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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8.21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1편 - 삿포로(札幌) 9
  2. 2009.08.14  21th Marathon Des Sables - Stage 1 - 28km 8
  3. 2009.07.31  21th Marathon Des Sables - 출발 전 18
  4. 2009.05.09  인투 더 와일드 (Into The Wild, 2007) 8
  5. 2009.03.12  춘천 산막골을 등지고 4
  6. 2009.03.11  Fire, Walk with me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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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생신 기념으로 아버지 후원으로 홋카이도 여행을 갔습니다.
사실은 가족들 모두가 여행을 워낙 좋아해서 일단 여건만 되면 어디로든 뜨느라 바쁘네요.
형님부부도 9월에 이탈리아쪽 간다고 하고... 결혼 2년차에 해외여행 도대체 몇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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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札幌)역에서 엎어지면 2분거리 비즈니스 호텔 잡아놓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작년 자전거 여행할때 애용했던 저렴하고 시설좋은 전국 체인이죠.
일단 첫날은 멀리 나가기도 뭣하고 해서 삿포로 시내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삿포로 시내의 중심점 역할을 하는 오오도리 공원(大通公園)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니 이곳은 맥주축제가 한창이더군요.
여름엔 맥주축제, 겨울엔 얼음축제로 조용할 날이 별로 없는 공원입니다.
계획도시인 삿포로는 이곳 오오도리공원의 TV탑을 기준으로 해서 바둑판 모양으로 길이 배열되어있어
동서남북만 한자로 읽을줄 알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관광하기 편한 곳입니다.
아직 술 마시고 퍼질러지기엔 이른 시간의 평일이라 한산하다 싶었는데, 시간 조금 지나보니 오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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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의 명물 중 하나인 TV탑이 나오게 부모님 한 컷.
삿포로 사진은 작년에 자전거 여행하면서 많이 찍었기 때문에 그것과 같이 올리면 좀 더 풍성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언젠간 그것도 따로 포스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이번에 찍은것만 올리기로 합니다.
보통 8월 삿포로의 평균 기온은 21도 정도였는데, 요즘은 온난화가 진행되어서 이 날의 최고기온은 28도... ㅡㅡ;
이상 저온현상이 계속되던 대구보다도 더운 날씨였습니다. 이제 홋카이도가 춥다는 말도 옛 추억인듯.
(하지만 작년 자전거 여행땐 정말 무지하게 추웠는데 말이죠. 10월 중순~하순인데 얼어죽는줄 알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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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버지 덕분에 앉아서 닭꼬치와 함께 한 잔 했습니다.
제일 근처에 있던 부스가 산토리라서 삿포로 와서 처음으로 산토리 맥주를 마시게 됐군요.
전 흑맥주를 좋아하는터라 한 잔 시켜서 엄니와 함께 나눠마셨습니다.
서빙하는 점원들은 정신없이 바쁘고 여기저기 마이크에서 뿜어나오는 고음의 진행자 목소리 때문에 축제분위기는 물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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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마시려고 하는 아버지를 말리면서 오오도리 공원을 주욱 둘러봅니다.
아버지께서는 본인만 인정 안하실 뿐 명백한 알콜중독으로, 어디로 가든 여행보다 술이 앞서는 분이라
마시고 싶은만큼 마시게 두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뻔할 뻔자여서, 저녁식사때 많이 드시라고 하고 발걸음을 제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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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도리 공원은 시계탑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삿포로 최대의 공원입니다만
일본의 내로라하는 맥주회사들이 총출동한 축제라서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산토리, 기린, 아사히, 삿포로 등의 부스에서 각각 독특한 케이스에 맥주를 담아서 팔고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자리 여유가 충분했지만 20~30분 만에 사람들로 꽉꽉 차버릴 정도였죠.
한 부스당 좌석이 1000개는 족히 되어 보였지만 자리가 없어서 잔디에 앉아서 마시는 사람도 많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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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삿포로에서는 삿포로 맥주밖에 마셔본 적이 없어서... ㅡㅡ;
아버지께서 눈을 반짝이셨지만
어차피 내일 예정되어 있는 삿포로 맥주공원에서 양고기 징기스칸과 함께 맥주도 무제한 제공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습니다.

날씨도 덥고 여행 첫날이라 좀 피곤하고 해서 저녁을 좀 일찍 먹기로 했습니다.
특히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가이드역을 맡은 저로서는 여행사 직원처럼 정해놓은 플랜 정리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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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으러 가면서 살짝 길을 돌아 삿포로의 유명한 시장 거리인 타누키 코지(貍小路) 도 슬쩍 둘러봤습니다.
돔 형식으로 된 아케이드 상가인 이곳은, 지금은 홋카이도 역 주변과 스스키노에 밀리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여전히 맛있는 요리점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참고로 타누키란 사진 위에 보이는 저 너구리를 뜻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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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날이라 좀 고급 음식을 맛보고자 해서 찾아간 곳은 스스키노(すすきの) 거리였습니다.
스스키노는 한국의 명동, 도쿄의 긴자 거리와 비슷한 삿포로 최대의 환락가입니다.
왠만한 호텔과 음식점은 삿포로역 주위와 이곳 스스키노에 거의 다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오늘 저녁은 옛 영화동호회 지인분의 친구분이 추천하셨던 일식전문점 이소킨 쿄쿄오부 에사치코우(磯金 漁業部 枝幸港) 에서 먹기로 결정.

