - 최고급 매춘부)들이 있던 곳에 수많은 음식점과 주점이 즐비하게 늘어섰지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곳의 열기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도톤보리는 옛 정취와 소란스러움이 공존하는 서민적인 느낌의 거리입니다.
킨류(金龍) 라멘이나 움직이는 게 간판으로 유명한 카니도라쿠(かに道楽)등등 몇몇 거대 체인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좁은 골목 여기저기에 작게 펼쳐진 숨겨진 맛집들이 포진해있는 느낌이죠.
퇴근길에 가볍게 한 잔 마시는 조그만 선술집 등이 도톤보리의 분위기를 설명해 줍니다.

이와는 반대로 도톤보리하천 북쪽에 위치한 거리 신사이바시(心齋橋)는
도쿄의 긴자(銀座) 명품거리를 생각나게 하는 최신 아케이드의 집합소입니다.
전 세계 최고급 명품 부티크와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최신 패션샵, 악세사리 등으로 가득 차있죠.

조그만 하천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극단적인 모습의 두 거리가 마주보고 있는 느낌은 참 신선합니다
저희 일행은 신사이바시에서 뭔가 살 생각은 없었으니 그냥 도톤보리의 라멘집을 향해 출발.


도톤보리라고 해서 다 옛날 정취만 풍기는 건 아니죠.
이미 일본인들의 생활 깊숙히 파고든 파칭코는 어디든 그 거대함을 자랑합니다.

자전거 여행때도 놀랐지만, 인구 3만도 안될것 같은 조그만 마을에도 거의 백화점급의 파칭코점이 세워져 있는 걸 보니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파칭코는 일본인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인가 했네요.


요런 조그만 골목 깊숙히 정말 제대로 된 맛집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죠.
이번엔 도톤보리에서 맛있다는 라멘집을 미리 알아보고 온 터라 정해진 곳을 찾아 바로 들어갔습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라멘은 킨류 라멘인데요, 대문 앞 장식도 화려하고
이곳 도톤보리에만 4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라멘계의 큰손입니다만 아무래도 현지인들의 평가는 그닥 좋지 않습니다.

어떤 여행지든 마찬가지지만 관광객들에게 알려진 음식점과,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음식점은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죠.
물론 반드시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음식점이 더 맛있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입맛도 지역별로 많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뭔가 단순히 맛있다는 느낌보다는, 현지의 감각을 좀 더 느끼게 해 주는 독특함이 있는 음식점에서 한끼 해보는게
여행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득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기 때문에, 저는 가능하면 현지인들에게 인기있는 곳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챠슈 라멘으로 이 근방에서 유명한 하나마루켄(花丸軒)입니다.
인기에 비해 정말 좁아서, 바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해도 되겠더군요.

후다닥 자리잡고 앉아서 이곳의 추천 메뉴인 행복가득 라멘(しあわせいっぱいラーメン)과 교자를 시켰습니다.


일단 먼저 나온 교자를 한 장 찍어드리구요.
교사는 아삭아삭하고 따뜻한게 나쁘진 않았지만, 특별히 맛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맛있는 교자가 어디있냐구요? 카스카베시(春日部市)에는 만두 속부터 피까지 전부 수제로 만드는 조그만 개인 교자집이 있습니다.
그곳의 교자를 한번 먹어보면 분명 '교자에도 레벨이 있구나' 하실겁니다.


오늘의 마지막을 장식할 행복가득 라멘입니다.
저는 라멘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일본 여행땐 거의 하루중 2,3끼를 라멘으로 때워도 불평이 없는 타입인데
이번엔 친구 일행과 함께 움직이니 저 좋은데로만 먹을거리를 선택할 순 없어서
벼르고 벼른 이번 라멘은 기대가 컸습니다.

이곳 라멘은 진한 돈코츠(돼지뼈) 육수에 쇼유(간장)으로 간을 하는 것까지는 평범한 라멘과 다르지 않지만
사진에 보이는 두 종류의 챠슈(돼지고기를 양념해서 썰어놓은 편육)가 이곳을 유명하게 한 별미중 하나입니다.
왼쪽 챠슈는 한국에서도 익히 보는 삼겹살, 오른쪽의 진한 챠슈는 콜라겐이 다량 함유된 등뼈살(とろこつ)입니다.
특제 소스와 함께 압력솥에서 푸욱 쪄낸 더블 챠슈는 굉장히 부드럽고 맛이 진합니다.
챠슈 뿐 아니라 국물도 그야말로 진국이고 라멘 면발도 인스턴트와는 비교불가로, 이름값은 충분히 하는 가게였습니다.

윗쪽의 김에는 랜덤으로 글자가 들어가더군요. 위에 적힌건 '행복기원'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

돈코츠 쇼유 라멘은 일본의 라멘 중에서도 맛이 가장 진하고 짠 편이라 여성분들 입맛엔 잘 맞지 않는 경향입니다.
저야 뭐,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었지만 동생분 입맛엔 어땠을지 좀 걱정이 됩니다.

야밤에 라멘 사진을 보니 당장 삿포로로 날아가서 라멘공화국의 라멘들을 전부 섭렵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군요...


라멘으로 배를 채우고 도톤보리를 주욱 둘러본 다음 숙소로 돌아갈 일만 남았네요.
일행들이 전부 다 쇼핑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저 둘러보며 구경만 할 뿐.


그래도 저기는 한번 들어가보자고 합니다.
만물상 개념인 일본의 유명 체인점 돈키호테입니다.

1980년대 처음 선을 보인 돈키호테는 그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영업 방식으로
최단기간에 최고의 급성장을 보인 업체로 손꼽힙니다.

일본 거의 대부분 지역에 점포가 있으며, 대부분 24시간 영업을 통해 심야 고객을 주로 확보하고
일부러 매장 통로를 좁고 어둡게 만들어 심야 고객들의 '탐험적 쇼핑' 욕구를 잘 파악한 마케팅 방법으로 유명하죠.
식료품, 음식, 잡화, 게임, 전자, 화장품, 스포츠 등등 없는것이 없다는게 최대의 특징입니다.
성인용품은 물론이고 코스프레 의상까지 있으니 뭐... ㅡㅡ;

이곳 도톤보리의 돈키호테는 사진의 저 관람차가 유명한 포인트였는데 작년부터 영업을 중지한 상태더군요.
실컷 둘러보고 물건은 사지 않고 나왔습니다.


밤의 도톤보리 하천은 매우 조용합니다.
주유 패스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 중에는 이곳을 순회하는 도톤보리 리버 크루즈도 있었는데
시간상 여건이 안맞아서 패스하기로... 배는 산타마리아 호를 타봤으니 괜찮아요.


참 특이하게도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스팟이 되어버린 글리코 전광판 앞입니다.
오사카 도톤보리에 들러서 이곳을 찍어오지 않으면 여행 못한 사람처럼 취급받기도... ㅡㅡ;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제과회사인 글리코사가 1935년에 세운 전광판으로, 75년동안 같은 자리에서 달리고 있죠.
지금와서는 조금 촌스러운 쫄쫄이 육상선수 아저씨의 모습이 오히려 매력이 되어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 중 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저 전광판은 글리코 카라멜 선전용이었어요. 글리코 카라멜을 먹으면 힘이 솟아요 라는 느낌으로...

저 곳에서는 저 아저씨를 흉내내서 한쪽 발을 들고 두 손을 치켜든 포즈로 사진을 찍는게 유행입니다.
수줍음 많은 친구 일행은 아무리 협박해도 그 포즈를 취해주지 않네요. ㅡㅡ;

그리고 또 하나, 이곳은 여자 꼬시는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이곳 도톤보리는 남부 오사카의 중심지역인 난바(難波)에 속해있는데요.
이 난바라는 단어가 일본어의 헌팅(난파,ナンパ)와 발음이 비슷해서 이곳을 난파다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도톤보리를 빠져나오며 보였던 한 공연장에서 카나데혼 츄신구라(假名手本忠臣藏)가 상영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예전 일본어과 4학년 마지막 수업때 발표한 것이 이 충신장 이야기라서 감회가 새롭더군요.
겐로쿠 15년(1702년)에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각색해서 카부키극화한 작품인데,

'아무리 관객이 없어도 츄신구라만 공연하면 관객이 꽉 찬다'는 공연업계의 속담이 있을 정도로
1748년 초연 이래 꾸준히 일본인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아온, 카부키의 원조이자 대표격 작품입니다.

그리고 1748년 그 운명의 초연이 바로 이곳 오사카에서 시작되었죠. ^^

여담으로 일본 내에서야 셀 수도 없이 영화, 드라마, 소설 등으로 각색된 작품이지만
현재 헐리우드에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47 로닌'(The 47 Ronin)으로 영화화되고 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해서 얼른 씻고 잠을 청합니다.
욕탕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고 TV 보면서 느긋하게 목욕하다 보니
세 사람 한 바퀴 도는데 거의 1시간 30분이나 걸리더군요.
친구의 코고는 소리에 과연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지 걱정하며 일단 눈을 감고 누워봅니다.
내일은 주유패스로 입장할 수 있는 시텐노지(四天王寺)와 오사카성, 그리고 우메다 스카이빌딩(梅田スカイビル)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여행의 묘미란 예측할 수 없는 여러 사건들이 한 몫을 합니다.
카이유칸 이후로 구경해보려고 했던 나니와 우미노지쿠칸(なにわ海の時空館)은 개장시간이 오후 5시까지였는데
카이유칸을 서둘러 나왔음에도 이미 3시가 넘어버린 시간이라 거의 반쯤 포기상태.

