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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해당하는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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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6.08  킨키 방황 - 일기일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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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1.06.01  Enter at your own risk!! 12
  6. 2011.05.24  그 정도가 딱 좋아요 16

 

 

서울서 첫 조카 구경좀 하고 버스타고 동해시까지 가는데 3시간 남짓.

동해항은 아주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다. 따로 시간보낼게 없어서 승선까지 2시간 반이나 남은게 조금 난감한 상황.

잡화점 직원분이 아주 친절하게, 고객이 아니더라도 터미널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주신다.

딱히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 친절함에 이끌려 음료수도 한병 사 마시게 된다. 서비스의 중요성이란 이런 것.

 

아침부터 밥먹은게 없으니 항구 밖의 조그만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해서 아주 느긋하게 먹는다.

남는게 시간이라 급할것도 없다. 페럴림픽 축구도 구경하고, 음식점 꼬마형제들의 라이브 쇼도 은근히 감상한다.

 

형은 유치원생이나 초딩 1학년쯤 되어보이고, 동생은 아직 학교 갈만한 나이는 아닌 듯 한데

형이 낮잠 자고 있는 동안 NDS 포켓몬 게임이 어디가 막혔는지 동생이 안절부절이다.

엄니한테 가서 이것 좀 해달라고 졸라도, 엄니가 포켓몬을 어떻게 알수 있으리.

 

결국 엄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는 형 옆에서 오만 오도방정을 떨어서 깨우고 만다.

형은 짜증내면서도 게임기 받아들고 뭔가 만지작거리고, 엄니는 화내기보다는 그냥 웃으면서 동생을 나무라는 정도.

 

근 1시간에 걸쳐 식사를 마치고 다시 터미널에 돌아와 남은 음료수 마시며 멍하니 앉아있다.

사실 제대로 준비된 여행이었다면 그렇게 멍할 이유가 없었는데, 이번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매번 여행준비할 때, 이제 다 됐겠지 싶어서 여러번 체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꼭 한두가지는 빼먹곤 한다.

복병이란 의외성이 있어야 빛이 나는 법. 백팩과 숄더팩 두 가지 안에 든 물품은 몇 번이고 체크를 해서 완벽하다.

중간에 코인세탁기에서 빨기 위해 더러워진 옷을 넣을 대형 비닐까지 완비했으니.

 

그런데 이번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가방 내 소지품이 아니라, 맨날 들고다니는 아이팟 나노를 깜빡했다는 것.

옷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녀석인데, 가방에만 신경쓰다 보니 외출시에 절대로 몸에서 떼지 않는 음악기기를 까먹을 줄이야.

게다가 카메라 가방을 새걸로 바꾸고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이라서, 옛날 카메라 가방에 항상 들어있었던 필기도구도 깜빡했다.

필기도구와 아이팟, 밖에 나갈때면 신체 일부분처럼 붙어다니던 녀석이라서

새 가방으로 바뀐 이번에도 그냥 저절로 걸어들어와 주머니속에 박혀있을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덕분에 버스 3시간 타면서 음악 듣지 않았다. 아마 이런 일은 이어폰 고장나서 듣지 못했던 적을 빼면 극히 희귀한 케이스.

서울 출발할 땐 거장의 붓놀림과 같은 현란한 구름이 눈을 즐겁게 했는데, 대관령 넘을때는 폭우가 쏟아져서 걱정이었다.

바깥 풍경이 워낙 기세등등하게 변해서 음악 없이도 대충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동해항 터미널에서 움직이질 못하니 음악과 필기도구가 없는 나는 그냥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만다.

 

승선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는데, 나처럼 젊은이 몇명도 있었지만 나이 지긋한 단체관광객이 많다.

 

동해항에서 사카이미나토(境港)항을 왕복하는 이스턴 드림호는, 일본 도착이 아침 일찍, 출발이 오후 늦게라서 좋긴 하지만

일본에서 단 1박만 할 수 있는 왕복구조를 갖고 있어서 (놓치면 1주일 뒤에나 배가 온다) 그런 여행에 기겁하는 나로서는

완전히 흥미 밖의 이야기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경우로 2박까지 할 수 있는 스케쥴이 만들어졌다.

물론 2박도 나한테는 잠깐 한숨 돌릴정도의 기간일 뿐이지만, 어찌됐든 아침도착 저녁출발의 이점을 챙기면

꽉꽉 채워서 3일간의 여행 풀코스를 즐길 수 있으니 그럭저럭 만족하는 편.

 

배를 편도 15시간씩이나 타야 하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는 4박 5일의 여행이지만 사실은 2박 3일인 셈.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경비의 절반 정도를 절약할 수 있는 여행이라서, 장시간 페리여행에 질색하는 나로서도

차마 놓치기 아까웠던 탓에 훌쩍 떠나게 됐다. 배는 크면 클수록 멀미가 덜한데, 이스턴 드림호는 별로 크지 않다.

 

자전거 끌고 승선준비하는 젊은 사람도 서넛 보인다.

그때 그 생각이 나서 몸이 살짝 근질거리기도 했지만, 2박 3일의 자전거는 나한테는 동네 슈퍼 놀러가는거나 마찬가지.

자전거 매니아가 아니라 여행 매니아기 때문에, 그렇게 짧은 자전거 라이딩은 전혀 흥미 밖이다.

 

승선후 짐 풀어놓고 카메라부터 챙겨 선내를 훌쩍 둘러본다.

일본 국내를 돌아다니는 몇몇 괜찮은 페리와 비교하면 별로 잘 꾸며놨다고 할 수 없는 녀석.

그래도 없어보이는 내부를 직원들의 열정과 아이디어로 극복해 보자는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여서 나름 재미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보게 되는 저 기세등등한 눈빛이 이 배의 구경거리.

 

 

 

승선후부터 날씨가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어서, 아무래도 내일 아침해 촬영은 포기해야 할듯 하다.

오후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너무 어두침침하다. 파도가 높진 않으니 출항은 하겠지만 은근히 겁이 날 정도.

운 나쁘게도 여행기간동안 산인지역은 날씨 좋은 날이 없다. 순간순간만이라도 괜찮은 하늘을 볼 수 있기를 바랄 수 밖에.