홋카이도에선 게 요리를 먹는게 정석이라지만, 포항, 영덕에서 맛있는 게를 어릴적부터 많이 먹어온 터라 굳이 여기서 비싸게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실제로 홋카이도의 게가 맛있는 제철은 겨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게요리는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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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을 하고 가지 않아서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2시간 후에 오는 손님방이 남아있으니 그때까지 식사를 마칠수 있다면 괜찮다고 하길래 승락했네요.

작년 자전거 여행땐 항상 배고픈 거지처럼 돈을 아꼈으니 이런 좋은 음식점엔 들어가 본 적도 없는 고로,
음식량이나 맛 같은것도 잘 모르는 터라 그냥 주인장 추천 코스요리를 부탁했습니다.
술은 추가요금을 내면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양보다는 질이라는 컨셉으로 나가기로 하고
이 집에서 가장 추천할 수 있는 일본주를 부탁했습니다.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이었지만 이런 곳이 아니면 언제 맛볼까 하는 심정이었네요.

맥주 한두 잔이 한계인 저한테는 상당히 독한 도수였지만 목넘김도 부드럽고 입안에 은근히 풍기는 씁쓸한 향이 나쁘진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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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요리 첫번째는 전체 3종류로, 오징어절임, 소고기 로스 타타키(ロースのタタキ), 크림치즈 훈제연어말이입니다.
타타키는 겉만 살짝 구운 요리를 말하는데, 보통은 참치 등 어류의 요리방법이지만 소고기에도 적용을 시켰더군요.
입맛을 돋구는데 적당한 요리들이었네요. 오징어절임은 술안주로 좋을것 같아서 남겨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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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먹어봅시다. 이번 요리는 사시미 후나모리(刺身舟盛り)입니다. 한국어로 하자면 '배모양 접시에 올린 회' 정도 될까요.
참치, 꽁치, 고등어, 새우, 조갯살 등이 올라와 있습니다.
한국서는 상당한 고급 일식집이 아니면 보기 힘든 신선도였네요. 삿포로에서도 유명한 집이라 확실히 요리에 확신을 가지고 있을 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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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이라는 시간 제한 때문이었는지 요리 나오는 속도가 좀 빠르더군요. 회를 반도 못먹었는데 여름야채 조림이 나왔습니다.
전부 홋카이도산 야채를 사용했다고 자랑하는데 야채엔 그닥 관심이 없는 타입이라 그냥 입에 집어넣기만... ㅡㅡ;
일본 요리가 전체적으로 짠 맛이 강한편이라, 집에서 대체로 싱겁게 먹는 저희 가족 입맛엔 조금 부담이 되긴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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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르는 정체불명의 고기인데, 살코기가 반, 알이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뱃속에 큼지막한 알이 가득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알이 제가 먹어본 것중 가장 탱탱하고 단단해서 한알 한알 이빨로 꼭꼭 터트려 먹지 않으면 잘 씹히지 않을 정도였네요.
여기까지만 먹어도 상당히 배가 부른데, 코스요리가 아직 4개나 더 남았다는게 놀라웠습니다.
일식집에서 배불리 먹을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코스요리의 양이 이렇게 많을줄은 몰랐죠.
그래도 제 돈주고는 쉽게 먹을 수 없는 고급요리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바지의 지퍼를 풀고 다음 요리를 기다렸습니다.

* 다행히 메뉴가 적힌 쪽지를 한국에 들고와서 지금 다시 확인해봤습니다. ハタハタ(하타하타)란 녀석인데 이건 한국의 '도루묵' 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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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소스로 맛을 낸 닭날개입니다. 이것 역시 조금 짠 편이라 먹으면서 오늘 푹푹 붓겠구나 싶더군요.
일정 레벨 이상의 닭을 사용하면 당연한 거지만 속살에도 비린내 없이 깔끔한 육질을 자랑했습니다.
한국서 7~8천원짜리 싸구려 프라이드 치킨은 속살 뜯어보면 비린내가 확 퍼지는게 가끔 끔찍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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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포만감을 넘어 터질려고 하는데 아직도 음식은 계속 나옵니다. 버섯과 조갯살을 넣어 볶은 밥.
배가 그렇게 불러도 남기기는 아까울만큼 맛있었습니다. 고소한 버섯과 조개향이 어우러져서 최고!
이건 나중에 집에서도 한번 해먹어 보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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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는 진작에 배불러서 포기해 버렸지만 전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이곳 쥔장이 자랑하는 특제 냉라면. 면발도 그렇고 국물도 깔끔하고 시원한게 코스요리 마무리로는 손색없었습니다.
옆의 양배추 소금절임도 아삭하고 괜찮았지만 좀 많이 짜서 다 먹긴 힘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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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인 여유는 많이 있어서 배를 좀 진정시키고 아버지 술 다 드실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디저트라고 하나 더 갖다줍니다.
(디저트는 일본어로 別腹(べつばら)라고 합니다. 디저트가 들어갈 배는 따로 있다는 뜻이겠죠. 재미있었던 표현입니다)
홋카이도하면 소프트 아이스크림. 그래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넣은 도나빵(ドナパン)이 나왔습니다.
이 도나빵이 뭔지 도통 알수가 없었는데, 도라야키(ドラ焼き)에 생크림이나 크레이프를 넣은, 홋카이도 특유의 빵이라는 듯 합니다.
그럼 도라야키는 무엇인가. 도라에몽이 좋아하는 한국의 찰보리빵 같은 겁니다. ㅡㅡ; 원래는 안에 팥이 들어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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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듯한 배를 쥐어잡고 천천히 스스키노의 화려한 밤거리를 구경하며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스스키노와 삿포로 역은 지하철로 2코스 떨어진 곳이라 그리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걷는걸 좋아하시는 부모님이라 일부러 도보로.
거기다 여행왔는데 밤거리 경치 구경도 하고, 굳이 지하철로 갈 필요는 없었죠.

