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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5.09.04  엄니와 여행 - 시코쿠무라 3편 6
  5. 2015.08.27  엄니와 여행 - 시코쿠무라 2편 4
  6. 2015.08.26  엄니와 여행 - 시코쿠무라 1편 6

 

조식을 간단히 챙겨먹고 아침 일찍 항구로 나옵니다. 9시도 되지 않았는데 햇살이 정겨울 정도로 징글징글하네요.

어제는 에어콘 켜 놓고 저녁시간을 편안하게 쉬었기 때문에 엄니도 체력이 빵빵합니다.

 

타카마츠에서 가장 현대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하버 포트 부근입니다.

사실 타카마츠역, 버스 터미널이 항구 근처에 모두 모여있어서 실질적인 교통의 중심지죠.

타카마츠에서 가장 높은 포트 타워는 작긴 하지만 전망대도 있어서 날씨가 좋은 오늘은 한 번 올라가 볼만 할 듯.

 

 

 

나오시마행 페리 승선권을 구입하러 들어갔습니다.

여기도 한국 관광객이 꽤 오는지 한글로 적당히 안내문이 적혀있네요.

엄니는 배멀미를 많이 하는 편이라 이거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십니다.

저도 배멀미 엄청 하지만 오늘은 바람도 없어서 바다도 조용하고, 30분 정도만 가면 되니 별 문제는 없을 듯.

 

아침 일찍 도착했지만 매표소에는 사람이 꽤나 많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오시마가 유명해진 이후로 관광객이 많이 늘었겠죠.

 

 

 

나오시마가 유명하긴 하지만 세토 내해쪽엔 사람이 살고 있는 작은 섬들이 많기 때문에

그 곳 말고도 다른 곳으로 가는 페리선이 꽤 많습니다.

 

출발 20분쯤 전에 배가 들어오길래 저게 우리가 탈 배인가 싶었지만 안내방송을 들어보니 다른 곳으로 가는 배더군요.

날씨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아서 사진 찍는 재미가 있네요. 더위 때문에 바깥을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하겠지만.

 

 

 

나오시마행 페리는 금새 손님들로 가득 찼습니다. 한국인 관광객도 몇몇 보이는군요.

타카마츠에 오고 나서 처음 보는 한국인입니다. 이제까지는 계속 엇갈렸던 듯?

 

별로 흔들림없이 무난하게 주행을 해서 걱정하시던 엄니도 편안하게 앉아 가실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거리인데다가 섬을 몇 개 지나쳐 가기 때문에 눈이 심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을 듯이 보이는 섬에도 등대 하나가 멋진 포인트를 만들어 주더군요.

 

 

 

선착장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등대는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붉은 기둥이 꽤나 예술적으로 서 있습니다.

예술의 섬으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도착할 때부터 뭔가 있어보이는 느낌이 드네요. 선입견의 효과일런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도 외지 부흥의 가장 성공적인 표본으로 꼽히고 있는 이곳 나오시마(直島)는

1990년 까지만 해도 동과 금등의 철광석이 풍부해서 그럭저럭 명맥을 유지하는 평범한 섬이었습니다.

환경문제가 심각해져 위기감이 더해질 무렵 베넷세 코퍼레이션이 계획한 나오시마 문화마을이라는 프로젝트가 1989년 개최되고

그것을 계기로 젊은 예술가들이 몰려들어와 쓰러져 가던 옛 가옥이나 버려진 폐가를 예술적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했죠.

 

그 뒤에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가 설계한 지중미술관과 베넷세 하우스가 문을 열고

한국에도 전시회를 열어 유명해진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등의 작가가 참여해 섬 전체를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탄생시켰습니다.

한국보다 세계적으로 더 유명한 이우환 작가의 개인 전시관도 안도 타다오가 설계해서 이 곳에 위치해 있죠.

 

 

 

전착장을 나오면 사람이 바글바글합니다. 다들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나 스쿠터를 빌려서 흩어지네요.

저 혼자라면 자전거나 스쿠터로 섬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보겠지만 엄니와 함께 있으니 버스를 타기로 합니다.

 

느긋하게 나오다 보니 첫 버스는 만석이 되어버려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죠. 서두를 거 없습니다.

선착장 옆에는 빠르게도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하나가 전시되어 있어서 구경하러 갔습니다.

 

기괴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쿠사마 씨의 작품에 엄니도 강한 인상을 받으시더군요.

산과 바다의 푸른 색에 둘러싸여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빨간 호박입니다.

 

 

 

좀처럼 기념사진을 찍지 않는 엄니도 한 장 찍어보라고 하시네요.

찍고 나니 왜 이렇게 살쪘냐고 푸념을 하시긴 했지만.

 

쿠사마 야요이는 어릴 적부터 통합실조증, 한국의 병명으로는 정신분열증에 들어가는 질병을 앓았습니다.

아버지에게 폭력과 학대를 당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편집증적 강박증으로도 고생을 했죠.

그래서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편집증적인 색채 대비와 연속적인 물방울 패턴 등 강박증 환자의 증세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습니다.

 

자신의 작품 자체가 끊임없는 치료 행위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만큼 일반인들의 눈으로 보면 뭔가 기괴한 느낌이 들 수박에 없네요.

 

 

 

호박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햇살이 좋던 날이라 실내도 바깥과 비슷한 물방울 패턴이 생성되더군요.

엄니는 한동안 이곳저곳을 쳐다보더니 '제정신인 사람이 만드는 작품인 것 같지는 않다'고 하시네요.

 

현대 설치예술은 그야말로 기술적 숙련도와 관계없이 작가의 심상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다 보니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내면의 뚜렷한 흔적을 가지는 사람이 더욱 선명하게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겠지요.

 

 

 

나오시마가 안도 타다오 혼자만의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만

섬 안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이다 보니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네요.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 대한 설명을 여기서 늘어놓기에는 여백이 적어서 생략하기로 하고.

가장 인공적인 소재인 콘크리트를 이용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작가라고만 적어봅니다.

주차장에서도 그의 건축 철학이 드러나는군요.

 

 

 

서서 가기는 싫어 첫 버스를 보내고 두 번째 버스에 올라탑니다.

나오시마가 단순히 지중미술관 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와 더불어 해안가 도로까지 참 아름다운 곳이지만

당일치기를 버스로 이동하며 구경하기에는 무리가 많아서, 보통 제대로 보려면 숙소를 잡고 자전거나 스쿠터를 이용하는 게 낫습니다.

 

저도 이곳에서 1박을 했다면 엄니를 스쿠터 뒤에 태우고 이곳저곳을 누볐을 테지만

이곳 말고도 계획해놓은 여행코스가 많은 터라 이번엔 그냥 지중미술관 쪽만 둘러보기로 합니다.

 

 

 

지중미술관으로 가는 도중에 보이는 마을 모습도 정말 일반적인 어촌과는 다르다는게 한 눈에 느껴지네요.

좁은 골목길 여기저기에도 작가들의 조그만 센스가 숨어있습니다.

 

미국의 한 예술가는 이 마을의 신사까지 예술작품으로 변형시켜서 일본인이나 외국인 모두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섬 전체의 분위기가 문화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로 인해 이런 모습으로 탈바꿈했다는게 쉽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는데, 민관협력이 올바르게 성사되면 가질 수 있는 힘의 크기가 이런 것이라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한국에서 이런 협력관계를 바라는 것은 시기상조일까요.

 

 

 

버스를 타고 지중미술관으로 가는 도중 슬쩍 지나간 쿠사마 야요이의 또 다른 유명 작품입니다.

