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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 해당하는 글들

  1. 2012.08.24  대구국제재즈축제 - 요디제 뽕 디스빠레 10
  2. 2012.08.24  대구국제재즈축제 - 호리 히데아키 트리오 14
  3. 2012.05.31  언덕길의 아폴론 12
  4. 2012.05.23  킨키 방황 - 류큐왕국의 눈물 18
  5. 2012.05.08  재즈 좋아하시나요? 6
  6. 2011.08.30  제4회 대구 재즈축제 - 윈터플레이 24

 

호리 히데아키 트리오의 공연이 끝나고 다음 공연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생판 듣도보도 못한 '요디제 뽕 디스빠레' 라는 의미불명의 문자가 공연안내서에 적혀있군요.

악기는 전부 사라지고, 조명기기와 노트북, 일렉트로닉 믹서가 준비되는 것을 보고 아주 약간은 감을 잡았습니다.

 

사실 이번 공연은 재즈라는 장르와는 거의 관계가 없지만, 이곳이 'Art Factory 청춘' 이라는 공연장이다 보니

오늘 밤 신나게 한번 청춘을 흔들어보자는 의미에서 기획하셨다는 듯. 오늘밤은 재즈축제의 전야제 같은 성격이니까요.

 

 

저는 청춘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좀 늙었고, 겉모습은 중년을 넘어서는 위엄을 보이며, 태어나서 한 번도 클럽에 가본적이 없는고로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만, 일단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으니 순수하게 프레스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자고 다짐합니다.

 

 

 

본명은 모르고, DJ 이름이 '요디제 뽕 디스빠레'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범한 조명아래선 지극히 평범해 보이시는 분이 조금 쑥스러운 듯 인사를 합니다.

조금 전까지 놓여있던 의자와 테이블은 전부 치워버렸고, 넓직한 홀이 만들어졌네요.

관객들은 모두 스탠딩 상태로 대기중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광란의 시간에 동참하기 위한 준비자세인듯 합니다.

 

영화 등에서 간접 경험한 클럽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아마도 엄청 어두운 곳에서 현란한 광선이 홀을 매우는 그런 모습일 것 같아서

어두운 망원렌즈로 담을 수 있는 사진은 없다고 판단하고, 혹시나 싶어 가져온 35mm 단렌즈를 장착합니다.

어차피 AF 따윈 맞지도 않을테니 수동렌즈라고 해서 어려운 건 없겠군요.

 

 

 

춤추는데는 관심이 없지만 이것저것 잡지식을 머리에 집어넣는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예전에 DJ에 대해서 조금 들어본 기억이 있군요. 이게 쉬워보여도 사실 예술의 경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숙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일단 분위기를 띄우는건 DJ 분의 역할이니, 조명이 돌변하고 나서 힘차게 스타트합니다.

 

 

 

그런데 관객들이 몸을 좀 움찔거리기도 전에 장비 에러로 잠시 중단되어 버렸네요.

DJ 분이 굉장히 뻘쭘하시겠지만, 아날로그가 아닌 풀 디지털 믹싱이다 보니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겠죠.

 

 

 

세팅이 다시 완료되고 본격적으로 디제잉이 시작됩니다. 까페를 가득 채우는 비트와

카메라 센서를 작살낼듯한 강렬한 조명이 분위기를 돌변시키는군요.

 

과묵한 신사의 나라 대구라서 그런지 선뜻 홀 중앙으로 돌격하는 분들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익숙한 듯 금새 리듬 타시는 분들이 몇몇 보입니다. 저하고는 사는 세상이 다르네요.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스트로보 없이 이곳에서 사진을 촬영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마 프레스용 최고 플레그쉽에 F1.4 정도 되는 단렌즈라면 간신히 촛점 맞출 수 있을지도.

 

어차피 육안으로 봐도 뭔가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정도밖에 보이지 않으니

사진도 그런 식으로 나와주는게 정상이겠죠.

 

 

 

수동렌즈라서 촛점도 대강 맞추고 그냥 셔터를 눌러재끼면 됩니다.

왠지 이렇게 찍는게 초상권 신경쓸필요도 없고 좋군요.

디제잉이 그렇겠지만, 다양한 음악과 비트가 묘하게 계속 연결되어 끝이 없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렇게 음악에 맞춰 끝없이 흔들어 대는게 청춘의 에너지일까요.

 

 

 

저는 이쪽 방면에 경험이 부족해서 디제잉 실력이 어떤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셔터를 누르고는 있습니다만 마음은 붕 떠서 나는 어디? 여긴 누구? 상태입니다.

 

 

 

가끔씩 제대로 된 듯한 사진도 좀 남겨주고.

DJ 분께서 저런 포즈를 잘 취하시길래 타이밍 맞춰서 한번 담아봤습니다.

왠지 플래툰 생각이 나긴 하네요.

 

 

 

춤추기 싫은데 억지로 추실 일은 없을테고

다들 재미있게 방방 뛰면서 비트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좋아서 추는 거라면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칼로리 소비도 되고 나쁠거 없군요.

 

 

그래도 여전히 쑥스러운건 쑥스러운지, 홀 중앙에는 어지간해서는 사람들이 잘 안서는군요.

가끔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용감하게 뛰어드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효과는 미미합니다.

 

방금 전까지 재즈 듣던 곳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알콜의 힘을 좀 더 빌려야 할런지.

 

 

 

그래도 분위기 좋을대는 기차놀이도 하면서 재밌게들 노시더군요.

전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데 흡수될 수 없는 성격이고, 애초에 흡수되려고 노력하는 성격도 아니라서...

 

그래도 뭔가 웃으면서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는건 좋아합니다. 남들 웃는 모습 보는게 기분나쁠 리가 없죠.

