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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7  21th Marathon Des Sables - 프랑스 12
  2. 2009.11.22  21th Marathon Des Sables - 모로코 12
  3. 2009.11.14  21th Marathon Des Sables - Last Stage - 11.8km 23
  4. 2009.11.10  21th Marathon Des Sables - Stage 5 - 42.195km 4
  5. 2009.11.06  21th Marathon Des Sables - Stage ? - Good Day 12
  6. 2009.11.02  21th Marathon Des Sables - Stage 4 - Long Day 8

실질적인 MDS 대회는 모두 끝이 났고, 이제 프랑스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타는 순간 선수들은 각자 갈길을 가게 된다.
아쉬운듯한 행자분의 표정.

사실은 햇빛이 너무 강해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것 뿐.


모로코행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이던 붉은 대지와 멀어지는 순간 절반의 후련함과 절반의 아쉬움.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대회 끝난 후의 진행이 너무 빠르게 느껴져서인지 정신없이 그냥 멍할 뿐.

프랑스에 도착하고 선수들은 뿔뿔히 흩어지는데 행자분은 아직도 아이나씨한테 미련이 남았나보다.
사진만으로는 부족한지 조끼 뒤에 사인까지 받았다. ㅡㅡ;


장하다 행자.
지금 연락은 좀 하고 사는지 모르겠네.


파리의 적당한 호텔에 자리를 잡고 푹 잤다.
그닥 푹 잔것 같지도 않고, 대회 직후라 그런지 마음이 붕 떠있는 느낌이라 이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사하라에서의 밤은 지금도 눈만 감으면 3차원 입체영상으로 재생 가능한데.
아침에 비둘기께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더라. 저게 방 안으로 날아 들어오면 파트리크 쥐스킨트 흉내를 낼수 있을려나.


나와 제임스 장씨는 오후 비행기편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낮에 잠깐만 파리를 둘러보고 드골 공항으로 가야 한다.
나침반님은 가져온 자전거로 유럽여행, 홍양은 개인여행, 알맨님과 행자분과 슈가님은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나도 기왕 온 김에 여행하고 싶었지만 일단 빨리 학교로 돌아가서 대체 리포트 써야 한다. T_T
더군다가 발가락 상태가 엉망이라 오래 걸어다닐수도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

유럽엔 다음에 와서 뽕을 뽑아야지.


하루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에 파리를 돌아보면 얼마나 돌아보겠나.
이제부터 자전거 여행이라는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나침반님은 그냥 숙소에 있기로 하고
제임스 장님은 베르사유로
홍양은 오후에 에펠탑 앞에서 만나기로
알맨님, 슈가님, 행자분과 내가 대충 아무데나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유럽에서 제일 볼게 많은 파리라고 들었는데, 과연 밖에 나가기만 해도 예사롭지 않은 광경뿐이다.
길거리에 서 있는 일반 건물들이 대부분 영화에서나 볼 법하게 세워져 있으니.
북적이는 도시는 좋아하지 않지만 미적 감각이라고는 광화문 앞 똥덩어리 조각상만큼도 없는 서울의 도시 풍경과 비교하니
그냥 돌아다니기만 해도 한참동안 눈이 즐거울 수 있는 놀라운 도시더라.


지하철에서 표 끊는 법 때문에 애먹이고 있으니 한 거지분께서 슬금슬금 다가와서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굉장히 쾌활한 사람이라 서로서로 서투른 영어에 농담까지 섞어가며 짧은 시간 재미있게 놀았다.

표 끊어주고 나니 돈 좀 달라고 해서 잔돈으로 남은 동전 조금 줬다. 여기서 자선사업도 해 보는구나.
한국 돈으로 5백원도 안되는 동전이라 별로 아쉬울 건 없고, 재미있는 추억 하나 남겨준 답례라고 생각하고 사진 한방.


일단 오늘은 루브르 박물관, 세느강, 에펠탑 정도 둘러볼 예정인데
사실 저곳들은 한 곳당 1주일씩 잡아도 모자라는 곳이긴 하다. ㅡㅡ;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튀겨먹는 속도가 필요한데, 조금 걷다보니 그럴 마음도 사라진다.
어차피 다 못 볼거 그냥 느긋하게 파리의 길거리 풍경이나 즐기는게 마음 편하다고 생각해서.
파리도 나름 대도시지만 그 날의 하늘은 무지하게 깨끗했다.
4월이지만 거의 초겨울 날씨나 마찬가지라 사람들 옷차림이 심상치 않다.

길거리 집들이 전부 저런 모양을 하고 있으니 도시 전체가 관광을 위해서 만들어진 듯한 느낌.


루브르 박물관에 사람이 왜 이리 없나 했더니만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휴관일이다. ㅡㅡ;
사실은 들어갈 엄두도 못냈지만.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에 박물관 들어가봤자 남는건 아쉬움밖에 없을거다.

그래도 이곳 역시 바깥 풍경만 즐겨도 충분히 배가 부르니까 후회는 없다.

행자분은 옆에서 지나가는 초등학생쯤 되보이는 단체 관람객 아이들 보면서 귀엽다를 연발.
외모와는 달리 아이를 매우 좋아하고, 아이들도 행자분을 좋아한다.
나는 외모만큼이나 아이를 별로 안좋아한다. ㅡㅡ;


루브르 앞에서 낮잠 즐기는 사람.
행자분이 옆에서 따라하는걸 재미있게 찍었다.

이게 마음에 자유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프랑스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라면 광화문 근처 돌담 길바닥에서 졸고 있는 사람을 보고 정상인이라곤 생각하지 않겠지.
질서와 규칙에 목매는 일본인들의 생활습성을 좋아하는 나지만 이런 자유스러움도 부럽다.

다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겠지 싶지만, 적어도 한국의 생활습성과 나는 많이 맞지 않는가보다.
놔 둬도 될 곳엔 쓸데없는 오지랍 작렬하고 지적해야 할 곳엔 그냥 좋은게 좋은거지 하고 넘어가는 것들.


행자분은 흉내내기에 맛들였다!
덕분에 재미있는 사진 많이 찍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반대편 할머니도 웃으면서 좋아하시길래 마음이 놓였다.


그 명성에 비해 파리는 그다지 큰 도시가 아니라서 조금만 걷자 바로 세느강에 도착.
서울의 1/6 크기에, 인구는 200만이 조금 넘는다. 여유로와서 좋겠다.

세느강은 한강에 비하면 쥐꼬리만한 수준이지만 주위 풍경은 압도적이다.
석조 건축이 발달한 유럽답게 위엄있는 건물들이 세느강 주위에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모습은 참 장관이더라.

길에서는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 솜씨를 뽐내고, 강 위에선 유람선이 한적하게 떠다니는 풍경은 정말 영화같다.
평일인데도 공원엔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와서 푸근한 한때를 즐기고 있었다. 세삼 부러운 마음 뿐.


좁은 골목길 몇개를 지나 에펠탑에 도착.
하지만 1년내내 올라가려는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는 소문답게 바글바글하다.
오래 줄서서 올라가고 싶진 않은터라 그냥 주위에서 에펠탑의 모습만 빙 둘러봤다.
파리 시내 풍경을 좌악 훑어보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는데, 요금이 꽤나 비쌌고 사람이 워낙 많아서 무리.

알맨님 일행은 여기서 홍양 만나기로 했으니 야경이라도 보러 올라갈 수 있겠지.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드골 공항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일행들과 진한 포옹 한번씩 나누고 헤어졌다.
지나고 나서야 하는 생각이지만 학교건 뭐건 신경끄고 두세 달 유럽을 돌아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유일한 변명거리인 망가진 발가락을 위안으로 하고 지금까지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숙소에 돌아와서 나침반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나침반님은 이제 막 사하라 레이스를 끝내고 성하지도 않은 몸으로 자전거를 타고 유럽대륙을 여행하신단다.
레이스를 위해 가져온 짐과 조립식 자전거, 유럽여행중 필요한 장비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한 무게다.

옆에서 봐도 너무 황당한 계획이라 말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확신이 내 마음속에나, 나침반님 마음속에나 있었기 때문에
그냥 몸조리 잘 하고 무사히 다녀오라는 말만 건넸다.

몸도 엉망이고 머리도 어질어질한데 잠은 안오고 정신만 말짱한 최악의 상태라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한테 수면제 없냐고까지 물어봤는데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정말 다행은 다행인게, 어찌나 피곤했는지 이륙후 눈 감았다가 뜨니까 인천공항이었다. ㅡㅡ; 16시간은 내리 잘도 잤다.
나는 신경이 엄청 예민한 편이라 잠자리에 누워도 잠들려면 30분에서 1시간은 뒤척거려야 하고
옆에서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금새 잠이 깨는 불편한 타입인데도
비행기 안에서 그만큼 잤다는건 인생 최고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마지막까지 앞으로는 체험하기 힘든 이벤트를 선사해 주는군.