 

탈것에 약한 체질인데 이미 버스를 3시간이나 타고 온 몸이라서, 영 찌부둥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일단 멀미약 없이 한번 가보기로 했는데 솔직히 걱정이다. 사실 의외로 배의 성능에 따라 멀미가 줄어들 수도 있는데

이 녀석은 대강 둘러보니 내 멀미를 줄여줄만한 안락함까지 갖추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일단 멀미가 시작되면 사진 찍으러 돌아다닐 여력도 없을 것 같아서

정박해 있는 동안 대강 바깥 풍경을 둘러본다. 대체 왜 이런 공룡뼈가 서 있는건지.

 

 

 

혼자 온 여행객도 있긴 한데, 대부분은 행복해 보이는 커플 천지.

안개때문에 별로 볼게 없는 상황에서도 즐겁게 샷 날릴 수 있는건 역시 옆구리가 든든해서일 듯.

사람 사진 찍는데 관심이 없는 성격이라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2층 갑판은 아무래도 저녁무렵부터 포장마차와 BAR가 영업을 하는 듯 하다.

아직은 덩그러니 빈 곳이지만, 기둥에 붙어있는 간판을 보니 그러한 듯.

난 멀미걱정에 도저히 이런 곳에서 술 마실수는 없겠지만.

 

 

 

3층 갑판에는 젊은 직원 한명이 투호 놀이장을 만들어놓고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다.

자기보다 더 많이 넣는 분들에게는 맥주 한캔씩 지급하는 듯.

소박하지만 정감가는 프로그램들로 장시간 항해할 손님들의 지루함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개그끼 넘치는 간판도 그 일환이 아닐까 싶다.

처음엔 밑의 문구를 보지못해서 '외상환영단' 이라고 읽은 탓에 거참 통도 크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별로 큰 페리가 아니라서 없는 시설 잘 활용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배 안에는 포장마차, 술집과 함께 아침에 한잔 할 수 있는 커피샵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후쿠시마와 홋카이도를 잇는 일본의 태평양 페리는 정말 화려한 내부장식과, 저녁식사후 밴드와 뮤지컬 공연까지 준비된 녀석이었는데

거기에 비하면 물론 초라할 수 밖에 없어도, 주어진 환경 안에서는 정말 열심히들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안개가 점점 짙어진다. 비가 내리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로.

동해항은 군사시설과 인접한 탓에 사진 잘못 찍으면 큰일난다는 경고문까지 붙어있는데

오늘같은 날은 아무리 찍어대도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대구 -> 서울 -> 동해라는 코스를 밟고, 아이팟과 일기장이 없이 여기까지 오니

사실 멀미걱정과 더불어 기분이 상당히 침울한 상태. 인셉션 생각이 나기도 했다. 여기 지금 내 꿈속인가?

 

주위에서 열심히 사진 찍고있는 커플들의 들뜬 모습을 보면서, 여행시작때 들뜬 기분이 없어진 건 언제부터인지 생각해 봤다.

자전거 여행때는 사실 들떴다기보다는 정말 죽고싶은 심정이었으니 할말 없고.

아마 국딩때 미국가는 비행기를 14시간씩 타면서 고생을 한 후로 기대감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대충 목적지에 도착해서 카메라 들쳐매고 걸어다니다 보면 조금씩 흥이 날거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 밖에.

 

 

 

가시거리가 10m 쯤 될까말까 한 지금 상황에서

이 녀석이 앞으로 얼마나 밝게 불타오를 것인가 상상하는 정도가 유일한 소일거리.

그 많던 단체관광객 할배할매들은 의외로 외부까지 나오지 않고 대부분 방안에서 뭐 까먹으면서 잡담하는 듯 하다.

 

무료 목욕탕에 타올이 비치되어 있지 않다는 말에, 마누라 타올 빌려쓰는 분도 많다.

여성들은 아마 대중목욕탕에 단련되어 있었겠지만 남성들은 타올이 없다는 사실이 신기한 체험일 듯.

사실 페리나 크루즈에는 타올이 없는 경우가 많다. 훔쳐가도 잡을 방법이 없으니.

돋 받고 대여도 해주긴 하는데, 구입도 아니고 대여에 손을 쓴다는 건 굉장히 아쉬운 느낌이 들지 않을수가 없겠지.

 

 

 

얼핏 볼땐 그냥 전화기구나 싶었는데, 잘 보니 뭔가 이상하다.

밑에 걸려있는 또 하나의 수화기 비스무리한 건 어떻게 쓰는걸까.

 

고장난건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원래부터 저렇게 만들어진 녀석인 듯 하다.

직원 붙잡고 물어보면 좀 귀찮아 할려나.

 

직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몇몇 승무원들을 빼고 잡일거리하는 대부분은 동남아인들이다.

고물가의 일본도 페리나 크루즈에 외국인을 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한국 승무원들보다 더 싹싹하고 인사 잘하고 잘 웃는 사람들이라서 기분은 좋은데

페리 사업이란 것도 참 빠빡하구나 하는 안스러운 느낌이 들긴 한다.

 

애초에 배가 여기저기 낡은 구석이 보여서, 쓰레기 떨어져 있진 않지만, 이불도 그렇고 그렇게 깔끔하다는 느낌은 없다.

배타고 즐기는 여행은 사실 멋들어지게 즐기려면 비행기보다 훨씬 돈이 많이 드는 고급 여행이라서

한국의 동해와 일본의 사카이미나토라는, 도시 이름을 단것 치고는 허벌나게 깡촌인 두 지역을 연결하는 이 페리에

고급스러움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할 테지. 멀미걱정때문에 신경이 굉장히 예민해져 있다는 증거일 뿐.

 

 

 

만약 내가 멀미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체질을 타고 났다면

밤에 분명 이곳에 와서 오뎅국이라도 한그릇 맛있게 비웠을 테지만

워낙 멀미에 약한 몸이라서 소소한 즐거움이 될 이벤트는 전부 넘겨버리고

배가 출발하기도 전에 드러누워서 조금이라도 수면을 취하기로 했다.

 

출항하면 어차피 제대로 자지도 못할 터, 내일 아침부터 돌아다니려면 조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해 놓아야 하니까.

 

 

 

아주 잠깐 자고나니 금새 밥먹으러 오라는 안내방송이 흐른다.

이미 출항 후인데, 생각보다 훨씬 흔들리는게 조짐이 좋지 않다. 쑤욱 밑으로 꺼졌다가 불쑥 올라오는 느낌이 굉장히 불쾌하다.