사람들이 많아서 약간 아쉬웠지만 바다 바로 앞에 세워놓은 호박의 강렬한 이미지 만큼은 쉽게 와 닿네요.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 곳을 들를 기회가 있으니 제대로 된 감상은 다음에 하기로 했습니다.

 

 

 

지중미술관은 일단 산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매표소와 미술관이 전혀 다른 장소에 있다는 것이죠.

 

미술관에는 엔디 워홀을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중이고, 미술관 건물을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는데

그러다보니 미술관이라는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화 되어 있기 때문에 그 통일성을 위해서 티켓센터를 멀리 떨어트려 놓았습니다.

 

안쪽은 매우 시원해서 음료수를 좀 마시며 땀을 식혔습니다.

매표소 직원은 매우 친절해서 미술관으로 가는 길과 함께 좋은 관람 하시라는 인사도 받았습니다.

 

미술관 안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일단 여기서라도 기념사진을 한 장 남겼네요.

지중미술관 근처에는 베넷세 하우스라는 미술관 겸 호텔도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 투숙하면 일반인의 입장이 금지된 저녁시간 이후에도 베넷세 하우스 내부의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려한 해안가와 그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호텔이라 참 군침이 돕니다만

가장 저렴한 객실도 30만원을 호가하며, 제대로 예술적인 1박을 원한다면 살떨릴 정도로 무서운 가격이라 이번엔 포기했죠.

 

 

 

지중미술관에서도 지겨울 정도로 보게 될 안도 타다오의 아이덴티티 콘크리트 블럭.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블럭들은 밀도가 높고 굉장히 정밀하게 가공되어 있어

 

일반적인 콘트리트와는 다르게 상당히 매끈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타공된 구멍도 완벽한 수치로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죠.

당시 이 정도 퀄리티의 블럭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일본밖에 없었기에 이쪽에서 안도 타다오라는 작가의 이름은 더욱 각별한 취급을 받습니다.

 

 

 

미술관까지는 나즈막한 언덕을 5분 정도 오르면 됩니다만

여름의 폭염 속에서 예술의 섬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꽃밭이 그 짧은 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도로 안쪽에는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 숲속 산책길까지 만들어져 있죠.

 

제가 사진을 막 찍고 있으니 구경은 미술관 가서 하자며 엄니가 길을 재촉하네요.

날씨가 워낙 더우니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서둘러 따라가면서도 엄니의 여행 추억을 위해 뒷모습이지만 화사한 꽃과 함께 찍어봅니다.

가을 정도만 되어도 이곳 나오시마는 2~3박쯤도 가볍게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풍경 하나하나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해안가에는 조용히 자기주장중인 예술작품이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고

마을 안에는 온갖 재기넘치는 아트하우스가 민가와 이질감 없이 숨어 있고

미술관과 결합한 호텔 베넷세 하우스는 기품넘치는 디자인과 함께 뿌듯함을 전해줄 수 있으니 말이죠.

젊은 사람들이라면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에 묵으면서 소박한 매력을 느낄 수도 있고.

 

오히려 이런 폭염 속에 방문했기 때문에 당일치기로 맛만 보고 떠나는 게 덜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느 정도의 조경작업을 거쳤겠지만 인공미보다는 자연미가 더 돋보이는 길입니다.

이런 섬이 80년대까지는 광물 제련소로 인해 공해가 꽤나 심각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네요.

 

실제로 현재 일본에서 금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이 이곳 나오시마입니다.

제련소는 현재로 가동중이지만 관광객이 찾지 않는 섬 북부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요즘엔 공해관리를 더욱 철저하게 하는 편이죠.

덕분에 지금의 나오시마는 남부쪽에 예술이 넘쳐나고 북부에는 금 제련이 활달하게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섬이 되었습니다.

 

 

 

빨리 미술관에 들어가자는 엄니의 외침에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전원을 끄며 엄니를 따라갔습니다.

미술관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감상을 전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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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를 구경하고 상점가를 빠져나오는데 아이 모자가 걸려있네요.

일부러 놓고 간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아깝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사람이 적어서 상점가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인데, 한 할머니가 기념품 사라고 아주 적극적으로 저를 붙잡더군요.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같은 것이라고 하는데 제가 일본에서 겪어본 것 중 가장 강력한 호객행위였습니다.

적당히 괜찮다고 하고 가려고 해도 끈질기게 말을 걸고 사라고 하는 것 보니 왠지 야시마에 남은 경건한 느낌이 사라지는 듯 하네요.

 

 

 

참 이상하게 생긴 나무도 찍어가면서 왔던 길을 돌아갑니다.

두 나무가 합쳐진 것인지 위쪽만 모종의 이유로 고사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야시마 산은 절 이외에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책로가 있어서 한 바퀴 돌면 한 시간은 넘게 걸립니다만

오전에 이미 시코쿠무라를 다녀오는 바람에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라 더 이상 엄니를 혹사시킬 수가 없습니다.

 

 

 

전망대를 가려면 절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돌아갈 때도 다시 절을 한 번 마주할 수 있습니다.

엄니가 사진 찍는 걸 전혀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뒷모습이라도 몇 장 담을 수 밖에 없네요.

 

훗날 엄니가 한국에 돌아와서 저보고 '사진 찍는다고 이리저리 옮겨다니지 말고 잘 따라다녀라'라는 말을 하신 걸 보면

엄니는 사진에는 정말 관심이 없는가 봅니다. 보통은 여행가면 기념사진 찍는 게 남는 거라고 생각할 텐데 말이죠.

 

 

 

본당 옆의 너구리 두 마리도 한번 더 찍어줍니다.

 

이런 데 세워져 있는 조각상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남자는 수컷의 거시기, 여자는 암컷의 젖탱이를 만지면 가정평화(?)와 안산을 얻는다는 말이 있어서

잘 보면 그 두 부위만 맨질맨질합니다. 사람 피부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아침부터 30도가 넘었고 최고 기온이 37도에 다다를 만큼 기록적인 폭염이었기에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후의 관광을 더 계획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제 욕심으로 엄니를 데리고 이곳저곳 구경시켜 드리다가 엄니가 체력 문제로 뻗어버린 경험이 있기에

아무리 관광이라 해도 무조건 체력 우선으로 돌아다니려고 작정을 하고 왔으니까요.

 

정류소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잠깐 본 우물입니다. 지금은 온통 녹색으로 가득차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피투성이 우물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습니다.

산 정상에 이 정도 우물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예전 겐페이 합전 당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서 우물 전체가 시뻘겋게 변했다는 설화가 남아있죠.

 

현재 보이는 녹색을 전부 붉은색으로 바꾸면 예전의 그 모습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에어콘을 빵빵하게 켜 놨지만 직사광선 때문에 땀이 흘러내릴 정도의 버스를 타고 역으로 내려왔습니다.

나름 타카마츠에서는 유명한 관광지이긴 한데 역은 정말 아담하네요.

 

그래도 꽤나 귀여운 모양을 하고 있어서 한 장 담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잘 보면 엄니도 보이네요.

 

 

 

어제 슈퍼에서 산 간식거리와 생수 등을 섭취하면서 땀을 식힙니다.

이 정도 더위에서는 괜히 식욕까지 사라져 버리니 곤란하지만, 엄니와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배를 채울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졌으니 괜찮습니다.

 

역이 참 아담하다 싶었는데 전철이 들어올 때 울리는 벨마저도 요즘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더군요.

한국과 일본의 공공시설 관리의 차이점이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은 낡았다 싶으면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일본은 낡은 것은 그대로 놔 두고 깨끗하게 유지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죠.

 

그래서 일본의 역들은 한국보다 낡았다 싶어도 더럽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야시마에서 돌아오는 전철은 숙소 앞까지 가지는 않아서 조금 걸어야 합니다.