우미노지쿠간은 주유패스를 이용해 공짜로 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1차 목표가 카이유칸이었던 탓에 뒤로 밀려버렸군요.
카이유칸 건너편에 보이는 산토리 뮤지엄(サントリーミュジアム)에 낯익은 그림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슬램덩크, 베가본드로 유명한 만화가 이노우에 타케히코씨의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군요.
들어갈까 말까 하면서 일단 뮤지엄쪽으로 향해 봅니다.


특별 전시회라서 관람료가 꽤 비싸더군요. T_T
제가 이 작가를 많이 좋아했다면 그 돈내고라도 들어갔겠지만
공교롭게도 슬램덩크 이후 작품에는 관심이 없던 터라 그냥 회장 앞에 전시된 거대한 일러스트 한 장 찍고 나왔습니다.
왼쪽에 살짝 보이는 액자가 사람 정도의 높이입니다. 저렇게 프린트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들런지... ㅡㅡ;

지난번 히로시마 여행 때 이 작가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던데, 슬랭덩크 연재 당시 NBA 화보집 트레이스 사건 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베가본드 연재 이후 그 특유의 작품에 대한 집착이 잘 나타난 방송이었습니다.
단 1페이지의 얼굴 표정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이틀 밤을 지새고 발버둥을 치면서도 결국 마감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걸 보니
역시 창작가로서 자기 의도를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할 때의 그 죽고싶은 심정은 장르를 불문한다는 걸 실감했네요.


뭔가 어정쩡한 시간이지만 아직까지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 것은
사진 너머의 저 관람차를 타기 위해서입니다.
저런 관람차는 역시 야경을 보는게 재미있기 때문에 일부러 해질 때까지 기다리는거죠.
기다린다고 해봐야 그냥 시간만 때우는 건 아니고, 아직 이 주변엔 둘러볼 거리가 많이 남았습니다.


카이유칸 들어가기 전에 묘기를 선보이던 장소엔 다른 팀이 불쇼를 펼치고 있군요.


위험하기 그지없는 2인 저글링이지만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공연이 끝나고 새끼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나와 돈을 건네주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돈을 받는 공연인줄은 몰랐네요.


일단 배는 별로 고프지 않지만 나름 명물 볼거리라고 소문이 난 곳으로 향했습니다.
마켓플레이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나니와 쿠이신보 요코쵸(なにわ食いしんぼ橫丁)입니다.
1960년대 오사카 시장거리를 재현한 좁고 어두운 음식거리인데요, 이런 식의 마케팅은 예전부터 일본에서 인기였습니다.

도쿄 오다이바의 다이바 잇쵸메(台場一丁目), 삿포로의 라멘공화국(らめん共和国)등등
대부분 일본의 1950~70년대를 재현해놓은 정겨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발을 끌어들이죠.
일본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대였던가 봅니다.

하지만 이곳 쿠이신보 요코쵸는 앞서 말한 두 곳에 비해 확연하게 음식의 질이나 다양성에서 떨어지는 듯 합니다.
다이바 잇쵸메야 워낙 막강한 자금력으로 승부하는 곳이고, 라멘공화국은 일본 굴지의 라멘집들이 모여 각축하는 곳이라
이곳은 그냥 예전부터 인기있었던 추억의 음식들 그 자체로 승부하는 조금은 소박한 느낌이네요.


가이드북에도 소개되었던 카레집에 들어가서 한 접시 먹어봅니다.
지유켄(自由軒)이라는 상점에서 처음 시도한 이 독특한 카레는 이미 나이를 100년이나 먹은 일본의 고전 카레로서 유명하죠.
카레 이름도 명물카레(名物カレー)입니다. ^^
지금은 인도에 이어 세계 2위의 카레 소비국인 일본이지만, 그 당시엔 카레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통일되어있지 않아
최대한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진 음식입니다.

요즘 카레와는 만드는 방법도 판이하게 다른데요. 일단 양파와 버터, 소고기를 살짝 볶은 다음
닭뼈를 고아 만든 육수와 카레가루를 섞은 후, 밥과 함께 볶아주면 명물카레가 완성됩니다.

카레 중앙에 저렇게 생달걀 하나 얹어주는게 포인트죠. 달걀에 살짝 간장소스를 뿌린 후 비벼먹으면 됩니다.
뭐랄까 정말 일본인들이 고안해낼 만한 느낌의 카레였습니다. 크게 맵지도 않고 계란 덕에 담백한 맛이 부각되네요.
중간중간 아삭하게 씹히는 양파의 감촉도 특이하죠. 이 녀석은 루를 오랫동안 숙성시키는 타입이 아니라
현재의 진득한 맛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일본의 카레 역사에 이름을 남긴 독특한 녀석이니 시식해 봤습니다.


마켓플레이스로 돌아와 아이스크림을 씹어먹는데 무녀복을 입고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는 무리를 발견.
초등학생쯤 되어보이는 어린이들이 예쁘장하게 치장하고 이곳 손님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뒤쪽의 케논 플래그쉽을 들고 열심히 찍고 계시는 분은 로리 오타쿠가 아니라 관계자분이니 오해는 금물.

그러고보니 마켓플레이스 중앙 공연홀에서 아이돌 그룹같은 애들이 춤추고 노래도 하던데
상가 활성화를 위해 여러가지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군요. 우리도 보고 배울만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런 애들이 웃으면서 금방울 흔들어주면 좋다고 쫄래쫄래 따라다닐 오덕들이 있을 테니까 말이죠.


마켓플레이스 내부에서 유리공예점을 발견, 동생분과 저는 가족들에게 선물로 줄 기념품을 고르는데 열중했습니다.
수공예로 만든 것들이라 완전히 똑같은 것들이 없더군요. 고민고민하며 둘러본 끝에 형님부부 드릴 예쁜 부엉이 한쌍을 구입.
원래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인데 친구녀석이 밖에서 찍었네요. 뭐, 전시품을 확대해서 찍은게 아니니 괜찮겠죠.


훗날 친구가 들고 있던 제 카메라 사진을 재생해보니 이런 것도 찍었더군요.

ㅡㅡ;

ㅡㅡ;;;;;

노코맨트.


이곳 마켓플레이스엔 예전에 한때 화제가 됐던 닌자저택도 있습니다.
현지인보다는 외국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겠죠.
애니메이션부터 온갖 닌자틱한 잡동사니들을 모아서 팔고 있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가지 닌자에 대한 왜곡된 지식(?)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도 있는데
제가 저기 돈내고 들어갈 리가 없죠.

여담으로, 일본엔 마을 전체가 닌자 관련 내용으로 구성된 곳도 있습니다.
사가현(佐賀県)의 우레시노(嬉野)시에 위치한 히젠 유메카이도(肥前夢街道)라는 테마파크에서는
모든 직원들이 닌자복을 입고 돌아다니며, 수리검 던지기, 사금 캐기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죠.
역사적 사실과는 한참 동떨어졌지만 그래도 상업성이 있다면 뭐든 활용하는 능력은 참 대단합니다.


슬슬 해가 저물어가고 있으니 관람차로 향합니다.
탑승료 700엔이지만 주유패스의 할인쿠폰을 이용해 630엔으로.
조금씩이라도 아낄 수 있을때 최대한 아끼는게 여러모로 이득이니까요. 세 명 합쳐서 210엔 절약이면
음료수 두 개 뽑아먹을 수 있는 돈입니다 넵.

친구가 높은곳을 아주 무서워해서 오기로 타게 된 관람차입니다. ㅡㅡ;
배려심이 철철 넘치는 저는 일부러 친구를 위해 바닥부분이 투명하게 되어 있는 씨스루 관람차를 20여분이나 기다려서 잡아탔죠.
결코 놓지 않는 저 왼손이 지금 친구의 심정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항상 지적하긴 하죠. 그거 암만 잡고있어봤자 진짜 떨어지면 어차피 몰살이여.


몇 개 없는 씨스루를 타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이곳 텐포잔 관람차는 높이 112m의 세계 최대급 관람차로, 한바퀴 도는데 약 15분이 소요되죠.
날씨가 좋을 땐 칸사이 공항까지 보입니다. 날씨가 안좋아도 화려한 야경을 즐기기엔 이만한 게 없네요.


원래 연인들끼리 염장질하는데 특화된 게 이 관람차라는데, 저희 일행이야 뭐...
사진 밑부분의 판넬식 구조물이 마켓플레이스, 녹색으로 장식된 묘한 모양의 건물이 카이유칸입니다.
카이유칸의 오른쪽엔 오늘의 항해를 마친 산타마리아 호가 휴식을 취하고 있군요.


15분동안 빼도박도 못하니 느긋합니다.
저는 친구를 놀려먹으며 사진이나 찍고, 동생분은 그 와중에도 가이드북을 뒤적이며 학구열을 불태우는군요.


여기서 잠깐 토막지식을 열거해 보자면
오사카시의 면적은 220㎢ 밖에 되지않습니다만, 인구는 270만명으로 상당한 인구밀도를 자랑합니다.
제가 서식하는 대구시 면적이 884㎢ 인데도 인구는 250만명 정도인것을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일 갈 듯.
한국에서 면적당 인구비율이 오사카시보다 높은 곳은 서울밖에 없습니다.


