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구라전을 감상후 왔던 길과는 다른 루트로 걸어간다.
이곳 상점가는 이즈모탸이샤를 기점으로 일직선으로 주욱 뻗어있는데
거기서 한 블록만 옆으로 빠져도 상점가하고는 관계없는, 평범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주택가로 가기 전에, 버스 정류장이 앞에 있어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커다란 기념품점 앞에서 음료수 한개 뽑아들고 휴식.
흐리고 비가 올거라는 기상예보와는 달리 32도를 넘나드는 쨍한 날씨라서 생각보다 수분 보충이 필요하다.
카메라 장비때문에 처음부터 물을 많이 가져올 생각이 없긴 했지만. 돈쓸일이 별로 없는 여행이라서 음료수 정도는 뽑아먹어도 지장이 없다.
자전거 여행때는 편의점에서 제일 저렴한 64엔짜리 주스만 골라먹곤 했는데, 이제 100엔짜리 탄산음료도 거뜬하다.
이런 행동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부르주아틱.
음료수 마시면서 잘 가꿔놓은 꽃도 담아본다.
다 뜯어먹고 뼈다귀만 앙상한 옥수수처럼, 이 녀석 제대로 핀 상태가 아니다. 제대로 핀 녀석은 아마 눈에 익을 듯.
그렇지만 되려 그 불완전함 덕에 아직 여물지 않은, 혹은 다 여물고 저물어가는 꽃이 한없이 투명한 모습이라서 더욱 인상깊다.
사람 역시 꽃다운 시절 지나간다고 장점이 없어지는 것 아니니.
그 옆의 녀석들은 아주 한창이다. 저기 저 빨간 녀석이 위의 녀석과 같거나 비슷한 종인듯 한데
전체적인 실루엣을 빼면 정말 같은 종인가 할 정도로 강렬한 색상을 뿜어내고 있다.
찍사의 능력이 떨어져도 언제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꽃 때문에 안도의 한숨을 쉴 때가 대체 몇 번이었을까.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들이 원래 뿌리내리던 곳과 비슷한 환경을 업고 자라나는 녀석들은 확실히 생기가 넘친다.
어쩐지 소심하게 조금조금씩 자라면서, 가끔 힘을 내서 한두 송이 피워주는 본가 아파트 안의 꽃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도 생기고.
보기좋은 도로, 산책하기 좋은 길이란 어려울 것 같으면서도 사실 단순한 편.
좁은 도로지만 인도와 단절감을 느끼게 하는 높이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점수를 줄 수 있다.
높은 턱이 있으면 자동차가 없는 한산한 시기에도 왠지 인도 안에서만 걸어다녀야 한다는 관념에 얽매인다.
실제로 도로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이런 흰 선 하나만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무의식적으로 편안함을 준다.
실제로 이런 재질과 구조의 도로는 교통량이 많거나 속도가 높은 곳에서는 문제가 많지만
제한속도 30km 를 지키는 곳이라면 시커먼 아스팔트 도로보다 시각적으로 훨씬 훌륭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 외에도 껌딱지같은 보기싫은 주근깨가 없다던가, 여기저기 땜빵해서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도로가 없다는 것도 장점.
익숙해지면 그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되는대로 땜빵해놓은 도로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참 흉물스럽다.
자전거로 이동할때는 그 울퉁불퉁함이 실제로 큰 부담이 되기도 하고.
매년 블럭 박살내고 다시 까는 짓은 하면서도, 도로 하나 매끄럽게 유지하지 못하는 건 실소를 자아내게 할 뿐이다.
디자인이랍시고 여기저기 괴상한 아이콘으로 치장하며 애써 티내는 것보다
원래 용도에 맞게 제대로 관리만 해도 길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상점가하고 한 블럭 떨어져서 걸어가면,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주택가로 들어간다.
상점가쪽도 워낙 관리를 잘 해놔서 구경하면서 걷기에 부족함은 없지만
물건을 팔기 위한 어필이 강한 곳보다는 이런 곳이 혼자 걸어다니며 사진 찍기에 적합하다.
그냥 주택가인데도 문 앞에 이런 멋진 녀석들을 장식해놓은 곳도 있고.
