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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6.04  대구 장애학생 체육대회 2/2 16
  2. 2013.03.27  통영의 전리품 개불 23
  3. 2013.03.17  다시 시작해야죠 18
  4. 2013.02.11  진짜 한과 16
  5. 2013.02.09  설날 특식 전복 18
  6. 2013.01.12  도쿄 산책 - 진짜 여행괴짜들 18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코트를 바꾸기 때문에 저도 슬쩍슬쩍 이동을 합니다.

가능하면 아군인 경북대표팀을 많이 찍어줘야 하기 때문에...

 

가족분들 응원과 관계자 선생님들, 그리고 대회가 열리는 학교 학생들도 조금씩 와서 구경하고 있기 때문에

자리 옮기는게 그렇게 쉽지는 않네요.

 

이때가 5월 초지만, 그때도 대구는 3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기 때문에

카메라 들고 몇번 왔다갔다하니 제가 경기하는것 처럼 땀이 흐르더군요.

 

 

 

농구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가장 큰 차이가 리바운드 아닌가 합니다.

일단 슛에 들어가기 까지는 다들 잘 막고 잘 피하고 하는데

골이 튕기고 나면 어쨌든 자기 손아귀에 들어올 때까지 그냥 손만 쳐들고 있습니다.

 

리바운드 제대로 하면 사고의 위험도 높고 하니, 그게 이 애들한테는 더 적절한 행동할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말이죠.

그러다보니 평균신장이 월등히 큰 상대쪽 팀도 별로 장점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이긴 것일지도.

 

 

 

3쿼터때 경기대표팀이 많이 따라와서 엄니가 좀 긴장하시더군요.

하지만 많이 따라온게 2배 정도 되는 점수차라서 사실 별로 걱정할 건 없었습니다.

 

전 후반부는 그냥 느긋한 마음으로 사진이나 찍었죠.

경기대표팀의 페이스로는 후반부 내내 골을 넣어도 역전은 힘들었으니까요.

 

 

 

암튼 2 명쯤 되는 경북대표팀의 에이스가 종횡무진하면서 달려갑니다.

성공률은 낮아도, 어차피 다 낮은거 조금이라도 많이 슛하는게 좋죠.

물론 이 둘은 제가 봐도 특히나 슛을 잘 넣는것 같았습니다만.

 

 

 

블로킹도 몇번 성공하긴 했습니다. 상당히 낮은 확률이긴 했지만.

 

짦은 시간도 아니고, 농구가 워낙 체력소모가 큰 편이라서

과연 얘네들 끝까지 다 뛸수 있을까 싶었는데, 에이스급 선수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마구 뛰어다니고

패스를 맡은 선수 한두명을 교체하는 정도로 끝나더군요.

 

경북대표팀 입장에서 본다면, 벤치선수들은 이 애들보다 좀 더 정신지체가 심해서

이렇게 승부가 결정난 상황에서 배려 차원으로 교체를 해 준게 아닌가 싶습니다.

 

 

 

장님 세계에서는 외눈박이가 왕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체장애인 세계에서도 장애 등급에 따라서 학생들의 인지능력은 천차만별입니다.

 

경기대표팀은 사실 특수학교에서 차출한 선수가 아니라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서 차출한 선수들이라서, 특수학교 학생들보다는 지적수준이 조금 높은 편이죠.

하지만 특수교육 받아보신 분들은 다들 아시듯, 자기 자식이라고 무리해서 일반학교 집어넣어봤자 득보다 실이 큽니다.

 

뭐, 그게 경기결과하고 관계가 있는지 까지는 제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룰만 외울수 있다면 농구라는 경기는 지적 수준보다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만이 성과를 가져오니까요.

나이는 둘째치고, 체력이 비슷하고 농구 경험이 별로 없는 일반학생들과 붙어도

이 학생들이 쉽게 지지는 않을겁니다. 그만큼 운동이란건 확연히 연습량이 눈에 들어옵니다.

 

 

 

교체로 들어온 선수는 지적장애가 조금 심한 학생인데

그래도 배운건 열심히 배웠는지, 큰 키와 덩치로 상대방 막아서는건 잘 하더군요.

그것도 공 들고 달려오는 학생만 골라서 떡하니 막아서는걸 보면, 학생 부모님도 대견해 하시지 않을런지.

 

 

 

종반부에 다다르자 엄니께서도 큰 걱정없이 관전하고 계십니다.

뒤족의 여성분은 엄니 학교 선생님이신데, 아기를 데리고 오셨더군요.

훗날 알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아이들 코치 하시는 선생님의 와이프분이라고 하십니다.

아마 두분 다 선생님이신 걸로... 학교에서는 그런 커플이 꽤 생기죠.

 

 

 

작전타임을 상당히 자주 부르기 때문에 그때마다 수고해주신 스탭분들 사진도 담아봅니다.

물론 저작권(?) 보호를 위해 앞모습은 건너뛰고 뒷모습만 올려봅니다.

 

선수들 모습은 당연하게도 책임자인 엄니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올리는 것이죠.

 

 

 

두 배에 가까운 점수차로 경북대표팀이 승리했습니다.

사실 경기 전까지 감독 선생님조차 이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하실 만큼

겉으로 보이는 전력차가 상당했던 터라 걱정도 했습니다만, 낙승으로 끝났네요.

 

그래도 하라는 대로 인사도 잘 하고, 난투극 같은거 없이 잘 끝났습니다.

 

 

 

전국체전이라 선수들은 며칠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고 인솔교사의 지휘 아래 지정된 숙소에서 생활합니다만

일반 학생들이 아니라서 인솔교사분들의 마음고생은 말이 아닐듯 합니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대회를 위한 숙소따윈 어디에도 없으니

항상 위태위태한 모텔같은거 빌려서 아이들을 숙박시키고 있죠. 괜찮을지 걱정도 됩니다.

 

이겼다는건 아는지, 학생들 되게 좋아하더군요.