절뚝거리며 공항을 나오자 택시기사가 'Where are you going?'이라고 반겨주신다.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자 이젠 どこに行きますか。라고 물어본다. ㅡㅡ;
한국어로 대답하지 무지 놀라는 기색이다. 전혀 한국인처럼 안보인단다.
뭐, 슬리퍼 질질 끌고 '전선생 -> 전인권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어오긴 했지만 이렇게 못알아 볼수도 있는건가?

아무튼,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도중 서울 하늘엔 빗방울이 맺혔다.
아스팔트 도로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겨우 내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사하라의 하늘이 그리워서.

한국에 도착해보지 않으면 그 느낌을 모른다더니, 역시 경험자의 조언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30회 대회때 다시 함께 가기로 했으니 이 아쉬움을 잘 간직했다가 5년 뒤 환희와 기쁨의 원료로 삼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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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가 끝나고 모로코 와자자테 시티로 돌아온 선수들은 방 배정받고 간단히 샤워하고 저녁 뷔페를 즐겼다.
버스에 타서부터 잊고 지냈던 1주일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기분이 상당히 다운되었다.
1주일만에 샤워를 하는데 온 몸에서 황토색 물이 줄줄 흐른다.
물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발가락쪽에 물이 닿는것 자체가 지옥이라 그냥 대충대충 씻고, 모래에 푹 절은 장비들을 욕탕에 물 받아서 담궈놨다.

뷔페는 그렇게까지 고급은 아니었지만 꿀꿀이죽으로 연명하던 1주일이 지난 후, 처음으로 먹어보는 진수성찬이라 거의 눈이 뒤집혔다.
야수처럼 음식을 쓸어넘기고 나서 한국팀 일행은 와자자테의 밤을 즐기려고 밖으로 나갔지만 난 10분쯤 따라 걷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샌들을 하나 사지 않으면 도저히 걷기가 힘들 것 같았다. 몸 여기저기 안 쑤신곳이 없어서 노는건 다음날로 미루고 호텔에서 수면.

대회 다음날은 와자자테 시티에서 하루 지내면서 기념품을 받고 대회 수상식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긴장이 풀려서인지 대회 도중보다 더 어질어질하고 몸이 무겁다. 항상 힘든 여행의 끝에 겪는 통과의례 같은 것.


아침은 간단한 시리얼과 빵, 커피와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다.
유럽쪽 선수들은 아침을 별로 안먹는 습관때문인지 그냥 간단히 요기만 하고 나가는데
한국 팀은 눈치볼것 없이 무지막지하게 갖다놓고도 두번 세번 음식 챙겨오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 프랑스로 돌아간 후 바로 유럽여행을 나가려는 알맨님과 행자분은 버터와 잼 챙기느라 분주하다.

한국 팀은 슈가님이 알아놓은 MDS 현지 도우미 한분에게 차를 빌려타고 와자자테 시티 투어를 하기로 결정해 놓은 상태라
오전에 기념품만 받아챙기고 시상식은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완주가 목적이었고, 우리들중 수상할 사람도 없으니.

아시아 에이전트 제임스 장님이 못마땅해 하시는 눈치인데, 우리는 일단 경기 끝냈으니 말도 못알아듣는 시상식장에 갈 생각은 없다.


대회 기념품 받는데 줄이 장난아니다.
와자자테 시티도 일단 사하라에 포함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터라 이 햇살은 무섭다.
여기 줄 서있으니 세삼 용케도 이 날씨에 장비 짊어지고 내달렸구나 싶다.


난 아침에 의료진에게 가서 땜빵으로 메워놨던 발을 다시 한번 정비했다.
내가 정비를 받는 동안 한 외국인 선수는 휠체어에 타고 나가더라. ㅡㅡ;
의사는 물집을 아주 작은 바늘로 살짝 살짝 터트리고, 발가락에는 아프지 않게 세심하게 거즈를 둘러놓았다.
3~4일간은 목욕같은거 하지 말고 간단한 샤워만 하란다. 발톱이 뜯겨나간 곳이 심하게 아프거나 곪으면 병원에 가보라네.


기념품을 챙겨든 후 일행은 호텔 밖으로 나왔다.

와자자테 시티는 모로코에서도 그리 작은 도시는 아니지만 역시 한국같은 나라에서 사는 사람에게 이곳은 한적한 전원같은 곳이나 다름없다.
일단 시장에 가서 내 불편한 발가락을 쉬게 해줄 샌들을 구입했는데, 이곳 역시 가격흥정은 필수.


처음에 10달러 부르는걸 생까고 나오면 몇걸음 안가서 뒤에서 붙잡아 다시 들어가고를 반복한 결과
스폰서 기아자동차에서 선물로 받은 흰색 나일론 T 셔츠 한벌과 1달러 정도로 가죽 샌들 하나 교환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서는 줘도 안입을 순백색 '기아맨' 티셔츠지만 모로코 사람들은 이런 나일론 소재의 셔츠가 매우 마음에 드는 듯 하다.

다음 올때는 남대문시장에서 나일론 티셔츠 잔뜩 들고와서 물물교환이나 하자고 우리들끼리 농담조로 주고받았다.
난 해외에 나가도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는 타입이라 그저 물건등 구경이나 할 뿐이지만
패셔니스트 슈가님은 모로코의 옷이나 장신구에 매우 관심이 많은 듯 여기저기 둘러보고 고민에 빠지는 듯 했다.


가이드가 모는 차를 타고 점심먹으러 출발.

식당 앞에서 멋들어진 하늘과 함께 서로서로 사진 찍으며 놀았다.
모로코에 와서 가장 감명깊었던 건 역시 하늘. 서울에서는 1년에 10일간도 볼까말까 한 시린 하늘이 여기선 그냥 일상이다.
나도 슈가님이나 홍양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상대에게 기대어 찍다보니 완전 여성을 덮치는 야수처럼 나왔다. ㅡㅡ;


음식 잘 하는 곳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솔직히 기대엔 영 못미쳤다.
그리 싼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모로코 사정을 우리가 알 리 없으니 진짜 잘 하는 집인지 아닌지는 그저 오리무중.

모로코라는 국가보다 더 유명한 카사블랑카 시티에서라면 미리미리 준비 좀 하고 갔겠지만.


뭐가 어찌됐든 우리는 그냥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불만없이 맛있게 먹었다.
사하라 1주일을 겪은 우리들에게 이런 요리라도 감지덕지일 뿐.


배를 채운 후엔 역시 쇼핑일까.
기대에 가득 찬 슈가님을 따라 차를 타고 이리저리 달려서 토산품점으로 직행.
중간에 뭔 일인지 경찰이 차를 세우기도 했는데, MDS 관련자라는 걸 아니 그냥 보내줬다.

모로코에서 MDS는 프랑스쪽에서 상당한 지원금이 들어오는 귀중한 연례행사니 모르는 사람도 없고 모두들 친절하다.
한 껀 해먹으려는 장사꾼들 마음이야 한국 못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하지만 한국인의 흥정능력을 무시하면 안되지.


달콤한 민트티 한잔 받아먹고 몇 시간동안 슈가님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적정 가격에 사기 위해 노력하셨다.
막판엔 가게 주인이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정말 한국인과는 거래 맘놓고 못하겠다고 하소연을 하는 사태에까지.

커미션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이 가게에 데리고 온 현지 스탭 아저씨도 난감한듯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시길.

난 물건값 잘 깎는 성격이 아니라 내가 살 물건이 있었다면 후하게 값 매겨먹을수 있었을 텐데.


그동안 나침반님과 나와 행자분은 밖에서 모델놀이나 하며 놀았다.

어떤 이 중엔 저 완주 기념 티셔츠를 값 잘 쳐줄테니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만.
그리고 MP3 같은 기기는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어떻게든 물물교환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우리도 부자가 아니라 MP3 같은걸 바꿀 순 없었다.


적어도 나침반님과 나는 아직 사하라 마라톤의 꿈에서 깨지 못한 듯 싶었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곳.

한국에서 이 하늘 한번 보기 위해 얼마나 그 흐릿한 풍경을 참아내야 했는지.


저녁식사를 마친 후 행자분은 아직도 포기를 못하고 일본인 아이돌그룹 아이나씨를 붙잡고 난리다.
그만 정신 좀 차리시면... ㅡㅡ;

은근슬쩍 어깨에 손도 올려보고.
이럴땐 부럽다고 해 줘야 정상적인 남자 취급을 받을려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오늘 구입한 모로코 의상으로 갈아입으신 슈가님.
내 눈엔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 물건들로 저렇게 코디를 해 내는것도 참 신기했다.
몇 시간동안이나 흥정에 흥정을 거듭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아서 왠지 득본 기분.

물론 난 그냥 손만 빨며 구경했을 뿐이지만.


