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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에 해당하는 글들

  1. 2015.06.05  도시 2
  2. 2013.08.26  과거로의 여행 - 히다 타카야마로 8
  3. 2013.04.14  감기 걸렸다가 나았습니다 14
  4. 2013.02.23  의욕이 문제네요 22
  5. 2012.09.26  산인 여행 - 이즈모 타이샤의 처절한 소원들 18
  6. 2012.04.21  오늘은 그냥 봐줍니다 14

 

 

비가 오고나서 날씨가 확 풀렸네요. 여름이라도 역시 이런 날이 하루 이틀 정도는 있어야 숨이 트입니다.

제 방 실외기 쪽에 끈질나게 드나들던 비둘기들은 꾸준한 위협에 의해 요즘엔 오는 횟수가 좀 줄었습니다.

그래도 얘네들 머릿속엔 시계라도 들었는지 아침 8시만 되면 정확히 찾아와서 꾹꾹거리는군요.

 

그래도 실외기 쪽은 뭔가 학습한 게 있는지 창가에 앉는 소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외발로 서서 조는게 더 편한지, 참 특이한 모습이네요. 사진 찍고 잠을 깨워서 쫓아보냅니다.

 

 

 

한참 비가 오고 드디어 좀 개었다 싶으니 하늘은 맑아서 위안이 되네요.

그래도 역시 이런 빌딩숲은 참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멋진 하늘과 멀리 산들 사이에 방해물이 많군요.

 

원래 일상의 시선에서 이야기거리를 찾아내는게 사진의 묘미인데

요즘엔 점점 서식지 주변에서 사진 찍는게 싫어지고 있습니다. 만성적 여행 증후군 탓도 있고 시대가 어수선해서 흥이 나지 않는 탓도 있겠죠.

 

신천 한바퀴 도는 건 나름 재미있었습니다만, 상류로 올라가면 냄새가 나서 좀 찝찝합니다.

그래도 간만에 엄니와 산책 했으니 포스팅은 해 볼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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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 2015. 6. 5. 20:24 Photo Diary

 

7시 반쯤 빗소리에 잠을 깰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베낭여행중 지역을 이동하는데 비가 오면 꽤나 귀찮다. 짐이 많은데다가 우산이 없으니.

당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워낙 덥고 기후가 불안정해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시원하게 쏟아붓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홀딱 젖은 모습으로 버스를 타면 민폐가 아닐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8시 반에 조식먹으러 내려가니 왠걸 비는 그냥 맞아도 될 만큼 부슬거리고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는 이래서 좋은 점도 있는걸까. 덥기는 무지하게 덥고 습도가 높아서 이상적이지 않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게 없다. 특히 지금 향하는 타카야마는 날씨가 흐린편이 더 나을수도 있는 풍경이다.

 

10시 셔틀버스 타고 나고야역에 도착. 버스 출발이 10시 45분이라서 시간은 좀 남아있다.

다행히도 비는 완전히 그치고 불쾌한 습도만이 아스팔트를 매우고 있지만, 이것만 해도 어딘가.

 

 

 

나고야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역사 내부에 맥도날드가 있긴 하지만

아침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도저히 이 짐을 들고 앉아있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고야역은 새벽이나 한밤중 말고는 정말 조용할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데, 서울역 정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일본 대도시의 맥도날드, 특히 역 앞의 맥은 조금만 덩치 큰 사람이라면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좌석이 좁아서

40L 짜리 베낭과 커다란 카메라용 사이드백을 짊어진 내가 들어가는건 아무래도 큰 모험이다.

 

그냥 버스 터미널 앞에서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분수대가 있는 넓은 광장 앞에 비둘기들이 잔뜩 모여있다.

도시 비둘기들은 인간 홈리스들과 별로 다를바가 없는 생활을 하는 터라 좀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요즘 덥기도 무지 덥고.

사람들 찍는건 조심하게 되지만 이녀석들이야 찍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테니 움직이기 힘든 몸을 뒤척여서 카메라를 꺼낸다.

 

도시 비둘기들은 먹고자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고 포식자에게 습격당할 염려가 없어서 느긋하긴 하지만

그와 걸맞는 부담도 당연히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사람하고 별로 다를게 없다.

 

 

 

이런 길바닥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람들이 보기에도 지저분해 보이는 건 어쩔수가 없고

매일 37도를 넘나드는 폭연 속의 도시는 이들에게 결코 안락한 휴식처가 아니다.

습성이 무디어진 이 녀석들은 의외로 자동차나 사람에게 자주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걸어다니는 일이 많아서인지 발을 다치는 경우도 많다.

 

한동안 녀석들 관찰하다 보니 몇몇의 앉아있는 자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앉을때도 아픈 사람과 마찬가지로 조심조심하여 간신히 앉는데, 한쪽으로 기울어져 앉는다는건 다리를 다쳤다는 의미.

사람이 어지간히 가까이 가도 경계의 눈빛만 보내며 움직이지 않고, 아무 관심없는 사람이 정면으로 걸어와야 간신히 절뚝거리며 이동한다.

