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풍경'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12.11  2월 17일 홋카이도 - Skyfall 6
  2. 2014.10.17  2월 14일 시레토코 - 멀었던 두 시간의 결합 2
  3. 2014.09.27  하늘이 폭발하던 날 8
  4. 2013.12.18  과거로의 여행 - 돌아가기 15
  5. 2013.10.03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8편 8
  6. 2013.10.02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7편 8

 

조식을 든든히 챙겨먹고 삿포로행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걸어간다.

삿포로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리지만 갈아타지 않아도 되니 걱정할 일은 없다.

 

단지 눈이 그쳤다고는 하지만 어제보다 훨씬 매서운 바람이 강렬하게 몰아치고 있어서, 홋카이도 여행 중 처음으로 뼛속까지 추위를 느낄 수 있다

하늘의 눈이 아니라 땅에서 일어나는 눈은 훨씬 매서운 법.

산더미처럼 쌓인 눈이 칼바람 때문에 온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있어서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한번 땅으로 내려왔다 다시 흐트러지는 눈은 어찌나 매서운지.

기온은 영하 10도 정도지만 바람 탓에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넘나들고 있다.

포근하게 보였던 눈이 칼바람에 굳어버린 것인지 지금 피부를 때리는 눈송이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매섭다.

 

 

 

레일 너머가 신기루처럼 흐려지는 풍경은 조금 뒤에 이쪽으로 몰아칠 눈보라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이게 극지방에서 강화된다면 소위 말하는 블리자드가 되리라 생각.

 

도저히 이래서는 못버티겠다 싶어 역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안내방송이 나온다.

다른 지역의 폭설 때문에 기차가 25분 정도 연착된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첫 연착.

평소라면 그냥 기다리면 되지만 개방된 공간에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라 조금 귀찮아 진다.

 

역사 안으로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 올라오는 앞에서 오밀조밀 모여있다. 다들 밖에서 기다릴 수가 없으니까.

밀도가 너무 높아서 그냥 1층으로 내려가 개찰구를 나와버린다.

어차피 홋카이도 레일 패스는 따로 티켓을 기계에 집어넣거나 하지 않고 역무원에게 제시만 하면 되기 때문에 몇 번이고 들락날락할 수 있으니까.

 

역내 매점에서 따뜻한 옥수수 스프 한 캔을 사들고 손을 녹이며 주변을 서성인다.

25분이란 시간이 참 애매해서 다른 곳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서 있으니 꽤나 지겹다.

 

역에서는 거의 2~3분에 한 번씩 연착 소식을 방송하고 있다. 전광판에도 당연히 연착 정보를 표시해 놓았다.

10분쯤 뒤에 도착하는 열차는 내가 예약한 차가 아니라 그 전 시간에 도착하는 열차이기 때문에

자칫하다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4시간을 서서 가야 할 수도 있으니 이런 점은 주의를 요한다.

워낙 쉴세없이 연착 소식을 방송중이라 어지간하면 헷갈리지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외국인이라면 좀 난감한 상황일지도.

 

다행히도 25분 뒤에 온 열차는 따뜻해서 기다린 보람은 있었다. 미리 예약해 놓은 터라 창가 자리에 앉아 경치를 감상한다.

 

 

 

지루해지기 쉬운 기차 여행이지만 홋카이도만큼은 그럴 틈이 없다.

원채 조용한 객실 안이지만 참다 참다 결국 카메라를 꺼내든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장면이 수도 없이 펼쳐진다.

 

조심해서 셔터를 누르고 이제 괜찮겠지 싶으면 금새 더욱 황홀한 광경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아예 긴장을 하고 있지 않으면 이런 이동중 사진은 항상 보던 것보다 조금 아쉬운 장면만을 간신히 담을 수 있다.

그렇다고 4시간 넘게 계속 창밖을 뚫어져라 주시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마음을 비우고 중간중간 무덤덤하게 셔터를 누르기로 한다.

 

 

 

홋카이도의 날씨는 수직적이기도 한 동시에 수평적이기도 하다.

한 곳에 머무를 때도 쨍한 하늘에서 폭설로 휙휙 바뀌기도 하고

기차로 빠르게 이동중일 때 역시 푸르던 하늘 아래를 넘어가면 갑자기 시야를 막아버리는 눈보라가 떡하니 나타나기도 한다.

 

울창했던 푸른 생명력들의 역동성이 전부 바람과 눈으로 스며들어 간 건지, 살아있는 건 나무와 풀숲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보라 속을 부담없이 찍을 수 있게 해 주는 열차의 든든함이 고맙기도 하지만 역시 속도가 속도이다 보니 감도를 좀 높여야 한다.

아예 감도를 낮추고 자연스러운 패닝샷 기분을 내는 것도 괜찮지만 창가에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올 때의 감정을 좀 더 고스란히 담고 싶다는 기분.

 

 

 

대도시는 그렇다 치고 중간중간 위치하는 작은 마을은 어떻게 겨울을 넘기는지 궁금하다.

홋카이도 자동차들은 기본적으로 출고시부터 스노우 타이어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고

얼음보다는 눈이 많은 곳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잘만 달린다. 본인처럼 눈이 적은 지방에서 살아온 사람은 조마조마한 기분.

 

여름의 초목이 지겨워 질 때쯤이면 이렇게 세상을 뒤덮어버리는 눈밭이 만들어지기를 반복하니 역시 기후변화가 다양한 지역은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푸르던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진행 방향의 심상치 않은 하늘 쪽은 열차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기다리고 있다.

지면의 모양이나 색깔마저도 단조롭게 변해버리는 겨울이지만 하늘만큼은 변화무쌍해서 부족한 역동성을 채워준다.

 

눈을 잠깐 감고 졸다가 깨어나 보면 대체 여기가 무슨 세상인지 모를 정도로 변해버리는 점이 매우 인상적.

눈길 자동차 운전에 어느 정도 숙련이 된다면 그냥 드라이브만 해도 인상적인 장면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듯 하다.

 

 

 

여기서부터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다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누르기만을 반복하던 무아지경의 시간이라

글로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과 함께 하니 예술 전시회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가고 난 뒤 갑자기 평온해 보이는 거대한 설원과 그 위를 거니는 젖소들이 나타난다.

땅이 넓으니 목장도 여유가 느껴지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방목장인지 모르겠다.

 

여름에 이런 곳을 지나갈 때는 확실히 울타리가 보였지만 지금은 거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울타리 너머에서 자전거 세워놓고 사진을 찍고 있으면 소들이 호기심 초롱초롱한 눈으로 앞까지 다가오기도 했다.

 

거친 눈보라를 뚫고 나자 온화한 풍경이 펼쳐지는 순간은 마치 소설 '설국'의 첫 장면을 연상케 한다.

정말로 도착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여행의 끝을 조용히 축하해 주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오랜만에 삿포로로 돌아오니 여전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분주한 도시 풍경은 이제껏 즐겼던 차분함과 거리가 있지만 조금씩 현실 세계로 돌아오고 있다는 반가움도 없지 않다.

 

삿포로를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을 뜨겁게 달궜던 눈축제장의 스키 점프대는 빠르게도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축제란 건 준비하는 기간이나 열리는 도중이나 열기가 넘치지만 이렇게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숙연해지는 강도도 그만큼 크다.

부자가 아니라 매년 겨울 이곳을 찾아오는 사치를 누릴수는 없으니 이제 내려놓을 감정은 내려놓고 돌아가라는 느낌이 든다.

 

 

 

숙소에 짐을 맡겨놓고 삿포로에서 해야 할 몇 안남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저녁에 맥주 공원에서 징기스칸을 즐기는 것은 제외하고라도 겨울 삿포로의 별미인 수프 카레를 먹지 않고 떠나기는 아쉽다.

 

오비히로뿐 아니라 오늘은 홋카이도 전역의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았는지 쓰러진 자전거가 한층 더 무섭게 느껴진다.

대체 쓰러진 자전거가 저만큼 파묻힐 정도라면 눈이 얼마나 왔다는 것인지. 마치 물 속에 잠긴 듯한 그 모습은 여전히 이곳의 기후에 대해 감탄하게 만든다.

 

 

 

축제가 성대하게 열린 만큼 해체 작업도 보통 일이 아니다. 아마 준비 기간과 마무리 기간을 합치면 축제 기간의 몇 배는 되지 않을까.

원래 축제란 그런 것이지만 이런 아련한 모습 또한 다음 축제를 위한 안식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삿포로는 여전히 흐렸다가 맑았다가 눈이 쏟아지는 정신없는 날씨를 자랑하고 있다.

내일 귀국이니 이제는 억눌러 놓았던 구매 욕구를 풀어재끼는 일만 남았다.

서점을 돌아보며 읽을 만한 책을 10만원 어치 정도 쓸어담는다. 가능하면 한국에 발매될 일이 적을 듯해 보이는 책을 중점적으로 공략한다.

 

나름 긴 여행이다 보니 자금을 좀 넉넉하게 가지고 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남은 자금을 전부 써버리기엔 아까워서 꼼꼼하게 검토를 하며 구매한다.

이 정도면 내일 공항에서 선물 몇 개 사들고 가도 2만엔 이상 남아있을 테니, 다음 여행의 자금 보충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듯 하다.

 

 

 

오비히로에 맞먹는 추위를 뚫고 이리저리 해맨 끝에 건물 지하 구석에 아담하게 숨어있는 수프 카레점을 찾아낸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가게에다 카운터 석에 앉아도 부담없어 보이는 친근한 아가씨가 맞이해 줘서 긴장이 풀린다.

 

수프 카레는 홋카이도에서 탄생한 변종으로, 워낙 추운 홋카이도의 겨울을 좀 더 후끈하게 즐기기 위해 고안된 카레.