해가 완전히 질 무렵 관람차는 서서히 밑으로 내려오는군요.
건너편에 많은 즐거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선사한 카이유칸의 모습이 보입니다.


밤이 되면 관람차는 화려하게 빛나는데요.
관람차 색깔은 내일의 날씨를 예보하기도 합니다.
녹색은 흐림이네요. 사진 찍는데 조금 아쉽긴 하지만 여행때는 비만 오지 않아도 감지덕지죠.


하루종일 서성거렸던 텐포잔을 뒤로하고 일행은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향합니다.
대부분의 볼거리들이 5~6시에 문을 닫아버리는 오사카에서 저녁 늦게 구경할 수 있는 것은 무엇?

정답은 전망대입니다.
크고 높은걸 좋아하는 오사카인들답게 시내 군데군데에 관람차, 전망대 등이 산재해 있죠.
그러고보니 숙소에서 엎어지면 코닿는 거리에 있는 츠텐가쿠도 못가봤는데
멀리 전철타고 와서 전망대 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습도 참... ㅡㅡ;


다음 목표는 베이 에이리어 내부에 있는 WTC 코스모타워 전망대입니다.
물론 주유패스로 무료 관람이 가능하니까 이렇게 기를 쓰고 찾아가는 것이죠. 돈내야 했으면 애초에 관심도 없음.
WTC 코스모타워는 서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256m)
이곳에 가려면 난코 포트타운선(南港ポトタウン線)으로 바꿔타고 트레이트센터앞 역으로 가야합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어차피 코스모타워와 연결된 무역센터의 쇼핑 거리는 문을 닫았을 테고
오늘은 전망대를 구경한 후 화려한 밤문화를 즐기려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 도톤보리로 향하는게 마지막 일과네요.


이 포트타운선은 뉴트램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도쿄의 오다이바(お台場)를 순환하는 무인 모노레일 유리카모메(ゆりかもめ)와 비슷한 녀석입니다.
승무원이 없는 모노레일은 일행들끼리 장난치기 좋죠.


매거진에 장전된 필름이 딱 한장 남아서 의미없이 친구 사진을 떡하니 찍었습니다.
피곤한듯한 눈이 참 인상적이시네요.

뒤로 젖혀진 동생분의 고개에서도 삶의 고단함이 느껴집니다.
원체 느긋한 컨셉의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일행들에게 여러가지 많이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곳을 둘러보는 중이라서 아무래도 좀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네요.
이런 여행도 한두 번 해보면 금새 익숙해져서 새벽부터 새벽까지 마구 돌아다닐 수 있으니 미리 연습해 보는것도 괜찮습니다.



항구도시인 오사카에 딱 맞는 이미지의 볼거리인 세계 최대급의 수족관 카이유칸(海遊館) 입구입니다.
일본에서는 공휴일인 성년의 날이라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았던 관계로 관람이 수월하진 않았네요.

카이유칸의 특징은, 사진 우측 상단에 보이는 지구본에서 잘 나타납니다.
붉은색 점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원형은 환태평양 화산대, 'Ring of Fire'를 나타냅니다. 태평양을 둘러싼 거대한 지질층이죠.
그와 거의 비슷한 모양으로 이루어진 녹색 원은 'Ring of Life'라고 합니다.
지질활동이 활발한 화산대 근처는 다양한 생명체의 보고이기도 하기 때문에 생명의 고리라고 불리죠.

카이유칸은 이처럼 화산대와 함께 이어진 생물분포도를 통해 '지구와 그 속의 생물은 상호 작용하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컨셉으로
환태평양 화산대 주변 10개 지역의 다양한 생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크고 높은걸 좋아하는 오사카 사람들이다 보니 이 수족관도 굉장히 기대했었는데
의외로 크기 자체는 아담해 보이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거대한 단일 부스보다는 다양한 지역의 생물들을 테마별로 묶어 전시하다 보니
좁은 통로를 통해 순서대로 차례차례 관람하게 되는 데서 그런 느낌을 받는 듯 하네요.
실제 수족관의 규모 자체는 세계적으로 봐도 굉장히 거대한 편입니다.

처음 수족관을 찾을 때 한번쯤은 신기해 할 수중 터널은 여기서는 그냥 맛보기에 불과하네요.


수족관 안은 굉장히 어둡기 때문에 감도 100짜리 필름을 끼운 세븐이로는 촬영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노감도 노이즈에서 강점을 보이는 DSLR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겠죠.
플래시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밝은 단렌즈를 끼워도 감도를 1600~3200까지 올려야 하는 극한 상황이라
마음에 드는 사진은 거의 건지지 못했네요. 그래도 사진보다는 감상이 먼저니 그리 후회되진 않습니다.
다음엔 D3 정도는 갖고 가야 그나마 사진을 좀 건질 듯. 항상 움직이는 녀석들을 찍으려니 A550 으로도 무리였습니다.


나름 세심한 부분에서 꼼꼼하다는 성격의 일본이라 그런지
동물들이 사는 곳은 지역별로 온도, 습도, 주변 환경까지 최대한 자연에 가깝에 꾸며놨습니다.
이곳은 일본의 숲을 테마로 구성해놓은 곳이네요.
지금은 자는 시간인지 수달들이 꼼짝도 안합니다. ㅡㅡ;


그래도 소리지르거나 뭐 던지거나 하는 사람은 없어서 다행입니다. 곤히 자는 모습을 보는것도 좋죠.


절벽에 붙어있는 게.
시간이 널널하면 설명도 하나하나 읽어가며 공을 들이겠지만 인파도 밀리고, 오늘 중으로 돌아봐야 할 곳도 많이 남아서리...


조류의 경우엔 아무래도 이런 곳에 갖혀있는 모습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네요.
애초에 수족관이든 동물원이든 근본적으로 동물 학대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항상 찝찝하지만
이곳 입장료의 일정 부분이 희귀 동물들의 보존이나 번식에 쓰이고 있다고 하니 나름 자기 위안은 될지도 모르겠네요.


집에서 키우던 녀석들과 비교해 뭐가 다른진 모르겠습니다.
이제 막 시작이니 메인 이벤트를 위해서 힘을 충전하는 느낌?


알류샨 열도에 서식하는 해달.
이쪽 해달은 너무 빨라서 도저히 카메라로 제대로 잡을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몸을 비비 꼬는게 재밌게 놀더군요.


식사 타임에는 관람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사람이 많아 거의 떠밀리듯 구경하느라
느긋하게 기다리기도 힘듭니다. 건물 내부가 좀 더운편이라 땀도 삐질삐질...
이곳 알류샨 열도가 화산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이라 그런가. ㅡㅡ;


켈리포니아 몬타레만을 옮겨왔습니다. 물범녀석들도 어찌나 빠른지 카메라는 거의 포기하고 구경만 했군요.
그래도 전시 유리 앞에서 이리저리 노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파나마의 열대 우림을 재현한 곳입니다. 보호종인 빨간다리 거북.


원래 이곳에는 나무늘보도 있어야 하는데 도통 보이질 않더군요.
대신 이녀석이라도..


이곳 가오리들의 상당수는 꼬리를 잘라낸 상태입니다. 독성분이 있어서 다른 생물들과 트러블이 있는 듯.


이제 보기만 하면 반사적으로 '맛있을까' 생각이 나는 복어. 이러면 안되는데... ㅡㅡ;
열대우림지역이다 보니 형형색색의 생선들이 밀도높게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관상용으로 많이 키우고 있죠?


이번에는 에콰도르의 열대우림을 재현한 곳입니다. 계속 더운 지역이군요. ㅡㅡ;
이구아나는 그냥 느긋하게 잠만 잡니다.


뭐하는 녀석인진 모르겠는데 희한한 입모양을 하고선 유리창을 따라 세로로 이동하네용.


사실은 뒤의 피라루크를 찍으려 했는데 이녀석이 자꾸 자길 찍어달라고 방해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피라루크 사진은 건질 수가 없었습니다.
피라루크는 세계 최대의 담수어로 몸길이 2m, 무게 100kg에 육박하며, 4억년 전부터 살아온 살아있는 화석입니다.

이게 그렇게 맛있어서 주 서석지 아마존에서는 원래 원주민들의 주식이었는데, 지금은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보호색으로 위장한 물고기.
꼬리부분의 원 때문에 꼬리를 머리로 착각하고 덤벼드는 포식자가 많다는군요.
당연하겠지만 사냥에 성공하려면 머리를 노리는 게 정석이니, 이 녀석은 그 틈을 타서 도망가곤 합니다.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부근의 타스만해에 사는 생물들.
여긴 역시 펭귄이죠. 새끼 펭귄을 이런 곳에 놔둬도 되나 싶었는데 어른이나 아이나 절대 창문을 두드리지 않더군요.


이미 밖에서 이녀석들의 애교 쇼를 보고 왔는데도, 하는 짓 하나하나가 참 귀엽기 그지없습니다.
똥똥해 보이는 몸에 비해 목은 거의 360도 가까이 휙휙 돌아가는군요.