 

이 녀석들의 앉은 자세를 보고 일부러 비켜 걸어가줄 도시 사람이란 게 그리 많지는 않을 듯.

나처럼 지네들 사진이나 찍어대고 있는 여유넘치는 여행자들이나 신경써 주겠지.

 

 

 

이녀석들의 낮과 밤이 어떤 사이클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광장에서 노는 시간인가보다.

대부분의 비둘기들이 그냥 훌렁훌렁 걸어다니며 시간만 때우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사람 무서워하지 않는 건 도시 조류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이 녀석들 털 상태를 보면 사람이 알아서 피하게 되는걸 보면, 이것도 나름의 보호색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유난히 앉은 자세가 이상한 녀석이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한 녀석이 와서 털을 골라준다.

비둘기들끼리도 정이란게 있는지, 참 뿌듯한 광경이다 싶어서 찍어대고 있는데

옆에서 눈매 사나운 녀석이 달려들더니 쓰러지듯 앉아있는 녀석을 사정없이 쪼아댄다. 이건 털 골라주는 것과 틀리다.

비틀거리면서도 간신히 도망가는데, 일정 거리만큼 쫓아가며 쪼아대던 녀석은 화가 풀리지 않는듯 주위를 멤돈다.

 

대체 저 녀석들 사이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먹이 쟁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영역 싸움이라기엔 주위에 다른 비둘기도 많은데.

단순히 약자에게 더욱 사나운 동물적 본능이 발현된 것일까.

 

조류는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어떻게든 형제들과 경쟁하며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강하고

어미 역시 도태되었다고 생각되는 새끼에겐 먹이도 주지 않고 죽게 내버려두는게 대부분이긴 하다.

 

 

 

아직 날렵하게 생긴 그 깡패 비둘기가 유유히 고여있는 물을 마신다.

물론 괴롭히던 녀석이 그 주위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옆에 다른 비둘기가 물 마시러 오자 은근히 싸움걸려는 움직임을 취하는 걸 보니, 그냥 성격이 더러운 뿐인가 보다.

도시 비둘기들에겐 식수 공급이 먹이 공급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비가 한번 쏟아지고 나면 사람보다는 기분이 좋을듯 하다.

 

 

 

가장 오른쪽 녀석이 발을 절뚝거리는 놈이고, 그 옆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녀석이 깡패 비둘기.

일부러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고 있다. 대체 뭐 하자는 플레이인지.

그렇다고 내가 일부러 가서 방해할 수도 없다. 괴롭힘 당하는 고양이라면 몰라도 비둘기는.

 

예전 회사다닐때 사무실 앞에서 새끼 고냥이를 괴롭히는 동네 어른고양이가 있어서

신나게 괴롭히고 있을때 확 뛰쳐나가 둘을 떼어놨더니, 신기하게도 괴롭힘 당하던 새끼 고양이가 사무실 앞에서 터를 잡고

내가 나오면 반갑게 얼굴을 비벼대던 기억이 난다. 분명 길고양이인데 내가 자기를 도와줬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 행동을 해서

동물이라도 역시 머리는 돌아가는구나 감탄하곤 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아무래도 그 정도는 아닌듯 하고.

 

 

 

아, 물론 비둘기는 사실 상당히 머리가 좋은 새다.

수백년 전부터 전서구로 이용했던 만큼, 장소 찾아가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래서 질리지도 않고 내 방앞 베란다에 찾아와서 똥을 갈기는 녀석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제대로 전서구로 키워진 비둘기는 그 애교가 강아지나 고양이 맞먹는다.

일본엔 아직 전서구 대회가 있어서, 얼마나 멀리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정확하게 돌아오는가를 겨루고 있고

그 대회에 나가는 비둘기를 키우는 사람들은 거의 가족 수준으로 그들과 교감을 한다고 한다.

 

위 녀석은 아주 가죽 자캣 걸치고 할리 데이비슨을 몰 법한 패션을 하고 있다.

더럽긴 똑같이 더러워도 왠지 야성적이라고 할까, 나름 멋을 좀 부릴 줄 아는 녀석인 듯 하다.

 

 

 

비둘기 신나게 찍고 있으니 버스가 도착해서 타카야마로 향한다.

거진 세 시간은 걸릴 만큼 꽤나 떨어진 곳이라, 심심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타카야마(高山)는 이름 그대로, 나가노현을 중심으로 일본의 척추형태로 뻗어나가는 중앙알프스 산맥의 언저리에 위치한 마을로

절경으로 유명한 히다(飛騨)고원지대와 함께 묶어서 히다 타카야마라고 불리는 유명한 관광지.

나고야는 바다에 인접한 낮은 평야지대인데, 거기서 타카야마로 가다 보니 느긋한 경사로 끝도없이 올라간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는 사진은, 어지간해서는 만족할만한 화질이 나오지 않고 순간의 풍경 담기에도 힘들어서

가방에서 카메라를 잘 꺼내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몇 번이나 몸이 움찔움찔한다.

