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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東京'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1.18  도쿄 산책 - 카모메식당의 고향 10
  2. 2013.01.12  도쿄 산책 - 진짜 여행괴짜들 18
  3. 2013.01.11  도쿄 산책 - 요코하마의 비밀 아지트 18
  4. 2013.01.07  도쿄 산책 - 관광, 식사, 그리고 쇼핑 18
  5. 2013.01.06  도쿄 산책 - 스카이트리 좀더 20
  6. 2013.01.04  도쿄 산책 - 스카이트리 14

 

이시다씨가 추천해준 요코하마의 관광지는 라멘박물관이라는 곳.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다. 자전거 여행때도 이곳에서 발을 멈췄다면 분명 그곳부터 들러봤을 듯.

하지만 자전거 여행 마지막에 들른 요코하마인데다, 며칠전 온천으로 유명한 아타미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뒤라서

이런 번화한 도시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그냥 통과한 후, 고양이들이 기다리는 느긋한 섬 에노시마에서 마지막 노숙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라멘박물관이란 건 확실히 군침이 돌긴 했는데, 그거 하나만을 위해서 요코하마까지 갈 필요가 있나 하는게 이전까지의 생각이었고

도쿄 오다이바의 라면국기관, 홋카이도 삿포로의 라면공화국 등등과 별로 다르지 않은 곳일거라는 판단도 들었다.

확실히 각 지역의 다양한 라멘을 일정 수준 이상의 맛으로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지만

어설프게 옛날 마을 분위기를 흉내낸 그런 라멘전문점이란게, 관광 스팟으로 지정할 만큼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시다씨가 너무나 흔들림없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라멘박물관을 추천해 주니

이건 내가 알고있던 다른 지역의 그렇고 그런 라멘가게 모음집과는 다르다는 예감이 든다.

이 사람이 오다이바의 라면국기관 같은 곳을 나한테 추천할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니.

 

슬쩍 떠보는 말투로 라멘국기관 같은 곳이냐고 물어보자, 분위기는 그런 곳인데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일본에 존재하는 그런 류의 라멘판매점의 원류가 되는 곳이 이곳 요코하마의 라멘박물관이고

다른 곳과는 비교하는게 부끄러울 정도의 퀄리티라고. 볼거리도 많지만 입점해있는 라멘가게들의 실력 역시 전국 최상위권이란다.

라멘의 성지같은 곳이라서, 그곳에서 점포는 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맛을 인정받을 정도.

 

얼핏 관광가이드에서 봤을때는 라멘공화국 등등과 별로 다를것 없나 싶었는데

역시 가이드에서 선전용으로 떠드는것과는 차이가 있나보다.

 

일행들과 차례차례 헤어지고, 활기넘치는 여성 한분이 갈아타는 곳 가르쳐 주겠다며 함께 했는데

전광판에 적혀있는 단어로 보건데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요코하마 거주중인 사람이 가자는데로 따라갔다.

하지만 역시나 그쪽의 착각으로, 갈아타야 할 곳을 지나쳐서 한 정거장 더 와 버렸다.

아무리 요코하마 거주중이라도, 술의 위력에는 다들 계란 말이가 되는 법.

중간에 발이 휘청해서 내가 부축해주기까지 했으니. 결국 그 여성분은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별로 화난건 아니고.

그래도 이 사람들 딴엔 한국서 처음 오는 사람을 위해 최대한 가이드를 해 주려는 마음이었으니.

 

그 자리에서 내가 술을 제일 적게 마셨기 때문에, 사실은 내가 그사람들 배웅가줘야 아닌가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모두와 헤어지고나서 한정거장 돌아와 신요코하마역으로 이동한다.

일본의 적지 않은 대도시가 그렇듯, 도시 이름이 들어가는 역보다 '신' 이 앞에 붙은 역이 더 화려한 경우가 많다.

낮에 왔다면 이런 호화찬란한 쇼핑몰에서 시간 보내는것 역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오늘은 이시다씨 토크 라이브 듣는데 모든 시간을 다 할애했으니까. 물론 후회는 없다.

 

 

 

대강 신요코하마역에서 동서남북만 계산해서 무작정 걷는다.

 

혼자 여행할 때의 나쁜 버릇이라면 나쁜 버릇인데, 지도같은거 그냥 머릿속에 잠깐 그려볼 뿐이고

대강 목적지가 표시된 방향으로 그저 걷고 걸을뿐. 그래서 목적지를 지나치는 경우도 많고, 빙 둘러서 시간 걸릴때도 많다.

하지만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여행이기도 하고, 그렇게 의미없이 걸어다니며 그 지역의 분위기란걸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낄 수 있으니까.

목적지만을 향해 돌격 앞으로 하는 여행은 역시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여행만으로 족하다.

 

그런고로, 이번에도 한바퀴 빙글 돌아서 라멘박물관에 도착. 마음먹고 찾으려고 했어도 그리 쉽게 찾을곳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냥 발걸음 가는대로 걸어가던 내 앞에서, 일가족들이 두리번거리며 라멘박불관 찾고 있는 모습을 봤으니까.

특히나 밤에 오게되면, 정말로 겉에서 봐서는 어디가 라멘박물관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평범한 현대식 건물이다.

 

너무 평범해서 외부 사진 찍을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그냥 들어가 버렸으니까.

다른 지역의 라멘 테마파크와 달리 이곳은 입장료라는게 존재한다.

어차피 라멘도 돈내고 먹어야 하는데 어째서 입장료가 따로 필요한건지.

하지만 그건 도쿄나 삿포로의 라멘 파크에서나 통하는 말이고, 이곳은 입장료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이시다씨가 추천해 줬으니.

저녁 8시 30분은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지만, 일본에서라면 대다수의 관광지는 폐점했을 시간대라서

휴일이지만 입장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정도면 라멘 먹을때 줄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을 듯 하다.

 

맛있는 라멘은 너무나 좋아하지만, 아무리 맛있어도 몇십분씩 기다려 식사하는것에는 큰 거부감을 느끼는 성격이라서

이런 곳에 올때면 항상 긴장하게 된다. 특히 점찍어놓은 라멘가게가 있다면, 그곳을 포기할것인가 줄서서 기다릴것인가에 대한 문제로까지 번지기도 하고.

 

박물관에 들어가자 라멘을 파는 가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 프라모델샾에 들어온거 아닌가 싶은 풍경이 펼쳐진다.

슬쩍 둘러보니 아무래도 1층은 그냥 출입구 + 기념품점 정도의 역할만 할 뿐이고, 본격적인 구경은 지하로 내려가서 시작하는 듯.

 

입구 앞의 거대한 대자보에는 카모메식당이라는 단어와, 그 주위를 무수히 감싸는 응원댓글이 빼곡히 적혀있다.

카모메식당이라는 단어만 봐서는, 어째서 이렇게 대자보에 붙어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바로 위를 보니 금새 이해가 된다. 이 카모메 식당은 미야기현 케센누마(気仙沼)의 대표로서 이곳 박물관에 입점한 것.

 

케센누마는 지난 후쿠시마 대지진때 가장 극심한 피해를 받은 곳이다.

지진 당일 자정무렵부터 방송되던,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케센누마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지옥이라는 표현밖에 생각나지 않는 모습. 오일 탱크가 터져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암흑과 불길 뿐.

인구 7만 5천의 아늑한 항구마을은, 인구의 80%인 6만명이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이곳 카모메 식당은 원래 케센누마에서 유명한 라멘집이었다는데

케센누마 복구를 위해 케센누마출신의 도쿄 라멘집 사장님이 이곳에 입점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카모메 식당을 응원하기 위해 한마디씩 힘을 보태고 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본 사람들도 많을거라 생각하는데, 현실은 훨씬 잔혹할 뿐이지만

그래도 역시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게 되는 것은, 사람들의 유대감 밖에 없다고 본다.

영어는 물론 아랍어인지 러시아어인지 모를 언어도 적혀있는걸 보니, 뭔가 굉장하다는 생각.

 

 

 

대자보 반대편에는 뭔가 다양하기 그지없는 라멘 소개가 벽면 가득히 펼쳐져 있다.

한국 역시 라면시장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스턴트 라면이고

이곳에서는 라멘도 하나의 요리에 들어가는터라, 기상천외한 비법과 조합을 가진 라멘이 수두룩하다.

 

맛이 있을지 없을지는 둘째치고, 일단 이 정도 다양한 라멘이라면 한번씩은 먹어봐야 평가라도 할수 있을텐데.

이 날은 이시다씨 토크 라이브가 목적이었고, 라멘박물관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여흥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본 최고를 자랑하는 지역 라멘들의 각축장인 이곳에 오니, 역시 아쉬운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한그릇밖에 못먹을테니까. 아무래도 요코하마에 다시 가봐야할 이유가 생기는 듯 하다.

물론 아직 이곳 라멘을 먹어보지 않았으니, 그냥 입소문 뿐인 곳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맛에 대해서 여행만큼이나 일가견이 있는 이시다씨가 적극 추천한 곳이니 맛없지는 않을거라 생각은 한다.

 

 

 

늦은 녀석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탓일까

루트를 완전히 거꾸로 잡아서, 라멘 다 먹고 다시 올라올 때 들러야 할 기념품점으로 들어가버렸다.

어차피 여기서 라멘 사갈 생각은 없으니 큰 문제는 없다.

 

지하에서 경합중인 라멘가게들의 면과 스프 등이 가지런히 포장되어 전시중이다.

일단 면과 스프 육수 등등, 모두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녀석들이라 확실히 인스턴트보다는 맛있겠지.

하지만 인스턴트가 아닌 고로, 한 봉지 8천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한다.

이렇게 되면 가게에서 다 만들어져 나오는 녀석과 가격차이가 거의 없다.

직접 집에서 만들기엔 너무나도 손이 많이 가는데, 거기다 가격까지 이 정도니...

물론 남에게 선물하는 용도로는 나쁘지 않을듯 하다. 어쨌든 이곳 외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특산품이니까.

 

 

 

라멘박물관은 1994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라멘 테마파크로

세워진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1950년대 후반의 도쿄 거리를 매우 훌륭하게 재현해 놔서

라멘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 재현된 길거리 풍경에 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추억을 가장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곳이라서 그런지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어린시절 로망을 불태웠던 장난감 자동차 서킷이 1층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영업시간이 끝나서 레이스의 열기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어릴때 봤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큰 서킷이 인상적.

나 어릴때는 이런 서킷이 없어서 그냥 자동차나 조립해서 아파트 놀이터에서 달리곤 했었는데.

 

워낙 본격적인 서킷이라 그런지 상금이 걸린 대회도 벌어지는 듯 하다. 구경만큼은 한번 해보고 싶다.

 

 

 

라멘가게의 도구들. 실제로 1960년대에 쓰이던 것들이긴 한데

옛것을 바꾸길 싫어하는 일본의 특징답게, 사실 지금도 상당수의 라멘가게에서 당연한듯 사용중인 것들이다.

 

일본은 특히 음식가게 점원들의 목소리가 큰게 특징인데

주방 사람들은 손님을 맞이하러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찌렁찌렁 울리는 '어서옵쇼!' 가 고육지책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굳어져서, 접대 목소리가 작으면 매상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

 

물론 현대식 식당이나 고급 일식당, 양식당 등에서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규동이나 라멘등의 서민음식점에서의 이야기.

 

 

 

이곳 라멘박물관에 적혀있는 빼곡한 지역별 라멘 연대기를 다 읽어보려면

최소 몇시간은 걸릴 듯 해서 포기하고, 나도 알고있는 일본의 4대 라멘을 담아본다.

 

삿포로의 미소라멘, 도쿄의 쇼우라멘, 키타가타의 쇼유라멘, 큐슈의 돈코츠라멘.

키타가타는 도쿄에서 그리 멀지않은 거리라 특색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아침식사로 라멘을 먹을 정도로 라멘매니아가 많기도 하고

곱슬머리에 가까운 꼬들꼬들한 면발을 유지하는게 그쪽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통 키타가타 라멘은 도쿄 라멘과 확실히 다르다.

 

2008년 자전거 여행때는 키타가타 라멘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우연히 그곳의 조그만 식당에서 먹었던 라멘과 교자의 맛은

내가 뭔가 숨겨진 맛집에 들어온건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맛있어서, 처음으로 키타가타 라멘의 위용을 실감하게 해 줬다.

 

글쎄, 한국사람 입맛에는 삿포로와 큐슈의 라멘이 들어맞지 않을까 생각은 해 보는데

짠걸 못먹는다는 사람은 일단 일본라멘이란 것 자체를 포기해야 하니까.

본인 역시 기분같으면 하루 네 그릇 정도 라멘을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것 같지만

나트륨 덩어리인 일본 라멘을 그러게 먹다간 정말 죽어버릴것 같기 때문에 참고 있을 뿐이다.

 

여행 자전거 여행때는 별 걱정없이 하루 두 그릇 정도는 헤치웠다. 땀을 워낙 많이 흘렸으니까.

 

 

 

1층엔 대자보, 기념품점, 라멘의 역사, 레이싱 서킷 정도가 볼거리다.

사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서, 아직은 별 감흥이 없다.

 

하지만 이 서킷만큼은 정말 굉장하다. 장난감 레이싱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국민학교때는 프라모델 조립으로 돈 꽤나 날렸던 역사를 갖고 있는 본인이라서

가끔 서킷을 갖춘 곳을 찾아가서 구경하곤 했는데, 이 서킷은 여지껏 본 녀석중에서 가장 큰 녀석이라 놀랐다.

 

8살~13살 정도의 나이에 이곳을 부모님과 함께 찾아오게 되었다면, 이 서킷에서 자기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꿈꾸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서킷을 달리는 자동차보다, 색바랜 채로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프라모델이 더 눈길을 끈다.

대부분이 자동차 종류이긴 한데, 단순한 최신 제품이 아니라 분명 빈티지급으로 보이는 녀석들도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극히 평범한 건담류 프라모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동차 중심, 물론 RC 헬리콥터 같은 녀석들도 있다.

 

나이 들어도 이런 취미 가진다는거, 사실 꽤나 동경하는 성격이다. '어른이' 혹은 '키덜트'라는 표현도 칭찬으로 들린다.