저녁엔 피터와 함께 근처 야시장에 가 봤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좀 겁나기도 했지만 사실 와자자테 시티는 MDS에 워낙 익숙해서 외국인에게 해코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밤거리에서 모여 노는 젊은애들도 그냥 방긋방긋 잘만 웃으며 우리와 인사했다.
여성분이 끼어있다는 걸 알고 함께 술마시자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후문이.

밤이 깊어질수록 나침반님은 아쉬워 하신다.
아마 그 아쉬움을 잊지 못해서 두 번이나 이곳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 아쉬움이 충족되었을 리는 없을 터.

밤엔 호텔 옆의 바에서 구르카족과 함께 맥주 마시며 놀았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같은 동양인들끼리 친근감이 작용했는지 그들도 굉장히 아쉬워 했다.
피터는 내일 프랑스로 가지 않고 바로 모로코 여행을 시작할거라니 이 친구와도 오늘이 마지막.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난 여러명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이런 분위기엔 따라가질 못해서 그냥 못마시는 술이나 홀짝홀짝하며 남들 이야기나 들었다.


다음날 아침 홀가분해진 짐을 챙겨서 프랑스로 출발한다.
내 전리품은 완주 메달과 완주 티셔츠와 MDS 버프, 그리고 망가진 발가락과 마데인 모로코제 샌들 한켤레.


드디어 사하라 레이스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은 일주일간의 고생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11.8km 라는 최단거리 스테이지.

물론 여지껏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모래언덕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어느 누가 이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탈락하겠나.
그 지옥같던 하루하루가 어느새 아쉬움이 가득한 추억거리로 남았다.
모든 선수들의 입가에 미소가 그치질 않는다. 서로서로 텐트를 오가며 인사하고  기념품을 교환하고 한다.

꼭 전역을 앞둔 병장들만 모아놓은 것 같은 분위기.
군대같으면 추억이라도 다시 가고싶지 않겠지만 여기는 여유만 되면 가고 또 가고싶어진다.


알맨님과 나침반님이 한국팀 물을 가져온다. 팀 내에선 중환자나 마찬가지인 나는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으면 된다.
대회 내내 감사한 마음뿐이다. 땔감도 긁어와 주시고 물도 끓여주시고. 날 업고 대신 달려주는 일 말고는 다 해주셨다.
이래서 팀이 좋은건가보다. 달릴땐 뿔뿔히 흩어져 혼자지만 도착점에 항상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기다리고 있다는 든든함이.


????
대회가 다 끝나가니 선수들이 점점 어린애처럼 흥분한다.
안에 누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레이스 도중 최고의 디자인이다.


난 신발 신는데만 10분은 걸릴 정도로 발가락이 아파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는데
다른 선수들은 이 오묘한 생물체와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함께 달리진 않았지만 물심양면으로 팀원들을 도와주신 슈가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배고파 죽는소리하는 팀원들을 위해 밤에 몰래 스텝 식사를 챙겨와주기도 하셨다.
원래대로라면 레이스 탈락이 될지도 모르는 중죄(?)지만 이런 것도 여행의 재미.

어차피 순위경쟁과는 안드로메다급으로 떨어진 한국팀인데 뭐 어때. 거금 들여서 왔는데 말이지.


짧은 시간이지만 정들었던 네팔 구르카 군인들의 기념사진.
실례가 될까 싶어 말하진 않았지만 멀쩡해도 너무 멀쩡하다. ㅡㅡ;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원들이니 뭐...


7일간 동고동락한 복면강도일당 단체샷.
약간 필름틱하게 보정을 해 봤는데, 내 보정 실력때문이 아니라 완성된 사진을 보니 심히 가슴이 쓰라린다.
그 때의 추억이 한국에 틀어박혀있는 지금의 나를 후려치는 듯 하다.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행복했던 곳.
지금도 한국의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곳 생각에 가슴이 막힌다.

30회 대회때 다시 가자고 약속했다. 반드시 가야지.


거의 텅텅 빈 베낭을 짊어진 선수들이 출발선 앞으로 모인다.
신나는 음악이 여기저기서 울려퍼지고, 대회 시작후 가장 들뜬 모습의 선수들이 벌써부터 사막과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즐거워한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인지, 그렇게 답답해 죽을것만 같던 하루하루의 출발시간이 어찌 이렇게 쉽게 변하는지.


슈가님은 훗날 나를 보고 참 징하다고 생각하셨단다.
이유는 발가락 그렇게 떡이 되고서도 용케 완주했다는 것과
정말 대회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저 버프를 벗지 않았다는 점.

실력있는 선수들은 오히려 달릴때 방해가 되서 버프를 쓰고 달릴수 없지만 나야 뭐 기다시피 걸었으니.
숨막히고 덮긴 했지만 뭐랄까 대회 내내 버프를 쓰겠다는 건 사소한 고집이었다.
덕분에 나름대로 재미있는 추억거리도 만들었으니.


드디어 21회 사하라 마라톤 레이스의 마지막 스테이지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빠른 선수들은 마구 달려나간다. 이제 CP도 없고 간식 먹을 필요도 없다. 그저 앞에 있는 결승점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


잠시 몸을 풀자 빨리도 오늘의 클라이막스가 눈앞에 나타난다.
저 멀리 보이는 웅장한 모래언덕이 이젠 반갑게까지 느껴진다. 힘들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저 아쉽고 아쉬울 뿐.


과연 들어온 명성에 걸맞은 거대한 모래언덕이다.
이쯤 되면 언덕이 아니라 그냥 산이나 마찬가지. 10~20m 는 되는 경사가 속도를 매우 더디게 만든다.
마음이 가뿐해도 몸은 천근만근이라 만만히 볼 지형은 아니다. 하지만 나한테는 힘이 들어도 매우 편안했던 곳.
자갈투성이 맨땅을 박차는 것보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 위를 걷는게 부담이 덜 가기 때문에.


부부인지 연인인지, 눈물나게 사이좋은 광경.
함께 이런 곳에 올 마음을 먹었다는게 부럽기도 하다. 한국서 이렇게 올 커플이 몇이나 될까.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보면 조금 더 느끼고 가는 것이 있을까.
적어도 나는 많이 느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11.8km는 이제껏 달린 거리를 생각하면 우습지만 사실 CP 정도의 거리다. 사막에서 우습게 볼 거리는 아니다.
내 절뚝거리는 걸음으로는 적어도 2~3시간은 걸릴 거리. 마지막이긴 하지만 레이스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사막의 열기와 무신경해진 살갖을 때리는 모래바람이 오히려 머리를 비워준다.


선수들이 사막을 빠져나오고 있을 무렵 스템들은 결승점에서 축하 준비를 위해 분주하다.


이번 대회엔 참가자 가족들도 결승점에서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에서야 비행기로 금방 올 수 있으니 좋겠지. 한국사람이 여기서 기다린다는건 꿈도 못꿀 일이다.

그래도 홍양과 슈가님이 기다려주고 있으니 뭐.


내가 모래언덕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때
경이적인 체력으로 마구 내달린 행자분은 벌써 대망의 결승선을 넘었다.
7일만에 접하는 문명 세계의 흔적과 완주 기념 메달. 얼마나 기뻤을까.


결승점에 도착하는 선수들이 차례차례 들어온다.
끝날 것을 알고 있지만, 끝이 없어보이는 모래언덕을 넘고 또 넘었을 때 멀리서 보이는 저 문명의 흔적을 볼 때의 느낌은 남다르다.


이 때의 환희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라고 하고싶지만 사실 난 뭔가 벅차오르거나 그런 건 별로 없었다.
우는 사람도 있고 감격하는 사람도 있고 기뻐 날뛰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때의 난 그냥 무덤덤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데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난 내가 내딛는 순간 순간의 발걸음을 즐기는 성격이라
소설을 쓸 때도 그렇지만, 완성되어버리면 그 순간 그 기쁨은 나를 떠나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항상 마지막엔 미련남기지 않고 무덤덤하게 넘겨버리곤 하는데, 아마 이 때도 비슷한 감정이었던 듯.


짧은 거리라고 해서 안전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
21년이라는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사하라 레이스는 경기가 끝나고 마지막 주자 한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결코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모든 안전이 보장되는 편안한 놀이터에서 신나게 모래장난이나 하고 온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알맨님도 결승점에 도착하셨다.
한국 팀들은 산전수전 겪은 편이라 그런지 감격에 겨운다거나 하는 느낌은 별로 없는듯. 다들 비슷하다.


결승점에서는 어쨌든 시선을 잡아끄는 사람이 카메라에 한번 더 나온다.
고생고생하며 저 거대한 깃발을 들고 완주한 선수는 여기서 그만큼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게 된다.

나는 다음 대회때 어떻게 튀어보이면 좋으려나.
다스베이더 복장을 하고싶긴 한데 아무래도 목숨을 걸어야 할것 같아서 고민이다.
아마 주최측에서 만류할듯. 좀 더 시원하게 튈 수 있는 복장을 찾아봐야 할듯.