 

가뜩이나 높은 곳으로 향하는데다가, 산맥을 따라서 꼬물꼬물 달리기는 힘들다 보니 아예 고가도로를 만들어 놓았으니

나무에 가려있던 시야가 넓어지는 단 몇초간의 찰나에 들어오는 풍경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정말로 몇 초만 살짝살짝 보였다가 다시 숲과 나무에 가려버리는 탓에

그 절경을 눈으로 감상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카메라를 꺼내서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사치는 좀처럼 행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버스 안에서 카메라 꺼내지 않는 나로서도 그냥은 참고 넘길수가 없어서

그 몇초간의 풍경 사이사이에서 조금씩이나마 사진을 남기고 만다.

 

하지만 진짜 입벌려지는 경치는 대부분 셔터 누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눈으로만 감상하다보니

찍혀있는 사진은 그 풍경의 1/10 정도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그냥 그렇고 그런 사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찍고나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터를 누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고야에서 히다 타카야마로 가는 버스 안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해가 될런지.

 

여행중 2시간 30분의 버스 이동은 그리 반갑지 않은 시간인게 대부분이지만

이번에는 버스가 좀 더 천천히 달려줬으면 하는 바램이 생길 정도로 창 밖의 풍경은 훌륭하다.

자연 사이사이로 보이는 잘 정비된 도로와 깔끔한 농가들의 조합은, 내가 생각해 왔던 이상적인 농촌 풍경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물론 풍경이 그대로 예술이 되는 유럽 산간지방의 가옥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현대화된 곳에서 이 정도의 풍경을 유지한다는 건 충분히 칭찬할 만 하다.

 

 

 

원래부터 히다 고원이라는 곳이 관광버스를 타고 느긋하게 산봉우리 사이를 달리는 코스가 있을 정도로

풍경 하나는 기가 막히는 곳이라서, 이제까지 '특정 목적지가 아닌 버스만 타고 풍경 돌아보는 관광 상품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생각했던

본인 지식의 얄팍함이 부끄러워지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정에 없던 히다 고원 버스 투어까지 즐길만한 시간이 없어서

그냥 일반 버스의 창가에서 가끔 보이는 풍경만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타카야마에 도착하니 살짝 유후인에서의 느낌이 묻어나는 듯한 주위 풍경에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사실 역 정면엔 이런 작은 산골마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식 호텔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런 걸 제외하면 사람 편안하게 하는 마을이라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느낌이다.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추억이 서려있는 그때 그 장소에 다가가고 있다는 상념 탓에, 순수하게 풍경만을 즐기기가 어렵다.

더위는 나고야와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습도가 낮은 건지 공기가 깨끗해서 그런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

 

 

 

타카야마가 유명한 관광지라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는것이, 왠만한 도시 수준으로 호텔이 아주 그득하다.

온통 해발 2천미터 가까운 산으로 둘러싸인 고지 마을 안에 이런 풍경이 늘어서 있다는 것은

이 곳이 본인의 가벼운 생각보다 훨씬 더 이름있는 곳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호텔이 너무 많아서 파리날리는거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당일 호텔예약을 잡기가 힘들 정도로 관광객이 넘쳐난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밀도만으로 따지자면 나고야보다 훨씬 더 심할 정도로, 역 앞엔 서양 베낭족들이 진을 치고 있다.

 

 

 

중앙알프스 주변이 다들 그렇듯, 원래는 기차편도 그리 많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허름한 역사와 달리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수는 굉장하다. 이동성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역 앞 안내소에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국어 등등 외국인을 위한 팜플렛이 매우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고

일본인들의 평균에 비하면 월등한 실력의 가이드들이 어렵지 않게 외국인들에게 뭔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 옆에는 '오늘 비어있는 호텔을 찾아드립니다' 라는 문구의 안내판도 걸려 있다.

 

허름한 역 주변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을 위한,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심이 물씬 풍기는 이곳 분위기는

충분히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오만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은, 시골 마을의 인심을 아직까지 간직한 곳이라고 느껴진다.

이 곳의 별명은 '리틀 쿄토'인데, 적어도 역 앞의 진철함에 있어서만은 쿄토 인심을 능가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실 쿄토 인심이란게, 같은 일본인 사이에서도 거만하고 평판 안좋기로 유명하긴 하다만.

 

 

 

이곳에서 묵을 숙소는 '슈퍼 호텔'이라는 비지니스 체인점. 토요코 인과 더불더 일본의 양대 비지니스 체인이다.

후발 주자라서 지점 수는 토요코 인에 많이 밀리지만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한창 입지를 키워가고 있는 곳.

 

공교롭게도 이곳에는 토요코 인이 없어서 나에겐 선택권이 별로 없었다.

관광지의 호텔이란게, 안심할 만한 곳이라면 꽤나 가격이 비싸고

지역 토산의 관광 저렴한 호텔을 잘못 선택하면 거의 여관이나 다름없는 허름한 곳에 당첨될 위험성도 있어서

확실히 안정된 가격에 일정 수준의 신뢰할만한 청결도를 갖춘 비지니스 체인을 이용하는게 마음이 편하다.