작년 자전거 여행땐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판쵸 우의 덮어쓰고, 항구도시 토마코마이(苫小牧)에서 삿포로까지
12시간동안 달려서 도착한 곳이 스스키노의 밤거리였다는걸 생각해보니,
헝그리하게 여행할 때의 풍경과 지금처럼 느긋한 경비를 가지고 여행할 때의 퐁경이 이렇게 다르다는게 참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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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많이 드신 아버지는 돌아오자마자 뻗으셨고
엄니께서 제 방에 와서 한국서 준비해온 보이차를 끓였습니다.
차 마실 데가 침대 위 밖에 없어서 안내책자를 깔판으로 삼아 차를 마셨는데, 불행히도 차가 시트위에 묻어버렸더군요.
아무래도 내일 청소하는 분께서 '이녀석 자다가 쌌구나' 라고 오해하는게 아닐까 걱정이 되는 바람에
메모지에 '그거 오줌이 아니라 찻물이에요' 라고 쓸까 생각도 했는데, 인간이 너무 소심하게 보일까봐 그냥 놔뒀습니다.

환갑이 넘으신 부모님께 보여드리려고 시작한 여행이니 제 입장에서는 본인의 관광보다 부모님쪽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터라
제가 좋아하는 여행인 '최대한 헝그리하게, 최대한 빡세게'는 자제하고 조금이라도 편안하고 느긋한 여행이 되도록 일정을 잡았습니다.

여행사 패키지처럼 여기 찔끔 구경했다가 저기 찔끔 구경했다가 하는건 정말 남는거 없는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명한 관광지 덜 둘러보더라도 시간 들여서 느긋하게 몇 군데만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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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는 6시쯤 해가 뜨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원주민들이 걷어간다.
빨리 걷어가서 다음 비박지에다가 설치를 해야 되기 때문. 그러니 늦잠같은거 없다.
어차피 숙면따윈 취하지도 못하니 그냥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서 밥부터 먹어야지.

군복무 한 사람이라면 한번씩은 먹어봤을 즉석건조쌀과 고추장이 한국팀의 식사.
원래는 뜨거운 물 붓고 기다려야 하지만 그럴 시간이 어디있나. 그냥 맹물에 붓고 좀 있으니 대강 먹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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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팀만 정식 번호표가 나오지 않아서 오늘은 임시로 적은 번호표를 달고 뛴다. ㅡㅡ;
신발에는 모래가 들어가는걸 방지하는 스패치를 부착하고, 나처럼 뛸 자신 없는 사람은 등산용 스틱으로 몸의 부담을 줄인다.
아시아쪽 에이전트인 제임스 장씨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해서 베낭에 태극기를 꽂으라는등등의 주문이 있는터라 이 사진은 태극기가 보이게 찍은 듯.

일어를 한국어의 70% 정도 능숙하게 하는 나에게는 일본 사람에게 일부러 일어를 쓰지 마라는 주문도 부탁하셨다.
이젠 세계속의 한국이니 굳이 우리가 저들에게 맞춰줄 필요 있느냐는 것 같은데...
나하고는 애국심에 대한 정의가 많이 다른 것 같아서 그냥 웃고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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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저러나 일단 기념할만한 첫날이니 모두들 잔뜩 들뜨고 잔뜩 겁먹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이날 아침에 이미 체력이 거의 고갈되어 있는 느낌이라 웃음이 잘 안나왔다.
8시만 되도 뭔놈의 햇빛이 끔찍하게도 쏟아지는데, 텐트를 걷어가버리니 그늘이라곤 사방천지 50km 주위에 아무것도 없음.
등에 맨 베낭은 12kg에다가 지급된 물까지 넣으니 한국서 걸어도 헥헥거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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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물은 이런 카멜백에다 넣은 후 배낭안에 넣고, 호스를 빼내어 어깨에 걸어놓은 후, 필요할때 쪽쪽 빨아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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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첫날 28km 라도 완주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중인데, 다른 참가자들은 완전 축제분위기다.
사방에서 신나는 음악이 터져나오고 선수들 입가엔 웃음이 가시지 않는데.
난 어떻게 기권하면 꼴사납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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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엔 여러가지로 신경써서 촬영해주니 모두들 앞쪽에서 먼저 튀어나가려고 준비중이다.
MDS 홈피에 자기 얼굴이 실리면 정말좋겠네 라서일까?
나도 일단 첫 스타트땐 열심히 뛰기로 했다. 명색이 마라톤 대회인데 시작부터 끝까지 걸어버리면 슬퍼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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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발!

