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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9.09  과거로의 여행 - 청춘이 필요해 18
  2. 2013.09.07  과거로의 여행 - 되돌아가기의 신선함 16
  3. 2013.09.05  과거로의 여행 - 타카야마의 밤축제 10
  4. 2013.09.02  과거로의 여행 - 예정에 없지만 예상되는 8
  5. 2012.05.23  킨키 방황 - 거품같은 축제의 마무리 10
  6. 2012.05.23  킨키 방황 - 류큐왕국의 눈물 18

 

 

확실히, 갔던 곳을 또 가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듯 하다.

좀 전에는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양쪽을 두리번거리며 어지럽게 돌아다닌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얼핏 기억으로는, 좀 전보다는 많이 적혀있는 느낌이 든다. 축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니 처음보다는 많이 적혀있는 듯.

신사에 봉납하는 에마 모양의 낙서장인데 아이디어는 좋다고 본다.

아무데서나 낙서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배출구를 마련해 주는게 누이좋고 매부좋은 것이니.

 

 

 

에마에 소원적는건 역시 젊은층의 비율이 높은 듯 하다.

아직 살 날도 창창하고 하고싶은것도 많을테니 적고싶은것도 많을테지.

늙은 사람은 이룰거 대충 다 이뤘거나, 이런 데 적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자각할만큼 인생 경험해 왔으니 그럴수도 있고.

 

덕분에 뭐, 이런 에마를 훔쳐보는건 나름 재미가 있다. 절실한 사람보다는 가벼운 사람이 많으니까.

평범한 소원에는 관심이 없어서 약 좀 빤듯한 소원을 찾아보는데, 왠지 타카야마엔 솔로가 많은듯한 기분이 든다.

'남자친구가 청춘을 즐기고 싶어♡ 우햐~' 라고 수정선까지 넣어가며 적은 저차 3명에게 남친이 강림하시길.

 

 

 

일반적으로는 남자 비율이 높아서 여자가 남자 고르기 더 쉬운게 아닌가 싶은데

이곳 에마에는 이상할 정도로 여자쪽에서 남친 구하는 소원이 많다. 뭔 일일까.

 

BOB and RiN 이라는 여성도 남자친구가 갖고 싶다고 떼를 쓴다.

 

평범한 내용으로는, 축구가 인기 있는지 축구 잘하게 해 달라거나 대회 우승하게 해달라던지 하는게 좀 보인다.

 

 

 

1984년 8월 31일생 28세 남성은 욕심이 너무 많다.

 

지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가 잘나나기를 바라는 등, 타인을 배려하는 따스한 소원도 있긴 하지만

'엄마가 휴대폰 돌려주기를'이라거나 '빨리 일본에 카지노가 생기기를'이라거나 '언젠가 카나자와 경마장에 갈수 있기를' 따위의

묘하게 실현가능성이 있을랑 말랑 한 소원들을, 그 이전에 소원을 빌 필요가 있나 싶을 것들을 장황하게 적어놓았다.

 

카나자와까지 가는 버스비는 3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으니, 그냥 가면 안되나?

 

 

 

세계일주 하고싶다는 소원에서는 눈길이 멈출 수밖에 없다.

이것도 베르테르 효과처럼 전염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똑같은 세계일주 희망이 나란히 적혀 있다.

 

하지만 진짜 세계일주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 희망과 염원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알려나.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짜 이상하다 이곳 에마.

아무리 찾아봐도 '여자친구가 필요해' 보다 '남자친구가 필요해'가 압도적으로 많다. 영어로 쓰인 문장까지.

 

물론 남자 여자 숫자만 맞는다고 덜렁 커플이 생기는건 아니겠지만, 여친이 필요하다면 일어 배워서 타카야마로 날아가는게 좋지 않으려나.

 

 

 

'가족 사이좋게 주욱 함께' 라고 적은 귀여운 아이는, 확실히 좋을 때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어느 순간부터 그 가족들이 '빨리 좀 시집가'라고 밀어낼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번 에마에서 가장 스트레이트 소원은 저 '金'이다. 반짝반짝 빛난다.

 

 

 

에마를 구경하고 다시 길을 걷는데, 정말로 가게들이 거의 파장 분위기다.

이러다가 더 이상 먹을게 없어지는게 아닌가 싶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눈에 익은 녀석이 들어온다.

모양은 타코야키지만 예전의 점보야키처럼 큰 녀석이고, 문어가 아니라 히다 소고기가 들어간 히다규 야키라고 한다.

 

고급 소고기의 맛을 살리는데 전혀 적합하지 않은 묘한 조합이지만, 어쨌든 혼자서 그 비싼 히다규를 먹을 생각은 없으니

이렇게라도 한번 맛을 볼까 싶어서 하나 주문한다. 타코야키와는 달리 접시에 간장과 파를 소스로 넣어준다.

 

속에는 히다규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타코야키와 달리 간이 거의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밑에 깔린 간장을 살짝살짝 찍어먹으면 나름 맛이 난다. 숙주나물도 들어가 있어서 식감도 나름 즐길 수 있고.

중요한 히다규는 예상대로, 이렇게 먹어봤자 맛을 음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타코야키 만큼은 아니라도 나름 이 지역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녀석으로 체험해 보기에 나쁜 편은 아니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것보다 맛있는 간식거리가 많으니 반드시 먹어봐야 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다.

 

 

 

축제 거리의 끝부분까지 돌아왔다. 역시나 여기도 좀 전까지는 볼수 없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어느 공연이나 아마추어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아도, 그게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데 충분한 상승요건이 되는 곳.

 

라틴 전통무용 같은 춤을 보여주는 공연인 듯 한데, 네이티브도 있고 이곳 주민들도 섞여있는것 처럼 보인다.

아마도 어느 무용학원에서 나온 사람들 아닐런지.

 

 

 

밤이지만 날씨가 더워서인지 열정적이고 깔끔한 음악과 부채춤이 분위기에 녹아들어가는 듯 느껴진다.

뒤쪽에 서 있는 여성분이 직접 노래를 불러주는데, 굉장히 파워풀한 음량이 혼자서 댄서들 전부와 동등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무대 앞에는 신발 벗고 올라갈 수 있는 돗자리가 있었지만 의외로 앉아있는 사람은 적고 옆에서 서서 보는 사람이 더 많다.

나 혼자만 그런건 아니구나 싶어 약간 안도하는 기분. 왠지 무대 바로 앞의 자리는 부담스럽다. 돈 주고 보는 공연은 제외하고.

 

 

 

사실 앉아서 구경하면 카메라 화각이 너무 한정된다는 이유도 있다.

틸트 액정이 있어서 이럴 때 구도잡기는 편한 카메라라, 예전처럼 눈대중으로 촛점 맞추고 셔터 누를 필요가 없다.

사람이 여전히 꽤나 서 있어서 자리를 마구 옮겨다니기는 힘들어도, 나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장점.

 

마지막에는 돌아가며 공연하던 팀이 한꺼번에 나와서 즐겁게 춤추기 시작한다.

함께 추실분은 올라와도 된다고 안내를 해 줬지만, 역시나 이 틈에 끼어들어서 춤을 출 만한 용사는 그리 많지 않은듯 하다.

좀 더 격식없고 막가는 춤이라면, 의외로 축제하면서 신이나 발광하는 일본인들이 꽤나 많은데

이런 식으로 동작이나 의상이 정해진 무대에 난입해 기분에 따라 몸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적은 듯.

 

 

 

마지막 라틴댄스 공연이 끝나자 축제의 열기도 함께 진정되어간다.

길지 않은 시간과 길지 않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축제라, 사람들은 그다지 피곤한 기색 없이 즐겁게 원래의 길로 돌아간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2차를 위해 술집을 향해 걸어가기도 하고, 교복입은 학생들은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마을 사람도 아니고 같이 여행온 사람도 없는 본인은, 그냥 아직 불이 켜진 공예점의 전시품이나 한장 찍고 숙소로 돌아간다.

예전 이즈모 여행때 들렀던 ANTWORKS GALLERY 정도로 흥미깊은 작품은 별로 찾을 수 없어서 살짝 아쉽다.

 

 

 

축제가 이뤄진 구간은 마을의 아주 짧은 한 구역만이었기 때문에

그 곳을 벗어나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하니, 이미 마을 전체는 어둠에 파묻힌 시골마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도심지가 아니라면 일본의 상점들은 늦어봤자 9시 전에 문을 닫아버리니, 축제 구역 이외에서는 이미 하루가 끝나 있었던 셈.

 

쓸쓸하지 않은 적막함이 바람처럼 흐르는 관광마을의 밤거리를 걸으며

축제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오늘 오후 좀 더 많은 시간을 소유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술집 말고는 전부 문을 닫은 상가 거리지만 여전히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가로등이 밝게 켜져 있다.

축제의 인파가 진통제 역할을 한 것인지, 무뎌져 있던 피곤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 같아

밝은 가로수 아래서 음료수 하나 뽑아마시며 벤치에 앉아 카메라의 재생버튼을 눌러 본다.