엄니께서는 감독 선생님 불러서 애들한테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라고 좀 쥐어주셨습니다.

사진 찍느라 고생한 저한테는 아이스크림 사주지 않으시던데.

 

 

 

승리한 기념으로 밖에서 기념 사진도 한장 찍었습니다.

우승까지 했다면 아마 교내 복도에 크게 장식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다음 준결승까지 승승장구하던 이 팀도, 결승전에서 맞붙은 서울대표팀에에 참패를 당해서...

 

교육은 일반인이나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로 지방과 서울의 격차가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점수차조차 묻지 말아달라고 감독선생님이 말씀하셨으니.

그래도 잘 했죠.

 

 

 

대회가 3시 넘어서 끝났는데, 엄니하고 저는 그날 먹은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도중에 적당히 뭐 좀 먹어볼까 하다가, 길가에 오리구이집이 보여서 들어가 봤습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오리 꼬치구이로군요. 더운 날씨에 늦은 식사인데도 사람들이 아주 바글바글합니다.

바로 앞이 대구에서 산책장소로 유명한 앞산이라 그런 걸까요.

 

 

 

요기하려고 들어간 것 치고는 좀 제대로 된 식사였습니다만

아침도 안먹고 오후까지 농구 응원하다 보니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오리 한마리 정도는 그냥 흡수해 버리죠.

 

양쪽에 숯 넣어놓고, 꼬치를 중간에 끼워서 빙글빙글 돌립니다. 어느정도 익으면 철판위에 돌려놓고 마무리.

오리고기는 기름이 매우 많이 나오기 때문에 버섯이나 마늘 구워먹는 맛도 있죠.

 

인건비를 줄이려고 반찬을 더 먹으려면 직접 가서 덜어먹으라는 가게인데

마늘만큼은 꼭 주문해야만 가져다주는 시스템입니다. 그냥 덜어먹어서는 수지가 안맞는 것이겠죠.

 

 

 

나름 희귀한 부위인 염통을 중앙에 놓고 한장 찍어봤습니다.

맛과 향은 살코기에 비해 떨어지지만 쫄깃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이죠.

 

엄니하고 둘이서 한마리를 뚝딱 해치워 버렸습니다. 사실 80%는 제가 다 먹은거지만.

 

 

 

밥만 시키면 오리탕은 무료로 따라옵니다. 어차피 꼬치구이를 만들려면 자연스럽게 만들어 지는 녀석이라서.

 

하지만 의외로 탕 안에도 살점이 붙어있는 오리뼈가 꽤나 보이더군요.

국물만 떠먹을 필요 없이 고기 뜯어먹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국도 음식점 치고는 그다지 짜지 않아서 시원하게 퍼먹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온 가게인데 고기보다 탕쪽에 합격점을 주고 싶군요.

 

대구는 이번 5월에 장애인 체전과 학생체전 등 전국체전이 많이 열려서

더운 날시에도 불구하고 시내 학교 곳곳이 활기를 띄고 있었습니다.

평소엔 한산한 월드컵 경기장도 꽤나 성황을 이뤘구요.

 

모텔같은 숙박업소는 대실이 아니라 숙박쪽이 이득이 될지는 모르니 뭐...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학생들의 노력과 교육의 대단함을 몸소 체감할 수 있어서 뿌듯했네요.

전혀 갈 생각이 없었지만, 같이 가자고 바람을 넣어주신 엄니께도 감사의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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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부모님께서 모 친목회 친구분들과 함께 통영쪽을 다녀오셨습니다.

대구에서 통영까지 당일치기 왕복은 꽤나 힘든 일인데, 어쨌든 갔다오셨네요.

새벽에 출발해서 밤에 돌아오셨으니 피곤하실거라 생각했는데, 돌아오실때 개불을 사오셨습니다.

 

대구에서는 왠만해서는 먹기 힘든 녀석이라서 항상 기대하는 녀석이라서 반가울 따름이군요.

횟집에 가면 내놓는 곳도 있다지만 이걸 먹으러 횟집에 가기는 좀...

 

제철이 아닌지, 통영이 개불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지 요즘들어 몸값이 더욱 비싸졌습니다.

싱싱하긴 한데 접시의 저 녀석이 무려 1만원어치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멍게를 더욱 많이 사오셨습니다. 혼자서 먹지도 못할만큼.

부모님께서는 거기서 드시고 오셨다고 해서 저보고 다 먹으라는데, 이때가 밤 9시 반이었습니다.

이 소금기넘치는 녀석들을 지금 먹으면 내일 아주 수술끝난 사람처럼 퉁퉁 부어버릴텐데...

 

그리고 제가 멍게보다는 개불을 훨씬 좋아한다는거 아시면, 굳이 멍게 필요없이 개불을 2만원어치 사오시는게 좋지 않았으려나?

 

엄니는 아무튼 개불에는 손도 대지 않으시니, 예전 친구 강군의 권유로 먹게 된 개불은 집에서 먹는 사람이 저밖에 없네요.

강군은 미국에 있는데, 그것도 바다하고는 좀 떨어진 지역이라서 개불 구경은 하지도 못할듯 합니다.

가끔 이 블로그에도 들어오는 듯 한데, 이 포스팅을 보면 어떤 리플이 달릴지 대강 상상이 가는군요.

 

 

 

통영에서 싱싱한 녀석을 바로 쳐서 가져오신 터라 매우 싱싱합니다.

대구같은 내륙도시는 이런 걸 접하기가 힘들어서 아쉽죠. 해산물을 고기보다 좋아하는 저로서는 참.

 

살이 튼실하고 바다내음이 팍팍 풍기는 멍게라서 간만에 마크로렌즈까지 꺼내서 사진을 담아봅니다.

소주하고 많이들 드신다는데, 저는 술을 거의 하지 않으니 그냥 초장에 찍어서 먹을 따름이네요.

썰어주시는 분이 역시 베터랑인지, 꽁지쪽에 겉부분을 살짝살짝 남겨놓으셨습니다.