이거 꼭 수십년전 어딘가의 Operation Overlord 작전시
MG42가 반갑게 맞이해주는 앞에서 셔터문 내리고 달려갈 준비하는 모 이병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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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자기 어필하느라 정신이 없다.
저 영국기 든 사람은 결국 저걸 들고 완주하고 말았다. 경사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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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조금 달리자 무너진 폐허같은곳이 보였다.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달리는건 여기까지. 좀 더 달렸다간 그야말로 아프리카 사하라사막까지 와서 20분만에 기권하는 추태를 보일것 같아서.
스틱 꺼내들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처럼 헥헥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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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그렇고 지면 상태도 그렇고 정말 돌아가실것 같은 환경이었다.
사막이 전부 모래언덕 투성이일거라는 생각은 어느 개같은 쥐가 자주 하는 말처럼 '오해'다.
사막의 돌맹이는 바람에 의해 깎여나간 터라 굉장히 거칠고 각이 심하게 져 있다.
아예 안 밟고 지나갈 수는 없는데, 발바닥이 굉장히 뜨겁고 충격이 많이 전해진다. 특히 나같은 특이한 발바닥을 가진 사람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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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선수들은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달려나가서 우리같은 일반 서민들은 얼굴조차 볼 기회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뭐 먹고 달리나 싶을 정도로 작은 베낭을 매고 보스턴 마라톤 하듯이 뛰쳐나간다.
참고로 이 대회 단골 1,2 등은 이곳 모로코 출신의 형제가 나눠먹고 있다. 이곳에선 멍연아급 인기 스포츠 스타.

CP에 도착하고나서 고민은 더욱 깊어갔다.
나 이제껏 사하라 다녀온 많은 사람들에게 공동적으로 들은 말이 있었거든.

'물은 충분히 주니까 걱정마요! 나중엔 남아돌아서 샤워도 하고 중간에 버리고 해요!'

이런 !@#*&% 같은! 충분하긴 개뿔이!
스타트 지점에서 받은 물은 CP 보이기도 전에 다 마셔버려서 나 이제 사막 한가운데서 말라비틀어지나 싶었다.
겨우 CP가 보여서 기듯이 통과한 후 물을 받았는데, 1.5L 생수통 절반을 받은 그자리에서 마셔버렸다.

물론 나역시도 방심했던 것이, 평소에도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긴 하지만 10km 가는데 1.5L 이상을 마셔버릴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긴 했다.

이제 750m 남은 물로 다음 CP 까지 가야한다 이 말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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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이 잘못됐나? 그러고보니 아침에 컨택트 렌즈 넣을때 모래때문에 많이 따가웠는데.
아, 그렇구나~ 이게 바로 사막에서 자주 보인다는 신기루였던 것이다.
난 사하라사막 마라톤 왔지 등산하러 온게 아니었거든.

근데...
왜 사람들이 자꾸 저 산을 향해 가는걸까... T_T

그렇다. 사실은 지도에 저 산이 나와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도에 귀여운 그림으로 그려져 있던 산이 현실에선 왜 저렇게 웅장한 것이란 말인가. 이건 주최측의 농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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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물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극한 상황까지 몰리지 않는 한 계속 갈증을 느끼는 상태를 유지하며 수분보급에 신경을 쓰고 있다.
거의 헤롱헤롱한 상태로 어떻게든 산을 올라오니 위에선 헬리콥터가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다.
대회가 대회인만큼 안전에 있어서는 만전을 가할 수 밖에 없는터라, 선수들 주위에는 항상 응급키트를 소지한 의료 요원들이 따라다닌다.

엄청난 양의 지프차와, 험한 장소를 가기 위한 4륜구동 바이크같은 탈것과, 헬리콥터까지 움직이고 있다.
잘 가고 있는 선수들에게도 항상 차에 탄 요원이 '나트륨 알약 필요한가요?' 하고 물어본다.

수분만큼이나 땀의 배출도 엄청난 곳이라 이곳에서는 필히 3시간마다 나트륨 3알을 먹어줘야 한다.
이건 뷔페식이라 언제든지 말만하면 공급되는 약이지만, 소금맛이 나는것도 아니므로 과식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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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 이어져있는 능선을 타고 가는 도중 쉬고 있는 한 선수를 만났다.
상당히 대단한 몸집이라 신발도 놀라고 베낭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훗날 완주까지 해서 더욱 놀랐다)
뒷 배경이 그럴싸해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하니 흔쾌히 승락해줬다. 내 사진도 찍어주겠다고 했는데 난 내 얼굴은 잘 안찍는 편이라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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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면서 확실히 느낀 거지만 이번 대회는 뭔가 이상하다.
이전 대회까지는 참가자 100명중 10명 정도가 탈락, 전체 탈락자가 50명을 넘지 않는게 일반적이었는데
첫 번재 스테이지에서 저렇게 널부러진 선수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차량 옆에 있는 선수는 지나가면서 보니 마구 토하고 있었다. ㅡㅡ;

50도가 넘는 직사광선아래서 달구어진 지면과 돌맹이들이 내뿜는 반사열이 상상을 초월하는터라
가끔 머리보다 발쪽이 더 뜨거울 때도 있었다. 산에 올라오니 발이 8옥타브 비명을 질러서 주위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항의도 했다. (이걸 믿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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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해 줬다.
그 앞에 펼쳐진 사막의 모습과 개미처럼 기어가는 선수들의 뒷태를 보니 또 다시 한숨이 나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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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멀쩡하던 하늘에 돌연 공포의 모래바람이 불어와 나를 괴롭게도 했지만.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갖고 있는 막강체력 알맨님은 그야말로 터미네이터처럼 CP를 통과해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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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회 첫날에 기권했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죽기살기로 간신히 28km 를 걸어오긴 했는데 앞날이 깜깜했다. 240km 중에 28km 란 말이지.
그것도 28km 달리는데 8시간 정도 걸렸다. 한국서 그냥 걷는것보다 더 느린 속도.

홍일점 홍양은 나보다 더 늦게 도착했는데, 힘이 많이 부치는게 확실했지만 밝게 웃으면서 분위기를 띄워줬다.
내가 따라하기 힘든 좋은 장점을 가진 분이라서 그저 감탄과 존경 한 방.