 

 

 

대구 국제재즈축제는 여러 젊은 자원봉사단원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활동명은 '쟈스지기'입니다.

이 쟈스지기 분들도 신나게 흔들어 대시고, 촬영 맡으신 분은 이동하면서 마구 난사를 하시더군요. 재미있는 사진이 나올 듯.

 

사실 이런 공연에서는 스트로보 마음껏 터트려도 뭐라 할 사람 없겠지만, 애초에 갖고 오질 않았으니 뭐.

 

 

 

강렬한 조명은 디지털 카메라 센서에 별로 좋지 않죠.

강한 인공광원은 센서 표현의 범위를 넘어서 이미지가 깨지는 현상이 발행합니다만

이 상황에서는 왠지 이런 이미지가 더 어울리는군요.

 

 

 

그래도 DJ 분은 정상적으로 찍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한 번도 제 인생과는 관계가 없었던 공간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재즈와는 관계없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네요.

 

 

 

마지막으로 장노출 한번 남겨봤습니다. 당연하지만 사람 몸에서 빛나는게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유령처럼 나왔습니다만, 이것도 당시의 불타는 청춘이라는 느낌을 표현하는데는 괜찮은 것 같네요.

 

 

 

12시가 넘어서 공연장을 나왔습니다만, 들어갈때는 멀쩡했던 하늘이 나갈 때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군요.

우산을 갖고 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냥 장대비를 맞으면서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집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니 별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카메라 가방도 방수기능은 갖추고 있으니 뭐.

눈뜨기 힘들 정도로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김광석씨의 모습이 이 빗줄기와 너무 어울리는 바람에

후다닥 카메라를 꺼내서 한 장 담아낼 수밖에 없었네요. 음악이 넘치는 하루였습니다.

 

 

어김없이 대구국제재즈축제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여행중이었던 2010년에는 관람하지 못했지만 그 외엔 대강대강 보러 가던 공연인데요.

작년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덕에 재즈축제 규모도 상당히 커져서 화려한 여름밤을 보낸 기억이 납니다.

 

올해는 일단 육상대회도 끝이 났고 해서 규모는 작년에 비해 조금 아담해 진 편입니다만

여전히 상당한 실력파들이 여기저기서 참가해 주시는 덕분에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번에는 대구에 특화된 문화이벤트 소설커머스 사이트인 '이놀자'에서 전 공연 무료관람, 사진촬영이 가능한 프레스 데뷰어 안내를 해주셔서

작년과 달리 좀 더 정식으로 활동하면서 마음껏 재즈를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습니다.

프레스라고 해도 수성아트피아 공연 외에는 원래 촬영에 문제가 없는 공연들이라서

가끔 공연에 너무 몰입하다가 촬영하는걸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했는데, 이번엔 정식으로 데뷰어 자격을 얻었으니 자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공연을 무료 관람 + 프레스 자격을 얻는 대신 제가 제공해야 할 것은 이렇게 블로그에 리뷰 쓰고, 태그와 제목에 규정 단어 넣고

데뷰 배너를 포스팅에 삽입하는 것 정도입니다. 처음 해보는 거라 생소하네요.

 

 

이렇게 넣으면 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6일간 여러 장소에서 펼쳐지는 이번 재즈축제의 첫 단추는 'Art Factory 청춘'에서 시작하는군요.

원래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전야제를 하는 날이기도 했는데, 대구가 하필 이날부터 비가 들이붓고 있어서

실제로 축제의 스타트라인은 이곳에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 서식지와 매우 가까워서 편리한 곳인데, 대딩때 홍대 근처에서 익히 보아오던 까페형 공연장입니다.

열악한 면이 많았던 홍대 지하까페보다는 훨씬 넓직하고, 제대로 된 까페 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음악과 커피를(혹은 맥주를) 즐기기에 부담없는 곳이네요.

물론 음향시설이야 수성아트피아 같은 곳과 비교할 수 없지만, 관객과의 거리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이런 곳이

오히려 재즈공연과는 더 어울리는 법이죠. 작년엔 이런 곳에서의 공연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는데 올해는 시작부터 느낌이 좋습니다.

 

 

 

이곳의 담당자분이신듯 한데, 공연 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 참여 그룹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처음엔 사람이 별로 없더니 차근차근 모여서 홀을 꽉 채우더군요.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동선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라서 난감하지만, 재즈 공연 즐기는데는 특화되어 있으니 뭐.

 

 

 

재즈 색소포니스트 홍순달씨가 첫 번째 그룹인 호리 히데아키 트리오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한국에서도 인지도 높지만, 홍순달씨는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중이시라서, 이번 트리오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군요.

 

전 호리 히데아키라는 분을 들어본 적이 전혀 없어서 대체 어떤 타입인가 궁금증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대구 재즈축제와 상호관계를 맺은 일본의 스미다 재즈축제도, 말만 많이 들었지 가본적이 없네요.

 

 

 

홍순달씨의 설명으로는 떠오르는 신예중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분들이라고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쪽 밴드들과 달리 뭔가 쑥쓰러운지 살짝 인사하고 후다닥 자리를 잡아 들어가는 트리오 분들.

리더인 피아노의 호리 히데아키씨는, 홍순달씨가 서태지 닮았다고 하셔서 기대했는데 피아노 위치상 얼굴이 안보입니다.

 

피아노와 컨트라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진 훈훈한 밴드로군요. 훈남 세명이라서 더욱 훈훈한지?

 

 

 

제 카메라는 요즘 나오는 입문형 카메라보다도 고감도 성능이 훨씬 떨어지는 녀석이라서

특히나 이런 어두운 실내공연 촬영은, 부탁받는게 이쪽에서 죄송할 정도로 결과물이 형편없습니다.