 

이곳 슈퍼호텔은 거의 3개월 전에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방이 없어서 고생하지도 않았고.

이 정도 규모에 관광지가 아닌 일반적인 마을이라면, 편의점 하나 찾는데도 발품 좀 팔아야 하는데, 여긴 그럴 염려는 없다.

거의 외국인 관광객이 절반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데

지금 이 시간대는 다들 역 앞에 도착해서 숙소 찾으러 뿔뿔히 돌아다니는 모습이다.

 

바로 앞에 걸어가는 한국인 관광객 3명도 뭐라뭐라 지도를 봐 가면서 숙소를 찾아가는 듯 한데

가는 방향은 나와 같았지만 슈퍼 호텔에 예약한 건 아닌듯 그냥 지나친다. 하긴 1인실이 대부분인 비지니스 호텔에 그런 일행이 들어갈 일은 별로 없긴 하다.

 

 

 

역에서 5분 거리인 슈퍼호텔에 도착하니 2시가 좀 넘는다. 체크인은 3시부터라서 일단 짐만 맡기고 밖으로 나간다.

리틀 쿄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관광지이지만, 사실 본인이 여기 온 것은 관광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가 워낙에 산골 중의 산골이라서, 이곳에서 버스를 타는게 그나마 편하기 때문.

 

그 전에 여기서 버스하고 50분쯤 달리면 갈 수 있는, 이번 여행의 제대로 된 관광 목적지인 시라카와고(白川郷)가 더 끌린다.

나고야에서 바로 시라카와고로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기 때문에, 그곳에 가기 위한 전초기지로 이곳을 선택했을 뿐.

 

그래서 별로 힘내서 관광하러 다닐 생각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낮부터 호텔에 처박히는건 미친 짓이기 때문에

기대감에서 오는 부담이란 것도 없이 훌렁훌렁 유명하다는 장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이곳은 '옛날 마을 거리'라고 이름붙여진, 말 그대로 예전 성곽마을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거리가 유명하다.

사실 이런 북적이는 관광지에서 조성된 예전 거리란, 진짜 예전 거리와는 좀 거리가 있는 편이라

이런 걸 처음 경험하거나, 서양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겐 신선하고 재미있는 볼거리이지만

본인은 예전 자전거 여행때, 여기보다 훨씬 오래되고 정말로 외관을 그대로 간직한 산골마을의 옛 거리를 몇번 다녀와 봤기 때문에

이곳의 옛 거리라는 건 애초에 크게 기대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보러가는데 먼저 실망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 모습을 봤을 때 내 머릿속에서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지는 대강 감이 잡힌다.

그런 풍경을 이곳에서 처음 봤다면 그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겠지만, 불행히도 나에겐 이 타카야마 역시 너무 새것같은 마을이다.

 

 

 

물론 여기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니 전부 다 옛날식으로 보존하긴 힘들다. 특히 관광지다보니.

아무리 옛 정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도, 다들 도미토리 형식의 삐걱거리는 화장실 욕식 공용의 민숙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을테고

여관에 거하게 묵어가는 것 역시 가격대가 비싸거니와, 그래가지고서는 관광객 수요를 맞출수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최신 관광호텔과 예전 마을거리가 혼합되어서 편의를 봐 주고 있는 형태로 발전하는게 일반적.

 

일본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가노 산골 깊숙한 곳의 옛 마을 거리는

정말로 그 옛거리 한줄에 사는 백여 명의 토박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서

본격적인 체험을 하고 싶다면 그런 곳에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지, 숙박시설도 정말 낡은 여관뿐인데다가

편의점은 커녕 6시 넘어서 물건 살수 있는곳도 없기 때문에 외국인은 한 시간에 한두 대씩 오는 전철로 이동할 수 밖에 없다는게 단점이긴 하다.

 

타카야마는 관광 스팟인 옛 마을 거리와 별개로, 60년대부터 조성된 상점가 거리도 잘 단장되어 있다.

역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길 옆으로 아담한 상점가들이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 이런 식으로 처마를 만들어 놓는게 특징.

 

관광지가 아닌 일반적인 마을에 가 보면, 요즘 이런 옛 상가들의 절반 정도는 셔터를 내리고 있어서

일본도 소도시 경제는 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타카야마에는 아직까지 문닫은 가게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왠지 생활 수준이 상당히 윤택할 것 같은 마을 분위기. 물론 이곳은 역을 중심으로 해서 유명 관광지가 몰려있는 방향이니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거주지이기도 하고, 좀 있어보이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타카야마 역 반대편엔 그다지 관광지가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거주 구역은 그곳이고, 거기엔 아담한 세모지붕의 주택가가 많다.

날씨가 참 좋아서 이곳저곳 다 둘러보기에 나쁘진 않지만 36도를 넘나드는 더위는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일단은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옛 거리를 한바퀴 둘러보고, 주변에 있는 사찰이나 찾아본 뒤 호텔로 돌아갈 예정.