물집이 안잡히면 그건 인간이 아니고, 일단 바늘로 터트린 후 진물이 빠지도록 실을 하나 박아놨다.
오늘같은 지옥을 앞으로 6일이나 더 참아내야 한단 말인가.
거짓한점 없이 나 2~3번째 스테이지에서 포기하면 덜 쪽팔리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완주는 거의 포기상태.

대회 전에도 가끔 얼굴을 비추던 미국선수 피터 무라카미가 자꾸 한국팀 숙소를 기웃거린다.
잉글랜드 팀과 함께 숙소를 배정받았는데, 그네들이 별로 재미없는 것 같아서 이쪽이 마음에 든단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혼혈인 피터는 좀 소심하고 숫기가 없는 표정이라 정통 서양인들과는 잘 못어울리는 듯.
한국인이라면 생판 남이라도 일단 끌어들이고 보는 끈끈한 정이 주특기 아닌가. (난 아니지만) 금새 친해졌다.

피터는 보스턴 마라톤을 3시간에 주파하는 준 프로급. 좀 말고 걸어보고 하고 싶긴 했는데 이 때의 난 자기 문제 해결하는데도 정신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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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섬주섬 밥을 입에 집어넣고 있으니 아시아 에이전트 제임스장씨가 오셔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대회 코스가 너무 어려웠던지, 오늘 하루에만 탈락자가 50명이 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식수부족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내일부터는 출발지에서나 CP에서나 1.5L 물을 2통씩 제공해 주기로 했단다. ㅡㅡ;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20회 대회 참가자인 나침반님도 초반부터 이렇게 어려울줄은 몰랐다고 하신다.
스테이지 2는 35km. 거기다 지도에는 상당한 크기의 모래언덕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 포기하려면 내일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억지로 침낭속에 들어갔는데, 여전히 덥고 피곤하지만 잠은 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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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MDS 란 무엇인가요?
A. 프랑스의 Mr. Patrick Bauer 가 창시한 서바이벌 마라톤으로 6박 7일간 모로코 부근의 사하라 사막 240km 를 달리는 경기입니다.


Q. 필요장비는?
A. 경기동안 자신이 먹을 식사, 침낭, 독사나 전갈에 물렸을때 필요한 응급키트, 그외 자기가 달리는데 필요한 모든 물품.


Q. 참가자격은?
A. 기초체력테스트 증명서(맞나?), 널널한 돈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


Q. 가게 된 동기는?
A. 출발 지구탐험대라는 TV프로에서 왠 연예인 여자가 거기 가는거 보고.


Q. 뜬금없는데요?
A. 원래 제가 그래요.


Q. 주위의 반응은?
A. 그 TV 볼때 키 170cm, 몸무게 105kg였는데, 무덤덤하게 '나 사하라사막 마라톤 갈거야' 하니 그냥 미X놈 취급했죠.


Q. 그 꼴로도 완주가 가능한가요?
A. 심한 평편족이라 군대도 못가는 4급이었는데, 운동해서 70kg까지 빼고 달렸습니다. 달린건 아니고 기어서 완주.


Q. 왜 거기서 힘들게 달리나요?
A. 왜 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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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회 대회 참가자는 5명.
악과 깡으로 살아가는 어린행자.
잘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 참가한 알맨님.
항상 자유롭고 싶은 나침반님.
참가자중 제일 야무진 홍양.
그런거 없는 걸러(본인).
그리고 사하라사막을 동경해서 스탭 자격으로 자비를 들여 참가한 슈가님까지 해서 6명이 함께 뒹굴기로 했다.

21년동안 이어진 이 대회는 그래도 점점이 한국 선수들이 참가해오고 있었는데
이번 대회처럼 참가진 전원이 퍼릇퍼릇한 20대인 경우는 처음.
20회 대회때도 참가했던 나침반님은, 그땐 40~50대 선수들과 함께 뛰었는데
경주 도중에 꼴불견인 어른이 있어서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고 하셨으니
이번엔 아무래도 좀 편하게 서로서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원래가 유럽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대회인만큼
한국에선 멀리 프랑스까지 가서 집합한 다음 다시 모로코행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체력적, 시간적 낭비가 필요불가결.
국민학생때 미국에 13시간동안 비행기타고 가면서
'두번다시 미국에 가나봐라'고 이를 갈만큼 장시간 비행을 싫어하는 나라서
좁디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날밤 꼬박 세며 프랑스에 도착한 후
다음날 새벽에 다시 모로코행 비행기 타고 사막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극심한 체력소모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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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와자자테에서 버스를 타고 대회장소로 이동한다.
4~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우리가 1주일동안 고생하며 달려야 할 거리를 이렇게 주파해 버리니 원... ㅡㅡ;
사막의 땅은 한없이 불그스름하고 하늘은 한없이 시리다.
중간에 버스가 멈추고 간단한 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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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처음보는 것들인데, 이런걸로 식사가 될까 싶었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는 한국사람이라 만족하긴 어려웠지만 전부 칼로리는 허벌나게 높아 보이는 것들이라 그냥 입에 쑤셔넣음.
짭쪼름한 생선이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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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건조한 사막이라 그늘과의 온도차가 엄청나다.
그늘에 들어가면 그냥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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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처음 발을 디뎌보는 인간들이라 어린애들처럼 마냥 신났다.
물론 전 대회 참가자인 나침반님은 아마 마음속이 여러가지로 심난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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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촬영 하는 척 하면서 슬그머니 뒤에서 쉬하고 있는 사람들 촬영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회도중에 화장실따윈 없으니
대변이든 소변이든, 남자든 여자든 마려우면 그냥 사람 없는곳에 가서 싸는 수 밖에.
물론 시야가 너무너무 넓은 이곳에선 사실상 의미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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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면 다시 트럭을 타고 비포장길을 더 들어가야 대회 출발지에 도착한다.
모로코에서 이 대회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최대의 이벤트이고
이미 익숙해진 아이들이 좀비처럼 몰려와서 뭐라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친다.