나이 처먹어야 생기는 취미라는게 딱히 더 엘레강스하고 럭셔리하게 보일 이유가 있나 싶으니까.

이런 걸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인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1층 구경을 대강 끝내고 본격적인 라멘 탐방을 위해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로 향하는 통로는, 마치 목욕탕 입구를 보는 듯한 타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이 바글바글할때는 몰라도 혼자서 이렇게 내려가고 있으니 괜히 부담된다.

영업시간은 확실히 확인하고 왔지만, 유명하다는 곳에 이렇게 사람이 없으니 그건 그거대로 겁이 나는 법.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 순간부터 과거로 시간여행하는 기분이 들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모두 철저하게 50~60년대풍을 연상시키는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때묻은 거울과 낡은 맥주 간판, 의도적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몇개 빠져있는 바탁 타일까지.

 

일단 여기까지만 봐도, 오다이바나 삿포로의 라멘 테마파크들과는 위용이 다르다는걸 실감할 수 있는데

과연 이시다씨가 극구 추천해 준 이곳의 본모습이 어느 정도일까 점점 기대가 고조되는 듯 하다.

 

 

30여명이 몰려서 혼잡스럽던 가게를 대충 정리하고 일반 고객들도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돌려놓는다.

8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자 이시다씨가 이곳 Mirai 의 주인장분을 소개해 주셨다.

 

이곳 주인장분은 남극의 오로라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빠져들어서

29세때 남극에 간 후, 호화여객선 '아스카'에 일식주방장으로 들어가, 배로 세계일주 9번, 반주 12번, 세계 70여개국을 돌아다니셨다고.

2년전에 이곳 요코하마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차리고, 여행 매니아나 여객선 매니아들이 모여들 수 있는 곳을 목표로 하고 계신단다.

 

좁은 레스토랑의 벽이란 벽은 주인장분이 타고 세계를 누볐던 아스카호의 모습과, 영롱한 남극의 야경사진이 빼곡히 걸려있다.

실제로 남극기지에서 생활한 적도 있다고. 이건 뭐, 이시다씨 이야기 들으러 왔더니 가게 주인장부터 보통 인간이 아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여객선 셰프라는 직업상 요리는 상당한 수준급.

일식 주방장이었다고 하던데 특이하게도 일식과는 그닥 관계없어보이는 인터내셔널 푸드가 많다.

 

그중에서도 추천하는건 남극 드라이 카레라고 한다.

원래 일본에서 드라이 카레는 우편물을 우송하는 우편선에서 만들어먹기 시작한 것이 원류로

100년에 달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선박여행 식사메뉴중 전통있기로 유명한 녀석인데

주인장분의 경험을 살려서 개량, 남극 드라이 카레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사실 토크 라이브 중에도 드라이 카레를 주문해서 먹는 사람들이 있었고

주인장분도 마음껏 시켜먹어주시면 가계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처음부터 뒤풀이 참가를 계획하고 왔고, 돈 아끼려고 조식을 마구 퍼먹고 온 터라 주문은 하지 못했다.

 

사실 왕복 교통비, 토크 참가비, 뒤풀이비, 필수 음료 주문비 등등...

여기 오기위해 투자한 금액을 전부 합치면 거진 10만원 정도는 나오기 때문에, 가난한 나로서는 무시하기 힘들다.

애초에 항공권조차 공짜인 여행이라서 6일간의 도쿄 체류 총비용이 40만원정도였고, 그 1/4 을 이곳에서 써버린 것이니.

제대로 된 요리는 인스턴트 풀어서 던져주는 싸구려 요리와는 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 레스토랑의 요리 수준을 보면, 가격이 비싼것도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볶음밥 위에 스팸을 구워서 김으로 살짝 싼 이곳의 인기메뉴 스팸초밥이 한국돈으로 2개 9천원이나 할 정도로

독특한 맛체험에는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에, 극빈여행중인 나로서는 선뜻 주문하기 힘든 곳이다.

 

다음엔 자금을 좀 넉넉히 들고 가서 (아무래도 여행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면 좋을텐데)

이곳에서 진득하게 세계 각지의 레어 맥주와 함께 식사를 즐기며 이야기를 좀 했으면 싶다.

 

뒤풀이 식사는 천천히 조금조금씩 메뉴가 코스로 나왔는데, 그중엔 드라이카레를 밀가루피에 싸서 튀겨낸 녀석도 있어서

다행히 이곳의 최고 인기메뉴 드라이카레를 잠깐 맛이라도 볼 수 있었다. 진한 향기가 콧속까지 확 퍼지는게 느껴진다.

 

 

 

일본은 일본이다보니 양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다양한 메뉴가 차례차례 나오는 덕에

조금씩 조금씩 맛을 음미하는데는 더할 나위 없다. 혼자 와서 이런 메뉴를 전부 맛볼수는 없을텐데

뒤풀이 개념으로 단체식사를 하니 여러가지 맛 볼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단 이시다씨와 와이프분은 그러려니 하고 재쳐두더라도, 이곳에 남은 나머지 6명이라면

당연히 여행을 싫어할 리가 없는 매니아 계급이라서, 서먹서먹한 첫인상 역시 여행 이야기로 풀어나가는게 제일 쉽다.

가뜩이나 낯가림이 심한데, 일본인들 사이에 혼자 끼여있다보니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수가 없었는데

다행히도 맞은편의 청년이 스스럼없이 가볍게 말을 걸어줘서 혼자서 황야의 늑대 역할을 하지 않고 참가가 가능했다.

 

이야기의 중심은 이시다씨가 될 경우가 많았지만, 다들 한사람씩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서로에 대해 물어보고 하다보니 이시다씨도 그냥 평범한 동아리 회원같은 느낌으로 끼어들어온다.

세계일주에 대한 의문점에는 당연히 이시다씨가 이이기를 이끌어가지만, 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여행 초보자는 아니니까.

 

남성 5명, 여성 3명으로 이루어진 인원이었는데, 젊고 약간 수줍은듯한 여성분 외에 나어지 한 분은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남편마저 질질 끌려갈만한 행동력넘치는 분인듯 하다.

여행 별로 가본적 없는데~ 라는 식으로 운을 떼도, 막상 들어보면 남자 저리가랄 정도로 갈곳은 다 가보는 듯.

 

이시다씨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주인장분한테 그거 없냐고 물어본다.

한 명당 한 잔씩 돌리기엔 아무래도 가격이 가격이라서 불가능하고, 주인장분이 위스키로 보이는 술을 얼음과 함께 한잔 내놓는데

이 얼음이 1만 5천년전 만들어진 남극의 얼음이라고 한다. 다들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귀하신 몸의 행차에 주목한다.

 

단순히 남극의 얼음이라는 점 때문에 귀한게 아니고, 이 1만 5천년전의 얼음은 미네랄 워터와 달리 불순물이 거의 포함되어있지 않은

소위 자연발생한 증류수와 같은 얼음이라는 것. 그래서 위스키의 맛에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에 매니아들에게 호평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녀석은 눈이 내려 쌓이고 쌓인 압력으로 생성된 얼음이라 보통 얼음보다 기포가 훨씬 많다.

그래서 위스키에 이 얼음을 사용하면 그 구멍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기포덕에 맛이 부드러워진다고. 이름값이 아니라 진짜 고급얼음이란다.

 

 

 

다들 귀를 한번씩 대 보고 조금씩 마신 후 옆자리로 넘긴다. 나를 제외하면 다들 술 굉장히 좋아하는 듯 해서

음식 먹는 도중에도 각자 술을 마구마구 주문해서 마시고 있는데, 이 녀석은 워낙 귀해서 그렇게 마실수는 없는 듯.

 

맞은편에서 가볍게 말걸어줘서 나를 도와주는 세이야 씨가 친절하게도 그 술을 들고 포즈를 취해 준다.

얼굴근육이 굳어버린 나와는 달리 표정이 아주 크게 변화해서 사진 찍는 맛이 난다.

나야 뭐 술맛을 잘 모르지만, 귓가에서 느껴지는 탄산소리와 함께 가볍게 넘어가는 위스키 맛이 훌륭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세이야 씨는 25살 쯤 되었나, 15살때부터 자위대에 들어가서 지금은 이곳 요코하마 근처의 해군기지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이시다씨 책을 읽고 팬이 되서 자주 만나다 보니, 이시다씨는 이분을 '고릴라'라고 부른다.

'세이야'라는 이름은 '聖夜' 라고 쓰는데, 감이 잡히는 분도 있을 듯.

생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사람의 쾌활함에는 부모도 한몫 한 것 같다.

 

얼핏 봐도 쾌활한 청년으로 보이는데, 실상을 파고들어가보니 쾌활한 정도가 아니라 좀 무서운 사람.

어느날 좀 심심해서 무단으로 자위대 빠져나와서 자전거로 신나게 무단여행중에

도랑에 크게 굴러떨어져서 무릎뼈가 깔끔 깨끗하게 살을 찢고 튀어나오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고.

그런데 병원 가면 무단 탈주한게 자위대 귀에 들어갈까봐 겁이 나서 그 튀어나온 뼈를 그냥 손으로 다시 집어넣고

거기다 스카치 테이프를 둘둘 두른 후에 그냥 복귀해 버렸단다.

 

그러고 몇주 지난 후에야 병원을 다시 찾아서 무릎에 철심 하나 박아버렸다는 기묘하고도 이상한 이야기.

사람들이 믿질 않으니 바지 걷어서 그 날의 상처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거 사람 맞나?

 

그만큼 활동력도 있고, 체력은 거의 괴물같은 사람이라서, 맘만 먹으면 세계일주같은건 그냥 취미활동으로도 끝내버릴 듯 하다.

오키나와 출신이라고 하는데, 역시 지역 특유의 쾌활함은 사람의 DNA 속에도 녹아있는 것일까.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자긴 바보라는 말을 쉽게쉽게 꺼내곤 하는데, 이런 건 바보가 아니라 순수하다고 표현하는게 나을것 같다.

내가 '일본에서 이렇게 주절거릴때, 뭔가 틀리게 말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무심결에 조심하게 된다' 고 말을 하니

'일본사람들도 다 틀리게 말해요' 라고 웃더라. 사실 내가 배운 문법을 적용시켜보면 그 말이 틀리진 않다.

 

하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 그 나라 말을 제일 잘못 사용하는건 언제나 그 나라 사람이다.

 

 

 

내 바로 옆에 앉은사람은 척 봐도 아티스트같아 보이는 사진가 신 씨.

주드 로 같은 살짝 벗겨진 머리에 가늘고 긴 체형, 머릿속에 그려지는 포토그래퍼의 전형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카메라 갖고 온 사람도 나와 신 씨밖에 없었다. 캐논의 5D Mark 2 를 들고 있다.

명함을 한장 받았는데, 뒷면은 자기가 찍은 흑백사진을 멋지게 인쇄해 놨다. 나도 이런 명함 하나 만들까 싶었는데

명함 뒤에 당당하게 내밀만한 작품이 없으니 좀 더 노력한 후에나 생각해 봐야 할듯.

 

이분도 여행을 좋아해서 자전거로 중국에서 시작해 인도까지 몇달 달려봤는데

좀 더 제대로 하고 싶어서 돌아온 후, 이시다씨같은 세계일주를 계획중이라고 한다.

다들 이렇고 그렇고 한 여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내는걸 보니

혹시 나는 여기 낄만한 인간이 아닌건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 시작한다.

난 뼈가 튀어나왔다고 그걸 맨손으로 집어넣고 테이프 발라버릴만큼 호탕하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뭐, 자기소개할때 일본일주 이야기와 사하라 마라톤 이야기 하니 다들 놀라주는 것 같아서

포장만 잘 하면 나도 대강 이 사람들하고 비슷한 레벨이라고 속여넘길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긴다.

 

이시다씨 옆엔 와이프분. 결혼하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신혼여행은 아프리카로 갔다고. 반려자가 될 만한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풍경이 사막이라, 그거 진짜 공감간다.

 

사실 와이프분은 이시다씨와 결혼하기 전엔 한 번도 여행이란걸 해 본적이 없다고.

하지만 한번 맛들이고나서는 이시다씨보다 더 나가고싶어서 고생중이란다. 여행이란게 그렇긴 하다.

시모네타라고, 한국어로는 외설적인 농담이라는 의미인데, 이시다씨도 한 외설 하지만 와이프분은 그걸 쿨하게 받아넘겨서

아무런 데미지가 없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행복해 보이니까 그걸로 됐겠지.

 

일본일주한 경험으로 한번 물어봤는데, 이시다씨 말로는 일본이나 한국정도 지형은 난이도로 치면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일본이나 한국 일주할 정도면 전세계 못가는곳은 없을거라 하신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위안은 된다.

사실 세계일주 가는건 내가 아니고, 나침반님은 융프라우도 자전거로 오르신 분이라 별 의미가 없긴 한데.

 

세계일주의 힘든 점은, 지형의 난이도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노면상태가 많다는 것.

95000km 의 주행거리라고는 하는데, 사실 1만km 정도는 걸어서 간거라고 한다.

도중에 자전거 앞프레임이 완전히 박살나 버리는 바람에, 그 50kg 짐과 자전거를 짊어지고 15km 넘게 걸어간 적도 있다고.

죽는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하는데, 나같으면 정말 때려치우지 않았을까 싶다.

 

 

 

제일 왼쪽분이 대장부(?) 여성분이고, 중간분은 이제 여행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

오른쪽의 훈남분은 역시 요코하마에 살고 있는 분으로, 카메라회사 캐논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내 옆의 신 씨가 캐논 카메라를 꺼내들자 눈이 빛을 발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나한테는 농담으로 캐논 써주세요라고 하는데, 사실 카메라쪽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부서라고.

신 씨가 카메라 좀 싸게 넘기라고 말했을때도 자기 구역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지금 여기 남은 사람들은, 자전거로 1년간 여행하는 나 정도가 지극히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캐논훈남 역시 소싯적엔 어디나 훌떡훌떡 잘 돌아다녔고

여행 준비겸 해서 지금도 운동 꾸준히 하고 있으며, 옆의 자위대 세이야 씨 못지않은 괴물체력을 가지고 있다.

캐논 다니며 월급도 나이에 비해 안정적으로 잘 벌고 있는데 훗날을 위해 붓고 있는 보험금 때문에

생활이 빠듯하다는, 착실함의 표본을 보여주는듯한 생활력의 소유자.