 

오후에 잠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고 난 후, 조금이라도 서늘해 지고 난 뒤에 다시 나와볼 생각이다.

 

 

 

 

오사카 도톤보리가 이런 형태로 유명하긴 한데

물이 풍부한 마을의 대부분은 원래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은 시골 마을치고는 정비가 잘 되어있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강가쪽 가옥들의 모습은, 예를 들자면 손님한테는 보여주지 않는 식당의 주방과 같은 느낌이랄까.

지극히 프라이버시가 묻어나는 공간이라서, 이런 걸 담을때면 살짝 긴장하기도 한다. 물론 요즘에 와서야 그런거 없다.

 

이런 가옥들의 반대쪽은 깔끔하게 정돈된 가게라서, 이런 강가 뒷모습과는 차이가 좀 난다. 여긴 빨래도 널어놓았으니까.

도톤보리 같은 경우는 인공 운하이다 보니 처음부터 강가쪽 역시 유람선을 보고 즐기는 환락가였지만

이런 곳은 뒤에서 물도 떠 오고 세탁도 하고 목욕도 하고 하던 그런 장소였다.

 

일본의 중앙알프스 산맥은, 상당히 높고 험한 산세에도 불구하고 물이 풍부해서 이런 형태의 마을이 쉽게 발달했다.

해발 650m 정도에 위치한 마을이 이렇게도 물이 풍부하다는 것은 축복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삼림지대다 보니 목재도 풍부하고, 이 타카야마라는 마을이 현대 들어서 유명한 관광지로 부상한 것은

쿄토의 건축 기술과 사찰을 쉽게 유지 보수할 수 있는 자연적 요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의 시골 마을이라면, 관광지 비 관광지 포함해서 한국인치고는 꽤나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할 수준인데

이곳 타카야마는 아름다운 풍경을 고즈넉히 간직한 좋은 마을이지만, 마을 전체가 모종의 별장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게 살짝 어색하다.

 

평균적으로 너무 풍요롭달까. 산골 마을에서 느껴지는, 야성적 자연을 대하는 미묘한 긴장감이라는게 사라져 버린 듯 하다.

이러나저러나 외국인, 특히 서양 관광객들한테는 한걸음 한걸음이 신기한 체험이 될 만한 곳이라서 나쁠 건 없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날씨탓인지 옛 거리에 도착하기 전부터 조금씩 지치는 기분. 카메라를 고쳐매고 다리를 건넌다.

 

지하철에서도 그렇고 정말 주위에서 계속 콜록콜록거리길래

좀 불안한 감이 있었습니다만, 떨어진 체력으로 인해 결국 감기에 걸리고 말았네요.

거의 폐렴까지 진행되는듯 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기침이 가슴 깊숙한 곳을 후려치는 듯한 기분이더군요.

 

 

 

아무튼 날씨좋은날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골골거리고 있었는데

요즘 대구날씨가 좀 이상하긴 하네요. 아침엔 춥고 낮엔 덥고... 감기환자가 많아지는것도 이해는 됩니다.

 

토요일은 푹 쉬고 싶었는데 워크샾이 있어서 경북대에 가야 하기도 했고.

사실은 별로 가고싶지도 않았지만 감기때문에 지난주에 푹 쉰 터라 안가겠다고 하기가 좀 그렇더군요.

 

 

 

근 한달만에 카메라 손에 잡고 밖에서 셔터 누를 수 있어서 조금의 기분전환은 되었습니다.

그냥 그걸 위안으로 삼아야겠죠. 대학교다 보니 정원도 잘 가꿔진 듯 하고 꽃도 예쁘게 손질해놔서 보기 좋았습니다.

 

워낙 오랜만에 카메라를 손에 잡아서 영 어색합니다. 꾸준히 연습을 하는게 좋은데 말이죠.

한동안 마음껏 사진 찍을 시간은 없을것 같고, 작년에 다녀온 도쿄 여행사진도 아직 덜올렸고.

요즘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네요. 블로거 이웃분들 둘러보는것도 짬을 내서 일주일에 한번 겨우 가볼까 말까 하고.

이러다가 사람들 다 떠나가고 황량한 블로그가 되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황량하긴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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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남아도는건 아니지만, 결국은 의욕이 생기느냐 마느냐가 블로그 포스팅의 관건인 듯.

여러가지로 심난한 일도 많고 해서 좀처럼 컴터 자체를 켜지 않는 날이 많았습니다.

 

컴터 하지않는 시간만큼 책을 더 읽었으니 그나마 아예 낭비한 건 아니지만 말이죠.

언제쯤 마음 다잡고 다시 예전처럼 글을 쓸수 있을지...