원래 주로 찍는게 주광 사진인 탓에 카메라를 고감도에 강한 녀석으로 바꿀수도 없고.

 

초대해 주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진들 뿐이지만 그래도 어쩌겠나요. 열심히 올리는 수 밖에.

 

 

 

호리 히데아키씨는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자꾸 궁금증만 더해갑니다.

처음 접하는 밴드라서 첫 곡이 인상을 결정짓는데 큰 역할을 하죠.

뭔가 듣고 있으면 생김새에 딱 맞는 스타일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종종 발랄한 느낌이 들지만 기본적으로 차분하고 섬세한 느낌이군요.

 

 

 

드럼을 맡고 있는 우미노 슌스케씨입니다. 왠지 여자사람한테 다정할 것 같은 얼굴.

이 트리오는 멤버들이 전부 동안이신 듯 한데, 우미노씨가 79년생으로 가장 어립니다. 아까 얼핏 본 바로는 호리 씨가 더 젊어보였는데...

표정변화가 다양한 분이신데 제대로 잡아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베이스의 타카세 히로시 씨는 멤버중 가장 연장자인데, 나이차가 8~9살이나 나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군요.

타카세 씨의 멍한 눈빛이 의도와는 달리 찍힌 것 같지만, 재즈의 눈빛교환을 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입니다.

 

유럽쪽 밴드에 비해 아시아쪽의 재즈 밴드들이 확실히 호흡 맞추기에서 능숙한 느낌입니다.

멤버 개개인의 개성은 유럽 쪽이 좋은데, 협동이라는 면에서는 이족이 더 능력을 발휘하는 듯.

사실 이것도 개인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야지만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오니, 이분들 상당히 실력자입니다.

 

 

 

베컴머리의 타카세 씨가 여러가지로 눈에 잘 띄는 편이군요.

유머감각도 풍부할 듯 하시고, 얌전한 옷차림 하신 다른 두분과는 달리 패션 감각도 남다르고, 거기다 컨트라베이스의 위용까지.

 

반대로, 타카세 씨와 눈 맞추느라고 자꾸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는 호리 씨는 여전히 한 번도 얼굴을 잡질 못하고 있습니다.

공연장 반대편으로 가면 담을 수 있을까 싶은데, 홀이 관객으로 꽉 찬 상태라서 동선 확보가 힘드네요.

촬영차 오긴 했어도 저 역시 기본적으로 공연 즐기러 온 사람이기 때문에, 방해받고 싶지도 않고 방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사진이야 남길 수 있을만큼만 남기고 음악 감상하는게 좋을 듯.

 

 

 

아주 잠깐씩 얼굴이 보일듯 말듯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차피 느긋하게 기다리다 보면 곡이 끝나고 인사할 시간이 있으니 별 문제는 아니지만.

동네 빵집에 빵사러 나온듯한 편안한 옷차림으로 부담되지 않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데

저보다 나이가 많다는게 사실 믿어지지 않는 얼굴이군요.

 

한국에 처음 오는데, 요즘 독도문제때문에 시끄러워서 그런지 겁을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이 트리오의 연주는 뭐랄까, 사이도 좋고 화합도 잘 되고, 종합적으로도 참 세련되고 기교있는 느낌을 주는데

한국에서의 첫 공연에 대한 부담인지, 원래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그 자연스러운 앙상블때문에 살짝 단조롭다는 느낌도 듭니다.

 

호리 히데아키씨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도중 어마어마한 스케쥴표를 보고 이래도 되는건가 싶었는데, 한달에 공연 없는날이 2~3일 밖에 없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스미다 재즈축제 공연 마치고 바로 한국으로 날아오셔서 정신없을 듯 한데, 이 정도 조화를 이뤄내는것도 대단할 따름이네요.

멤버들이 기본적으로 탄탄한 실력이라서 연주에는 큰 무리가 없겠지만, 그 때문인지 좀 더 장난끼있고 현실감이랄까... 그런 느낌이 약간 부족한 듯 합니다.

 

 

 

사실 매번 이 멤버로 공연하는것도 아니라서 딱히 리더라고 할 만한 위치도 아니겠지만

이 트리오는 정말로 어느 한쪽이 튀는 일 없이 자연스러운 음악을 들려줍니다.

살짝 어두운 까페에서 술 한잔이나 커피 한잔과 함께 느긋하게 앉아서 감상하기엔 더없이 적합한 밴드라는 느낌.

 

촬영 동선이 이렇게 제한될줄 알았으면 저도 일찌감치 자리 하나 만들어놓고 앉아서 촬영해도 문제가 없었을 것 같네요.

좀 돌아다녀 볼까 해서 자리잡지 않고 서 있었는데, 서 있어봤자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연주에서는 리더가 필요없지만, 타국에서 긴장 타며 멤버 소개할 때가 리더의 역할이 빛나는 듯 합니다.

사진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앳되보이는 호리 씨의 얼굴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옆에 같이 서있으면 아마 저 멤버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로 보일 자신이 있을 정도로.

참고로 컨트라베이스의 타카세 씨와는 10년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제가 더 늙어보여요. 이건 자랑할일은 아니지만.

 

쑥쓰러운듯 열심히 준비해온 한국어로 인사하는 호리 씨의 모습은, 아마 공연장에 계신 분들 전부 응원해주고 싶게 만드는 오오라가 감도는 듯 합니다.

처음엔 얼핏 여성분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남자란 이런 느낌인가 싶었네요.