 

이스턴 드림호는 티켓과는 별도로 저녁과 아침식사 식권을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승객 입장에서는 좋다고만 말할수는 없는 상술인데, 빙글빙글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가 본 식당에서는 더욱 실망.

한끼 8천원쯤 하는 식사인데, 바다 위가 아니라면 4천원 줘도 먹을 생각이 생기지 않는 퀄리티였다.

 

거의 인스턴트나 마찬가지인 반찬과, 색깔이 뭐라 형용할 수 없이 희물그레한 카레, 조미료맛밖에 나지 않는 군대식 국.

시장이라는 녀석을 길동무 삼지 않고서는 입에 집어넣을 의지도 생기지 않는 이런 식단을

출항후 생각보다 더 요동치는 배 위에서 먹자니 아주 지옥이 따로 없다.

돈 아깝다는 일념 하나로, 자칫 먹다가 토해버릴 것 같은 위험 속에서도 정말 정성을 다해 입에 집어넣는다.

뭔가 이쯤되면 대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란 마음이 들게 된다.

 

이걸 입안에 집어넣으면서 확실히 든 생각은, 돌아올 때는 멀미약 먹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뿐.

사실 멀미만 아니었어도 먹을만은 한 녀석이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망이 대단한 성격이긴 하지만, 군대식이라도 군침돌게 깨끗이 비우는 타입이기도 하니까.

 

결국 식사후 기절한듯 누워서, 안내방송이 속삭이는 야간 포장마차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뻗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목욕은 해야겠어서 비장한 각오로 욕탕에 가기도 했다. 운이 좋아서 아무도 없는 욕탕을 혼자 전세냈지만

탕 안의 물이 강력한 힘으로 출렁출렁거려서, 이거 정말 날 잘못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홋카이도 토마코마이(苫小牧)에서 시가현 마이즈루(舞鶴)까지 운행하던 안락한 페리에서의 목욕은

배가 진행하는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느긋하게 욕탕에서 피로를 풀던 기억이 나는데,

아무래도 이쪽 코스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바다 상태가 안좋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돌아올 때의 파도가 어떤지 다시한번 관찰해 봐야겠다는 포부좋은 생각을 하면서, 2시간쯤 수면후 2시간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나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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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대탑의 동쪽에는 몇 채의 불당과 동탑이 서 있는데

이 위치에서 더 이상 동쪽으로 걸어가는건 무리라고 판단.

이제 슬슬 버스 정류장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으면, 가능성은 희박해도 버스를 놓칠 가능성도 있어서.

 

결국 단상가람에서 내가 본 가장 동쪽 건물은 이 녀석, 대회당(大会堂)이 되었다.

대회당 오른쪽에 빼꼼 보이는 건물은 삼미당(三昧堂), 그리고 그 옆에 보이는 탑이 동탑(東塔)이다.

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서탑과 달리 동탑은 너무 현대식 느낌이 나서 패스해도 그닥 아쉽진 않다.

 

이 대회당은 1848년 재건되었고, 원래는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불당이지만

현재는 진언종 승려들의 법회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사진 찍을만한 포인트 앞에 청소용구를 담은 수레가 서 있어서, 좋게 생각하면 체험! 삶의 현장이 느껴진다고 할까.

 

이 대회당에서 정남쪽으로 쭈욱 걸어가면 출구가 나오고, 거기서 30m 정도만 더 가면 버스 정류장.

나름 끈기와 오기로 아침부터 오만 곳을 다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의욕 자체가 사라질 정도로 지쳤다.

사실 8시에 전철 타기 시작해서 지금 오후 3시쯤이니 그렇게 많이 돌아다닌 것도 아닌데

기분상으로는 북한산 두 번은 탄 듯한 느낌. 등산 스틱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더 버텨보겠는데 그런건 없다.

 

 

 

정면으로 뻗는 출구를 향해 삐그덕거리며 걸어가는데, 단상가람에서 구경할 마지막 불당이 나타난다.

생크림 케이크 윗부분의 딸기는 맨 마지막에 음미하는 성격이라서, 일부러 이 녀석을 가장 마지막에 둘러본 셈이다.

1197년에 세워져 현재 코야산의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 부동당(不動堂)의 모습.

 

부동명왕을 안치한 곳이라는 의미의 부동당은 800여년의 세월동안 숱한 화재와 방화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역사의 산물.

당연하게도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런 것치고는 굉장히 가까이서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카마쿠라(鎌倉)시대의 건축양식이 고스런히 녹아있는 귀중한 녀석인데

사실 1800년대 재건된 가람내 대부분의 불당들도 이 카마쿠라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 녀석만 특출나 보인다거나 하는 건 없다. 단지 이 부동당의 지붕과 처마, 단청의 모습을 살펴보면

다른 불당보다 간결하고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실된 녀석을 재건하다보면 아무래도 좀 더 치장을 하게 되는 것일런지.

 

카마쿠라 시대는 1180년대부터 1330년대를 어우르는 시기로  

카마쿠라 막부 자체는 도쿄 바로 아래쪽 카나가와(神奈川)현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중기까지는 여전히 쿄토 조정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년수도라는 쿄토를 중심으로 한 시가(滋賀), 효고(兵庫), 미에(三重), 나라(奈良), 와카야마(和歌山)까지 5개 현을

수도의 근방이라는 의미의 킨키(近畿)지방이라고 불렀고, 거기에 속한 코야산에도 여전히 그 당시의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다.

 

보통 오사카 하면 전부 관(関)의 서쪽이라는 의미의 칸사이(関西) 지방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히 칸사이라고 하면 교토 서쪽의 모든 지방 (현재로서는 심지어 오키나와까지)을 뜻하기 때문에

킨키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재를 킨키 문화라고 하지 칸사이 문화라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나이 지긋하게 든 사람들이.

 

 

 

막상 현재의 카마쿠라 지역에 가 보면 남아있는 몇몇 중요문화재 외엔, 한때 일본 문화의 중심지였던 흔적이 거의 사라진 상태인데

한국의 경주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 그땐 그랬지라는 그리움만 남은 채 추억을 회상하는 정도의 흔적밖에 남아있지 않다.

 

일본의 쿄토에 뒤쳐지지 않고, 천 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수도로서 명성을 떨쳤던 경주가, 쿄토와의 비교는 어림도 없이

카마쿠라 정도에 비교된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야후 어디에 서식하는 정신나간 일빠같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카마쿠라와 쿄토를 한번씩 가 보면 그 안타까움이 어떤 것인지 어렵지 않게 느끼리라 생각.