여러번 주의를 받은 사항이지만 자칫 뭔가 줬다간 좀비들에게 뜯어먹히듯이 아이들에게 둘러싸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뭔가를 줘선 안된다. (난 안줬는데 대회장에 도착하니 베낭 뒤에 꽂아놨던 물통이 하나 없어졌다. T_T)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거의 저물어가고 있었는데
무슨 착오가 생긴건지 5명인 한국팀의 비박지가 따로따로 흩어져 있는게 아닌가.
대회동안 말도 안통하는 외국인들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건 굉장한 마이너스 요소다.
한동안 입씨름끝에 한국팀 5명을 위해 텐트를 따로 하나 세우는걸로 결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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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피곤했는데 잠을 잔건지 만건지 한 몽롱한 상태에서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다.
기온차가 심한 사막은 밤에 많이 춥다고 들었는데, 춥긴 왠걸.
오리털 침낭에서 자다가 더워서 그냥 지퍼 다 열고 맨몸으로 뒤척였다.
텐트는 저렇게 큰 원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 원주민들의 전통 텐트라서 원주민들이 직접 세워준다.

나침반님이 코스 지도를 보면서 계속 걱정하던 일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것 같아서 의욕은 계속 저하중.
대회 코스는 미리 공개하지 않고 대회장으로 출발하는 버스에서 나눠주는데
올해 코스는 작년 대회 참가자인 나침반님이 보기에
역대 MDS 대회중 가장 어려운 코스일 거라고 말하기에 잔뜩 긴장중이었다.

달리기 힘든 모래언덕도 많고, 날씨도 매우 더운 편이라 상당한 고전이 예상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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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비행기 이동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장비점검일인 오늘 푹 쉬어야 하는데 그게 또 쉽지 않다.
사막 초짜들에게 신고식이라도 거행하듯 무지막지한 모래바람이 거의 하루종일 불어재낀것.
텐트 모냥을 보면 알겠지만 저건 그냥 햇빛막이용이지 바람막이용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다.
앉아있던 누워있던 버프를 뒤집어쓰지 않으면 모래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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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맛있는 식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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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모래바람때문에 흥이 꺾였다. 반은 음식이요, 반은 모래니.

첫 참가자인 사람들은 그냥 괴로워하기만 했는데, 나침반님은 오늘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에 감회가 새로운듯 했다.
그때 내 심정은 벌써부터 '괜히 왔다'였기 때문에 그런 걸 이해하기는 어려웠지.
지금은 아주 뼈저리게 동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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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장비점검을 하는 날인데,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참가자 640여명) 후반부에 검사받은 한국팀은 그냥 건성건성으로 넘어가 버렸다.

24회 대회때인가, 어느 외국인이 불행히도 힘겨운 레이스 첫날 후, 힘들어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다가 사망한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아마 요즘엔 좀 더 철저하게 안전에 대해 교육을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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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도중 필요하지 않은 짐들은 호텔로 보내지는데, 얼마나 모래바람이 심했던지 경기 후 호텔에서 여행가방의 열쇠가 열리지 않아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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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잠시 바람이 잠잠할 때엔 원주민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맨발로 사막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의 눈에
커다란 장비를 등에 매고 알아서들 생고생 하러 오는 외국인들이 어떻게 비춰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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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즈음엔 추최측에서 축하파티인지 위로파티인지 모를 조촐한 공연과 함께 대회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솔직히, 생각했던 것 만큼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 기분도 굉장히 우울해진 상태였고
지긋지긋한 모래바람때문에 말타며 총쏘는 원주민들의 공연을 즐겁게 감상할 여유따윈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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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조 무장강도 걸러, 알맨, 나침반.
내일이 대회 시작인데 왜 전혀 상쾌하질 않을까.
역시 사막을 너무 쉽게 본 것 같다.
그래도 어쩌나 돈 아까워서라도 완주는 해야겠고.

저녁에 포도주와 스파게티가 나왔는데, 나침반님은 '이게 제일 기억에 남을거에요' 라며 리필까지 해가며 먹었다.
나는 물론 반쯤 모래섞인 스파게티가 그렇게 맛있게 넘어가지 않아 한그릇만 먹고 치웠는데
다음에 가면 아마 나침반님과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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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런 대회에 가면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느니, 자기 한계에 도전한다느니 하는 감상적 인간이 되기 쉬운데
적어도 당시 저 곳에 있던 나는 '괜히 왔다'는 생각 외에는 별로 드는게 없었다.
최대한 체력 비축하려 했던 날이 모래바람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린터라 지치고 덥고 짜증날 뿐.

첫날 달려야 할 거리는 28km
한국에서야 반 장난으로 달려도 쉬운 거리지만 여기선 그리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대회 첫날이라는 것을 감안한 짧은 거리임엔 틀림없다.
15kg짜리 베낭을 짊어지고 50도에 육박하는 사하라 사막을 달릴 생각하니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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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가 꽤나 오래 전에 추천해 주었던 영화인데
국내 개봉은 커녕 DVD 도 발매가 되지 않아서 참 안타까워 하다가
간신히 발매가 된 덕에 한참만에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소개해주셔서 감사. ^^


감상 후
정말 징하게 호불호가 갈리겠다는 느낌이 든 영화.