점성이 없는 찌개같은 카레로 처음 볼 때는 위화감이 들 수도 있지만 짜릿한 카레의 자극은 더욱 강렬해서 매력적인 녀석이다.

한국 사람에게는 오히려 찌개 먹는 느낌으로 밥과 함께 먹으면 매우 훌륭한 궁합을 자랑한다.

얼어버린 콧속에 확 퍼지는 뜨끈뜨끈한 카레 수프의 얼큰함은 묘하게 한국 정서와 어울린다. 겨울의 홋카이도라면 꼭 먹어볼 만한 녀석.

 

지역 별미라 가격이 좀 세긴 해도 불만없이 즐길만한 음식이다. 맛은 기본적으로 보장이 되니 부담도 없고.

식사와 쇼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졸리고 피곤하다. 어제까지의 강행군도 그렇고 장시간 기차 여행도 쉴 틈이 없었으니까.

90분 정도 쉴 시간이 있는데 침대에 엎드려 TV를 보니 슬금슬금 고개가 밑으로 내려간다.

날씨가 춥다 보니 들어왔다 나가는게 한층 번거롭지만 홋카이도의 마지막 밤에 징기스칸을 먹지 않는다는 건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해가 지고 한층 추워진 공기를 마시며 눈덮힌 길을 조심조심 걸어 삿포로 역으로 향한다.

역에서 맥주공원까지 저렴하게 왕복중인 버스가 있어서 찾아가기도 편하다.

오비히로만큼이나 눈이 쏟아지고 있어서 여행 막바지의 아쉬움과 애상이 배가 되는 느낌이지만 고기와 맥주로 즐거운 마무리를 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홋카이도에서 날씨가 휙휙 변하는 건 나름 익숙해졌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시레토코의 대자연 속에서 경험하는 격변은 또 각별하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뉴스레터(?)의 장면처럼 아름답게 내려앉는 눈꽃이 온 하늘을 뒤덮어 버리는 풍경은 참으로 절경이다.

아마 트래킹 초반부터 이런 눈이 팍팍 내렸다면 기가 팍 꺾였을 수도 있겠지만

푸른 하늘을 마음껏 감상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만한 즈음에서부터 이렇게 내려주니 오히려 반가운 기분도 든다.

 

든든한 가이드분과 몇 년동안 이곳을 찾아 오는 단골 일행분 덕분에 두려움도 없이 묵묵히 먼 곳을 바라보고만 있다.

다들 비슷한 기분인 듯 대화도 없이 한동안 역동성과 고요함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시간을 조용히 즐긴다.

 

 

 

해가 워낙 빨리 지기 때문에 이제부터 슬슬 다시 둘러보기 시작해야 한다는 가이드분의 말에 따라 다시 장비를 챙긴다.

물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어차피 남은 건 오호 중 가장 크고 휴게소에서 가장 가까운 첫 번째 호수만 돌아보면 되니까.

 

장비를 챙기고 막 떠나려는데 세상을 연기처럼 뒤덮던 그 눈발은 어디가고 순식간에 다시 화창한 하늘이 펼쳐진다.

홋카이도에 도착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경험했던 일이지만 정말 놀라지 않을 틈을 주지 않는다.

 

본인은 그냥 날이 맑아졌다는 정도였지만 가이드분은 조금 전보다 더 흥미진진한 표정이다.

구름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보니 운이 좋으면 라우스 산봉우리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겨났기 때문.

겨울에는 맑은 날 라우스 산의 꼭대기를 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데, 이번에 보게 된다면 첫 참가인 나에게는 굉장한 행운이라고 한다.

 

 

 

첫 번째 호수로 향하는 길은 겉보기에도 쉽지 않다. 생각보다 가파른 경사에다가 수풀이 빡빡해서 스키를 게걸음으로 옮길 공간도 부족하다.

가이드분은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루트를 만들어 가기 때문에 한동안 고민을 하신다.

결국 약간 두르더라도 덜 위험한 곳으로 가기로 한다. 우리와 엇갈린 또 한 팀은 걷는 스키가 아니라 스노우 슈즈를 신고 있기 때문에 경사 높은 곳으로 용감하게 전진중.

 

스키라는 게 그냥 슥슥 밀기만 하면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평지에서 스무스한 이동을 위해서는 평소 걷는 것 처럼 발을 지면 위로 띄울 수 없는 점이 오히려 어색하게 작용해서

허벅지 뒤쪽에 굉장한 힘이 가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전신운동이라 해도 될 만큼 체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키를 신지 않고 일반적인 신발로 걸어다니는게 편한가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다.

애초에 스키라는 게 설원을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니까.

걷는 스키는 일반적인 스키보다 폭이 넓고 길이가 짧은 편이라 눈 위를 걸어도 몸이 덜 빠지는 장점이 있다.

그냥 신발로 이런 곳을 걸어다니면 기본적으로 무릎 위까지는 푹푹 빠지게 되니, 그것이 얼마나 힘들지는 설명 할 필요가 없을 듯.

문제는 본인 체중이 너무 강렬해서 앞의 두 분이 발목 정도까지 빠지며 스키로 밀고 나간다고 하면

나는 거의 정강이까지 잠겨서 이동하는 느낌이라 상대적으로 체력 소모가 심한 편. 그러니까 자업자득이라는 말이다.

 

 

 

고생 좀 해서 거친 수풀을 빠져나오니 드디어 첫 번째 호수에 도착한다. 한 쪽이 바다와 인접해 있고 휴게소에서 가장 가까우며 크기도 가장 큰 호수.

여름에는 불곰 출몰로 인해 첫 번째 호수만 둘러볼 수 있었기에, 이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과거와의 접점이 느껴지는 듯 하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나무로 된 고가도로 위에서만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던 본인이, 그 울창하고 신비로운 매력을 내뿜던 호수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높이 3~4미터의 목책로 주변에는 전기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불곰이 접금하지 못한다. 그 위에서 바라보는 시레토코의 풍경에 완전히 매료되어 다시 이 곳을 찾게 되었다.

 

 

 

여름 목책로 위에서 찍었던 사진. 1년 간의 자전거 여행 중에서도 단연 시선을 빼앗기는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시레토코에서 가장 높은 라우스 산과, 드레스처럼 구름을 두르고 있는 산맥과 온갖 생명력으로 흘러넘치는 오호의 모습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이란 게 이렇게도 멋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저절로 들게 만들어 주곤 했다.

 

한 시간에 한두 번밖에 버스가 오지 않는데다가 마지막 입장 시간도 매우 이른 편이라

관광 버스나 렌트카를 이용하지 않으면 느긋하게 즐기기 쉽지 않은 곳이어서 그 짧은 시간이 그토록 아쉬울 수가 없었다.

 

 

 

지금은 당연히 저 목책로 위에도 눈이 쌓여있어서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여름의 목책로 높이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눈이 어느 정도 쌓여있는지 짐작이 갈 듯.

그 웅장하던 생명력이 모두 눈속에 갖혀버린 채 다시 봄을 기다리는 모습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이 정도 수고를 들이지 않으면 이런 풍경을 감상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또 문명인의 생활이란 것이고.

호수를 가로질러 나 있는 북방여우의 가지런한 발자국을 보니

그 녀석도 얼어붙은 호수를 지나가며 화려했던 여름의 회상에 젖어보기나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동행 분은 도쿄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 매년 삿포로까지 7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 홋카이도로 온 다음

바로 삿포로에서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곳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나 같은 사람이라면 아마 도쿄에서 이곳으로 이사올 계획을 짜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름다운 산과 들은 조금만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여름엔 불곰이 거닐고 겨울엔 얼어붙은 호수를 거닐 수 있는, 사람이 살지 않는 바다와 근접한 산맥 끝자락 풍경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겨울엔 그렇게도 보기가 힘들다던 라우스산의 정상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주위엔 구름이 많아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이 정도 모습만이라도 일행들은 열심히 사진 찍기 바쁘다.

한국에 비해 거칠고 가파른 일본의 산은 산맥의 아름다운 곡선보다 강한 힘이 느껴지는 굵은 선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눈이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상층부는 수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설산의 위용을 자랑하는데

사실 라우스산은 출입 통제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도 등반이 가능하다. 경험을 쌓은 전문가가 아니면 매우 위험하긴 하지만.

 

 

여름의 그 압도적인 생명력을 모두 평탄한 눈밭으로 덮어버리는 겨울의 모습은

이 곳에 한 번 이상은 와서 원래의 모습을 느껴본 뒤에야 비로소 그 매력이 배가 되는 느낌을 준다.

 

불규칙적인 지형 속에 사냥꾼처럼 곳곳에 숨어 있는 습지와 그 주변을 가득 메운 수풀을 모두 동등하게 만들어 버리는 겨울 시레토코는

거대한 힘으로 밀어버린 듯 깨끗한 설원 속에 가지런한 여우의 흔적만을 남긴 체 느릿한 숨을 내쉬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듣고 자라는 곳에서 살다 보니 그 개념에 대해 꽤나 흐리멍덩해 진 상태였는데

이 모습을 보면 그 사계절이란 게 축복은 축복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바다와 마주닿는 쪽의 산들은 서서히 깎아지른 듯한 정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덩달아 일행들의 셔터도 바빠지고 있다.

꼭 가장 높은 산만이 인상적이란 개념은 없고, 맨 끝의 산부터 라우스산까지 형제처럼 보이는 봉우리들이 위용을 뽐내는 모습은

어떤 강력한 인연으로 맺어진 형제자매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듯한 결합감을 느끼게 한다.

 

카메라를 꺼내고 넣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본인은 이제까지 조금씩 부담감을 안고 있었지만

정상이 드러나 갈수록 쉴새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다른 일행들 덕분에 개운해 진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마구 찍어댄다.