아마도 그곳에 사는 주민보다, 이 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름모를 사람들에게 더욱 큰 미소를 선물해 줄 테지.
근본적으로 이런 배려를 느낄 수 없는 아파트라는 거주지에 아무래도 정이 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일까.
자전거 여행중 둘러본 많은 시골동네 중에서는
이곳이 체감적으로 꽤나 부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래도 이즈모타이샤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듯.
담 너머에는 생명력 넘치는 정원이 펼쳐져 있을 것 같은 큰 저택은, 이곳 이미지와는 약간 이질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담 바깥에 놓여있는 손바닥만한 화단이, 담 속에 가려진 거대한 조경식물들보다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겠지.
저 정도로 왁자지껄한 정원이라면, 손질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큰 부분을 담당할 수 있을 만큼 정성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윗 사진의 저택이 훨씬 잘 사는 곳이겠지만
이곳처럼 담 없이 조그만 자투리 공간에서 시원하게 자라주는 나무가 역시 푸근하다.
담으로 둘러친다는 행위는, 그 안의 것이 완벽하게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것.
아무래도 땅의 기운과 태양의 기운을 받고 자라는 푸른색 생명체들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게 제일 보기 편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일본에서는 별로 드물것도 없는 평범한 주택의 모습이지만, 어쩐지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셔터를 눌러본다.
지금은 점점 헐리고 무너져가는 한국의 예전 주택들을 둘러싼 담벼락은
잘못 스치면 피부가 벗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 정도로 까칠까칠한 시멘트 덩어리가 대부분.
다들 먹고살기 힘들어서 건물 외관에까지 신경쓰기에는 어려웠을거라 이해해 보지만
사소한 디자인이라도, 오랫동안 혹은 평생을 지켜보며 살아갈 경우엔 사람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한다.
중세시대 요새마저 방불캐하는 공격적인 담벼락이 주택가를 애워싼지 수십 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조금씩 미적 감각이라는 걸 살려가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여기 시골 사람들이 한국의 그 부유층보다 더 널널해서 이렇게 디자인을 해 놓은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아무리 먹고살만해진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풍족해지지 않는다.
외상을 가만 놔두면 자칫 파상풍으로 번지고,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듯이
사람 마음의 여유로움이라는 것도, 잘 치료하고 관리해주지 않으면 쉽게 아물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근대 들어서면서부터 결코 자생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마음의 상처를 안고 태어난 사람이나 마찬가지.
물질적인 풍요로움만으로 그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텐데.
여기서 담아온 사진은 전부 허락받고 촬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충분한 녀석들.
분명 개인의 주택부지에 포함된 사유재산임에도,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쉽게 보일 수 있는 곳의 모습이다.
인구 50명도 되지 않는 경남 언저리의 시골집 역시 이곳 못지않은 한적한 곳이지만
담도 없는 그곳의 마당 깊숙히 박힌 디딤돌마저 억지로 뽑아내서 가져가버리는 한국에서
이런 꾸밈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에 괜히 우울해지기도 한다.
사람이 살지않는 집은 죽은 집이라는 말처럼, 집의 모습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 이즈모의 시골 주택가 풍경이 부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집이라는 장소는 어디까지나 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움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지론.
쉽게 말하면, 집 안에서야 홀딱벗고 돌아다녀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이 단지 수십 센티미터의 콘크리트 벽 하나로 구분되기엔
사람의 마음이란게 그렇게 수학적이지 못한 것도 사실.
주택의 마당이라는 존재가, 그 두 개의 상반된 공간을 보완해주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명백히 사유지의 부분이기도 하면서, 개방된 공간의 특성 역시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공간.
하지만 사람 키보다도 높은 담으로 둘러쌓인 마당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닌데
이런 아담한 공간 하나가 존재함으로서 마당이 숨을 쉴 수 있게 되는 듯 하다.
강도에서는 떨어지겠지만, 주변 풍경과 위화감이 없는 대나무로 창살로 가벼움을 주장하는 듯한 모습이 훌륭하다.
이런 공간을 통해 누군가가 마당 안의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떨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건 집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가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병들어 가고 있다는 셈이겠지.
외국 관광객들이 풍물시장을 찾는 것처럼
그 나라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은, 대도시의 번쩍번쩍한 네온사인이 아니라 생활상이 묻어나는 시골이라고 생각.