 

외가 팔촌쯤 되는 친척이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친척 결혼식때 한국에 한번 가본적이 있다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요리도 차곡차곡 잘 나온다. 한국의 페이스에 비하면 좀 천천히 나오는 편.

먹는데 집중한다면 느린 페이스지만, 이야기를 중심으로 곁들여지는 느낌의 모임이니 이 정도 페이스도 괜찮다.

 

마지막으로 나온 피자는, 처음 외관만 봤을때는 좀 엉성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조각 집어먹어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있다. 정말 맛있다.

바삭바삭한 대신 피골이 상접한 도우와 달리 씹는 감촉도 좋고, 토핑들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역할을 다한다.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는지, 한조각 먹고나서 '어라? 맛있다!'를 연발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거 주인장분이 들으면 '그럼 먹기전엔 맛없어 보였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그런 리액션이라서 약간 긴장했다.

 

아무튼 조그만 가게의 수제 피자는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남아있다는 경험을 몇번 했던 나로서는

이만큼 완성도 높은 피자는 요 근래 처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짜 맛있었다.

그냥 먹으면 그렇게도 맛없던 아보카도를 이렇게 쓰는구나 감탄도 할 수 있었고.

 

주인장분의 심상치 않은 이력도 그렇고, 훌륭하게 구비해놓은 세계 각지의 술도 그렇고

어디가서 요리사라고 칭해도 결코 부끄러움 없는 실력으로 만들어내는 요리도 특색덩어리라

다음엔 누구하고 같이 가더라도 이곳을 꼭 찾아와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흐르고 점점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면

항상 그렇듯이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내 언어회로는 1:1 대화에만 특화되어 있는 듯, 다수의 사람들과 대화하는건 타이밍 잡기가 너무나 어렵다.

대신에 듣는건 어렵지 않아서, 갑자기 주제가 끼어들어와도 얼마든지 대처할 수는 있는데...

 

이름만 잘 가져다 붙이면 반사회성 장애의 일종으로 정의할 수도 있겠는데

본인 스스로는 별 신경쓰지 않고 있다. 병이라고 부른다면 뭐, 내가 병자라고 해서 바뀌는게 있나.

어렸을때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스퍼거에 근접하는 성격이었고,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정신과의사한테 진단서 한장쯤은 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세상은 살기 불편한 곳이고, 무차별 살인마가 되지 않을 자신쯤은 있으니 인생 별 문제 없을거라 생각.

 

다행히도 다들 사진찍는데는 큰 저항감이 없는듯 해서 조금씩이나마 셔터를 눌렀다.

한국에서는 사진찍는데 워낙 경기일으키는 사람이 많아서 점점 소심해지는데

옆의 신 씨가 내 카메라 들고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이시다씨가 내 카메라로 내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물론 블로그 방침상 본인 얼굴은 올리지 않겠지만.

 

사진 너머로 보이는 점원 아가씨가 열심히 이리저리 뛰며 서빙중이었는데

그래도 12월이라고 산타복장을 하고 있는게 뭔가 대견해 보인다.

좀 더 용기있게 나갔다면 기념으로 저 분 사진도 한장 남길수 있었을 법 한데.

 

 

 

신 씨가 내 카메라로 찍은 사진.

수동렌즈긴 하지만, 이 사람한테야 내가 뭐라뭐라 필 입장이 아니다. 어쨌든 프로 사진가니까.

신 씨는 24-105 렌즈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내가 가진 렌즈가 35mm 단렌즈라는데 조금 놀란 듯.

단렌즈치고는 무식할 정도로 큰 녀석이기도 하고, 거기다가 모터가 없는 수동렌즈라서.

 

한국 렌즈 제작사 삼양이 만든 순수 한국렌즈라서 일본에서 본 적도 없을거다.

수동렌즈라서 불편하긴 하지만, 가격 저렴하면서도 화질은 수백만원짜리 렌즈보다도 더 뛰어난 녀석이라 애용중이다.

 

 

 

뒷풀이가 길어졌는지, 일반 손님들도 차례차례 들어오기 시작해서

더 이상 있으면 폐가 될까봐 다들 주섬주섬 일어난다.

 

일반 손님들 오기전에 레스토랑 풍경을 좀 더 여러장 남겼을면 좋았을텐데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그 생각을 하지 못한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심지어 1인용 조그만 화장실 안에도 빈틈없이 빡빡하게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인생을 멋지게 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구나 생각하며 조금이나마 레스토랑의 풍경을 담는다.

저기 액자에 보이는 여객선이, 주인장분이 몸담았던 '아스카' 호. 지금은 2호도 나왔다고 한다.

 

배에서 인생을 보낸만큼 여객선 세계여행의 매력에 대해서도 한참 열띤 토론이 벌어졌는데

사실 저런 여객선말고 아주 싼 녀석으로도 세게일주는 할 수 있단다.

하지만 그런 곳은 대부분 공동 침실인데, 거기서 큰 문제가 생긴다고.

만에 하나 성격이 안맞는 사람과 룸메이트가 되어버리면, 거기서 세계일주 끝날때까지 받는 스트레스는 말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저런 토의 끝에 '여객선 세계여행은 나이 좀 더 먹고 자금 여유있을때 해도 늦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

 

 

 

이시다 씨만 바라보고 달려온 요코하마인데, 막상 와보니 '끼리끼리 모인다'는 속담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나를 너무나도 초라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보이게 만드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으니

좀 더 멋대로 살아도 별 문제 없겠다는 위험한 생각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듯 하다.

 

나가기 전 주인장분께 사진 한장 부탁하고 인사 나눴다.

이제부터 도쿄든 요코하마든 근처 오기만 하면 이곳은 일순위로 찾아오겠다고.

본인도 이야기 나누고싶은거 많으니 꼭 찾아오라고 당부를 하셨다.

 

실제로 이곳엔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도 하고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여행 좋아하는 대학 교수들마저 토크쇼를 하는 등 나름 단단한 매니아층을 지닌 곳이다.

일본 TV 에서는 1년에 8~9번 정도는 소개되는 곳이기도 하고. 어딜 뜯어봐도 내가 단골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을 정도로 취향에 맞는 곳.

 

원전사고만 아니었으면 지인들 많이 데리고 갈 텐데,

사실 이제 도쿄 부근은 누가 가고싶다고 요청하지 않는 이상은 나 혼자 가게 될것 같아서 아쉽긴 하다.

 

주인장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뒤풀이 팀은 밖으로 나와서 칸나이 역을 향해 걷는다.

사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은 요코하마 부근에 살고 있는듯. 나는 도쿄로 간다고 하니 이시다씨가 도쿄 어디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살짝 말이 엇나갔나 싶었는데, 도쿄는 며칠 전에 왔고 살기는 한국에서 산다고 하니 조금 놀라는 눈치다.

그럼 예전에 일본에서 산 적이 있구나 라고 말을 하는 이시다씨의 낌새로 봐서는, 맨날 하는 그 레퍼토리가 나오는 느낌.

일본에서는 산 적이 없다고 하니 그런데 왜 그렇게 일본어가 술술 나오는거냐고 다들 놀란다.

나머지 일행들이야 그렇다 치고, 이시다씨는 내가 한국서 메일 보낸거 알텐데 왜 그러는지... 아마 사소한건 까먹었을지도.

 

지금까지 다들 내가 도쿄에 살고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이시다씨 보려고 한국서 비행기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

사실 이시다씨 때문에 도쿄 온것은 아니고, 조금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 토크 라이브가 제일 큰 목적이긴 하다.

 

나는 기왕 요코하마까지 왔으니 뭐라도 유명한거 하나 둘러보고 가야겠다고 말하니

이시다씨가 그럼 라멘 박물관이지 라고 단언해 준다. 다행히도 밤 늦게까지 하기 때문에 지금 출발해도 문제없다고.

어디로 향하든 일단 모두들 칸나이 역까지 가서 헤어지기로 하고 조금 싸늘해진 요코하마의 저녁거리를 걷는다.

 

 

아침 8시에 일어나 로비에서 조식을 든든하게 챙겨먹는다.

아무리 인색하고 궁핍한 여행을 즐기는 타입이라고 해도,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는 행동 역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보니, 별로 맛없는 무료 조식은 간단히 배만 채우는 용도로 사용하곤 하는데

오늘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비엔나 소세지 한무더기와 주먹밥 6개씩이나 집어들고 테이블에 앉는다.

 

일본인들이라면 보통 많이먹어봤자 주먹밥 2개 정도, 나는 평균 3개, 많이먹으면 4개쯤 먹지만

이번엔 배가 빵빵해질만큼 입으로 집어넣는다. 그래도 싸구려 주먹밥이니 눈치보일일은 없다.

 

식사 끝내고 적당히 휴식을 취한 후 9시 30분쯤 로비로 나간다.

30분 간역으로 이곳에서 우에노(上野)역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하기 때문.

자동차로 가면 10분 남짓한 거리일 뿐이지만 걸어가기엔 상당히 먼 거리고, 전철타면 어쨌든 돈이 나가니까.

교통비가 만만치 않은 일본에서는 이런 셔틀버스를 최대한 이용하는게 이득이다.

 

승차중에 설문조사 응해달라고 하는데, 무료 이용이고 하니 흔쾌히 작성해줬다.

설문 항목중에 '운전 신호를 잘 지키고 정속으로 운행하던가요?' 라는 질문이 있는게 조금 특이했다.

셔틀버스 운행에 대한 적성검사라도 하는 듯한 내용이라서, 아무래도 이쪽 운전수일은 호텔 정규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굴은 되게 무뚝뚝하지만 지킬건 다 지키는 기사분이니 어쩄든 좋게 평가해줬다.

 

공짜로 우에노에 도착하니 기분도 상쾌하다. 일본의 교통비는 정말 무서워서.

하지만 오늘은 이제부터 상당한 금액의 교통비를 지출해야 하니 각오를 단단히 한다.

 

도쿄 여행의 기준점이라고 할 만한 우에노역. 주요 철도 노선 대부분이 이곳으로 모이고

근처에서 저렴한 숙박장소 찾기도 쉽기 때문에 중요도가 매우 높다.

물론 좀 더 편안하고 향락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면 도쿄역 중심으로 180도 빙글 돌려서 반대방향에 위치하는

시부야나 신쥬쿠 같은 곳에 숙소를 정하는게 낫기도 하다. 좀 비싸긴 해도 그곳 역시 교통의 요지중 요지이고,

그쪽에 자리잡으면 밤새도록 쇼핑이나 먹거리 즐기는데 교통비 들 필요가 없다. 온통 그런 곳 천지니까.

 

 

 

12월 초순이었지만, 벌써부터 크리스마스의 향기는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고출산 장려 기념일이라고 부르는게 더 알맞을듯 하지만

일본은 어쨌든 지진과 원전사고로 큰 피해를 입은터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기부의 의미가 강조되는듯 하다.

 

요 2년 가까운 기간동안 일본의 시민기부액수는 놀라울 정도로 폭증했는데

피해지역의 참상이 상상을 초월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다.

하지만 국회 감사에서 재해지역에 사용되어야 할 기금중 상당수가 어이없게도

어제 그 스카이트리 홍보비용으로 쓰여졌다는 내용이 나오는걸 보니, 이쪽 시민들은 열받지 않으려나.

 

정부가 그 꼬라지를 하고 있으면 정말 기부하려는 마음이 싹 사라질법도 한데

후쿠시마 대지진의 피해가 너무나도 커서 그런 정치불신마저도 하찮게 보일만큼 급박하기 때문에

여전히 개인 기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이라고 한다.

 

좀 낡긴 했지만 우에노역은 여전히 크고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역 앞에 유명한 재래시장 '아메요코'가 서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전후 초기부터 재건사업이 시작된 곳이라 개발이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이곳 우에노 역도 여기저기 추가 출입구 새로 뚫고, 내부를 조금조금 야금야금 증축하고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서 상가를 유치하고 해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묘한 역이 되어버렸다.

 

세련된 부티크 샵과 훌륭한 베이커리, 꽤나 맛이 괜찮은 커피전문점, 60~70년대 블루스바까지 공존하면서

공간이 워낙 구불구불하게 증축되다보니 위쪽 지붕이 2m가 채 되지않는 낮은 지역도 있어서 그거 높히려고 또 공사중이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호평받는 우에노 지역이니

이 난잡함도 그리 기분 나쁘진 않을듯 하다.

 

 

 

우에노가 출발역이기 때문에 느긋하게 앉아서 40분정도 달려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요코하마 역은 아니고, 몇 정거장 옆에 있는 칸나이(関内)역.

왕복 전철비가 2만원 가까이 깨지니, 평소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다.

 

예전 킨키지방의 코야산같은 곳이라면 기꺼이 2시간 버스타고 다녀오겠지만

요코하마는 도쿄와 그닥 다를바 없는 큰 도시라서, 내 취향이 아니다.

해변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그곳 야경도 괜찮은 편이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노력과 수고를 들여서 '도시'를 구경하는건 취향이 아니다.

 

나름 도쿄 부근에서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예전 자전거 여행때는 그냥 후다닥 지나쳐 버리고

그 앞의 에노시마에 들어가서 고양이들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엔 교통비를 감수해가며 도쿄에서 찾아올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아사쿠사 근처에 숙소를 잡은것부터 시작해서

이번 도쿄여행 전체가 이날 요코하마에 오기 위해서 계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에노까지 무료 셔틀버스도 확인했고, 우에노에서 이곳 칸나이 역까지 직통으로 올수 있기 때문에.

 

이런 류의 도시에는 그닥 흥미가 동하지 않는 성격덕분에

화창한 날씨 아래서 도쿄보다 좀 더 시원하게 뚫린 다차선 도로를 마주해도

그냥 산은 산이요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조금 더 이동해서 미 해군기지 근처까지 가면 분위기가 좀 바뀐다고 하던데,

그리고 항구로 유명했던 지역이니만큼 일본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도 있어서

맛있는거 먹으러 가기에는 좋은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것 때문에 온 게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애초에 이만한 시간과 교통비 들여서 여기까지 오지도 않는다.

차라리 교통비 더 들여서 옛 사찰과 유적이 가득한 닛코(日光)에나 갔겠지.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일기예보를 너무 믿어서는 안되는 것 같다.