카이유칸은 1990년에 개장했는데, 이 펭귄들은 오랫동안 사람들과 지내온 터라 관람객들에게 상당히 익숙합니다.
각각 이름도 지어놓았던데... 여러가지 다사다난했던 듯 합니다.
펭귄은 일부일처제인데 가끔 이혼, 재혼을 하기 때문에 사이가 나빠진 암컷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종종 생기죠.


이 녀석 남극대륙에서 배때기 스키를 즐기던 때를 추억하고 있나? (사실 이곳에서 태어난 토박이)


앞의 짜리몽땅한 녀석이 아델리 펭귄, 뒤의 늠름한 녀석이 임금펭귄입니다.
뭐 취향따라 즐기시면 되겠네요.

단지, 인형 등의 피규어로 만들어놓으면 아델리 펭귄이 압도적으로 귀엽다는.


I'm King of the World!
임금펭귄은 사교성이 굉장히 강해서 사람을 거의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타스만해 부스의 돌고래들은 정말 눈깜짝할 속도로 수조 속을 누비고 있어서 사진 촬영은 도저히 불가능... ㅡㅡ;

그래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의 생명체들로 넘어갑니다. 호주 북동쪽 세계 최대의 산호초 라인에서 사는 녀석들이죠.
힘들 땐 바위에 턱을 괴고 쉬기도 합니다.


산호초 주변 녀석들이라 몸통은 숨기 쉽게 얇아지고 색깔은 화려해집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산호초는 큰 타격을 입고 있지만
이렇게 사람이 쓰다 버린 콘크리트나 생활 폐기물은 생선들의 좋은 안식처가 되기도 하죠.


한 판 붙고싶은 듯 도발적인 눈빛을 날리는 녀석.


카이유칸의 메인 전시실 태평양입니다.

깊이 9m, 폭 36m, 수량 5400톤의 거대한 수조 속에서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인 고래상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네요.
세계 최대의 어류인 고래상어는 최대 몸길이가 18m, 몸무게 20t 에 달하지만 이곳의 고래상어는 몸길이 6m 정도입니다.
이름만 상어지 아주 온순한 성격이며, 대형 고래들이 그렇듯 플랑크톤이나 작은 갑각류 따위를 먹고 살죠.

한국에서는 한 마리도 볼 수 없는 고래상어지만, 일본에서도 오직 이곳에만 고래상어가 있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고래상어는 오키나와(沖繩)의 츄라우미 수족관(美ら海水族館)에도 3마리나 헤엄치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량도 츄라우미쪽이 7300톤으로 이곳보다 더 큰데요.
카이유칸이 좀 더 알려져 있는 듯한 이유는 그 전시 방법의 차이에 있습니다.
츄라우미의 고래상어 수족관은 거대한 유리벽 하나를 두고 관람하는 전형적인 모습인 반면
이곳은 경사를 타고 타원형으로 건물을 내려가듯 만들어진 구조로 수족관 위에서부터 밑까지 360도 관람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죠.

카이유칸 건물 전체의 설계 목표가 이런 형태의 수족관을 실제시키는 것이었을 만큼
구조적으로 유리가 받는 압력을 분산시키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부분이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시켰답니다.


워낙 실제로 접하기 힘든 고래상어다 보니 나머지 녀석들이 찬밥신세인것 같아 불쌍해서 한 컷.


말이 몸길이 6m라고 하지, 실제로 유리벽 바로 앞으로 다가오는 고래상어의 크기는 머리 끝이 오싹할 정도로 거대합니다.
고래상어의 입장에서는 좁디 좁은 이곳에서 갖혀지내는게 참 가혹하지 않나 싶은데
워낙 희귀종이라 이곳에서 연구, 번식 등 고래상어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펼친다고 하더군요.

이곳 사람들이 호랑이 새끼를 아크릴 감옥에 전시하는 꼴통 공무원들보다는 좀 더 동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길 기대해 봅니다.


세토 내해(瀬戸内海) 부스엔 죽은 생선눈을 한 녀석이 멍하니 유리앞에 기대있네요. ㅡㅡ;
분명히 살아있는데, 그냥 인생이 귀찮아졌나봅니다.


켈리포니아 연안의 켈프 숲을 재현한 곳입니다.
버뮤다 삼각지의 괴소문을 만들어내는데도 일조했던 켈프는 워낙 성장속도가 빨라서 가끔 배의 스크류에 휘감겨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죠.
이곳에서는 마침 고래상어만큼이나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개복치의 식사가 한창입니다. 좋은 모습 건졌네요.


먹이를 더 달라고 사육사한테 덤벼드는 모습에 사람들이 많이 웃었습니다.
원체 생김새 자체가 웃겨빠진데다가 저 작은 지느러미를 흔들면서 더 달라고 달려드는 모습이 참...
이 녀석도 고래상어 못지 않게 순박한 성격에다가, 게으르기로는 어류 최강을 달리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됩니다.


낮엔 수면 위에 넙적하게 누워서 딩가딩가 해류를 따라 흐르며 잠만 자는 녀석이죠. ㅡㅡ;
학명도 'Mola Mola'인 만큼 생활 습성이 잘 알려지지 않은 어종입니다. 잘 보면 비슷한데, 이 녀석 복어과입니다.
그런 반면에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알을 낳는 어종이기도 합니다. 한 번에 2억~3억개의 알을 뿌리는걸로 유명.

여담으로, 영원한 17세를 자칭하며 일본 성우업계에서 17세교 교주로 불리우는 모 성우분께서
본인의 전생이 이 녀석 개복치였다고 주장하고 다니십니다. 전 개복치 기념 주화도 갖고 있을만큼 열성팬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정신세계가 오묘한 분이라... 요즘엔 가끔 정말 전생에 개복치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뭐, 현실세계의 본인도 수영을 엄청나게 잘 하시니...

정말 영양가없는 잡담으로, '17세교'는 2008년 일본 현대용어에도 등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거대한 녀석으로 치면 이 쥐가오리도 빠질 수 없습니다.
기괴한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압도적이라 'Devil Fish'로 불리며 많은 수난을 당하기도 했던 녀석.
하지만 역시나처럼 성격은 온순한 편입니다. 가끔 꼬리의 독침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워낙 긴 코스가 이어지는 수족관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휴식을 위한 벤치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노약자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던 것이, 가이드라인 중간중간에 '양보 구간'(ゆずりあいゾーン)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나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있으면 양보해서 관람 편의를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구간이죠.


사진의 위치를 보면 아시겠지만 지금 점점 수족관 밑으로 돌아 내려오고 있는 중입니다.
위쪽에서 고래상어의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이 내려가지 않자 안내원이 '밑에서도 보실 수 있으니 이동해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죠.

저 녀석은 사진으로는 아무리 봐도 실감이 나질 않네요. 기회만 되면 무조건 직접 보시는게 좋습니다.


어느 각도에서도 찍기 쉽도록 천천히 수족관 전체를 돌아줘서 고맙긴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 앞을 스윽 지나갈때의 위압감은 정말...
근데 배 밑에 빨판상어가 붙어있네요.

빨판상어야 워낙 유명한 녀석이니 여기서 설명은 패스.


뉴질랜드의 남섬과 북섬을 가르는 쿡 해협에서 사는 녀석들.
지형상 굉장히 희귀한 애들이 산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진짜 희귀한 녀석이라면 저런 애들이 아닐까요. ㅡㅡ;
고래상어가 무서웠는지 인생의 진리를 찾고 싶었는지 저렇게 모래바닥에 박혀서 꼼짝도 안하는 상어입니다.

제가 알기로 상어는 자면서도 헤엄을 치는 녀석인데... 헤엄을 치지 않으면 산소 부족으로 질식해 죽거든요.
장장 1분여간 계속 저 상태로 박혀있는걸 보니 걱정은 되던데, 분명 숨은 쉬고 있었곡...
여러가지로 미스테리어스한 상어였습니다.


일본해구에 서식하는 세계 최대의 게 '키다리게' 입니다.
일본해구는 최대 수심 8000m 정도 되는 바다 속의 협곡인데, 이 키다리게는 그중 수심 200~400m 정도에서 생활하죠.
우주 바깥보다도 밝혀진 게 없는 신비에 쌓인 해구라 지금도 많은 탐사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이녀석도 원래의 생활 환경과 비슷하게 만드느라 땀 좀 뺐을 것 같네요.

먹어보고 싶지만 쉽지 않겠네요.
여담이지만 실제로 키다리게를 잡아올려 파는 어부도 있습니다. 포인트를 잘 찾는게 중요하다더군요.


그 위를 떠다니는 갈치.
어째 이곳엔 맛있어 보이는 것들만 잔뜩...


갈치는 직립보행을 합니다. ㅡㅡ;
직립고양이와 함께 외계인의 후손이라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농담)


사실 여기 전시된 키다리게는 그리 큰 편도 아닙니다. 다 큰녀석은 다리 길이까지 4m에 이르죠.
그러니까 길이만으로는 좀 전의 고래상어 절반은 된다는 말. ㅡㅡ;

한 마리만 있으면 한끼 식사로 든든할텐데.


수족관의 마지막 안식처 해파리존입니다.
12종의 해파리를 전시하고 있는데, 이녀석들의 생식 특성상 전시관이 굉장히 어둡습니다.


엄청 조그마한 녀석들. 이것 말고도 현미경으로 봐야 보이는 해파리도 있었죠.