 

호텔에 돌아가서도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지만, 왠지 호텔에 돌아가는 순간 남아있는 이 기분은 전소되어버릴것 같아서.

가정집 대문앞에 자연미 물씬 풍기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돌아가는 끝까지 흡족한 기분이 드는 것도 멋진 일이다.

과연 자연좋은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미술 작품 재료를 고르는 것도 대담하다.

 

더운 날 호텔로 돌아오면 또 하나 즐길거리가 있다.

에어콘을 켜고 나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즐긴 후 수증기 가득한 욕조를 빠져나와 문을 열고 객실로 돌아가면

충분히 시원해진 방의 공기가 덥혀진 몸을 짜릿하게 만든다.

 

여기서 맥주 한캔 까서 마시면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광경이 되겠지만

본인은 술을 그리 즐기지 않으니 그냥 낮에 사놓은 콜라나 한잔 따라마시며 하루를 마감한다.

밤이 좀 늦었지만 일본까지 온 이상 TV 프로도 좀 챙겨보고 싶어서 잠깐잠깐 몸을 뒤척이며 남은 시간을 즐긴다.

 

 

자전거 부스가 축제의 마지막 구역이다.

이제 슬슬 왔던길을 되돌아 가면 되는데, 렌즈를 바꿔끼우는게 귀찮다 보니 그냥 되는 화각만 맞춰서 찍어온 터라

돌아갈 때는 다른 렌즈 끼워서 다시 찍으며 돌아가면 된다. 귀찮기도 했지만 어차피 다시 돌아갈 길이라 일부러 렌즈를 교환하지 않은 것도 있다.

 

어제 토요타 박물관은, 피사체들의 집합소 그 자체였기 때문에 부담없이 마구 찍어재낄 수 있었는데

히다 타카야마에 와서부터는 묘한 의무감 때문에 좀 지쳐있는 상태였다.

유명 관광지다 보니 뭐라도 좀 남겨야 하지 않겠냐는 쓸데없는 의무감.

 

원래 여행와서 집보다 더 뒹굴거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임에도, 오랜만의 여행인지 뭔가를 보고 즐겨야만 한다는 긴장감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운 좋게도 타카야마의 소박한 축제 거리를 거닐면서 그런 긴장감이 많이 풀어진 기분이라 다행.

조금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 이렇게 조그만 공연장이 하나 생겨있다.

살짝 연습중인데, 동네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뛰어난 실력이고 프로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밴드로 느껴진다.

실력은 둘째치고 호흡 맞추는게 매우 익숙하고 노련하게 느껴지는것이, 상당히 오랜시간 함께 연습해 온 듯 하다.

 

 

 

원래는 드럼과 턴테이블까지 함께 하는 밴드인데, 아직 리허설 중이라 다들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샹송 비슷한 곡을 보컬깨서 피로해 주시는데, 갑자기 아기 하나가 울면서 튀어와 안긴다.

일행인지 마을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앞에서 구경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아기 안고 관객석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아이는 자지러지면서 엄마한테 돌아가려고 하고, 엄마는 할 수 없이 안아들고 노래를 계속한다.

 

그 덕분에 아이를 동반한 샹송이 연출되는 묘한 구경을 즐길 수 있었다.

아직 자기 엄마가 혼자 노래부르는 모습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닌가보다.

이 친구가 좀 크고나면, 타카아먀 가서 이 사진이라도 기념으로 하나 줘 볼까 싶기도 하다.

 

뭐라하든, 이런 헤프닝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축제라는게 정말 마음에 든다. 마을 축제란 이래야지.

 

 

 

좀 전의 미니카 레이싱장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멈춰서 있다.

조금 귀엽긴 하지만 어쨌든 우렁찬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미니카들을 재미있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은

반은 아이들이고 반은 어른들이다. 직접 보면 어른들이라고 해서 재미있지 않을 리가 없다.

 

저런 무게와 저런 스피드로 저런 오르막 급커브를 돌아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일탈을 꿈꾸는 미니카가 가끔 튀어오르긴 하지만, 손가락 하나로도 들 수 있는 미니카의 무게가 저 코너를 돌기 위해서는

상당히 철저한 계산으로 무게추를 이용해 접지력을 높혀야 한다. 장난감이라고 해도 과학적인 지식은 필요하다.

 

 

 

일단 구경은 한바퀴 마쳤으니 이제 남은건 즐거운 군것질 시간 뿐.

운이 좋은건지, 저 위의 신성한 존재께서 이런 이벤트를 예측하시고 나한테 '돈 널널히 가져가거라'라고 귀뜸을 한 건지.

먹을것 정도는 아끼지 않아도 될 만한 자금을 가져왔기 때문에 고민거리가 하나 줄었다.

 

자전거여행 당시엔 정말 입에 침이 고이도록 먹고싶어도 저 4000원쯤 하는 꼬치 5개도 함부로 먹지 못할 정도였으니

나름 추억과 동시에 트라우마로도 남아있는데, 이번엔 거리낄 게 없다.

맥주만큼은 혼자 서서 홀짝홀짝 마시고 싶지 않으니 그냥 꼬치 정도로 만족해 본다.

 

 

 

내가 손이 좀 큰건지, 혼자서 5개 짜리를 주문하고 나서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 군것질 하려면 여기서 5개씩이나 먹을 필요가 없었는데, 막상 쳐다보고 있으니 너무 맛있어보여서 그만.

 

식탐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맛있는 걸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진리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 한방 찍는다. 다들 주문이 밀려 엄청 바쁜데 미안한 기분도 들지만, 후다닥 찍고 빠져나온다.

이 앞의 냄새는 진짜 사람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데, 이것과 맥주 한잔이라는 조합은 악마의 유혹인 듯.

유명한 모 도박만화의 지하감옥에서 이 맥주와 닭꼬치를 이용한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그거 본 사람들은 다들 이 조합의 파괴력이 가지는 의미를 절절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짭쪼름한 소스에 지방 풍부한 꼬치의 부드러운 식감이 아름다울 뿐.

역시 이럴때는 함께 여행가는 사람이 있는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 하나 차지하고 맥주 한잔씩 마시며 하루 여행의 끝언저리를 즐기는 것도 매력적일 듯 하다.

 

하지만 다들 열심히 살고 있어서인지, 좀처럼 함께 갈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건 아쉬운 점.

홀로 여행도 너무나 좋아하니 아쉬울건 없고, 아직 살면서 여행 떠날 기회는 많이 남아있으니 서두를 것도 없다.

 

  

 

광각으로 교환하고 다시 한번 길을 돌아가면, 안보이던 모습이 들어와서 신선하다.

이거 참 신선한 발상인데, 골판지 시어터는 히타치 대리점 쇼윈도우에 전시된 TV를 이용해서 상용중이었던 사실.

마을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만들어가는 축제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모습.

 

아이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느긋한 자세로 감상중인 어른들도 꽤 있었다는게 인상깊기도 했다.

 

 

 

골판지 놀이터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람 역시 어릴때는 고양이와 비슷한 동물일런지, 이런 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다니면 굉장히 흥분되고 모험심이 활성화되는 기분이 든다.

 

혹시 이 골판지들, 토토로를 틀어주던 그 대리점에서 가져온 녀석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참 멋진 대리점일 듯. 아이디어와 축제 참가정신이 빛을 발하는 곳이니, 내가 이곳 주민이라면 그 가게에서 TV 한대 살지도 모르겠다.

 

 

 

소소하지만 아이디어를 잘 짜낸 곳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고양이처럼 얼굴 쏙 내미는 모습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부모 있는 앞에서 초상권을 침해한다는게 좀.

CG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본인이 원빈처럼 생겼다면 별 저항감 없이 사진 찍어도 다들 좋아하지 않았을려나.

 

 

 

이곳의 정식 명칭은 '골판지 미로'였다. 미로치고는 친절하게시리 입구까지 표기해 놓았다.

밑에 그려진 그림을 보니 완전 초짜의 작품은 아닌데, 이곳엔 왠지 예술감각이 좋은 사람이 많은 걸까.

 

혈기왕성한 애들이 아직 이 미로를 박살내지 않았다는게 가장 신기한 점이긴 하다.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한국에서도 작은 축제에서는 이거 한번 시도해 보는게 어떨까 싶다.

얼마나 빨리 박살나는지도 한번 비교해 보고 싶고.

 

 

 

한국이라면야 아직 초저녁이지만, 이런 작은 축제는 9시쯤 되면 슬슬 파장분위기로 변해간다.

오랜 경험과 계산으로, 4시간 정도밖에 열리지 않는 이런 축제에서 소비될만한 컨텐츠나 먹거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묘하게 품절이 될까말까 하면서 재고 역시 거의 남아있지 않는 절묘함이 돋보이기도 한다.