 

 

 

부동당의 보존 상태야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놀라울 따름이지만

한국에서는 그것보다, 숭례문 소실 당시 비교대상으로 이 녀석을 신나게 칭송했던 기록이 있어서 그쪽으로 더 유명한 편이다.

 

어디에 그런 장치가 되어있는지, 사실 보고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절묘하게 감춰놓긴 했지만

이 부동당 주변과 지붕 곳곳에는 첨단 스프링쿨러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어서

화재 감지시 자동으로 무수한 물길이 불당 전체를 휩싸도록 되어있다.

 

부동당 뿐만 아니라 단상가람내 중요 불당들, 그리고 코야산 전체의 중요문화재에는

이러한 스프링쿨러 시스템이 거진 장착되어 있으며, 이 시스템의 파이프라인 길이는 8km에 달한다고 한다.

더더욱 감탄할 만한 점으로, 이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물탱크는 이곳보다 200m 쯤 높은 산봉우리 정상에 위치해 있어서

펌프 등이 작동하지 못하는 비상시에도 문제없이 물을 뿜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900리터에 달하는 물탱크는 코야산 전체 시스템을 일시에 가동시킨다고 해도 5분동안 물을 배출할 수 있으며

5분이면 소방대가 코야산 어디든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

물길은 불당의 손상을 최소화 하기 위해 매우 세밀하게 퍼져나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 등등...

한국 사람으로서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솔직히 좀 비참한 느낌마저 든다.

왜냐하면, 이 시스템은 이미 1960년대부터 설치되어서 꾸준히 업그레이드 되고 있기 때문에.

 

숭례문 소실 당시 한국 취재팀이 방문했을 때, 이 곳의 방재시설을 한번 가동한 적이 있어서

관광객들도 놀라고, 기자들이 사진을 많이 담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면 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본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찬란한 문화를 가진 한국이라도, 이 폭력에 가까운 안전불감증 만큼은 뼈저리게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생각.

 

 

 

부동당 관람을 마지막으로 단상가람을 뒤로 한다.

출구까지는 원만한 내리막길로 되어 있어, 내려가다가 살짝 아쉬운 마음으로 부동당의 모습을 한 장 더 담아본다.

 

지금까지 돌아본 것들은 단상가람의 약 70% 정도로, 제대로 관람하지 못한 곳도 몇몇 있지만

전부 다 관람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도 없고

지금 다리 상태로 이 정도라면 후회 남기지 않을 만큼 있는 힘을 다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머지 녀석들은 다음 기회의 즐거움으로 남겨 놓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다 둘러볼 여력이 없었다고는 해도

돌아가는 길 도중에 눈에 들어오는 이런 꽃들은 부담없이 찍어줘야지.

참 신기하게도, 살아있다는 확신이 들게 만들어 줄 정도로 리드미컬하게 욱씬거리는 발목의 통증도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면서 왼손으로 촛점을 슥슥 맞추는 이 순간만큼은 완전히 잊혀지는 듯 하다.

물론 찰나의 순간이긴 하지만, 사람의 정신이란 참 편리하고 고성능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하루였다.

 

 

 

출구에 거의 다다라서 고개를 돌려 봤다.

오쿠노인을 거닐면서 - 이런 표현은 내가 펼쳤던 묘기에 가까운 휘적거림에 비하면 좀 고상하지만 -

느꼈던 고요한 충격만큼은 아니었지만, 이곳 단상가람의 푸근한 모습도 더할 나위 없이 내 심란한 마음을 다독여 준다.

 

아침에 절룩거리며 전철을 탈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해서 과연 만족할만한 곳일까 걱정했던 마음은

이제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오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거라는 마음으로 바뀌어 버렸다.

 

 

 

단상가람을 빠져나와도 주변 풍경은 여전히 꿈길을 걷고 있는 듯.

어찌보면 보통 마을보다 사찰이 더 많은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쿠노인을 빠져나왔을 때는 설국의 도입부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눈 앞에 버스 정류장이 보이니 어쨌든 저기까지만 가면 오늘 하루는 끝이라고 되내인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 이제 일단 코야산 여행은 끝이 난 느낌이다.

눈 앞에는 코야산의 각종 국보와 문화재들을 모아놓은 영보관 표지판이 보여서 조금 낙심.

정상적인 발걸음이었다면 아마 저기까지 돌아보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겠지.

 

중요문화제가 워낙 많아서 한꺼번에 전시하지 못하고 기간별 로테이션 방식으로 전시한다고 한다.

 

단상가람 내내 끼고 다녔던 35mm 렌즈 내려놓고 가방 안에서 굴러다닌 70-300 렌즈 손질 좀 하고 있으니

나이 지긋한 노부부 한쌍이 슬그머니 옆자리에 앉는다.

남한테 말 먼저 거는 성격이 아니라서 시치미 뚝 떼고 있는데

어느 나라나 노인층이 손아래 사람에게 말거는게 더 편한 듯, 카메라 좋은거 쓰네~ 라고 운을 떼주신다.

 

일단 말 한마디 통하고 나면 이쪽에서도 별로 부담없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70-300 렌즈라고 하니 그럼 실제 화각이 105-450이 되는거냐고 물어보시는걸 보면 카메라를 좀 아시는 분.

135 판형과 똑같은 센서 쓴다고 말씀드리니까 좋은 사진 많이 남겼겠네라고 웃으신다.

사실 그런 말 들으면 괜히 더 쪽팔려서 보여드리질 못하는데...

실력별로 카메라 크기가 커진다고 하면 난 미러리스 써야 한다.

 

두분 모두 67세이고, 오늘 새벽 카마쿠라에서 여기까지 기차타고 여행중이라고 하신다.

카마쿠라에서 이곳까지는 서울에서 부산보다 조금 더 먼 거리인데, 내 부모님보다 더 연세 드신 분들이

새벽 6시에 신칸센 타고 여기까지 놀러왔다는게 굉장히 보기 좋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일본 나이로 67세라면 한국 나이로 68~69세인데, 온통 도보이동 뿐인 코야산을 누비고 다니시다니.

더구나 이대로 쿄토로 가서 쉬고, 내일은 나라(奈良)를 구경하신다고.