 

 

 

분명 같은 모양이지만 여름과 겨울의 모습이 주는 느낌은 꽤나 다르다.

여름의 산이 바다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면 겨울의 산은 가만히 바다 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

겨울의 산은 단색으로 통일되는 동시에 강한 햇빛에 의해 명암이 강해져 좀 더 우락부락해 보이는데

그럼에도 여름보다 조금 더 차분해 진 듯 하다. 아마 산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보이는 것이겠지만.

 

 

 

구름이 이동할 때마다 일행들의 일사불란하던 움직임은 무질서하게 변해간다.

걸어가면서도 몇 번씩 고개를 돌려 구름이 어디까지 가고 있는가를 확인하기도 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라우스산의 정상이 보인다 싶으면 카메라를 꺼내들고, 그러면 나머지 일행들도 자연스럽게 멈춰서서 몸을 돌리게 된다.

 

눈 오는 설산의 모습도 물론 좋지만, 이런 하늘에서는 산의 혈관과 근육이 더욱 대비를 드러내기 때문에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바빠진다.

 

 

 

목책로 위에서 보던 풍경 속에 들어가 반대로 그 목책로를 풍경삼아 감상하는 경험은 참으로 신선하다.

사실 겨울 홋카이도 여행 계획은 삿포로 눈축제와 Y양을 만나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

비행기를 타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레토코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여름에 저 목책로 위에서 오호의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저런 데 잘못 들어갔다간 습지에 가라앉아 버리는 거 아닌가 겁을 낼 정도였는데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그 위를 이렇게 걸어다닐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현실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네이처 가이드분도 매년 도쿄에서 먼 길을 찾아오는 일행 분도 겨울의 시레토코를 잊을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현재 걷고 있는 수풀 언저리가 바로 여름 목책로 위에서 감탄하며 바라보던 그 첫 번째 호수의 저 멀리 가장자리라는 사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도 저 호수 위를 걷고 있었다는 실감을 느끼기 힘든 것도 여전히 납득이 간다.

 

시간이라는 요소 외에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동일한 장소에서 느끼는 낯설음은, 여러 곳을 이동하며 즐기는 여행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그래서 갔던 곳을 가고 또 가는 여행이라도 전혀 아쉽거나 지겹지 않은 법이기도 하고.

 

 

 

가이드분은 이미 이곳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시레토코의 모습이 무엇인지도 잘 파악하고 있다.

이제껏 실컷 출입금지 지역을 누비고 다니긴 했지만, 여름의 한계였던 목책로 끝을 넘어가 바다쪽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에서

겨울의 우리들은 저 한계마저 넘어서 직접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새로운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목책로가 상당히 높아서 저 위에서도 바다가 보이긴 하지만

그림 한 점처럼 구경만 하던 그 장소에 두 발로 걸어가 볼 수 있다는 체험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흥분할 수 있다.

 

 

 

목책로 위에서도 언덕에 가려 보이지 않는 숨겨진 부분을 볼 수 있는 곳에 도착한다.

먼저 온 팀은 저 밑까지 내려간 듯 흔적이 보이는데, 가이드분 말로는 저기까지 갈 필요는 별로 없을 듯 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내려갔다가 고생 좀 하겠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하고.

 

목책로 위에서 봤을 때는 언덕 뒤가 바로 바다인 줄 알았는데, 옆으로 돌아와 보니 뒤쪽에도 어느 정도 공간이 있다.

저 부분의 여름 모습만큼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지 않는 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마치 한쪽 면만 보이는 달의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

 

 

 

호텔 창문 안에서 바라보던 것과 달리 이런 곳에서 유빙을 보면 정말로 그 거대한 바다 위에 얼음이 떠다니는구나 싶다.

바닷물이 얼은 것이니 유빙도 짠 맛이 날까 궁금했지만 경치 구경하느라 금새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8개월이나 지난 이제서야 다시 생각이 난다.

 

여름에 배를 타고 이 쪽을 통과해 가다보면 가끔 해안가 부근에서 장난치고 있는 불곰들을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자전거 여행 때는 당연히 그 비싼 배를 탈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다음에 일반적인 여행을 위해 찾아올 때는 반드시 멀미약을 챙길 생각을 하고 있다.

사방팔방이 탁 트인 곳이지만 어쩐지 다소곳이 숨겨져 있던 공간을 발견한 듯한 즐거움을 뒤로 하고 스키의 방향을 돌린다.

 

 

 

사진이란 녀석이 가지는 장점은, 특정 시공간에 대한 떨어져가는 기억력을 복구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미 4년이나 지난 추억이라 세세한 지형까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었는데

목책로 뒤에 봉긋 솟은 저 언덕 옆을 지나면서 담은 사진과 비교해 보니 비로소 다른 시간대의 두 풍경이 시간을 초월한 하나의 관념으로 정립되는 기분이다.

 

이제 여름과 겨울의 모습을 모두 마음 속에 담을 수 있었으니

여름에 찾아가면 설원이 생각나고, 겨울에 찾아가면 푸르디 푸른 습지가 생각나는 즐거운 선순환만 남게 되었다.

 

 

스키를 신고 있기는 하지만 프로급 선수가 아니고는 어차피 하산할 때도 천천히 걸어서 조심소심 내려가야 하니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지금도 결코 이른 시간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무서운 추위가 엄습하니까.

 

아슬아슬하게 사람 애간장을 태우던 구름이 선심을 썼던 것인지, 돌아가기 시작한 우리들에게 살포시 커튼을 걷듯이 물러나 준다.

겨울 시레토코 여행 첫날이자 마지막 날에 깨끗한 하늘 아래서 라우스산의 정상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다른 두 명도 당연히 즐겁겠지만 본인은 이 모습을 보면서 그 자전거 여행때의 가슴 묵직했던 감동이 재현되는 기분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길지 않은 사진생활이지만 이제껏 찍은 사진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을 바로 이곳에서 담았다.

시레토코란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에 셔터를 누른 후 십여 분간 자리를 뜨지 않고 가만히 시선을 고정시켰던 기억이 난다.

 

안으로 들어가면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습지인지 알 수 없을 듯한 두려움을 간직한 호수 주변의 경이로운 모습과

바다와 접한 그 다섯 개의 호수를 굽어보는 웅장한 라우스산의 풍경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이란 어떤 것인가 각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지금 그 출입 불가능했던 두려움 위를 걸어가는 기분은 언어로 설명하기가 참 난감하다.

 

겨울이면 벌써 시커먼 하늘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아직도 해가 쨍쨍합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그냥 구름이 좀 많아졌다 싶은 정도였는데

지금은 바람이 아주 사람 날려버릴 정도로 강하게 불고 있네요. 역시 좋은 날씨는 빨리 사라지는가 봅니다.

 

 

 

바람이 정말 심상치 않아서, 의자들이 저절로 춤을 추는 장면도 연출되고 있습니다.

맞바람일때는 뭔가 거품 속을 헤집고 걸어가는 듯한 느낌마저 들더군요.

그래도 더운 여름날이라 시원해서 좋았습니다. 겨울이었다면 정말 혹독한 촬영환경이 되었을 법 합니다.

 

 

 

바람이 굉장하니 구름의 모습도 평소와는 다른 녀석들이 많더군요.

낮에는 쨍하디 쨍한 하늘에 반해서 이곳을 찾을 결심이 섰는데, 막상 지금은 휘몰아치는 구름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저 멀리서 산을 완전히 뒤덮어버릴 구름 쪽은 굉장한 박력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저 부근은 소나기라도 내리지 않을까 싶더군요.

 

 

 

매연과 안개에 가려져 있으면 뭔가 와닿지 않는 표현이지만

이런 하늘 아래서 강력한 바람에 분주히 움직이는 구름을 보고 있으면

지구라는 것도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집니다.

 

 

 

구름이 훨씬 많아져서 처음 기대했던 깔끔한 일몰을 볼 수는 없었지만

짙은 구름덕분에 명암차가 극명해지는 모습 역시 굉장한 볼거리였습니다.

 

망원렌즈가 있었다면 좀 더 포인트를 줘 볼 수 있을 법 한데, 카메라 바꾸는 일은 역시 뒷맛이 조금 씁쓸하네요.

 

 

 

그 날 봤었던 가장 신기한 구름의 모습입니다. 바람이 워낙 강했기에 만들어 질 수 있었던 흔적이죠.

 

혹시나 싶어 몇몇 사이트를 둘러보니 제가 즐겨가는 모 님의 사이트에서도 이 구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카메라를 잘 안들고 나가는 편이라 운이 굉장히 좋았죠. 역시 부지런해야 사진도 많이 남길 수 있군요.

귓가를 때리는 바람소리와 함께 저 폭발하는 듯한 구름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베버의 마탄의 사수가 생각납니다.

 

 

 

비가 온 후라 하늘이 맑고 구름이 많고 바람이 강한 이런 조합이라

구름들의 명암도 굉장히 뚜렷하고, 작은 구름들은 마치 식빵을 찢어놓듯이 흐트러져가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수백 수천년을 공들여 만든 수많은 건축물과 문화의 흔적들도

이 장관 하나에 비교해 나을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법 합니다.

아무튼 이 부근에서는 제일 신기하고 제일 크고 졸라 짱센것이 지구다 보니 말이죠.

 

 

 

해가 지는 맞은편에 보이는, 왠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산을 넘어오는 거인처럼 느껴지는 구름입니다만

저물어가는 태양빛에 직격을 당하니 가슴쪽에서 심장이 폭발하듯 뛰는 분위기가 연출되더군요.

 

앞산 주변을 포위하듯이 서서히 넘어오는 구름의 위용은 참 대단했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니, 좀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원에 모여 사방팔방 하늘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네요.