갈아탄다고 해도 숙소 바로 앞까지 오는 것은 아니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꽤나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그럴 바엔 그냥 산책하는 겸 조금 걷자고 생각하고 지붕 있는 상점가 밑으로 이동했습니다.

 

중간에 조금 길을 잘못들어서 15분 정도 딴 길로 샜었는데, 엄니가 우리들 이국 땅에서 미아 만들기 싫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하시네요.

 

 

 

역 앞에 백화점이 있어서 들어가 볼까 물어봤지만 엄니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보통 일본에 오면 쇼핑도 좀 할 법한테 도통 관심이 없네요. 그거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나중에 돈을 좀 더 많이 벌어서 편안히 여행을 시켜드릴 정도가 되면 좀 더 팍팍 사드리고 싶긴 한데

엄니 성격이 어중간한 거 살 바엔 최고로 좋은 거 사자는 주의라서

옷도 우연히 마음에 드는 거 찾으면 가격표에 붙은 자리수가 우주의 나이만큼 치솟을 때도 있거든요. 조금 과장이지만.

 

 

 

이틀 뒤에 우동투어를 예약해 놨기 때문에 지금 딱히 우동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뭘 먹어볼까 고민하는데 엄니가 밥은 그냥 가볍게 떼우고 호텔 돌아가서 차 마시면서 간식 좀 먹자고 하시네요.

 

그래서 서민들의 간편식인 요시노야 들어가서 가볍게 한 그릇 합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해서 저는 일본 가면 별미로 한 그릇 정도는 먹고 옵니다만

한국의 밥상에 익숙한 엄니는 이런 걸 식사라고 할 수 있나 하는 느낌이시겠죠.

 

 

 

그래서 엄니께는 원기 보충을 위해 장어덮밥 세트를 주문해 드렸습니다.

땀을 많이 흘렸으니 기운을 차리시라고 주문해 드렸는데, 역시 저렴한 요시노야 답게 올라간 장터 상태가 그닥이네요.

제대로 된 장어를 먹으면 낫긴 하지만 여기서 과식하기 보다는 호텔서 차 마시는게 더 좋을 것 같으니 이 정도로 참아야겠죠.

 

장어 자체는 그럭저럭 맛있는데 이것만으로 밥 먹기엔 좀 양이 적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미소된장과 반찬도 함께 주문해 드렸네요.

 

 

 

돌아가는 길의 아케이드는 그나마 직사광선을 막아주는 지붕 때문에 살 만 했습니다.

중간중간 괜찮은 옷이 보이는 가게에도 들어가 보고 하면서 천천히 걸어갔죠.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습니다만 오늘 예정은 이걸로 끝입니다.

 

내일은 꽤나 힘들게 돌아다녀야 하니 오늘 푹 쉬어주는것도 좋을 법 해서.

 

아케이드의 지붕엔 중간중간 이렇게 도시의 명소들을 그려놓았네요. 참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지난 포스팅을 보셨다면 사진에서 아주 조그마하게 구경할 수 있었을 리츠린 공원의 붉은 다리네요.

 

 

 

여기 그려놓은 것들은 엄니와 제가 방문하지 않은 곳들이네요.

오른쪽의 선포트 타카마츠는 내일 예술의 섬 나오시마로 가기 위해 들러야 할 항구입니다만

오른쪽의 타마모 성은 방문 계획이 없는 곳입니다.

 

타마모 성은 일본에서도 드물게 바닷가에 세워진 성인데 메이지 시대에 완전히 박살나 버리고 지금은 성터만 남아있죠.

현재는 타마모 공원이라고 아주 일부분만 재현해 놓은 상태입니다. 산책하긴 좋지만 리츠린 공원을 보고 나서 저기 가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현재 천수각을 재현하기 위해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제대로 완성이 되면 바닷가의 성이라는 특징상 꽤나 관광객이 많이 찾을 것 같네요.

 

전 가능하면 오리지날의 향기를 간직한 곳이 좋아서 크게 관심은 없습니다.

 

 

 

오늘 방문했던 야시마 그림도 찾을 수 있네요.

앞서 언급했던 헤이케 가문과 미나모토 가문의 전투가 벌어진 야시마에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전투에서 불리하던 헤이케 가문이 바다에 배를 띄우고 봉 위에 부채를 꽂아서 미나모토군을 조롱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명사수가 많은 미나모토군이라지만 이렇게 바다 위의 부채를 맞출 수는 없다'는 의미로 새워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이치 무네타카(与一宗高)라는 말단 장군이 실제로 바다에 말을 타고 뛰어들어가 배 위의 부채를 맞춰버렸기 때문에

헤이케 병사들의 사기는 크게 꺾이고 다음 전투에서 대패하였다는 에피소드죠.

 

헤이케와 미나모토의 싸움은 일본에서 전국시대 다음으로 인기있는 역사물이기도 하고

드라마화도 여러번 이루어져서 한국에서도 나름 팬이 있는 편이지만

이런 역사는 뭐, 저처럼 일본쪽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굳이 기억하고 있을 필요까지는 없겠죠. 그냥 여행의 재미삼아 떠올려 봤습니다.

 

호텔에 들어가니 5시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폭염에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는지

엄니는 샤워 후 차를 좀 마시고 손가락도 꼼짝하기 싫다고 침대에 누워버리셨네요.

밤에 입이 좀 심심할 것 같아서 제가 다시 아케이드쪽 큰 슈퍼로 다가서 도시락과 간식거리를 사 왔습니다.

일본쪽 도시락은 그래도 먹을 만 하다며 잘 드시더군요. 저녁까지 편안하게 TV 보면서 엄니에게 화면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보니 KBS 뉴스도 나오는 탓에 중간에 제 해설이 필요없어지긴 했네요.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고 야시마 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길이 상당히 좁은 편이라 커브를 돌 때는 하반신이 조금 쫄깃해 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창가로 보이는 카가와현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자전거 여행 중 참 인상깊었던 곳 중 하나죠.

 

카가와현이 속한 시코쿠(四国)라는 섬은 본토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산지인데다가 작은 섬들이 많아서 한 번에 지나가지는 못하고 이 섬 저 섬을 건너서 들어가야 합니다.

본토와 시코쿠 사이의 조그만 해협은 세토 내해(瀬戸内海)라고 하는데, 해류가 강해서 소용돌이같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죠.

 

 

 

지형상 다리가 상당히 높게 설치되어 있어서 자전거로 올라가기가 참 힘들었던 곳이죠.

하지만 워낙 주변 풍경이 좋아서 중간중간 멈춰서 휴식도 취하고 사진도 찍고 하며 즐겁게 돌았던 곳입니다.

 

본토와 시코쿠를 잇는 세토 대교라는 걸출한 녀석이 있긴 한데

그쪽은 제 루트와는 맞지 않아서 그 전의 조그만 섬들을 거쳐서 시코쿠로 들어갔습니다. 이 곳이 제가 건넜던 가장 큰 다리네요.

이 날은 세토 내해치고는 많이 잔잔했던 편인데, 그래도 해류의 음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여러 개 섬을 억지로 잇는 다리다 보니 코스가 참 귀찮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길이 좁아서 자동차가 옆을 지나갈 때는 좀 긴장도 했지만 워낙 천천히 운전하는 사람들 덕분에 무난히 올라갈 수 있었죠.

하루종일 날씨도 좋고 시골이라 사람들 인심도 좋아서, 가게 할머니한테 귤도 한봉지 얻고 하며 즐겁게 달렸던 추억이 있습니다.