 

물론 상인들끼리 뒤풀이 할 만큼의 먹거리는 남겨놨지만, 마지막 떨이를 위해 노점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떨이라 좋긴 한데, 닭꼬치를 너무 많이 먹어버린 본인은 더 많이 먹는건 좀 사양이라서

기억에 남을만한 뭔가를 하나 먹는걸로 군것질은 끝내고 싶다. 물론 밤에 호텔서 깨작거릴 먹거리는 별개로 하고.

 

마을을 거닐면서 생각하지만, 거주하기는 참 좋은 곳이다. 자연환경 좋고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고 생필품 시장도 풍족하고.

한국의 홍대거리나 강남, 명동같은 번화가는 없지만, 그런 것 없이도 잘 사는 나같은 성격은 이곳에서 뿌리박아도 불만 없을것 같다.

 

 

 

물론 타카야마라는 곳이 그냥 풍경좋은 시골이 아니라 돈꽤나 있는 사람들이 사는 부촌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나가노의 중앙알프스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산골 마을 몇몇은 물좋고 공기좋고 경치좋은 곳이 많아서

부자들이 펜션이나 고급 호텔서 휴양을 취하는데 특화된 마을이 몇군데 있다.

 

타카야마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부촌임에는 틀림없고

카루이자와 같은 곳은, 경치좋은 호텔 1박에 50만원은 기본이고 결혼식 한번 올리는데 1억원은 껌값인 곳이기도 하다.

진짜 돈있는 사람은 호텔 따위가 아니라 전용 별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축제 거리에서 교차되는 이런 음식골목은, 아무래도 축제 당일엔 좀 한산해 질 수밖에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마을 전체의 부흥을 위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복입은 학생들이 라멘집이나 닭꼬치집 앞에 서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데

외부 자본이나 인력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만들어가는 축제라고 어필하는 듯이 보인다.

 

 

 

칠석날에 자주 쓰이는 조릿대잎이 걸려있는것도 오랜만에 본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음력으로 칠석을 지내니, 이 당시엔 아직 칠석이 아니었지만

일본은 양력 7월 7일이 칠석이라 이미 한참 지난 후다.

 

물론 지나칠 수 없는 큰 축제 기간인 칠석이라서, 한 달 뒤인 8월 7일에도 칠석 축제를 하는 곳이 많다.

 

 

 

축제 거리 사이에는 딱 한 군데 사거리가 있는데, 원래는 차량 통제구역이었지만

축제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거리를 가로지르는 도로쪽은 통행이 가능한 듯 하다.

좀 전까지 완전히 개방되어있던 사거리를,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신호에 맞춰 통제를 하고 있다.

 

물론 정상적으로 신호도 작동하고 있지만, 보행자 천국에 익숙해진 축제 관람객들이 혹시 신호를 보지 못할까 싶어서

일부러 신호에 맞춰서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세삼 느끼지만 참 대단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보니 정말로 신호를 보지 못한 채 건너가려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때마다 손짓 발짓으로 멈춰세우는 것을 보니, 정말로 필요한 곳에 제대로 배치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이런 사람들 볼때 제일 짜증나는게, 서 있는 사람 바로 앞에서 호루라기를 마구 불어재끼는 것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신호가 바뀔 때마다 '파란불입니다. 지나가세요' 라거나 '곧 빨간불로 바뀝니다' 라고 말해주는 모습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봉사하는 사람에게 많은걸 바랄수는 없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말로서 의미를 전하는 것과, 시끄러운 소음으로 경고하듯 쏘아붙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배려의 차이다.

 

 

 

인파 때문이었는지, 그냥 못 보고 지나친 건지

갈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산지이긴 하지만 물이 풍부한 곳이라 그런지, 복을 부르는 마네키네코의 품 안에 낚시대와 물고기가 안겨 있다.

마을 상가에는 항상 놓여있는 이 녀석은, 지역마다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있는데, 이런 산악지대에서 낚시대를 안은 녀석 좀 신선하다.

 

마네키네코란 한국어로 '손짓하는 고양이'라는 뜻인데,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옛날 한 지방 영주가 고양이의 손짓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 싶어 다가갔더니, 원래 서 있던 장소에 벼락이 떨어져 구사일생했다는 등의 일화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오른발을 들고 있으면 돈이, 왼발을 들고 있으면 손님이 모인다는 설이 있는데, 이 녀석은 돈이 좀 더 좋은가 보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유투브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고양이가 앞발을 들어서 조심스럽게 살살 손짓하는 모습은 '이리 오라'는게 아니라 공격 준비태세다.

사람이 자기 본위대로 해설하다 보니, 쫓아내려던 고양이는 고마운 영물이 되어버렸고, 그건 그거대로 행복한 이야기일 듯.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 보니, 엄숙한 준비동작과는 반대로 잘 웃고 유쾌한 성격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북 앞에 앉아있다.

태고라고 불리는 북을 연주하는 팀인데, 북의 재질이나 타법은 다르지만 동양권에서는 나름 익숙한 모습.

전통연주다 보니 각이 딱 잡히고는 있지만, 앞에 자리깔고 앉은 사람들은 도시락도 먹고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나라별로 북치는 방법이 다르긴 한데, 이게 또 지역별로 눈에 띄는 특색이 있다 보니

딱 어느 방법이 어느 나라의 방식이라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타악기의 특성인지 지역적 특생이 강하게 남아있는 악기.

 

입은 옷만 봐도 '각'이 느껴지는데, 북을 치는 방식 역시 꽤나 절도있는 모습이다. 태권도의 품새를 생각나게 한다고 할까.

원형적인 움직임이라던가, 손목과 어깨의 스냅을 이용한다던가 하는 방식이 아니라, 팔을 어깨 위로 쭉 올렸다가

간결한 직선으로 내려오면서 북을 치고 다시 각을 맞춰 위로 올리는 모습이다.

 

느린 박자였을때는 굉장히 엄격한 느낌이 드는데, 점점 속도가 빨라지도 살짝 엇박자가 겹치며 리듬이 다양해지는 순간부터

소리도 풍부해지고 경쾌함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움직임은 절도가 넘치는데 사람들은 서로 웃어가면서 즐겁게 치고 있다.

 

앞자리에서 북소리를 들으니 귓가가 파르르 떨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시원하다.

공연이 끝나고 잠깐 소개를 하는데, 이곳 마을 사람은 아니고 이렇게 북을 가지고 다니며 축제 있는곳에 가서 연주를 하는 팀이라고.

자주 와 주기 때문인지 소개하는 도중에도 장난끼있는 친구들이 소리도 지르고 한다.

공연중의 강렬한 이미지와는 달리 웃는 얼굴이 굉장히 편안한 아저씨 아줌마 팀이라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태고 공연은 계속되지만 언제나처럼 끝까지 듣지는 않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 정도 걷다보니 이 축제 거리의 구조를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길게 이어진 거리의 양쪽 사이드 부분은 각종 공연이 열리고 중앙부분에는 노점과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이 포진해 있다.

 

일단 공연 구간을 빠져나온건지 조금 한산해진다. 슬쩍 둘러보니 현지인들은 그냥 평범한 옷 입고 마실나온듯한 편안함을 보여주는데

외국인들도 굉장히 흡족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커플끼리' 둘러보고 있다.

 

뷰파인더에 담긴 타인들의 모습을 토대로 내려본 결론은, 뭔 다큐멘터리 작가처럼 거대 사이드백에 카메라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은

아무래도 나밖에 없다는 사실 정도. 찍을땐 몰랐는데, 우측의 체육복 처자가 날 웃으며 바라보는 모습에서 세삼 그 생각이 든다.

난 관광하러 와서 항상 관광당하는거 아닌가 싶은 자의식 과잉적인 생각이.

 

 

생필품 판매하는 지극히 평범한 동네 슈퍼였는데, 창문쪽에 애니메이션 '빙과'의 관련 포스터들이 잔뜩 걸려있다.

 

작품의 무대가 이곳 타카야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제 제작은 쿄토에 있는 제작사에서 만들었을 뿐이지만

자신들이 만든 작품인 것 처럼 열심히 홍보중이다. 한국에서도 무슨 유명 드라마 촬영지라면 관광객이 모이는 그런 느낌인가.

애니메이션까지 그런 범위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면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위치를 짐작할 수는 있다.

 

덕후들이라면 여기까지 와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장면이나 건물들의 모습을, 구도까지 똑같이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게

소위 성지순례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유야 어쨌든 덕분에 타카야마에서 돈 좀 쓰고 돌아가 줄테니 마을 사람들에게도 나쁘지는 않을 듯.

 

 

 

빙과 관련 포스터 중간에 이상한 연하장 같은게 걸려있어서 뭔가 싶었다.

리얼한 냥이 얼굴이 중앙에 붙어있어서, 처음엔 저 구멍 너머로 진짜 냥이가 보고 있는건가 착각도 했다.

 

왜 연하장이 애니메이션 광고와 함께 걸려있나 의아했는데

조사 좀 해보니 이 연하장을 보낸 사람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중 한 명을 연기한 사카구치 다이스케(坂口大助)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50년이 넘은 일본은, 성우라는 직업도 하나의 연예인 같은 취급을 받아서 나름 유명한 사람도 있다고.