나도 실제로 그럴 기분이 들었다면 저렇게 감격에 겨워보고도 싶었는데.
내가 달려온 길보다 오히려 옆 선수들의 저런 모습을 보는게 더 감격스럽기도 하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군대를 다녀와서일까, 다들 무난한 모습이니.

하지만 나타나지 않을 뿐 가슴 속에서는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겠지.


내 걸음걸이가 일본 아이돌 그룹과 비슷해서 항상 조금 앞에 내가 걸어갔는데
이 인간들이 TV 연출을 하고 싶은건지 결승점 바로 앞에서 막 뛰기 시작했다. ㅡㅡ;
난 별 생각없이 그냥 뒤에서 걸었는데 문제가 생긴 것이
TV 스탭까지 동반한 애들이라 결승점에서 인터뷰도 하고 시간을 질질 끌어서

난 버스 줄서서 기다리는 승객처럼 뒤에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기분이 좀 상했다.
그냥 내가 먼저 앞으로 달려가버릴걸.


나침반님은 이번 스테이지에선 일부러 뛰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사하라의 마지막을 음미하셨다고 하신다.
난 원래 걸었으니 다행은 다행이다.
두 번째 완주였으니 우리보다 느끼는 점이 많으셨을 거다.


뭔가 조금 허탈하기도 하고, 아주 약간 기쁘기도 하고.
환희에 차서 '해냈다!' 라고 즐거워 하기엔 내가 대회도중 부린 추태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터라 그러기도 힘들다.
유일하게 마음을 치유시켜 준 사실은, 그래도 완주는 했구나 하는 것일까.

어쨌든 돈값은 했다.


완주 메달과 식사거리를 받은 후 사진 한장.
오른쪽은 일본 선수. 굉장히 순수한 마음을 가진 젊은 학생이라 대회 도중 가끔 이야기 나눴다.
몸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 육상선수라서 그리 어렵진 않았을 듯.


결승점에서 내 발목을 잡은 3인조 민폐녀들.
인터뷰는 결승점 통과하고 나서 하라고... ㅡㅡ;

좋다고 브이 그려주는데 화낼수도 없고 그냥 좋은게 좋은거라고 넘어갔다.
다음에 만날땐 앞질러 주겠어.


일주일만에 남에게서 제공되는 식사를 입에 넣었다.
지친 몸에 영양소가 들어가니 조금씩 조금씩 흥분과 즐거움이 고개를 든다.
대회 후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서 배를 채우고 있으니 간신히 내가 완주했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나도 참 독한 놈이다.


버스를 타고 다시 와자자테 시티로 돌아가면서 나침반님과 나는 서너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눴다.
아직은 뒤죽박죽인 사하라 레이스 소감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휙휙 지나가 버리는 사막의 풍경을 나눴다.

1주일동안 정말 의미없는 짓을 사막 한가운데서 벌이다 돌아온다는 느낌도 들어서 조금 웃었다.


단순히 아쉽다는 말로 정의하기엔
그 흘러가는 버스 밖 풍경이 너무 복잡해 보인다.

여지껏 세상 살아오면서 겪어보지 못한, 성취감과 허탈감이 뒤섞인 묘한 그리움.
아주 살짝 기분이 좋은듯 한 그 감정은 인생에서 좀처럼 느끼기 힘든 귀한 경험이었음에 틀림없다.

레이스가 끝나면 그리워지는게 이곳 사하라라는 말이 결코 틀린 게 아니었구나.
그리고 그 감정은 레이스 끝나기 전까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도 틀린 게 아니었다.
역시 사람은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는 동물인가보다.

이제 와자자테에서 하루 푹 쉬고 다음날 프랑스로 날아가는 일만 남았다.

사하라 레이스의 마지막 관문이자 클라이막스인 스테이지 6.
마지막 스테이지인 내일은 11.8km 밖에 되지않는 이벤트성 레이스이기 때문에
사실상 마지막 코스이자, 이틀 코스인 Long Day를 제외하고 가장 긴 거리를 자랑하는 스테이지다.

사하라사막에서 5일간 만신창이가 된 후에 비로소 맛보게 되는 풀코스 마라톤.


내 몸 상태를 점검해 봤다.
양쪽 발 뒤꿈치 심한 화상으로 연고와 함께 붕대로 칭칭.
양쪽 새끼발가락 발톱 모두 빠진상태, 양말이 진물에 절어서 파리들이 달려든다.
오른쪽 어깨 물집과 화상, 간단히 터트린 후 붕대로 고정시켜놨다.

그리고 거의 바닥을 드러낸 식량.

레이스를 위해 준비한 식량은 일단 7일분의 아침, 저녁식사. 이건 건조 알파미와 건조 비빔밥, 건조 된장가루 정도다.
알파미는 부피는 나가지만 가볍고, 물만 넣으면 금새 밥이 되기 때문에 아시아계 선수들이 많이 가지고 온다.

그리고 레이스 도중도중 먹을 육포와 파워젤, 땅콩과 초콜릿 등의 고칼로리 간식.
실질적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게 주식이나 마찬가지다.
CP 통과하고 물 받을 때마다 앉아서 육포를 질겅질겅 씹어준다. 그렇게 고단하고 더워도 아주 행복하게 목구녕으로 넘어간다.

MDS 위원회에서는 선수들에게 반드시 하루 4,000kcal 이상의 음식을 지참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CP에서 한끼 대용으로 먹을 육포와 초콜릿, 땅콩 등을 2,000kcal 정도로 묶어 각각 비닐로 싸놓았다.
그런데 그 간식거리도 거의 남지 않았다. 오늘은 두 CP당 한 봉지 정도로 아껴먹어야 겨우 내일까지 버틸 수 있을 정도.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었을 때 요긴한 마라톤용 파워젤도 전부 떨어져서 알맨님 것을 사정사정해 몇개 얻어냈다.
원래 규정위반이긴 하지만 중도 탈락한 홍양분의 음식도 슬그머니 팀에서 챙겨놨다. ㅡㅡ;

출발 당시 거의 80%의 무게를 차지하던 음식들이 바닥을 드러내서 홀가분해야 하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출발 때나 지금이나 어깨를 짓누르는 힘은 전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 무거워진 듯한 느낌은 든다.


그런데 오늘 대부분의 참가자들 얼굴은 밝다.
레이스 중 가장 힘든 날이 될 것이 틀림없었음에도, 모두 즐겁고 들뜬 상태다.
어제 하루 쉰 것 때문에 체력이 회복된걸까? 아니라는데 내 발톱의 때를 건다.


대회 종료를 하루 앞둔 지금에서야 사막 레이스에 익숙해 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평생 처음 내딛은 사막에서의 걸음은 6일만에 이방인을 원주민으로 만들어 놓았다.


같은 아시아계 출전 선수 (홍콩이던가?) 브라이언은 원래 대회 내내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매력남이었지만서도.
우리 쪽이 기분이 좋아지자 함께 치는 장난에도 좀 더 힘이 실린다.


Long Day를 통과한 후 나도 마음의 짐을 한 뭉치 내려놓은 기분이다.
5일 전의 나라면 30km 구간도 그렇게 지옥같았는데 어떻게 풀코스를 뛸 수 있겠냐고 한숨을 팍팍 내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익숙하다.

힘든건 매한가지지만 그냥 무던하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오만하게도 조금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이미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졌지만 그래도 여지껏 160km 거리를 달려왔다.
이제 남은 54km 따위가 뭐가 대수인가 싶은 기분이다.

Long Day의 환희까지 맛본 내가 이제 탈락할 리가 없다고 스스로 믿기 시작하니, 5일 전과 다름없는 사막의 뜨거운 아침도 반가울 따름이다.


아,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구나.
난 완주 못할거라고 그렇게 되뇌었는데, 머릿속 마지막 남은 약간의 고집과 꼴불견인 허세가 내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선을 넘어가자 이제 내 비관적인 성격도 어느 정도 체념한 듯 하다.

대회 시작 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카메라 들고 바람 부는 모래언덕으로 놀러갔다.
대회 첫날의 깔끔했던 모습은 모두 사라져 버린 거지꼴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누구보다 멋졌다.


기분이 업되니 설정샷도 만들어본다. 거칠게 불어준 모래바람이 반가웠던 건 이 때가 처음이었다.


사하라 사막에서 추억을 남기려는 슈가님을 방해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쓰는 걸러와 나침반님.


대회내내 고개만 떨구고 한숨만 쉬던 모습밖에 찍힌게 없어서
간만에 과도하게 폼이나 잡아보자 싶어서 한 장.
그래도 이런거 한두 장 찍어놓으니 나중에 볼때 재미있긴 하다.


이놈의 행자분은 끝까지 일본 아이돌 그룹 쫓아다닌다.
그리 좋냐? ㅡㅡ;

그런데 난 누가 아이나씬지도 이제 잘 모르겠다.
저 가냘픈 몸으로 버티고 있다는건 정말 감탄스러운 일이다. 연예인을 우습게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이때 처음으로 한 것 같다.