저 부분은 이빨로 꽉 씹거나 쓰윽 뜯으면 붙어있는 살이 뜯겨져 나오는데, 그 부분이 또 별미죠.

 

 

 

요리되기전 개불의 그 형용하기 어려운 모습은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실테니 패스하기로 합니다.

오랜만에 먹는 소량의 개불이라서 천천히 한조각 한조각 음미하면서 먹었습니다.

 

먹기가 아까워서 개불 한조각 씹고, 멍게 한웅큼 먹고 하면서 밸런스를 조절했네요.

 

어느정도 씹다보면 달달한 맛이 혀속으로 밀려들어오는 느낌이 참 반갑습니다. 강군이 소개해 준 뒤로 제 해산물 베스트에 들어가는 녀석이죠.

강원도쪽에서 제철을 맞은 개불은 그리 비싸지도 않고 맛도 최고라고 하는데, 거기까지 가기가 쉽지 않군요.

다음에 강군이 한국에 돌아오면, 개불 사냥만을 목적으로 강원도로 한번 달려가 볼까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짧지만 행복한 한순간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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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일이 많았던 2월과 3월이었습니다.

작정하고 포스팅을 하려면 못할것도 없지만

블로그 개장 이후 가장 쓰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한달이라서

의무감에 못이겨 쓰는건 의미가 없다 싶어 그냥 마음가는대로 방치해 놓았군요.

 

아직 12월에 다녀온 일본 여행기도 끝내지 않은 게르으니스트입니다만

이제 조금씩이라도 갱신을 해볼까 합니다. 요즘 일이 좀 바빠서 그리 자주는 포스팅하기 힘들겠지만.

 

분위기 전환하는 겸 치고 지난번 서울에 잠깐 올라갔을때 사진이나 올려봅니다.

매번 밖에서는 뭐 먹을까 고민하는 터라, 이번엔 작정하고 처음부터 한끼 먹을 곳을 생각해 왔죠.

네팔인이 경영하는 동대문의 카레 전문점 에베레스트입니다.

 

나침반님과 함께 양고기 카레와 닭고기 카레를 하나씩 주문했습니다.

카레라는게 물론 향신료의 조합이긴 합니다만, 이곳은 한국의 어느 음식점이나 갖고 있는 그 조미료의 맛이 나지 않아서 좋았네요.

나침반님은 매운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이곳 카레는 별로 걱정할 것 없었습니다.

양고기의 그 독특한 냄새를 느껴보는것도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혼자 다니다 보니 한번에 여러 음식 시켜먹기가 힘든 처지인데

같이 온김에 여러가지 먹어보고 싶어서 카레 두개에 난 두개에 탄두리 치킨까지 주문했습니다.

괜히 제 욕심때문에 나침반님 먹는데 고생하신게 아닌가 싶네요. 양이 좀 많긴 했습니다.

 

그래도 뭐, 수다떠느라 2시간 넘게 앉아서 먹어댔기 때문에 결국 먹긴 다 먹었습니다만.

탄두리 치킨 역시 매워보이지만 전혀 맵지 않습니다. 기름기 싹 빠지고 속살이 부들부들한게 잘 만들었더군요.

바깥 음식들 맛이 워낙 강한터라 이곳 요리는 살짝 부드러운 느낌이 듭니다만, 전 그 유니크함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합니다.

괜히 예고도 없이 나침반님 끌고 들어가서, 잘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직원분들이 굉장히 미인이셨습니다.

 

 

 

내려가기전에 하염없이 걸어다녔죠. 슬슬 걷다가 남산 올라갔는데, 이번 루트는 의외로 좀 걸었습니다.

서울은 추울까 싶어서 옷도 좀 두껍게 입었고, 가방에 든것도 많아서 땀을 시원하게 흘렸네요.

 

매번 사람이 미어터지는 남산이었습니다만, 이번엔 타워 앞에서 사진찍는 사람 말고는 좀 적은편이었군요.

카메라는 의무적으로 가지고 다녀서 한두 장 찍어봣는데, 오랜만의 촬영이라서 영 감도 못잡겠고, 별로 찍고싶은것도 없고.

요즘엔 본인이 생각해도 마음이 메말랐다는 느낌이라서... 확실히 사진도 별로 볼만한게 없습니다.

 

 

 

일본, 중국 관광객의 필수코스가 이곳 남산이라는데, 중국은 몰라도 확실히 일본사람에게는 좋은 장소가 될것 같습니다.

도쿄가 완전히 평지밖에 없어서, 이런 대도시 중앙에 이런 산이 자리잡고 있다는 건 신선할 듯.

 

돈 많이 주고 많이 기다리고 해서 올라갈 수 있는 도쿄타워나 스카이트리의 풍경에 비하면

시야는 제한되어도 훨씬 마음편하게 둘러볼 수 있어서 좋을겁니다. 서울에 한강과 남산이 없었으면 꽤나 심심했을 듯.

 

마침 해가 질 무렵이라 많은 사람들이 자리잡고 셔터를 눌러대는데

누구나 찍고나서 비켜줄 생각은 추호도 없이, 해가 끝까지 질때까지 자리 차지하고 있는 탓에

막 질 무렵의 사진은 한 장도 건지질 못했군요.

 

삼각대 설치하고 올림푸스 카메라로 수십장 눌러대던 아저씨, 그만큼 혼자 자리 차지하고 찍으면 적당히 찍고 좀 물러나주는게 예의 아닐런지.

하긴, 카메라라는 것 들고다니는 인간들 인격이 워낙 개차반일 경우가 많아서 저도 카메라 꺼내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뭐 작품사진 대단한거 찍겠다고 (것도 남산에서) 관광객 미어터지는 곳에 혼자 공간 자치하고 버팅기는지.

 

전 이딴 곳에서 사진 몇장 못찍었다고 아쉬워할 마음 추호도 없습니다.

 

 

 

남산 주위의 풍경을 둘러보는데 결정적인 방해물이 되는건 사실 사람이 아니라 이녀석들입니다.