결혼이라는걸 긍정적으로 바라볼수 있는 극히 희귀한 경우를 이 부부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곳 사찰들 상당수가 카마쿠라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카마쿠라에서 이곳에 구경왔다는 사실이 뭔가 재미있다고 말씀드리니

살짝 손사래를 치시며, 그곳도 쪼~금은 볼만한게 있지만 여기하고는 비교가 안된다고 하신다.

일본인들이 봐도 이곳은 보통 훌륭한 곳이 아니니까. 사찰도 훌륭했지만 마을 전체의 느낌이 매우 고즈넉한 점이 좋단다.

본인도 나름 일본 여기저기 돌아다녀 봤는데, 이런 곳은 정말 흔치 않다고 맞장구를 치니까

살짝 이해가 안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할머니깨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신다.

 

그 다음부터는 뭐, 자전거 여행동안 시도때도 없이 들어본 레파토리의 반복.

한국서 왔다고 하면 일단 놀라고, 일본어는 어디서 배웠느냐고 하고, 구별이 안간다고 하는 등등...

한국에는 코야산같은 문화재가 있냐던가, 한국에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 있냐던가 하는 질문도 받았는데

한류 아이돌이나 김치 등을 통한 식문화 등으로 익숙한 요즘 세대들과 달리

이 나이대 분들은 한국에 대해 그다지 아는게 없는 듯 하다. 애초에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제껏 아시아에 관심이 없었으니.

 

 

 

버스를 탈때 뒤로 물러나서 '먼저 타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역시 한국사람들이 예의바르다고 기뻐하신다. 음, 예의 이전에 일본에는 이런 격식 자체가 없다고 알고 있는데...

지키고 안지키고의 문제라기보다,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 자체는 대체로 어디서나 좋게 평가받을 듯.

 

물론 한국에서도, 자리 비켜주다가 '내가 그렇게 늙어뵈냐!'라고 욕지거리를 들어먹은 지인의 케이스가 있어서, 그냥 사람 나름인갑다.

노부부는 분명 국제 정세 등에 관심이 많은 인텔리전트 부류라고 개인적으로 판단했는데,

요즘 일본 뉴스의 주요 화제가 중국의 오만하기 짝이없는 꼴불견들이라서 그런 면도 있지만

이 부부는 대부분 두리뭉실한 관념을 갖고 있는 일본 사람들과 달리 3국 관계에 대해 꽤나 예리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식민지 시절의 한국에게 정말 못할 짓을 한 것이 엄연한 사실이고, 거기 대한 사죄와 보상이 미흡한 것도 사실인데

잘못을 넘긴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현재 대책없이 날뛰고 있는 중국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한국과 일본의 우호 협력이 아닐까라고 자신들은 생각한다고 꽤나 논리정연하게 말씀을 하신다.

노인들이나 젊은이들이나 과거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황을 잘 모른다면서

이제 바톤은 나같은 젊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대화를 해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주셨다.

 

딴건 몰라도 현 중국의 실태에 대해서는 나와 전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대화가 스무스하게 이어진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정치인 쪽에서의 문제는 심각해서, 국가 교류에 큰 걸림돌이 되는 것 아니냐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정작 내가 일본 정세에 대해서는 그렇게 빠삭한 편이 아니라서 좀 더 깊게 들어가지는 못했다.

덤으로, 중국같은 독재 상태에서야 개선하려는 노력조차 소용이 없으니, 그 인간들 진짜 문제라는 면에서는 모두들 의기투합.

 

북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한국 사람 상대라서 조금 조심하는 어투로 말씀을 하시던데

나야 북한이라는 곳을 제대로 된 국가 취급하지도 않고, 세뇌당한 그쪽 국민들한테 동정심 같은것도 없는 사람이라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코야산역에 도착. 노부부는 여기서 시간 좀 보낸다고 하셔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케이블 열차를 탄다.

내려갈때도 맨 앞쪽으로 가고 싶었는데 발목때문에 어기적거리다 보니 사람들이 꽉 들어차 버렸다.

어쩔 수 없이 급한대로 망원렌즈로 틈을 잡아가며 간신히 한장 건진 정도. 사실 꼭 찍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긴 했다.

 

코쿠라쿠바시역에서 전철을 타고 하시모토역까지 돌아가 다시 전철을 갈아타는, 이곳에 올 때와 역순으로 행동중.

앉아 있어도 도무지 발목의 통증이 가라앉질 않아서 전혀 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철 안은 아침과 달리 그럭저럭 붐비는 편이었는데, 하시모토역에서는 관광객뿐 아니라 교복 입은 학생들도 많이 보인다.

미리 앉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좀 전의 그 노부부가 전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하니까 반갑게 놀라면서, 3명이 앉을 수 있는 빈 자리로 손짓을 하신다. 아프지만 흔쾌히 자리 이동.

자기들은 역 앞 까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오는 길이라고 하신다.

 

좀 전엔 서로 이름도 안 물어봤는데, 마에다(前田)라고 자신을 소개한 노부부는 두 번째의 만남에 굉장히 즐거워하는 분위기.

인생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격언이 있다면서, 한 번만 만나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두 번씩이나 만나게 되는건

아주 소중한 인연이라고 하며, 피로회복용 초콜릿을 꺼내서 한 조각 건내주신다.

중간까지는 같은 전철을 타고, 도중에 쿄토행 전철로 갈아타신다고.

 

그 일기일회라는 격언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단어.

2008년과 2010년 두 번의 일본 자전거 여행 중,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해 준 사람이 나에게 해 준 말이기 때문이다.

 

 

 

잠시 시간을 되돌려서 2008년의 이야기를 해 본다.

 

자전거 여행 당시, 후쿠시마에 도착한 것은 오후 7시. 더 이상 자전거를 타기엔 힘들 정도의 어둠이 깔리던 시간이고

도쿄에서 여기까지 달려오며 떨어진 체력과 밀린 빨래 등으로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적당한 숙소라도 잡을까 싶어 근처 파출소에 가서 물어보니, 한참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던 순경이 '여기가 괜찮고 싸다'며 추천해 준 호텔.

 

쿠니미(国見)라는 조그만 마을로, 여기서 얼마 안 걸린다고 해서 가뿐한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거리는 거리대로 꽤나 멀었고 설상가상으로 그곳까지 가는 도로가 공사중이라서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에, 자갈과 바위가 드러나 있는 비포장 공사길을 장님처럼 덜컹거리며 달려

30분만에 간신히 그 호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친절한 순경아저씨한테 마음 속으로 불평 한마디 하고 카운터로 향했었지.