 

한일관계가 영 뒤숭숭할때 찾아온 데다가, 무뚝뚝하기로는 둘째가기 서러운 대구에서 첫 공연을 하니

여러가지로 긴장 타지 않을 수 없겠지만, 관객들이 편안하게 맞아주었으니 아마 인상은 나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제로인 그룹이기도 하고, 언어적으로 어려움도 있고 하니

중반부부터 든든한 원군이 둘이나 참가하셨습니다. 대구재즈축제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시는 박라온씨와 색소포니스트 홍순달씨가 참전.

 

사실 제가 박라온씨보다 어리지만, 표면나이로는 홍순달씨와 형님아우 해야 할 정도로 삭아보이기 때문에

홍순달씨를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동안 포스를 푹푹 풍기는 이 조합은... 촬영을 하고 있어도 왠지 안구에 습기가 차는 듯 하네요.

 

 

 

홍순달씨는 예전에 딱 한번 라이브를 들어본 적이 있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정말 보통 분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은 금방 들 정도로 색소폰의 음색이 부드럽습니다.

 

저도 소프라노 색소를 조금 배웠기 때문에 더욱 친근하기도 하구요.

지금 밴드 조합으로는 단숨에 앞으로 치고나올 수 있는 위치임에도 욕심부리지 않고 홀 전체에 소프라노 색소의 음을 방향제처럼 깔아주십니다.

 

 

 

라온씨는 대구 재즈축제 오시는 분들이라면 이제 모를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년 열심히 도와주시는군요.

호리 히데아키씨와 동갑인데, 두분 다 제 표면나이를 비참하게 깔아뭉게는 동안이시라...

 

재즈 보컬리스트중에서도 두드러질 정도로 미성을 가진 분이라서, 정교한 느낌을 주는 호리 트리오와 맞물리니 효과가 좋습니다.

 

 

멤버가 늘어나니 당연히 음도 풍족해지고 다들 기분이 조금씩 들뜨는 듯 합니다.

라온씨의 목소리는, 눈을 감고 듣다보면 왠지 악기 연주소리처럼 들려오는 듯 해서

피아노의 호리 씨가 좀 더 마음껏 뛰어들어도 어느 한곳이 비지 않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 같군요.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라온씨가 진도 아리랑을 재즈풍으로 들려주시니 분위기가 좋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독도문제는, 국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굉장히 정치적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어서 기분이 좋지 않은데

재즈라는 이름 아래 모인 아티스트들 사이에 그런 문제는 음악 너머로 날려버리는게 좋겠죠.

 

 

 

라온씨의 흐름을 읽는 능력은 참 감탄할만 합니다.

수성 아트피아에서 매번 Jazz & Story 라는 제목으로 관객지향적인 공연을 꾸준히 해 오고 계셔서

스토리텔링에 익숙하다는 장점을 살려서 대구 재즈축제에도 꾸준히 참가해 주시는데요.

 

역시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도 훌륭합니다.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대구 재즈축제 기간중에도 노래 좀 많이 불러주시면...

 

 

 

홍순달씨의 티셔츠 하단을 잘 보면, 스미다 재즈축제 관련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쪽 활동을 많이 하시다 보니 한국에서 그렇게 자주 만나뵐 수 있는 분은 아니지만

타이밍 나쁘게도 내리는 폭우때문에 첫단추를 소소하게 시작한 이번 재즈축제에서 귀중한 한 축을 담당해 주셔서 다행이네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프로의 색소 소리에 잠시 카메라를 놓고 둥둥 떠다니며 감상중입니다.

 

 

 

공연촬영은 제 전문이 아니라서, 항상 카메라 성능에 발목을 잡히곤 하는데요.

못난 찍사가 장비탓을 하는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제 카메라의 고감도 성능이 워낙 떨어지고

망원렌즈도 주광 야외촬영용이라 조리개값이 많이 어두워서, 실내 공연촬영엔 정말 최악의 조합이라서 말이죠.

 

ISO도 1600 까지가 한계고, 최대 조리개값도 F5 밖에 되지 않아서 이 정도로밖에 담아드리지 못하는게 그저 죄송할 뿐...

예전에 쓰던 D3 가 있었다면 훨씬 잘 담아드릴 수 있겠지만, 어쩌겠나요. 주제넘게 데뷰어 신청을 했으니 힘닿는데까지 노력해야죠.

 

 

 

소리에 힘이 있어도 과하게 폭발시키지 않는 라온씨는 동작도 그리 크지 않아서

임팩트있는 장면을 담는게 쉽진 않군요. 밝은 곳이라면야 연사라도 날려보겠지만 여기서는 감상에 방해도 되고 하니.

 

 

 

멤버들간에 웃는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기분이 좋습니다.

몇몇 밴드들은 이상할 정도로 긴장해서 얼굴이 굳은 상태에서 연주하는 경우가 있어서

재즈공연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큰 마이너스죠.

 

 

 

라온씨가 다시 한번 트리오를 소개합니다. 일본에서 굉장히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시네요.

조만간에 두분이서 합작한 앨범도 나온다고 합니다. 음악적 분위기가 잘 어울릴 듯 합니다.

앞모습 좀처럼 보기 힘든 호리씨라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단체샷이라고 해 봤자 겨우 이정도밖에 건진게 없네요.

뒤로 더 물러날수도 없고 해서.

 

 

 

마지막 곡 나갑니다. 라온씨 앨범 수록곡이라고 하네요.

중간중간 자유분방한 비밥이 들어가는데, 색소폰이 절묘하게 따라가 주는게 흥을 돋굽니다.

일본 트리오분들은 공연 바로 전날에 한국에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을터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높군요. 라온씨와 호리씨는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으니 괜찮을려나?

 

 

 

기왕 오셨으니 좀 더 길게 공연하시면 좋을 것 같지만 다음 공연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 정도에서 끝냅니다.