그냥 조그만 공간에 매달 수 있는 곳을 제한해 놨으면 모르겠는데

반대로 약간의 공간만을 남겨놓고는 전부 이 자물쇠들로 담벼럭이 도배되어 있더군요.

 

아무리 하트모양 덕지덕지 발라놔도 금속덩어리의 차가움과, 상대를 구속하고 말겠다는 욕심이 느껴지는 자물쇠가 좋아질리 없습니다.

이건 소망이 아니라 욕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고로 예쁘게 찍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침반님은 앞으로를 위해 사진을 좀 더 자신의 의도대로 찍을 수 있도록 연습을 하시는게 좋겠죠.

이론도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사진은 일단 다양한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는게 좋다고 봅니다.

사진 찍으러 다니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아쉽긴 하네요.

 

뒷모습 정도라면 이해해 주실테니 슬쩍 담아봤습니다.

그러고보니 서울에서 덩치 큰 카메라 꺼내들어도 별로 부담되지 않는 곳이 남산입니다.

관광객들은 역시, 큰맘먹고 온 탓에 좀 괜찮은 카메라들을 많이 들고 다니더군요.

하지만 결국 수백만원이 넘는 최상급 플래그쉽 카메라 들고다니는 쪽은 여지없이 한국사람이네요.

 

뭐, 저도 남말 할 저치는 아니지만 말이죠. 필름판형 외에는 도무지 손에 익질 않아서 계속 비싼거 사용하고 있으니.

 

 

 

해가 지고 있어서 사진찍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실루엣을 이용해서 한장 담아볼까 했는데, 타이밍 좋게도 사람들이 앞을 지나갔습니다.

의도한건 아니지만 사람까지 찍여서 오히려 분위기는 더 살아나는 느낌이 드는군요.

 

 

 

남산 올라왔는데 타워 안찍어주면 섭할까봐 남겨줍니다.

마침 해가 져서 불이 들어오는 즈음이라 찍을맛이 나더군요.

 

카메라는 그냥 덤으로 갖고 온거라, 제일 작은 50mm 단렌즈 하나만 들고와서 화각잡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사진이 이상하게 잘 안찍히길래 내 실력이 이렇게 썩었나 했지만

막상 돌아와서 점검해보니, 구형 수동렌즈의 핀 인식이 잘못되어서 50mm 를 200mm 라고 인식해 버렸더군요.

M 모드를 사용한게 아니라서 셔터스피드도 기준과 확 달라져버렸고, 손떨림 방지도 교란되고 해서 엉망이었던 셈입니다.

 

 

 

내려올때는 다른길을 선택했습니다.

다들 버스타고 왔다갔다 하는건지, 산책로엔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가다가 느낌이 좀 괜찮은 곳이 있어서 슬그머니 멈춰서 나침반님을 찍었습니다.

 

좀 더 잘 찍어드릴수도 있었을텐데, 카메라가 아무리 좋아도 찍사의 실력이 이래서야.

 

매번 느끼는 거지만, 서울은 별로 정이 가질 않네요.

그나마 밤이 되면 활기가 보이는 도시라서, 그거 하나 즐길만은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평생 살라고 하면, 솔직히 좀 끔찍하긴 하죠.

 

 

 

나침반님의 긴 계획도 이제 절반을 넘어 달리고 있는 중이고

전 앞날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만

어쨌든 이러저러한 일이 겹쳐서 다들 나름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듭니다.

 

여러 지성들이 마음의 평온과 가진것에 대한 만족을 강조하는데

요즘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그런 인생은 저하고 별 관계가 없는 듯 하네요.

그냥 잠시동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추석연휴엔 나침반님도 어디 좀 나가봐야겠다고 하시고, 저도 그때쯤 몸이 달아있을 테니

5일동안 어딜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현재로서는 제일 진취적인 마인드인 셈이군요.

 

느리긴 해도 다시 천천히 포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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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작은할머니께서 보내주신 수제 한과입니다.

조청을 비롯한 모든 재료를 직접 준비해서 만들어주셨네요.

 

애초에 조청 만드는 것부터 굉장히 손이 많이가는 작업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해 주실수 있을런지 걱정도 되는 요즘입니다.

 

 

 

전 이런 한과는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지인이 만들어 주셨다고 맛있게 느껴지는게 아니고

진짜 이거 먹으면 밖에서 파는 고급 선물세트 한과는 맛없어서 못먹습니다.

 

이것 역시 만들고 일주일쯤 지나면 좀 퍼석퍼석해 집니다만

방금 가져온 이 녀석은 바삭바삭 씹히는 맛이나, 과하게 달지않은 조청의 부드러운 맛이나

뭔가 입에 어색한 느낌이 드는 판매용 한과와는 레벨이 다른 깔끔함을 자랑하는군요.

 

예쁘게 잘라놓은것도 아니고, 마치 빈대떡처럼 아무렇게나 생긴 모습이지만

제 평생 이것보다 더 맛있는 한과는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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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한과 :: 2013. 2. 11. 20:35 Food For Fun

 

 

집이 가난해서... 명절 선물로 오는것 아니면 맛보기 힘든 자연산 전복이 도착했습니다.

조카 태어났을때는 건강 챙긴다고 미역국에다가 조그마한 양식 전복 몇개 넣기도 했는데

그 쪼그만 양식 전복도 가격이 장난 아니더군요. 후덜덜...

 

 

 

이번 설날은 선물 보내주시는 분들이 무언의 약속을 한 건지, 기묘한 우연이 겹치고 겹친 것인지

한우 선물세트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난리가 났습니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남는칸에 전부 밀어넣어도 공간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제 평생 이렇게 많은 고기는 처음 볼 정도.

 

운동중이라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있는 요즘인데, 식사때마다 밥 없이 고기만 구워먹는 요즘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근방에 사는 친척 어른들한테 한박스식 돌려드렸는데도 집에 남은 고기들을 보면 이걸 다 어떻하나 싶기도 하고.