마지막 고난이자 마지막 환희의 레이스!
내일은 이 감정과는 다른 아쉬움의 레이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100명이 넘는 탈락자를 낸 역대 최고난이도의 레이스를 견뎌낸 선수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첫 출발 이후로 가장 활기넘치는 듯한 선수들의 모습을 모래언덕에서 급히 카메라를 꺼내 찍었던 이 사진이
레이스 도중 찍었던 사진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녀석으로 남았다.


원래 볼거리 가득한 사막이지만 내 기분을 알아주는건지 마지막으로 큼지막한 선물을 하나 준비해 줬다.
옆의 4륜 바이크와 크기를 비교해 보면 얼마나 거대한 녀석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듯.

종착점을 향해 가는 레이스다 보니 점점 날씨도 덜 더워지는 탓인지 이런 거대한 나무도 보인다.
내일 결승점은 사람이 사는 꽤나 큰 마을 어귀에 위치하기 때문에 사막 한가운데보다는 살 만하다.


등번호 1번의 에이스 아한살 선수는 1주일동안 저런 유아용 베낭같은 녀석에 먹을거 전부 집어넣고 달렸다.
물론 원주민 출신이라서 이점이 많긴 하겠지만 정말 저렇게 먹고도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게 불가사의할 따름이다.
후발주자인 나는 이 사람 뒷꽁무니도 못 보는 처지라, 스텝 자격으로 참가한 슈가님이 이리저리 차 타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오셨다.


여성주자중 1위를 달리고 있는 선수, 베낭의 무게배분도 완벽하다.
여기 와서야 나침반님이 알려줘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런 레이스에서는 가슴 앞쪽에 보조베낭을 달아야 무게배분이 잘 되어 어깨에 부담이 덜 간다는 것.
나는 앞에 조그만 카메라 하나 달고 모든 짐을 등 뒤에 달아놨으니 그렇게 힘들었던가 보다. 다음엔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을거다.


마음이 편안해 진 것과 사막 레이스와는 사실 별개의 문제다.
내 마음이 어떻게 변했던 어쨌든 오늘은 레이스 중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풀코스 스테이지.
그동안 사막을 해집으며 선수들의 안전을 책임졌던 자동차들도 한계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칼날같은 자갈밭에 상처를 입고, 유리같은 모래알에 엔진이 엉켜버린다.


레이스 첫날, 길 중간중간에 엎어져 고통스러워 하던 선수들을 대신해
이제는 자동차들이 옆에 널부러져 있다. ㅡㅡ;
서로서로 수고했다고 목례를 날리고 가던길을 걸어간다.

이번 스테이지는 전반부 상당부분이 거대한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덕분에 체력소모는 심한 반면 다리에는 부담이 덜 간다.
익숙해 진 탓인지, 10분만 걸으면 통증이 없어지고, 모르핀 한대 맞은 몽롱한 느낌으로 그저 걷고 또 걷다보면
그제서야 아, 이게 TV에서만 보던 진짜 사막이구나 하는 늦은 감탄이 세어나온다.

레이스 최후반부가 되어서야 이 정도 여유를 찾다니, 나침반님이 두번 온 이유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아쉬워서였을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이 얼마나 굉장한 능력을 보이는지는 대부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
내가 원래 상당히 부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라서.

하지만 이곳에서는 단순한 긍정의 마인드만으로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남아있는 물의 양을 계산하고, 적당히 배고픔을 참으며 아껴 씹어야 할 육포의 달콤함을 애써 잊으려 노력한다.
충분히 널널하다고 계산해서 가져온 음식이 간당간당하다.
사막이라는 곳은 지식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경험이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곳이다.
서울보다 좀 더 야성적이고 좀 더 순수한 곳이다.


오늘 레이스는 왠만한 상위 랭커가 아닌 한 최소 6~12시간은 걸리는 장거리다.
육포 등의 간식거리로 허기를 채울수는 있지만 밥이 주식인 한국인으로서는 많이 허전한 느낌.
그래서 어느 정도 레이스 중간에 밥을 먹어주는 시간도 필요하다.
한국 팀에선 1,2위를 다투는 행자분도 중간에 짐을 벗어놓고 밥을 먹는데
왠만한 노숙자 저리가라 할 만큼 애처로운 표정으로 밥을 입에 집어넣는 모습에서 진한 동료애를 느낀다(?)

일단 고추장만 있으면 어디서든 꿀맛.


6일 동안 사막 한가운데서 레이스를 벌이다 보면 가끔 풍경이 지겨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두 다리를 교차시켜 앞으로 가기만 하면
어디선가는 우리를 보면서 박수를 쳐 주는 스탭들이 기다리고 있다.

중간중간 나트륨 알약이 필요한가 묻기도 하고, 쉬고있는 선수들과 앞서가는 선수들이 서로서로 격려해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조금 늦어버린 시간인가.


사막에는 생명체가 별로 없다고들 하지만
파리만큼은 서울보다 더 많은 느낌이다. CP에서 쉬기만 하면 어디선가 파리떼가 날아든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내가 씹어먹는 육포보다 피와 진물로 얼룩진 내 양말쪽에 더 환장을 한다는 것. ㅡㅡ;

원래는 열 마리가 넘는 파리가 저 부분에 수북하게 앉아있었는데 카메라를 뒤적거리다 보니 다 날아가고 용감한 한 마리가 남았다.
내 식사를 방해하지 않아서 오히려 안심.
발톱이 빠지고도 나 참 용케 참는구나.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스텝들을 비롯해 몇몇 팀 동료분들도 내 몸 상태로는 완주 못할거라고 생각하셨단다.
나도 그랬으니까 화는 전혀 나지 않는다.


세삼 느끼는 거지만 사막에서의 풀코스 마라톤은 정말 허벌나게 멀게 느껴진다.
익숙해짐이 이렇게도 편리한 것이구나 싶다.

아픔도 배고픔도 갈증도 걷다보면 원래 그랬던 것처럼 풍경과 함께 지나가 버린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끝없는 지평선도 익숙해지다보니 이제 허탈한 걱정이 생긴다.

다른 팀원들은 경기 후 프랑스에서 유럽 여행을 즐긴 후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대학교 재학중에 교수들 허가를 받고 15일 정도 휴가를 받아온 나는 그럴 여유가 없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쉽다는 느낌보다 남겨두고 온 수업 따라가는 걱정, 대체 레포트 어떻게 써야 하나 등의 걱정이 머릿속을 메운다.

그런 세상과 단절하기 위해 찾아온 사막에서...
다음에 갈 때는 이 지평선같이 마음을 평온하게 먹을 수 있을까.
아마 나침반님도 이런 아쉬움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1년만에 다시 돌아왔을지도.


이제 당연하게 느껴지는 고통을 뒤로 하고 13시간 가까이 걸려 어두컴컴한 마지막 야영지에 도착한다.
레이스를 끝내며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든 적이 있었나.
이젠 달리고 싶어도 더 이상 달리지 못한다.

이 사막의 불합리함에 그렇게도 진저리를 치던, 고통으로 가득한 마음이 며칠만에 변해버리다니.
이것이 사막의 매력인가보다.

마지막을 앞두고 모두 대회 시작전보다 더 흥분된 마음으로 텐트 속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미 어떤 친구들보다 오래 사귄 듯한 친근감으로.

해가 지자 주최측에서 초청한 관현악단의 야외 연주가 시작되었다.
많은 선수들이 오손도손 모여앉아서 사막 한가운데 울려퍼지는 바이올린의 선율을 즐기고 있었지만
밤중에도 모래바람이 심해서 만사 귀찮은 나는 그냥 텐트 안에서 근근히 울려퍼지는 소리만 듣고 있었다.

동료들과 사막과 레이스에 대해 서로서로 신기한 듯이 수다를 떠는 것이 더 재미있어서였을까.
적어도 대회 도중엔 연주회같은 이벤트도 좋은 추억거리가 되긴 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뭔가는 대부분 레이스 도중이나 텐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제 사하라에서의 발걸음은 11.8km 밖에 남지 않았다.
내일 코스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거대한 모래언덕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게 힘들면 힘들수록 아쉬움만 커져 가는 느낌이다.

6일만에 나를 이렇게 바꿔놓은 사하라 사막. 참 놀라운 녀석이다.

황홀했던 사하라의 밤이 밝아왔다.
원래 이틀간 72km를 달려야 하는 Long Day가 57km로 줄어버린 덕에 대부분의 선수들에게는 하루 휴식시간이 생겼다.
나같은 최하위 그룹이 중간에 쉬지 않고 15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으니
체력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은 선수들 대부분이 어제 밤에 들어왔을 터.