촉망받는 신예는 첫 소개를 듣고 과연 어느 정도일까 기대했는데

삼심대 중반의 나이에 이 정도로 완성된 연주를 들려주는 것을 보고 살짝 놀랐습니다.

 

살짝이라는 단어는, 연주가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곳에 초청받아 올 정도라면 보통 수준은 아닐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어넣은 멘트라고 생각하시면 되겠군요.

점점 무르익어 갈 호리 씨의 연주가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내년 재즈축제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아님 제가 스미다 재즈 스트리트에 한번 가보는것도 좋겠네요.

 

 

그 언덕길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방과후의 약속에 저 멀리 번져가는 작별인사

 

뒤돌아 보는 그림자에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여름이 끝나가는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나는 너만을 바라봤지

 

약하고 일그러져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자그마한 날개를 네가 준 거야

 

땅거미 지던 하늘에서 희미한 빛을 찾고 있던

너를 좋아한다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교과서 끝자락에 썼던 편지는

언제까지도 전하지 못한채 그날 그대로

 

 

 

마음 속으로는 아직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의 어딘가에서 분명히

 

변해버린 건 내 쪽일까

비치는 모든 것이 남의 일인것처럼 시치미를 떼며 낙담했지

 

비겁함도, 변명조차도 소용없다고  중얼거렸던 말은

갈 곳을 잃어 스르륵 녹아 사라졌어

 

땅거미 속에서 떠오른 별은 그 시절의 너처럼

의지할곳 없는 이 순간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어

 

잊지 않아

 

흐르는 바람에 언젠가의 꿈이 흐려지고 상처입어도

그래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것을 끌어안고 우리들은 오늘을 살아가

 

 

 

유리는 부서져서 가슴에 박힌 채 아파오지만

반짝이는 눈부신 빛이 난반사해

 

땅거미가 뒤섞인 마을을 향해 긴 언덕길을 걸어가

너의 흔적은 언제나 이곳에 있으니까

 

우리들의 맞잡은 손과 손이 빚어낸 별자리는

멀어지더라도 멀어지더라도 빛나고 있어

 

 

 

 

코다마 유키(小玉ユキ) 작가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입니다.

 

요즘 애니메이션을 안 본지 한참 되었습니다만 이 녀석이 제 관심을 끈 것은

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요소가 '재즈'인 점, 그리고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라서 당시의 재즈 거장들이 리얼하게 스토리에 녹아있다는 점이었죠.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을 애니메이션화 했을때, 원작보다 마음에 드는 작품은 정말 드문 편인데

이 작품만큼은 애니메이션을 추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재즈라는 음악을 실제로 들으며 감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존 콜트레인, 챗 베이커, 빌 에반스 등... 당대 재즈계를 찬란히 빛냈던 거장들의 음악이 등장하기 때문에

음악적으로는 실패할 수가 없기도 하지만, 그 외 사운드트랙을 일본의 유명 작곡가 칸노 요코(菅野よう子)가 담당해서

적어도 BGM 면에서는 더 이상 호화스러울수 없는 굉장한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칸노 요코씨 작곡의 앨범은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카우보이 비밥' OST 를 들어보시면 좋을 듯.

애니메이션 음악의 한계를 넘은 앨범이라고 자신할 수 있으니 절대 손해는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위에 언급된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이야 제가 굳이 소개할 필요도 없어서

애니메이션의 엔딩곡인 알타이르(アルタイル)를 올려봅니다. 싱글앨범 구매는 해놨지만 배송이 언제 될지 몰라서

감상을 위해 올려놓고, 앨범이 도착하면 제 CD로 추출해서 다시 올려야 할 듯.

 

제 손에 앨범이 아직 들어오질 않아 가사를 그냥 듣고 해석할 수밖에 없어서

이런 곳에 공개해서 올리기엔 좀 민망한 수준이지만 일단 이걸로 참아주시길.

 

데뷔한지 5년 정도 되고서도 아직 그렇게까지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그 가창력만큼은 데뷔시절부터 일류급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하타 모토히로(秦基博)가 불러주는 이 곡은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바래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사진처럼,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충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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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의 아폴론 :: 2012. 5. 31. 19:22 Music

 

 

 

길거리 농구 감상을 마치고 다시 난바역쪽으로 걸어간다.

미도스지 거리는 넓은 도로지만 양쪽에 나 있는 거리는 옛 정취가 남아있는 조금은 난잡한 골목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걸 좋아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이미지엔 화려하고 정돈된 거리보다 이런 느낌이 어울리긴 한다.

일요일인 탓도 있지만 미도스지 페스타 덕분에 오사카의 유동인구는 전부 이쪽으로 몰려드는 듯 하다.

 

 

중간에 간식거리를 파는 코너가 있었지만 줄을 길게 늘어선 행렬 탓에 먹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피곤해서 그런지 입맛도 별로 없고, 더워서 물 생각은 났지만 음식 생각은 그다지.

한국 음식점도 있었는데, 오사카까지 여행와서 한국 음식을 먹을 이유가 없으니까 패스.

음식 코너 앞에는 자연스럽게 어디든 걸터앉아서 음식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분위기가 조성중이다.

귀여운 강아지들이 많아서 허락을 받아서 한번 담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몸이 많이 피곤해서 그냥 넘어갔다.

 

다음으로 눈길이 간 곳은 통일된 티셔츠가 인상적인 트래드재즈 공연이었다.

이곳 역시 인파로 사진 찍기가 쉽진 않았지만 슬쩍 구경하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 뒤에서 기회를 잡으니 대강 건질만한 거리는 된다.

미도스지 페스타의 특징이기도 한데, 전국구급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을 초정하는게 아닌

아마추어들의 다양한 공연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마음 편하게 축제에 녹아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

 

큰 돈 들여 연예인 초청하는 축제는, 그냥 먼 발치에서 굵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구경하는 동물원과 같은 느낌.