 

 

 

상술, 이라고까지 단언할 정도는 아니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객에게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에 대해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만한 내공이 아니라는 점을 세삼스럽게 이곳 저곳에서 느낄 수 있다.

 

그냥 대자보에 '낙서 공간'이라고 적어놓은 것만으로도 덕후들의 능력이 발산된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도 감탄하면서 이렇게 사진 한장 더 찍게 되는 것이고.

 

그림 실력은 거의 프로급인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 빙과라는 애니메이션이 꽤나 인기가 있었던 듯?

한국의 둘리와 마찬가지로 인기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주민증도 발급하는 일본이라서

몇몇 마을은 주민증은 물론 학교 교복까지 캐릭터들 의상과 맞추려고 시도하는 곳도 있는데

타카야마는 어쨌든 전통의 힘이 강하고 충분히 유명한 관광도시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듯 하다.

 

 

 

다음으로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아이들의 놀이터.

그냥 폐기할 박스를 아무렇게나 가겨온 건가 싶지만, 묘하게 히타치 박스가 많이 보여서

설마 이것도 히타치에서 정식으로 제공한 것인가 하는 의문점이 들기도 한다. 일본이 워낙 그런데 꼼꼼한 나라라서.

 

그냥 보면 별것 아닌게, 박스에 구멍 좀 뚫어놓고 박스끼리 연결해서 통로 만들어 놓았을 뿐인데

아이들 시선으로 돌아가 생각해 본다면, 의외로 저 사이사이를 통과하는게 재미있을 법도 하다.

 

아침에 엄마한테서 당근 안먹는다고 야단맞은 아이라거나

아베 총리의 연일 정신나간 발언에 자신이 성장터가 될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어 스트레스가 쌓인 아이라거나

주입식 교육에 진절머리가 난 아나키스트 초등생 등등이 

 

혹시 한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한번 우당탕 난동만 피워도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어 버릴 정도의 내구성을 가진 놀이기구라서

그런 일이 벌어지진 않으려나 조마조마하기도 했지만, 애들이 순한지 다들 안에서 얼굴 쏙쏙 내밀고 얌전하게 논다.

 

 

 

원래 풍선 건지기는 아이들 손바닥에 딱 잡힐 정도의 크기였는데

요즘엔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나오는지, 애 머리통보다 더 큰 녀석을 낚느라 정신이 없다.

사탕처럼 알록달록한 무늬의 풍선들이 아이들을 유혹하는 듯, 작대기도 없이 손을 가져다 대는 아기를 막느라 부모들이 애쓴다.

 

대충 축제 파할때쯤 되면 반쯤 공짜로 애들한테 나눠주기도 한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안주겠지?

 

 

 

상가 거리를 직선으로 주욱 걷기만 하면 되는 축제길이라서 어려움없이 전진한다.

다음 볼거리는 좀 더 본격적인 놀이인데, 미니카의 수명이 얼마나 긴지, 25년전 내가 초딩이었을 때부터

지금도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에겐 변함없는 권력과 욕망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그 당시야 뭐, 모터 돌려서 굴러가는 것만으로도 재밌어서 난리치던 시기였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이런 서킷에서 제대로 승부도 낼 수 있는 훌륭한 브루주아 놀이로 격상되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놀이이긴 한데, 자동차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연령대가 나눠지는 것인가.

어른들도 상당히 흥미진진한 얼굴로 미니카 조절중인 팀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 이것에 대한 지식이 없는 어른들은, 저 조그만 장난감이 이렇게 큰 서킷을 어떻게 달리는 건지 궁금하실 듯.

 

기본적으로 판매되는 미니카의 모터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어른의 기술과 자본력을 살짝만 투입한 녀석들의 스피드는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아마 미니카가 서킷을 처음으로 달리는 그 순간, 놀라는 어른들이 꽤 많을거라 상상해 본다.

 

 

 

레이스가 치뤄지기 전 사회자가 간단한 소개와 함께 테스트 드라이브를 시연해 보인다.

모터 기술이 워낙 발달하다 보니 속도는 충분한데, 가벼운 자체 탓에 조금만 실수하거나 밸런스가 안 맞으면

주행 중에 서킷에서 튕겨저 날아가 버리는 일이 빈번하다. 그래서 테스트를 철저하게 거쳐 봐야 하는 것.

 

사실 미니카 레이스는 속도 경쟁보다 더 중요한게 서킷 완주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시험삼아 두 대가 달리는데 정말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든 속도로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언덕코스와 점프코스에서 서킷을 이탈해 버렸는데, 뭔가 조금 만지적거리고 나서 다시 테스트 하니 문제없이 완주한다.

 

구경하면 참으로 재미있을 것 같지만, 이건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라서 그냥 눈으로만 조금 관람후 이동한다.

공연도 그렇고 이벤트장도 그렇고, 관객이라는 입장이 아니라 참가자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분위기는 매우 훈훈하다.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를 가지는 축제도 물론 볼거리로서 부족함이 없지만

어깨에 카메라 끼고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이런 소소한 축제의 즐거움이란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아이디어와 아이들을 위한 배려심이 만들어 내는 부스.

'골판지 시어터'라고 적혀있는 이곳은, 안전상 전부 골판지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된 TV와 스피커까지 갖추고 '이웃집 토토로'를 방영해주는 미니 극장이다.

 

밑에는 장판이 깔려있어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앉아서 보거나, 아예 드러누워 보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금 여기서 토토로를 보고 있는 아이들이 아직 정자와 난자 상태로 생성되기도 한참 전에 만들어 진 작품인데

아마 100년이 지나도 이 나이대 아이들에게는 토토로를 보여줄 듯 하다.

 

한국에서도 그런 미디어가 한개쯤은 나와줘야 할 텐데...

'라바'라는 애니메이션이 참 재밌긴 한데, 그걸 100년지대계로 유아들에게 보여주다간 한국은 더럽혀 질것 같다.

 

 

 

아이들을 위한 코너가 끝나면 이젠 어른들의 휴식처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맥주만 파는게 아니고 각종 음료수나 생과일 주스 등도 노점상에서 판매중이니

대화와 휴식에는 딱 알맞은 장소. 꽤나 자리를 많이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앉을 자리는 없다.

 

여기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 보면, 옆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굴복하지 않을 수가 없을 듯 해서

훈훈한 축제라고 해도 어쨌든 사람의 지갑문을 열게 만드는 이 사람들의 능력은 여기서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축제 마지막 구간에 도달했는데, 아직 연습중인 듯 하다.

자전거를 탄 사람 두 명이 다양한 장애물 위에서 몸을 풀고 있다.

 

이런 작은 이벤트 하나 준비하는데, 그래도 자전거라고 빨간 꼬깔기둥 세워놓고

거기 맞춰서 벤치도 준비해 놓는 이런 모습이 더 훈훈하게 다가온다.

 

그것과 별개로, 일행으로 보이는 한 여성의 머리에 뭔가 익숙한 모자가 쓰여져 있는게 신경쓰인다.

한국에서는 트라우마 때문이라도 좀처럼 보기 힘든 모자인데.

 

 

 

준비하는 동안 옆의 가게들을 슬쩍 둘러봤는데, 평화로운 히다 카타야마에 어울리지 않는 인형집이 매우 눈에 띤다.

저 인형은 한국에서는 몰라도 일본에서는 꽤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녀석인데

아무래도 애들 주라고 만든 듯한 녀석은 아닌 듯 하다. 아주 찰지게 문신이 그려져 있다.

 

타카야마에서 갑자기 이런 엽기 상품을 만나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교토에 비해 좀 덜 딱딱한 느낌도 들고 한다. 이거 구입하면 세관에서 통과가 될런지.

 

 

 

야쿠자 인형에 정신을 뺏기고 있는 사이, 축제의 가장 마지막 줄에서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저 자전거는 이런 묘기에 쓰이는 녀석으로,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보다 이리저리 휙휙 잘 돌아가는 녀석이다.

가볍게 몸풀기를 시전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묘기보다 이 몸풀기가 더 신기하게 느껴지는건 나 뿐일까.

 

 

 

긴장한 탓인지 아직 실력이 부족한지, 첫 번째 선수는 미스를 많이 저지른다.

사실 일반인 입장에서는 미스를 저지르지 않는다는게 더 이상할 정도긴 하지만.

 

지면에서 점프에서 저 나무판 위에 착지하는 퍼포먼스인데, 나무판 넓이가 양 바퀴 넓이와 거의 같다.

보호대는 헬맷밖에 없어서 미스할 때마다 크게 다치는거 아닌가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미스하는데는 익숙해져 있는 듯.

비꼬는게 아니라 이런 자전거를 탈 때는 가장 우선시 하는게, 실수할 때 다치지 않는 연습이다.

 

 

 

몇번 실패를 해도 돈을 주고 보러온 관객이 아니니 다들 편하게 박수를 쳐 준다.

어차피 이런 건 자신과의 싸움이라서, 관중이 할 수 있는 일은 성공할 때까지 응원하는 것 뿐이다.