즐겁게 끝마친 레이스와는 별개로 내 몸은 거의 만신창이의 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니
오늘은 내일 있을 최대의 난코스 42.195km 코스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의료진의 치료와 함께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의료 텐트 안에는 이미 그동안의 레이스로 부상을 입은 선수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하루 종일 휴식시간이라 꿀맛같은 기쁨이 느껴지는 것이 당연함에도, 몸이 망가져 있다 보니 그닥 흥이 나지 않았다.
의료 텐트에서 우리를 치료하시는 거룩한 의사, 간호사분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로, 거의 무일푼으로 일해주신다.


뒤꿈치의 물집. 오돌도돌하게 예쁘게도 피었다.
발이 너무 부어서 슬리퍼가 들어가지도 않는다.


새끼발가락. 발톱은 이미 너덜너덜하다. 물집이 수십번 잡혔다 터졌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이렇게 햇살 아래서 상처들을 직접 보고 나니 세삼 놀랍기도 했다. 나도 참 독한 놈이구나 싶어서.


물론 물집이란 건 이곳에서 말할 거리도 안되는 일상적인 것들이다.
서양 선수들 치료할때는 이렇게 물집 부분을 넓게 확 잘라버리는 방식으로 치료하길래 깜짝 놀랐다.
한국처럼 구멍을 내서 진물을 빼는 식으로 치료하는 방식과는 확연히 달랐다. 굉장히 쓰라릴 것 같은데 얘네들은 이렇게 하더라.

나는 의사 앞에서 '구멍 뚫지 말고 살살해 주세요'라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 지어가며 몸짓발짓 지었는데, 알아들었는지 간단히 치료후 잘 감아줬다.


치료를 마친 환자를 배웅하러 나와 준 홍양.
5일째 사막 한가운데서 지내고 나니 드디어 상거지꼴이 제대로 잡혀간다.


사하라 사막에서 나의 정신적 지주 홍양은 절뚝거리는 나를 텐트에 눕혀놓고 밥해먹기 위해 땔감을 구해와 줬다.
다쳤다고는 하지만 다들 힘들기는 마찬가지인 사막 레이스에서 나만 가만 누워 밥짓는걸 기다리려니 미안해 죽을 지경이다.
심지어 홍양은 탈락까지 당하고도 일부러 선수들과 함께 생활해 주고 있는데, 사실은 내가 위로해 줘야 하는데 말이다.


대회 첫 날엔 불도 제대로 못 피우던 선수들이지만 이젠 요령이 생겼다.
저렇게 구덩이를 판 다음에 불을 지펴야 바람에 꺼지거나 날아가지 않더라.
비싼 버너와 코펠따위 필요없이 싸구려 주전자 하나면 뭐든 만들 수 있다.
행자가 저 주전자를 버리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아까웠던 기억이 난다. 가지고 왔으면 평생의 기념물이 되었을텐데...


이제 가지고 왔던 음식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예상보다 음식 섭취량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건조 알파미도 간당간당, 파워젤은 모자라서 알맨님거 강탈해서 먹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점점 니것 내것 개념이 없어져가는 식사시간. 이게 한국사람의 정 아니겠나.


아무튼 미리 가지고 온 컵라면 내용물과 정체불명의 스프란 스프는 다 섞어서 만든 꿀꿀이죽같은 라면도
세상에서 먹은 어떤 라면보다 달콤하고 짭짤한 환희를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대회 5일동안 저 부피 큰 컵라면 내용물 들고 뛴 한국팀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한국인은 고추장과 라면만 있으면 세상 어디서든 먹고살수 있는 인종인가보다.


이미 한국팀이 되어버린거나 마찬가지인 피터 무라카미가 자기 식량을 내놓는데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1주일동안 먹을 식량이란게 유아용 분유같은 저런 멀건 파우더와 물에 타서먹는 가루 음료수가 전부였던 것.
사하라 사막 레이스를 어떻게 본 건지 저걸 퍼먹으면서 240km를 완주하려고 했단 말인가?
피터가 그 전부터 여러번 체력의 한계를 느껴 힘들어 하던 이유를 알았다.

그래서 한국팀이 피터 밥까지 함께 만들어 먹기로 하고, 저 가증스러운 가루는 전부 처분해버리기로 했다.
한국인의 이런 공동체 의식에 익숙하지 않은 피터는 대회 내내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이럴 때는 정이란 녀석이 참 좋다.


음? ㅡㅡ;
이 가루 맛있긴 하다. 달콤한게 간식거리로는 좋은데...


뭔 환각제라도 들었나.
퍼 먹는 알맨님과 행자분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멋진 사진 남길 수 있게 해준 정체불명의 가루에게 건배.


대회 전날 하루동안 장비 검사하며 텐트에서 지낼 때는 회복되지 않는 체력과 사막의 열기 때문에 짜증이 극에 달했는데
5일만에 산전수전 다 겪은 베터랑이 되어버린 우리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도 유유자적하며 이 귀중한 휴식시간을 즐기기 바쁘다.

4일동안 각자가 겪은 일들을 말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고 그저 드러누워서 대회 시작 후 처음으로 사하라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한다.
여러 외국 선수들이 텐트를 돌며 인사하러 오기도 하고, 이곳에선 참가자 모두가 낯선 이방인이자 동료이기 때문에 금새 친해진다.


홍양이 내 발을 굉장히 신기해해서 기념으로 한 장.
군대도 못가는 평편족이란 이런 것이다.
그런데 사하라사막엔 잘도 오는구만.

어쨌든 이런 기형적인 발 때문에 하기 싫은 군대는 쏙 빼먹고 하고싶은 사하라 레이스 할 수 있어서 참 기뻤다.
군대 대신 근무했던 회사에서 2년간 모은 돈으로 사하라 레이스 참가비를 마련했으니까. 경사로세.


돌이켜보면 즐거웠던 시간.

모래바람이 짜증나서 버프를 끝까지 뒤집어 썼더니 홍양이 박장대소를 한다.
나는 자기 모습을 못 봤으니 그런갑다 싶었는데, 대회 끝난 후 사진을 보니 대충 웃을만 하다고 이해가 되는구만.


제대로 먹지도 못한 준비부족 피터는 편안하게 잘도 잔다.
이 녀석 한국팀이 밥 나눠주지 않았으면 절대로 완주 못했을거다. 본인도 인정하는 사실.
그래서 더욱 친해진 것이겠지.

훗날 한국에 놀러 왔을때도 재밌게 놀았다.


밖이 소란스럽길래 나가보니 사하라 사막 마라톤의 영웅 '아한살' 선수가 서 있었다.
매년 열리는 사막 레이스에 거의 매번 1,2등을 번갈아 차지하는 '아한살' 형제는 이미 모로코 전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국가의 영웅.

일단 사하라 레이스도 상금이 걸린 대회라 이 사람들의 수입이나 스폰서는 상당한 편이다.
역시 모로코 출신이란 사실이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한 건지, 일반 마라톤 대회에서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은 편.


그저 신기하기만 한 등번호 1번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지 않으면 어쩌겠나.
거물중에 거물이라 좀 긴장했는데 사실 만나고 보니 아주 친절하고 사교성 좋은 멋진 사람이었다.
함께 춤도 추고 사진도 찍고 스스럼없이 놀다가 헤어졌다.

사실 이곳에서는 국적이나 성별같은거 정말 의미없더라.
보는 사람들끼리 누구나 웃으면서 인사하고, 같은 길을 헤쳐왔다는 동질감이 시간을 압축시켜 오랜 친구처럼 친근하게 만들어주니까.


사하라를 전세낸 건 아니기 때문에 쓰레기 배출은 철저하다.
텐트 앞에 보이는 검은 비닐안에 철저하게 넣어서 버려야 한다.
레이스 마지막 날에 흥분한 나머지 달리다가 마시는 패트병 따위를 버리는 선수들도 있다고 하는데
걸리면 엄격한 패널티를 주기도 하고, 이만한 돈 들여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상식은 갖고 있길 바랄 뿐이다.


동양인들끼리라서 친근감을 느꼈는지 예전부터 몇번 마주쳤던 네팔 선수들이 놀러왔다.
영국 국적으로 대회에 참가한 그들은 문신에서도 얼핏 볼 수 있듯이 영국군 특수부대 소속.

독특한 모양의 단검 쿠쿠리를 사용하는 용맹한 전사로 유명한 네팔의 구르카족으로만 이루어진 특수부대.
밀리터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 이 세계 최강의 전사들을 앞에서 보게 되니 신기할 따름이다.

자기네들도 힘들다고 말은 하지만 몸의 만듦새나, 뛰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그들에게 이런 대회는 그냥 몸풀기용 관광대용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영국 국적을 빌린 몸으로밖에 참가할 수 없는 그들의 사정을 들으니 역시 약소 동양인들끼리 느낄 수 있는 애절함이 배어나왔다.


그동안 나는 편안히 엎드려서 홍양의 시원한 지압맛사지를 받는 중.
홍양에게는 아무리 감사를 해도 모자란게, 이렇게 중간중간 물심성의껏 도와주는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본인이 달리지 못하더라도 팀 중에서 가장 밝은 웃음으로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실질적인 정신적 지주나 마찬가지.