어제가 내 여행기간중 가장 맑은 날이라고 몇번이고 일기예보를 확인했고

그래서 일부러 어제 스카이트리를 찾아간 것인데, 오늘은 어제보다 더 화창하다.

 

물론 오늘은 예정이 잡혀있으니 어차피 스카이트리 가진 않았겠지만

예보가 이렇다는 건 내일이나 모래 역시 어제보다 더 맑을수도 있다는 반증이 되니까.

아무튼 요코하마에 대해서는 당일치기 관광객보다도 아는게 없는 일자무식이니

그냥 역에서 나와서 아무곳이나 걸어다닌다. 아직 약속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날은 일요일이라서, 좀 번화한 상가골목으로 들어가자 인파가 밀물처럼 채워지기 시작한다.

요코하마가 이렇게 번잡했나 싶을 정도로, 하긴 이곳에 대해 하는건 하나도 없지만.

 

이제와서는 좀 촌티나는거 아닌가 싶을, 검은 가죽잠바와 타이트한 가죽바지, 번쩍번쩍하는 가죽구두를 신고

머리에 한껏 힘을 세운 젊은애들이 웃으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의외로 아무 생각없이 찾아온 거리는 꽤나 번화가인 모양이다.

자동차는 원래부터 통행금지였고, 자전거도 타고 가는건 금지라서 나이먹은 경찰관이 길복판에 떡하니 서서

자전거 타고다니는 사람 없나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만큼 인파가 심한 곳이라는 반증.

 

운좋게도 중고책 전문점 북오프가 바로 앞에 있어서 40분동안 책이나 읽었다.

북오프는, 따끈따끈한 신간은 별로 없지만 모든 책에 커버가 씌여있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서서 읽어도 뭐라하지 않는게 장점이다.

여름에 여행중엔 에어콘 바람 실컷 만끽한게 좀 미안해서, 가끔 저렴한 중고책을 일부러 사들고 나간 적도 있고.

 

 

 

약속시간까지 30분쯤 남았지만 장소를 도저히 찾을수가 없어서 결국 점장분한테 전화까지 때려야 했다.

애초에 요코하마에 한 번도 온적이 없는 내가 이곳을 찾을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점장분도 처음 찾아오는 분들에게는 설명하기가 참 난감하다면서 힘들어하신다.

특히 왠만하면 스마트폰의 기능으로 찾아오는 일본 사람들과 달리, 난 로밍폰이라서 데이터를 쓰지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하나하나 설명해준 덕에 어째 설명 한번만으로 잘 찾아왔다.

 

찾고보니 방금 전 책읽었던 북 오프점에서 딱 두 골목만 안으로 들어가면 위치했던 곳이지만

설명없이 이 좁은 골목을 찾아다닌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골목은 성인 두 사람만 나란히 서면 꽉 찰정도로 좁으니까.

 

'BAR de 남극요리인 MIRAI' 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인데

펭귄마크의 아이콘이 묘한 인상을 남긴다. 남극요리인이라는 타이틀과 펭귄이라니.

슬쩍 '쥔장이 남극에서 요리하다 왔나보군' 이라고 가볍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는데

사실은 그 말이 맞다.

 

관광 가이드북에 실려있는지는 모르겠는데, 2010년도에 개장해서 역사가 깊은 곳도 아니고

디지털 지도나 가이드북이 없다면 (이 곳이 실려있는 가이드북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지만)

정말로 찾아가기 힘든 외진 구석에 조그맣게 위치한 지하 음식점이다.

아마도 한국인이 이곳을 찾는건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객석이 내 방만한 작디작은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한국에서도 꽤나 인기를 끈 '가보기전엔 죽지마라' 의 저자 이시다 유스케(石田ゆうすけ)씨의 토크 라이브가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

 

사실 이번 도쿄 무료 항공권은 출발 2달 전에 미리 받아놓은 것이라서

도쿄서 뭘 할까 이리저리 생각하는 도중에 우연히 이시다씨의 토크 라이브가 열린다는 사실을 접하고

서둘러 이시다씨한테 연락해서 자리 하나 예약한 상황이었다.

 

여행 좋아하는, 특히 자전거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이시다 씨는

7년 반동안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며 95000km 를 달렸다.

원서 제목은 '行かずに死ねるか!' 이고, 직역하면 '안가보고 죽을쏘냐!' 라는 좀 강한 어조가 되는데

그래도 '가보기전엔 죽지마라' 라는 의역 역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책은 독자에게 말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책이라

남에게 명령형으로 들리는 제목으로 의역한 것만은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10평도 안되보이는 좁디좁은 바에 예약된 청중은 30명이 넘어서

서로서로 무릎의 온기를 느낄 정도로 바싹 붙어서 간신히 앉아있는다.

워낙 소규모 토크 라이브에, 이시다씨나 바 주인장분이나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참가비 따로, 마실거 한잔 의무적으로 주문해야 하는 빡빡한 요금제이지만

그 정도야 부담하고서라도 이시다씨와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이 토크 라이브는 일본 각지를 도는 순회 강연이고

공교롭게도 오늘이 세계일주 토크의 마지막인 아시아편이었다.

가보기전엔~ 책에는 의외로 아시아쪽 루트에 대한 에피소드가 좀 적은편인데

토크를 시작하면서 이시다씨가 해명을 했다. 에피소드가 적어서 안쓴게 아니고 너무 많아서 쓸수가 없었다고.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야 별로 신기할 것도 없을 터.

하루하루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자 저뭄의 연속이고

인간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피부색, 머리색, 눈동자색, 체중, 키, 언어, 문화 등등 모든 것에서 다를수밖에 없는

타인들과의 접점과 접점이 끊임없이 겹쳐지며 만들어 지는게 여행이란 녀석이니까.

 

노트북에 프로젝터를 연결하고, 끝까지 나타나지 않은 예약손님 몇명을 좀 더 기다려보다가

결국 토크를 시작한다. 기분같아서는 취재기자처럼 토크 도중도중에 사진을 마구 날리고 싶었지만

당연히 해서는 안될 일이고, 책에 실리지 않은 귀중한 사진들도 맘대로 유출할 수는 없으니까.

 

맥주 한잔 마시며 위트 넘치는 이시다씨의 토크를 감상한다.

사실 아무리 말하고 말해도 그 7년 반의 여행을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단지 몇천 분의 일이라도 그때 그가 느꼈던 기분을, 토크를 듣는 이곳의 사람들이 살짝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이 토크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이시다씨와 비교하는건 택도 없지만, 어쨌든 1년동안 자전거로 일본일주 한 경험이 있다보니

이야기 중간중간에 감회에 젖은 묘사로 살짝 눈을 감는듯 마는듯 하며 빛의 속도로 그 때의 추억을 되살리는

이시다씨의 미묘한 표정 하나하나에 나 역시 스스로의 추억에 휩싸이는, 이상동몽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2시간 토크후 10분 휴식후, 또 2시간 토크라는 장거리 마라톤이었고

책에서 빠트릴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에피소드와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 등

풀어나가자면 이런 포스팅 몇 개는 채울 수 있는 이야기를 듣고 왔지만

이곳은 이시다씨의 정보 소개하는 사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몇가지만 남겨보자면, 이시다씨가 가장 감격에 겨웠던 아프리카 사막의 풍경사진 이벤트.

휴식시간동안 이시다씨는 사막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BGM 으로 틀어주었다.

나도 워낙 많이 듣는 곡이라서, 착각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헤르베르트 카라얀이 지휘한 버전일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한 버전으로, 아마 아다지오 & 파헬벨 앨범에 있던 녀석일 듯.

 

파헬벨의 캐논은 대중적으로 300년동안 너무나도 사랑받아왔기 때문에

요즘 흔히 들리는 기타나 가야금,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등등의 베리에이션 외에도

시대의 흐름과 나라별 오케스트라, 그리고 지휘자별로도 그 음색이 굉장히 다르다.

나같은 클래식 생초보라도 너무나 쉽게 구별이 될 정도로 다양한 버전이 있으니 한번 들어보시길.

 

 

 

카라얀이 쫌생이중의 쫌생이에다 비겁자이긴 해도 진짜 천재는 천재다.

 

이시다씨는 자전거 타면서 그 지역의 분위기에 맞춰 음악을 듣는데

사막의 풍경만큼은 그 어떤 음악보다 클래식이 어울렸다고 회상했다.

 

음악의 취향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막에는 음악이 어울린다는 점 하나만은 극히 동감한다.

사하라 마라톤 때도, 야간 레이스 당시 사람은 커녕 빛 한줄기도 없는 광야 속에서 홀로 걷고 있으니

저절로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던 추억이 있으니까. 이시다씨의 사막은 나의 사막과 맞닿아 있다.

 

  

 

 

내가 참가한다고 미리 연락을 해서 그런지, 상식적으로 봤을때는 원래 일정에 들어가 있지 않을

한국에서의 이벤트를 마지막에 첨가해 주셨다. 시기적으로는 한국이 그의 7년반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이긴 했지만

본인 스스로도 한국은 살짝 거쳐가는 정도였기 때문에, 내가 아니었으면 일부러 이번 토크 라이브에 집어넣었을 리가 없다.

 

숯불갈비 사진을 보여주면서 참 맛있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이시다씨는 그 마른 몸과는 달리 먹는것에 인생을 거는 사람으로

지금도 일본에서 전국 각지의 먹거리 이야기를 컬럼으로 연재중이다. 책도 냈다. 먹는건 여행만큼이나 중요하다.

사진에 찍힌 반찬들을 언급하면서 '이게 다 공짜에다가 리필도 된답니다' 라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다음으로 나온 사진이 홍어 삼합 사진이었다...

그걸 보는순간 난 머릿속으로 '어느 인정많고 장난끼넘치는 사람이 이시다씨를 골려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뭔가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이시다씨와 내 눈이 슬쩍 마주치며 서로 씨익 미소를 짓는다.

 

이시다씨는 '오늘 한국분도 오셨으니까 그분한테 설명을 들어보죠' 라고 하고 발언대를 나한테 넘긴다.

사실 홍어를 일본어로 뭐라 하는지 몰랐다. 자주 먹는 생선은 둘째치고 난 한국에서도 홍어를 거의 안먹으니까.

한국사람들도 잘 안먹는다는 설명 곁들여서, 돼지고기와 김치를 함께 먹는 삼합에 대해서도 잠깐 설명했다.

이시다씨는 그때의 암모니아 입자가 아직도 콧속에 박혀있는듯, 이미 홍어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조사를 했고

세계에서 악취강한 음식 2위에 랭크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1위는 먹어본적 없단다. 다행이로세.

 

홍어라는 음식은 평생 이시다씨의 머릿속에 남아있을테니 그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지만.

이시다씨는 이제까지 '이걸 자신한테 내준건 순수한 호의에서였을까, 장난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걸까' 고민해 왔다고 한다.

텍사스 주 사람한테 날계란 먹으라고 건내주는것도 이렇게 홍어 주는것만한 장난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문화에 대해 모르는 이시다씨라면 아마 머리 좀 아팠을 듯 하다. 진짜 맛있어서 권해준 거라면 의심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니까.

하지만 내가 장난이라고 확실히 못박아주니 시원한 표정으로 웃는다. 여기까지 온 보람은 있구나 싶다.

 

쉬는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사인을 받으려고 책을 갖고 온다.

사인회 자체는 뭐 어디서든 하는 것이니 별 감흥이 없지만

인기는 있어도 메이저는 아닌 이런 이시다씨의 조그만 토크 라이브에 찾아와

가까이서 생생한 체험을 들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상당히 부러운 점이다.

이 좁은 음식점에 들어와서 여행 좋아하는 작가와 토크 라이브를 스스럼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

이시다씨는 휴식시간에 벌써 맥주 한병 까서 마시고 있고... 사실 청중들도 다들 맥주정도는 마시면서 듣고 있다.

작가 사인회라는 딱딱하고 형식적인 이벤트도 이곳에서 일어나니 친근해서 좋다.

 

이번 여행에는 사하라 멤버 나침반님이 소장중인 '가보기전에~' 책을 들고왔다.

사인 허락을 받지 않아서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혹시 싫어하시면 새책 구입해 드리는걸로 하고.

일본어로는 닉네임인 '나침반씨에게' 라고 적고, 이시다씨가 한글로도 적어준다고 해서 성함을 적어드렸다.

이시다씨는 '나침반 한자는 어려워요' 라고 난색을 표했다. 진짜 어려운 단어긴 하다.

 

물론 라이트룸으로 팍팍 찍어버렸기 때문에 실제 성함이 영영영 은 아니다.

밑의 저 '일일 일생' 이라는 단어는, 이제와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이미 위에 적어놨다.

 

4시간에 걸친 아시아편 토크는, 나에게는 물론이고, 이시다씨처럼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준비중인 나침반님에게도

흥미가 동할만한 정보나 감상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건 나침반님에게 필요한 정보니 여행후 나침반님 만나서 말씀드렸다.

 

토크가 끝나고 뒷풀이가 있다고 주인장분이 안내를 해 주신다.

물론 여기서부터는 제대로 식사를 하면서 놀아보는 시간이라 지불해야 할 금액이 꽤 되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시다씨와 이야기하는데 돈이 아까워서 포기할수는 없다.

30명의 독자들중 6명이 남고, 이시다씨와 와이프분까지 해서 총 8명이 뒷풀이를 위해 바에 남는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10시가 되니 소라마치의 문이 열린다. 가면 갈수록 사람이 많아질테니 여기도 재빨리 치고빠져야 할 듯.

'하늘마을'이라는 뜻의 소라마치는, 사실 마을이라기보다는 거대 쇼핑몰이지만

적어도 지상층 몇군데만큼은 마을 주변의 가게처럼 살짝 소박하게 장식해놓았다.

 

이게 몇층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층은 살짝 맛만 보는 느낌이고

위로 올라가면 한국의 백화점따윈 쌈싸먹을 정도로 거대한 쇼핑몰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층은 작은 가게들이 모여서 간단한 기념품, 먹을거리를 팔고 있어서

사실상 내가 볼일있는건 이곳 뿐.