전 세계의 바다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해파리도 이곳에서는 그저 우아한 무용수일 뿐.


해삼과 더불어 지구상의 생물 중 가장 과학적으로 밝혀진 게 없는 녀석이 이 해파리입니다.
해삼과 해파리는 번식, 습성, 먹이, 생활환경 등등 거의 모든 특징이 비밀에 쌓여 있습니다.
지금 해파리때문에 골머리를 썪고 있으니 아마 본격적으로 이 녀석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겠죠.


그나마 사진발 잘 받아주는 녀석.
이렇게 아름다운 녀석이 사실은 전척이 없는 지구 최강의 포식자중 하나라니 참 아이러니하죠.


약 6억년 전에 출현한 후 지금까지 거의 모습이 변하지 않은, 바꿔 말하면 진화의 정점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는 해파리.
이런 원시적인 모습이 지구상 어떤 생명체보다도 질기게 살아왔다는게 참 신기합니다.


이런 해파리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괴생물체로는 유명한 '가시곰벌레'가 있습니다.


5억년 전에 출현한 1mm 이내의 작은 생명체는
외부 변화에 대해 일시적 가사상태에 빠짐으로서 생명을 유지하는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죠.
영하 260도에서 얼리거나, 영상 100도에서 6시간동안 가열하거나, 120년동안 건조상태를 유지한다거나
우주 한가운데 던져놔도 죽지 않는 소위 '지구 최강의 생명체'라는 별명을 가진 분.


카이유칸 관람기에 왜 갑자기 가시곰벌레가 나오냐 하신다면
그 녀석 세계 어디에나 있으니 아마 카이유칸에도 몇 마리정도는 서식할겁니다.

뭐, 아무튼 이걸로 카이유칸 한 바퀴 돌기는 성공했습니다.
동식물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한나절 꼬박 소비해도 아깝지 않을 곳입니다.

이제부터는 몸풀기 체험학습 코너로... 먹이를 먹고 노는 수달이나

멍하니 벽보고 명상중인 펭귄이나


세계 최대의 설치류 카피바라 등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이 녀석만큼 한국의 쥐새끼도 착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니 만큼 당연하겠지만 이 카피바라도 굉장히 온순합니다.


이곳에서는 얕은 수족관에서 가오리나 상어 들을 직접 만질 수 있는 체험부스를 열고 있습니다.
이벤트 기간에만 열리는 행사라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만지기 전이나 후나 손을 씻어야 하고, 그런 기회는 아이들에게 넘겨주자는 하늘과 같은 덕스러움을 발휘해
그냥 사진만 찍고 나왔네요.


가오리 꼬리에는 독이 있기 때문에 이 녀석들은 전부 꼬리를 자른 상태입니다.
조금 씁쓸하긴 하네요.

차라리 고양이 체험관같은거 있었으면 오늘 나머지 일정 다 포기하고 폐관때까지 죽치고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코스를 다 섭렵한 후에는 항상 복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념품관이죠. ^^
눈돌아가게 귀여운 수족관 마스코트들이 강력한 방벽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귀여운 동물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동생분도 한참 고민하다가 새끼 펭귄 인형을 하나 덥석해버렸네요.
오덕향이 풍기는 친구는 동물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무덤덤하게 패스했습니다.
그 거대함과 희소성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던 상어고래도
이곳 기념품관에서는 최강의 귀여움을 자랑하는 펭귄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더군요.


본격적으로 오사카 여행의 첫 아침이 밝아옵니다.
숙소에서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했는데, 친구는 코 골고 동생분은 이를 갈아서 제가 상당한 수면부족에 시달렸습니다.
동생분 말로는 저도 새벽에 코를 골았다고 하는데... 저도 어지간히 피곤했나보네요. ㅡㅡ;

저는 잠을 깊게 자는 편이 아니라 잠자리에 누워도 30분~1시간은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드는데
친구는 일단 눈만 감으면 잠이 들고, 잠이 들자마자 코부터 고는 타입이라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숙소는 오사카를 여행하는 헝그리 한국여행자라면 꽤나 알고 있을듯한 '그린 파인'입니다.
한국인 아주머니께서 운영하시기 때문에 언어의 문제가 없는 고로 많이들 이용하시더군요.
민박치고는 시설도 깨끗한 편이라 저렴하게 이용하려면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전 다음에 오사카 갈 때는 다른 곳을 이용해보려고 해요. 두번 세번 꼭 찾아갈 만큼 큰 임팩트가 있던 숙소는 아니라서.
이곳 숙소의 임팩트라면 무료로 비치된 PC와 화장실과 욕실의 분리, 그리고 욕탕 안에 TV가 있어서 목욕할 때의 즐거움이 는다는 점 정도입니다.


원래 3인실을 쓰려고 했는데 첫날엔 방이 없어서 이 날만 5인실을 쓰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요금은 3인실 분을 냈기 때문에 조금 횡재했다 싶었죠.
훗날 3인실에 들어가서 안 사실이지만 5인실과 3인실 차이는 그닥 없었네요. 거의 같은 느낌으로 생활했습니다.
한국인 민박답게 바닥에 전기매트도 놓여져 있어서 밤에 따뜻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화장품집 자식답게 다양한(?) 화장품을 바르는 친구 일행.
이렇게 말하면 분명 태클이 들어올겁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만 가지고 왔다고 하네요.
전 1년중 여행할 때 바르는 선크림이 주력일 만큼 평소에 스킨이나 로션이나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
제 입장에서 보면 누구나 많이 바르는 걸로 인식이 됩니다.
피부를 위해서라면 역시 스킨이나 로션이나 꾸준히 발라줘야 하는 걸까요?

오늘부터는 3인실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짐 챙겨서 로비에 놔 두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합니다.

에비스쵸역에서 처음으로 주유패스를 이용해 전철을 탈 때의 쾌감이란...
비싼 교통비를 이틀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묘한 이득감은 전철을 타면 탈수록 득본 것 같아서 즐겁습니다.

일단 오늘은 오사카의 즐길거리가 잔뜩잔뜩 모여있는 베이 에이리어(Bay Area)로 향합니다.
성년의 날과 겹치는 바람에 오늘 여러군데를 제대로 둘러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이곳이 유일하기 때문에...
베이 에이리어는 섬에 가까운 반도 형태를 띄고 있는 인공 구조물로, 오사카 최대의 테마 파크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사카에서 돈을 가장 많이 집어먹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오사카와, 세계 최대의 수족관 카이유칸(海遊館), 나니와 우미노지쿠칸(なにわ海の時空館) 등등
하루이틀로는 제대로 둘러보기 힘든 볼거리들이 이곳에 옹기종이 모여있습니다.

불행히도 이곳들은 우미노지쿠칸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유패스로 무료입장이 불가능한 곳입니다.
할인 쿠폰으로 쥐꼬리만큼 할인은 가능한데, 유니버셜 스튜디오 같은 경우는 하루에 1인당 1만 2천엔 정도는 먹고 쓰고 할 각오을 해야 할 정도로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애초에 목표 대상으로 선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관광객이라면 유니버셜을 결코 놓쳐서는 안될 최고의 테마파크니 무조건 가보셔야겠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저와 동생분이 속한 저희 일행은(친구는 동물 안좋아합니다. 오늘 고역일듯) 베이 에이리어의 최우선 목표를
카이유칸으로 정했기 때문에 유니버셜은 가뿐한 마음으로 패스합니다.

하지만 카이유칸은 입장료 2000엔 중, 주유패스의 할인권을 이용해도 100엔 밖에 할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주유패스의 뽕을 뽑기 위해 이용할 볼거리는 오사카항을 한바퀴 돌아보는 산타마리아 호가 되겠군요.
1600엔이나 하는 승선료가 주유패스만 있으면 무료(!)이기 때문에 주유패스를 이용하면서 이걸 타지 않으면 너무나 아깝습니다.
게다가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게, 산타마리아 호는 제가 베이 에이리어에 갔던 1월 11일 당일을 마지막으로 휴무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오늘을 베이 에이리어 돌아보는 날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아침 일찍 베이에이리어에 도착했습니다.
 
코스모스퀘어 역(コスモスクエア 駅)에 내려서 카이유칸 쪽으로 걸어가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관람차입니다.
텐포잔(天保山)이라고 이름지어진 이 구역은 홍수방지를 위한 오사카항 준설작업중 남은 토양분으로 세워진 곳으로
표고 4.53m에 불과한, 언덕수준도 안되는 구릉지지만 '산'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으로 기록되어 있죠.
그냥 가면 사실 이곳 어디가 산인지도 모릅니다. ㅡㅡ;


텐포잔 구역은 카이유칸, 마켓플레이스, 산토리 뮤지엄(サントリー ミュジアム) 등등 베이에이리어의 중요 시설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느긋하게 즐기면 최소 이틀 이상을 꼬박 둘러봐야 할 정도의 규모라서 시간이 촉박한 일행은 아쉽지만 몇 군데를 생략할 수 밖에 없네요.

오사카 최대의 관람차인 이곳은 높이가 이미 지난번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츠텐가쿠보다 더 높습니다.
이곳 역시 700엔의 입장료중 주유패스로 10%인 70엔밖에 할인되지 않지만, 630엔 아끼려고 이곳의 야경을 포기할 순 없으니
저녁에 해 지고 나면 한번 타 볼 예정입니다.