지금도 그 감사의 표현을 만족스럽게 하지 못해서 안타깝다. 날잡아서 홍양 집에 쳐들어가 맛있는거 실컷 먹여줄 계획을 하고 있는 중.


선수들에게 지급된 신비의 영약 코카~ 콜라!
콜라 좋아하는 선수들에게 대회 5일째 제공되는 이 콜라는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것.

그런데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별로 땡기는 물건이 아니었다.
콜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게 오히려 좀 아쉽게까지 느껴졌던 사하라에서의 한 때.
나침반님은 이놈을 모래속에 묻어놨다가 다음 날 새벽에 꺼내마시면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고 하신다. 역시 경험자.


내가 최대한 체력 회복하려고 자고 자고 또 뒹굴며 자는 동안
마음껏 휴식을 즐긴 사람들은 텐트 뒤쪽의 모래언덕에서 장난치며 놀았다.
사막의 모래는 한국에서는 경험하기도 힘들 정도로 아주 곱고 미세해서 신발 속에 들어가도 어느 순간 스스륵 다 빠져나가 버릴 정도.
거기다 적당히 따뜻하지, 몸에 묻지도 않지, 뒹굴며 놀기엔 그만인 녀석.


행자분은 아주 신이 났다.
저 다리통 색깔을 보면 알겠지만, 저렇게 탄 살갗은 1년이 넘어도 제 색깔을 못찾더라.
선크림 없이 태웠으면 돌판에 구워진 듯한 고통에 움직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선크림 무지하게 바르니까 저렇게 곱게 타기만 하고 아프진 않았다.

나는 긴팔 러닝복에 머리 끝까지 버프를 뒤집어써서 얼굴은 멀쩡했다.
그냥 고글만 썼다간 눈 주변만 새하얗게 변한 몰골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한국서도 1년내내 고글만 끼고 다녀야 했겠지.



내일은 대회의 최대 난코스 42.195km.
제한시간 안에 들어와야 하고, 5일동안의 강행군으로 인해 엉망이 된 몸을 추스려야 한다.

하지만 오늘 휴식을 취하면서 확신할 수 있었던 것.
이제 결코 탈락은 없다.

Long Day의 밤을 보내면서 드디어 조그만 결의같은 것이 내 마음속에 생겨났다.
사하라의 밤 속을 달린 내가 겨우 42km 정도로 탈락할 리 없다고.
더구나 내일만 넘기면 마지막 하루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깝게스리 탈락따위 할까보냐 싶은 마음이다.


드디어 사하라 레이스의 백미 'Long Day'의 첫 날이 밝았다.
Long Day란 이틀간 야영지 없이 72km 를 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말하면 제한시간이 넉넉한 편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편할 수도 있지만
나같은 저질 체력의 소유자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찔해 지는 날이기도 하다.

밤엔 달리고 싶으면 달리던가 준비된 간이 펜트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달리던가 마음대로다.
어느 정도 체력이 남은 선수들은 대부분 밤늦게까지 달려서 하룻만에 야영지에 도착한 후, 긴 휴식을 취하는게 정석.

다음 날이 실질적으로는 가장 어려운 42.195km 구간이기 때문에 Long Day 마지막날에 체력을 회복하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오늘은 스텝들로서도 거의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선수들 상태를 일일이 따라다니며 체크해야 하는 날이라
긴장감이 감돌지 않을 리가 없다.

밤중엔 특히 위험하기 때문에 모든 차량과 서치라이트, 그리고 방향안내용 레이저 빔까지 쏴 대면서 선수의 안전을 책임진다.


3일간의 레이스를 마치고 일어나는 기분은
입대 하루 전에 쫑파티로 진탕 퍼마시고 눈을 떠 지끈거리는 머리를 들고 입영열차에 오르는 기분이랄까.
만신창이가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몸이 지저분하다거나, 머리를 못감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3일동안 섭씨 50도가 넘는 하늘 아래서 10kg이 넘는 짐을 지고 101km를 달려온 사람의 심정이 어떻겠나.
알맨님의 얼굴이 그 모든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마디 사진이다.


아침에 아시아 에이전트 제임스 장씨에게 재차 물어봤지만 코스 거리가 단축되는 일은 없다고 못을 박으신다.
21년간 단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고.

그 말의 무게가 내 고개를 숙이게 만들 정도로 무겁다.
오늘 정말로 나는 사하라에서 비참한 탈락의 맛을 봐야 하는 건가.


원래 275 정도의 신발을 신지만, 레이스중엔 발이 붓는다고 해서 일부러 285짜리를 신고 왔는데
이젠 발이 신발에 잘 들어가지도 않는다.
양쪽 새끼발까락은 스치기만 해도 면도칼로 베인 것 같은 짜릿함이 전해온다. 물집이 너무 많이 잡혔다 터져서 이젠 따로 진물을 뺄 필요도 없다.
그냥 알아서 양말을 적셔주기 때문에 별다른 응급 처치 방법도 없다. 뒷굼치에는 이슬같은 물집이 수십 개씩 동글동글 맺혀있다.

인생 포기한 심정으로 누워있으니 그래도 슈가님과 알맨님은 좋다고 사진 찍는다.
나도 좀 긍정적으로 살아야 할까?


버프 속의 얼굴은 잔뜩 찡그려 있는데
멤버들이 알아서들 재밌는 장면을 연출해 준다.
어찌보면 등산용 스틱이 전사한 용사들 앞에 장렬히 꽂혀 있는 위령비 같은 느낌이네.

출발 시간이 11시로 지연되어서 계속 저렇게 누워있었다.


3일간 탈락자가 100명을 넘었다.
이 3일동안만 역대 모든 레이스 중 가장 많은 탈락자 수를 기록한 것이다.

지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출발선 앞에 서니 대회 위원장인 패트릭 바우어가 지프 위에서 뭔가 말한다.
참가자들이 술렁거린다.

탈락자가 너무 많고, 날씨가 더워서 선수들의 건강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과 내일 72km 구간을 57km로 줄인다는 것이다.

15km가 줄었다.
나는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꽤나 망설였던걸로 기억한다.

이제 정말 빼도박도 못하기 때문에.
거리까지 줄여줬는데 주저앉아서 탈락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침반님은 오히려 거리가 줄어서 아쉽다고 하신다. 충분히 완주할 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같은 저질체력 민간인을 위해 본인의 아쉬움은 흔쾌히 접기로 하셔서 내가 덜 미안하다?


제임스 장씨가 멋적어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다시 몸을 추스린다.
사하라에서 단 하루밖에 없는 야간 레이스다. 이제 내게 남은 건 즐기는 마음 뿐이다.


애초에 사하라 레이스란게 마음 단단히 먹고 나가는 경기긴 하지만
특히 오늘의 Long Day는 여러가지 의미로 선수들을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간식 섭취, 페이스 조절, 남은 물의 적절한 분배 등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3일간의 레이스에서 느꼈던 신선함, 짜증, 괴로움 등이 오히려 마음 속에선 사그라들고
시험지를 앞에 둔 수험생처럼 신중하게 시간과 거리계산을 하며 체력을 아낀다.

조금 더 진지해지는 것이다.


대충 10km 간격으로 CP가 있다는게 몸에 각인되어 있을 시기가 되었다.
예전처럼 그놈의 10km라는게 언제 내 앞에 나타나는지 전전긍긍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초보에서 탈피한 느낌.
이젠 대충 남은 물의 양과 걸어온 시간만 계산해도 대충 어디쯤에서 CP가 나타날 것인지 예상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 여유로움도 12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 못한다.
숨을 곳 없는 태양빛과 미친듯이 다리를 괴롭히는 복사열이 몸을 가마솥에 넣고 쪄 버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중간중간 예고없이 찾아오는 매서운 모래폭풍.
오늘은 어제처럼 무시무시한 산이 버티고 있진 않지만 반대로 낮은 모래언덕이 수십 km에 걸쳐 분포해 있다.
몇 미터 되지 않는 작은 모래언덕이지만 워낙 입자가 고와서 밟을때 마다 발목 깊숙히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그런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문득 숙였던 고개를 들어 앞을 내다보면 어디가 언덕의 끝인지 모르겠다.
앞에 보이는 언덕을 넘으면 예전처럼 삭막한 자갈밭이겠지 싶지만 그 위로 올라가 보면 또 펼쳐진건 모래언덕.
보이지 않는 모래언덕의 끝을 기대하며 일단 눈 앞의 언덕이라고 넘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보면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지.


스텝들이나 사진사들도 이런 환경이 달갑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지프는 모래에 묻혀버리지. DSLR에선 모래가 덜그럭거리지.
심각한 사고가 날 수 있는 Long Day이기 때문에 모든 스텝들이 끊임없이 코스를 순찰하며 선수들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야말로 천 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한마음이 되어 사막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삽질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ㅡㅡ;


울트라맨이 되어버린 나침반님은 그래도 우리 중에선 제일 사하라를 즐기며 달리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다시 가게되면 좀 더 즐길 자신이 있거든.
일행중 유일하게 2년 연속으로 참가하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나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한다.