기본적으로 숀 펜이 감독을 맡고 펄 젬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에디 베더가 음악을 맡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구성상 크게 허점으로 다가올 구석이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예측이 가능하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 작품을 보는 사람을 크게 4부류로 분류하자면
1. 유랑 여행을 좋아하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진실성에 크게 의미를 두는 사람.
2. 유랑 여행을 좋아하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진실성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
3. 유랑 여행에 관심이 없으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진실성에 크게 의미를 두는 사람.
4. 유랑 여행에 관심이 없으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진실성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
정도로 나눌수 있을 듯.

아마 이 작품을 가장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3번일 것이고
이 작품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2번일 것이다.

난 1번과 2번의 중간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보는 내내 절친한 동료를 만난 가슴 뿌듯한 느낌과 함께
눈에 띠게 작위적으로 구성된 주인공 알렉스 띄워주기에 여러번 씁슬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현대 사회의 합리적 구조 속에 그럭저럭 안착하고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알렉스의 오만하고 자만심 가득 찬 허영에 가까운 무모함에 진저리를 칠 것이다. 왜 저리 멍청하냐고.
아마 '내가 저렇게 했다면 훨씬 더 잘 할수 있을 텐데' 라고 말이지.

하지만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에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하는 부시맨들을 동물원 속 호랑이 관람하듯 돈을 주고 만나야 할 만큼
충분히 인간적으로, 내가 가진 인상으로는 충분히 추악하게
이익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고 관리되는 요즘 세상에 그나마 시원하게 한숨 한 번 쉴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은
어리석고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면서 가는 '무지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태풍이 지나간 후, 발정난 고양이만큼이나 히스테릭한 날씨 변화덕에 미친듯이 고생하면서
해가 막 저물 무렵 간신히 버려진 마굿간 하나를 발견해서 서둘러 자전거를 세워놓고
얼마 남지 않은 물을 탈탈 털어 밥 지어 먹은 후 건초 냄새를 맡으며 저려오는 두 다리를 눕히고
텐트를 찢어발기듯이 때려오는 매서운 바람때문에 한 숨도 못 자고
아침에 일어난 모습을 누가 봤으면 지명수배자로 착각하고 경찰을 부르러 달려갔을 만한 표정을 지었어도
자전거에 내 두 다리의 힘을 의지해 1500km를 달려온 후의 묘한 성취감은 그 비합리성을 뛰어넘는다.

바람을 등에 업고 브레이크를 잡고 싶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길 가로 불쑥 튀어나온
북방여우 30cm 앞에서 간신히 충돌을 면한 순간.
약 20초 남짓 서로 놀란 가슴을 벌렁거리며 진정시키는 동안 가만히 상대의 눈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을 때의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은 원시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나에게는 여행 말고 없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냥 여행하다가 픽 쓰러져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기 때문에
내가 이 녀석을 여느 영화평론가처럼 되도록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 처럼 행세하며 판단하긴 어렵다.
아마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느꼈던 것 처럼 나 역시 알렉스의 무모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막무가내 여행과
오만하고 꽉 막힌 자의식에 술술 넘어가 주는 주위 인물들의 비현실성에 진저리를 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원작 소설이나 이 작품이 꾸준히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나도 한 번 쯤은 해보고 싶다 라는 막연한 동경의 끈을 슬쩍슬쩍 잡아당기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는,
하지만 우리가 가장 합리적이라 인정하는 자연의 순리에 철저하게 위배되는
그런 가식적인 세상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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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난 그렇다.
화려한 관광지나, 고대의 문화 유산이나 그런 것들보다
그저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평범한 시골길을 달리는게
나한테 얼마나 큰 위안을 주었는지, 아마 그 멍청한 알렉스라면 조금은 동감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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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방구석에서 책 읽다가 약간 졸다보니 이내 해가 떴습니다.
어제 일로 피곤하신분들이 많을테니 그냥 혼자 조용히 경치구경이나 할까 싶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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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아침부터 기새좋게 놀고있는 어린아해들이 눈에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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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사람 깨울거 없이 일단 일어나 있는 사람부터 청소 시작하기로 하고 회관으로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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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도 일찍 일어났군요. 외지인을 되게 무서워합니다. 아왜 짖고 난리여...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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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기 힘든 담벼락이라 지나가다가 스냅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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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지나니 이제 대부분 일어나셨습니다.
어제 벌였던 광란의 불장난 흔적을 지우기 위해 청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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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전 재미있는 피사체를 찾아서 셔터 누르기 바빴네요.
이러니 찍사가 욕을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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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길게 찍어달라는 만양님의 요구는 찍사의 내공부족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언젠간 야망을 이루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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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책임자인 행자분과 담소를 나누는 듯 싶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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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한판 들어갑니다.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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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사람은 놀고 청소할 사람은 청소해야죠. 뭐든 알아서 하고싶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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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쓰레기는 가져가는게 인지상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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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B 는 제가 마셨습니다. 달콤한게 음료수같아서 맛있더군요.
막걸리는 별로 많이 드시질 않아서 꽤 남았습니다. 마을 어르신들 드시라고 그냥 남겨두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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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돌았던 음료수 손에 들고 즐거워하는 아해. 모든 어른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해서 그런지 생글생글 웃으며 잘 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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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 한 방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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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게 찍으면 좀 그러니 이런 사진도 좀 찍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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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나 빡빡한 일정을 잘 소화해낸 책임자 행자군.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뒤에서 하나도 안도와주고 뒷짐만 지고 있었던 사하라 멤버 SAS.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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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들이대면 포즈 잘 잡아주시는 남아공 귀국자녀 펠라님. 자연샷은 자연샷의 맛이 있지만 역시 포즈 잡아주니 찍기는 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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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서 사진 찍었지만 갈 때라고 지나칠 순 없는 절경 중 하나인 승호대.
운전하느라 수고하신 사하라 멤버 대영님을 절벽 끝 1cm 에 세워놓고 광각으로 주욱 밀어 찍었습니다.