 

 

 

비가 그치고 나서 포근하고 투명한 하늘을 담으려 준비한 카메라였는데

거칠고 야성적 매력이 흘러넘치는 파괴적인 구름의 모습을 담게 되어서 재미있는 하루였습니다.

 

한국의 대도시에서는 참 일년에 몇 번 보기 힘든 풍경이지만, 이런 거라도 없으면 도시 생활이 얼마나 재미가 없을런지.

 

 

 

이랜드에서 열심히 꾸며놓은 다양한 볼거리의 하늘정원도 지금만큼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네요.

모든 사람들이 전부 하늘을 동경하며 흔적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직장때문에 좋은 하늘이 보여도 발만 동동 구르고 제대로 감상하질 못해서 안타까웠는데

그래도 퇴근 후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 하늘을 원망할 수는 없겠군요.

 

 

 

오늘빛을 받아 더욱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는 구름이 워낙 인상적이라서 비슷한 사진을 많이도 찍었습니다.

렌즈가 하나뿐이라 어떻게 찍어도 비슷비슷한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정말 신기하고 웅장한 모습이라 잊어버리는 게 아까워서 찍고 맨눈으로 감상하고를 한참동안 반복했네요.

 

문든 테런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구름과 바람과 노을빛으로 생명을 빚어내는 듯한 풍경이 오버랩되는군요.

 

 

 

놀이공원을 통해서 내려갈 수가 없으니 덥긴 해도 산책이나 하는 기분으로 텁텁한 날씨속을 걸어갑니다.

야간 개장도 하는 것인지 슬슬 색색의 전구가 나무를 밝히기 시작하더군요.

조금 전까지 하늘에 감탄하고 있던 터라 이런 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늘 보러 타워쪽은 한두 번 찾아간 적이 있는데 이 놀이공원은 마지막으로 가 본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군요.

이랜드가 인수했으니 뭔가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저기 들어갈 일은 없겠지만.

 

중학교땐가 학교 소풍때 여기 와서 3가지 탑승권 받아들고 뭔가 골라타던 그 때는 그래도 나름 재미가 있었는데 말이죠.

 

 

 

전체적으로 타워 쪽을 작심하고 띄워보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들 놀기에 좋은 공원에다가 각종 푸드코드, 놀이공원과 연계된 로프웨이 등등.

 

제 경우는 조카가 대구 내려와 놀러다닐 때쯤 한번 추천해주면 되지 않으려나 싶은 정도네요.

 

 

 

어쨌든 오랜만에 보는 우방랜드 모습이라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한장 더 남기고 갑니다.

아이때 가는 것과 어른이 되서 갈 때의 느낌이 너무나도 다른 곳이죠.

추억이라 할 만한 건 별로 없지만 어른 되서도 가끔 하늘보러 갈 수 있는 곳이 도심에 있으니 좋긴 합니다.

 

암튼 올해는 하늘 좋은 날이 평소보다 많아서 그나마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Photo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젠가 똥  (6) 2014.11.17
구글의 포샵실력  (12) 2014.10.01
하늘이 맑았던 날 좀 더  (4) 2014.09.26
하늘이 맑았던 날  (6) 2014.09.25
성층권 집들이  (6) 2014.09.05

 

 

 

잠자리는 2층의 적당한 방에 들어가기로 한다.

에전에 언급한 적이 있듯, 소야노 집안 남자들은 정리라는 개념을 우주의 특이점 만큼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1,2층 모두 합해 70평이 넘는 상당히 큰 주택임에도 어른 한 명이 누워 잘 공간 만들기가 쉽지는 않다.

 

한국에서라면 뭐,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수준인데

예전엔 덕분에 이 공기좋은 시골집에서 눈과 코가 따가워 죽을뻔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 연락을 미리 하고 갔으면 가족들이 일부러라도 내가 잘만한 곳은 치워 놨을 테지만

잡동사니에 둘러싸여 딱 한 사람 누울만한 공간에 밀폐되어 자는 잠이란 것도 의외로 안락한 편이다.

자전거 여행 당시, 1인용 텐트에 누워 있으면 내가 자전거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전륜 양쪽에 2개, 후륜 양쪽에 2개의 가방을 모두 뜯어서 텐트 안에 넣으면

자전거에 달아 놓았을 때와 똑같이 누워있는 내 상체와 하체 양쪽에 위치하게 되기 때문.

거의 몸에 밀착되다시피 하는데 그게 또 홀로 자전거 여행의 적막함을 꽉 채워주는 느낌이라 나쁘지 않았다.

 

밤에 비가 시원하게 쏟아져서 아침엔 서늘할 정도다.

소야노 아버지는 오늘도 일이 있어서 일찍 박물관에 나가신다. 2층까지 올라와서 나하고 악수한다.

 

쇼야 군은 게임이나 컴퓨터, 애니메이션쪽에 관심이 많아서 가지고 있는 장비도 어마어마하다.

사정상 소야노 부모님은 물건 사주는 데 있어서 별로 부족함이 없는 편이었고 (성인식 이후엔 어찌 될런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런 시골에서도 쇼야 군의 PC 는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최고급 사양을 자랑한다. 케이스 가격만 30만원짜리.

거의 1년 내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컴퓨터를 끄는 시간이 없으며, 토렌트나 위니 같은 공유 프로그램은 24시간 돌아간다.

쇼야 군이 2층에서 자던 곳이 이 컴퓨터 앞이고, 그 외엔 사람이 잘 만한 공간이 없었으므로 나 역시 PC 소음 들으며 잠을 잤다.

쇼야 군은 1층 소파에서 적당히 잤다고, 물론 잠자리 가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죄책감 느낄 정도는 아니다.

 

게임기도 쇼야 군과 동시대 녀석들은 전부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고, 아이폰, 아이패드, 노트북, 1080P 급 액션캠 등등 없는게 없다.

소야노 집안이 원래 가계가 부족하던 집이 아닌데다가, 어머니의 사고 이후 정부 보조금이나 세금 혜택도 많아져서

금전상 별로 부담되는 일은 아니었겠지만 쇼야 군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지는 짦은 인연의 내가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갖고 싶은거 다 사주는 응석이 아이를 망친다는, 아주 교과서적인 해설이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쇼야 군은 부모님의 이런 경제적 여유와 함께, 얼핏 보기에 과도하게 보이는 헌신적 마인드가 없었다면

홋카이도의 어느 시골에서 자전거를 탄 나와 만날 일은 영원히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사람과 가정에게는 당사자들 외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본질적 문제가 있고, 그건 옳던 그르던 자신들의 기준으로 해결을 봐야 한다.

 

 

 

잘 자라고 있는 논을 보니 2010년 생각이 난다.

8월부터 11월까지 생활한 키소 마을이다 보니 중간에 한창 추수철에 포함되었다.

소바집 사람들도 적지 않은 수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다 보니 휴일 맞춰서 일손 도와주러 가느라 바쁜 나날.

 

소야노 가족도 집 뒷마당에 자기 논이 있어서 1년에 한 번씩 기계를 빌려서 후다닥 끝내버린다.

원래는 이것보다 3배 정도는 컸지만, 소야노 어머니가 다친 이후로 관리도 힘들고 해서 많이 줄여버린 거라고.

이제는 이런 키소 마을이라도 농사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집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노령화가 계속되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가니, 논밭은 있어도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

예전에 비해 상당수의 논밭이 메밀밭으로 전환하는 중이라고. 메밀밭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마어마한 수확량을 보여주는 편이다.

다행이랄까, 나가노 현 주변엔 자연의 힘이 남아있어서 메밀은 그냥 쑥쑥 자라고, 소바로도 유명하니 그럭저럭 푼돈벌이는 된다고.

 

농기계는 한국의 농협과 비슷한 JA 에서 대여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대금을 모아서 대여한 후 날짜별로 돌아가며 사용한다.

괜히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기계를 돌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잠결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는데, 쇼야 군과 아버지는 벌써 한창 작업중이었다.

 

기계 덕분에 쇼야 군과 나는 그냥 가지런히 잘 잘린 뭉터기를 묶어서 구석에 몰아놓기만 하면 된다.

사람이 벤다면 세 명이서도 하루 꼬박은 걸릴만한 일을 1시간 30분만에 다 끝내버리고

바로 트럭에 짚단을 실어 탈곡기로 이동한다. 농촌 마을에는 여기저기 무인 탈곡기가 있어서 이제 힘쓸 일은 다 끝난 셈.

날씨가 더워서 겨우 짚단 수십 개 만드는데도 땀 좀 흘렸지만, 탈곡기에서 쏟아지는 햇쌀을 보고 있으니 뿌듯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쌀의 소중함' 이라는 말은 꺼내기만 해도 촌스러워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자기 방구석만한 공간만큼의 농사라도 직접 지어보기만 한다면

식사때 입으로 들어가는 쌀알이 얼마나 위대해 보이는지 실감할 수 있을 텐데.

거진 쓰잘데기없는 교육프로그램 몇 개 없애버리고 진짜 '자기가 지은 쌀로 밥 만들어 먹기' 프로젝트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탈곡기를 사용하고 나면 온 몸에 가루가 묻어 간질간질한데, 이 날 운좋게도(?) 온수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키소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냉수로 시원하게 샤워 즐겼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곳 키소와 마츠모토 등지에서는 가을이 되면 추수만큼이나 바빠지는게 송이버섯 따는 일이다.

일본 최대의 송이버섯 생산지인 마츠모토 주변엔, 버섯이 나는 야산 한두 개만 소유하고 있으면

떼부자라고 할 만큼 자생 송이가 잘 나오기로 유명하다.

 

개인 소유가 아닌 산에서는 마을 진흥회 회원들이 팀을 짜서 송이를 따낸 후, 균등 분배하는 식으로 운용한다.