CP에서 신발 벗는건 이제 그만하고 싶다.
벗을때나 신을때나 너무 아파서 오히려 체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모든 선수들의 체력은 한계에 달했고, 한번 주저앉아서 일어나지 못하는 선수도 많다.

하지만 오늘은 하위 선수들이 재미있는 구경을 했는데
Long Day의 특성상 선수들의 실력차에 따라 거리가 너무 벌어지기 때문에 특별히 하위 선수들을 먼저 출발시키고 선두권 선수들은 3시간 늦게 출발시킨 것.
그래서 한창 빌빌거리며 걷다 보면 눈 깜짝하는  속도로 무시무시하게 앞으로 달려가는 상위권 선수들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구경할 수 있다.


오후 4시가 넘어서 본격적으로 Long Day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할 때쯤이면 기온도 적당히 내려간다.
물론 적당히란 말은 사하라 사막에서 적당하단 이야기.

유난히 모래언덕이 많은 오늘 코스는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오히려 다리엔 부담이 덜 가서 좋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날카로운 자갈이 많은 단단한 평지는 발바닥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고통스러운데
모래언덕은 비록 발걸음이 힘들긴 하지만 발바닥과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아서 오랜 시간 걸을 수 있다.

일본인 연예인 아이나씨와 내가 걷는 속도가 비슷한지 계속 앞뒤로 지나쳐가는데, 이젠 무덤덤하다. 말도 안건다.
5시쯤 되니 몸의 영양소가 완전히 고갈됐는지 걸으면서도 잠이 오고 눈이 스르르 감긴다. ㅡㅡ;
머리는 멀쩡해서 앞으로 걸어가고 싶은데 뭔가 세상만사가 귀찮아 지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희한한 느낌.
스스로도 몸의 놀라운 반응에 신기해 하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파워 젤을 입에 짜 넣는다.
5분만 있으면 웃기게도 정신이 번쩍 든다.

그 짓을 1시간 간격으로 반복하며 모래언덕을 오르고 내린다.


깊은 한숨이 저절로 내쉬어지던 곳이다. 드디어 3시간이 넘는 오르락 내리락 모래언덕이 끝을 보인다.
이런 사진조각 따위로 느낄 수는 없지만, 사하라 사막은 정말 한 순간 한 순간이 볼거리로 가득하다.
아득한 시간이 압축되어 건조보관 되어있는 사막이라는 자연은 인간의 희노애락으로 설명하기 힘든 어색한 감동을 주곤 한다.


모래언덕을 빠져나오자 갈라진 땅이 나온다.
주위에 가끔 삼엽충의 화석이 보이기도 하는 이 곳은 원래 수억년 전에 바다였던 곳.
바다에서 강과 울창한 숲으로 뒤덮힌 낙원으로, 그리고 또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죽음의 땅으로 변해온 이곳의 역사에
내가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경외감 비슷한게 들기도 한다. 삼엽충과 나는 친구먹은건가?


드디어 이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야간 레이스의 시작이 다가온다.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할 때 도착한 CP에서는 형광봉을 나눠준다. 똑 부러트리면 빛이 나는 가요프로그램의 단골 아이템.
이걸 베낭에 끼우고 달려야 한다. 앞뒤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또 조난당했을시 찾기 쉽도록.
그 외에도 비상용 구명 폭죽도 하나 가지고 있다. 길을 잃어버렸을 때 터트리면 사방팔방에서 저글링 개떼밀려들듯이 스텝들이 찾아줄것이다.

물론 이건 돈이 좀 나가는 물건이라 이걸 반환하지 않으면 완주 기념품을 주지 않는단다. 길을 잘 찾아가서 이놈을 살려가야지.
사막에서는 해가 지는 순간 기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사막을 달리는 경험은 신선하다.
3일 전까지 사막에 와 본적도 없는 인간이 이젠 많이 컸구나.


어지간히 좋은 카메라와 삼각대 장비를 갖추지 않는 한 선수가 야간 레이스 사진을 찍는것은 불가능하다.
인위적인 불빛이 단 한조각도 없는 망망대지에서 해가 지는 순간은
20년동안 세계의 호러영화란 호러영화는 다 보고 다녔던 나로서도 등골이 오싹한 순간이다.
한낮의 매서운 햇빛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눈이 어둠을 만나자 장님으로 돌변한다.
머리의 간이 헤드렌턴을 켜봤지만 1m 앞의 길바닥조차 게슴츠레하게 보일 정도의 도움밖에 되지 않는다.

주위에 선수나 스텝이나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바람소리만 들리는 광야의 한 복판에서 장님이 서 있다고 생각해보라.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내 앞의 세상은 똑같은 모습이다. 그건 정말 공포였다.


플래시를 터트려도 보이는 건 간신히 이 정도 거리다.
그리고 도무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야광봉 하나 끼워놓은 표지'가 코스 안내의 전부다.
원래대로라면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서 길을 찾아야 한다지만, 지도가 제대로 보일리나 있나?

내가 길을 몰라서 망설이고 있자 뒤에서 따라오던 선수도 '어디로 가야 하냐'고 나한테 묻는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깎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모래언덕 아래를 가리키며 '이쪽'이라고 말했다.
사하라 레이스 특성상 급격한 방향 변화가 없다는 가정하에 그렇게 가리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외국 선수가 망설이자 나는 그냥 낭떠러지에서 구르듯 엉덩이를 거의 언덕에 붙인 채로 서벅서벅 걸어 내려갔다.
모래는 발목을 넘어 무릎 가까이까지 밀려오지만 덕분에 절벽같은 언덕을 내려갈 때도 다리에 부담이 가진 않았다.
언덕을 내려갔으니 다시 올라가야겠지. 거의 맹목적으로 언덕을 올라가 보니 마침내 저 멀리 평지에 사람들의 흔적이 보인다.


공포스럽던 어둠에 눈이 익고, 달이 뜨자 세상이 밝아진다.
그땐 몰랐지만 Long Day 밤은 일부러 보름달 즈음에 날짜를 잡는단다.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면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완전한 고요의 세상이 다가온다.

수평선의 대지에서 소리 한 점 없는 순간을 경험해 본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무채색의 대지에서 명암만으로 이루어진 달빛에 비치는 세계를 본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하늘을 가득 덮은 별과 고고한 보름달에 비치는 밤의 사막은 인간이 왜 자연을 경외시하게 되었는가를 실감하게 해 준다.

자꾸 걷다가 서다가를 반복한다. 지쳐서가 아니고 걸음을 떼는것이 아까워서.
벅차는 행복감에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저 거칠게 행복하다.
걷다가 노래도 불러본다. 저절로 흥이 날 정도로 과도하게 행복하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미술품을 이 밤, 이 곳에서 나 혼자 독점하고 있다는 뿌듯함은
거기 가 보지 않으면 어떤 글이나 사진으로도 느낄 수 없는 최고의 보물.


달이 뜨고나서는 무서움도 사라졌지만 스텝들은 안전을 위해 오만 짓을 다 저지르고 있다.
강력한 레이저를 쏴서 방향을 가르쳐 준다. 상당히 멀리까지 뻗기 때문에 수 km 밖에서도 저걸 보고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자정이 넘자 코스 옆으로 차량들이 정기적으로 왔다갔다 한다. 스텝들이나 선수들이나 낮보다 더 흥분한 것 같다.


마지막 CP 근처에서 피터를 만났다. 야영지까지 7km 쯤 남았는데 함께 가기로 했다.
마지막 CP에서 의료진들에게 내 발가락과 뒷굼치를 보여줬는데, 한동안 바라보다가 '여기선 응급치료만 해 줄테니 내일 야영지 의료센터에 가'라고 말해준다.

피터와 터벅터벅 걸으며 세상사 이야기를 한다. 이녀석 나보다 많이 젊더군. 22살이던가 23살이던가.
이번 마라톤이 끝나면 그대로 모로코를 여행 할거란다. 그를 위해 스와힐리어도 배워놨다고 한다.
조금 수줍음을 타긴 하지만 자기가 정한 인생에는 거리낌없이 나가는 피터 녀석 굉장히 존경스럽다.

확실히 나는 야행성인지 뭉툭해진 느낌의 다리도 아랑곳없이
사하라 레이스 시작 후 처음으로 즐거운 기분이 되어 거침없이 걸어 Long Day를 끝마쳤다.


야영지 앞에선 마지막 한 선수가 들어올 때까지 스텝들이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와 함께 이름도 모르는 선수들을 위해 골인점 앞에서 묵묵히 응원을 위해 기다리는 선수들도 있다.
차분하지만 화려한 성취감으로 가득 찬 멋진 밤이다.

물론 다른 한국팀은 옛저녁에 들어와서 잘 주무시고 있다.
결국 난 Long Day도 통과해 버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