보행자 천국이라는 취지에는 역시 이렇게 친숙해 보이는 일반인들의 숨겨진 솜씨에 감탄하는 것이 어울린다.

 

 

 

나이 지긋하게 드신 분들의 가벼운 스윙을 듣고 있으면, 뷰파인더를 보고 있더라도 가끔 몸이 들썩거려서 셔터찬스를 놓치곤 한다.

물론 이럴 때는 사진따윈 망쳐도 관계없다. 어디까지나 여행의 증거품일 뿐, 이 사람들의 공연은 귀로 즐기는 것이니까.

아마추어라고는 하지만 실력이 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고, 국내 왠만한 프로밴드와 거의 동일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똥배와 가죽모자가 묘하게 어울리는 플라리넷 연주 할아버지는 중년의 미학을 여지없이 피로해주는듯 하다.

좀 전의 길거리 농구에 비해 조용한 편이지만, 나이 지긋한 분들이 느긋하게 감상하는 모습은, 이 축제가 내부적으로 튼실한 녀석이라는 반증이겠지.

 

 

 

이제 저 너머에 슬슬 난바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사이바시(心斎橋)에서 난바역까지 이어지는 미도스지 거리는 그렇게 길진 않지만

자동차에서 해방된 시민들의 모습엔 평소보다 활기가 넘치는 듯 하다.

 

 

 

지체 부자유자들도 단체로 관광 나왔었는데, 도우미들의 힘을 빌어 관람에 무리가 없에 공간도 잘 만들어 주더군.

눈높이가 거의 같아서 사진이 잘 안나오길래 카메라를 최대한 치켜들고 촛점을 무한대에 맞추서 한장 찍어 봤다.

오른쪽에 보이는 핑크색 부스는 미용 연습생들이 원하는 사람들 상대로 무료 이발, 화장을 해 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웨딩 컨테스트 비슷하게, 미용사들이 모델들에게 각종 드레스로 치장하는 곳도 있다.

 

모두 나하고는 그닥 인연이 없는 곳이라서 그냥 슬쩍 쳐다만 본 후 발걸음을 옮긴다.

 

피로가 점점 누적되는지 몸이 무거워지는게 느껴진다.

교통비가 비싼 일본이라 난바역에 도착한 후로는 계속 도보로만 걸어다녔기 때문에

호텔로 돌아갈 때도 물론 걸어서 갈 생긱이었지만,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않는게 의외로 타격이 큰 것 같다.

내일 칸사이 스루 패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이틀간 왠만한 전철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은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이동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것도 오래 걸으니 무리가 간다.

 

 

 

희한하게 생긴 건물 주위에서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들고 있길래 뭔가 싶었는데

생방송으로 클라이밍 중계 중이었다. 선발된 지원자들이 제한시간내에 정상에 도달하는 이벤트인 듯 하다.

주위에서 들리는 말로는 곧 개봉하는 어떤 산악 영화와 연계되는 이벤트라고 한다.

일본 영화는 한국 영화 못지 않게 억지 신파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원래 건물 자체가 상당히 높은데, 그 중앙에 클라이밍 시설을 설치에 놓으니

올라가는 사람들의 체감 높이는 상당하리라 예상된다. 저 위치로 치면 거진 30m 는 될 듯 하다.

망원렌즈로 보지 않으면 옆에 카메라맨이 있다는 사실도 눈치재치 못할 정도니까.

 

지금 도전중인 선수는 외국인인듯 한데, 열심히 올라가고 있지만 제한시간이 아슬아슬한가 보다.

넓은 광장이라 소리가 퍼지는 바람에 잘 들리지는 않지만 방송 관계자인듯한 사람이 마이크로 생중계중이다.

 

 

 

육중한 몸무게를 지닌 나로서는 저런 클라이밍을 대체 어떻게 하는걸까 궁금할 때가 많은데

아무리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고는 해도 의지할 곳 없는 절벽에 매달려 올라갈 때의 기분은 참 스릴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처럼 수백명의 시선과 카메라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상황에서의 압박감은 상상하기 힘들 듯.

 

 

 

진행자가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결국 손을 놓치고 만다.

클라이밍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얼핏 봐도 상당한 난이도인 듯 하다.

한동안 대롱대롱 매달리던 선수는 그래도 저~기 밑에서 박수쳐 주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한다.

 

계속 구경하고 있으면 한두 명쯤은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축제 시간은 중반을 넘어가고 있고, 볼거 다 챙겨보기 전에 내 체력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이곳은 이 정도로 끝낸다.

 

 

 

음악 중심의 이벤트 공간에는 세계 각국의 뮤지션들이 가볍게 몇 곡씩 연주중이었는데

멕시코의 활기차면서도 적당히 힘 뺀듯한 음악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분위기 띄우는 법도 잘 아는 아저씨가 가벼운 개그도 선보여 주시고. 일본어가 아니라서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지만.

 

미도스지 페스타는 오후 5시에 모두 끝나지만 도톤보리나 각종 주변 공연장에서는 주말에도 이벤트가 이어진다.

그 중에는 한국 초청팀인 난타 팀도 포함되어 있더라. 뒤의 팜플렛 보면 슬그머니 보인다.

오사카 사람들의 취향과는 꽤나 잘 맞을 듯 하다.

 

그 외에 검은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맨 60~70대의 신사 할아버지들이 신들린듯한 솜씨를 뽐내던 재즈 공연도 있었는데

일본 재즈 역사와 길을 함께 걸어온 듯한 느낌의 그 밴드의 보컬은 영어도 매우 능숙해서, 일본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본토 발음의 재즈송을 열창했다.