 

완전히 나쁜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설마 이제와서 계절 타는건 아니겠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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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풍경이 훌륭하긴 하지만, 본전을 볼 수 없는 이즈모 타이샤는 이미 절반 이상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요 근래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텐만구나 킨키지방의 코야산 등을 다녀온 터라

반쪽짜리 이즈모 타이샤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애초에 인연을 맺어주는 신사라는, 나를 제외한 다른 커플들에게는 심히 중요한 소재가 주를 이루는 곳이라서

정겹게 두 손 잡고 참배를 하거나, '둘이 오래오래 러브러브~' 따위의 문구를 에마에 적어넣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그냥 녹음이 우거진 풍경을 감상하면서 잘 정돈된 산책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정도외에는 할 일이 없다.

 

본인은 일단 카메라를 들고 왔으니, 이제 에마에 적혀있는 염장질의 흔적이나 기념으로 담아와야지.

그 염장질을 찾아보기 전에 일단 꽤나 정성들여 제작한 이곳의 에마를 한장 담아본다.

저 정도로 색을 많이 넣고 디자인이 깔끔한 에마는, 외국 관광객들의 입장에서는 걸어놓기가 아까운 느낌도 든다.

실제로 외국 관광객들 중에는 그냥 기념으로 에마를 사들고 오는 경우도 많다.

 

 

 

진중한 분위기를 풍기는 신사에 걸린 에마는 좀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유명해도 일단 인연 맺기 신사이다 보니 조금은 어깨 힘이 빠진 느낌이 든다.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선택되는 신사가 사실 제일 재미있고, 유명 애니메이션에 나온 신사에 가면 다들 그림그리느라 정신이 없기도 한데

과연 이곳은 어떤 문구가 나를 즐겁게 해 줄것인가 살짝 기대된다.

 

중앙의 저 에마는, 다른 문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녀석인데, 좌측 상단의 'とりあえず彼氏がほしい' 라는 문구가 인상적.

뜻은 '일단은 남자친구가 필요해' 이다. 아무래도 여성 관광객인 두 명이 여행온 듯 한데...

세상에 솔로는 나만 있는게 아니구나 싶어서 왠지 응원을 보내주고 싶어지게 만든다. 니시카와 와카코씨한테 얼른 남친한마리 떨어지길.

 

 

 

이 녀석은 또 넘기기 힘든 문구를 적어놓았다.

자전거 여행 온 사람인듯 한데, '무사히 야마가타에 자전거로 돌아갈 수 있기를' 이라고 적혀 있다.

야마가타현은 토호쿠지방 후쿠시마현과 인접한 곳으로, 여기서의 거리는 서울서 부산의 2.5배가 넘는다.

올 때도 자전거로 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혹여 예전의 나처럼 자전거로 일본 전국을 일주하는 사람일 가능성도 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왠지 동지애를 느끼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물론 돈내고 에마를 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내가 일본 자전거 일주할 때, 신에게 기도를 올린 적은 딱 두번.

출발 전 도쿄 아사쿠사에서 5엔짜리 (한국돈 70원)동전 하나 던지고, 무사히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첫 번째.

일본서 가장 신성한 곳인 이세 신궁에서 50엔짜리 (한국돈 700원) 동전 하나 던지고, 로또 당첨될 수 있기를 바란 것이 두 번째.

 

로또가 많이 고팠는데, 50엔 정도의 뇌물로는 어림없었던 것 같다. 500엔짜리 로또에 당첨이 되어서 한장 더 사본 경험은 있지만.

 

 

 

장사가 잘 안되는 신사는 좀 황량한 느낌도 드는데

이즈모타이샤는 그럴 걱정이 없는 곳이니, 아주 빡빡하게 에마가 걸려있다.

거는 곳이 이곳뿐만이 아니라서, 걸려있는 에마들의 단순 구입가격은 약 10만엔쯤 할 듯.

이런 곳이 서너 군데는 있었으니, 회전율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6백만원 정도의 이익은 있을 듯 하다.

 

신사에는 에마 말고도 여러가지 부적, 기념품을 팔고, 본전에 참배할때도 돈을 던져넣기 때문에 꽤나 짭짤하다.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신사는 정부로부터 보조금도 받고, 결혼식장으로 사용되기도 하니까 나름 괜찮은 편.

의외로 개인 소유의 신사가 꽤 많은 편이라서, 큰 부자는 못되도 대를 이어 먹고사는데는 문제없는 가게라고 생각하면 될 듯.

 

연말연시에는 작은 신사라도 불티나게 바빠질 정도로 참배객들이 몰려들고, 신사의 지주는 대부분 지역 토박이인 탓에

한국에서 거의 전멸중인 지역경제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는 톡톡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는 곳.

종교적인 시설인 만큼 지주의 사생활도 꽤나 조심스러운 편이라, 그 엄격함에 후계자 위치를 관두고 나와버리는 자식들도 있다.

한국의 종교야 뭐... '토호쿠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주식회사 예수를 믿지 않아서'라는 똥을 입에 물어도 믿습니다! 를 외치는 곳이니까.

 

 

 

잠깐 안구에 습기 좀 닦고...

차마 상세하게 번역할 수는 없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처절한 에마가 떡하니 걸려있다.

'O형에 귀여운 독신여성과 결혼전제로 사귈 수 있기를, 부디 부탁드립니다' 라는 뜻으로... 크흑.