근처 맥도날드에서 런치메뉴 할인으로 배를 채우려고 11시까지 기다렸다가 주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문하고나서야 알았지만 오늘은 성년의 날! 공휴일이었던 겁니다. T_T
한국과는 다른 공휴일 때문에 쓸데없이 시간만 잡아먹다가 제돈 다 내고 햄버거를 먹게 됐네요.
따라온 친구와 동생분에게 민망한 꼴이란 꼴은 다 보입니다.
어쨌든 맛있기는 맛있었습니다. 제가 자전거 여행때 맛있게 먹었던 달맞이버거(月見バーガー)는 사라졌더군요. 기간한정인가봅니다.


배도 채웠겠다 산타마리아 호를 타러 다시 텐포잔으로 향합니다.
중간에 모이를 주는 분 곁으로 참새들이 빼곡이 몰려들어 있길래 재미있게 구경했네요.


거대한 비둘기가 참새들 모이를 뺏어먹는 장면도 연출되었습니다.
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요. 적어도 동물들한테야 틀린 말은 아닙니다.


배를 타러가던 도중 또 일행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벤트가 있었으니...
이곳 카이유칸에서 살고 있는 펭귄들의 행진 쇼가 마침 열리고 있었습니다.
짧은 거리를 그냥 왔다갔다 할 뿐인 소소한 이벤트지만 펭귄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도 드물죠.


어른 아이 할것없이 뒤뚱거리는 펭귄을 보며 즐거워했습니다.
동물을 안좋아하는 친구는 그냥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구요. ㅡㅡ;
저와 동생분은 신나게 사진 찍고 놀았습니다.
카메라를 라인 안으로 넣어서 사진 찍지 말아달라고 하는 진행요원의 부탁도 잘 지켜주는 편이었네요.


20m도 안되는 거리를 왕복한 펭귄들은 다시 눈이 가득한 장소로 이동해 있습니다.
이녀석들 카이유칸으로 다시 들어가는게 아니라 그냥 여기 있다가 시간 되면 또 걸어나가고 하는 듯.
날씨가 더운지, 그 정도 보행에 지쳤는지 배를 깔고 엎드린 모습이 재미있네요.
펭귄은 그냥 행동 하나하나가 귀여울수 밖에 없는 신체구조를 타고난 듯 합니다.


이곳 펭귄 대부분이 대를 이어 이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닥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이벤트로 가능한 것이겠죠.

새끼호랑이를 2m 조금 넘는 아크릴 감옥에다 가둬주고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개망나니 짓도 서슴지 않는
모 구청의 만행에 비하면, 이런 이벤트는 그나마 좀 얌전한 듯 합니다.

20m 안되는 거리를 걷는데도 6~7명의 진행요원들이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라인 안으로 카메라나 손을 넣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모습을 보니 말이죠. 최소한 이런 타지에서 볼거리 신세로 전락한 동물들에게 그 정도 배려는 해 줘야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참 이곳은 아이들과 함께 오기 좋은 곳입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너무 비싸서 부담되더라도, 이곳 카이유칸 정도면 하루종일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으니.
수족관에서 물고기들을 보고, 밖에서 열리는 여러가지 무료 이벤트도 구경하고, 배고프면 마켓플레이스에서 식사도 할 수 있습니다.

도보 5분거리에 산토리 뮤지엄이 있어서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취향도 만족시킬 수 있고...
오사카는 한국의 부산과 비슷한 도시인데, 뭔가 비교하면 할 수록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 아쉽기만 합니다.
부산은 지금 '쇼핑'의 천국으로 거듭나려고 노력하는 모양이더군요. 더더욱 저하고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멀뚱멀뚱 서 있는 모습조차 귀여운 펭귄들을 뒤로 하고 산타마리아 호를 타기 위해 승선장으로 향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산타마리아 호는 1월 12일부터 2월 10일까지 휴무에 들어가기 때문에 오늘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일단 오늘은 이녀석만 타도 전철비 합하면 주유 패스로 이득보는거나 마찬가지.

이 녀석은 콜럼버스의 오리지날 산타마리아 호와 모양은 똑같지만 크기가 2배라고 하는군요.
그리 커보이지도 않았는데 예전에 이거 절반크기의 배를 타고 바다를 횡단했다니 참 당시 선원들의 기분은 어땠을지...


내부엔 이렇게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고 간단한 식사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일행은 이미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사 왔기 때문에 문제없습니다.
사진이 너무 밋밋하다고 불평하는 본인을 위해 동생분이 발벗고 나서줍니다. 당케~


못난 모습만 찍는것도 미안하니 중증 나르시스트인 친구를 위해 폼나는 사진도 찍어줍니다. (이거 칭찬인가?)


역시 디카와 필름카메라의 느낌은 아무래도 다를 수 밖에 없네요.
보정능력이 뛰어나다면야 얼마든지 비슷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보정할 줄 모르는 저한테는 그냥 다르다고밖에는...


저도 가끔은 찍히고 살아야겠죠.
찍는건 좋아하지만 찍히는건 별로 안좋아하는 터라 누가 제 얼굴 찍으려치면 카메라로 가리고 했습니다.


배가 출항하면 밖으로 나와서 경치 구경을 해야겠죠.
느긋하지만 꽤나 빠르게 움직이는 배 위에 서있는 건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원래 배 타는 여행은 별로 안좋아했는데, 재작년 자전거 여행 때 의외의 재미를 발견하고 슬슬 그 매력에 빠져가는 중이네요.

산타마리아 호를 타고 있으면 은근슬쩍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모습도 보입니다.
왠지 '마지막 기회니까 이거 타고나서 빨리 저기 놀러가!' 라고 협박하는 듯한 느낌...
돈도 돈이지만 저기 한번 들어가면 하루 꼬박 놀다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짧은 여행기간으로는 도저히 무리네요.


배 위에서 하는 일이래야 경치 구경하고 사진 찍는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연인끼리 왔다면 차가운 바다바람을 녹여준답시고 껴안고 염장질도 해 볼수 있겠지만.
광각이 효과를 발휘하는 곳이라서 사진 찍는 재미가 있었네요.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친구도 DSLR 들고 여기저기 열심히 찍어댑니다.
LCD 를 보며 촬영할 수 있는 녀석이라 쉽게 찍을 수 있었던 것 같군요.


친구가 찍은 디카 사진들.
노출이나 조리개값같은건 완전히 무시하고 인스피레이션만으로 셔터를 눌러재꼈기 때문에
나름 제가 크롭하고, 수평맞추고 색감보정하고 해서 이 정도로 만들어 놨습니다.

동생분이 가지고 온 카메라는 3년전 도쿄 여행당시 구입했다는 쌤썽카메라. 요즘 카메라와 비교하면 뭐... ㅡㅡ;


바다를 보며 인생의 진리에 대해 논하는 두 사람.


정박해 있는 펜스타 크루즈.
한국의 부산에서 오사카까지 이동하는 유일한 여객선입니다.
17시간동안 항해하는데요, 새벽에 세토 내해(瀬戸内海)의 절경을 구경할 수 있어서 나름 괜찮은 이동수단입니다.
문제는 조금만 편안하게 방을 배정하려고 해도 항공기 요금보다 더 비싸진다는 것... ㅡㅡ;
저렴한 운송수단으로 인식되는 여객선이 이젠 오히려 여행을 고급으로 즐기는 수단이 되어가는 듯 하네요.

덤으로, 저 펜스타 크루즈는 이곳 베이 에이리어에 도착하기 때문에
숙소를 근처에 잡아놓는다면 짐풀고 바로 관광에 나설 수 있어서 편리한 점도 있습니다.


배를 타고있으면 그저 혼자 가만히 흐르는 풍경을 바라봐도 좋고
친구가 있으면 조금은 감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요즘 점점 이런 느긋한 여행이 좋아지는 건 역시 나이를 먹어서일까요. ㅡㅡ;


일본의 몇몇 유람선들은 뱃머리쪽을 VIP 석이라고 정해놓고 추가 요금을 낸 사람만 들여보내주는 짓도 합니다만
여기는 그냥 마음껏 올라갈 수 있더군요. 덕분에 마음에 드는 사진도  건졌습니다.


이미 노쇠한 필름카메라 알파 세븐이도 한 장 찍어주지 않으면 섭하겠죠.


산타마리아 호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12시 배를 탄 터라 사람도 별로 없고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친구가 희한한 폼으로 앉아있길래 고정시켜놓고 사진을 찍었네요.
니르시시즘의 화신이라고 일컬어지는 녀석이 카메라만 들이대면 얼어버려서 이런 사진도 좀 남겨놔야겠습니다.


동생을 도촬하는 친구.


배는 어느 지점에서 다시 빙 돌아서 왔던 길로 돌아갑니다. 총 항해 시간은 40~50분 정도.
1600엔이라는 거금을 내고 타기엔 아깝지만 주유패스의 무료신공을 이용하면 결코 놓쳐서는 안될 녀석이죠.
왠지 공짜로 밥 먹은것 처럼 배가 든든하네요. 역시 인간은 공짜를 좋아하나봅니다.


산타마리아 호의 지하층에는 콜럼버스에 관련된 조그만 박물관도 있는데
전 거기엔 전혀 관심이 없어서 그냥 줄창 바깥 경치만 즐겼습니다.
이런 다리를 지나갈 때가 셔터찬스더군요.