도시에서는 이미 여행자의 생활권과는 다른, 타문화의 향기를 느끼는게 불가능에 가깝고
현지인들에게는 당연하게 비치지만, 여행자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오는 모습을 느끼는 것이 여행의 재미라고 본다.
좁은 길, 허름한 주택, 엉성한 전선과 쇠퇴의 부산물로 떠오르는 듯한 적막함 등, 한국의 시골과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을 터인 이곳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매력 중 하나인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향기를 끈임없이 풍긴다.
경제 발전이 늦었던 한국의 무서운 성장 속도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은 이런 시골이 아니라, 서울과 같은 대도시.
2000년대 초반은, 도쿄에서 10년전 유행하던 것이 서울로 건너온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던 시기였다.
지금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사람들의 옷, 식습관, 유행어 등이 쌍동이처럼 나타난다.
하지만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이런 시골의 모습만큼은 수십 년이 지나도 결코 동기화될수 없을 듯 하다.
한국의 시골은 여러가지 이유로, 예전의 정체성 자체가 뿌리째 사라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의 시골이 향하는 곳은 궁극적으로 대도시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예상해 본다.
이제 도쿄 놀러가서는 뭐가 한국과 다른지 헷갈릴 정도의 시대가 되었지만
그럴수록 이런 곳의 풍경은 점차 한국의 그것과 다른 향기를 풍기게 될 듯.
느긋하게 동네를 한바퀴 도는데, 미니 신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관광지로 유명한 신사보다는 사실 이쪽이 실제 생활과 더 밀접한 모습.
그리고 자전거 여행당시의 나한테는 절호의 야영지이기도 하다.
대도시에서는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공원이나 공터에서 텐트 치는 수 밖에 없는데
시골 마을에서는 이런 신사 구석이 의외로 훌륭한 야영지가 된다.
시골이라고 해도 어디나 마음껏 텐트 칠만한 장소가 별로 없다는 것에 놀라곤 했는데
수도나 화장실 등이 비치된 곳이 제일 좋긴 하지만, 이 정도 독립적인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취사까지 해결하기에는 좀 미안한 느낌이 들긴 해도, 마을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잠만 자고 일어나서 출발하면
근처에 식사 해결할 만한 곳은 충분하니까.
아마 자전거로 이곳을 통과하는 도중이었다면 오늘 밤은 여기서 해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일본은 시골사람들 인심이 한국에 비해서 눈에 띄게 후한 곳이라
자전거 여행 도중엔 염치불구하고 잘 들이대기만 하면, 마당이나 화장실, 가끔은 식사도 제공받을 수 있는데
1년여간 돌아다녀도 이 소심한 성격은 쉽게 고쳐지질 않았다. 적극적이었다면 훨씬 많은 인연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뭐, 그건 본인의 아이덴티티에 관련된 문제니, 거기에 따른 불이익은 기꺼이 감수할수 있고.
시골이라서 비슷하겠지 싶었던, 주민들의 인심에 대한 시각은 본인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큰 차이가 있었다.
대체로 한국쪽이 훨씬 정이 많이 않을까 하는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은게 신기했다.
똑같은 자전거여행을 해 본 결과, 한국의 시골마을에서는 이유가 어찌됐든 기본적으로 강한 경계를 느낀적이 많다.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경우는 대부분이 자전거나 여행에 관심이 있는 도시인, 즉 타지에서 놀러온 사람들이었고
나이 지긋한 지역 주민들은 묘한 눈으로 쳐다보기는 해도 이쪽으로 접근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슈퍼에서 물건 살때조차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몇분이고 늘어놓던 일본쪽 시골에서의 경험은, 한국에서는 전무하다.
반대로 일본은, 대도시에서는 거의 타인에게 무관심한데 비해 시골사람들은 꽤나 시원시원하게 접근해 온다.
어찌됐든 인사하는데는 도가 튼 특징이 영향을 미쳤다고 예상해 보는데, 대도시에서는 그게 단순한 인사치례일 뿐이지만
시골에서는 꽤나 진지하게 상대방을 대해주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것이 아닌가 싶다.
초코파이때문에 무의식에 각인된 한국인의 정이라는 단어는, 이제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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