 

거기다 얼마나 현실적인지, 아니면 절박한건지 자기 주소까지 꼼꼼하게 적어놨다.

류타라는 이름의 남성이여. 여기서 이럴 시간 있으면 그냥 오사카 시내에 놀러나가는게 더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리고 혈액형이 대체 뭔 관계람. 독신여성이란 단어 안 적어놓으면 불륜이라도 할 생각인가?

결혼전제라는 말을 붙일 때부터 여성에게는 부담이 클 것 같은데... 눈이 높은건지 그냥 생각이 없는건지 스스로 벽을 쌓는 느낌이다.

100엔짜리 공물 하나 받아먹고 들어주기에는 오오쿠니누시에게도 좀 리스크가 큰 소원인 것 같은데.

 

 

에마만으로 부족한지 이곳 나무 곳곳에는 소원을 비는 종이가 가득 매여있다.

 

이거 나무한테 부담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손이 닿는 곳에는 전부 매여있어서

이곳 관리하는 사람들도 할 일이 없는건 아니구나 싶다. 저걸 전부 일일히 손으로 풀어서 모아놨다가 날 잡아서 태워야 하니까.

보지 않는 곳에서 마구잡이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저런 것 정중히 처분하는것도 신사의 일이라서, 만약 잘못하면 뉴스에 실릴 정도의 사건이니까 그런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듯.

 

 

 

이름난 신사이다 보니 찾아온 관광객들을 위한 서비스정신도 훌륭하다.

날씨가 더운 탓에, 휴게소 곳곳에 얼음을 넣은 선풍기를 작동시키고 있다.

 

시각적으로는 햐안 김이 바람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게 엄청 시원해 보이지만

아주 가까이 가지 않으면 그닥 효과는 없는 편. 그래도 저런 걸 설치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이런 사소한 배려 하나하나가 쌓여서 관광온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결코 쉽게 생각할 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조금 기분좋아진 채로 목 끝까지 짜릿하게 시원한 음료수 하나 뽑아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가면 라이더 그림을 박아넣은 센스작품 '가면 사이다'도 오랜만에 보지만, 그건 자전거 여행때 뽑아먹었으니 패스.

 

일본은 음료 자판기 옆에는 반드시 쓰레기통을 비치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서 뽑아먹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게 별것 아닌 듯 해도 사실 굉장히 유용하고 편리한데,

일본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말 이래도 장사가 되는가 싶을 정도로 자판기 숫자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길다가 생각나서 목을 축이고, 걱정없이 쓰레기를 금새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마음 든든한 일이다.

 

 

 

목도 축이고 휴식도 취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좀 전의 배전을 한바퀴 더 돈다.

처음부터 한바퀴 더 돌아보기 위해서 사진도 찍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관광객이 줄어든 틈을 타서 한 장 남긴다.

여행 사진에 어지간하면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냥 사진만 봐서는 황량한 곳을 혼자 돌아다닌듯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은 가능한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타이밍을 노려서 찍고 있으니 오해가 없었으면.

 

저작권(?)이니 초상권이니 하는거 신경쓰기도 귀찮고, 실제 여행중에서도 관광객은 내 시선에서 한참 떨어져 있기 때문에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의 물리적인 숫자와는 별개로, 여행 때 보고 느낀 나의 시선은 대충 이런 사진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는 더더욱 그렇기도 한데, 목조건축물이 많은 일본의 문화재는

보존하는게 보통 힘든일이 아니기 때문에, 관광객 감소를 감수하고서라도 주기적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이게 되어 있다.

그것도 빨리빨리가 아니라 약 5년 정도의 기간을 들여 꼼꼼하게 복원하니,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에게는 여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을 듯.

 

이즈모타이샤의 본전이 거대한 편이긴 하지만, 저 정도 크기의 건물을 5년동안 보수한다는 건 진짜 그동안 뭐하나 싶을 정도.

 

 

 

이즈모타이샤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라면 단연 이 녀석이다.

이건 시메나와(注連縄)라고 부르며, 한국 토속신앙의 금줄과 같은 의미를 가진 녀석.

단지, 이곳 이즈모타이샤의 시메나와가 다른 곳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다보니 명물로 유명해졌다.

 

사실 일본여행가서 조금만 눈여겨보면 조그마한 시메나와는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동네 조그만 신사나, 음식점 입구 위, 혹은 그냥 일반 가정집 문앞에서도.

보통은 새해 첫날 악귀는 물러가고 복이 들어오기를 기원하며 걸어두는 경우가 많다.

 

이곳 배전의 시메나와는, 다른 곳과 비교하면 크긴 하지만 이게 이즈모에서 가장 큰 녀석은 아니다.

인연맺기의 소중함이라고 할까, 유독 이곳 이즈모탸이샤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XX 라는 타이틀을 가진 것이 많다.

본전 구경은 할 수 없지만, 이 거대한 시메나와 역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이니 실컷 감상한다.

 

 

 

일단 배전의 시메나와도 보통 큰 녀석은 아니지만, 이즈모타이샤 하면 생각나는 그 시메나와에 비해서는 작은 편.