송이가 자라는 산이라는 게 등산로가 존재하는 그런 상냥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요즘 키소 마을도 나이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소야노 아버지 정도 되는 분이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한다고 하니 가만히 넘길 문제는 아니다.

 

물이 좋아서 밥맛도 원래 심각하게 좋은 곳인데

내가 있던 2010년엔 송이버섯의 가격 파괴가 걱정될 정도로 너무나 송이 농사가 잘 되는 바람에

시장애 내다 팔 분량을 제외하고 가져오는 송이들마저 A급 이상의 무시무시한 녀석들이었다.

 

다듬기만 하면 거진 수백만 원 어치는 될 만한 송이를 산에서 담아와, 몇날 며칠을 송이 된장국, 송이 오곡밥, 송이 찜, 송이 구이 등으로 즐기곤 했다.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도 참 난감했는데, 이런 것을 그냥 막 먹으려니 부담감에 위에서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돈을 지불하려니 그냥 산에서 따 와서 연례 행사로 먹는 식사라 그 분들이 받을리도 없다는 점에서 진퇴양난이었다.

 

 

 

키소는 요즘들어 많이 더워졌다고는 하지만, 험한 산세를 낀 마을이라 여전히 밤이 되면 그럭저럭 서늘해 지는 곳이다.

웅웅거리는 컴퓨터 옆에서 쪽잠을 청하니 2010년의 출발 전 추억이 떠오른다.

 

많이 추워지던 시절이라 월동 준비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소바집 쿠루마야 분들과 회식하러 고기집에 갔을 때 선물로 이걸 건내주셨다.

당시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유명했던 그 유니클로의 히트텍.

일본에서는 1천엔 짜리 싸구려라, 광고는 굉장한 첨단기술로 만든 보온 내복인 것처럼 소란을 떨지만

그냥 한겹 더 입어놓으면 조금이나마 따뜻하겠지 하는 그런 수준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나를 위해 일부러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 주셨던 기억에, 옷보다 그 마음이 따뜻했던 추억이 남아있다.

키소에서 가장 가까운 유니클로 매장은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었으니까.

 

훗날 저 비닐봉투도 곱게 싸서 한국에 가지고 돌아왔다. 엄니는 주접을 떠는구나 하고 웃으셨지만.

 

 

 

자기 전 휴게소까지 내려갔다 오는 산책길에서도 예상치 못한 여러 만남을 갖는 게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했다.

휴게소 화장실 바닥에 이상한 녀석이 있어서, 일부러 돌아가 카메라까지 가져와 담아봤다.

소야노 아버지는 어릴 적 몇번 본 적이 있는 녀석이라고 갸우뚱 하신다.

 

여행중 만난 생물체에 대해서는 일단 알아보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훗날 귀국 후 여러가지 조사를 해 보니

제대로 된 이름도 붙여져 있지 않은, 산거머리의 일종이라고 한다. 거머리종이긴 해도 피를 빠는 건 아니고.

산 속의 습한 곳에서 생활하고, 물이 더러우면 그냥 녹아버린다고 하니 보기보다는 깔끔한 녀석인 듯 하다.

 

그 화장실 앞에서는 아시아 전 지역을 여행중인 이탈리아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키소 휴게소는 밤에도 문을 닫지 않는 무인안내소가 있어서 헝그리 여행자들에겐 훌륭한 휴식처가 된다.

대부분의 휴게소는 저녁 이후로 안내소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야외노숙이 되기 십상이지만

겨울엔 난방까지 틀어주는 24시간 무인 안내소는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곳. 이탈리아인도 행복해 하는 눈치였다.

 

 

 

비가 온 후의 키소 마을 역시 아침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이곳은 정말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해발이 높다보니 비구름이 자주 산기슭에 걸리는데, 이 풍경이 또 환상적이다. 특히 해 뜰때나 해 질무렵의 골든 타임에는.

 

소야노 군은 빡빡한 1학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터라 아침부터 꽤나 뒹굴뒹굴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슬슬 독립할 나이긴 해도 여전히 성인식 마치지 않은 소년이라

이 느긋한 키소 마을에서 빡빡한 도쿄에 상경해 전철 50분씩 타고 학원에 다니는 생활에 익숙해지기 쉽진 않을 듯 하다.

특히 도쿄같은 곳에서 만드는 인간관계는 소야노 군에게 큰 시련이 될 수도 있으니, 내색은 안하지만 조금 걱정도 된다.

 

두 달만 더 있으면 이 집앞 논마지기도 예전처럼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을텐데.

농촌의 사계절은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그 변화만 바라보고 있어도 삶이 바쁘게 느껴지는게 진짜 농촌.

 

 

 

여름날씨가 흉폭할 수록 거대 산골짜기 사이에 위치한 키소 마을같은 곳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날씨를 자랑한다. 폭우가 쏟아지고 나면 살을 꿰뚫는 햇볕이 뒤를 따른다.

기념 사진이라도 남기려고 카메라 들고 밖으로 나오니, 사진 찍기엔 최고의 날씨를 보여주고 있다.

 

소야노 군은 자신이 배우는 자전거에 대한 지식이 마음에 드는지 여러가지를 설명해 준다.

일본이 자전거 산업으로는 세계 최강에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문적으로 자전거 지식을 가르치는 곳은 없었다고.

자기가 2회 입학생이기 때문에, 꾸준한 노력과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시장 선점의 효과를 볼 수 있을거라 한다.

 

자전거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자전거 공학은 넓게 봐서 우주선 제작에까지 연결되는 기술의 결정체다.

어떤 소재든 실험할 수 있고, 그 반면 재료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가는 구조를 하고 있으며, 실전 테스트 역시 어렵지 않은 녀석이라

고분자 탄소강과 카본으로 프레임을 떡칠한 수백, 수천만원대의 자전거도, 실험용으로는 저렴한 편이다.

 

그 외에도 자전거는 사람 손이 여전히 기계보다 우위를 점하는 제작 분야라서, 도전할 가치가 충분한 시장이기도 하다.

소야노 아버지가 탔었고, 지금은 소야노 군이 산책용으로 사용하는 사진의 저 자전거도 60년대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모델.

소야노 군은 프레임을 이리저리 분해해 가면서 형태별 강도와 저항성 등에 대해 신이 나서 설명을 해 준다.

 

자전거 이론에 대해 듣는 것 역시 나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한번 파고들면 주위가 보이지 않는 열정을 보이는 소야노 군의 모습을 보는 것 역시 흐뭇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역시 반쯤 이쪽 가족이 되어버린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낮엔 대자연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곳이지만, 대자연이 이렇게 낭만적인 녀석인 것만은 아니다.

모든것이 풍성한 여름이야 모든 것들이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지만

가을이 넘어가면 이 풍경은 점점 가혹한 경쟁의 전장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겨울이 빨리 찾아오는 이곳에서는 10월에 들어서기 무섭게 하루에 한두 번씩 곰 출몰 주의보가 내려진다.

슬슬 먹을게 줄어드는 시기라 맷돼지는 물론이고, 평소에 보이지 않던 곰까지 마을 주변에 출현한다.

 

지금 사진 찍어대는 이 풍경조차 사실 소야노 집 5m 앞의 모습인데, 이런 풍경이 마냥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닌 것은 그 때문이다.

밤에 산책하러 갈 때도 괜스레 무서워 질 정도라, 자전거 여행 할 때보다 더 스릴넘치는 시간이기도 했다.

소야노 아버지가 밤에 산책나가는 나한테 강력 렌턴과 방울 한 쌍을 건네줄 때 정말 오싹할 정도였으니.

 

 

 

내가 이 집을 찾은 2010년 당시엔, 소야노 가족도 여러가지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시절이다.

소야노 어머니가 사고로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후, 수 년에 걸쳐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안 모든 구역을 베리어 프리로 바꾸고, 장애인 혼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샤워 장비도 갖추고.

 

중간에 시공업체가 계약기간을 준수하지 않고 돈만 받아먹어서 소송까지 갈 뻔한 시기도 있었고

업체측에서 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계약외의 앞마당 차고까지 하나 더 만들어 주던 시기가 바로 내가 도착했던 때다.

 

왼쪽에 슬쩍 보이는 저 차고는, 완공되는 당일 집에 놀러온 소야노 형이 그대로 갖다 박아버리는 바람에 찌그러졌지만

이번에 와 보니 박은 곳은 말끔하게 수리되어 있다.

추억이 사라진 듯 해서 약간 아쉬웠지만, 나와 소야노 가족은 멀쩡한 차고 기둥만 봐도 웃을 수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

 

 

 

소야노 군은 나하고 닮은 점이 없잖아 있어서, 오히려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알아차리는 부분이 있어 가끔 난감하다.

단지 14년의 시간이라는 차이만큼의 연륜이 나와 소야노 군의 간격을 조금이나마 만들어 주는 갭이라고 할까.

내가 잡아낼 수 있는 것을 소야노 군은 잡아낼 수 없고,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소야노 군 역시 지금의 내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야노 군의 말투와 톤, 대화 사이의 'pause', 대화의 흐름 등 모든 요소에서 미묘한 차이점을 느끼는 것.

소야노 군이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그 의도와 관계없이 대화 깊숙히 가라앉아 있는 사실을 잡아낼 수 있다.

괜히 소야노 군을 속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가끔 우울해 지지만, 이건 내 의도대로 생각할 수 없는 반사적인 행동이다.

 

단지 이번에 만난 소야노 군은 , 여전히 자신의 앞날에 대해 그리고 자신 스스로에 대해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의지와 그에 따른 준비를 차근차근히 실행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생애 첫 뿌듯함을 느끼는 듯 했다.

머리가 불안하고 어지러워도 두 발을 내밀다 보면 앞으로 전진하게 되어 있다고 슬쩍 말해준다.

사하라 사막에서도 느꼈던 사실이니 그것만큼은 조언해 줄 수 있다.