 

 

 

사실 호텔 조식을 뱃속에 집어넣고 왔기 때문에 오전 10시에 뭘 먹을 필요는 없었지만

점심시간 맞춰서 가면 대기열이 어떻게 될런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곳이라서 겁난다.

 

거기다가 슬쩍 둘러보려고만 했던 상점가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라멘사진이 떡하니 놓여있어서

이건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며 막 개점한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아침부터 라멘이라니 가게 주인장도 이상하게 생각하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옆의 중국인 관광객도 잘 먹고 있는데다, 그 후에 찾아온 백발의 일본인 관광객 두명은

군만두와 생맥주까지 시켜서 잘 먹고 있는걸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아서 왠만하면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여지것 일본서 먹어본적 없는 새우라멘의 모습을 보고는 패배를 선언할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는 기본적으로 해물을 베이스로 한 면음식은 라멘보다 짬뽕과 우동이다.

물론 해물라멘도 없진 않고, 새우로 맛을 낸 라멘은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꽤 유명하기도 한데

여기서 본 이 라멘은 구성이 꽤나 독특해서 눈길을 끌었다.

 

새우 베이스의 라멘은 보통 바다내음을 강조하게 위해 소금으로 간을 하는 시오라멘이 주를 이루는데

이쪽은 일본식 된장인 미소라멘을 베이스로 하고, 국물맛을 내기 위한 우려내기용 작은 홍새우에다가

짭쪼름한 튀김옷을 얇게 입힌 큼지막한 새우를 건더기로 올려놓은 푸짐한 녀석.

 

사실 양은 가격에 비해 작은 편이라서, 한끼 식사라고 생각하면 분명 이것만으로 모자라겠던데

배가 고프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는 오히려 무리하지 않고 먹을만한 분량이라서 나름 다행이라면 다행.

 

죽순 절임인 멘마도 오돌오돌하게 맛있고, 계란도 적당히 간이 들어가서 합격점이다.

일본 라멘의 짠맛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질색하는것도, 당연히 지역간 식감의 차이이니 이해하는데

일단 기본적인 레시피를 볼때, 멘바나 계란이 제대로 절여지지 않고 밋밋하게 나오는건 레벨이 떨어진다는 의미.

그런데 겉치레로 붙어있다는 생각이 드는 챠슈는 별로 훌륭하지 않다. 새우가 메인이니 어쩔 수 없는건가.

 

1100엔이나 하는 고가라멘인데다가 양은 적어서 추천하기에는 좀 꺼려지는 녀석이지만

일반적인 미소라멘과는 달리 새우의 미묘한 단맛이 우러나 있는 국물은 괜찮은 경험이다.

짠 건더기들이 우르르 들어가는 편인데도, 그걸 계산해서 미소국물의 간을 살짝 싱겁게 조절해 놓은게 마음에 든다.

물론 이건 평균적인 일본인들의 시점에서 하는 이야기고, 한국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짠 편이다.

애초에 한국사람들이 이정도면 되겠지 싶은 맛의 라멘은 일본에서 인기가 없을 걸.

1년간 자전거 여행하며 일본 각지에서 120그릇이 넘은 라멘을 먹어치운 나로서도

어쨌든 첫경험인 새우미소라멘이었다. 새로운 경험에 투자한 금액이 좀 비싸긴 헀지만.

 

 

 

빵빵해진 배를 잡고 촛점없는 눈으로 소라마치를 서성인다.

하다못해 부모님이라도 함께였다면 이것저것 구경하는 부모님을 뒤에서 바라보는 재미라도 있을텐데

쇼핑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본인 혼자서 이런곳에 와 봤자 뭘 하겠는가 싶다.

단지 스카이트리와 함께 조성된 유명한 관광 스팟이니 한번 둘러나 보자 하는 기분.

 

어쨌든 도쿄까지 왔으니 뭐좀 사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거대 쇼핑몰이 생겨서 기분좋을듯 하다.

기본적으로 사진촬영 금지인데다가, 메인 통로쪽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사진을 못담았을 뿐이지

한국의 백화점과 비교하면 실례일 정도로 규모가 상당히 크다.

조카 기저귀사러 청량리 롯데백화점에 가본적이 있는데, 그것의 2.5배 정도는 크지 않을까 싶다.

 

시부야나 신쥬쿠의 쇼핑타운은 워낙 대규모 물량공세라서 이곳과 비교하기 힘들지만

단일 매장으로는 오다이바의 비너스 포트를 능가하는 규모라고 느껴진다.

 

거기다 개장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모든 것이 반짝반짝 새 건물에

가벼운 기념품에서부터 캐쥬얼한 의류, 꽤나 고급 브랜드까지 없는게 없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로, 쇼핑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아침부터 저녁 폐점시간까지 얼마든지 돌아다녀도 모자람없는 곳이라고 생각.

 

이번 여행은, 허구헌날 시골구석이나 찾아다니다가 오랜만의 도쿄여행이라 그런지

지인들로부터 뭐 사달라는 요구를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받은 여행이었고

그 중 헬로키티 브랜드의 조그마한 핸드백도 들어있었는데, 여기는 헬로키티 매장만 서너개가 넘는다.

 

묘하게도 대부분의 헬로키티점은 정말 아이들 수준에 맞춘 그런 물품들을 파는 곳이고

나머지 한군데는, 패션에 관심있는 여성들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고급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매장.

그곳의 헬로키티 핸드백은 패션의 패도 모르는 내가 봐도 '이거 괜찮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녀석이었다.

 

크게 화려하지도 않으면서도 헬로키티 특유의 원색 강조가 잘 나타나 있고

재질은 가벼우면서도 방수기능이 기본적으로 첨가된 고가 원단이라고 점원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일본어를 알아들어도 패션 관련 단어를 알아들을수가 없는 나는 오랜만에 일본에서 이국맛을 실컷 느꼈는데

어쨌든 굉장한 인기품이고, 2012년 겨울 한정품목이라서 재고 수급도 간신히 맞추고 있다는 듯.

 

물론 브랜드 사치품에 비하면 공짜나 다름없는 8700엔의 가격이지만, 내가 부탁받은 헬로키티 핸드백은 3000엔 짜리였다.

아무리 좋아보여도 이 가격차는 좀 아니다 싶어, 훗날 바이어(?)와 연락이 가능할 때 한번 물어보기로 하고

이번엔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다. 조금 쫄았지만 다행히도 친절한 점원은 인상 변하지 않고 웃으며 배웅해주셨다.

 

 

 

콩글리쉬로 윈도우 쇼핑이라는건 신나게 즐겼지만, 사실 소화좀 시키려고 돌아다닌 것 뿐이라

뭘 봤는지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글쎄, 내가 좀 부자라서 현금뭉치를 수십만엔쯤 들고온 사람이라면

지나다니다가 괜찮다 싶은 옷 몇벌 사서 이미지 체인지를 해 보는것도 나름 행복을 누리는 방법일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굉장하다는 인상을 받으며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던 도중, 재미있는 상품을 발견하고

점원에게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는 척하며 슬쩍 사진을 담아본다.

사실은 대놓고 찍어도 별로 뭐라 할사람 없겠지만, 쇼핑몰 안에서의 촬영은 언제나 긴장된다.

 

부피에 비하면 꽤나 비싼 녀석인데, 정말 잘도 이런 상품을 만들어내는구나 싶다.

스카이트리형 초콜릿이다. 밑의 마을모형 역시 초콜릿. 스카이트리는 화이트초콜릿으로 임팩트를 줬다.

조금 엉성하긴 해도 스카이트리 옆의 스미다가와 강까지 표현해 놓은걸 보니, 진짜 신경좀 썼구나 싶다.

 

스카이트리 모양이 모양이다 보니, 제품의 포장은 비효율의 극치를 달릴수밖에 없지만

그 효율을 높여보자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처럼 스카이트리 모양의 초콜릿만 덜렁 팔고있었다면

이렇게 내가 사진을 담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자연스럽게 고급 기념품이라는 이미지도 생기고.

 

사소하지만 이런 발상의 전환이 기념품 장사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념품의 덕목은 가격대 성능비가 아니라 임팩트다.

누워있는 스카이트리 초콜릿과, 이 녀석을 나란히 전시한다고 생각해 보라. 어디에 눈길이 갈지.

 

물론 사들고 가서 혼자 까먹어 버린다면야 가격 싼녀석이 제일 좋겠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일본의 기념품은 주위 사람들한테 선물 주기위해 사 가는 것이다.

어떤걸 선물로 줬을때 상대방이 더 좋아할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

 

 

 

흡족한 기분으로 소라마치 관광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이곳으로 올때 전철을 타 봤기 때문에, 아사쿠사까지는 그냥 걸어서 가기로 한다.

 

어디서든 스카이트리를 카메라에 담느라고 관광객들이 정신없는데

영락없는 노숙자 할아버지가 관광객들에게 촬영 스팟을 조언해주고 있다.

 

여기 이 지점에서 찍으면 전부 다 담을수 있다느니, 시간대별로 멋지게 보이는 촬영장소 등을 읊어대는데

반쯤은 관광객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얼핏 들으면 그냥 혼잣말같기도 하다.

관광지라서 사람들이 좀 온화해 진건지, 그 설명 들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 땟국물 줄줄 흐르는 노숙자 할아버지한테 카메라 맡기도 자기들 좀 찍어달라고 부탁도 한다.

 

굉장히 보기좋은 광경인데, 유럽에서나 볼만한 모습을 여기서 보니 내가 좀 어리둥절했다.

 

소라마치와 스카이트리를 한 화면에 담아보려고 했는데 이 거리에서는 35mm 렌즈로도 무리였다.

소라마치는 긴 직사각형의 건물이라서, 둘을 한꺼번에 담으려면 이거보다 더 광각렌즈를 사용하던가

파노라마 형식으로 이어붙어야 가능할 듯 하다. 하지만 파노라마는 귀찮아서 그냥 패스.

그거 못담았다고 내가 아쉬워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자연경관 풍성한 곳이 아니라 도쿄같은 도시에서 35mm 보다 더 광각이 필요할줄은 몰랐다.

 

소라마치는 쇼핑몰뿐만 아니라 수족관까지 포함된 복합센터라서, 인파에 휩쓸릴 각오만 있다면

하루 꼬박 소비해도 전혀 아쉬울 것 없는, 도쿄 관광의 새로운 중심지로 명실공히 입지를 다지고 있다.

수족관은 물론 본인도 참 좋아하지만, 전망대 입장료와 미지의 라멘탐험으로 이미 출혈이 상당하고

몰려드는 인파만큼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냥 도망치기로 결정.

 

만일 친구나 지인들과 함께 무리를 이루어서 왔다면 이런 불평없이 얼마든지 인파에 치여가며

평범한 관광을 즐기겠지만, 홀로 떠도는 여행에서는 스스로의 기분에 반하는 행동은 절대로 하고싶지 않다.

 

 

 

날씨는 화창하기 그지없어서 걷다보면 땀도 슬쩍 흐를 정도다.

영하의 한파속을 헤매는 서울에서 왔으니 체감적으로 더욱 덥게 느껴지기도 하고.

느긋하게 25분쯤 걸으니 다시 스미다가와 강을 넘어서, 어제 신나게 셔터누른 장소로 돌아온다.

 

역시 제일 간편하게 담을 수 있는 위치는 이곳이라는 생각. 옆에 똥덩어리와 아사히 빌딩도 볼만한 녀석들이고.

도착을 늦게 하는 바람에 첫날 사진이 전부 해질무렵이었는데, 역시 대낮에 사진 찍으니 거리낄게 없어서 좋다.

 

 

 

이곳 촬영포인트 주변에서는 노인 두명이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한 사람은 구슬픈 하모니카를, 한 사람은 점잖게 한 곡조 뽑아내고 있는데

옛날 노래들이라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건 사카모토 큐의 '위를 보며 걷자' (上を向いて歩こう) 정도밖에 없었다.

 

이 곡은 일본인들에게는 국민가요로 모르는 사람이 없고

아시아 노래중에서는 최초로 1963년 빌보드차트 1위를 한 기록으로 유명하다.

재미있게도 해외에서는 제목 발음이 어려워서 '스키야키'로 알려진 그 곡.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위를 보며 걷자'는, 심금을 울리는 가사의 내용덕분에

안그래도 유명한 이 곡이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로 어마어마한 반향과 함께 다시 대인기를 얻었다.

대지진 이후 TV CM에서 이 곡이 부드럽게 흘러나올때, 일본 국민들의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곡의 분위기가 그토록 잘 어울릴수는 없었겠지만

조금 삐딱하게 본다면, 그렇게 생각하는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현재의 상황이 더욱 적나라게 느껴진다고 할까.

 

 

 

아사쿠사에서 아키하바라로 바로 가는 전철은 없기때문에

버스나 타고 가자고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15분이나 기다리고나서야 깨달았다.

적혀있는 노선표를 자세히 보니 일요일엔 아키하바라 행 버스가 3~4시간에 한대씩 온다.

 

도쿄 한복판에서도 이런일이 벌어지는구나 싶어서 허탈한 마음과 함께 그냥 전철을 탄다.

갈아타면 요금도 비싸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한대 얻어맞고 조금 체력이 빠진 상태라서 어쩔 수 없다.

오타쿠와 전자제품의 성지 아키하바라(秋葉原), 원래 이곳은 한국의 용산처럼 조그만 영세가게들이

수도없이 밀집해서 이루어낸 개미집과 같은 장소였는데, 지금은 거대 체인 요도바시 카메라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매장을 역앞에 떡하니 건설하는 바람에 그 독특한 매력이 많이 퇴색되어 버렸다.

 

진짜 매니아들의 아키하바라는, 골목골목 구멍가게를 누비며 이 세상 어떤 전자부품이라도 구할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의 모습을 가리키지만, 이제와서는 대기업의 천편일률적인 제품과

귀여운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뿌리는 페로몬에 이끌려 하악거리는 오타쿠들의 천국으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하긴 나도 20년전 처음 도쿄에 갔을때는 무조건 아키바부터 달려가서 게임팩 사는데 열중했으니까.

지금도 그때 뭐 구입했는지 기억난다. 슈퍼패미콤이라는 가정용 게임기의 'FEDA' 라는 녀석.

난 왜 이런걸 이렇게 오랫동안 잘 기억하는지 모르겠네...