 

저기 도로에서 길에 떨어진 SD 메모리카드를 주워들고 '혹시 기밀 문서라도 들어있는 녀석 아닌가' 하며 두려움에 떨기도 했습니다.

8G 짜리인 줄 알고 일단 가져왔는데, 훗날 한국에 돌아와서 자세히 보니 무려 8M 짜리더군요. 이 녀석이 길거리에 떨어진 지 얼마나 오래 지난 걸까요.

안에는 손상된 파일 몇 개와 사진 파일 몇 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지금도 의문에 가득 찬 메모리카드죠.

 

 

 

그렇게 옛 추억에 잠겨있다 보니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이 어마어마하게 넒더군요.

버스와 승용차 합쳐서 100대는 쉽게 주차할 만한 공간이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야시마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겠죠.

 

원래는 전철역에서 바로 정상까지 올라가는 로프웨이가 있었습니다만 그건 폐쇄되고 이제 버스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정거장에서 바로 보이는 거대한 그림은 일본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겐페이 합전(源平合戦)의 그림이군요.

 

헤이안 후기 권력을 쥐고 있던 헤이케 가문과 그에 맞선 미나모토 가문이 벌인 전쟁으로, 전국시대 후 일본이 통일되기 이전 가장 큰 전투였습니다.

이 야시마가 헤이케 가문의 본거지였는데, 세토 내해를 끼고 강력한 수군을 가지고 있던 헤이케 가문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그 거센 세토 내해를 단박에 건너온 미나모토군이 승리를 거둔 전투가 야시마 전투입니다.

 

이후 가장 유명한 단노우라 해전에서 헤이케군이 전멸하고 어린 천황도 물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함으로서 헤이안 시대는 막을 고하고 가마쿠라 시대로 넘어가게 되죠.

기록상으로는 천황에게 계승된다는 3종의 신기도 단노우라 해전에서 바다에 잠겼지만, 그 중 하나인 검만은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물론 애초에 실존여부 자체가 불확실한 녀석이라 그냥 떠도는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갖긴 힘듭니다만.

 

 

 

엄니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 드리긴 하는데 원래 일본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게 정상입니다.

일단 엄니는 산 정상에 이렇게 훌륭한 사찰이 서 있다는 것 자체를 놀라워 하시네요.

 

이 야시마 절은 88개소 순례길 중에서 84번째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 정도면 1400km의 기나긴 순례길의 막바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세토 내해를 바라보는 순례자들의 기분이 어땠을런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엄니와 함께 갔던 이 당시도 낡은 옷과 삿갓, 짚신과 지팡이 하나를 짚고 올라온 순례자를 볼 수 있었죠.

오직 도보로만 이동하는 이 순례자들은 최소 한 달이상 걸어와서 이 곳에 도착한 것일 테니 상당히 감동적일 듯 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절이나 신사에 봉납하는 걸 참 좋아하는 민족이다 싶습니다.

사실 야시마 산 거의 대부분이 야시마 절의 소유일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부유한 절인데 말이죠.

 

순례자가 이 곳에서 절을 하고 있으니 몇몇 사람들이 웃으며 다가와 인사해 줍니다.

저도 자전거 여행중이었다면 아마 동료를 발견한 기분으로 인사를 했을 것 같네요.

 

요즘엔 프로 순례자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순례자들이 많아지기도 했고, 그들을 위한 지도와 안내서도 현 단위에서 적극적으로 배포하고 있기에

목숨을 건다고 할 만큼 위험했던 예전보다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코스입니다만 그래도 1400km의 산지를 도보로 걸어다닌다는게 결코 쉽지는 않죠.

 

자전거 세계일주를 준비중인 나침반님 정도라면 그냥 잠깐 바람쉬러 다녀오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만

이런 편안한(?) 순례길로는 만족하시기 힘든지 훨씬 더 위험하고 어려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야시마가 원래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기도 하지만 워낙 깔끔하게 정리를 해 놔서

여기가 진짜 산 정상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없진 않아도 순례자나 불교 신자 등 좀 더 경건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꽤나 조용합니다.

마음을 정화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싶었지만 역시나 37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는 그 정신도 오래 가질 않더군요.

 

 

 

무슨 언어인지는 모르겠는데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온다는 사실만큼은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걸려있는 에마의 수가 적은 편이기도 하네요. 유명 관광지에 비하면 접근도 어렵고 많이 찾는 곳도 아니긴 합니다만.

 

 

 

본당 옆에는 조그만 토리이 옆으로 너구리 두 마리가 서 있습니다.

이곳 야시마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 너구리는 일부일처제의 상징으로, 가정평화와 다산을 기원한다고 하는군요.

 

그래서인지 수컷과 암컷의 모습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도 재미있는 볼거리입니다. 암컷은 젖이 있고 수컷은 그... 보시면 알겠죠.

엄니는 수컷을 보더니 '얘는 X은 작은데 X랄이 왜 이리 크지?'라고 순수한 호기심을 보입니다.

이곳의 너구리는 영물이라서 오랜 세월 살아가면 X랄이 점점 커지고

나중엔 그 X랄을 뒤집어쓰고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드렸습니다.

 

 

 

 

암컷의 경우엔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을 잘 표현했더군요.

엄니는 저를 낳을 당시 가정 형편이 안좋았던데다가 몸이 많이 허약해서 젖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나서부터 분유를 먹이고 한 번도 젖을 제대로 물려준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기억은 안나지만 서글픈 추억이네요.

 

 

 

경건한 절 기둥에 화석화된 시체가 박혀있습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요.

나름 포인트는 되는데, 아마도 지금쯤 가 보면 청소해 버렸겠죠.

 

 

 

본당은 1618년에 건립된 녀석으로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관광지로 유명한 사찰과는 달리 좀 더 엄선된(?) 사람들이 찾다 보니 분위기가 상당히 엄숙하네요.

주위에 시끄러운 요소가 전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엄니와 저도 말 한마디 없이 조용하게 살펴보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보물을 모아놓은 곳인데 굳이 엄니는 돈 내고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십니다.

저도 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합니다.

보물관 안에는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추측되는 목조천수관음좌상이 가장 볼만하다고 하는데, 제가 불교에 심취해 있지 않아서.

 

 

 

요즘엔 일반적인 신발로도 순례길을 걷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진짜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신발도 이런 짚신을 신습니다. 저 같으면 평지만 걸어도 발바닥이 큰일나겠는데 말이죠.

 

물론 순례길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엄숙해야 할 필요도 없고, 오직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걷는 것이니

남들과 비교해가며 우위를 따지는 건 이런 순례와 가장 거리가 먼 행동이겠죠.

 

전 발 상태가 안좋은 편이기 때문에 저런 짚신까지는 무리지만, 언젠가 걸어서 88개소 순례길을 완주할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절을 통과하고나면 야시마 전망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실 관광객들에겐 절보다 이 전망대가 더 유명하죠. 날씨 좋을 때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다카마츠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합니다.

 

전망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상당히 넓게 분포되어 있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산책 겸 풍경 즐기기에 참 좋더군요.

물론 그것도 이렇게 덥지 않을 때 한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저 멀리 세토 내해가 보이는군요. 풍경 하나는 장관입니다.

조금 당겨서 보면 한려수도와도 비슷한 풍경을 보여줄 듯 하네요.

 

날씨가 좋긴 한데 한여름이라 대기에 수증기가 많아서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지는 않습니다.

가끔 바람이 불어오면 땀으로 범벅이 된 등줄기가 시원해 지는 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엄니가 도시쪽을 보더니 거기가 이렇게 컸었나 하고 놀라십니다.

그렇게 높은 빌딩이 없어서 인구밀도는 낮습니다만 어쨌든 시코쿠에서 가장 큰 도시니까요.