 

웃기는건, 이렇게 들어올줄 전혀 생각도 못하고 지난주에 설날 차례용 고기를 따로 사서 보관중이었다는 점이죠.

 

 

 

아무튼 고기는 그렇다치고 이런 큼직큼직한 자연산 전복은 선물중 유일하기 때문에

싱싱할때 맛있게 먹기로 했습니다. 엄니께서 껍데기을 벗겨내는데 손목이 아프다고 하셔서

제가 숟가락으로 꾹꾹 밀어넣서 껍데기와 속살을 분리해냈습니다. 그런다음 재빨리 카메라 들고 이 영광의 순간을 담았죠.

 

그저 욕심일 뿐이지만, 집에 처박혀있는 고기들이 전부 동량의 자연산 전복이었다면

이걸 어떻게 먹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똥꼬에서 푸른색 X가 콸콸 나올 정도로 열심히 먹어재꼈을 텐데...

내장이 고소하다고 많이 먹으면 여지없이 X색깔이 푸르딩딩하게 변하더군요.

 

파손 걱정을 할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이스박스 안에 또 뾱뾱이를 넣은채로 보내주신 탓에

전복의 평평한 흡착부가 뾱뾱이 모양으로 오돌도돌하게 변한 모습이 조금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이 날엔 근방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모 사람이름 김밥집의 맛이 어떨까 싶어서

일부러 종류별로 4줄이나 사와서 먹었던 터라, 저녁은 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배가 빵빵했는데

이런 녀석이 도착하니 안 먹을수가 없네요. 덕분에 맛잇게 먹고 녹색 X을 배출했습니다.

 

김밥은 왜 그렇게 소문이 났는지 모를 정도로 평범하던데... 사실 집에서 제대로 만들어 먹는 김밥이 제일 맛있죠.

재빠른 물물교환이 된다면 집에 있는 고기들을 이 전복으로 바꾸고 싶지만 이루어질수 없는 꿈이라는 사실.

 

이제 추석때 다시 이런 녀석이 선물로 들어오기를 내심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그때는 엄니께서 퇴직하신 후라, 아마 이제부터는 이런 선물이 들어올 가능성이 한없이 줄어들겠지만.

 

본인은 명절에 별로 좋은 감정이 없습니다만, 사교성 멘트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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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명이 몰려서 혼잡스럽던 가게를 대충 정리하고 일반 고객들도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돌려놓는다.

8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자 이시다씨가 이곳 Mirai 의 주인장분을 소개해 주셨다.

 

이곳 주인장분은 남극의 오로라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빠져들어서

29세때 남극에 간 후, 호화여객선 '아스카'에 일식주방장으로 들어가, 배로 세계일주 9번, 반주 12번, 세계 70여개국을 돌아다니셨다고.

2년전에 이곳 요코하마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차리고, 여행 매니아나 여객선 매니아들이 모여들 수 있는 곳을 목표로 하고 계신단다.

 

좁은 레스토랑의 벽이란 벽은 주인장분이 타고 세계를 누볐던 아스카호의 모습과, 영롱한 남극의 야경사진이 빼곡히 걸려있다.

실제로 남극기지에서 생활한 적도 있다고. 이건 뭐, 이시다씨 이야기 들으러 왔더니 가게 주인장부터 보통 인간이 아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여객선 셰프라는 직업상 요리는 상당한 수준급.

일식 주방장이었다고 하던데 특이하게도 일식과는 그닥 관계없어보이는 인터내셔널 푸드가 많다.

 

그중에서도 추천하는건 남극 드라이 카레라고 한다.

원래 일본에서 드라이 카레는 우편물을 우송하는 우편선에서 만들어먹기 시작한 것이 원류로

100년에 달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선박여행 식사메뉴중 전통있기로 유명한 녀석인데

주인장분의 경험을 살려서 개량, 남극 드라이 카레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사실 토크 라이브 중에도 드라이 카레를 주문해서 먹는 사람들이 있었고

주인장분도 마음껏 시켜먹어주시면 가계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처음부터 뒤풀이 참가를 계획하고 왔고, 돈 아끼려고 조식을 마구 퍼먹고 온 터라 주문은 하지 못했다.

 

사실 왕복 교통비, 토크 참가비, 뒤풀이비, 필수 음료 주문비 등등...

여기 오기위해 투자한 금액을 전부 합치면 거진 10만원 정도는 나오기 때문에, 가난한 나로서는 무시하기 힘들다.

애초에 항공권조차 공짜인 여행이라서 6일간의 도쿄 체류 총비용이 40만원정도였고, 그 1/4 을 이곳에서 써버린 것이니.

제대로 된 요리는 인스턴트 풀어서 던져주는 싸구려 요리와는 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 레스토랑의 요리 수준을 보면, 가격이 비싼것도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볶음밥 위에 스팸을 구워서 김으로 살짝 싼 이곳의 인기메뉴 스팸초밥이 한국돈으로 2개 9천원이나 할 정도로

독특한 맛체험에는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에, 극빈여행중인 나로서는 선뜻 주문하기 힘든 곳이다.

 

다음엔 자금을 좀 넉넉히 들고 가서 (아무래도 여행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면 좋을텐데)

이곳에서 진득하게 세계 각지의 레어 맥주와 함께 식사를 즐기며 이야기를 좀 했으면 싶다.

 

뒤풀이 식사는 천천히 조금조금씩 메뉴가 코스로 나왔는데, 그중엔 드라이카레를 밀가루피에 싸서 튀겨낸 녀석도 있어서

다행히 이곳의 최고 인기메뉴 드라이카레를 잠깐 맛이라도 볼 수 있었다. 진한 향기가 콧속까지 확 퍼지는게 느껴진다.