 

두 번째 퍼포먼스는 나무판 위로 점프해 올라가 타이어 폭보다 좁아보이는 작대기를 타고 이동해서

목적지인 미니 트럭 위로 올라가는 것. 진짜 실수하면 어떻하나 싶을 정도로 위태위태하지만

다행이라고 할까. 저 자전거는 급 브레이크 시에도 중심을 흐트리지 않고 딱 정지할 수 있도록 고안된 녀석이다.

 

진짜 프로처럼 막힘없이 주르르 흘러가지는 못해도, 조금씩 조금씩 멈춰가며 세심하게 전진하는 모습 역시

노력하는 자의 열정이 느껴지기 때문에 보기좋을 따름이다.

 

 

 

두 번째 주자는, 보기에는 친구처럼 보이는데 실력은 스승과 제자라고 생각될 만큼 차이가 난다.

간보기도 없고 실패도 없고, 바퀴 하나로 공중에 정지된 듯 서 있는 모습이 매우 능숙하다.

 

어쩌면 친구의 거듭된 실수로 마음 단단히 먹고 출전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원수는 갚았으니(?) 안심해도 될 듯.

마이크로 응원과 해설을 겸하고 있는 매니저 비슷한 여성분은,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관객층이 지긋한 아저씨 아줌마층이라

한국사람 입장에서 보면 살짝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지만, 광란의 밤과는 거리가 먼 소소한 축제 분위기에 오히려 들어맞는듯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 같은 덩치가 엎드려서 고개 한쪽으로 돌리고 잠자다 보면

가끔 숨이 목에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며 껄떡! 거리며 화들짝 깨곤 한다. 거의 정신을 잃은 듯 했는데 아직 시간은 많이 흐르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예술작품이라서 이곳 타카야마에 온 보람이 느껴지는데

뉴스에서는 오늘 새벽에 나고야에서 있었던 폭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오늘 새벽 자면서 들었던 빗소리는 예사로운게 아니었던 듯, 새벽에 내린 비로 JR선 운행이 30분 이상 중지되었다고.

본인이 슬금슬금 움직였던 8시 너머부터는 이미 비가 소강상태였기 때문에 문제없이 타카야마로 이동했던 것이다.

 

타이밍이 조금만 안맞았으면 오늘 여기서 이런 하늘을 바라볼 수도 없었으리라 생각하니, 이번 여행은 운이 따르는 듯 하다.

이제 슬슬 노을이 질 무렵이라, 낮에 잠깐 맛만 보았던 거리 산책을 좀 더 즐겨볼까 하고 몸을 일으키니

아직 완전히 피로가 풀리진 않은 듯 찌부둥함이 남아있다. 하긴 이렇게 잠을 자면 그다지 몸에 좋지도 않고.

 

감동적인 하늘 풍경과는 달리 마음속은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내일 목적지이자 이번 여행의 사실상 유일한 관광 목적지인 시라카와고(白川御) 쪽의 문제때문에.

시라카와고는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현대식 숙박시설을 지을 수 없다.

가격도 비싸고 편의성은 극악인 곳이라, 버스로 10분쯤 거리에 있는 훌륭한 온천여관에 큰맘먹고 1박 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일본 도착후부터 그 여관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 옛날 여관이라 인터넷 예약이 힘들어 일본 와서 전화할 예정이었지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대기신호만 계속 울리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시라카와고는 정말 깊숙한 깡촌이고, 문화유산인 관계로 노숙도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숙소를 정하지 않으면 섣불리 가서 죽치고 앉아있을수도 없는 곳이라 고민중이다.

몇번 더 전화해보고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예정을 바꿔서 이곳 타카야마에 다시 돌아와 숙박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불안을 안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무렵 다시 호텔을 나선다.

 

 

해가 저물어도 덥긴 덥지만, 직사광선에 살갗이 비명을 지르는 일이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옛 마을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데, 6~7살쯤 되어보이는 금발의 외국인 자매가 엄마 사이를 원자처럼 빙글빙글 돌며 걷고 있다.

비록 일본 전통의 가벼운 외출복인 유카타를 입고 있었지만, 그거야 뭐 관광와서 하나 사입었을테고

히다 타카야마 어디에서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서양사람이라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갑자기 애들이 엄마한테 일본어로 뭐라뭐라 하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본토사람이 아니면 흉내낼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본어라, 뭐하는 애들인가 싶었는데

옆에서 지나가던 자동차 창문이 열리며 아이 엄마한테 반갑게 인사하는 일본 아주머니를 보고서야 국제결혼한 가족이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고보니 좀 전까지 그냥 같은 길 가던 사람인  줄 알았던 일본인 남성이 아버지인듯 자동차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아이들은 서양쪽 유전자가 강한지 거의 100%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구분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일본어를 모국어로 여기는 듯 하지만, 엄마쪽은 확연히 외국인 일본어라는게 느껴진다.

도쿄도 아니고 이 타카야마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가족을 보니 뭔가 신선하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길을 걷다가, 문득 주위가 굉장히 소란스러워져서 의아하다.

아직 옛 거리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한쪽으로 굉장히 몰려 걸어가는 모습이 보여서 슬쩍 따라가 보니

유명 관광지인 옛 마을거리에 비해 한산했던, 평범한 요즘 상점가에서 뭔가 축제가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

 

 

 

타카야마라는 유명한 관광지에게 조금 실례될지도 모르지만

본인에게는 그냥 여행 경유지의 목적밖에 없었던 곳이라, 관광 루트라던가 계획이라던가 짜 놓은게 없었다.

그래서 오늘이 마을 축제날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술렁술렁 걷다 보니 이런 이벤트와 만나게 되었다.

 

만약 낮에 좀 더 힘내서 많이 구경하고 돌아다녔다면, 또는 저녁에 눈을 떠도 몸이 피곤해서 그냥 자버렸다면 이 축제를 접할 기회도 사라져 버렸을 텐데.

여행중 이런 우연과 조우하는건 이제 신기한 일도 아니지만, 항상 여행의 가장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 녀석이다.

 

시끌벅적했던 소리는 대규모 브라스밴드의 화음이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열심히 연주중.

구성원을 보니 특정한 곳에 소속된 밴드가 아닌듯 하다.

중학생 정도의 학생과 70은 되어보이는 할아버지가 만들어내는 경쾌한 화음은, 본인의 이상적인 시골마을 모습중 한 가지였는데

이곳에서 보게 되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만약 자식이 있다면 손자와 함께 색소폰 부는 것처럼 매력적인 일도 없을테니까.

 

 

 

지휘자가 곡이 끝나고 난 뒤에 가볍게 단원 소개를 한다.

역시 예상대로 근처 초중고에서 모인 학생들, 마을 음악클럽 회원과 함께 이웃마을 밴드까지 합세한 그룹이다.

그런 고로 연습시간이 좀 부족했다고 고개를 숙이긴 하는데, 여기가 예술의 전당도 아니고 이 정도면 어깨를 들썩이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들었던 곡은 본인도 익히 알고있는 곡이라 어렵지 않게 감상 가능했다.

현재 NHK 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침드라마 '아마짱'의 오프닝 테마.

욕하면서 본다는 드라마들이 가지는 막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그야말로 맑은 이야기만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하며

이런 소재로도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웰메이드 드라마... 라고 하긴 하는데

본인은 드라마를 보지 않으니 내용은 모르겠고, 오프닝 테마만큼은 정말 마음에 들어서 따로 구입해 듣고있다.

 

발매된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앨범이고, 드라마 오프닝 정도는 그냥 공개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NHK가 강력하게 유료 음원으로 밀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소개를 할 수는 없다. 

 

 

 

이 정도라면 살짝 들려도 문제 없을듯 하니 소개하는 겸, 고양이를 감상하는 겸 업로드해 본다.

 

아무튼, 드라마는 몰라도 오프닝 테마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을에 울려퍼지는 신나는 음악에 활기가 넘친다.

 

 

 

마을 사람들끼리, 혹은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일년에 한두 번씩 이렇게 모여서

시원스럽게 연주를 피로하면 그것을 손자와 함께 보러 온 할머니가 즐기는 이 풍경은

한국에서라면 어디쯤 가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구의 본가가 하천변에 있기 때문에 여름에 여러 이벤트가 벌어지기는 하는데

항상 초청받아 오는 프로 아티스트가 아니라, 이렇게 동네 지나다니며 인사 한번씩 나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결코 아마추어의 장난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합주를 완성해 내는 모습은 여러가지로 인상깊다.

 

내가 시골마을에 갖고 있는 이상적인 이미지란 이런 것이었는데. 말은 쉽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괜히 낙심한다.

 

 

 

카메라의 동영상 녹화기능이 딸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음악이 주가 되는 공연이다보니, 재미삼아서 한곡 정도 녹화를 해 봤다. 엄청 대단하진 않지만 나름 잘 나온다.

사진작업은 재미있지만 동영상 후처리는 괜히 귀찮아서, 녹화는 했지만 블로그에 포스팅 할 일은 없을 듯.