 

게임팩 구입후엔 친구 강군과 함께 버추어 파이터 하려고 종횡무진하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그때 버추어 파이터 2가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라 게임센터에서도 요금이 2배 비싼 200엔이었지만

태어나서 경험해본적 없는 폴리곤 덩어리들의 환상과도 같은 향연에 돈을 마구 쏟아부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그 게임센터 아직도 영업중이긴 하다. 내부 구조는 많이 바뀐것 같더라만.

 

여담으로, 원래 이 지역의 한자명을 읽으면 '아키바하라'가 되는데

공무원이 한자를 잘못 읽어서 '아키하바라' 라는 전철명이 붙어버린 황당한 역사가 서린 곳이다.

이게 또 재미있는게, 요즘엔 다들 이름을 생략시켜서 '아키바' 라고 읽는데 이게 사실은 제대로 된 이름이었다는 것.

 

 

 

스카이트리에서 이곳으로 온 이유는 이것저것 많은데, 주된 목표는 역시 부탁받은 선물 구입이다.

요도바시 아키바는 단순히 전자제품이나 카메라만 파는게 아니라

백화점이라도 해도 될만큼 없는게 없는 가게라서, 의류같은 패션 상품이 아닌 이상 어지간한건 다 구할 수 있다.

 

여기서 구입할건 쿄세라의 세라믹 부엌칼. 가볍고 오래가고 잡내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팔긴 하지만, 최상급 프리미엄 브랜드는 팔지 않고 한단계 낮은 등급의 제품만 있어서

도쿄 가는김에 좋은거 사가기로 했다. 훗날 돌아와서 한번 써보니 확실히 좋긴 하더라.

 

칼 하나에 10만원이나 하는걸 보고 덜덜 떨었지만, 막상 돌아와보니 독일제 부엌칼은 하나에 몇십만원씩 한다.

정식 교육을 받은 셰프들의 칼이야 수백만원짜리도 전혀 비싸지 않은 레벨이긴 한데

가정집 주방에서 대체 뭘 만드시길래 수십만원제 칼이 필요한지까지는 내가 알수있는 범위가 아니다.

쿄세라의 세라믹 칼은 어찌됐든 무지하게 가볍고 절삭력이 좋아서 어느정도 돈값을 하겠지.

 

요도바시 안에는 서점도 있어서 부탁받은 유아용 동화책 몇권과 내가 읽을책 몇권을 산다.

계산은 같이 했다. 지인의 부탁이 아니고 엄니를 통한 2중 부탁이었던 터라 이 정도 수고비는 챙겨도 되겠지.

읽고싶은 책은 산더미같은데, 중고책방이라도 가야지 신품서점에서 구매하기에는 너무 비싸다.

물론 새 책을 산 이유는 내가 돈내는거 아니니까. 그래도 항상 정도는 지킨다.

 

이러저러해서 참 인연이 깊은 아키바인데, 역을 나서는 순간 굉장한 상실감이 밀려온다.

아키하바라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던 라디오회관(ラジオ会館)이 건물채로 사라지고 없었던 것.

지금은 새 건물을 짓기 위해 각종 장비들이 가동되고 있다.

 

라디오회관은 아키하바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층 건물중 하나로, 그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초기엔 라디오 트랜지스터 등을 파는 작은 가게들의 집합체였다. 아키하바라라는 장소와 동시에 태어난 역사의 산 증인.

 

 

 

2010년 자전거 여행때 담은 라디오회관의 모습.

노란색 네온싸인이 걸려있는 건물이다. '세계의 라디오회관 아키하바라' 라는 촌티나는 제목의 전광판.

 

2000년 이후로야 아키바 대부분이 그렇듯 전자부품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가전제품, 애니메이션, 만화, 피규어 등으로 채워졌지만

이게 1953년에 지어진 건물이라, 아무리 개축을 거듭해도 결국은 노화를 피할 수 없어서

전면 해체후 재시공이라는 처방을 받고야 말았다. 물론 해체 한참 전부터 이곳에 입주해있던 회사들은

슬금슬금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지만, 새 건물이 들어서는 즉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거라고.

 

아키바의 터줏대감 같은 건물이라서, 이 건물이 해체되던 때엔 아쉬워하며 사진을 찍는 오덕들이 많았다.

본인도 만화책 살때는 반드시 이곳 라디오회관의 'K-BOOKS'를 이용했던만큼 감회가 새롭기도 했고.

왜 거기서 만화책을 샀느냐 하면, 특이하게도 저 서점이 부스 두개로 나뉘어

한쪽은 비닐 안벗긴 새책을 팔고 다른 부스에서는 중고책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중고책은 보존상태가 상당히 좋아서, 일단 신품부스에서 신나게 구경하고 구입할 책을 정한 후

중고부스에서 그 책을 찾아 구입하면 금액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었다.

물론 중고품이 없는 책은 어쩔 수 없이 신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지만.

 

여담이지만 K-BOOKS 는 그것 외에 어른용(!) 만화책도 샘플본을 많이 비치해서, 구입하지 않고도 읽어볼 수 있다는 크나큰 장점이 있었다.

세계 어디든 어른용일수록 구입전까지 내용물 못보도록 철저하게 막는게 일반적인데, 그걸 과감히 깨트린 영업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어른용 만화책은 그림 수준이 좀 떨어져서 본인은 별 관심이 없다?

 

 

 

친구가 닌텐도 게임소프트를 부탁해서 그것도 찾아봐야 하는데

일단 그걸 오늘 구입할 생각은 없다. 게임소프트는 중고유무와 가격대 등을 넓게 조사해 봐야

쓸데없이 돈 더주고 구입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조사하는데 하루, 구입하는데 하루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

 

얼핏 둘러본 바로는 그게 굉장히 인기있는 신작게임이라서 어지간한 곳에 중고물품이 없다.

이렇게 되면 다음에 구입할때 이야기가 좀 편해지긴 한다. 신품가격 제일 저렴한 곳만 골라가면 되니까.

 

20년전의 전자상가 천국은 이미 사라졌지만, 여전히 외국인들에게는 너무나 신기한 곳이라서 지루하지 않다.

세상 어디에 이렇게 길거리 전체가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가게등으로 가득찬 곳이 있겠는가.

굳이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이 길거리는 충분한 문화충격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저기 SEGA의 빨간 건물은 20년전 친구 강군과 내가 버추어 파이터 하려고 뻔질나게 들락날락한 곳.

그거 말고, 자기 사진을 찍어서 모니터에 그걸 띄워놓고 펀치머신으로 두들기면 얼굴이 찌그러지는 게임도 있었다.

내가 강군하고 원수지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서로의 얼굴을 묵사발로 만들며 배를 잡고 뒹굴었던 기억이 난다.

 

 

 

아키하바라라는 매니아 지향 상점가가 이렇게 유지된다는건 사실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화면 하단부의 사람이 보인다면, 저 소프맙 건물이 어느정도 규모인지 알 수 있을 터.

 

아키바에는 이런 건물이 수십채씩 거리 전체에 줄지어 늘어서 있다.

건물에 걸린 거대한 그림들은, 얼핏보면 그냥 애니메이션이겠지 싶어도

사실은 아이들이 만져서는 안되는 어른들(!!)의 게임 광고다.

 

어른용 게임이다보니 수요는 적고 제작은 힘들어서, 게임 하나당 10만원이 넘는 고가를 자랑해도

열심히 구입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보니 이렇게 오늘도 아키바는 돌아가고 있는 것.

 

실제로 인파를 뚫고 성인코너로 들어가보면 그건 그거대로 훌륭한 타국문화체험의 현장이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지니, 성인물에 관심이 없어도 그 분위기를 즐기는것 자체는 충분히 관광이라고 할 만하다.

사실 항상 이런곳 안에 들어가서 어슬렁거릴때는, 이정도 극단적인 문화적 괴리를 생산하는 배경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가 대부분.

물론 혈기왕성한 중고딩때 이런거 체험해보라는 뜻은 아니고. 어른이라면 이 오묘한 분위기 자체가 재미있는 경험이 될것이다.

 

여성분들은 또 여성분을 위한 그렇고 그런 코너가 있으니 그런데 가보는것도 좋고.

 

 

 

부탁받은 책 몇권 사고, 그냥 선물도 책으로 사고, 내가 읽을 책도 사고 하니 가방이 미어터진다.

이미 카메라는 들어갈 공간이 없어서 어깨에 매고 있는데, 이곳 가게들은 공간이 매우 협소해서

어깨에 카메라 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통행에 방해가 될 정도. 굉장히 조심해가며 이동하다보니 진이 빠진다.

 

오늘 책 구입비용만 거의 10만원쯤 나왔는데, 그중에 내가 산건 5만원쯤 된다.

어쨌든 도쿄까지 왔으니 내가 만족하게 싸들고 돌아갈만한 녀석은 책밖에 없고.

 

아키바는 정말 올때마다 느끼지만, 한산할 때가 없는 곳이다.

이쯤 되면 이미 매니아들만의 전유물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실제로 일본 최대의 아마추어 동인작가전인 코믹마켓에는 3일간 70만명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인파가 모인다.

이 3일간 도쿄 시내의 모든 숙소가 마비될 정도니까, 직접 보지않으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는 곳.

 

자전거 여행때 이것도 경험이다 싶어서 여름 코믹마켓에 잠깐 들른적이 있는데

인간이 이럴수도 있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이 사진 퍼와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런 느낌이다.

 

 

 

아키바에서 이것저것 부탁받은 물건 구입하고 가방이 빵빵해지니 어깨와 발이 뻐근해진다.

아침에 먹은 라멘덕분에 배는 고프지 않고, 이럴때 유용한 녀석은 조금 먹고 시간 오래 때울수 있는 녀석.

쥐꼬리만한 용량을 자랑하는 모스버거에서 한숨 돌린다. 하지만 여기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10분쯤 기다렸다.

 

좋은 재료를 쓰고, 주문받은 후에 만들어서 바로 내놓기 때문에 맛이 괜찮은 모스버거지만

가격대비 크기가 정말 눈물날 정도로 작은 녀석이라, 이걸로 배 채울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다.

모스버거 특유의 양파향 나는 토마토소스는, 그래도 햄버거 소스중에서는 인스턴트 냄새가 덜 나는 편이어서

깔끔한 치즈와 함께 베어물면 나쁘지 않은 맛이다. 어디까지나 일반 패스트푸드점과의 비교우위일 뿐이지만.

 

모스버거에 들어가서 제일 마음에 드는 녀석은 언제나 음료수 컵에 그려져있는 그림.

사진은 있지만 이곳에 올리지 않는다. 혹시 갈일 있으면 음료수 컵 그림을 잘 살펴보시길.

모스버거의 정체성이랄까, 가장 모스버거 답다는 느낌이 들어서 참 친근감을 느끼는 녀석이다.

 

버거는 그냥 자릿세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피로를 풀며 메모장을 꺼내서 펜을 깨작거린다.

 

 

오늘 루트는 생각하면 참 단순하고 대강대강인듯 하다. 스카이트리와 아키하바라 두 군데밖에 둘러보지 않았다.

시간이 아까운 관광객들에게는 너무 낭비가 심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 8시 반에 숙소를 나와서 라멘 먹을때 20분간 앉은것 빼고는 8시간 넘게 계속 걸어다닌 셈이라서

모스버거에 앉았을 때 몸이 밑으로 쑤욱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지금부터 힘내서 야경보기 좋은곳을 찾아다니면 너댓시간은 더 관광을 즐길 수 있겠는데

그런 식의 강행군은 오직 함께 가는 일행이 있을때만 시도하는 성격이다.

 

자기 물품보다 남한테 부탁받은 물품을 구입하는게 더 피곤한듯 하다.

논리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되게 피곤하다. 이 안에 든게 전부 내가 갖고싶은 것들이었다면 아직 팔팔할텐데.

 

밖으로 나오니 해가 슬슬 지고있다. 어느센가 아키바의 명물로 자리잡은 돈키호테 빌딩의 AKB48 극장이 앞에 보인다.

AKB48 은, 아마 나보다 더 잘 아는 한국인들도 많을거라 생각하는데... 요즘 일본 연예계의 최강 아이돌 그룹이라고 보면 될듯.

한국의 최강 아이돌은 소녀시대인가?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애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엔 무명이었던 그 그룹이 꾸준히 공연하던 곳이 이 아키바의 극장. 지금은 국민아이돌로 상승했기 때문에

AKB 전용 극장마저 생겼고, 조그마한 이벤트라도 있는 날엔 저 앞에 팬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물론 내가 그 아이돌들 이름이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오랜 일본여행끝에 하나 몸에 익힌건 있다.

'에이케이비 사십팔'이 아니라 '에이케이비 포티에잇'이라고 읽는단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해서 가방을 어깨에서 내려놓으니 비로소 해방감이 느껴진다.

저녁 6시쯤의 이른 귀가라서, 오늘은 느긋하게 피로를 풀 수 있을듯 하다.

할일이 없어서 소중한 여행중에 이렇게 빨리 돌아왔냐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별로 할일이 없기도 하고.

사실 내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있기 때문에

조금의 문제도 생기게 하지 않기 위해서 휴식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뜨끈하게 목욕 끝내고 편의점에서 사온 간식거리를 씹으면서 TV 보다가 11시쯤 잠자리에 든다.

TV가 예전에 비해 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도시의 진짜 얼굴은 야경이라는 세간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특히 자연공원을 감상할 때처럼 멀리 떨어져서 그 대략적인 모습을 바라볼 경우에.

낮의 콘크리트 도시는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무덤이지만

저녁이후부터 슬쩍슬쩍 들어오기 시작하는 불빛을 보면 그래도 사람사는 곳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인파를 피해 아침일찍 찾아오는 나같은 관광객을 위해 전망대 위에는 꽤나 큼지막한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어

이곳의 야경을 대충 맛이라도 보여주려고 노력중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마 저녁에 한번 더 올라오고 싶겠지.

 

이번 여행에서는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을 생각이지만, 다음에 도쿄에 오게 된다면 미리 예약하고 저녁에 올라가볼 예정이다.

스카이트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야경 정도 되어야만 돈값을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같은날 한국은 굉장한 한파에 폭설에 난리가 난듯 한데 도쿄는 위도가 좀 낮아서 화창하고 따뜻한 날이 계속된다.