이제 산막골은 벗어났지만 아직 맛있는 점심 먹을 일이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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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돌아가고 대충 회관을 정리한 뒤 학교로 돌아가 삼겹살 10근을 앞에 두고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습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불장난은 재미있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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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봤던 소심한 녀석이 불은 별로 무서워하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네요.
슬금슬금 다가가서 만져주니 역시 금새 경계를 풀고, 오히려 손을 멈추니 슬금슬금 몸을 제쪽으로 비비기도 합니다.
역시 제 농후한 손놀림에 걸리면 어떤 동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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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시는 분 말씀으로는 굉장히 머리가 좋은 개라고 하시더군요.
초코파이를 무지하게 좋아해서 아침에 토끼나 새같은 산짐승등을 사냥해와서 집앞에 내놓고 초코파이를 내놓으라고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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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키의 1.5배는 되었던 장작더미는 금새 무너져 버렸습니다. 조금만 더 타면 숯을 이용해서 고기를 구워먹을수 있을듯.
휴대폰도 통하지 않는 첩첩산중이라 공기는 서울에 비할 수 없이 맑은터라
그냥 멀찍이 앉아서 불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그리 좋을수가 없더군요.
이런 공기좋은 곳에서는 술도 담배도 훨씬 맛있다는 말씀을 하시길래
저도 이곳에서 담배 한번 피워보려고 예전부터 작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개피 물어봤습니다.
딱히 담배때문에 기분이 좋다기 보다는 함께 앉아서 이야기하는데 좋은 소재거리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네요.
확실히 공기가 워낙 맑아서 그런지 별로 어지럽지도 않고 기분은 상쾌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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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모임의 책임자로서 온몸으로 열심히 뛰었던 행자분도 이제 좀 긴장이 풀리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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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던 마을 어르신 몇분과 함께 촛불 켜고 올해 소망을 바라는 어쩌구 시간을 가졌는데
전 이런 공동고백같은거 질색이라 슬쩍 도망쳐 나왔습니다. 이래서 찍사가 편하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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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고기를 굽습니다.
통나무 두개 사이에 숯을 퍼담은 후 그 위에 고기를 잔뜩 얹은 석쇠를 올려놓습니다.
기름이 줄줄 빠진 맛있는 삼겹살이 만들어지겠죠. 행자분은 금새 실력발휘를 해서 학교안 취사장에서 김치찌개를 만들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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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도통 안보이던 냥이가 고기냄새를 맡고 다가왔습니다.
이녀석은 학교에서 우안선생님과 반 동거중인 냥이인데.. 너무 잘 먹어서 좀 비만끼가 있네요. ㅡㅡ;
어떨 때는 학교 앞에서 하루종일 자다가, 다른 날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건지 한참 안보일때도 있는
우안선생님과 비슷할 정도로 자유스럽게 살아가는 녀석입니다. 그러고보니 덩치도 닮았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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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덜익은 삼겹살 몇점을 던져주고 돌아오는데.. 삼겹살의 기름이 숯에 떨어져 불길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이때부터 석쇠 올리거나, 고기 옮기거나 하면서 굽기담당들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되었죠.
연기가 하도 많이 나서 그분들 몸에선 야릇한 장작 냄새가 며칠동안 계속되었을 겁니다.

전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하라 멤버들과 뒤에서 담배나 꼬나물고 이번 모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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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10근은 장장 4시간동안이나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끝간데 없는 회원들의 위장을 책임졌습니다.
불장난은 타오를때도 재미있지만, 서서히 불씨가 사그라들때의 아쉬움도 놓칠 수 없는 아련한 즐거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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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안선생님은 학교 안에 2차 준비를 하시고 몇몇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셨습니다.
중간에 산막골 처음 온 우리쪽 젊은 회원들도 덤태기로 새벽까지 이야기를 들었죠. 여기 오게되면 한번쯤은 겪은 통과의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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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회원들은 마을회관으로 자러 가고, 사하라 멤버들만 남아서 정신없었던 오늘을 무사히 넘긴것에 대해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해 줬습니다.

산막골의 밤은 제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풍경과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마 서울의 밤을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질 가능성이 높겠죠.
저를 위해 준비한 장난감같은 조그만 담배를 입에 물고 짙게 가라앉은 주위를 보고 있으면
친한 동료가 옆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기분이 좋을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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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직 추위가 풀리지 않은 3월 초순의 산막골은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정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이러고 있으면 마치 사하라의 밤을 연상케 해서 더욱 더 즐겁고, 그리워지더군요.
아마 사하라 멤버들은 저하고 비슷한 생각을 했나 봅니다.

새벽 2시쯤 사하라 멤버들이 자기로 되어있든 10평남짓한 조그만 관사로 들어갔는데
전 옆의 골방에 책상에 있길래 가지고 갔던 책을 꺼내들고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이런 밤에 그냥 자버리는게 아쉽기도 했고, 고요하고 공기좋은 분위기에선 책도 훨씬 재밌게 읽히는 터라
먼동이 틀 때까지 느긋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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