 

실제로 시코쿠에서 이만한 평야지대에 위치한 도시가 별로 없어서

저도 자전거 여행중 한동안 고생 좀 하다가 간신히 타카마츠에 도착했을 때에는 뭔가 낙원에 도달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대도시처럼 번잡하지도 않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어서 리츠린 공원 등을 둘러보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으니.

이 정도 규모의 도시에 바다와 산을 함께 볼 수 있고 대기오염도도 낮은 곳을 보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일본 내에서 매년 살기좋은 도시 상위권에 꼽히는 이유가 있는 것이겠죠.

 

 

예술성이 느껴지는 돌다리를 건너가 보지만 밑에 물이 없네요.

물이 흐르도록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 아래쪽에 길이 있습니다.

 

원래같으면 이 다리 위에서 사진 찍는 여행객도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오늘은 이곳 전체를 엄니와 제가 전세낸 것이나 다름없으니 한산합니다.

 

 

 

다리 아래쪽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밑에 아주 조금이지만 물이 고여있군요.

우동으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원래 주 생산품은 광석 계열이었기 때문에

시코쿠무라는 전반적으로 돌을 이용해서 주변을 꾸며 놓았습니다.

 

산책에 적합한 곳이지만 한여름엔 나무그늘마저도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정도로 더워서

아무래도 날짜를 잘 정해야 즐거운 관광이 될 것 같네요.

 

 

 

예전에 간장을 담던 옹기들을 이용해 벽을 만들어 놨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구멍을 막아놓은 녀석들도 보이네요.

 

한국의 간장은 메주만을 이용해 만들었지만 일본은 거기에 찐 보리나 밀 등을 넣어 발효균을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염도가 낮고 제작 기간이 비교적 짧아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특징이 있습니다.

일조량이 많고 산지가 많은 지역이라서 간장 만들기에는 딱 좋은 기후였는데, 상당히 큰 규모의 간장공장이 예전부터 성행했다는군요.

 

 

 

간장을 만들던 건물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아주 약간이지만 코를 자극하는 간장 냄새가 남아있더군요.

실제로는 간장만 만들던 곳은 아니고 발효주를 만들기도 했는데

간장이나 술이나 직사광선에 노출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런 건문들은 창문이 상당히 작게 만들어져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덕분에 덥기는 또 무지하게 더워서 엄니는 잠깐만 둘러보시고 바로 나가시네요.

 

 

 

내부는 이런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2m가 넘는 거대한 목욕탕 같은 나무통이 몇 개씩 늘어서 있죠.

 

숙련된 장인이 저 위에 올라가서 잘 저어줘야 간장이든 술이든 만들어 지는데

술도 마찬가지지만 간장도 저 정도 양을 숙성시킬때는 냄새가 엄청나기 때문에 사고가 나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는 무서운 이야기에는 가스에 중독되어 술통에 빠져 죽은 사람을 모른 채 술을 담아 마셨다는 내용이 나오죠.

 

 

 

상당히 낡은 고기잡이배가 앞에 서 있는 구 가옥이 인상적이네요.

 

설명을 읽어보니 토쿠시마의 해안가 절벽 밑 마을에서 생활하던 요시노라는 사람의 집과 배라고 합니다.

토쿠시마 근처의 태평양쪽 연안은 지형이 복잡해서 풍랑이 심한 곳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저렇게 지붕이 있는 고기잡이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볼거리는 참 풍부했지만 그만큼 땀으로 샤워를 하면서 시코쿠무라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이제 다음 코스는 버스를 타고 야시마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인데

아무래도 서둘다가는 체력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엄니와 함께 시코쿠무라 주차장 앞에 서 있는 산뜻한 집으로 들어갑니다.

 

꽤나 멋들어진 의자도 관심을 끌었지만 여기 앉는다고 소모된 체력이 회복하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는 더위네요.

 

 

 

척 봐도 메이지 시대 이후에 불어닥친 서양풍 저택이로군요.

설명을 읽어보니 당시 서양인들이 많이 들어왔던 코베에 서 있던 건물이라 합니다 통째로 옮겨왔군요.

 

시코쿠무라와의 역사적 관련성은 없습니다만, 민속촌 내부에는 더운 날 편히 쉴 만한 곳이 없는 관계로

역사를 보여주는 민속촌의 분위기와 맞춰서 이런 100전의 저택을 배치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휴식처가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주차장 반대편에 유명한 우동집이 있어서 문제가 없죠.

우동현 카가와의 안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와라야(わら家)가 이 곳에 있습니다.

평가가 좋은 우동집이고 분위기도 시코쿠무라와 참 잘 어울리는 고즈넉한 곳인데

지금 밥을 먹을 만한 시간도 아니고, 엄니는 그런 것보다 조금 더 시원한 장소와 음료수를 원하시기 때문에 패스합니다.

 

 

 

산으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씩 오기 때문에 아직 시간은 널널합니다.

부디 에어콘이 작동하고 있기를 바라며 들어가 봅니다.

 

빙수를 팔고 있다는 표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적당히 만끽할 수 있겠네요.

안으로 들어가니 일본 기준으로도 상당히 우아하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아주머니께서 인사를 해 줍니다.

빠르지 않은 적당한 말투와 화사한 미소로 맞이해 주시는데, 이런 외국 저택에 걸맞는 접대 예절을 보여주시는군요.

 

 

 

이 곳의 가구들은 모두 이탈리아제로 약 150년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그런 곳에 땀범벅인 채로 앉아서 살짝 스릴이 느껴집니다.

 

엄니도 분위기는 마음에 드시는지 느긋하게 쉬면서 버스를 기다리자고 합니다.

추울 정도는 아니지만 에어콘이 작동하고 있어서 바깥과 비교하면 천국이네요.

 

음료수나 한 잔 마실까 싶었지만 모처럼 온 곳이니 가볍게 배를 채울 거리도 주문해 보라고 하십니다.

일단 더위를 이기기 위한 빙수 하나와 따뜻한 커피 한 잔, 그리고 에그 토스트를 주문합니다.

 

배가 고프진 않아도 어차피 야시마 산 정상에서 식사까지 마칠 생각은 아니라서 지금 먹어두는 것도 좋겠네요.

 

 

 

아름다운 식기에 비해 빙수는 평범합니다. 사진 찍기에는 참 좋은 딸기색입니다만.

 

일반적으로 일본쪽 빙수는 그냥 얼음을 먹는다는 느낌이 강하고 토핑이 그렇게 충실하지 않죠.

가격도 저렴하고 연유 등이 들어가지 않아서 덥고 목 마를 때 먹으면 팥빙수보다는 좀 더 상쾌합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어릴 때 시장 근처 포장마차에서 장 보고 돌아올 때 떡볶이나 오뎅 등을 참 많이 먹었습니다.

여름엔 빙수도 있었지만, 지금 이 녀석처럼 식용 색소하고 미숫가루만 살짝 뿌렸었죠.

엄니가 그런 건 먹으면 안된다면서 잘 사주지 않았기에 좀처럼 먹을 수 없는 특식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신 떡볶이와 오뎅은 미친듯이 먹었지만.

 

 

 

장소가 장소다보니 가격대가 좀 높은 편이긴 한데 맛은 무난하게 맛있었습니다.

치즈와 함께 반숙 스크램블 에그가 충분히 많이 들어가 있어서 햄과 캐첩의 자극적인 맛을 중화시켜 주더군요.

 

카가와현은 우동이 심히 맛있기도 하고 가격조차도 햄버거 등의 패스트푸트보다 더 저렴해서

헝그리 여행자라면 꽤나 즐겁게 거닐 수 있는 곳이지만 아무래도 영양적으로는 불균형이 좀 심한 편입니다.