 

 

 

일본은 일본이다보니 양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다양한 메뉴가 차례차례 나오는 덕에

조금씩 조금씩 맛을 음미하는데는 더할 나위 없다. 혼자 와서 이런 메뉴를 전부 맛볼수는 없을텐데

뒤풀이 개념으로 단체식사를 하니 여러가지 맛 볼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단 이시다씨와 와이프분은 그러려니 하고 재쳐두더라도, 이곳에 남은 나머지 6명이라면

당연히 여행을 싫어할 리가 없는 매니아 계급이라서, 서먹서먹한 첫인상 역시 여행 이야기로 풀어나가는게 제일 쉽다.

가뜩이나 낯가림이 심한데, 일본인들 사이에 혼자 끼여있다보니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수가 없었는데

다행히도 맞은편의 청년이 스스럼없이 가볍게 말을 걸어줘서 혼자서 황야의 늑대 역할을 하지 않고 참가가 가능했다.

 

이야기의 중심은 이시다씨가 될 경우가 많았지만, 다들 한사람씩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서로에 대해 물어보고 하다보니 이시다씨도 그냥 평범한 동아리 회원같은 느낌으로 끼어들어온다.

세계일주에 대한 의문점에는 당연히 이시다씨가 이이기를 이끌어가지만, 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여행 초보자는 아니니까.

 

남성 5명, 여성 3명으로 이루어진 인원이었는데, 젊고 약간 수줍은듯한 여성분 외에 나어지 한 분은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남편마저 질질 끌려갈만한 행동력넘치는 분인듯 하다.

여행 별로 가본적 없는데~ 라는 식으로 운을 떼도, 막상 들어보면 남자 저리가랄 정도로 갈곳은 다 가보는 듯.

 

이시다씨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주인장분한테 그거 없냐고 물어본다.

한 명당 한 잔씩 돌리기엔 아무래도 가격이 가격이라서 불가능하고, 주인장분이 위스키로 보이는 술을 얼음과 함께 한잔 내놓는데

이 얼음이 1만 5천년전 만들어진 남극의 얼음이라고 한다. 다들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귀하신 몸의 행차에 주목한다.

 

단순히 남극의 얼음이라는 점 때문에 귀한게 아니고, 이 1만 5천년전의 얼음은 미네랄 워터와 달리 불순물이 거의 포함되어있지 않은

소위 자연발생한 증류수와 같은 얼음이라는 것. 그래서 위스키의 맛에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에 매니아들에게 호평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녀석은 눈이 내려 쌓이고 쌓인 압력으로 생성된 얼음이라 보통 얼음보다 기포가 훨씬 많다.

그래서 위스키에 이 얼음을 사용하면 그 구멍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기포덕에 맛이 부드러워진다고. 이름값이 아니라 진짜 고급얼음이란다.

 

 

 

다들 귀를 한번씩 대 보고 조금씩 마신 후 옆자리로 넘긴다. 나를 제외하면 다들 술 굉장히 좋아하는 듯 해서

음식 먹는 도중에도 각자 술을 마구마구 주문해서 마시고 있는데, 이 녀석은 워낙 귀해서 그렇게 마실수는 없는 듯.

 

맞은편에서 가볍게 말걸어줘서 나를 도와주는 세이야 씨가 친절하게도 그 술을 들고 포즈를 취해 준다.

얼굴근육이 굳어버린 나와는 달리 표정이 아주 크게 변화해서 사진 찍는 맛이 난다.

나야 뭐 술맛을 잘 모르지만, 귓가에서 느껴지는 탄산소리와 함께 가볍게 넘어가는 위스키 맛이 훌륭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세이야 씨는 25살 쯤 되었나, 15살때부터 자위대에 들어가서 지금은 이곳 요코하마 근처의 해군기지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이시다씨 책을 읽고 팬이 되서 자주 만나다 보니, 이시다씨는 이분을 '고릴라'라고 부른다.

'세이야'라는 이름은 '聖夜' 라고 쓰는데, 감이 잡히는 분도 있을 듯.

생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사람의 쾌활함에는 부모도 한몫 한 것 같다.

 

얼핏 봐도 쾌활한 청년으로 보이는데, 실상을 파고들어가보니 쾌활한 정도가 아니라 좀 무서운 사람.

어느날 좀 심심해서 무단으로 자위대 빠져나와서 자전거로 신나게 무단여행중에

도랑에 크게 굴러떨어져서 무릎뼈가 깔끔 깨끗하게 살을 찢고 튀어나오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고.

그런데 병원 가면 무단 탈주한게 자위대 귀에 들어갈까봐 겁이 나서 그 튀어나온 뼈를 그냥 손으로 다시 집어넣고

거기다 스카치 테이프를 둘둘 두른 후에 그냥 복귀해 버렸단다.

 

그러고 몇주 지난 후에야 병원을 다시 찾아서 무릎에 철심 하나 박아버렸다는 기묘하고도 이상한 이야기.

사람들이 믿질 않으니 바지 걷어서 그 날의 상처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거 사람 맞나?

 

그만큼 활동력도 있고, 체력은 거의 괴물같은 사람이라서, 맘만 먹으면 세계일주같은건 그냥 취미활동으로도 끝내버릴 듯 하다.

오키나와 출신이라고 하는데, 역시 지역 특유의 쾌활함은 사람의 DNA 속에도 녹아있는 것일까.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자긴 바보라는 말을 쉽게쉽게 꺼내곤 하는데, 이런 건 바보가 아니라 순수하다고 표현하는게 나을것 같다.

내가 '일본에서 이렇게 주절거릴때, 뭔가 틀리게 말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무심결에 조심하게 된다' 고 말을 하니

'일본사람들도 다 틀리게 말해요' 라고 웃더라. 사실 내가 배운 문법을 적용시켜보면 그 말이 틀리진 않다.

 

하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 그 나라 말을 제일 잘못 사용하는건 언제나 그 나라 사람이다.

 

 

 

내 바로 옆에 앉은사람은 척 봐도 아티스트같아 보이는 사진가 신 씨.

주드 로 같은 살짝 벗겨진 머리에 가늘고 긴 체형, 머릿속에 그려지는 포토그래퍼의 전형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카메라 갖고 온 사람도 나와 신 씨밖에 없었다. 캐논의 5D Mark 2 를 들고 있다.