배가 다시 텐포잔으로 돌아올 무렵 테이블로 돌아와서 거인과 꼬마를 두고 나란히 한 컷.


고개숙인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 머리를 괼 만한 편의점의 주먹밥을 이용해 다시 한 컷 찍었습니다.
요즘들어서야 별로 쓰지 않지만 듬직한 쌍견장의 포스는 역시 시대를 뛰어넘는군요.


그리고 배가 도착하기 전에 주먹밥 한조각씩.
그리 배가 고프진 않지만 여행다닐 땐 조금조금씩 먹어주는게 왠지 이득보는 느낌이더군요.
여행지 돌아다니는데 너무 몰두하면 밥 먹을 여유가 없어질 때가 많아서... 먹는것도 여행의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니
자꾸 머릿속에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때마다 나가는 돈이 헝그리 여행자에겐 좀 고통스럽지만. ㅡㅡ;


배에서 내리니 여전히 펭귄들은 편안한 자세로 엎어져 있네요.


그런데 날개는 왜 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하늘을 날던 조류로서의 자신을 추억하고 있는 건지도.
(진짜로 옛날 펭귄이 하늘을 날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ㅡㅡ;)


다음 목적지이자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카이유칸 관람을 위해 걸어가던 중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하고 가 봤습니다.
공터에서 한 남자가 묘기를 선보이고 있더군요.
이곳 공터에는 여러 젊은이들이 모여서 각자의 재능을 갈고 닦습니다.
도쿄의 요요기 공원(代々木公園)이나 하라쥬쿠(原宿)에서 일요일마다 인디 밴드들이 열광적으로 공연하는 모습과 비슷하달까요.
일본도 교육시스템이 잘 되어있다고 하긴 어렵지만 이런 열정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할 공간이 있다는게 부럽긴 합니다.


점점 난이도를 높여가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마지막에 선보인 묘기는 저 나무상자 3개에서 전부 손을 떼고 한바퀴 돈 후에 가로로 한 번에 잡아내는 것이더군요.
아마 위 사진은 두개를 잡아내는 모습일겁니다. 중간의 나무상자가 떨어지지 않게 잡아내는 모습이 절묘했습니다.

잠깐 눈요기를 한 후 드디어 일행은 오사카 여행의 주 목적중 하나인 세계 최대의 수족관 카이유칸으로 향합니다.


여차저차해서 오사카(大阪) 관광 겸 가이드로 고등학교 동창 친구와 그 동생분과 함께 4박 5일의 일정으로 떠났습니다.
3년 전에 얘네들 데리고 동경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애니메이션,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동경에서는 작정하고 아키하바라, 이케부쿠로 등지를 돌아다니며
만다라케, 애니메이트, 게이머즈, 옐로 서브마린, K-Books 등등 오덕들의 성지란 성지는 전부 다 섭렵했었단 말이죠.

덕분에 정상적인 관광이라기보다는 오덕에 특화된 관광형태를 취하다 보니 정작 제대로 즐기지 못한 부분이 많아서
이번엔 친구를 정상적인 관광의 길로 인도해야겠다는 신념을 갖고 평범한 코스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비행기는 언제나처럼 아침 출발이라 새벽에 일어나서 리무진 버스를 기다립니다.


비행기를 타고 나니 한국에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실감할 수 있더군요.
참 기록적인 폭설이었습니다. 저야 뭐 눈이 귀한 곳에서 자란 탓인지 그저 신기할 뿐이었지만.


칸사이 국제공항에서 일단은 내일부터 사용할 '오사카 주유패스'(大阪周遊パス)를 구매해두려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요...
결국 한참동안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얻은 결론은 원래 갈 예정이었던 난바(難波)역까지 가야 구매할 수 있다는 서글픈 현실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1일 패스밖에 판매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오사카 주유패스는 오사카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진리나 마찬가지인 티켓으로...
원래는 1일권 밖에 없지만, 외국인들에게만 발행하는 2일권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기본적인 기능은 1일, 혹은 2일간 오사카 시영 전철과 버스 등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실제로 여행자들에게 크나큰 축복이 되는 부분은 오사카 시내 유명한 볼거리 25개소의 무료 입장 쿠폰이 동반된다는 사실이죠.
게다가 그 외의 수많은 볼거리, 탈거리를 조금씩 조금씩 할인해주는 쿠폰도 있습니다.

무료 입장가능한 지역을 중점적으로 이틀간 돌아본다면 보통 5000~7000엔 가까운 요금을 절약할 수 있는
여행자를 위한 최상의 패스카드임에 틀림없습니다.
단지, 1일 패스로는 아무리 용을 쓰고 달려도 무료 쿠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외국인을 위해 특별히 2일 패스가 만들어 진 거죠. 
특히 오사카는 기본 전철비도 꽤 비싸고, 몇 구간만 지나면 요금이 추가되는 터라
오사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데도 주유패스가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결국 일행은 꽤나 긴 시간을 소비한 후에 리무진 버스를 타고 난바역으로 향했습니다.
난바는 남부 오카사의 모든 전철선이 모이는 중심지로, 오사카 최고의 번화가인 도톤보리(道頓堀), 신사이바시(心齋橋)등이 밀집해 있습니다.
일본 제 2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는 화려함을 자랑하는 곳이죠.

하지만 일행은 지금 짐덩어리를 여기저기 짊어지고 있는 터라 일단 숙소로 가서 짐부터 풀어야 했습니다.
그 전에 어떻게든 주유패스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패스 판매처인 Visitor's Information Center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또 한차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T_T
일본의 둘째 주 월요일(1월 11일)이 성년의 날이라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사카에 도착한 날이 1월 10일이었는데요, 일본에서 성년의 날은 굉장히 큰 기념일이고 법정 공휴일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주유패스의 무료 쿠폰을 쓸 수 있는 여러 관광 명소들 중, 원래 월요일이 휴관인 곳들이었죠.
일본은 보통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치면 다음 날 월요일로  휴일을 밀어버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 월요일 휴관인 곳들이 성년의 날 관계로 전부 월요일 영업한 후,
다음 날인 화요일날 휴관을 해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주유패스로 뽕을 뽑으려고 월요일 휴관하는 곳과 화요일 휴관하는 곳을 잘 구분한 후 거기 맞춰서 열심히 돌아다니려 했던 터라
상당수 관광지가 화요일날 왕창 쉬어버리는 사태는 여행계획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크나큰 위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인포메이션 센터 앞에서 안내원 아가씨를 괴롭혀가며
월요일, 화요일 휴관인 곳, 이틀 모두 영업하는 곳 등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일정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나마 위안을 삼자면, 원래 계획했던 코스가 정말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열심히 달려야 소화가능할 정도였기 때문에
몇 군데 돌아보지 못하는 곳을 제외하면 이틀간 주유패스를 이용한 여행경비 절감은 그럭저럭 가능할 듯 했습니다.


결국 도착은 오전에 했지만 오후가 훨씬 넘어서야 숙소가 있는 에비스쵸(恵美須町)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도 꽤나 번화가라서 골목 구석에 숨어있는 숙소 찾기가 참 어려웠네요.
원래 혼자 여행할때는 그저 두리번거리며 하염없이 목적지 찾는것도 일상다반사였는데
가이드할 일행을 두고 그러려니 왠지 뒷통수가 뜨끔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ㅡㅡ;

이곳 에비스쵸는 아직 옛날 풍경이 조금은 남아있는 시장 신세카이(新世界)와, 그 중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츠텐가쿠(通天閣)가 유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재미있었던 것이, 신세계라고 당당히 이름붙힌 거리는 촌스럽기 그지없는 전광판으로 그 길을 시작하고
거리 안엔 오사카 안에서도 꽤나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고즈넉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거든요.

그리고 하늘과 통한다는 거창한 제목을 단 츠텐가쿠는 사실 요즘 보면 초라할 정도로 조그만 탑입니다.
원 탑은 1912년에 세워졌고, 화재로 소실된 후 195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으니, 지금와서 뭐라 할건 아니지만...
높이 103m의 타워는, 오사카의 랜드마크인 WTC 코스모타워의 256m나 우메다(梅田)의 명소 스카이빌딩(スカイビル)의 173m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어린애 장난이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런 작명성에서 오사카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기도 합니다.
홋카이도에서나 오사카에서나 도쿄 사람들은 쑥맥에 핏기없는 의지박약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데
그만큼 홋카이도나 오사카 사람들은 배포가 크고 인정이 많으며, 호탕한 기질이 부각된다는 말이 되니까요.

한국사람들과의 상성은 쪼잔한 도쿄보다 오사카 사람들이 더 맞는다고 할 만큼 적당히 뻥도 잘 치고 친근하게 대하기 좋은 느낌이죠.
이미 전통 문화의 향수는 거의 사라진, 이름뿐인 문화의 도시 오사카에서 그나마 이 아이러니한 제목의 두 볼거리가 저를 한번 피식 웃게 만듭니다.

일단 숙소에 서둘러 짐을 풀고 아까운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길거리로 나섭니다.
주유패스 2일권은 내일부터 써야 본전을 뽑기 때문에 오늘은 전철비도 아낄 겸 주변 구경만 슬쩍 하기로 했습니다.
동생분 몸도 별로 좋지 않은것 같아서 초장부터 무리를 하면 안될 것 같기도 했고.