잠깐 들어도 놀라운 실력의 밴드라는걸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 인지도도 있는 밴드일 듯 하다.

좋은 음악에는 사람이 몰리는게 당연한 듯,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사진은 한 장도 담지 못했지만 귀는 즐거웠다.

 

 

 

난바 역이 거의 보일만한 거리까지 걸어가는데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의 공연 소리가 들려온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쪽은 사람들로 가득차서, 밴드의 뒤쪽 통행로에서 사진을 담을 수 밖에 없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음악을 감상중이었다.

 

청춘 스트리트2012 라는 제목의 이벤트장이었는데, 오사카 시내 고등학교 동호회가 참가해서 실력을 뽐내는 장소다.

밴드 실력이야 출중하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리듬에 맞춰서 멤버 전원이 발도 구르고 점프도 하고 하면서 흥을 돋구는게 인상적.

 

 

 

활기찬 음악을 들썩들썩하는 율동과 함께 선보이니 꽤나 들을 만 하다.

고등학교 경음부가 축제의 한 부분을 당당하게 맡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요즘 한국 고등학생들은 이런 동아리 활동 좀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려나? 적어도 내가 고딩때는 그런거 없었다.

 

 

 

곡 하나가 끝나고 자리를 옮기려 했는데, 그 다음 흘러나오는 곡이 귀에 익다.

혹시나 싶어서 가만히 들어보니 역시나,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곡 '꽃~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 (花~すべての人の心に花を) 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항상 느꼈던, 히로시마의 원폭 희생자보다도 기구하고 서글픈 역사를 간직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애환을

가슴 저리는 음악으로 대변하는 대표곡 중 하나인 이 곡을 이곳 오사카의 고교 밴드부에게서 들을 수 있을줄은 몰랐다.

 

오키나와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때 독립하지 못했다면 일어났을 한국의 대체역사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150년전 류큐 왕국이 멸망한 이후 식민지로 전락한 오키나와는, 갖은 수탈과 차별을 당하면서도

태평양 전쟁 당시엔 '위대한 황국 신민'으로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자결을 강요당하는 이중적 취급을 받으며

본섬만으로는 제주도의 60%밖에 되지 않는 이 섬에서 20만명의 원주민이 미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의 총알에 목숨을 잃었다.

 

전쟁 후에도 일본 전체에서 학력성취도, 취업률, 평균 수입이 가장 낮은 곳이며, 일본내 0.2%의 토지에 75%의 미군이 주둔중인,

과연 이곳이 본토와 같은 일본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소외된 지역.

 

이런 슬픔의 역사를 가진 오키나와의 음악은 구슬프기 그지 없으면서도 그 내용만큼은 눈물에 젖어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진정한 눈물을 흘려보지 않으면 떠올릴 수 없는 애잔함이 그 희망적인 가사 속에서 심금을 울린다.

 

 

 

 

강은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사람도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그 흐름이 닿는 곳에는

꽃으로서 꽃으로서 피워주고 싶네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눈물은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사랑도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그 흐름을 이 가슴에

꽃으로서 꽃으로서 맞이하고 싶네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꽃은 꽃으로서 웃을수도 있죠
사람은 사람으로서 눈물도 흘려요

  
그런게 자연의 노래 인거죠

마음속에 마음속에 꽃을 피워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꽃을 쥐어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꽃을 쥐어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며칠 후인 5월 15일은 오키나와 영유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반환된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의 참혹한 역사 속에서 류큐인들이 바라는 것은 여전히 총칼 대신 꽃을 드는 것.

 

 

 

 

이 곡이 흐르는 동안 건너편의 관객들 중 눈시울을 붉히는 중년층을 몇몇 볼 수 있었다.

수천km 떨어진 오키나와의 음악을 오사카 거리에 선사해준 젊은 학생들에게 박수를.

 

 

레게의 신이라면 밥 말리가 떠오르고, 재즈의 신이라면 마일스 데이비스가 떠오릅니다.

물론 쟁쟁한 재즈 거장들이 워낙 많아서 굳이 마일스만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트럼팻에 있어서는 루이 암스트롱과 마일스, 보컬이라면 엘라 핏제랄드나 사라 본 정도가 떠오르니까요.

 

저도 재즈를 많이 듣는건 아니지만, 라이브때 가장 흥겨운 장르라서 좋아는 하는 편입니다.

지난번 친구와 호프집에 갔을때 무한도전 음악이 신명나게 나오던데, 재즈가 좀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재즈 한번 들어보게 되는군요.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여타 장르와는 달리 재즈라는 음악은 일단 멤버들간의 대화라는 느낌입니다.

즉흥성이 강조되는 음악이다보니 멤버들은 항상 눈짓, 손짓, 발짓, 그리고 음악으로 서로를 조율하죠.

연주 중에도 어느 한 멤버가 기분에 따라 분위기를 바꾸면 음악 전체가 거기에 호응해 줍니다.

관객들은 그런 그들의 교감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즐기는 묘한 형태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앨범보다 라이브가 정말 생동감있는 느낌이기도 해서, 어두운 바에서 술 한잔과 함께 감상하기 좋더군요.

친구 강군이 서식하는 곳 근처는 재즈의 성지가 많아서, 훗날 놀러가게 되면 꼭 그런 바에 가서 재즈를 즐기고 싶습니다.

 

 

 

재즈는 별로 설명이 필요없으니, 그냥 음악 틀어놓고 할일 하면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오는 그런 매력을 즐겨보시길.

마일스 앨범 하면 열에 아홉은 Kind of Blue 를 꼽고 저도 그렇긴 한데

굉장히 실험적인 Bitches Brew 앨범도 묘한 매력이 있으니 그걸 넣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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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공연의 마지막은 윈터플레이가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 아트피아 공연은 워낙 쟁쟁한 그룹들이 참여한 터일테지만
의외로 윈터플레이를 기대하신 분이 많았는지, 시작부터 굉장한 열기더군요.