명함을 한장 받았는데, 뒷면은 자기가 찍은 흑백사진을 멋지게 인쇄해 놨다. 나도 이런 명함 하나 만들까 싶었는데

명함 뒤에 당당하게 내밀만한 작품이 없으니 좀 더 노력한 후에나 생각해 봐야 할듯.

 

이분도 여행을 좋아해서 자전거로 중국에서 시작해 인도까지 몇달 달려봤는데

좀 더 제대로 하고 싶어서 돌아온 후, 이시다씨같은 세계일주를 계획중이라고 한다.

다들 이렇고 그렇고 한 여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내는걸 보니

혹시 나는 여기 낄만한 인간이 아닌건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 시작한다.

난 뼈가 튀어나왔다고 그걸 맨손으로 집어넣고 테이프 발라버릴만큼 호탕하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뭐, 자기소개할때 일본일주 이야기와 사하라 마라톤 이야기 하니 다들 놀라주는 것 같아서

포장만 잘 하면 나도 대강 이 사람들하고 비슷한 레벨이라고 속여넘길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긴다.

 

이시다씨 옆엔 와이프분. 결혼하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신혼여행은 아프리카로 갔다고. 반려자가 될 만한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풍경이 사막이라, 그거 진짜 공감간다.

 

사실 와이프분은 이시다씨와 결혼하기 전엔 한 번도 여행이란걸 해 본적이 없다고.

하지만 한번 맛들이고나서는 이시다씨보다 더 나가고싶어서 고생중이란다. 여행이란게 그렇긴 하다.

시모네타라고, 한국어로는 외설적인 농담이라는 의미인데, 이시다씨도 한 외설 하지만 와이프분은 그걸 쿨하게 받아넘겨서

아무런 데미지가 없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행복해 보이니까 그걸로 됐겠지.

 

일본일주한 경험으로 한번 물어봤는데, 이시다씨 말로는 일본이나 한국정도 지형은 난이도로 치면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일본이나 한국 일주할 정도면 전세계 못가는곳은 없을거라 하신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위안은 된다.

사실 세계일주 가는건 내가 아니고, 나침반님은 융프라우도 자전거로 오르신 분이라 별 의미가 없긴 한데.

 

세계일주의 힘든 점은, 지형의 난이도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노면상태가 많다는 것.

95000km 의 주행거리라고는 하는데, 사실 1만km 정도는 걸어서 간거라고 한다.

도중에 자전거 앞프레임이 완전히 박살나 버리는 바람에, 그 50kg 짐과 자전거를 짊어지고 15km 넘게 걸어간 적도 있다고.

죽는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하는데, 나같으면 정말 때려치우지 않았을까 싶다.

 

 

 

제일 왼쪽분이 대장부(?) 여성분이고, 중간분은 이제 여행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

오른쪽의 훈남분은 역시 요코하마에 살고 있는 분으로, 카메라회사 캐논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내 옆의 신 씨가 캐논 카메라를 꺼내들자 눈이 빛을 발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나한테는 농담으로 캐논 써주세요라고 하는데, 사실 카메라쪽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부서라고.

신 씨가 카메라 좀 싸게 넘기라고 말했을때도 자기 구역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지금 여기 남은 사람들은, 자전거로 1년간 여행하는 나 정도가 지극히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캐논훈남 역시 소싯적엔 어디나 훌떡훌떡 잘 돌아다녔고

여행 준비겸 해서 지금도 운동 꾸준히 하고 있으며, 옆의 자위대 세이야 씨 못지않은 괴물체력을 가지고 있다.

캐논 다니며 월급도 나이에 비해 안정적으로 잘 벌고 있는데 훗날을 위해 붓고 있는 보험금 때문에

생활이 빠듯하다는, 착실함의 표본을 보여주는듯한 생활력의 소유자.

 

외가 팔촌쯤 되는 친척이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친척 결혼식때 한국에 한번 가본적이 있다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요리도 차곡차곡 잘 나온다. 한국의 페이스에 비하면 좀 천천히 나오는 편.

먹는데 집중한다면 느린 페이스지만, 이야기를 중심으로 곁들여지는 느낌의 모임이니 이 정도 페이스도 괜찮다.

 

마지막으로 나온 피자는, 처음 외관만 봤을때는 좀 엉성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조각 집어먹어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있다. 정말 맛있다.

바삭바삭한 대신 피골이 상접한 도우와 달리 씹는 감촉도 좋고, 토핑들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역할을 다한다.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는지, 한조각 먹고나서 '어라? 맛있다!'를 연발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거 주인장분이 들으면 '그럼 먹기전엔 맛없어 보였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그런 리액션이라서 약간 긴장했다.

 

아무튼 조그만 가게의 수제 피자는 어딘가 어설픈 느낌이 남아있다는 경험을 몇번 했던 나로서는

이만큼 완성도 높은 피자는 요 근래 처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짜 맛있었다.

그냥 먹으면 그렇게도 맛없던 아보카도를 이렇게 쓰는구나 감탄도 할 수 있었고.

 

주인장분의 심상치 않은 이력도 그렇고, 훌륭하게 구비해놓은 세계 각지의 술도 그렇고

어디가서 요리사라고 칭해도 결코 부끄러움 없는 실력으로 만들어내는 요리도 특색덩어리라

다음엔 누구하고 같이 가더라도 이곳을 꼭 찾아와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흐르고 점점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면

항상 그렇듯이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내 언어회로는 1:1 대화에만 특화되어 있는 듯, 다수의 사람들과 대화하는건 타이밍 잡기가 너무나 어렵다.

대신에 듣는건 어렵지 않아서, 갑자기 주제가 끼어들어와도 얼마든지 대처할 수는 있는데...

 

이름만 잘 가져다 붙이면 반사회성 장애의 일종으로 정의할 수도 있겠는데

본인 스스로는 별 신경쓰지 않고 있다. 병이라고 부른다면 뭐, 내가 병자라고 해서 바뀌는게 있나.