일단 저렴한 덥밥체인인 마츠야(松屋)에 들어가서 배를 좀 채우기로 했습니다.
친구와 저는 규동(牛丼)을 주문했습니다. 그냥 평범한 소고기덮밥.
뭔가 비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재료의 질만 좋으면 누구나 만들어먹을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요리입니다.
친구는 이 규동을 참 좋아하더군요. 전 싼맛에 일본 갈 때마다 자주 먹긴 하지만 그닥 맛있다는 느낌은 못받았습니다.


동생분은 속도 안좋은데 모험정신을 발휘해서 무려 저도 처음보는 비빔동(ビビム丼)을 시켰습니다.
분명 한국의 비빔밥+덥밮 이라는 의미겠죠. 그런데 도착한 음식은 아무리봐도 비빔밥이라고 하기엔 좀... ㅡㅡ;
암튼 용감한 동생분은 열심히 먹긴 먹었습니다만 양도 꽤 많았고, 훗날 속이 안좋아서 고생 좀 하셨습니다.


정말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이 날은 에비스쵸 서쪽의 신사에서 축제가 열리는 날이라고 하네요.
꽤나 큰 규모의 축제라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께서 교통이 혼잡할거라고 미리 주의까지 주셨습니다.
신사까지 따라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길게 늘어있는 상점들도 구경할 수 있어서
주유패스의 악몽이 조금은 희석되는 느낌이었네요.


축제를 즐기는 사람 중 상당수가 저런 나뭇가지를 들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금 더 통이 큰 사람이었다면 아무나 붙잡고 저게 무슨 의미인지 다짜고짜 물어봤을테지만
전 섬세한 사람이라서 그냥 남몰래 사진만 찍었어요.


동생분은 예전부터 어떤 맛인지 궁금해하던 사과사탕(リンゴアメ)을 하나 샀습니다.
일본 만화책이나 영화 등등에서 아이들이 축제날 자주 사먹는 녀석이죠.
별다른 거 없이 그냥 사과에 설탕 녹인 시럽을 둘둘 발라서 굳힌 것 뿐입니다.
사과와 시럽의 조합으로 굉~장히 달달하기 때문에 단 것 좋아하시는 분은 사과의 상큼함에 단맛이 가미된 이 녀석이 마음에 드실 듯.

저처럼 단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머리가 찡할 정도로 상당한 당도를 자랑하니 그냥 한 입만 먹어보세요.


이번 여행에도 전 필름카메라 알파 세븐이를 주력으로 사용했는데,
마음껏 쓰라고 건네준 DSLR A550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잠만 잤습니다. ㅡㅡ;
대만 여행땐 형님이 알아서 저것 가지고 열심히 찍고 해서 상당수의 사진을 건졌는데
이 친구녀석은 카메라의 'ㅋ'자도 관심이 없어서 그냥 멀뚱멀뚱 갖고만 다녔네요.

열심히 찍어댔으면 그래도 몇 장은 참신한 사진을 건질 수 있었을텐데 그냥 제가 필요할 때 받아쓰는 용도로밖에는 사용하지 못했네요.
친구는 이번 여행동안 '아이템박스'로서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조금은 자율성을 발휘해도 좋았을 텐데...


칸사이 하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마성의 간식 타코야키입니다.
타코야키도 많이 만들어본 사람이 잘 만든다고, 유동인구가 많고, 잘 팔리는 타코야키집이 맛도 일정 이상은 합니다.

한국에서 먹던 늘어붙은 떡같은 타코야키와 비교하면
겉은 과자처럼 아삭거리면서 속에 숨어있는 엄청난 열기의 반죽과 토실토실한 문어조각의 향연이 예술이죠.
전 참을성이 없어서 항상 일본서 타코야키 먹으면 항상 입천장이 헐렁헐렁 거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맛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방금 전에 규동을 먹은터라 그 감동이 조금 덜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 혼자 10개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었는데
출발 전부터 속이 좋지 않던 동생분이, 비빔동에 이어 이것까지 무리하게 먹다가 상태가 별로 안좋아졌습니다.
간식거리는 다음에 동생분 속이 좋아지면 같이 즐기기로 하고 일단 군것질은 여기서 끝내기로.


노점축제가 다 그렇듯 이곳에서 파는 것들은 조잡한 애들 장난감이나 출처불명의 기념품들이라 그냥 재미있게 구경만 해도 만족합니다.
왠지 전문 기념품점에서 팔면 '이런 걸 기념품이라고' 하면서 기분나빠질 저질 물건들도
이런 노점상에서 팔고 있으면 나름 정취를 풍기는 문화적 코드가 된다고 할까요.


축제 노점판을 슬쩍 둘러본 후 날이 어두워지자 급조된 오늘의 행선지로 향합니다.
숙소 근처에서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는 관광지.
오덕들의 성지 덴덴타운(でんでんタウン)입니다.

지도에는 결코 나오지 않지만 많은 오덕들에 의해 오타로드(オタロード)라는 애칭까지 갖게 된 거리입니다.
원래 15년 전까지 도쿄의 아키하바라(秋葉原)가 그랬듯이 이곳 덴덴타운도 처음엔 PC 부품 관련 상가들이 중심이었는데
점차 오덕들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아니메, 게임관련 점포들이 입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꽤나 큰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거의 오덕들의 성지로 변한 아키하바라에 비해 아직은 PC 관련 점포도 꽤나 남아있는 이곳이지만
오히려 아키바보다 노골적으로 성인용품, DVD를 판매하는 점포가 더 강성한 듯 해서 재미있었습니다.
아주 열정적인 목소리로 성인 DVD를 홍보하는 테이프를 가게 밖으로 크게 틀어놓은 점포도 있고
'세계의 속옷 전문점'이라는 묘하기 그지없는 제목을 달고 있는 점포도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들어가진 않았어요. ㅡㅡ;
친구 동생분이라는 '여자사람'도 있고, 친구는 반 오덕에 가까운 녀석이라 현실세계의 여성에겐 관심이...
(이 이상 했다간 친구분의 인생에 큰 장애가 생길수 있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서 줄이기로 하죠)

숙소도 어찌어찌 잡다 보니 이 덴덴타운과 걸어서도 갈 수 있는 희한한 위치가 되어버렸는데
어차피 이번 여행의 컨셉이 오덕문화에서 탈피한 정상적인 관광인 고로
일부러 시간내서 덴덴타운을 찾아가지 않는 대신 숙소 근처에 있으면 저녁에 정상적인 관광 후 조금씩 둘러볼 수 있겠다
싶은 저희 면밀한 계획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번뜩번뜩하며 중고 게임소프트를 굶주린 늑대처럼 찾아다니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뭔가 제가 오덕의 저력을 너무 우습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가슴을 엄습해 오더군요.
동생분은 친구만큼 오덕은 아니고, 평소 즐겨하던 NDS 게임이 있어서 그것만 찾아다녔습니다.

저도 참 한때는 저 친구를 오덕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장본인으로,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전반적으로
굉장한 수집력과 지식을 자랑했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가끔 코믹스 몇 권씩 사는 것 외엔 거의 손을 뗀 상태라서
손을 떼지 못하고 오덕의 피로 물들어가는 친구의 모습에 쥐똥만큼의 죄책감을 느낄랑 말랑 하기도 합니다.


대충 저렴하다 싶은 게임 소프트를 구입한 후 첫 날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갑니다.
일본은 가게들이 문을 꽤나 일찍 닫아서 밤부터는 그닥 할 게 없다는게 아쉽죠.
물론 도톤보리 같은 환락가에 가면 먹고 마시는 거야 밤새도록 할 수 있지만 여행경비는 한정되어 있으니.
저 츠텐가쿠 전망대 역시 원래는 600엔이지만 주유패스에 무료 입장권이 있으니 잘 써먹어야겠습니다.


효심이 지극한(?) 친구는 엄니한테 안부전화도 잊지 않습니다.
저는 워낙 이리저리 뛰쳐나가는 터라 엄니는 제 전화 별로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4박 5일 정도의 여행이야 그냥 동네 슈퍼에 과자사러 나가는 정도지만 그래도 한두 번은 연락을 드려야겠죠.


신세카이 거리는 신, 구의 조화가 기묘하게 얽혀있는 느낌입니다.
허름한 꼬치구이집과 한국에선 거의 자취를 감춘 동시상영 영화관, 그리고 휘황찬란한 파칭코 가게.
숙소 근처엔 상당히 큰 스파 월드도 있었지만 여행 끝날 때까지 그곳을 이용할 일은 없었네요.
동생분 혼자서 여탕에 들어가봤자 심심할 테고... 저는 그냥 여행 후 혼자 조그만 욕탕에서 몸만 담궈도 행복하니까요.

근처 편의점에서 간식거리 조금 사들고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여행의 첫날은 비행기에서 버스, 전철까지 항상 피곤함의 연속이라 힘들군요.
물이 가득 담긴 욕탕에 몸을 담그니 역시 그 짜릿함과 편안함은 여행의 최고 즐거움입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주유패스를 이용한 입장료 남겨먹기 계획을 실행합니다.
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주유패스의 무료 입장권을 헛되이 할 수는 없죠.
상당한 강행군이 예상되는데, 저는 익숙하지만 이런데 면역이 없는 친구와 동생분은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