 

연속된 시간을 보여주는 동영상과 달리, 나는 아직 단절된 시간속에서 동영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할 수 있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더 익숙하고 편하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의 광란에 가까운 축제를 보면서 '저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구나'하는 생각도 하지만

일본엔 그런 축제 말고도 이런 소박한 마을축제 역시 자주 열린다.

 

한국처럼 아파트 덩어리라 인구밀도나 이웃과 일면식도 없는 구조에서라면 이런 축제 열어봤자

다들 서먹서먹한 방관자 역할만 할 뿐이겠지만, 이곳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이 지휘자한테 손 흔들면

지휘하는 도중에도 웃으면서 같이 손 흔들어 주는 그런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사실상 사회 부적응자에 가까운 성격인 본인도, 같이 끼어들기는 힘들지만 이런 모습 자체를 즐기는 것은 굉장히 좋아한다.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면 나 같은 사람도 더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기겠지만, 전체적으로 배울점이 많은 마을 꾸리기가 아닌가 싶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가볍게 예정되어있던 저녁거리 산책은 아무래도 힘 좀 쓰고 땀 좀 빼야할 듯 하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지만 다행히도 카메라 베터리가 2개인 탓에 아직 여유는 있다.

 

규모면에선 그렇게까지 크지 않은 축제지만, 사람들의 수는 상당하다.

이렇게까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보이는 축제는 처음이라는 점이 신선하기도 하고.

 

브라스밴드의 공연은 마지막 곡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본인은 슬그머니 빠져나온다.

마지막 곡을 다 듣고나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함께 자리를 뜨는 인파때문에 앞으로의 구경이 힘들어진다는 걸 예전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원래 이 거리는 옛 마을 거리의 근처에 위치한

반쯤은 관광객을 위한 가게와 반쯤은 주민들은 위한 생필품 가게 등으로 이루어진 상가거리다.

 

뭔가 거창하게 준비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보여주는 축제와는 달리

이곳은 거리 분위기와 비슷하게도, 아이들을 위한 소소한 장난거리, 어른들을 위한 맥주 좌석 정도가 자리를 차지한다.

한국에서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에서 풍선 건지기 같은 게임도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어른들이 하면 가차없지만 아이들이 실수 몇번 하면 그냥 풍선 하나 건네주는 인심을 가진 곳으로 유명하다.

 

 

 

축제가 이루어지면 상대적으로 원래 장사하던 가게들의 타격이 없지는 않을 테지만

하루 이틀의 매상 저하가 결국엔 마을 전체의 매출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다들 잘 알고 있는듯 하다.

열어놓은 가게도 있지만 일찌감치 문 닫고 축제를 즐기러 나선 주인들 역시 눈에 들어온다.

 

살아남기 위해 이루어진, 협동과 분업의 상징인 마을 공동체는 이미 한국에서는 멸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축제를 위해 임시로 세워진 가게 주인장들이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과 즐겁게 인사하며 잡담 나누는 이 모습은

보기 좋기도 하고 괜히 부럽기도 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단지 남들이 하는 공연을 바라보기만 해서는 재미가 없는지

이곳에는 공연하는 부스 공간만큼이나 테이블과 의자를 잔뜩 비치해 놓았다.

먹는게 남는거라고, 사람의 코곳을 잔혹하게 후벼파는 달달하고 고소한 각종 군것질거리의 냄새와

이슬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비주얼의 맥주를 흔들어대는 호객꾼들의 모습은, 공연만큼이나 자극적이다.

 

분위기는 살지 않지만 혼자서라도 맛있게 마시고 즐기고 뜯지 못할것도 없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앉을자리 찾는게 힘들다는게 문제가 된다. 합석할 수도 있지만 본인이 좀 소심해야...

 

이 정도 인파와 이 정도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축제임에도, 곳곳에 대형 쓰레기봉투용 비닐이 설치되어 있고

바닥엔 나무젓가락 하나 떨어져있지 않은 모습은 여전히 사람 감탄하게 만든다.

이게 단순한 시민의식이 아니고, 젊은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곳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쓰레기 수거에 협조해 달라고.

사람과 사람이 움직여 만들어내는 축제는, 사람의 목소리와 행동 하나하나도 흐름의 큰 원동력이 된다.

넘치려는 쓰레기통 덩그러니 설치만 해 놓고, 자원봉사자들은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리는 모습 안에서 이런 청결함을 바라기는 힘든 것도 그런 이유.

 

 

 

타코야키, 감자칩, 감자버터구이, 야키소바, 닭꼬치 등등...

저절로 맥주를 부르는 녀석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냄새를 풍기니 이건 축제를 즐기러 온 건지 고문을 받으러 온 건지.

물론 돈이 없는건 아니지만 조금만 참기로 한다. 일단은 축제를 한바퀴 죽 둘러보며 사진 좀 찍고 한 다음에

느긋하게 좀 먹어볼까 싶다. 이걸로 저녁을 때울 정도는 아니니까 너무 많이 먹으면 안되겠지만.

 

축제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자리잡고 앉아서 맥주 마시느라 바쁜 사람들이 많다.

의자가 없으면 벽에 등대고 서서 마시는 커플도 있고, 그냥 바닥에 앉아서 마시는 사람도 있다.

뭔가 난장판 일촉즉발의 상황 같으면서도 항상 무난하게 잘 끝나는 이런 축제가 신기하기도 하다.

 

 

 

어른들이야 뭐 우리의 친구 맥주와 닭꼬치만 있으면 어디서든 즐거울 따름이지만

축제는 역시 아이들의 것이라 그쪽 취향에 맞춘 노점상들이 꽤 많다.

솜사탕 만드는 기계도 보이고, 한국의 뽑기같은 그림 떼어내기나 물풍선 건지기 금붕어 건지기 등등.

 

이쪽은 축제라는게, 관광객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의 일종이라기 보단 마을 사람들끼리 한번 재밌게 놀아보는 느낌이 강해서

이런 문화에 대해서 면식이 없는 서양쪽 관광객들은, 이런 노점상들의 놀이 하나하나가 매우 재미있게 다가올 듯 하다.

축제는 역시 쓸데없이 친절하기보다는 이렇게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게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한 번쯤은 다들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광경.

주인은 어디 놀러갔는지, 적어도 이 주변엔 없는 듯 하다.

 

사람들이 마구마구 만지진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꽤나 침착하게 가만히 바구니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주인 기다리다가 튀어나온 눈은 아닐지라도 좀 걱정이 되긴 한다.

고맙게도 카메라를 들이대니 시선도 마주쳐 준다. 기분대로라면 마구 끌어안고 뒹굴뒹굴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동네 5일장 같은 가벼운 축제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거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규모는 된다.

카메라만 너무 들이대면 축제 자체를 즐기지 못할 듯한 느낌이 들어서 가능한 한 눈으로 감상을 즐긴다.

휴대폰으로 찍는 사람은 많지만 나처럼 카메라 들고 움직이는 사람은 묘하게 시선을 느끼게 된다.

 

브라스밴드의 공연은 끝난 듯 한데, 발걸음이 향하는 쪽에서 또 뭔가 우렁찬 소리가 들려서 귀를 기울이고 이동해 본다.

 

 

이제 이벤트장 하나만 더 지나가면 종착지인 난바역.

마지막 이벤트장에서는 미도스지 미나코이 그랑프리(御堂筋みなこいグランプリ)가 열리고 있었다.

미나코이라는 단어는 전혀 들어본 바가 없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추고 있는 춤은 요사코이춤(よさこい踊り)이다.

 

요사코이란 코치현(高知県)에서 시작된 일본의 전통 집단군무인데, 서민들의 축제 전야제 의식으로 시작된 춤이라서

기본적인 몇 개의 규칙만 지키면 남녀노소, 음악의 종류, 안무의 형식, 의상 등등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절제되고 웅장한 춤에서부터, 신나게 날뛰는 춤까지 매우 다양하고 창작적인 형식을 선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본 각지에서 이런 요사코이 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다. 전통의 맥을 이어가면서도 꽤나 자유로운 군무.

 

한일 문화 페스티발 같은 곳에서는 이런 요사코이춤의 배경음악으로 아리랑이 흘러 나오기도 하는 등, 타문화에 녹아들어가기에도 좋은 녀석이다.

 

 

 

일단 대회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출전 팀들은 꽤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응원단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깃발에 맞춰 한 동작 한 동작 절도있는 움직임을 피로하고 있는 중.

 

아오모리현(青森県)의 대표적 축제인 네부타(ねぶた) 축제는

그야말로 누구나 행렬에 뛰어들어서 마음 가는대로 춤추며 소리를 지르는 야성의 기쁨이 살아있는데

요사코이춤은 형식에 있어 자유롭긴 해도, 정해진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집단 군무에 속하기 때문에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일종의 예술 행위 관람으로서의 매력이 있다.

 

 

 

말 그대로 동네 아주머니도 옆집 꼬맹이도 참가할 수 있는 춤이라서 연령대가 다양하다.