어렸을때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스퍼거에 근접하는 성격이었고,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정신과의사한테 진단서 한장쯤은 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세상은 살기 불편한 곳이고, 무차별 살인마가 되지 않을 자신쯤은 있으니 인생 별 문제 없을거라 생각.

 

다행히도 다들 사진찍는데는 큰 저항감이 없는듯 해서 조금씩이나마 셔터를 눌렀다.

한국에서는 사진찍는데 워낙 경기일으키는 사람이 많아서 점점 소심해지는데

옆의 신 씨가 내 카메라 들고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이시다씨가 내 카메라로 내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물론 블로그 방침상 본인 얼굴은 올리지 않겠지만.

 

사진 너머로 보이는 점원 아가씨가 열심히 이리저리 뛰며 서빙중이었는데

그래도 12월이라고 산타복장을 하고 있는게 뭔가 대견해 보인다.

좀 더 용기있게 나갔다면 기념으로 저 분 사진도 한장 남길수 있었을 법 한데.

 

 

 

신 씨가 내 카메라로 찍은 사진.

수동렌즈긴 하지만, 이 사람한테야 내가 뭐라뭐라 필 입장이 아니다. 어쨌든 프로 사진가니까.

신 씨는 24-105 렌즈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내가 가진 렌즈가 35mm 단렌즈라는데 조금 놀란 듯.

단렌즈치고는 무식할 정도로 큰 녀석이기도 하고, 거기다가 모터가 없는 수동렌즈라서.

 

한국 렌즈 제작사 삼양이 만든 순수 한국렌즈라서 일본에서 본 적도 없을거다.

수동렌즈라서 불편하긴 하지만, 가격 저렴하면서도 화질은 수백만원짜리 렌즈보다도 더 뛰어난 녀석이라 애용중이다.

 

 

 

뒷풀이가 길어졌는지, 일반 손님들도 차례차례 들어오기 시작해서

더 이상 있으면 폐가 될까봐 다들 주섬주섬 일어난다.

 

일반 손님들 오기전에 레스토랑 풍경을 좀 더 여러장 남겼을면 좋았을텐데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그 생각을 하지 못한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심지어 1인용 조그만 화장실 안에도 빈틈없이 빡빡하게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인생을 멋지게 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구나 생각하며 조금이나마 레스토랑의 풍경을 담는다.

저기 액자에 보이는 여객선이, 주인장분이 몸담았던 '아스카' 호. 지금은 2호도 나왔다고 한다.

 

배에서 인생을 보낸만큼 여객선 세계여행의 매력에 대해서도 한참 열띤 토론이 벌어졌는데

사실 저런 여객선말고 아주 싼 녀석으로도 세게일주는 할 수 있단다.

하지만 그런 곳은 대부분 공동 침실인데, 거기서 큰 문제가 생긴다고.

만에 하나 성격이 안맞는 사람과 룸메이트가 되어버리면, 거기서 세계일주 끝날때까지 받는 스트레스는 말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저런 토의 끝에 '여객선 세계여행은 나이 좀 더 먹고 자금 여유있을때 해도 늦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

 

 

 

이시다 씨만 바라보고 달려온 요코하마인데, 막상 와보니 '끼리끼리 모인다'는 속담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나를 너무나도 초라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보이게 만드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으니

좀 더 멋대로 살아도 별 문제 없겠다는 위험한 생각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듯 하다.

 

나가기 전 주인장분께 사진 한장 부탁하고 인사 나눴다.

이제부터 도쿄든 요코하마든 근처 오기만 하면 이곳은 일순위로 찾아오겠다고.

본인도 이야기 나누고싶은거 많으니 꼭 찾아오라고 당부를 하셨다.

 

실제로 이곳엔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도 하고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여행 좋아하는 대학 교수들마저 토크쇼를 하는 등 나름 단단한 매니아층을 지닌 곳이다.

일본 TV 에서는 1년에 8~9번 정도는 소개되는 곳이기도 하고. 어딜 뜯어봐도 내가 단골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을 정도로 취향에 맞는 곳.

 

원전사고만 아니었으면 지인들 많이 데리고 갈 텐데,

사실 이제 도쿄 부근은 누가 가고싶다고 요청하지 않는 이상은 나 혼자 가게 될것 같아서 아쉽긴 하다.

 

주인장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뒤풀이 팀은 밖으로 나와서 칸나이 역을 향해 걷는다.

사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은 요코하마 부근에 살고 있는듯. 나는 도쿄로 간다고 하니 이시다씨가 도쿄 어디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살짝 말이 엇나갔나 싶었는데, 도쿄는 며칠 전에 왔고 살기는 한국에서 산다고 하니 조금 놀라는 눈치다.

그럼 예전에 일본에서 산 적이 있구나 라고 말을 하는 이시다씨의 낌새로 봐서는, 맨날 하는 그 레퍼토리가 나오는 느낌.

일본에서는 산 적이 없다고 하니 그런데 왜 그렇게 일본어가 술술 나오는거냐고 다들 놀란다.

나머지 일행들이야 그렇다 치고, 이시다씨는 내가 한국서 메일 보낸거 알텐데 왜 그러는지... 아마 사소한건 까먹었을지도.

 

지금까지 다들 내가 도쿄에 살고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이시다씨 보려고 한국서 비행기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

사실 이시다씨 때문에 도쿄 온것은 아니고, 조금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 토크 라이브가 제일 큰 목적이긴 하다.

 

나는 기왕 요코하마까지 왔으니 뭐라도 유명한거 하나 둘러보고 가야겠다고 말하니

이시다씨가 그럼 라멘 박물관이지 라고 단언해 준다. 다행히도 밤 늦게까지 하기 때문에 지금 출발해도 문제없다고.

어디로 향하든 일단 모두들 칸나이 역까지 가서 헤어지기로 하고 조금 싸늘해진 요코하마의 저녁거리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