윈터플레이가 한국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모 회사 세탁기 CM 송이었던 '버블~ 버블' 이었다고 하네요.
전 그저 트럼팻의 이주한씨가 참여한 그룹이라는 것만 알고 있어서 그런 건 전혀 관심밖이었습니다.


처음엔 이주한씨때문에 접하게 되었지만 혜원씨의 보컬도 꽤나 마음에 들더군요.
재즈라기보다는 발라드와 블루스쪽에서도 강점을 보이는 느낌입니다.
윈터플레이 1집 때는 그닥 인지도가 없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1집은 꽤나 완성도있는 앨범이라 이런 그룹이 묻힌다면 좀 아쉽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버블송이 엄청 인기를 얻으며 재발매 되기도 해서 지금은 많이들 아시는 것 같습니다.


팀의 리더이자 트럼팻을 맡고 계신 이주한씨.
트럼팻이라고 하면 명실공히 국내 정상급이라고 말해도 무리없는 분이죠.
12세때 처음으로 트럼팻을 만지셨다고 하던가?




드럼과 퍼커션은 게스트분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아주 빠방한 능력자시더군요.


이 팀의 특징이라면, 음이 굉장히 조화롭다는 점일까요.
어느 한 쪽이 튀는 일 없이 완성도 높은 음악을 들려줍니다.
멤버들간에 사이가 좋고 허물없다고 자화자찬(?)을 하시던데 그것 때문일지도.


이주한씨가 이렇게 유머감각이 풍부한 분인줄은 잘 몰랐습니다.
대구 공연이 끝나면 언제나 막창 먹으러 가신다는군요.
윈터플레이 분들은 입 다물고 있으면 꽤나 앙늬(?)하고 지적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굉장히 활기넘치고 사이좋은 그룹이라네요.


어느 그룹에나 다재다능이 한 분씩은 꼭 있던데
윈터플레이에서는 기타의 최우준씨가 그런 포지션을 맡은 듯 합니다.

기타 실력은 말할것도 없지만 허스키한 보컬도 수준급이시네요.


최우준씨의 보컬 파트 시작하기 전에 이주한씨가 무려 굉장한 잉글리쉬(?)로 나레이션을 깔아줍니다.


발음이 워낙 네이티브하고 내츄럴스러워서(이런 표현을 왜 하시는지 공연 보신분들은 아시겠죠) 이해하기 쉽진 않았지만
'최우준은 외로운 남자'라고 추략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틀렸다면 지적 부탁.


연주와는 별도로 이번 무대는 조명이 좀 아쉬웠습니다.
기타와 트럼팻의 솔로 파트가 꽤 빈번하게 나왔는데, 조명 클로즈업이 거의 안되는 상황이었네요.
안 그래도 환한 혜원씨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사진이 영...

이주한씨 경우는 본인이 일부러 부탁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명이 너무 어두웠습니다.


아주 가끔씩 이렇게 제대로 된 조명을 받으실 때도 있긴 했네요.


최우준씨의 솔로때도 이렇게.
최우준씨는 혜원씨 바로 옆자리였기 때문에 은근히 조명 잘 받았습니다.



멤버들 모두가 재즈 뮤지션 출신이지만 1집은 대중성을 의식했는지 가벼운 팝과 발라드 느낌이 강했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딱히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느낌의 음악을 선보여 주셨습니다.


최우준씨의 보컬이 제 입맛에 잘 어울리는 듯 했습니다.
몇 곡 더 뽑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살짝 들더군요.


이주한씨의 트럼팻이야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솔로 하시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물마시고 커피마시고 하는 여유를 만들어 주십니다. (여유 제조기?)


흥이 날땐 춤도 줘 주시고.
윈터플레이의 라이브를 보는 건 처음인데, 분위기가 참 화목발랄하더군요.


워낙 조명빨을 못받아서 버림받을 뻔 했던 베이스의 소은규씨.
간신히 멤버 소개하는 찰나에 한 장 건졌습니다.


공연이 10시 40분 넘어서야 끝이 났는데, 설마 그 후에 짐정리하고 막창 드시러 가셨을려나요...
그러고보니 전 대구서 20년 가까이 살았지만 태어나서 단 한번도 대구서 막창 먹어본 적이 없군요.


신나게 앵콜 한번 하고 26일 공연의 마무리를 지어주셨습니다.

무료로 초청받아 간 공연인데, 무료로 보기엔 미안할 정도로 수준높은 공연이라 몸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초청해주신 김유림 팀장님은 공연 끝나고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굉장히 바빠보여서
일부러 붙잡고 인사하기도 죄송한 듯 해서 다음날 문자로 감사 인사 드렸습니다.

초청에 대한 조그만 감사의 표시로 기념 앨범도 한장 구입했습니다.
많이 사드려야 내년 축제의 비전도 밝아지고 조직위원장님 전세금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

다시한번 초청해주신 김중화 위원장님과 김유림 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마워서 다음날 공연땐 자비로라도 갈 마음이 있었지만 집안 벌초때문에... ㅡㅡ;

이 글을 쓰는 8월 30일 새벽엔 이미 한달간 대구의 저녁을 달구었던 재즈축제도 끝나있군요.
이젠 육상대회가 그 바톤을 이어받아 가고있겠지만 아직 귓가에 음악의 잔향이 남아있는게 아쉽습니다.
내년 축제도 이렇게 멋진 뮤지션들이 많이 참가해 주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많이많이 와주세요. 좀처럼 공연보러 가기 힘드니.
그럼 내년에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