 

막상 카운터에 들어오자 커다란 스크린에 각 객실의 사진이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거 혹시 러브호텔 아닌가 해서 당황하고 있는데, 카운터에서 후덕한 아주머니가 매우 친절하게 인사를 해 주셨다.

숙박도 가능하냐고 하니 물론이라고 하는 걸 봐서, 러브호텔과 일반호텔을 겸하는 듯 했다.

평생 러브호텔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어쨌든 반쯤 경계심을 품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는데

자전거에 짐이 많아서 천천히 옮기겠다고 하자, 걱정말라고 하시며 안쪽에 있던 가족들을 전부 불러서 함께 짐을 들어주셨다.

 

한국서 와서 자전거 여행중이라고 하니 놀라워 하시면서, 자기 딸이 지금 한국에 수학여행 가 있다고 하신다.

자기도 한국 배우들 너무 좋아한다고. 욘사마 어떻냐고 하시길래 가감없이 솔직하게 '지금와서는 좀 낡은 느낌이죠'라고 했더니

짐 옮겨주던 가족들이 '그거 보라고!'라고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모습에, 아주머니가 욘사마 꽤나 좋아하는가 싶었다.

 

당시 한국선 누가 인기있냐고 하길래 잠시 생각후 이병헌이 좋죠 라고 하니, 그사람도 좋아한다고 아주 기뻐하시더군.

달콤한 인생을 추천해 드리고 (놈놈놈은 개봉하지 않았다) 좀 잔인하니까 조심하라고 미리 경고도 해 드렸다.

 

모두 함께 짐을 옮기고 나서, 빨래할 게 많을테니 느긋하게 목욕 후 옷가지들을 전부 달라고 하신다.

원래 그런 서비스가 있을 리가 없어서, 괜한 폐 끼치기 싫어 스스로 하겠다고 말씀을 드리자

아주머니가 꺼내신 말이 '일기일회' 였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분명 인연이니까, 호의를 배풀 수 있는 자기 쪽이 오히려 기쁜 편이니 부담없이 받아들이라고.

혼자 노숙해가며 밥 만들어 먹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 중,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정말 가슴이 꽉 막혀오는 느낌이 든다.

자칫하면 정말 울컥할 수도 있었지만

바로 전날 결국 눈물 글썽이게 만들어 준 농촌 노부부와의 사연이 있었기 때문에 간신히 감정을 추스리고 호의를 받기로 했다.

이 노부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생략. 계속 써내려가다가는 여행기 전체를 쓰게 될 지도 모르니까.

 

더군다나 세탁물을 받으러 올 때, 간단하게나마 식사까지 준비해 주셔서

호텔 로비에 들어갔을 때의 막연한 의구심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미안했다. 이렇게 고맙고 미안한 적이 평생 있었나 싶을 정도로.

 

편안한 밤을 보내고, 정성스럽게 갠 뽀송뽀송한 세탁물을 받고, 나갈 때 자판기에서 음료수까지 서너개씩 뽑아주시던

그 호텔 사람들의 호의는 정말 뼈에 사무치는 것으로, 그 전까지는 단순한 격언에 불과했던 '일기일회'가

그때부터는 마음의 가장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려 그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지표가 되어 주었다.

 

 

 

그 고마움을 잊을수가 없어서 2010년 자전거 여행때 또 다시 그곳을 찾게 되었다.

이번에는 감사의 표시를 위해 일부러 밝은 오후 4시쯤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소소한 선물을 가져오긴 했지만

숙박료라도 두둑하게 드리는 것이 그나마 할 수 있는 보답이라고 생각해서.

 

러브호텔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일찍 투숙하면 요금이 좀 더 오르게 되는 점을 생각한 행동이었는데

나를 본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가 되어서 가족들 다 부르고, 아침에 교대하는 시아버지에게 전화까지 하는 등

더할나위 없이 반가워 하시며 맞이해 주셨다.

 

감사의 표시를 해야겠다는 당초 목표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는 오후 8시에 투숙했을때나 가능한 최저 숙박요금만 내면 된다고

한사코 거절을 하셔서 무리하게 돈을 쥐어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러브호텔 방식이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호텔은 체크아웃 할때 입구쪽의 기계에 표시된 숙박료를 집어넣으면 방문이 열리는 구조라서

내가 더 내고 싶다고 해서 더 낼수도 없는 형식이고, 직접 드린다고 해도 받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더욱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세탁물을 다 받아가시고, 간단한 라멘이나 주먹밥 정도가 전부인 석식 메뉴 (그것도 원래는 유료)가 아니라

차를 타고 밖에 나가서 초밥과 맥주, 술안주까지 준비해 주시는 통에, 감사 인사 하러 왔다가 더더욱 몸둘 바를 모르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아주머니는 평생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니까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고 기뻐해 주셨다.

 

30년을 살아온 한국에서도 겪어본 적 없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환대라는 것을 평생 처음으로 방문한,

그것도 스쳐 지나가는 여행길 시골마을의 조그만 호텔에서 받았다는 사실은

타국에서의 자전거 여행이라는 찰나같은 순간에서,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겹쳐 만들어 낸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을 안마시는 내가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맥주를 들이킬 수 있었던 게 신기할 정도. 그 날의 만찬은 인생 최고였다.

게다가 아침에는 식당을 열지 않는 러브호텔인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근처 편의점까지 가서 도시락을 사다 주시기까지 했으니.

 

 

 

한참동안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던 약봉지.

아침식사와 함께 건내주셨는데, 비상시 꼭 필요한 위장약과 감기약, 두통약, 반창고를 넣어주셨다.

약품별로 쪽지까지 붙여 놓았을 뿐더러, 한자를 읽기 어려워 할까봐 위에 독음까지 적어주시는 꼼꼼함까지.

 

정말 당시에는 내가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될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지.

격언이라는 건 외워놓으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녀석이지만, 그 격언을 정말로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옆에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꾸준히 손님이 줄어드는 시골 국도변의 러보호텔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마음은

어떠한 위대한 지혜나 삶의 업적, 사회적 지위 등이 없이도 타인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시켜 주었다.

이러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사진들을 볼 때마다 떠올리게 된다.

 

 

코야산에서 오사카로 돌아오는 도중 만난 마에다 씨 노부부가 가볍게 한마디 던진 '일기일회'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위의 추억이 단 몇초만에 슬라이드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지나간다.