특산품이라고 엄니에게 계속 우동만 드릴 수는 없으니 이런 것도 먹어가면서 우아한 느낌을 내 보는 것도 괜찮겠죠.

 

 

 

버스가 오기 10분 전쯤 저택을 나와서 화장실을 해결합니다.

우동집 와라야의 뒷모습도 살짝 담아봤습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우동집 풍경이 참 아늑하네요.

 

가을에 오면 시코쿠무라를 포함해 이 주변 전체가 참으로 아름다운 색을 자랑할 것 같습니다.

자전거 여행 중에도 꽤나 인상이 깊었던 곳이라, 엄니와의 여행 장소로 적당하다 싶어서 다시 오게 되었죠.

 

우동을 좋아는 하셔도 역시 여행중에는 이것저것 다양한 요리를 먹고 싶은 법이니 이 우동집은 다음을 기약하고 버스를 타러 갑니다.

시코쿠무라에는 한 명도 없었지만 의외로 야시마 산 정상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사람이 꽤 앉아있군요.

 

 

날씨가 덥다보니 하늘 하나는 끝내줍니다.

타카마츠가 시코쿠 최대의 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환경 오염이 될 만한 건덕지가 별로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하늘 구경만 제대로 해도 여행 온 보람이 있다고 느끼는 성격이라 마음이 치유되는군요.

 

지중해쪽 하늘이 그렇게 좋다는데 언제 한 번 가 봐야겠네요.

 

 

 

캉캉석(カンカン石)라는 희한한 이름이 붙어있는 돌덩이입니다.

옆에 나뭇가지도 하나 걸려있어서 엄니한테 한번 쳐 보라고 말씀드렸죠.

정식 명칭은 사누키암(巖)이라고 해서 마그마로 인해 생성된 안산암의 일종입니다.

 

나뭇가지로 이 녀석을 두드려 보면 유리처럼 맑고 높은 소리가 납니다.

 

 

 

이곳 시코쿠무라는 가을 정도로 날씨가 선선할 때 오면 매우 훌륭한 산책 코스가 될 것 같네요.

최대한 인공미를 줄이고 자연을 그대로 살려 놓은 코스는 걷는 것만으로 충분한 만족감을 줍니다.

 

물론 저처럼 37도쯤 되는 한여름에 찾아오면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함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나름 추억에 남을 경험이긴 하죠.

 

 

 

산 속에 위치한 민속촌이고 과도한 가공을 거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기분 좋게 산책이 가능한 분위기입니다.

 

이렇게 대나무숲 사이 흙길을 걸어갈 때가 제일 시원한 느낌이 드네요.

규모가 큰 편이긴 해도 거의 일직선으로 돌게 되어 있어서 코스만 지켜 걸으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이 한바퀴 완주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쿠노시마 등대 부근까지는 이 더위에 아무래도 무리라 판단해서 지나쳐 갔습니다.

사실 산 속에 지어진 민속촌에 등대가 있다는 것도 좀 이상하다 생각하기도 하고 말이죠.

 

 

 

얼핏 방앗간처럼 보이는 곳이지만 사실은 종이를 만드는 곳입니다.

한국의 전통 한지와 같은 닥나무를 원료로 사용하지만 만드는 방식은 살짝 다른 듯 하네요.

이렇게 삶은 닥나무를 으깨는 장치가 있는 것으로 봐서 중국식 종이 만드는 방법과 비슷한 듯 합니다.

 

한국은 불린 닥나무를 두들겨서 결이 상하지 않은 상태로 떠 내기 때문에 강도가 좋았다고 하네요.

일본 종이 역시 고급 방식으로 한국과 똑같이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만 이 곳은 중국식으로 맷돌로 갈아 만드는 방식이었나 봅니다.

 

 

 

정성들여 손질한 수국 화분이 마당 앞에 놓여있는 모습만으로 관광객의 기분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군요.

 

이 곳에 서 있는 건축물들은 대부분이 문화재인데다 그 중 8채는 국가지정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접근을 엄격하게 막아놓은 것도 아니라 부담없이 사진을 담을 정도로 관객과 가깝습니다.

 

 

 

앞서 사진에 나왔던 칸칸석도 그렇고 카가와현은 화강암이 풍부해서 돌을 이용한 공예품이나 시설이 꽤나 발달한 편입니다.

특히 화강암 중에서는 세계 최고급 품질을 자랑하는 아지석(庵治石)의 산출지이기도 하죠.

그래서 시코쿠무라에는 돌을 이용한 폭포인 소메가타키 폭포라는 볼거리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기묘한 모양의 우물도 소메가타키 폭포 상층부에 위치하는 녀석이죠.

 

일본의 조각가 나가레 마사유키(流政之)씨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가레 씨는 비극적 역사를 간직한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심볼인 '눈의 성채'를 만든 작가로 유명하죠.

 

 

 

순로 표시도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세삼한 곳에 지역 특색을 세겨넣는 것이 관광 산업의 중요 요소죠.

나무와 바위로 만들어 진 시코쿠무라는 과도한 상업적 냄새가 나지 않는 점만으로도 민속촌 중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니는 이런 곳에서는 건물 하나하나의 특징 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중시하는 성격인데

이 곳을 거닐면서 여러 번 '참 잘 만들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봐서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평탄한 지형이 거의 없는 특성상 굉장히 이곳저곳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선 배정과 함께 단순한 이동 통로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세심히 만들어 놓았다는 느낌이 오는군요.

볼거리를 찾아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는 그런 민속촌은 레벨이 좀 떨어진다고 볼 수 있죠.

이 마을은 그냥 걷고만 있어도 입장료 값을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곳의 민가 건물들은 대부분 농촌이나 산촌 깊숙한 곳에 위치한 녀석들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부유층의 그것과는 다른 순박함이 풍겨나옵니다만, 이 곳처럼 나름 정갈한 느낌을 주는 집도 있네요.

 

집의 벽면 한 쪽 통채를 단순한 장식만으로 할당한다는 일본 가옥의 구조는 어찌보면 아이러니 합니다.

뭐 당시는 집의 크기나 땅값 등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말이죠. 어째 요즘 도시형 주택보다 훨씬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보존 상태는 놀라울 만 하지만 이 녀석들이 실제로 이런 지형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

원주민들의 실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를 생각해 보기는 조금 힘드네요. 대다수 민속촌의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는 타카야마나 나가노 근처의 옛 거리들 등, 여전히 주민들이 살아가며 예전 가옥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있어서

정말로 예전의 생활상을 느껴보려면 그 쪽으로 가야 합니다만 거긴 또 주택 보존 상태가 여기만큼 좋지는 않죠.

정말 300년 전의 생활상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이런 민속촌을 둘러보다 보면 묘하게 아쉬운 점이 느껴집니다.

 

 

 

밑에서 바라보는 소메가타키 폭로의 모습입니다. 그나마 조금 시원해지는 기분이네요.

너무 더워서인지 신기하게도 이런 산 속을 한 시간 가까이 걸어다니고 있어도 모기에게 물리지 않습니다.

37도쯤 되면 아마 모기도 탈진하는 것일까요.

 

유명 조각가인 나가레 마사유키 씨가 만든 폭포라고는 하지만 어떤 예술성이 드러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돌폭포 자체보다는 마을과의 앙상블에 촛점을 맞춰 전체 조경을 감상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엄니가 집에서도 하나 만들어 놓고 싶다고 하셨던 대나무 화분입니다.

고즈넉한 풍경에 과하지 않은 임팩트를 주도록 참 절묘하게 만들어 놓았군요.