여기서는 이것도 춥다고 기상예보에서 찡찡거리기는 하던데, 당시 서울은 영하 9도, 도쿄는 영상 13도였다.

 

물론 서울쪽을 급습한 한랭전선이 일본 중북부까지는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홋카이도 등에서는 폭설로 항공시설이 마비되기도 했다.

도쿄는 어쨌든 따뜻해서, 도시의 미세먼지가 강한 햇빛에 산란되어 아지랑이같은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진을 유심히 보면 빌딩들의 선이 꾸물거리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처음엔 카메라 불량인가 싶었지만 알고보니 아지랑이.

 

사막의 그것과 달리 덥다고는 할수없었지만, 시계가 넓고 유난히 맑았던 하늘에 도시의 미세먼지가 만들어내는 자연과 인류의 합작품.

 

 

 

시간이 지날수록 전망대에 사람이 많아진다.

이미 상당수의 인원은 1천엔 추가지불하면 올라갈 수 있는 100m 위의 전망대에 줄을 서 있다.

350m 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450m 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어느정도의 차이가 있을런지.

 

만약 640m 최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면야 기꺼이 추가요금을 지불할 의향이 있지만, 1m 올라가는데 10엔이라는 등식에는 따르기 힘들다.

전망대가 '그들 나름대로는' 미어터지지 않도록 내부 인원을 꾸준히 체크해서 지상 엘리베이터를 가동시키고 있지만

개장 직후 방문했을때보다는 확실히 밀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슬슬 발을 뺄 때가 된듯 하다.

 

겨울이라 늦은 아침햇살의 역광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은

먼지에 뒤덮힌 회색빛의 도시마저도 잠깐동안이지만 친근감을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산으로 치면 정말 별것아닌 언덕이나 다름없는 높이인데

산행으로 거치는 모든 요소들을 싹 빼먹어 버리고, 홀로 우뚝 서있는 타워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인공물이 가지는 특징이란, 풍경의 우열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도 특정 몇 군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을

쉽게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스카이트리 전망대의 의미를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도쿄라는 도시에 화장을 좀 더 시켜야 할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스카이트리의 그림자가 멋진 임팩트를 만들어준다.

유심히 내려다보니 학교로 보이는 건물에도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 한데

학생들에게는 재미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고, 전력회사에게는 그닥 유쾌한 광경이 아닐 듯.

 

전기를 가동하면 전력회사가 돈을 버는거 아니냐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도쿄는 지금 돈주고도 전기를 추가 생산할 수 없다. 무조건 아껴야만 하는 상태.

 

 

 

렌즈별로 한 바퀴씩, 두 바퀴를 돌아보고 내려간다.

바로 하강 엘리베이터를 타는게 아니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있다.

관광객 분산을 위한 목적도 있고, 추가적인 수입을 기대하는 목적도 있다.

 

한층 밑에는 창문가에서 경치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이 없고, 기념품점과 까페 정도가 영업중.

카톨릭과는 전혀 관계없는 나라지만 어쨌든 12월이 되면 대대적인 홍보가 일어나는데

스카이트리에도 벌써 마스코트가 생긴건지, 산타옷 입고있는 캐릭터가 보인다.

 

이 타워의 이름이 스카이트리다 보니, 트리에 제대로 조명만 설치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겠는데

전력부족으로 절전중이라서, 은은한 빛깔 이상으로 화려해지기는 어려운 듯 하다.

 

 

 

처음엔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쯤되니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무리를 이루어 돌아다니고 있다.

기념품점에도 학생들의 행렬이 늘어서 있는데, 이곳 기념품점은 아사쿠사의 그것과 달리 물건의 퀄리티가 예사롭지 않다.

 

상당한 요금과 긴 대기행렬을 뚫고 올라온 전망대이다 보니

이곳에서만 살 수 있다는 한정상품이 줄지어 서 있고, 그 한정상품은 고가일수록 가치가 있어보일 터.

아동용 볼펜이나 수첩, 손수건 같은 그럭저럭 저렴한 녀석들도 있지만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스카이트리 모형같은 수십만원짜리 기념품도 여기저기 보인다.

 

이곳에는 까페도 있는데, 형태상 전망대 층보다 더 작은 규모의 이곳에 이런 까페를 집어넣으니

아무래도 좀 복잡해 보인다는 인상이 든다. 묘하게 펜스를 쳐 놔서, 커피를 구입한 사람만

저 앞으로 지나가서 경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 놓은듯한 분위기가 미세하게 신경을 긁는다.

 

뭐, 그냥 스윽 지나가서 창가에 들어가도 괜찮을것 같지만, 제품 주문장소와

음료 받는 장소의 위치를 보면, 아무래도 흑심이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러나저러나, 야경도 아닌 도쿄 시내를 쳐다보면서 커피 마실만큼 매마르진 않았다.

 

 

 

고층 타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씨 스루 바닥.

토쿄타워에서도 볼 수 있었고, 별 감흥은 없었다.

 

이곳 스카이트리는 더더욱 감흥이 없을 수 밖에 없는것이

이 정도 높이라면 이미 사람의 높이감각은 그 의미를 상실하는게 당연하기 때문.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 바람조차 느낄 수 없는 이 공간에서

밑의 개미같은 광경 조금 보인다고 겁나서 쉬야라도 해 버리는 사람이 있을것 같지는 않다.

 

학생들 중에는 '꺄~ 무서워' 하면서 우물쭈물거리는 부류도 있던데

지능이 높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가질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이 무의식중에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혹시나 싶어서 윈도우 위에서 바라보며 찍은 사진을 올려보는데

아무리 사진을 확대해도, 설사 저 자리에 서 있다고 해도 별로 무섭진 않을 것이다.

 

측면에 스카이트리의 기둥 일부가 보이는데, 이것만이 유일하게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는 정도랄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현실세계로 내려온다.

별 생각없이 일찍 나선 스카이트리 방문길이었는데, 지금와서 보니 정말 일찍오길 잘했다는 생각.

다시 올라가려면 최소 40~50분은 기다려야 할 법한 인파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스카이트리의 마스코트인듯 한데, 세계적인 인지도를 목표로 하는건지 의외로 일본색이 별로 들어가지 않은 느낌이다.

12월 초순인 지금부터도 TV 광고나 버라이어티 쇼 등에서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끊임이 없는데

한국도 그렇긴 하지만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뭘 그리 즐거워하는걸까.

 

기업들에게는 이유야 어쨌든 매상이 폭등하는 시기니, 거대 체인점들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방송내 광고가 허용되는 수준이 아니라, 1시간 혹은 2시간짜리 방송 전체를 한 기업이 스폰서 할수 있는 일본이라서

황금시간대 방송을 보면 내가 지금 버라이어티 쇼를 보고 있는건지 1시간짜리 광고방송 보고 있는건지 햇갈릴 정도.

 

물론 그런 방송도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준수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주로 음식관련 방송이 많아서 보고있으면 즐겁다)

그냥 보고 즐기기엔 나쁘지 않다. 거기 속아넘어가서 별것아닌 대량생산품을 굉장히 맛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뭐, 실제로 대량생산품이라도 일본의 먹거리들은 일정 이상의 품질은 통과하니 아예 맛없는건 아니다.

일본 편의점의 도시락은 그 돈주고 충분히 먹을만 하다는 느낌이니까.

한국 편의점의 도시락은... 자전거 여행 하는중이 아니라면 공짜로 줘도 안먹는다.

 

 

 

전망대에서 한층 내려오면 조그만 기념품점.

그리고 지상으로 내려오면 다시 나타나는 커다란 기념품점.

학생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액면가로는 나하고 나이를 구분하기 힘든 학생들도 있긴 한데.

 

일본은 여행 다녀올때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여행 선물을 돌리는게 예의의 일종으로 인식되어있기 때문에

학생들 수학여행때는 부모들이 선물용 용돈을 따로 챙겨주는게 일반적이다.

한국처럼 그냥 생각나면 사가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관계 서먹해지기 싫은 레벨이라면 무조건 줘야 하는 느낌.

 

덕분에 기념품점이 활성화되고, 좋은 품질의 아이디어 상품들이 계속 빛을 발하게 되는 좋은점도 있긴 하다.

일본, 특히 도쿄정도의 비정상적인 거대도시들은 활발한 소비활동이 없이는 절대로 유지될 수 없다.

아무리 불경기라도 워낙 저축량이 빵빵한 일본의 서민경제라서 아직까지는 눈에 띄지 않고

재미있게도 2012년부터 내수경제가 확연히 살아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서, 이곳 역시 활기가 넘치고 있는데

이는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 마지막 안간힘인지 정말 다시 살아나는 전조인지.

 

후쿠시마 대지진과 원전사고, 한국 기업의 군림과 자국 전자회사의 몰락 등 최악의 위기감이

이런 활발한 소비활동의 단초가 된 것만은 확실한 사실인데, 이게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를 보여줄지에 대해서는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개별적 원인 모두가 세계 역사상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

 

적어도 지금보다는 가난한 나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 한국이 일본의 GDP 를 뛰어넘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부정적, 정도라는 레벨이랄까.

 

 

 

스카이트리를 나서자 다시 한번 깨닫는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보다, 밑에서 스카이트리 쳐다보는게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 풍경은 먼지로 자욱하지만

밑에서 바라보는 스카이트리는 화창한 하늘을 배경으로 매끄러운 인공물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기술이 워낙 발전하다보니, 에펠탑이나 도쿄타워처럼 다리 4개로 지탱되는게 아니라

카메라의 삼각대처럼 3개의 기둥으로 634m 나 되는 녀석이 지탱되고 있다.

기술적으로 진도 8.0 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예전같으면 한번 믿어보겠지만,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인간의 기술력이란건 아직 멀었구나 싶다.

 

매장 한달도 되지 않아서 강풍때문에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사고가 두 번이나 일어났으니.

 

 

 

어찌됐든 인류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급의 기술력으로 제작된 녀석이란 건 분명한 사실.

옆 빌딩에 비치는 스카이트리의 모습에서, SF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무언가를 느껴보기도 한다.

 

난시청 해소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송출용 타워이긴 한데

완공 후의 행보는 보면, 이미 주객은 전도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관광객이 모인다.

이런 랜드마크의 조그만 장점이라면 역시, 돈내고 올라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얼마든지 감상하며 사진 찍을수 있다는 점이겠지.

 

 

 

본인은 어디까지나 카메라들고 재미있는 모습이나 찾아다니는 평범한 관광객이니

이렇게 담은 사진은 사실 큰 감흥도 없고 별로 잘 찍은 녀석들도 아니지만

이 근처에서는 스카이트리가 완공되기 몇년 전부터 계속 이녀석의 모습을 꾸준히 촬영해오는 사진작가도 있다.

 

언젠가 뉴스에도 등장했는데, 어디서 찍으면 어떤 모습이 나온다는걸 속속들이 알고 있는 스카이트리의 프로.

그 사람의 촬영모습을 보고 있으니 역시 제대로 사진 담으려면 준비도 철저해야 한다는 사실을 세삼 깨달았다.

 

이 스카이트리는 어쨌든 워낙 크고 도심 복판에 세워진 녀석이라, 모습 전체를 방해없이 담을 수 있는 장소가 의외로 많지 않다.

장소가 특정되어야 한다면 렌즈의 화각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담아내는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고.

전망대에서 내려와 하염없이 주위를 멤돌며 셔터를 누르고 있는 나로서도

원하는 그 느낌을 살리려면 삼각대와 TS 렌즈정도는 있어야 할것 같다. 원하는걸 얻기 위해서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지.

 

 

 

전망대에서 나와서 바로 찍은 사진에는 위치상 450m 전망대가 보이지 않았다.

소라마치로 가려고 걸어가는 사이에 사람들이 자꾸 뒤를 돌아보며 휴대폰을 꺼내길래

뭔가 싶어서 돌아봤더니, 거리가 멀어질수록 450m 전망대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천엔과 기다림이 아까워서 올라가진 않았지만, 그 형태가 독특하다는 것은 밖에서도 잘 보인다.

복층구조로 되어있는 450m 전망대는 타원형으로 유리 튜브같은 길을 따라 걸으며 360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350m 쪽 윈도우가 생각보다 좀 더러워서, 야경 찍을때는 450m 쪽이 좋으려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하긴, 밖에서 창문청소할 수 있는 높이도 아니고 기대가 너무 큰 쪽이 잘못일지도.

 

 

 

스카이트리 옆의 거대 쇼핑몰 소라마치(空町)를 둘러보려고 이동하는데

문이 닫혀있는걸보고 잠시 당황했다. 알아보니 지상 7층까지는 오전 10시에 개장하고

30, 31층의 스카이트리 플로어는 오전 11시에 개장한다는 것. 8시 반쯤 전망대를 올라가서 맘껏 구경했는데

아직 10시까지는 15분쯤 남아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온 것 치고는 굉장히 효율적으로 구경한 셈.

 

지금부터 스카이트리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전망대 올라가는데도 많이 기다려야 하고

내려와도 소라마치의 인파에 휩쓸려 다녀야 할것이다. 새삼 생각하지만 참 다행.

야경 촬영할때는 미리 예약하는것 외엔 도저히 방법이 없으니, 다음엔 주의해야겠지만.

 

소라마치 내부는 아니고, 버스 승강장으로 가는 길 옆에 지브리 기념품점인 '도토리 공화국'이 있길래

저기나 들어가볼까 했지만, 이곳 역시 10시부터 개장이라서 실패.

눈에 반짝반짝 독기를 품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단단히 잡고 이 성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서

설사 개장하더라도 내가 들어가 구경할만한 공간은 없을것 같다. 지브리는 아이들에게 맡기자.

 

 

 

현재 도쿄 시내에서 사진찍는 사람이 제일 많이 보이는 장소라면 단연 이곳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것 같다.

제대로 된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사람도 많거니와, 정말 이곳에 오면 누구나 휴대폰 꺼내들고 셔터 누르기 바쁘다.

 

안으로 뜯어보면 나름 볼만하지만, 어쨌든 덩치에 비해서 좀 심심한 도시인 도쿄에

이렇게 세계적으로도 특징적인 녀석이 턱하니 들어섰으니 그 호기심이야 두말할 것 없겠지.