원래는 여기서 배전 구경 한번 하고, 본전으로 들어가서 국보급 건축물의 위용을 감상한 후

돌아오는 길에 카구라덴(神楽殿)을 보는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본전 구경이 불가능하니...

그래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참배를 하는데, 일반적으로 손뼉을 두 번 치는 신사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자신과, 미래의 인연을 위해서 네 번을 친다고 한다. 역시 인연맺기의 신사.

 

이곳은 제국주의의 잔재가 묻어나는 신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곳이고

애초에 오오쿠니누시라는 신이 진한과 신라 이주민들과 관계된 녀석이라, 인연 맺어지기를 기원해도 별 문제는 없을 듯.

하지만 그것도 저것도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실들...

 

이곳 본전은 한때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다가 1744년 재건된 녀석인데

재건당시 크기가 24m로 꽤 큰편인데도 불구하고, 기록상 전해지는 본전은 48m나 되는 거대한 녀석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건축물.

덕분에 본전 자체에 들어가는 것은, 공사기간이 아니더라도 불가능하다. 그냥 옆에서 살짝 구경만 할 수 있는데

지금 공사 덕분에 그 살짝 구경조차도 못하는 실정이 되어버린 것. 관광객으로서는 아쉽기 그지없지만

지은지 300년된 국보 목조건축물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긴 하다. 허무하게 사라진 숭례문의 케이스만 봐도.

 

내년 5월인가부터 다시 일반인에게 공개된다고 하는데, 사실 흥미깊은 건축물이긴 하지만

이것때문에 다시 시마네현을 찾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훗날 포스팅에 설명하겠지만 다시 갈만한 일이 좀 생겨서.

 

 

 

이 배전 앞이 조금 전 비둘기를 바라보며 휴식하던 곳인데

그 쪽으로 가보니 왜 비둘기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먹이주는 상자가 놓여있었기 때문.

내가 휴식을 취하던 곳은 뒤쪽 벤치라서 여기에 먹이상자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한 봉지 20엔짜리 먹이는, 20년전 일본을 찾았을 때 본 후로 정말 오랜만이다.

20년 전에는 도쿄의 신사에도 이런 먹이상자가 설치되어 있어서, 흰 비둘기들이 사람에게 막 덤벼들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둘기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후 그런 먹이상자는 대부분 철거되어 버렸다.

이곳은 워낙 외진 산골짜기라서 먹이를 줘도 큰 문제가 없는 듯 하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절대로 도망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녀석들.

 

 

 

저 녀석들이 덤벼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경험해 본 나로서는

단벌 옷에 카메라까지 들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먹이를 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가만 기다려 보니 젊은 커플이나 나이 지긋한 단체 관광객이 가끔 먹이를 꺼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엇는데

일단 저 상자에 손이 다가가는 순간 털 고르고, 암컷 쫓아다니던 녀석들의 시선이 일순 집중되는 묘한 풍경이 연출된다.

먹이봉투를 손에 들면 그야말로 미친듯이 달려들며 한껏 소리높여 애교를 떠는데, 비둘기라는 녀석 참 적응력도 좋다.

 

마구 쓰다듬어도 먹이가 손에 들려있는 한 도망가지 않기 때문에 녀석들의 귀여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에서 사는 비둘기야 도시 녀석들처럼 더러운 편도 아니라서, 열심히 놀아주고 손 한번 씻으면 그만일 터.

물론 옷에 알록달록한 액체 X가 달라붙을 수 있으니 그점은 항상 조심해야 하겠지만.

 

머리도 좋아서, 먹이를 손에 든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다가오지 않는 영악한 녀석들.

 

 

 

이 비둘기 아지트 오른편에는 보물전이 있어서 이곳의 중요 문화재들을 감상할 수 있지만

몇 번이고 들어가본 보물전이란 곳은, 의외로 입장료만큼의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패스.

 

사진도 당연히 찍을 수 없고 한국어 설명은 조잡하고, 일본어 설명은 어려운 한자가 꽤 많이 들어가 있는데다가

어지간히 지역 역사와 문화를 알고 있지 않으면 그 문화재에서 느낌을 받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한가로운 비둘기들의 모습을 빼면, 조금 소름끼칠정도로 깔끔하게 정비된 신사 내부를 한번 더 둘러보고

슬슬 돌아보지 못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신사 하나만 볼거리가 아니라 마을 전체가 산책로나 마찬가지니까.

 

 

지난번 둥지 치워버린 후에 콘크리트 바닥에 알을 낳아버린 녀석을 생각해서

요즘엔 제 눈에 들어왔다 하면 철저하게 쫓아내고 있는 중입니다만.

오늘처럼 비에 쫄딱 젖어서 저를 쳐다보고 있어서야 그냥 내칠수가 없네요.

그냥 좀 쉬다 가라고 놔두고, 멀리서 사진이나 한 장 남깁니다.

 

어째서 이런 녀석들을 그렇게 짜증스러워 하고 미워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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