 

 

 

집안은 확실히 리쿠때문에 좀 더 냄새가 나고 지저분해 진 느낌이지만

워낙 애교가 많은 녀석이라 소야노 어머니 재활에도 도움이 되는 듯 하니 나쁠 거 없다.

 

소야노 집안 가족이다 보니 이 녀석도 왠만한 강아지 저리가랄 정도로 사정이 많은 녀석.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무려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 집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토이 푸들이라 몸도 굉장히 약해 어릴적엔 죽음의 고비도 많이 넘겼다고.

지금은 뭐 이쪽 가족들을 닮았는지 엄청 건강해 졌지만.

 

머리가 굉장히 좋고 순해서 기분 나쁠때 오줌으로 항의하는 것까지 잘 익힌 녀석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소야노 아버지에게 만큼은 끊임없이 짖고 물고 난리도 아니다.

장난인가 싶었는데, 한때는 옷도 찢기고 피까지 날 정도로 물린 적도 있다고 하니.

 

유독 소야노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만 그런 현상이 심한데

아무래도 이 녀석 머리에서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건강한 아버지의 이동 루트에서 뭔가 유추를 하는지도 모른다.

교정사를 불러 고쳐야 할 만큼 큰 문제도 아니라서 그냥 애교로 놔 두고 있는데, 소야노 아버지가 이 녀석을 엄청 좋아하니까.

 

수컷이라 그런지 남자를 좋아한다는데(?) 나를 굉장히 잘 따르고, 쓰다듬어주면 배를 발랑 뒤집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소야노 어머니를 제일 좋아해서 틈만 나면 휠체어 위로 뛰어올라가지만

어머니가 자기를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제서야 털털털 내 옆에 와서 풀썩 누워버리는 영리함도 보여주지만.

 

 

 

원래 엄청 깔끔한 타입이었던 소야노 어머니가 보시기에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집 남자들이 청소, 정리에 대해 초인적인 무신경함을 발휘하는 능력자들이라 사실상 포기 상태인 듯.

 

의료, 봉사쪽으로 활동을 오래 하신 분이라 생각의 전환이 빠르다는게 오히려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하반신 마비 후 자신이 마음대로 청소할 수 없는 집안 현실을 앞에 두고

한탄과 분노로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과, 살다보니 지저분한 것도 익숙해 지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맨날 노력이니 끈기니 포기하지 말라느니 하는 가증스러운 혀만 놀리는 소위 '멘토'라는 것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아서 그게 스트레스가 된다면 포기하는게 훨씬 낫다. 이것은 특히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의 치료와 큰 관련성이 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포기하면 안된다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건 그냥 수명만 깎는 길이다.

후천적 장애를 짊어진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고로, 2010년 당시보다 쪼금 더 어지러워져 있는 이 모습에 오히려 조금 안도가 된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하룻밤 신세 진 김에 바닥 한번 쓸고 닦아는 드렸다. 리쿠 오줌때문에 조금 찐득해 지려는 참이었으니.

 

 

 

새벽까지 비 온 후 그렇게도 화창하던 날씨가 또 한번 격변한다.

지나가는 소나기인 듯 하지만 아주 시원하게 쏟아주니 이건 또 이거대로 반갑다.

자연이 풍요롭기만 하면 어떤 상황이든 보기 싫은 모습은 없다.

 

이런 환경 탓인지 이곳 특산품인 옥수수는 진짜 맛있다.

적당히 노릇노릇 구워진 옥수수를 씹어물면 달달하고 진하게 고소한 맛과 탱탱함이 나를 즐겁게 한다.

 

옥수수는 보기와 달리 신선도가 매우 중요한 녀석으로, 수확 후 1주일만에 원래 맛의 70% 이상이 사라져 버리는 품종이다.

이곳에서 바로 딴 녀석을 찌고 구워서 먹었을 때 그 황홀함은 그 신선도의 탓일지도 모른다.

 

키소는 여름이 좀 늦은 편이라 아직 수확철이 아니라서 먹을 수 없었다.

TV에 나오는 '줄 서서 먹는 음식점'에서 30분, 한 시간씩 기다렸다가 후다닥 먹고 나오는 그런 체험보다는

차라리 옥수수 맛있는 곳에 차 타고 가서 제철 옥수수 따자마자 바로 구워먹어 보기를 추천한다. 차원이 다르다.

 

 

 

한 시간쯤 뒤에 출발해야 하는데 비가 쏟아지니 약간 난감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소야노 군이 자기도 오늘 성인식 정장 보러 마츠모토에 가야 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역 앞까지 차로 바래다 주시기로 하셨다. 아마 나름 신경 써 주신 것이겠지.

 

이럴 경우엔 극구 사양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소야노 어머니의 경우 감사의 인사 한번 하고 받아들이는게 낫다.

사고 후 4년만에 장애인용 자동차를 한 대 뽑으신 게 2010년이었는데

그 이후 연습을 많이 해서 어지간한 장거리 아니면 쉽게 운전이 가능하다고 하신다.

 

이동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자동차 운전이 굉장히 즐겁고 도움되는 치료법이기 때문에

걸어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역까지 태워주신다고 해도 내가 굳이 말릴 필요가 없다.

두 손으로 조절하는 엑셀과 브레이크의 감촉이 소야노 어머니같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뿌듯할까.

 

 

 

아침엔 산등성이를 타고 흐르는 물안개.

오전엔 풀내음 풍기는 짜릿한 여름 햇살에, 점심무렵엔 폭우로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니

한 곳에서 이동하지 않고 이렇게 셔터 눌러재끼는 재미도 참 각별한 것이다.

 

도시에서는 일 주일에 한두 번도 셔터 누르기 귀찮을 뿐이고

요즘처럼 밤에 온갖 트리와 전구가 빛나는 시기도 시큰둥할 뿐이었는데

이 곳에서는 카메라를 그냥 어깨에 걸쳐놓는게 더 편할 정도로 눈을 쉬게 할 여유가 없다.

 

이 앞에 바다만 있었다면 아마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은 지 몇 년은 지났을텐데.

대구 사람이다보니 역시 바다에 동경을 품고 있는건 당연할지로 모르겠다.

사실 소야노 군도 바다가 보고 싶어서 여행을 시작한 것이니, 내륙 주민들의 생각은 이런 데서 닮아있는 것일지도.

 

 

딱히 관광지역과 민간지역이 구분되는 곳은 아니지만 외곽으로 걸어갈수록 평범한 일본 민가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얼마 후엔 이런 곳에서 묵게 되겠지만 아직 실감나지는 않는다. 이 사진을 담으며 괜스레 조금 마음이 답답해진다.

 

특이하다는 점만 빼면 이곳 시라카와고에 서 있는 건물들은 다들 정겹고 아담하다. 주위 환경의 덕을 톡톡히 보는 듯.

 

 

 

정비를 하긴 했겠지만, 이곳에서 상수도 하수도의 개념이 있는건가 약간 궁금하긴 하다.

가끔 이곳에 손을 찰싹찰싹 담궈보는 관광객도 보인다.

 

물의 외견만으로 충분히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긴 해도

이런 개울 근처에 피어있는 식물들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물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냄새나는 물에는 뭔가 진득진득한 식물들이, 사흘째 야근하며 담배 피워댄 샐러리맨의 눈가에 드리워진 다크서클처럼 우중충한 색깔로 포진하고 있다.

어쩌면 그 식물들은 몸소 환경정화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사람의 좁은 아량으로는 그걸 보기좋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다른 갓쇼즈쿠리 가옥과는 뭔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싶었더나, 까페로 사용중인 녀석인 듯 하다.

담벼락을 대신하듯 여유있게 늘어서 있는 화분도 나름 자기주장을 하고 있지만

레이스의 끝자락같은 덩쿨 목걸이가 과하지 않게 까페 뒤쪽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역시 분위기로 먹고 사는 까페라 그런지 남다른 센스를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는게 느껴진다.

 

 

 

글쎄, 확실히 매력적인 디자인에 사람 발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유감없이 어필하고 있는데

돌아가는 버스가 2시간도 남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저기 들어가는건 괜히 아쉬움만 더할 듯한 기분이 든다.

 

좋은 까페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커피 여러잔과 함께 책 반권 정도는 읽을 정도의 시간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본인의 철학으로는

지금처럼 멋진 간판을 뽐내고 있는 시라카와고의 까페를 즐기기에 가장 부족한 것이 시간이라는 녀석이다.

여행중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시간에 쫓기는 일은 없도록 하고 있어서, 들어가면 쫓길 것이 분명한 까페는 살짝 기피 대상.

 

하지만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아쉬운 기분이 드는것도 아니다. 여행은 갈망하는 것이며 미련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겨울엔 좀 더 일찍 와서 따뜻한 커피로 손을 녹여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건 또 뭐하는 녀석들인지 모르겠다. 시라카와고가 이렇게 깨끗하다는 데몬스트레이션의 일종인가.

잘들 크고 있으니 확실히 깨끗하긴 하겠는데, 관광객들에게 어필하는 의미 이외의 뭔가가 더 있는 것일까.

 

혹시 이렇게 잘 키우고 있다가 식당에서 관광객 상차림에 올라오거나 하는 것인지.

이 수로 양쪽 끝에는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서 녀석들이 도망갈 수는 없다. 장식용이 아니라면 뭔가 이유는 있을듯 하다.

다음에 까페 들어가면 이런 거나 한번 물어볼까 싶다.

 

  

 

같은 곳을 여러번 찍지는 않는 성격인데, 저 까페에 역시 조금이나마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일까.

괜스레 자리를 떠나기 전 한번 더 둘러보게 된다. 커피가 그리운게 아니라 정말 참 잘 꾸며놨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언뜻 대문 바로앞에 논자락이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 가옥처럼 보여도, 확실히 까페라는 공간의 자기주장력이 스믈스믈 세어나오는 느낌.