 

나오시마도 가깝고, 리츠린 공원도 있어서 문화와 예술의 마을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노력하는 타카마츠라서 그런지

민속촌 안에 미술관도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이런 세심한 부분부분에서도 미적 감각을 잘 살려 놓았습니다.

 

지금은 각종 현대식 재료와 기술을 이용해, 그것도 본인이 직접 짓는 일이 거의 없어진 거주지라는 개념이지만

이런 걸 짓고 평생에 걸쳐 수리와 보수를 하며 살아갔던 예전 사람들에게 있어서 집이란 어떤 존재일런지.

아마도 자기 집에 대한 애착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현대의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감탄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제가 주택생활을 동경하는 것이기도 하고, 엄니가 시골집에서 차를 마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제 정말 시골집에서 차 한잔 마시려고 하는 것도 풀 뽑고 집 청소하고 보수하는 거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시코쿠무라의 장점은 역시 안내서에 적힌 볼거리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에도 충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순로 전체가 아름다운 산책로화 되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네요.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관광지는 커녕 극히 평범한 마을 어귀의 좁은 길이라도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곳이구나 하는 신선함에 한동안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 거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드는데

이 곳에서도 굳이 건물 구경하려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이 그저 걷는 것만으로 감상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네요.

 

 

 

에도시대 후기의 건물인데 아마 곡물 창고로 사용하던 녀석입니다.

지금은 자료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엄니는 이미 체력의 한계에 달해 있어서 이 곳에 들어가 봤자 눈에 들어올 게 별로 없을 듯 하네요.

그냥 특이한 형태만 바깥에서 구경하고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출구 근처까지 다다르면 굉장한 옹기들이 줄줄이 서 있는데요. 처음엔 술독인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간장 담는 옹기였습니다.

한국과는 묘하게 모습이 다른 것도 나름 볼거리더군요.

 

옹기도 옹기지만 펜스 역시 센스가 넘칩니다. 대나무를 줄줄이 이어 만들었는데 굵은 밑둥 끝에 다시 작은 줄기부분을 끼워넣어서 이어놨군요.

글자로 표현하자면

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화장실에 간 엄니를 기다리며 풍경 사진을 찍어봅니다.

소박한 삶의 여유라고 할까요. 시골집 툇마루에 누워 있을 때 풍경 소리가 살짝 울리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지금은 뭐 워낙 더워서 그런 여유를 느끼기도 힘들긴 하지만 말이죠.

 

이제 시코쿠무라 구경도 거의 끝나가니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야시마 산 정상으로 가야겠습니다.

 

 

둘째 날의 목표는 저 산입니다. 상당히 특이하게 생겼죠.

300m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산이지만 이곳에서는 명산으로 유명한 야시마(屋島)산입니다.

 

시코쿠에는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인 홍법대사 쿠카이(空海)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홍법대사가 순례한 88개소의 사찰이 아직 남아있어서, 그 발자취를 따라 걷는 여행이 꽤나 유명하죠.

 

자동차로 가면 며칠만에 모두 돌아볼 수 있지만 그래서는 의미가 없을 듯.

실제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걷고 있으며 외국인들에게 오히려 인기인 코스라고 하네요.

저는 자전거로 몇 군데 둘러봤습니다만 그냥 걸어서 돌아보려면 거진 한 달넘게 걸리니 쉬운 길은 아닙니다.

 

저기 야시마 산 정상에는 그 88개소 순례길 중 84번째 사찰이 위치해 있습니다. 전망도 좋고 해서 인기있는 관광지죠.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절 하나만 둘러보고 가기엔 시간과 노력이 아깝습니다.

이 곳은 야시마 사찰 외에도 시코쿠의 옛 마을 모습을 재현해 놓은 시코쿠무라(四国村)라는 민속촌도 위치하고 있어서

한 번의 이동으로 두 군데를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엄니에게 보여드리려는 의도에서 선택했죠.

 

하지만 5분 정도 걸리는 시코쿠무라까지 가는 도중 관광객이 한 명도 없었기에 오늘 혹시 휴일인가 하는 걱정까지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매표소에 직원이 상주하고 있는 걸 보니 휴일은 아니었는데 조금 더 걸어가고 나서야 오늘 사람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가 일본 최고의 폭염이 창궐하던 때라서 아무도 이런 곳에 오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기온이 37도까지 올라가서 입구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땀으로 절어버리더군요.

 

완성도가 매우 높아서 인기가 많은 민속촌인데 그런 만큼 에어콘이라던가가 설치된 현대식 건물이 없습니다.

덕분에 이 민속촌을 한 바퀴 다 돌아보는 동안 단 한명도 다른 관광객과 만나지 않고 단 둘이서 고독을 즐길 수 있었죠.

어찌보면 굉장한 경험이었지만 정말 이렇게 더워서는 여기 안 오는게 이해가 될 정도더군요.

 

 

 

민속촌으로 들어가려면 카츠라바시라는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하는데 이게 재현도가 쓸데없이 대단해서

조심하지 않으면 다리 하나 쑥 빠져버리는 건 일도 아니겠더군요.

 

엄니도 매우 조심하며 건넜고, 저는 이딴 나무조각이 제 덩치를 이겨낼 수 있을까 심히 걱정을 하며 건넜습니다.

사실 그 질기다고 하는 칡덩굴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다리가 끊어질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시코쿠는 산악 지형이 많고 발전이 더딘 편이라 대도시에서 보던 민속촌과는 분위기가 좀 다른 편인데

시작부터 사람을 살떨리게 만들어 주는군요. 항간엔 이 다리가 가장 좋은 볼거리라고 하는 곳도 있으니까요.

 

물론 다리를 건너지 않고 갈 수도 있지만 여기 와서 이걸 안 건너가 보는 것도 좀 아쉽겠죠.

 

 

 

전통을 보존하려는 마음 하나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일본이라서, 당해 본 경험이 있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좀 거북하기도 한데요.

그것과는 별개로 이 마을을 평가하자면 참 용캐로 이런 곳에 이 정도 규모의 민속촌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까지의 시코쿠 각지 민가를 재현한 마을인데

애초에 시코쿠라는 곳 자체가 타 지역에서의 접근성이 그리 좋은 곳이 아님에도

마을 전체가 산 중턱에 파묻혀 있어서 주변에서 전혀 현대적 건물의 흔적을 느끼지 않고 순수하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면 관광 상품으로서의 상업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일까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건축물의 보존 상태는 완벽에 가깝습니다.

날이 날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마을 안에서는 직원 한 명 보이지 않고 적막함이 감도는군요.

엄니와 저는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마을 전체를 전세낸 듯이 돌아다닙니다.

 

시코쿠는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비가 적고 맑은 날이 많지만 태풍 시기엔 엄청난 강수량을 보이는 편이라

집의 구조나 재료 등이 조금 특이한 편입니다. 전체적으로 넓고 평평한 거실이 많으며 바람이 잘 통하도록 설계되어 있네요.

 

 

 

코스를 정상적으로 밟으면 맨 처음 보이는 곳입니다. 카부키 극장이네요.

실제로 이 곳에서 공연도 가끔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오늘은 공연은 커녕 마을 전체에 사람이 엄니와 저밖에 없으니.

 

관광객들에게 얽혀서 복잡한 것도 싫지만 이렇게 덩그러니 둘만 거니는 것도 좀 무섭습니다.

평범한 곳이라면 모르겠는데 이곳 시코쿠무라는 시골의 산 속에 위치해 있다 보니 좀 섬뜩하다고 할까요.

 

 

 

이 곳은 시코쿠 각지에서 보존중이던 33개의 민속 가옥을 재현해서 모아놓은 곳입니다.