이번에 나온 팀은 꽤나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분위기라서 일종의 신성함이 엿보인다.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는 대회다 보니 나름 힘을 준 것이겠지만, 막상 정말 축제날에 가 보면

거의 전성기의 X-JAPAN 같은 펑크록 스타일과 모히칸 머리를 한 젊은이들이 날뛰는 요사코이춤도 있으니

이런 사진만으로 요사코이가 어떤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고 슬그머니 운을 띄워 본다.

 

 

 

나처럼 우연찮게 축제에 찾아든 관광객도, 작정하고 구경하러 온 타지인도 있겠지만

이런 분위기의 축제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오사카 시민들을 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 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만들어가고 즐기는 그런 축제.

 

거대한 규모와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보여주는 일본 각지의 대표 축제들과 비교하면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듯한 친근함을 가진 축제라는 느낌이다.

 

그냥 자동차에 점령되던 미도스지의 대로 중앙을 산책하듯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길만큼 즐긴다는 감각.

입장료도, 긴 대기시간도 필요 없는 가벼운 축제지만 일요일 오후에 멋진 추억을 만들어주는 의미로서는 굉장히 성공적이다.

이런 축제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던 내가 운좋게 이날 오사카에 도착한 것은 여행중 만나는 돌발적인 보물과 같다.

 

 

 

난바역에 도착한 후 다시 요시노야에 들어가서 규 나베동(牛鍋丼)을 하나 주문한다.

배가 고팠다기 보다는, 아침에 사진을 찍지 못한게 마음에 걸려서. 

 

규 나베동은 규동의 소고기를 조금 줄이고 두부와 당면을 넣은 녀석. 고기가 줄었으니 규동보다 가격은 좀더 저렴하다.

한국에서 규동을 한번 먹어봤는데, 가격도 요시노야보다 비싸고 맛은 정말 먹다가 내다버릴 정도라서

규동 먹으려면 일본 가야겠구나 싶은 생각에, 일본 갈때면 한번씩 먹곤 하는 요리다. 대(大)자 이상이 아니면 간식이라고 할 만큼 양이 적지만.

여행중 일본사람에게도 물어봤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라 일본사람에게도 보통 사이즈의 규동은 배가 전혀 안찬다고 하더라.

 

자전거 여행중 꽤나 즐겨먹었던 규 김치국밥이라는 메뉴가 사라져서 조금 아쉽다.

한국의 김치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지만, 일단 고춧가루를 쓴 붉은 음식이라는 것 자체가 꽤나 그리웠던 시기라.

 

 

 

지금은 사라져버린 메뉴인 규 김치국밥의 모습.

이 사진은 2010년 나고야 헌혈센터에서 헌혈 한번 해주고 난 뒤 근처에서 영양보충했을 때.

 

숙성되지않은 싱싱한 배추일 뿐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그리운 맛이었다. 가격도 싸서 여행중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국밥이라고 하기엔 국물에 든게 너무 없었지만, 저렇게 밥을 말아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일본에서는 그나마 한국 냄새 나던 음식.

 

 

 

난바역 근처엔 그럭저럭 큰 서점인 쥰쿠도(ジュンク堂)가 있긴 한데

막상 축제길을 다 걸어오고 나니 피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넷까페에서 새우잠 2시간 잔 후, 거진 14시간 가까이 계속 걷기만 했으니.

 

몸은 이미 형편없는 체력으로 돌아와 있는데, 마음만은 계속 1년간의 자전거여행 당시에 맞춰져 있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라고 생각하고 다니는데도 체력은 예전같지 않다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서점에 들어가면 보통 두시간 정도 책을 훑어보기 때문에, 지금 체력으로는 그것도 상당히 무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한 강행군이 준비되어 있으니 오늘은 이정도로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내일 코야산 가기 위해 난바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칸사이 스루패스 2일권을 구매하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종료한다.

외국인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스루패스 티켓이라서 여권까지 확인하고, 구매명단 리스트까지 작성한 후 티켓을 건네준다.

 

참 징하게도 세세한 곳까지 신경쓰는구나 싶었는데, 그런 나라가 얼빠진 대처로 치명적인 원전사고를 일으켰다는 건 일종의 희극이다.

낙하산 인사들의 편안한 안식처였던 도쿄전력 임원들이야, 고위공무원의 얼빠진 나태함은 일본이라고 해서 빗나갈 리가 없지만

자신들이 원전 사고로 입은 피해만큼이나, 지금 일본인들은 그 우쭐해 하던 프라이드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 거다. 애써 외면하고 싶겠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돈내고 전철 두 코스 타기는 싫어서 왔던길을 다시 돌아간다.

내일 스루패스를 사용하면 칸사이 각 도시를 잇는 전철은 물론 오사카 시내의 왠만한 전철도 전부 무제한 사용가능하기 때문에

오늘 전철 타는건 왠지 손해본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호텔까지 가는데 한국 돈으로 3천원만 내면 되는데도.

여행가면 얼마 안되는 돈은 최대한 아끼고 비싼건 팍팍 써버리는 이상한 금전 감각이 발동해 버린다.

 

오후 6시쯤 다시 미도스지 거리를 걸어가는데, 그 북적이던 이벤트장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싹 정리되어 버리고

벌써 자동차들이 평상시처럼 운행을 하고 있다. 물론 도로쪽이나 인도쪽이나 쓰레기도 눈에 띄지 않고 평소 그대로.

한국에서 축제 뒤에 남겨지는 쓰레기더미의 산을 자주 봐 온터라, 5시간 남짓한 축제만큼이나 이런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다.

 

40분 정도 걸어서 숙소에 도착. CM 광고에서 나에게 깊은 임팩트를 주었던 닛신 컵누들(日清カップヌードル) 하나 사들고 간다.

기름많고 짜기만 해서 인스턴트 컵라면은 한국에 비해 영 맛이 없는데, 이 컵누들만큼은 내 입맛에 잘 맞는다. 시푸드나 카레맛 말고 오리지날이.

 

 

 

나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컵누들 광고 그 첫번째.

중간의 일본어 부분을 간략하게 해석해 보자면

 

'아들내미는 중3. 수험공부 하고 있었다 (있었다)'

'야식 컵누들, 엄마가 잊어버렸다(잊어버렸다)'

'아들내미는 삐졌다'

 

왠만한 일본 버라이어티 쇼보다 이 광고가 더 재밌더군.

 

그리고 충격과 공포 그 두번째.

 

 

 

이건 뭐 해석할것도 없이 '딴거 싫어~ 컵누들 좋아~' 다.

 

 

뜨거운 물 받아놓고 욕조에 몸 누이니 온 몸이 짜릿짜릿한게 정말 무리좀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숙소에 돌아와서 긴장이 풀리면 느껴지는 그 무거운 감각이 평소보다 훨씬 심해서 스스로도 놀란다.

침대에 누우니 밑으로 몰렸던 혈액이 쏵 퍼지는 걸 느끼며 TV 틀어놓고 되는대로 보다가 새벽 1시쯤 취침.

 

 

 

길거리 농구 감상을 마치고 다시 난바역쪽으로 걸어간다.

미도스지 거리는 넓은 도로지만 양쪽에 나 있는 거리는 옛 정취가 남아있는 조금은 난잡한 골목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걸 좋아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이미지엔 화려하고 정돈된 거리보다 이런 느낌이 어울리긴 한다.

일요일인 탓도 있지만 미도스지 페스타 덕분에 오사카의 유동인구는 전부 이쪽으로 몰려드는 듯 하다.

 

 

중간에 간식거리를 파는 코너가 있었지만 줄을 길게 늘어선 행렬 탓에 먹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피곤해서 그런지 입맛도 별로 없고, 더워서 물 생각은 났지만 음식 생각은 그다지.

한국 음식점도 있었는데, 오사카까지 여행와서 한국 음식을 먹을 이유가 없으니까 패스.

음식 코너 앞에는 자연스럽게 어디든 걸터앉아서 음식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분위기가 조성중이다.

귀여운 강아지들이 많아서 허락을 받아서 한번 담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몸이 많이 피곤해서 그냥 넘어갔다.

 

다음으로 눈길이 간 곳은 통일된 티셔츠가 인상적인 트래드재즈 공연이었다.

이곳 역시 인파로 사진 찍기가 쉽진 않았지만 슬쩍 구경하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 뒤에서 기회를 잡으니 대강 건질만한 거리는 된다.

미도스지 페스타의 특징이기도 한데, 전국구급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을 초정하는게 아닌

아마추어들의 다양한 공연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마음 편하게 축제에 녹아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

 

큰 돈 들여 연예인 초청하는 축제는, 그냥 먼 발치에서 굵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구경하는 동물원과 같은 느낌.

보행자 천국이라는 취지에는 역시 이렇게 친숙해 보이는 일반인들의 숨겨진 솜씨에 감탄하는 것이 어울린다.

 

 

 

나이 지긋하게 드신 분들의 가벼운 스윙을 듣고 있으면, 뷰파인더를 보고 있더라도 가끔 몸이 들썩거려서 셔터찬스를 놓치곤 한다.