 

2층 창가쪽이 꽤나 인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갓쇼즈쿠리 가옥은 이곳만의 전매특허니 침해하고픈 생각까지는 들지 않지만

밖에서 봤을때 기분좋은 까페 분위기는 다른 형태로라도 구성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멋진 까페 탐방같은 잡지에 한번쯤은 실려도 좋은 곳 아닐까.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걷다보니 가끔 관광객들이 가는 길과는 전혀 관계없는 곳으로 빠지기도 한다.

설렁설렁 걷다 보니 어느새 좁던 길은 그냥 끊겨버리고, 그 앞에는 어떤 민가의 앞마당과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다.

아직까지는 길 위에 있다고 하지만, 왠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빠져나온다.

 

빠져나오기 전에 건너편 가옥의 뒷마당 모습을 한장 담아본다.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지는 않은 이곳 사람들의 좁은 공간.

뒷마당이든 앞마당이든 이렇게 집 주위에 일정 공간이 있으면 그것만으로 사람은 여유를 느낄 수 있는듯 하다.

 

뒷마당에 나오자 마자 잘 여물어가는 벼이삭 풍경이 펼쳐지는 농촌생활이라면 꽤나 즐거울 것 같은데.

 

 

 

개인적인 영역이라면 앞마당 가꾸기, 주변 길가 청소하기 정도.

마을 공동체라는 영역에서는 가로수 정비, 도로 청소, 하천가 청소 등등

자본의 핏줄이 땅 속까지 흐르는 도시가 아닌 이상, 시골 마을은 알아서 부지런해져야 하는 일이 많다.

아직도 회람판 돌려가며 팀과 구역을 정해 종종 청소, 수리, 유지 등의 업무를 협동하는 시골 마을은 많이 있다.

 

아마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법한 일들도 없잖아 있다.

자연 속에서 산다는 건 디지털 TV 화면에서 물흐르듯 굴러가는 귀족적인 게으름과 전혀 다르다.

풍성하고 맑은 공기를 주는 대신 그만큼의 땀을 흘려야 굴러가는게 진짜 자연이라는 녀석.

 

이곳의 청결도나 정비 수준을 보면, 자연이 그들에게 배풀어주는 것 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이 정도로 유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남에게 맡기면서까지 바빠야만 굴러가는 도시라는 생태계에 비하면 좀 더 인간적이라 이렇게 정감이 가는 것이겠지.

 

 

 

좀 전에 얼핏 보였던 '시라카와고에서 가장 큰' 갓쇼즈쿠리 가옥인 와다 씨의 저택이 보인다.

앞서 말했든 입장료가 300엔이나 해서 굳이 들어가고픈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저기서 바라보는 풍경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공짜로 볼 수 있는 전망대 풍경도 원없이 안구신경속에 집어넣어놨으니까.

 

저기서 경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들어와 볼 만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다면

나 역시 저 사람들이 창가에 선 모습을 이렇게 담으며 '밖에서 보는 걸로도 괜찮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갓쇼즈쿠리 가옥이 얼마나 큰지 알아서 대비되어 주니 고마운 느낌도 든다. 창문이란게 그냥 창문이 아니다.

보통 거주용으로는 1층만 사용하고, 위층들은 창고로 사용하거나 방직 등 가내수공업에 사용되었고 하는데

그걸 감안해도 정말 보통 큰 건물이 아니다. 300여년 전에 한 가문의 가족 전체가 모여살던, 작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큰 건물이라는 느낌.

 

 

 

서두르지도 않았고 아쉬움에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지도 않은 산책은

점점 얼핏 시야에 들어왔던 듯한 풍경들이 다시 한번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하며 그 끝을 느끼게 한다.

 

충분히 이곳저곳 둘러보았고, 정감이 가는 풍경에는 5분이고 10분이고 멈춰서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등

관광을 즐긴다는 의미에서 부족함이 없는 시간을 보내왔지만, 아쉽다거나 부족하다거나 하는 생각이 아닌 이 감정은

아마도 '2013년 8월의 시라카와고' 라는 시간의 단면만을 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공백이 아닌가 한다.

 

수백 년간 이곳에 순응해 오고 저항해 온 마을 사람들이 남긴 실체적 흔적들은 관광객의 시선을 멈추게 하지만

그 이어짐과 별개로, 태양과 달의 움직임에 따른, 1년이라는 주기의 흔적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서 되풀이 중이다.

이번 방문에서는 그 이어짐을 경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돌아가는 발걸음을 살짝 무겁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 단면의 인식이 나의 여행에 대한 머릿속 정의에, 어느 의미에서 부합되지 않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 끌고 1년동안 일본을 돌아다니거나 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 틈나는대로 이 단편만이라도 즐기려 애를 쓰는 일반인이 되어 있다.

 

시라카와고는 자연의 권능이 남아있는 곳임에 틀림없고, 그 곳의 흐름을 끊김없이 느끼려면

지금의 나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다못해 다른 시간대의 단편이라도 더 느껴보려고 겨울 방문을 또 한번 생각해 본다.

 

물론 서두를 건 없어서 그게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몇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마음속에 메모를 해 두면 어쨌든 겨울의 시라카와고를 잊고 흘려보내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시라카와고의 풍경은 바닷바람의 강인함을 품고 있는 자연이 사람의 마을을 살짝 아플 정도로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라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건조 시기에 비해 거대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갓쇼즈쿠리 가옥과 함께

마을을 둘러싼 거대한 삼나무와 깎아지르는 산맥, 끊임없이 자라나는 생명력에 번갈아 눈을 빼앗기곤 한다.

 

사진을 담을때도 무의식적으로 조리개를 최대한 조이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 중 한 장면을 프레임 크기로 잘라내어

그 장면안에 들어간 모든 모습, 의식, 의지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기분으로 충만해 있었다고 생각한다.

풍경만큼이나 욕심을 내었다고 할까, 이곳은 이곳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나의 감성이 초라해 질 정도의 큰 그릇을 가진 곳이니까.

 

하지만 논 가장자리에 살짝 피어있는 수국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단렌즈의 조리개를 최대로 개방하여 한 장을 담는다.

담아내고 싶은 것과 담아내야 할 것, 그리고 그 만큼의 공간을 똑같이 비워내는 것이 사진이라는 사실을

이곳 시라카와고에 압도되어 한참 황홀해 하던 마지막 찰나에 다시 한번 되새겨 낸다.

  

 

이런 더운날 올라가기에는 심히 편안하다고 할 수가 없는 길이다.

멀리서 본 전망대 높이를 생각하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은근히 이 오솔길 경사가 급한 편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가빠온다.

몸무게 탓도 있고 카메라 탓도 있고. 건장한 사람이라 해도 5kg 짜리 숄더백 매고 오르는게 쉽지는 않을 듯.

 

 

 

그래도 친절하게 계단을 만들어 줘서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지만

왠지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기분에, 후세에 내가 여기 올랐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고 한다.

이렇게 찍어놓지 않으면 또 엄살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출몰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사실 날씨 탓이 가장 컸고, 여기는 그냥 동네 마실 나가는 수준밖에 안 되는 높이긴 하다.

 

 

 

근데 진짜로 좀 힘들긴 하다. 경사가 그리 만만한 편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치는 형태라서

이렇게 사진 한장 담아내는게 오히려 휴식시간이라 느껴진다.

 

훅훅거리는 숨소리와 후두둑 떨어지는 땀방울이 산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다.

다행히도 앞뒤로 나 말고 이곳을 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좁은 길목에서 사진 찍으며 좀 쉬어도 문제될 게 없었다.

노련하게 올라가는 사람들이 뒤에서 땀덩어리 본인을 지나쳐 갈 때, 가끔 계곡 너머로 몸을 던지고픈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저 곳을 돌면 확 트인 정상이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몇 번이고 배신당해가며 어쨌든 한걸음씩 발을 뗀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서도 느꼈지만, 어쨌든 발을 떼면 언젠가는 끝나는 일.

 

 

 

막상 정말로 평지가 나오고 나니 좀 맥이 풀린다. 사실 땀 좀 흘렸다 뿐이지 조그만 언덕 같은 곳일 뿐.

원래 성터였다고 하는데, 이런 외진 마을 어귀에도 성이 있었나 싶다. 이곳 성터에 대해서는 그리 알아본 적이 없었다.

 

산 위의 공터치고는 확실히 인위적으로 닦아놓은 흔적이 남아있는걸 보면 성이 있긴 있었나보다.

손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시원하게 땀 한바가지 흘리고, 그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앞에 펼쳐진 전망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시라카와고의 마을 전경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는 2~3군데쯤 유명한 스팟이 있는데

이곳은 오솔길을 따라 왔을 때 만날 수 있는, 제대로 된 펜스조차 없는 등산길 도중의 조그만 창문같은 느낌의 스팟이다.

 

가장 유명한 곳도 아니고, 여름의 생명력 덕분에 나무들이 워낙 울창하게 자라서 시야각이 제한되는 불편한 곳이지만

일부러 험한 길 올라왔다는 달성감도 있고 해서 한동안 머무르며 마을의 모습을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다.

 

가치가 있는 곳이니 그렇겠지만, 왠만한 농촌 역시 한국의 농촌보다 훨씬 정비가 잘 되어있는 이곳에서도

정말 예술적으로 가꾸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절경이다. 사실상 평범한 농촌이 아니긴 하지만.

 

 

 

좀 전에 화사한 커플 둘이서 열심히 사진찍던 그 건물을 이렇게 바라보니 느낌이 좀 새롭다.