딱히 이걸 그분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고, '그 말 저도 참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며 한번 웃어주는 것으로 만족.

 

마에다씨 부인은 할아버지가 독일인으로, 소위 말하는 '쿼터'시란다. 어렸을 적에 독일서 산 적도 있었다고.

아들내미가 나보다 나이 좀 많은데, 미국 유학가서 공부하다가 지금은 외교관이 되었다고 기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아~ 어디나 자식자랑하는 부모 얼굴이 제일 행복해 보인다. 난 그런 표정 짓게 만들수가 없어서 들을 때마다 그냥 쓴웃음만 짓지만.

 

일단은 나도 내일 나라에 가볼까 생각중이라고 말씀드리니, 이렇게 두 번씩이나 만났으니 내일도 아마 만나지 않을까 라고 하신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새벽에 출발해서 나라를 좀 둘러보고 오후에 출판사와의 미팅을 할 예정이었는데

지금 다리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하룻밤만에 나을것 같지는 않아서 가능성이 희박하다.

느낌상 만약 내일 나라에 간다면 이 분들과 한번 더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인간에겐 한계라는게 있는 법.

 

마에다 씨는 삼성과 LG의 어마어마한 약진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신다.

해외에서 단편적으로 들리는 정보이긴 하지만, 결코 1인자의 위치를 넘겨주지 않을 듯이 보였던 기술대국 일본 기업들이

한국의 대기업 앞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가는 현 상황이 놀랍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물론 난 여기서 끝낼 생각 없이, 한국엔 요즘 그런 친 대기업 정책때문에 빈부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해 준다.

간단하게 빅맥지수 정도만 언급하며, 현재 한국의 최저임금이 엔화로 시간당 300엔밖에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니

상당히 놀라는 눈치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지방별로 다르지만 (편의점 동일상품도 지역소득에 따라 가격이 1/3이상 차이난다)

전국 평균치는 740엔 정도니까, 삼성의 어마어마한 약진에 난생 처음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사실을 들은 마에다 씨 부부는,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어 약간 혼란스러워하는 느낌이다.

 

일본은 물가가 비싸니까 단순비교는 어렵다는 주장도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 빅맥지수로 아주 대강이나마 그 차이는 실감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일본은 2000년 이후로 10년동안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거나 1%이내로 넘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물가 상승이 없다는 것.

한국은 상승률이 매년 4%를 넘어가고, 일본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그보다 훨씬 높다. 눈가리고 야옹인 셈.

특히 모 설치류가 나라 말아먹기 시작한 이후 물가상승률은 14% 가깝다던데?

 

 

 

시간가는줄 모르고 마에다 씨 부부와 대화를 하다가 헤어졌다.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일본 경제에 대해 토론하는 노숙자 차림의 한국 여행객을 힐끔힐끔 쳐다보긴 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 마에다 씨와 헤어지고 난 후에는 눈 딱 감고 난바 역까지 고통을 참으며 앉아 있었다.

 

이제 난카이(南海) 라인에서 요츠바시(四つ橋) 라인까지 30분간 걸어가야 하는 최후의 시련만이 남았다.

아침 조식외에는 아무것도 먹은게 없는데, 배는 고프지 않지만 일단 뭐라도 입에 넣고 들어가야 편할것 같아서

난바 워크(난바역의 거대 상가 지하도)를 걸어가다가 그냥 눈에 보이는 파스타&카레 전문점에 들어가서 해물카레를 주문.

 

한국서 직접 만들어 먹던 해물카레는 일단 해물 맛이 우러나도록 카레와 함께 밤새도록 끓여먹곤 했는데

이곳 해물카레는 그냥 카레 소스에다가 삶은 해물을 얹어서 나오는 방식. 이런걸 해물 카레라고 불러도 되는건가 싶다.

하지만 카레 소스는 대충 만든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것이

맵다기 보다는 혓속을 짜릿하게 자극하는 향기가 콧구멍까지 역류하는 진한 풍미를 느끼게 해 준다.

확실히 이 정도 진한 카레 소스라면 해물을 넣고 우려내봤자 향기로 인한 이득보다, 퍼석퍼석해지는 해물이 더 아까울 듯 하다.

 

해물의 상태는 꽤나 앙호한 편으로, 가리비나 문어나 새우나 식감과 향기가 쉽게 느껴질 정도로 깔끔하다.

밥까지 같이 먹을 필요도 없이 그냥 소스 조금에다가 해물만 먹는게 더 맛있게 느껴진다.

유명한 카레 체인점인 코코 이치방야(CoCo 壱番屋)보다 가격은 높지만, 가격차이만큼의 맛은 느껴져서 만족.

 

잠깐 휴식후 요츠바시 라인으로 걸어가다가 약국에서 소염 파스를 구입. 일단 이걸로 하룻밤 잘 휴식하면 내일은 걸어다닐 정도는 되려나 싶다.

발목 염좌에는 특히 인도메타신이 포함된 파스가 효과가 좋은 듯 해서 일부러 고르고 골라서 구입했다.

사하라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국내 일반 마라톤도 몇번 뛰어봤는데, 그때 몸으로 기억했던 지식이라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간신히 호텔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으니 마치 댐이 붕괴되는 듯이 쌓여있던 통증이 일순간에 퍼져가는데

저절로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올 정도로 굉장하다.

끙끙거리며 침대에 다이빙하듯 쓰러져 발을 높이 들어올리니까 놀라울 정도로 쏴악~ 하며 통증이 격감하는 느낌이 참 오묘.

파스로 발목을 감싸니 타오르던 발목이 시원해져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려고 몸을 일으키면, 마치 구내염에 알보칠 원액을 쏟아붓는듯한 신나는 율동과 함께 몸이 꼬여온다.

아주 작은 비즈니스 호텔이라 침대에서 화장실까지는 70~80c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화장실 한번 가려면 일단 몸을 일으키고 한동안 끅끅거린 후에

미션 임파서블 1편의 랭리 잠입신을 연상시키는 절제된 움직임으로 약 3분에 걸쳐 이동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땀범벅이라 느긋하게 욕조에 들어가고 싶은데도, 염좌엔 뜨거운 목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왼쪽 발목은 욕탕 밖으로 내밀어 샤워기로 찬물을 뿌려주는, 뭔가 상쾌하지 않은 목욕을 간신히 끝마쳤다.