아침부터 쫓기는 마음으로 후다닥 둘러보고 빠져나왔지만, 그만큼 이곳 관광객이 너무나도 많아서

나같은 사람한테는 정말 고역이다. 그래도 호기심으로 한번 보려고 찾아왔는데 성공적이라서 나름 뿌듯한 기분.

 

 

 

 

잠을 일찍 잔 덕인지, 알람 맞춰놓은 7시 반에 일어나 조식 챙겨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어제 저녁 뉴스에서도 체크했지만, 다시 한번 아침뉴스에서 날씨를 체크.

아주아주 맑고 올 겨울들어 가장 화창한 날씨가 될거란다.

 

이렇게 된 이상 목적없던 도쿄 둘째날은 일단 스카이트리쪽으로 결정.

물론 올라갈거라는 생각은 숙소를 나설때까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이라 대기열이 적을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날은 토요일이었으니까.

 

어젯밤 잠깐 스카이트리 다녀온 사람들 포스팅을 찾아보니, 예약하지 않으면 대충 1시간보다 더 걸린다고 하더군.

순번표를 받아놓고 밖에서 한참 돌아다니다가 겨우 티켓을 받고, 또 거기서 몇십분 기다려야 승강기를 탈 수 있다고 한다.

그럴 것 같으면 올라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지만, 일단 날씨가 좋으니 근처에서 사진이라도 찍어볼까 싶어서 출발.

 

전망대 못가더라도 지상의 쇼핑몰인 소라마치(空町)역시 볼거리가 많으니 가보라고 하는 블로거들의 정보도 있으니

가까이서 스카이트리 사진이나 실컷 찍고, 소라마치에서 먹을거나 좀 먹으며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한다.

어제의 아사쿠사까지 터벅터벅 걸어서 스카이트리행 전철을 탔는데, 막상 타보니 거리가 너무 짧다.

 

블로거들은 대부분 생각보다 거리가 머니 걸어가지말고 전철 타라고 포스팅을 했던데

아무래도 기준을 잘못 잡은듯 하다. 이 정도 거리면 내 기준으로 식사후 잠깐 산책나가는 거리일 뿐.

서울서 사하라 멤버 나침반님 만나면 보통 지하철 너댓코스 정도의 거리는 걸어다는게 일상이라

이 정도 거리라면 38도쯤 되는 한여름 아래서도 음료수 한병으로 충분하다. 전철비가 좀 아까웠다.

 

물론 전철안에서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는 스카이트리의 모습은, 어제 스미다가와 강을 사이에 두고 보던 것과

상상도 못할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전철 승객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가서 사진 찍어대는 풍경이 연출된다.

 

원래 스카이트리가 있던 지역은 토부 철도의 화물창고로 사용되던 공터였는데

사실상 도쿄 부근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던 부지나 다름없었으니, 스카이트리는 자연스레 이쪽으로 오게 되었다.

이제는 역 이름도 스카이트리 역으로 바꾸고, 근심과 두려움이 가득한 도쿄를 살려보려는 최후의 노력을 쏟고 있는 중.

 

역에서 내리니 육중한 모습의 스카이트리가 뿌리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다.

수백미터 떨어진 곳과는 역시 느낌히 달랐다. 사람이 이런걸 만들 수 있구나 싶은 생각.

겨울이라 해가 낮게 뜨니, 꼭대기쪽엔 햇빛이 걸려서 그림자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공적인 볼거리로서는 참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만드는 풍경.

 

 

 

매표소쪽으로 가 보니,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손님이 모여들기 전이라서

15분만 기다리면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기회를 놔두고 흥미없다고 돌아오는건 아무리 나라도 좀.

 

하지만 입장료가 2천엔이나 하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건 어쩔 수 없다. 전망대 올라가는데 몇만원이나 내게 될줄은 몰랐다.

한시간이나 기다려서 바글바글한 전망대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현실에서

돈이 아깝다고 15분이라는 시간의 혜택을 놓치는건 아무래도 결단력이 필요하고, 난 좀 우유부단하기도 하다.

 

스카이트리 전망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놀라워하는 것은 엘리베이터의 속도.

무슨 기술을 적용한건진 모르겠지만, 350m 높이를 50초만에 올라간다. 일본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라고 한다.

바깥풍경이 보이지는 않아도 LCD 화면에 올라가는 높이를 표시해 주는데, 숫자가 주르륵 올라가는걸 보면 놀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속도에 비해 귀가 멍해진다거나 하는 현상도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와 전망대가 완전히 밀폐되어 있기 때문일까.

 

이 엘리베이터는 개장 한달만에 두 번이나 바람때문에 멈춰서는 바람에 언론에서 많이 까이기도 했다고.

 

어쨌든 순식간에 전망대에 도착하니, 무리하지 않아도 창문쪽에 붙어 사진찍을 수 있을만한 공간이 남아있다.

사람 많을때는 유리창쪽에 달라붙는것도 순서 기다려야 할 정도라는데 왠지 이득본것 같아서 기분은 좋다.

하지만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라고 했는데, 350m 위에서 바라보는 도쿄의 모습은 뿌옇기 그지없다.

방금전 지표면에서 위를 올려다 봤을때는 꽤나 푸른 하늘이었는데, 역시 이 정도 규모의 도시가 가지는 숙명과 같은 것일런지.

 

 

 

여러 정황증거들을 봤을때, 오늘 이 시간에 스카이트리를 찾은건 매우 적절한 판단이었던 듯.

현재 도쿄 관광지중에서 가장 붐빈다는 스카이트리 전망대 안을, 인파 걱정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큰 수확이다.

젊은층들은 휴대폰으로 사진찍는것에 비해,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SLR 이나 RF 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조금 독특하다.

 

그리고 그런만큼 장년층 관광객수가 절대수치로 따져도 젊은사람보다 더 많은듯 보이는것 역시 놀랍긴 하다.

여전히 소비활동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고, 그럴만한 소득을 누렸던 세대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이렇게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것은 좀 부럽다.

 

 

 

이렇게 보니 정말 도시의 숲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넓긴 넓다.

그런데 웃기는 건, 도쿄도는 서울보다는 좀 넓어도 대구 면적보다 좁다는 것.

서울이나 대구처럼 주변에 산지가 없이 완전한 도시숲인데다가, 인구밀도가 워낙 높아서 체감적으로 서울이나 대구보다 더 넓어보인다.

 

이것은 도쿄도라는 행정구역과 실제로 사람들이 느끼는 도쿄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한국사람으로서는 도쿄와 별개의 이름이 붙은 주변도시들은 그냥 서울과 인천 정도의 차이겠지 싶겠지만

사실 거리상으로 인천의 관계와 그리 다르지 않은 요코하마의 경우 어디서부터가 도쿄이고 어디서부터가 요코하마인지 구별이 불가능하다.

이 스카이트리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후지산까지 보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렇게 보아서는 어디까지가 도쿄인지 알 수 없는 것.

 

위 사진에서는 숨은그림찾기가 가능하다. 도쿄타워가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인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이곳 스미다구와 타이토구는 개발이 더딘 곳으로, 가까운쪽과 저 멀리 도쿄 중심부의 건물 모양만 봐도 금방 구분이 된다.

 

 

 

예전에 대구 우방타워에 올라서 찍은 사진을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 비교하면 스카이트리의 높이를 조금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제저녁 아사쿠사에서 바라본 아사히 똥덩어리와 스카이트리의 크기가 기억난다면

사진 중앙 하단부의 똥덩어리를 잘 찾아보는게 재미있을 듯. 이 정도나 차이가 나는 녀석이었다니.

 

우측의 수목이 우거진 부분이 아사쿠사 센소지.

 

 

 

도쿄 주민들이라면 내가 대구 우방타워에서 그랬던 것처럼

알고있는 건물이나 자기 집 찾아보는데 재미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을듯 하다.

그런 면에서 고층 타워란 외부 관광객보다는 지역 주민들에게 더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아닌가?

 

확실히 350m 씩이나 되는 높이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경험을 쉽게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도쿄처럼 어디를 둘러봐도 인간의 흔적밖에 보이지 않는 이런 풍경은, 의미를 가지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좀 가벼운 느낌이다.

그리고 확실히 이 정도 높이에서 바라보면 고소공포증도 작용하지 않을 듯 하다.

너무 높다보니까 어딜 둘러봐도 무섭다는 감각이 생기지 않는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바라보는 느낌.

바람이라도 통하고 있다면 무섭겠지만, 그랬다가는 이 전망대에서 스펙타클 호러영화 한편 찍게 되겠지.

 

 

 

 

전망대에 오르기 전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진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보게되니 이 녀석의 민폐를 어느정도 실감할 수 있다.

 

워낙 높은 녀석이고, 스미다구와 타이토구는 고층 빌딩이 그렇게 많지 않은고로

이 근처 주민들은 아무래도 하루의 일정 부분이 인공 그늘에 가려지는 현상을 감내해야 할 듯 하다.

 

시간에 따라 위치가 바뀔테니 피해가구를 특정하는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일본인들의 성격상, 스카이트리가 이 지역에 가져다주는 이익을 고려해서 그냥 참고있는게 아닐까 상상해 본다.

다행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타워형태가 길쭉해서 그늘이 금방 지나가니 그렇게까지 불편하진 않을지도.

사실 한국의 대단지 아파트들은 높이가 이렇게 높진 않아도 워낙 장막처럼 뻗어있어서

뒤편 주택이나 저층단지 세대들은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거기보단 낫다고 봐도 되겠지.

 

 

 

다양한 패턴을 보여주긴 하지만 역시 인공 구조물로 가득한 풍경은 금새 흥미가 떨어진다.

특히나, 자신과 연고가 없는 지역이다보니 뭘 유심히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래서 전망대에 별로 흥미가 없었던 것인데, 어쨌든 큰돈주고 올라왔으니 본전은 뽑아야지.

그나마 바로 밑을 흐르는 스미다가와 강이 만들어내는 곡선이, 이 흐릿한 도시의 허리선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소위 말하는 보정용 코르셋같은 느낌이랄까. 스미다가와 강이 없으면 이곳 주변은 드럼통이나 마찬가지.

 

 

 

전망대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주변을 뜯어살펴보니 예전 자전거 여행이 생각난다.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순 없지만, 지금 내 눈으로 관측 가능한 곳까지는 대충 하룻만에 주파가 가능한 지역.

 

그 당시는 하루하루 달리면서 이 굼벵이같은 속도로 어디까지 갈런지 지루해 한적도 많았는데

조금 떨어져서 보니, 무동력으로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거리는 그렇게까지 하찮은 건 아닌것 같다.

 

일반인은 올라갈 수 없는 타워의 최상층 634m 꼭대기에서, 관측사상 가장 가시거리가 넓은 날에 둘러본다고 해도

자전거로 삼일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스카이트리는 인류가 만든 두 번째로 높은 탑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지 않겠나 싶다.

 

 

 

도시란게 원래 야경이라도 빛나지 않으면 원채 심심한 색채와 모양으로 점철된 녀석이라

스카이트리 전망대에서 제일 그림이 잘나온다 싶은 건 스카이트리의 그림자라는 묘한 결과가 나와버린다.

 

도쿄 역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어지럽게 개발된 도시라서

평소같으면 10분쯤 둘러보고 후다닥 내려와 버렸을 이런 전망대에서

그래도 30분 넘게 계속 돌아보며 이 끝없는 풍경이 가지는 매력을 찾아보려고 노력중이지만

난해한 수학공식과 같이 쉽게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 좀 골치가 아프다.

 

역시 해가 지고나서 전망대에 올라오면 그 풍경은 정말 은은한 아름다움을 발산할 것 같은데

저녁의 스카이트리가 훨씬 붐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티켓의 현장구매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예약하면 좀 더 수월하게 입장이 가능하다는데

인터넷 예약은 최소 2주전에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불가능.

스카이트리에서 보는 도쿄 야경이라고 하니, 그건 한번 구경할 가치가 있을듯 해서

다음에 도쿄 오게된다면 미리 저녁시간에 예약하고 올라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사쿠사 앞의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스미다가와 강을 타고 오다이바까지 갈 수 있다.

친구일행 데리고 딱 한번 타본적이 있는데, 외관이 아무리 멋져도 배는 역시 배일 뿐이라

크게 감흥은 없었던 기억이 난다. 볼것없는 전철보다는 풍경이 좋았지만, 오다비아로 갈때는

풍경 좋기로 유명한 무인열차 유리카모메를 타기 때문에 그것도 별 의미가 없다.

 

도쿄엔 한강만큼 폭이 넓고 유량이 풍부한 강은 없지만, 바다와 근접한 곳이다 보니

도시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지류의 수는 훨씬 많은 편이다.

도쿄가 그나마 숨쉴 만한 여유가 있는것도 이런 강들이 허파 역할을 해 주고 있기 때문이었고.

하지만 원전 사고 이후, 바다를 타고 들어온 방사능 물질들이 이제는 강으로 역류에 들어오고 있어서

도쿄의 허파가 오히려 종양전이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는 실정.

 

사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거나 마찬가지니,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살고있는 도쿄 주민들도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이나 걸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일런지...

 

내 개인적인 입장이라면, 아마 도쿄전력 임원들을 시장바닥에서 돌맹이로 공개처형이나 하고 싶겠지만.

 

 

 

광각역할을 담당하는 35mm 렌즈로는 넓은 영역을 담을 수 있지만

지상에서 350m 나 떨어진 스카이트리 전망대에서 그렇게 담으니 이거나 저거나 너무 콩알처럼 보여서 재미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사람들 밀도가 높아지는 듯 해서 약간 신경쓰이지만, 아직 렌즈를 교환할만한 여유는 있다.

망원렌즈로 담으니 저기 하늘아래 세상이 좀 더 사람냄세를 풍기는 듯 하다.

 

솔직히 작정하고 찾아보면 일본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스팟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긴 한데

현지인도 아닌 내가 한국 블로그에서 관광 가이드 할것도 아니고, 그런거 골라담아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처음 올라왔을때는 그래도 좀 마음이 두근두근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30분쯤 지나자 그 기대감의 절반 정도는 '지불한 2천엔이 가지는 의미'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내려가면 두번다시 올라오지 못하니, 최대한 구경할거 많이 지긋하게 구경하자는 의미로 빙글빙글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