논마지기 공간을 살짝 비집고 들어간 녀석인데 어쩌면 저렇게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거기다 같은 높이에서 걸어다닐때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돌길로 만들어놓은 농로의 깔끔함 역시 인상적이다.

겉으로는 농촌 마을같아 보이지만, 속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돈 많은 귀족들이 산책 즐기는 곳처럼 어느 한군데 세심히 손을 쓰지 않은곳이 없다.

 

 

 

한 국가와 그곳의 자연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 틀림없다.

일본 가옥의 평기와와 저 곧게 뻗은 삼나무가 어울린다면

한옥의 굽이친 기와 형태는 허리를 늘어뜨린 소나무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도시에서는 이미 어디가 한국이고 어디가 일본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해져 버렸지만

이런 시골모습만큼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나라별 특색이 사라지지 않는 듯 하다.

 

좋긴 좋은데, 이곳 아이들도 어릴때 나무위에 올라가 놀고 그러는 것일까.

내가 어릴적엔 올라가기 쉬운 소나무를 참 수백번도 더 오르내리고 했는데

여기 삼나무 잘못 올라갔다가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조그맣지만 꽤나 오래된 듯한 사당이 위치한 이곳 전망대에는

사람도 별로 오지 않고, 그늘 아래에 벤치가 하나 있어서 땀 식히기엔 좋다.

카메라를 내던지듯이 아무렇게나 퍼질려 놓고 벤치에 앉아서 땀을 닦는다. 손수건을 짤면 땀이 떨어질 정도로 허용량이 오버되고 있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앉아만 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서양인 관광객 부부가 이곳에 와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그사람들 눈에도 이런 풍경은 꽤나 신선하게 느껴질까. 한국과 일본에 비교하면 미국이나 유럽이나 산이 많은편은 아니라서

이 정도 산지에 둘러싸인 마을이 그리 흔하진 않을 법 하다.

 

그 부부는 실컷 사진찍고 난 후, 왠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나에게 와서 사진 좀 찍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한다.

찍어주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본인이 사용하지 않는 캐논 DSLR 이라서 조작이 항상 어색하다.

본인들이 오토모드로 해 두고 나한테 건네줬으니 그걸 바꿀필요는 없을 듯. 그냥 구도만 맞춰서 두어 장 찍어줬다.

받아들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고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이걸 또 붙잡고 '난 위대한 한국인이여~'라고 설명해주기도 귀찮다.

 

내가 그들을 미국사람인지 영국사람인지 프랑스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과 같이

그들도 내가 일본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니, 그걸 그들에게 수정해 줘야 할 의무감 같은거 느끼지 않는다.

 

 

 

이곳부터는 제대로 닦여있는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되는데, 가장 유명한 천수각 전망대에는 거대 식당과 가게가 포진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마을 아래서도 보이는 곳이고, 전망 해치지 않으려고 작업을 다 해놓은 곳이기 때문에 시야가 매우 시원하다.

 

마을 안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가게를 만들수도 없기 때문에, 이곳 전망대 가게는 압도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단체 관광이라면 이 곳을 놓칠수 없으니, 식당쪽에는 벌써 '2층은 예약, 단체손님 전용입니다'라고 써 놓을 정도.

 

전망대에는 쉴 수 있는 의자도 몇 겹이나 층층히 배치되어 있고, 펜스 바로 앞에서는 아무것도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그림같은 시라카와고의 사진을 마음껏 담을 수 있다. 앞에서 대신 사진 찍어주는 사람도 항시 대기중이며

물론 관광객 자신들이 가져온 똑딱이가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DSLR로 사람들 찍어주고 출력하며 돈 받는 일도 한다.

 

사진 찍어주면서 '치즈~' 대신에 '시라카와 고~' 하면서 주먹을 하늘로 올리라는 주문만큼은 좀 촌스럽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수가 없었긴 했지만.

 

 

 

임팩트라고 할까. 어쨌든 마을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곳 천수각 전망대에서 사진을 담지 않는 관광객이란게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 역시 귀찮아 죽을것 같은 렌즈를 화각별로 담아온 이유의 절반이 이곳 전망대를 위해서였으니까.

광각으로도 담고 망원으로도 담고, 관광객이 많이 오긴 해도 전망대 공간이 상당히 넓고

단체 관광객은 잠깐 구경하고 단체사진 찍고 훌쩍 가버리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도는 홀로여행자는, 무제한 회전초밥집에 앉아있는 기분으로 원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참 뭐랄까, 이런 폭발적인 자연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인공미의 깔끔함을 유지하는 이쪽 사람들의 특성은 신기하다.

깨끗하고 깔끔한 건 좋은데, 한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람 사는 냄새'라는게 좀 적다고 해야 하나.

사실 그거 조금만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고 지저분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어서 쉽게 적용하기는 어려워도

확실히 한국에 이런 자연의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면, 지금 이 모습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를거라 생각한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수십장도 넘게 담았지만, 블로그에 올릴 생각은 들지 않는다.

2D 화면에서 사진 구경하는 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더 많이 올린다고 이곳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마을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면 역시 직접 가서 느끼는게 제일 좋은 방법.

본인은 이 모습을 보면서 겨울의 시라카와고를 상상하고 있다. 눈으로 덮인 전망대까지 걸어서 갈 수 있을까 싶고.

사실 적지 않은 관광객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마을에서 여기까지 태워주는 버스 있대!'

물론 본인 역시 알고 있었지만, 이 마을을 돌아보는데 내연기관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아서 걸어 올라왔다.

 

겨울엔 방금 그 길 오르다가 인생이 좀 꼬일수도 있을 것 같아서, 버스를 이용해야 하나 고민중이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긴 했는데,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지금도 배가 눈꼽만큼도 고프지 않다.

여행중에는 그리 많이 먹는편이 아니긴 해도, 이만큼 더운날 돌아다니고 있어도 허기지지 않는다는건 좀 신기하다.

그래서 전망좋은 전망대 앞의 식당에도 들어가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고, 시원한 음료수나 하나 뽑아 마신다.

 

타카야마로 돌아가는 버스가 오기까지 2시간 30분쯤 남았는데, 시간은 충분해도 뭔가 가게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결론은 대충 납득이 간다.

시라카와고에서는, 더운 여름날 에어콘 켜진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추운 겨울날 살짝 따뜻한 가게로 들어가는게 더 어울리기 때문에.

 

여름이 본인에게는 참 버티기 힘든 날이라는게, 건물 안의 인공적 에어콘 바람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울엔 난로나 보일러 강하게 돌리지 않아도 집이라는 건물 자체가 어느정도 단열효과를 내기 때문에

들어가 앉아도 살짝 추워서 손바닥을 한두 번 비벼주는 정도가 딱 좋다. 거기서 식사 한끼 하면 몸이 포근해 지니까.

그런 면에서, 겨울이라도 난로나 히터 팍팍 틀어버리는 가게는 들어가기 싫다.

 

느긋하게 풍경 바라보며 휴식 취하고 나서 반대쪽 길로 내려간다. 반대쪽은 자동차로 통과할 수 있을만큼 반듯하게 닦인 아스팔트 도로.

마을 어귀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난이도는 훨씬 낮다. 올라올 때 이쪽으로 왔으면 몸은 편했을 듯.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길은 아니라서, 내려올 때 느긋하게 내려오는 쪽으로 사용해도 불만은 없다.

 

진짜로 물이 풍부한 곳인지, 내려가는 도중에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 놓은게 보인다.

 

 

 

마을 어귀를 빙글 돌며 내려오는 길이라서, 마을 속에서 헤엄치며 담던 사진의 시각과는 또 다른 맛의 결과물이 나온다.

슬슬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는 시점이라 그런지, 이런 길에서 숨듯이 걸어가며 저 너머의 모습을 담는 것은, 일종의 휴식과도 같은 시간.

 

 

 

이제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다시 한번 마을의 모습을 눈으로 담아내면

그리 넓지 않은 시라카와고 여행은 끝이 난다. 그림같은 풍경과는 별개로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하고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관광객들의 씀씀이를 기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식욕이 안생기는데 어쩔 수 없다.

 

 

 

도시에서는 설사 농사터가 있다고 해도 땅이 아까워 이렇게 꽃밭을 만들기는 힘들 텐데.

판매용으로 키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뒤뜰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만 자연스럽게 자라는, 약간 무질서한 꽃들의 모습이 더욱 반갑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꽃밭을 키우는 갓쇼즈쿠리 가옥 역시 살짝 힘이 풀린듯한 모습이 더욱 잘 어울린다.

 

 

 

좋은 마을은 물이 맑은 마을이라는 말은 세계 어느곳에서도 통하는 진리.

좋은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과 나쁜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은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난다.

애초에 나쁜 물을 마셔도 자라는 녀석들은, 그만큼 터프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녀석들이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람 입장에서는 역시 진드기나 벌레 잔뜩 꼬이는 녀석들보다는 좀 순해보이는 녀석들이 더 마음에 드는것도 사실.

 

이곳은 자연 환경에 비하면 기분나빠질 만한 벌레가 별로 눈에 안 띄는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공원처럼 인위적으로 디자인해서 만들어낸 아름다움과는 전혀 별개로

자연의 생명력뿐 아니라 사람의 생명력까지 느껴지는 이곳 풍경은, 조화라는 면에서 굉장히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여행에서 가장 큰 볼거리라면 역시 자연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곳 시라카와고는 그 두가지가 배합되는데 있어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훌륭하다.

관광객들이 오고가며 감탄해 하는, 마을 사람들이 남겨놓은 인간의 모든 흔적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더 예쁘게 보이거나 하는 인위적인 색이 아닌, 순수하게 생활하기 위한 노력과 조화의 흔적이라는 점이 말이다.

 

사람들이 풍경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아름다움이란, 결국 원래 그렇게 있던 것들이 가지는 자연스러움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