물론 이럴 때는 사진따윈 망쳐도 관계없다. 어디까지나 여행의 증거품일 뿐, 이 사람들의 공연은 귀로 즐기는 것이니까.

아마추어라고는 하지만 실력이 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고, 국내 왠만한 프로밴드와 거의 동일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똥배와 가죽모자가 묘하게 어울리는 플라리넷 연주 할아버지는 중년의 미학을 여지없이 피로해주는듯 하다.

좀 전의 길거리 농구에 비해 조용한 편이지만, 나이 지긋한 분들이 느긋하게 감상하는 모습은, 이 축제가 내부적으로 튼실한 녀석이라는 반증이겠지.

 

 

 

이제 저 너머에 슬슬 난바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사이바시(心斎橋)에서 난바역까지 이어지는 미도스지 거리는 그렇게 길진 않지만

자동차에서 해방된 시민들의 모습엔 평소보다 활기가 넘치는 듯 하다.

 

 

 

지체 부자유자들도 단체로 관광 나왔었는데, 도우미들의 힘을 빌어 관람에 무리가 없에 공간도 잘 만들어 주더군.

눈높이가 거의 같아서 사진이 잘 안나오길래 카메라를 최대한 치켜들고 촛점을 무한대에 맞추서 한장 찍어 봤다.

오른쪽에 보이는 핑크색 부스는 미용 연습생들이 원하는 사람들 상대로 무료 이발, 화장을 해 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웨딩 컨테스트 비슷하게, 미용사들이 모델들에게 각종 드레스로 치장하는 곳도 있다.

 

모두 나하고는 그닥 인연이 없는 곳이라서 그냥 슬쩍 쳐다만 본 후 발걸음을 옮긴다.

 

피로가 점점 누적되는지 몸이 무거워지는게 느껴진다.

교통비가 비싼 일본이라 난바역에 도착한 후로는 계속 도보로만 걸어다녔기 때문에

호텔로 돌아갈 때도 물론 걸어서 갈 생긱이었지만,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않는게 의외로 타격이 큰 것 같다.

내일 칸사이 스루 패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이틀간 왠만한 전철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은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이동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것도 오래 걸으니 무리가 간다.

 

 

 

희한하게 생긴 건물 주위에서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들고 있길래 뭔가 싶었는데

생방송으로 클라이밍 중계 중이었다. 선발된 지원자들이 제한시간내에 정상에 도달하는 이벤트인 듯 하다.

주위에서 들리는 말로는 곧 개봉하는 어떤 산악 영화와 연계되는 이벤트라고 한다.

일본 영화는 한국 영화 못지 않게 억지 신파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원래 건물 자체가 상당히 높은데, 그 중앙에 클라이밍 시설을 설치에 놓으니

올라가는 사람들의 체감 높이는 상당하리라 예상된다. 저 위치로 치면 거진 30m 는 될 듯 하다.

망원렌즈로 보지 않으면 옆에 카메라맨이 있다는 사실도 눈치재치 못할 정도니까.

 

지금 도전중인 선수는 외국인인듯 한데, 열심히 올라가고 있지만 제한시간이 아슬아슬한가 보다.

넓은 광장이라 소리가 퍼지는 바람에 잘 들리지는 않지만 방송 관계자인듯한 사람이 마이크로 생중계중이다.

 

 

 

육중한 몸무게를 지닌 나로서는 저런 클라이밍을 대체 어떻게 하는걸까 궁금할 때가 많은데

아무리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고는 해도 의지할 곳 없는 절벽에 매달려 올라갈 때의 기분은 참 스릴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처럼 수백명의 시선과 카메라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상황에서의 압박감은 상상하기 힘들 듯.

 

 

 

진행자가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결국 손을 놓치고 만다.

클라이밍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얼핏 봐도 상당한 난이도인 듯 하다.

한동안 대롱대롱 매달리던 선수는 그래도 저~기 밑에서 박수쳐 주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한다.

 

계속 구경하고 있으면 한두 명쯤은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축제 시간은 중반을 넘어가고 있고, 볼거 다 챙겨보기 전에 내 체력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이곳은 이 정도로 끝낸다.

 

 

 

음악 중심의 이벤트 공간에는 세계 각국의 뮤지션들이 가볍게 몇 곡씩 연주중이었는데

멕시코의 활기차면서도 적당히 힘 뺀듯한 음악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분위기 띄우는 법도 잘 아는 아저씨가 가벼운 개그도 선보여 주시고. 일본어가 아니라서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지만.

 

미도스지 페스타는 오후 5시에 모두 끝나지만 도톤보리나 각종 주변 공연장에서는 주말에도 이벤트가 이어진다.

그 중에는 한국 초청팀인 난타 팀도 포함되어 있더라. 뒤의 팜플렛 보면 슬그머니 보인다.

오사카 사람들의 취향과는 꽤나 잘 맞을 듯 하다.

 

그 외에 검은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맨 60~70대의 신사 할아버지들이 신들린듯한 솜씨를 뽐내던 재즈 공연도 있었는데

일본 재즈 역사와 길을 함께 걸어온 듯한 느낌의 그 밴드의 보컬은 영어도 매우 능숙해서, 일본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본토 발음의 재즈송을 열창했다.

잠깐 들어도 놀라운 실력의 밴드라는걸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 인지도도 있는 밴드일 듯 하다.

좋은 음악에는 사람이 몰리는게 당연한 듯,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사진은 한 장도 담지 못했지만 귀는 즐거웠다.

 

 

 

난바 역이 거의 보일만한 거리까지 걸어가는데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의 공연 소리가 들려온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쪽은 사람들로 가득차서, 밴드의 뒤쪽 통행로에서 사진을 담을 수 밖에 없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음악을 감상중이었다.

 

청춘 스트리트2012 라는 제목의 이벤트장이었는데, 오사카 시내 고등학교 동호회가 참가해서 실력을 뽐내는 장소다.

밴드 실력이야 출중하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리듬에 맞춰서 멤버 전원이 발도 구르고 점프도 하고 하면서 흥을 돋구는게 인상적.

 

 

 

활기찬 음악을 들썩들썩하는 율동과 함께 선보이니 꽤나 들을 만 하다.

고등학교 경음부가 축제의 한 부분을 당당하게 맡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요즘 한국 고등학생들은 이런 동아리 활동 좀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려나? 적어도 내가 고딩때는 그런거 없었다.

 

 

 

곡 하나가 끝나고 자리를 옮기려 했는데, 그 다음 흘러나오는 곡이 귀에 익다.

혹시나 싶어서 가만히 들어보니 역시나,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곡 '꽃~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 (花~すべての人の心に花を) 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항상 느꼈던, 히로시마의 원폭 희생자보다도 기구하고 서글픈 역사를 간직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애환을

가슴 저리는 음악으로 대변하는 대표곡 중 하나인 이 곡을 이곳 오사카의 고교 밴드부에게서 들을 수 있을줄은 몰랐다.

 

오키나와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때 독립하지 못했다면 일어났을 한국의 대체역사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150년전 류큐 왕국이 멸망한 이후 식민지로 전락한 오키나와는, 갖은 수탈과 차별을 당하면서도

태평양 전쟁 당시엔 '위대한 황국 신민'으로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자결을 강요당하는 이중적 취급을 받으며

본섬만으로는 제주도의 60%밖에 되지 않는 이 섬에서 20만명의 원주민이 미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의 총알에 목숨을 잃었다.

 

전쟁 후에도 일본 전체에서 학력성취도, 취업률, 평균 수입이 가장 낮은 곳이며, 일본내 0.2%의 토지에 75%의 미군이 주둔중인,

과연 이곳이 본토와 같은 일본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소외된 지역.

 

이런 슬픔의 역사를 가진 오키나와의 음악은 구슬프기 그지 없으면서도 그 내용만큼은 눈물에 젖어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진정한 눈물을 흘려보지 않으면 떠올릴 수 없는 애잔함이 그 희망적인 가사 속에서 심금을 울린다.

 

 

 

 

강은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사람도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그 흐름이 닿는 곳에는

꽃으로서 꽃으로서 피워주고 싶네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눈물은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사랑도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그 흐름을 이 가슴에

꽃으로서 꽃으로서 맞이하고 싶네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꽃은 꽃으로서 웃을수도 있죠
사람은 사람으로서 눈물도 흘려요

  
그런게 자연의 노래 인거죠

마음속에 마음속에 꽃을 피워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꽃을 쥐어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꽃을 쥐어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며칠 후인 5월 15일은 오키나와 영유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반환된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의 참혹한 역사 속에서 류큐인들이 바라는 것은 여전히 총칼 대신 꽃을 드는 것.

 

 

 

 

이 곡이 흐르는 동안 건너편의 관객들 중 눈시울을 붉히는 중년층을 몇몇 볼 수 있었다.

수천km 떨어진 오키나와의 음악을 오사카 거리에 선사해준 젊은 학생들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