 

최대한 왼발을 높이 올리고 누워서 TV를 보는데, 뉴스에서 소니와 파나소닉의 디지털 TV 부분의 전략적 제휴 소식이 들려온다.

당연히 원인은 삼성 때문. 사실 소니와 파나소닉 점유율을 전부 합쳐도 삼성의 점유율 근처에도 못가고 있으니까.

한국인으로서는 그게 뭔 대수인가 싶겠지만, 소니와 파나소닉은 70년전 창사 이후로 한 번도 사이좋았던 적이 없는 라이벌 중의 라이벌.

소니 본사가 도쿄에 있고 파나소닉은 오사카에 있기 때문에 동쪽과 서쪽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었다.

 

한때 세계 전자시장을 잠식하다시피 한 거물급 라이벌 회사가

외국 회사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기술 협력을 한다는 것은, 일본인들로서는 경천동지할만한 큰 사건이다. 근데 이미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게 문제.

 

마에다 씨, 이 뉴스 보면 아마 내 생각이 나겠지 라고 추측해 보며, TV OFF 타이머를 맞춰놓고 누웠는데

아무리 파스를 감았다고 해도 하루종일 너무 무리했는지 통증이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 화장실 한번 가려면 대소동을 펼쳐야 하고.

자세를 조금만 바꿔도 바로 격통이 엄습해 오기 때문에 잠을 자는건지 마는건지 알 수가 없다.

2시간 30분으로 설정해놓은 TV가 꺼지고도 잠을 자지 못해서, 결국 TV 틀어놓고 보다가 졸다가 하는 수 밖에. 체력회복은 물건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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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습진으로 덮혀 말라붙은 피투성이.
가늘고 가쁜 숨을 내쉬며 비틀거리는 발걸음.

다가가려니 힘겹게 경계의 울음과 함께 간신히 몇 발 뒤로.
렌즈를 망원으로 갈아끼고 멀리서 안식을 기원하는 것이 최선의 배려.

이 녀석의 당당함을 무신경한 친절과 이기적인 애처로움으로 치장하는 것은 실례겠지.

오키나와 나고시 주변 편의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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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 2011. 6. 19. 02:14 Photo Diary


수험에 효험이 있다는 쿄토 키타노 텐만구의 무안단물 에마.
그들의 불타는 노력은 사실 성적이 아닌 경제효과적인 면에서 큰 효력을 발휘하지요.


근데 어딜가나 넘치는 덕력을 주체못하는 사람들이 있나봅니다.

아까워서 저걸 어떻게 걸어놔...

그리고 보통 소원을 적는 에마임에도 소원따위 찾아볼 수도 없는 순수한 덕심!



뭐, 이런 건 일단 소원이라도 적어놨으니 완벽한 잉여는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근데 이건 여기 적어놓기보다 제작사에 메일 보내는게 더 효과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끓어오르는 덕심과 주체할 수 없는 잉여력을 발산하지 않고서는 어찌 오덕이라 할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 스탭이 적었으리라 생각되는 에마라면 잉여의 범위에 들어가진 않겠죠.
대략 내용은 '비탄의 아리아'라는 애니메이션이 히트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여긴 키타노 텐만구가 아니라 에노시마 신사였던 걸로 기억.

인연맺어주기로 유명한 이곳에서
사방팔방 인연맺기 에마로 둘러싸이면서도 꿋꿋히 자리를 잡고 걸려있는 녀석이군요.

에마에 돈쓰기 아까워서 친구일행 세명이서 에마 한개로 이것저것 적었던 경험은 있는데...
일인당 에마 하나를 사서 소원을 걸어놓는 사치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을만큼 돈 많이 벌 수 있길.

에마 한개는 약 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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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의 힘 :: 2011. 6. 8. 21:55 Photo Diary


이 곳은 쨍쨍한데

12시 쪽은 그야말로 한밤중

이 정도면 한숨 대신 웃음이 나올 지경


그래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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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행 한번 갔다 오면 일단 듣는 말은 '대단하네요'
여담으로, 일본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일본어 ペラペラ!' 였군. 자랑은 아니다. 정말로.

원만한 인간관계는 모든 사회생활의 근본이라고 말한 사람이 적지는 않았다고 확신하는데
그 격언을 달게 음미해서 가능한 한 친절하게 응대해주고는 있지만서도

여전히 드러내지 않는 속마음은 따로 있다.


대단하다?

아직도 뭐가 대단한지 정말 모르겠다.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그 무엇인가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게 너무나 하고 싶어서 했던 것일 뿐이지.

이건 야구를 좋아해 야구장을 찾는 것과 같고
문득 떡볶이를 먹고 싶어 슈퍼를 향해 귀찮은 궤적을 그리는 것과 같고
재미있는 영화를 위해 그 긴장감과 유사한, 생리적 욕구를 참는데 드는 노력 정도 같은 것이다.

분명 나를 칭찬해 주는 것 같아서 송구하긴 한데.
이런 말 하는 것도 참 미안하지만 그 말은 내게 와 닿는게 없다.


독심술사도 아니고 연금술사도 아니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고 지껄일 인생도 아니라
타인의 의도를 만족할 수준으로 찝어내지 못한다고 자각은 하고 있지만서도

대부분의 '대단하네요'는 그저 '안녕하세요'의 의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 '대단'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느껴졌던 상대가 손가락에 다 채워질런지는 의문이다.
이건 아마 내가 카라라는 가수라거나,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열성적인 변호와 호감이 담긴 설명을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그런가~' 라고 하는 대답과 다르지 않은 행동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

내 여행에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일이 없지 않나?
당장 나 자신도 여지껏 남의 여행기라는 걸 읽어본 적은 극히 드물다.
여행은 하는 것이지 보는 게 아니다.

자전거로 1만 5천 킬로미터를 달렸다는 행위는 여행의 본질이 아니라 수단 중 하나일 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이 아니라 내가 한 고생에 너무 의의를 둔다.

고마워하지 않으면 사회성이 결여된 인간이겠지만
난 내가 해놓고도 그게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어떤 대단함에 대한 것이 아닌
 
그 추위와 그 바람과 그 비에 쩔쩔매며
그래도 하루중 처음으로 신발을 벗는
오후 9시의 텐트 속에서 풍기는 묘한 악취에서 느껴지는 달성감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여행을 대단하게가 아니라 담담하게 이해할 수 있는 상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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