재현이라고 해도 단순히 다시 만든 게 아니고 그 가옥을 해체해서 전부 가져온 다음 이곳에서 재조립한 녀석들이죠.

 

나고야 근처의 이누야마(犬山)라는 곳에도 유명한 메이지무라(明治村)가 있는데

그 곳은 무려 메이지 시대 당시 하와이 같은 곳에서 일본인이 생활하던 저택을 전부 해체해서 갖고 와 재현해 놓기도 했습니다.

 

상업적인 이득을 생각한다면 과연 그 정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재현도에 신경을 쓰고 그것을 무기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으니 굉장한 시도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곳도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대부분이 실제 사람이 살던 가옥을 옮겨온 것이라 이곳저곳 볼 거리가 많습니다.

한국처럼 부엌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톡특하네요. 뭐, 기본적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한국 가옥과의 차이가 커지긴 합니다.

 

 

 

엄니 입장에서 보자면 꽤나 친숙해 보이는 느낌이 든다고 하시네요.

엄니 어릴 적에 살던 곳도 일본식 구조가 그대로 남아있던 집이라서 말이죠.

대구는 아직도 일본식 가옥이 조금 남아 있기도 하고, 엄니 연세라면 아마 일본식 가옥이 그렇게 특이하지도 않을 법 합니다.

 

물론 이곳 시코쿠무라는 1800년대 가옥들도 있는데다가 본토와는 꽤나 다른 양식으로 지어진 녀석들이라 엄니도 재밌게 보실 수 있겠죠.

 

 

 

가옥 구경뿐 아니라 이 곳의 자연 풍경 역시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자연의 생명력이 팍팍 느껴진다고 할까요. 시코쿠 88개소 사찰 근처에 있어서 주변에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원래 이런 마을이 있던 곳이 아니고 각지의 가옥들을 모아서 만든 곳이다 보니

실제로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형이 복잡합니다.

 

엄니는 물도 많이 마시고 화장실도 가고 하면서 휴식을 취하며 이동합니다.

기온이 너무 높아서 땀 하나는 정말 시원하게 빼고 가는군요. 다행히도 공기가 매우 좋아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고 하시네요.

 

 

 

가옥들은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표시가 없는 곳은 그냥 들어가 봐도 됩니다.

한국보다 나무가 풍부한 지역이라 황토를 이용하는 가옥이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까요.

 

에도시대 이전에는 각 지역별로 발달한 상업이 에도시대의 산킨코타이 제도로 인해 유통망이 완성되면서

1800년대를 기점으로 조직적 상업사회 기틀이 완성되고 있었는데, 시골인 시코쿠도 다르진 않습니다.

기후와 지형적 영향으로 각종 농산품과 해산물이 유명했던 지역이라서 시코쿠무라 안에도 양조장이라던가 곡물 창고같은게 드문드문 보이네요.

 

 

 

지난 번 포스팅에 아기자기한 조각품들이 많은 우동집에 나왔었는데요.

거기서 나왔던 화로와 냄비가 여기서는 실제 크기로 전시중입니다.

 

일본의 전통 가옥은 이렇게 거실 한가운데 물을 지켜서 식사를 하는 방식이 꽤나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목조 건물이다 보니 불 관리에 매우 엄격했는데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는게 의아하기도 하죠.

물론 목조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수도권에서는 집 안에서 불 피우는 행위 자체를 금지했기 때문에 이런 거 없었습니다.

 

 

 

민속촌 전체가 산등성이를 타고 만들어져 있어서 평지가 별로 없네요.

거대한 면적을 엄니와 둘이서 독점하는 건 좋아도, 왜 사람이 없는지 절실하게 느끼며 걷고 있습니다.

 

척 봐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건물이 놓여있네요.

곡물 창고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설탕을 만드는 곳이었다고 적혀있습니다.

 

 

 

일본 최초로 정제 설탕을 만들어 내던 곳입니다.

세계 어디든 동일하지만 당시엔 설탕이 매우 귀한 몸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지역의 특산품으로서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죠.

 

소를 이용해서 맷돌을 돌리는데 이 방식은 오키나와의 전통적인 방식과도 거의 일치합니다.

그러고보니 한국은 설탕을 어떻게 만들었으려나요. 아마 이런 정제설탕보다는 엿이나 꿀을 애용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건물 주변에는 이렇게 사용했던 맷돌들이 장식품처럼 늘어서 있습니다.

엄니가 보시더니 참 많이도 만들었다 하셨죠.

정제 설탕은 에도시대만 해도 꿀보다 훨씬 비싼 녀석이었고, 상류층의 허례허식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뭣 때문에 이렇게 많은 맷돌을 모아놓은 건지는 모르겠네요. 정말로 그냥 장식용일런지.

 

 

 

둘이서만 주구장창 구경하고 있는데 더욱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주의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돈 내고 들어가는 민속촌 안에서 맷돼지 주의라는 표지판을 봐야 한다니.

 

공교롭게도 저는 자전거 여행 중 시코쿠에서 맷돼지와 조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저 푯말을 보면 긴장이 되네요.

시코쿠 해안선을 따라 밤 8시쯤 달리고 있는데, 멀쩡하게 도로와 민가가 주르륵 늘어선 평범한 해안가 마을 한가운데서

서로 마주보는 모습으로 딱 만나게 되었습니다. 짐까지 더해 40kg 가까운 제 거대한 여행용 자전거와 거의 비슷한 덩치였죠.

 

실제로 지근거리에서 보는 맷돼지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느꼈네요.

저는 감전된 사람처럼 자전거를 빙글 돌려서 반대쪽으로 미친듯이 도망갔습니다만 다행히도 맷돼지 역시 저한테 놀라서 저와 반대쪽으로 도망갔습니다.

자전거 위에 타고 있다보니 제 덩치도 워낙 크게 보인 것이겠죠. 근 5m 정도 거리였기 때문에 저한테 달려들었으면 아마 다음 날 뉴스에 나왔겠죠.

 

 

 

민속촌의 가장 위쪽에 도착하니 갑자기 분위기가 바뀝니다. 정갈한 조경수와 반듯한 콘크리트 건물이 숲 속에서 맞이해 줬습니다.

딱 보니 이 건축물은 안도 타다오가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타카마츠에서 가까운 조그만 섬 나오시마가 부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섬 전체를 예술의 마을로 만들어 버렸는데

그 중심에 있던 것이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이다 보니 이곳과 안도 타다오는 꽤나 인연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코쿠무라에도 미술관이 들어선 것 같습니다만, 여긴 따로 입장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관람은 포기했습니다.

 

사실 내일 찾아갈 곳이 나오시마라서 굳이 이곳을 들를 필요가 없기도 하거든요.

엄니나 저나 미술품 자체에 크게 관심이 있는 성격도 아니고.

 

 

 

그래서 미술관에 들어가지는 않고 그의 예술관을 살짝 흉내내어서 사진을 한 장 담아봅니다.

가장 인공적인 재료인 콘크리트를 이용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죠.

 

건축계의 거장이라서 사실 들어가 보면 구경거리는 많겠지만

오늘은 이곳에서만 시간을 사용할 수도 없고, 내일 나오시마에서 온갖 예술품을 감상할 예정이라 그늘에서 땀만 식힙니다.

 

그나마 날씨가 이렇게 더워도 도시의 매퀘하고 찝찝한 공기가 아니라 땀을 흘려도 나름 상쾌합니다.

엄니도 땀은 많이 흘리시지만 공기가 참 좋아서 나름 견딜 만하다고 하시네요. 조금 더 힘내서 돌아보고 야시마로 올라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